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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선 권익현 한국당 고문 별세

    4선 권익현 한국당 고문 별세

    제11대 국회부터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자유한국당 권익현 고문이 4일별세했다. 83세. 권 전 의원은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1대 국회부터 12·14·15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민정당 대표위원을 지냈고 이후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새누리당, 한국당에서 상임고문직을 맡았다. 고인은 1남 5녀를 뒀다. 빈소는 분당 서울대병원 3층 10호실이며, 발인은 6일 오전 6시다. 장지는 경남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 선영. (031)787-1510(010-4080-4579)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박찬종 변호사 “자유한국당은 권위주의 운운할 자격없다”

    박찬종 변호사 “자유한국당은 권위주의 운운할 자격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일주일 동안 보인 행보는 청와대 문턱을 낮추고, 걸어서 출퇴근하고,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초등학교 미세먼지 대책 발표, 주요 인사 발표시 실시간으로 본인 또는 비서실장이 나와 발표한 것, 북한 미사일 발사 때 직접 나와 언급한 것 등이었다.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정우택 대표가 “일방적 독주”라며 비판하자 자유한국당 전신 신한국당 5선 의원이었던 박찬종 변호사는 “자유한국당이 권위주의 운운한 것은 말도 안된다”며 비판했다. 박찬종 변호사는 지난 16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를 통해 “앞의 대통령과 완전히 대비된다”면서 “관저에 틀어박혀 사람도 안 만나고, 대면보고도 안 받던 전직 대통령을 보던 국민들은 ‘대통령이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고, 관료적 분위기, 권위주의를 해체했다고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박 변호사는 “자유한국당은 제1야당으로서 자격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41% 득표하고 59%는 찍지 않았는데, 의석 수도 많은 여당이 왜 문 대통령보다도 득표를 못 했느냐”며 “문 대통령을 안 찍은 표가 찍은 표보다 많으니 가져올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도 쪼그라든 이유는 정치적 죄악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땅바닥에 가슴을 치고, ‘왜 우리가 이렇게 됐는가’, ‘58%라는 반 문재인 표가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됐나’, 며칠을 울어보고,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책임져야 한다. 단지 3명이 아닌 30명은 물갈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른정당에 갔다가 탈당한 13명의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박 변호사는 모두 정계 퇴출시켜야 할 ‘2급 전범’이라며 ‘1급 전범(친박)’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미국에 다녀와서 강력한 야당을 만들겠다’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에 대해서는 “공허한 메아리다. 본인 비리 의혹 사건에 더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 전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반성하고 환골탈태부터 하고 나서 전열을 정비하든가 해야지 그것도 없이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비판하겠느냐”고 일침했디.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나 살고 보자” 탈당한 구청장…“내 자리 어찌되나” 일손 놓은 국장

    “나 살고 보자” 탈당한 구청장…“내 자리 어찌되나” 일손 놓은 국장

    9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역의원들이 소속 당을 옮기면서 지역 공직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정무직들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과 당선에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헤쳐 모여’를 하고 있다.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이 두렵지만, 공천과 당선이 확실하다면 탈당과 입당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은 신분이 보장되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관련 의원이 소속 당을 바꿔도 큰 문제가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광역단체장-광역의원과 민원인, 기초단체장-기초의원과 민원인으로 촘촘히 짜인 정치적 이해관계의 네트워크가 무너지면서 지역 공직사회도 고위직뿐 아니라 하위직에도 영향이 크게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자치단체장이나 자치의원들은 정치적 후견인인 국회의원들과 정치적 행보를 같이하지만, 일부는 각자도생에 나서면서 공직사회의 정치적 파장은 더 커질 수도 있다.#부산·경남, ‘한국당’ 탈당 ·유턴 엇갈려 대선 여론조사에서 각각 1위와 2위를 달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중심으로 이합집산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문 후보 고향인 부산·경남(PK)에서는 자유한국당 소속 기초단체장들이 연달아 탈당해 파장이 일었다. 권민호 경남 거제시장은 지난달 18일 한국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남았다. 경남 지역 한국당 소속 자치단체장으론 첫 탈당이다. 권 시장은 “오랫동안 몸담았던 당을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라며 “한국당이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이렇다 할 반성을 보이지 않았고 당의 정강과 이념이 더이상 나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거제가 문 후보 고향이라는 점 등에 비춰 권 시장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경남도지사 후보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에서 권 시장에게 입당을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거제시 한 공무원은 “권 시장이 평소 3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만약 민주당으로 갈아타게 되면, 자신의 발언을 뒤집을지 여부에 관심이 간다”고 했다. 권 시장이 만약 민주당에 입당하게 되면, 낯선 당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려고 민주당 친화적인 공무원들을 대거 발탁하거나, ‘어공’(어쩌다 공무원) 채용에서도 과거와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기태 부산 강서구청장도 지난 3월 23일 한국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새 둥지를 틀었다. 부산 현직 기초단체장 중 한국당을 떠나 야당인 민주당에 입당한 이는 노 구청장이 유일하다. 부산 강서구의 한 직원은 “노 시장이 보수 성향인데 민주당으로 왜 옮겼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신한국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강고한 인적 네트워크가 허물어지면, 구청 직원들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단체장은 아니지만, 하선영 경남도의원은 지난달 10일 한국당을 떠나 국민의당에, 2010년 옛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었던 진해구 출신 김하용 창원시의회 의장도 국민의당에 입당했다. 무소속 박삼준 경남 남해군의회 의장은 지난 18일 민주당에 입당했다. #‘국민의당 강세’ 전북에선 민주당 입당 사례도 지난 1월 새누리당(현 한국당)을 탈당한 염홍철 전 대전시장은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문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염 전 시장은 문 후보와 같은 경희대 출신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정부 관련 기관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돈다. 현 민주당 소속의 권선택 대전시장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피선거권이 박탈당했을 때를 고려한다는 것도 가능성은 낮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권 시장은 민주당 정책이 구현되고 관련 인맥들이 비교적 잘 기용되지만, 원래 새누리당 출신의 염 전 시장이 대전시장직 등에 복귀하게 되면 반대 상황이 벌어지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국민의당이 강세인 전북 지역에선 박성일 완주군수와 이항로 진안군수가 지난 2월 민주당에 입당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로 한국당을 떠났던 정치인들이 최근 홍준표 한국당 후보의 지지율이 10% 안팎으로 치고 올라가자 ‘유턴’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새누리당(현 한국당)을 떠나 바른정당으로 옮겼던 송숙희 사상구청장과 부산 사상구의 이상갑·오보근 시의원 등 4명은 지난달 26일 한국당에 재입당했다. 장제원 부산 사상구 의원이 바른정당으로 옮기면서 함께 당을 옮겼지만, 바른정당 지지세가 부진하자 변심했다는 평가다. 자치단체장과 자치의원이 정치적 후견인인 국회의원과 결별한 상황이다. #“지방선거 앞두고 내 사람 심기 부작용 우려” ‘친박’(친박근혜) 조원진 의원이 대구 달서에서 한국당을 탈당하자, 배지숙·신원섭 시의원과 구상모·전시현 구의원이 한국당을 떠나 새로 창당된 새누리당에 입당하는 사례도 있다. 이는 정치적 후견인을 따라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한다. 바른정당 ‘유승민계’로 알려진 강대식 대구 동구청장이 바른정당에 입당한 것도 비슷한 사례다. 이어 윤석준·강신혁 대구시의원, 차수환·하종호·이재숙·정인숙·서정해 구의원도 지난 1월 한국당에서 바른정당으로 갈아탔다. 경기 고양시의 한 공무원은 “단체장과 지역 국회의원의 당적이 다르면, 국비나 중앙정부 지원이 필요할 때 원활하지 못할 수도 있어서 최근 부산이나 대구 등의 이합집산을 남의 일처럼 보기 어렵다”면서 “정치가 인적 네크워크인 만큼 단체장들이 지방선거나 총선 등을 앞두고 공무원들을 줄 세우거나 줄을 대기 위해 인맥을 발굴해 채용하는 등 ‘내 사람 심기’를 하는데, 그것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행정자치부나 감사원에서 신경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서울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모든 것을 잃는다”…대선 2등 잔혹사

    “모든 것을 잃는다”…대선 2등 잔혹사

    1등만이 모든 것을 다 갖는 냉혹한 승자 독식의 승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은 막강한 권력에 취해 이를 사유화한 박근혜 전 대통령, 지금은 그저 ‘수인번호 503번’이 된 사람 탓에 이 냉혹한 승부를 예정보다 이른 오는 5월 9일 또 치르게 됐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눈앞에 두고 눈물을 삼켜야 했던 2등들은 다시 1등에 오르기 위해 5~10여 년 간 표심 다지기 나서거나, 중앙 정치 무대에서 쓸쓸히 퇴장하기도 했다.1992년 제14대 대선부터 지난 5차례 대선에서 2등에 머물렀던 정치인의 발자취를 되돌아봤다.  ● 정계 은퇴와 출국…민주화 거목 김대중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선. 13대 대통령 노태우의 퇴장과 함께 대한민국에 실질적인 민주 정부가 들어서는 중대한 선거였다. 대선은 영남 지역을 정치 기반으로 둔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와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둔 김대중 민주당 후보 양강 구도로 치러졌다. 두 정치인 모두 과거 군부정권에 맞서 선봉에서 싸운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었다.유권자 2942만 2658명 81.9%가 투표에 참여한 결과 대한민국 최고 권좌는 42.0%를 득표한 김영삼 후보에게 돌아갔다. 김영삼 후보와는 190만여 표 차이(34.0%)로 낙선한 김대중 후보는 선거 결과에 승복, 대선 이튿날 정계 은퇴 성명을 발표하고 1993년 1월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하던 그는 아시아·태평양 민주지도자회의(아태재단)를 설립하며 한국 정계 복귀를 위한 초석을 마련한 뒤 1995년 7월 국내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옛 민주당 탈당 의원들과 함께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해외와 국내 정치의 외곽을 떠돌던 김대중은 1997년 제15대 대선에도 다시 도전, 당시 대통령으로 유력했던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를 39만여 표 차로 간신히 누르고 그토록 갈망하던 대통령에 당선됐다. 15대 대선은 보수층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이회창 후보에게 다소 유리한 흐름이었으나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에 밀린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가 국민신당을 창당해 출마하면서 결국 일부 보수층이 분열, 김대중 후보 당선에 기여한 결과만 낳았다. ● 삽질하고 햄버거 먹고…대법관 출신 ‘대쪽’ 이회창1993년 12월 대법관 출신 이회창이 김영삼 정부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현실 정치에 등장했다. 그는 과거 군사정권에서도 정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껏 판결을 해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대쪽 판사’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후 총리 사임 뒤 변호사로 활동하던 이회창은 1996년 다시 김영삼 대통령의 영입으로 신한국당에 입당, 1997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에 밀려 2위에 그쳤다.15대 대선에서 낙선한 이회창은 당을 이끌며 다음 대선을 준비했다. 2002년 16대 대선 유세에서는 기존 ‘대쪽 판사’의 강직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서민과 함께하는 친근한 대통령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출근 시간대 만원 지하철에 올라 유권자들을 만나고, 패스트푸드점과 포장마차 대화 등 서민 행보에도 주력했다. 하지만 그의 친서민 행보는 진짜 서민적 정서를 기반으로 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 족구하고 분식 먹으며 분투했지만…초라한 패배 정동영2007년 12월 17대 대선은 10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전국 63.0%라는 대선 역대 최저 투표율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48.7%)됐다. 2등은 득표율 26.1%에 그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다. 이 후보와 표 차이는 무려 530만 표가 넘었다. 문화방송 기자와 메인 뉴스 앵커를 거치며 전국적 인지도가 높았던 정동영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정치활동을 시작,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까지 지냈지만 대선 후보로는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대권 경쟁자 중에서는 현대건설 사장과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경제 성장 747 공약(연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 등 굵직한 대선 이슈를 선점하며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었다.정동영 후보는 ‘안보 대통령’, ‘일자리 창출 경제 대통령’ 등 이미지 강화에 나섰지만 민심의 흐름에는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대선 이듬해 4월 치러진 제18대 총선에서도 서울 동작구에 출마한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 밀리며 고배를 마셨다.  ● 제2의 노무현을 꿈꿨지만…재수에 나선 문재인2008년 2월 노무현 대통령 퇴임과 이듬해 5월 노 대통령 서거로 국내 정치권에서 이른바 ‘친노’ 정치 계보도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제도 정치권에서 비켜 서 있던 문재인 참여정부 비서실장이 전면에 등장했다. 그는 정치권과는 거리를 뒀었지만, 2012년 제18대 대선이 다가오면서 이명박 보수정권에 반감을 가진 정치권과 유권자들의 출마 요구가 이어지자 2012년 4월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문 후보는 총선 출마를 앞두고 출간한 저서 ‘운명’에서 “당신(노무현)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작하지 못하게 됐다”며 정치 입문 배경을 밝힌 바 있다.2012년 12월 대선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문 후보 양강 구도로 진행됐다.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무소속 안철수 현 국민의당 전 대표도 유력 대권 주자로 떠올랐으나 문 후보로 단일화하면서 대선 후보에서 사퇴했다. 그러나 ‘박정희 향수’와 유권자의 보수성은 강했고,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논란 끝에 박 후보가 51.6% 득표로 48.0% 득표에 그친 문 후보를 눌렀다. ● 사상 초유 대통령 궐위 대선, 누가 울 게 될 것인가?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민간인이 됐고,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지금은 구치소에 수감 중인 미결수로 전락했다. 이 탓에 애초 올해 12월로 예정됐던 제19대 대선은 오는 5월 9일로 당겨 치러진다.현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경쟁 중인 가운데 지난 13일 리얼미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후보가 44.8%, 안 후보가 36.5% 지지율로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쳤던 두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는 최대 라이벌이 된 것이다.대선 시계는 점차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2017년 5월 9일, 이번에는 누가 2등 자리에서 눈물을 삼키게 될까.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장세훈 기자의 정치샤워] 대권 도전의 법칙들

    [장세훈 기자의 정치샤워] 대권 도전의 법칙들

    ‘5·9 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때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던 대선 주자들도 대부분 교통정리됐다. 이 과정에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30년의 역사가 만들어 낸 다양한 ‘대권 도전의 법칙’들이 눈에 띈다. 먼저 입법부 경험이 없는 대선 주자들에게 대권은 이른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직선제 도입 이후 의원직을 거치지 않은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다. 최근까지 거센 바람을 일으키다 경선 문턱을 넘지 못한 더불어민주당 안희정·이재명 후보 등도 의원 경험이 없다. 꾸준히 정치적 주목을 받기 쉽지 않은 데다 당내 세력화의 제약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번 대선에서 원내 5개 정당이 배출한 후보들 역시 모두 전·현직 의원이다. 국무총리 출신들은 아직 ‘승자의 저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래 권력’으로서 진영의 대표로 주목받기보다는 ‘지난 권력’의 2인자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더 크게 작용한 탓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황교안 총리, 2012년 대선 정운찬 전 총리, 2007년 대선 고건 전 총리 등은 출마 요구에 화답하지 않았다. 출마론에 부응했던 인물은 이회창 전 총리가 유일하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서울시장 출신들은 ‘완주의 딜레마’가 고민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대선 때마다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유력 주자로 부각됐지만 흐지부지된 경우가 다반사다. 1997·2007년 대선에서는 각각 조순·고건 전 시장이 ‘제3 후보’로 주목받았으나 중도 포기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박원순 시장과 오세훈 전 시장은 결국 불출마를 선택했다. 직선제 도입 이후 서울시장 출신으로 대선 레이스를 끝까지 완주하고 대권까지 거머쥔 인물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간선제 대통령으로는 윤보선 전 시장이 최초다).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서울시장은 차차기 대선 주자’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첫 시험대는 완주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지사 출신들은 ‘탈당의 법칙’이 주로 작용해 왔다. 대권 도전을 위해 당적 변경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1997년 대선 때 이인제 전 지사(신한국당→국민신당), 2007년 대선 손학규 전 지사(한나라당→대통합민주신당), 이번 대선 남경필 지사(새누리당→바른정당) 등이 해당된다. 당적을 바꾸지 않고 대권 경쟁을 벌인 인물은 김문수 전 지사가 유일하다. 경남지사들에게 지사직 사퇴는 ‘시간의 문제’처럼 자리매김됐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대권 도전이 줄을 잇는 가운데 단체장직을 먼저 던지고 경선전에 뛰어든 후보는 2012년 대선 당시 김두관 경남지사(현 민주당 의원)가 지금까지 유일했다. 김 전 지사의 바통을 이어받은 홍준표 지사는 지난달 31일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확정돼 조만간 지사직을 내놓을 예정이다. 다만 이런 법칙들은 결과를 보고 만들어 낸 것일 뿐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징크스’(불길한 징조)로 여기기보다는 현상으로 보는 게 낫다.
  • 한국당 대선후보 홍준표…모래시계 검사→4선 의원→도지사→우파 스트롱맨

    한국당 대선후보 홍준표…모래시계 검사→4선 의원→도지사→우파 스트롱맨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모래시계 검사에서 우파의 스트롱맨을 추구하게 됐다. 한국당은 31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제1차 전당대회를 열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대선후보로 홍 지사를 선출했다. 전당대회에서 홍 지사는 책임당원 현장투표(50%)와 일반국민 여론조사(50%)에서 1위에 올랐다. 홍 후보는 책임당원 투표에서 61.9%, 국민 여론조사에서 46.7%를 각각 얻어 합계 54.2%의 과반 득표를 얻으면서 김진태 의원(19.3%), 이인제 전 최고위원(14.9%), 김관용 경상북도지사(11.8%) 등 경쟁자를 따돌렸다. 원내교섭단체 가운데 대선 후보를 확정한 것은 지난 28일 유승민 후보를 선출한 바른정당에 이어 한국당이 두 번째다. 홍 후보는 어린시절 가난과 싸웠다. 홍 후보는 부친은 학교에 다니지 않은 무학(無學), 모친은 글자도 모르는 문맹(文盲)이었다고 말했다. 7살 때 가세가 기울자 홍 후보 가족은 고향인 경남 창녕을 떠나 대구로 이사했다. 손수레에 세간을 싣고 이틀 동안 걸었다. 월세가 싼 곳으로 옮겨 다니느라 초등학생 때 5차례 전학했다. 도시락을 싸지 못해 수돗물로 허기를 달랜 때가 많았다. 장마에 낙동강이 범람, 강 옆에 일구던 땅콩밭과 집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고리 사채로 머리채가 잡혀 끌려다니던 어머니”를 봤다고 기억하는 장소는 지난 18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대구 서문시장이다. 직물공장에 취직한 작은누나의 월세방에 얹혀 지낸 중학생 시절을 보냈다. 밤 10시 전 무조건 소등하라는 집주인의 눈을 피해 이불 속에서 공부했다. 그는 의사가 되려 했지만, 돈이 덜 드는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합격했다. 부친이 누명을 쓴 사건을 목격하고 검사로 진로를 바꿨다. 빚을 내 마련한 등록금을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홍 후보는 전북 부안에서 방위 복무를 마치고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울산 조선소 바닷가에서 일당 800원을 받고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던 부친이 합격 소식을 듣지 못하고 암으로 별세한 뒤였다. 검사가 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사건을 1993년 서울중앙지검에서 맡았다. 슬롯머신 사건이다. 당시 ‘6공화국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의원을 비롯해 고검장 등 검찰 간부들과 경찰청장, 병무청장까지 줄줄이 구속됐다. 조직폭력배도 등장한 이 사건은 드라마 ‘모래시계’로 제작됐다. 드라마 속 강우석 검사의 모델이 바로 홍 후보였다. 검찰 조직이 뿌리째 흔들렸다. 조직의 ‘이단아’ 취급을 받던 그는 버티지 못하고 사직했다. 변호사로 개업한 홍 후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연락을 받았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의 ‘개혁공천’ 사례로 초선 의원이 됐다. 그는 “광주지검 강력부 때 잡아넣었던 깡패들이 출소해서 검사 그만둔 나와 가족을 슬렁슬렁 겁주더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가족 보호를 위해 정치판에 들어왔다”고 털어놨다. 홍 후보는 제18대 총선까지 서울에서 내리 4차례 당선됐다.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예상을 깨고 당 대표에 선출됐다. 그는 계파가 없었다. 스스로 “친이(친이명박)도 친박(친박근혜)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계파 정치를 혐오한 측면도 있었지만, 계파에서도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계파가 없으니 혼자였고, 정치적 입지가 튼튼하지 못했다. ‘디도스 사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론에 휩싸여 5개월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 자리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몫이 됐다. 2009년 펴낸 자서전 제목은 ‘변방’이다. 늘 ‘변방의 검사’였고, ‘변방의 정치인’이었다는 의미다. 길들이기 쉬운 성격이 아닌 탓이다. 그러다 보니 견제를 받았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연루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을 때만 해도 “홍준표는 끝났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였다. 그는 “검사 시절 남을 처벌하며 저지른 업보”라고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지난달 2심에서 무죄로 반전됐다. 법률심인 3심에서 무죄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작다. 자신의 무죄 판결과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시기적으로 공교롭게 일치한다고 홍 후보는 여긴다. 홍 후보에 붙는 수식어는 ‘막말’이다. 실제로 그의 표현은 거침없다. 정치인은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라 말을 많이 한다. 거친 말이 그의 입에서 쏟아졌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한 최근 사례를 비롯해 예전에도 “이화여대 계집애들 싫어한다”고 하거나 야당 도의원을 ‘쓰레기’로 비유해 구설에 휘말렸다. 자신은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할 뿐이라고 항변한다. 막말보다 그를 어렵게 만들 요인은 이번 대선의 구도다. 박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으로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의 열망이 높은 시기다. 자신은 성완종 리스트의 위기를 벗어났지만, 후보로 나선 당은 대선 참패의 위기에 놓여 있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주자들의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어야 하는 자신에게도 가장 힘든 선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좌우의 대결 구도로 보면서 ‘우파 스트롱맨’을 자처했다.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국정을 장악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과연 그의 바람대로 얼마나 ‘강력한 동남풍’이 불어줄지 주목된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홍준표 김무성, 지난주 회동…무슨 얘기 나눴나

    홍준표 김무성, 지난주 회동…무슨 얘기 나눴나

    자유한국당 대선주자인 홍준표 경상남도지사와 바른정당 대주주 김무성 의원이 지난 14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만찬 회동에서 정국 현안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범보수 대선후보 단일화 등 선거연대 방안을 놓고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1996년 15대 신한국당 국회의원으로 나란히 원내에 입성한 인연이 있다. 이어 당명이 한나라당을 거쳐 새누리당으로 바뀐 18대 국회까지 원내에서 동고동락했다. 5월 9일 조기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국당과 바른정당을 포함한 범보수 연대론이 커지는 가운데 이뤄진 만남이라 더욱 주목 받고 있다. 홍 지사는 지난 5일 한 지역방송에 나와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혼한 것이 아니라 그냥 별거하는 중”이라며 “우파대연합을 해야 좌파, 중도, 우파의 대선구도가 탄생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의원도 “친박·친문(친문재인) 패권 세력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며 개헌을 고리로 중도와 보수 진영의 반(反)패권 세력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역설해왔다. 이와 관련해 두 사람과 가까운 한 정치권 관계자는 “홍 지사가 당내 경선과정에서는 친박을 어느 정도 안고 갈 수밖에 없지만 대선후보로 선출되면 정리할 것으로 본다”며 “친박을 정리하지 않으면 바른정당도 홍 지사와 단일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양측은 지난주 만남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언급을 꺼리고 있다. 친박을 제외한 두 보수정당의 연대 가능성에는 큰 이견이 없지만 국민의당과의 단일화를 놓고서는 미묘한 온도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집권 저지를 위해 국민의당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홍 지사는 국민의당에서 누가 후보로 선출되는지를 지켜보고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누리당, 오늘 자유한국당으로 개명…‘횃불’ 로고 공개

    새누리당, 오늘 자유한국당으로 개명…‘횃불’ 로고 공개

    새누리당이 13일 ‘자유한국당’이라는 새 당명과 횃불 모양의 새 로고를 공개했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후 전국위원회와 상임전국위원회를 잇따라 열어 당명과 로고를 확정한다. 새 당명의 약칭은 ‘한국당’으로 쓰기로 했다. 당 로고는 ‘횃불’을 형상화한 모양이다. 당 색(色)은 현재처럼 붉은색 계열을 사용하되 ‘각진 횃불’ 모양을 통해 자유와 역동성, 활력과 추진력을 강조했다는 설명이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새 당명과 관련, “‘자유’는 보수 가치 이념의 대표적 단어이기 때문에 넣었고, ‘한국당’은 예전 YS 시절 ‘신한국당’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활용했기 때문에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라며 “새누리당이 새롭게 거듭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 쇄신과 혁신의 모습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로고에 대해 당 관계자는 “자유의 여신상이 횃불을 들고 있다”며 “횃불은 자유와 역동성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명은 짙은 청색으로 하고 로고는 붉은 색으로 해 태극 문양이 연상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누리 당명 ‘자유한국당’ 유력

    새누리당의 새 당명으로 ‘자유한국당’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핵심 관계자는 7일 “책임당원 1만여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자유한국당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고, 행복한국당·국민제일당·보수의힘 순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수호하는 대한민국 대표 보수 정당이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설명했다. 다른 당명에 비해 조롱이 적고, 지속 가능성이 큰 당명이라는 평가도 당 안팎에서 나왔다.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적극 추천했던 ‘보수의힘’은 대선 구호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새 당명은 8일 열리는 의원 연찬회에서 최종 가닥이 잡힐 예정이다. 자유한국당은 과거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연합과 자유선진당의 ‘자유’와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한국’이 조합된 당명이다. 이런 점에서 대선 때마다 ‘캐스팅보트’가 돼 온 충청권 표심에 호소하기에 적합한 당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당초 새 당명 최종 후보에 포함되지 않았던 이름이다. 반응이 좋지 않아 폐기된 1차 최종 후보는 국민제일당, 새빛한국당, 으뜸한국당이었고, 2차 최종 후보는 보수의힘, 국민제일당, 행복한국당이었다. 이 가운데 유력했던 행복한국당이 특정 종교의 색채가 강하다는 지적에 따라 자유한국당이 뒤늦게 후보군에 추가됐고, 의견 수렴 끝에 유력한 최종 후보가 됐다. 새누리당은 당명 개정을 시작으로 정강·정책, 당헌·당규 개정, 당 상징색과 로고 변경 등 대대적인 쇄신 작업에 돌입한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국민제일당·새빛한국당·으뜸한국당...새누리당 새 당명은?

    국민제일당·새빛한국당·으뜸한국당...새누리당 새 당명은?

    새누리당은 26일 ‘국민제일당’, ‘새빛한국당’, ‘으뜸한국당’을 새 당명 후보로 확정했다.함진규 홍보본부장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23일부터 26일까지 대국민 공모를 한 결과 모두 5853건이 접수됐다”면서 “외부 홍보전문가가 포함된 당명개정태스크포스(TF) 심의를 통해 새 당명 후보 3개를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제일당은 “새누리당이 국민을 향하지 못함을 자성하고 그 성찰을 바탕으로 앞으로 국민을 최우선으로 하고 민생을 살피겠다는 의지가 담긴 당명”, 새빛한국당은 “대한민국의 기본 가치를 지키고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당명”, 으뜸한국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통보수 정당으로서 대한민국을 가장 뛰어나게 만들어 국민 행복을 실천하겠다는 뜻이 담긴 당명”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새누리당은 설 연휴 기간 논의를 거쳐 설 이후 당명 후보 3개 중 하나를 새 당명으로 확정한다. 다음달 10일쯤에는 새로운 당 로고와 상징, 당색 등이 공개된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왕실장’에서 ‘법꾸라지’ 오명으로 추락한 김기춘…결국 구속

    ‘왕실장’에서 ‘법꾸라지’ 오명으로 추락한 김기춘…결국 구속

    박근혜 정부에서 ‘왕(王)실장’,‘기춘대원군’으로 불리며 막강한 권세를 떨쳤던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1일 구속 수감됐다. ‘좌파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할 의도로 만든 ‘블랙리스트’의 작성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를 받고 있는 김 전 실장에 대해 법원이 이날 영장을 발부했다. 김 전 실장은 1939년 경남 거제 출신으로 경남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만 20세인 대학 3학년 때 고등고시 사법과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대검 특수1과장, 서울지검 공안부장을 거쳐 법무부 검찰국장 등 법무·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노태우 정권 시절 검찰총장을 역임하고 이례적으로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다. 15∼17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내며 정치권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8월 나이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박 대통령의 부름을 받는다. 당시 나이가 74세였다.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정수장학회’에서 장학금을 받은 졸업생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지냈고, 이런 이력과 충성심 덕분에 박 대통령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다는 후문이다. 과거 서울지검 평검사 시절에 법무부로 차출돼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했고,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을 조사·신문한 경력이 있다. 그는 지난달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 “최순실을 모른다”는 등 일관되게 ‘모르쇠’ 입장을 견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당명(黨名)의 역사/황성기 논설위원

    [씨줄날줄] 당명(黨名)의 역사/황성기 논설위원

    5일 창당 발기인대회를 가진 개혁보수신당(신당)이 당명을 놓고 목하 고심 중이다. 새누리당을 탈당한 이들은 “새누리당의 가짜 보수가 아닌 진짜 보수를 바탕에 깔되 개혁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개혁과 보수를 가칭에 넣었는데 줄이면 ‘개보신당’이 되니 웃음을 샀다. 지난 1일부터 정식 명칭을 공모하고 있는데 그게 또 조롱거리가 됐다. 신당이 개설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시민들이 ‘그놈이그놈이당’, ‘떨어져나왔당’, ‘사라질당’, ‘나새누리아니당’, ‘촛불에살짝쫄았당’ 같은 풍자 섞인 당명을 올렸는데 신당 측이 댓글을 삭제한 것이다. “댓글을 삭제하는 게 따뜻한 보수냐”는 글이 올라오고, 항의가 이어지자 정병국 창당추진위원장이 지난 4일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어수선을 피운 끝에 봉합됐다. 여당이 쪼개져 탄생한 정당이라 정체성의 의문 속에 당 이름을 놓고 고초를 겪는 것은 당연한 법이겠다. 선거 때만 되면 당이 생겨나거나 합치고, 선거가 끝나면 당이 사라지거나 뭉치는 일은 우리 정치사에서 무수히 반복돼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탈당을 하지 않아 집권 여당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새누리당은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에 의해 1997년 11월 출범한 한나라당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뿌리를 둔 노태우, 김영삼 정부의 민주자유당(민자당), 전두환 정권의 민주정의당(민정당)은 새누리당의 홈페이지 어디를 뒤져도 없다. 한나라당은 2012년 2월 미래희망연대와 합당을 하면서 새누리당이 됐는데 미래희망연대란 것이 지금, 새누리당을 내홍에 빠뜨리고 있는 주역인 친박 결사체였다. 이념이나 철학을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거니와 한국 정당사상 유례없이 특정인의 이름을 딴 친박연대가 전신이었다. 새누리당처럼 ‘새’나 ‘신’(新)을 붙여 이미지 쇄신을 꾀한 작명도 많았다. 신한국당이 그렇고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새천년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까지 야당에 두드러진다. 여당은 장기집권이 많아 당명이 자유당, 공화당까지 넣어도 그리 많지 않은 데 비해 ‘야당 잔혹사’라 할 만큼 야당의 명멸은 극심했다. 20년이 안 됐는데도 이름이 잊힌 정당이 태반이다. 대통령선거 출마용으로 이인제 전 의원의 국민신당(1997년), 정몽준 전 의원의 국민통합21(2002년),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의 창조한국당(2007년)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명망가 혹은 지역 중심으로 모였다 흩어졌다 해 온 한국과 달리 민주당·공화당의 미국, 노동당·보수당의 영국처럼 정책, 이념으로 사람이 모이고 인재를 배출하는 100~200년 된 정당이 부럽다. 신당이 내건 ‘깨끗한 보수, 따뜻한 보수’의 의미가 알쏭달쏭하지만, 100년 갈 정당이 되었으면 한다. 보수의 적통을 자처한다면 이름도, 알기 쉽게 ‘보수당’ 어떤가.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커버스토리] 똘똘 뭉쳐온 보수…이혼·재결합 진보

    [커버스토리] 똘똘 뭉쳐온 보수…이혼·재결합 진보

    [보수 정당史] 1990년 ‘노태우·JP·YS’ 3당 합당 민주자유당이 뿌리 JP 자유민주연합 등 일부 홀로서기 도전하다 가시밭길 보수 정당사는 분열보다 통합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유력한 보스와 탄탄한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똘똘 뭉쳐 온 게 보수 정당의 특징이다. 새누리당 비주류의 분당 사태가 첫 번째 사례로 꼽힐 정도로 당이 두 동강 나는 일은 없었다. 일부가 홀로 서기에 도전한 사례가 있지만 대부분이 가시밭길을 걸었다. 새누리당으로 이어진 보수 정당의 큰 뿌리는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과 김종필(JP) 전 총리의 신민주공화당,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의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식은 통합이었지만 실제로는 ‘한 지붕 세 가족’이라고 불릴 정도로 계파 간 권력 투쟁이 치열했다. 결국 1995년 YS 측근들에 의해 입지가 좁아진 JP가 민자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당시 함께 탈당한 의원은 9명이었다. 다음해인 15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중심으로 35석을 얻으며 그나마 ‘성공한 분열’로 평가된다. JP가 빠져나간 민자당은 영남권을 주요 지지 기반으로 삼았다. 민자당은 이후 정국 주도권을 상실했고 노 전 대통령의 부정축재 사건과 5·18특별법 제정으로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등 악재가 계속되자 1996년 2월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신한국당은 수도권과 영남권의 두터운 지지를 확보했다. 비운의 분열로 꼽히는 사례는 1997년 대선 경선에서 이회창 총재에게 패한 이인제 전 의원이 탈당해 만든 국민신당이 거론된다. 이 전 의원은 김대중·이회창·이인제의 3파전에서 결국 낙선했고, 국민신당은 10개월 만에 자진 해산했다. 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이 전 총재는 아들들의 병역 의혹에다 이 전 의원의 탈당 등으로 곤경에 처하자 1997년 11월 민주당 조순 총재와 힘을 합쳐 한나라당을 창당했다. 한나라당은 1997년 11월 24일부터 2012년 2월 14일까지 보수 정당 가운데 가장 오래 유지됐다. 지금의 새누리당도 당명만 바꿨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2002년 이회창 총재에 반기를 들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해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 당선자도 냈지만 6개월 만에 다시 한나라당과 합쳐졌다. 범보수 세력은 2008년 18대 총선을 전후로 또 갈라졌다. 친이명박계의 친박근혜계에 대한 공천 학살이 자행되자 친박 인사들이 당을 떠났다. 서청원 전 대표를 중심으로 친박연대가 꾸려졌고 김무성 전 대표가 친박무소속연대를 결성했다. 친박무소속연대는 총선 직후 한나라당으로 복당했다. 비례대표 8석을 챙긴 친박연대는 2012년 2월 초까지 외형상 정당의 모습을 갖추긴 했으나 사실상 의석수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 조직과 같았다. 한편 JP의 자민련은 1995년 5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유지된 뒤 한나라당과 통합했다. 자민련 탈당파인 심대평 전 충남지사가 2006년 1월 창당한 국민중심당이 충청권을 이끌었고, 이는 총선 국면마다 자유선진당(2008년), 선진통일당(2012년)으로 이어지다 대선을 앞둔 2012년 한나라당과 합당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진보 정당史] 1987년 단일화 실패한 DJ-YS 결별… 평화민주당 창당 계파간 갈등 심화… 당명 수시로 바뀌며 이합집산 반복 야권은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해 왔다. 야당의 뿌리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다. 1987년 DJ의 동교동계는 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했고, DJ는 대선 후보로 나섰지만 노태우 민정당 후보에게 졌다. 1991년 3당 합당의 반대파인 꼬마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의 후신인 신민주연합당이 합당해 민주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DJ가 다시 패배하면서 민주당은 분열했다. 이후 DJ가 1995년 정계에 복귀한 뒤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새정치국민회의가 창당됐다. 새정치국민회의의 대선 후보가 된 DJ는 드디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후 DJ계와 재야, 운동권 세력이 합쳐져 새천년민주당이 만들어졌고 여기서 대선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0년대 들어 야권의 분당은 계파와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노’와 DJ의 동교동계, 호남 인사의 갈등이 분당의 원인이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 내부에서는 호남 실용파·구민주계로 대표되는 이른바 ‘난닝구’와 친노(친노무현)계, 영남 개혁 세력인 ‘빽바지’가 부딪쳤다. 결정적인 사건은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정권 시절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를 받아들이면서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동교동계, 호남 인사들은 설 자리를 잃게 돼 노 전 대통령에게 반발했다. 새천년민주당에서 탈당한 친노계 의원들은 그해 11월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이를 계기로 새천년민주당에 남아 있던 의원들은 노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2004년 한나라당과 함께 노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게 됐다. 이후 야당은 열린우리당에서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2008년 민주당, 2011년 민주통합당으로 계보를 이었다. 이어 2014년 3월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대표의 새정치연합과 합당해 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친노 주류와 비주류계 사이 갈등이 남아 있었다. 특히 2015년 2월 전당대회에서 당시 친노 주류의 중심인 문재인 후보가 비주류계인 박지원 후보를 누르고 새 대표로 선출되면서 갈등은 격화됐다. 친노는 문재인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친문으로 세분화하며 주류로 자리잡았고 호남 인사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계는 당권을 친노 세력이 쥐는 데 반발했다. 결국 2015년 12월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에게 반기를 들고 탈당했다. 안 전 대표의 탈당 이후 당내 비주류와 호남 인사들이 연쇄 탈당하면서 제1야당은 쪼개졌다. 안 전 대표는 호남과 중도를 키워드로 한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국민의당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해 들어온 호남 인사들의 영향으로 지난 총선에서 호남 28개 선거구 중 23개 의석을 싹쓸이하며 호남 대표 당으로 거듭났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몰락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수도권, 부산·경남(PK) 지역에서 선전해 123석을 얻고 제1야당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박원순 “새로운 보수 운운 말라…친박-비박 싸움, 잘 짜인 각본같아”

    박원순 “새로운 보수 운운 말라…친박-비박 싸움, 잘 짜인 각본같아”

    박원순 서울시장이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의 탈당과 관련해 “새로운 보수 운운하며 ‘혹세무민’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21일 비판했다. 박 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새누리당은 최순실 사설정부의 공범으로 국민 앞에 자백을 해야 할 시점”이라며 “호박에 선을 그어서 수박이라 말하지 말자”고 적었다. 그는 글을 통해 “민정당에서 민자당으로, 신한국당으로, 한나라당으로, 그리고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그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며 “그 어떤 새로운 당명도 새누리라 쓰고 ‘박근혜/최순실’이라고 읽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친박과 비박간 책임 떠넘기식 싸움도 잘 짜인 각본 같다”며 “소위 비박이라 불리는 분들의 면면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박근혜의 대변인과 비서실장을 지낸 인사 지난 대선에서 선대본부장을 했던 인사들이 주축”이라고 지적했다. 박 시장은 “이미 박근혜 탄핵과 함께 새누리당은 탄핵됐다”며 “새누리당에 남은 힘이 있다면 탄핵절차에 적극 협조하는 일뿐”이라고 말했다. 김서연 기자 wk@seoul.co.kr
  • ‘연이은 대선 도전, 그리고 낙선’ 이회창은 누구인가

    ‘연이은 대선 도전, 그리고 낙선’ 이회창은 누구인가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후보로 이회창(81) 전 한나라당 총재가 거론되고 있다. 그는 국내 보수 진영에서 대표적인 법조인 출신의 정치인으로 꼽힌다.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이 전 총재는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냈고, 김영삼 정부때는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하면서 ‘대쪽’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대선에 3번 도전했지만 3번을 모두 낙선하면서 ‘대선 콩라인’에 분류되기도 한다. ‘콩라인’은 현재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홍진호씨로부터 비롯된 신조어다. 과거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시절 수준급의 실력에도 불구하고 홍진호씨가 우승이 아닌 준우승에 계속해서 머물러 ‘콩진호’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는데, 이것을 유래로 우승을 하지 못하고 준우승 등의 성적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이 전 총재는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신한국당 선대위원장을 맡아 신한국당의 총선을 지휘했고, 자신도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는데, 아들 두 명의 병역 면제 특혜 논란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고 김대중 전 대통령(득표율 40.3%)과 1.6%인 39만표 차이(득표율 38.7%)로 2위에 머물며 당선에 실패했다.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이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33석을 얻어 원내 제1당을 차지하면서 당원들로부터 다시 인정을 받았고, 당내 경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2002년 한나라당의 제1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풍을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득표율은 48.9%였고, 이 전 총재의 득표율은 46.6%를 기록했다. 두 차례의 낙선에도 불구하고 이 전 총재는 대통령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7년 11월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우리는 이번에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면서 “지금 이 순간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처절하고 비장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국민께 드렸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대해 진심으로 엎드려 사죄드리고 용서를 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그해 11월 무소속 대선 출마 선언 후 대구의 ‘민생정치 1번지’인 서문시장을 방문했을 때 한 시민으로부터 ‘계란 테러’를 당했다. 그 시민은 이 전 총재가 경선 과정을 거치지 않고 17대 대선에 출마한 이 전 총재의 정치적 행보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 전 총재는 얼굴에 계란을 맞았고 옷이 더러워지기는 했지만 별다른 부상을 입지 않았다. 모자를 쓰고 잠시 몸을 피신한 이 전 총재는 계란 테러 다음 날 “달걀 마사지를 받아 얼굴이 예뻐졌다”고 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제17대 대선 출마가 그의 마지막 도전이었다. 이 전 총재는 득표율 면에서 17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48.7%) 당시 후보, 정동영(26.1%) 당시 후보보다도 많이 뒤쳐졌다(15.1%). 그런 그에게 새누리당 친박계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친박계인 정우택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당의 화합을 위해서는 유 의원이 아니더라도, 혁신 프로그램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외 인사 중에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전 총재는 여전히 보수 진영에서 인기가 높고 ‘대쪽’ 이미지도 강해 친박계는 당을 혁신할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김무성 전 대표와 유 의원이 만일 탈당한다 해도 향후 보수 진영의 재결합이 논의될 때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상 첫 ‘영남’ 없는 與 원내지도부

    사상 첫 ‘영남’ 없는 與 원내지도부

    새누리당 원내지도부 핵심 3인방인 ‘원내대표·정책위의장·원내수석부대표’가 사상 처음으로 비(非)영남권 출신으로만 구성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루된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당내 지역적 주류인 영남권 의원들이 요직에서 배제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충북 청주 상당,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경기 하남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19일 임명된 김선동 원내수석부대표의 지역구는 서울 도봉을이다. 새누리당 지도부 핵심에 영남권 출신 의원이 한 명도 없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대 대표와 원내대표단 3인방의 출신 지역을 살펴보면 그동안 새누리당 내 영남권 의원들의 파워가 막강했음을 알 수 있다.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에 이어 새누리당으로 당명은 바뀌어 왔지만 ‘영남당’이라는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영남 지역구 의원은 당 소속 의원 128명 가운데 52명(40.6%)으로 당내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영남 출신’은 이제 ‘정치적 주홍글씨’쯤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야권은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새누리당도 공범”이라며 그 책임을 여당에 지우고 있다. 박 대통령을 배출했으니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과 지지 기반이 겹치는 영남권 의원들을 향한 정치적 공세가 유독 거센 양상이다. 한 재선 의원은 “정 원내대표가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원내수석부대표에 영남권 의원을 임명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최순실 사태’ 국면을 벗어나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 새누리당 내 영남권 의원들이 다시 기지개를 켤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남권 민심을 얻지 못하면 정권 재창출이 사실상 물 건너 가기 때문이다. 차기 비상대책위원장을 어느 지역 출신이 맡게 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재 “당의 강도 높은 혁신을 위해 영남권 출신이 비대위원장을 맡아선 안 된다”는 주장과 “어떤 인물인지가 중요하지 출신 성분은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정치 뒷담화] 번번이 물먹는 청와대行… 이러려고 경기지사 했나

    [정치 뒷담화] 번번이 물먹는 청와대行… 이러려고 경기지사 했나

    민선 1기 이인제 前 지사부터 5명 20년째 낙선… ‘변방’ 취급 탓 서울시장보다 ‘프리미엄’ 떨어져 남경필 경기지사가 지난 21일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망가진 새누리당에는 더이상 미래가 없다는 결단으로, 앞으로 ‘제4지대’를 꾸리거나 정치의 세대교체를 이뤄 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남 지사의 탈당은 또 다른 차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역대 경기지사들의 잇단 ‘탈당사(史)’에 또 하나의 사례를 보탠 것이다. 민선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5년 이래 5명의 민선 경기지사 가운데 김문수 전 지사 한 명만 빼고 모두가 당을 떠났다. 현직인 남 지사를 제외하고 4명 중 3명이 대선 관문에서도 번번이 쓴잔을 마셨다. ‘경기도의 저주’, ‘경기지사 필패 징크스’ 등으로 일컬어지는 흑역사가 이어졌다. 20년간 계속된 경기지사들의 고난의 정치사가 과연 이번에도 반복될 것인지 어느 때보다 관심이 모인다. ●유력 정치인 대열 올랐지만 탈당 후 ‘흙길’로 1995년부터 경기지사를 지낸 5명은 정치사에 쟁쟁했던 인물들로 기록돼 있다. 특히 경기지사 당선은 이들을 유력 정치인 대열에 우뚝 서게 하는 발판이 됐다. 민선 1기 이인제(1995~1997년) 전 지사는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신한국당 경선에 참여해 이회창 후보와 결선투표까지 맞붙었다. 압도적이었던 이 후보의 지지세가 중반에 하락하면서 이 전 지사는 급속하게 부상했다. 그러나 최종 낙선하자 이에 불복해 탈당했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독자적인 대선 후보로 나섰다. ‘이회창-김대중-이인제’의 3자 구도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선거 과정 내내 보수를 분열시키며 여론조사 2위까지 치고 올라가기도 했다. 민선 3기 손학규(2002~2006년) 전 지사는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이명박-박근혜’에 이은 ‘빅3’로 꼽혔지만 끝내 탈당했다. 2007년 8월 대통합민주신당에 입당한 손 전 지사는 대선 경선 여론조사에서 범여권 1위 후보로도 등극했다. 그러나 정동영 후보에게 패해 본선까지 미치진 못했고, 2012년 대선 경선에서도 문재인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오랜 기간 당내에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에 비하면 안타까운 결과가 계속됐다. 2014년 7월 재·보궐선거에서 낙선한 손 전 지사는 정계 은퇴를 외치고 전남 강진에서 칩거 생활을 해 오다 지난달 20일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결국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5명 중 당선될 때의 당적을 유지한 것은 김문수(2006~2014년) 전 지사뿐이다. 김 전 지사는 유일하게 재선에도 성공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지방 권력을 휩쓴 가운데 김 전 지사가 재선에 성공했을 때 ‘박근혜 대항마’, ‘차기 기대주’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2012년 대선 경선에서 한 자릿수 득표에 그치며 83.97%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박근혜 대통령의 벽을 깰 수 없었다. 김 전 지사는 내년 대선에도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기 임창열 전 지사는 조금 다른 경우로 당을 떠났다. 임 전 지사는 2001년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되면서 재선에 도전할 기회가 불투명해지자 민주당을 탈당했다. 물론 같은 기간 서울시장 출신들이라고 해서 모두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초대 민선 서울시장인 조순(1995~1997년) 전 시장도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마했다. 하지만 서울시장에게는 ‘필패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5명 중 한 명인 이명박 시장은 2007년 12월 대선에서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서울시장에 대한 정치적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패배도 같은 패배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왜 경기지사는 안 되고 서울시장은 될까. ●지역 정체성 낮아… 언론으로부터 찬밥 신세 김 전 지사는 25일 “남태령 고개 하나만 넘어갈 뿐인데 완전히 지방 취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가장 큰 차이점이자 설움은 언론의 주목도라고 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다. 여의도에서 목소리깨나 높이던 정치인들이 광역단체장으로 당선되면 잊혀진다는 게 단체장들의 토로다. 국회의원일 때는 혼자 국회 정론관(기자회견장)에 서서 마이크를 잡아도 기사가 됐지만, 경기도에서는 도지사가 1000여명과 집단행동을 해도 중앙 언론에 나오기 쉽지 않다. 다른 광역시·도에는 지상파 방송사의 지국도 여럿 있지만 경기도는 그렇지 않아 더욱 소외된다는 게 김 전 지사의 얘기다. 지역 언론매체도 많지만 “분당 사는 사람들이 분당 뉴스는 안 보고 강남 뉴스를 찾아본다”고 한다.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는 도민이 많다 보니 자기 지역에 대한 정체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낮다는 지적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도 “경기지사들에게는 ‘세컨드 시티’(second city) 어젠다가 많다”고 진단했다. 광역버스 확충 등 서울로 오가는 교통체계 구축, 서울과 인접한 생활권 구축 등의 정책은 경기도가 아닌 서울이 중심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인해 서울시장에 대한 ‘프리미엄’은 더욱 높아졌다. 서울시장은 늘 중앙 언론에 노출되고, 여의도 정치권과도 항상 가깝다. 경기도에 경기지사와 서울시장이 동행하면 도민들이 서울시장을 쫓아가 사진을 찍고 악수를 청한다는 일화도 있다. ●경기도, 차기 지도자 경험 쌓을 최적의 입지 물론 경기도에도 희망은 있다. 징크스는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기대를 모은다. 인구 1300만명에 달하는 경기도는 16개 광역단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경제, 복지, 교육은 물론 접경 지역이 있어 국방까지 다룬다. 차기 지도자로서의 가능성과 경험을 채우기에 매우 좋은 지역으로 꼽히는 이유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시·도지사들이 차기 정치 지도자로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단체장들이 행정가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주목받은 것은 이명박 시장의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10년부터다. 여권의 남경필 경기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야권의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그리고 기초단체장인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 등 단체장들이 대거 ‘잠룡’으로 분류되는 것은 과거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미국의 경우 빌 클린턴(아칸소), 조지 W 부시 (텍사스), 로널드 레이건(캘리포니아), 지미 카터(조지아) 등 주지사를 지낸 대통령이 많다. 지방 권력을 쥐었던 경험은 분명 국가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엄격한 중립의무 등 선거법 빗장부터 풀어야 이 사무총장은 “미국과 우리의 정치 환경이 다르다”면서 “단체장들의 정치적 움직임에는 아직 제약이 많다”고 지적했다. 공직선거법 9조에 의해 공무원에게는 엄격한 중립의무가 요구된다. 선출직인 단체장들이 당적을 유지하거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선거법 60조에 따라 정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어 입과 발이 묶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지금 시·도지사들의 정치적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20년 역사의 새로운 기회이자 변곡점을 어떻게 풀어 갈지 주목된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정현·추미애 ‘58년生’ 동갑…여의도 ‘개띠’ 전성시대

    이정현·추미애 ‘58년生’ 동갑…여의도 ‘개띠’ 전성시대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추미애 후보가 신임 대표로 선출되면서 여의도 정치권이 ‘58년생 개띠’ 전성시대를 맞게 됐다. 지난 8·9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도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다. 2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여야를 대표하는 당수가 ‘동갑’인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1958년은 6·25전쟁 이후 본격적인 베이비붐이 시작된 첫해로, 그해 출생자들은 4·19세대와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사이에 ‘낀 세대’로도 불린다. 급속한 산업화와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표되는 민주화를 동시에 경험했으며, 1974년부터 시행된 고교평준화제도로 속칭 ‘뺑뺑이’로 고교에 진학한 첫 세대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 격동기의 여러 특징적인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58년 개띠’는 고유명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정치 경력에서도 닮은 듯 대칭을 이루는 지점들이 있다. 이 대표는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영남을 주요 기반으로 하는 보수정당사(史)에서 첫 호남 출신 대표이고, 추 대표는 반대로 60여년 호남을 주요 기반으로 한 민주당사(史)에서 대구·경북(TK) 출신 대표가 됐다. 이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추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됐다는 점도 닮은 점이다. 동갑내기 여야 대표 외에도 20대 국회에서는 1958년생 정치인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여권에서는 잠룡 중 한 명인 유승민 의원과 전반기 국회부의장인 심재철 의원, 소장파 출신의 5선 의원인 정병국 의원 등이 있다. 야권의 더민주에서는 역시 잠룡으로 꼽히는 김부겸 의원과 ‘전략통’ 민병두 의원이 있고, 국민의당에서는 정책위 의장으로 활약 중인 김성식 의원 등이 모두 1958년생이다. 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 시기를 지나며 야권 정치의 신진 중추로 떠올랐던 ‘86그룹’은 이번 더민주의 전대를 통해 한걸음 물러서는 분위기다. 당 대표 예비경선에서 충격의 컷오프를 당한 송영길 의원을 비롯해 유은혜 의원이 여성 최고위원을 놓고 막판까지 각축을 벌이다 패배했고, 박홍근 의원도 서울시당위원장 경선에서 고배를 들었다. 우상호 원내대표가 참모에서 리더로 거듭난 ‘86그룹’의 기수 노릇을 여전히 하고 있지만, 그 외 인사들은 주역의 자리를 일단 한 세대 위 선배들에 도로 넘겨주게 된 셈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새누리 계파 ‘핵분열중’] YS계 분화… 2002년 親昌 vs 反昌 구도 형성…2007년 대선 경선, 親李 vs 親朴 ‘지독한 갈등’

    여권의 계파 정치는 투쟁과 분화를 통해 역사를 이어 왔다. 그 뿌리로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를 꼽을 수 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이끄는 동교동계와 양대 산맥을 이룬 정치 파벌이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민주화추진협의회의 두 축이었다. 상도동계는 1990년 ‘3당 합당’을 계기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의 주류를 이뤘고, 그 후신인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에서 민주계로 불리며 맥을 이어 왔다. 현역 의원 중 대표적인 상도동계는 서청원·김무성·정병국 의원 등이 있다. 1997년 이후부터는 유력 대권 주자를 중심으로 주류 세력이 재편되는 양상이 반복됐다. 1997년 대선을 계기로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주류 세력이 형성됐다. 그러나 2002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당은 친창(친이회창)과 반창(반이회창)으로 나뉘었다. 대표적인 반창 인사는 박근혜 대통령으로, 2002년 이 총재에게 반기를 들어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기도 했다. 현재 새누리당의 계파 갈등 구도가 형성된 것은 2007년 대선 경선부터다. 이명박·박근혜라는 양강 후보가 맞붙으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친이계에서 주도한 2008년 총선 공천에서 친박계가 대거 탈락하며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낙천한 친박 인사들은 탈당해 무소속 출마하거나 친박연대를 창당해 뭉쳤다. 서청원 의원이 친박연대 대표였다. 친이·친박 갈등은 2010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으면서 극단으로 치달았다. 박 대통령은 본회의장에 직접 서서 세종시 수정안 반대 토론에 나섰고, 결국 수정안이 부결되면서 두 계파는 완전히 갈라섰다. 이어 박 대통령이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2012년 총선에서는 2008년과 반대로 친이계가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다. 지난 4·13 총선에서도 당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매김한 친박계와 이를 견제하려는 비박계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공천을 놓고 ‘정신적 분당’ 상태까지 치달았다. 이후에도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을 의식해 ‘응급처치’만 한 채 끌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여권의 계파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安·千 지도부, 청년벤처인 잇단 고사로 막판 김수민 선택

    安·千 지도부, 청년벤처인 잇단 고사로 막판 김수민 선택

    국민의당의 4·13 총선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서 애초 ‘청년 창업 벤처혁명’ 몫의 비례대표 유력 후보군에 김수민(30) 의원이 포함되지 않았으나, 후보군들이 모두 고사하는 바람에 고육지책으로 김 의원이 선택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천 마감에 쫓긴 가운데 안철수, 천정배 상임공동대표 등 지도부가 당의 브랜드 홍보 작업에 참여한 기업 대표로 눈여겨봐뒀던 김 의원을 포함한 몇 명의 후보를 놓고 막판 저울질하다가 김 의원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들과 비례추천의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당시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았던 김영환 사무총장이 중심이 돼 청년 창업벤처 비례대표를 영입하려 했다. 국민의당은 전략공천 몫으로 과학기술 혁명, 교육혁명, 창업 벤처 혁명 등의 몫으로 3명을 배정했다. 이에 따라 안 대표와 천 대표 등 지도부는 비례대표 1번 과학기술 혁명과 2번 교육혁명 몫으로 각각 신용현, 오세정 의원을 전략공천했다. 비례대표 1, 2번을 찾는 과정에서 상당한 난항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창업 벤처혁명 몫은 막판까지 인재 영입시도가 무위에 그쳤다. 김 사무총장이 벤처 기업인을 중심으로 수십명을 상대로 타진했으나, 제안한 비례대표 순번이 당선 안정권 밖인데다, 정치입문에 대한 부담으로 대부분 고사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당시 당의 지지율이 6∼8% 바닥을 칠 때여서 젊은 인재를이 합류하는 것을 주저한데다, 당선 안정권도 6번 이내로 간주돼 더욱 그랬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에서 공천 마감 시간이 임박하자, 국민의당은 애초 홍보 업무를 통해 눈여겨봐뒀던 김 의원을 포함해 몇 명의 인사들을 안 대표와 천 대표 등 지도부에게 추가로 올렸고, 두 대표는 김 의원의 공천을 확정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채이배(41) 의원이 비례대표 6번, 김 의원이 7번을 받은 이유도 미래정당을 표방한 국민의당 비례대표 후보들의 평균 연령이 50대로 높은 점 등이 감안돼 앞당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김 의원은 이 사건과 연루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서울의 한 대학의 김 모 교수에 의해 국민의당에 추천됐다. 김 모 교수는 김 사무총장이 당에 추천한 인사로, 김 의원의 모교 지도교수이자 김 의원이 대표로 있던 디자인 관련 벤처기업 브랜드호텔을 처음 만든 인물이다 이와 관련해 당내에서 ‘리베이트 의혹’을 제기해온 한 인사는 “김 사무총장이 당에 김 의원을 소개한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사무총장은 “내가 김 교수를 당에 소개했다. 당시 선거캠프에서 너무나 홍보 작업이 안 됐기 때문이다”면서 “그러나 김 의원은 내가 추천한 사람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안 대표는 총선 전인 지난 3월 3일 청년 벤처 창업 현장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브랜드호텔을 방문해 김 의원으로부터 정치 홍보 등과 관련한 브리핑을 들었고, 이어 브랜드호텔은 국민의당의 PI(Party Idendtity) 업무를 맡게 됐다. 같은 달 22일에는 안 대표가 김 의원과 함께 국민의당의 PI를 발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김 의원이 지도부에 알려진 셈이다. 김 의원이 낙점받기 직전에서야 김 의원의 아버지가 전 신한국당 전국구 의원이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도부에 “재고해야 하다”는 의견도 개진됐으나 지도부 내에서 “아버지의 정치활동 문제를 딸에게 적용하는 것이 맞느냐”는 의견이 나오며 비례대표 후보로 최종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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