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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샤오치 아들, 中인민군 최고계급에

    류샤오치 아들, 中인민군 최고계급에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문화혁명 기간에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추종세력)의 우두머리’ ‘반혁명분자’ 등으로 몰려 실각한 후 숨진 ‘비운의 혁명가’ 류샤오치(劉少奇·왼쪽) 중국 전 국가주석의 아들 류위안(劉源·오른쪽·58) 군사과학원 정치위원이 인민해방군 최고 계급인 상장(上將)으로 승진했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은 20일 베이징의 8·1빌딩에서 류 위원을 비롯한 상장 승진자 3명에게 계급장을 달아주며 격려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마샤오톈(馬曉天)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과 혁명원로인 장전(張震)의 아들 장하이양(張海陽) 청두(成都)군구 정치위원이 이번에 함께 상장으로 승진했다. 상장은 1994년 상위 계급인 1급상장이 없어지면서 인민해방군 최고 계급이 됐다. 류샤오치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왕광메이(王光美) 사이에서 태어난 류 상장은 1982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이후 허난(河南)성 부성장을 지냈으며 1992년부터는 해방군 소속인 무장경찰 부대로 옮겨 요직을 두루 거쳤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도한 대약진운동 실패 직후인 1959년 중국의 제2대 주석에 오른 류샤오치는 시장경제 정책을 도입하는 등 마오를 강하게 비판하던 중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당에서 제명당한 뒤 가택연금됐다. 1968년 7월18일 홍위병의 습격을 받아 폭행과 폭언을 당한 뒤 지병이 악화돼 1969년 11월12일 허난(河南)성 카이펑(開封)에서 사망했다. stinger@seoul.co.kr
  • 中 방사능 유출 쉬쉬… 100만명 대피 소동

    中 방사능 유출 쉬쉬… 100만명 대피 소동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허난(河南)성에서 최근 방사능 물질이 유출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도시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허난성 카이펑(開封)시 치(杞)현의 한 방사능 물질 취급공장에서 방사능 동위원소인 ‘코발트 60’이 누출돼 재앙이 닥쳤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지난 17일부터 주민 수만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고 20일 보도했다. 하지만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주민들의 증언을 인용해 현 주민 109만명 가운데 80%가 대피, 도시가 텅 비었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7일 치현의 방사능 취급 공장에서 고춧가루에 ‘코발트 60’을 투사하는 작업을 하던 중 기계에 고장이 생기면서 발생했다. 기계 고장을 발견한 시점은 일주일 뒤인 14일. 기계고장으로 고춧가루가 모두 타버린 사실을 알게 된 공장측이 신고를 했고, 다음날 국가환경보호부는 핵안전국 소속 전문가들을 파견, 긴급 조치를 취한 뒤 방사능 누출 여부를 정밀 조사했다. 조사 결과 공장과 주변 지역의 방사능 농도는 자연 상태 수치를 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소식들이 주민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이달 초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 관련 소식이 퍼지자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16일 국가환경보호부가 사후 조치를 위해 전문가를 또다시 파견하면서 소문은 “치현에서 핵 물질이 유출돼 여러 명이 숨졌다. 이제 앉아서 죽는 것을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등 비약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17일 상황은 ‘엑소더스’(대탈출)에 가까웠다. 주민들은 승용차는 물론 경운기, 마차까지 동원해 대피했고 정저우(鄭州), 뤄양(陽) 등으로 향하는 도로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피난행렬로 장사진을 이뤘다. 당일 저녁 카이펑시 정부 고위관계자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유언비어를 믿지 말라.”며 무마를 시도했지만 주민들은 하루가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stinger@seoul.co.kr
  • 원색으로 담아낸 ‘비극의 한국사’ 그리고 신화

    원색으로 담아낸 ‘비극의 한국사’ 그리고 신화

    “한달 전인가요,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이 방계 족보에 잘못 올라간 자신들의 족보를 변경해 달라고 소송해 승소했어요. 사육신들의 단종복위 사건이 1456년에 일어났으니 이미 550여년 지난 일이죠. 이번 소송의 결과는 왕위를 둘러싸고 삼촌이 조카를 죽인 세조와 단종의 비극은 21세기 지금도 진행 중인 일이라고 봐야겠지요.”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2009년 올해의 작가’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서용선(58) 작가는 ‘왜 단종과 사육신의 비극을 그리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역사는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기억을 통해서, 또는 구체적인 오늘날의 현상을 통해 연장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박팽년의 아내는 세조에게 출산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한다. 세조는 딸을 낳을 경우에만 살려 주겠다고 약속했고, 박의 아내는 아들을 낳자 종의 자식과 바꿔치기를 해 그 아들을 살렸다. 이름을 숨기고 살던 박팽년의 자손은 조선 숙종 때 단종이 복권되자 함께 복권되면서 박씨 족보에도 이름을 올리는데, 급하게 처리하다 보니, 뿌리를 잘못 찾아 갔던 것이다. 일본인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오태석의 연극 ‘태(胎)’는 이런 역사의 비극을 그렸다. ●단종과 사육신 연작, 6·25연작 등 그려 서 작가는 국내 서양화단에서는 드물게 ‘역사화’에 관심을 가지고 1986년부터 단종과 사육신 연작을 그리고 있다. 6· 25전쟁과 관련한 연작이나, 단군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한국인의 조상에 대해 그린 신화 시리즈 ‘마고성 사람들’ 그림 등도 역사화의 한 연장으로 볼 수도 있겠다. 서 작가는 “서양 명화라는 것이 수천년 동안 사회와 인간 사이의 갈등과 투쟁, 역사· 신화· 문학 속 인간들에 대한 끈끈한 관심 등을 시각화했는데, 우리를 포함해 동양은 수천년 동안 관념 속의 맑고 아름다운 풍경만을 그렸다.”면서 “이런 자각이 역사화나 신화를 그리도록 했고, 특히 신화의 경우는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정신을 고양시키기에 자꾸 그리게 된다.”고 말했다. 역사화나 신화를 그리는 배경으로 그는 뒤늦은 자아의식의 발견을 든다. 그는 가세가 기울자 방황하며 수 차례의 대입에 실패해 군대를 다녀온 후 남들보다 5년 정도 늦은 1975년에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에 입학을 했다. 서 작가는 “내 나이 25~26살 때인데, 창조적 상상력 하나 없이 그 얼굴이 어떤 역사와 배경이 있는지도 모른 석고 데생으로 입시를 치른 것을 생각하면 창피하다. 어떻게 작가가 됐는지 모를 정도다.”고 이야기한다. 반백이 된 지금이야 슬그머니 웃음을 머금고 과거를 토로하지만, 30~40대에는 치열하게 고뇌했을 것만 같다. 서 작가는 색채 사용도 그 나이 또래의 서양화가들과 다르다. ‘한국의 마티스’란 별명을 얻은 박생광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는 “원색에 대한 본능을 의식적으로 꺼내기 위해서 노력한다. ”고 말한다. 탱화나 불화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해 냈던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 미술과 문화는 색채를 억제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먹의 농담을 활용한 수묵화가 크게 발달했다는 것. 그는 500년 이상 억제된 색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잠재의식 속에서 색채감각을 꺼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원색을 사용한다. 때론 그림에서 색들이 조화롭지 않고 부자연스럽지만, 그 촌스러움을 즐긴단다. 그림의 크기도 개인들이 소장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다. 그 이유는 이렇다. 그는 ‘도시인’ 연작 시리즈를 위해 서울이나 베이징을 왔다갔다 한다. 그는 베이징에서 20대 중반의 젊은 작가들이 실평수 100평(330㎡)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작업하는 걸 보고, 의식적으로 크게 그려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을 보면서 서 작가는 어린 시절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을 읽으며, 잃어 버린 영토에 대해 분함을 느꼈을 때와 비슷한 감상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자꾸만 축소지향적이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말한다는 것이다. ●9월20일까지 전시… 작품의 크기·색채 등 끊임없는 도전 주제의식, 색채와 크기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정신 등이 그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이유로 보인다. 작품 감상의 포인트겠다. 지난해 서울대 미대 교수를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있는 그는 틈이 나면 강원도 영월을 방문한다. 단종릉인 장릉, 유배됐던 청령포, 나중에 시신이 버려졌던 서강 등을 돌아본다. 또 투기된 단종의 시신을 차가운 물속에서 수습한 영월호장 엄흥도를 생각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1986년 서강에서 단종의 이야기와 강물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편안함을 느꼈다는 그는, 파란 강물에서 권력을 향해 질주하는 인간의 비극과 인생의 비애를 함께 보았으리라. 그가 청년의 심정으로 느낀 감정들이 2009년 초대형 회화 50여점과 조각 10여점, 드로잉 120여점으로 시각화됐다. 전시는 9월2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부터 선정· 전시하는 ‘올해의 작가’는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에서 크게 기여했거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 주는 작가들로, 전수천(1995), 김호석(1999), 노상균· 이영배(2000), 전광영· 권옥연(2001), 이종구· 서세옥(2005), 정현(2006), 정연두(2007)씨 등이 선정됐다. 관람료 3000원. (02)2188-6000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외국어랑 놀자-영어]He is away on vacation. 그는 휴가 중입니다.

    A: My computer appears to break down. I am afraid that I can’t finish my paperwork. (컴퓨터가 고장났나 봐요. 문서작업 끝내지 못 할까 봐 걱정되네요.) B: What’s wrong with it? (컴퓨터가 왜 그래요?) A: I think I’ve got a computer virus on my computer. (컴퓨터가 바이러스 먹은 것 같아요.) B: Did you keep your anti-virus software up to date? (바이러스 백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했어요?) A: I don’t know when I updated it. Where is our computer guy? (언제 업데이트했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우리 컴퓨터 전문가 어디 있어요?) B: He is away on vacation. (휴가 중인데요.) →break down (기계, 장비 등이) 고장나다. Let’s take stairs as the elevator broke down.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으니까 계단을 이용하죠.) →get a computer virus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리다= get a virus infection on one’s computer →keep something up to date ~을 최신화하다. 업데이트하다. 그냥 동사로 update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You need to update your computer operating system. (컴퓨터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be away on vacation away는 어디론가 가고 없다라는 의미이고, on vacation은 휴가 중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휴가가고 없다라는 말이 된다. (박명수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 교수)
  • [공연리뷰]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공연리뷰]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눈이 오는군. 오늘은 산에서 자는 날도 아닌데, 왜 이렇게 늦는고?”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 어미가 오지 않는 아들 온달(김수현)을 기다리며 혼잣말을 한다. 허공에는 끝없이 눈발이 날리고, 이윽고 그 위로 조용히 어둠이 내린다. 연극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의 마지막 장면은 이전의 모든 비극적 서사를 압도하는 서정으로 관객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온달모(박정자)는 분명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었고, 눈 앞에서 며느리 평강공주(서주희)의 죽음을 목도했음에도 마치 이 모든 일들이 한낱 나쁜 꿈이기라도 한 양 아들의 귀가를 걱정한다. 억울한 현실에 맞설 아무런 힘이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절박한 저항은 그저 현실을 부정하는 방법뿐이라는 것처럼. 평강온달 설화에 바탕을 둔 연극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며 이야기를 쌓아 나가는 대신 핵심적인 대목들을 뚝 떼어내 클로즈업시킨다. 평강이 가상의 인물로만 여겼던 바보 온달을 현실에서 만나는 장면, 평강의 도움으로 장수가 된 온달의 죽음, 그리고 권력암투에 의해 평강마저 목숨을 잃는 파국이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 거울처럼 반사되는 바닥과 수십개의 장대로 숲을, 커다란 검은 돌덩이로 가옥을 대신한 상징적인 세트는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신화적 요소를 부각시킨다. 2층 객석 양 끝에 자리한 피아노와 드럼, 아쟁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은 불안한 기운을 사방에 퍼뜨린다. 소설가 최인훈이 1970년대에 발표한 첫 번째 희곡인 이 작품은 평강과 온달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인연과 업(業)을 얘기하는 한편으로 권력의 비극적 속성에 대해 경고한다. 정적을 피해 궁을 빠져나온 평강이 온달을 통해 권력을 되찾으려고 했다가 희생되는 결말이 상징하는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하지만 평강에 비해 온달의 캐릭터가 희미하고, 등장인물의 내면이 긴 독백으로만 표출된 점 등 몇몇 대목에선 세월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의 주제를 극점까지 몰고 가는 한태숙 연출의 스타일이 이 작품에선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듯한 아쉬움이 크다. 2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1644-2603.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구국의 항일투쟁때도 월드컵 4강 신화때도

    구국의 항일투쟁때도 월드컵 4강 신화때도

    서울신문의 105년 역사는 그대로 20세기 이후 한국의 역사다. 한말, 민족정신의 수호에 앞장선 대한매일신보 시절부터 민족문화를 지키며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경제성장을 이룬 오늘날까지 서울신문은 숨가쁘게 이어진 한반도의 변화를 기록해 왔다. 식민지배와 6·25전쟁, 민주화투쟁의 소용돌이를 극복한 우리 역사가 그랬듯 때론 영욕이 교차하기도 했지만, 국민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며 꿈을 만들어가는 서울신문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04년 7월18일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후 이념대립이 어느 때보다 심각해진 2009년 현재 중도적인 정론지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서울신문의 역사를 사진으로 돌아본다.
  • NBA 스타 야오밍 상하이 농구단 인수한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미국 프로농구(NBA)에서 활동하는 중국 농구 스타 야오밍(姚明·29)이 농구단을 인수, 구단주로 변신한다. 관영 신화통신은 야오밍이 상하이 연고 남자농구팀인 동방농구단 지분을 인수하기로 주요 주주들과 합의했다고 16일 보도했다. 인수 대금은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중국 농구계에서는 대략 2000만위안(약 37억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stinger@seoul.co.kr
  • 시인 고은 이어 소설가 황석영 급부상

    ‘고은, 박경리, 황석영, 조정래, 이문열, 김지하….’ 국내 작가들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점쳐 볼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국내 신문, 방송 문학담당 기자들은 노벨상이 발표되는 매년 하순 즈음이면 ‘올해야말로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 있다.’는 식의 기사를 쓴다. 또 후보로 올라 수상 가능성이 유력한 것으로 여겨지는 문인-지금까지는 거의 고은 시인이었다-의 집 앞에 기자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진을 치는 것도 연례 행사가 됐다. 물론 아직껏 국내 문단에서는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1901년 노벨문학상이 제정된 이후 105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최종 후보 5명은 물론, 1차 후보 200명 명단도, 선정 기준도, 그 어떤 것도 공개된 바가 없다. 그저 국내·외 언론 등에서 추측할 뿐이다. 어쨌든 국내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에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연말 수상자 발표석상 마이크 앞에 선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의 입에서 국내 작가의 이름이 불려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벽이 있다. 국내의 문학적 성취를 세계적 보편성으로 공유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늘 얘기되다시피 ‘번역’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최명희의 ‘혼불’, 박경리의 ‘토지’ 등에서 빈번히 등장하곤 하는 토속민의 삶과 정서, 문화 등에 녹아든 살가운 방언을 다른 문화권의 언어로 바꿔서도 작품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답은 나온다. 번역을 거쳐 작가의 일부 문장과 표현이 훼손될지라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원형이 남도록 만드는 것이다. 불교와 동양사상의 바탕 위에 서구 신화가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 세계를 가진 고은이 어느 작가들보다 더 많은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며 세계적 주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고은이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가로서, 또한 1990년대 미국 하버드대 초빙교수로 다녀오는 등 문인으로서도 활발한 국제 활동을 해왔던 점도 충분히 감안되는 요소다. 이와 같은 작품 세계, 작가의 개인 이력 등 측면에서 갖는 강점은 황석영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며 최근 들어 노벨상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천 vs 유맨

    190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끈 프리미어리그 ‘반항아’ 에릭 칸토나(43)는 “유맨이 유럽 챔피언에 오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한 적 있다. 나이키 축구 광고로 유명한 이 털보는 맨유를 뒤집어 팀 이름을 만든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를 적극 지지했다. K-리그 제주의 ‘전설’로 불리는 곽경근(38·여의도고 감독)은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만든 팀이라는 점에서 부천 FC는 세계의 어느 나라에도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한다.”며 입술이 닳도록 칭찬했다. 묘한 인연으로 창단한 지구 건너편의 두 팀이 18일 부천 종합운동장에서 우정의 한판 승부를 벌인다. 이번 ‘드림매치’는 부천 서포터들이 후원사인 SK텔레콤에 해외 클럽과 경기하고 싶다는 선수들의 소망을 들어주자고 건의해 성사됐다. 유맨은 2005년 미국인 재벌 말콤 글레이저(81·퍼스트 앨라이드 코퍼레이션 최고경영자)에게 맨유가 인수되면서 상업화 색채가 뚜렷해지자 시민 4000여명이 성금을 모아 만들었다. 1878년 공업도시 맨체스터의 근로자들이 똘똘 뭉쳐 출발한 전통을 살려 자본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자는 뜻이었다. 10부 리그에서 시작한 유맨은 해마다 우승컵을 꿰차며 2008~09시즌 7부(노던 프리미어리그 프리미어 디비전)에선 6위의 성적을 냈다. 부천 FC 역시 K-리그 SK가 제주로 옮기자 팬들이 직접 나서 만든 국내 첫 축구 클럽이다. 2007년 12월 창단, 지난해 처음 출전한 K3-리그에서 14팀 가운데 13위에 머물렀지만 승강제 도입 땐 1부 진출을 꿈꾼다. 적게는 2000여명, 많게는 7000명 가까운 관중을 동원한 마이너 인기 구단이라는 점도 빼닮았다. 선수들은 물론 투잡이다. 낮에는 돈을 벌고 짬짬이 공을 차는 ‘주경야축(晝耕夜蹴)’의 삶인 셈이다. 대표적으로 유맨의 수비수 데이비드 채드윅(32)은 창문을 수리해주며 연명한다. 부천의 미드필더 박지성(25·맨유 박지성과 동명이인)은 족발집 배달원이다. 선수단 28명을 이끌고 16일 한국에 온 유맨과 부천은 이날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선전을 다짐했다. 앤디 웰시 유맨 구단주는 “팬들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두 구단이 만나게 된 것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서 “축구는 이익 창출을 위한 활동이 아니다. 지역 사회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해춘 부천 단장은 “이번 유맨전은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과 더불어 축구에 대한 열정을 북돋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유맨 선수단은 우정의 무대인 부천종합운동장에서 17일 연습을 할 예정이다. 유맨 서포터스인 ‘붉은 반항아(Red Rebels)’ 20명도 자비로 항공권을 마련해 경기 날짜에 맞춰 부천을 찾는다. 이에 맞서는 부천 서포터스 ‘헤르메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12번째 신)’도 대규모 응원단을 꾸릴 생각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시론]한족 제국주의와 변강 민족주의/김태승 아주대 중국 근현대사 교수

    [시론]한족 제국주의와 변강 민족주의/김태승 아주대 중국 근현대사 교수

    1957년 중국 전인대 민족위원회가 소집한 민족사업좌담회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화가 한 민족이 폭력으로써 다른 민족을 유린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반동적인 것이다. 그러나 동화가 여러 민족이 자연적으로 융합돼 번영으로 나가는 데서 이뤄진 것이라면 그것은 진보적인 것이다.” 그는 “현대화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반드시 이뤄 내야 할 것”이 민족단결이며 그것은 “대(大)한족주의와 지방 민족주의 극복”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심과 주변, 제국과 변강 관계로 설정됐던 소수민족과 중앙정부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재구성해 내지 못하는 한, 중국의 사회주의 현대화는 이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지난 5일 신장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족 충돌은 그런 우려가 아직도 진행형임을 분명하게 드러냈고, 사후 처리과정을 보면 중앙정부의 의지가 어떤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사건이 중국정부의 민족정책과 관련해 중요한 점은 그 충돌이 ‘국가 권력’ 대 ‘저항적 소수민족’ 사이의 전형적 대립이 아니라 민간에서의 ‘대한족주의’와 ‘지방민족주의’의 대립과 갈등의 산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신장 지역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위구르인이 처한 상황에 우려를 갖게 된다. 일부 성공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나, 삶의 질에서 위구르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조차 중심에서 배제된, 주변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관광지 주변에서도 위대한 위구르인의 역사를 만나기는 어렵지만, ‘실크로드’를 ‘개척한’ 한족 신화는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그것은 신장을 바라보는 한족의 시각이 식민지 확대에 골몰하고, 그것을 찬양했던 제국의 시선에 머물러 있음을 증언한다. 그래서 위구르자치구는 여전히 한족의 찬란했던 역사를 보여 주고 한족 식민지로 해석되는 제국의 변강으로 비쳐지게 된다. 중국의 서부 대개발 정책과 함께 확대된 시장경제의 신장 침투는 제국적 관점을 더욱 강화해 나갔다. 시장 적응력을 확보한 한족과 그렇지 못한 위구르인 사이의 경쟁관계에서 나타나는 위구르족의 좌절을, 이주해 온 한족들은 ‘게으르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으면서 불만 많은 위구르족의 한계’라는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는 제국의 관점이 시장논리와 결합해 내면화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 논리체계와 ‘제국의 신민’들이 ‘변방 야만족’을 바라보던 과거 시선 사이에서 차이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중국 정부는 이 사건에 조직화된 배후가 있다며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1일 상하이에서 나온 한 관변단체 성명서도 ‘테러리즘, 분열주의, 극단주의와 외부세력과의 합작’으로 이 문제의 본질을 정리했다. 이런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외부 영향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이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성찰이 중요한데, 중국 정부와 사회는 이 부분에서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저우언라이가 지적했듯이 동화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민족을 폭력으로 유린하거나 현실을 은폐해서는 위구르인들이 중국인으로 남아 있기 어려울 것이고, ‘진보적’ 민족문제 해결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제국을 지향하는가. 이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중국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때다. 김태승 아주대 중국 근현대사 교수
  • 민족, 과연 최상위 가치일까

    단일민족 신화에 기반한 한국 민족주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강한 응집력으로 근대 산업화를 이룬 성장의 원동력인 동시에 ‘우리’와 다른 남을 철저히 차별하고 배제하는 획일성으로 비판받고 있다. 긍정적 요소를 강조하는 쪽은 우파 민족주의, 폐해를 인정하지만 유효성에 더 무게를 두는 쪽은 진보적 민족주의로 구분된다. 근래에는 민족주의를 폐기, 또는 약화하자는 탈민족주의도 민족담론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권혁범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최근 출간한 ‘민족주의는 죄악인가’(생각의 나무 펴냄)에서 이 세가지 민족주의를 둘러싼 논의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각각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나름의 균형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시도했다. 권 교수는 먼저 단일민족 의식은 근대민족국가 형성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국사와 국어 등 국가 교육을 통해 유포된 상상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민족을 최상위 가치로 두는 민족주의적 세계관은 생명, 자유, 평화, 환경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무시하거나 배제할 위험성이 크다고 말한다. 이런 측면에서 진보적 민족주의도 퇴행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민족관에 반대하지만 젠더나 다른 정체성을 가진 하위집단의 문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한계를 지닌다고 권 교수는 주장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민족주의의 부정적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민족이라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또 민족을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보는 단순한 시각을 경계한다. 결론적으로 ‘민족주의는 죄악인가’란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대신 민족이란 범주를 고민하면서 페미니즘, 인권, 환경 등을 축으로 한 세계시민주의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을 강조한다. 한국사를 세계사와의 유기적 관계에서 파악하고, 민족주의가 지배적 담론의 장에서 약화되도록 다른 가치체계, 이를 테면 사회정의론, 세계시민주의 등을 확산해야 한다는 것 등이 권 교수가 제시하는 방책이다. 1만 1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부고] 中 국학대가 지셴린 사망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국학과 동방학, 불교학 등의 대가인 중국의 ‘국학스승’ 지셴린(季羨林) 베이징대 명예교수가 11일 지병으로 숨졌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98세. 지난 1911년 산둥(山東)성 린칭(臨淸)에서 태어난 지 교수는 칭화(淸華)대 서양문학과를 졸업한 뒤 교환대학원생으로 독일에 유학, 범어 등 고문자와 고문화를 전공했다. 1946년 귀국후 베이징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베이징대 부총장, 중국사회과학원 남아시아연구소 소장 등을 지냈다. 12개국어에 능통하고, 인문과학을 두루 섭렵한 그는 인도 고대 언어, 중국 문화와 동방 문화, 불교, 비교문학, 산문 등에서 수십권의 저서를 남겼고, 후학들은 이를 집대성해 24권의 ‘지셴린 문집’을 펴냈다. 베이징대는 즉각 장례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동방학 개척의 공로 등을 기려 그의 장례를 베이징대학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stinger@seoul.co.kr
  • 우루무치 석유탱크 폭발…공안 “테러 가능성 적어”

    위구르족과 한족간 유혈충돌로 184명이 숨지고 1000여명이 부상당한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수도 우루무치에서 12일 오전 10시쯤 석유 저장탱크가 폭발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또 “폭발로 인한 사상자는 보고되지 않았고 폭발 원인에 대해서는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우루무치시 공안국 관계자가 “이번 사고는 자연 발생적인 폭발”이라고 말해 고의적인 테러 가능성을 배제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사고는 우루무치 북부인 미둥(米東)구에 위치한 정유공장에서 발생했다. 폭발은 정유 공장의 1만㎥ 규모의 저장탱크에서 일어났으며 이날 정오쯤 불길이 잡혔다고 현지 소방당국은 전했다. 중국 공안은 테러에 의한 사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현장을 통제하면서 테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자세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베이징 연합뉴스
  • 쟈니 리 알아요? 뜨거운 안녕·사노라면은요?

    쟈니 리 알아요? 뜨거운 안녕·사노라면은요?

    ‘또다시 말해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별들이 다정히 손을 잡는 밤. 기어이 가신다면 헤어집시다. 아프게 마음 새긴 그 말 한마디 보내고 밤마다 눈물이 나도 남자답게 말하리라, 안녕이라고. 뜨겁게 뜨겁게 안녕이라고’ 어느 날 노래방에 갔다가 손자 같은 젊은이가 ‘뜨거운 안녕’을 부르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반가운 마음에 손짓을 했다. “쟈니 리 알아?” “모르는데요.” “‘뜨거운 안녕’은 알아?” “그럼요. 제 십팔번인데….” “내가 이 노래 부른 가순데….” “정말요?” 쟈니 리(본명 이영길·71)는 이 같은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제 이름은 이미 썩어 없어졌어요. ‘뜨거운 안녕’도 그랬을 것 같았는데 아직도 불려지니 얼마나 좋아요.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말한다. 쟈니 리가 여전히 힘을 잃지 않은 목소리를 과시하며 최근 새 노래 ‘걱정마’를 발표하고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원로 가수들이 옛 노래로 이런저런 공연 무대에 서는 경우는 왕왕 있지만, 일흔 살이 넘어 새 노래를 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쉽게 느낌이 오지 않는다면 요즘 한창 인기있는 빅뱅이나 소녀시대가 2050년에 신곡을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쟈니 리는 빅뱅 등에 못지않게 1960년대를 뜨겁게 달궜던 최고의 인기 가수였다. ●전쟁 고아에서 극장쇼 스타로 1970년대에 남진-나훈아가 있었다면 1960년대에는 ‘뜨거운 안녕’의 쟈니 리와 ‘허무한 마음’의 정원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당시 청춘들의 가슴을 휘저었다. 1938년 만주에서 태어난 쟈니 리의 삶은 소설과 다름없다. 어린 시절을 외갓집이 있던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보내다가 1950년 말 혈혈단신으로 부산까지 내려왔고 고아 신세가 됐다. 쟈니라는 이름은 외국인 양아버지가 붙여준 것. 음악을 알게 해줬던 양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인종 차별을 겪었고, 호적이 없었던 탓에 불법 입국한 사실이 드러나 되돌아온다. 스무 살의 나이에 상경해 어렵사리 쇼극단에 들어가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극장쇼 무대는 정장을 입고, 부동자세로 노래를 불렀던 분위기. 쟈니 리는 정원과 함께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서양에서 유행하던 리듬 앤드 블루스나 로큰롤 번안곡을 부르며 무대를 헤집고 다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윤복희가 미니스커트 열풍을 몰고 왔다면, 앞서 쟈니 리는 청바지 문화를 선도했다. 준수한 외모와 호소력 짙은 가창력, 세련된 스테이지 매너가 인기의 비결. 1966년부터 본격적으로 음반 취입을 한 그는 ‘뜨거운 안녕’, ‘내일은 해가 뜬다’ 등을 발표한다. “생활이 어려워 남대문 시장에서 다 떨어진 청바지를 사서 의상으로 입었던 것뿐인데 선배 가수들이 난리가 났었죠. 허허허. 정원과 제가 무대에 오르면 젊은 여성 팬들이 속옷을 던질 정도로 난리가 났어요. 피카디리, 단성사, 대한극장, 국제극장, 국도극장 등에서 모두 쇼를 했었는데 저와 정원이 섭외 1순위였죠. 그때 인기에 힘입어 ‘청춘대학’, ‘즐거운 청춘’ 등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고….” 1970년대 중반 연예계 생활을 접고 훌쩍 미국으로 떠나버린 것에 대해 쟈니 리는 “화려한 만큼 그 이면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던 연예계 생활의 어두운 면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돌이켰다. ●신곡 ‘걱정마’ 발표, 남은 인생도 노래와 함께 1992년 쟈니 브라더스의 김준과 함께 재즈풍 앨범을, 2005년 반야월 선생과 함께 트로트풍 앨범을 내는 등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간간이 앨범을 발표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사이 2000년대 초반에는 식도암 수술로 오랫동안 몸을 추스르기도 했다. 그가 다시 조명받은 것은 들국화가 구전가요라며 불렀고 장필순, 크라잉넛, 신화, 레이지본, 체리필터 등이 리메이크했던 ‘사노라면’이 사실은 ‘내일은 해가 뜬다’였고, 이 노래를 부른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2006년 말 한국에 완전히 정착한 그가 최근 발표한 미니 앨범의 머리곡은 ‘걱정마’다. 록과 재즈 느낌이 동시에 나는 노래로 왕년에 키보이스에서 활동했던 윤항기 목사가 선물했다. 아직도 노래에 대한 열정이 꿈틀댄다고 하는 그는 “우연히 들어봤는데 곡이 밝고 가사도 쉽고 저에게 맞는 것 같아 앨범을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40여년 만에 다시 편곡해 녹음한 ‘뜨거운 안녕’도 반갑다. 사랑과 평화의 기타리스트 최이철이 세션을 맡았다. ‘사노라면’과 프랭크 시내트라의 ‘섀도 오브 유어 스마일’도 함께 담겼다. 열정은 끝이 없다. “누가 곡을 준다면 하드록이나 헤비메탈도 부를 수 있다.”고 하는 그는 그룹 사운드를 만들어 전국 투어를 해보는 게 남은 소원이라고 했다. ‘노익장’ 이야기를 꺼냈더니 “매사에 나이를 생각하면 자꾸 뒤로 처지고 주저앉게 되죠. 어떤 사람들은 주책이라고 하겠지만, 마음을 젊게 하려고 아이들 옷을 입고 나가기도 해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도전합니다. 특히 노래는 저를 건강하게 하는 힘이죠.”라고 힘주어 말한다.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인기가 허무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쟈니 리이지만, 꾸준히 노래 활동을 이어오지 못한 점에 아쉬움은 있다. “돌이켜보면 끝까지 했어야 했는데 왜 그랬을까 후회 많이 하죠. 목소리가 나오는 그날까지 열심히, 무대에서 노래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엄마밥상] 한국인의 에너지, 마늘

    [엄마밥상] 한국인의 에너지, 마늘

    최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인플루엔자와 몇 년 전 유행했던 사스 때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리 걱정을 하지 않고 지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매일 먹고 사는 김치 때문이고 그 김치에 넉넉히 들어가는 마늘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일부 연구기관에서는 근거 자료를 발표한 적도 있다. 이렇게 마늘의 뛰어난 효능이 널리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마늘을 가공하여 만든 흑마늘에서 과자, 음료까지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마늘이 전래된 것은 기원전 1세기경에 인도, 아프카니스탄을 거쳐 중국을 통해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늘이라는 식재료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지고 좋은 식품으로 인기가 있는 것은 우리나라는 건국신화에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웅녀가 되어 환웅천왕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마늘이 식용된 사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 안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년에 세워진 거대한 왕의 석조물로 현재 약 80개가 남아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이 높이가 145m나 되는 것으로 참으로 세계적인 불가사의로 알려져 있다. 이 피라미드를 만든 노예들이 마늘을 먹고 40도가 넘는 심한 더위에서 작업을 계속한 것이 고대문자에 의해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태고적부터 마늘의 강장효과는 인정되어 왔던 것이다. 마늘의 효능을 찾아보면 《동의보감》에서는 마늘이 종기나 옹종(癰腫)을 풀어지게 하고, 풍습(風濕)과 장기( 氣)를 없애며, 복부에 생기는 적취(積聚)의 일종인 현벽( 癖)을 삭히고, 냉증과 풍증을 없애며, 비장을 든든하게 하고, 위를 따뜻하게 하며, 뱀이나 벌레한테 물린 것을 낫게 한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먹으면 간과 눈이 상하고 청혈(淸血)작용을 하여 머리털을 희게 한다고 적혀 있다. 또한 《본초강목》에서는 강장, 식욕증진, 정장, 보온, 항균, 구충, 정신안정, 이뇨, 혈압강하, 각기, 신경통, 신경마비 등이다.그러나 몸에 좋다고 무턱대고 먹는 것은 좋지 않다. 마늘을 지나치게 먹으면 마늘의 정유(精油)가 적혈구에 용혈작용을 일으켜 혈액소 중의 철분이 유리되어 빈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빈 속에 먹으면 위점막을 자극해서 위통을 일으키며 위의 기능을 약화시킨다고 되어 있다. 마늘은 이뇨, 살균, 살충, 강장의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시키기도 한다. 또한 신경계통을 자극하여 혈액순환을 왕성하게 하는 효과도 있어 여성에게는 미용식품으로, 남성에게는 스태미너 식품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마늘의 중요 성분인 알리신은 항균력이 있으며 비타민 B1의 흡수를 도우며 단백질의 소화를 도우며 신경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하여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 또한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완화시키거나 활력을 높이기도 한다. 마늘은 잎, 줄기, 뿌리를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마늘에는 당질 19.3%, 단백질 2.4%, 지질 0.1%, 무기질 0.5%가 들어 있는데 당질의 대부분이 과당이다. 비타민 B1, B2, C도 상당히 들어 있고 무기질로는 칼슘, 철분, 유황 등이 많이 들어 있다. 마늘의 매운 맛은 위장의 운동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식욕을 나게 하고 변비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날 마늘을 갑자기 많이 먹으면 위의 점막을 자극해서 위통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늘의 종류에는 올마늘(조생종의 햇마늘)·벌마늘(쪽이 많은 남도마늘)·육쪽마늘(쪽이 6개인 토종마늘)·백마늘(수입종 마늘)·통마늘(줄기 제거한 것)·쪽마늘(쪽을 분리한 마늘)·깐마늘·암마늘(꽃장대가 없는 마늘)·숫마늘(꽃장대가 있는 마늘)·대서마늘(마늘쪽이 10개 정도인 비교적 작고 껍질이 연하여 마늘장아찌 담그는 데 적당한 마늘) 등이 있다. 이렇게 많고 많은 마늘 중에 육쪽마늘을 최고로 꼽는 이유는 그 맛이 제대로 맵고 향기가 좋기 때문이다. 육쪽마늘은 마늘 한 통이 보통 6쪽이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사실 8쪽까지 나오기도 한다. 일명 장아찌용 마늘로 육쪽마늘보다 한 달쯤 앞서 나오는 것이 스페인종 마늘(대서마늘)이다. 1970년대에 식용으로 수입한 스페인산 마늘을 경남 창녕 농민들이 일부 재배했는데 지역의 토양에 잘 맞아 꾸준히 재배하게 된 품종이다. 껍질이 부드럽고 쪽수가 많은데다가 맛이 조금 부드러워 이 마늘로 많이들 장아찌를 담게 된 것이다. 평균 10쪽 이상이 나올 정도로 쪽수가 많은 것이 장점이나 조직이 치밀하지 않아서 저장성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서 이 마늘은 5,6월 한철 나올 때 먹어야지 오래 두고 먹지는 못한다. 이 무렵 시장에 나가보면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벌마늘이다. 마늘대가 죽죽 벌어져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사실 때깔 고운 육쪽마늘이나 스페인종 마늘에 비하면 좀 못생겼지만 보통 저장마늘로 알려져 있어서 한꺼번에 대량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정에서 보관할 경우 저장온도가 잘 안 맞아서 8,9월이 지나면 싹이 나기 쉽기 때문에 조금씩 사다 먹는 게 좋다. 이 벌마늘은 난지형 마늘에서 많이 나오고 남도 마늘이 가장 대표적이다. 난지형 마늘이란 9월 하순경에 심어 뿌리와 싹이 어느 정도 자란 큰 마늘이 되어 월동하는 마늘이다. 스페인산 마늘도 난지형이다. 육쪽마늘 같은 한지형 마늘은 내륙 및 고위도에서 10월 중·하순경에 심는데 뿌리는 내리고 싹은 나지 않은 채로 겨울을 넘겨 그 뒤부터 생장한다. 한창 더위가 시작될 때쯤이면 집근처 어디서 트럭에 실고 다니면서 마늘을 팔고 있는 아저씨들을 볼 수 있는데 한 접 사다가 약용으로 반찬으로 사용해 보면 어떨까 한다. 마늘은 우리나라 음식뿐만 아니라 중국요리, 이탈리아요리, 프랑스요리, 스페인요리 등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로 생마늘을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장아찌나 생마늘을 요리에 활용하면 여름철 식중독도 예방할 수 있고 중국요리에서 마늘을 기름에 볶아내어 만든 마늘 기름은 여러 가지 볶음요리에 활용하면 향긋한 마늘 향이 나는 요리가 되고 육류요리에는 마늘을 함께 볶아서 먹는다. 또한 이탈리아 , 프랑스 등의 서양요리에는 마늘을 오븐에 구워 으깨서 페이스트를 만들어 딥으로 활용하거나 스프레드로 활용하기도 한다. 쇠고기보다 더 인기 있는_ 마늘 쇠고기 볶음 ■ 재료: 마늘 8쪽, 쇠고기 200g, 풋고추 1개, 식용유 2큰술, 간장 1작은술, 맛술 1큰술, 굴소스 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쇠고기 양념: 소금, 후춧가루 약간씩, 녹말가루 1큰술. ■ 만드는 법 1. 마늘은 꼭지를 떼어내고 1/2쪽으로 나눈다. 2. 쇠고기는 납작하게 썰어서 양념한 후 녹말가루를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3. 풋고추는 어슷하게 썬다. 4.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마늘을 넣어 노릇노릇하게 볶다가 쇠고기를 넣어 볶는다. 5. 간장과 맛술, 굴소스를 ④에 넣어 볶은 후 풋고추를 넣고 후춧가루를 넣는다. 제철 재료를 이용한 건강 메뉴_ 가지구이 ■ 재료: 가지 1개, 올리브오일 약간씩. 양념장 재료: 고추장 1큰술, 간장 1작은술, 설탕 1작은술, 물엿 1/2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깨소금 약간. ■ 만드는 법 1. 가지는 꼭지를 떼어내고 반으로 잘라 0.5cm 두께로 썬다. 2.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가지를 넣어 앞뒤로 굽는다. 3. 양념장을 만들어 구운 가지에 발라서 다시 한 번 굽는다. 글 이미경 월간 《쿠켄》 요리연구소 소장, 블러그 http://blog.naver.com/poution
  • [길섶에서] 미인불패/김종면 논설위원

    고대 그리스의 여성시인 사포는 “예쁘면 다 착하다.”고 했다. ‘착하면 다 예쁘다.’라고 하면 또 모를까, 겉은 눈이 멀게 예쁘지만 속은 두억시니 같은 이들도 한둘이 아닌데 이 레즈비언 시인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가 살던 기원전 600년 당시에는 그랬나. 아름다움과 착함이 동행하는 것이라면 미인이 넘쳐나는 이 세상은 한결 살 만한 곳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오늘날 예뻐지려는 욕망의 바탕에는 미인불패의 신화가 깔려 있다. 겉모습이 절대적 힘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 동물의 세계에서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적에게 그대로 노출되고 달아나기에도 거추장스러운 화려한 꽁지깃을 가진 공작새는 벌써 멸종됐어야 했다. 그러나 ‘성적 선택’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윈은 이 아이러니를 “공작새의 깃만 보면 기분이 우울해진다.”는 말로 표백했다. 인간은 공작이 아니다. 며칠 전 미스코리아대회를 보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스 품행’ 대회를 떠올렸다. 외모가 아니라 순전히 마음만 보고 미인을 뽑는단다. 마음이 고와야 미인이 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책꽂이]

    ●학교 없는 사회(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가치의 제도화를 위해 만들어진 학교를 없애자.’고 주장한 전직 사제 이반 일리히가 도서관, 실험실, 전시실, 공장, 농장 등을 교육의 도구로 사용하는 학교에서 벗어난 자율적 공생을 주장한다. 1971년에 출간된 책. 현재도 학교가 없는 사회가 실현 가능할까. 1만 3000원. ●생각(이어령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저자가 사람들 안에 숨어 있는 창조적 생각의 힘을 일깨우고자 13가지 소재를 발굴해 이야기를 풀었다. 거북선, 뽀빠이와 낙타의 신화, 세 마리 쥐의 변신, 김치의 맛, 선비의 생각과 상인의 만남 등등. 1만 2000원. ●물건의 재구성(연정태 지음, 리더스하우스 펴냄) 재활용 디자이너가 알려주는 ‘만들지 않고 만드는’ 방법. 단순히 리폼이나 DIY(Do-It-Yourself)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도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존중과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존재라고 외치며 재활용 경험담을 담았다. 1만 4000원. ●자본시장법 유권해석(홍영만 편저, 세경사 펴냄) 저자는 현직 금융위원회 자본시장 국장으로, 지난 2월 시행된 자본시장법과 관련한 업계와 법무법인의 질의에 대한 회신내용 중 주요 내용을 발췌해 펴냈다. 유권해석이란 행정부처가 그 법의 효력과 성격에 대해 해석한 내용으로, 사법부의 판단 이전까지 실질적 법규의 내용이 된다. 5만원. ●현지지도를 통해 본 김정일의 리더쉽(이관세 지음, 전략과 문화 펴냄) ‘현지지도’란 북한의 언론들이 최고지도자들의 경제시설에 대한 시찰을 표현하는 용어. 최근 김정일이 현지지도에 집착하는 이유를 2012년 ‘강성대국’과 연결해 분석했다. 저자는 통일부 전 차관으로 현재 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좌교수. 1만 8000원. ●끝없는 우주(폴 스타인하트, 닐 투록 지음, 이원기 옮김, 살림 펴냄) 수십년 동안 부동의 지위를 차지해온 표준 우주론(빅뱅과 인플레이션)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빙백 이전의 세계와 현재의 우주, 1조년 지난 뒤 우주의 미래에 대해 설명했다. 1만 2000원.
  • 삼성전자 효자사업 반도체서 TV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반도체신화’로 대표되는 삼성전자의 수익을 내는 사업구조가 다양해지고 있다. 세계 1위인 D램을 앞세운 반도체가 최근 몇년새 불황으로 전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눈에 띄게 줄고 있는 반면 이 자리를 액정표시장치(LCD) TV로 대표되는 디지털미디어(DM·생활가전 포함)분야가 메우고 있는 형국이다. 해외법인을 포함한 연결기준으로 지난 2005년에는 삼성전자 반도체의 영업이익은 5조 4400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7조 4200억원)의 73.3%나 됐다. 이어 2006년에는 반도체 영업이익이 5조 1300억원으로 전체(9조 1300억원)의 56.2%로 줄었다. 본격적인 반도체 불황이 닥친 2007년에는 반도체 분야 영업이익은 2조 3500억원으로 전체 영업이익 8조 9700억원의 26.2%로 주저앉았다. 이어 지난해에는 결국 영업손실로 돌아섰다. 2005~2008년 사이 매출은 20조원대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D램 가격 하락 등으로 반도체 경기가 나빠지면서 이익이 눈에 띄게 줄어든 셈이다. 반면 생활가전을 포함한 TV 등 디지털미디어 사업은 갈수록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2005년 연결기준 매출이 23조 2800억원에서 2006년엔 26조 2600억원으로 늘어났고 2007년엔 33조 3200억원으로 처음으로 30조원을 돌파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42조 1700억원으로 확대됐다. 영업이익도 글로벌 불황으로 수요가 급감한 지난해(4000억원)에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2005년(1900억원)부터 2006년(6700억원), 2007년(1조 2200억원)까지 급격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올해는 발광다이오드(LED) TV 등 LCD TV가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2분기에만 8000억~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전망된다. 올 1분기 영업이익(3800억원)을 감안하면 상반기에 벌써 2007년 수준의 이익을 올렸다. 때문에 그동안 반도체, 휴대전화, 액정표시장치 등 ‘삼두마차’가 삼성전자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면 앞으로는 여기에 TV 등 디지털미디어 분야까지 가세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층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LCD 업황에 따라 수익이 크게 줄어드는 등 경기 사이클이나 시장상황에 그간 큰 영향을 받아 왔지만 TV까지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되면서 보다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좀비PC 시스템 파괴 가능성… 인터넷망 무너질수도 추신수 “선생님! 아드님은 제가 책임질테니…” 세계 누비는 국산 경찰차 “여성도 군대보내 남성 기본권 신장을” 비정규직 강남 실업급여창구 가보니
  • [열린세상] 사회지도층이 기부·봉사 솔선해야 /박광서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열린세상] 사회지도층이 기부·봉사 솔선해야 /박광서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명박 대통령이 장학·복지재단 ‘청계’를 설립하고 재산의 대부분인 331억원을 사회에 기부해 화제다. 현직 대통령의 유례없는 결단은 지도층의 기부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사회지도층의 거액 기부는 특정 사건과 관련한 이미지 만회 차원에서 마지못해 이루어진다는 인상을 남겨 개운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은 2006년 2월 에버랜드 전환사채 증여 문제와 ‘X-파일’ 논란을 전후해 8000억원을 사회에 헌납했고, 지난해 4월 차명계좌와 조세포탈 관련 특검 수사의 무혐의 발표 직후 문제의 돈 1조원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도 2006년 4월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의 소환을 앞두고 “7년간에 걸쳐 사재로 1조원의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대통령 역시 2007년 12월 대선 직전 부실수사 논란이 비등하던 BBK 수사 결과가 무혐의로 발표된 직후여서 정치성 짙은 공약으로 비쳐지기도 했던 터라 진정성을 두고 말이 있었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수치다.” 강철왕 카네기가 생전에 한 말이다. 세계 최강국답게 미국에는 부자들도 많지만, 그보다 더 부러운 것은 기부문화가 뿌리를 잘 내린 사회라는 점일 것이다. 2005년 세계 최고 갑부인 빌 게이츠가 “가족들 몫으로 남길 1000만달러(0.02% 정도)를 빼곤 나머지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밝히고, 에이즈, 소수민족 보호 등 보건과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자선단체를 직접 만들어 아예 자선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해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면서 CNN은 “전 세계 부자들의 모범이 되는 동시에 이들에게 도덕적으로 부담을 주게 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세계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도 자신의 재산 가운데 85%인 총 374억달러를 기부하기로 했고, 이에 감명을 받은 홍콩의 액션스타 청룽(成龍)도 “그들의 자선활동이 존경스럽다”는 말과 함께 수천억원대 재산의 절반을 자선기금으로 내놓으면서 죽기 전에 전 재산을 마저 사회에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여년 전부터 사회지도자들 일부가 나서서 ‘유산 안 남기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사회와는 달리 ‘가족까지’라는 선이 너무 분명한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우리의 기부문화는 서구에 비해 걸음마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웃과 사회를 위한 따뜻한 마음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보고 배워 체질화되지 않으면 행동은 더욱 어렵다.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중요한 이유다. 한꺼번에 안 된다면 조금씩 바꾸어 가야 한다. 예컨대 전 재산이 아니라 ‘유산 10% 사회 환원’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유산만 생각할 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작은 기부부터 생활화·습관화하는 것이 더 소중함은 물론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나서, 혹은 죽을 때 기부하겠다는 건 십중팔구 공수표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봉사문화도 일천하다. 몇 년 전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생활시간 조사결과’에 따르면 하루 24시간 중 사회참여·봉사활동에 단 3분(0.2%)밖에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미국 국민들은 하루 24시간 중 평균 34분의 봉사활동을 하는 ‘봉사대국’이다. 이웃을 위해 쓰는 시간이 우리의 열 배 이상이란 얘기다. 젊은 사람뿐 아니라 80, 90대 노인들도 봉사는 그들 일상생활의 일부라는 느낌을 주곤 한다. 이 ‘봉사천사’들 때문에 온갖 문제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가 건강함을 잃지 않는지도 모른다. 물질의 풍요만 추구해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대통령의 재산기부를 계기로 ‘성공신화’보다 ‘기부와 봉사’가 사회지도층을 평가하는 덕목으로 자리 잡아 가면서 함께 살아가는 훈훈한 세상이 앞당겨지길 기대해 본다. 박광서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 김동완 “에이미, 민우 뒷담화 하지마” 일침

    김동완 “에이미, 민우 뒷담화 하지마” 일침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중인 신화의 김동완이 멤버 이민우의 전 여자친구 에이미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김동완은 9일 밤 12시 자신의 블로그에 ‘에이미씨’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최근 인터뷰를 통해 이민우를 공개 비난한 에이미에게 따끔한 충고의 말을 전했다. 김동완은 “멀리서 보기에도 당신의 행동은 특이하고 이상했다. 당신의 세계를 이해 못한 민우를 용서하고 이해해 달라.”고 전한 뒤 “밖에서 사담으로라도 민우가 변명만 늘어놓는다는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적었다. 이어 “12년을 함께 지낸 우리보다 잘 알겠냐. 민우가 변명이란 걸 늘어놨던 걸 보니 당신을 정말 힘들어 했던 게 확실하다.”며 “앞으로 인터뷰 땐 민우 얘기는 꼭 빼달라.”고 당부했다. 당부의 말을 전한 김동완은 에이미가 최근 인터뷰에서 이민우에 대해 왈가왈부한 행동을 비난하기도 했다. 에이미는 최근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많은 것을 공유하고 퍼주는 스타일인데 그는 아니었다. 나중에는 사실이 아닌 얘기를 하고 자주 변명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별을 결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동완은 “헤어진 연인과의 일을 나중에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건 상대가 연예인이 아닐지라도 비정상적이고 지저분한 행동”이라고 에이미에게 일침을 가했다. 사진제공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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