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신화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서한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알선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혁명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아태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804
  • 남북회담 조만간 이뤄질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5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 등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기로 의견을 모으면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남북대화가 조만간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중 정상이 구체적인 대화 재개 방안을 거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중국도 남북대화에 동의한 만큼 모종의 협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중국 신화통신이 26일 보도한 북·중 정상회담 결과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후 주석은 동북아 정세에 대해 심도 깊은 의견을 나눴다. 중앙통신은 “쌍방은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6자회담 재개 등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며, 장애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동북아의 전반적 이익에 부합된다고 인정하면서, 이를 위해 의사소통과 조율을 잘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과 8월 북·중 정상회담 때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던 6자회담 등 대화의 필요성 및 이를 위한 의사소통과 조율이 언급된 것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여건 조성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중 간 조율을 통해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가능성에 대해 협의했을 가능성도 있다.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이 “북한은 현재 경제 건설에 집중하고 있으며, 매우 안정된 주변 환경을 필요로 한다.”며 “한반도 정세가 완화되기를 희망하며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견지할 것이며, 6자회담을 조기에 재개할 것을 주장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인 201 2년에 앞서 경제 살리기와 한반도 정세 안정을 접목시켰다는 점은 주목된다. 그동안 주장해 온 ‘조건 없는 6자회담’이 아닌, 협상 가능한 대화를 시사했다는 분석도 있다. 김 위원장이 또 “남북관계 개선에도 줄곧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도 남북대화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현재로서는 북·중 간 드러나지 않은 이면 합의가 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 측이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씨줄날줄] 각하(閣下) /이춘규 논설위원

    최고권력자 황제는 제국 군주의 존호다. 동양 황제의 어원은 중국 건국신화의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비롯된다. 하위개념 왕은 상나라·주나라 군주가 칭했다. 왕을 칭하는 자가 많아 가치가 폭락하자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시황이 황제(皇帝)라고 처음 칭한다. 황제 난립시대도 있었지만, 청나라까지 사용된다. 당 고종은 ‘천황’(天皇)이란 칭호도 사용했다. 우리는 고조선부터 왕을 사용했다. 조선 고종은 대한제국 황제로 칭해졌다. 각하(閣下)는 관직·외교에서 사용하는 경칭 중 하나다. 많은 나라에서 최고권력자나 고위관리가 각하(excellency)로 호칭된다. 주로 외교 의전용으로 사용된다. 외국의 군주 이외에도 대통령 등 국가원수나 각료, 그리고 대사에서 영사까지 고위 외교사절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귀족에 대한 경칭으로도 사용된다. 국제 외교에서는 각하를 영어인 오너러블(honorable)로도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건국 초기에는 각하라는 호칭이 폭넓게 사용됐다. 인촌 김성수는 부통령에게도 각하를 사용하자 1955년 비민주적이라면서 각하 호칭 폐지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엔 대통령만이 독점하게 된다. 1979년 10·26 때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차지철 경호실장을 겨냥해 “각하,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라고 했다는 진술이 있다. 현장에 있던 가수 심수봉이 “각하, 괜찮으세요.”라고 했다는 법정진술도 전해지며 각하가 부각됐다. 문민정부까지 사용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청와대는 각하라는 호칭을 폐기했다. 각하가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에 ‘대통령님’이라고 하겠다고 당시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이 밝히자 청와대 출입기자나 국민들은 정권 교체를 실감하는 용어로 받아들였다. 이후 참여정부로 이어지며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이 굳어지고 각하는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사회 일각에서는 각하라는 호칭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지도자 동지’ ‘위대한 영도자’ ‘혁명의 수뇌부’라는 경칭과 함께 ‘김정일 각하’라고 칭한단다. 북한에서 각하는 ‘외교 관계에서 지위가 높은 인사들에게 쓰는 공식적인 존칭’이기는 하다. 그런데 북한의 대남 심리전 방송이 김일성 주석 사망 다음 날인 1994년 7월 9일 ‘친애하는 김정일 각하’라고 호칭한 뒤 가끔 매체들이 사용한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권위적인 직책명을 배격하는데, 이례적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韓·中작가 정지아·한사오궁의 ‘유쾌한 문학 대담’

    韓·中작가 정지아·한사오궁의 ‘유쾌한 문학 대담’

    첫 만남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상대방의 작품을 전혀 읽지 않았다.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로 잘 알려진 소설가 정지아(46)의 몇몇 작품은 영문으로 번역됐지만 중국 소설가 한사오궁(韓少功·58)에게는 낯설었고, 국내에 번역 출간된 한사오궁의 수필집 ‘산남수북’(山南水北), 장편소설 ‘마교사전’(馬橋詞典) 등 몇 작품 역시 정지아의 독서 편력에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맞춘 듯 서로 꼭 들어맞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낮고 겸손한 시선이 하나였고, 생명을 경외하는 열정도 마찬가지였다. 상업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작가의 물질적 곤궁함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에서 눅진한 흙냄새 풍기는 농사꾼이자 치열하게 원고지 붙잡고 씨름하는 작가라는 사실이 언어의 다름, 경계의 차이를 넘어 둘을 스스럼없이 만나게 했다. 정지아, 한사오궁이 26일 서울 종로1가 대산문화재단 회의실에서 만났다. ‘세계화 속의 삶과 글쓰기’를 주제로 지난 24일 개막한 서울국제문학포럼이 계기가 됐다. 1시간 30분에 걸친 둘의 대화는 유쾌했고, 진지했다. 과학기술로 상징되는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한 선험적, 지성적, 비판적 통찰이 질문으로, 대답으로 오갔다. 둘은 통역을 제쳐 두고 만나자마자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정지아는 “부모님이 모두 남한 사회가 반대하는 이념을 가진 사회주의자였고, 그런 이야기들은 남한에서는 금기시된다.”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던 이들이 변화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신념은 지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을 작품에서 주로 다뤘다.”고 말을 건넸다. 한사오궁은 “오오, 그런가. 그러면 당신은 어떤가.”라고 슬쩍 되물었다. 정지아는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아마 내가 감옥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눙치더니 이내 “사회주의자는 아니다.”라고 말을 고쳤다. 이쯤에서부터 통역이 끼어들었다. 대화의 속도는 조금 더뎌졌지만, 더욱 깊어지고 묵직해졌다. 한사오궁은 “중국에서도 1980년대 이전 이데올로기 분쟁이 있었지만 이제는 돈을 버는 좌파와 우파, 돈을 벌지 못하는 좌파와 우파로 나뉠 뿐”이라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다 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이데올로기”라고 말했다. 정지아는 “기존의 이념을 뛰어넘어 세상이 시장과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붙잡혀 있다는 말씀이지요?”라고 말을 받은 뒤 “한 선생님은 돈을 버는 좌파인가요?”라고 한 걸음 더 내쳤다. 그는 “100만~200만권씩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야 돈을 벌겠지만 나는 그저 10만~20만권 팔리는 정도”라면서 “그나마 중국 출판 시장이 크니까 겨우 살아가게는 한다.”고 받았다. 엄살에 가깝다. 그는 200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예기사 작위를 받고, 2007년 루쉰문학상을 받은 저명한 작가다. 현재 하이난성작가협회 주석이며 모옌(莫言), 위화(余華) 등과 함께 중국 문단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힌다. 그는 이 대목이 대화에 언급되자 손가락으로 ‘×자’를 만들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믿지 말라. 노벨문학상은 올림픽처럼 계량해서 점수나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이 또한 엄살에 가깝다. ●시골생활 예찬론자끼리 만나다 정지아는 “한 선생님의 포럼 발제문 ‘수요와 욕구’를 읽고 탐욕에 대한 경계 등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면서 “10여 년 전에 시골에 내려가서 사신다고 하는데 저도 최근 시골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어떤 연유로 시골로 내려가셨나. 고향인가.”라는 한사오궁의 질문에 정지아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시골의 풍경이 핏줄기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도시에서는 여러 욕망들을 버리기 쉽지 않았는데, 시골에서 흙 만지며 야채 키우다 보면 그런 것들이 절로 사라진다. 쾌적하고 평화롭다.”고 답했다. 한사오궁은 “맑은 날 열심히 농사짓고, 비오는 날 책 읽는 것이 가장 좋은 생활이라고 했다(청경우독·晴耕雨讀). 손과 발, 머리를 모두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자본주의, 특히 도시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고 맞장구쳤다. 한사오궁의 수필집 ‘산남수북’은 루쉰문학상 수상 작품이며 ‘중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는 평까지 얻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배경이 된 후난(湖南)성 바시동(八溪洞)은 문화대혁명 시절 그가 청년 지식인으로 하방을 간 곳으로 11년 전부터 그곳에서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지내며 농사짓는 곳이다. 한사오궁은 바시동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작가로서 실존적 고민을 나누다 정지아는 “근대문학의 위기, 시장의 변화 등으로 작가들이 괴로운 시절이다. 이런 시대에 작가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고민스럽다.”고 내밀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한사오궁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나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 어떡하겠나. 계속 밀고 나가고, 그리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리스 신화를 보면 끊임없이 돌을 굴렸다가 떨어진 돌을 다시 굴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시시포스가 있지 않나. 사람의 인생도 똑같다. 작가의 인생은 더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교과서 중심으로 복습 철저’와 같은 식의 모범답안이지만 정지아는 진지하게 고개를 주억거린다. “끝없이 써야만 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라는 말씀이네요. 그러고 보니 그동안 고향 인구가 계속 줄어들다가 2년 전부터 미미하지만 조금씩 늘어가기 시작해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부유한 삶이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아요. 희망은 살아있는 것이지요. 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한사오궁은 “맞다. 나빠도 그 범위 안에서 나빠지고, 좋아도 그 범위 안에서 좋아진다. 욕망도 절망도 경계해야 한다.”면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더라도 그 과정은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위로하며 서로 희망을 나눴다. 정지아는 우직하게 사실주의 기법을 틀어쥐며 작품 활동을 하는, 문단에 몇 남지 않은 작가다. ‘빨치산의 딸’뿐 아니라 ‘행복’, ‘봄빛’, ‘숙자 언니’ 등 자본주의사회에 남은 사회주의자들의 모습과 내면을 핍진하게 풀어가는 작품을 주로 썼다. 리얼리스트 정지아 역시 사회주의자들 못지않게 외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사오궁은 “정 선생의 작품이 중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다니 아쉽긴 하지만 영어로 된 책을 찾아 읽어 보겠다.”면서 “다음에 중국 오시면 꼭 연락해 달라. 내가 직접 마중나가고 또 직접 기른 토마토와 야채도 맛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지아가 활짝 웃으며 “혹시 노벨문학상 받은 뒤에도 여전히 유효한 약속인가.”라고 묻자 한사오궁은 “노벨문학상보다 직접 가꾼 토마토가 더 중요하다.”고 맞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한사오궁은 정말 토마토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정지아는 각자 직접 가꾼 고추와 토마토를 나누자고 했다. 땅 일구는 이들은 보통의 도시 사람보다 조금은 더 욕망을 무화하는 능력이 탁월함을 두 작가가 보여 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사오궁은… 한사오궁은 중국 후난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의 대표적 문예지 ‘줘자’(作家)로 등단했다. ‘뿌리 찾기’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심근문학(尋根文學)의 대표 주자로서 현대 중국문학의 거장이다. 작품 속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반성과 재인식을 바탕으로 소재와 형식 등 중국의 전통을 재현하려 한다. ‘아빠, 아빠, 아빠’(爸爸爸), ‘유혹’(誘惑), ‘빈 성’(空城), ‘열렬한 책읽기’ 등의 작품이 있다. 하이난(海南)성 작가협회 주석이지만 후난성 바시동에서 살며 가을걷이가 마무리돼야 하이난다오로 돌아갈 정도로 시골 생활에 흠뻑 빠져 있다. 첫 중국인 노벨문학상 수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오싱젠(高興建)은 중국 출신 프랑스인이다. ■ 정지아는… 정지아는 전남 구례가 고향이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 빨치산이었던 부모님의 실제 삶을 그려낸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1990년 실천문학에서 펴내며 등단했다. 소설은 출간 직후 판매금지됐다. 작가 자신도 3년 가까이 수배 생활을 하는 등 혹독한 필화사건을 겪었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고욤나무’가 당선돼 안정적으로 ‘제도권’에 진입했다. 가족사적인 배경이 그러하듯 비극적인 현대사의 중심과 주변에서 역사를 직조했던 개인들의 상처와 희망, 불안 등을 주되게 다루고 있다.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오늘의소설상 등을 받았다. 올 초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연세(年貰) 200만원’에 집을 얻고 낮에는 밭 가꾸고 저녁에는 글쓰는 단출하고 정갈한 삶을 시작했다.
  • 김정일 중화대지 발전상 목격… ‘개방의 빗장’ 풀까

    김정일 중화대지 발전상 목격… ‘개방의 빗장’ 풀까

    지난 20일부터 진행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訪中) 하이라이트였던 25일 북·중 정상회담에서는 북·중 우호를 바탕으로 한 경제협력과 한반도 비핵화, 후계체제, 우호 증진 등 다양한 카드가 논의됐다. 그러나 가시적인 성과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평이다. 중국과 북한의 보도 내용에서 방중과 정상회담에 대한 온도 차이도 감지됐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전 조선 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6자회담의 재개 등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조율을 잘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이런 언급은 한반도 정세 완화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재천명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구체적인 조치는 없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정상회담 자리에 김계관 제1부상이 배석했다는 점은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북한에 대해 구체적인 행동 조치를 요구했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부분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김계관 부상이 배석한 것을 보면 심도 있는 대화를 한 것 같다.”면서 “원칙적으로 큰 틀에서 동의를 했을 뿐 구체적 행동에 대해서는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특사외교를 통해 깊이 있게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형마트와 전자업체 등을 방문한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에 대해서도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이 “경제와 문화, 첨단과학기술 분야를 비롯해 중국의 성과들에서 급속히 변모되고 있는 중화대지의 발전상에 대해 직접 목격했다.”고 보도한 것을 보면 김 위원장이 중국의 개방경제에 상당한 관심을 드러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북·중 경협 지역인 황금평과 나선(나진·선봉) 지구를 들르지 않고 귀국함에 따라 경협 논의도 구체적인 진전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후계체제 문제도 부수적인 수준에서 다뤄진 것으로 보인다. ‘대를 이은 계승’, ‘바통’ 등의 표현을 통해 김정은 체제가 출범하더라도 정치적 후원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양무진 교수는 “북중 우호 50주년을 맞아 우호 정신을 대를 이어 계승하자고 언급한 점과 후 주석이 북한 지도부를 초청한 것 자체가 후계체제를 논의했다는 증거”라면서 “중국도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으로 권력 이양을 앞두고 있는 만큼 북·중 양측 모두 미래 권력인 후계체제 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방중이 국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에 비해 손에 잡히는 결과물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어야 할 것 같다.”면서 “정상회담의 성과는 후속 조치를 통해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신화통신과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서 양측의 온도차도 느껴졌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과 후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재개 등에 의견 일치를 보였다고 했지만, 중국 신화통신은 김 위원장이 이 같은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김정일의 여자’ 헤드테이블에

    ‘김정일의 여자’ 헤드테이블에

    26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만찬 사진 등은 김 위원장의 넷째 부인으로 알려진 김옥(47)이 실질적인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 등극했음을 보여 준다. 김옥은 25일 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후 주석 주최 환영 만찬에서 김 위원장 등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중앙(CC)TV로 방송된 화면에서 김옥은 만찬 헤드테이블에서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양제츠 외교부장 사이에 앉아 있었다. 김옥은 또 김 위원장과 원자바오 총리와의 회담 때에도 김 위원장의 뒷자리에 배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옥은 지난해 5월 김 위원장의 5차 방중 때 가진 원 총리와의 회담 때에도 배석한 바 있다. 김옥은 지난 22일 김 위원장의 난징(南京) 판다전자 시찰 때에도 의전 차량인 벤츠 마이바흐 리무진에 김 위원장과 나란히 앉아 있다가 내려 주목을 받은 바 있으나 당시에는 원거리에서 카메라에 잡혀 정확한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었다. 김옥이 7일간 이어진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을 사실상 곁에서 수행하고, 중국 정상과의 공식 만찬에서도 헤드테이블에 자리했다는 사실은 김옥이 실질적으로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 역할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외교 소식통들은 분석했다. 특히 양측이 밝힌 공식 수행원 명단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도 김옥의 ‘격’을 말해 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에는 3남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동행하지 않은 사실도 공식 확인됐다. 김 부위원장은 수행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고, 만찬장 등을 담은 화면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北·中정상 6者 재개 의견일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5일 베이징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 등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밝혔다. 중앙통신은 “쌍방은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국제 및 지역문제, 특히 동북아 정세와 관련해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의견교환을 진행했다.”며 “쌍방은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6자회담의 재개 등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며 장애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동북아 지역의 전반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인정하면서 이를 위해 의사소통과 조율을 잘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또 “최고 영도자들이 조중 친선 협조관계를 대를 이어 계승하고 공고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남이 대신할 수 없는 공동의 성스러운 책임과 확고부동한 입장이라는 데 대해 견해를 같이했다.”고 밝혀 김정은 후계체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후 주석은 이에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전통적인 중조 친선의 바통을 굳건히 이어가는 데서 역사적 책임을 다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중앙통신은 덧붙였다. 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에는 김기남·최태복 비서와 강석주 부총리,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김영일·박도춘·태종수·문경덕 비서, 주규창 당 기계공업부장,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가 수행했다. 수행원 명단에 김 위원장의 후계자인 김정은이 포함되지 않아 이 기간 중 평양에 체류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신화통신은 이날 북·중 정상회담 관련 보도를 통해 김 위원장이 “한반도 정세가 완화되기를 희망하며,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견지할 것이며, 6자회담을 조기에 재개할 것을 주장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후 주석은 “북한이 한반도 정세를 완화하고 외부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우리는 관련국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비핵화의 기치를 들고 냉정과 절제를 유지하며 장애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서로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고위층 교류 강화 ▲당·국가 관리 경험 교류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 확대 ▲문화·교육·체육 교류 심화 ▲국제 및 지역 정세와 중대 문제 소통·협조 강화 등 다섯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이 27일 귀국하게 되면 지난 1년 새 3번째 방중은 7박 8일 일정으로 끝난다 베이징 박홍환 특파원·서울 김미경기자 haplin7@seoul.co.kr
  • [김정일 訪中] 2010년 5월 ‘실무형’ 2011년 5월 ‘유람형’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번 7차 방중은 지난해의 두 차례 방중과 확연히 구별된다. 지난 6일간 김 위원장은 무려 4400㎞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다. 김 위원장 전용 특별열차는 시속 60~70㎞의 느긋한 속도로 유유자적하며 6일간 중국 최북단에서 중부 지방을 왕복했다. 반면 산업시설 시찰은 채 2시간에 못 미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방중은 ‘유람형’이라고 할 만하다. 실제 김 위원장은 장쑤성 양저우(揚州)에서 저장성 항저우(杭州)의 시후(西湖)에 버금갈 정도로 풍광이 뛰어난 서우시후(瘦西湖)에 유람선을 띄워 놓고 뱃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발전 상황을 보고 가서 활용하라.”는 중국 측 요구에 떠밀려 억지로 방중한 기색이 역력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실리형’ 방중으로 평가되는 지난해 8월 6차 방중에서 김 위원장은 후계구도 공표를 앞두고 ‘성지순례’를 통한 내부 명분 획득과 중국의 경제협력 약속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쥐었다. 이는 방중 후 발표된 북·중 공식 보도문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김일성 전 주석의 모교인 지린시 위원(毓文)중학교, 김 전 주석의 혁명운동 아지트였던 지린시 베이산(北山)공원 약왕묘(藥王墓) 방문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중국 동북3성과 북한의 경제협력이 중요하다는 후진타오 주석의 발언을 강조했다. 이보다 앞서 3년 4개월 만에 이뤄진 지난해 5월의 5차 방중은 속전속결 ‘실무형’으로 꼽힌다. 천안함 사건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북한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다급해진 김 위원장은 ‘베이징’ 설득이 절실했고, 5일간의 방문을 알뜰하게 소화했다. 랴오닝성 다롄에서의 산업시설 시찰은 후 주석 등 중국 최고지도부와의 면담을 앞둔 숨고르기 성격이 짙어 보였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서울광장] 엔 약세 급반전에도 대비하자/이춘규 논설위원

    [서울광장] 엔 약세 급반전에도 대비하자/이춘규 논설위원

    일본 엔화가 초강세다. 사상 최악의 동일본 대지진과 지진해일, 원전사고가 겹치는 대형악재가 출현했고, 재정·정치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강세라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엔 강세는 자동차·전자 등 일본과 경쟁 산업이 많은 우리 대기업이나 경제에 유리하다. 엔고 파장은 복합적이지만 엔고 종언설도 주목된다. 왜 엔고인가. 일본은 대외순자산이 2010년 말 251조 4950억엔으로 20년 연속 세계 1위 채권국이다. 달러로 환산하면 3조 850억 달러로 사상 최대다. 대외순자산 2위 중국(2009년 말 167조엔)이나 독일, 홍콩, 스위스를 압도한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 17조엔 중 기관·개인투자가들의 해외보유 금융자산 이자나 배당소득 등 소득수지 흑자가 11조엔대로 매달 1조엔에 가깝다. 지진으로 인한 무역흑자 감소보다 훨씬 많아 엔고를 견인한다. 석유 등 원자력에너지 대체연료 수입 급증이 무역수지를 악화시키고 있지만 이를 상회한다. 해외자산을 팔아 지진 보험금 지급용 엔화를 마련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유다. 일본이 1% 정도 장기 디플레이션인데 미국은 2% 정도의 인플레이션일 정도의 내외 인플레이션 격차도 엔고를 유발한다. 물론 일본경제의 호재는 빠르게 줄어드는 기류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가 내년에는 210%까지 악화될 전망이다. 선진국 가운데 최악인데, 엔 약세로 연결되지 않는다. 2009년 말 기준 일본국채 94.8%가 내국인 보유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비중은 5.2%이다. 재정난인데도 외환 수급에 영향이 적은 이유다. 엔화는 교역국 간 물가 변동을 반영한 실질실효환율도 사상최고치인 1995년 수준(1달러당 80엔 전후)으로 대접받는다. 국제외환시장이 엔화를 안전자산으로 평가해 수요가 늘고 있다. 각국의 외환보유고 가운데 엔화 비중은 신흥국들의 수요 증가로 최근들어 크게 늘었다. 지난해 말 세계 각국의 9조 달러대 외환보유고 가운데 엔화 자산은 전년 대비 46.6%나 늘었다. 전체 비중도 2.92%에서 3.81%로 확대됐다. 5년 9개월 만에 최고수준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이 밝혔다. 달러 비중은 61.41%, 유로는 26.33%다. 엔화의 외환보유 비중은 2000년 말에는 6%였다. 유로화 출범 영향으로 비중이 줄다가 최근 유로 회원국 재정위기가 악화되면서 엔화가 다시 인기다. 이것도 엔고를 강화하는 요인이다. 다시 6%대까지 늘어나려면 20여조엔의 잠재 수요도 있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엔고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늦어지면 내년까지 엔고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도 있다. 하지만 “환율의 정확한 움직임은 신도 모른다.”(경제부처 고위인사)고 할 정도로 환율은 정치·경제·사회적 요인에 복합적으로 좌우된다. 경제·정치적 이유로 해외투자가들이 일본 주식을 사지 않게 되거나 일본인들이 엔 자산을 팔아 해외투자를 늘리면 엔저로 급변할 수도 있다. 벌써 엔저 급반전에 대비, 엔고를 활용해 해외투자를 늘리라는 권고들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엔 환율 변동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1988년, 1995년, 1999년과 현재처럼 엔고일 때 좋았고 1983년, 1992년, 1997년, 2006년 등 약세일 때는 어려웠다. 엔고는 오래가지 않았다. 엔고 3년째다. 정점을 지났을 수 있다. 지진 후유증 본격화로 무려 31년 만에 일본의 1년단위 무역적자 전망까지 나온다. 대외채권이 줄면 외화 수입이 격감, 엔 약세를 부를 수 있다. 지난해 말 일본 가계금융자산은 1489조엔이다. 일본 정부부채는 2014년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가계순자산을 넘어설 전망이다. 민간자금이 바닥나 국채 소비가 안 될 수 있다. “윤택한 가계자산 덕택에 국채 폭락은 없다.”는 신화가 붕괴된다. 2년 전부터 개인 국채 구매력도 뚝 떨어졌다. 금리마저 오르면 이자부담이 급증, 재앙이 된다. 조짐이 범상치 않다. 이제 엔 약세 급반전에도 대비해야 한다. taein@seoul.co.kr
  • 무게 265kg ‘자이언트 물고기’ 中서 낚여

    무게 265kg ‘자이언트 물고기’ 中서 낚여

    성인남성 5명이 함께 들고 옮기기에도 벅찬 ‘자이언트 물고기’가 중국에서 낚였다. 중국 저장성 닝보 근해에서 붙잡힌 이 물고기는 사오싱에 있는 한 고급호텔 레스토랑으로 팔린 뒤 지난 23일(현지시간) 호텔 앞 거리에 전시돼 많은 시민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신화통신(新华网)에 따르면 이날 공개된 이 물고기의 정체는 농어과의 ‘자이언트 그루퍼’. 보통 그루퍼의 몸길이는 30cm정도이지만 ‘자이언트’ 경우는 몸집이 성인보다 더 크다. 이날 공개된 물고기는 몸길이가 2.2m에 달했으며, 몸무게는 265kg으로 전해졌다. 이는 800명이 함께 맛을 보기에도 충분한 양이라고 언론매체들은 전했다. “거대한 물고기를 보자.”며 몰려든 시민들은 100여 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과 함께 나왔다는 한 여성은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자이언트 물고기를 보게 돼 신기했다.”고 기뻐했다. 한편 이 물고기를 낚은 어부는 6만 위안(한화 1010만원) 정도의 거금을 거머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호텔의 조리장은 “이 생선요리를 맛보고자하는 고객들이 하루종일 밀려들어 예약이 거의 다 찼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데스크 시각] 의학은 어떻게 진보하는가/심재억 의학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의학은 어떻게 진보하는가/심재억 의학 전문기자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사였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의 ‘반신반인’인 그는 의술로 수많은 사람을 구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했느냐 하면, 그가 병자를 치료하자 저승의 신 하데스가 할 일이 없을 정도였는데, 이를 안 제우스가 격노해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때 아스클레피오스가 사용한 뱀 지팡이는 지금도 세계보건기구(WHO)는 물론 미국·영국·한국 등 각국 의사단체들이 상징 문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생명의 가치를 옹위하는 의술의 신성성이 함축돼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신성성의 이면에는 숱한 의료 선각자들의 탐구와 고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오만하지도, 안주하지도 않았습니다. 병자의 피를 바꿔 질병을 치료하고자 했던 무모한 시도는 수혈의 시작이 되었고, 두개골을 쪼개거나 심장을 바꿔 죽은 사람을 살려내려 했던 시도는 외과학의 출발이었습니다. 이런 시도가 더할 수 없이 신성했던 것은 당시의 질병관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질병의 실체를 몰랐던 암흑의 시대에 모든 병은 천형이었습니다. 이런 미혹 속에서 누군가 나서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목숨을 건 이단적 도발이었지만 의학자들에게 그것은 지적 확신이었기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 외침은 다름이 아니라 “그래도 의학은 진보해야 한다.”는 신념이었습니다. 요즘의 의료를 이런 시시콜콜한 역사적 기억으로 환치하기는 어렵습니다. 거대한 의술의 진보가 있었고, 과학기술의 역할이 극한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의료가 천박한 상업주의에 결박되면서 신성성의 자리에는 보란 듯 ‘돈’과 ‘퇴행적 권위의식’ 그리고 ‘조작된 허명(虛名)’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의사들은 자신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환자들과 멀어졌고, 의학의 진보는 그 지점에서 발목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은 의료계 전반에 촘촘하게 그물을 드리우고 있는 거대한 상업주의의 획책이 낳은 결과이며, 어떤 진보도 이런 상업주의와 야합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는 예단은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적지 않은 의료인들이 이런 상업주의와 결탁하려고 기를 쓰는 판국에 함부로 의학의 진보를 말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누구도 진보의 가치를 본질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랬기에 가능해 보이지 않던 시도들이 의학의 전범(典範)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고, 치료 영역은 확대됐으며, 의사들의 권위는 강화됐습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건국대병원 송명근 교수의 대동맥 판막질환 근치술인 ‘카바 수술’ 논란이 그것입니다. 다양성의 사회에서 논란은 피할 수 없으며, 논의는 중요한 검증의 절차입니다. 그러나 논란과 논의가 공정한 논리 대결이 아니라 증오와 배제의 배설구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신성성의 후예인 의학자들이 나서 ‘카바’를 죽이려 하고, 복지부는 뒷짐을 진 채 눈만 찡긋거립니다. 의학사를 바꿀 씨앗 하나 싹 틔우기가 참 어려운 나라, 한국의 의료계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진보의 수난사가 새로 쓰여지고 있고, 국민들은 이런 상황을 밥그릇 때문에 중요한 의학적 성과를 짓밟으려 한다고 읽고 있습니다. 의학 진보의 주체는 의사입니다. 오늘날의 눈부신 의학적 성과가 온전히 의학자들 공로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학적 퇴보 역시 의료인들의 선택입니다. 의학자들이 냉철하고, 지혜로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이 기술력을 인증했고, 의료 기준이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의사들이 배우겠다고 줄을 서는 ‘카바’가 유독 국내에서만 이런저런 시비에 내몰리는 상황이 난감해 보입니다. 물론 모든 의사들이 아니라 소수의 획책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말 선각자들이 그랬듯 지적 확신에 따른 도발인지, 아니면 시비의 배후에 국민의 생명과 국가경쟁력까지도 방기해야 할 만큼 중요한 그 무엇(?)이 따로 있는지를 말입니다. jeshim@seoul.co.kr
  • “총장님은 아이돌?!” MV출연한 中 대학총장 화제

    중국의 유명 대학교 총장이 직접 출연한 뮤직비디오가 인터넷에 퍼지면서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신화통신 등 현지 언론이 22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장시성 난창대학교 총장과 보직 교수들은 이 뮤직비디오에서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앞에서 열창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약 일주일전에 업로드 된 이 뮤직비디오에서 총장 일동은 “마음과 손을 맞잡고‘(심수상련·心手相連)라는 유행가를 부르며 색다른 면모를 보였다. 학교 측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이달에 있을 학교 축제를 대비해 학생들과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고, 한 마음이 되고자 이 같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한 관계자는 “총장님 뿐 아니라 교수들도 학생들에게 선보일 뮤직비디오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면서 “매년 이어오는 행사에 조금 더 뜻깊은 선물을 추가하고자 기획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사 당일, 대강당에서 이 뮤직비디오 상영이 시작되자 학생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평소 근엄하고 딱딱한 이미지의 총장과 교수들이 모여 만든 유행가 뮤직비디오는 학생들의 큰 박수와 환호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할 만큼 감동적이었다. 이를 감상한 네티즌들도 “학교나 총장의 이미지에 해를 끼칠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학생들과 마음의 벽을 허물고 훨씬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대학교 총장이 ‘유행가 열창’으로 학생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에는 베이징대학교 총장이, 2010년에는 화중과학기술대학 총장이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유행가를 불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CEO 칼럼] 화합과 소통의 위대한 저력/장경작 현대아산 사장

    [CEO 칼럼] 화합과 소통의 위대한 저력/장경작 현대아산 사장

    지난 10일 불기 2555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종교 간에 화합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 우리를 즐겁게 했다. 이달 초부터 전국 각지의 성당과 교회 앞 길목에는 석가탄신일을 봉축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난 9일 명동성당에선 법정 스님을 추모하는 다큐영화 시사회가 열려 추기경이 직접 조계사의 주지와 동자승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번 시사회는 지난 4월 부활절에 조계사에서 먼저 김수환 추기경 추모영화를 상영한 데 대한 답례로 이뤄졌다고 한다. 종교의 배타적 성향이 강했던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생전에 두 성직자의 교리를 초월한 인연이 아름다운 만남을 가능케 했고, 평화와 화합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화합은 말 그대로 화목하게 어울린다는 의미다. 세상 누구도 반목과 갈등을 원치 않듯이 화합에 대한 욕구는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의 본성과도 같다. 하지만 과거에는 종종 화합과 통합보다는 분열과 갈등의 양상이 우세하게 나타났다. 이유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서다. 진정한 화합은 서로를 알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 최근 그 어느 때보다 화합과 소통이 사회 각계의 키워드로 자주 등장한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지역사회, 기업, 종교, 예술, 스포츠 분야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화합과 소통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화합과 소통이 결핍된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 속의 기업경영은 기업 간, 조직원 간의 더욱 긴밀한 유대를 요구한다. 과거와 달리 복잡다기하게 얽힌 지금의 기업생태계에서는 기업들 서로가 협력의 대상임을 인식하고 지속적인 소통과 화합의 노력을 통해 동반성장을 이뤄내야만 상생할 수 있다.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화합과 소통을 올바로 실현하기 위해 어떤 덕목들이 필요한지 생각해봤다. 첫째, 내가 먼저 말하지 않고 귀를 크게 열어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소통형 리더로 유명한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회장은 일방적 업무 지시를 최소화하고 직원들의 의견을 직접 청취해 의사결정에 반영한다고 한다. 스타벅스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인기메뉴 ‘프라푸치노’도 매장 종업원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한다. 세계 커피시장을 평정한 스타벅스의 저력에는 ‘듣는 경영’이 숨어 있는 것이다. 둘째, 아무런 선입견 없이 상대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논어 자로편에서 공자는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고 했다. 군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완전히 융화할 수 있지만, 소인은 같은 척 꾸밀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어울릴 수 없다는 의미다. 즉, 상대를 가감 없이 진심으로 인정할 수만 있어도 이미 화합은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로 그치지 않는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행동하지 않는 화합은 공허한 슬로건에 지나지 않는다. 화합의 아이콘인 넬슨 만델라는 혹독한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남아공 대통령에 취임하고서도 백인 지배의 상징인 럭비팀을 해체하지 않았다. 오히려 럭비월드컵을 유치, 기적적인 우승을 일궈내 흑·백통합의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화합과 소통의 실현은 언제나 위대한 저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1998년 외환위기 극복의 일념으로 350만명이 227t의 금을 모아 위기를 넘어섰고, 2002년 수백만명의 거리응원으로 월드컵 4강 신화라는 국민 대화합의 힘을 몸소 경험한 바 있다. 지금 대두되는 기업의 동반성장은 물론 집단·세대·양성·계층·지역 간 화합도 위대한 저력을 되살려 충분히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또 장기간 성장통을 앓고 있는 남북관계도 민족화합이란 대승적 견지에서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견화동해(見和同解)의 노력을 지속한다면 반드시 개선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김정일 전격 訪中] 첫날 표정…무단장 항일기념탑 참배뒤 명승지 징포후 방문

    [김정일 전격 訪中] 첫날 표정…무단장 항일기념탑 참배뒤 명승지 징포후 방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9개월 만의 방중 첫날인 20일 헤이룽장성 무단장(牧丹江)에서 반나절 이상을 보낸 뒤 오후 9시 10분(한국시간 오후 10시 10분)쯤 특별열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일각에서는 헤이룽장성의 성도인 하얼빈(哈爾濱)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관측이 있는 반면 랴오닝성 선양(瀋陽)을 거쳐 베이징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아버지인 고(故) 김일성 주석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무단장에서는 동북항일연군기념탑을 찾아 헌화했고, 승용차로 왕복 6시간 거리인 명승지 징포후(鏡泊湖)를 방문했다. 이어 현지시간으로 오후 7시쯤 숙소인 무단장 홀리데이인 호텔로 돌아간 김 위원장 일행은 2시간여 휴식을 취한 뒤 특별열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후계자인 3남 김정은의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이번에 방중 길로 선택한 북한 남양~중국 투먼(圖們) 노선은 지난해 8월 마지막 방중 시 귀국길로만 이용했을 뿐 중국 땅을 밟을 때 한 차례도 선택하지 않은 생소한 노선이다. 김 위원장은 2000년 이후 지난해 5월까지 다섯 차례의 방중 때는 모두 신의주~단둥(丹東) 노선을 이용했고, 지난해 8월 방중 때는 만포~지안(集安) 노선을 택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 동북지방 경제개발의 핵심 지역이자 북·중 경협의 시험무대인 창춘·지린·두만강 유역을 관통하면서 경제난 타개 의지를 밝히는 동시에 김 주석의 ‘혁명열기’를 다시 한번 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중 경제협력 구상을 자기 책임하에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도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중간에서 중국 측이 제공한 차량으로 갈아타고 방중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이날 오후에는 예상 이동경로인 하얼빈~무단장 고속도로에 공안을 가득 실은 트럭 4대가 목격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을 태운 열차가 통과한 투먼과 첫 기착지인 무단장 등에는 하루 종일 중국의 무장 경찰이 집중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투먼의 한 철도 관련 공무원은 “북한의 ‘1번’(김 위원장 지칭)이 왔다.”며 흥분하기도 했다. 이달 중순부터 투먼을 관할하는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는 김 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고위 인사의 방중 조짐이 엿보였다. 오는 8월 옌지(延吉)에서 열리는 국제상품교역회 관련 협의를 위해 이번 주말 옌지를 방문하려던 우리 측 모 인사는 지난 18일 “너무 바빠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는 담당 공무원의 전화를 받았다. 일본의 한 민영방송사는 관련 정보를 듣고 19일 밤 취재진을 옌지에 급파했으나 투먼으로 가는 도중에 검문에 걸려 베이징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일부 마이크로블로그 등에도 이날 새벽 “투먼 시내에 공안이 쫙 깔렸다.”, “무슨 일이 있나.” 등의 글이 뜨는 등 일부 네티즌들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전했다.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가 최근 들어 대사급으로는 이례적으로 중국의 최고지도자급 인사들을 집중 면담한 까닭도 김 위원장 방중으로 풀렸다. 김 위원장 방중을 위한 사전 협의였던 셈이다.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측근인 지 대사는 김정은이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부임했으며 이 때문에 지 대사의 행적이 김정은 방중 사전정지 작업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지 대사는 자칭린(賈慶林)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리창춘(李長春) 정치국 상무위원,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 멍젠주(孟建柱) 공안부장 등을 잇따라 면담했고, 장관급인 리충쥔(李從軍) 관영 신화통신 사장, 장옌눙(張硏農)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사장, 차이우(蔡武) 문화부장 등도 만났다.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에서 누굴 만날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후진타오 주석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 권력 서열 2위인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아프리카를 방문 중이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한·중·일 정상회의 때문에 최소한 22일까지는 시간을 낼 수 없는 상태다. 그런 점에서 후 주석과 만나지 않는다면 권력 서열 4~6위인 자칭린 정협주석, 리창춘 상무위원, 시 부주석이 김 위원장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지 대사가 최근 면담한 지도자들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정종욱 “김정은 조만간 訪中 가능성”

    정종욱 전 주중 한국대사는 18일 “최근 북한과 중국의 움직임으로 미뤄볼 때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조만간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 전 대사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문제연구소 춘계심포지엄에서 “지난해 10월 부임한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의 움직임을 보면 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면서 이같이 전망했다. 그는 “지 대사 일행이 최근 만나고 있는 중국 내 기관과 인물은 이례적”이라면서 “북한의 권력 승계자인 김정은이 당장 다음 달은 아니더라도 올해 안에 방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 대사는 지난달 28일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유력시되는 시진핑 국가부주석을 만난 것을 비롯해 신화사 사장, 인민일보 사장 등 중국 내 고위층과 잇따라 면담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굿바이 ‘오프라 윈프리 쇼’

    토크쇼 여왕 오프라 윈프리(57)와의 이별에 미국이 아쉬워했다. 오는 25일 마지막 방송을 남겨둔 ‘오프라 윈프리 쇼’의 고별 무대가 마련된 17일 밤(현지시간) NBA팀인 시카고 불스의 홈 구장 유나이티드 센터에는 비욘세, 마돈나, 톰 크루즈, 톰 행크스, 스티비 원더, 어셔, 존 레전드, 마이클 조던, 아네사 프랭클린, 핼리 베리, 케이티 홈스 등 ‘A급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이날 고별 무대에는 1만 3000여명의 팬들이 몰렸다. 윈프리가 대표로 있는 하포 프로덕션은 티켓 신청만 15만 4000건이 쇄도해 추첨으로 무료 티켓을 배부해야 했다고 밝혔다. ●슈워제네거 부인 슈라이버도 출연 외도 사실이 밝혀진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주 주지사의 부인 마리아 슈라이버도 곤욕스러움을 떨치고 절친한 친구의 고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방송 25주년이 되는 해 떠나겠다.”고 2009년 공언했던 윈프리는 이날 “25년간 우리를 설 수 있게 해준 것은 바로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성폭행과 마약, 폭행 등 어린 시절의 불운에도 굳건하게 맞서며 성공신화를 개척해온 그녀도 이날만큼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마돈나는 “나 역시 윈프리에게 영감을 받은 수백만명 가운데 하나”라면서 “그녀는 더 열심히 일하고 독서하고 질문하고 당신이 어디에 있든 공부하라고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가수 비욘세는 “그녀로 인해 이 세상의 여성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세계를 끌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녀의 존재 의미를 부각시켰다. 슈라이버는 “당신은 내게 사랑과 지지, 지혜와 진실을 선사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이날 무대에서 팬들이 보낸 메시지와 25년간 방송됐던 주요 장면을 보여 줬다.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 여군들이 보낸 메시지도 소개됐다. 오는 23~25일 3회분에 걸쳐 나가는 고별 방송 가운데 이날 쇼는 23~24일 방송된다. 하지만 마지막날인 25일 방송은 진행자인 윈프리 자신에게도 초대 손님이 누구인지 비밀에 부쳐져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25년동안 초대손님 3만여명 거쳐가 1986년 ABC방송에서 첫 전파를 탄 오프라 윈프리 쇼는 25일 4561회 방송을 마지막으로 시청자들과 이별한다. 매주 수요일마다 시청자 4000만명을 TV 앞으로 이끈 이 방송은 전 세계 150개국의 시청자와 함께했다. 이 방송에는 3만명의 초대 손님이 거쳐 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지미 카터, 조지 H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등 미국 대통령만 5명이 다녀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中 ‘酒車 전쟁’…음주운전 적발 땐 무조건 형사처분

    지난 17일 오전, 베이징시 제2중급인민법원 법정. “피고인은 공소인이 증거로 제출한 폐쇄회로(CC)TV 동영상에 대해 이견이 있습니까.” 재판장의 질문에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도망쳤다 붙잡혀 ‘공공안전 위해죄’로 기소된 피고인 천자(陳家)는 “이견이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재판 장면은 중국중앙(CC)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베이징에서는 이날 천자 외에도 역시 음주운전 사고를 낸 유명 연예인 가오샤오쑹(高曉松), 지난 1일 음주운전 사범을 무조건 형사입건하도록 한 형법개정안이 발효된 후 처음으로 적발된 리쥔제(李俊杰) 등에 대한 공개재판이 열렸다. 재판에서 유명 가수 겸 영화인인 가오샤오쑹은 징역 6개월, 리쥔제는 징역 2개월에 벌금 1000위안(약 17만원) 선고를 받았다. 중국이 ‘음주운전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음주운전이 난무하자 단순 음주운전 사범이라도 적발되면 난폭운전과 마찬가지로 무조건 ‘위험운전죄’로 형사처분하도록 형법을 개정했고, 도로교통법의 음주운전 처벌 조항도 대폭 강화했다. 18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형법개정안 발효 후 보름동안 공안(경찰)은 음주운전 사범 2038명을 적발해 646명을 기소했다. 서슬 퍼런 단속과 형사처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음주운전은 대폭 감소했다. 보름 동안의 적발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3% 줄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도 37.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률적인 형사처분에 대한 논쟁도 격렬하다. 중국의 대법원 격인 최고인민법원 측이 최근 각 인민법원에 “적발 시간 등 경중을 가려 음주운전 사건을 신중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하자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는 “법률의 해석권은 법률을 제정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있다.”면서 제동을 걸기도 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美 디폴트 위기 직면] 中, 美국채 보유 5개월째 감소

    중국이 5개월 연속 미국 국채 보유량을 줄였다. 관영 신화통신 등은 미 재무부 발표를 인용해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이 3월 말 현재 1조 1449억 달러라고 17일 보도했다. 3월 말 현재 중국의 외환 보유고가 3조 447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외환 보유고 가운데 37.6%가 미 국채인 셈이다. 5개월 연속 감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미 국채 보유 규모는 여전히 세계 1위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지난해 10월 1조 1753억 달러로 정점을 찍었으며 11월에 112억 달러, 12월 40억 달러, 지난 1월 54억 달러, 2월 6억 달러 줄어든 바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이용원칼럼] 그래도 5·16은 쿠데타다

    [이용원칼럼] 그래도 5·16은 쿠데타다

    5·16 50주년을 맞아 재평가가 한창이다. 5·16을 옹호하는 이들의 논리는 대략 이렇다. 군대를 동원해 정권을 장악한 방식으로 보면 쿠데타이지만 근대화를 이루어 냈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혁명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5·16에 대한 평가는 곧 ‘박정희 평가’다. 박정희 집권 18년의 그늘이 워낙 넓고 깊기에, 박정희가 5·16을 주도한 인물이라는 의미보다는 5·16이 도리어 박정희를 탄생시킨 ‘사건’으로 인식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정희의 삶을 되짚는 일이 5·16의 역사성을 판단하는 데 훨씬 유효하다. 1961년 5·16을 일으킨 박정희 세력은 그 명분으로 당시 제2공화국의 장면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내세웠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몇 달 뒤 발표한 ‘장(張)정권 비리’는 김모 내무부장관이 냉장고-사실은 아이스박스-한 대를 뇌물로 받았다는 것뿐이었다. 발표거리가 고작 냉장고 한 대였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장면 정부가 얼마나 깨끗했는지를 보여준다(이용원 저 ‘제2공화국과 장면’-범우사 1999년 간-에서 인용). ‘무능’은 ‘부패’와 달리 수치로 나타나지 않기에 시대상의 변화로 가늠할 수밖에 없다. 장면 정부는 4·19혁명의 결과로 태어났다. 따라서 초기에는 ‘데모로 날이 새고 데모로 날이 질’ 만큼 혼란상이 극심했다. 하지만 갈수록 줄어들어 ‘1961년 3월 즈음에는 사회가 안정돼 갔다.’(조광 고려대 교수)는 식의 증언이 적지 않다. 오히려 ‘사회가 다소 혼란했지만 데모를 존중해 경찰이 절대로 강권을 동원하지 않았다.’는 장면 측 인사의 표현이 ‘무능’의 실체에 가까웠을 터이다. 이젠 ‘박정희 신화’에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경제성장의 업적을 따져보자. 경제성장은 박정희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장면 정부는 1960년 9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을 발표했고 이듬해 4월에는 미국이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정희 세력이 집권하면서 한 일은 이미 완성된 ‘개발 계획서’의 표지를 바꾸고 성장 목표를 연 6.1%에서 7.1%로 높인 것뿐이었다. 박정희를 지지하는 이들은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강력한 지도력-독재의 다른 표현-은 필수라고 역설한다. 박정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경제성장의 기적은 불가능했으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장면 정부가 경제개발을 시작하고, 역시 선거로 뽑힌 후속 정부가 개발사업을 이어받는다고 해서 성장을 이루지 못했으리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백보 양보해서 강력한 지도력을 일정 부분 인정한다 해도 우리는 ‘민주화와 동반하지 않은 경제성장’의 후유증인 사회 양극화, 노동 가치의 상실, 부정부패, 도덕적 타락 등을 지금도 몸서리치게 앓고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박정희의 과(過)는 두드러진다. 1963년 군정(軍政)을 끝내면서 그는 원대복귀를 약속하지만 이를 어기고 대통령에 출마해 2회 연속 당선한다. 이어 1969년에는 ‘3선 개헌’을 해 세 번째로 권좌에 앉더니 결국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어 종신 집권 체제를 갖춘다. 그 과정을 보면 박정희는 지구상에 명멸한 그 많은 독재자의 하나에 불과하다. 박정희의 끝없는 집권욕은 숱한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그 정점은, 사후 7개월 만에 벌어진 광주민주항쟁이다. 대한민국 국군이 국민에게 총질을 해댄 그 참극은 박정희의 후계자 전두환이 벌인 일이다. 하지만 그 뿌리는 박정희와 5·16에 있음을 역사는 부인하지 않을 터이다. 아울러 1960년 국민이 민주주의를 직접 쟁취한 4·19혁명이 미완(未完)으로 끝나 27년 만에야 6월항쟁으로 되살아난 까닭도 박정희 세력이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광주민주항쟁 31돌을 맞은 아침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박정희와 5·16을 두고 왈가왈부한다.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또 남녘 땅 이름 없는 산하 한 자락에 묻힌 영령들에게 오로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ywyi@seoul.co.kr
  • 마포구 장애인들의 ‘희망’ 전시회

    마포구 장애인들의 ‘희망’ 전시회

    뇌병변장애 1급 오성학(25)씨가 발가락 사이에 붓을 쥐고 ‘푸른 자전거’를 써내려 나간다. 팔이 불편해도 발이 있어 다행이다. 이를 지켜보던 강병인(49)씨가 말문을 연다. “자전거가 굴러가는 느낌을 살려보는 거야. ‘전’의 ‘ㄴ’을 둥글게 굴리니 바퀴 느낌이 나지? 또 ‘ㅓ’를 더 길게 빼면 자전거 모양을 글씨에 담을 수 있어.” 지난해 3월부터 지난달까지 성산동 마포장애인복지관에서 진행된 ‘장애인을 위한 마포 캘리그래피 교실’의 모습이다. 캘리그래피는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을 뜻한다. 이 수업을 이끈 사람은 바로 캘리그래퍼인 강씨. 지난해 뉴욕에서 개인전을 연 데 이어 지난달에는 서울 개인전에서 ‘흥행 신화’를 이끌어 냈던, 캘리그래퍼계의 유명 인사다. 개인의 재능을 사회에 기부하기 위해 직접 자원봉사에 나선 것이다. ●캘리그래퍼 강병인씨 1년여간 무료 지도 홍익대 부근에 연고를 둔 강씨는 미술과 서예에 관심이 많은 20~30대 장애인을 선발해 캘리그래피의 이론과 실기를 무료로 가르쳤다. 매주 목요일, 3시간씩 교육을 하면서 6명의 장애인을 제자로 키워 냈다. 강씨는 17일 “장애를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냥 예술을 즐기라고, 단점이 곧 장점이라고 줄곧 강조했다.”면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한 학생도 있었다. 무엇보다 열심히 따라와 준 수강생들에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작품을 직접 감상할 기회도 마련됐다. 오는 20일부터 25일까지 구청 로비에서 열리는 전시회 ‘희망’에서다. 강병인 캘리그래피연구소가 주관한다. 일종의 ‘졸업 전시회’인 셈이다. 19일 개막 행사에서는 테이프 커팅과 함께 박홍섭 구청장의 격려사, 수료생들이 직접 손글씨를 시연하는 행사도 준비돼 있다. ●20일부터 구청 로비에서 전시 전시회를 앞둔 강양욱(39·지적장애 2급)씨는 “아직 실력이 못 미쳐 부끄럽다.”면서도 “처음엔 글씨를 쓸 때 구도가 맞지 않아 종이를 접은 선에 맞춰 썼지만 지금은 종이를 접지 않아도 돼 기쁘다. 선생님한테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칭찬도 종종 듣는다.”며 웃었다. 강씨는 올 한 해도 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계속한 뒤 새해에는 지역 디자인 기업과 연계해 캘리그래피 사회적 기업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강씨는 “이들에겐 지금이 시작이다. 끝까지 애정을 가지고 돕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글 사진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카자흐 ‘1조 신화’ 알고보니 ‘탈세 왕’?

    카자흐 ‘1조 신화’ 알고보니 ‘탈세 왕’?

    국세청이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에 이어 ‘1조원의 사나이’로 유명한 차용규씨에 대해 역외탈세와 관련한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씨는 카자흐스탄에서 억만장자가 된 인물로 사상 최대 규모의 역외탈세 추징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세청은 최근 차씨의 역외탈세 혐의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차씨는 삼성물산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근무하다 1995년 카자흐스탄의 최대 구리 채광·제련업체 카작무스의 위탁경영을 맡으며 ‘인생 역전’을 이룬 인물이다. ●최대 규모 추징금 7000억원 관측 그는 2004년 삼성물산이 카작무스에서 철수하자 지분을 대거 인수한 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해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카작무스 대표에서 물러난 뒤 차씨는 홍콩에 살면서 한국 부동산, 증시 등에 투자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은 차씨가 카작무스 지분 매각으로 번 1조원대 소득에 대한 역외탈세 혐의와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국내 부동산 투자 탈세 여부에 대해 집중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씨에 대한 국세청 조사는 대기업과 대자산가에 대한 역외탈세 집중 조사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권 시도상선 회장에게 4101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한 국세청의 레이더망에 차씨도 걸렸다는 후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차씨에 대한 정확한 추징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최근 사상 최대 규모의 세금을 부과받은 권 회장의 추징금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며 “최대 7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논란의 여지는 적지 않다. 관건은 권 회장의 경우처럼 차씨가 ‘거주자’ 요건에 해당하느냐이다. 홍콩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차씨는 국세청의 추징이 이뤄질 경우 ‘비거주자’(세법상 외국인)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국세청도 거주자임을 입증할 증거를 수집하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거주자 입증 증거수집 주력 업계에서는 차씨가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조세 피난처에 여러 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놓고 이를 통해 국내 호텔·백화점에 투자하고 전국 곳곳의 빌딩을 매입하는 등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1956년생인 차씨는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1995년 독일 주재원으로 근무할 당시 카작무스의 위탁경영을 맡아 2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카작무스는 위탁경영이 만료된 2000년 자산 가치 30억 달러 회사로 거듭났다. 차씨는 2008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의 부자 1000명’에 재산 14억 달러(약 1조 4000억원)로 세계적으로는 843번째, 한국인으로서는 9위의 갑부로 이름을 올렸다. 오일만·류지영기자 oilma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