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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약품값 폭리 19개사 적발/보사부

    ◎원료값 대폭 인하에도 시판가 그대로/수입가 1백20배 내린 품목도 보사부는 14일 최근 의약품 수입개방 조치에 따라 수입의약품 원료의 수입가격이 크게 낮아졌는데도 완제의약품의 판매가격을 내리지 않고 폭리를 취해온 19개 제약회사를 적발,가격인하 등 행정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보사부에 따르면 유유산업과 한국화이자 등 8개 제약회사는 지난 81년 수입가격이 1㎏에 1만2천달러였던 소염진통제 원료 피록시캄이 지난해 90달러로 1백20배이상 떨어졌는데도 완제품 가격은 전혀 내리지 않고 그대로 팔아왔다는 것이다. 또 동아제약 등 6개 업체도 위궤양치료제의 원료인 파모티딘 1㎏의 수입가격이 86년 7천5백달러에서 지난해 1천70달러로 7배쯤 떨어졌는데도 완제품 값은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밖에 현대약품 등 4곳은 발모제의 원료인 미녹시딜의 가격이 4배이상 떨어졌으며 한국그락소 등 3곳은 위궤양치료제의 원료인 라니티린의 수입가가 12배나 낮아졌으나 완제품은 모두 종전 가격대로 판매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적발된 제약회사는 다음과같다. ▲한국화이자 ▲신풍제약 ▲건일약품 ▲고려제약 ▲동일신약 ▲영원약품 ▲한영약품 ▲유유산업 ▲동아제약 ▲중외제약 ▲건풍제약 ▲장우제약 ▲태극약품 ▲현대약품 ▲제일약품 ▲한국엎존 ▲한국그락소 ▲일동제약 ▲동화약품
  • 충주시장 관사 방화 대학생 검거/경찰 발표

    ◎“서울 연쇄방화도 대학생 소행” 진술/휴학생 등 공범 2명 수배… 수사대 서울 급파 【충남=한만교ㆍ육철수기자】 서울에서 시작된 연쇄방화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 17일 충주시장관사에 화염병을 던진 연제택군(26ㆍ충북대 농기계공학과3년)을 붙잡아 방화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이날 충주경찰서에 검거된 연군이 서울에서 내려온 충주 삼원국민학교 동창생 박순호군(27ㆍ한국신학대2년 휴학)의 주도 아래 심상길군(26ㆍ서울 동대문구 휘경2동 294의197) 등 모두 3명이 시장공관에 방화했으며 박군이 서울 연쇄방화사건에 관련된 것 같다고 진술함에 따라 박군 등을 긴급수배했다. 경찰이 박군을 연쇄방화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보는 이유로 지난 13일 상오 2시10분쯤 서울 강동구 천호4동 314의28 김성환씨(41) 집 방화사건 때 이 집에 세들어 사는 윤재선씨(36)가 목격한 것과 같은 차종인 은회색 프라이드 승용차를 갖고 있으며 12일 하오 서울에서 충주에 내려온 박군이 『서울에서 잇따르고 있는 방화사건은 대학생들이 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연군의 진술에 따른 것이다. 경찰은 박군이 지난 12일 충주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와 13일 새벽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방화를 한 뒤로 또 승용차를 몰고 고향인 충주에 내려가 연군 등과 함께 시장관사에 화염병을 던진 것으로 보고 형사대를 서울로 보냈다. 경찰에 따르면 박군은 심군과 함께 지난 12일 역시 삼원국민교 동창생인 권영식군(26)의 충주공전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충주에 내려와 연군 등에게 『내가 하라는 대로만 따라서 하라』면서 충북 괴산군 연풍면 신풍주유소에서 휘발유 10ℓ를 구입하고 충주로 되돌아와 충주시 역전동 금성페인트판매점에서 1천원짜리 시너 1통을 사 하오 11시쯤 중원군 가금면 갈마골 밭에서 화염병 6개를 만들어 범행했다. 이들이 시장관사에 화염병을 던지는 것을 본 수안보 한진택시 소속 운전사 권효식씨(37)는 범행차량을 2㎞쯤 쫓아가다 놓쳐 차량번호만을 확인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범행차량인 서울1 보9829호 프라이드 승용차를 지난 15일 중원군 엄정면의 한 뒷골목에서 발견하고 이 차량이 박군의 것임을 확인,박군과 함께 범행한 연군을 동생 제만군(24)의 자취방인 청주시 개신동 382 곽모씨의 집에서 검거했다. 수사결과 박군은 지난해말부터 친형 박모씨(35ㆍ서울 도봉구 미아8동 707의1) 집에서 살아왔으나 지난 11일 이후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 중환자 치료중 산소통 폭발/원광대병원/탄가스중독자ㆍ시술의사 부상

    ◎환자등 20여명 대피소동 【이리연합】 병원 중환자실에서 연탄가스 중독환자를 치료하던중 고압산소통이 터져 환자와 의사가 중경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했다. 16일 하오1시30분쯤 이리 원광대 부속의료원 응급실 고압가스실에서 연탄가스에 중독된 김수경씨(29ㆍ여ㆍ군산시 신풍동 5통4반)가 치료를 받던중 고압산소통이 터져 김씨가 밖으로 튕겨나오면서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져 전북대병원으로 응급 후송했으나 의식불명 상태다. 또 치료를 하던 의사 장영우씨(40)가 하복부에 상처를 입었다. 이승택씨(45ㆍ군산시 신풍동 987의36)에 따르면 조카인 환자 김씨를 고압소실에 넣은 후 의사들이 밖으로 나가라고 해 대기실에서 20여분동안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나면서 응급실 유리창이 깨져 환자 20여명이 대피하는 소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 민주 지구당원 15명 합당 반발 단식농성

    【수원】 민주당 수원을지구당 김정태위원장(52) 등 지구당간부 15명이 25일 하오3시부터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합당에 반발,수원시 장안구 신풍동 211 지구당사무실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김위원장 등은 이날 「김영삼씨의 배신적 야합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제목의 성명을 내고 ▲정통야당을 끝까지 사수할 것 ▲당을 해체할때는 모든 투쟁을 전개할 것 등을 결의했다.
  • 설군사건이 남긴 교훈/김용원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검사는 「민주화로 위장한 학원폭력」을 신랄하게 규탄했다. 『그는 운이 나빠 몇대 맞다가 쓰러져 죽은 것이 아니다. 옛말에 「개패듯 때린다」는 말이 있고 「맞아 죽는다」는 말도 있는데 설군은 말그대로 개처럼 맞아 죽었다. 눈이 가리워지고 의자에 결박당한채 기진맥진,고개를 떨구고 「물,물」하며 쓰러져 갔다. 그가 만약 프락치였다 할지라도 프락치는 그렇게 죽어가도 좋다는 것인가』 그리고는 『폭력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에 마땅히 준엄한 심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선 변호사는 「시대의 희생자」를 낳게한 우리의 현실을 지적했다. 『어째서 학생들이 학업에 정진하지 못하고 투쟁의 선봉에 서서 희생되어야 했는가. 온갖 불신풍조를 만들어낸 80년대의 정치ㆍ사회현실이 비극의 씨앗』이라고 했다. 최후 진술에 나선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고인에게,부모에게,학우들에게 백배사죄했다. 『형을 달게 받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들도 할말은 있었다. 『싸늘한 감방에 앉아 박종철 학우도 생각해 보았고 고문경관을 증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시대의 증오를 씻고 화해의 시대가 열리기 만을 기원한다』 『어떤한 형태의 폭력이든지 폭력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 이번 사건의 올바른 극복 방법』이라고도 했다. 지난해 10월 학원프락치로 오인돼 뭇매를 맞고 숨진 동양공전 학생 설인종군의 폭행치사 사건 결심공판이 열린 18일 서울지법 서부지원 형사합의부 법정은 이시대를 혼돈의 시대로 만들고 있는 각종 폭력에 대한 심판장과도 같았다. 설군을 때려 숨지게한 연세대학생과 고려대학생 9명 모두에게 징역 15년∼7년까지의 중형이 구형됐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이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한 젊은이의 참담한 죽음을 떠올리며 법정을 나서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들은 『어떤 명분,어떤 형태의 폭력도 결코 용납될수 없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그것은 우리시대의 비극이자 새 시대의 교훈이었다.
  • 김종필 공화총재(국회의장ㆍ대법원장ㆍ4당대표 신년사)

    ◎인간화ㆍ복지화ㆍ지방화 노력을 90년대는 민주화 과업을 본격화하면서 인간화ㆍ복지화ㆍ지방화 및 국제화를 어김없이 성취함으로써 선진 민주복지국가로의 발전 및 조국통일을 이룩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정치체질이나 사회기풍,경제구조나 노사관계,국민의식 구조와 학원풍토 등 모든 분야에 신풍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동구권의 개방화물결은 공산주의가 스스로 자기 모순을 자각하고 몰락해가는 산증거로서 우리 사회의 좌경의식화분자들에게는 더없는 경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일성체제도 조만간 변화가 불가피하므로 90년대를 통일의 연대로 기대할 수 있게 한다.
  • “답변 기대에 못미친 부분 많을것 모두 내책임…약사발도 받을각오”

    ◎전 전대통령 회견 전문 오늘 저녁 기자 여러분도 보셨다시피 청문회장의 분위기가 파탄지경에 빠짐에 따라 증언을 더 이상 못하게 된 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연내 과거청산문제를 마무리 짓겠다는 여야 청와대회담의 합의를 존중하는 뜻에서 최대한 협조하려고 했습니다. 못다한 증언을 기자 여러분에게 직접 밝히려 합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더러는 10년 전에 있었던 일로 기억이 희미해진 부분도 없지 않고 자료의 부족때문도 있어서 기대에 어긋난 점이 적지 않을 것으로 압니다. 통치권에 부수된 비밀과 저 개인이 아닌 대통령직에 따르는 권위를 위해,명백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미진한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나 약 8년 동안에 걸친 통치권 행위 전반을 소상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입니다. 지금 당장 제반 사건을 들추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바람직스럽겠지만 그렇게 하다간 모처럼의 마무리작업이 문제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마저 없지 않습니다. 외람됨을 무릅쓰고 말씀드린다면 세계역사상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정권에 대해서도 단시일 내에 그 시시비비를 말쑥히 가려낸 예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부득이 역사의 심판에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일을 등한히 해서도 안되고 지난 일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이며 내일입니다. 지난 과오도 억울한 데 그것에 얽매여 오늘과 내일의 일을 그르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께서 따지실 일이 있으면 저에게 숙제로서 과해주십시오. 회상록이 될지 다른 형식이 될지는 모르나 시간을 들여서 소상하게 구체적으로 제5공화국에 관한 일체의 진실을 밝혀 국민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저는 백담사에서 일년 넘게 기도와 정진의 생활을 하며 「자기의 옳음을 주장하기 위해 남을 그르다고 하면 시시비비는 종결될 수 없으니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저를 용서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한 일이건 모르고 한 일이건 제가 맡고 있던 그 시대의 일은 전적으로 최고책임자인 저의 책임입니다. 도의적 정치적 사법적 모든 책임을 저에게 물어주십시오. 국민이 내리시는 것이라면 죽음의 약사발도 받을 각오입니다. 제가 태어난 조국을 위하는 한 알의 보리알이 되기 위해서 조국의 땅에서 죽겠습니다. 나의 이 마음은 결단코 변할 수가 없습니다. 외국에 나가라는 권유를 받기도 하고 그렇게 하라는 압력도 있었습니다. 나는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평생을 바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국부적인 존재였던 이승만박사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국의 땅에서 생을 마치게 된 슬픈 사연을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박정희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분입니다. 그런데도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장기집권을 시도하다가 심복중의 심복이며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사람에게 시해당하는 처참한 불행을 겪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악순환을 이 나라에서 근절해야겠다고 각오하고 그것이 바로 이 나라에 민주주의를 심는 바탕이 될 것이라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집권 7년반 동안많은 나날을 저의 임무를 무사히 끝내고 연희동 정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하며 보냈습니다. 때로는 그러한 제 진심을 믿어주지 않는 불신풍조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또 후진국의 대통령이면 예외없이 해외에 재산을 빼돌려놓고 여차하면 외국으로 나가서 흥청망청 살 것이란 통념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저 스스로 청와대에서 걸어서 나가겠다는 약속을 믿게 하는데 7년반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제 마음 속에 간직된 말들을 국민 여러분의 마음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 저의 무능이 답답할 뿐입니다. 저는 지난 80년 대통령이 되기 얼마 전까지도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충직한 한사람의 군인으로서 부과된 책임을 다하겠다는 마음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제가 숙명이었던지,어려움에 싸여있는 나라를 졸지에 맡게 되었습니다. 걱정과 책임감에 짓눌려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쏟아 휴일도 없이 뛰고 또 뛰었습니다. 그리곤 결국 적막하기 짝이 없는 백담사에 만신창이의 몸을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백담사에서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밤에 지난 일을 돌이켜 보고 또 돌이켜 보았습니다. 경험도 준비도 없이 전연 새로운 사태를 당하고 게다가 의욕만이 앞서고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고 따라서 후회스런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박 대통령의 시해사건은 우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거니와 그 유신체제를 비판적으로 승계하는 일이 또한 전례가 없었던 일입니다. 이처럼 전례가 없는 새로운 사태의 연속에 대응하는 과정에 있어서 실수가 있었다는 것을 자인하고 그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제가 국정을 맡아 있었던 7년 동안에 국민소득이 두배로 늘었다던가 악성 인플레를 잡아 흑자경제를 이룩했다던가,외채를 순조롭게 갚아 국제적으로 나라의 신용을 높였다던가,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을 만큼 국력을 배양하고 그 올림픽을 통해 국위를 세계만방에 떨칠 수 있었다든가 하는 사례를 들어 저의 허물을 덮어달라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그러한 업적은 모두 국민 여러분의 합쳐진 위대한 힘이 이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잘못에 대해 가혹한 매질을 가하시더라도 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은 영예로운 일에 제가 여러분과 함께 동참한 일꾼의 하나로 여겨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희망만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중국에 있었다고 하는 옛 이야기 하나가 생각납니다. 마을의 동장이 물이 잘 소통되도록,그리고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마을 앞 도랑을 자기집 머슴들과 함께 깨끗이 치웠더니 마을 사람들이 『당신은 미꾸라지를 다 잡아먹기 위해 도랑을 치운 것이 아니냐』고 비난하고 나서더란 것입니다. 하도 억울해서 동장은 그날 밤 권속들을 데리고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에겐 이젠 도망을 칠 곳도 없습니다. 이미 저는 지난 해에,저를 감옥에 보내서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저의 분명한 뜻을 전한 바 있습니다만 「5공청산」을 위해서라면 감옥에라도 가겠습니다. 다만,저는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으로서 자기의 잘못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염치를 아는 창피하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 뿐입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국민 여러분이 내리시는 것이라면 죽음의 약사발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런 비장한 각오로 오늘 새벽 백담사로부터 눈덮인 길을 달려와 지금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제5공화국에 대한 책임은 일체 저에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건의한 정책이건,어느 부처에서 집행한 조치이건,대통령책임제 하에서는 당연히 대통령의 책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문제에 매달려 있는 동안에도 세계는 쉼없이 변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많은 희생과 노력끝에 「승천하는 용」이라는 찬사를 받던 우리경제가 지금은 비틀거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부녀자들이 마음 놓고 길을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치안상태도 어렵다고 듣고 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직면해 있는 이처럼 어려운 일들은 국민 모두가 뜻과 힘을 합쳐야만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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