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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영원한 기념일’

    우리는 어떤 순간을 기억하고,기념하는가.나는 결혼한 날,아이를 낳은 날을 기념하고,신춘문예 당선 통지 전화를 받던 순간을 기억한다.그리고 처음으로 싱글타수를 기록할 뻔한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17번홀까지의 기록은 8오버파.남은 한 홀을 보기로 마무리하면,생애 첫 싱글의 순간이 도래하는 것이다.18번홀은 그리 길지 않은 파5 홀.두번째 샷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세번째 샷으로 워터 해저드와 벙커를 뛰어 넘고,그린에서 2퍼트로 마무리를 한다면 80타가 될 것이다.힘을 빼고 5번 아이언을 쳤다.벙커 입술을 때린 공은 주춤거리다가 뒤로 구르더니 모래밭에 빠진다.손금의 고랑에 땀이 고인다.장갑을 벗어 뒷주머니에 찌르고,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땀을 닦고,눈을 질끈 감고 샌드웨지를 휘둘렀다.공은 그린에 오르지 못하고 에지에 걸린다.“제발 핀에 붙어 주십사.” 기도를 드리고 어프로치 샷을 시도한다.짧다.공과 핀까지는 어림짐작으로도 2m가 넘는다. “기브를 드릴게요.” 절망하는 내 표정을 읽은 동반자의 위로였다.“그런 식으로 첫싱글을 하면 찜찜하죠.” 잔디의 결을 살피고,그린의 지형을 탐색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첫 싱글을 이룩하는 퍼트를 보기 위해 갤러리가 그린을 에워싸고 있다.말해 무엇하랴.나는 싱글퍼트를 성공시키지 못했다.그 뒤로는 팔꿈치에 부상을 당해 실력은 점점 줄기만 했다. 싱글타수는 밥먹듯이 치지만 아직 홀인원은 못해본 친구가 있다.만약에 홀인원을 한다면 그 날을 제삿날로 삼아달라고,친구는 후손에게 미리 유언을 남겼다. “골프를 하다가 그린 위에서 죽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한 미국의 가수 빙 크로스비는 퍼팅을 하다가 그린 위에서 영면했다.한국에서도 일년이면 서너명씩은 그린 위에서 퍼팅을 하다가 쓰러진다고 한다.그렇게 심장마비를 일으킨 퍼팅은 버디를 노린 퍼팅이었을까,수천만원의 상금이 걸린 퍼팅이었을까,나처럼 평생 소원인 싱글 스코어를 향한 애달픈 퍼팅이었을까. 나이가 들면서 드라이버 샷의 거리도 짧아지고,잔디를 밟는 횟수도 줄었다.가뭄에 콩 나듯이 8자를 그린다.내가 만약에 싱글스코어를 기록하는 날이 온다면,나도 그 날을 나의 영원한 기념일로 삼고 싶다.마지막 퍼트를 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을 것이 당연하므로….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소설가 김승옥씨 경희대 입원

    ‘무진기행’의 소설가 김승옥(62)씨가 지난달 23일 중풍으로 쓰러져 최근 경희대 한방병원에 입원했다.김씨는 왼쪽 뇌의 혈전으로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됐으며,심각한 언어장애를 겪고 있다. 부인 백혜욱(59)씨는 “고혈압 때문에 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과로가 겹친 것 같다.”면서 “병원측은 걷는 데는 지장이 없겠지만 언어장애가 완치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생명연습’으로 등단한 뒤 ‘무진기행’‘서울,1964년 겨울’ 등 감수성이 뛰어난 단편소설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1999년부터 세종대교수로 강의를 해왔다.
  • 참여정부 차관급 32명 프로필

    ◆외교부차관 김재섭 뚝심과 실력을 겸비했다는 평이다.90∼92년 청와대 비서관으로 한·중 수교 등 북방외교 실무를 맡았다.북핵문제에도 정통하다.외교부내 핵심자리인 G7을 거치지 않은 최초의 차관.인사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부인 이현숙(53)씨와 1남1녀. ◆ 재경부차관 김광림 경제기획원(EPB·행시 14회)출신으로 상공부,재경원,기획예산처 등을 거쳤다.고 서석준 부총리가 경제기획원 차관을 지낼 때부터 비서관을 맡을 정도로 보좌업무가 뛰어나다.김용덕 관세청장과는 동서지간이다.부인 김지희(49)씨와 1남1녀. ◆국세청장 이용섭 국세청에서 재경부로 옮겨 세제분야만 맡아온 조세전문가로 금의환향.지방대출신으로 설움도 받았지만 합리적인 일처리를 인정받아 순탄한 출세가도를 달려왔다.업무추진력 강한 외유내강형으로,성균관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부인 신영옥(49)씨와 1남1녀. ◆경찰청장 최기문 개혁적인 데다 추진력이 뛰어나다.합리적인 업무 스타일로 신망도 두텁다.자치경찰과 관련된 박사 논문을 쓸 정도로 경찰 개혁에관심이 높다.때문에 수사권 독립 등 경찰 개혁의 적임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부인 이호성(51)씨와 1남1녀. ◆통일부차관 조건식 통일부와 총리실,국회,청와대를 두루 돌며 일한 경험을 갖고 있다.해군 제2사관학교 교관 재직중 5급 공채시험에 응시,통일원 조사연구실 보좌관으로 처음 관계에 발을 내디뎠다.국민의 정부에서는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과의 관계가 껄끄러웠다.부인 김상리(48)씨와 1남1녀. ◆총리비서실장 탁병오 9급으로 공직을 시작해 행정고시 13회에 합격한 노력형 정통 행정관료이다.서울시 재직시절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의 수습을 도맡아 ‘재해수습 전문가’로 통한다.고건 총리가 민선 서울시장을 할 때 처음 정무부시장을 지냈다.온화한 성격.부인 양숙자(52)씨와 3남. ◆공무원교육원장 정채용 경남 남해 출신으로 행시 14회.군수와 시장을 3차례 지냈으며 행자부 지방재정경제국장,지방재정세제국장을 거친 정통 내무관료.2001년 민방위재난통제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지난해 차관보로 옮긴 뒤 행자부의 자치행정 지원업무를 총괄해 왔다.부인 안현정(50)씨와 2남. ◆과기부차관 권오갑 이공계 출신이면서도 행정고시(21회)를 거쳐 시야가 넓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친화력도 높다. 지난 97년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과학기술혁신 5개년 계획 수립때 주도적 역할을 했다.이영희(55)씨와 2녀. ◆노동부차관 박길상 기획력이 탁월한 실무형으로 꼽힌다.노정국장,근로기준국장,고용정책실장 등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쳤다.김대중 정부 때 대통령비서실 노사관계비서관을 지낸 뒤 자청해 서울지방노동위원장으로 물러나 있다가 발탁됐다.부인 송정희(51)씨와 1남1녀. ◆특허청장 하동만 행시 13회로 경제기획원의 주중 재경관을 거쳐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로 ‘중국통’으로 불린다.대외경제 감각과 업무 추진력과 부처간 이견 조율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삼겹살을 좋아해 부하직원과 소주잔을 자주 나누는 소탈한 성격으로 부인 배윤숙(50)씨와 1남1녀. ◆비상기획위원장 윤광웅 해상 작전분야에 능통한 작전·정책통으로 무기 획득분야 전문가이기도 하다.지난 98년 부산 근해에서 발생한 미국 핵잠수함 충돌사건 당시 미 7함대사령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조 방안을 구할 정도로 영어실력이 뛰어나다.부인 권영기(59)씨와 2남. ◆환경부차관 곽결호 74년 건설교통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상하수도국장과 한강홍수통제소장,환경부 정책국장과 기획관리실장 등을 역임한 환경 전문가.두터운 신망을 바탕으로 직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이끌어 내며 김명자 전 장관을 뒷받침해 정부업무평가 2연패를 달성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부인 이춘화씨와 2남. ◆보훈처장 안주섭 국민의 정부 초대 경호실장으로 5년 내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조직 장악력이 탁월하고 업무처리가 깔끔해 부하들의 신망이 두텁다.별명은 ‘두꺼비’.경호실장 재임 중 ‘고려-거란 전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부인 김영자(55)씨와 2남. ◆중기청장 유창무 산자부 업무중 자원분야 전문가로 충북도청에서 공직에 입문,동자부로 옮겨 자원분야에서 외길을 걸었다.소신있고 판단력이 빠르다는 평가다.지난해 기획관리실장을맡아 무역 분야 등 총괄 업무를 보완했다.부인 김복순(51)씨와 2남. ◆복지부차관 강윤구 두주불사지만 맡은 바 분야에서는 공부도 열심히 하는 뚝심파이다.자신이 과장을 거친 여러 분야에서 책을 한 권씩 썼고,재작년에는 기초생활보장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옛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보건복지부로 옮겨왔다.부인 김현애(51)씨와 1남1녀. ◆산림청장 최종수 강원도청을 거쳐 경제기획원에서 20여년간 경제 정책 전반을 섭렵했다.산림청으로 옮겨 신속 민원,백두대간 보전,숲가꾸기 등을 통해 탁월한 기획력을 발휘,능력을 인정받았다.뚝심과 끈기가 대단하다는 평.부인 황준숙(49)씨와 1남2녀. ◆법제처장 성광원 상공·중소기업 분야 전문가로 행정고시 13회로 공직에 입문,국방부와 상공부에서 잠시 근무하기도 했다.문민정부 당시엔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받아 여당인 신한국당과 그 후신인 한나라당에 법사전문위원으로 파견됐었다.회의때 토론과 대화를 통한 결론도출을 선호한다.부인 이미경씨와 1남2녀. ◆농진청장김영욱 26년간 국내 농업정책 분야를 두루 거친 농업전문가.농산물 유통개혁과 농가부채 대책마련 등으로 공을 인정받았다.농촌진흥사업에 관심이 크고 당정 조율도 잘 한다.합리적이고 낙천적인 성격.행시 16회.부인 정영순(54)씨와 2남. ◆예산처차관 변양균 조용한 성격이지만 직속 상관인 장관에게 눈치 보지 말라는 식의 직언도 서슴지 않는다.고교 시절에 미대 진학을 꿈꿨고,고려대 2학년 재학시절에는 신문사 신춘문예에 당선됐을 정도로 예술적인 감각이 있다.예산관련 업무를 두루 섭렵한 예산전문가.부인 박미애(50)씨와 2남. ◆국방부차관 유보선 육사 생도 때 독일 육사에서 유학생활을 했으며,현역 시절엔 작전·전략 분야에서 주로 근무해 왔다.부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 후배들이 잘 따른다.육사 7기인 선친 유상재씨는 한국전 때 중대장으로 근무하다 전사했다.부인 이순임(56)씨와 2남1녀. ◆산자부차관 김칠두 산업분야 경험이 풍부하고 호주와 영국에서 상무관을 역임,국제 감각을 키웠다.무역투자실장 시절 야근을 하며 분투,수출 확대에진력했다.차관보 시절에는 산업 4강정책 입안을 주도했다.후배를 잘 챙기는 보스형.부인 고성희(49)씨와 1남1녀. ◆농림부차관 김정호 농림부에서 드물게 비 농업경제학과 출신으로 안착한 농정 전문가.청와대 농림해양비서관으로 일했고 농업기반공사 설립 등을 잘 마무리했다.영어도 능통해 도하개발어젠다(DDA)등 굵직한 농업협상에 적임자로 꼽힌다.행시 17회.부인 이희경(49)씨와 1남1녀. ◆행자부차관 김주현 전남 광양 출신으로 행시 13회.시장과 군수를 세차례 지내고 전남도 기획관리실장을 지내는 등 지방행정에 밝아 지방분권과 지역균형 발전을 실무지휘할 적임자라는 평가.꼼꼼한 성격에 성품이 온화해 직원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부인 박숙영(50)씨와 2남. ◆정통부차관 변재일 국무총리실 등 정부조직을 두루 거쳐 부처간 업무조정에 장점이 있다.정보화기획실장으로 있을 때 ‘사이버코리아 21’을 입안,초고속인터넷 1000만 돌파 등 정보화강국으로 끌어올린 주역.합리적 사고와 외유내강의 성품으로 직원들의 신망이 두텁다.부인 전길자(50)씨와2녀. ◆병무청장 김두성 병무청에서만 20년 이상을 근무,병무행정의 산증인으로 통한다.고시출신 병무청장 1호를 기록했다.온화한 성품이지만 업무 추진에는 빈틈이 없다는 평이다.병역제도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등 학구파다.부인 박순호(48)씨와 2녀. ◆조달청장 김경섭 섬세한 성격에 차분히 일하는 스타일이나 보스기질은 없다는 평.옛 경제기획원 시절부터 공기업 심사평가 등을 주로 맡아 공기업과 인연이 깊다.국민의 정부에서는 예산실장 ‘0순위’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정부개혁실장을 맡았다.부인 이경재(49)씨와 1남1녀. ◆해양부차관 최낙정 해운항만청 등 해양수산부의 핵심부서를 두루 거친 정통 해양맨.조직 장악과 기획·조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 다면평가제 도입을 제안하는 등 대통령과의 관계가 돈독하다.부인 김성숙(48)씨와 1남1녀. ◆건교부차관 최재덕 건설교통부에서 잔뼈가 굵은 주택·도시·국토정책 분야의 전문 관료.행정수도 이전,수도권 신도시건설등 현안을 풀어갈 적임자로 꼽힌다.그린벨트 해제,주택시장 안정대책도 무리없이 추진했다.소탈하고 추진력도 뛰어나다.부인 조경애(52)씨와 1남1녀. ◆여성부차관 안재헌 조용하고 겸손한 성품에 능숙한 일처리가 장점.23살에 공직에 입문,33살에 제주군수,강릉시장을 지냈고 내무부 감사관,지방행정·재정국장 등 중앙과 지방을 두루 섭렵한 전문 행정관료. 2001년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부인 노혜순(52)씨와 2남. ◆문화부차관 오지철 대한체육회 국제과장으로 근무하던 82년 이후 문화체육부 국제체육국장,문화관광부 문화산업국장 기획관리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영어·불어 등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 88서울올림픽 때 대외업무를 도맡아 처리.형사법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의 학구파.부인 신명옥(48)씨와 1남1녀. ◆관세청장 김용덕 행시 15회의 선두로 재경부내의 손꼽히는 ‘국제금융통’이다.조용하지만 치밀하고 업무추진력이 강하다.2001년부터 국제업무정책관을 맡아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에 큰 기여를 했으며 이번 차관급 승진도그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후문이다.부인 김희준(52)씨와 2남1녀. ◆식약청장 심창구 국내 의약품의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로 약학계에 튼튼한 인맥을 갖고 있다.20년간 서울대 약대 교수로 재직해 왔으며 한국약제학회 회장도 맡고 있다.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일처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부인 한동옥(55)씨와 2남.
  • 참여정부 첫 내각/화제의 장관 4인

    ◆강금실 법무부장관 첫 여성 법무장관,첫 여성 법무법인 대표,서울지역 첫 여성 형사단독판사,첫 여성 민변 부회장,첫 부장검사급 법무장관.강금실 신임 법무장관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는 여성으로서 남성 중심의 제도권과 투쟁해 얻은 표창과도 같다.참여정부의 개혁을 상징하는 강 장관의 과거는 소수의 인권을 위한 삶이었다. ●93년 사법파동때 평판사회의 설립 지난 93년 ‘제3차 사법파동’때 ‘평판사 회의’ 설립을 주도,당시 김덕주 대법원장에게 ‘사법개혁 건의서’를 전달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5,6공화국 때는 형사단독 판사로 재직하며 집시법 위반으로 검거된 대학생들의 구속영장을 잇따라 기각하거나 무죄 석방하기도 했다. 96년 5월 서울고법판사를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난 강 장관은 개업하자마자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99년 9월 민혁당 사건 변호인을 맡은 데 이어 11월에는 납북 귀환어부 함주명씨를 고문한 혐의로 이근안 전 경감에 대한 고발을 주도하는 등 열성적인 활동 덕분에 2000년 5월 여성으로선 최초로 민변 부회장에 선임됐다. 57년 제주에서 출생해 경기여고 문과를 수석졸업하고,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강 장관은 대학시절 교내 탈춤반 활동을 하면서 사회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81년 사시23회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 성적도 7등으로 뛰어났다. 강 장관은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 광화문 민중문화사 서점 주인의 소개로 만난 서울대 철학과 출신 김태경씨와 4년 동안 열애한 끝에 결혼했다.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자주 투옥되던 김씨를 판사의 신분으로 뒷바라지한 일화는 유명하다. ●차세대 한국인 리더 18명에 선정 그러나 김씨가 부도를 내면서 3년전 헤어졌다.그는 2000년초 벤처기업 컨설팅 전문 로펌인 법무법인 지평을 설립해 불과 2년만에 변호사 60여명을 거느린 중견 로펌으로 키워내는 사업수완도 발휘했으며 지난해 8월에는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아시아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한국인 리더’ 18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대전고법 김영란 부장판사,민주당 조배숙 의원과 고등학교,대학교 동기동창이다.김 부장판사는 “강 장관은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도 항상 정의로운 길을 선택해왔다.”면서 “뛰어난 판단력과 탈권위주의적 인화력으로 직책을 잘 소화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kdaily.com ◆이창동 문화부장관 이창동 신임 문화관광부 장관은 말 그대로 문화예술인이다.이어령(문학비평가)·김한길(소설가) 전장관도 있지만 이들은 임용시 교수·정당인 이미지가 강해 문화현장과는 멀어보였다. 반면 이 장관은 소설가와 영화감독 등 땀냄새 나는 문화현장에서 주로 활동해 업무추진도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그를 증명하듯 취임 첫날부터 캐주얼풍 양복에 검정색 산타페를 직접 운전해 문화부에 도착,의례적인 취임식도 취소하는 등 잇단 파격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그의 삶의 여정을 찬찬히 뜯어보면 노무현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다.찢어지게 가난한 집안,고비마다 발휘한 뚝심 그리고 잔수보다는 정공법으로 돌파해온 점 등은 그를 임용하는데 큰 요인이 됐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첫번째 도전-전업 작가로 81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경북 영양고에서 교편을 잡던 그는 82년 결혼과 함께 서울로 왔다.그리고 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의 문을 두드렸다.유행과는 담을 쌓고 우직스러운 소설을 쓰다 87년 전업작가로 나섰다.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선 것이다.이후 작품집 ‘소지’‘녹천엔 똥이 많다’를 내고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해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했다. ●두번째 도전-영화속으로 그러던 그가 93년 ‘그섬에 가고 싶다’의 각색과 조감독이란 타이틀로 영화판에 뛰어들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본인은 연극에 심취했었고 영화감독이 꿈이었다지만 40세라는 나이에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웬만한 열정이 아니면 힘든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생 바꾸기’를 감행했고 탄탄한 극적 구성과 짜임새 있는 연출로 나름의 영화세계를 구축해 왔다.작품수는 ‘초록 물고기’(97)‘박하사탕’(99)‘오아시스’(2002) 등 3편에 불과하지만 그 작품성과 작가주의 정신은 비평계의 주목을 끌고도 남았다.“테크닉에 집착할 생각이 없다.”는 그의 정통파식노력은 청룡영화상과 대종상,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등 국내외에서 잇단 수상으로 보상받았다. ●세번째 도전-제도속으로? 그가 펼칠 문화정책의 구체적 청사진은 미지수다.하지만 취임 첫날 “경제·경쟁논리를 떠오르게 하는 문화산업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은 시사적이다.시장주의를 경계하면서 그 토대가 되는 순수예술에도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이종수기자 vielee@kdaily.com ◆김화중 복지부장관 간호사 출신인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의 보건의료 특보를 맡으면서 해박한 전문지식을 발휘했다.16대 국회에서 전국구로 등원한 간호계의 대부로 온화한 성격이지만 일단 결정된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추진력을 갖고 있다는 평이다. ●시민단체, 개혁성 미흡 지적 대선에서 권양숙(權良淑) 여사의 정무 특보를 맡기도 했다.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시민단체들은 내정설이 나돌 때부터 전문성과 개혁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들어 “건강보험 재정통합 등 난마처럼 얽힌 현안을 풀어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며 반대해 왔다.임명된 27일에도 국민추천과 검증을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수위를 수그러트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김 장관이 개혁적인 성향을 지닌데다 보건의료 전반에 대해서 폭넓은 지식을 지녔기 때문에 ‘적임자’라는 평가도 있다.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복지부)장관에 임명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며 그의 능력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노 대통령은 김 장관이 권 여사의 추천으로 입각한 게 아니냐는 항간의 소문을 의식한듯 “(김장관 임명이)아내와는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남편은 고현석 전남 곡성군수 그의 입각은 ‘군수·장관 부부’가 처음으로 배출됐다는 점에서 화제다.남편은 고현석(高玄錫) 전남 곡성 군수.분야는 다르지만 남편은 지방자치단체에서,부인은 중앙 부처에서 각각 행정을 책임지는 수장(首長)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서울대 재학시절 처음 만났다.고 군수가 법대 학생으로 농촌봉사활동모임의 회장을 할 때 간호대에 다니던 김 장관이 모임에 합류하면서 연애감정이 싹트기 시작,결혼에 이르렀다.고 군수는 지난 95년 3월 명예 퇴직할 때까지 만 26년 동안 ‘농협 맨’으로 일해오다 98년 민선2기 군수에 당선됐다.고 군수가 관사에 혼자 살기 때문에 두 사람은 5년째 ‘주말부부’다. 고 군수는 종가집 맏며느리인 김 장관이 70년대 후반 미국 컬럼비아대학으로 아이들을 떼어놓고 혼자 유학을 떠난다고 할 때 “아내는 살림만 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친척들을 앞장서 설득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임명통보를 받자마자 휴대전화로 고 군수에게 가장 먼저 ‘기쁜’소식을 전했다.네딸 중 막내(이화여대 의예과 2년)가 김 장관의 뒤를 잇고 있다. 곡성 남기창 김성수기자 sskim@kdaily.com ◆진대제 정통부장관 반도체 신화의 주인공 진대제(陳大濟·사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 총괄사장이 정보통신부장관에 임명됐다. ●장관보다 삼성 사장이 좋다(?) 삼성은 진 장관의 ‘입각 가능성’이 점쳐지자 ‘득실’을 따지느라 분주했다.특히 진 장관이 삼성전자의 ‘차기 전문경영인’으로 이건희 회장의 총애를 받아와 그의 입각에 따른 인적 손실을 우려했던것으로 알려졌다.삼성 내부에서는 입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삼성은 진 장관의 입각에 따른 손해를 고민한 것으로 전해진다.사업상 정통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는데,오히려 ‘역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삼성맨이었던 남궁석(南宮晳)의원의 정통부장관 재직시 통신사업 진출과 관련,불이익을 당한 경험이 있다.그러나 삼성은 새 정부의 재벌개혁 추진 강도가 예상외로 강력하자 자사 출신 인사의 입각이 정책 방향 등을 판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쪽으로 내부 결론을 내렸다. ●금전적으로 손해 막심 진 장관은 입각으로 60억여원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손해를 감수해야 할 처지다.9일을 남겨두고 7만주에 대한 자격이 상실되기 때문.2000년과 2001년 각각 7만주의 스톡옵션을 부여받았는데 이 중 2001년도분은 ‘2년근무’ 조건에 9일 모자라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됐다.행사 가격이 19만 7100원이기 때문에 현재 시가(28만여원)만 계산해도 60억여원이나 된다. 2000년에 부여받은 스톡옵션(행사가 27만 2700원)은 향후 7년동안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기간내에 주가가 지금까지의 최고가(43만여원)까지 오른다면 112억원을 벌 수 있게 된다. 한편 진 장관이 삼성전자 사장때 받은 연봉은 30억여원인 것으로 알려져 장관 연봉이 96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수입이 30분의1로 삭감당하게 됐다.스톡옵션 포기분까지 합치면 100억원대에 이른다. ●수원시향 지휘봉 잡기도 미국 스탠퍼드대학 전자공학 박사 출신으로 휼렛패커드,IBM에서 반도체를 연구하다 85년 삼성전자에 전격 스카우트돼 ‘세계 최초’의 반도체를 잇따라 개발해낸 주역.별명은 ‘미스터 칩(반도체)’ ‘미스터 디지털’이다.화려한 이력의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제품설명회 때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등장,수원시향 지휘봉을 잡기도 하는 등 ‘이벤트’에도 강하다.부인 김혜경(金惠卿·50)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정기홍 박홍환기자 hong@
  • 우리소리 가슴으로 느껴보세요/‘국악전도사’ 음악평론가 송혜진

    *숙명여대 전통예술대학원 교수로 국악FM 편성팀장까지 ‘종횡무진' “지금은 평론 앞서 알려야하는 단계” 송혜진(42)은 국립국악원에서 학예연구관으로 일할 때만 해도 국악평론가로 불리기를 좋아했다.그는 1987년 한 일간신문 신춘문예에 음악평론이 당선됐고,이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음악평론가의 한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음악학자이기도 하다.‘한국아악사연구’나 ‘한국악기’같은 무게있는 저작도 펴냈다.참 골치아파보이는 일을 하는 사람 같다. 그런데 요즘 송혜진이 활동하는 모습은 전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것 같다.그는 “대쪽 같은 평론을 하고 싶지만,지금은 평론에 앞서 알려야하는 단계”라면서 “어려운 국악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해석’하는 것이 요즘 제가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그에게서 평론가나 교수,학자의 말투가 느껴지지 않은 이유도 알 만하다. 송혜진은 현재 국악FM방송의 편성제작팀장도 맡고 있다.국악이라는 어려운 언어를 쉬운 말로 해석하고있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국악방송은 쉽게 옮긴 국악을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해주는 ‘마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의지가 현실화된 것이다.송혜진도 그런 뜻을 가진 사람의 하나였고,새달 2일이면 출범 2주년을 맞는 국악방송의 자라나는 모습이 그래서 더욱 대견하다. 그런 그에게 “방송을 듣는 사람이 그동안 좀 늘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청취인구를 말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는 솔직한 대답이 돌아온다.그는 “그렇지만 조사를 해보면 시민 10명 가운데 4명은 이런 방송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출발은 희망적”이라고 했다. ‘해석’하여 ‘알려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음에도,송혜진이 ‘온 국민에 사랑받는 방송’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은 조금은 뜻밖이다.그는 “국악은 그동안 문화재라는,전통음악이라는 이유로 수준에 상관없이 통할 수 있었다.”면서 “그래서 경쟁이 없었고,한해에 수백개의 신작이 초연됨에도 어떤 음악적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런 만큼 신작이 자주 전파를 타면서 청취자에 의해 선호되는 작품과 선호되지 않는 작품,선호되지 않지만 좋은 작품이 자연스럽게 가려지는 것은,국악방송이 음악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작품을 걸러가는 과정”이라면서 “이렇게 10년쯤 성과를 쌓아가 비평 기능까지 갖추면,독자적으로 ‘올해의 최고작품’‘올해의 음악가’를 당당하게 선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면 바랄 것이 없지만,이런 단계만 되어도 청취율에 관계없이 음악계에는 꼭 필요한 방송이 된다는 설명이다. 송혜진이 펼쳐놓은 또 하나의 마당은 물론 강의실이다.음악전공이 아닌 일반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통음악의 이해’는 지난 학기에 200여명이 수강했다.‘수제천’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학생들이라 어렵고,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갖기 마련이다.그는 “학생들에게 알려고 하지 말고 느껴보라.”고 강조한다.국악만 좋아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학기말 숙제도 “좋아하는 국악 작품이 무엇인지를 말해보라.”는 것.무엇 한가지라도좋아하는 취향이 생겼다면 성공한 강의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어쩔 수 없는 연구자로서 요즘 그의 화두는 ‘국악은 왜 아름다운가.’라고 했다.국악의 아름다움을 구석구석을 살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미학적 작업이지만,이 역시 보통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는 과정을 한 단계 더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그에게 “그래서 국악이 왜 아름다운대요.”하고 장난끼 섞어 물었더니 “아직은 선생님들이 하신 말씀을 확인하고 있다.”며 웃었다. 국악FM방송은 서울·경기지역에서는 91.9㎒,전북 남원에서는 95.9㎒로 들을 수 있다. 서동철기자 dcsuh@
  • 문학단신/ 신춘문예 당선자 갈수록 고령화

    올해 주요 일간지와 문예지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과 소설가의 평균 연령이 과거에 비해 훨씬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 3월호에 따르면 올해 대한매일을 비롯,경향신문,동아·문화·조선·한국일보 등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문인은 모두 13명이며 이들의 평균 연령은 36.1세로 나타났다.이는 15년전인 1988년의 31.9세에 비해 4.2세가 높아진 것이다. 지난해에도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 당선자 평균 연령이 35.7세로 30∼40대가 주류였다. 한편 지난해 ‘문학사상’‘현대문학’‘문예중앙’‘문학과 사회’‘문학동네’‘창작과 비평’ 등 12개 주요 문예지와 ‘문학동네 문학상’‘오늘의 작가상’ 등 2개 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시인과 소설가 35명의 평균 연령도 37.8세나 됐다.연령별로는 20대 5명,30대 13명,40대 15명,50대 2명 등이었다. ‘문학사상’은 등단 문인들의 고령화 이유로 생활안정과 시간의 여유에 따른 고령층의 잠재적 문학청년 증가,젊은 층의 문학전공 기피현상,오랜 습작기간으로 작품의완성도가 높아진 점 등을 꼽았다. 심재억기자
  • ‘황동규 12번째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지난해 말의 일이다.본사 신춘문예 시부문 본심을 맡아 최동호 시인과 함께 심사를 하던 황동규(사진·65) 시인이 이런저런 얘기 끝에 우연찮게 최 시인의 말에 묻어나온 ‘우연’이라는 말을 집어들더니 대뜸 무릎을 탁,치며 반색했다.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이거 어떻습니까.” 최 시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숙제 하나를 해결했다는 표정으로 흐뭇하게 웃던 그의 모습이,출판사에서 보내온 그의 열 두번째 시집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문학과지성사 펴냄)의 활자 사이에 실루엣처럼 어리며 생명으로 부활하고 있었다.그때 그는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시인 황동규.그는 초월의 시인이다.해탈이라는 종교적 의미의 초월보다는 탈속에의 기대와 희망으로 사는 시인이라는 의미다.사실 그만큼 현실 그 이상으로의 초월에 몰입하는 시인이 또 있을까. 이런 그의 초월 지향성은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라고 했던 연작시 ‘풍장’에서 흰 속살을 드러냈지만 지난해 발표한 시 ‘탁족(濯足)’에서도 ‘차마 신선일 수 없어 신선연(神仙然)이라도 해야 하는 시인’의 모습으로 시화되어 나타난다. 부석사 뒤편 오전(梧田)약수 골짜기,몸은 울창한 청계(淸溪)에 두어도 결국은 모기 같은 미물에까지 마음을 할애해야 하는 인간의 세속성,그 세속성에 경악의 세뇌(洗腦)처럼 쏟아붓는 시인의 각성이 얼마나 서늘한가.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이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풍장’ ‘악어를 조심하라고?’ 등을 통해 영혼의 고뇌와 방황을 읽었던 이들은 이후 ‘외계인’과 ‘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등 모노레일 같은 외길을 따라 어떤 이물감도 없이 새 시집 ‘우연에…’에 연착륙할 수 있다.그가 시를 통해 줄곧 그려온 하나의 선(線)이 그의 시를 읽은 이들에게 또렷한 궤적,이를테면 그의 시가 갖는 항상성으로 각인된 때문이다. 평론가 오생근은 이런 그의 시세계를 ‘사랑과 반역을 꿈꾸는 시와 시간’이라고 해석한다.그의 시가 “성과 속,일상과 예술,범인과 위인,마음과 풍경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찰로 영원의 감각을 탄주해낸다.”는 시각이다. 올해로 서울대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는 시인은 새삼 고백해야 할 그 무엇이 있어 새 시집에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는 로맨틱한 회상 같은 제목을 붙였을까.삶을 일컬어 “죽음이 타는 심지”라고 설파했던 그가. 심재억기자
  • 책꽂이/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외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김인숙 외 지음) 2003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김인숙의 ‘바다와 나비’를 비롯,특별상 수상작인 전상국의 ‘플라나리아’,추천 우수작인 복거일의 ‘내 얼굴에 어린 꽃’,하성란의 ‘자전소설’,전경린의 ‘부인내실의 철학’,김경욱의 ‘고양이의 사생활’ 등을 실었다.문학사상사 9000원. ●한국 현대문학사(김윤식 외 지음) 한국 현대문학 100년사를 통시적으로 조감했다.시와 소설,희곡,평론에 걸친 각 장르의 현역비평가 34명이 1900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문학의 흐름을 정리,문학 사료집으로 꾸몄다.김윤식 김우종 정현기 조남현 이동하씨 등이 집필했다.현대문학 1만 3000원. ●섬,나는 세상 끝을 산다(한창훈 지음) 지난 98년 소설 ‘홍합’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저자의 신작 장편소설.섬의 외진 곳에서 혼자 적막한 생활을 하는 주인공이 변방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열 두개의 이야기를 연작형식으로 엮었다.창작과비평사 8000원. ●피아노소리(김연화 지음) 제2회 ‘문학과 경계 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경기도일산 신도시에 있는 월마트를 무대로 중산층에 편입하려는 변두리 사람들과 외국 근로자들의 고달픈 생활을 그렸다.문학과경계 8000원. ●2003 신춘문예 당선시집 대한매일 등 올해 전국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 당선 시와 시조를 수록했다.시집에는 대한매일 시 당선자인 김경주의 ‘꽃피는 공중전화’등 14명의 당선작과 신작시 각 5편,심사평,당선소감과 당선자들의 약력 등을 실었다.문학세계 8000원. ●커피이야기(줄리아 알바레스 지음,송은경 옮김) 저자가 남편과 함께 고향인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나무그늘을 이용해 환경친화적으로 커피를 재배,생산하며 이 체험을 소설로 썼다. 나무심는사람 6800원.
  • 어린이 책꽂이/천둥과 번개는 어떻게 생기나요? 외

    ●천둥과 번개는 어떻게 생기나요?(오즈 벨버사 엮음,데트레프 커스텐 그림,선우미정 옮김) 무지개는 왜 생기고 하늘은 왜 파랄까? 썰물때 바다는 어디로 가고 별은 왜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지? 꼬리를 무는 자연에 대한 궁금증을 그림과 사진을 곁들여 풀어주는 과학교양서.동물들의 일상에 물음표를 찍은 ‘너구리가 씻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자잘한 생활필수품들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치약의 줄무늬는 어떻게 생기나요?’가 함께 나왔다.6∼9세.느림보 각권 8500원. ●어? 내 몸이 작아졌어!(조대현 글,권영묵 그림) 내 몸이 손가락만큼 작아진다면….이런 상상을 하다 정말로 몸이 작아진 어린 주인공 윤우.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제과점의 빵을 훔쳐먹고,개미들을 짓밟으며 장난도 치지만 나중엔 자연과 동물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지은이는 ‘범바위골의 매’로 알려진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의 동화작가.초등 저학년용.교학사 7000원. ●붓으로 조선 산천을 품은 정선(조정육 글)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의 삶과 작품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교양서.옛 그림에 무조건 거부감을 갖는 어린이들을 위해 도판 중심으로 편집했다.정선의 작품뿐만 아니라 당대 화단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다른 화가들의 작품도 나란히 실려 비교감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초등 3학년 이상.아이세움 8000원. ●둥!(야마시타 요스케 글,조 신타 그림,유문조 옮김) 도깨비 용이와 건이는 장난꾸러기.집에서 쫓겨나고서도 둘은 티격태격 쌈박질만 하는데….서로의 마음이 모르는 사이에 하나가 되는 놀랍고도 행복한 이야기가 익살맞은 그림 속에 잘 녹아 있다.3∼7세용.돌베개어린이 8000원. ●당나귀 부부(아델하이트 다히메네 글,하이데 슈퇴링거 그림,김경연 옮김) 남편이 은혼식 날을 깜빡 잊어버리자 부부싸움 끝에 각자 더 나은 짝을 찾아나선 고집쟁이 당나귀 부부.그러나 더 좋은 짝을 발견하긴커녕 날이 갈수록 서로의 소중함만 절실히 깨닫는다.당나귀 부부에게 초점이 맞춰진 간결한 그림이 집중력을 키워줄 듯.5세 이상.달리 8000원. ●땡땡의 모험-태양의 신전(8권)(에르제 글·그림,류진현·이영목 옮김)‘유럽만화의 아버지’ 에르제의 대표작 시리즈.소년 기자 땡땡이 여행길에서 만난 고대 잉카제국의 모든 것.그 시대의 의상과 장식,요새 도시였던 마추픽추를 재현한 장면 등에서 지은이의 날카로운 상상력이 돋보인다.9권 ‘오토카 왕국의 지휘봉’이 함께 나왔다.초등 고학년 이상.솔 각권 8000원.
  • 문학사상서 뒷얘기 특집 게재 /신춘문예 최다 당선은 ‘5관왕 이근배씨’

    1914년 12월10일 매일신보가 ‘신년문예모집’이라는 이름으로 신춘문예를 시작한 이래 해마다 원단의 신문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문단에 신인을 밀어 올리는 구실을 한 ‘문학 등용문’신춘문예.이 신춘문예의 뒷얘기가 월간 문학사상 2월호에 특집으로 실렸다. 신승철 문학사상 편집위원이 쓴 특집에 따르면 신춘문예 사상 가장 많은 당선기록은 시인 이근배(한국시인협회장)씨의 5회.이씨는 1961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과 경향신문·한국일보 등 세 신문에 각기 다른 작품으로 동시에 당선됐으며,이듬해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각각 시조와 시가 당선돼 5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작가 문형렬씨는 지난 75년 매일신문에 동화가 당선된 데 이어 82년에는 조선일보와 매일신문에 시와 소설이,84년에는 다시 조선일보에 소설이 당선돼 4관왕이 됐다. 그런가 하면 임찬일(작고)씨는 86년 월간문학을 통해 소설로 등단한 뒤 같은 해 중앙일보 전국시조백일장 장원,스포츠서울 시나리오 공모 당선에 이어 92년 동아일보(시조),96년 세계일보(시)신춘문예에 당선돼 소설·시·시조·시나리오 등 4개 장르를 석권하는 역량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작가 김도연씨는 3관왕,소설가 박기동·최인호씨,시인 오태환씨 등은 시와 소설 부문 2관왕의 기록을 갖고 있다. 김승희 정호승 이병천 이승하씨는 시로 등단한 뒤 나중에 소설로 다시 등단한 경우이며,남진우 김이구 정끝별씨는 시나 소설로 등단했다가 뒤늦게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한 경우에 속한다. 그런가 하면 심사위원들의 대립으로 공동 수상자를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79년 동아일보의 중편소설 부문의 이문열·이순씨와 같은 해 이 신문 평론 부문의 정과리·장석주씨,81년 한국일보 소설 부문의 황충상·이건숙씨 등이 이에 속한다.95년 동아일보 중편소설 부문에서도 은희경·전경린씨가 공동 수상자로 뽑혔는데 이들 역시 심사위원의 견해차로 공동 당선자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특집은 이밖에 중복투고·표절시비와 일부 문인들의 장르 넘나들기,재등단의 문제 등을 다루었다. 심재억기자
  • 2003대한매일 신춘문예 시상식/당선자 6명에 상금·상장

    2003년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상식이 20일 오전 11시 한국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 시상식에서 유승삼(劉承三) 대한매일신보사 사장은 김경주(본명 김병곤·시)·임정연(소설)·이성혁(평론)·변혜령(희곡)·이안빈(시조)·이채울(본명 이혜영·동화)씨 등 부문별 당선자 6명에게 상장과 상금을 수여하고 축하했다. 유 사장은 인사말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출중한 문학적 기량을 선보인 당선자들에게 축하를 보낸다.”고 말하고 “수상자들이 겸허하게 문학을 대해 세상의 진실과 진리를 캐내는 지혜로운 문학인의 삶을 이끌어 달라.”고 당부했다. 심사위원을 대표해 심사총평을 한 이근배씨는 “어느 해보다도 출중한 작품들이 뽑혀 심사위원으로서 큰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으며,임정연씨는 당선자를 대표해 “갈 길이 멀지만 각고의 노력을 쏟아 성공한 문인이 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시상식에는 한국문인협회 신세훈(申世薰) 이사장과 민족문학작가회의 현기영(玄基榮) 이사장,한국시인협회 이근배(李根培) 회장,대한매일 신춘문예 당선자 모임인 ‘서울문우회’ 장윤우(張潤宇) 회장과 회원 및 당선자 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심사를 맡았던 황동규·최동호(시)씨를 비롯,현길언·윤후명(소설)씨,오태석(희곡)씨,정명교·김인환(평론)씨,조대현(동화)씨,이근배·윤금초(시조)씨 등도 참석해 이들의 수상을 축하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시인 정일근 ‘시인의 편지­유혹’ 펴내

    ‘때로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생각이 듭니다.길은 끊어지고 서서히 어두워지고 있습니다.나는 아득히,아아득히 먼 거리에 서 있는 그대를 바라보며 망연자실,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슬픔에 잠깁니다.’(사랑한다는 말보다 먼저 하고 싶은 말) 울산 정족산 기슭에서 창작활동을 해온 시인 정일근(사진)이 ‘황홀한 시같은 산문’을 모은 책 ‘시인의 편지-유혹’(새로운눈)을 들고 왔다.편편이 빛나는 시인의 감성은,지상에 내린 별처럼 푸른 슬픔을 담고 있다.‘시보다 더 시같은’사유가 빼곡하게 들어차 잠든 감성을 일깨운다. 그는 ‘유혹’한다.‘어린 시절 어머니의 색실을 가지고 놀다 헝클어 놓은 것 같은,그 처음을 찾지 못해 끝내 뇌출혈을 일으키는 시인의 회한을 그대는 아시는지요.’ 책에 실은 글들은 정씨가 홈페이지(www.ulsan21.com)에 연재해 매회 6000∼7000회의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로 네티즌들 사이에 인기를 끈 산문들이다.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시 ‘바다가 보이는 교실’에서 느껴진 그의 서정적 시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그의 고백은 계속된다.‘나는 오랫동안 허무의 바다를 떠돌았습니다.그대는 그 바다로 돌아올 나를 기다렸습니다.작은 등대처럼 기다렸습니다.바람처럼 떠돌며 나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시상 속에 있는 ‘알 수 없는 그대’에게 그는 끝없이 연서(戀書)를 보낸다.예쁘고 아름다운 글은 사랑·그리움·삶에의 성찰이다.‘저물기 전에 그대의 바다에 닿으려 하고 있습니다.내게 내민 그대의 손을 잡으면 사랑한다는 말보다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그러나 자꾸 늦어집니다.길은 끊어지고 빨리 어두워집니다.’ 그는 지난 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이듬해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된 뒤 ‘바다가 보이는 교실’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처용의 도시’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등 여섯권의 시집을 냈다.더 쓸쓸해지기 위해 길을 떠난다는 그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얼마나 오랜 밤을 홀로 보내야 그대의 바다에 닿을 수 있는 것일까요.유년의 내 자전거 뒤에 다시 그대를 앉히고 휘파람 불며 달릴 수 있는 것일까요.기다려 주시겠습니까,나는 끊임없이 회향하는 바람이니…’ 심재억기자
  • [편집자문위원 칼럼]옥에 티

    신년호 ‘수평사회' 기획 신선 의원·인수위 출신교 분류표 ‘실망' 신문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1월1일자 신년특집을 받아보는 것이다.분량도 두툼하여 읽을 거리도 많지만 내용도 어제 일어난 소식의 전달에 얽매이지 않고 데스크의 관심과 비전을 엿볼 수 있고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생각의 폭을 넓혀 준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1일자 “ ‘젊은 한국'… 수평사회를 만들자”를 주제로 한 대한매일의 지면은 시의적절한 주제이다.정치적 민주화와 권위주의적 정치의 극복이 대주제였던 시대를 훌쩍 넘어 이제 밀레니엄의 문턱을 넘어서 지금은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 수평적 사회,공존의 시대가 일상생활의 틀 속에 자리잡아야 할 때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옥에 티'라면 같은 날짜 12면 한나라당 관련 기사에 실린 한나라당 소속 의원의 출신대학교와 출신고교에 대한 기사와 분류표는 대한매일이 지향하는 수평적 사회와는 거리가 먼 실망스러운 편집이었다.타파해야 할 유산중의 하나가 학벌을 중시하는 학연에 의한 폐해라고 한다면 과연 바람직한 편집이었는지 의문이다.사실보도 면에서도 예를 들어 정치적 성향이 사뭇 다른 원희룡 의원과 박종웅 의원이 같은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지난달 28일자에 새로 임명된 인수위원과 관련된 기사에서도 인수위원의 상세한 학력을 실은 도표가 실려있고 경력에 대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간략한 편이다.필자는 예를 들어 ‘전 판사’라고 소개된 인수위원이 어떤 성향의 판결을 내렸는지에 관한 정보가 그 위원이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에 대한 정보보다 더 유용하다고 본다. 시간적으로,공간적으로 보면 한국이민 100년을 주제로 한 ‘글로벌 시대,한국은 좁다’는 신년특집이 가장 돋보이는 지면이었다.필자는 중국인과 유태인 다음으로 우리 민족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흩어져 사는 민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필자가 살았던 인구 20만 정도의 작은 미국도시에도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자의 3세,한국전쟁 후 유학한 이민자,70년대 후반 취업이민으로 온 가족,80년대 이후 유학자유화의 바람으로 온 유학생들,한국전쟁 이후 미국가정에 입양되어 장성한 입양자,이민한 부모와 같이 온 1.5세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난 2세 등 우리 근대사와 현대사의 단면이 한데 어우러진 우리 동포들의 사회가 있다. 대한매일의 추산대로 재외동포의 숫자가 151개국에 565만명이라면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 할 만한 우리 민족의 ‘흩어져 사는 삶’의 규모와 범위를 짐작할 만하다.한때는 우리가 ‘세계화’를 주창하던 때도 있었지만 우리 민족 스스로가 이미 세계화된 것이라고나 할까? 해외동포사회에 대한 대한매일의 관심이 일회에 그치지 말고 우리 민족의 다양성과 잠재력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노력을 하여 주기 바란다. 그래픽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덧붙인다면 대한매일의 신춘문예 중에서 소설,동화,희곡 당선작과 함께 게재된 일러스트레이션은 아주 신선한 느낌을 주는 그래픽이었다.자칫하면 지루해보이기 쉬운 지면을 산뜻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러스트레이션과 같은 그래픽이 신문의 편집에서단지 ‘지면채우기’로서 만이 아니고 독립된 장르로서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주는 좋은 예라고 본다.
  • 대한매일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성혁

    1.기형도 시의 가상성 그의 죽음에서 벗어나 작품속 죽음 의미찾아 이 비평문은, 그러니까 기형도의 텍스트와 텍스트를 이어보고 만져보면서 이 가상적 구성물인 텍스트에 드러나 있는 것을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재구성(‘시인'의 세계관이나 무의식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닌-)하여 다시 텍스트를 짜내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우선 기형도 시의 ‘가상성'을 부각시키려 한다. 이는 기형도 자신도 원하는 것일 게다. 그의 친구인 원재길은, 별로 주목된 바 없는 글이라 생각되는 10여 년 전의 글에서, “창작자와 시적 자아를 동일시하는 심리주의 비평의 어떤 그릇된 접근 방식은 시인 자신으로부터 이미 거부당하고 있다.”(대화적 울음과 극적 울음)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위에서 거론한 비평가들이 조야한 심리주의 비평에 빠졌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시와 기형도의 의식의 동형관계에서 벗어나 시를 문학적 텍스트로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원재길은 이미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기형도의 여러 시편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등장 인물과 간단한 사건과 시간에 순연하는 구성이 있는 극적인 구조를 취한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기형도 시가 하나의 독특한 가상적인 구성물임을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깊게 논의를 더 진전시키지 않았고, 그의 지적이 논자들에게도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다. 대개의 평문들에선 기형도 시의 등장 인물들-낯선 ‘그'로 자주 등장하는-은 대상화된 ‘나'로 취급되어 기형도의 자아를 반영하는 인물이 되어 버리곤 한다. 즉 기형도 시가 ‘극적 구조', 하나의 가상적 구성물임을 주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1)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 부분 2)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한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가/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 부분 1)에 등장하는 서기나 ‘김'을 대상화된 기형도 자신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편으론 옳고 한편으론 그르다. 옳다는 점은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는 나”라고 발언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모든 허구적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시 같은 서정적 장르에서는 그 분신의 농도가 더 짙으리라. 하지만 그 등장 인물이 시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파악은 그르다. 시에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 등장 인물은 시 텍스트의 공간 내에서 자기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의 ‘나'는 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게 된 텍스트 속의 ‘나'이다.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받은 ‘나'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서정시인일 것이다. 위의 시에서 서기는 시인의 대리일 뿐 아니라 카프카적 의미에서의 서기, 관료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무의미한 일에 탕진하고 있는 우리네 삶의 형식의 상징으로서의 서기이다. 유리창은 그 서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와 서기를 갈라놓는다. 이 유리창 때문에 ‘나'는 울고 있는 서기에게 가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없다. 하지만 유리창 덕분으로 ‘혼자 울고' 있는 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유리창은 타자와 소통할 수 없게 하는 칸막이면서도 또한 ‘혼자' 각각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게 한다. ‘나'와 ‘그'를 동일시하여 각자 홀로 있는 ‘나'와 ‘그'의 어긋나 있는 대위 구조를 보지 않는다면 이 시가 뿜어내고 있는 의미를 붙잡기 힘들다. 원재길의 ‘극적 구조'를 넓게 본다면 이 장면 역시 그 구조에 포함시킬 수 있으리라. 침묵의 극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1)의 서기의 울음을 조명하여 해명해주는 텍스트로 볼 수 있는 2) 역시, 독백의 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그'와 ‘김'은 동일 인물의 분신들이다. 1)에서 시적 화자가 ‘나'라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 화자가 담론 배후에 있고 시 표면에 등장한 ‘나'가 독백하는 형식으로 ‘김'의 중얼거림이 나타나 있다. 홀로 있는 ‘김' 옆에서 ‘김'을 ‘바라보는' ‘그'는 사물화된 김의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김이라 할 수 있는데, 성으로만 표시되어 개성을 잃어버렸음을 표시하는 ‘김'보다 더 몰개성적인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김'이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그와 김, 그리고 흐물흐물한 대명사가 되어 버린 ‘나', 또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극적으로 어울리게 된다. 그런데 1)에서 서기의 울음을 볼 수 있는 순간은 바로 홀로 있음의 순간, 침묵의 순간이었다. 침묵이 깨지면, 이 순간은 깨지고 말 것이다. 세계를 토막내는 언어의 세계가 침묵할 때 순수한 존재 자체가 떠오르지 않겠는가. ‘두 시', 삶이 무의미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순간을 깨달을 때의 침묵의 시간, 그 직후터뜨리는 울음의 순간에 배치되는 사물과 인간을 이 시들은 포착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극적 구성은 플롯을 시에 도입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 배치된 장면을 응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데, 이 일상을 갑자기 전복시키는 시간이 정지된 순간은 기형도 시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된다. 그는 (어느 푸른 저녁)의 시작 메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끔씩 어떤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들'은 아주 낯선 것들이고 그 ‘낯섬'은 아주 익숙한 것 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가 그때 뛰어들어온다. 그 ‘순간들'은 위험하고 동시 에 위대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감각들의 심판을 받으며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 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형식이 기형도의 가상적 구성물-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그 순간은 시간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어떤 연속선상을 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텅 빈 그 순간, 침묵의 순간을 말하기 위해선 우회로를 빙빙 돌아 그 순간을 간접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즉 가상적 공간, 더 나아가 환상적 공간을 구성하여 그 순간을 암시할 수밖에 없다.(어느 푸른 저녁)에서는 그 순간을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이라고 말한다. 이 저녁엔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에서 사람들은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가는 순간이 온다. 이 환상적인 순간은 어떤 예감을 통해 감지하게 된다고 시적 화자는 말한다.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고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것은 무방하지 않은가/나는 그것을 본다/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을 숨기고 있는가/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모든 움직임이 홀연히 정지”한 상태, 이 상태는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실제 상황의 묘사로는 이 상태를 그려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상태는 볼 수 없는, 예감으로서만 감지할 수 있는 상태이면서, 예감했다고 알아차린 순간 없어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라고 시는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 순간은 그러니까 현실 묘사가 아니라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환상은 의미의 블랙 홀과 같은 상태다. “보이지 않은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의미는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진다. 시인은 또 “이 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역시 순간일 뿐이다. ‘검은 외투'-죽음의 외투-를 입은 사람들은 여전히,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그들의 딱딱하고 무미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본다”고 시인은 말한다.(여기서도 시적 화자는 보는 사람이며, 증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블랙 홀과 같은 어떤 순간을 느낀 순간, 나에게 ‘그'가 다가온다. ‘그'는 ‘나'의 분신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악마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악마는 말을 걸어온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의 인생의 의미를 모두 무화시킨다.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라고 그 악마는 속삭인다.다시 말해 모든 것이 무의미의 검은 구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을 예감할 때 그 악마는 등장한다. 그리고 세상의 법칙, 아마도 죽음으로 가는 삶의 법칙을 가만히 상기시킨다. 기형도 자신이 말한 ‘가능성'과 ‘불안'은 그 ‘순간'이 이 악마적인 것의 출현을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악마적인 것이 죽음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시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새로운 삶,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주며 ‘위대'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의 지경에 다다른 이때 투명하고 푸른 공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감추어진 ‘둥글고 빈 통로'가 열린다. 그래서 악마적인 ‘그'가 말한 숨겨져 있는 ‘법칙'은 다만 죽음의 법칙만이 아니라 환상 속의 다른 통로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형도 시의 환상은 양면적이다. 일상적 삶의 흐름 속에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채택되는 그의 환상은 우리의 삶을 무화시키는 블랙 홀의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신비롭게감추어진 희망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시는 시의 탄생과 그 탄생이 가져오는 양면성에 대한 알레고리일지도 모른다. 2.기형도 시의 이중성 파우스트가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이때 아름다움의 순간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은 일상의 권태로운 세계를 무화시킨다. 인간은 권태의 세월보다 죽음을 무릅쓴 아름다움의 세계에 닿고자 하지 않겠는가?(그래서 아름다움은 치명적인 유혹이라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름다움은 죽음의 세계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일상적 삶이 도리어 죽음과 같은 삶이라는 것을 드러내어 삶을 희망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파우스트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도 늙은 파우스트가 아름다움의 순간을 찾아 나서는 데서부터이다. 물론 그는 끊임없는 생성을 젊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순간이여 ‘멈추어라'라고 만약 자신이 말한다면 자신을 지옥에 데려가도 좋다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그러나 결국 파우스트는 자신이 매립제에건설한 도시(악마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를 바라보며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죽음의 말을 토해내며 쓰러진다. 즉 파우스트가 산 젊음은 이 아름다운 가상에 대한 외침에 도착함으로써 끝난다. 그의 젊음과 행위는 결국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아름다움의 순간'이란 착지에서 그의 젊음과 힘은 지옥으로 넘겨진다./기형도 시가 포착하려던 그 “위험하고 동시에 위대하다”는 ‘순간'의 이중성도 아름다움에 대한 《파우스트》적 아이러니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형도의 시가 드러내는 아이러니는 순간이 가져오는 이 이중성에 대해 팽팽한 긴장을 풀지 않음으로써 이끌려 나온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시작 노트와 을 다시 상기해보자. ‘아주 낯선 것들'이면서 ‘아주 익숙한 것들'이라는, 순간들의 이중성에 대한 긴장을 시인은 계속 놓치지 않는다. 아니 순간들의 이중성의 포착은 이 대상에 대한 긴장에 찬 예민성의 끈을 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주 낯선 것들로의 ‘둥글고 빈 통로'를 마련하는 어떤 순간은 우리가 언제나 부딪히는 일상에서의 어떤 순간이다. 그래서 ‘아주 익숙'하기도 하다. 그 순간이 벌려내는 환상은 우리 삶의 현장인 일상의 삶을 무화시키면서도 어떤 다른 세계로의 통로, 다른 삶의 세계를 열어 놓는다. 이 이중적인 통로의 발견을 기록하는 데서 기형도의 시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통로의 이중성은 ‘둥글고 빈'이라는 수식어에서 이미지화되어 있다. ‘둥근 것'은 아날로지의 세계를 상기시킨다. 아날로지는 모든 개체가 전체를 비추고 전체가 개체들을 끌어안는 조화의 세계 아닌가./그 세계는 둥글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비어 있다는 진술에서 ‘둥근 것'의 아날로지 세계는 아이러니의 상태로 변화된다./‘둥글고 빈' 통로는 아름다움에로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無에로의 통로이기도 하다. 이 둥글고 텅 빈 통로를 통과하여 다다른 어떤 다른 세계, 아름다움의 세계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공기 방울의 세계이다. 저녁 노을이 지면/神들의商店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신비로운 그 城///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 성 안은 “아름답고/신비”한 세계이다. ‘시작 메모'에서 말한 ‘위대한 순간'이 형상화된 세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이 세계에도 해당된다. ‘존재'가 차안의 세계에만 해당된다는 개념이라면 말이다. 이 세계는 신들이 사는 세계이지 않은가. 이 세계는 신들과 농부들과 작은 당나귀는 이 성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어느 하나도 빠지면 성립되지 않는 세계이다. 즉 아날로지의 세계다.시인도 ‘역시' 작은 당나귀들도 평화로운 그 성에 농부들과 살고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은 공기와 같은 세계라서 “구름 혹은/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다가갈 수 없다. 갑자기 시간이 멈추어지고 세계가 낯설어지며 감각이 착란될 때의 순간이 열어놓는 어떤 ‘푸른 저녁'같을 때, 사람들이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갈 수 있었다. 이 ‘순간'에만 바로 ‘둥글고 텅 빈' 통로를 따라 이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성 안의 세계는 바로 그렇게 공기 방울, 구름이 된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룬 세계이다. 그런데 이 공기 방울의 세계는 차안의 공간에 있진 않지만, 차안과 동떨어진 피안의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차안의 공기 안에 있다. 우리가 언제나 대하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언뜻 벌려진 공기와 공기 사이의 블랙 홀을 공기가 되어 통과하면 만날 수 있는 세계이다.그러니까 이 성 안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뒤-옆-앞에 있다. 그래서 이 세계에 들어가려는 골동품 상인-아마 차안의 세계의 속성인, 살해를 자행하는 폭력성을 보여주는 등장 인물이라 할-이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가 보았자 헛수고가 될 수밖에 없다. 골동품 상인은 차안의 세계 뒤에 있는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는 숲만 자르면 성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삼차원적 세계 인식에 머물러 있다. 그가 차안에서 아무리 폭력과 파괴를 행한다 해도 이 숲으로 된 성벽 안은 의연히 평화로운 마을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만큼 불안하다. 우리가 이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도는 앞에서 보았듯이 기화되는 길밖에 없다. 통로가 ‘빈' 통로여서 들어가려는 이는 빈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공기 세계는 어떤 무게 있는 물질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볍게 둥둥 떠다닌다. 공중에 투사된 영상처럼 흩어졌다 모여지는 그런 세계다. 우리가 손으로 만질라치면 그 세계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릴 것이다. 이 아날로지의 세계는 그래서 희망의 저편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은 품을 수 있으나 어느전도와 착란의 순간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차안에선 이루어낼 수 없을 세계이다. 기형도가 희망에 대해 ‘어둡고 텅' 비어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숲으로 된 성벽' 자체가 비어 있고, 그 비어있는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도 빈 희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 (植木祭) 중에서 기형도 시에서의 ‘죽음'은 시인의 우울한 세계관이나 유년의 기억 때문이라기보다는,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와 선택을 통해 ‘각오'한 것이다./ 이 죽음의 각오는 ‘둥글고 빈 통로'에 들어갈 때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통로에 들어간다는 일은 다른 삶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의미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앞에서 본 바 있었다. 통로 저 편에 있을 숲으로 된 성벽에 갈 수있으리란 희망은 절망으로 전화될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둥글고 빈 통로를 걸어 도달할 수 있는 희망이란 빈 희망이기에 그러하기도 하고, 숲으로 된 성벽이 아름답다고 외친 순간 그 아름다움의 덧없음이 부각되면서 죽음이 드러나기 때문에, 즉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은 어두운 희망이라 말할 수 있기에 그러하기도 하다. 그 성벽은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착란과 환상을 통해 대기에 구멍이 나는 순간을 파악하려는 기형도 시는,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을 때의 죽음으로 가는 구멍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푸른 유리병' 같은 공기가 점차 탁해지면서 ‘안개'로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안개) 중에서 푸른 대기 속의 둥글고 빈 통로는 ‘안개의 빈 구멍'으로 전화한다. 다른 삶으로 가는 ‘순간의 통로'가 안개에 의해 막혀버리고 순간이 가지는 죽음의 성질만이 드러난다. 이 순간은 안개로 뒤덮인 환상적인 마을을 구성함으로써 나타나고, 그 죽음의 성질은 다시 일상이란 것이 얼마나 죽은 상태와 같은가를 간접적으로 포착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차안의 세계에 대한 네거티브 필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네거티브 필름 같은 가상적 세계는, 흐리멍덩한 색깔인 안개의 색깔로 대상의 윤곽만 드러내면서, 생명 없고 답답한 무엇으로 현상한다. 이 시를 더 읽어보자. 죽음의 공기인 ‘안개'의 빈 구멍은 사람들을 빨아들여 그 속에 가두어 놓는다. ‘이 읍' 사람들의 삶은 ‘쓸쓸한 가축들'처럼 무리지어 있지만, 안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세계 앞에서 무력하고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 읍은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인데, 그것은 “한 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하기도 하고, “방죽 위에 醉客 하나가 얼어 죽”지만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같은 시에서)하기도 하는 사건이다. 겁탈당한 여직공과 얼어죽은 취객은, 윤곽밖에 보이지 않는 이 읍 안 사람들에겐 파괴당한 삶을 흐릿하게 바라보고는 쓸쓸하게 고개를 숙여보게 하는 사건 정도의 의미만 가질 뿐이다. 그들 눈앞에서 타인들은 안개 속으로 ‘지워지고' 그들은 제각기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안개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 없게 만드는 세계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또는 그렇게 변화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미지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변화 없는 지속이 기억의 지속을 가져오진 않는다. 그 반대이다. 이 읍에선,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이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나 버린다. 그러므로 이런 지속의 시간성은 텅 빈 시간성이다. 기억이 없이 사는 것은 텅 빈 삶이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와의 상호적인 울림이 없는 시간이고, 그래서 미래조차 가능하지 않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현재가 끊임없이 과거로 되어야만 미래가 있을 수 있어서, 과거가 존재하지 않으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개는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 존재이다. 움직이지 않는 존재는 죽은 존재이다. 죽은 존재인 안개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죽은 존재이다. 안개는 독과 같다. 그러나 그 읍 사람들은 안개를 마약처럼 마신다. 안개를 편하게 느낀다./ 안개가 끼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내보여야만 해서 “방죽 위의 얼굴들은 모두 낯설”어지고 “서로를 경계하며/바쁘게 지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읍은 ‘안개의 聖域'이 된다. 안개 속의 삶이 정상적인 삶이 된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게 되기도 한다. 이 세계 속에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가”게 된다. 이 반어적 표현에는, 안개가 ‘무럭무럭' 키우는 아이들의 삶이란 그들 모두 검은 굴뚝과 폐수와 겁탈의 위험이 있는 공장으로 쓸쓸히 끌려가는 가축과 같은 삶임을 암시한다. 3.작품속 죽음의 포착 (안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를 선택했을 때 기형도 시가 발 딛고 있던 ‘순간'은 무서운 죽음의 세계-안개로 뒤덮인 읍과 같은-를 입벌려 드러낸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죽음의 세계-지옥에서의 형벌-는 ‘느릿느릿 새어나'와 계속 ‘미친 듯이 흘러다'((안개)중에서)녀야 한다. 앞에서 본 (식목제)의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라는 구절에서와 같이 이 형벌은 정착이란 있을 수 없게 만든다. 기억도 없이, 미래도, 삶도 없이 흘러다녀야 한다. 오직 흘러다님의 지속만 있을 뿐이다. (안개) 속의 읍내 사람들은 명계(冥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삶을 잃어버린 이 유령의 떠돌아다니는 모습이 일군의 기형도 시의 한 주제를 이룬다.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러 가시라고/모든 길들이 흘러 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서 기형도는 죽음을 무릅쓰고 희망을 포기했다. 그리하여 현실의 이면에 있는 죽음의 안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이와 동일하게 안개에 중독된 유령들을 포착하기 위해선 희망을 억눌러야 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육체를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들이 머무는 정거장으로 쓰려고 한다. 불안이 죽음을 예감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면, 불안을 머물게 한다는 말은 죽음들의 예감을 머물게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죽음들이 방문을 할 수 있도록 길이 자신에게 흘러들어 죽음이 그 길을 통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길이 흘러드는 정거장으로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려면 자신의 육체 자체가 걸어다녀야 한다. 길이 걸어올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길이 흘러 온다는 말은 자신이 걸어다니면서 만나는 길을 흡수한다는 말이다. 걸으면서 길을 흡수하고 흡수한 길을 통해 불안-유령을 만나고 그 유령의 세계를 구성하는 환상으로 시가 구성되게 된다. 이 유령과의 대면을 보여주는 대목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白夜)에선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팡팡 빛나는 이 무서운 白夜” 속에서 “무슨 農具처럼 굽은 손가락들, 어디선가 빠뜨려버린/몇 병의 취기를 기억해내며” “천천히 걷고 있”는 한 사내를 보여준다. “휘적휘적 사내는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사내는 “문닫힌 商會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진다. 그의 등에 “軍用 파커 속에서 칭얼거리는 어린 아들을 업은 채” 말이다. 담배 살 돈이 없을 이 사내는 아마 어린 아들과 함께 길에 쓰러져 쓸쓸히 얼어죽을 것이다. (가는 비 온다)에서는, 어느 가는 비 오는 날,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지 않는다는 시적 화자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면서 전개하는 여러 상념들을 보여준다. 그 상념들은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나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면/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와 같은 죽음의 여러 모습이다. 주검을 직접 보여주는 시도 있다. 가령, “구름으로 가득찬 더러운 창문 밑에/한 사내가 쓰러져 있다, 마룻바닥 위에/그의 손은 장난감처럼 뒤집혀져 있다”((죽은 구름))와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주검은 감정이 절제된 상태로 서늘하게 즉물화되어 있다. 시적 화자가 우울하게 가고 있는 거리엔 주검들과 죽음에 대한 상념을 유인하는 ‘낡은 간판'들이 널려 있으며 기후마저도 그러한 상념을 피워 올리게 한다. 그의 눈에 포착되는 사람들은 좀 있으면 죽을 운명이거나 죽어버린 이다. 또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유령들이다. 이들은 회한과 외로움에 말라죽어 가는, 행복과 거리가 먼 이들이다. 플랫폼에서 본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이”고((鳥致院)), 어느 카페에서 본 사내는 “그것으로 탁자를 파내”면서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장밋빛 인생))라고 새겨 넣는다. 삶을 박탈당한 유령들의 포착은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처럼 ‘흘러다'니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가 포착하는 대상의 대부분인 흘러 다니는 사람들은 시적 화자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다. 그 사람들의 삶이 시적 화자의 삶과 다름없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다시 시적 화자의 내면 독백은 떠도는 자의 내면을 드러내게 된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 낸 추억들이 밟히고/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 (진눈깨비) 중에서 진눈깨비 뿌리던 날, 시적 화자는 그날도 역시 거리를 걷는다./ 거리에서 그는 ‘취한 사내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거해 있는 ‘빈 트럭'도 본다. 그리고 ‘구두 밑창'으로 ‘추억들이 밟히'는 소리를 듣는다.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밟히는 소리도 듣는다. 외로운 빈 트럭과 쓸쓸하게 쓰러지는 취한 사내들에 대한 묘사와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들을 불러오는 회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시적 화자가 주체가 되어 추억들을 불러온다기보다는 저 진눈깨비와 거리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기억들을 불러온다. 그 기억은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오”시기에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엄마걱정) 중에서)의 기억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엄마가 없어 빈방에 혼자 훌쩍거린 기억을 감추고 있을 사람들이며, 역시 집에 들어가면(집이 있다면) 빈방에 홀로 앉아 있을 사람들일 게다. 죽어가는 이 유령들은 그런 기억을 깊이 품고 살아갈 것이며, 이는 다시 역으로 시적 화자 자신도 그 기억을 품고 쓸쓸히 죽어 가는 유령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죽음'을 발견하는 ‘흘러 다니기'는 점점 시적 화자 자신 안의 죽음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 되어버리게 된다. 시적 화자는 “곧 무너질 것만 그리워했”((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다고 말한다. 무너지는 것들이 결국 그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증언하는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과 같이 떠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자신의 다리를 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여행자) 중에서)라고 울부짖는 여행자와 같은, 떠돎을 그만둘 수 없는 유령이다. 환상적 공간의 열린 순간을 통해드러난 죽음의 세계, 그리고 그 안을 떠돌아다니는 유령적 삶의 포착은, 이렇게 자신도 유령이라고 인식하는, 안개의 구멍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도 안개에 중독되어 버렸다는 점을 인식하는 시적 화자의 등장을 통해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음의 공간은 더욱 전일화되고 가공할 것으로 드러낸다. 유령의 세계를 증언하는 자신도 유령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그 경악의 순간은, 바로 메두사가 페루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의 그 놀람과 두려움의 순간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기형도의 시는 바로 그 경악의 순간을 포착한 카르파치오의 (메두사)란 ‘그림'과 같은 것일 터, 시 텍스트는 그 경악의 순간 자체, 또는 그 순간의 재현이라기보다는 경악의 순간을 구성하여 현현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예술 텍스트가 구성되기 이전엔 그 경악의 순간을 우리는 ‘맞서게 되지' 못한다. 환상을 사용하여 순간을 포착하는 시-예술이 그 경악의 얼굴을 객관화할 때 비로소 경악의 순간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입 속의 검은 잎)은 바로 자신의 얼굴을 본 메두사가 경악하는 순간을 객관화하는 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그의 어린 아들은/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그 일이 터질지 모른다, 어디든지/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이 시에서 등장하는 진술과 사건들이 현실의 어떤 대응물을 지시한다고 본다면 곧바로 해석의 난점이 생길 것이다. 운전기사, 장례식, 망자의 혀, 없어진 사람들, 죽은 사람, 검은 잎,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나' 등,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시 텍스트 안에 배치되었을 땐 이 단어들은 그 대상들을 지시하지 않게 된다. 하나의 극적 공간 속으로 이 존재들은 새로 의미를 얻으며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공포의 분위기에 맞추어진다. 어떤 가공할 권력에 의해 살육된 자들이라 상상할 수 있는 ‘무더기'의 실종된 자들-망자들-의 말하지 못하는 혀-잘린 혀일까?-는 유령처럼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 유령들은 벌써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린 사람들 몸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 혀들은 이제 ‘거리에 흘러넘'친다. 장례식은 살육당한 자들 중 한 명의 장례식일까? 그 죽은 이의 잘린 혀 역시 거리에 흘러 다닌다. 물론 그 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잘린 혀들이 내는어떤 철버덕거리는 소리, 성대가 잘려나간 채 바람만 빠지는 쇳소리를 내는, 꿈틀대는 소리들을, 원한들을, 슬픔들을, 저주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환청 속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혀가 ‘천천히 굳어'감을 자각한다. 그것은 시신을 실은 ‘백색의 차량 가득' 나부끼는 검은 잎 때문이다. 살육이 자행되는 세계에서 살해당한 자들의 유령이 검은 잎일까? 그 유령들-검은 잎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릴 때 혀는 굳어져오며, 이윽고 죽은 자의 혀가 된다. 그리하여 시는 죽은 자의 혀로 쓰여지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지옥에 가 있는 이들이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무당처럼 대신 말해주는 이가 된다. 정리하자면, 시적 화자가 온통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 와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세계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음을,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인 운전기사가 어딘가로 그를 데려가서 이 유령들이 시적 화자의 혀를 통해 죽음의 이 세계를 증언할 수 있도록 시적 화자에게 내리는 신들림을, 언제 살육될지 몰라 두려워하는(‘그 일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의 음산한 어조로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아득한 공포의 순간/을 객관화시키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떤 수수께끼를 동반한 순간적 전율을 느끼게 된다. 기형도의 시가 도달한 한 극점은 바로 여기다. 앞에서 보아온, 환상적 공간이 뚫어 놓은 순간의 구멍을 통해 나타나, 죽음을 퍼뜨리는 세계와 그 속에서 떠도는 유령들이, 이 시에선 하나의 전율케 하는 장면으로 종합되어 갑작스레,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현현하기 때문이다. 이 경악의 세계는 물론 가상의 세계이고 현실 세계로 치환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형도 시의 세계가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향유 대상으로서의 단순한 가상과는 달리, 시어가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뿜어내는(메두사를 본 메두사), 자기 파열이 가져오는 전율을 우리에게 이 가상 세계는 던져주는데, 그 객관화된 전율과 맞서는 독자는 충격 속에서 새로운 현실에 부딪히며 일상적 시간의 지속이 파열되는 ‘순간'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상적 순간의 충격 속에서 일상적 시간 안에 감추어진 안개와같은 죽음의 습기를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공포의 세계는 기형도 시가 열어 놓은 ‘순간의 통로'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입 속의 검은 잎)의 세계는 그 반대 극점이라 할 수 있는 (숲으로 된 성벽)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고 희망할 순 없을까. ‘순간의 통로'는 다시 저 유토피아적인 미의 세계로, 숲으로 된 아날로지의 세계, 공기 방울 같은 환상의 세계로 길을 열어 놓기도 하지 않았는가. 물론 아날로지의 세계가 급전하여 유령들의 세계, 경악의 세계가 현현하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보아 왔다. 그러나 반대로, 경악의 세계가 급전하여 다시 저 아날로지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이 두 극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경악의 세계는 다시 희미하게 ‘숲으로 된 성벽'으로 가는 길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적 세계는 부정성을 통해서만 희미하게 빛날 수 있다면 말이다./그렇다면 기형도의 시는 일상적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부정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를 통해세계와의 화해의 열망을 담아 놓을 수 있는 용기도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를 보여주기 위해 두 세계의 연결 지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고, 이 작업은 상당한 분석과 해석을 요하는 일일 것이다. 글을 마치는 이 시점에서도 비평적 재구성은 완성되지 않았다. 아니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기형도 시 텍스트는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며 몸을 벌리고 있다. (끝) ◆당선소감 영광이다.기쁘다.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진다.과연 좋은 글을 내가 계속 써나갈 수 있을지,두렵기조차 하다. 당선 통보를 받고 비평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좋은 비평을 하기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큰일이다. 지금은 문학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문학이 다시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아니라 문학 자체의 정치성에 대해서,그리고 더욱 정치성이 짙은 비평에 대해서. 선거 행위만이 정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는 윤리의 문제로서 생각해야 한다. 또한 윤리가 단순한 도덕의 차원이 아니라면 삶에서의 권력과 활력 문제로서 윤리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학은 권력 망을 드러내고,비판하며 그것에서 삶이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줄 수 있고,삶의 활력을 북돋을 수 있지 않은가.그렇다면 문학의 윤리-정치성은 더욱 증폭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 그리고 비평이 정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새로운 인간 관계의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나에게 사랑과 기쁨을 전해 준 사람들에게,그리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도,빈 말이 아닌 ‘고맙습니다.’란 말을 전하고 싶다. 이성혁 ●약력 67년 서울생, 한국외국어대 일어과 동 대학원(국문학), 외대강사, 99년 ‘문학과 창작' 평론부문 신인상 수상 ◆심사평 김용하의 ‘미적인 것의 정치성과 정치적인 것의 윤리성’,오홍진의 ‘관념으로 빚은 소설의 성채’,이성혁의 ‘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은식의 ‘사물과 하나가 되기까지의 여정’,장사흠의 ‘풍경의 미학과 권력의 탐색’이 주목을 받았다. ‘미적인 것…’은 미학적 범주들과 시적 언어 사이의 조응 양상을꼼꼼히 살핀 글이지만,미적 개념들을 상호 연관시켜 긴밀한 인테리어를 꾸미는 데는 실패하였다.‘관념으로…’는 짐승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 사이에서 요동하는 정찬 소설의 권력의 역학을 집요하게 추적하였으나 스스로 논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말았다.‘사물과…’는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갈아타며 정현종의 시적 여정을 차분히 밟아간 글이었으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풍경의 미학…’과 ‘경악의 얼굴…’이 마지막까지 남았는데,‘풍경의…’는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개진된 권력의 내면화와 그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과정을,핵심 의미체들을 길어내며 흥미진진하게 추적한 글이고,‘경악의…’는 시인의 심리학에 치중한 종래의 평문들을 단김에 뛰어넘어 극적 구성의 관점에서 기형도의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 글이다. 그러나‘풍경의…’는 기계적인 구성과 엉뚱한 결말이 글쓴이의 설익은 문학관을 엿보게 하였으며,‘경악의…’는 미학에서 사회학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리멸렬해지더니 급기야 막다른 길로 뛰어들고 말아,심사자들을 경악케 하였다.하지만 패기만만한 도전과 그 패기가 창안해 낸 새로운 해석 세계는 썩 강렬한 인상을 남겨 마지막 선택의 근거가 되었다.이성혁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끈기 있게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정과리 김인환
  • “사이버신춘문예 공모합니다”시사랑문화인협 20일까지 접수

    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최동호)는 오는 20일까지 시와 소설 2개 부문을 대상으로 ‘2003 사이버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한다.시는 5∼10편,소설은 200자 원고지 60매 내외의 작품 2편 이내이며 응모작은 시사랑문예대학 홈페이지 2003 사이버신춘문예란(www.poemq.or.kr)에 접수하면 된다.상금은 각 100만원씩이다.예심 통과작은 홈페이지에 공개하며 오는 25일 본심을 실시,당선작을 확정할 계획이다.당선자에게는 공식적으로 사이버 문인 자격을 부여하고 계간 ‘포엠큐픽션’과 반년간 ‘서정시학’,시사랑 문예대학 홈페이지 등에 발표 기회를 부여하며,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홈페이지도 제공한다.문의 (02)928-7016. 심재억기자 jeshim@
  • 대한매일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강으로 간 붕어빵

    솔이 아빠가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처음 붕어빵을 구울 때와는 달리 이젠 기술자가 다 되었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적당히 하기가 정말 어려웠거든요. 계란을 좀 넉넉히 넣어야 구수한 맛이 더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단팥을 듬뿍 넣기만 하면 구수하고 맛있는 붕어빵이 술술 구워져 나옵니다. 솔이 아빠가 자리잡은 곳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명지라는 곳입니다. 낙동강 물줄기가 마지막으로 모여드는 곳이지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는 마을버스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솔이 아빠네 붕어빵을 찾는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솔이 아빠, 붕어빵 천 원어치만 주세요.” 하루도 빠짐없이 들르는 장씨 아저씨가 왔습니다. “네, 날씨가 많이 추워졌지요? 불 좀 쪼이세요.” 솔이 아빠는 붕어빵을 뒤집으면서 장씨 아저씨를 보고 웃었습니다. 솔이 아빠가 어설프게 구운, 덜 익은 붕어빵을 사간 첫 손님이 바로 장씨 아저씨입니다. “자, 두 개 더 넣었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살 때마다 그렇게 덤을 주면 남는 게 뭐 있수? 허허허…….” 장씨 아저씨가 커다란 몸집을 흔들면서 웃자 솔이 아빠가 말했습니다. “첫날 저한테 해주신 거 생각하면 덤 몇 개 드리는 걸로 모자라지요.” 장사를 맨 처음 시작한 날 솔이 아빠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붕어빵을 굽는 것을 옆에서 보기는 했지만 막상 장사를 시작하자 언제 뒤집어야 할지 단팥을 얼마나 넣어야 터지지 않는지 몰랐습니다. 대충 한판을 구웠을 때 장씨 아저씨가 붕어빵을 사간 것입니다. 솔이 아빠가 미처 먹어 보기도 전이었습니다. “야, 역시 겨울엔 따끈따끈한 붕어빵이 최고야. 아저씨, 자리 잘 잡으셨수.” 첫 손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에 솔이 아빠는 장사가 처음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장씨 아저씨가 사갔던 붕어빵을 다시 들고 왔습니다. “아저씨, 붕어빵 장사 오늘 처음이유? 속이 하나도 안 익었어요. 내가 먼저 먹어 봤기에 망정이지. 우리 애가 모르고 먹었으면 배탈 날 뻔했잖아요.” 솔이 아빠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장사를 시작한 첫날이라는 솔이 아빠 말을 듣자 장씨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이리 나와 보슈. 내가 한 번 해 볼게요.” 장씨 아저씨는 아주 익숙한 솜씨로 붕어빵을 척척 구워 냈습니다. 알고 봤더니 몇 달 전까지 붕어빵 장사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성규 엄마가 붕어빵을 그렇게 좋아했어요. 그 사람 죽고 나서 강물에 뿌리고 나니까 더 이상 붕어빵 굽기가 싫대요. 그래서 지금은 벽지 바르는 일 하러 다녀요.” 그 날 솔이 아빠는 장씨 아저씨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입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고 있었습니다. 황금나무라고 불리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은행도 노란 껍질을 외투라도 되는 양 꼭 껴입은 채 굴러 다녔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짧아지는 해가 사람들 마음을 바쁘게 하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솔이 아빠는 아까부터 어떤 아이가 쳐다보는 눈길을 느꼈습니다. 다섯 살인 솔이 또래의 아이였습니다. 붕어빵을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 보였습니다.“얘, 이리 온. 붕어빵 먹고 싶니?” 아이는 커다란 눈만 끔벅이며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솔이 아빠가 붕어빵하나를 손에 쥐어 주자 아무 말 없이 왔던 길을 걸어갔습니다. 어딘지 풀이 죽은 아이 모습을 보자 솔이 아빠는 솔이 생각이 났습니다. “공장이 그렇게 불에 타지만 않았어도…….” 솔이 아빠는 장롱이나 식탁에 조각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 밑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솜씨를 익혔습니다. 그러다가 조그만 공장을 차리게 된 것입니다.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조금씩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는데……. 솔이 아빠 머릿속으로 공장이 불에 타던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주문 받아 두었던 책상과 책장, 장롱이 혓바닥을 내민 불길에 몽땅 타버렸을 때 남은 것은 빚과 새까만 재뿐이었습니다. 큰 회사에서 많은 물건을 주문했기 때문에 재료를 사기 위해서는 돈을 빌려야 했던 것입니다. 빚쟁이들이 사흘이 멀다하고 집으로 찾아오자 솔이 아빠는 할 수 없이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차라리 죽어 버리려고 생각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수화기를 통해서 아빠를 찾는 솔이 목소리를 듣자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뭐라도 해서 빚을 갚고 다시 일어서야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붕어빵 장사였습니다. 솔이 아빠는 솔이를 외갓집에 맡겨 두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돈을 벌러 다니는 아내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 붕어빵 장사라도 열심히 하는 거야. 조금만 돈을 모아서 함께 모여 살 방이라도 얻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솔이 아빠는 다시 용기를 내었습니다. 아침부터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솔이 아빠는 하루 쉴까 하다가 이런 날 장사가 더 잘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장사 준비를 했습니다. 많이 추운지 길가는 사람들의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습니다. 붕어빵 사는 것도 귀찮은 모양입니다. 팔리지 않고 손님을 기다리는 붕어빵을 나란히 세워 두었습니다. 그 때 솔이 아빠는 며칠 전에 붕어빵을 얻어 간 아이가 우산을 쓰고 서 있는 걸 보았습니다. 솔이 아빠가 손짓을 하자 아이가 주춤주춤 비닐 천막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아이는 많이 추웠던지 입술이 새파랗게 변해 있었습니다. “이런,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추운데 나왔니? 누구 기다리는 거야?” 이번에도 아이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붕어빵을 손에 쥐어 주었지만 먹지는 않았습니다. 참 이상한 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가 천막 안으로 쑥 들어 왔습니다. “어이, 추워. 어! 성규 아니냐? 너 왜 여기 있어? 아빠 마중 나온 거냐?”“아, 장씨 아들이에요? 그러고 보니 닮은 것 같네.”“예. 우리 아들이오. 아니 이런 날 무슨 장사가 된다고 이러고 있어요?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합시다.” 장씨 아저씨가 이끄는 바람에 솔이 아빠는 장사를 접고 장씨 아저씨를 따라 나섰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도 아이는 내내 말이 없었습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보고 장씨 아저씨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지 엄마 죽고 나서 말문을 닫았어요. 그 전엔 참 똘똘하고 건강한 아이였는데……이젠 밥도 잘 안 먹어요. 그래도 붕어빵은 곧잘먹는 것 같아서 매일 사다 주는 거요.”“내가 줄 땐 안 먹던데요?”“아, 그거요? 지 엄마 갖다 준 모양이지요, 뭐.” 솔이 아빠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성규 엄마가 오래 자리에 누워 있었어요. 그래서 죽어서라도 이리저리 가고 싶은 데 실컷 돌아다니라고 내가 화장을 해서 강물에 뿌렸거든요. 얘가 지 엄마 좋아하던 붕어빵을 꼭 하나씩 강물에 띄우고 나서야 저도 먹어요. 어휴, 어린 게 그러는 거 보면 내 속이…….” 장씨 아저씨는 목이 메는지 앞에 있던 술을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 놀고 있던 성규가 장씨 아저씨 앞에 와서 손짓으로 뭔가를 말했습니다. “그래, 이놈아. 붕어빵이 가라앉지 그럼.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헤엄을 치냐? 붕어빵이 가라앉아서 지 엄마가 붕어빵을 못 먹었다네요, 허 참.” 솔이 아빠는 성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붕어빵을 좋아하던 엄마를 주려고 강물에 띄우는 아이. 그 붕어빵이 엄마가 갔던 길로 따라 가 주면 좋으련만. 그러면 엄마가 붕어빵을 먹었다고 생각할 텐데. 솔이 아빠는 성규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다음날 솔이 아빠는 나무를 깎는 칼과 끌을 샀습니다. 손바닥만한 나무토막도 몇 개 구했습니다. 장사를 마치고 나서 피곤한 몸이지만 솔이 아빠는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식탁이나 장롱 같은 큰 물건만 만들다가 작은 것을 만들려고 하니 꽤 힘이 들었습니다. 몇 개나 실패를 했지만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규의 맑은 눈망울과 솔이의 예쁜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솔이 아빠는 나무로 만든 붕어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얼핏 봐서는 진짜 붕어빵처럼 보였습니다.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 사이에는 철사로 연결을 해서 움직일 수 있게 했습니다. 강물에 띄웠을 때 진짜 붕어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솔이 아빠는 나무 붕어빵을 물에 띄워 보았습니다. 지느러미가 몇 번 움직이자 그만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솔이 아빠는 나무 붕어빵의 뱃속을 파내고 속이 텅 비게 만들었습니다. 솔이 아빠는 성규를 데리고 낙동강이 흐르는 곳으로 갔습니다. 성규가 늘 붕어빵을 띄우던 곳입니다. 성규 손에는솔이 아빠가 구워준 붕어빵이 들려 있었습니다. 솔이 아빠는 나무 붕어빵을 주머니 속에 숨겼습니다. “성규야! 엄마한테 붕어빵 드시게 하고 싶니?” 성규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아저씨랑 같이 엄마한테 붕어빵 드리자. 근데 이제 엄마한테 붕어빵 드리는 건 오늘로 그만 하자. 왜냐하면 엄만 이리저리 구경 다닌다고 바쁘시대. 그리고 죽은 사람은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파. 성규가 밥을 잘 안 먹고 말도 안 하는 거 알면 엄마가 좋아하실까? 아저씨에게는 솔이라는 딸이 있는데 말이야. 아저씨가 없는 동안 잘 먹고 잘 놀고 씩씩하게 자라서 이담에 아저씨랑 만났을 때 훌쩍 큰 모습을 보면 참 좋을 거 같거든. 성규도 이담에 엄마 만났을 때 멋지게 자란 모습 보여 주고 싶지?” 성규가 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솔이 아빠는 진짜 붕어빵을 손에 들었습니다. “성규 어머니, 제가 만든 붕어빵이에요. 맛있게 드시고 편안하게 여행 잘 하세요. 어! 성규야, 저기 까치집 봐라.” 솔이 아빠는 성규가 한눈을 파는 사이에 진짜 붕어빵과 주머니 속에 있던 나무 붕어빵을 바꿨습니다. “풍덩!” 나무 붕어빵은 가라앉을 것처럼 물 속으로 쑥 빠지더니 얼굴을 빼꼼 내밀었습니다. 바람이 불자 강물이 흔들리면서 잔잔하게 물결이 생겼습니다. 나무 붕어빵은 꼬리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를 까닥까닥 움직이면서 강물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눈이 동그래져서 보고 있던 성규가 손뼉을 친 건 그 때였습니다. “야! 잘 간다. 엄마! 붕어빵 맛있게 드세요.” 나무 붕어빵은 마치 진짜 붕어라도 된 것처럼 꼬리지느러미를 살랑살랑 흔들며 잘도 떠내려갔습니다. ◆당선소감 당선됐다는 전화를 받은 날. 성당에서 청소를 하고 나오는데 하늘에서 여우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환한 햇살 사이로 보이는 빗방울이 마치 축제처럼 느껴진 건 왜일까요? 신춘문예에 여러 번 떨어진 경험이 있는 나는 작품을 보내고 나서 이번만큼 담담했던 적이 없었습니다.그만큼 되는 사람보다 안 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지요. 그런 저의 담담함을 심사위원 선생님들께서 눈치채신 것 같습니다.기대하지 않은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느껴서 겸손하라고 말이지요. 동화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는 김재원 선생님을 만난 건 제 인생에 행운이었습니다.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 문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하며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동화를 쓰리라 다짐해 봅니다.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눈물나는 행복과 기분좋은 부담이 무언지 느끼게 해 주셨지요? 한 우물을 파는 마음으로 열심히 쓰겠습니다. ●약력 본명 이혜영 58년 부산생 방송통신대 졸업(국문과) ◆심사평 심사에 들어가기 전에 선자들은 조앤 롤링의 동화 해리포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현실세계의 기존 풍경을 철저히 벗어난 이 동화가 전 세계 독자들의 시선을 끈 이유가 화두였는데,선자들은 이 작품이 지닌 세계관의 결핍에도 불구하고,무한한 상상력의 진폭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의견을 나누었다. 좋은 동화란 꿈과 현실의 조화가 필연적이라는 관점에서 선자들의 주목을 끈 작품은 ‘용이 되고 싶은 이무기’(정미숙),‘낙타가 된 엄마’(정회옥),‘변신하는 밀가루’(문진주),‘강으로 간 붕어빵’(이혜영) 등 4편이었다. 이중 ‘변신하는 밀가루’는 따뜻한 풍경의 묘사가 돋보였으나 동화 자체가 지닌 상상력이 결여됐다는 점에서,‘용이 되고 싶은 이무기’는 분단 현실을 작품화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으나 서사적인 작품이 지니기 쉬운 교조적 속성을 극복할 수 있는 장치가 아쉽다는 점에서 먼저 제외됐다. ‘낙타가 된 엄마’와 ‘강으로 간 붕어빵’ 두 작품을 두고 선자들은 꽤 오랜 숙고 끝에 후자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어렵게 합의를 보았다.‘낙타가 된 엄마’의 경우 삶의 현실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진솔한 힘이 돋보인 반면 ‘강으로 간 붕어빵’의 경우는 엄마를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이 잘 살아 있고,특히 마지막 장면의 나무 붕어빵이 강을 헤쳐 나가는 장면이 동화적인 상상력의 결합으로 산뜻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은 경쟁자들 속에서 당선의 영광을 얻은 만큼 당선자는 함께 응모한 다른 예비 작가들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해나가기를 선자들은 바라마지 않는다. 조대현·곽재구
  • 대통령직 인수위“일방적 對北지원 안한다”

    인수위 ‘햇볕'용어도 ‘포용'으로 바꾸기로 신춘문예 희곡·시·시조 2003년 정책캘린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이끌어갈 새 정부는 대북 ‘햇볕정책’이라는 용어를 사용치 않기로 했다.또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논란이 돼온 ‘일방적 대북 지원’을 지양하고,안보 등 분야에 있어 북측의 양보를 끌어내는 조치를 병행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4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 분과위 관계자는 2일 “햇볕정책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인식되는 등 어의상 문제점이 있는 만큼,새 정부에서는 더이상 사용치 않을 것”이라며 “대신 대북 포용정책이나 화해협력정책이라는 용어를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수위에서는 앞으로 국민여론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적절한 용어가 나타나면 새롭게 채택할 뜻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새 정부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무조건적으로 계승하는 게 아니라,문제점이 노출된 부분은 보완해서 발전시킨다는 방침”이라며 “특히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국방분야의 불안정성을 보완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말 국회가 금강산관광지원금 예산 200억원 가운데 199억원을 삭감해 새 정부는 북한에 대해 현금지원을 할래야 할 예산도 없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그는 노 당선자의 북핵 해법은 ▲핵 절대 불용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한국의 능동적 역할 수행 등 3대 기조를 토대로 마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노 당선자가 지난달 31일 밝힌 ‘1월중 북핵 대책 발표’에 대해 “큰 방향과 계획을 발표하겠다는 뜻이지,1월 안으로 구체적인 해법을 당장 내놓겠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부연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우리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운신의 폭이 아주 좁은 형편이고 시간도 없는 만큼,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놓고 국론이 분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론의 협조를 당부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 ‘꽃 피는 공중전화’ (김경주)

    퇴근한 여공들 다닥다닥 세워 둔 차디찬 자전거 열쇠 풀고 있다 창 밖으로 흰쌀 같은 함박눈이 내리면 야근 중인 가발 공장 여공들은 틈만 나면 담을 뛰어넘어 공중전화로 달려간다 수첩 속 눈송이 하나씩 꾹꾹 누른다 치열齒列이 고르지 못한 이빨일수록 환하게 출렁이고 조립식 벽 틈으로 스며 들어온 바람 흐린 백열등 속에도 눈은 수북이 쌓인다 오래 된 번호의 순들을 툭툭 털어 수화기에 언 귀를 바짝 갖다 대면 손톱처럼 앗! 하고 잘려 나 갔던 첫사랑이며 서랍 속 손수건에 싸둔 어머니의 보청기까지 수화기를 타고 전해 오는 또박또박한 신호음 가슴에 고스란히 박혀 들어온다 작업반장 장씨가 챙챙 골목마다 체인 소리를 피워 놓고 사라지면 여공들은 흰 면 장갑 벗는다 시린 손끝에보푸라기 일어나 있다 상처가 지나간 자리마다 뿌리내린 실밥들 삐뚤삐뚤하다 졸린 눈빛이 심다만 수북한 머리칼 위로 뿌옇다 밤새도록 미싱 아래서 가위, 바위, 보 순서를 정한 통화 한 송이씩 피었다 진다 라디오의 잡음이 싱싱하다 ◆당선소감 시간이 가고 있습니다 유령처럼. 그대를 비 내리는 창 밖에서 처음 보던 순간이 생각나는군요 나는 은유로 출렁이던 그대의 눈 속에서 무엇을 보았던가요 알 수 없는 세상의 거친 은유에 대해 나는 자주 연민합니다 어머니,아버지,고향,그리고 그대…,그래요 그대라는 계절을 타는 동안 나는 시를 썼던가요 한량없는 마음으로 나는 틈만 나면 노트에 나의 계절들을 옮기기 위해 애썼지요 오늘 첫눈 같은 당선 소식을 받고 무작정 수화기를 들었다가 마음에 주소하나 없이 떠다니던 그 손끝의 떨림에 대해선,맥없이 내려놓는 나의 어정쩡한 자세에 대해선 침묵하겠습니다 함께하고 싶은 이들이 많습니다.詩 이전에 이미 詩이셨던,생각하면 눈물로이루어지는 어머니,너무 야위어져버린 종아리로 오늘도 새벽에야 겨우 주무시고 계실 아버지,그리고 두분 당신이 지상에 내리신 희끗희끗한 눈발들 희경+현수,나경… 이승에 없는 누님,아직도 눈빛만 보고 나의 뒤통수를 아무런 이유없이 툭 때려줄 수 있는 고향들 희상 경석 봉섭 성환 진영 승필 계택,나의 파란 피 필용형,힘들게 공부하시는 진이형 등등, 끝으로 부족한 작품에 죽비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까지 살아 있어 주어 감사합니다. ●약력 본명 김병곤 76년 광주생 원광대 국문과 4년 재학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시편들은 모두 만만치 않은 솜씨를 보여주었다.높낮이를 쉽게 가늠하기 힘든 작품들 중에서 당선시 한 편을 고른다는 것은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번갈아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고,선자들은 한여진의 ‘나의 서가’외 5편,권오영의 ‘투입구’외 4편,김경주의 ‘꽃 피는 공중전화’외 4편 등을 최종 후보작으로 정하였다. 이 세 편의 시들은 저마다 장단점이 있었다.‘나의 서가’외 5편의 시들은 평이한 서술로 진솔한 감정을 유연하게 드러냈지만,시적 수사에서 약세를 보여주었고,‘투입구’외 4편의 시들은 유전자 조작 실험쥐나 공룡알 화석 등을 통해 과학적 상상력을 독특하게 포착하고 있지만 이를 시적으로 전환시키는 데는 아직 미흡한 점이 있었다. 김경주의 ‘꽃 피는 공중전화’외 4편의 시들은 이런 약점들을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자들의 관심을 끌었다.삶을 객관적으로 투시하는 시선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동시에 사물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시적 역량이 신선하게 다가왔다.예를 들어 “서랍 속 손수건에 싸둔 어머니의 보청기까지/수화기를 타고 전해오는 또박또박한 신호음/가슴 속에 고스란히 박혀온다”와 같이 사물의 속살을 파고드는 그의 ‘꽃 피는 공중전화’는 당선시로서 손색이 없다고 판단되었다.다른 투고작의 고른 수준 또한 참고가 되었다. 최종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을,그리고 아깝게 탈락한 응모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 드린다.또한 신춘문예가 일회성 연례 행사가 아니라 모든 시인 지망생들에게 지속적인 분발과 자기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황동규·최동호
  • 대한매일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 - 장난감 총

    변 혜 령 등장인물 - ♂ 정만석 (30대 초반) ♀ 나채연 (20대 후반) ♂ 박 PD (30대 초반) ♂ 이실장 (40대 중반) 무대 - 스튜디오가 갖추어진, 전형적인 성인 인터넷 방송국이다. 무대 중앙 (스튜디오) - 알록달록한 스테이지, 천장에는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가 매달려있고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모니터의 글들이 관객에게 보여진다. 그밖의 공간 (사무실) - 커튼으로 무겁게 가려진 커다란 창문. 책상 위엔 노트북이 놓여져 있다. 바닥, 트라이포드 위에 놓인 카메라에선 작동중임을 알리는 빨간 시그널이 켜져있고 그 옆으론 여기저기 놓여진 방송용 소품 바구니.스테이지와 사무실은 분위기, 조명등이 확연히 다르다. 결국 하나의 공간이지만 이중 공간이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막이 오르면, 알록달록한 스테이지만 현란한 조명으로 반짝인다. 선정적인 속옷 차림으로 홀로 미친 듯이 춤추는 채연. 마치 애무라도 하듯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손동작. 음악 소리 작아지면, 동작 멈추고 간드러지게 웃는 채연. 컴퓨터를 사람 대하듯, 요염하게 시선 보내며 대화한다. 천장에 매달린 모니터에 빠르게 떠오르는 자막들. 현재 인터넷에서 사용되어지는 언어들과 이모티콘, 기호들이 고스란히 스크린을 통해 보여진다. 글 올리는 접속 회원들의 아바타도 성격에 맞게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거나 입혀져 있는 옷들이 선정적이다. 불끈:졸려염 아함~ @@ 무기:열심히 춤춘 당신, 벗어라~ (입 찢어져라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 떠오른다.) 야수:벗어라~ 벗어라~ (양볼이 붉게 물든 얼굴의 이모티콘 떠오른다.)자막을 확인하고는, 거리낌 없이 상의를 벗어 던지는 채연. 채 연:아이~ 급하긴….저 나채연, 이름값 톡톡히 한다구요. 달래 PJ라 부르겠어 요? PJ가 뭐냐구요? 아잉~ 순진한 척은….포르노 쟈키의 약자! 다들 아시죠? 전요, 체질적으로 벗는 걸 즐기걸랑요. 안 벗겠다구 내숭떠는 년들, 그 년들은 프로두 아니에요. 몸매가 뭣 같으니까 그런 거지. 다시 떠오르는 자막들. 야 수:마저 벗어 줘~ 이잉~ ㅡ..ㅡ앗 싸:앗싸~ 나채연 홧팅~ *^^*채연, 마저 벗으려는데 무대 구석에서 불쑥등장하는 만석.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스테이지로 뛰어든다. 만 석:진아야. 이실장:저 미친놈 뭐야? 엉? 잡아와. 빨리! 박 PD, 끌고 들어가려는데 만석의 저항이 거세다. 엎치락뒤치락 격렬하게 버둥대는 두사람. 결국 이실장까지 합세해 스테이지 밖으로 만석을 끌어낸다. 달려가 카메라의 작동을 정지시키는 박 PD. 카메라가 정지되면, 무대조명이 전체적으로 밝아진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이실장, 다짜고짜 만석에게 주먹부터 날린다. 주먹이 만석의 얼굴에 닿기 일보 직전, 버럭 소리지르는 만석. 만 석:그, 그마안~ 만석의 고함에 스틸 사진처럼 정지하는 사람들. 만석, 가쁜 숨 몰아쉬며 가방을 내려놓는다. 씨익 웃으며 뻗어 있는 이실장의 팔에 가방을 걸어 놓는 만석. 이실장을 건드리지 않고 날렵하게 빠져나온다. 만 석: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동방예의지국, 말 그대로 선비의 나라 대한민국! (음 넣어 부르며 방방 뛴다.) 오~ 필승 코리아~ 에서 백주 대낮에 말만 한 처녀가 옷을 벗습니다. 저요? (채연 가리킨다.) 아, 그야진아를 보고 반 가워서 뛰어들었습니다만, (눈 가늘게 뜨고 채연의 얼굴 살핀다.) 아닌가 봅니다. 자 그럼- 이실장 앞에서는 만석, 처음의 자세를 취한다. 만석, 조심스레 가방을 빼낸다. 만족한 웃음 웃으며 자세를 바로 잡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만 석:어디더라? 오른쪽? 왼쪽? (어느 쪽이 맞을까 손가락으로 점쳐 보고는) 그렇지, 왼쪽. 만석이 왼쪽에 가방 메고 서면, 곧바로 주먹을 날리는 이실장. 샤샤샥 피하는 만석. 두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는 채연. 박PD:의상 안 갈아입어? 부리나케 퇴장하는 채연. 이실장:저 새끼 뭐야? 엉? 뭐 하는 새낀데 남의 방송을 통째루 망가 먹어? 박 PD:(연신 카메라 장비 살피며 잔뜩 주눅든 소리로) 그러니까…그게요…회원수 준다고 김작가 짜르구…저 친구 저래뵈두 글발이 장난 아니거든요. 이실장:작가? 저런 띨빵진 놈이 작가란 말이야? 당장 다른 놈으로 갈아치워! 박 PD:웬만한 작가는 우리 방송국 안 와요. 성인 인터넷 방송…머시기 하잖아요? 이실장:머시기? 월급을 두 배나 주는데 멋이 뭐시기해? 거 배때기들 불렀구만? 박 PD:작가 출신은….그 뭣이냐 작가 주의에 입각해서 예술을 하려는…. 이실장:닥쳐! 너 지금 국민 교육헌장 읊어대냐? 무슨 주의? 이~입각? 예술이 밥 멕여주냐? 박 PD:실장님이 주신 돈으루다가 밥사먹죠. 갑자기 모니터에 떠오르는 회원들의 항의성 자막들. 야 수:모야? 모야아~~ 방송사고?? (칼 날리는 이모티콘이 주르르 떠오른다.) 조아조아:돈 물어내랏!!! 삐리리 사깃꾼!!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이모티콘 떠오른다.) 무 기:당장 탈퇴할래~ 잉잉~ ㅜ ㅜ의상 갈아입고 등장하는 채연. 채 연:어떻게든 해봐. 항의가 빗발친다구. 이실장:재방 내보내. 빨리! 박 PD:사과 방송 자막 큐! 박PD가 장비를 만지면, 다시 스테이지로 가서 서는 채연. 재방 방송을 재연하기 시작한다. 리와인드 화면처럼 춤추고 옷벗고 간드러지게 웃음 웃고를 반복하는 채연. 스테이지밖에 있는 사람들은 채연의 재방송과는 무관하게 대화를 나눈다. 이실장:2부 방송 어쩔 거야? 엉? 이 십분 뒤잖아? 박 PD:(덥석 만석 끌어다 놓으며) 이, 이 친구가 쓸 겁니다. 만석, 소란을 떠는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몽롱한 시선으로 채연만을 바라본다. 이실장, 신경질 부리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린다. 요즘 유행하는 컬러링 벨소리다. 섹시한 여자 목소리로 “오우~ 어빠아~ 전화 받으세요~” 발신 번호 확인하고 180도로 태도 바뀌어 전화 받는 이실장 이실장:예. 예. 고의원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드리려 고…예? 지금 즉시 사업 기획서 가지고 찾아 뵙겠습니다. 의원님께서 벤 처 투자 건에 저희를 밀어만 주신다면, 분골쇄신! 의원님의 돈줄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럼요. 그렇고 말구요. (통화하며 퇴장) 박PD, 재빨리 만석을 노트북 앞에 끌어다 앉힌다. 박 PD:급하다. 급해. 글쓰란 말이다. 글! 만 석:글? (희미한 미소) 글! (여전히 채연만 바라보며) 처음…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했다. 진아만의 줄리엣…로미오와의 첫날밤을…줄리엣에게 웨딩 드 레스를 입혔다…. 빠른 속도로 자판을 쳐 대는 만석. 장난감 총을 들고 등장하는 이실장. 만석이 대본 치는것을 보고는 화가 누그러진다. 이실장:(장난감 총 건네며) 방송에 써먹을 소품이다. 박 PD:(꼼꼼히 살펴보다) 키야~ 이거 진짜 총 같은데요? 이실장:세상 참 좋아졌다. 가짜가 진짜 찜쪄먹으니 원. 자판만 눌러 대던 만석, 쓰던 걸 멈추고 물끄러미 장난감 총을 바라본다. 총을 조심스럽게 책상 서랍에 넣는 박PD. 빤히 쳐다보는 만석. 박PD, 시선 느끼고 박 PD:다 썼어? 노트북으로 걸어가는 박PD와 이실장, 만석이 써 놓은 것을 읽는다. 이실장:로미오와 줄리엣? 새하얀 웨딩드레스? (몸짓 발짓 줄리엣 배역 흉내내며 새된 소리로) 벌써 가시렵니까? 겁에 질린 당신 귓전에 방금 울린 그 소리는 종달새가 아니라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랍니다. 로미오님, 정말이지 그 소리는 나이팅게일이었습니다. 박 PD:오~ 줄리엣. 나는 잡혀도 좋소. 사형을 당해도 좋소. 이대로 마냥 머물고 싶소. 죽음이여, 오려면 오라. 반갑게 맞아 주마. 줄리엣님의 소원이시다. 이실장:이따우를 대본이라고 쓴 거야? 이걸 엇따 써먹어? 엉? 박 PD:아후~~ 상상해 보세요. 삐리리의 글래머 줄리엣,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 있다. 헤헤- 그러니까요, 웨딩 드레스란게 안감을 다 뜯어내는 겁니다. 그 러면 속살이…흐흐흐. 거기다 갑자기 비를 뿌려 주는 겁니다. 완전한 영상 미 아닙니까? 하얀 색이 화면 가득, 비에 젖어 있기까지 하니까…거기서 끝나느냐? 말밥 아니죠. 클라이맥스에는 그 하얗고 순결한 웨딩드레스를 천천히, 천천히 벗는 겁니다. 마치, 마치 순결이, 순결이…헤헤헤. 이실장: 거 좋다. 빨리 방송 준비해. (퍼뜩) 그런데? 웨딩드레스가 우리 소품 중에 어딨어? 박 PD:그, 그게… 만 석:내가 가지고 있다. 웨딩드레스…진아가…줄리엣이 입었다…. 가방에서 부스럭부스럭 눈부시게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꺼내는 만석. 반색하며 달려가 뺏어 드는 박PD. 희희낙락하는 이실장. 박 PD:그거 보십쇼. 저놈아, 소품두 준비 안 하구 글쓰는 놈이 아닙니다. 똑부러지 는 놈이다 이겁니다. (폼나게 사인하며) 자- 방송 오분전. 스테이지 조명, 더욱더 천박하게 반짝인다. 그제야 동작을 멈추는 채연. 박PD와 이실장, 웨딩드레스의 안감을 무자비하게 뜯어낸다. 그러고는 채연에게 던져 준다. 재빨리 의상을 갈아입는 채연. 요란한 화장을 고친다. 화려하게 웨이브진 가발까지 벗으면, 긴 생머리가 가지런하다. 어느새 순결한 처녀의 이미지로 변신해 있다. 몽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만석. 또다시 채연을 진아로 착각한다. 만 석:진아? 진아야! 달려가 채연을 스테이지에서 끌고 내려오는 만석. 갑작스러운 만석의 행동에 넋빠져 보고만 있는 박PD와 이실장. 두사람, 속수무책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스테이지 조명 아래 서 있다. 스테이지 밖의 조명은 전체적으로 어두우면서 몽환적이다. 채연은 스테이지에서 내려오자마자 진아로 변한다. 만 석:진아야. 진 아:오빠. 만 석:며칠만 있으면 결혼식이다. 우리 결혼식…이쁘다 드레스 입은 내색시…. 진아(채연):(주룩 눈물 흘린다.) 오빠…어쩌지…어쩌지? 우리… 할매목소리: 안 된다아~ 만석아~ 이놈~ 이놈시키~ 그년은 창녀여~ 만 석:하, 할매? 진아(채연):(슬피 울며 스스로 스테이지로 걸어간다.) 만 석:(멍하니 보기만 한다.) 진아야? 뭔 소리여 그거이 시방? 응? 진아가 스테이지에 올라서자마자 일순 천박한 조명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스테이지에 올라선 순간 채연으로 변하는 진아. 현란한 음악이 나오면, 스테이지에서 내려오는 이실장. 카메라 작동시키는 박PD. 요염한 포즈로 모니터 앞에서 춤을 추는 채연. 야수:나채연 결혼 하냐? (모니터에서 조그맣게 장송곡이 울려 퍼진다.) 불끈:키야아~ 의상 쥑인다! (눈알 튀어나오는 이모티콘이 떠오른다.) 터프게이:벗는 거보다 더 야시시? 그래두 벗어라!! 귀족:유부녀 돼두 출연하죠? 추카추카~ (장미꽃 다발 이모티콘 떠오른다.) 밝힘:벗어라! 벗어라! 음악 소리 작아지며 천천히 몸을 흔드는 채연. 위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 나온다. 온몸으로 물을 맞는 채연, 젖은 머리 쓸어 올리며 모니터 바라본다. 천천히 옷을 벗는 채연. 반라가 되자마자 확 꺼지는 스테이지 조명. 무대에는 만석만 홀로 서 있는 것 같다. 어두운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만 들린다. 이실장:으흐흐 하하 으흐하하.좋았어. 아주 좋았어. 오늘 접속 회원 수가 근래 들어 최고야. 최고! 돈이 아주 다발로 굴러 들어오는구나 엉? 우히히히. 박 PD:앞으로 모바일과 연계한 성인 방송도 문제없겠어요. 사람들의 소리 들으며 서 있는 만석, 울상이다. 만 석:뭔가가 잘못된 모양입니다. 고향 친구 놈이 서울서 출세했답니다. 무지하게 커다란 방송국에 취직을 했다나요? 그래서…염치 불구하고 친구 놈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아주 반갑게 취직을 시켜준다지 뭡니까? 자그마치 이백. 구미가 당기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도통 헷갈립니다. 진아를 닮은 저 여자는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속옷만 입고 있습니다. 나처럼…가난해서일까요? 추워 보입니다. 진아…나의 진아가 말입니다…(웃옷 벗더니) 덮어 줘야겠어…덮어줘야 돼…. 홀린 듯 비척이며 스테이지로 걸어가는 만석. 만석이 스테이지에 오르기도 전에 조명 밝아진다. 사람들, 우르르 만석에게 다가온다. 이실장:수고했어, 정작가. 내 한눈에 범상치 않은 작가다 싶었어. 이실장,만석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퇴장. 과장되게 포옹하는 박 PD. 악수를 청하는 채연. 어리둥절해서 쳐다보는 만석. 덥석 손을 잡아 흔드는 채연. 만석을 잡아끌다시피 노트북 앞에 앉히는 박PD. 채연은 컴퓨터 앞에서 사람한테 하듯 요염하게 웃기도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박PD, 무대를 바쁘게 왔다갔다하며 만석만 재촉한다. 박 PD:땡기는 대로 써라. 그게 바로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거다. 만 석:써? 뭐를, 박 PD:좋은 거 많잖아? 일곱난쟁이와 백설공주! 그거 조오타~ 일곱 명의 난쟁이와 백설공주가 벌이는 정사씬! 키야아~ 만 석:동화? 안데르센? 개구리왕자! 만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테이지 조명이 천박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소품 바구니에서 얼른 왕관을 찾아 쓰는 채연. 스테이지 중앙에 올라선다. 그와 동시에 카메라를 작동하는 박 PD. 큐 사인 보낸다. 또박또박 들려 오는 어린아이 해맑은 목소리. 꼬 마:(목소리만) 옛날 옛적, 어여쁜 공주님이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만큼 모든 사 랑을 한 몸에 받았던 공주는, 예쁜 황금 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품 바구니에서 황금 공을 꺼내 얼른 채연에게 던져 주는 박 PD. 아이의 목소리대로 연기하는 채연. 꼬 마:(목소리만) 어느 날, 공주는 황금 공을 가지고 놀다가 연못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놀란 공주가 엉엉 울고 있는데, 연못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나왔습니다. 기괴한 음악 흘러나오면, 흉측한 개구리 탈을 쓰고 등장하는 이실장. 손이며 발이며 개구리의 형상으로 분해 있다. 개구리라기보다는 기묘한 괴물 형상이다. 이상한 춤동작으로 채연에게 다가가 희롱하는 개구리. 그와 대조적으로 맑고 또렷한 꼬마의 내레이션이 계속 된다. 꼬 마:(목소리만) 공주님, 공주님, 울지 마세요. 제게 키스해주면 황금 공을 찾아 줄게요. 채연 위로 올라타는 개구리. 채연과 개구리,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엎치락뒤치락 뒤엉키기 시작한다. 점점 커지는 기괴한 음악. 그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 대는 두사람. 두사람의 몸놀림 위에 더욱더 현란하고 천박하게 요동치는 조명. 스테이지 밖에서 아랑곳없이 글만 쓰던 만석,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러고는 스테이지의 광경을 바라본다.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는 만석, 바라만 보다가 웩웩거리며 토악질을 해댄다. 간신히 비척이며 일어서려는 순간,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 괴롭게 헐떡이는 만석, 스테이지가 어둠에 휩싸이자 풀썩 주저앉아 다시 웩웩거리기 시작한다. 만 석:이상…하다…이건 안데르센이 아니다…. 스테이지 조명 밝아진다. 그 위에서 이실장, 박PD, 채연은 흥겨운 분위기로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다. 이실장:우히히히. 좋아 좋아. 갈수록 퀄리티가 높아지는구만? 채 연:호호호. 실장님 기분 요즘 왔다네?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문제야. 그치? 나…출연료 좀 올려주라 응? 이실장:나채연이 너, 재계약 도장 찍었어? 박 PD:(바로 주머니에서 계약서 꺼내 머리 조아리며) 준비됐습니다. 계약서. 채 연:도장 없는데? 이실장:지장 찍어. 박 PD:(얼른 귓속말로) 그래도 계약선데 도장을 받으세요. 이실장:요 앞에 가서 이쁜거루다 하나 파라. (주머니에서 오천원짜리 꺼내 쥐어 준다.)힘없이 쳐다보다 돈 받아들고는 퇴장하는 채연. 둘러보다 널브러져있는 만석을 부축하는 이실장. 아무렇게나 만석의 주머니에 돈 봉투 찔러 넣어 주며, 이실장:앞으루두 잘해 보자구. 정작가. (퇴장) 박 PD:수고했다. 만석아. 만 석: 고향 사람들…니가 성공한 줄 안다. 박 PD:너, 돈벌구 싶댔지? 잘만 하면 돈버는 거 시간문제다. 만 석:돈? (절망적으로) 진아…. 박 PD:진아가 그렇게 됐다는 거, 나도 마음 아프다. 하지만, 다 잊고 살궁리를 해야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랬다. 요즘 세상, 돈 있음 못할 거 없다. 만 석:다…잊어…? 박 PD:할매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며? 그래서 불러 줬음 돈벌 궁리나 해 임마. 만 석:진아가…나를 버렸다. 세상이…. 박 PD:그러니까 너도 양심을 버리란 말이다. 그러면 사는 거 편해진다. 그러면 세 상에서 대우받고 잘살 수 있다. 만석을 쳐다보다가 퇴장하는 박 PD. 고개 숙여 흐느껴 우는 만석. 아련하게 진아의 목소리가, 채연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진 아:오빠…만석 오빠…. 만 석:(벌떡 일어난다) 진아? 어딨어 진아야? 진 아:여기…. 소리나는 곳을 쳐다보면 어두운 스테이지에 진아의 실루엣이 보인다. 미친 듯이 스테이지로 달려가는 만석. 그러나 스테이지에 오르기도 전에 스테이지 조명이 밝아진다. 앉아 있는 진아, 청순함은 바래지고 채연이의 선정적인 분위기가 묻어 난다. 요동치는 조명. 조그만 테이블 들고 등장하는 이실장, 채연 앞에 놓고 앉는다. 양복 입고 촌티 나게 가르마 탄 머리를 올 백으로 넘겼다. 진아가 다녔던 단란 주점의 단골손님으로 분해 있다. 일순 스테이지가 단란 주점으로 변한다. 분주하게 등장하는 박PD, 시골 단란 주점 웨이터로 분해 있다. 쟁반에 양주와 잔을 받쳐들고 진아의 앞에 세팅하기 시작한다. 술 따르기 시작하는 진아. 허허거리며 진아를 더듬는 이실장. 진아가 몸을 빼내려 하자 돈 뭉치 꺼내 진아의 가슴팍에 넣어 주는 이실장. 만 석:(고함 지르려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간신히 쥐어짜는 소리로) 진아야. (스테이지로 올라가려는데) 진 아:(일어서서 만석을 막아선다) 지쳤어. 만 석:우, 우리 결혼…. 진 아 :모르겠어? 나…술집 다니는 거 소문 다 났어. 만 석:괘, 괜찮다…. 진 아:(슬픈 표정이나, 모질게) 돌아가. 술취한 이실장, 비틀거리며 진아에게 다가와, 안 듯이 스테이지 쪽으로 끌고 간다. 따라가려는데 눈 부라리며 막아서는 박PD. 진아를 따라가려고 버둥거리는 만석. 박PD, 만석을 세차게 밀어 버린다. 그 힘에 바닥에 엎어지는 만석. 만석이 넘어지면서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 퇴장하는 사람들. 넘어진 채로 흐느껴 우는 만석. 만 석:진아야…. 도장 들고 등장하는 채연. 채 연:엎어져서 뭐하는 거야? 4부방송 써야지?등장하는 박PD. 채 연:(도장 내민다.) 오빠가 찍어. 박 PD:(계약서 보이며) 읽어는 봐야지? 고개 젓는 채연. 채연만 바라보던 만석, 계약서를 가로채 읽는다. 계약서를 박박 찢어발기는 만석. 박PD, 경악해서 말까지 더듬는다. 박 PD:너, 너? 이, 이, 이거? 기가 막혀 입까지 헤- 벌리는 박PD,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한숨 쉬며 찢어진 종이를 주워 가지고 퇴장하는 박PD. 미친 듯이 깔깔대며 웃어대는 채연. 채 연:호호호호. 진짜 귀엽네 이 오빠? 박PD랑 이실장 찜쪄먹겠어? 만 석:도장 찍으면 어떻게 되는지 정말 모르는 거니, 진아야? 채 연:(담배 꺼내 문다.) 오년 뒤에 대 스타가 되는 거지. 만 석:거짓말. 채 연:인터넷에, 휴대폰에, PDA에 내 모습이 팍팍 뜰 거야. 앞으로. 만 석:다 거짓말이다. 채 연:멀쩡하네? 안 미쳤어? (만석의 얼굴에 담배 연기 내뿜는다.) 맞아. 말 그대 로 노비 문서. 계약서라는 이름의 노비 문서. 만 석:(콜록거리며) 벗으라면 벗고, 춤추라면 춤추고. 꽃다운 나이 다 보내고 조 금 이라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위약금 물어내야 한다…. 갑자기 스테이지로 뛰어 올라가는 채연. 스테이지 조명이 다시 강렬하게 비추어진다. 과거, 채연의 모습이므로 조명이 강렬할 뿐 천박하지는 않다. 채 연:안녕하세요? 접수 번호 445번 나채연이에요. (꾸벅) 세계적인 여배우가 되는게 제 꿈이랍니다. 36-24-38. 특기요? 뭐든 시켜만 주세요. 춤, 노래, 연기…(섹시하게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어 댄다.) 라크 버진~ 우~ (갑 자기 노래를 뚝 그친다.) 네? 신음 소리요? 시나리오에 그런 내용은 없던데? 아니에요, 아니에요. 잘할 수 있어요. (리얼하게 신음 소리 내는) 오우~ 아~ 아~ 채연의 간드러진 신음 소리가 최고조를 이르면서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 멍하니 쳐다보는 만석. 일어서려는데, 온통 붉은 빛으로 스테이지 조명이 밝아진다. 스테이지 중앙에 섹시한 포즈로 누워 있는 채연. 그 앞에서 에로 영화 감독으로 분한 이실장이 확성기 들고 앉아 있다. 카메라 들고 설쳐대는 박PD, 에로 영화 촬영겸 조감독으로 분해 있다. 감독(이실장):(소리질러 댄다.) 야-야- 가슴팍 드러나게 팍팍 벗어제끼라니까? 채 연:(겁먹은 목소리로) 가, 감독님. 시나리오가, 내용이 달라요. 감독(이실장):니가 메멘토냐? 한말 또하구 또하구 되풀이하게? 퀄리티를 위해서 씬을 추가했다고 몇 번을 말해? 채 연:그, 그치만, 그치만…. 감독(이실장):니 한 몸 바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겠다며? 오디션 때 니 입으루다가 읊었냐? 안 읊었냐? 채 연:그때는 시나리오가 정상적이었구요…. 감독(이실장):그래서? 채 연:(결연히 일어선다.) 못 찍겠어요. 감독(이실장):(채연의 얼굴에 계약서 던진다.) 이건 엄연히 계약 위반이야. 알아? 채 연:파기할래요. 계약…. 조감독(박PD): 위약금 물어내야 될 건데? 자그마치 삼십배! 채 연:네에? 사, 사, 삼 십배? (스테이지 조명 꺼진다.)어두운 스테이지에서 채연의 신음 소리와 이실장의 목소리만 들린다. 감독(이실장):(소리만) 자-자- 좀더 섹쉬하게- 과감하게 리얼리티를 살려서, 그렇 지. 좀더, 더, 더…소리지르는 만석. 만 석:그만, 그만, 그만! (스테이지는 소리도 조명도 없이 조용해진다. - 스테이지 잠시 보고) 꿈을 꾸는 것만 같습니다. 악몽! 어른이 되어 갈수록 악몽이 늘어 만 갑니다. 그렇게 악몽을 꾸고나면 하나 둘 씩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젠 꿈이 무섭습니다. 꿈…나만의 꿈…(불현듯이) 진아를…찾아야 하는데…진아를…. 미친 듯이 스테이지로 달려가는 만석, 잠시 그 앞에서 주춤 선다. 두려운 얼굴로 스테이지를 바라보다천천히 올라선다. 스테이지에 올라서면, 조명이 밝아진다. 소품을 정리하면서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채연. 그 옆에 앉는 만석. 채 연:이 세상엔 뭐가 있는지 더 높이 날을 거야.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 주 지 않아~ 애잔하게 채연을 바라보는 만석. 채연의 짙은 화장이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후다닥 채연의 시뻘건 입술을 손으로 지우는 만석. 채 연:뭐, 뭐야? 태연하게 눈의 화장까지 벅벅 지우는 만석. 만 석:이쁘다. 진아야. 채 연:아우씨이~ 변태네 이 오빠? 세차게 만석을 밀어젖히는 채연. 풀썩 엎어지는 만석. 채 연:(거울 찾아 얼굴 본다.) 아우~ 씨바. 엉망이네. 만 석:미…안하다…. 채 연:그렇게 닮았어? 끄덕이는 만석. 거울 보면서 대충 화장기 지우고 스스로 머리를 반듯하게 묶는 채연. 보일 듯 말 듯 미소 짓는 만석. 일순 얼굴 마주보며 웃는 채연과 만석. 채 연:진아라는 사람, 오빠 애인이야? 어딨는데? 만 석:죽…었다. 인간은…환생한다.…그게…너다.…그렇지 진아야? 채 연:순정파네 이 오빠. 그런 사람이 이 바닥엔 뭐하러 기어 들어왔대? 하긴…직업에 귀천 없다잖아? 이왕 온거 빨랑 돈 벌구 이 바닥 떠. 그래야 오빠 두 알콩달콩 여우 같은 마누라랑 살지. 만 석:진아랑 결혼할 거다. 가방에서 옷을 꺼내 채연에게 건네주는 만석. 목위까지 단추가 달려 있는 얌전하고 고상한 원피스다. 만 석:입어 봐. 채 연:나 주는 거야?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는 채연. 흡족한 표정으로 패션쇼하듯 무대를 워킹 한다. 만 석:결혼하자. 채 연:나? 나랑? 실수한 거야. 작가 오빠. 남자들은 말이야, 나를 만지려고는 해 도…특히 결혼이란 말 따윈…안 해. 만 석:진아야…채 연:채연이라니까? 따라 해봐. 천천히. 나, 채, 연. 만 석:나, 채, 연, 결혼…하자. 채 연:첫눈에 반한 거야? 나한테? 만 석:그래. 진아는…채 연:프로포즈라…가능성 있어. 오빠는 에로 작가, 난 에로배우. 딱이다. 딱! 바쁘게 등장하는 박 PD, 채연보고 기겁한다. 박 PD:그 옷 입고 촬영할 거 아니지? 채 연:어때서? 박 PD:이미 써먹었잖아, 그 컨셉? 식상해.채 연:그건 웨딩드레스고 이건…. 박 PD:벗어. 그 옷은 아니야. 영상이 안 된다구. 오로지 자극적인 거 볼려고 돈 내는데. 채 연:믿어 봐. 사람들도 좋아할 거야. 박 PD:실시간 방송이라구. 항의가 빗발칠 거야. 만 석:(시계 보더니 퍼뜩) 카메라 앞에 서. (박 PD 흉내내) 방송 오분전. 박 PD와 만석, 실랑이 벌이는 몸짓. 컴퓨터 앞에 서는 채연. 기어이 박 PD를 뿌리치고 카메라 작동시키는 만석. 손가락으로 큐 사인 보내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차분히 앉아 있는 채연. 채 연:안녕하세요? 불끈 님, 무기님, 조아조아님. 그 외에도 많이들 들어오셨네요. 순간 모니터에 빠르게 항의성 자막이 떠오른다. 무 기:벗는 게 최상의 정치!! (이빨 드러내는 이모티콘 떠오른다.) 노 예:안 벗는 년 프로도 아니라며? (화난 얼굴의 이모티콘 떠오른다.) 밝 힘:삐리리 웬일이니 웬일이니 웬일이니? 나채연 웬 내숭? 미스터빅:오늘, 전 회원 탈퇴의 날… (검은 장미의 이모티콘이 다발로 떠오른다.)떠오르는 자막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 채연. 안절부절못하는 만석에게 눈짓 보내는 박 PD. 씨근덕거리며 뛰어들어오는 이실장. 무대를 한바퀴 휘익 둘러본다. 이실장:어떤 새끼야? 누가 방송을 이따우로 하래 엉? 둘러보다 카메라 잡고 있는 만석에게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린다. 맞고만 있는 만석, 쓰러진다. 계속 짓밟아대는 이실장. 말릴 생각조차 하지못하는 박 PD. 이실장:개새끼. 누굴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어. 말해 봐 새꺄. 계속되는 발길질과 주먹질. 당황한 채연, 다급해져서 원피스를 세로로 ‘부욱’ 소리나게 찢는다. 일순 무대에 스치는 적막. 모든 동작 정지하고 채연만 주목하는 사람들. 암전.조명 밝아지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만석. 코며 입이며 피가 엉겨 붙어 있다.손으로 만석의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아주는 채연. 채연의 손길을 느끼며 시니컬하게 키들거리는 만석. 그런 만석을 바라보다 같이 키들거리는 채연. 영 불편하게 서 있는 박 PD. 박 PD:너…진아가 죽고나서는 정말 이상해졌다. 만 석 ; 아무 것도 모른다. 다들…. 박 PD:결혼할 여자가 술집나간거, 가슴 아프겠지. 자살한 건 더욱 충격일 테고. 하지만…. 만 석 ; 임신했었다. 진아…. 박 PD:뭐, 뭐라고. 너 사고 친 거야? 만 석:내 애…아니다. 박 PD:그러면 술집에서, 만 석:홀아버지 약값 벌겠다고 아무도 모르게 나간 거다. 박 PD:그런걸 동네 사람들한테 들켰으니…. 만 석:세상은 바뀐다는데, 휴대폰에서는, 인터넷에서는 성(性)을 판다는데…진아는…진아는 …. 채 연:원래가 순수한 건 깨지고 흠집 나는 거야. 현실이 그래. 현실이…. 박 PD:시간이 지나면 사랑도 사람도 잊혀진다. 만 석:움직이는 거라구? 사랑이? 광고가 떠들고 인스턴트가 판치고…나는 왜 움직이지 않을까….(채연 바라본다.) 진아는 남아 있는데,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데…왜 모든 게 변할까…. 좋은 건…. 채 연:멋지다. 이 오빠, 맘에 들어. (박PD 보고, 자랑하듯) 나한테 결혼하쟀어. 박PD, 어이없게 쳐다본다. 만석에게 충동적으로 키스하는 진아. 때마침 등장하는 이실장. 이실장:어쭈구리? 눈까지 맞았어? 저 새끼 짜르라니까 너 뭐하는 놈이야? 채 연:벗을게.화끈하게 벗는다구. 회원수 안 줄어. 봤잖아? 옷 찢어서 반응 좋았 던 거. 처음부터 컨셉이 그거였어. 그거였다구. 이실장 ; 뭐야?박 PD:그, 그게, 그러니까…. 이실장:더듬지 말고 말해. 새꺄. 박 PD:마, 맞습니다. 고전적인 원피스에 갑자기 옷을 찢을 꺼라고 누가 상상을 하겠습니까? 이실장:그랬단 말이지? 다시 방송 시작해. 지금부터 내가 방송에 관여한다. 박 PD, 카메라를 손본다. 살며시 만석의 머리를 바닥에 편히 눕히는 채연. 아니꼽지만 참는 이실장. 채연, 카메라 앞에 선다. 차분하게 묶은 머리를 풀어헤친다. 카메라가 작동되면 이실장, 채연에게 인사 멘트하라고 사인 보낸다. 무시하고 음악에 맞춰 천천히 춤추는 채연. 이실장, 말하라고 계속 손짓해 댄다. 채연, 말없이 옷 벗는다. 잠든 것 같던 만석, 벌떡 일어나 채연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러다가 소리 없이 서랍으로 간다. 장난감 총을 꺼내 드는 만석. 각자의 일에 몰두해 만석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들. 만 석:소, 손들어! 이실장:또 뭐야? 만 석:쏘, 쏜다.이실장:저거 미친놈 아니야? 장난감 총 들고 설치면, 어쩔 건데? 박 PD:그만해. 만석아. 만 석:모두 카메라 앞에 서. 이실장:장난 하냐?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만. 그래, 오랜만에 우리 빙신 춤 한 번 춰 보자. 엉. 이실장이 만석에게 다가가려 하자, 급하게 이실장을 안다시피 카메라 앞에 세우는 채연. 천천히 춤추며 이실장의 온몸을 애무하기 시작한다. 채 연:(귀에 대고) 속삭이는 컨셉이야. 저 총, 소품으로 쓰라며? 이실장:그래? 은근슬쩍 채연에게 몸을 밀착시키는 이실장, 기묘한 성적인 쾌감을 느낀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채연의 몸을 더듬기 시작하는 이실장. 이제는 방송이라는 자각보다는 본능에 따르고 있다. 순간 모니터에 여러 개의 자막이 빠르게 떠오른다. 야 수:와- 새롭다!! 새로운 장르? 에로다큐? (두 눈 튀어나오는 이모티콘 떠 오른다.) 불 끈:앞서가는 삐리리! 오늘 방송 별 다섯 개! (별모양의 이모티콘이 주르르 떠오른다.) 터프게이: 에로 방송 대상 줘라~~ 무교동:리얼리티 짱이다! (엄지손가락 보이는 이모티콘 떠오른다.) 귀족:전국에 알려 회원수 늘려 주자!! 갑자기 쏟아지는 반응을 보고 입이 찢어져라 웃는 이실장. 이실장:와하하하. 이것 봐라? 반응이 이렇게 좋아? 박 PD:크, 클릭 수가 급증해요. 갑자기 폭주해서 접속이 안될 지경이에요. 이실장:그래 그래. 이 한 몸 바쳐서 한 밑천 땡겨 보자. 우히히. 좋았어. 아주 좋아. 클릭수. 만 석:(총구를 박 PD에게 겨누며) 카메라 앞에 서. 박 PD:너 정말 미쳤어? 이실장:들어와 새꺄. 대장이 벗는데 쫄병이 구경만 해? 울상이 되는 박 PD. 눈을 부라리는 이실장. 어쩔 수 없이 카메라 앞에 서는 박 PD. 스스로 옷을 벗는 이실장. 동물적인 본능과 자극에만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박 PD 역시 처음엔 어색하게 움직이지만, 차츰 채연의 동작에 동화된다. 점점 행위에 몰입하는 사람들. 한 몸이 되어 뭔가에 홀린 듯 같은 동작을 한다. 만 석:나는 너희들을 저주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이 내게 행한 악은 너무 크고 내가 너희들한테 행한 악도 너무 커서 그것은 자발적인 것일 수 없다. (詩-이지도르 뒤카스) 자연스럽게 채연의 몸을 더듬는 이실장. 그 모습 바라보는 만석. 부들부들 떤다. 총까지 떨린다. 이실장을 겨냥하는 만석. 박PD, 장난감 총인지라 말리지 않고 피식 웃는다. 이실장:쏴. 쏘란 말이야 임마. 그래야 클릭수 늘어나지?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쳐 잡는 만석. 침착성을 되찾는다. 만석, 다시 한번 이실장과 박PD, 채연을 차례로 바라본다. 아랑곳없이 채연의 옷을 벗기기 시작하는 이실장. 순간, 분노로 경련을 일으키는 만석,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탕-’ 찢어지는 듯 한 파열음. 겨냥이 빗나가 풀썩 힘없이 쓰러지는 박 PD. 시뻘건 피가 흥건히 번져 나온다. 놀라 만석을 바라보는 채연과 이실장. 만석, 총을 한 번 쳐다본다. 넋이 나가 풀썩 주저앉는 채연. 이실장, 갑자기 무릎꿇고 애걸복걸 빌기 시작한다. 비굴하기 짝이 없다. 이실장:저, 정선생, 아, 아니, 정작가님, 훌륭하신 작가 분이 이러시면 안되죠? 예? 진정하세요. 예술을 하신다는 분이 이러시면 아니 되십니다. 예? 잘못했어 요. 사,살려줘요, 응? 내가, 내가 다 사과할게. 응? 만 석:너희는 너희들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걸었으되 그 두 길은 모두 유사하 고 모두 삐뚤어진 길이었다. (詩- 이지도르 뒤카스) 무표정한 얼굴로 이실장을 바라보는 만석, 악마적인 미소 날린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만석의 얼굴에 피 흩뿌리며 쓰러지는 이실장.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만석을 쳐다보는 채연, 벌벌 떨고 있다. 총을 떨어뜨리는 만석. 털썩 주저앉는다. 아련하게 경찰 사이렌 소리 들려 온다. 채연, 놀라서 만석의 팔을 잡아끈다. 움직이지 않는 만석. 채 연:어, 어쩌지? 만 석:쉬고 싶다…. 채 연:무서워…도망치자. 응? 도망치자. 만 석:니 옆에서…잠들고 싶어 … 채 연:나, 난 아니야. 대 스타가 되는 게 꿈이야. 도망쳐야 돼! 만 석 ; 진아야…. 채 연:옆에 있어 줄게. 일어나. 만 석:(두 눈 감는다.) 채 연 ; 이대로 끝낼 수 없어! 긴박하게 경찰 사이렌 소리 들려 온다. 불안감에 싸여 도망 갈 곳을 찾아 무대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채연. 두껍게 덮여있는 창문 앞에 선다. 와락 커튼을 젖히는 채연, 힘들게 창문을 연다. 밖을 내려다보다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채 연:(주저앉으며) 토할 거 같아. 노, 높다. 주, 죽으면 어쩌지? 만 석:(비틀거리며 일어선다.) 같이 가 진아야. 채 연:주, 죽는 게 나을까? 아, 아니 잡히는 게? 만 석:이제는 안 놓친다. 점점 더 가깝게 들려 오는 사이렌 소리에 동요하는 채연. 채 연:여기서 끝내는 건 너무 억울해. 도망 쳐야 돼. 만 석:너만 있으면 된다. 사색이 되어 출입문을 바라보는 채연. 경찰들의 발자국 소리 들려 온다. 점점 울상이 되는 채연, 만석과 함께 창틀에 올라선다. 망설이던 채연, 만석을 의지하며 꼬옥 끌어 안는다. 다시 한번 절망스럽게 문을 바라보는 채연. 문 앞까지 경찰들의 발자국 소리 들린다. 뒤이어 들려 오는 확성기 목소리. 두 눈 질끈 감는 채연. 경관 목소리:너희들은 포위됐다. 손들고 순순히 자수해라. 셋을 세고 들어간다. 하 나, 두울, 세엣- 크게 문 부서지는 소음과 동시에 비명 지르며 뛰어 내리는 채연과 만석.“아악”하는 두사람의 비명이 찢어지듯 날카롭게 울려 퍼진다. 암전. 어두운 무대에 음악 흐른다. 뒤이어 흘러나오는 뉴스. 소 리:다음 뉴스. 오늘 새벽 인터넷 방송국 내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건 당시 비디오 자키로 촬영 중이던 나모 여인과 가해자 정모씨는 1층에서 도주하려다 추락, 병원에 이송됐으나 나모 여인은 혼수 상태에 빠졌습니다. 정모씨는 현재 약국에서 아스피린을 받아먹고 안정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각 정부 부처의 반응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문광부와 내무부는 서로 조사권을 주장, 부서간에 큰 충돌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여성부에서도 관심을 표명하는 가운데…. 음악 흐르면서 막. ◆당선소감 이제 겨우 조그마한 목소리로 소리내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저기요… 저 아직 죽지 않고 글써요….”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잠 속에서 꿈결처럼 당선 소식을 들었다.믿어지지 않아 텅 빈 머리로 조금 더 누워서 빈둥거렸다. 남들이 열 개를 가질 때 다섯 개를 가지면 만족한 것이 나라는 사람이었다.하지만,그 다섯 개를 가지지 못하면 미쳐 버리는 것 또한 나라는 사람의 습성이었다.글이라는 것이…,내게는 그 다섯 개였고 전부였다.기쁨을 나누면 배가되고,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 했던가? 책임감처럼 전화질을 해댔다.그러고는 곧 또다른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앞으로 단명하지 말고 더욱더 좋은 글을 쓰라는 달콤한 채찍질이구나….더 많이 공부하고,겸손한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하는 거구나….그 사실에 눈물 나도록 감사했다. 졸업하고 한번도 찾아뵙지 못한 오교수님,깊이깊이 고개숙여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정말 감사합니다.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보아주신 큰아버님과 큰어머님,고맙습니다.당선 소식에 너무나 좋아한 윤환 오빠와 새언니,성희언니와 형부에게도 이 기쁨을 전합니다.선배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어 준 박수진 선배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애정을 가지고 지켜 봐준 성예 경희 나연 미현 현철 정석 우석 석윤 재중 남헌이…,모두에게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변혜령 ●약력 71년 서울생 서울예대 극작과 졸업“우승컵 양보없다” ◆심사평 모더니즘의 기수였던 T S 엘리어트나 제임스 조이스는 모두 극을 최고의 예술장르로 여겼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쓴 희곡들은 시나 소설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한정된 시공간에서 살아있는 배우가 압축된 언어로 전달해야 하는 희곡은 무엇보다 입체적인 연극적 상상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문학지망생들에게 희곡은 그만큼 긴 시간의 수련이 필요한 장르다.이번 희곡 응모작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소재가 다양해졌다는 점이다.분단문제나 문명비판,지하철 노숙자나 재개발 문제를 둘러싼 사회문제와 가족관계 등을 골고루 다뤘다.식지 않은 월드컵의 열기도 느껴진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진부한 시각과 관념적인 글쓰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많은 경우 서술적인 전개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최종심의에 오른 작품은 ‘나난 가노란 말도 못다 고’와 ‘장난감 총’이다. ‘나난…’은 남편의 오랜 병수발을 한 아내가 남편이 잠시 숨을 멈추자 불효한 아들에 대한 분노로 먼저 세상을뜬다는 내용의 작품이다.상황 설정이 기발하고 반전의 묘미를 준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장난감 총’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이의가 없었다.성인 인터넷 방송국을 무대로 성과 양심이 매매되는 우리 사회의 비극적 단면을 드러낸 작가의식이 결코 가볍지 않다.다채로운 무대활용 기법,동시대적 언어감각,시종 극적 긴장을 이어가는 탄탄한 구성력이 자칫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희곡에 연극적 재미를 더해준다. 오래도록 우리 무대를 지키는 작가로 남길 바란다. 오태석 김미희
  •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 ‘산에 들다’ (이안빈)

    세월 밖 먹 울음을 안으로 되 재우며 가슴속 묻어둔 불씨 봄 풀처럼 돋아나와 돌부처 앉은 자리에 꽃들을 피워낸다 일주문 주련글씨 일체가 없는 것이라고 말씀이 귀(耳)로 남아 생각은 되돌아 온다 눈물도 영글다 보면 사리되어 굳는가 한 생을 종이 접듯 세월을 비워두고 살라지만 뜨신 피 무지개 되어 빈 하늘에 부표로 뜬다 마음이 산에 가 닿으면 그리움도 헹궈질 것을 ◆당선소감 세상의 색깔은 빛과 어둠이다.나는 지금 깊은 터널의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한 걸음씩 옮기고 있다. 대학 초년시절 선배와 동료들이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이제는 육군의 신병으로서 겪어 나가는 값진 경험들이 빛을 향해 나가는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 언젠가는 빛과 어둠이 둘이 아닌 하나로 어우러져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온 천하를 환히 비추는 그런 날이 있을 터이다. 수없이 많은 고뇌와 삶에 대한 물음들이,거대한 짐승의 껍질 같은 소각로에다 나의 창작노트와 수첩을 연기로 날려버린 이후에도 계속 자라나고 있다. 나에게 가장 큰 스승은 아버지와어머니셨다.오늘의 이 기쁨과 영광을 두 분께 송두리째 안겨드리고 싶다. 시인이 될 때 등 두드리며 문을 열어주신 설악산의 조오현 은사님과 시조시인으로 이끌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머지않은 날에 해가 되고,달이 되어 환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약력 81년 서울생 원광대 문창과 2년(휴학중) 육군 현역 복무중 ◆심사평 올해 시조 부문 당선작은 이안빈씨의 ‘산에 들다’로 결정하였다.예년에 비해 작품 응모 편수가 엄청 불어났고,작품 수준 역시 그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키가 훌쩍 커버린 것 같았다.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어느 것을 골라도 예년의 당선작 수준을 웃돌 만큼 남다른 개성과 성취를 보여주고 있었다.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위철)과 ‘부석사 무량수전’(전진환)은 소재의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이었다.유·불·선(儒·佛·仙)을 숭상하는 우리 정서상 불교사상은 높은 가치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지만,어느 작가의 소설 ‘부석사’이후 근자에 불교 소재가 문학작품 주제로 너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 두 작품도 그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므로 ‘참신한 맛’이 덜했다. ‘쐐기풀 옷 한 벌조차’(노영임)는 작품의 짜임새는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연초에 신문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신춘문예의 특성상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보다 밝고 진취적 메시지가 돋보이는 것이다.‘우담화’(정평림)는 이른바 옴니버스시조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옴니버스시조(혼작 연형시조)는 내공을 많이 쌓아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른다.특히 사설시조의 구성 요건인 서사구조,복선(伏線),걸쭉한 입담,웅장한 스케일,극적 줄거리를 엮어내는 가락,갈등구조,풍자정신,말 엮음,휴지(休止),종장의 대반전 효과 등을 고루 갖추어야 하는데 그만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당선작 ‘산에 들다’는 범상한 소재를 범상하지 않게 요리한 시조솜씨가 색다른 특색으로 다가왔다.사물에 대한 천착과,사물을 바라보는 진지한 태도가 이 신인의 매력으로 보였다. 이근배·윤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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