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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감독에 안긴 기성용 히딩크에 안긴 홍명보

    홍감독에 안긴 기성용 히딩크에 안긴 홍명보

    전력에서 한 수 아래란 평가-승부차기-골키퍼의 선방에 이은 확실한 마무리-감독을 향해 달려가는 선수들. 묘하게 닮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에서 영국과의 8강전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던 스페인과의 8강전 데자뷔였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월드컵대표팀은 16강전에서 이탈리아에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궈내고 8강에서 스페인과 맞닥뜨렸다. ‘무적함대’로 불리던 스페인은 한국을 ‘거저먹는 상대’로 취급했다. 10년 뒤 영국 대표팀과 언론 역시 경기 전부터 한국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동했다. 오히려 4강에서 만날 것으로 예상되는 브라질을 견제하는 데 힘을 쏟았다. 2002년 볼 점유율(52%-48%)에서 앞서고도 연장까지 골을 넣지 못했던 ‘형님’들과 달리 10년 후배들은 조금 더 효율적인 경기를 펼쳐나갔다. 볼 점유율에서는 42%-58%로 밀렸지만 슈팅은 오히려 16개로 영국(12개)에 앞섰다. 지동원(선덜랜드)의 선제골은 10년 사이 업그레이드된 한국축구의 단면을 드러냈다. 대표팀의 4강행에 화룡점정을 찍은 선수는 기성용(셀틱)이었다. 다섯 번째 키커는 마지막 슈팅이 될 수 있어 가장 정확하고 강력한 킥 능력을 지닌 선수가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성용은 시원한 슈팅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2002년 스페인전 다섯 번째 키커로 나와 침착하게 골을 넣은 홍명보 감독과 겹쳐 보였다. 10년 전 스페인을 꺾은 뒤 히딩크 감독에게 안겼던 홍 감독은 이번엔 애제자 기성용을 품에 안았다. 준결승에서 독일에 무릎을 꿇었던 2002년과는 달리 홍명보호가 데자뷔를 넘어 새로운 신화를 써낼지 주목된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3부) 한국형 공익재단의 도전 ⑦푸르메재단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3부) 한국형 공익재단의 도전 ⑦푸르메재단

    사내는 절박했다. 우리 나이로 마흔이던 2002년, 일간지 기자 생활을 접고 공익재단과 병원 설립에 도전한 건 온전히 절박함 때문이었다. 4년 전 그는 영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는 100일 만에 깨어났지만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리고 귀국. 아내가 입원한 재활병원의 풍경은 아비규환이었다. 비좁은 병상에는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이 몸을 맞댄 채 24시간 생활했다. 불러도 대답 없는 불친절한 의료진이 대다수였다. 그는 ‘선진국 의료시설 같은 재활병원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계획을 세운 지 꼭 10년째 되는 지난달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푸르메재활센터’를 개관했다. 장애 어린이를 위한 재활시설과 치과, 복지관 등이 들어섰다. 땅도, 돈도, 의료 인력도 없던 그는 어떻게 10년 만에 병원을 지었을까. ‘사내’ 백경학(49)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를 3일 푸르메재활센터에서 만나 성공 비결을 물었다. ●목표사업 뚜렷해 기부자 설득 수월 백 이사와 재단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었던 건 목표를 구체적으로 잡은 덕이 크다. ‘장애인을 돕겠다.’는 막연한 목표 대신 ‘재활 병원 설립’이라는 뚜렷한 계획을 세웠다. 목표 사업이 뚜렷하니 추진력이 붙었고 훗날 기금 모금 때도 기부자들을 설득하기 편했다. 첫 번째 성공 키워드다. 의사가 아닌데다 자금마저 충분치 않던 백 이사가 병원을 지으려면 우선 비영리재단이 필요했다. 재단이 있어야 기금을 모아 장기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가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단 설립을 허가받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종잣돈이었다. 고민 끝에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하우스 맥주가게였다.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2002년 영세업자의 맥주 제조가 허용된 터라 양조전문가인 후배 방호권씨 등과 함께 가내제조 맥주 전문점 ‘옥토버훼스트’를 강남에 오픈했다. 재산을 쌓은 뒤 자선을 결심하는 보통 자산가들과는 반대로 자선을 위해 돈벌이에 뛰어든 것이다. 도박 같았던 맥주 사업은 성공했다. 맥주집 한쪽에서 재단설립 구상을 마친 백 이사는 2004년 자신의 맥주사업 지분 10%(약 2억 8000만원 상당)와 사재를 내놓아 푸르메재단을 세웠다. 이후 아내가 보험사와 8년 소송 끝에 받은 교통사고 보상금 중 절반인 10억 6000만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백 이사는 “주변 사람들도 ‘전재산의 절반 이상을 재단에 바친 사람이라면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한 듯 싶다.”고 말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이 된다 백 이사가 전한 재단의 두 번째 성공 비결은 ‘여럿이, 함께’다. 그는 재단 설립과 운영 과정을 혼자 감당하지 않았다. 대신 집요한 설득으로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늘렸고, 힘을 합쳤다.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와 강지원 변호사가 각각 재단 이사장과 이사를 맡아 줬고 전신화상의 아픔을 이겨낸 작가 이지선씨와 가수 션 등이 홍보대사 제안에 응했다. 병원 건립 때 보태라며 돈을 내놓은 기부자도 7000명이나 됐다. 백 이사에게 사람과 돈을 끌어모은 비법을 물었다. “결국 감동의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좋은 일하라.”는 강요 대신 장애인 재활 사업에 힘을 더해야 하는 이유를 체감하도록 해야 마음도, 주머니도 열린다는 얘기다. 그는 “최근 외국계 항공사 직원에게 장애 아동과 함께 민속박물관 등을 견학하게 유도했다. 아이들과 그 가족의 어려움을 이해해야 기부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 박완서 작가가 생전 인세와 글 등을 기부한 것도 백 이사의 진정성 담긴 편지 때문이었다. 백 이사는 푸르메 재활센터 건립 때도 ‘제3섹터 방식’(시민과 기업이 기금을 모으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부지와 행정 지원을 제공해 시설을 짓는 방식)을 통해 여럿이 힘을 합쳤다. “의료서비스가 공공사업인 만큼 재활병원 설립은 국가의 몫”이라는 것이 백 이사의 철학이다. 다만, 정부가 직접 운영할 경우 관료주의의 덫 등에 걸릴 수 있는 만큼 운영은 노하우가 있는 민간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푸르메 센터의 재활시설에서는 운영을 위해 환자에게 최소한의 비용은 받지만, 불필요한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환자가 있다면 기업 등에게 지원을 부탁할 예정이다. 재활병원인 푸르메 센터를 세웠지만, 백 이사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이 센터는 외래병원인 탓에 입원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마포구로부터 병원 부지를 빌려 병상 100개를 갖춘 연면적 1만 6860㎡ 규모의 어린이재활병원을 내년 착공할 계획이다. 2015년 개관이 목표인데 380억원가량이 드는 건축비 등을 계속 모금 중이다. 병상을 갖춘 재활병원이 세워져도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입원을 원하는 어린이 환자는 1만 5000명이나 되는데 병상은 150분의1수준인 탓이다. 백 이사는 “푸르메 병원이 모델이 돼 전국 8개권역에 선진 재활병원이 최소 하나씩 건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후원문의 (02)720-7002.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혼수상태 아내 보상금서 10억 뗀 남편 결국엔…

    혼수상태 아내 보상금서 10억 뗀 남편 결국엔…

    사내는 절박했다. 마흔이던 2002년, 일간지 기자 생활을 접고 공익재단과 병원 설립에 도전한 건 온전히 절박함 때문이었다. 이태 전 그는 영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는 100일 만에 깨어났지만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리고 귀국. 아내가 입원한 재활병원의 풍경은 아비규환이었다. 비좁은 병상에는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이 몸을 맞댄 채 24시간 생활했다. 불러도 대답 없는 불친절한 의료진이 대다수였다. 그는 ‘선진국 의료시설 같은 재활병원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계획을 세운 지 꼭 10년째 되는 지난달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푸르메재활센터’를 개관했다. 장애인을 위한 재활시설과 치과, 복지관 등이 들어섰다. 땅도, 돈도, 의료 인력도 없던 그는 어떻게 10년 만에 병원을 지었을까. ‘사내’ 백경학(49)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를 3일 푸르메재활센터에서 만나 성공 비결을 물었다. ●목표사업 뚜렷해 기부자 설득 수월 백 이사와 재단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었던 건 목표를 구체적으로 잡은 덕이 크다. ‘장애인을 돕겠다.’는 막연한 목표 대신 ‘재활 병원 설립’이라는 뚜렷한 계획을 세웠다. 목표 사업이 뚜렷하니 추진력이 붙었고 훗날 기금 모금 때도 기부자들을 설득하기 편했다. 첫 번째 성공 키워드다. 의사가 아닌데다 자금마저 충분치 않던 백 이사가 병원을 지으려면 우선 비영리재단이 필요했다. 재단이 있어야 기금을 모아 장기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가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단 설립을 허가받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종잣돈이었다. 고민 끝에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하우스 맥주가게였다.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2002년 영세업자의 맥주 제조가 허용된 터라 양조전문가인 후배 방호권씨 등과 함께 가내제조 맥주 전문점 ‘옥토버페스트’를 강남에 오픈했다. 재산을 쌓은 뒤 자선을 결심하는 보통 자산가들과는 반대로 자선을 위해 돈벌이에 뛰어든 것이다. 도박 같았던 맥주 사업은 성공했다. 맥주집 한쪽에서 재단설립 구상을 마친 백 이사는 2004년 자신의 맥주사업 지분 10%(약 2억 8000만원 상당)와 사재를 내놓아 푸르메재단을 세웠다. 이후 아내가 보험사와 8년 소송 끝에 받은 교통사고 보상금 중 절반인 10억 6000만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백 이사는 “주변 사람들도 ‘전재산의 절반 이상을 재단에 바친 사람이라면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한 듯 싶다.”고 말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이 된다 백 이사가 전한 재단의 두 번째 성공 비결은 ‘여럿이, 함께’다. 그는 재단 설립과 운영 과정을 혼자 감당하지 않았다. 대신 집요한 설득으로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늘렸고, 힘을 합쳤다.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와 강지원 변호사가 각각 재단 이사장과 이사를 맡아 줬고 전신화상의 아픔을 이겨낸 작가 이지선씨와 가수 션 등이 홍보대사 제안에 응했다. 병원 건립 때 보태라며 돈을 내놓은 기부자도 7000명이나 됐다. 백 이사에게 사람과 돈을 끌어모은 비법을 물었다. “결국 감동의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좋은 일하라.”는 강요 대신 장애인 재활 사업에 힘을 더해야 하는 이유를 체감하도록 해야 마음도, 주머니도 열린다는 얘기다. 그는 “최근 외국계 항공사 직원에게 장애 아동과 함께 민속박물관 등을 견학하게 유도했다. 아이들과 그 가족의 어려움을 이해해야 기부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 박완서 작가가 생전 인세와 글 등을 기부한 것도 백 이사의 진정성 담긴 편지 때문이었다. 백 이사는 푸르메 재활센터 건립 때도 ‘제3섹터 방식’(시민과 기업이 기금을 모으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부지와 행정 지원을 제공해 시설을 짓는 방식)을 통해 여럿이 힘을 합쳤다. “의료서비스가 공공사업인 만큼 재활병원 설립은 국가의 몫”이라는 것이 백 이사의 철학이다. 다만, 정부가 직접 운영할 경우 관료주의의 덫 등에 걸릴 수 있는 만큼 운영은 노하우가 있는 민간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푸르메 센터의 재활시설에서는 운영을 위해 환자에게 최소한의 비용은 받지만, 불필요한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환자가 있다면 기업 등으로부터 지원을 부탁할 예정이다. 재활병원인 푸르메 센터를 세웠지만, 백 이사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이 센터는 외래병원인 탓에 입원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마포구로부터 병원 부지를 빌려 침대가 100개 있는 3215㎡ 규모의 어린이재활병원을 내년 착공할 계획이다. 2015년 개관이 목표인데 380억원가량이 드는 건축비 등을 계속 모금 중이다. 병상을 갖춘 재활병원이 세워져도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입원을 원하는 어린이 환자는 1만 5000명이나 되는데 병상은 150분의1수준인 탓이다. 백 이사는 “푸르메 병원이 모델이 돼 전국 8개권역에 선진 재활병원이 최소 하나씩 건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후원문의 (02)720-7002.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방북 왕자루이 中대표단 접견 김정은 연내 방중설 솔솔

    방북 왕자루이 中대표단 접견 김정은 연내 방중설 솔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일 방북 중인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접견하면서 최고지도자로서 외교무대에 공식 데뷔했다. 김 제1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뜸했던 북·중 간 고위급 교류에 직접 나서면서 북·중 관계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연내 방중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 조선중앙통신은 3일 새벽 김 제1위원장이 전날 왕 부장 등 중국 측 대표단을 접견했다고 전하면서 왕 부장이 김 제1위원장에게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등의 인사를 전했으며 김 제1위원장은 이에 대해 사의를 표시하는 등 “따뜻하고 친선적인 담화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반면 중국 신화통신은 김 제1위원장이 왕 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생활 수준을 증진해 주민이 행복하고 문명적인 생활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당의 목표”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신화통신은 또 왕 부장이 북·중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지키고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으나, 김 제1위원장의 방중 문제나 한반도 현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면담에는 북측 강석주 부총리,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김성남 당 국제부 부부장이, 중국 측 류훙차이(劉洪才) 주북 중국대사가 배석했다. 이어 열린 만찬에는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강 부총리, 김영일 당 국제부장, 김양건 부장, 문경덕 당 비서, 김병호·김성남·리수용 당 부부장 등이 참석했다. 지난달 30일 방북한 왕 부장은 2009년 2월, 2010년 5월 등 방북할 때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후 주석의 ‘구두 친서’를 전달하는 등 북·중 간 현안을 조율해 왔다. 이 때문에 김 제1위원장의 첫 방중 일정 등도 협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중국은 10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출범시켜야 하는 권력 교체기여서 방중 시기는 유동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의 방중 문제가 당연히 얘기됐을 것이나 중국에서 새 지도부가 본격 등장한 뒤 김정은의 방중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고위급 인사가 방중해 사전 정지 작업을 한 뒤 김 제1위원장이 내년 초 방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女배구 퍼펙트 쌍포… 9년 만에 삼바춤 잠재웠다

    ‘죽음의 조’를 넘기도 불가능해 보였던 여자배구가 잇단 괴력으로 8강행 청신호를 켰다. 김형실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2일 영국 런던 얼스코트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여자배구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김연경(흥국생명)-한송이(GS칼텍스) ‘쌍포’와 촘촘한 그물 수비로 세계 2위 브라질을, 그것도 3-0(25-23 25-21 25-21)으로 완파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한국이 브라질을 꺾은 것은 지난 2003년 그랑프리대회 이후 무려 9년 만이다. 그동안 속절없이 이어져 온 13연패의 무겁고 긴 사슬도 끊었다. 한국은 브라질과의 역대 전적에서 17승 38패로 절대 열세를 보였다. 지난달 28일 미국에 져 불안하게 출발한 한국은 30일 난적 세르비아를 잡은 데 이어 이날 ‘대어’ 브라질마저 낚으면서 1패 뒤 2연승(조 2위)으로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8강행에도 파란등이 들어왔다. 1위는 3연승의 미국. ‘월드스타’ 김연경이 선봉에 선 한국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동메달) 이후 36년 만에 메달을 다짐하며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팬들은 물론 배구 관계자들조차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런던에서 잠재된 ‘괴력’을 한껏 발산하며 신화 재현에 한발씩 다가서고 있다. 이날 승부는 서브와 수비에서 갈렸다. 한국은 목적타 서브로 브라질의 리시브를 흔들었고 몸을 던지는 호수비로 상대의 파상 공세를 무력화시켰다. 한국은 1세트 14-13으로 리드한 상황에서 황연주(현대건설)의 무회전 서브를 발판으로 단숨에 3점을 보태 승기를 잡았다. 하지만 승리에 1점만을 남긴 24-20에서 저력의 브라질에 내리 3점을 허용하며 역전 위기에 몰렸다. 이때 한송이가 상대 블로커를 뚫는 스파이크를 폭발시켜 힘겹게 세트를 가져왔다. 자신감을 얻은 한국은 2세트에서도 브라질 특유의 고공 강타를 악착같은 수비로 살려낸 뒤 거포 김연경의 통렬한 백어택, 양효진(현대건설)의 속공으로 착실히 점수를 보태 승부의 추를 한국으로 기울였다. 한국은 3세트 22-19로 앞선 긴박한 상황에서 천금 같은 한송이의 쳐내기 득점과 정대영(GS칼텍스)의 중앙 속공이 이어지며 ‘파란’을 완성했다. 김연경은 21점을 터뜨렸고 한송이도 16점을 몰아 쳐 공격을 선도했다. 양효진이 중요한 순간 블로킹 3개로 상대의 공격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등 한국은 가로막기에서 7-5로 앞섰다. 8강 진출에 희망을 부풀린 한국은 3일 밤 10시 45분(한국시간) 터키와 4차전을 치른다. 런던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펠프스 19번째 메달… 신화는 쭉~

    금메달 15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27)가 올림픽의 역사를 새로 썼다. 여전히 ‘진행형’이기에 그가 등장하는 경기 하나하나는 새로운 역사가 될 전망이다. 펠프스가 19번째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며 올림픽 통산 개인 최다 메달 신기록을 달성했다. 19개의 메달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종합 12위에 오른 네덜란드 선수단이 따낸 16개보다 많고, 그 중 15개의 금메달은 당시 종합 6위를 차지한 호주 선수단이 따낸 14개보다 하나 더 많은 것. 1일 런던 올림픽파크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수영 남자 계영 800m(4×200m) 결선에서 미국 대표팀의 마지막 영자로 나선 펠프스는 6분59초70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으며 대회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열린 접영 200m와 계영 400m(4×100m)에서는 모두 은메달에 그쳤다. 이로써 펠프스는 옛 소련의 체조선수 라리사 라티니니가 갖고 있던 올림픽 최다 메달 기록을 새로 썼다. 라티니니는 1956년 멜버른올림픽부터 1964년 도쿄올림픽까지 금 9, 은 5, 동메달 4개 등 18개의 메달을 따냈는데 이를 펠프스가 48년 만에 넘어선 것. 펠프스는 이번 대회에서 7개 종목에 출전한다. 지난 29일 개인혼영 400m에서 4위에 머물며 황제의 아성이 흔들렸지만, 이미 이번 대회 3개의 메달을 수확했고 앞으로 접영 100m와 개인혼영 200m, 혼계영 400m를 남겨둬 최다 메달 기록을 21개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장쩌민 vs 후진타오 권력 교체기 신경전

    중국 지도부가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를 열고 차기권력 새판짜기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이끄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상하이방(上海幇)의 수장인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권력경쟁’이 뜨겁다.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사실상 확정될 계파 간 새 지도부 비율 배분 문제를 놓고 장외 신경전이 달아오르는 양상이다. ●장쩌민 출판정치… 건재 과시 행보 장 전 주석은 최근 딩관건(丁關根) 중앙선전부장의 빈소에 화환을 보낸 데 이어 중국사회과학원 사학자들이 공동 편찬한 중국 역사서 ‘간명 중국 역사 독본’에 서문을 썼다고 관영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이 31일 주요 기사로 보도했다. 이 같은 ‘화환 정치’나 ‘출판 정치’는 상왕으로서의 영향력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권력교체가 이뤄지는 이번 18차 당대표대회에서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앞서 ‘보시라이 스캔들’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 4월에도 외신을 통해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과 회동한 사실을 대외에 알림으로써 건재를 과시한 바 있다. 후 주석은 이날 인민일보 1면에 실린 ‘과학발전관의 중대 의의를 깊이 파악하자’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후진타오식 이론 무장’을 강조함으로써 군기잡기에 나섰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과학발전관은 지속가능한 발전 방법을 통해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후 주석의 치국 이념이다. 보시라이 스캔들 이후 군 동요설이 나오는 등 중요 고비 때마다 관영 언론들이 앞장서 후 주석의 과학발전관을 설파하며 그에 대한 충성을 에둘러 요구한 바 있다. ●후진타오, 軍승진 인사… 제 사람 심기 최근 베이다이허 회의를 앞두고 열린 전국 지도자급 영도간부 심포지엄에선 후 주석 스스로 과학발전관을 여러 차례 언급했으며, 이날 칼럼에서도 ‘과학발전관은 당대 중국의 선명한 주제로 전체 국민의 근본적 이익과 관련되어 있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후 주석은 또 전날 중앙군사위 주석 자격으로 군 최고위 장성을 상대로 상장(上將·우리의 ‘대장’격)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고 인민일보가 이날 보도했다. 6명의 승진자 모두 후 주석 계열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후 주석이 임기 말 군 내부에 자기 사람 심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승진자 가운데 태자당으로 분류된 류야저우(劉亞洲) 국방대학 정치위원은 ‘보시라이 스캔들’ 직후인 4월 당 이론지인 구시(求是)에 ‘무조건 당 지휘를 따르는 것은 군의 중요한 기율’이란 제하의 칼럼을 통해 후 주석을 옹호하면서 후 주석 계열로 여겨진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서울광장] 또 하나의 시한폭탄 베이비부머/우득정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또 하나의 시한폭탄 베이비부머/우득정 수석논설위원

    지난 7월 5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는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문제가 주제였다. 이 대통령은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을 돌볼 시간도 없이 달려온 세대”라면서 “정부는 구직과 창업을 준비하는 은퇴자를 위해 용기를 주면서도 실패를 줄이는 방향으로 세밀하고 섬세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관계부처는 ‘노후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은퇴자들이 체계적인 노후설계 교육을 받도록 하는 한편 내년 하반기부터 50세 이상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을 통해 근로시간을 줄여 직장에 더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은퇴하는 베이비부머들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자영업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실버 푸어’를 양산할 조짐을 보이자 긴급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율은 2010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9%)의 두 배에 가까운 28.8%다. 연평균 216만 9000명이 신규 진입하고 187만 8000명이 사업을 접는다. 그래서 금융당국은 베이비부머의 자영업 진출을 막기 위해 금융기관의 자영업 대출을 규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우스 푸어’ 논란이 일자 자산이 있는 베이비부머들을 위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모순된 정책을 내놓았다. 전형적인 땜질 처방이다. 베이비부머란 한국전쟁 이후 출산율이 급증한 시점(1955년)부터 산아제한정책의 도입으로 출산율이 급속도로 둔화되는 시점(1963년)까지 9년 동안 태어난 세대를 지칭한다. 2010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14.6%인 713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베이비부머는 고도의 경제성장기에 근로생애를 시작하여 30~40대에 외환위기로 인한 노동시장과 기업경영의 급격한 변화를 겪었고, 40~50대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한번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되는 등 퇴직 시점까지 체계적인 노후준비를 할 기회를 갖지 못한 세대다. 게다가 자녀들의 사교육비에 금융자산 축적 기회를 희생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와 더불어 노후 빈곤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한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평균 총자산은 1억 2000만원, 평균 부채는 5200만원이다. 그런가 하면 베이비붐 세대가 학교교육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취업을 하게 된 시점은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반으로 수출산업의 호조, 1988년 서울올림픽 특수, 1990년 초반의 건설경기 호조에 이르기까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이 지속되던 시기다. 모든 학력계층에 걸쳐 확대·팽창하는 경제 사회적 자원과 일자리 확대의 혜택을 경험했고, 초기의 직업경력도 강한 상승 조류를 탔다. 28%에 이르는 대졸 이상 고학력층은 화이트직종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고졸 이하 학력층은 기능직이나 조립·사무보조직 혹은 판매서비스직 분야에서 직업생활을 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베이비붐을 잇는 다음 세대의 고학력 공급 과잉은 평생직장 신화 붕괴와 함께 주된 직장에서 베이비붐 세대의 조기 은퇴를 재촉하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평균 53세에 주된 직장에서 물러나게 되는 이유다. 베이비붐 세대가 근로생애를 시작하던 1980년대 중반에는 인구 전체의 기대 수명은 60세에 불과했다. 50대 이후의 기대여명도 15년 정도였다. 퇴직을 앞둔 지금 기대수명은 80세, 50세 시점의 기대여명은 32세로 2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노후를 떠받쳐줄 사회안전망은 극히 부실하다. 부족분을 메우려니 일흔살이 넘도록 노동시장을 전전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준비되지 않은 은퇴’가 국가적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국가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주된 직장에서의 정년 연장을 세대 간 일자리 충돌이 아닌, 재정과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시각으로 봐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성장을 기반으로 하는 일자리 창출이 최선의 해법이다. djwootk@seoul.co.kr
  • [런던올림픽] 맏언니 최현주 10·10 … 10·10 ‘신들린 슈팅’

    [런던올림픽] 맏언니 최현주 10·10 … 10·10 ‘신들린 슈팅’

    올림픽 7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한국 여자궁사 최현주(28·창원시청), 기보배(24·광주시청), 이성진(27·전북도청) 가운데 가장 돋보인 이는 ‘맏언니’이면서도 ‘새내기’ 양궁 대표 최현주였다. 그는 중국과의 결승 2엔드부터 4엔드 첫발까지 4발을 과녁 한가운데에 꽂아 넣어 49점을 몰아 올렸다. 동생들의 실수로 흐름이 깨질 위기가 올 때마다 어김없이 ‘해결사’ 노릇을 한 것. 한국 대표팀이 기록한 210점 가운데 최현주가 가장 많은 74점을 올렸고, 기보배와 이성진은 각각 70점과 66점을 쐈다. 사실 최현주의 최근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어깨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일부 외신은 ‘중고 신인’ 최현주를 단체전의 약점으로 꼽으며 “한국 여자양궁의 독주가 끝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최현주로서는 몸과 마음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맏언니의 무서운 정신력은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무섭게 타올랐다. 한국이 기록한 6발의 골드(10점) 중 4발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7연패 달성 후 최현주는 “어깨 부상 때문에 최근 주사를 맞아 감을 잃고 헤맸다.”면서 “동료에게 너무 미안해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최현주가 ‘늦깎이 신궁’이라면 이성진은 ‘돌아온 신궁’이다. 이성진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윤미진, 박성현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딴 데 이어 개인전에서도 박성현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국제 무대에서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것보다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번번이 미끄러졌고, 2007년 오른쪽 어깨까지 다치며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수술과 긴 재활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2012년 7월, 다시 세계 최정상에 올랐다. 은퇴의 기로에서 재도약한 이성진은 대표팀에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얼굴을 알린 기보배는 4엔드 마지막 궁수로 나와 승리를 결정지었다. 중국은 209점을 기록하며 먼저 경기를 마쳤고, 한국은 기보배의 마지막 한 발을 남겨 둔 상황에서 201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기보배가 무조건 9점 이상을 쏴야 올림픽 7연패가 달성되는 상황. 차분하게 활 시위를 당긴 기보배는 망설임 없이 화살을 날렸고, 점수판에는 9점이 표시됐다. 평소 “욕심을 부리면 될 것도 안 된다.”는 기보배를 억누른 것은 다름 아닌 6연패의 선배들이었다. 그는 경기 뒤 “선배들의 업적 때문에 부담스러웠다.”면서 “금메달을 따고 나서야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고 선배들이 고마워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만화는 내 사랑] (14) 최광식 문화체육부장관

    [만화는 내 사랑] (14) 최광식 문화체육부장관

    어린 시절 만화방에서 번데기를 먹으며 통행금지 시간이 다가오는 것도 잊은 채 무수한 작품을 독파했던 그다. 지금도 기억에 또렷한 것은 김산호의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다. 비현실적인 공상과학(SF)이어서 그럴까. 정말로 ‘라이파이’에는 50년 전 당시엔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이 넘쳐 났다. 최광식(59)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그래서 “만화는 모든 이에게 꿈을 주는 이야기”라는 자기 말에 더욱 확신을 갖는다. “만화는 마음대로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 좋아요. 다른 장르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것도 만화에서는 가능하죠. 만화 같은 소리 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만화는 비현실적이라는 의미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만화가 꿈과 상상의 나래를 먼저 펼쳐 놓으면 다른 문화 장르가 이를 받아 다양하게 확장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어렸을 때 신문을 펼쳐 가장 먼저 찾았던 것이 김성환의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이었다. ‘고바우 영감’만 보면 당시 사회적 이슈가 무엇인지 따라잡을 수 있었다. 특히 머리 벗겨진 모습이 비슷해 아버지 별명이 고바우였다고 웃음 짓기도 했다. 지금은 서른 살 넘게 장성한 두 아들이 어렸을 때는 함께 만화책을 뒤적이다 “애들 말려야지 철없이 같이 보냐.”며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최 장관은 이때 접했던 일본 만화 두 편을 기억해냈다. ‘슬램덩크’와 ‘갤러리 페이크’. 대학 시절 농구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그는 ‘슬램덩크’에 묘사된 농구 경기의 세밀함에 놀랐고, 미술 관련 지식과 정보가 풍성한 ‘갤러리 페이크’에 감탄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최 장관은 우리 만화는 그림 그리는 재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의 힘은 다소 아쉽다고 평가했다. 최 장관은 요즘 읽은 작품 가운데 이야기의 힘이 돋보였다는 주호민의 ‘신과 함께’로 대화를 옮겼다. “작가가 우리 전통 문화와 신화에 대해 정말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을 느꼈죠. 적어도 몇 년은 공부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을 현대식으로 풀이한 게 더욱 마음에 들었죠. 다음에는 우리 도자기의 미학을 만화로 풀어 냈다는 호연의 ‘도자기’란 작품을 보려고 합니다.” 역사학자(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출신)인 그에게 좋은 만화 소재를 추천해 달랬더니 정년 뒤 희곡을 써 보려고 번역해 놨다는 ‘삼국유사’를 비롯해 ‘장화홍련전’, ‘심청전’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입버릇이 된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보탠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신과 함께’에 대해 최 장관이 찬사를 보낸 이유이기도 하다. “옛날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와서는 재미가 없겠죠. 현대적으로 새로 고치면 더 실감나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어 ‘심청전’에서 전통적인 모티프를 따와 해양 세계 등 현대 과학 분야를 다룰 수 있지 않을까요?” 최 장관은 특히 만화계가 우리 전통을 법고창신 정신으로 많이 담아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한류 드라마 가운데 성공한 것을 살펴보면 퓨전 사극이 많아요. ‘대장금’의 경우 우리 음식, 우리 집, 우리 옷 등 옛날 우리가 어땠는지 이해하기 쉽게 담겨 있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독특하고 특색 있게 다가가죠. 모든 만화가가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그런 작품도 많이 해줬으면 해요.” 문화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당부가 이어졌다. “온 가족이 함께 읽을 수 있는 만화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가족끼리 소통도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을까요. 부모와 자식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느끼고 알게 되면 세대 차이도 줄어들겠죠.” 그는 작가들의 처우와 창작 환경, 콘텐츠 유통 과정, 수익 배분 등의 문제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디지털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수출 활로의 모색 등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할 수 있는 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일본 만화 시장처럼 연관 산업이 힘 있게 받쳐주지 못해 파급효과가 크게 비쳐지지 않을 뿐이지 우리 만화의 한류는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어요. 만화 한류의 불씨를 정책적으로 잘 뒷받침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만화가들이 상상력을 더 발휘해 좋은 작품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말이죠.”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中, 외국인기관 투자 완화

    중국이 자본시장 개방 확대 방안 중 하나로 ‘적격외국인기관투자자’(QFII) 투자에 대한 통제 완화 방침을 밝혔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지난 28일 보도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증권감독위원회는 QFII가 중국 본토시장에 1개 이상의 딜러를 통해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한편 본토의 은행 간 채권시장에도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QFII가 중국 중소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살 수 있도록 했고 지금까지 QFII가 상장기업 지분을 20%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을 3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손질했다. 증권감독위는 또 절차를 간소화해 QFII 승인에 소요되는 기간을 단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무원은 지난 4월 QFII 한도를 300억 달러에서 800억 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중국은 지난 2002년 QFII 제도를 도입한 뒤 모두 172개 외국 투자자에 이 자격을 부여했다. QFII를 통해 중국 A주식에 투자된 규모는 전체의 1.1%에 해당한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청개구리 성공신화’ 화제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청개구리 성공신화’ 화제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56)이 최근 펴낸 책 ‘청개구리 성공신화’가 화제다. 한국 경제의 성공비결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저마다 ‘한강의 기적’을 꿈꾸는 개발도상국들이 ‘한국 경제 따라하기’를 위한 좋은 교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개구리라는 제목이 기발하고 도전적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거꾸로 좇아 성공했다고 해서 붙였다고 한다. 책은 그 흔한 사진 한장 없이 글만 빼곡하다. 경제 관료와 세계은행 이사로 있으면서 배우고 터득한 경험이 그대로 응집돼 있다. 복잡한 걸 단순화하는 특유의 논리와 ‘확신범’에 가까운 강한 소신도 돋보인다. 우리의 소중한 경제개발 경험을 개도국한테 전수하는 ‘개발경제학의 한류’ 바람을 일으키자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저자는 한국 경제 발전은 블루오션을 찾기 위한 치열한 지적 고뇌, 성공의 희망사다리를 오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경제 발전 성공에는 ▲유능하고 안정적이며 비전있는 리더십 ▲잘 짜여진 계획 ▲유능한 정부 관료집단 ▲계획 실천에 필요한 자금 등 네가지 요소가 잘 갖춰져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경제 치적에 관한 한, 박정희 대통령은 이론의 여지없이 오늘을 설계하고 기반을 다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저자가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을 기적 이전에 하나의 수수께끼라고 규정한 발상도 흥미롭다. 한국은 서구의 지식인들이 주장하고 국제기구가 앞장서 설파한 경제발전 공식을 그대로 구사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길을 선택한 게 주효했다고 분석한다. 수입 대체전략 대신 수출 드라이브 전략을, ‘일시적 전면개방과 규제철폐’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대신 ‘점진적인 개방과 규제의 단계적 완화’를 선택한 것 등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고시제도, 높은 교육열, 선비정신 등도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한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재벌은 경제발전 초기에 불균형 성장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입장을 저자는 견지한다. 재벌을 앞세워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았다면 압축성장이 어려웠을 것이란 주장이다. 재벌의 도덕성 문제와 존립 그 자체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 정치권이 열을 올리는 ‘경제 민주화’는 대선을 앞둔 표퓰리즘(대기업 때리기)의 캐치프레이즈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한국은 자신의 성공에 안주하고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자랑하는 데서 벗어나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국형 원조 모델을 개발하고 통합원조 전담부처를 적극적으로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전 장관은 행시 22회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국제금융국장, 세계은행 이사, 기획재정부 1차관, 필리핀 대사, 대통령 경제수석 등을 지낸 뒤 최근까지 동국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으로 1년간 연구를 위해 떠났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데스크 시각] 고졸, 뽑아놓고 방치하면 죄악이다/김성곤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고졸, 뽑아놓고 방치하면 죄악이다/김성곤 전문기자

    1970년대 지방에서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이모(50)씨. 그는 중학교에서 상위 10%에 드는, 제법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드는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가 인문계가 아닌 상고를 선택한 것은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상고에 진학하면 3년 장학금을 준다.’는 유혹에 흔들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당시 담임교사도 가세했다. 우수 학생을 유치하라는 재단의 독촉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슷한 수준의 친구들 셋이서 같이 상고로 진학했다. 하지만 그는 상고에 진학한 뒤 적응을 하지 못했다. 3학년이 되자 인문계 고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고, 대학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취업에 포커스를 맞춰서 공부한 그가 좋은 대학에 가기는 쉽지 않았다. 3년여 만에 대학에 갔지만 거기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 상고와는 전혀 무관한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곤 했다. 지금은 아예 그 얘기조차 하지 않지만….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공고를 졸업한 B(53)씨. 그는 대기업의 임원이다. 하지만 졸업생 모두가 그처럼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당시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대신 수재만 간다는 공고에 진학, 학자금 혜택을 받는 등 최선의 선택인 줄 알았지만 군대에 다녀와서는 곧바로 대학에 진학했다. 고졸로 직장에 입사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의 동기는 대부분 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기업들에 고졸 채용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그룹도 올 들어 처음으로 고졸 관리직 700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내년 초 고교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현장에 투입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도 이 대열에 가세했고, 오비맥주는 아예 입사 요강에 ‘대졸자 이상’이란 자격요건을 빼버렸다. 국가적으로 고졸 채용을 장려하는 데다가 기업 입장에서도 고졸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력 인플레로 인한 사회적 비용 등을 감안하면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우려가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꿈 많고 가능성이 무한한 고졸자들을 기업이 받아들인 뒤 이들을 인재로 제대로 키워내지 못할 경우, 이들이 겪을 시행착오 등을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옆에서 숱한 ‘고졸신화’를 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물론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니냐.”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부인해도 우리 사회에 학력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 은행에서마저 대출 때 학력에 따라 이자율을 달리하는 판이니 다른 곳은 오죽하겠는가. 한 공기업 임원은 “과거에 고졸과 대졸을 함께 뽑았는데 일부 고졸 입사자의 경우 회사 내 분위기에 위축돼 스스로 자신의 업무나 인사의 한계를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고졸자는 뽑는 것보다 사내 인식을 바꾸고, 이들의 육성 방안을 제도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고졸자들은 취업 때 많은 고민을 한다. 가정 형편 등을 고려해 입사를 선택하지만 올바른 선택인지, 나중에 후회를 하는 것은 아닌지 등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와서 아버지의 권유로 복학을 포기하고 과감히 고졸 공채로 대기업에 입사한 C(24)씨의 경우 그의 부모가 사흘 동안 싸웠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중에 자식에게 무슨 말을 들으려고 대학도 졸업을 안 시키고 고졸로 취직을 시키느냐.”는 어머니와 “대학 졸업장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아버지의 의견이 맞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고졸자는 이런 고민을 거쳐 입사하게 된다. 고졸자를 뽑아서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다면 안 뽑는 것이 낫다. 이 역시 또다른 측면의 사회적 낭비이기 때문이다. sunggone@seoul.co.kr
  • 中 위안화 절하·감세 확대… 경기부양 안간힘

    중국이 경제성장 둔화로 경착륙 가능성이 커지자 미국과의 마찰을 무릅쓰고 위안화 절하로 방향을 틀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지난 25일 고시한 중국 위안화의 달러 대비 환율은 6.3429위안으로 지난 7개월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은 중국이 지난해만 하더라도 위안화 절하에 대한 미국의 반발을 무마하고 자체 통화팽창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환율 정책을 위안화 절상 쪽으로 유도했으나 올 들어 유럽 재정위기로 중국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위안화 절하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달러화 대비 위안화는 지난해 4.7% 상승했으나 올 들어 이날까지 1.1%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10년 만의 권력교체를 앞두고 위안화 절하를 유도함으로써 경제 둔화의 가장 큰 원인인 수출 부진을 해결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저상(浙商)증권 애널리스트 단스화(詹詩華)는 “(중국의 위안화 절하 유도 방침이)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관련 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리우시 코발치크 홍콩 소재 크레디트 아그리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막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또 경기부양을 위해 올 초부터 상하이(上海)에서만 시범 실시하던 영업세 폐지 정책을 전국 10개 지역에 확대 시행하기로 했다. 26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은 전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주재로 상무회의를 열고 서비스 업종에 부과하던 영업세를 폐지하고 대신 6~11%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방침을 기존 상하이시뿐만 아니라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샤먼(廈門), 선전(深?) 등 4개 시와 장쑤(江蘇), 저장(浙江), 안후이(安徽), 푸젠(福建), 후베이(湖北), 광둥(廣東) 등 6개 성으로 확대 실시하기로 했다. 당장 오는 8월 1일부터 적용된다. 중국은 대부분의 업종에 13~17%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영업세 폐지 방침을 적용받는 지역의 서비스업체의 경우 기존에 부과되던 영업세는 아예 폐지되고 다른 업종에 비해 훨씬 낮은 6~11% 수준의 부과세만 부가된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25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중국 경제 평가 보고서에서 “중국 경제의 가장 핵심 위험 요인은 유럽 재정위기로 이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않을 경우 절반 수준인 최대 4%대까지 성장률이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中 검찰, 보시라이 아내 살인죄 혐의 정식 기소

    실각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중국 검찰에 의해 정식 기소됐다. 이에 따라 한때 중국 최고지도부에 진입할 것으로 점쳐졌다 나락으로 떨어진 보시라이에 대한 처리 방침도 조만간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26일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 검찰원은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독살한 혐의로 구카이라이를 허페이시 중급 인민법원에 기소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경찰 당국이 지난 4월 초 헤이우드와 금전 문제로 갈등을 겪어온 구카이라이가 자신의 집사 장샤오쥔(張曉軍)을 사주해 헤이우드를 독살했다고 발표한 뒤 이들을 구속 상태에서 조사한 지 3개월여 만에 정식 기소가 이뤄진 것이다. 장샤오쥔도 구카이라이와 함께 기소됐다. 신문은 조사 결과 구카이라이가 아들 보과과를 지키기 위해 닐 헤이우드를 죽였다고 살인 동기를 설명했다. 신문은 “구카이라이와 그 아들 보 아무개, 그리고 영국인 닐 헤이우드 사이에 경제적 이익 문제로 갈등이 발생했다.”면서 “이에 구카이라이는 헤이우드가 아들 보 의 신변안전을 위협할 것으로 여겨 집사 장샤오쥔과 함께 독약을 먹이는 방법으로 헤이우드를 살해한 것으로 검찰에 의해 조사됐다.”고 전했다. 보 아무개는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 사이의 아들 보과과(薄瓜瓜)를 지칭하는 것으로 익명 처리된 것이다. 최근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딴 보과과는 ‘보시라이 스캔들’ 이후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주현진 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폭우 사망자수 은폐… 루머 키우는 中당국

    지난 25일 밤 9시 30분. 중국 베이징시가 21일 쏟아진 폭우로 인한 피해 상황을 공식 발표하겠다며 밤늦게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22일 밤 폭우 사망자 수를 37명으로 발표한 뒤 당국이 사망자 수를 축소·은폐하고 있다는 의혹과 비난이 확대되고 있던 터였다. 베이징시 재난예방지휘부 판안쥔(潘安?) 대변인은 준비해 온 발표 자료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폭우 피해 사망자 수는…” 모두들 숨죽이던 그 순간. 대변인은 돌연 말을 바꿨다. “베이징시 폭우 피해인구는 총 160만 2000명….” 기다렸던 사망자 통계만 쏙 빠졌다. 이어 신화, 인민일보, 중앙텔레비전(CCTV) 등 관영 언론 중심으로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질문이 시작됐지만 사망자 수를 묻는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회견이 끝난 뒤 질문에서 배제된 기자들이 “왜 사망자 수를 묻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 기자는 “베이징시가 사망자 수는 ‘민감한 이슈’여서 맨 마지막 질문자로 예정된 홍콩 피닉스TV가 묻도록 정했는데 순서가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기자회견을 끝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맨 앞쪽에 앉았던 한 기자가 “(내 자리에서 발표 내용이)다 보였다. 사망자가 61명이라고 적혀 있는데 맞느냐.”고 확인을 요청했으나 주최측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베이징시 신문판공실 측이 ‘피해 상황을 투명하게 공표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과 달리 이날 기자회견에선 어떻게든 사망자 수를 밝히지 않으려 ‘꼼수’를 부리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베이징시의 석연치 않은 사망자 수 발표 연기로 오히려 네티즌들 사이에는 실제 사망자가 수십만명에 달한다는 루머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마저 26일 ‘사망자 수는 민감한 이슈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고 피해 상황을 솔직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버티던 베이징시는 이날 밤 다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사망자 수가 77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은폐 시도가 확인되면서 이 역시 조작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런던올림픽] 최강 드림팀도 ‘첫판 징크스’ 못 깼다

    [런던올림픽] 최강 드림팀도 ‘첫판 징크스’ 못 깼다

    역대 최강의 전력으로 꾸려진 올림픽축구팀의 출발이 불안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남자축구팀은 26일 영국 뉴캐슬의 세인트제임스파크에서 멕시코와 득점 없이 비겼다. 쉼없이 골문을 두드렸지만 마무리가 안 좋았다. 멕시코는 B조 1위 후보지만 우리는 사상 첫 메달을 노리는 ‘드림팀’인 만큼 왠지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4월 런던올림픽 조추첨이 확정된 순간부터 ‘타도 멕시코’를 부르짖었다. 지난 15일 출정식에서 뉴질랜드를 눌렀을 때도, 런던에서 열린 최종평가전에서 세네갈을 꺾었을 때도 담담했다. 일관된 표정으로 “과정일 뿐이다. 26일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번 ‘홍명보의 아이들’은 메이저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항상 첫 경기에서 휘청거렸다. 처음 닻을 올린 3년 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부터 그랬다. 당시 ‘8강 신화’를 쓰며 한국판 황금세대로 주목 받았지만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는 카메룬에 0-2로 지며 조별리그 탈락을 걱정하는 처지였다. 동메달을 딴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때도 첫 판엔 북한에 0-1로 깨졌다. 시작부터 흔들리다보니 꾸역꾸역, 좋게 말하면 극적으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일종의 ‘첫 판 알레르기’다. 그래서 홍 감독이 최종엔트리(18명)를 결정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경험’이었다. 큰 대회 압박감을 극복하고 초반부터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험 많은 축구쟁이’가 필요했다. 박주영(아스널)·기성용(셀틱)·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김보경(세레소) 등 A대표팀-해외리그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춘 선수가 주축이 됐다. 하지만 그동안 끈질기게 발목을 잡았던 ‘첫 판 징크스’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한국은 ‘제2의 치차리토’ 마르코 파비앙(과달라하라)을 내세운 멕시코와 초반부터 팽팽한 기싸움을 했다. 일진일퇴. 우리는 전반 16분 박주영의 프리킥을 시작으로 기성용의 코너킥, 남태희(레퀴야)의 기습 중거리슛이 잇달아 나오며 흐름을 잡아갔다. 숱한 슈팅을 날렸지만 마무리가 안됐다. 경기 직전까지 내린 비 때문에 잔디가 미끄러운 탓인지 크로스를 띄워 헤딩으로 연결하는 단조로운 공격을 고집했다. 거칠고 투박했다. 홍 감독은 후반 35분 박주영 대신 백성동(주빌로 이와타)을 투입, 구자철을 원톱으로 올리며 전술에 변화를 줬다. 후반 40분에는 남태희 대신 지동원(선덜랜드)을 투입했다. 하지만 기대하던 골은 끝까지 없었다. 막판엔 오히려 파비앙과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토트넘)의 날카로운 공격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홍명보호는 결국 0-0으로 경기를 마쳤다. 선수들은 경기에 지기라도 한 듯 그라운드에 누워 아쉬워했다. 스위스와 벌일 2차전은 30일 오전 1시 15분 코벤트리에서 열린다. 뉴캐슬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폭우참사 베이징市 꼼수?

    최근 중국의 수도 베이징(北京)시를 덮친 폭우로 사망자와 이재민이 속출하는 가운데 18차 당대표대회를 앞두고 베이징시 정부의 권력교체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네티즌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베이징시 인민대표대회는 25일 상무위원회 회의를 열고 베이징시 궈진룽(郭龍) 시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베이징시 공산당위원회 부서기인 왕안쑨(王安順)을 베이징시 대리 시장 겸 부시장으로 선출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남자로 불리는 궈 시장은 이달 초 베이징시의 일인자인 베이징시 공산당위원회 서기직에 선출된 바 있다. 베이징시는 인재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번 폭우 피해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나 책임자 문책 등의 조치는 물론 정확한 폭우 사망자수 발표까지 미루고 있다. 그런데다 수재민을 돕자며 대국민 모금 운동을 촉구하고 나서 네티즌들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뻔뻔한 정부’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실제로 베이징시는 지난 23일 37명의 사망자수를 발표한 이후 추가 발표를 미루고 있다. 전례 없는 수재로 민심이 급격히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망자 수를 최대한 축소 발표하려는 ‘꼼수’라는 비난이 나온다. 네티즌들 사이에는 베이징 폭우로 최대 피해를 본 팡산(房山)구의 한 양로원에서만 200여명의 노인이 수몰되는 등 폭우로 인한 사망자는 수만명이 넘는다는 설이 확산되고 있다. 한편 폭우 직후인 지난 22일 중국 전역에 동시 방송되는 TV뉴스인 신문연보(新聞聯播)에 서열 순위로 보도되는 정치국 상무위원(최고지도부) 9명의 동정이 한 건도 소개되지 않은 데다 베이다이허(北戴河) 인근에 1급 전투 대비 군 경계령이 내려진 것으로 전해지면서 네티즌들 사이에 베이다이허 회의가 개막됐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사설] 오만한 은행권에 금융소비자는 분노한다

    은행들의 탐욕과 오만으로 힘없는 금융소비자들이 엄청난 피해를 봤던 게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이 그제 발표한 ‘금융 권역별 감독실태’에 따르면 은행들은 2008년 10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가산금리라는 명목으로 20조원이 넘는 이익을 챙겼다고 한다. 이러한 이익 추정에 대해 은행들은 동의하지 않지만 은행들이 소비자들을 봉으로 생각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은행은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5.25%(2008년 8월)에서 3.25%(2011년 6월)까지 인하했으나,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내리지 않았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대출금리가 떨어지면, 이자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신규 연장 대출 때 가산금리를 신설하거나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돈이 필요한 기업과 고객의 약점을 악용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신한은행은 대출금리를 산정할 때 학력 차별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적이다. 신한은행은 2008~2011년 개인 신용대출금리를 매길 때 대출자의 학력에 따라 차등을 뒀다. 고졸 이하 대출자에게는 13점을, 석·박사 출신에게는 54점을 줬다. 이러한 신용평점은 대출 승인 여부와 대출금리에 영향을 미쳤다. 이 기간 신한은행이 개인 신용대출을 거절한 4만 4368명 중 1만 4138명은 학력 탓에 돈을 빌리지 못했다고 한다. 못 배운 것도 서러운데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에도 차별을 받은 것이다. 신한은행은 상고 출신으로 신화를 창조했던 라응찬 전 회장이 키운 곳이기에 더욱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신한은행의 어이없는 학력 차별 때문에 대출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자도 더 냈던 고객들의 아픔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신한은행 내 고졸 출신 사원들의 자괴감은 얼마나 컸겠는가. 금융당국이 신한은행의 학력차별을 사실상 용인했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에는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던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모두 소비자 보호에는 나몰라라 했으니 소비자들은 누구를 믿고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다. 금융당국과 은행은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하루 속히 내놓기 바란다.
  • 명왕성, 위성이 무려 5개… 태양계 9행성 지위 되찾나

    명왕성, 위성이 무려 5개… 태양계 9행성 지위 되찾나

    태양계에는 몇 개의 행성이 있을까. 이 같은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저절로 머릿속에서 ‘수·금·지·화·목·토·천·해’라는 문구를 떠올리며 세어 보게 마련이다. 현재 태양계의 행성은 모두 8개.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이 아직은 어색할 수 있다. 입버릇처럼 ‘해’ 다음에 따라나오던 ‘명’, 곧 명왕성을 애써 지워야하기 때문이다. 태양계의 행성이 9개에서 8개로 줄어든 것은 2006년 8월이었다. 지구와 동등한 자격을 잃고 왜행성(왜소행성·dwarf planet)으로 격하된 명왕성의 현재 공식 명칭은 ‘소행성134340’이다. ●새롭게 조망받는 ‘쫓겨난 행성’ 명왕성이 다시 천문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항공우주국(NASA)이 지난 12일 “허블우주망원경이 명왕성 주위를 돌고 있는 또 하나의 위성을 발견했다.”고 밝히면서다. 달보다 작고, 행성 지위에서 쫓겨난 명왕성이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무려 5개의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성·금성은 위성조차 없고, 지구는 하나, 화성은 두 개에 불과한데 말이다. 과학전문 뉴사이언티스트는 “명왕성의 다섯 번째 위성은 명왕성의 지위 격하를 둘러싼 논란에 신선한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죽음의 신 ‘플루토’(Pluto)에서 따온 이름만큼이나 명왕성의 운명은 기구했다. 1930년 2월 18일, 23살의 천문대 조수 클라이드 톰보가 미국 애리조나주의 로웰천문대 망원경을 통해 처음으로 명왕성을 발견했다. 명왕성의 발견은 천문학계의 놀라움이자 기쁨이었다. 천문학자들은 명왕성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행성X’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프톨레마이오스가 태양계 별의 족보를 정리한 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까지 150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태양계의 별은 태양을 포함해 7개뿐이었다. 천지개벽으로 여겨졌던 지동설조차도 별의 숫자가 아닌 중심축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기는 데 머물렀다. 그러나 망원경의 발달로 1781년 3월 영국의 윌리엄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하면서 이 같은 상식이 무참히 깨졌다.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한 뒤 물리학자들은 뉴턴 물리학을 기반으로 천왕성의 궤도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망원경으로 관찰한 천왕성은 뉴턴의 공식을 완벽하게 따르지 않았다. 프랑스의 위르뱅 르베리에는 천왕성 외부에 또 다른 행성이 있어 천왕성의 궤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고 위치를 계산해 1846년 베를린 천문대의 요한 갈레에게 보냈다. 편지를 받은 그날 밤 갈레는 르베리에가 지목한 장소에서 정확히 새로운 행성, 해왕성을 찾아냈다. 명왕성의 발견 역시 해왕성의 궤도가 계산대로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시작됐다. 1890년 퍼시벌 로웰은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에 천문대를 세우고 해왕성 이외에 천왕성의 궤도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행성 즉, ‘행성X’를 찾고자 했다. 논점을 이탈하는 얘기지만 천문학자이자 외교관, 실업가였던 로웰은 한국 역사에도 등장한다. 1876년 일본을 찾았다가 조선의 첫 미국 사절단의 통역을 맡았다. 오랫동안 한국을 뜻한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로웰이 조선을 다녀간 뒤 쓴 책의 제목이다. 로웰은 노월(越)이라는 한국 이름을 갖고 있었으며, 고종의 사진을 처음으로 찍어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로웰이 예언하고, 그토록 찾고자 했던 행성은 그가 사망한 지 15년 뒤에야 발견됐다. 톰보가 발견한 행성은 11세 소녀 베네티아 버니의 제안에 따라 미지의 영역인 태양계의 끝에 있다는 의미로 플루토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공교롭게도 첫 두 글자 P와 L는 퍼시벌 로웰의 이니셜이기도 하다. ●뉴호라이즌스호의 2015년이 기대되는 이유 명왕성 발견 당시 아마추어 천문학자에 불과했던 톰보는 일생 동안 혜성 하나와 초은하단 하나, 성단 6개, 소행성 750개를 발견했다. 1992년 NASA는 톰보에게 명왕성을 탐사하기 위한 위성 ‘뉴호라이즌스’호 탐사계획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1997년 세상을 떠난 톰보는 결말을 보지 못했다. 대신 2006년 1월 발사된 뉴호라이즌스호에는 톰보의 유골이 실렸다. 톰보는 2015년 7월 명왕성에 도착할 예정이다. 반세기 넘게 태양계의 막내로 인정받았던 명왕성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 태양계에서 소행성을 비롯한 미확인 천체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부터다. 명왕성과 비슷한 크기의 소행성들이 여럿 등장하자 국제천문연맹(IAU)은 이들을 모두 행성으로 인정할 것인지(당시 발견된 것들을 모두 포함하면 태양계의 위성은 12개로 늘어날 예정이었다), 아니면 명왕성을 행성에서 제외할 것인지에 대한 의논을 시작했다. 논의 끝에 2006년 8월 24일 IAU 총회는 ‘태양 주위를 돌아야 한다.’ ‘충분히 큰 질량을 가져 자체 중력 때문에 둥글어야 한다.’ ‘자신의 공전궤도면에서 가장 지배적이고 강력한 존재여야 한다.’라는 행성의 세 가지 정의를 발표했다. 지름이 지구의 5분의1, 질량이 500분의1에 불과한 명왕성은 앞의 두 조건은 충족하지만 세 번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명왕성의 궤도는 찌그러져 있어 공전 중에 해왕성보다 더 태양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자신의 위성인 카론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이 때문에 명왕성은 왜행성으로 격하되면서 행성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말았다. 그해 미국에서는 몰락을 뜻하는 신조어인 ‘그 친구 명왕성 됐어.’(He’s plutoed)라는 문장이 올해의 문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76년간의 믿음, 그것도 과학적 사실이 변하는 것은 그만큼 전 세계에 충격이었다. 명왕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꼬마 행성인 명왕성의 위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하나가 추가되면서 5개로 늘었고, 명왕성이 에리스와 쌍둥이별이라는 주장도 있다. 뉴사이언티스트는 “뉴호라이즌스호가 명왕성에 가까이 가면 얼마나 많은 위성이 새롭게 밝혀질지 모른다.”면서 “명왕성에 다시 행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새로운 근거가 마련되기를 많은 학자들이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명왕성은 행성일 당시 유일하게 미국에서 발견한 행성으로, 미국 천문학계의 자존심이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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