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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한탐구 즐긴 집념의 소년… 글로벌 삼성 ‘제2의 창업’ 이루다

    무한탐구 즐긴 집념의 소년… 글로벌 삼성 ‘제2의 창업’ 이루다

    국내 재계에서 가장 극적인 성공신화를 쓴 총수, 삼성을 글로벌 정보기술(IT) 최강자로 키워 낸 경영인, 무노조 경영을 견지한 자본가, 그리고 은둔의 황제. 이 같은 이름으로 수식돼 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위기의 순간마다 미래를 꿰뚫는 혁신의 리더십, 과감한 결단으로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키우며 우리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이끌었다. 아버지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에게서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은 그는 수많은 기로에서 발휘한 승부사적 결단, 품질에 대한 집념으로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TV 등에서 글로벌 1위를 거머쥐며 삼성을 ‘제2의 창업’ 수준으로 발전시켰다.외로운 유년기 바쁜 부모님·日유학으로 외로움에 익숙 자동차·레슬링 등 ‘마니아적 기질’ 키워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박두을씨 사이에서 3남 5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씨와 고인이 된 창희씨 등 두 명의 형이 있어 아들 중에서는 막내다. 여자 형제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씨 등 네 명의 누나가 있으며 여동생으로 신세계그룹 회장인 명희씨가 있다. 호암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 사업으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경남 의령의 할머니댁에서 세 살 때까지 자랐다. 국내에서 초등학교를 다섯 차례 옮겨 다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엄명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학교 때 귀국해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66년 동양방송에 이사로 입사해 법무·내무부 장관을 지낸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의 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결혼했다. 결혼 후 삼성 비서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삼성그룹의 큰 그림을 보게 된다.회장된 3남 두 형 제치고 46세에 삼성그룹 회장 취임 승부사적 결단·혁신으로 韓경제 신화 써 1966년. 이 회장의 둘째 형인 창희씨가 ‘한비 사건’(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구속되고, 맏형인 맹희씨도 밀수에 관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청와대 투서 사건 등 혼란이 이어진 가운데 호암은 1971년 막내아들 건희에게 삼성을 맡기기로 결단을 내린다. “장남 맹희는 경영에 뜻이 없고 차남 창희는 많은 기업을 하기 싫어한다. 3남 건희도 당초에는 사양했으나 마지막에는 역량은 부족하나 맡아 보겠다는 뜻을 가져다 주었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는 건희로 정한 만큼 건희를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 갈 것이다.” 호암이 유언장에 남긴 말이다. 1987년 11월 19일 호암이 노환과 폐암의 합병증으로 78세의 일기로 별세하자 삼성그룹 사장단은 이건희 당시 부회장을 제2대 삼성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의 나이 46세 때의 일이다.어린 시절 환경이 자주 바뀌며 홀로 보내는 시간에 익숙했던 고인은 마니아적 성격으로 집중력이 강했는데 이런 기질로 자라난 집념은 세계 1위 삼성의 원동력이 됐을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취미와 관심사는 다방면에 뻗쳐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 고인의 외로움을 달래 줬던 건 프로레슬링이었다. 와세다대 재학 시절 역도산을 직접 만날 만큼 레슬링에 몰두했던 그는 눈자위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그만둘 때까지 1년여 동안 레슬링을 하면서 치열한 목표 의식을 키웠다. 그의 레슬링 사랑은 1996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지내며 이어졌다. 일본 유학 3년간 1200편의 영화를 봤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각종 기계를 직접 분해, 조립하면서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것도 즐겼다. 이에 평생 즐겨 쓴 휘호가 ‘무한탐구’였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1년 반 동안 차를 죄다 뜯어 보며 차를 6대나 바꾸기도 했다. 1987년 취임과 함께 그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일성을 내놨고 그 약속을 지켰다. 흑백 TV가 삼성의 주력이던 1974년 호암이 반도체산업 진출을 선언하도록 설득하며 사업을 주도한 것도 그다. 당초 동물적인 사업감각의 소유자였던 호암도 아들이 반도체 얘기를 꺼내면 “이놈아, 그 돈이면 TV를 몇백만 대나 더 만들 수 있는데 그 쪼그만 것 만드는 데 쓰겠다는 거냐”며 답답해했다고 한다. 197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면서 첨단 하이테크 산업만이 살길이라고 믿은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호암의 지원을 이끌어 내 오늘날의 삼성을 만든 것이다.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이 된 뒤에도 ‘2등 구제불능론’(2등은 현상 유지밖에 못 한다. 조금이라도 지면 완전히 진 것이다) 등 늘 위기론을 부각시키며 ‘초격차’를 위한 고삐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3년 사상 최대 실적에도 이듬해인 2014년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바뀌어야 한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며 체질과 구조를 총체적으로 혁신하는 ‘마하경영’을 화두로 제시했다. 그의 마지막 신년사이기도 했다.어두운 유산 정관계 로비로 퇴진, 위기론 들고 복귀불법 승계 의혹, 삼성의 리스크로 남아 성공만큼 시련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검찰과 질긴 악연을 이어 가며 재임 기간 세 차례나 법정에 섰다. 1996년에는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재판을 받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공소시효 완료로 무혐의 결정이 났지만 2005년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 때도 검찰 수사를 받았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는 삼성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전직 법무팀장이던 김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 50여억원을 자신이 직접 관리해 왔다고 폭로했다.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방식과 정치인, 법조인에 대한 전방위적 로비 등이 공개되며 지탄을 받았다. 2008년 4월 22일 이 회장은 대표이사 회장과 등기이사직을 내놓으며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듬해 재판부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고인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했다. 이어 2010년 3월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며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정관계 불법 로비, 불투명한 지배구조, 노조 설립 불허 등 그의 체제에서 이뤄진 삼성의 각종 문제들은 지금도 삼성과 재벌에 대한 불신을 만든 ‘어두운 유산’으로 남았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건희 회장 “불량은 범죄”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 호통친 이유

    이건희 회장 “불량은 범죄”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 호통친 이유

    삼성전자를 글로벌 IT 기업 최강자로 키워낸 이건희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우리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할 정도로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았다. 과감한 돌파력과 끈질긴 인내, 사업에 대한 통찰력은 이런 다채로운 삶을 통해 차츰 완성되고 굳건해졌다.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호암이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청과·건어물 무역회사인 삼성상회를 경영하던 시절이다. 어린 건희는 경남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다. 1945년 해방되고 어머니와 형제를 만날 수 있었다. 형으로는 제일비료 회장을 지낸 맹희씨와 고인이 된 창희씨, 누나로는 인희(한솔그룹 고문), 숙희, 순희, 덕희씨가 있다. 신세계그룹 회장인 명희씨가 유일한 동생(여동생)이다. 그는 사업가인 호암을 따라다니며 유소년기를 보냈다. 유년기를 대구에서 보내다 사업확장에 나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1947년 상경했다. 혜화초등학교에 다녔다. ●무슨 물건이든 뜯어보고 해부해봐야 직성 풀려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이 회장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독 과학탐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슨 물건이든 손에 잡히면 뜯어보고 해부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 성격이 삼성그룹의 발자취에 큰 영향을 미쳤다.당시 첫째 형이 도쿄대학 농과대학에, 둘째 형이 와세다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며 어린 건희는 둘째 형과 같이 지냈다. 그러나 나이 차이가 아홉 살이나 났던 만큼 외로움을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외로움을 타다 보니 개를 길렀다. 개 기르기는 취미가 돼 1979년엔 일본 세계견종종합전시회에 순종 진돗개 한 쌍을 직접 출전시키기도 했다. 순종을 찾느라 150마리까지 키워보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에 심취해 일본 유학 3년간 1200편 이상을 본 걸로 알려져 있다. 일본 막부시대 사무라이 영화가 많았다. 3년간의 일본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사대부속중학교에 편입했고 서울사대부속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 레슬링부에 들어갔으며 2학년 때는 전국대회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 중엔 당시 전설로 불리던 한국계 프로레슬러 역도산을 만난 일화도 있다. 럭비에도 심취했다. 당시 스포츠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대한레슬링협회장을 지내는 등 아마스포츠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1996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되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경영 철학에 핵심이 된 ‘미꾸라지와 메기’ 이론 호암은 학창시절의 이건희 회장에게 ‘미꾸라지와 메기 이론’을 주입시켰다. 이것은 그의 경영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떤 농부가 한쪽 논에는 미꾸라지만 풀어놓고, 다른 쪽 논에는 미꾸라지와 메기를 같이 풀어놓았다. 천적인 메기와 뒤섞여 풀어놓은 미꾸라지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튼실했다. 살아남으려면 메기보다 빨라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사대부고를 나온 뒤에는 연세대학교에 합격했으나 호암의 권유로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로 진학했고, 와세다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부전공으로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다. 이 시절 이 회장은 자동차에 심취했다.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자동차 구조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이 됐다. 미국에서 어느 대사가 타던 차량을 4200달러에 사서 한참 타다가 600달러를 더 받고 판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를 만나 맞선을 봤다. 1967년 1월 약혼을 하고 홍 여사가 대학을 졸업한 후인 그해 4월 결혼에 골인한다. 결혼 후 삼성 비서실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삼성그룹의 큰 그림을 보게 된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첨단 하이테크 산업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던 때였다. 당시 ‘반도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조악한 집적회로로 전자시계를 만들던 한국 반도체가 파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삼성이 인수하자’고 건의했으나 호암은 고개를 저었다. 서른둘의 이건희는 순전히 자기 돈으로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다. 그리고는 실리콘밸리를 50여 차례 드나들며 반도체 기술이전을 받아오려 애썼다. 페어차일드사에는 지분 30%를 내놓는 대신 기술을 받아오기도 했다. 256메가 D램의 신화는 이때부터 싹을 틔웠다. ●호암의 반대에도…‘반도체 신화’의 시작 삼성그룹 후계자로서의 본격적인 경영수업은 1978년 8월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시작됐다. 이병철 창업주가 위암 판정을 받고 약 2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창업주는 1977년 니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건희가 후계자”라고 공식화했다.이어 이듬해에는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해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28층에서 일을 시작했다. 창업주의 집무실 바로 옆방이었다. 호암은 “건희는 취미와 의향에서 기업 경영에 열심히 참여해 공부하는 것이 보였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은 부회장이 되고도 9년이나 지난 뒤였다. 그가 삼성의 경영권을 승계하기까지는 엄청난 풍랑이 몰아쳤다. 입사 이후에도 20년 넘게 우여곡절을 겪었다. 애초 호암은 이 회장에게 중앙매스컴을 맡길 작정이었다. 와세다대학 재학 시절부터 이를 권했고 실제로 이 회장은 1966년 첫 직장으로 동양방송에 입사한다. 하지만 그해 불거진 이른바 ‘한비 사건(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이 삼성그룹의 후계구도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사카린 원료 밀수가 적발된 한비 사건은 호암의 장·차남인 맹희·창희 씨가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사건 직후에는 차남인 창희씨만 구속됐다. 이후 호암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제계에서 은퇴한다. 눈물을 머금고 한비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해야 했다. 서른여섯이던 맹희씨는 삼성의 총수 대행으로 10여개 부사장 타이틀을 달고 활동했다. 당시만 해도 장자상속이 대원칙이던 시절 삼성의 경영권이 장남인 맹희씨로 넘어갈 듯 보였다.호암은 사장단을 향해 “맹희 부사장이 거부하면 세 번 얘기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내게 가져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호암자전에선 “주위 권고와 본인 희망이 있어 맹희에게 그룹 일부의 경영을 맡겨봤는데 6개월도 채 못돼 맡긴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져 본인이 자청해 물러났다”고 썼다. 반면 맹희씨는 자신이 6개월이 아니라 7년간 삼성을 경영했다고 달리 기술했다. 이어진 그룹의 혼란과 청와대 투서 사건 등의 여파로 장남 맹희씨는 호암의 신임을 잃고 해외로 떠돌게 된다. 몇 차례 복귀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날아갔고 호암은 1971년 일찌감치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을 맡기기로 결단을 내린다. 이건희 부회장에게도 1982년 아찔한 순간이 닥친다. 그해 가을 어느 날 푸조를 몰고 양재대로를 달리던 그의 눈앞에 덤프트럭이 나타난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늦었다. 차 밖으로 튕겨 나간 이 회장은 외상이 심하지 않아 2주 만에 회복했지만 항간에는 교통사고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불호령 나온 이유 회장 취임 5년차인 1993년. 삼성 역사에 남을 중요한 해가 밝았다. 그해 2월. 삼성이 8㎜ VTR을 막 개발해 시장에 내놓던 시기다. 이 회장은 임원들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가전매장을 찾았다. GE, 필립스, 소니, 도시바 등 선진국 전자회사들의 휘황찬란한 제품 진열장 한 귀퉁이에 삼성 제품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LA 센추리프라자 호텔 회의장에서 이 회장은 78가지 전자제품을 갖다놓고 당장 분해하라고 했다. 삼성 제품은 싸구려로 취급당했기 때문이다. 회의장에는 내내 이 회장의 호통과 불호령이 이어졌다. 그리고 세탁기 사건이 터졌다. 삼성사내방송 SBC의 몰래카메라 영상물에는 세탁기 뚜껑 여닫이 부분 부품이 들어맞지 않자 직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칼로 2㎜를 깎아내고 조립하는 장면이 나왔다. 심지어 교대자를 바꿔가며 이런 식으로 제품을 대충 끼워 맞추는 장면이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잡혔다.이 회장은 득달같이 이학수 비서실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녹음하시오. 이게 그토록 강조했던 질 경영의 결과란 말이요. 당장 사장과 임원들 모두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키시오”라고 지시했다. 윤종용, 김순택, 현명관 등 삼성의 주요 CEO와 고위 임원들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캠핀스키 호텔에 모였다.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압축되는 신경영 선언을 했다.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조립하는 것을 보고 격노했던 그가 삼성의 제2 창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 회장은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에세이에 썼다. 이 회장은 “전자산업의 경우 불량률이 3%에 달하면 그 회사는 망한다. ‘불량은 암이다. 악의 근원이다’라고 되뇌면서 일하라고 했다”고 불호령을 내렸다. 그 때 ‘불량은 범죄’라는 신조가 만들어졌다. 이 회장은 1990년대 들어 그룹의 주요 사업체를 분리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그룹의 소유와 경영 체제를 명확히 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1991년 11월에는 신세계와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1993년 6월 제일제당(현 CJ)을 분리했고 1995년 7월에는 제일합섬을 떼냈다. ●“불량은 범죄” 부숴버린 15만점의 삼성제품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그룹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자 이 회장은 또 결단한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직원들이 모였다. 운동장 중앙엔 무선전화기 등 삼성 마크가 붙은 전자제품 15만점이 놓였다. 해머를 든 직원들이 제품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이윽고 무선전화기엔 불을 붙였다. 삼성전자 부회장을 한 이기태 당시 데이터사업본부 이사는 “내 혼이 들어간 제품이 불에 탔다. 그런데 그 불길은 과거와의 단절이었다”고 회고했다.1994년 국내 4위였던 삼성의 무선전화기 시장 점유율은 1년 뒤 시장 점유율 19%를 달성하며 1위에 올라섰다. 1990년대 중반에 일기 시작한 ‘애니콜 신화’는 국내 시장을 휩쓸고 세계로 뻗어나갔다. 당시 휴대전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던 모토로라가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고지를 점령하지 못했다. 애니콜의 인기는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 시리즈 등 모바일 기기의 혁신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반도체에 대한 이 회장의 남다른 집념도 결실을 봤다. 199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64메가 D램을 개발하면서 반도체 강자가 됐고 이후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 번도 글로벌 1위를 내주지 않고 질주했다. 이 같은 체질 개선과 미래 산업에 대한 집중투자는 삼성을 크게 변화시켰다. 이 회장 취임 당시 9조9천억원이었던 그룹의 매출은 2013년 390조원으로 25년 만에 40배나 성장했으며 수출 규모도 63억 달러에서 2012년 1567억 달러로 25배 커졌다. 시가 총액은 1987년 1조원에서 2012년 300조원을 넘어섰다. 총자산은 500조원을 돌파했다. 고용 인원(글로벌 기준)도 10만여명에서 42만 5000여명으로 늘었다. 계열사 수도 비상장사를 포함해 17개에서 83개로 증가했다. 이는 신세계, 한솔, 새한 등 계열 분리된 기업을 제외한 것이다. 브랜드 가치도 급신장했다. 브랜드 컨설팅 그룹인 인터브랜드는 삼성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 9위인 329억 달러로 추산했다. 삼성은 부품과 세트(완제품)에서 모두 글로벌 1위를 제패한 전무후무한 IT 전자 기업으로 우뚝 섰다. 1969년 흑백 TV를 생산한 이후 37년 만인 2006년 글로벌 TV 시장에서 소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2012년에는 갤럭시 시리즈로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 시장 세계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LSI 등 반도체 부문은 일찌감치 세계 1위 고지를 점령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삼성고졸신화 양향자 “소명의식 심어줬다” 이건희 회장 별세 추모

    삼성고졸신화 양향자 “소명의식 심어줬다” 이건희 회장 별세 추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한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애도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각자 정반대로 인연을 삼성과 인연을 맺은 양향자 최고위원과 박용진 의원이 이 회장의 별세에 입장을 밝혔다. 양 최고위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1987년 회장 취임 후, 자주 기흥 반도체 사업장에 오셔서 사원들을 격려해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반도체 사업은 양심산업‘이라며 ’국가의 명운이 여러분 손에 달렸다‘라고 사원들 한 명 한 명에게 소명의식을 심어주셨다”고 회상했다. 또 양 최고위원은 “과감한 7.4제 도입으로 일과 후 학업을 병행하고자 했던 사원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사내대학을 만들어 인재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며 “그 뜻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 최고위원은 “일본의 반도체 소재규제를 앞세운 경제 침략에서도, 미증유의 코로나 위기에서도, 한국판 뉴딜이라는 대한민국 과업 앞에서도, 반도체 패권이 대한민국을 세계에 우뚝 세울 것”이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반도체인의 신조로 위로의 마음을 대신한다”고 말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美서 쌍두사 잡혀…포식자 피하기 어려워 사육 예정

    美서 쌍두사 잡혀…포식자 피하기 어려워 사육 예정

    흔히 쌍두사로 불리는 머리가 두 개인 뱀은 신화 속에서 신으로 여겨질 때가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이 보기 드문 파충류가 신화 속 존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최근 미국 플로리아주(州) 파이넬러스카운티 팜하버에 있는 한 자택 앞에서는 쌍두사가 케이 로저스와 가족들에 의해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포획 전문가들이 나서 보호에 성공했다고 플로리다 어류·야생동물 보호위원회(FWC)가 21일(현지시간) 밝혔다.FWC에 따르면, 이번에 보호된 쌍두사는 ‘서던 블랙 레이서’(학명 Coluber constrictor priapus)라는 종으로, 의학적 용어로 ‘폴리세팔리’(polycephaly)라 불리는 쌍두증을 갖고 있다. 이 증상은 배아 발달 단계에서 쌍둥이가 서로 분리되지 못해 한 몸에 머리가 두 개인 채 태어나는 것이다. 이에 대해 FWC 관계자들은 “이 뱀은 포식자에게 먹히지 않거나 회피하는 능력을 제어하는 뇌가 2개라서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리므로, 앞으로 야생이 아닌 사육 상태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FWC는 이날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를 통해 머리가 두 개인 이 보기 드문 뱀의 사진들을 공유하기도 했다. 쌍두사의 각 머리에서 살짝 빠져 나와 있는 혀들이 잽싸게 움직이며 다른 사물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있지만, 두 혀가 항상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지는 않는다. 이는 이 쌍두사의 두 머리에 있는 각 뇌가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 뱀은 지금까지 야생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을 수 있지만, 앞으로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쌍두사는 FWC의 관리 아래 앞으로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직원들에 의해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갈 예정이다. 이 뱀처럼 일반적인 쌍두사는 두 머리 가운데 어느 한쪽이 좀더 지배력이 강하다. 하지만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발견된 쌍두사는 두 머리가 언제나 서로 협력하지 않아 제대로 이동조차 할 수 없어 운이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사진=FWC/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지금 팔리는 것들의 비밀(최명화·김보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소비 권력으로 떠오른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가치관과 습관, 감성, 취향, 코드를 분석해 이들을 공략할 마케팅 전략을 제시한다. 스타트업의 성공 동력부터 친숙한 브랜드의 변신까지 기업들이 MZ세대와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쏟은 노력들을 담았다. 244쪽. 1만 6000원.문 앞의 야만인들(브라이언 버로·존 헬리어 지음, 이경식 옮김, 부키 펴냄) 월스트리트저널의 두 기자가 기업 인수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1988년 말 RJR 나비스코의 차입매수(LBO) 전 과정을 탐사 보도했다. 당시 RJR 나비스코가 외부 차입금을 동원해 회사를 인수하고 쪼개 파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월스트리트의 문화와 생리, 기업 경영과 금융 산업의 변모 과정을 이야기한다. 1000쪽. 4만 4000원.숫자는 거짓말을 한다(알베르토 카이로 지음, 박슬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데이터, 차트 독해력 향상을 돕는 안내서. 비주얼 저널리즘의 권위자인 저자는 객관성과 신뢰도의 상징과 같은 차트가 어떻게 데이터를 왜곡해 우리를 오해와 착각의 늪으로 빠뜨리는지 밝힌다. 선거 판세, 경제 전망, 코로나19 현황처럼 우리의 삶과 밀접한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300쪽. 1만 7500원.추기경 마르크스의 자본론(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지음, 주원준 옮김, 눌민 펴냄) 독일의 추기경이자 철학자, 사상가인 라인하르트 마르크스(1953~)가 쓴 자본론. 독일에서 ‘예수의 마음을 지닌 마르크스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해소할 대안은 “가톨릭 사회교리에 부합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지구적 확산”이라고 역설한다. 416쪽. 2만 4000원.퍼스트 셀(아즈라 라자 지음, 진영인 옮김, 윌북 펴냄) 환자를 살리는 암 연구를 담은 세계적 종양 전문의의 저작. 저자는 악성 세포로 자라나기 전에 첫 번째 암세포(퍼스트 셀)를 찾아내 박멸하는 방식으로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을 주장한다. 암 연구의 현재와 함께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와 환자의 현실을 담았다. 432쪽. 1만 7800원.얼마나 닮았는가(김보영 지음, 아작 펴냄) 국내 SF 작품 중 처음으로 세계 최대 출판사인 미국 하퍼콜린스와 판권 계약을 한 김보영 작가의 소설집. ‘진화신화’ 이후 11년 만에 내놓는 소설집이다. 광활한 우주, 미래 세계, 초월적 시공 속 인간 존재의 의미 등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버무려 내는 김보영의 문학 세계가 잘 드러난다. 384쪽. 1만 4800원.
  • 美, 중 언론사 6곳 외국사절단 추가지정…中, 항미원조 70주년 기념 행사 참석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 조이기’의 강도를 갈수록 높여가는 가운데, 미 국무부가 중국 언론사 6곳을 추가로 ‘외국사절단’으로 지정했다. 이들 매체는 미국 내 인력과 자산을 미 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등 활동에 제약이 뒤따른다. 사실상 정식 언론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중국 역시 6·25 참전 7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르기로 했다. ‘세계 최강 미국을 막아낸 경험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1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중국에 본사를 둔 언론사 6곳을 외국사절단으로 지정했다”면서 “이는 중국 공산당의 선전에 맞서기 위한 조� 굡箚� 말했다. 이번에 외국사절단으로 지정된 곳은 이코노믹 데일리와 제팡 데일리, 이차이 글로벌, 신민 이브닝 뉴스, 차이나 프레스 사회과학, 베이징 리뷰 등이다. 이 가운데 제팡 데일리는 상하이 공산당 기관지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정된 언론은 모두 중국 공산당의 영향 아래에 놓여있다”면서 “우리는 이들 매체가 미국에서 출판할 수 있는 것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는다. 단지 미국인이 자유 언론이 쓴 뉴스와 중국 공산당이 배포하는 선전을 구분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국무부는 2월에 신화통신 등 5곳, 6월에 중국중앙(CC)TV 등 4곳을 각각 외국사절단으로 지정했다. 이번에 6곳이 추가돼 모두 15곳으로 늘었다. 이들 언론사는 국무부에 미국 내 인력 명단과 부동산 등 자산 보유 현황을 의무적으로 통지해야 한다. AP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11월 대선을 앞두고 반(反)중국 조치를 더 강화하려 하고 있다”면서 “이미 나빠질대로 나빠진 미중 관계 긴장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도 이에 맞서 ‘항미원조(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작전’ 70주년 기념식을 통해 중국군 참전의 당위성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22일 신화망 등에 따르면 23일 10시(현지시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항미원조 작전 70주년’ 기념 대회가 열린다. 이날 행사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요 연설을 한다. 시 주석은 지난 19일 인민혁명군사박물관에서 ‘항미원조 작전 70주년 전시’를 참관하며 “중국 인민지원군이 참전한 정의와 평화의 승리”라고 밝히며 한국전쟁 참전 당위성을 주장했다. 23일 시 주석의 기념식 연설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언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갈등 속에서 애국주의를 고취해 미국의 압박을 이겨내겠다는 취지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비비고 만두 ‘연간 매출 1조’ 신화 쓴다

    비비고 만두 ‘연간 매출 1조’ 신화 쓴다

    글로벌 판매 비중 작년 64%→올 67%↑25년간 미국시장 1위 日 만두 ‘링링’ 제쳐각국 입맛 맞는 차별화·현지화 전략 성공“2023년 매출 2.6조… 세계 점유율 30%로”국내 식품업계에서 처음으로 단일 제품으로 연간 매출 1조원을 달성하는 주인공이 탄생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가 올해 해외 매출 신장세에 힘입어 연간 매출 1조원 돌파가 확실시된다. 한국야쿠르트(1조 690억원), 남양유업(1조 180억원) 등 일반 식품 회사의 연간 매출을 단일 브랜드에서 올리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국민라면인 농심 신라면의 연간 매출은 7000억원대다. 비비고 만두는 해외에서 더 인기다. 글로벌 매출 비중은 지난해 63.5%에서 올해 67.4%(올 8월까지)로 점점 증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인들의 ‘K만두 사랑’은 매년 매출을 경신하는 실적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 비비고 만두는 미국에서 지난 2016년 연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서며 25년간 부동의 1위를 지켜오던 일본 아지노모토사의 만두 ‘링링’을 끌어내리고 왕좌를 차지했다. 현지화 전략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과거 한국 만두 시장과 마찬가지로 세계 만두 시장에서도 비슷한 내용물과 맛의 만두들이 계속 나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각 시장의 ‘타성에 젖은 만두’에 도전하는 차별화·현지화 전략이 통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만두피가 두꺼운 중국 만두와 달리 만두피가 얇고 채소 함량이 높아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닭고기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을 겨냥해 치킨만두를 내놨다. 중국에 출시하는 만두에는 중국인들이 즐기는 배추와 옥수수를 소로 넣고, 갈비소스 맛을 즐기는 유럽인들은 갈비만두로 공략하는 전략을 썼다.식품업계 관계자는 “출생률 감소로 지난 30년간 가공식품 소비층(10~30대)이 계속 줄어들면서 국내 식품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사라졌는데 비비고 만두가 글로벌 시장에 대한 공격적 투자로 단일 식품 브랜드 매출 1조 돌파 신화를 써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2023년까지 비비고 만두 매출을 2조 6000억원으로 키워 전 세계 만두 시장(7조원 규모)에서 점유율 30%를 차지한다는 목표다. 미국 이외 지역에서도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 5월 한국의 쿠팡 격인 징둥(京東)닷컴에서 만두식품 가운데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지난해부터 일본에서는 나베에 넣어 먹는 수교자로 일본 코스트코 만두 판매에서 1위로 올라섰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레바논 폭발 잔해로 만든 동상

    레바논 폭발 잔해로 만든 동상

    지난 8월 4일 대폭발이 일어났던 레바논 베이루트 항구 근처에 20일(현지시간) 여성 동상이 세워져 있다. 레바논 예술가들이 폭발 순간인 이날 오후 6시 8분쯤 멈춘 시계와 폭발 현장의 잔해로 동상을 만들었다. 베이루트 신화 연합뉴스
  • [포토] ‘거대한 핼러윈 호박 바위와 찰칵’

    [포토] ‘거대한 핼러윈 호박 바위와 찰칵’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카운티 노르코의 한 언덕 위에 자리한 호박 바위 앞에서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핼러윈이 다가오면서 대형 잭오랜턴(jack-o‘-lantern)처럼 그려진 거대한 호박 바위가 현지인과 방문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 NASA 에펠탑보다 조금 큰 소행성 ‘베누’에 공 들이는 이유

    NASA 에펠탑보다 조금 큰 소행성 ‘베누’에 공 들이는 이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소행성 탐사선 ‘오시리스-렉스(Osiris-Rex)’가 21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소행성 ‘베누(Bnnnu)’ 표면에서 ‘하이 파이브’ 작동을 시도한다. 자갈, 운 좋으면 먼지티끌을 모으게 된다. 샘플이 제대로 채취되면 미국이 50년 전 달에 착륙해 암석들을 가져온 뒤 실로 오랜만에 우주에서 뭔가를 가져오는 일이 된다. 베누는 직경 492m, 높이가 510m 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행성이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높이가 443m, 프랑스 파리 에펠탑이 324m이니 둘보다 조금 클 뿐이다. 탄소질 소행성으로 45억년 전 태양계가 형성된 뒤 1000만년이 안 돼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영하 200도의 우주공간에서 구성하고 있는 물질이 거의 변형되지 않은 채로 간직된 ‘타임캡슐’로 여겨진다. 따라서 태양계 형성과 생명의 기원에 관해 연구할 자료가 샘플에 간직돼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탐사선의 작명 과정도 흥미롭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땅의 신 ‘게브’는 하늘의 신 ‘누트’와 혼인해 다섯 남매를 뒀는데 첫째 아들이 오시리스였다. 인간에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 오시리스였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부활해 내세를 관장해 이집트인들에게 영생 불사, 이집트를 영원히 지켜주는 신이 됐다. 렉스는 라틴어로 ‘국왕’을 뜻한다.지구에서 3억 3230만㎞ 떨어진 곳에 있는 베누는 6년마다 지구 근처를 지나가는데, 2175년과 2195년에 지구와 충돌할 확률이 2700분의 1로 추정돼 잠재적으로 위험한 천체로 분류돼 있다. 밴 승합차 크기만한 오시리스-렉스는 베누 표면에 착륙하지 않고 3.4m 길이의 로봇팔을 뻗어 베누 표면에 10초 동안 닿은 상태로 샘플을 채취한 뒤 곧바로 고도를 높이게 된다. 공식적으로는 ‘접지이륙’(TAG·Touch and Go)이라고 한다. 적어도 60g 이상 샘플을 채취하는데 첫 시도에 만족할 만한 샘플을 채취하지 못하면 두 차례 더 시도하게 된다. 오시리스-렉스는 지난 2018년 12월 3일 베누 상공에 도착해 베누 궤도를 돌며 정밀 지도를 제작하고 착륙지를 선정하는 등 준비 작업을 해왔다. 당초 차량 100대를 세울 수 있는 공간에 접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근접 관찰해보니 표면이 푸석푸석해 차량 5대를 2열로 세울 수 있는 공간, 직경 8m의 테니스 코트만한 크기로 바뀌었다. 탐사선은 이날 오전 3시 직전 반동추진엔진을 가동해 베누 0.75㎞ 상공의 궤도를 떠나 샘플 채취 목표지로 선정된 ‘나이팅게일’을 향해 서서히 하강한다. 4시간여에 걸친 하강이 순조로우면 오전 7시 12분쯤 접지해 로봇팔 끝에 장착된 샘플 채취기(TAGSAM)를 가동하게 된다. 접지가 확인되자마자 3개의 질소가스탄 중 하나를 발사해 표면 물질을 날려 올리고 샘플 채취기가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 샘플 채취기는 약 2㎝ 크기 물질도 흡입할 수 있다.오시리스-렉스는 이 과정을 단 10초 만에 끝나고 곧바로 이륙한 뒤 샘플 채취 영상 분석과 샘플 채취기 무게 측정 등을 통해 충분한 양이 확보됐는지 분석하며, 샘플 최저 목표치인 60g을 확보하지 못하면 나머지 두 개의 질소가스탄을 활용해 샘플 확보에 다시 나선다. 샘플 채취기는 150g 이상의 샘플을 채취할 수 있게 만들어졌으며 최대 1.8㎏까지도 가능해 최저 목표치를 맞출 수 있는 가능성이 9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샘플이 충분히 확보된 것으로 판단되면 용기에 담아 밀봉하고, 오시리스-렉스호는 내년 초 지구로 귀환 비행을 시작해 2023년 9월 24일 유타주 사막에 샘플 용기를 떨어뜨리게 된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2’가 지난해 4월 지구에서 약 3억 4000만㎞ 떨어진 소행성 ‘류구’에서 금속탄환으로 인공 웅덩이를 만든 뒤 샘플을 채취해 귀환 중이다. 하야부사2는 오는 12월 6일 샘플이 담긴 용기를 호주 오지에 떨어뜨리고 그 뒤 새로운 소행성 ‘1998 KY26’ 탐사 임무에 나설 예정이다. NASA와 JAXA는 샘플 정보를 공유할 예정인데 영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 과학자들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지난 2003년 발사한 하야부사1도 소행성 이토카와에 착륙했다가 통신이 두절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으나 2010년 미립자 1500개가 담긴 샘플을 지구에 가져온 바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눈 한개·온몸 흰색인 ‘알비노 아기상어’ 인니 해상서 발견

    눈 한개·온몸 흰색인 ‘알비노 아기상어’ 인니 해상서 발견

    온몸이 우윳빛 흰색에 눈이 하나밖에 없는 돌연변이 아기상어가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되었다. 지난 18일 야후 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이 특이한 아기상어는 지난 10일 인도네시아 몰루카 제도 중 남부의 섬들로 이루어진 말루쿠 주에서 한 어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지역 어부인 앤디(29)는 말루쿠 주의 섬들을 항해하다가 바다에 드리어진 그물에 걸려 이미 죽어버린 상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상어를 걷어 올린 앤디는 상어의 내장을 들어내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미상어의 몸속에는 3마리의 아기상어가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는 온몸이 우윳빛을 하고 있고 이마에는 큼지막한 눈이 하나밖에 없었던 것. 이미 상어로의 몸이 형성되어 있었고, 지느러미도 완전한 형태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온몸이 흰색이었고, 눈은 하나에 입은 도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기상어는 이미 어미의 몸속에서 죽은 상태였다. 어부 앤디는 “안타깝게도 어미 상어가 임신한 상태에서 그만 그물에 걸려 죽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특이하게 생긴 아기상어를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앤디는 이 아기상어를 지역 해양수산부에 전달했다. 이번 아기상어처럼 얼굴 중앙에 눈이 하나밖에 없는 선천성 기형을 단안증(Cyclopia)이라고 한다. ‘Cyclopia’라는 이름은 그리스 신화의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Cyclops)에서 비롯된 것이다. 단안증은 드문 형태의 전전뇌증(Holoprosencephaly)으로 안와가 두 개로 적절하게 분리되지 못한 배아 발생장애이다. 아기상어의 흰 몸 색깔은 백색증(알비노)이라는 현상이다. 이는 멜라닌 합성의 결핍으로 인해 눈, 피부, 털 등에 색소 감소를 나타내는 선천성 유전질환이다. 한편 지난 17일에는 인도 중서부 마하라슈트라주 바다에서 머리가 두 개로 각 머리에 두눈과 입하나씩 달린 돌연변이 아기상어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경태 해외통신원 tvbodaga@gmail.com
  • 중국 ‘경제 성장 엔진’ 선전 찾아간 시진핑… “더 개혁·개방하자” 美 맞서 자력갱생 강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광둥성 선전에서 열린 ‘선전 경제특구 40주년 기념식’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개혁·개방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미국에 맞서 자력갱생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코로나19 대유행과 경제 세계화 역행, 보호주의와 일방주의의 부상 등으로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다”며 “개혁·개방과 협력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새로운 정세에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며 “개혁과 개방을 멈추지 말고 더 높은 수준의 개혁·개방을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 주석은 “경제특구 40년 개혁·개방의 경험은 귀중한 것”이라며 선전 특구가 중국에 10가지 귀중한 경험을 줬다고 자평했다. 그는 “선전은 경제특구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며 “전방위 대외 개방과 혁신, 공정한 사법, 경제 개발과 환경의 전면적 조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등도 선전 특구를 통해 얻은 귀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이 선전을 찾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12년 당총서기로 선출된 직후 첫 시찰지로 선전을 방문해 개혁·개방을 끝까지 실현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한 지 40년을 맞은 2018년에도 이곳을 시찰했다. 이번 행사는 14차 5개년(2021∼2025년) 계획 제정 방안과 내년도 경제정책 기조를 결정할 19기 5중전회를 앞두고 열렸다. 그가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코로나19가 진정되면서 경제 정상화에 탄력을 붙이는 중국을 대외에 홍보하고, 보호주의 정책을 펴는 미국을 겨냥해 대외 개방 의지를 과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지난 12일부터 광둥성을 시찰한 시 주석은 기업과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염두에 둔 듯 자주 혁신과 자력갱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13일 차오저우 인근 해병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선 “전쟁을 준비하고 고도의 경계를 유지하는 데 모든 정신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며 대만을 정조준한 전쟁준비 태세를 당부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또 이날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인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했다. 덩샤오핑 동상은 선전 롄화산 공원에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한국, 주변국과 협업으로 선도… 이제 뉴노멀 제시할 때

    한국, 주변국과 협업으로 선도… 이제 뉴노멀 제시할 때

    한국, 세계 각국서 비전 찾는 롤모델 부상단순 추격자 안 돼… 창조 국가로 거듭나야반도체·조선 등 산업 리더십, 선진국 이끌어‘BTS’ 신개념 성공… 정부, 기업 혁신 도와야 “한국은 크기가 작지만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한국처럼 투명한 정부와 근면한 국민성을 갖춘 국가를 찾아 체계적인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십시오.”(짐 데이토 하와이대 교수)“지금까지 한국의 산업은 앞선 국가들의 기술을 가져와 그것을 끊임없이 따라가는 방식으로 발전했습니다. 일부 분야에선 원조를 뛰어넘기도 했죠. 이제는 참조할 국가가 없습니다. 낮은 등산길을 가다가 갑자기 높은 절벽을 만난 셈이죠. 기존 선진국도, 우리도 이제는 ‘알 수 없는’ 곳으로 함께 나가야 하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이정동 서울대 교수) 올해 한국은 세계에서 유독 관심을 많이 받은 국가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수준 높은 의료기술과 촘촘한 방역체계를 바탕으로 “코로나19 대응의 암호를 풀었다”(월스트리트저널)는 평가를 받았다. 뿐만 아니다.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 ‘빌보드 신화’를 쓴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성공은 한국이 문화적 영향력을 뜻하는 ‘소프트 파워’도 갖췄음을 입증했다.코로나 이후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불확실한 시대에 가장 큰 기회를 잡은 한국의 미래를 두고 두 석학이 머리를 맞댔다. 14일 열린 ‘2020 서울미래컨퍼런스’ 두 번째 프로그램인 ‘에스에프시 토크’(SFC Talk)는 세계미래학회 회장이자 하와이대 미래전략센터 소장인 짐 데이토 하와이대 명예교수와 ‘축적의 시간’의 저자이자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을 맡고 있는 이정동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의 대담으로 진행됐다. 데이토 교수는 지금껏 한국이 빠르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망이 마냥 밝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과거 한국은 앞선 국가들의 모델을 본받아 성장했고 이제는 그 국가들을 능가했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한국이 따라갈 모델이 없다. 만약 지금 다른 나라들을 따라가려고 한다면 대단한 실수”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 각국에서 한국을 보면서 많은 비전을 찾고 있다”면서 “단순한 추격자로 남아서는 안 된다. 창조적이고 포용적인 리더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이 교수는 “한국 산업의 발전을 보면 70년 전에는 아예 황무지였다. 당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22%에 불과했다는 통계도 있다”면서 “그러나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등 산업 리더십이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 점점 한국으로 넘어오는 경향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제는 벤치마킹할 것이 없다. 이젠 우리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숱한 시행착오 경험이 쌓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이 제시한 새로운 개념 중 하나가 바로 BTS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아이돌그룹이 중국, 일본, 미국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다 결국 20여년 만에 성공하면서 케이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설계하기에 이르렀다”면서 “앞으로도 기업들이 기꺼이 도전할 수 있도록 혁신 기업들을 정부가 지원하고 규제 체제를 바로잡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한 권의 자서전이 준 감동과 여운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한 권의 자서전이 준 감동과 여운

    최근에 간행된 ‘이정식 자서전; 만주 벌판의 소년 가장, 아이비리그 교수 되다’를 탐독했다. 그 독서의 먹먹한 여운과 잔상이 계속 마음에 남아 메아리치며 이 글을 쓰게 만든다.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와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를 함께 저술한 현대사 연구가인 펜실베이니아대 이정식 명예교수의 자서전인 이 책은 근래에 접했던 가장 인상적인 기록이자 감동적인 인생 회상기였다. 1973년에 영어로 처음 간행돼 1986년 한국어로 번역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현재까지도 이 분야에서 널리 인용되며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는 노작(勞作)이다. 이 책에 의해, ‘가짜 김일성론’이나 ‘6·25 북침설’ 등이 극복되며 현대사 연구가 한층 진일보했다. 철저하게 자료와 균형 감각에 입각한 이정식 교수의 현대사 연구는 1970년대 초반이라는 엄혹한 역사적 상황에서 민감한 현대사 분야의 객관성 확보, 오도된 신화 걷어내기에 결정적으로 보탬이 된 선구적 성과이다. ‘이정식 자서전’을 읽으며, 뛰어난 자서전이 동시에 탁월한 문학작품이자 생생한 역사적 기록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실제로 이 책 곳곳의 서술은 어떤 기록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뜻깊은 역사적 증언이지 싶다. 1948년 봄부터 1950년 12월 사이에 평양에서 거주하며 쌀장사를 하던 체험, 랴오양(遼陽)의 집 바로 앞에서 목격했던 팔로군과 국민당군의 치열한 전투, 중국어로 중공군 포로통역을 수행했던 체험 등은 그 자체가 그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역사적 순간이다. 또한 한국전쟁 때 미군 비행기에서 투하된 폭탄이 집 인근에 떨어져 방과 벽이 모두 무너지기 직전 마루 밑에 피신한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 장면은 운명이라는 말밖에는 설명하기 힘들다. “평양에서 살 때 인민군에 차출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숨어 있었”던 그가 UCLA석사 직후에 할리우드 아르바이트로 영화에 출연해 인민군 병사 역할을 맡게 되는 대목은 인생의 통렬한 아이러니라 하겠다. 1931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그는 만주의 톄링~한커우~평양~랴오양을 오가는 유소년 시절을 보낸다. 해방 이후 일가족이 귀국길에 나서지만, 1946년 3월 아버지가 실종되면서 만 열다섯도 안 된 나이에 실질적인 가장이 돼 랴오양에 남게 된다. 이후 펼쳐진 이정식의 앞날은 ‘파란만장’이라는 상투적인 용어로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기구하기 그지없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랴오양 면화공장에서의 직공 생활, 단둥에서 배로 신의주에 이르는 목숨을 건 조국행, 평양에서 맞이한 북한 사회와 전쟁 체험, 한국전쟁 와중의 월남, 부산에서의 통역병 생활과 전시대학 청강 등을 거쳐 결국 그는 미국 유학을 떠난다. 한국전쟁 70주년인 올해는 미국 대선이 있는 해이기도 하다. 그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정세도 크게 요동칠 것이 예견되며 ‘종전선언’의 가능성이 타진되기도 한다. 이런 변화가 우리 사회에 실질적으로 스며들기 위해서는, 단지 정치적 선언에서 더 나아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를 위한 열망이 새겨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시기일수록 한국전쟁 시기에 남과 북의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했으며, 누구보다도 한반도 현대사에 대한 깊은 학문적 탐구를 수행한 이정식 교수의 자서전 내용을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정식 자서전은 저자가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로 1974년 미국정치학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우드로 윌슨 파운데이션 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으로 끝난다. 이후에 전개된 그의 인생 행보를 엿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이가 나만은 아니리라. 과연 그의 자서전 후속편은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가? 한 인터뷰는 이제 아흔에 이른 그가 ‘노인 홈’ 생활을 준비한다고 전한다. 그곳에서라도 자서전 후속편이 집필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고대해 본다.
  • 시진핑 2년 만에 ‘中 실리콘밸리’ 선전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르면 13일 중국의 ‘개혁·개방 1번지’인 광둥성 선전시 경제특구를 방문한다. 12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14일 오전 선전시 경제특구 지정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중요 연설을 할 예정이다. 시 주석이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시를 찾는 것은 2018년 10월 이후 2년 만으로, 자신의 개혁·개방 정책의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1980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된 선전은 미중 무역전쟁의 한가운데 선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등의 본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일정은 시 주석이 장기 집권을 위한 포석을 놓을 것으로 보이는 중국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9기 5중전회)를 2주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선전시의 개혁·개방 성과를 내세우면서 자연스럽게 향후 장기 경제 목표와 장기 집권 구상을 연계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번 기념식에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호얏셍 마카오 행정장관도 참석할 예정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당초 14일로 예정됐던 람 장관의 연례 정책 연설이 이번 중국 방문 이후로 연기됐다고 이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람 장관이 기념식에서 베이징으로부터 홍콩 통치에 대한 모종의 메시지를 받기 위해 일정을 미룬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한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단독] “대기업 갑질과 싸운 5년… 남은 건 파산 위기 상처뿐”

    [단독] “대기업 갑질과 싸운 5년… 남은 건 파산 위기 상처뿐”

    “5년 동안 대기업인 롯데쇼핑의 ‘갑질’에 맞서 싸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돌아온 것은 피해보상은커녕 ‘법정관리’라는 상처뿐입니다. 경제 정의와 공정 사회를 실현하려면 ‘갑질’한 대기업은 큰 벌을, 약자인 ‘을’은 실질적 피해 보상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절실합니다.” 유통업계 공룡인 롯데쇼핑의 갑질 횡포(불공정 행위)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해 408억 23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이끌어 낸 전북 완주군의 육가공업체 ‘신화’ 윤형철(46) 대표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윤 대표는 2002년 시작한 동네 정육점을 10년 만에 연매출 680억원, 종업원 146명의 중소기업 대표로 키워 낸 ‘육가공업계의 신화적 존재’였다. 롯데쇼핑은 2012년 구제역이 발생하자 청정 지역 육가공업체인 신화에 거래를 제안했다. 윤 대표도 대형마트에 납품할 경우 안정적 구매처 확보와 사업 확장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같은 해 7월부터 롯데쇼핑과 거래를 시작했다.대기업을 믿은 윤씨의 기대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매출은 늘었지만, 사사건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갑질이 이어지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롯데의 ▲단가 후려치기 ▲물류비 전가 ▲서면 약정 없는 판촉비용 전가 ▲납품업체 종업원 부당 사용 등 각종 갑질이 이어졌다. 롯데는 2014년 삼겹살데이 때 ㎏당 1만 5000원 하던 삼겹살을 9100원에 납품받는 것도 모자라 물류비용에 종업원 파견 인건비까지 모두 하청업체인 ‘신화’에 떠넘겼다. 비용 증가에 따른 경영 압박에 시달리던 윤 대표는 2015년 8월 공정거래조정원에 억울함을 호소했고, 11월 공정거래조정원은 롯데쇼핑에 ‘불공정 행위에 따른 보상으로 신화에 48억 1700만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롯데는 공정거래조정원의 결정을 거부, 2015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자동 제소됐다. 결국 공정위가 2019년 11월 20일 롯데쇼핑에 408억 2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신화의 손을 들어 줬다. 롯데와 거래를 시작한 지 7년, 공정위에 제소된 지 4년 만이었다. 그러나 윤 대표와 롯데 간 악연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롯데가 낸 과징금은 모두 국고에 귀속되고 윤씨에게 돌아온 것은 공익제보자에게 주어지는 포상금 1억원이 전부였다. 윤 대표는 “롯데와 싸우는 동안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할 만큼 터무니없는 흑색선전과 회유, 압박에 시달렸지만, 회사 정상화를 위한 구제금융도 한 푼 받지 못한 채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공정위가 롯데 측에 갑질 횡포를 바로잡도록 명령했음에도 윤 대표가 그동안의 각종 피해를 보상받는 길은 ‘민사소송’밖에 없다. 윤씨는 “민사소송은 짧아야 4~5년, 길면 8~9년까지 끌 수 있는데 이는 재정이 취약한 중소기업은 소송을 포기하고 문을 닫으라는 것”이라면서 “갑질 기업이 피해자에게 손실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거나 국가가 받은 과징금으로 손실 기업을 지원하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난 2일 억울한 사연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려 현재 청원이 진행 중이다. 11일 오전 현재 4174명이 동의했다. 윤 대표는 “상대가 아무리 자금력이 빵빵한 거대 기업 롯데라 할지라도 ‘정의는 이긴다’는 신념으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해 왔다”면서 “민사소송에서 이길 때까지 절대 쓰러지지 않는 민초의 힘을 보여 주겠다”고 강인한 의지를 드러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시적 뼈대가 자라고 삶이 갈무리된 곳… 기형도에 위로받다

    시적 뼈대가 자라고 삶이 갈무리된 곳… 기형도에 위로받다

    지금쯤 같은 땅과 하늘 아래서 살고 있었다면 이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게 되는 두 사람이 있다. 가수 김광석과 시인 기형도다. 생몰 연대가 비슷하고 활동 시기가 살짝 겹치는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쩌면 서로의 존재를 알고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노래로 타인의 마음을 울렸던 이와 단 한 권의 유고 시집으로 신화가 된 사람이 저 하늘에, 달나라 어디쯤에 살고 있다. 각자의 노래와 시로. 달에서 시를 쓰기 위해 지상엔 단 한 권의 시집만 남기고 간 사람, ‘입 속의 검은 잎’으로 신화가 된 주인공. 시인 기형도는 너무 일찍 이생의 삶을 접어 버린 사람이지만 그의 시는 지금까지도 계절과 기후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위로하며, 때로는 울리고 있다. 그의 시와 김광석의 노래들이 그 어느 때보다 어울리는 가을이 왔다. 계절이 부르는 낙엽의 신호를 따라 경기 광명시 기형도문학관을 찾았다.기형도문학관은 광명시와 광명문화재단 그리고 기형도 시인의 문우들과 유족들이 뜻을 모아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다 간 장소이자 시의 배경이 되는 의미 있는 공간에 마련했다. 오롯이 그의 독자들과 문우들이 시와 시인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장소인 까닭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곳이다. 기형도는 1960년 3월 13일 경기 옹진군에서 태어나 1964년 시흥(현 광명시)으로 이사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중앙일보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하던 중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가 당선돼 등단했다. 4년 후인 1989년 3월 7일 종로의 심야극장에서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너무 이른 죽음 앞에서 모두가 황망해하는 사이에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출간됐고, 이 시집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시인과 시집 그리고 문학관에 대해 기형도문학관의 명예관장이자 시인의 누나인 기향도 관장과 대화를 나눴다. 현재 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지내고 있다는 근황을 전해 온 기 관장은 동생이자 시인인 기형도에 대한 질문을 꺼내자 표제작 이야기부터 들려줬다. 누나에게 보낸 안부 편지 말미에 표제작 이야기를 써 뒀다고 했다.●“시인으로서 동생으로서 좋은 사람이었다” ‘누나, 첫 시집을 내려고 하는데 제목을 ‘정거장에서의 충고’와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중에서 택하려 하고 있어. 나는 ‘정거장에서의 충고’로 하고 싶은데 누나 생각은 어때?’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며 그때를 회상하는 기 관장의 목소리가 한결 애틋해졌다.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동생의 시가 ‘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덧붙였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고 읊조리듯이 시작하는 그 시의 첫 구절이 입가에 맴돌기 시작했다. 시인으로서 그리고 동생으로서의 기형도에 대해 묻자 “좋은 사람이었다”는 첫 마디가 돌아왔다. “조용하고 겸손했던 사람,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한없이 겸손했고 남들에게 자상한 사람이었다”며 “내 동생을 떠나 인간적으로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 또 그는 젊은 청년의 혈기를 뛰어넘어 인간의 근본적인 어떤 것을 꿰뚫고 있던, 기본적으로 삶에 대해 애착이 컸던 사람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기형도에게 광명은 ‘그의 마지막이 갈무리된 곳이자 그의 시적인 뼈대가 자란 곳’이라고 했다. “안개가 유독 많이 끼는 안양천 주변에서의 삶이 그를 키운 셈이에요. 이곳 소하리 뚝방에는 수재민과 이재민들이 살았어요. 공단과 폐수를 가두던 안개들을 보고 자란 기형도가 서울과 안양, 시흥을 오가며 사회 격변기를 거쳤던 거죠.” 폐수가 안개에 휩싸여 사람을 지우는 거리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바로 시를 쓰는 일이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성실하게 기록했다. 그리하여 그의 시 ‘안개’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데, ‘안개’라는 단어를 기형도 시인이 가장 크게 점유했다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안개 속에서 자라 안개의 시인이 된 사람의 눈에는 모든 세상사가 안개 속에서 일어난 일이 돼 버렸던 것일까. 그리하여 그도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야 만 것일까. “기형도 시인이 살던 집 자리 앞에 광명메모리얼파크가 놓였고, 우리의 모든 것이 변했지만 그의 시만큼은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 관장의 말이 유독 반가웠던 것은 그것이야말로 시의 본질이자 시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는 “문학관은 어떤 면에서 인위적인 것이지만 그 속에서 진정으로 시로써 사람들을 사랑하고 위로하는 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덧붙였다.●“모든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시 자체” “문학관을 방문하는 분들 가운데 ‘암울한 시절에 이 시집 하나 가지고 견뎠다’고 말하는 사람이 참 많아요. 기형도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해 깊게 사유했던 사람이었어요. 그의 시뿐만 아니라 그를 사랑해 주는 독자들이 없었더라면 이 장소는 없었을 겁니다.” 문학이라는 의미가 얼마나 사람들을 위로하는가, 한 사람의 삶이 이토록 귀중하다는 것을 이렇게 드러내는 듯하다. 기 관장은 요즘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을 잊어버리는 세상이 된 것 같다며 크게 안타까워했다. 기형도의 시 ‘빈집’, ‘엄마 걱정’, ‘정거장에서의 충고’ 같은 것들이 ‘사람됨’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피력했다. “시인 기형도가 바라봤던 인간상이 투영된 이 시편들이 독자들에게도 통한 것이 아닐까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 외에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어떤 것의 으뜸은 단연 시가 아닐까 합니다.”그는 마지막으로 문학관을 찾는 기형도 시인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고 하자 “동생은 동생만의 이야기를 하고 갔지만 이곳에 온 독자들은 자기 삶을 가지고 와서 동생의 시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간다. 그 시간을 통해 위로를 주고받았으면 한다”는 따뜻한 말을 건넸다. “모든 사람의 삶의 이야기가 시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시를 자기가 표현하면서 사는 거죠. 그것과 교감하고, 함께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나누는 일이 이곳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해요. 기형도가 시에서 그토록 중요하게 써 놓았던 ‘삶’이고, 또 삶과 죽음이 각각의 의미가 있고 서로 나눔으로써 위로가 되고 격려할 수 있다는 것이죠.” 달나라에 있는 시인이 이 얘기를 들으면 아마도 ‘누나 말이 맞다’고 맞장구치지 않을까. 기형도문학관은 시집에 나온 시의 제목들로 구역을 나누고 테마를 정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1층 전시실에서는 시인 기형도, 유년의 윗목, 안개의 강, 은백양의 숲, 저녁 정거장, 빈집, 더 넓게 더 멀리, 사진으로 보는 기형도, 기형도 소리에 담다 같은 소제목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어느새 시집을 읽는 독자에서 시집 안으로 훌쩍 들어온 ‘사람’이 돼 버리는 마법을 체험할 수 있다. 2층은 북카페, 도서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3층에는 강당과 창작체험실이 마련돼 있다. 문학관 건물 뒤편으로는 ‘기형도 시길’이 나 있는데, 이 역시도 시의 제목을 따라 여러 테마를 체험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이다.문학관은 지금 특별 전시 중에 있다. 기형도문학관 기증자료전인 ‘도로시를 위하여’가 그것이다. 기형도의 문우였던 이성겸, 장사국, 홍순창 등이 그의 생전 사진들을 기증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기형도의 학창 시절과 문우들과의 사진, 손글씨와 편지들 그리고 그가 직접 그렸던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다. 시와 시인에 대해 이미 알려진 것이 아닌 새로운 사진들이 그곳을 찾는 독자들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기형도 시집을 읽지 않고 문청 시절을 통과한 이들이 있을까. 필자 역시 기형도의 시집을 읽고 필사하고 또 읽던 때가 있었다. 그의 시에 대해 후배 시인들은 어떤 마음일까 궁금해 최근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창작동인 ‘켬’의 이소연 시인과 주민현 시인에게 ‘기형도의 시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소연 시인은 “기형도는 제게 질투하는 마음을 선물해 준 사람”이라며 “기형도의 시를 읽으면 시가 쓰고 싶어지고, ‘나도 좋은 시를 쓸 거야’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고 말했다. 주민현 시인은 “우울하고 안개 낀 그러나 푸른 희망이 뒤섞인 포도밭을 천천히 통과할 수 있어 좋았다”는 말을 전해 왔다.한 권의 시집과 한 사람의 시인을 기리는 터전을 마련한 공간에서 독자들은 마음을 누이고 위로를 받고, 후배 시인들은 그의 시를 질투하고 또 경외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인의 물리적인 생은 끝났을지라도 시 속에서 그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늘 확인하며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 기형도문학관이다. 소설가 이은선
  • “문 대통령 저격했다”…기안84 웹툰, 쏟아지는 해석들

    “문 대통령 저격했다”…기안84 웹툰, 쏟아지는 해석들

    “가끔은 기가 막힌다.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집 살길은 보이지가 않는 게… 닿을 수도 없는 이야기 같은!!!” “가진 놈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되는데 나나 우기명은….” 지난 6일 공개된 ‘복학왕’ 312화 두더지 2편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초등학교 기간제 체육교사인 등장인물은 집 없는 가난한 학생이 따돌림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자신의 처지도 다를 바 없다는 사실에 고뇌를 시작한다. 9일 웹툰 작가 기안84(본명 김희민)가 연재 중인 만화 ‘복학왕’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논쟁 대상이 됐다. 등장인물이 집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장면에서 어두운 배경에 보름달이 떠오르는 모습으로 전환된다. 등장인물은 달을 향해 손을 뻗으며 “닿을 수도 없는 이야기 같은!”이라고 한탄한다. 또 “한강이 보이는 마당 있는 주택은 몇 년 만에 몇십억이 올랐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노동 의욕이 사라진다. 이건 진짜 뭔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배경 속 보름달에 ‘문재인 대통령 저격’ 해석 일부 독자들은 웹툰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독자들은 ‘닿을 수 없다’며 ‘달’을 가리킨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애칭인 ‘달님’을 뜻한다는 추측도 했다. 반면 “기안84 본인도 억대 연봉을 받으며 이번에 건물까지 매매했는데 이런 비판을 할 자격이 있나?”, “웹툰은 그냥 웹툰으로 보자”는 반박의견도 나왔다.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꾸밈없는 시적 목소리…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승화”

    “꾸밈없는 시적 목소리…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승화”

    헝가리계 유대인… 예일대 영문학 교수1993년 작품 ‘야생 붓꽃’ 퓰리처상 수상美 현대문학서 가장 뛰어난 시인 중 한 명역대 16번째 여성·美작가로 10번째 영예“질병·이별 등 상실 뒤 치유 논하는 시 써코로나 시대 문학의 원초적 복원력 기대”2020년 노벨문학상은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77)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8일 “글릭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표현으로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나타냈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한림원은 이어 “그의 시는 명징함으로 특징을 지을 수 있다”며 “어린 시절과 가족의 삶, 부모와 형제, 자매와의 밀접한 관계에 시의 초점을 맞추곤 했다”고 평가했다.글릭은 1901년 이후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17명 중 16번째 여성이며, 10번째 미국 출신 작가다. 미국에서는 2016년 밥 딜런 이후 4년 만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는 올해 노벨문학상이 비유럽권, 여성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들어맞은 결과다. 외신들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유럽 작가가 수상한 데다 역대 수상자들 중에 여성 작가들이 절대적으로 적다는 비판에 직면한 한림원이 이를 피해 갈 수 있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글릭은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후보군은 아니었다. 나이서오즈 등 온라인 베팅 사이트에서 글릭의 순위는 19위를 기록했다.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인 글릭은 1943년 뉴욕의 헝가리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거식증을 앓기 시작했으며 세라 로런스 칼리지와 컬럼비아대에서 수학했지만 학위는 받지 못했다. 1968년 ‘퍼스트본’(Firstborn)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글릭은 1993년 시집 ‘야생 붓꽃’(The Wild Iris)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후 2001년 볼링겐상, 2001년 미국 계관시인으로 선정됐다. 이후 2003~2004년 전미도서상, 2016년 미국 인문 훈장인 내셔널 휴머니티스 메달을 받았다. 글릭의 수상을 두고 학계에서는 한림원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시가 주는 치유의 힘을 높게 봤다고 평가한다. 글릭은 거식증 병력으로 고등학교 중퇴 이후부터 7년여에 걸친 상담 치료를 받으며 트라우마와 고통 등에 골몰했다.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그는 질병과 상실, 이별 등 인간 삶의 보편적 문제들을 자연물과 결부시켜 상실 뒤의 치유와 재생을 논하는 시들을 많이 써 왔다”며 “(한림원이) 코로나 시대에 문학이 줄 수 있는 인간성에 대한 원초적인 복원력을 기대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글릭이 2004년에 출간한 책 ‘10월’(October)은 9·11 테러로 미국인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고통, 치유의 문제를 그리스 신화에 빗댄 시집이다. 또한 글릭은 언어의 한계에 대한 지적 탐구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시를 쓸 때 정신분석을 차용, 이미지들에 자아를 투사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양균원 대진대 영문과 교수는 “글릭이 쓴 ‘야생 붓꽃’ 등은 짧고 쉬운 단어로 쓴 서정시이지만 치고 들어오는 힘이 있는 시”라며 “주체가 목소리를 내는 방법,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의 어려움을 탐구하며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공적이고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담았다”고 평했다. 현재 글릭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거주 중이며, 예일대 영문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는 총상금 10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2억 9910만원)와 함께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코로나 시대 위로하는 詩의 힘… 노벨문학상에 루이즈 글릭

    코로나 시대 위로하는 詩의 힘… 노벨문학상에 루이즈 글릭

    2020년 노벨문학상은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77)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8일(현지시간) “글릭은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확고한 시적 표현으로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나타냈다”며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한림원은 이어 “그의 시는 명징함으로 특징을 지을 수 있다”며 “어린 시절과 가족의 삶, 부모와 형제, 자매와의 밀접한 관계에 시의 초점을 맞추곤 했다”고 평가했다. 글릭은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117명 중 16번째 여성이며, 10번째 미국 출신 작가다. 미국에서는 2016년 밥 딜런 이후 4년 만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는 올해 노벨문학상이 비유럽권, 여성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들어맞은 결과다. 외신들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유럽 작가가 수상한 데다 역대 수상자들 중에 여성 작가들이 절대적으로 적다는 비판에 직면한 한림원이 이를 피해 갈 수 있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글릭은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후보군은 아니었다. 나이서오즈 등 온라인 베팅 사이트에서 글릭의 순위는 19위를 기록했다.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인 글릭은 1943년 뉴욕의 헝가리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거식증을 앓기 시작했으며 세라 로런스 칼리지와 컬럼비아대에서 수학했지만 학위는 받지 못했다. 1968년 ‘퍼스트 본’(Firstborn)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글릭은 1993년 시집 ‘야생 붓꽃’(The Wild Iris)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후 2001년 볼링겐상, 2001년 미국 계관시인으로 선정됐다. 이후 2003~2004년 전미도서상, 2016년 미국 인문 훈장인 내셔널 휴머니티스 메달을 받았다. 글릭의 수상을 두고 학계에서는 한림원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시가 주는 치유의 힘을 높게 봤다고 평가한다. 글릭은 거식증 병력으로 고등학교 중퇴 이후부터 7년여에 걸친 상담 치료를 받으며 트라우마와 고통 등에 골몰했다.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그는 질병과 상실, 이별 등 인간 삶의 보편적 문제들을 자연물과 결부시켜 상실 뒤의 치유와 재생을 논하는 시들을 많이 써 왔다”며 “(한림원이) 코로나 시대에 문학이 줄 수 있는 인간성에 대한 원초적인 복원력을 기대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글릭이 2004년에 출간한 책 ‘10월’(October)은 9·11 테러로 미국인들이 겪은 트라우마와 고통, 치유의 문제를 그리스 신화에 빗댄 시집이다. 또한 글릭은 언어의 한계에 대한 지적 탐구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시를 쓸 때 정신분석을 차용, 이미지들에 자아를 투사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양균원 대진대 영문과 교수는 “글릭이 쓴 ‘야생 붓꽃’ 등은 짧고 쉬운 단어로 쓴 서정시이지만 치고 들어오는 힘이 있는 시”라며 “주체가 목소리를 내는 방법,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의 어려움을 탐구하며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공적이고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담았다”고 평했다. 현재 글릭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거주 중이며, 예일대 영문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는 총상금 10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2억 9910만원)와 함께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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