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신학교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구축사업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원내대표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버지니아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해설위원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15
  • 증권계좌로 모든 금융거래

    증권계좌로 모든 금융거래

    빠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증권계좌로 신용카드 대금과 지로요금을 결제하고 급여 이체나 입·출금 및 송금 등의 각종 은행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창업을 돕기 위해 상법상 5000만원인 최저자본금 제도가 폐지되고,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간병사업 등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에는 정부가 직접 비용을 지원한다. 또 건강보험이 책임지지 못하는 특진이나 특실 이용, 신약·신기술 치료, 치과 등과 관련된 의료비를 보험사가 상품으로 보장해 주는 ‘보충형 민간의료보험’ 제도가 활성화된다.(서울신문 11월18일자 1면 보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교의 설립과 운용 자금을 지원하되,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공영형 혁신학교’(자율 공립학교)를 도입,2007년부터 시·도별로 1개씩 시범 운용하게 된다. 정부는 28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경제민생점검회의 겸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열어 내년에 5% 성장과 35만∼40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2006년 경제운용방향’을 확정해 발표했다. 정부는 내년도 경제정책의 무게중심을 ‘경제활력의 회복’과 ‘지속적 발전기반의 구축’에 중점을 두기로 하고 성장잠재력 확충 등 5대 정책과제와 서비스산업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등 10대 중점과제를 선정했다. 아울러 거시정책은 당분간 소폭의 확장기조를 견지하되, 경기상황을 봐가며 탄력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과거와 같은 경기부양은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경제운용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상반기 중 증권사 등 금융투자회사가 은행 공동전산망에 가입, 증권계좌만으로 입·출금 등 은행거래가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키로 했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증권사 대표기관과 은행들간 협의가 마무리되면 고객들은 내년 하반기에 증권계좌를 은행계좌처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하고, 보충형 민간의료보험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건강보험공단과 보험사가 질병통계 등의 정보를 공유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올해 기한이 끝나는 기업에 대한 임시투자세액공제도 1년간 연장된다. 임시투자세액공제는 투자액의 일정 비율만큼 세금을 깎아주는 것으로, 경기부양 효과가 크다. 외국인 변호사의 국내 사무소 개설도 허용하기로 했다. 체육진흥기금을 활용한 퍼블릭 골프장도 매년 2개씩 만들 계획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2006년 경제운용 계획] 관심끄는 정책들

    [][2006년 경제운용 계획] 관심끄는 정책들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경제운용계획 중에는 기업형 사회적 일자리, 공영형 혁신학교, 실손형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 눈길을 끄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증권사를 통한 은행 입출금 부가서비스 이르면 2007년부터 증권계좌를 은행계좌처럼 쓸 수 있게 된다. 주식위탁계좌를 개설할 때 받은 증권카드로 모든 은행의 현금입출금기(ATM)를 사용,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지금도 개별 증권사가 특정 은행과 제휴를 맺어 사용이 가능했지만 영업시간에만 가능하고 일부 서비스는 안되는 불편이 있다. 주식위탁계좌가 급여이체나 신용카드 이용대금과 지로요금의 결제계좌가 될 수 있다. 증권·신탁·선물 등 모든 금융투자업무를 할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가 대표기관을 통해 결제, 송금, 수시입출금 등 부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보충형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자기영상공명장치(MRI), 특진 등 국민건강보험이 지원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지원하는 보험이 많아질 전망이다. 현재 민간의료보험은 ‘암 진단시 몇천만원’식의 정액형이 주이며 고객들이 실제 낸 의료비를 보험금으로 주는 실손보험은 전체 민간의료보험시장의 10% 미만이다. 가입자의 손해(의료비)에 비례한 보험금 지급이어서 상품개발에 특정 질병 관련 통계가 필요하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이 갖고 있는 통계 중 개인진료기록을 제외한 정보를 민간보험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표준약관 등을 마련할 방침이다. ●기업형 사회적 일자리 간병인, 가사도우미, 공부방 보조교사 등 공익성만 강조된 사회적 일자리에 시장성을 가미, 기업화할 수 있도록 지원된다. 예컨대 간병인의 경우 저소득층은 일부 예산을 지원해 싸게 쓸 수 있게 하고 중산층은 시장가격을 적용, 자체 수익원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예산 지원방식으로는 쿠폰제가 유력하다. 취약계층에 대한 고용이나 서비스 제공 등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기업은 법인세 감면 등 재정지원까지 받으며 영리성이 큰 기업은 정부의 인증만 부여된다. 내년에 60억원으로 시범사업이 실시되며 ‘사회적 기업지원에 관한 법률(가칭)’도 만들어진다. ●자율형 공립학교(공영형 혁신학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금을 부담하지만 운영은 자립형 사립고에 준하는 자율성을 갖는 학교다. 교육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도입을 위한 제도적 준비를 마치고 2007년부터 시·도별로 1개씩 시범운영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운영비는 교육감과 지방자치단체, 학부모가 3분의1씩 나눠 부담한다. 운영은 교육부나 각 시·도교육청이 될 인가권자와 협약을 맺은 학교법인, 종교단체, 비영리법인, 공모교장, 지방자치단체 등이 맡는다. 학생선발, 교직인사, 교과서 선택 등에 있어 자율성을 갖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진다. 교육과정은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외에는 자율적으로 결정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오스트리아리그 ‘올해의 선수’ 서정원

    [스포츠 라운지] 오스트리아리그 ‘올해의 선수’ 서정원

    ##장면1.15일 오스트리아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한국의 노장이 유력 일간지 ‘쿠리어’가 선정한 ‘올해의 최고 선수’에 선정됐고, 유력 스포츠주간지 ‘슈포르트보헤’도 이 선수를 평점 1위(평점 7.14)에 올려놨다는 소식. 오스트리아 프로축구 1부리그 10개팀 300여 선수 가운데 ‘넘버 1’이란 뜻이다. ##장면2.1994년 6월17일 댈러스에서 열린 미국월드컵 조별예선. 스페인에 2골을 먼저 내준 한국은 종료 6분을 남기고 홍명보가 겨우 한 골을 만회했다. 시계가 점점 멈춰서며 모두가 꼭 쥐었던 주먹에서 힘이 빠질 때쯤,172㎝ 단신 선수가 벌칙구역 오른쪽을 비호 같이 파고들며 홍명보의 패스를 받아 오른쪽 구석으로 대포알 같은 슛을 꽂아넣었다. 순간 한반도는 진동했다. 강산도 변한다는 11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나이를 잊은 채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주인공은 올시즌 오스트리아 SV리트에서 22경기 7골로 활약 중인 ‘날쌘돌이’ 서정원이다. 지난 10일 전기리그를 마치고 휴식차 한국에 돌아온 서정원을 14일 서울 압구정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보약 하나없이 만든 강인한 체력 목마를 때도 커피 대신 녹차, 콜라 대신 주스를 마셨다. 술 담배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저녁에 과일 한 접시 먹는 걸 빼놓지 않았다. 운동 선수들은 입에 달고 산다는 보약도 먹지 않았지만 이런 노력이 쌓였다. 축구 선수로는 환갑이라는 서른 다섯이 됐어도 서정원은 22경기를 풀타임으로 뛸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유지했다. 주민 1만 5000명의 작은 마을 리트에서 ‘세오’ 서정원은 ‘영웅’이다. 주민의 절반인 8000명이 꽉 들어찬 홈구장에서 환호를 받으며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1위와 승점 6점차 6위, 홈경기 28연속 무패를 맨앞에서 이끌고 있다. ●지도자 수업하러 갔다 리그 최고 공격수로 K-리그 수원에서 2004년 시즌을 마치고 유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선진국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으며 선수 생활을 마치고 싶었다. 마침 97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시절 친구와 수원의 독일출신 마토 코치가 SV잘츠부르크를 소개해줘 가방을 쌌다. 한국에선 작은 실수에도 한물 갔다는 비아냥이 돌아왔지만 오스트리아는 달랐다. 잘츠부르크에서 12경기 2골을 넣었다.04∼05시즌을 마치고 리트의 하인츠 호아우저 감독과 단장 등이 달려와 지극정성으로 설득해 팀을 옮겼다. 나를 믿어주는 팀에서 뛰니 몸 컨디션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스위스는 유로 2004 그리스 같은 팀” 2001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불렀지만 십자인대 파열 후유증 탓에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지켜만 봤다. 지금도 국가대표로 부르면 달려갈 수 있지만 잘하는 후배들을 보는 것과 현 상태로도 행복하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접경 스위스에 대해 한마디는 잊지 않는다. “터키와 스위스의 플레이오프 때 많은 전문가들이 터키의 우세를 꼽았지만 나는 반대였다.”면서 “화려하진 않지만 빅리그에서 살림꾼 역할을 하는 선수들로 구성된 스위스는 유로2004를 제패한 그리스 같이 조직력을 갖춘 방심할 수 없는 강팀”이라고 충고했다. 서정원의 꿈은 유럽에서 배운 ‘친구 같은 지도자’가 되는 것. 서정원은 “실수했을 때 한 번 더 다독여 주고 선수들의 심리상태까지 파악해서 스트레스를 풀어 주는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서정원은 ●생년월일 1970년 12월17일 경기 광주 출생 ●체격 172㎝ 67㎏ ●출신학교 경기 광주 남한산초-연초중-거제고-고려대 ●취미 여행 ●주력 100m 12초 ●가족 부인 윤효진(72년생)씨, 아들 동훈(9) 동재(8) 동한(4) ●주요경력 1990이탈리아-1994미국-1998프랑스월드컵 국가대표,1992바르셀로나올림픽 대표,1999년,2001년,2002년 프로축구 K-리그 ‘베스트 11’,1997년 프랑스 1부 스트라스부르 선수,2005년 2∼6월 오스트리아 SV잘츠부르크 선수 겸 코치,2005년 6월∼현재 오스트리아 SV리트 선수 겸 코치
  • [공기업 취업 성공기] “3학년때 진로 정하고 한 길 갔죠”

    [공기업 취업 성공기] “3학년때 진로 정하고 한 길 갔죠”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다. 이공계 기피현상과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신문기사 등을 접하면서 걱정이 태산같았다. 대학 3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진로선택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고 결국 차별이 덜한 공기업을 노크하기로 결정했다. 목표를 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준비해야할 일들도 서서히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기술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격증 취득이 선결과제로 등장했다. 물론 높은 어학점수도 필수이기 때문에 방학 동안 어학과 자격증 취득을 병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학교 공부는 학기 중에 해결한다는 자세로 임했다. 마지막 학기에 자격증 한 개를 더 따 자격증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대생들의 최대 약점인 어학점수를 올리는 것이 문제였다. 인터넷을 통해 토익스터디를 구성해 몇 달 동안 최선을 다한 결과 공기업에 지원가능한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어학과 자격증 문제를 해결한 뒤 본격적으로 전공과 상식 공부에 몰두했다. 특히 어렵게 취득한 자격증은 한국마사회 입사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마사회가 올해부터 서류전형에서 연령과 학력제한을 철폐함으로써 더 많은 지원자들이 몰렸다. 면접도 선입견을 줄 수 있는 출신학교, 출신지역 등을 비공개로 해 투명성을 높였다. 그런 만큼 합격이라는 알찬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남보다 뛰어난 경쟁력을 갖춰야 했다. 필기시험은 각종 전공서적들을 복습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 다행히 전공 지식을 이용해 해결하는 문제가 많이 출제됐다. 면접시험을 위해 마사회 홈페이지나 신문기사 등을 꼼꼼히 챙겼다. 마사회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의견도 많이 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마사회가 펼치는 사업과 사회 공헌도, 국민인식, 문제점 등을 두루 알 수 있었다. 1차 면접은 면접관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그런지 답하기 곤란하거나 어려운 질문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2차 면접은 여러 임원들이 산발적으로 질문을 했다. 마사회에 대한 사전 지식과 신문기사를 통해 사회적 이슈 등을 놓치지 않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며칠 뒤 최종합격자 발표가 났고, 합격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 됐다. 김영락 KRA 통신분야 사원
  • [스포츠 라운지] ‘잡초군단’ 인천 준우승 이끈 장외룡 감독

    [스포츠 라운지] ‘잡초군단’ 인천 준우승 이끈 장외룡 감독

    ##장면1 1978년 연세대학교 운동장. 아침과 밤이슬이 내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그가 등장했다. 시멘트 벽에 200개씩 왼발킥을 찼다.1년 전만 해도 경성고등학교에서 오른발 하나로 고교대회 득점상까지 탔던 그였지만 내로라하는 선수들만 모인 연세대에서 그가 꿰찰 자리는 왼쪽 풀백뿐이었다. 남에게 지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그는 수첩에 또박또박 적어둔 ‘선후다(先後多)’란 좌우명처럼 ‘남보다 5분 일찍 5분 뒤까지 5분 더’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어느새 왼발의 달인이 된 그는 대학 4년 동안 한 번도 주전 자리에서 밀리지 않았다. ##장면2 1989년 몸 하나만 믿고 대한해협을 건넜다. 일본 아마추어 축구팀인 PJM재팬에서 그를 스카우트한 것. 한 마디도 모르는 일본어가 문제였다. 손에 든 건 달랑 사전 하나뿐. 새벽시간 투자가 다시 시작됐다. 단어 크게 읽기부터 TV 뉴스 보며 발음 익히기 등으로 노력한 끝에 여섯달도 채 되지 않아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팀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일본의 FA컵 격인 일왕배 16강까지 팀을 끌어올렸다. 25살 때 문득 깎기가 귀찮아져 덥수룩하게 내버려둔 턱수염이 이젠 트레이드마크가 돼버린 그는 올 프로축구에 ‘잡초군단’ 돌풍을 이끌며 ‘우승 같은 준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은 인천의 지략가 장외룡(46) 감독이다. ●한국인 최초의 J-리그 감독이 되기까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공을 찼다. 또래보다 한뼘 작은 키가 발목을 잡았지만 경성중 감독이 기술이 좋고 기초가 잘 잡혔다며 선뜻 받아줬다. 대학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불운의 연속이었다. 정해원, 이태호 등과 뛰던 1978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 시작이자 끝.82년 스페인월드컵 예선이었던 아시아선수권 결승에서 홈팀 쿠웨이트에 석패, 월드컵 문턱에서 눈물을 흩뿌렸고 같은 해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선 해방 뒤 처음으로 일본에 져 선수식당에서 밥도 못 얻어먹으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84년 무릎인대를 다쳐 2년 뒤 멕시코월드컵 본선도 TV로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프로에선 빛을 발했다.82년 대우에 입단, 이듬해 곧바로 슈퍼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3년 연속 베스트11에 뽑히기도 했다.87년 다시 한번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춘 뒤 미련없이 유니폼을 벗었다. 일본을 택한 건 지도자의 꿈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때를 잘 맞춰 J-리그의 태동기 때부터 현장에서 발전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유소년과 지도자 육성 프로그램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 어느덧 동네축구팀까지 수만 개의 팀을 갖춘 일본 축구의 성장을 누군가는 공부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는 1999년 일본어 시험으로 일본 최고지도자 자격증(S급)을 따낸 유일한 외국인 감독이 됐다. 2000년부터 베르디 가와사키와 콘사도레 삿포로 등 J-리그 최초의 한국인 사령탑으로 활약했다. ●대표선수없는팀 확실한 색깔 만들어 시민구단을 창단한 안종복 단장의 간곡한 부름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예상은 했지만 상황은 정말 열악했다. 프로 팀 가운데 유일하게 전용 연습장이 없었다. 경기 파주와 가평 연습장으로 2∼3시간씩 오가며 운동하는 바람에 선수들은 피로를 풀 수 있는 시간도 못 가졌다. 감독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밤을 꼬박 새워가며 인천의 경기와 다음 상대의 경기, 다음 상대와의 이전 경기를 10분짜리 비디오 테이프로 핵심만 추려내 선수들에게 보여줬다. 국가대표 하나 없이 패배의식에만 젖었던 선수들은 장 감독의 확실한 목표설정 앞에 자신감 가득찬 눈빛으로 변해갔다. 장 감독은 “준우승이 결정된 순간 쉼없이 달려온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슴이 아렸다.”고 말했다. 잠시 쉴 뿐, 그는 다시 내년을 준비한다. 또다른 한 가지 꿈도 오롯이 그의 심장에 박혀 있다. 선수로서 서보지 못한 월드컵 무대에 감독으로 서보는 것이 그의 마지막 목표다. 장 감독은 “죽어서도 그라운드에 뼛가루를 뿌려달라고 가족들에게 말했다.”며 의연한 표정을 짓는다. 악수하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왠지 거인처럼 느껴진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장외룡 감독은 ▲생년월일 1959년 4월5일 전남 고흥 출생 ▲체격 178㎝ 70㎏ ▲출신학교 서울 불광초-경성중-경성고-연세대 ▲취미 없음. 오로지 축구. ▲가족 부인 황명숙(46)씨와 딸 진아(21), 아들 동훈(17) ▲주요경력 1979∼84 국가대표,1982∼87 프로축구 대우 선수(84슈퍼리그 우승, 베스트11 3차례 수상),1989∼96 일본 아마추어팀 PJM재팬 플레잉코치 및 감독,1997∼1999 대우 수석코치 및 감독대행,1999 일본축구협회 공인 S급 지도자 자격 취득,2000 J-리그 베르디 가와사키 감독,2001∼03 J-리그 콘사도레 삿포로 감독,2005 인천 감독 취임
  • [儒林 속 한자이야기] (99) 新儒學(신유학)

    儒林 (478)에는 ‘新儒學’(새로울 신/선비 유/배울 학)이 나오는데, 이 말은 英文(영문) ‘NEo-Confucianism’의 飜譯語(번역어)이다.西方(서방)의 學者(학자)들은 중국의 宋·明理學(송·명리학)을 가리켜 習慣的(습관적)으로 ‘新儒學’이라 칭하였고, 중국 學界(학계)에서도 이를 용인함으로써 점차 流行(유행)하게 되었다. ‘新’자는 본래 ‘땔감’이라는 뜻을 나타낸 形聲字(형성자)였으나 점차 ‘새롭다’라는 觀念(관념)으로 借用(차용)되면서 본래의 뜻인 ‘땔감’은 ‘薪’으로 대신하였다.用例(용례)에는 ‘新陳代謝(신진대사:생물체에서 영양물을 섭취·배설하는 작용),溫故知新(온고지신: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 등이 있다. ‘儒’자는 意符(의부)에 속하는 ‘人’과 意符(의부)인 ‘需’(구할 수)가 결합되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을 나타내었다.‘儒生(유생:유학을 공부하는 선비),鴻儒(홍유:뭇사람의 존경을 받는 이름난 선비)’등에 쓰인다. ‘學’자는 ‘새끼를 꼬아 지붕을 얽은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배우다’가 본뜻이나, 지붕을 얽는 모습으로 ‘배우다’라는 뜻을 나타낸 것에 대해서는 定說(정설)이 없다.用例에는 ‘博學多識(박학다식:학식이 넓고 아는 것이 많음),學閥(학벌:학문을 닦아서 얻게 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 출신학교나 학파에 따라 이루어지는 파벌)’등이 있다. 秦(진)나라 이전 시대의 유학을 原始儒學(원시유학), 또는 先秦儒學(선진유학)이라고 한다. 이후 유학사상은 官學(관학)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며 통치 이념으로 부각된 漢·唐(한·당)시대에 이르는 동안을 漢唐儒學(한당유학)이라 한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性情(성정)에 기초한 지극히 常識的(상식적)이고 평범한 가르침인 先秦儒學사상 자체의 논리만으로는 佛敎(불교)및 道敎(도교)의 거센 도전에 대응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등장한 新儒學은 形而上(형이상)의 문제를 깊이 穿鑿(천착)하였다.新儒學은 佛敎와 道敎에서 취한 이론 형식들을 근거로 새로운 이론 체계를 확립하고, 다시 佛敎의 反人倫性(반인륜성)과 道敎의 反文化主義(반문화주의)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朱子(주자)가 집대성한 신유학(=性理學)의 중점 과제는 宇宙論(우주론)과 人性論(인성론)으로 集約(집약)할 수 있다. 주자를 비롯한 일군의 신유학자들은 자연과 사회 현상을 理(리)와 氣(기)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 이해도 理氣論(이기론)에 바탕을 두어 本然之性(본연지성)과 氣質之性(기질지성)의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人性論(인성론)으로 體系化(체계화)한다.本然之性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본래 존재하고 있는 理로서,道德的(도덕적) 本性(본성)이다. 반면 氣質之性은 인간 형성에 관여하는 氣에 의해 형성된다. 이것은 肉體(육체)와 感覺(감각)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本能(본능)이다. 성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도덕 실천을 통해 本然之性에 따르는 생활방식을 가져야 한다. 사물의 이치를 끊임없이 窮理(궁리)하고 인욕의 발동을 억제하는 居敬(거경)에 힘써야 한다. 이것이 육신과 더불어 五慾(오욕)·七情(칠정)의 한계에서 벗어나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길이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스포츠 라운지] 경찰청야구단 김용철 초대 감독

    [스포츠 라운지] 경찰청야구단 김용철 초대 감독

    ♥그는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11시즌 동안 통산 1024경기에 출전해 홈런 131개, 타점 555개, 타율 .283을 기록했다. 기록이 말해주듯 중장거리 타자로서 꾸준히 활약했다. 그러나 유난히 상복은 없었다. 최다승리타점왕(84년), 골든글러브 2회가 프로 수상 경력의 전부다. ●코치·선수구성 끝내… 내년 2군리그 참가 그는 프로야구 원년 여름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스타다.82년 7월 올스타전 1·2차전에서 만루홈런 등 홈런 4개를 친 김용희에게 ‘미스터 올스타’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올스타전 첫 랑데부 홈런의 주인공이었고,2차전 한 경기에서 최다인 3개의 대포를 쏘아올렸다. 그리고 그는 1일 창단식을 가진 ‘경찰청 야구단’의 초대 사령탑에 올랐다. 김용철(48) 감독이다. 김 감독은 지난 2003년 롯데 감독권한대행 자리에서 물러난 지 꼭 2년 만에 야구판으로 돌아왔다. “경찰청야구단은 ‘국민 야구단’을 지향합니다. 야구를 통해 국민에게 봉사하는 구단이 될 것입니다.” 내년부터 프로야구 2군 리그에 참가하면서도 중간중간 동호인야구팀과 경기를 치르고, 일반인을 상대로 야구캠프를 열겠다는 김 감독은 2년간 목말랐던 야구에 대한 열정을 폭발시키는 ‘야구 전도사’의 모습이다. ●“열악한 경기장 시설 보강해야” 일침 그는 현재의 열악한 야구 인프라 문제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 감독은 “우리 경기장 시설은 미국·일본의 동네 야구장 정도로 열악한 형편”이라면서 “야구장에서 맥주를 파는 것이 팬서비스가 아니라 시설을 보강하고 확충하는 것이 진정한 팬서비스”라고 강조했다. 야구계의 숙원인 돔구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어린 선수들이 마음 놓고 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도록은 해야 한다는 얘기다. 야구 전체의 중장기적 발전을 생각하는 그는 내년 성적 자체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이 처음부터 성적에 욕심을 부리면 선수들이 무리하다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면서 “내 꿈은 선수들이 성적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큰 부상없이 경기력을 한껏 끌어올려 각자 팀으로 돌아갔을 때,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란다. 김 감독은 이미 정현발 전 해태 코치와 임기정 해설위원 등 동고동락할 코치 2명을 선임했고, 프로 2군과 일반 선수 등으로 꾸려진 ‘외인구단’이지만 선수 25명 구성도 마쳤다. 선수들 얘기가 나오자 김 감독의 칭찬이 줄을 잇는다. 비록 팬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잡지는 못하지만 ‘2군의 선동열’ 나형진(27)과 ‘2군의 홍성흔’ 최형우(22·이상 삼성)가 막강 배터리를 구성한다고 자랑했다. 나형진은 올시즌 2군 남부리그에서 다승 2위(8승7패)에 올랐고 최형우는 남부리그 타격 2위(타율 .322)에 홈런 6개, 타점 39개를 기록한 ‘대형 포수’다. ●성적보다 선수 경기력 향상에 주력 사실 그는 지난해 ‘잠깐의 외도’를 했다. 부산상고 선배로서 각별한 친분을 맺고 있던 조영동 전 국정홍보처장이 지난해 총선(부산진갑)에 출마하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최선을 다해 도왔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김 감독은 ‘몸에 안 맞는 외투’를 벗어버리고 오히려 홀가분하게 자유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만약 당시 조 후보가 당선됐다면 정치판에 남아 야구와는 다시 인연을 맺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저는 야구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유니폼 입고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 김용철 감독은 ▲생년월일 1957년 9월21일생 ▲신체 184㎝,85㎏ ▲출신학교 부산동광초-부산대신중-부산상고 ▲주요 경력 한일은행 내야수(1976∼81년)/삼성·현대·롯데 수석코치(93∼2003년 8월)/롯데 감독 대행(2003년 8월∼10월)/경찰청야구단 초대감독(2005년 12월) ▲주요 수상 최다승리타점왕(1984년), 골든글러브 1루수(1984년), 골든글러브 지명타자(1988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제2의 전병관’ 올림픽 金 기대주 이종훈

    [스포츠 라운지] ‘제2의 전병관’ 올림픽 金 기대주 이종훈

    갈색으로 물들인 파마 머리와 왼쪽 귀에서 반짝대는 귀고리,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 미소만 보면 그냥 튀는 10대처럼 보인다. 하지만 꿈틀대는 핏줄이 잔뜩 곤두선 팔뚝과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 근육으로 꽁꽁 뭉친 허벅지는 그가 예사롭지 않은 완력을 지닌 사내임을 보여준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그에게 역도를 시작한 이유를 물었더니 “팔씨름에서 누구한테도 지기 싫었거든요.”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155㎝,56㎏의 이 청년은 지난 10일 도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낸 ‘제2의 전병관’ 이종훈(19·충북도청)이다. ●팔씨름 지기 싫어 역사(力士)의 길로 충북 제천시 제천동중학교 1학년 교실. 키는 작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헬스 기구를 갖춘 친구 집을 일주일에 2∼3일 들락거리며 완력기를 매만진 종훈이는 교내 팔씨름대회에서 몸집 큰 친구들의 손목을 사정없이 꺾어댔다. 평소 높이뛰기 같은 탄력과 하체 힘이 필요한 운동에서 늘 또래 가운데 으뜸이던 종훈이에게 친구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4강에서 아쉽게 무릎을 꿇었고 방금까지 응원하던 친구들은 곧바로 그를 외면했다. 풀이 죽어 지내던 어느날 학교 역도장의 헬스 기구가 눈에 들어왔고 일주일 동안 어머니 최명자(50)씨를 조른 끝에 종훈이는 역사(力士)의 길로 접어들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국소년체전 은메달을 시작으로 숨겨진 재능이 하나 둘 빛을 보기 시작했지만 그를 본격적인 ‘헤라클레스’로 만든 건 충북체고 1학년이던 2001년이었다. 당시 코치는 종훈이를 자극시키기 위해 일부러 1년 동안 공식 대회에 출전시키지 않았다. 이종훈은 “나보다 기록이 못한 선수들이 대회 입상 성적을 자랑하는 걸 보고 너무 속상했다.”고 돌아봤다. 그때부터 이를 악문 종훈이는 하루 6∼7시간 힘든 단체운동을 끝내고도 밤이슬이 내리는 시간까지 역기를 들었다 놨다 몸을 담금질했다. 2002년 3월 전국춘계대회 3관왕과 4월 전국주니어선수권대회 3관왕,10월 전국체전 고등부 용상 우승 등으로 본격적인 ‘이종훈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2003년에는 6차례의 대회 모두 3관왕을 석권했고 지난 5월 부산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선 용상과 합계에서 한국주니어신기록을 세우며 동메달 셋을 따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 10월 전국체전에서 용상과 합계 한국신기록을 세우며 3관왕에 올라 한국 1인자에 올랐고 지난 10일 세계 무대 데뷔전에선 합계 종목에서 1㎏ 차이로 아깝게 은메달을 따내며 세계 정상급 실력까지 이르렀음을 한껏 뽐냈다. ●전병관에 이어 16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 노려 이종훈의 꿈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닮은꼴 ‘작은거인’ 전병관(36)의 뒤를 잇는 것. 같은 56㎏급에서 1992바르셀로나올림픽과 1994히로시마아시안게임을 제패한 전병관과 같이 2006도하아시안게임과 2008베이징올림픽 금빛 메달을 품에 안기 위해 오롯이 땀을 흘리고 있다.85㎏급 대표팀 선배들과의 팔씨름에서 이길 만큼 타고난 장사인 데다 순발력과 근지구력이 좋아 약점인 엉덩이 근육과 집중력만 보강한다면 섣부른 꿈이 아니다. 국가대표팀 박태민 코치는 “항상 긍정적으로 열심히 운동하기 때문에 용상과 인상에서 5㎏씩만 끌어올린다면 세계 제패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를 번쩍 들어올린 19살 청년 역사의 땀방울에 16년 만의 역도 올림픽 금메달의 꿈도 함께 무르익는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이종훈은 ●생년월일 1986년 2월19일 충북 제천 출생 ●신체조건 155㎝,56㎏ ●출신학교 제천 중앙초-제천동중-충북체고 ●가족 이계광(55)-최명자(50)씨의 2남2녀 중 막내 ●취미 컴퓨터게임 ●별명 코알라 ●주요경력 2002년 11월 전국체육대회 고등부 용상 금메달,2004년 10월 전국체육대회 일반부 3관왕,2005년 5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동메달 3개,2005년 10월 전국체전 3관왕(용상 및 합계 한국신기록),2005년 11월 세계선수권대회 합계 은메달(용상 및 합계 한국신기록)
  • 동대문 ‘씁쓸’… 청량리 ‘환영’

    내년 3월부터 일부 경찰서의 이름과 관할구역이 바뀌면서 해당 경찰서마다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바뀌는 이름과 관할구역에 따라 한쪽에선 만족스러운 웃음이 나오는 반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곳들도 적지 않다. 아쉬움은 60년 경찰역사와 함께 한 유서 깊은 경찰서일수록 더하다. 서울 혜화 경찰서로 이름이 바뀌는 동대문서 관계자는 “동대문이라는 기존 이름만은 지키고 싶다는 의견이 직원들 사이에 있었지만 주민편의에 맞춰 행정구역과 일치시킨다는 대의명분이 있는 만큼 어쩔 수 있겠느냐.”고 했다. 동대문서는 사실상 전통의 이름을 인근 청량리서에 내어주는 셈. 새 이름을 얻게 된 청량리경찰서도 1957년 세워져 48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청량리서 한 과장은 “새이름이 확정되자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동안 있던 업무상 혼선을 덜게 된데다 유서 깊은 이름을 갖게 됐다며 반겼다.”고 말했다. 강남, 영등포 등과 함께 ‘형사사관학교´로 불렸던 남부경찰서 출신들도 아쉬움을 털어놨다. 남부서는 금천서로 바뀐다. 남부서 출신 모 총경은 “이름만 바뀌는 것이라고 해도 마치 출신학교가 없어지는 듯한 느낌에 섭섭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방향의 대표성을 갖는 동·서·남·북부 4개 경찰서 중 서부만 살아남았다. 강북 도심의 대명사로 불리던 ‘명동´을 남대문서에 넘겨주는 중부서나, 역삼, 도곡, 대치 등 대표적인 강남부촌을 수서서에 넘기는 강남서도 희비가 엇갈린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메이저리그 전문가 Xports 송재우 해설위원

    [스포츠 라운지] 메이저리그 전문가 Xports 송재우 해설위원

    1977년 가을.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초등학교 5학년 꼬마의 눈이 순간 번쩍 뜨였다. 죽도록 좋아하는 야구가 AFKN에서 중계되고 있던 것.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보다 호쾌하고 세련돼 보이던 미국프로야구는 고교야구에만 미쳐있던 꼬마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꼬마는 이때부터 이태원 헌 책방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한달 용돈 5000원을 털어 미군들이 내놓은 잡지를 사들고 사전을 찾아가며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영어 공부를 핑계로 미국에 있는 친척에게 메이저리그 전문 서적을 공수받기도 했다. 부모님께 야단맞지 않았느냐고 묻자 “어릴 때 제 손을 끌고 야구장을 찾으셨던 아버님이 어느 날 갑자기 야구 중계를 안 보시더라.”며 멋쩍게 웃는다. 안경 너머로 무언가 골몰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두 눈을 가진 이 사람은 국내 최고의 메이저리그 전문가 송재우(39) Xports 해설위원이다. ●신혼여행도 야구장으로 푹 빠져 살았다. 고등학교 땐 독서실에 간다고 부모를 속이고 동대문야구장에 출근도장을 찍기도 했다. 야구장 한구석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자리를 지키며 ‘송재우식 기록지’까지 만들어 야구를 즐겼다. 당시 한국야구엔 생소했던 이닝당 삼진수와 이닝당 볼넷 허용수, 자책·비자책점 비율과 득점권 타율 등 15개 항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고 자기만의 눈으로 야구를 봤다. 송 위원은 “그땐 내가 그 기록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메이저리그에서 오래 전부터 기록하고 있던 것들이었다.”며 미소지었다. 90년 군대를 다녀온 뒤 컴퓨터 공부를 위해 훌쩍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떠났다. 현장에서 직접 두 눈으로 본 메이저리그는 그를 단박에 사로잡았다. 시간만 나면 야구장을 들락날락거렸다.93년 결혼하며 떠난 신혼여행지마저 야구팀이 있는 오클랜드와 LA, 샌디에이고였을 정도.“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야구를 좋아하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어 결혼을 허락한 아내마저도 치를 떨었다. 광활한 미국 땅 곳곳에 있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야구장 가운데 그가 가보지 못한 곳은 5∼6군데밖에 없다.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우연히 방문했던 LA에서 본 박찬호의 데뷔전. 그는 “우리나라 선수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우뚝 서는 걸 직접 본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며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막 해야 할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마니아에서 해설가로 98년 9월 9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온 지 보름 만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미국 시절 일요신문 통신원을 하며 알게 된 한 스포츠평론가가 그를 당시 박찬호 독점중계를 맡던 iTV에 소개하고 싶다며 물어온 것. 마니아에서 해설위원이 되는 것이었지만 호락호락하고 싶진 않았다. 적어도 하루 5∼6시간 연구에 몰두했다. 매일 15경기 기사를 모두 읽는 건 기본이고 전문 책자와 인터넷 자료까지 골고루 검색해 선수들의 사생활까지 다 뀄다. 마니아들이 뭉친 인터넷 카페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이 때문에 그의 해설엔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가 가득 담겨 있다.8년 동안 전문 해설위원으로 3개 방송사를 오간 비결이다. 송 위원에겐 두 가지 꿈이 있다. 그는 미국 ESPN 선데이나잇베이스볼의 해설위원인 조 모건과 같이 편안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해설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다. 척박한 우리나라 스포츠 환경에서 미국에서 배운 스포츠산업을 키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건 또 다른 꿈. 송 위원은 “비시즌 땐 선수들 계약 여부와 시즌 정리 자료를 정리하느라 또다시 분주해진다.”면서 “마니아들이 해설위원 되는 법을 많이 묻는데 방에서 인터넷을 통해 기록만 챙기는 것보단 직접 야구 경기를 보러가는 아날로그적 방법을 권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 송재우 위원은 ●생년월일 1966년 8월 3일 서울 출생 ●출신학교 서울 광운초-남대문중-경신고-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유니버시티 컴퓨터인포메이션시스템 전공-대학원 같은 전공 MBA 수료 ●취미 물론 야구, 그밖에 음악·영화감상 ●가족 부인 윤석경(37)씨와 아들 규호(11), 딸 지호(5) ●주요경력 일요신문 미국통신원,1998년 iTV해설위원,2001년 MBC해설위원,2005년 Xports해설위원 및 방송전략팀장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이사람] 구약 8년만에 우리말로 완역 최의원 박사

    [이사람] 구약 8년만에 우리말로 완역 최의원 박사

    “어렵게만 느껴지는 성경책이 한글의 아름다움과 만나 종교를 초월해 쉽게 읽혀지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전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베스트셀러 성경. 그러나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성경을 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원어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표현에, 고어들도 많아 각주를 읽지 않고는 해석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특히 히브리어가 원어인 구약성경은 학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여기, 지난 8년간 구약성경을 원어에서 쉬운 순우리말로 혼자 완역한 사람이 있다. 국내 최고의 성경학자이자 14개 국어에 능통한 히브리어학자인 최의원(82·한국개혁신학회 고문) 박사가 주인공이다. 천안대 신학대학원장을 끝으로 은퇴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개인 사무실에서 시작한 구약성경 완역작업이 마침내 ‘새즈믄 우리말 구약정경’(신앙과 지성)이라는 제목의 13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으로 탄생했다. 정경(正經)이란 교회가 이를 받아들여 성경으로 바꾸기 전 상태를 의미한다.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와 최근 출판기념회를 가진 최 박사를 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그의 수제자인 유동표 목사가 운영하는 경기도 성남시 국군체육부대내 상무백석교회에서 만났다.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 미국·유럽 등에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자국어로 완역한 성경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원어를 영어나 일본어·중국어 등으로 번역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정확성이 떨어지고 어려운 단어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최 박사가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것은 지난 1963년 대한성서공회의 성경 공동번역작업에 참여하면서부터.97년까지 수차례 번역작업을 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는 “그동안 공동작업을 하다 보니 의견을 하나로 모아 정확한 번역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면서 “순우리말로 된 정확한 완역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은퇴와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번역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 타국에서 혼자 시작한 번역 작업은 쉽지 않았다. 매일 4시간씩 번역을 하고 나머지 시간도 사색과 산책을 하며 다음날 번역을 위해 준비했다. 그러나 오래 앉아 있다 보니 다리에 마비증세가 와 걸어다닐 수 있는 ‘움직이는 책상’까지 만들어 번역을 계속했다. 이렇게 몇 년간 번역작업에 몰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주변의 무관심과 부인의 병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왜 어렵게 혼자 완역하려고 하느냐?”며 의구심을 나타냈고, 말없이 옆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던 부인은 결국 치매증세를 보였다.“많이 힘들었지만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껏 외국에서도 한 사람이 완역한 성경이 나온 적은 없기 때문이지요.” ●한글 번역으로 참뜻 찾아 최 박사의 ‘새즈믄 우리말 구약정경’에는 종교학뿐 아니라 언어학적으로도 놀라운 성과들이 담겨 있다. 창세기 2장23절 아담의 갈비뼈로 탄생한 하와를 표현하면서 최 박사는 원전에 있는 ‘이분은 기특하다.’라는 구절을 찾아냈다. 또 창세기 3장16절 ‘너는 남편을 사모하나.’라는 구절도 원본을 살려 ‘너는 남편에게 눈독을 들이나.’로 번역했다. 남자와 여자는 갈등과 종속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위치라는 사실이 구약 곳곳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 박사는 또 구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십자가’의 표현도 찾아냈다. 에스겔서 9장4절의 원어 ‘타호’자는 X자를 의미하며, 이것이 곧 십자가를 뜻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 최 박사는 “히브리어를 잘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든 표현의 뜻을 숙고 끝에 해독했다.”면서 “종교적인 지식과 언어적 지식이 만난 결과”라고 말했다. 구약정경 목차 제목들을 알기 쉽게 변경한 것도 흥미롭다.‘민수기’는 ‘민족방랑사’로,‘신명기’는 ‘신율법서’로,‘열왕기’는 ‘이스라엘 왕조역사’로,‘역대기’는 ‘구약세계사’로 새 이름을 얻었다. 이와 함께 처음에 풀지 못했던 부분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해답을 얻었다. 시편 23편의 ‘푸른 초장’은 문학적 표현을 살려 ‘방초동산’으로 새로 해석했다. 창세기 2장4절 ‘창조’를 ‘개벽’으로 바꾼 것도 참된 민족관에 의해서다. 순수 우리말로 번역한 최 박사의 노력은 문학적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최 박사는 “외래어에 익숙한 번역문학의 수준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젊은 세대가 한글을 아름답게 보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책에 담았다.”고 말했다. 히브리어 표현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원뜻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문화에 맞게 ‘기름진 낙토’로 고쳤다.‘버터’는 ‘쇠젖기름’,‘치즈’는 ‘쇠젖묵’이라는 순우리말을 찾았다. ●“한글·성경이해 높이길” 최 박사는 “구약의 한글 완역을 통해 성경의 이해뿐 아니라 나라와 한글 사랑의 길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신학자는 물론 국어학자와 청소년 등이 연구하고 배우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것이 최 박사의 소망이다. 그는 “교회보다는 도서관이나 학교 등에 책이 보급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면서 “성경의 감동을 되살렸다고 믿는 만큼 교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찾는 책이 됐으면 한다.”는 희망을 밝혔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가톨릭교회와 일부 학자들로부터 표현에 대한 이의제기도 있어, 내년 초까지 이를 반영한 수정판을 펴낼 계획이다. 누구나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판형 크기를 줄이는 것도 추진하기로 했다. 또 신학자들의 권유로 해설서를 별도로 제작, 새롭게 펼친 해석을 상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책 판매를 통한 이익금 전액은 후학 양성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기로 했다. 신약성경 번역에 대한 계획도 있는지 묻자 그는 “헬라어로 써있는 신약 번역도 가능하지만 내가 스스로 하기보다는 신약학자의 몫으로 남겨둘 것”이라며 구약에 전념할 뜻을 밝혔다. 최 박사는 “교회에서는 하나님 말씀이 생명·진리라고 하면서 이를 정확하게 읽고 이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면서 “올바른 성경을 갖는 것은 이같은 노력의 시작이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고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걸어온 길 ▲1924년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52년 총회신학교 본과 제1회 졸업(신학사) ▲1956년 미국 풀러신학교 졸업(석사) ▲1960년 미국 드랍시대학교 졸업(박사) ▲60∼76년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구약학) ▲64∼70년 한국외대 아랍어과 교수(아랍어과 학과장) ▲1963년 대한성서공회 ‘새번역성경’ 예장합동측 대표 ▲1967년 대한성서공회 ‘공동번역성경’ 예장합동측 대표 ▲76∼81년 생명의 말씀사 ‘표준성경’구약부 기초위원 ▲93∼97년 대한성서공회 개역성경 개정위원 ▲83∼97년 천안대 신학대학원 원장 ▲96∼현재 한국개혁신학회 고문 (저서) ▲구약 히브리어문법 ▲구약논문집 ▲역대기하서 본문비평(히브리어 대 시리아 역본)에 관한 연구 글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7급공채 면접 해결능력·가치관 평가 초점

    7급공채 면접 해결능력·가치관 평가 초점

    올해 7급 공채 최종합격은 면접에서 판가름난다. 필기성적을 고려하지 않고 면접점수만으로 최종합격자를 선발한다는 중앙인사위의 원칙 때문이다. 2일 중앙인사위원회에 따르면, 오는 15일부터 나흘간 실시되는 7급 공채 면접은 전면 ‘제로베이스’에서 실시된다. 출신학교 등의 개인정보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진 상태에서 면접이 치러지는 것은 물론 필기성적도 반영되지 않는다. ●“자질평가에 충실할 것” 제로베이스 시스템이 도입된 것은 지난해부터다. 인사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필기성적을 배제하고 면접성적만으로 최종합격자를 선발했다.”면서 “필기성적순으로 합격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필기성적이 좋으면 면접성적과 관계없이 합격할 것이라는 추측은 착각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면접성적만으로 최종합격자를 뽑는 이유는 필기시험에 합격한 지원자 정도면 직무에 필요한 지식은 충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면접에서는 철저하게 공직자로서의 자질만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면접에서의 주요평가기준도 예년과 달라졌다. 인사위측은 “올해 면접에서는 전공관련 지식을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며 “종합적 해결능력과 가치관에 초점을 두고 평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직렬별로 필요한 직무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면접시험 내용도 직렬별로 차별화를 둔다는 방침이다. ●5급 면접 수준으로 강화 전반적으로 면접전형이 5급 수준으로 강화된다. 개인 프레젠테이션이 관련 질의응답 시간을 포함해 10분씩 실시되고,10분간의 개별면접이 이어진다. 한 사람당 20분 이상의 면접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개별면접의 경우 민간기업식의 압박면접은 실시되지 않겠지만, 응시자들이 실제 느끼는 부담감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월 실시된 9급 공채면접 응시자를 대상으로 인사위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5명 가운데 1명꼴로 ‘질문이 너무 당혹스러웠다.’고 응답했다. 이에 대해 인사위 관계자는 “가치관과 경험 등을 총동원해야 하는 질문들이 쏟아졌기 때문에 응시자들이 꽤 당황했을 것”이라며 “이번 7급 공채 면접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이색일터 엿보기] 기업문화 이노베이터

    [이색일터 엿보기] 기업문화 이노베이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행복한 혁신’팀 팀장이라고 명함을 내밀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의 대표 서비스 ‘싸이월드’를 떠올리며 팀 이름도 재밌다고도 하고, 어떤 업무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는 부러운 눈길도 받는다. ‘기업문화 이노베이터’라는 직업은 아직 하나의 직업군으로 정착되진 않았다. 하지만 바람직한 기업문화에 대해 고민하고 관리하는 직무는 기업 성장에 필수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조직 규모가 급격히 확대되거나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있는 기업일 경우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 기업문화 이노베이터의 궁극적인 역할은 구성원의 다양한 생각을 구체화시켜 회사가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다. 직원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해 개선 과제를 함께 찾아내고, 경영진과의 정기적인 의견 교류를 통해 해결방안을 도출,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주요 업무인 셈이다. 지난해 7월 신설돼 이제 갓 1년을 넘긴 HI팀은 강한 조직, 즐거운 일터를 만들자는 구성원 공동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그동안 다양한 부분에서 사내 혁신의 바람을 일으켰다. 지난해 말 실시된 신입사원 공채에서는 출신학교나 학점, 토익 등으로 인터넷형 인재를 선발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HI팀이 제안한 새로운 형태의 선발전형이 실시됐다. 지원자들의 미니홈피를 통한 면접과 인성 및 사회성 테스트는 참신함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를 사내 공식 학습시간으로 지정하기도 했다.‘금요 자율학습제’를 도입해 이 시간대에는 업무 연락이나 회의 등을 자제하고 학습시간으로 활용할 것을 공식화한 것. 이같은 HI팀의 혁신 프로젝트들은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사내 직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어냈다.‘어떻게 하면 모두가 즐겁게 일하는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만을 매일 고민하는 팀이 조직 내에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직원들에게는 상당한 힘이 되는 듯 하다. 이렇듯 행복한 기업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내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뿐만 아니라 경쟁 기업들에도 눈과 귀를 항상 열어두어야 한다. 때문에 다른 기업의 우수 프로그램이나 이색 기업문화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열린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창의적이고,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게 꼭 맞는 직업이 바로 기업문화 이노베이터다. 김민정 기업문화 이노베이터 SK커뮤니케이션즈
  • [금융권 2題] 은행취업 제1덕목은 ‘잠재력’

    잠재력, 리더십, 정직성, 대인관계, 적극성…. 올 하반기 은행취업에 성공하려면 이같은 5가지 덕목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시중은행 인사담당자들이 한결같이 꼽은 인재선발 기준이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30명가량을 뽑는 외환은행의 인사부문 총괄책임자인 김형민 부행장은 “학력과 성별, 연령 등을 철저히 배제하고 응시자의 잠재력을 선발의 핵심 기준으로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젊은 직원들의 유연한 사고와 파이팅 정신이 필수”라고 충고했다. 200명을 선발하는 국민은행도 잠재력을 가장 먼저 볼 계획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은행업의 성패는 마케팅 역량 극대화 여부에 달려있다.”면서 “학업성적과 외국어 구사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리더십이 있고 평소 폭넓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력을 우선적으로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방에서의 고객밀착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출신학교가 있는 지역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지방대 출신 지원자는 우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은행이 ‘돈’을 다루는 업종인 만큼 도덕성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은행 홍보팀 오승욱 부부장은 “정직성은 은행원이 지녀야 할 핵심 덕목”이라면서 “또 걸출한 개인 능력을 지닌 지원자보다는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팀워크 발휘를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이 우수한 응시자를 우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한은행의 채용담당 관계자도 “도덕성과 팀워크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은행 문화에 부합하는 인력을 찾는 데 이번 채용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대법관후보 김황식씨등 9명 추천

    대법관후보 김황식씨등 9명 추천

    대법원은 17일 공석인 대법관 3명의 후임을 추천하기 위한 대법관제청자문회의를 열고 후보 9명을 추천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19일 이 가운데 3명의 최종 후보를 간추려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청할 예정이다. 후보 선정에는 ▲법원 재직경험 ▲출신지역 ▲출신학교 ▲소수자 배려 등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비(非)서울대 출신으로 한양대를 나온 손용근 법원도서관장, 원광대를 나온 김지형 사법연수원 연구법관이 포함됐다. 김진기 대구지법원장은 향판 출신이며, 전수안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유일한 여성 후보로 꼽혔다.‘이용훈식 개혁’을 사실상 주도하게 될 대법관을 가리는 인사이기 때문에 각계 의견을 골고루 모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단체 등에서 지지를 받는 박시환 변호사는 2003년 대법관 제청 파문 때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신분으로 법원 개혁을 요구하며 옷을 벗었다. 두 번째 여성대법관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전수안 부장판사는 유일한 여성 고법부장으로 형사재판부를 이끌고 있다. 손용근 관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사시동기(17회)다. 가장 젊은 김지형 연구법관은 노동 사건에서 진보적인 판례를 남겼다는 평을 듣는다. 양창수 교수는 판사로 6년 동안 재직하다 교편을 잡았다. 현직 판사 110여명 등이 소속된 민사판례연구회 회장으로서 민법 분야 대가로 통한다. 대법원의 문호가 학계까지 미쳤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한편 대법원은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을 겸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발의를 앞두고 있다. 손지열 법원행정처장이 이번주 재판 업무에 복귀함에 따라 법원행정처장 직무대행도 함께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대법관 1명 축소 될 듯

    대법원이 오는 10일 퇴임하는 유지담·윤재식·이용우 대법관의 후임 인선작업에 본격 착수하는 한편, 대법원의 구조개혁에도 시동을 걸었다. 대법원은 오는 5일부터 11일까지 후임 대법관 3명의 후보 추천을 받기로 했다. 이번 인선으로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끌 사법부의 운영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구성 다양화 이 대법원장은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하기 위해 기수와 성별·연령, 출신 직역 등에 구애받지 않겠다.”면서 “보수, 진보 등 대법관의 성향보다 합리적인 판단과 법률지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선 법원의 반발 탓에 기수 파괴의 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 내부 인사로는 사법고시 13∼17회 출신이 유력하다. 이흥복 부산고법원장·김황식 법원행정처 차장·이홍훈 수원지법원장·민형기 서울고법 수석부장·김지형 대법원 비서실장 등이 후보에 꼽힌다. 조무제 전 대법관 이후 지역법관 출신이 없고,10월 퇴임 후 남아 있는 대법관들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지역과 출신학교를 안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외부 인사 중에는 최병모·문흥수·박시환·박원순 변호사 등이 거론된다.●대법원 구조개혁 시동 대법원은 오는 11일까지 후보자 추천을 받은 뒤 17일쯤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를 열고 대통령에게 제청할 후보자들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인사청문회나 임명동의안 처리 기간 등을 감안하면 11월 중순쯤이 돼야 인선이 마무리된다. 대법원은 인선이 끝날 때까지 재판 등 대법원 업무·운영의 차질을 줄이기 위해 고심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대법원의 구조를 바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현재 법원행정처장을 맡고 있는 손지열 대법관이 재판부에 복귀해 빈 자리를 줄이고 재판을 담당하는 소부 구성인원을 4명에서 3명으로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장을 대법관이 아닌 법원장급이 맡게 할 방침이다. 그렇게 되면 전체 대법관 수가 14명에서 13명으로 줄어들게 돼 인선 부담을 덜게 된다. 이와 같은 법원조직법이 순조롭게 개정되면 11월 중순쯤 충원되는 신임 대법관 3명으로 공석인 대법관 2명과 11월 말에 정년퇴임하는 배기원 대법관의 후임 인선까지 해결된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공기업 취업 성공기] 예상질문 뽑아서 면접준비를

    [공기업 취업 성공기] 예상질문 뽑아서 면접준비를

    공기업은 인사채용에 있어서 공정성이 생명이다. 이에 따라 서류전형에 있어서 출신학교나 학점보다 토익 점수의 반영비율이 매우 높다. 자신이 지원하고자 하는 공기업, 지원 분야의 평균 토익 상한선을 잘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점수를 획득해 두는 게 최우선적인 절차이다. 나는 7개월간 토익공부에 전념해서 안정적인 점수를 얻은 뒤에 전공 및 상식 공부에 치중했다. 공기업마다 필기전형(전공·상식·논술 등)과 문제의 유형(객관식·주관식·서술식) 등이 다양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곳의 시험유형을 잘 파악해 두는 것도 필요하다. 시간이 부족하면 원하는 회사의 유형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전공공부를 깊이 있게 하기보다는 두루두루 빠짐없이 보았다. 대부분의 공기업이 전공 이론을 어렵게 꼬아내기보다는 전반의 지식을 평가하는 정도로 출제하기 때문이다. 상식공부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기본 상식책을 2∼3회 정독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들은 신문을 스크랩해 가며 대비했다. 대부분의 공기업은 전공의 배점이 상식(논술)보다 2배 정도 높기 때문에 전공과 상식 공부시간도 2:1 정도로 배분했다. 면접은 하루아침에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평소에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고 회사에 대한 정보를 틈틈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인천국제공항공사 홈페이지와 관련기사를 꼼꼼하게 살폈다. 그런 뒤 현재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이슈를 중심으로 예상 질문을 뽑아 면접 준비를 했다. 또한 최근에는 공기업에서도 영어면접을 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두는 것도 좋다. 요즘은 많은 공기업들이 민간경영체제로 변해가고 있어 ‘공기업=안정적’이라는 등식도 옛말이다. 오로지 안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 곳에 입사했다가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 지난해 초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다른 공기업에 입사했다가 많은 갈등을 겪은 경험이 있다. 따라서 ‘무조건 공기업이면 된다.’라는 생각보다는 자신이 관심있고 역량을 발휘해 보고 싶은 공기업이 어딘 지를 생각한 뒤, 이에 대한 대비책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여유를 가질 것을 권한다.
  • [스포츠 라운지] 여자농구 신한은행 우승 일군 이영주 감독

    [스포츠 라운지] 여자농구 신한은행 우승 일군 이영주 감독

    뽀얀 피부에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조곤조곤한 말투 등 아무리 뜯어 봐도 ‘승부사’의 기질을 찾아볼 수 없다. 식사때 선수들에게 눈웃음 치며 농담을 던지고 더 먹이려고 챙기는 모습은 영락없는 여고 선생님. 이런 이 남자가 코트에만 서면 전혀 딴 사람으로 돌변한다. 겨울리그 꼴찌 신한은행을 창단 1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며 29년 농구인생을 활짝 꽃피운 이영주(39) 감독이다. ●지긋지긋한 불운 군산중 2학년때 그의 키는 158㎝. 또래 선수들은 170㎝ 이상이었다. 키도 작은 데다 비쩍 마른 ‘땅꼬마 가드’는 강한 패스를 받으면 공과 함께 밀리기 일쑤였다. 선배들은 왜 그리 때리는지,1주일에 5일은 몽둥이찜질을 피해 도망다녔다.‘차라리 절에 들어가는 편이 낫겠다.’ 싶었던 그는 지리산으로 가출했다. 이틀을 버틴 뒤 돌아갔지만, 학교에선 퇴학이 얘기됐다. 학교로 쫓아와 눈물로 사정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이영주는 그때부터 죽기살기로 농구에 덤벼들었다. 고교 1학년때 결핵으로 한 해를 꼬박 쉰 뒤 키가 쑥쑥 자랐지만 몸은 여전히 약했다. 대학에 가서야 힘이 붙으면서 농구의 묘미도 알았다.89년 최강 현대에 입단해 박수교(현 전자랜드 단장)의 공백을 메우며 실력을 인정받은 이영주는 이후 93년까지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프로 출범을 앞두고 원치 않는 은퇴로 또다시 인생이 소용돌이쳤다. 선배의 사업 제안에 솔깃해 신선우(현 LG 감독) 감독에게 무릎부상을 핑계로 은퇴의사를 밝힌 것. 뒤늦게 정신 차린 뒤 신 감독에게 ‘이실직고’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혔다. 구단에서 사실상 은퇴를 종용했고, 눈물을 뿌리며 코트를 떠났다. ●끔찍한 IMF 유랑생활 97년 은퇴와 함께 단대부고 코치로 간 이영주는 그 해 종별대회 준우승 등 성공적인 지도자 데뷔를 했다.10개월 뒤 용인대 감독 제의를 받고 덜컥 수락했다. 현대에서의 황당한 은퇴 뒤 두 번째 실수였다. 한달 만에 팀은 해체됐고, 외환위기의 찬바람이 몰아치던 때 ‘백수’가 됐다. 수입이 끊겨 서울 상일동 아파트를 팔고, 남양주로 이사도 갔다.2000년 박수교 기아 감독의 권유로 뒤늦게 프로에 뛰어들었지만, 평균 6분에 1.5득점하는 후보였던 그는 박 감독한테 짐이 되는 것 같아 두 번째 은퇴를 했다. 2001년 현대 여자농구단 코치로 두 번째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며 운명의 전환점을 맞았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불운의 그림자’를 떨치지 못했다.2002여름리그에서 박종천 감독을 보필해 우승했지만 모기업이 경영난에 시달렸다. 곧 박 감독은 떠났고, 연봉 5000만원짜리 감독대행은 지갑을 털어가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설상가상으로 KCC-현대의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자 KCC측은 2003년 말까지 숙소와 체육관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당시 남자팀 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선수들을 버리고 혼자만 떠날 수는 없었다. 지난해 봄 현대는 짐을 택배회사의 컨테이너에 넣고 ‘유랑 서커스단’ 신세가 됐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행히 지난해 9월 신한은행이 팀을 인수하며 떠돌이 생활을 청산했다. 첫 출전한 겨울리그에서 꼴찌를 했지만, 어린 선수들이 가능성을 보여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편애는 감독의 죄악이며 기회를 골고루 준다. 단 때가 왔을 때 제몫을 못 찾아 먹는 선수는 쓰지 않는다.”는 이영주식 용병술이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마침내 올 여름리그에서 우승을 일궜다. ‘남탕(남자프로농구)으로 가고 싶진 않냐.’고 묻자 “아직 밑천이 없어요. 내 분수를 알아야죠.”라며 손사래를 쳤다. 다만 “신한은행을 최고 명문으로 세운 다음이라면 모르죠.”라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한신대 특수체육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대학 강단에 서는 꿈을 키우고 있는 이 감독에게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배포와 자신감이 한껏 묻어났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이영주 감독은 ▲출생 1966년 5월19일 군산 ▲가족관계 부인 고선경(34)씨와 2남 ▲신체조건 183㎝ 75㎏ ▲종교 기독교 ▲연봉 1억원 ▲주량 기분 좋으면 소주 2병 ▲스트레스 해소법 묻지마 드라이브 ▲출신학교 군산 중앙초-군산중·고-홍익대-한신대 대학원(3학기 재학중) ▲경력 실업 현대(선수·89∼97년)-단대부고 코치(97년)-용인대 감독(98년)-프로 기아(선수·99∼01년)-현대여자팀 코치 및 감독대행(01년)-신한은행 감독(04년∼) ▲수상 대통령 체육포장(92년) 여자프로농구 최우수지도자상(05년)
  • [스포츠 라운지] 한솔테니스 이진수 감독

    [스포츠 라운지] 한솔테니스 이진수 감독

    ‘테니스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세계1위·러시아)와 ‘흑진주’ 비너스 윌리엄스(미국)의 슈퍼매치를 나흘 앞둔 15일 서울올림픽공원 테니스코트. 초가을 뙤약볕 밑에서 부지런히 네트를 매만지고 있는 이진수(41·한솔테니스) 감독의 얼굴은 더욱 검게 그을려 있었다. 세기의 대결이 열릴 곳은 바로 옆 체조경기장 실내 특설 코트지만 16일 이들이 서울에 도착한 뒤 몸을 풀 장소는 샤라포바가 1년전 한국 팬을 열광시켰던 바로 이 곳이다. 지난해 윔블던대회를 통해 일약 세계 테니스팬들의 연인으로 떠오른 샤라포바로 하여금 한국땅을 밟게 한 주인공은 바로 그였다. 사실 그만큼 샤라포바를 잘 아는 사람은 이 땅에 없다. 지난해 윔블던 이전부터 한솔여자오픈을 준비하면서 미완의 대기였던 샤라포바를 초청선수로 낙점,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고, 올해도 윌리엄스와의 대결을 성사시켰다. 중학 시절 뒤늦게 선수로 테니스에 입문, 일본 대학팀에서 코치와 감독을 거친 뒤 걸출한 국제 감각으로 굵직한 대회들을 엮어낸 그는 ‘이벤트 제조기’로 불린다. 더욱이 한솔여자팀에 이어 지난달 남자팀까지 창단, 삼성증권(감독 주원홍)과 함께 한국 프로테니스의 양대산맥을 이뤄냈다. ●황금기 멤버, 지금은 ‘이벤트 제조기’ 이진수 감독은 한국 남자테니스의 전성시대였던 지난 1990년대 유진선 김봉수 송동욱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황금기 멤버’였다. 경남 영산중학교 1년때 뒤늦게 테니스에 입문했다. 노갑택 현 남자대표팀 감독과 함께 마산고에 입학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3년때 노 감독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오픈대회인 전한국대회에서 대학팀들을 거푸 쓰러뜨리며 복식 8강에 오르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1989년부터 2년간 국가대표를 지낸 이 감독은 92년 일본 서키트대회에서 만난 긴키대학 테니스부장의 러브콜을 받고 코치로 부임, 한국 남자테니스 출신 가운데 처음으로 일본 코트의 사령탑을 맡았다.40명의 선수들과 매일 1대1 시합을 하는 등 스파르타 훈련을 거듭한 끝에 간사이지방 꼴찌였던 팀을 2년 만에 정상에 올려 놓은 건 지금까지 대학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내년 세번째 한국무대 초대 추진 그가 샤라포바를 한국팬 앞에 세운 ‘거사’를 이뤄낸 건 각종 국제대회를 돌며 틈틈이 익힌 국제 감각 덕분이다. 지난해 윔블던대회와 한솔여자오픈으로 세계 톱랭커의 발판을 닦은 샤라포바는 또 한번 그의 손을 통해 내년에 세번째로 한국무대에 서게 될지 모른다. 현재까지 여자프로테니스(WTA) 규정에는 최상위 랭킹인 ‘골드멤버’ 20명 가운데에서도 핵심멤버인 6위까지는 1∼2급대회와 겹쳐질 경우 3∼4급대회(한솔여자오픈 포함)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묶여 있지만 각국 대회 디렉터들과 공조, 이를 완화시키도록 하겠다는 계획.‘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그의 야심이 내년에도 발휘될지 세기의 대결을 코앞에 둔 지금 벌써부터 테니스팬들의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글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이진수 감독은 ▲생년월일 1964년 12월11일 경남 마산생 ▲가족 부인 김미경씨와 1남2녀 ▲체격 178㎝ 78㎏ ▲출신학교 경남 영산초-영산중-마산고-성균관대 ▲경력1989∼90 테니스 국가대표, 1993 김봉수에 이어 한국 남자선수로는 두번째로 테니스메이저대회 (호주오픈) 출전, 1992∼96 일본 긴키대학 테니스팀 코치·감독, 현 대한테니스협회 홍보·마케팅이사, 한국 여자테니스대표팀 감독, 한솔남녀테니스팀 감독, 서울주니어테니스아카데미 대표, 한솔여자오픈 토너먼트 디렉터(TD), 샤라포바-비너스 슈퍼매치 TD
  • [스포츠 라운지]亞육상선수권 ‘황금창’ 던진 박호현 선수·허성민 코치

    [스포츠 라운지]亞육상선수권 ‘황금창’ 던진 박호현 선수·허성민 코치

    불쑥 나타난 여성을 보자마자 고개가 절로 갸우뚱거렸다. 길이 2m30에 600g짜리 창을 무려 55m나 던졌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겨우(?) 166㎝에 57㎏의 체구란다. 바로 지난 4일 막을 내린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창던지기에서 한국에 금메달을 선사한 박호현(27·SH공사)이다. 박호현은 이 대회에서 한국선수로선 유일하게 ‘황금 창’을 던져 자칫 몰락할 뻔했던 한국 육상에 큰 위안을 준 주인공이다. 한국체대 대운동장에서 몸을 풀고 있던 박호현과 함께 금메달을 빚어낸 코치이자 남편인 국가대표팀 허성민(30) 코치를 만났다. ●빵과 우유가 먹고 싶어 뛰고, 던졌다. 1989년 어느날 충북 증평군 삼보초등학교 5학년 교실. 육상부 코치가 와락 문을 열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댔다. 높이뛰기 선수인 친구를 찾으러 왔지만 친구는 벌써 도망가고 없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또래들보다 한뼘 가까이 키가 큰 어린 호현을 주시했다. 코치는 호현에게 다가와 “너, 뜀박질 한번 해볼래.”라고 물었다. 어릴 때부터 소꿉장난보단 뛰어노는 게 훨씬 좋았고 운동하면 준다는 빵과 우유가 아른거렸던 박호현은 선뜻 코치 손을 잡고 말았다. 단거리 선수가 됐다. 주 종목은 200m. 하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시·도대항전에 나가면 순위는 뒤에서 재는 게 빠를 정도였다. 다만 재능이 다른 곳에 숨어 있었던 걸 몰랐다. 이듬해 체력장 공던지기에 나선 박호현은 친구들보다 수십m 멀리 공을 던져 코치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뜀박질 대신 줄기차게 공을 던졌고 증평여중 2학년이 돼선 공던지기 대회가 없는 탓에 대신 창을 잡았다. ●남편 뒷바라지로 얻어낸 금메달 누구보다 뛰어난 선수라고 자부했지만 그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한국체대 5년 선배이자 15년 가까이 한국 여자 창던지기의 간판으로 군림한 이영선(31·대구시청)이 버티고 있었던 것.98방콕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선 이영선을 누르고도 국제경기 경험이 모자라 방콕행 티켓을 넘겨준 아픔도 있다. 이 때문에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누구냐는 물음에 주저없이 “자기관리가 엄격한 영선 언니”라고 손꼽지만 잠시 눈가에 그늘이 드리웠던 이유였다. 게다가 이후엔 장정연(28·익산시청)이 나타나 간판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애간장은 더욱 타들어 갔다. 이때 박호현에게 든든한 ‘도우미’가 나타났다. 바로 대학 3년 선배였던 허 코치였다. 허 코치는 힘들어하는 박호현을 때론 따뜻하게 감싸안고, 때론 냉정하게 채찍질하며 항상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돼 줬다.4년 전 허 코치가 충남 서천군청 소속으로, 박호현이 충남도청 소속으로 함께 공주에서 훈련하던 어느날 둘은 박호현의 프러포즈로 커플이 됐고, 지난해 3월7일 백년 만의 폭설이 내리던 날, 백년가약을 맺었다. ●“내년 아시안게임 정상 오르면 아이 가질것” 이렇게 박호현은 남편이자 코치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고 이번 대회에서 이영선을 꺾고 ‘만년 2인자’ 타이틀을 벗어던졌다. 하지만 박호현의 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내년 12월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목표가 남았다. 그 뒤엔 미련없이 창을 내려놓은 뒤 2세를 가질 계획이다. 허 코치는 “호현이는 승부 근성과 오기로 똘똘 뭉쳐 뭐든지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작은 체구가 가진 단점만 보완하면 다시 한번 큰일을 해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남편이 훈련에 많은 도움을 주느냐고 묻자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하는 오빠(허 코치)를 볼 수 있는 기회는 함께 훈련하는 시간밖에 없는데 내게 눈길조차 안 준다.”며 입을 삐쭉거렸다. 그러자 허 코치는 “사람들 눈이 있으니 다른 선수를 10번 지도할 때 호현이는 한번에 집중해서 가르친다.”며 웃음으로 가름했다. 서로를 보는 눈길에 담긴 정이면 내년에 다시 한번 큰일을 해낼 것 같다는 느낌이다. ●박호현은 생년월일=1978년 3월21일 충북 증평 출생 출신학교=삼보초-증평여중-충북체고-한국체대 가족사항=박노열(53)·조기순(53)씨 1남1녀 중 첫째 주요경력=03년 전국체전 3위,04년 종별육상선수권대회 2위,04년 부산국제육상경기대회 4위,04년 전국체전 2위,05년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 1위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