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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옴부즈맨 칼럼] 당진·순천·원주… 그곳에 가고 싶다/유채윤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옴부즈맨 칼럼] 당진·순천·원주… 그곳에 가고 싶다/유채윤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쌀쌀한 가을을 지나 눈이 오는 12월에 접어들면서 서울신문에도 연말 결산을 염두에 둔 기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기획 기사는 물론이고 문화 및 연예 면에서도 올 한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테마가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연말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삼은 듯한 기획 시리즈 ‘신국토기행’과 입시 준비생뿐만 아니라 성인도 2014년이 지나가기 전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추천하는 ‘서울대 추천 도선 100선-읽어라, 청춘’이라는 기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물론 “‘2014 서울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4371편 살펴보니…”와 같이 올해의 분위기와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경향과 특징들을 분석한 흥미로운 기사들도 많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2014년 한 해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기사로서는 앞서 말했던 두 글들이 제일 돋보였다. ‘신국토기행’은 간단한 소개글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 여행 기사들과 달리 한 도시의 역사, 유적지, 먹거리, 산업, 놀이 등을 자세히 분석해 소개한 기획 시리즈였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도시를 한 기자가 아울러 알아보지 않고, 각 도시에 상주하고 있는 기자들이 각각의 취재 자료를 모았던 것이 큰 장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충남 당진의 소개 기사는 당진시 인구 변화 추이의 통계자료까지 인용하면서 당진의 역사를 설명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많은 여행 기사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도시에 대한 호기심과 유대감이 생겼다. 당진을 일군 대표적인 기업, 당진에서 분양됐던 아파트 단지, 심지어 백제와 통일신라 시대의 역사까지 등장시키며 도시를 소개했다. 또한 현직 시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도시의 정치적 비전이나 입지도 엿볼 수 있도록 글을 서술했다. 이 모든 배경 작업과 함께 본격적인 여행 소개 기사가 등장한다. 유적지, 유명인의 생가, 해돋이를 볼 수 있는 마을 등에 대한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시원하게 제공되며 당진의 먹거리 역시 소개된다. 이런 방식으로 두 달간 전남 순천, 강원 원주 등 전국 각지의 11개 도시를 둘러보니 마치 일련의 역사 공부를 한 느낌마저 들었다. 일반적으로 연말에 어쩔 수 없이 소개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여행 기사들과는 달리 노력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기획 시리즈가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겨울방학 때 친구들과 한번 놀러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으니 기사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서울대 추천 도선 100선-읽어라, 청춘’은 사실 올해 1월부터 긴 호흡으로 꾸준하게 소개된 콘텐츠다. 일반적으로 서점에서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제임스 조이스, 프리드리히 니체, 토머스 쿤 등 인문 및 순수문학 서적을 추천해 주는 내용이다. 이번 12월의 주인공은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인 마르케스였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책이 소개돼서 그런지 2014년의 끝을 앞두고 이 장기 기획 시리즈에서 소개된 책들을 다시 되짚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스크랩해 놓은 서울신문 지면과 인터넷 서울신문을 이용해 올 한 해 ‘읽어라, 청춘’에서 소개된 책들을 확인했고, 그중에서 겨울방학 때 꼭 읽을 책을 정했다. 연말, 1년 조금 넘게 서울신문을 열심히 구독한 기억이 났다. 한 해의 끝을 여행과 독서라는 새로운 시작으로 맞이하고 싶다. 이런 계획에 서울신문의 기사들이 한몫했다.
  • ‘2015 서울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4371편 살펴보니…시국·미래의 고민보다 ‘일상의 그늘’ 다뤄

    ‘2015 서울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4371편 살펴보니…시국·미래의 고민보다 ‘일상의 그늘’ 다뤄

    ‘2015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실력파 신인들의 작품이 대거 몰렸다. 국내외에서 문학에 대한 열망을 품은 문청(文靑)들이 등단의 문을 두드렸다. 심사위원들은 “예전에 비해 미숙한 작품이 줄어든 반면 완성도가 눈에 띄게 높아져 심사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평했다. 지난 8일 마감된 2015년 신춘문예 응모작은 모두 4371편. 분야별로는 시 2905편, 소설 445편, 시조 547편, 동화 257편, 희곡 206편, 평론 11편이다. 지난해보다 시(3357편), 소설(487편)은 소폭 줄었지만 시조(446편), 동화(157), 희곡(160) 등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창 심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올해 세월호 참사, 노인 요양원 화재, 환풍구 추락사고 등 굵직한 사건·사고들이 많았음에도, 예상 밖으로 이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거의 없었다”고 평가했다.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사건은 충격은 컸지만 정작 사회적 합의점을 찾지 못해 문학작품의 소재로 다루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시 부문에서는 소외된 이웃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예심에 참여한 김경주 시인은 “사회 주변부의 사람들, 낮은 곳에 머무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국내에 이주해 사는 현실을 반영하듯 다문화가정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을 어루만지는 작품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시의 내용은 예년에 비해 어두워진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강동호 평론가는 “예전엔 시를 통해 위안을 주고받는 등 긍정적인 성찰을 하는 게 많았는데, 이번엔 시의 주제나 소재도 어두워졌고 시의 화자도 어두워진 작품들이 늘었다”고 짚었다. “시에 대한 생각들이 보수화되고 있다. 시는 이래야 된다는 틀에 갇혀 익숙한 형식이나 주제, 소재가 반복되는 측면이 있다”는 따끔한 지적도 나왔다. 소설은 암, 요양원, 재산 문제 등 노인 문제를 다룬 작품이 유난히 많았다. 대리모, 탈북자를 소재로 한 작품도 있었다. 예심을 맡은 전성태 작가는 “몇 년 전에는 판타지, 재난이나 가상현실을 다룬 소설이 많았는데 올해는 현저하게 줄었다”며 “반면 일상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한 소설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경재 평론가는 “예전 같았으면 세월호 같은 대형사건을 작품소재로 적극 활용했을 법한데 그런 경향이 사라졌다. 현실을 소박하게 자기 식대로 풀어나간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조연정 평론가도 “국경을 넘거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작품이 없었다”며 “일상만 다루다 보니 가족, 직장, 구직 등으로 소재와 배경이 축소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심사위원들은 “일상이 문학으로 들어와 특별해진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일상 그대로 밋밋하게 소설로 끌어들인 접근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동화 부문에서는 판타지가 크게 줄어든 것도 특징이다. 정리해고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투쟁 일선에 서거나 가사에 전념하는 아버지 등 이 시대 아버지상을 소재로 내세운 작품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개, 고양이 등을 가족의 일원으로 이해한 작품도 많아졌다. 심사위원인 고정욱 작가는 “동화라고 해서 작품 속 갈등이 가벼운 게 아니다”며 “갈등이 치유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다뤄져야 하는데, 너무 쉽게 갈등을 해결해버리는 안이한 접근방식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채인선 작가는 “공상과학(SF)도 판타지도 아닌 경계가 모호한 미래소설이 많았다. 삶이 각박하고 힘들어서인지 현실도피적 내용의 작품들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2015 서울신문 신춘문예 공모

    수상한 시절 지친 영혼의 이마를 쓸어 주고 맑혀 줄 명약(名藥)은 하나, 문학입니다. 신인 작가 최고의 등용문인 서울신문 신춘문예가 이 시간을 기다려 온 것은 그래서입니다. 어젯밤도 오늘밤도 펜을 내려놓지 못한 채 글밭을 구르는, 치열한 이성과 푸른 감성의 문청(文靑)을 찾습니다. 새해 첫날 한국문단을 들깨울 샛별,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모집 부문 및 상금 ●단편소설(80장 안팎) 500만원 ●시(3편 이상) 300만원 ●시조(3편 이상) 250만원 ●희곡(90장 안팎) 25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 250만원 ●동화(30장 안팎) 250만원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마감 2014년 12월 8일 월요일(당일 도착 우편물까지 유효) ■보내실 곳 100-745 서울 중구 세종대로124(태평로1가 25번지) 서울신문사 3층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 앞 ■당선작 발표 2015년 1월 1일자 서울신문 지면 ■응모 요령 -응모작은 기존에 어떤 형태로든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같은 원고를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 투고하거나 표절로 인정될 경우 당선을 취소합니다. -컴퓨터로 작성한 원고는 반드시 A4 용지로 출력해 우송하십시오. 팩스나 이메일 원고는 받지 않습니다. -겉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 ○○ 부문’이라고 붉은 글씨로 쓰고 원고 끝에 이름(필명인 경우는 본명), 주소, 연락처(집·직장 전화, 휴대전화)를 적어 주십시오.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문의 서울신문 문화부 (02)2000-9192~6
  • [사고] 2015 서울신문 신춘문예 공모

    수상한 시절 지친 영혼의 이마를 쓸어 주고 맑혀 줄 명약(名藥)은 하나, 문학입니다. 신인 작가 최고의 등용문인 서울신문 신춘문예가 이 시간을 기다려 온 것은 그래서입니다. 어젯밤도 오늘밤도 펜을 내려놓지 못한 채 글밭을 구르는, 치열한 이성과 푸른 감성의 문청(文靑)을 찾습니다. 새해 첫날 한국문단을 들깨울 샛별,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모집 부문 및 상금 ●단편소설(80장 안팎) 500만원 ●시(3편 이상) 300만원 ●시조(3편 이상) 250만원 ●희곡(90장 안팎) 25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 250만원 ●동화(30장 안팎) 250만원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 [사고] 서울신문 신춘문예 12월 8일 마감합니다

    ■모집 부문 및 상금 ●단편소설(80장 안팎) 500만원 ●시(3편 이상) 300만원 ●시조(3편 이상) 250만원 ●희곡(90장 안팎) 25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 250만원 ●동화(30장 안팎) 250만원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마감 2014년 12월 8일 월요일(당일 도착 우편물까지 유효) ■보내실 곳 100-745 서울 중구 세종대로124(태평로1가 25번지) 서울신문사 3층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 앞 ■당선작 발표 2015년 1월 1일자 서울신문 지면 ■응모 요령 -응모작은 기존에 어떤 형태로든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같은 원고를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 투고하거나 표절로 인정될 경우 당선을 취소합니다. -컴퓨터로 작성한 원고는 반드시 A4 용지로 출력해 우송하십시오. 팩스나 이메일 원고는 받지 않습니다. -겉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 ○○ 부문’이라고 붉은 글씨로 쓰고 원고 끝에 이름(필명인 경우는 본명), 주소, 연락처(집·직장 전화, 휴대전화)를 적어 주십시오.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문의 서울신문 문화부 (02)2000-9192~6
  • [사고] 2015 서울신문 신춘문예 공모

    수상한 시절 지친 영혼의 이마를 쓸어 주고 맑혀 줄 명약(名藥)은 하나, 문학입니다. 신인 작가 최고의 등용문인 서울신문 신춘문예가 이 시간을 기다려 온 것은 그래서입니다. 어젯밤도 오늘밤도 펜을 내려놓지 못한 채 글밭을 구르는, 치열한 이성과 푸른 감성의 문청(文靑)을 찾습니다. 새해 첫날 한국문단을 들깨울 샛별,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모집 부문 및 상금 ●단편소설(80장 안팎) 500만원 ●시(3편 이상) 300만원 ●시조(3편 이상) 250만원 ●희곡(90장 안팎) 250만원 ●문학평론(70장 안팎) 250만원 ●동화(30장 안팎) 250만원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마감 2014년 12월 8일 월요일(당일 도착 우편물까지 유효) ■보내실 곳 100-745 서울 중구 세종대로124(태평로1가 25번지) 서울신문사 3층 문화부 신춘문예 담당자 앞 ■응모 요령 -응모작은 기존에 어떤 형태로든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같은 원고를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 투고하거나 표절로 인정될 경우 당선을 취소합니다. -컴퓨터로 작성한 원고는 반드시 A4 용지로 출력해 우송하십시오. 팩스나 이메일 원고는 받지 않습니다. -겉봉투에 ‘신춘문예 응모작 ○○ 부문’이라고 붉은 글씨로 쓰고 원고 끝에 이름(필명인 경우는 본명), 주소, 연락처(집·직장 전화, 휴대전화)를 적어 주십시오.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문의 서울신문 문화부 (02)2000-9192~6
  • “이 시대의 아버지는…” 성동구 30일 명사특강 소설가 박범신

    “이 시대의 아버지는…” 성동구 30일 명사특강 소설가 박범신

    서울 성동구는 30일 오후 4시 구청 3층 대강당에 소설가 박범신(68)씨를 초청, ‘오늘날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로 제87회 성동명사특강을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영원한 청년작가를 꿈꾸는 박범신씨는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로 등단,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영화로도 제작된 ‘은교’와 ‘촐라체’, ‘물의 나라’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또한 효도의 개념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아비의 굽은 등’을 소재로 한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을 출간해 커다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늘날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주제로 열릴 이번 강연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삶의 무게를 돌아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작가 자신의 이야기와 더불어 진솔하게 풀어놓을 예정이다. 무료로 참여할 수 있으며 기타 자세한 사항은 성동구 홈페이지(www.sd.go.kr) 또는 구 교육지원과(02-2286-5864)로 문의하면 된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부고] 문학 비평계 큰 별 김치수 이화여대 석좌교수

    [부고] 문학 비평계 큰 별 김치수 이화여대 석좌교수

    문학 비평계의 큰 별이 졌다. 문학평론가 김치수 이화여대 학술원 석좌교수가 1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74세. 고인은 1940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 프랑스 프로방스대에서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부산대, 한국외대 조교수 등을 거쳐 1986년부터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했다. 196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염상섭 재고’로 입선해 등단했다. 한글로 사유하며 본격적인 문학 비평에 나섰던 4·19세대의 선두 주자다. 대학 재학 시절인 1963년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 소설가 김승옥, 고 최하림 시인과 함께 한글세대 최초의 동인지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약했다. ‘한국 소설의 공간’, ‘문학사회학을 위하여’, ‘문학과 비평의 구조’ 등의 저서를 남겼다. ‘누보로망을 위하여’,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 등 해외 문학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을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특히 1994년 한국기호학회 설립을 주도하며 전 세계 인문·사회과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친 기호학 이론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현대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프랑스 문화학술공로훈장 기사장 등을 받았다. 한국기호학회장, 한국불어불문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용대(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용욱(뉴욕 맨해튼 칼리지 토목공학과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영안실 1호실에 마련됐다. 영결 예배는 17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양평 추모공원. (02)2072-2010.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폐허같은 삶이라도…거침없이 살아간다

    폐허같은 삶이라도…거침없이 살아간다

    이은선(31) 작가의 첫 소설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은 선명한 채도와 이미지로 먼저 압도하는 낯선 이국의 땅에 거침없이 부려져 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2010년부터 지난 8월까지 4년간 써낸 단편 10편을 묶은 소설집 ‘발치카 No.9(문학과 지성사)’ 얘기다. “공간을 먼저 만들고 사람을 세워 놨다”는 작가는 수로가 막히면서 삶이 황폐해진 아랄해 인근 마을들, 눈사태와 크레바스의 위험을 껴안고 살아가는 고산지대, 에티오피아의 쇠락해 가는 커피 재배지 등에 독자들을 내려놓는다. 낯선 땅에서의 삶은 대부분 종내에는 서늘한 파국을 맞고 황폐하게 스러진다. “장소와 상관없이 ‘우리 지척의 삶과 닮은꼴’임을 부감하게 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가 심어진 부분이다. “동료 작가들도 ‘새로운 공간이지만 너무 익숙한 사람과 삶이 있어서 이국이란 경계가 있을까 싶다’는 독후기를 들려줬다”는 이 작가는 “공간, 배경만 다를 뿐이지 가까이 눈을 돌리면 광화문광장,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등 우리가 외면하지만 주변 곳곳에 비극과 처연한 인생들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카펫’, ‘까롭까(상자)’, ‘톨큰(파도)’ 등 수로 3부작에는 그가 2006~2007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의 일원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글 교사를 하며 목도한 장면들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수로 공사를 놓고 대치하는 군인과 주민들의 폭력적인 난상을 굽어보는 새의 시선(톨큰), 목화 산업을 쥐고 흔들며 마을의 부와 노동력, 여자들을 착취하는 독재자의 참담한 말로를 바라보는 상자의 시선(까롭까), 목화 재배를 위해 강줄기를 끊으면서 ‘배들의 무덤’으로 변한 바다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카펫)이 모두 작가의 시선이나 다름없다. “좋고 비싸고 깨끗한 것만 찾아다니던 스물네살짜리 여자애가 생각지도 못한 비극의 장소에 내던져지면서 인생의 반환점을 겪었어요. 강줄기의 방향을 바꿔 바다도, 살길도 막힌 아랄해를 보며 우리 몸속 혈관도 수로이고 말도 타인과 소통하는 수로이듯 ‘인간 세상 어디나 다 수로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앞으로도 내내 삶의 화두로 가져갈 주제입니다.” 작가는 공연한 희망이나 구원을 암시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폐허를 펼쳐 보인다. 다만 ‘그래, 이렇게라도 우리 다시, 살아야지 않겄냐’(이화)고 중얼거린다. 우직하게 현실을 통과할 줄 아는 이만이 품을 수 있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로도 들린다. “반드시 삶에 구원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폐허 같은 삶일지라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독자들을 답답하게 할진 모르겠지만 독자들 스스로 ‘나라면 이곳에서 이런 희망을 만들었겠다’ 하고 상상할 여지를 주고 싶었어요. 희망이란 대가 없이 모습을 내보이지 않는 것, 내가 찾아 들어가 만드는 것이니까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시와 연극은 한 몸… 둘 사이 멀어진 거리 회복시키겠다

    시와 연극은 한 몸… 둘 사이 멀어진 거리 회복시키겠다

    시와 극이 한 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등 그리스 고대 비극의 3대 시인부터 셰익스피어에 이르기까지, 시는 곧 극이었고 시인은 곧 극작가였다. 근대 이후 영화, 드라마 등의 서사가 압도하면서 문학의 뿌리인 시와 극의 결합, 시극은 대중에게 외면당했다. 하지만 인기 뮤지컬 ‘캣츠’, ‘오페라의 유령’, 오페라 ‘피의 결혼식’ 모두 시극이 원형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여기에 “시와 극의 멀어진 거리를 회복하겠다”고 나선 이가 있다. ‘한국 문학의 축복이자 저주’, ‘한국어로 쓰인 가장 중요한 시집’이라는 문단의 찬사를 받은 시인이자 지난 10여년간 연극, 오페라 등의 무대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극작가로 활약해온 ‘전방위 문화인’ 김경주(38)다. 그가 지난 10여년간의 극작 작업을 묶은 책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문학동네)를 내놨다. 대학로 실험연극의 메카로 통하는 연극동인 ‘혜화동 1번지’에서 2006년 초연 이후 최근까지 다섯 차례 이상 공연된 작품이다. 12월에는 ‘나비잠’(호미)과 ‘블랙박스’(안그라픽스)도 종이책의 옷을 입고 나온다. 해외 공연도 준비 중이다. 일본어 번역본을 함께 실은 ‘늑대는’은 일본에서, ‘나비잠’은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영어판으로 출간하면서 내년 하반기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다. “책 출간보다 공연을 먼저 했던 건 무대, 공간의 언어로 시가 어떻게 닿는지 보고 싶어서였어요. 유럽에서는 희곡을 빼놓으면 문학사가 정리가 안 될 정도로 문학의 중요한 정수예요. 그런데 우리는 신춘문예에서는 물론이고 주요 문학 출판사에서 최근 20~30년간 희곡을 출간한 적이 없을 정도로 서자 취급을 받고 있거든요. 희곡이 단지 무대에 올리는 대본이 아니라 읽는 문학으로서도 가치가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죠.” 출발은 험난했다. ‘늑대는’은 20대 중반부터 신춘문예에 내왔지만 최종심에서 줄곧 미끄러졌다. 보다 못한 한 심사위원이 그에게 “신춘문예용이 아니니 그만 보내라. 대학로에서 바로 작업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연락해 왔다. 하지만 대학로를 기웃거리며 연출가를 만나 희곡을 내밀어도 보고 극단 사무실 앞에 놔두고도 왔지만 선뜻 손내미는 곳은 없었다. 그러다 2003년 희곡과 함께 보낸 시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덜컥 시인으로 먼저 등단하게 됐다. 시와 희곡 모두에 애정을 품게 된 건 대학 시절부터였다. 극단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를 공부하게 됐다는 그는 상업 공연이 판을 치는 대학로에서 ‘시적 울림이 있는 연극을 올리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다. 2000년부터 낭독 모임 ‘펭귄라임클럽’을 통해 시 낭독 문화를 뿌려온 것도, 2007년부터 자신의 스튜디오 ‘플라잉 에어포트’에서 시극 실험 운동을 펴온 것도 그 밑거름이었다. “시가 살려면 소리라는 피부를 입고 나와야 해요. 그런데 시인들이 시 낭독을 하면서 뻘쭘해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자기가 쓴 시를 저렇게 멋없게, 자신없게 읽나’ 하는 생각이 치받아왔죠. 제도권 교육 때문에 묵독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시를 향유하는 문화를 잃어버린 거예요. ‘소리내어 읽는 언어의 질감을 살려야겠다’, ‘무대에 올려 새로운 낭독의 언어를 가져야겠다’ 싶어 낭독·시극 운동을 시작했는데 ‘왜 돈 안 되는 짓을 하냐’는 질타도 많이 받았죠(웃음).”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시적 메아리를 계속 전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지 오래다. “시를 열심히 쓰는데 독자들이 안 읽는다고 독자 탓을 할 수는 없잖아요. 힘들게 썼으면 광장에서 읽기라도 해야죠. 시와 연극은 모성의 언어로 고백하는 문학 장르입니다. 태담, 기도와 닮은꼴이죠. 이제 시적 언어로 고백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세계에서 멸종된 시극이 한국에서 다시 출발한다는 건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바깥에서(이보라 지음, 청어 펴냄) 1997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과메기’를 발표하고, 올해 불교신문 신춘문예에서 ‘파리로 가신 서방님’으로 재등단한 중고 신인 이보라의 치열한 경계에서 글쓰기. 표제작을 비롯하여 ‘동백애상’ ‘토끼꼬리’ ‘미포 끝집’ 등 9개 작품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시인보다 더 시적인 아포리즘적 글쓰기를 만끽할 수 있다. 224쪽. 1만 3000원. 사전, 시대를 엮다(오스미 가즈오 지음, 임경택 옮김, 사계절 펴냄) 사전의 역사를 통해 본 일본의 지식문화사. 8~12세기 헤이안 시대의 공적 지식과 일상 지식의 체계화부터 20세기 초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참여한 10권짜리 일본백과대사전까지, 사상과 문화의 흐름을 촘촘히 정리한다. 290쪽. 1만 7800원. 거의 모든 것의 정리법(저스틴 클로스키 지음, 조민정 옮김, 처음북스 펴냄) 눈에 보이는 물건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필요’ ‘책임’ 등을 망라한다. 정리, 창조, 훈련을 핵심 원리로 삼아 필요한 것을 쉽게 찾고 필요없는 물건을 과감하게 버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444쪽. 1만 7000원. 우리시대 최고의 뮤지컬 22(김형중 지음, 다음생각 펴냄) 뮤지컬 팬이라면 한 번쯤 보고 싶은 22개 작품을 꼽아 소개한다.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등 해외작 20편에 창작뮤지컬 ‘명성황후’와 ‘베르테르’를 포함시켰다. 작품 설명을 기본으로 경제, 문화, 역사를 아우르는 교양지식을 담았다. 398쪽. 1만 7000원. 잠자기 전 읽기만 해도 나쁜 기분이 사라지는 마음의 법칙 26(나카무라 마사루 지음, 김동섭 옮김, 인빅투스 펴냄) ‘각본 없는 드라마’는 없다. 체육경기의 통쾌한 역전승에는 치열한 연습과 정교한 전략이 있었다. 불안한 미래를 걱정할 시간에 ‘나만의 각본’을 만들어라. 잠들기 전 하루를 돌아보되 반성 따위는 말라. 뇌속 해마가 나쁜 기분을 선명하게 저장한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웃으며 잠들어라. 긍정을 부르는 다양한 방법을 전한다. 208쪽. 1만 2000원.
  • [문화 단신] 김승희 등단 40주년 문학선 출간

    김승희 시인의 등단 40주년을 기념하는 문학선 ‘흰 나무 아래의 즉흥’(나남)이 출간됐다. 시인이 직접 고른 시편 200여편과 소설 3편, 직접 쓴 자전적인 시론을 묶었다. 1973년 ‘그림 속의 물’로 등단한 이후 9권의 시집을 내고 1994년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다시 데뷔해 소설집 두 권을 펴낸, 그의 40년 분투를 굽어볼 수 있다. 태양과 불, 물, 신화 이미지로 요약되던 초기와 일상과 여성, 문명과 자본주의로 외연을 확대한 후기 등 시 세계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 [부고] 한국시인협회장 김종철씨

    [부고] 한국시인협회장 김종철씨

    한국시인협회 회장인 김종철 시인이 5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67세. 지난 3월 시인협회장에 추대된 고인은 ‘시의 달’ 제정, ‘남북시인대회’와 ‘비무장지대(DMZ) 프로젝트’, 이란 시인과의 교류 등 다양한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췌장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고인은 서라벌예술대학에 재학 중이던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재봉’,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바다 변주곡’이 각각 당선돼 등단했다. 1975년 ‘서울의 유서’를 출발로 ‘오이도’(1984), ‘오늘이 그날이다’(1990), ‘못에 관한 명상’(1992), ‘등신불 시편’(2001), ‘못의 귀향’(2009), ‘못의 사회학’(2013) 등 시집과 이론서 ‘시와 역사적 상상력’ 등의 저술을 남겼다. 제13회 정지용 문학상, 제6회 윤동주 문학상, 제12회 가톨릭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고인은 소시민들의 삶을 형상화하고 종교적 제재를 사회적 상상력과 결합한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못’을 통해 삶의 고뇌와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에 집중해 ‘못의 시인, 사제’로도 불렸다. 또 ‘문학수첩’ 발행인 겸 주간과 계간 ‘시인수첩’ 발행인으로 활동하는 등 출판인으로서도 족적을 남겼다. 1999년 ‘해리포터’ 시리즈 출간을 시작해 1000만부 이상을 판매하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고인의 형인 김종해 시인 또한 시인협회장을 지냈다. 유족은 ‘문학수첩’ 대표이사인 부인 강봉자씨와 딸 은경씨, 시내(문학수첩 이사)씨 등이다. 장례식장은 삼성서울병원 17호실이며 발인은 8일 오전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순교 성지 부활의 집에서 치른다. (02)3410-6917.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김주영 등 예술원 회원 4명 선출

    김주영 등 예술원 회원 4명 선출

    대한민국예술원은 3일 제61차 정기총회를 열어 신규 예술원 회원으로 소설가 김주영(왼쪽·78)과 오정희(오른쪽·67), 성악가 김성길(73), 가야금 연주자 윤미용(68)을 선출했다고 밝혔다. 예술원은 올해 신규 회원 4명이 추가돼 기존 87명에서 91명으로 회원 수가 늘었다. 소설가 김주영은 1971년 월간문학에 소설 ‘휴면기’로 등단해 ‘객주’ ‘천둥소리’ ‘빈집’ 등의 중·장편 소설을 발표해 왔다. 2007년 은관문화훈장(2007년)을 수상했고, 현재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 오정희는 ‘불의 강’ ‘불꽃놀이’ ‘야회’ 등을 발표했다. 김성길 서울대 명예교수는 모스크바필하모니, 말러국립교향악단 등과 협연하며 국내 오페라계를 이끌어 왔고, 국립국악원장과 국악방송 이사장을 지낸 국악인 윤미용은 국내 대표적인 가야금 연주자로 옥관문화훈장(2010년)을 받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길섶에서] 그리기와 쓰기/문소영 논설위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행위는 희한하게도 치유의 효과가 있다. 묘사력이나 문장력이 좋지 않아도 상관없다. 구석기 인류인 크로마뇽인이 그린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나 프랑스 라스코동굴 벽화에는 살이 통통하게 찌고 건강한 매머드, 들소, 사슴 등이 그려져 있다. 전문적 화가가 존재하지는 않았을 시대니 눈이 밝고 손재주가 있는 인류가 그렸을 것이다. 동굴의 굴곡을 활용해 넓은 어깨 등을 표현했다니 과학자 같은 기질도 있었을 것 같다. 구석기 벽화는 그림이지만 글이기도 했다. 들소나 사슴, 매머드와 같이 아름답고 건강하길 바랐거나, 추위나 맹수를 피해 들어가 배고픔에 굶주리면서 살고 싶은 욕망과 배부르게 먹고 싶다는 기대를 표현했을 듯싶다. 그림의 수준을 볼 때 종교의식에 사용됐다는 추정도 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자인 김가경씨는 특정인에 대한 복수를 위해 소설을 썼는데, 글을 쓰면서 어느덧 분노와 갈등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우리는 어릴 적에는 화가, 청년기에는 문학청년이었다. 그때로 돌아가 글 쓰고 그림 그리며 자신을 위로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이어령 前 장관과 30년 동안 생명 노래…‘생명 그리고 동행’展 연 김병종 화백

    [김문이 만난사람] 이어령 前 장관과 30년 동안 생명 노래…‘생명 그리고 동행’展 연 김병종 화백

    생명의 그리움, 생명의 존귀함이 새삼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는 흔치 않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목이 ‘생명 그리고 동행’(6월 30일까지)이다. 얼마 전 ‘생명의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 ‘생명’이라는 화두를 던진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30년 동안 ‘생명’을 노래해 온 김병종(61) 화백(서울대 교수)이 만나 ‘생명과 동행’이라는 메시지를 버무리고 있다. 이 전 장관의 시를 김 화백이 묵필로 썼고 ‘생명’을 주제로 한 대작만도 20여점을 내걸었다. 지난 14일 영인문학관에서 김 화백을 만났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자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생명의 노래-숲에서’라는 대형 그림이 걸려 있었다. 길이만 따져도 족히 8m는 된다. 김 화백의 대표작이자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던 ‘바보예수’도 눈에 들어온다. 바로 옆에는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이 전 장관의 시가 보인다.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로 시작된다. 또 ‘미친 금붕어’라는 시도 있다. ‘어머니 저는 금붕어들이 미쳤으면 합니다/날치처럼 어항에서 튀어나와 일제히/(중략)어머니 저는 금붕어들이 지느러미 세우고/하늘을 날았으면 좋겠습니다….’ 김 화백이 화선지에 직필로 휘갈겨 쓰고 여백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시와 묵필이 어우러져 생명의 고귀함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벽에 걸린 김 화백의 그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으로 뭔가 얘기하는 표정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로 의사 전달을 하지만 다른 생명체들은 눈빛으로 얘기합니다. 꽃에도 눈이 있어 옆에 있는 꽃을 바라보고 찾아오는 벌, 나비와도 눈빛을 마주치지요. 이 그림(카리스 소년)에서는 금붕어와 소년이 서로 바라보며 얘기합니다. 사람의 동행도 둘이 같은 방향으로,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와 관련해 윤상훈 미술평론가는 “그의 ‘생명의 노래’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다. 때로는 거칠고 격렬하며 때로는 잔잔하고 화사한 그의 생명 연작들은 수십년을 두고 다양한 울림과 변주를 이어 오고 있다”고 평가한다. 1980년대가 ‘바보예수’였다면 1990년대에는 ‘생명의 노래’ 시리즈가 이어진다. 유토피아적인 전경 속에서 모든 대상을 화평하게 어울리도록 한다. 그러면서 ‘바보예수’와 ‘생명의 노래’의 두 주제를 같은 뿌리에 두고 작업해 왔다. 그는 “세계는 생명의 기미로 가득 차 있다. 생명의 정령들이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 생명의 노래를 통해 비로소 인간 이외의 다른 지평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한다. 김 화백은 지난 2월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김병종 30년, 생명을 그리다’라는 제목으로 저예산 전시를 열었다. 개관 10년 만에 처음으로 마련된 개인 작가의 전관 전시에서 생명 연작을 펼쳐 보인 것이다. 관람객 3만 3000여명이 다녀갈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개막식 때 이 전 장관이 강연을 했는데 김 화백의 그림에 대해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바다를 모른다. 오직 가끔씩 바다 위를 날아오르는 날치만이 바다를 볼 수 있다”고 하면서 ‘생명의 날치’라고 표현했다. 판소리 명창 안숙선씨는 김 화백이 직접 작사한 것에 곡을 붙인 ‘사랑가’를 불렀다. 안 명창과는 같은 전북 남원 출신이다. 이 전 장관과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제 아내가 이어령 선생의 딸과 대학교를 같이 다닌 사이였지요. 당시 아내가 이대문학상에 당선됐을 때 이 선생이 ‘문학사상사’ 주간을 맡고 있었는데 선생이 제 아내에게 ‘너는 결혼에 신경 쓰지 말고 평생 글을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인연의 첫 단추가 된 셈입니다.” 김 화백의 부인은 소설가 정미경씨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2002년 오늘의 작가상과 2006년 이상문학상을 받았으며 그동안 창작집을 7권이나 펴낸 중견 작가다. 김 화백은 부인보다 7년 앞서 중앙일보(1980년)와 동아일보(1981년) 신춘문예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과 삼성문화재단 저작상 등을 수상한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김 화백은 13세 때 이 전 장관의 책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를 읽고 감명받은 인연도 있으며 부인이 이 전 장관의 부인인 강인숙 여사와 틈틈이 만나면서 오늘날까지 이 전 장관과 동행의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 김 화백은 ‘문학사상’에 삽화를 그렸고 이 전 장관은 김 화백이 전시할 때마다 전시장을 찾아 강연을 해 줄 정도록 돈독한 사이로 발전했다. 김 화백은 1953년 남원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정문자 선생님에게서 ‘너는 화가가 돼라’는 말을 들은 후 화가의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환쟁이가 나오면 안 된다’며 반대했다. 그 때문에 그림을 그려 상장을 받아도 집에 갖고 가지 못하고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보리밭에 날려 버리는 일이 숱하게 있었다. 그래도 늘 그림을 그렸다. 억눌림과 쫓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땅에다 그리고 허공에다 그렸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는 남원 시내 다방에서 ‘유혹’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분위기로 봐서 마을 어른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을 리 없었다. 그럴수록 혹시 그림을 못 그리게 될까 봐 조바심이 커졌다. 그 무렵 책을 많이 읽은 것도 강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해서였다. 사르트르, 카뮈, 레마르크, 모파상, 앙드레 지드 그리고 ‘금병매’와 ‘벽 속의 여자’까지 빌려 온 책을 방 안 여기저기 쌓아 놓고 죄다 읽었다. 그뿐만 아니다. 소설도 몇 편 썼다. 외국의 기성 문인들을 흉내 내 제법 난해한 시들을 쓰기도 했다. 또한 흰 종이만 보면 허기진 듯 그림을 그려 댔고 늦은 밤이면 시내로 나가 총천연색의 극장 벽보를 몰래 떼어다 벽에 붙여 놓고 며칠씩 들여다보곤 했다.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좋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는 각오로 서울 용산역에 내리게 됐다. 이어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미대에 진학하면서 그의 숨은 재능이 제대로 빛을 보게 된다. 전국대학미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시와 소설로 서울대문학상을 휩쓸었다. 그 무렵 ‘대학입시’라는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월간지의 기자가 찾아와 서울대 캠퍼스를 배경으로 소설을 써 달라고 부탁했고 김 화백은 ‘바람일기’라는 소설을 썼다. 잡지사에서 기획한 ‘캠퍼스 소설’의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이다. 두 번째 소설은 이화여대 영문과 학생이 쓴 ‘바람의 초상’이다. 그 여학생이 지금의 부인이다. 김 화백은 ‘화첩기행’이라는 책으로 대중과 가깝다. 1998년 시작해 지금까지 5권을 냈다. 그는 이에 대해 “대체로 한달이면 보름쯤은 그림을 그리고 열흘쯤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화실과 서재를 왕래하다 보면 이 두 가지 일은 둘이 아닌 하나로 섞이고 만나게 된다. 문장은 수채화 같은 빛깔을 띠고 그림은 글 기운 비슷한 무엇을 발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예컨대 서로 데면데면하게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뒤섞이고 풀리면서 제3의 그 어떤 모양과 빛깔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화첩기행’은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다. 오늘날 동행의 느낌을 재현한 것도 미술과 문학이 함께 섞이는 일이라고 한다. 밥과 반찬이 뒤섞이는 작업이란다. 앞으로도 이 같은 동행이 계속 이뤄질 것임은 물론이다. “살다가 배터리가 방전돼 간다고 느껴질 때마다 저는 가방을 꾸리곤 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때마다 충전이 조금 되지요. ‘화첩기행’을 위해 낯선 공간 속으로 들어가 기록하는 순간의 설렘과 흥분은 저를 새롭게 일어서게 했습니다. 여행은 그런 점에서 진실로 스승을 찾아 떠나는 일이기도 하지요.” 올해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요즘 들판의 잡초처럼 뒷심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낀다. 오직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그림에 대한 사랑과 깊이가 더욱 느껴진다”면서 열정의 가속도가 생기는 만큼 계속 그림에 미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동안 독일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 개인전만 8회를 열었는데 올해도 유럽과 미국에서 개인전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계가 주는 무표정하고 비정한 것이 아닌 문인화의 발묵, 발색 같은 여백의 미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생명의 노래’에 대해 자신의 시 한 수를 읊는다. ‘산들아/아직도 청정한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느냐/물들아/여전히 그 한 자락을 휘감아 흐르고 있느냐/풀들아 숲들아/고요히 눕고 힘차게 일어서느냐/어린 생명부치들을/아직도 땅 위에 네 품을 거느리고 있느냐/아아 조선의 땅아, 바람아, 물들아, 애잔하게 스러져 가는 것들아/오늘 서툰 붓 한 자루에 실어/내 너희 안부를 묻노니.’ 선임기자 km@seoul.co.kr ●김병종은 1953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대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성균관대에서 동양예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독일 베를린에서 ‘바보예수’ 개인전을 시작으로 서울, 프랑스 파리, 미국 시카고, 벨기에 브뤼셀, 일본 도쿄, 스위스 바젤 등지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국제 아트페어와 광주 비엔날레, 베이징 비엔날레, 인디아 트리엔날레 등에 참여했다. 대영박물관과 온타리오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문학 청년이던 시절 중앙일보(1980년)와 동아일보(1981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기도 했다. 서울대 미대학장, 서울대 미술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81년), 미술기자상(1989년), 한국미술작가상(1991년), 선 미술상(1995년), 대한민국 기독교미술상(2004년)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화첩기행’(전 5권), ‘중국회화연구’ 등이 있다.
  •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첫 셰익스피어 전집 운문 번역 출간 박맹호 민음사 회장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첫 셰익스피어 전집 운문 번역 출간 박맹호 민음사 회장

    ‘흐린 하늘에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유모가 아직 잠이 덜 깬 필립을 안고 병석에 누워 있는 어머니 곁으로 데리고 갔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키스를 했다. 앞으로 누가 이 애를 키울까 하는 걱정어린 눈으로 필립을 들여다보았다. 뺨을 만지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만져 보고는 그만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필립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어머니는 사내아이를 분만하다가 죽고 말았다.’ 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에 나오는 대목이다. 학창 시절 한번쯤 읽어 봤음직한 작품이다. 그렇듯이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고 좋은 책에 대해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잘’, 그리고 ‘제대로’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읽도록 할까. 출판사의 꿈은 그렇게 시작됐다. 민음사 박맹호(80) 회장 얘기다. 민음(民音)은 한자 풀이대로 ‘백성의 소리’를 뜻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박 회장을 만났다. 자리에 앉으면서 벽에 걸려 있는 두 개의 액자를 봤다. 하나는 미당 서정주가 79세 때 직접 써 준 것이다. ‘하늘이 하도나 고요하시니. 란초는 궁금해 꽃피는 것이다.’ 박 회장에게 미당과 어떤 인연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미당의 전집도 내고 책을 많이 냈지. 작품 정리는 대부분 내가 했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또 다른 액자의 글귀는 ‘민음활성’(民音活聲)이다. 박 회장은 “민음이 활달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라는 뜻이며 20년 전에 경봉 스님이 직접 써준 것”이라고 했다. 민음사라는 출판사 이름 내력에 대해 박 회장은 “학생 때 약자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백성의 소리’를 떠올렸는데 일종의 치기라고 할 수 있지 뭐. 나중에 훈민정음할 때 민음이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어”라고 대답한다. ●셰익스피어 번역 운문 전집 2019년 완간 목표 민음사는 1966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 옥탑방에서 출발했으니 올해로 5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그동안 5000종이 넘는 책을 출간하면서 국내 최대의 단행본 출판사로 성장했다. 박 회장은 “그동안 발간한 책을 권수로 세어보면 아마 5000만권은 넘지 않을까”라고 회고한다. 하기야 민음사의 대표주자인 ‘삼국지’가 1800만부, ‘세계문학’이 1200만부 정도 팔렸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인구 대부분이 민음사에서 나온 책을 한번쯤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도 이틀에 한 권씩 발간한다. 그에게 “책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인간의 완성은 책에서 비롯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에 신경 쓰는 것은 ‘셰익스피어 전집’이라고 했다. 연세대 영문학과 최종철 교수가 20년동안 연구해 온 결과물로 국내 최초 ‘운문번역’ 셰익스피어 전집이라고 했다. 셰익스피어 희곡들은 대사의 절반 이상이 운문 형식이다. 따라서 운문 형식의 대사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기느냐 하는 문제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깊이와 감동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와 곧바로 연결된다. 1993년 처음으로 ‘맥베스’를 운문 번역하면서 우리 시의 기본 운율인 삼사조(三四調)에 적용했다. 운문 형식을 그대로 살리면서 원문의 뜻을 최대한 정확하게 번역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26일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세례일 기준)을 맞아 우선 두 권을 출간했고 이달 말 다시 두 권을 출간해 독자들을 찾아간다. 계획대로라면 2019년 10권을 완간한다. 흔히 ‘민음사 책’을 떠올릴 때 ‘세계문학전집’을 떠올리고 이문열, 한수산 등 대형 신인들을 발굴한 업적을 얘기한다. 이문열씨는 이달 말 ‘변경’ 12권을 민음사에서 다시 낸다. ‘세계문학전집’은 그동안 320권을 냈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대단한 기록이다. 앞으로 500권까지 낼 예정이다. 박 회장은 지금도 “새로운 필자를 발굴하고 새로운 책을 만들어내면서 이 사회의 지성과 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책으로 쌓아 올린 박 회장의 평생에 대해 “아마 우리나라 출판의 격을 조금 높이지 않았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고, 세계문학을 한데 모았고, 비평서의 효시를 열었고… 출판이란 창조하는 것이며 책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했다. 어떻게 해서 출판사를 시작하게 됐을까. ●신춘문예 도전… 독재 비판 이유로 탈락 그는 서울대 불문학과 시절 교내 잡지 ‘문학’에서 활동했다. 그러면서 소설을 쓰고 책읽기를 좋아했다. 또 이어령, 유종호 등 쟁쟁한 문학 멤버들과 자주 만나 작품을 논의했다. 한국 최초 ‘불한사전’을 펴낸 불문학자 이휘영 교수는 박 회장에게 “너는 (불문학)공부를 안 해도 되니 대신 소설이나 써라”는 말에 한층 고무되기도 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했다. 장가는 들었으나 취직이 안 돼 고민하던 중 한국일보 제1회 신춘문예에 도전한다. 거의 당선될 뻔했으나 독재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취소되면서 1966년 5월 19일 민음사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시작하게 된다. 이날을 창사 기념일로 정해 매년 휴무를 한다. 민음사를 시작한 후 처음에는 사무실을 얻지 않았다. 필자에게 원고를 받아 편집과 교정은 집에서 했다. 아버지는 “그 책들을 한 트럭 정도 내다 팔면 휴지로 끝나는 거 아니냐. 그거 뭐하러 해. (고향)보은에 내려와서 일이나 도와라”고 하면서 반대했다. 당시 아버지는 운수업과 정미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가업을 돕는 것이 영 맞지 않았다. 집안에서 퇴출당하다시피 한 박 회장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시작했다. 당시 출판사 운영자금은 부인의 결혼 패물을 판 돈에다 여기저기에서 빌린 돈으로 마련해 시작했다. “어릴 적에는 이렇다 할 꿈이나 야망은 없었어. 학교 다닐 때 문예반에서 활동하고 영문학과에 진학해 볼까 정도 생각했지. 책에 대한 생각은 좀 했어.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좋은 책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보고…서울대 약대를 나온 아내가 나 때문에 무척 고생했지. 청진동에 출판사를 낸 것은 문인들을 고려한 것이었지. 지금 생각하면 작가의 꿈을 포기한 것은 잘 한 일이야. 안 그랬으면 글이나 쓴다고 끙끙대고 있겠지 뭐.” 민음사의 첫 책은 ‘요가’였다. 친구 신동문의 권유로 냈다. 198쪽 분량의 양장본으로 집에서 교정을 보고 처남의 전화상 전일사에 나가 이리저리 전화통화를 하면서 혼자 만들어냈다. 책값은 250원을 매겼고 1만 5000권이나 팔렸다. 요즘 같으며 몇십만부에 해당하는 베스트셀러였다. 서점들이 독촉을 하는 바람에 애를 먹을 정도였다. 두 번째 책은 유주현씨가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소설 ‘장미부인’이었다. 겁없이 신문에 5단 광고까지 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뒤를 이은 ‘서유기’ ‘반자서전’ ‘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 등도 마찬가지였다. ‘요가’로 번 돈을 몽땅 날렸다. 순식간에 빚이 3000만원까지 불어났다. 부인이 돈을 구하러 다녔다. 박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아내의 묵묵한 후원이 없었다면 그 시절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아내를 위해 충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은 만나며 김현 등 4K 문단인맥 형성 민음사 초창기 때 시인 고은과 만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신동문이 나에게 소개를 했어. 신동문은 그때 ‘이 친구가 제주에서 몸만 가지고 덜렁 올라왔는데 사귀어 보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지. 술을 마시면 기행을 많이 했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이탈리아 말이나 프랑스 말을 한다고 무어라 막 목소리를 높이는데 단어가 맞는 것은 아니로되 그럴싸했지. 매일 옥탑방으로 출근을 했는데 점심 때면 같이 짜장면을 시켜 먹고 밤이면 함께 술집으로 향했어.” 고은씨와 만나면서 박 회장은 문단의 인맥을 형성한다. 이른바 4K(김현, 김주연, 김치수, 김병익) 그룹이다. 이들은 1970년대 중반 ‘문학과 지성사’를 차려서 따로 독립해 나가기 전까지 민음사에서 책도 내고 기획을 함께했다. 오늘의 민음사를 있게 한 ‘세계 시인선’ ‘오늘의 시인총서’ 등으로 시집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도 이때였다. 또한 책 디자이너 정병규를 만나 책 장정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다. 이후 박 회장은 ‘오늘의 작가총서’ 등을 통해 한국문학 출판의 전범을 마련하고 단행본 출판시대를 열어나간다. 또한 ‘이데아 총서’ ‘대우 학술총서’ ‘일본의 현대지성’ ‘현대사상의 모험’ 등을 통해서 인문학, 자연과학 등 기초 학문 출판을 다양한 형태로 장려하고 정착하는 데 앞장섰다. 민음사의 궤적은 한국 출판의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박 회장은 자부한다. ●지금도 신문 정독 후 출근… “영원한 현역” 박 회장은 영원한 현역으로 불린다. 평생 해 왔던 것처럼 집으로 배달되는 일간지를 정독하고 출판사에 나갈 시간을 기다린다. 민음사는 물론 한국 출판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설렌다. 이러한 박 회장을 가리켜 고은씨는 “발상에서 행동 사이에 거의 틈이 없다”고 했고 대학 동기인 이어령씨는 “씨앗을 싹 틔우고 이앙 전까지 길러내는 묘판(苗板) 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지금보다 조금 젊었을 때는 등산도 하고 골프도 치고 그랬지만 요즘에는 점심시간 때 뚝섬에 있는 서울숲을 주로 걷는다.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물었더니 “인문학으로 이만큼 살아왔으니 이제는 그 덕을 인문학 발전에 돌려 기회가 닿는 대로 계속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맹호는 1934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경복중학교와 청주고등학교를 거쳐 1957년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 민음사를 설립하고 ‘세계 시인선’ ‘오늘의 시인총서’ ‘이데아총서’ ‘현대사상의 모험’ ‘대우학술총서’ ‘세계문학전집’ 등 일련의 시리즈를 비롯해 5000여종의 단행본을 펴냈다. 1976년 계간지 ‘세계의 문학’을 창간했으며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 문학상’ 등을 제정했다. 제45대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서울시 문화상, 인촌상,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국무총리 표창, 화관문화훈장, 보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 [김문이 만난사람] 3500곡 작사… 전설의 작사가 정두수

    [김문이 만난사람] 3500곡 작사… 전설의 작사가 정두수

    1961년 어느 봄날이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서울 서대문에 살던 그는 걸어서 남대문 직장까지 출퇴근했다. 하여 덕수궁 돌담길을 하루에 두 번씩 걸어다녔다. 당시 돌담길은 우마차도 안 다니던 한적한 산책로였다. 그러나 주말이면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리를 걸었던 연인들은 대부분 사랑에 실패한다’는 속설도 생겨났다. 대학을 나오면 대체로 남자는 군대를 가고 여자는 시집을 가는 결혼 적령기에 이른다. ‘덕수궁 돌담길을 가지 마라, 징크스가 있다’라는 생각을 하며 약간 취기에 젖은 채 늦은 밤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제대복을 입은 한 청년이 돌담길에 기대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무슨 사연일까. 그는 집에 와서 펜을 들고 써내려 갔다. ‘비 내리는 덕수궁 돌담길을/ 우산 없이 혼자서 거니는 사람/ 무슨 사연이 있기에 혼자 거닐까/ 저토록 비를 맞고 혼자 거닐까/ 밤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밤에~’ 그로부터 2년 후였다. 부산문화방송 전속 가수로 있던 고등학교 동창생이 시 한 편 달라기에 ‘덕수궁 돌담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건네줬다. 어느 날 정두수 작사, 한산도 작곡, 진송남 노래로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게다가 품위 있고 격조 높은 서정가요로 선정되면서 주목을 끌었다. 제1회 국제신보사 제정 작사상을 비롯해 문화공보부와 전국예술인총연합회 제정 작사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마포종점’, ‘흑산도 아가씨’, ‘가슴 아프게’, ‘마음 약해서’ 등 온 국민의 심금을 울리며 한국 가요를 대표하는 작사가로 인기를 끌었다.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배호, 문주란, 최희준, 하춘화, 주현미, 조용필, 태진아, 설운도, 조항조 등 명가수들과 함께하며 우리나라 대중가요사를 썼다. 그가 작사한 노래만 해도 무려 3500곡이 넘는다. 시대를 초월해 항상 가요 현장에서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이라는 명콤비는 말 그대로 ‘가요산맥’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의 노래 시(詩)들은 대중성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인정을 받았고 각종 시상식에서 390여 차례 넘는 수상 기록을 남겼다. 고향 하동 등 전국 13곳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 6일 우리나라 가요사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작사가 정두수(77)씨를 경기 광주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시인 정공채의 동생이다. 오는 4월 말 고향에 정 시인과 나란히 시문학관이 생긴다. 감개가 무량할 터. 환하게 웃으며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그동안 작사도 작사지만 시를 쓴 것도 많아요. 서사집이자 장시집인 ‘백두대간’도 있고 ‘사랑으로 꽃핀 노래’ 1, 2권도 있어요. 형님은 ‘정공채 문학관’, 저는 ‘정두수 시문학관’이 생기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정두수 노래비도 그 옆에 있지요.” 정씨는 ‘알기 쉬운 작사법’, ‘한국가요 걸작선집 해설’, ‘노래 따라 삼천리’ 등 책을 여러 권 썼다. 시집은 4권이다. 다 함께 전시된다. 잠시 회상을 한다. 담배 한 대를 더 입에 문다. 그래서 물었다. “선생님 대표곡을 굳이 꼽으라면 어떤 것일까요.” “‘흑산도 아가씨’, ‘가슴 아프게’ 등 많지요.” 시곗바늘을 돌린다. 1965년 봄이다. 작곡가 박춘석씨와 충무로에서 가수 신카나리아가 운영하는 다방에서 만났다. 석간신문을 펼치다가 순간적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다름 아닌 ‘흑산도 어린이들과 청와대 육영수 여사의 이야기’였다. 내용은 이러했다. ‘흑산도 어린이들의 꿈, 이뤄지다! 영부인 도움으로 해군함정에 실려와 서울 구경도 하고 청와대를 방문해 학용품을 받다’이다. 방학을 이용해 서울로 오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거센 풍랑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육 여사가 나서서 소원을 들어줬다는 미담 기사였다. 정씨는 박씨에게 “이번 이미자 노래는 흑산도로 합시다. 어린이 대신 아가씨로 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 정약전이 조선 정조 때 유배지 흑산도에서 죽었다는 내용과 당시 전남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도 바다를 바라보며 흑산도의 형을 간절하게 그리워했다는 내용 등을 귀띔했다. 박씨도 ‘좋다’고 했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이때부터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라는 셋을 하나로 묶는 고정 레퍼토리가 시작됐다. ‘그리운 가슴마다’ ‘삼백리 한려수도’ ‘황혼의 블루스’ ‘한번 준 마음인데’ 등이 연이어 탄생한 것이다. 이번에는 ‘가슴 아프게’를 뒤적인다. 1966년 어느 봄날이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비를 맞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젊은 여주인이 혼자 라디오 앞에 앉아 열심히 연속극을 듣고 있었다. 그때였다. ‘부웅~’ 하는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술집에서 뛰쳐나왔다. 소년 시절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보낸 시절이 떠올랐다. 궂은 날씨 때문인지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저절로 ‘무엇이 이토록 가슴을 아프게 하는가. 바다와 나 사이를 짓누르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써내려 갔다. 19세의 신예 남진이 혜성같이 등장했고 국내는 물론 일본 열도까지 뜨겁게 달군 한류 1호 ‘망향의 노래’로 빅히트했다. “노래마다 대부분 사연이 조금씩 있어요. ‘마포종점’은 마지막 전차에서 이별하는 것이고 나훈아가 불러 크게 히트시킨 ‘물레방아 도는데’는 어린 시절 헤어진 삼촌과 애틋한 그리움을 담은 것이지요. 1972년에 써서 문주란이 부른 ‘공항의 이별’은 서독으로 가는 광부와 간호사들이 김포공항에서 가족들과 이별하는 내용을 다룬 것입니다. 이미자와 남진한테 약 500곡씩 써준 것 같네요.”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물레방아 도는데’로 했다. 가장 애착이 가느냐고 물었더니 “고향 하동을 노래했고 ‘소식도 없는 주인공’은 바로 일제강점기에 전쟁터로 끌려가 주검으로 돌아온 삼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의 문학성과 음악성은 한학자인 조부, 시인인 형, 그리고 하동포구라는 지리적 배경이 한몫한다. 특히 어릴 때 하모니카 불기를 좋아해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동래고 2학년 때 진주 개천예술제 시부문에 참가해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 무렵 고향이 진주인 가수 남인수씨를 만나 음악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시를 써 주기도 했다. 또한 ‘남인수 모창’을 그럴듯하게 했다. 1961년 국민재건운동본부에서 주최한 시 현상 공모에서 ‘공장’이란 제목으로 당선했다. 이듬해 KBS의 건전가요 가사 공모에 ‘즐거운 여름’으로 최우수상에 뽑혔다. 작사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즐거운 여름’은 원래 현인씨가 불렀으나 나중에 서수남·하청일씨가 불러 히트시켰다. “시인이 되려면 신춘문예나 현대문학 등 문예지를 통해 등단해야 하는데 당시 국내에는 공식적인 작사가 등용문이 없었어요. KBS 공모전에 당선하니 모두 작사가로 인정해 주더군요. 상금도 많아서 전세금으로 충당했습니다. 그러다가 1963년 MBC 전속 가수였던 양병철씨가 대중가요 전문 작사가의 길을 가라고 권유했어요. 그래서 미리 써둔 ‘덕수궁 돌담길’을 주었지요. 한산도씨가 작곡을 하고 진송남이 불러 히트시키면서 지구레코드사 소속 전속 작사가가 된 것입니다.” 작사가, 작곡가, 가수 중에 누가 영향력이 클까라는 우문을 던졌다. 노래 내용이 있어야 작곡을 하고 부르는 것이 아니냐고 지체 없이 반문한다. 역사성과 아픔이 적힌 시를 보고 곡을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사는 아버지이고 작곡은 어머니로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시와 작사의 한계에 대해 물었더니 “둘 다 어렵다. 요즘도 생각이 날 때마다 메모를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많다”며 웃는다. 그러면서 최근에 작사한 것을 잠시 보여 준다. ‘비 오는 날은 가수 배호가 어떨는지요/ 그의 노래는 비 오는 날 더 흐느끼기 때문이다/ 결박당한 야수의 울부짖음처럼~’ “일반인들은 (작사가를) 그저 유행가 가사나 적는 사람으로 여길지 몰라도 시대의 정서를 정확히 읽어야 합니다. 시인은 작사가를 한 수 아래로 보려고 하지만 그들에게 유행가 노래 한번 만들어 보라고 하면 아마 도망갈걸요. 가수의 성향과 음색, 작곡자의 취향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거든요. 조용필, 이미자가 생명력이 긴 것도 바로 옛 가요의 정서를 바탕으로 현실을 노래하기 때문이지요.” 현재 작사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1만여명 되는 것으로 전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저작권료는 얼마나 되느냐고 하자 “좀 받고 있지만 얼마인지 정확히 모른다. 왜냐하면 집사람 주머니에 들어가기 때문”이라며 웃는다. 부인은 경희대 성악과 출신이고 슬하의 딸 셋 중 둘째는 성악을 하고 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작사가 정두수는… 1937년 경남 하동 출생이다. 부산 동래고와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나왔다. 1961년 국민재건운동본부가 주최한 시 현상 공모에서 ‘공장’이라는 제목으로 당선했다. 1962년 KBS 건전가요 공모에서는 ‘즐거운 여름’이 당선됐다. 1963년 가요 ‘덕수궁 돌담길’로 대중 작사가로 데뷔했다. 이후 ‘흑산도 아가씨’의 이미자, ‘가슴 아프게’의 남진, ‘물레방아 도는데’의 나훈아, ‘공항의 이별’의 문주란, ‘그 사람 바보야’의 정훈희를 비롯해 조용필, 하춘화, 진송남, 은방울 자매, 패티김, 들고양이, 최희준, 김부자, 설운도 등 인기가수 100여명이 그의 노래를 불렀으며 지금까지 작사한 곡은 3500여곡에 이른다. 1995년 장시 ‘지리산’ ‘섬진강’ ‘백두대간’ ‘하동포구 이야기’ 등을 발표했다. 그의 노래비가 전국 13곳에 세워져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알기 쉬운 작사법’ ‘시로 쓴 사랑의 노래’ 등이 있다.
  • ‘2014 서울신문 신춘문예’ 영광의 얼굴들

    ‘2014 서울신문 신춘문예’ 영광의 얼굴들

    16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4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당선자들이 심사위원 등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당선자 구애영(시조)·이태영(소설)·고광식(평론)씨, 이철휘 서울신문사 사장, 박세미(시)·김아로미(희곡)·이꽃님(동화)씨.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2014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상식

    2014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상식

    ■시 알 박세미(26·서울 성동구 행당2동) ■소설 길을 잃다 이태영(36·경기 수원 영통구 영통1동) ■희곡 전당포 김아로미(26·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시조 바람의 책장 구애영(66·인천 계양구 이화동) ■동화 메두사의 후예 이꽃님(24·광주 동구 동명동) ■평론 타자를 소유하는 두 가지 방식-김선우와 강정의 시 고광식(56·인천 남동구 논현동) ●심사위원 시 황현산·나희덕(본심) 김경주·강동호(예심) 소설 성석제·방민호(본심) 하성란·신형철·조연정(예심) 희곡 장성희·고연옥 시조 이근배·문인수 동화 고정욱·채인선 평론 권성우·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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