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신춘문예
    2025-12-09
    검색기록 지우기
  • 도봉구
    2025-12-09
    검색기록 지우기
  • 김준호
    2025-12-09
    검색기록 지우기
  • 금산분리
    2025-12-09
    검색기록 지우기
  • 임대주택
    2025-12-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02
  •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통일·반독재·저항… 신동엽의 수식어 깨고 싶다

    올해는 신동엽 시인 탄생 90주년을 맞는 해다. 독자들의 뇌리에 서사시 ‘금강’과 서정시 ‘산에 언덕에’, ‘진달래 산천’, ‘껍데기는 가라’ 등으로 남아 있는 선생의 작품 세계는 오랜 금기의 세월을 뚫고 이제 우리 시대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선생의 작품은 분단과 독재 시대에 민족과 저항의 키워드로 줄곧 소환됐고 또 그러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빚어진 인류 문명의 위기에 즈음해서 선생의 시적 사유와 실천과 형상은 어떤 대안적 지평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장남 신좌섭 서울대 의예과 교수를 통해 이러한 선생의 현재적 가치와 그 확장성을 들을 수 있었다.●외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트라이앵글 신 교수의 할아버지는 경북 분이었는데 부여로 흘러들어와 극진한 사랑과 전적인 신뢰로 외아들 신동엽의 큰 힘이 돼 주었다. 그 사랑과 신뢰는 신동엽의 인생 갈피마다 회복과 의지의 원천이 됐을 것이다. 1990년에 돌아가셨으니 아들이 떠난 후 21년을 더 부여를 지키신 것이다. 신 교수의 외할아버지는 사회주의에 바탕을 두고 이론을 전개했던 농업경제학자 인정식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전향을 했고, 해방 후에는 북으로 가셨다. 남쪽에 남겨진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이때부터 힘겨운 생을 사셨다. “어머니를 매개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연결되는 것을 느껴요. 외할아버지 전집을 읽으면 사라져 가는 농촌문화를 안타까워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아버지의 생태학적 견지와 어머니의 짚풀문화가 연결되면서, 세 분이 아스라하게 연결되는 것을 느낍니다.” 신 교수의 어머니 인병선 여사는 ‘짚풀문화’에 애정을 가지고 전국을 다니면서 실물적 자료들에 대한 섭렵과 고증과 수집을 마다하지 않았다. 짚풀문화와 관련한 자료 연구로 짚풀문화가로서 입지를 세우기도 했다. 1993년에 개관한 짚풀생활사박물관이 바로 그 결실이다. “그것들은 빨리 삭아 오래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진이나 녹화로 다 기록해 세월이 흘러도 재현할 수 있도록 만드셨어요. 이제 박물관장도 제가 맡았어요. 저희 가계(家系)가 모두 제게로 흘러 들어왔습니다.”●오랜 생애의 빛과 빚을 품은 ‘시인 신좌섭’ 신 교수는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한 1978년, 의사라는 안정된 비전을 던지고 10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군대를 포함해 13년간 바깥에서 내면을 다지고 돌아왔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사회에 기여하는 의사를 양성할 수 있을까에 최선의 관심을 두고 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가르치는 일과, 숙의민주주의에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을 결합하는 일입니다.” 퍼실리테이션은 사람들 사이에 소통과 협력이 활발하게 일어나 합의에 도달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신 교수는 이러한 범주가 부모님의 생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 우리는 아버지라는 거대한 산그늘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짐을 지고 그것을 완성해 가는 ‘숙의민주주의자 신좌섭’의 모습에 가닿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경인’ 정신의 현대적 실현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에게 이처럼 오랜 생애의 빛이자 빚으로 우뚝하시다. 신 교수는 생애에서 두 번의 큰 고통을 겪는다. 2014년에 겪은 참척의 슬픔과 최근에 겪은 병고가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2017년에 첫 시집을 냈고, 작년에는 아버지 50주기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제부터는 차분하게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 일은 시작(詩作),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겨진 일들, 퍼실리테이터로서의 활동일 것이다. 신 교수는 몇 번이고 ‘차분하게’라는 말을 반복했다. 신동엽 선생과 자신의 작품 중 애착이 가는 시편을 들려 달라는 부탁에 신 교수는 아버지의 ‘좋은 언어’와 그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자신의 ‘좋은 언어를 주소서’를 조심스럽게 건넨다. 1970년 유고로 발표된 ‘좋은 언어’는 “때는 와요/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이야기할 때”라면서 언어 과잉의 세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좋은 언어를 주소서’는 시집 ‘네 이름을 지운다’ 마지막에 배치한 작품으로서 “이승엔 더 이상/아름다움을 담을 그릇이 없나니”라면서 아버지에 대한 경모(敬慕)를 숨기지 않는다. 그는 “어버지의 작품은 이상적인 새로운 세상에 관해 암시를 주는 작품이어서 정말 아끼고 있다”고 했다. 인병선 여사의 “그의 시는 지금도 살아 있는 생명체로 우리 속에서 힘차게 날갯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 아들에게도 그대로 해당했던 것이다. 신동엽 시인의 ‘전경인’ 정신을, 아들의 웅숭깊은 사유를 통해 새로 만날 수 있었던 한여름 어느 날이었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토착정서의 핵심 가치, 전경인 정신 아들의 입장에서 신동엽 선생의 가장 중요한 저력이랄까 자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가난한 농민으로 태어나 스스로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토착정서랄까 농경정신을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신 것이 하나고요. ‘백제’라는 멸망했으나 끊임없이 정신이 호출되는 나라가 다른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아닌 게 아니라 선생은 토착정서를 통해 동학을 비롯한 민중종교 사상을 소화해냈고, 사회주의나 아나키즘도 자기 것으로 거르고 녹여 받아들였다. 이러한 힘으로 선생은 전쟁과 독재 치하에서도 정결하고도 견고한 삶으로 일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인 김수영이 선생을 두고 한 “너무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지 않은 시인”이라는 평이 떠올랐다. 1950년대 한국 시단을 유행병처럼 휩쓴 모더니즘 열풍에서 비켜서면서 신동엽 선생은 등단작 제목처럼 ‘이야기하는 쟁기꾼’으로 훤칠하게 등장한 것이다. 1959년 신춘문예 입선작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두고 신동엽문학관장 김형수 시인이 “케이팝 경연대회에 판소리를 들고 나간 격”이라고 한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선생이 강조한 ‘전경인(全耕人) 정신’은 이러한 토착정서의 핵심 가치가 된다. “얼마 전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께서 생태를 이야기하려면 신동엽 시의 도가적 상상력을 읽으라고 한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만큼 아버님은 단순 기능자를 벗어나 온전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정신을 강조하셨죠. 스물두 살에 쓰신 ‘엉뚱한 이론’이라는 산문에서는 두뇌 운동의 탈선과 과잉을 비판하셨는데, 문명의 맹목적 확장을 경계하신 거지요.” 선생의 사유 저변에는 초기부터 노장사상, 원시반본 정신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신 교수는 아버지의 현재적 의미를 이러한 대안적 사유 곧 ‘대지적 상상력’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심층적 원천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족과 저항을 넘어 ‘시인 신동엽’으로 이렇게 신동엽 선생은 ‘민족시인’이라는 그간의 규정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대지, 전경인, 흙 같은 원초적 개념을 통해 아버지의 시가 새로 걸어오는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지향으로 말미암아 선생의 작품은 어떤 시인들보다 내구성과 확장성이 크게 다가온다. 그는 “아버지 앞에 붙었던 통일, 반독재, 저항이라는 호칭이 한 시대의 요청에 의해 주어졌다”면서 이제 수식어가 달라질 때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산문시’나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등을 읽어 보면 신동엽 시인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광범위한 스펙트럼은 사유 체계에서만이 아니라 장르 선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양한 장르를 통한 실험정신이 선생을 폭넓은 ‘시인 신동엽’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신 교수는 “해방 직후에 가난한 민중들에게 깨달음을 주려면 시와 음악과 무용 같은 종합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고 떠올렸다. 기타를 끼고 살았고, 노래도 잘 불렀던 아버지는 오페레타 ‘석가탑’,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 같은 동시대 누구도 꿈꾸지 못한 양식들을 남겼다. 선생은 서정시, 서사시, 장시, 산문시, 오페레타, 시극, 연극, 방송대본 등에 모두 진력했다. ‘금강’을 술회하는 인터뷰에서는 교향시극 쓰듯이 썼다고 토로했고, 타계 직전에는 서사시 ‘임진강’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이 완성됐다면 한국문학은 빼어난 분단 서사시 하나를 더 간직하게 됐을 것이다. 이제 신동엽 시인의 텍스트는 시전집과 산문전집, 그리고 몇 종의 평전으로 완미하게 정리된 듯하다. 하지만 아들로서는 미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 방대하고 정치한 자료를 망라한 본격 평전이 나와야 합니다. 쓰는 시절의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자료의 한계도 있었을 겁니다. 약전(略傳)을 넘어 보완된 자료를 텍스트로 한, 그때는 안 보이던 것을 담은 평전이 나오길 고대합니다.” 한양대 교수·문학평론가
  • [책꽂이]

    [책꽂이]

    거대도시 서울 철도(전현우 지음, 워크룸프레스 펴냄)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둘러싸고 전국의 도시로 뻗어 있는 철도를 총망라했다. 런던, 도쿄, 파리 등 전통적인 거대도시 철도는 물론 자동차와의 싸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미국의 철도, 신흥 철도 강자 중국 등 대표 도시 50개를 선발, 그 도시들의 철도를 분석했다. 552쪽. 2만 7000원.부부 건축가 생존기, 그래도 건축(전보림·이승환 지음, 눌와 펴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한 부부 건축가의 직업 에세이. 건축 설계의 가치, 작은 건축사사무소의 현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건축 실무와 함께 건축가의 역할을 돌아본다. 공공 건축의 의미와 중요성, 건축 현실의 문제점 등 우리 사회, 동네를 배경으로 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건축을 이야기한다. 252쪽. 1만 3800원.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산골기업, 군겐도를 말하다(모리 마유미·마쓰바 도미 지음, 정영희 옮김, 이유출판 펴냄) 인구 500명, 한때 일본 최대의 은 산출량을 자랑하던 이와미 은광이 폐광하며 쇠락한 산골 마을. 이곳에서 100여명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 기업, 군겐도가 태어났다. 군겐도 리더 마쓰바 도미가 일본 환경보존활동가 모리 마유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328쪽. 1만 8000원.볼라르가 만난 파리의 예술가들(앙브루아즈 볼라르 지음, 이세진 옮김, 현암사 펴냄) 세잔, 피카소, 마티스 등 예술가들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세계적인 미술상이 남긴 파리 미술계에 대한 세밀한 기록. 19세기 말 볼라르는 많은 인상파 무명 화가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개인전을 열어주었고, 위대한 화가들도 그 앞에서는 한 인간으로서 울고 웃고 질투하며 자신을 드러냈다. 512쪽. 2만 2000원.좋은 여자들(박향 지음, 강출판사 펴냄)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중견 작가의 소설집. 그의 소설에는 고통에 몸서리치고 허우적대면서도 그 시간에 머묾으로써 해당 시간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여자들이 있다. 고통에 찬 여자들에게 작가는 기꺼이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304쪽. 1만 4000원.빛(브루스 왓슨 지음, 이수영 옮김, 삼천리 펴냄) 문학과 예술, 종교와 철학, 과학과 인문학을 아울러 ‘빛’에 관해 서술한 평전. 인류가 남긴 신화와 경전, 에술과 문학 작품, 과학 논문과 실험 자료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연구와 독서를 바탕으로 집필됐다. 미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파헤쳐 온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인 브루스 왓슨이 썼다. 456쪽. 2만 5000원.
  • 제21회 젊은평론가상에 강동호 평론가

    제21회 젊은평론가상에 강동호 평론가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제21회 젊은평론가상에 강동호 문학평론가의 ‘희망의 이름-김애란론’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14일 밝혔다. 계간 ‘문학과사회’ 지난해 겨울호에 실린 작품이다. 이번 수상작은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결합된 진지한 문학적 인식이 정신적 세계로까지 고양되고 확대되는 노정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협회 측은 “수상작은 2000년대를 대표하는 김애란의 작품들이 현실의 변화와 소통하면서 자신의 글쓰기를 실험하고, 각자의 세기를 반영해 극복하는 모습을 면밀하게 짚어냈다”고 전했다. 강 평론가는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돼 등단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종로 도서관에 이시원 작가 상주… 주민 문학 향유 지원

    서울 종로구는 12월까지 도서관 내에 문인이 상주하며 지역주민과 아동의 문화예술 향유를 돕는 ‘2020년 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을 한다고 13일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이 사업의 운영 기관으로 종로문화재단이 선정됨에 따라 추진하게 됐다. 구는 작가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창작 여건 등을 제공하고 작가와 도서관 이용자 간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역 내 문학 수요를 창출하고 문학 가치를 공유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한다. 종로문화재단과 이번 사업을 함께할 문인은 지역에 사는 희곡 분야의 이시원 작가가 선정됐다. 2005년 옥랑희곡상 ‘녹차정원’으로 등단한 이시원 작가는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 ‘변신’ 당선, 2016년 카나가와 카모메 연극제 희곡상 ‘이 세상 마지막 데이트’, 지난해 공연한 희곡 ‘엑소더스’, ‘배우의 얼굴’ 집필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죽은 엄마의 비밀 뒤엔 어떤 진실이 있을까

    죽은 엄마의 비밀 뒤엔 어떤 진실이 있을까

    첫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 이후 3년 만에 손보미 작가의 두 번째 장편 ‘작은 동네’가 나왔다. 2009년 21세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고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한 이래 작가는 젊은작가상 대상, 김준성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 문학의 중추가 됐다. ‘작은 동네’는 “결정적인 대목을 말하지 않고”, “말해지지 않은 덕에 더욱 강렬하다”(권희철 문학평론가)는 작가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대학에서 시간강사 일을 하는 ‘나’에겐 연예 기획사에서 일하는 남편과 지난해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가 있다. 엄마는 죽기 전 나에게 자신의 삶을 끝도 없이 복기했다. 엄마가 남긴 말들은 내 삶을 온통 뒤흔들고, 나는 ‘둥둥 떠다니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마와 나의 과거를 좇기 시작한다. 엄마와의 추억을 반추하며 ‘나’가 맞닥뜨리는 인물은 여자 연예인 두 명이다. 한 명은 남편 회사에 소속된 배우 윤이소. 아름다운 미모를 과시하던 윤이소는 어느 날 편지 한 통만 남기고 사라진다. 다른 한 명은 유년 시절 엄마와 살았던 작은 동네에서 마주쳤던 여가수다. 1980년대 최고 인기를 누렸던 그는 세간의 시선을 피해 동네에 숨어 들었다 우연한 계기로 엄마와 친분을 맺게 되고, 결국엔 비극적으로 생애를 끝맺는다. 사라진 윤이소는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엄마와 그 가수는 왜 친해졌으며 그녀의 최후에 엄마는 관련이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나와 엄마를 버리고 떠난 아빠에게까지 가 닿는다. 그리고 20년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아빠에게서, 나는 충격적인 진실을 듣는다. 소설은 교보생명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를 통해 2018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연재됐던 작품을 묶었다. 작가는 ‘밤이 지나면’, ‘크리스마스의 추억’으로 이어지는 단편소설을 통해 ‘열 살 여자아이’로 그려지는 인물에 관심을 보여 왔는데 ‘작은 동네’ 역시 이런 관심의 연장선상이다. 살인 사건 하나 일어나지 않지만, 말해지지 않은 엄마의 비밀을 좇다 보면 장르 추리극 못지않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미지보다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개인의 심리를 좇는 일이 훨씬 어려우니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나태주 시인·전경욱 교수 김달진문학상

    제31회 김달진문학상에 나태주(75) 시인과 전경욱(61)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나 시인의 시집 ‘어리신 어머니’(서정시학), 전 교수의 저작 ‘아라리의 기원을 찾아서’(고대출판부)다. 나 시인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1973년 첫 시집 ‘대숲 아래서’를 낸 이래 40여권을 출간했다. 지난 4월 2년 임기의 한국시인협회장에 취임해 활동 중이다. 김달진문학상은 시인이자 한학자인 월하 김달진(1907~1989)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90년에 제정됐다. 제31회 시상식은 오는 9월 18일 경남 창원시 김달진문학관 생가마당에서 열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리뷰] 자갈밭으로 그어놓은 무대, 경계의 삶을 말하다…연극 ‘열 두 대신에 불리러 갈 제’

    [리뷰] 자갈밭으로 그어놓은 무대, 경계의 삶을 말하다…연극 ‘열 두 대신에 불리러 갈 제’

    아주 작은 무대를 둥그렇게 둘러싼 조그만 자갈들이 방석이 놓인 객석 바닥에서도 밟힌다. 같은 높이의 바닥을 쓰는 한 공간에 놓여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도 자그마한 돌멩이들이 잔뜩 모여 무대와 관객들과의 분명한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서울 대학로의 소극장 ‘혜화동 1번지’에서 막을 올린 연극 ‘열 두 대신에 불리러 갈 제’ 무대의 모습이다. ‘서씨’의 삶도 자갈로 둘러싸인, 경계에 놓인 길과 같았다. 공부가 좋고 하고 싶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안일에 소모된다. 열 아홉에 동네 대학생 오빠에게 풋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가족들을 위해 보리 두 섬을 받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하도 배를 곯아 동네 무당 ‘만신’ 집에서 일을 해주고 먹을 거리를 받아와 입에 풀칠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남편의 구박과 폭력이다. 무대를 감싸고 있는 자갈밭을 밟고 또 밟는다. 언제부턴가는 온 몸이 베이는 듯한 통증에 시달린다. 서씨를 괴롭히는 까끌거리는 자갈들을 떨쳐내기 위해선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만신을 말한다. 그런데 서씨에겐 금쪽같은 아들이 있다. 무당집 아들이란 멍에를 씌울 순 없어 자양강장제와 약을 입에 털어놓으며 버티고 버텼다. ‘서울대는 따 놓은 당상’으로 수재인 아들의 대입 시험날 마지막 안간힘을 내고 일어서 밥을 해먹이려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서씨를 짓누르던 온갖 돌덩이들이 한꺼번에 아들에게로 옮겨진다. 결국 서씨는 쓰러져버린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내림굿을 받기로 한다. “아이야, 아이야, 걱정 말어라. 내 가거등 너는 살어 근심 말어라”라는 처연한 서씨의 목소리와 힘 없는 몸짓이 돌멩이들로 그려놓은 무대 안을 뱅글뱅글 돈다.소극장에서 한 시간 남짓 이어지는 사실상 1인극에 가까운 배우 김현정의 연기는 이 작품의 무대 만큼이나 가끔 현실과 극의 경계를 오간다. “지금부터 배우 김현정이 아니다”라며 서씨를 연기하기 시작했다가 극이 끝난 것이 맞는지 두리번거리게 되도록 막이 내린다. 서씨의 전라도 사투리와 김현정의 서울말이 뒤섞이기도 하고 극 속 연출(김진곤 분)과 극단 막내(황인덕 분)가 그리는 역할도 신선하다. 배우 김진곤은 기타를 쥐고 극의 배경음악을 채우기도 하고 기타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며 서씨와 대화하기도 한다. 때때로 모호하고 경계가 불분명한 인생의 흐름을 무대와 배우들의 역할로 강조한 것으로도 읽힌다. 지금 이 장면은 현실일까 연기일까, 돌멩이 몇 알이 밟히는 작은 객석이지만 무대를 바라보는 동안 곱씹게 되는 것도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은근히 많다. 극단 프로젝트 해의 창단 작품인 ‘열 두 대신에 불리러 갈 제’는 주정훈의 2009년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수수하지만 깊이있는 배우의 연기를 눈맞춤하며 집중해 보게 되고, 거문고로 시작돼 기타의 음율로 채워지는 배경이 차곡차곡 마음을 채운다. 5일까지 혜화동 1번지에서 막을 연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음유시인’ 조창규, 데뷔 싱글 발표… ‘우리 둘만의 푸른밤’

    ‘음유시인’ 조창규, 데뷔 싱글 발표… ‘우리 둘만의 푸른밤’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조창규 시인이 가수로 데뷔했다. 조 시인은 최근 데뷔 싱글 ‘우리 둘만의 푸른밤’을 발표했다. 지금껏 시만 써 왔던 시인이 곡 작업으로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이다. 데뷔곡 ‘우리 둘만의 푸른밤’은 시적인 가사에 풍성한 현악기 선율이 돋보인다.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처음 고백할 ?의 떨리는 심정으로 불렀다”는 조 시인의 노래에서는 여린 음색 속 순수한 사랑의 감정들이 느껴진다.전남 여수 출신의 조 시인은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쌈’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후 작곡, 작사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조 시인은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노래를 만들어 대중들에게 다가갈 예정”이라며 “올 9월에 발표할 다음 곡을 구상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녹색평론’ 발행·생태운동가 김종철 별세

    ‘녹색평론’ 발행·생태운동가 김종철 별세

    격월간지 ‘녹색평론’ 발행·편집인인 생태운동가 김종철 전 영남대 교수가 25일 오전 별세했다. 73세.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0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부터 영남대 교수로 재직했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거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이후 환경과 생명에 관심을 두고 1991년 ‘녹색평론’을 창간했다. ‘녹색평론’은 생태주의의 지평을 열고 주요 사회 담론을 이끌어 가는 매체로 평가받는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태언(전 인제대 교수)씨와 아들 형수(대학 강사)씨, 딸 정현(녹색평론 편집장)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7일 오전 9시.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제28회 공초문학상] “광부가 금 캐듯… 모국어 빛 발굴하는 게 시인의 몫”

    [제28회 공초문학상] “광부가 금 캐듯… 모국어 빛 발굴하는 게 시인의 몫”

    “공초 선생은 시를 손끝으로 잘 써서, 시적 기교가 좋아서 시인이 된 게 아니에요. 무한대의 자유로운 시의식과 무소유의 세계관을 자신의 삶의 방식과 혼연일체 육화시켜나간 분이에요. 내 나이가 선생과 비슷해지다 보니, 한발 물러서고 여유가 생기면서 ‘선생의 문학 정신과 근접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희수를 넘긴 시인은 먼저 간 선생의 나이를 넘겨서야 그 뜻을 안다. 제28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한 오탁번(77) 시인의 말이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시인은 등단 이래 54년 간 오롯이 문학을 살아낸 인물이다. 그는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된 이후 시·소설이 차례로 당선된 신춘문예 3관왕이며,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한국 문학을 연구하며 후학들을 가르쳐왔다. 2008년부터 2년 간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고, 시 전문 계간지 ‘시안’(詩眼)을 창간해 15년을 이끌었다. 수상작 ‘하루해’는 그의 자평에 따르면 ‘싱거운 시’다. 그도 그럴 것이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는 그의 열 번째 시집 ‘알요강’(현대시학)에 담긴 시편들 중 ‘하루해’는 가장 얌전하다. ‘싱거운 시’는 그가 정년 퇴임 후 내려 간 고향 충북 제천에서 매일 같이 마주하는 풍경에서 나왔다. “수채화 그리듯, 보이는 그대로 그린” 풍경이다. 또한 ‘하루해’는 시인이 생각하는 예술혼이 그대로 담긴 시편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 이중섭은 제주도 내려 가서 애들이 발가벗고 멱 감는 걸 그렸어요. ‘무찌르자 공산당’ 같은 구호가 없어도, 사람들은 그걸 보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절대 빈곤, 고독을 느끼죠. 그런게 ‘예술’이에요.” ‘벼 익는 논배미마다 지는 해가 더딘’ 가을 농촌 정경을 그린 ‘하루해’를 두고 이병초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문명과 거리를 둔 가을의 갈피를 순정하게 보여줌으로써 돈과 속도에 쫓기는 오늘을 고요히 성찰하도록 한다.’ 시집 ‘알요강’에 담긴 시인의 시를 보다 보면 유독 갸웃하게 되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면 누군가는 오타인 줄 알았다던 ‘닁큼’ 같은 단어들. ‘닁큼’은 ‘머뭇거리지 않고 가볍게 빨리’라는 뜻을 지닌 부사 ‘냉큼’의 큰 말로 순 우리말이다. 손자의 ‘알요강’(어린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작은 요강)을 사러 간 늙은 할아버지의 동작이 ‘냉큼’ 마냥 빠를 수 없다는 게 시인의 설명이다.“모국어의 빛나는 점, 좋은 점을 발굴해서 독자들한테 알리는 게 시인의 임무예요. 땅에서 금 캐고, 석탄 캐는 게 광부의 일이듯이.” 백석, 정지용의 시처럼 가장 좋은 시는 번역될 수 없다는 게 시인의 오래된 생각이다. 시인이 처음 문학을 접하게 된 것은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학원’이라는 잡지를 만나서다. 1952년 전쟁통에 창간된 학생잡지 ‘학원’은 이청준, 김원일, 황동규 등 수많은 학원세대를 낳았다. 한겨울, 방 안에서 잉크가 얼 정도로 가난해서 추웠던 시절, 가진 건 문학밖에 없었다고 그는 추억했다. “글을 안 쓰고 있으면 배 속에서 기생충이 꼼지락 대는 것만 같아요. 내가 우주 속에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 스스로를 증명해 나가는 것이 문학입니다.” 시와 소설 등 문학으로서의 도구를 여러 개 지녔던 그는 “시는 나를 힐링하는 것이라면, 소설은 노동에 가깝다”고 말했다. 시인은 2018년에 소설 전집을, 지난해 열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내년까지 부지런히 쓰면 열 한 번째 시집과 함께 2003년에 냈던 시 전집의 두 번째 버전을 낼 수 있을 것 같단다. 오랜 소망은 시와 소설이 합쳐진 듯한, 환상문학에 기반한 자전적인 장편 소설을 쓰는 것이다. “달나라 여행, 해저 탐험처럼 문학으로 썼던 거짓말 같은 일들이 다 현실로 이뤄졌잖아요. 문학이 상상하면 현실로 빚어지지요.” 시인의 오랜 상상도, 현실로 빚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오탁번 시인은 ▲1943년 충북 제천 출생 ▲1964년 고려대 영문과 입학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입학 ▲1976년 수도여자사범대학 조교수 ▲1983년 고려대 국문과 박사 졸업 ▲1983~2008년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1987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94년 동서문학상 수상 ▲1997년 정지용문학상 수상 ▲2008년 고려대 교수 정년 퇴임 ▲2008~2010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2010년 김삿갓문학상 수상, 은관문화훈장 수훈 ▲현 고려대 명예교수·원서문학관 관장
  • 소설 ‘겨울여자’ 쓴 조해일 작가 별세

    소설 ‘겨울여자’ 쓴 조해일 작가 별세

    소설 ‘아메리카’, ‘겨울여자’ 등을 썼던 조해일(본명 조해룡)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19일 별세했다. 79세. 고인은 1941년 만주 하얼빈에서 태어나 1945년 해방을 맞고 귀국했다.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7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매일 죽는 사람’이 당선돼 등단했다. 고인은 일상 속에 만연된 폭력의 여러 양상을 우의적으로 형상화했으며, 1970년대 송영, 조선작과 함꼐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 대표작으로는 미군 부대 기지촌 여성들의 소외된 삶을 조명한 ‘아메리카’를 비롯, 소설집 ‘왕십리’, ‘무쇠탈’, ‘임꺽정에 관한 일곱 개의 이야기’ 등이 있다. 특히 장편 ‘겨울여자’는 1975년 중앙일보에 연재했다 단행본으로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70년대 대중소설의 전형인 ‘겨울여자’는 1977년 장미희·신성일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고인은 경희대, 서울예전 전임강사를 거쳐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들에게 소설 창작을 지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굉미씨와 아들 대형씨가 있다. 빈소는 경희의료원 장례식장 303호. 발인은 21일 오전 9시.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문화마당] 의미 있는 실패/김이설 소설가

    [문화마당] 의미 있는 실패/김이설 소설가

    교실마다 옷걸이·방향제·거울 등 용모 단장 물품을 구비하겠다, 온라인 축제를 하겠다, 사복 데이를 정해 교복 없는 하루를 보내겠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인 큰아이가 학생회장 선거에서 낸 공약이다. 포스터와 피켓을 만드느라 난리가 난 방에 웅크려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관직욕이 많다고 놀렸던 일이 좀 미안해졌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이번엔 좀 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이의 낙선 경험은 역사가 꽤 깊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전교어린이회 부회장에, 6학년 때는 회장 후보로 출마했다. “인조잔디를 깔겠다”, “토끼장을 만들겠다”, “급식 우유를 초코우유로 바꾸겠다”고 하는 경쟁자들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공약들도 지켜지지 않았다). 초등학교는 학기별 선거였으므로 아이는 총 4번의 낙선을 경험했다. 그러고는 심기일전이라도 했다는 듯이 2년 만에 다시 학생회장 선거에 입후보한 것이다. 낙선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내 지난한 습작기도 빼놓을 수 없다. 생애 첫 신춘문예 응모는 스물한 살 겨울이었고 당선된 건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의 겨울이었다. 일년 동안 쓴 소설들을 추리고 고쳐 문예지 신인응모와 신춘문예에 응모를 했다. 평균 일 년에 열 편을 응모하고 열 번 낙선하는 일이 그렇게 10년 동안 반복됐다. 근 백 번은 떨어지고서야 나는 소설 쓰는 사람이 된 것이다. 최근 읽은 ‘실패도감’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물들의 실패 이야기가 담겼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적이 있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인어공주’를 쓴 안데르센은 연이어 사랑에 실패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가수의 꿈을 포기했고, 위대한 경제학자 마르크스는 정작 돈을 벌지 못해 가계를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마티스는 번번이 전람회에 거절당했고, 몽고메리는 출판 제의를 못 받은 ‘빨간 머리 앤’을 몇 년 동안 창고에 버려둬야만 했다. 어린이책이지만, 이 무수한 실패담을 읽다 보면 ‘실패는 누구라도 하는 것’, ‘실패는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 같은 문장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교과서 같은 결론이지만 실패가 있어서 훗날의 성공도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이야기야말로 비단 어린이들에게만 필요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세계인이 인정하는 훌륭한 사람들 또한 보통 사람들처럼 실패했고, 좌절했으며, 심지어 찌질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위로받게 되니까. 당연히 그들의 실패 극복기는 범인들인 우리에게 소소한 용기를 주기도 하니 말이다. 내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면, 백여 번의 낙선 이후에 맞이한 당선 소식은 사실 반갑지 않았다. 그렇게 바라던 당선이 기쁨보다는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선돼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나도 모르게 당선 그 자체를 목표로 두고 응모했던 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었던 탓이다. 그것은 작가가 되는 방법만 알았지, 좋은 작가가 되는 법을 몰랐다는 자각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순간부터 다시 처음의 자세가 돼야 했다. 문득 잠든 아이의 손에 눈이 갔다. 선거 유인물을 만드느라 검은 매직으로 잔뜩 얼룩져 있는 그 손을 바라보며 아이가 이번엔 부디 당선되기를, 설사 김칫국일지라도 아이가 내세운 공약을 잘 지켜내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자기가 약속한 말을 지키는 일, 책임감을 갖고 학생의 대표로서 남은 중학교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그러나 또다시 낙선자가 되면 어떠랴. 일상 어디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삶이고, 실패와 눈물 속에서 삶의 귀감은 더 용이하게 얻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 담담히 그려낸 노동자 부부의 고단한 삶…이수경 첫 소설집 ‘자연사박물관’

    담담히 그려낸 노동자 부부의 고단한 삶…이수경 첫 소설집 ‘자연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이수경 지음/도서출판 강/216쪽/1만 3000원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수경 작가가 첫번째 소설집 ‘자연사박물관’을 발간했다. ‘자연사박물관’은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한 노동자 가족의 불안한 생존의 연대기다. 여기엔 대학 졸업 후 노동 현장에 투신한 운동권 학생의 후일담이 있고, 척박한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싸우는 노동운동가의 투쟁이 있다. 또 남편을 지지하면서도 가족의 안위와 생존을 걱정하며 막막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노동자 아내의 불안이 담겨있다. 한때는 혁명을 꿈꿨던 이들에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충직한 노예로서의 삶과 막막한 생계의 불안뿐이다. ‘자연사박물관’은 오랜 기간에 걸친 이 부부의 고단한 삶의 사연들을 일곱 편의 단편에 촘촘히 그렸다. 한 노동자 가족이 맞닥뜨린 현실을 중심으로 단편들이 연작의 사슬을 구축해간다는 점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연상시킨다. 두 작품 사이에는 40여 년의 격차가 존재하지만, 가난은 여전히 대물림되고 있고 공장 노동자가 떠안아야 하는 가혹함도 그때로부터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소설집 전체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나-아내‘의 간단치 않은 심리적 풍경이 글을 이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함께 노동운동에 투신했으나 이후 노동단체를 떠나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노동운동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불안에 시달리는 ‘나’의 분열적인 마음의 지도를 통해 운동권 출신 노동운동가의 아내라는 인물형에서 연상할 법한 익숙한 스테레오타입을 해체하면서 노동가족이 처한 현실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신념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어느새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가는 이 노동자 부부의 실상을 담담하고 냉정하게 해부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코로나도 또 다른 침입자…극장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안전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코로나도 또 다른 침입자…극장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안전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아몬드’의 작가 손원평(41)이 영화감독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 사태 속 두 차례의 연기 끝에 오는 4일 개봉하는 영화 ‘침입자’를 통해서다. “조마조마하고 떨려요. 저희 영화의 성패를 떠나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안전하다는 걸 증명하는 선례로 남기를 바라고 있어요.”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 감독이 밝힌 소회다. ‘침입자’는 그의 장편, 상업영화 입봉작이다. 부지불식간에 아내를 잃은 서진(김무열 분)에게 실종됐던 동생 유진(송지효 분)이 25년 만에 돌아온다. 유진의 귀환 후 집안의 기류는 시시각각 변해 가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서진은 동생의 비밀을 쫓다가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25년만에 돌아온 동생의 진실… 두 차례 개봉 연기 손 감독은 “‘내 기대와 다른 아이가 다시 돌아온다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낯선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했다. “현대 가족 개념이 해체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가족이라는 것이 지상 최대의 가치로 여겨지는, 그런 이율배반적인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기기묘묘한 불안과 생경함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에게는 체중 감량을 주문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예민한 일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 가느다란 선들이 필요했던 거 같아요. 그래야 새로운 얼굴들이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꼬박 7년간 40회 가까이 매만진 이야기는 2013년 그가 겪은 출산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소설가로서 손 감독의 이름을 먼저 알린 작품 ‘아몬드’와 ‘침입자’가 같은 시기에 시작됐다. ‘아몬드’는 2017년 출간 이래 한국에서만 4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지난 4월에는 아시아 소설 최초로 일본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공교롭게 ‘아몬드’에도 ‘침입자’ 속 유진처럼 놀이공원에서 잃어버렸다가 십수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아이 곤이가 나온다. ●소설 ‘아몬드’의 작가… ‘돌아온 가족’ 소재 공통점 손 감독은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 줄곧 ‘작가’였다. 대학(서강대 사회학·철학)에 입학해서는 꾸준히 서울신문을 비롯한 신춘문예에 지원했다. 영화에 입문하게 된 데는 졸업 즈음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시나리오를 읽고 썼던 독후감 과제의 영향이 컸다. 이후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연출부로 일했다. 2001년 ‘씨네21’ 영화평론상, 2006년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문을 수상했지만 본격적인 데뷔는 2016년 ‘아몬드’로 받은 창비청소년문학상이다. 이후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서른의 반격’(은행나무)을 출간했고, 여러 작가와 함께하는 앤솔러지에도 적극 참여 중이다. 이러한 다작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뭘 해도 안되던 10년이 있었어요. 100번 넘게 떨어지고 있는 취업준비생에 가까운 처지인데, 누가 ‘회사 생활이 힘들어 쉬고 싶다’고 하면 이를 갈게 되잖아요. 그때부터 제가 나중에 잘되면 평정심을 가지고, 꾸준히 작업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남들보다 늦게 데뷔해 게으름을 부릴 시간이 없었다는 그다. ●“손학규의 딸 아닌 영화 자체에 집중해 달라” 널리 알려졌듯 손 감독은 손학규 전 민생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의 둘째 딸이다. 그에게 아버지의 영향을 묻자 “저 개인보다는 영화 자체에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단답이 돌아왔다. 반면 소설과 영화, 각각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는 답이 길었다. 그는 소설은 “스스로를 조금 더 만나면서 제 안의 이야기를 내놓는 방법”이고, 영화는 “이야기 재료들을 여러 사람과 함께 종합적으로 논의하면서 만드는 작업”이라고 규정했다. “영화에서 얻는 인간관계, 재미와 함께 수반되는 고통을 소설 쓰면서 치유받고, 소설을 쓰면서 느끼는 고독감을 영화로 상쇄하는 거 같아요.” 폭발하는 스토리텔러에게 무엇이 본령인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가족이란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가족이란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아몬드’의 작가 손원평(41)이 영화감독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 사태 속 두 차례의 연기 끝에 오는 4일 개봉하는 영화 ‘침입자’를 통해서다. “조마조마하고 떨려요. 저희 영화의 성패를 떠나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안전하다는 걸 증명하는 선례로 남기를 바라고 있어요.”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 감독이 밝힌 소회다. ‘침입자’는 그의 장편, 상업영화 입봉작이다. 부지불식간에 아내를 잃은 서진(김무열 분)에게 실종됐던 동생 유진(송지효 분)이 25년 만에 돌아온다. 유진의 귀환 후 집안의 기류는 시시각각 변해 가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서진은 동생의 비밀을 쫓다가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손 감독은 “‘내 기대와 다른 아이가 다시 돌아온다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낯선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했다. “현대 가족 개념이 해체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가족이라는 것이 지상 최대의 가치로 여겨지는, 그런 이율배반적인 믿음에 대해 질문을 던져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기기묘묘한 불안과 생경함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에게는 체중 감량을 주문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예민한 일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 가느다란 선들이 필요했던 거 같아요. 그래야 새로운 얼굴들이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꼬박 7년간 40회 가까이 매만진 이야기는 2013년 그가 겪은 출산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소설가로서 손 감독의 이름을 먼저 알린 작품 ‘아몬드’와 ‘침입자’가 같은 시기에 시작됐다. ‘아몬드’는 2017년 출간 이래 한국에서만 4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지난 4월에는 아시아 소설 최초로 일본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공교롭게 ‘아몬드’에도 ‘침입자’ 속 유진처럼 놀이공원에서 잃어버렸다가 십수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아이 곤이가 나온다. 손 감독은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 줄곧 ‘작가’였다. 대학(서강대 사회학·철학)에 입학해서는 꾸준히 서울신문을 비롯한 신춘문예에 지원했다. 영화에 입문하게 된 데는 졸업 즈음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시나리오를 읽고 썼던 독후감 과제의 영향이 컸다. 이후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연출부로 일했다.2001년 ‘씨네21’ 영화평론상, 2006년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문을 수상했지만 본격적인 데뷔는 2016년 ‘아몬드’로 받은 창비청소년문학상이다. 이후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서른의 반격’(은행나무)을 출간했고, 여러 작가와 함께하는 앤솔러지에도 적극 참여 중이다. 이러한 다작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까. “뭘 해도 안되던 10년이 있었어요. 100번 넘게 떨어지고 있는 취업준비생에 가까운 처지인데, 누가 ‘회사 생활이 힘들어 쉬고 싶다’고 하면 이를 갈게 되잖아요. 그때부터 제가 나중에 잘되면 평정심을 가지고, 꾸준히 작업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남들보다 늦게 데뷔해 게으름을 부릴 시간이 없었다는 그다. 널리 알려졌듯 손 감독은 손학규 전 민생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의 둘째 딸이다. 그에게 아버지의 영향을 묻자 “저 개인보다는 영화 자체에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단답이 돌아왔다. 반면 소설과 영화, 각각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는 답이 길었다. 그는 소설은 “스스로를 조금 더 만나면서 제 안의 이야기를 내놓는 방법”이고, 영화는 “이야기 재료들을 여러 사람과 함께 종합적으로 논의하면서 만드는 작업”이라고 규정했다. “영화에서 얻는 인간관계, 재미와 함께 수반되는 고통을 소설 쓰면서 치유받고, 소설을 쓰면서 느끼는 고독감을 영화로 상쇄하는 거 같아요.” 폭발하는 스토리텔러에게 무엇이 본령인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해변의 눈사람

    해변의 눈사람

    여기는 지도가 끝나는 곳 같다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습니다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생각을 멈추어도 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이 되려고 한다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되려고 한다 눈사람은 녹았다 얼어붙었다 하는 사람더 이상 녹지 않을 때까지 타오르는 사람더 이상 얼어붙지 않을 때까지 흐르는 사람 두 사람의 발자국이 모였다가 갈라지는 지점에서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을까 마음으로 와서 몸으로 나가는 것들몸으로 와서 마음에 갇힌 것들굳은 마음손을 대면 손자국이 남을 것 같은 우리는 여권을 잃어버린 여행자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서로의 발끝만 내려다보면서손바닥을 펴서 네 심장에 갖다 댈 때눈 속의 지진지진계처럼 떨리는 속눈썹 나는 그림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몸을 웅크린다 눈사람의 혈관에는 얼어붙은 피가 고여 있다모래알갱이가 덕지덕지 붙은 몸으로거센 바람에 휘청거리고 있다■신철규 시인은 1980년 경남 거창 출생.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신동엽문학상 수상.
  • 문학관 팟캐스트 등장…노작홍사용문학관 ‘시리얼문학관’ 개국

    문학관 팟캐스트 등장…노작홍사용문학관 ‘시리얼문학관’ 개국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문학 전문 팟캐스트 방송 ‘시리얼문학관’을 열었다. 21일 노작홍사용문학관에 따르면 지난 20일 개국한 ‘시리얼문학관’은 ‘시를 쓰는 두 남자의 리얼 문학 탐방기’라는 포맷으로, 시와 소설을 포함한 문학에 관한 탐사와 탐구를 목표로 한 방송이다. 진행은 강백수·정현우 시인이 맡았다. 2008년 계간 ‘시와 세계’로 등단한 강 시인은 산문집 ‘사축일기’(꼼지락) 등을 출간했으며 뮤지션으로도 활동 중이다.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정 시인은 제4회 동주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인의 악기상점’이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겸하고 있다. ‘시리얼문학관’은 문학과 음악의 하모니를 주축으로 작가 뿐만 아니라 장르문학비평가와 문학기자, 출판인, 문학큐레이터, 서점MD 등을 초대해 문학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문단 이슈와 신간 알림, 청취자 사연 낭독(극) 등의 코너를 신설하고 문학관의 크고 작은 소식들도 알릴 예정이다. 노작홍사용문학관 측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춰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시민들이 안전하게 문학의 다양한 매력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며, “앞으로도 코로나19의 확산에 대응하여, 문학관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시리얼문학관’은 팟빵과 팟캐스트(애플)에 매주 수요일 업로드된다.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게스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실레마을에선 사랑이 이뤄지리라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실레마을에선 사랑이 이뤄지리라

    내게 강원 춘천은 ‘소설가의 분홍색 집’과 ‘소설가들’의 고장이었다. 처음 춘천 가는 기차를 탔을 적엔 이미 너무도 많은 사람과 사랑들이 다녀간 뒤였고, 102보충대에 입소하던 이를 배웅하러 오긴 왔지만 친오빠의 일이어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울고 있는 엄마 뒤에서 오빠가 군대에 있을 동안에 그가 남기고 간 물건들을 쓸 생각에 약간 신이 났던 기억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춘천? 노래에나 나오는 거기 아냐?” 미안한 말이지만, 여튼 그랬다.대학원 재학 시절의 단체 MT에서야 ‘춘천’ 혹은 ‘봄내’에 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됐다. 그때만 해도 아주 작았던 김유정 생가터와 소양댐, 청평사를 거쳐 자연 휴양림의 방갈로 안에서 ‘술 마시러 갔던’ MT.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교수님들이 타고 있던 앞차가 갓길에 섰다. 그리고 물안개가 짙게 깔린 소양댐을 배경으로 두 작가의 옥신각신이 이어졌다. “춘천이 고향인 최수철 소설가 집에 들렀다 가자”는 임철우 소설가의 제안, 동료 교수의 다정하고도 장난기 어린 제안을 거절하는 ‘옛날의 집주인’. 숙취가 가시지 않은 판에 흥미진진한 주거니 받거니를 보면서 “그럼 수철 교수님 생가에 가는 거예요?”라고 묻자 눈앞에 뻔히 살아 있으니 ‘생가’가 아니라 ‘본가’라고 해야 한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결국 그냥 떡전거리(병점역)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봉고차 두 대가 선 곳은 어느 우아한 핑크색 주택이었다. 모두가 웃고 있는 단체사진 속에서 최수철 소설가만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핑크라니….” 집주인이었던 이가 내뱉은 이 한마디가 춘천의 화룡점정으로 남았다. 대학원생에서 등단한 소설가가 되는 동안 춘천은 사랑과 낭만, MT와 봄 강의 고장에서 김유정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장소로 변모했다. 그사이에 자그마했던 김유정 생가는 김유정 문학촌으로 바뀌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이자 그가 병을 얻어 내려와 요양을 하며 야학을 세우고 사랑하던 이에게 끊임없이 연서를 보내던 곳이라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셈이었다.왜 김유정 문학관이 아니라 김유정 문학촌일까. 올해 문학촌장으로 부임한 이순원 소설가에게 물었더니 마을 곳곳이 김유정 소설의 배경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동시에 문학촌으로 들어오면서 내내 ‘김유정로, 김유정 우체국, 김유정역, 김유정 농협지점’ 등등의 이름들을 스쳐온 것이 떠올랐다. 2004년 12월 1일부터 신남역(무궁화호, 경춘선)은 김유정역이 됐다. 2010년 경춘선이 복선 전철로 바뀌어 다시 김유정전철역이 된 사연이 길게 이어졌다. 한국 최초로 문인의 이름을 딴 길과 마을, 전철역과 우체국이라니! 이는 가히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서야 성립될 수 없는 크기이기도 했다.ㅁ자로 지어진 생가터에서부터 뻗어 나온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김유정 문학촌과 그 일대를 ‘소설 속 공간’으로 탈바꿈해 놓았다. 떡시루의 강원도 방언이라는 실레는 어쩌면 소설가 김유정으로부터 이야기를 빚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가 아닐까. 김유정은 1908년생이다. 그리고 1937년 3월 29일에 이곳 실레(실제 지명은 신동면 증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2년 후에 경춘선이 처음 개통됐다. 그가 병사하지 않고 천수를 누렸더라면 실레에 기차가 들어온 것을 보고도 이야기를 지어냈을 법한 옴폭한 자리였다. 서울 재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 문과에 진학한 수재였던 김유정은 어릴 적 양친을 잃고 나서 얻은 말더듬이병과 애정 결핍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던 중에 당대 명창인 박녹주를 만나 열렬한 구애를 펼쳤으나 실패했다. 박녹주의 가마를 지키고 서 있다가 마음을 전했으나 완강한 거절의 뜻을 전해 듣고 쓴 혈서는 그의 간곡한 마음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실연과 재적이라는 연이은 아픔에 고향으로 돌아온 김유정은 야학의 일종인 ‘금병의숙’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서울살이의 도회적 감수성과 연희전문까지 재학할 정도의 뛰어난 수재였던 김유정의 눈에 비친 고향 마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다. 고향에서 몸과 마음을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에 다시 서울로 올라간 그는 글쓰기에 매진해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와 조선중앙일보에 입선했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쳤고, 구인회의 후기 동인으로도 활동한다. 이때 시인 이상과의 교류가 이어지는데, 이들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타지에서 글을 쓰는 같은 처지의 동료로서 우정이 깊어졌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폐병을 얻기까지 한다. “각혈이 여전하십니까?” “네, 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치질이 여전하십니까?” “네, 그저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 대화 끝에 그들은 자살을 모의하기도 하지만 실패했다. 이상은 일본으로, 김유정은 다시 낙향해 투병과 작품 활동을 이어 간다. 이 대화를 나눈 이듬해에 그들은 다시 나란히 세상을 등졌다.김유정은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의 과수원집 토방에서 투병 생활을 하며 휘문고보 동창인 안회남에게 생의 마지막 편지를 쓴다. 자신이 쓴 추리소설을 보낼 터이니 돈 백원을 융통해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닭 30마리와 살모사와 구렁이 10마리를 고아 먹고 너끈하게 일어나겠다고도 했다. 남은 생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인하게 나온 편지가 오히려 아리게 다가온다. 김유정은 그해 3월 29일 새벽에 생을 마감한다. 사인은 폐결핵과 치질. 김유정의 엽서와 유품들은 이 편지를 받은 안회남이 보관하고 있었으나, 안회남의 월북으로 인해 김유정의 흔적들은 모두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유정 문학촌은 김유정의 유품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롯이 김유정의 소설로 다시 태어난 문학촌인 것이다.채 서른이 되기 전의 죽음이었지만 그가 남긴 30여 편의 단편소설은 아직도 빛나고 있다. 그 빛이 절정에 달하는 곳이 바로 이 김유정 문학촌이 존재하는 신동면 증리, 실레마을이다. 문학촌에서는 김유정의 소설과 생애만 담아둔 것이 아니라 기념전시관과 이야기집, 민속공예 체험방과 김유정 생가를 비롯해 그의 소설을 배경으로 한 ‘실레이야기마을’이 꾸려지고 있다. 금병산 밑의 옴폭한 시루 같은 마을 곳곳에 그의 소설의 배경과 인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김유정 문학촌은 ‘이야기가 복작대는 마을’이 됐고 그 이야기들을 따라 한 해에 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장소로 변모했다. 그 길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산국농장 금병도원길,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춘호 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 산식각 가는 산신령길, 응칠이가 송이 따먹던 송림길, 응오가 자기 논의 벼 훔치던 수아리길, 근식이가 자기 집 솥 훔치던 한숨길, 금병의숙 느티나무길,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 김유정이 코다리찌개 먹던 주막길, 맹꽁이 우는 덕만이길”이 바로 그것이다. 김유정 사후에 발간된 소설집의 표지는 빨간 동백꽃이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동백꽃은 노란 동백, 즉 강원도 사람들이 부르는 생강나무꽃을 일컫는다. 촌장님의 안내에 따라 문학촌 곳곳에 있는 생강나무들을 찾아봤다. 그 ‘알싸한 향기’ 역시도 이 노란 동백꽃에서 나온 것임을 거듭 강조하는 촌장님의 생강나무 사랑이라니. 문학촌은 여러모로 이야기와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다. 시루에 담긴 이야기들이 작가의 품을 떠나 그곳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새롭게 읽히고 쓰여지는 공간이자 후배 문인들을 독려하고 창작의 길을 열어 주는 마을이 봄내, 춘천에 있다. 김유정의 생애는 다소 불행하고 끝내 사랑도 이루지 못했지만 그가 펼친 문학의 자리, 이야기들은 아직도 살아 있음으로 그 스스로의 힘을 증명해 냈다. 오죽하면 여태 ‘나’의 장인이 점순이의 키를 재고 있을까. 김유정은 현실에서의 사랑은 실패했지만 끊임없이 인물들에게 사랑과 인간애를 부여하는 매파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랑들이 모두 이어졌는지는 소설을 읽어 보거나 김유정 문학촌에 와서 확인해 볼 일이다.이제 내게 춘천은 김유정 문학촌과 소설가들 그리고 (여러 의미의)사랑과 아직도 분홍색인 소설가의 집이 있는 곳이다. 오정희, 전상국, 최수철 소설가를 비롯해 현재 김유정 문학촌의 상주 작가로 근무하는 전석순 소설가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멋진 소설가들의 등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김유정 문학촌의 위상이라니. 김유정의 춘천은 다소 무정했을지언정 그가 남긴 춘천에서의 이야기들은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게도, 이곳을 찾는 백만 명의 발길에게도 그리고 그의 작품을 잇는 후대의 독자들에게도. 우리들의 사랑은 부디 유정하기를!
  • 초록을 흠향하고

    초록을 흠향하고

      다들 집 밖으로 나가지 말자고 하였으나  문 없는 집은 없어서  나의 집이 먼저 나를 이끌고 외출하였다    집은 송장나무*를 찾아가 송장같이 지내는 법을 묻는다  꽃잎은 왜 아래만 바라보는 걸까?  개미는 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되돌아갈까?    나만 이러는 게 아니라서  비오는 날 우산을 챙긴 사람처럼 좋았다  굽 높은 신에도 바짓단이 젖고    얼굴을 들면 세상이 물에 잠겼다    약(藥)이 된다는 말을 좋아했다  서로의 반대쪽 손등을 부딪히며 걷는 일은  나도 아는 걸 너도 안다는 뜻이어서  말하지 않아도 숨이 차올랐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려 죽은 노루를 본 우리는  “치워주고 갈까?”  아직 남아있는 온기를 치우며 슬퍼하고 있다고 믿는 우리는  나에게서 너를 구하려고 멀어질 때가 있었다    멀리서 사랑하는 일은  비처럼 그친다지  “빗소리 들려?”    멈추지 못하는 호흡들, 헉, 헉, 발밑의 집들이 보인다  지붕, 지붕, 지붕, 없는 것들이 꿈틀거렸다  우리는 초록을 흠향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상산나무■이소연 시인은 1983년 경북 포항 출생.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 출간.
  • #각자_옥상_낭독회… #함께_랜선_북토크

    #각자_옥상_낭독회… #함께_랜선_북토크

    문학을 즐기는 일은 코로나19 시국에도 영화·공연 같은 여타 예술 분야에 비해 타격이 덜했다. 혼자 ‘집콕’하며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토크나 낭독회처럼 문학을 ‘함께’ 즐기는 일은 여지없이 타격을 받았고 이들 모임은 잠정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사태 장기화에 이들이 찾은 해법은 ‘랜선’으로 즐기는 북토크·낭독회다. 시간과 장소, 인원의 제약이 없는 이들 랜선 모임은 비용 절감 효과도 높아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각자의 옥상에서… 시공과 인원, 등단·비등단 제약 허문 낭독회 지난해 봄·가을, 옥상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시 낭독회를 진행해 왔던 박시하·육호수·김연덕 시인은 올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색다른 방식의 낭독회를 제안했다. 각자의 옥상에서 낭독하는 모습을 촬영 또는 녹음해 SNS에 공유하는 이른바 ‘각자옥상낭독회’. 이들이 공지한 낭독회 당일이었던 지난 10일 트위터에는 ‘#옥상낭독회’, ‘#각자옥상낭독회’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 30여개가 올라왔다. 사람들은 자신의 옥상 또는 베란다, 덴마크 시골의 어느 집 지붕 등에서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애송시를 낭독했다. 이에 화답해 올해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유운 시인의 옥상에서 비교적 최근에 등단한 젊은 시인 6명이 모여 낭독회를 열고 이를 트위터로 생중계했다. ‘각자옥상낭독회’를 기획한 박시하 시인은 “트위터라는 전 세계적 망을 통해 시인과 독자, 등단·비등단이라는 구분 없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출간 기자간담회, 북토크도 랜선 라이브로 한동안 잠잠했던 신간 출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 북토크도 랜선으로 부활했다. 지난 11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정도상 작가의 소설 ‘꽃잎처럼’ 출간 기자간담회는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됐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문학계 최초의 온라인 기자간담회였다. 20명 안팎의 기자들이 다산책방 유튜브 채널에 접속, 간담회에 참여했다. 지난달 27일 문학과지성사는 인스타그램 생중계로 ‘랜선 북토크’를 열었다. 최근 데뷔작 ‘타워’를 재출간하고 에세이를 펴낸 배명훈 작가가 편집자와 함께 출연, 독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누적 인원 800명 이상이 이를 지켜봤고 인기에 힘입어 편집본 영상이 유튜브에 업로드됐다. 행사를 진행·기획한 최지인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팀장은 “독자들을 직접 만나기 어려운 상황에서 책 프로모션 방법으로 기획했는데 첫 시작이 SF(과학소설)를 쓰는 배 작가여서 더욱 유의미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