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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정 ‘그라시재라’ 노작문학상

    조정 ‘그라시재라’ 노작문학상

    올해 노작문학상에 조정 시인의 ‘그라시재라’가 선정됐다. 노작홍사용문학관은 제22회 노작문학상에 조 시인의 ‘그라시재라’를 선정했다고 22일 발표했다. 노작문학상은 일제강점기에 문예동인지 ‘백조’를 창간하며 낭만주의 시운동을 주도했던 노작 홍사용의 정신을 기리고자 2001년 제정된 상이다. 조 시인은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이발소 그림처럼’(2007), ‘너랑 나랑 평화랑’(2017) 등을 출간했다. 정희성, 임동확, 이영광, 정수자 시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이번 시집은 전라도 서남 방언을 바탕으로 모어의 확장 가능성과 그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 주고 있다”며 “동시에 현대사에서 격락되거나 묻힌 부분을 여성 주인공들의 목소리로 복원, 재구조화한 점에서 여성 서사의 새로운 진경을 열고 있다”고 평가했다. 상금은 3000만원이다.
  • 2022 김승옥 문학상에 본지 신춘문예 출신 편혜영 작가

    2022 김승옥 문학상에 본지 신춘문예 출신 편혜영 작가

    올해 김승옥 문학상에 본지 신춘문예 출신인 소설가 편혜영의 ‘포도밭 묘지’가 선정됐다. 문학동네는 편 작가의 작품을 김승옥문학상 대상으로, 구병모, 김애란, 김연수, 문지혁, 백수린, 정한아 작가의 작품을 우수상으로 선정했다고 19일 밝혔다.편 작가가 문학잡지 ‘악스트’ 5·6월호에 발표한 ‘포도밭 묘지’는 90년대 후반 여자상업고를 졸업한 네 사람이 이후 삶의 현장에서 ‘고졸 출신 여성 청년’으로서 살아야만 했던 삶을 조명한다. 심사위원들은 “정확한 디테일, 적절한 상징, 공감어린 시선, 깊은 여운이 어우러져 있는 이 소설은 우리가 편혜영이라는 작가에게 경탄하게 될 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놀랍게 알려준다”고 평했다. 이어 “‘시험능력주의’와 ‘학벌신분사회’라는 말로 요약되는 우리 시대를 향한 작가의 회고적 응답이라고 할 만한 이 소설에, 동시대 청년들의 삶에 드리워진 그늘에 누구보다 예민했던 김승옥의 이름을 딴 소설상이 주어지는 것은 몹시 합당한 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상금은 대상 5000만원, 우수상 각 500만원이다. 편 작가는 2000년 본지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밤이 지나간다’, 장편소설 ‘재와 빨강’, ‘홀’ 등을 출간했다. 한국일보 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셜리 잭슨상, 김유정문학상, 제1회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 “짤막한 한 줄 가곡, 무대 위 기나긴 삶 품어 매력적”

    “짤막한 한 줄 가곡, 무대 위 기나긴 삶 품어 매력적”

    “어릴 때부터 혼자인 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재미있는 것을 찾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삶의 기준이 됐죠. 반드시 상대방을 재밌게 해 주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재미난 상황을 보면 메모하고 언제든 이야기할 수 있게 준비하곤 했죠. 어떤 작업을 선택할 때 재미가 우선이고, 새로움에서 그 재미를 찾습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2011년 희곡 당선) 출신으로 공연계에서 지난 7년간 11편의 초연 공연을 올렸을 만큼 도전과 실험 정신으로 똘똘 뭉친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41)이 또 다른 새로움과 재미를 찾아 돌아왔다. 이번엔 한국 가곡 뮤지컬 ‘첫사랑’이다. 다음달 2일부터 4일까지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무대에 오르는 ‘첫사랑’은 1981년 제1회 대학가곡제 대상을 수상한 김효근 작곡가의 아트팝 가곡(예술성과 대중성이 접목된 가곡)으로 구성된다. 마포문화재단이 창립 이래 처음 제작에 도전하는 뮤지컬이기도 하다. 김 작곡가의 곡들은 전주만 들어도 장면이 그려질 정도로 편안하고 풍부한 정서가 담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오 연출은 “보통 연습하면서 음악이 수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번에는 김 작곡가의 ‘눈’, ‘기도’, ‘첫사랑’ 등 곡을 잘 전달하기 위해 다가간 작업이라 원곡 그대로 살리고 싶었다”며 “원래는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고 그에 맞는 노래를 정하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곡을 먼저 정해 놓고 곡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가곡의 어떤 매력이 그를 끌어당겼을까. 오 연출은 “가곡은 가사가 짧고 담담한데, 그 한 줄 한 줄에 담겨 있는 의미가 매우 크다”며 “어떤 감정을 즉각적으로 드러내는 게 아니라 세월 동안 다져지고 저며진 이후에 한 줄로 함축되는 매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런 가곡의 매력이 어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노래 한 곡이 흐르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무대에서 펼쳐 내야 했기 때문이다. “‘첫사랑’이라는 곡을 예로 들면 노래가 불릴 때 무대 위에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함께 있는 등 다양한 시공간이 동시에 펼쳐져야만 음악을 잘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조명, 의상, 미술적인 측면들도 모두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해 노래가 흐르는 동안 무대 위에서 동시에 보여 줄 예정입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보도지침’,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등으로 오 연출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이진욱 작곡가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두 사람은 ‘대학로 히트 콤비’, ‘브로맨스 제작진’으로 불린다. 오 연출은 “제가 생각한 것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 연극이나 뮤지컬을 만드는데, 이 작곡가 역시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며 “함께 이야기나 곡을 만들 때 미술 등 다른 분야를 통해 영감을 주고받고 서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아듣는, 흔치 않은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국내 뮤지컬 시장의 주요 관객층은 20~30대 여성이다. 하지만 ‘첫사랑’은 주인공 태경과 비슷한 꽃중년(55~64세) 할인을 두는 등 타깃층을 넓혔다. 오 연출은 이번 공연을 통해 누구든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길 바랐다.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공연을 보면서 관객들이 자기 이야기를 떠올리는 순간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에게 가장 빛났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돌이키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엔딩과 랜딩, 한 끗 차이일 뿐”… 간판 뗀 주짓수 관장의 통찰

    “엔딩과 랜딩, 한 끗 차이일 뿐”… 간판 뗀 주짓수 관장의 통찰

    망한 자영업자에겐 어떤 희망이 있을까. 거기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과, 끝이 아닌 다음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 끗 차이다. 겪어 보지 않은 자의 공허한 충고가 아닌 까닭은 지난해 12월 운영하던 주짓수 도장의 간판을 내린 이원석 시인이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시인은 그걸 ‘엔딩과 랜딩’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엔딩은 완전히 끝나는 것이고, 랜딩은 완전히 끝나지 않고 연착륙을 해서 다음 세계가 열릴 수 있는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겪는 엔딩을 랜딩으로 만드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202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 시인이 최근 첫 시집 ‘엔딩과 랜딩’을 냈다. 12일 인천에서 만난 이 시인은 “계속 버티다가 폐업하고 지금은 아는 동생이 차린 체육관에서 사범을 하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다. 말장난 같은 엔딩과 랜딩이 짝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이 시인은 “엔딩이 완전한 파멸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위해 닫히는 하나의 중간종결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짝을 이룰 수 있다”며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수많은 끝과 시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현실과 꿈과 무의식을 유연하게 넘나들며 어떤 새로운 모험의 결과물들을 부려 놓을지 기대를 갖게 된다”던 2년 전 신춘문예 심사평처럼 그의 시집에는 과학소설(SF) 같은 세계관이 펼쳐진다. 우주와 행성, 인공위성, 로봇, 나사, 볼트 등을 맞물려 언어로 직조한 그의 시 세계는 현실의 인간 이야기를 전하는 한편으로 어떤 특별한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이 시인은 “SF 요소들을 통해 독자들이 익숙한 이미지를 차용하면 자연스럽게 세계관이 생기고 그 안에서 놀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시인은 또 “보편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과정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그 사람이 살아가는 구조와도 필연적으로 맞닿아 있다. 그는 “아주 단단한 구조를 갖춘 사회 속 한 존재가 그 구조에서 생기는 모순에 작용받는 것도 시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 밝지 않은 분위기의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은 그가 다루는 인간의 감정을 부각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시집에 실린 시는 대체로 길어 단박에 읽기가 쉽지 않다. 특히 6개월에 걸쳐 완성한 ‘Long Walk’는 한 편의 대서사시다. 이 시인에게 긴 시는 일종의 자유를 상징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배웠던 시들은 기승전결이 있고 딱딱 떨어지는 시였는데, 정형화된 사고를 벗어나는 게 힘들더라”며 “어느 순간 그런 시들이 답답해 더 자유로울 순 없을까 고민했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가 쏟아져 내려와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첫 시집이 당연히 기쁘지만 이 시인은 너무 들뜨지 않았다. 이 또한 다음 시집을 위한 하나의 과정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시인은 “어떤 시를 써야겠다는 것보다는 내 삶의 과정이 시로 담겼으면 좋겠다”면서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다른 시를 쓸 텐데, 그런 의미로 본다면 첫 시집은 시인으로서 첫 엔딩이자 첫 랜딩”이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 비평이란 미학적 언어의 모험…문학적 감동의 순간과 만나다[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비평이란 미학적 언어의 모험…문학적 감동의 순간과 만나다[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문학의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30회 연재를 마쳤다. 시인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씨로부터 얼마 전 별세한 김지하 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른 분을 만났다. 실제로 만나 인터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고인인 경우에는 그분에 대한 회상의 내용을 쓰기도 했다. 비평가로서 최대 행복을 누린 순간들이었다. 물론 이러한 형식에선 그분들의 언어를 전달하는 매개자 역할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평가로서의 본연적 임무는 유보되거나 실종되기 쉬웠다. 그러고 보니 이 코너를 통해 나는 한국 문학의 중요한 순간을 열어 갔던 시인, 소설가, 수필가, 비평가, 아동문학가, 출판인, 문인 유족들의 고백과 증언을 경청하는 데 충실하려고 했던 것 같다. 독자분들께 그분들의 이야기를 투명하고 곡진하게 전달했다는 자긍심으로 위안을 삼는다. 마지막 지면에서 나는 비평가로서의 소회랄까 다짐이랄까 하는 것을 고백적으로 담음으로써 스스로와 대화를 해 보고자 한다.●판사 같은 비평가 여느 국문과처럼 우리도 교련복과 청바지로 대변되는 단색 필름을 켜 놓고 살았다. 유명한 시인도 스승으로 모셨지만 1980년대는 강의에 집중하던 시대는 아니었다. 가장 엄혹했다는 그 시기에 나는 의외롭게도 후배들과 세계문학 명작을 읽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등 지나치게 서쪽으로 치우친 목록이었지만 민족문학이 대세이던 시절에 서양 근대고전을 읽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엉뚱한 일이었다. 물론 문학회에서는 주로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으니 문학 쪽만 편식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기억의 고고학자가 되겠노라는 야심으로 근대문학 정전을 파고들었다. 지금도 또래 누구보다 근대문학 정전의 세목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편이다. 이때 가졌던 독파의 열정과 기억에의 욕망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원래 꿈이었던 창작은 천천히 멀어져 갔다. 한때 그렇게 열심히 시를 썼던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망각의 시간이 흘러 버렸다. 창작 부문에선 못 했던 신춘문예 당선을 비평 부문에서 했다. 서울신문사 시상식에 갔더니 현직 교수로서 당선된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괜히 우쭐해졌지만 곧바로 그만큼 늦었구나 하는 생각이 따라왔다. 그때부터 정식으로 글 청탁이 들어오기 시작해 나는 지금까지 가장 분주한 비평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 문학을 처음 꿈꿀 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삶이다. 그때그때 시인이나 작가들의 신작을 읽고 비평하는 일이 삶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게 됐고, 이제는 이름도 잘 모를 정도로 작가군(群)이 많아졌지만 우리 세대 나름으로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대화한 시간들에 감사할 따름이다.최근 어느 시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비평가에는 세 종류의 스타일이 있다고 한다. 검사, 변호사, 판사 같은 비평가다. 검사 스타일은 창작 위에 군림하면서 억압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는 폭력적 계도형이고, 변호사 스타일은 매사에 창작자를 옹호하는 얌전한 덕담형이고, 판사 스타일은 이러저러한 징후나 사례를 따지고 그것을 저울에 달아 제언하는 엄정한 판단형이다. 검사와 변호사만 넘쳐나는 시대에 판사처럼 균형을 가진 비평이 새롭게 충전돼 갈 때 우리 비평은 문학의 위기 국면을 훌쩍 넘어설 것이다. 물론 이는 모든 비평가가 지고 있는 실존적 부채이기도 할 것이다. ●비평의 정확성과 가치 생성력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이라는 성취를 이룬 이후 한국 소설은 세계시장에서 우뚝한 주인공이 돼 가고 있다. 그러한 역량 신장에 따라 한국 문학을 읽고 따지는 비평 장르에 대한 기대도 서서히 활력을 보이고 있다. 많은 이가 비평과 상업주의의 원칙 없는 야합을 경계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비평 활동을 하는 이들의 눈매와 손길은 날카롭고 섬세하다. 물론 비평의 비속화와 평균화를 부추기는 무책임한 동어반복 비평, 작품의 표층만을 따라가며 작가의 의도를 인준해 주는 헌사 비평, 이해관계를 반영해 이너서클 사람들에게 과도한 호의를 보이는 주례 비평과 결별해야 한다는 요청은 여전히 비평의 실존을 감싸고 있다.비평을 둘러싼 이러한 활력과 위기의 모순 양상은 지금이 비평에 대한 반성과 갱신이 강력하게 진행되는 시대임을 일러 준다. 이때 우리는 비평의 가장 핵심적 요건인 창의성과 공정성 그리고 타당성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결국 비평은 엄정하고 합리적인 가치 준거에 입각한 해석과 평가의 행위이고 비평가는 자신이 선택한 준거에 대해 논리적으로 옹호해 가야 하지 않는가. 그 근거가 바로 비평의 창의성과 공정성, 타당성이다. 그것이 결여된 비평의 범람은 위기 국면을 더욱 심화시키는 아이러니컬한 결과를 빚을 뿐이다. 우리 비평의 위기는 그렇게 비평의 창의적 갱신 가능성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이러한 균형 감각 못지않게 비평이 이겨 나가야 할 징후들은 제법 많다.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이론의 서구 편향이고, 다른 하나는 독해의 부정확성, 마지막 하나는 비평과 상업주의의 밀월 관계다. 이러한 것들이 얽혀 문학의 위기를 비평이 초래했다는 진단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강조돼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비평의 정확성이다. 모든 비평 행위가 텍스트나 문학 현상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기초로 하는 것이고, 그것의 최종적 존재 근거 역시 텍스트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석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비평은 텍스트로부터 받은 매혹을 적정한 해석 논리로 바꾸어 내는 능력에서 시작해 비평가 스스로의 가치평가를 반영하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나는 비평을 문학 행위나 현상에 대한 반성적 자의식이자 그것의 논리적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편이다. 그 안에서 비평가는 작품과 독자를 이어 주는 해석자 역할에서 벗어나 스스로 심미적 텍스트로 나아가려는 충동을 가진다. 유행의 코드 밖에 소외된 고유하고도 독자적인 언어 세계를 발굴해 그것을 독자의 기억 속으로 편입시키는 노력 역시 비평가에게 부여된 몫이다. 사르트르는 시인을 “도구로서의 언어와 절연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나는 비평가야말로 실존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미학적 언어의 모험가”라고 고쳐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비평의 기능이 이론의 증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창조적 차원을 암시하면서 삶에 반성적 조건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생각해 보면 비평의 정확성이나 가치 생성력은 비평의 위기 극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준거가 돼 줄 것이다. ●‘무항산 무항심’을 생각하는 시간 선후배 비평가 가운데 느지막이 창작을 병행하는 이들이 있다. 부럽기는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것을 포기했다. 조금 차분히 생각해 보면 비평이라고 창작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언어를 가지런하고 풍부하게 분석하고 해명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양도할 수 없는 비평가 자신의 언어가 담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꼭 창작이 아니더라도 나는 비평을 통해 일인칭 자기표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 과정으로 근대문학 유산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데 골몰하면서 오래전 작가들의 빛과 빚을 한없는 연민과 경이로 바라보았다. 이래저래 삼인칭을 향한 감동이 일인칭의 가치 표현으로 숱하게 전이돼 간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 순간들을 지금도 사랑하고 기억한다. 이러한 기억은 이 땅에서 문학을 한 이들의 언어에 대한 실존적 외경으로서의 비평을 은유하는 것이기도 할 터다. ‘정서적 연루’(emotional involvement)라는 말이 있다. 문학 수용자들이 자신의 경험이나 정서를 텍스트에 집어넣어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을 말한다. 나만의 ‘문학적 순간’은 훌륭한 작품에 스스로를 투영시켜 감동을 체험하는 연루 과정에 있었다. 훌륭한 작품은 이 참혹한 침몰과 퇴행의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들려주지 않던가. “무항산(無恒産)에 무항심(無恒心)”이라는 말은 ‘맹자’에 나온다. 생산이 중단되면 마음도 사라진다는 말이다. 서울신문으로 비평을 시작해 여기에 성장 서사의 일편을 써 보니 그동안 항산을 통한 항심을 가져온 것에 감사할 뿐이다. ‘문학의 순간’에서 만난 스승, 선배, 동료, 문인 유족들께, 특별히 소중한 지면을 주신 서울신문 문화부에 깊은 사의를 드린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이승만 대통령 피난 오는 도지사 관사에선”…연극 19일부터

    “이승만 대통령 피난 오는 도지사 관사에선”…연극 19일부터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이틀 후인 1950년 6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전으로 급히 피난을 온다. 이 때 대통령은 대전 중구 대흥동 충남도지사 관사(현 테미오래)에 닷새 머물렀고, 대전은 임시 수도가 됐다. 전쟁 통에 이 5일 간 갑자기 대통령을 맞았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얹어 그려낸 연극 ‘계란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19일부터 공연된다. 극단 ‘홍시’는 19~21일 대전 서구 관저문예회관,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대전 중구 소극장 마당에서 잇따라 이 연극을 선보인다.연극은 누군가 대통령에게 밥을 해주고, 관사를 관리했다는 사실적 가정에서 시작한다.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 중년의 남자 관사 관리인은 부엌에서 계란을 발견하고, 관사 살림을 하는 중년의 부엌어멈이 자신을 챙긴 것으로 착각한다. 계란을 먹으려는 순간 젊은 군인이 들어와 “대통령이 여기로 피난 온다. 내가 경비를 맡는다”고 말한다. 관리인이 이 군인과 계란을 나눠 먹으려고 할 때 부엌어멈이 들어온다. 부엌어멈은 “대통령이 계란찌개를 좋아한다고 해 힘들게 구했다”고 버럭 화를 낸다. 부엌어멈이 대통령에게 수발 들 밥과 반찬에만 신경을 쓰자 남자 관리인은 “도망 오는 대통령이 뭐가 이뻐서…”라고 욕설을 퍼붓는다. 이 때 대통령을 싣고온 기차 기관사가 찾아와 “대통령 비서가 격려금으로 2만원을 줬는데 과분하다”며 1만원을 비서에게 돌려주라고 건넨다. 그러나 남자 관리인은 이를 가로챌 욕심을 품는데…. 극본은 정덕재 시인이 썼다. 199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로 등단한 뒤 콩트, 극본 등 다양하게 글을 써왔다. 시집 ‘비데의 꿈은 분수다’ ‘새벽안개를 파는 편의점’과 정치풍자 시집 ‘대통령은 굽은 길에 서라’ 등이 있다. 정 시인은 “전쟁 중에도 제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전쟁의 승패보다 일상적 삶의 온전함”이라며 “전쟁이 삶을 크게 흔들어놓아도 일상의 소중함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정임 연출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권리보다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소중한 것을 더 많이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 광주의 핏빛 ‘봄날’… 한사코 우리 곁에 기록으로 다가온 그날 [작가의 땅]

    광주의 핏빛 ‘봄날’… 한사코 우리 곁에 기록으로 다가온 그날 [작가의 땅]

    “불현듯 그날 밤 광장에서의 횃불 시위의 광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연시빛 불빛에 따스하게 젖어 흔들리던 그 이름 모를 수많은 얼굴들. 어둠이 깔린 거리를 따라 흐르던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행렬. 수천 수만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부르던 노래… 이내 짙은 잿빛의 수면 위로, 누군가의 얼굴들이 물방울처럼 하나둘 돋아나기 시작했다. 윤상현, 무석형, 칠수, 순임이, 민태, 민호… 친구들, 선배들,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얼굴들. (중략) 저만치 맞은편 섬의 둥근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눈부시게 밝은, 늦은 봄날의 아침이었다.” -임철우 ‘봄날5’ 중에서1998년은 소설가 임철우가 등단한 지 17년, 5·18민주화항쟁이 일어난 지는 18년이 되는 때였고, 소설 ‘봄날’이 다섯 권으로 완간된 해였다. 임철우는 꼬박 10년에 걸쳐서 ‘봄날’을 집필했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소설의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소설이 아니라 일종의 기록으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한국 문학사 최초로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이 기념비적인 작품을 소설이 아닌 기록으로 읽으라니. 이는 어떤 층위로 해석해야 하는가. “하느님, 제가 그날을 소설로 쓰겠습니다. 목숨을 바치라면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임철우, ‘낙서, 길에 대하여’)이것은 소설 속의 대사가 아니다. 생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한사코 그것만을 꼭 써내고자 한 사람의 혈성이며, 광주항쟁을 온몸으로 겪고 살아남은 자가 내지른 속울음의 다른 말이다. 기록자로서 기꺼이 신의 몸주가 되기를 자청한 이의 운명적 토설이자 여전히 귓가에 울리는 총성의 한가운데서도 끝내 펜을 놓지 않고 기록한 자가 토해 내는 숨비소리다. “이건 아무래도 내 작품이 아닌 것 같다. 쓰는 내내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에게 구속당해 있었다. 자유도 없었다. 십 년 동안, 자신이 파괴되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저 대리인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열흘 동안,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의… 남들한테는 소설이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현실이다, 수없이 더듬고 주물러야 하는 현실….”(조경란, ‘십 년 동안의 고독’ 중 임철우 인터뷰)●비유·상징 은폐됐던 5·18 꺼낸 작품 소설 ‘봄날’의 다섯 권은 에필로그까지 포함해 전 8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밝힌 대로 이 소설은 오롯이 광주항쟁만을 그리고 있다. 그전까지 그 사건에 대한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에 관한 한 최대치로 우회하거나 비유를 통째로 쏟아부어야 했고 지명을 작품 속에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일은 극히 조심스럽게 다루어졌다. 1998년은 아니 그가 ‘봄날’을 쓰기 시작한 1980년대는 예술 작품마저도 철저한 검열의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전에야 더 말해 무엇하랴. 철저히 비유와 상징으로 은폐된 광주를 임철우가 세상 속으로 꺼내 놓았다. 그리하여 임철우는 처음 호명한 자의 위치에서 그것을 소설이자 하나의 기록이 되게 하기 위해 온 생을 걸었고, 그의 이 시도는 가히 성공적이었다. 소설은 광주항쟁이 발발하기 이틀 전인 1980년 5월 16일의 새벽 산수동 오거리에서 시작돼 마지막 날인 5월 27일 아침 전남도청 앞까지를 그린 이야기이다. 전체 87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진 이것은 앞서 작가가 밝힌 대로 이야기를 넘어선 어떤 기록이자 피로 쓴 항거 일지라 보아도 무방하다. “끝내 아무도 달려와주지 않았던 그 봄날 열흘/ 저 잊혀진 도시를 위하여 이 기록을 바친다.”(임철우, ‘봄날1’)임철우는 1954년 전남 완도군 금일읍 평일도에서 태어나 전남대 및 서강대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했다. 전남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개도둑’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아버지의 땅’, ‘그리운 남쪽’, ‘달빛 밟기’, ‘물 그림자’, ‘그리운 남쪽,’ ‘황천기담’, ‘연대기, 괴물’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로 ‘붉은 산, 흰 새’,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대’, ‘봄날’, ‘백년여관’, ‘이별하는 골짜기’, ‘돌담에 속삭이는’ 등이 있다. 한국일보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요산문학상, 단재상 등을 수상했다.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추대됐다. 전남대 영문과에 73학번으로 입학한 임철우는 혼자 소설 습작을 시작했고 군 제대 후 3학년으로 복학해 교내 문학상에 두 번 연속으로 당선이 된다. 1980년 5월에는 영문과 4학년을 다니다가 휴학한 채로 황석영의 소설 ‘한씨 연대기’를 각색한 연극에도 참여한다. 5월 17일 밤 12시를 기해 계엄 확대와 휴교령이 내려져 연극 연습을 중단한 채 학생들은 각자 피신을 해야 했다.대학생 임철우는 활화산 같은 시위 현장으로부터 두 번의 부름을 받는다.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P가 전화를 걸어 동참을 권했던 것이다. 그는 숨어 있던 방문을 열고 나와 약속 장소를 향해 걷는다. “불길의 한복판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러나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는 사실 또한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 장소가 다가올수록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되돌아가고 싶은 유혹도 그만큼 커졌다. 나도 모르게, 지름길을 놔두고 넓은 차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마침내 서점 앞에 왔을 때, 나는 모든 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임철우, ‘낙서, 길에 대하여’)그날 친구와의 만남은 불발됐다. 다음날 다시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또 시위 현장으로 나갔으나 이번에는 그가 선뜻 손을 들어 친구에게 향하지 못한다. 그는 그때의 선택으로 평생 어떤 마음을 형벌처럼 짊어진 자가 돼 버린다. 자의 반, 운명 반이 이런 때 쓰여도 되는 말일까. “아무 일도 못했다는 사실, 비겁하게 혼자만 살아남아 있다는 죄책감과 자책감, 부끄러움과 자기 혐오에 끝없이 시달렸다. 그때까지 나를 지탱해 왔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고 만 듯한 절망감, 어느새 감쪽같이 살인자들의 몫으로 둔갑해버린, 조작된 정의와 진실에 대한 미칠 것만 같은 분노와 증오에 짓눌린 채 나는 헐떡거렸다.”(임철우, ‘낙서, 길에 대하여’)●항쟁 후 2년간 은거 ‘혼돈의 시간’ 항쟁 이후의 광주는 유언비어와 서로 간의 반목, 사라진 가족을 찾으려는 사람들과 다치고 죽은 사람들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임철우는 처참해진 광주를 빠져나가 어느 섬과 해남 대흥사 앞에 은거하며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지낸다. 그로부터 2년쯤 뒤에 서울의 대학원에 진학한 임철우는 “광주사태 때 정말로 그렇게 많이 죽었나? 자네도 직접 봤어?”라는 해맑은 얼굴들 앞에서 깊이 좌절한다. 광주 바깥에서는 그저 폭도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으로만 떠돌고 있는 그곳의 사태를 온몸으로 겪은 자가 받은 충격의 강도는 뭇사람이 함부로 짐작하기 어려운 것일 터. 아마도 그래서였을까. 문학평론가 서영채는 임철우의 소설에 대해 이렇게 적어 두었다. “실제로 80년대 초중반에 그가 써낸 중단편들은 신음소리로 가득 차 있다. 비명도 아우성도 아니다. 입이 틀어막힌 상태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다. 모든 나무상자가 관으로 보이고, 냇물에 떠내려오는 꽃잎 같은 분홍빛 조각들이 아이들의 손톱인 세계, 처처에 시취가 물큰거리고,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신을 파괴하는 세계, 거듭되는 악몽의 세계, 뚜벅거리는 발자국은 모두 군화 소리이고 모든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공포로 다가오는 세계, 무기력한 아버지와 미쳐버린 어머니, 죽어가는 아들들의 세계이다. 광주는 그 세계의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상징의 성채이다.”(서영채, 임철우론 ‘봄날에 이르는 길’) 임철우는 소설의 화자가 아닌 냉철한 카메라의 눈으로 들여다보고 가감 없이 기록했다.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불가한 것들의 최대치까지도 견뎌낸 까닭일까. 그의 소설에 유독 많이 나오는 부사어는 ‘한사코’다. 작가에게 체화된 단어들 중 하나이리라.억울하게 산화된 영혼들과 상처받고 짓밟힌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일은 때로는 인간의 몫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신의 소환을 받은 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가 쓴 다섯 권의 소설을 읽는 일은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그것을 읽고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 그때의 일을 아직도 현실로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1980년 5월 광주가 과연 ‘지나간’ 일인가. 반성과 후회, 깨달음과 기억은 누구의 몫인가. 그 역사는 지금 다른 옷을 입은 채로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지는 않은가. 과연 우리 모두는 그들로부터 자유로운가. 기억하고 읽는 일이 과연 그것으로 인하여 송두리째 삶을 뺏긴 자들보다 힘들다 말할 수 있는가. 언제나 그 섬에 가고 싶던 등대지기 같은 백년 여관의 작가가 돌담에 혈흔으로 기록한 1980년의 5월의 광주다. 눈부시게 빛나는 그날의 아침이 한사코 우리 곁으로 다가든 봄날이다. 소설가 이은선
  • 별들과 속닥이러 하늘로 간 ‘감성마을 촌장’

    별들과 속닥이러 하늘로 간 ‘감성마을 촌장’

    뇌출혈 투병중 코로나로 폐렴 앓아문학·예능 등 문화계 활발한 활동졸혼·존버·정치적 발언 주목받아강원 화천군 감성마을 촌장으로 활동하던 ‘기인 문학가’ 이외수 작가가 25일 별세했다. 76세. 유족들은 이 작가가 이날 오후 8시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했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2014년 위암 2기 판정으로 수술을 받은 뒤 회복했지만 재작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최근까지 재활 치료를 받아 왔다. 올해 3월 초 코로나19 후유증으로 폐렴을 앓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투병 중이었다. 1946년 경남 함양에서 출생한 이 작가는 1965년 춘천교대에 입학한 뒤 8년간 다녔으나 1972년 중퇴하고 같은 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돼 문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75년에는 중편소설 ‘훈장’으로 ‘세대’지 신인문학상을 받아 문단에 정식 등단했다. 이후 그는 섬세한 감수성과 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기발한 상상력과 특유의 언어유희로 비틀어진 세상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 존재의 구원을 탐구했다는 평을 받는다. 장편소설 ‘들개’·‘칼’·‘장수하늘소’·‘벽오금학도’ 등을 비롯해 시집 ‘풀꽃 술잔 나비’·‘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에세이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하악하악’·‘청춘불패’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 갔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꾸며 춘천교대 시절 미전에 입상한 경력이 있던 그는 1990년 ‘4인의 에로틱 아트전’과 1994년 선화(仙畵) 개인전을 열었다. 이 밖에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과 시트콤, 케이블TV, 광고계를 넘나들며 문화계 전반에서 활동을 펼쳤다. 특히 170여만명의 트위터 팔로어를 거느리며 강경한 정치적 발언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쏟아내 ‘트위터 대통령’으로도 불렸다. 2008년 뉴라이트 교과서 문제를 비롯해 김진태 전 의원의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발언,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발언 등에 대해 SNS로 비판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2012년에는 요즘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로 “존버(힘들어도 버틴다는 뜻) 정신을 잃지 않으면 된다”고 답해 ‘존버 정신의 창시자’로 불리기도 했다. 거침없는 소신과 입담으로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원로 작가라는 평을 받은 그는 2015년에는 한국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작가는 강원도와 인연이 깊다. 경남 함양 외가에서 태어난 뒤 강원 인제군 본가에서 성장한 그는 춘천에서 30여년간 지내며 집필 활동을 이어 가다 2006년 이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의 감성마을로 이주해 투병 전까지 지냈다. 2018년에는 아내와 각자의 인생을 갖자며 졸혼(卒婚)을 선언해 화제가 됐지만, 부인 전영자씨는 고인의 뇌출혈 소식에 “남편이 불쌍하다”며 졸혼 종료를 선언하기도 했다. 동료 문인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이호준 시인은 “모든 꽃이 약속하고 진 듯, 느닷없이 세상이 텅 비어 버리고 말았다. 꽃들이 떠난 자리에 어둠이 가득하다. 어찌하나. 어찌하나. 다시는 손잡을 수 없겠구나”라며 스승이자 오랜 친구였던 선생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이 작가와 각별한 사이였던 류근 시인도 페이스북에 “애통하고 비통하다”며 “문학으로도 인간으로도 참 많은 것을 주고 가셨다.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과 슬픔을 함께한다”고 썼다. 류 시인은 이 작가에게 ‘격식을 버리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늙은이’란 뜻의 ‘격외옹’(格外翁)이란 호를 지어 준 사람이기도 하다. 앞서 2020년 10월 이 작가의 아들 이한얼 영화감독은 투병 중이던 아버지를 위해 트위터에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제게 다시 공유해 달라”는 글을 남겼다. 이 감독은 당시 “보내 주신 글들을 아버지께 읽어 드렸는데,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행복하시기 때문이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작가는 올해 1월 1일 회복을 위해 여러 재활 게임을 진행하는 모습으로 새해 인사를 한 바 있다. 이 감독은 당시 “아버지께선 근력이 많이 붙고 있다”며 “‘존버’의 창시자답게 몸소 존버를 실천하고 계신 모습을 보여 준다”고 밝은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씨와 장남 이 감독, 차남 이진얼씨 등이 있다. 빈소는 강원 춘천시 호반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됐다. (033)252-0046.
  • 소설가 이외수, 투병 중 별세… ‘괴짜’로 불린 베셀 제조기

    소설가 이외수, 투병 중 별세… ‘괴짜’로 불린 베셀 제조기

    ‘들개’·‘장외인간’… 존재의 구원 탐구네티즌이 뽑은 ‘한국의 대표 작가’ 선정수많은 팔로워 거느린 ‘트위터 대통령’SNS 통해 정치적 견해도 적극 밝혀베스트셀러 단골 소설가 ‘괴짜’ 이외수가 25일 투병 중 하늘로 떠났다. 향년 76세. 이 작가는 소설, 우화, 에세이 등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기인’으로도 불리며 반세기 넘게 독특한 창작 세계를 펼쳐왔다. 유족 측은 이날 이 작가가 이날 오후 8시쯤 폐렴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2014년 위암 2기 판정으로 수술을 받은 뒤 회복했으나 2020년 3월 뇌출혈로 쓰러져 3년째 투병하며 재활에 힘써왔다. 이 작가는 3년 전 졸혼(卒婚)을 선언해 화제가 됐으며, 올해 3월 초 코로나19 후유증으로 폐렴을 앓아 중환자실에 입원, 투병 중 이날 오후 8시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빈소는 춘천 호반병원장례식장에 마련하며, 오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발인은 29일, 장지는 춘천 동산추모공원을 검토하고 있다. 이외수의 책에 추천사를 쓰기도 했던 류근 시인은 이날 SNS에 “문학으로도 인간으로도 참 많은 것을 주고 가셨다”면서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과 슬픔을 함께한다”고 애도했다. 이외수는 특히 트위터에서 촌철살인의 글로 젊은 세대와 호흡했으며 2010년 네티즌이 뽑은 올해 ‘한국의 대표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1946년 경남 함양군에서 태어나 춘천교대를 자퇴한 후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견습 어린이들’, 1975년 ‘세대’지에 중편 ‘훈장’으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기발한 상상력과 언어유희 예능·라디오 방송 출연 인지도 쌓아 기발한 상상력과 특유의 언어유희로 비틀어진 세상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 존재의 구원을 탐구했다는 평을 받는다. 예능과 라디오 등 각종 방송에 출연하고 광고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리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정치적인 견해를 적극적으로 밝혀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첫 장편 소설 ‘꿈꾸는 식물’(1978)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 ‘들개’(1981), ‘칼’(1982), ‘벽오금학도’(1992), ‘황금비늘’(1997), ‘괴물’(2002), ‘장외인간’(2005) 등을 선보였다. 출간 당시 70만 부가 판매된 ‘들개’는 제도와 문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두 남녀가 다 쓰러져가는 교사(校舍)에서 1년 동안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뤘다. 1년이란 기간에 완성한 ‘칼’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연약한 인간이 어떻게 정신을 무장해야 하는가를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로 풀어냈다. ‘하악하악’ ‘청춘불패’로 젊은 세대 공감 끌어내 ‘벽오금학도’는 출간 3개월 만에 120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로 선도(仙道)와 예술의 세계를 다루며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해 파고들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 방문에 교도소 철창을 달고 4년간 집필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동명이라는 한 소년의 성장 소설이자 우화 형식을 빌린 ‘황금비늘’과 70만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괴물’ 등도 있다. 이외수는 여자라는 존재가 가진 힘을 유머와 위트로 풀어낸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이외수의 소통법·2007)를 비롯해 ‘하악하악’(이외수의 생존법·2008), ‘청춘불패’(이외수의 소생법·2009), 트위터에 올린 글 등을 묶은 ‘아불류시불류’(이외수의 비상법·2010) 등 각기 부제를 붙인 에세이집을 펴내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었다.
  • 응축된 시간, 면죄부 주진 않더라

    응축된 시간, 면죄부 주진 않더라

    “응축된 시간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시인은 등단 11년 만에 나온 첫 시집 앞에서 겸손했다. 2011년 천강문학상으로 등단한 오서윤(본명 오정순·63) 시인은 수상 이력이 화려하다. 2013년 평화신문, 2014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잇따라 시로 당선하더니 2020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다. 같은 해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고 지난해에는 목포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다가 지난달에야 첫 시집 ‘체면’(천년의 시작)을 출간했다. 24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오 시인은 “한때 ‘문학청년’이던 아버지가 제 시를 읽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 줄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시를 쉽게 써 보기도 하고 풀어 써 보기도 하고 다양한 실험을 하다 보니 (출간이) 늦었다”고 말했다. 이어 “남들은 시간을 오래 끌었으니까 시가 다 좋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며 웃었다. 시집에는 오 시인의 지난 시간과 도전이 고스란히 응축돼 있다. 특히 일상에서 보면 사소하고 작은 것(틀니, 행주, 검정 머리 고무줄, 찻잔)이 시인을 만나 깊이를 드러낸다. ‘세면대 구석 컵 안에 엄마가 있다/ 뭔가를 씹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중략)/ 불 꺼진 어둠 속에서/ 엄마가 덜거덕거리며 하루를 우려내고 있다/ 시리고 들떴던 상실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저 선홍색 잇몸은 늘 침이 말랐을 것이다’(‘엄마의 틀니’) 해설은 오 시인과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기인 임지훈 문학평론가가 썼다. 그는 “그녀의 시는 일상적 순간 속에서 시적 대상을 올곧이 바라보며, 대상에 숨겨진 말의 주름을 펼쳐 내어 역사화시키는 언어”라며 “서정의 형식을 빌려 단지 단어와 술어를 바꿀 뿐인 소재주의적인 작품의 범람 속에서 오서윤이 보여 주는 시적 행로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정통파에 가깝다”고 평했다. 배꼽, 뼈, 무릎, 손톱, 코 등 유독 몸과 관련된 시어가 많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시인은 몸에 틈을 내고 사유를 담는다. ‘눈을 뜬 것들은 다 배꼽이 있다/ 그 문으로 발병을 하고, 앓다가 사라진다/ 도굴이 많은 곳일수록 문명은 길어지고/ 시작과 끝을 비껴간 선이 마른 강줄기처럼 있다’(‘배꼽’) 오 시인은 첫 시집이 늦었던 만큼 두 번째 시집은 빠르게 준비 중이다. 시조집 출간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힐링과 치유가 문학이 해야 할 일이라는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며 “평범한 언어로 쓰되 깊고 비범한 사유를 끌어내는 시, 시조를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평생 결기로 정교하게… 영원한 문청, 국문학 전문 출판의 외길 걷다[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평생 결기로 정교하게… 영원한 문청, 국문학 전문 출판의 외길 걷다[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지난해 봄, 문예지 하나가 세상에 나왔다. 계간 ‘문학인’이다. 소명출판 박성모 대표는 전성시대를 지나 황혼을 맞고 있는 문예지 시장에 늦둥이로 뛰어들었다. 남다른 규모와 자본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터에, 오랜 역사를 가진 출판사들이 문예지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시점에, 반전에 가까운 낯선 등장을 수행한 것이다. “모든 이들이 정전이라고 합의할 수 있는 잡지는 사라지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이때 우리가 개입할 시점이 아닌가 하고 판단을 했어요. 최선을 다하면 늦은 나이지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대표는 자신이라도 굵고 오래 끌고 가서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던 주요 필자를 발굴하고 살려야 되지 않겠느냐는 각오로 새로운 시작을 한 셈이다. 때로 기민하게 사회현상도 담아내겠지만 후일에도 다시 뒤적여 볼 수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잡지, 매호가 역사가 되는 잡지가 되도록 애쓰겠다고 한다.소명출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문학 전문 출판사다. 이쪽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소명에서 책을 내기를 소망하면서, 어렵기만 한 인문학의 성채를 함께 쌓아 가고 있다. “스스로 대표 출판인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출판 영역이 하도 넓어 특정 영역에 한정해서는 그렇게 불릴 수도 있고, 고맙게도 그렇게 인정해 준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상업성을 좇아도 될까 말까 한데 가장 장사가 안 된다는 학술출판에 이렇게 괜찮은 편집을 해도 되는 거야?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 형태의 격려를 소명출판에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학술출판이니까 편집 디테일이 허술하고 적당히 기일에 맞춰 끝내도 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그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학술출판이기 때문에 더 정확하고 미학적으로 공들여야 한다는 에디터로서의 그의 신념은 20여년 동안 완강하게 지속돼 왔다. 박 대표는 그런 정예화 과정을 실천해 온 세월을 자산으로 삼고 있는 몇 안 되는 학술전문 출판사의 발행인인 셈이다. “흘러 흘러 바닷물이 되려는 냇가에 고목 한 그루쯤 있어야 하는데 냇물은 그저 흐르기 바쁜 시절인가 봅니다. 소프트한 대중서도 기초학문이 무르익어야 탄생하는 건데, 기초를 무시하고 계란이 계란을 낳는 출판 풍토가 많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가 힘주어 말하는 인문학의 기초가 우리 시대의 과제를 은유하는 듯해 묵직한 연대감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기초 무시, 계란이 계란 낳는 풍토 개탄 물론 박 대표가 처음부터 출판인을 소망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도 출판보다는 문학을 꿈꾸었던 어린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그는 월남민인 아버지를 따라 춘천, 양구, 철원, 인제 등 강원 북부를 떠돌다가 여섯 살에 원주에 정착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거의 독고였죠. 학교 주변을 흔들어 대던 소위 짱들은 스스로 가난했으면서도 가난한 애들을 더 괴롭혔어요. 제 안의 가난도 그네들과 다투어야 했습니다.” 그중 대장이었던 녀석과 서로 눈빛으로 기싸움을 하다 ‘소년 박성모’는 깜빡하는 사이에 ‘선빵’을 맞아 입술이 뚫어진 적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안과에 업고 가서 여섯 바늘을 꿰맸다. “지금 같으면 어떻게 안과에서 꿰매느냐 난리가 났을 거예요. 아직도 입술에 딱딱하게 굳은 상처 자국이 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자잘한 일이 있었지만, 어쨌든 대장과 맞짱 뜬 일은 엄청난 사건으로 원주 전역 초중고에 퍼졌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말죽거리잔혹사’나 ‘우상의 눈물’ 주인공이 따로 없다. “그런 와중에 원주의 고등학교 연합으로 ‘아사달’이라는 시 동호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약간의 필력이 소문 나긴 했죠. 원주문화원에서 연합시화전도 열었고, 여고생들로부터 편지도 오고, 학교로 편지들이 오는 바람에 수학 선생님께 들켜 크게 혼났죠.” 그 역시 필력 있는 문청(文靑) 누구나 겪는 연애편지 대필, 백일장 수상의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대학 갈 생각은 없었어요. 우선 가난했고 공부는 딴전이었고요. 수업 시간에 교과서 밑에 숨겨서 읽던 책으로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이 정음사판 서정주의 ‘시문학원론’이었어요. 간간이 김춘수 ‘시론’도 봤지요.” 그럼 그렇지. 그 역시 대가들의 시론을 통해 습작의 밑그림을 그리던 조숙한 독서열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원주 유명 헌책방 서너 군데를 단골 마트로 삼아 순례를 시작했다. 그때 문예반 선생님께서 그를 많이 아껴 주신 모양이다. “고3 진달래꽃 필 때였는데, 대학은 다른 세계가 있으니 좋은 대학이 아니라도 가보라는 거예요. 정 아니면 시를 쓰는 일은 꼭 대학이 아니어도 된다시며 당시 소련의 어떤 시인을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어렴풋이 당시 음색을 따라가 보면 마야콥스키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잔혹사와 서정주와 김춘수, 마야콥스키가 혼재했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청년 박성모’는 대학에 들어갔다. 휴학과 입대와 제대를 하고 나서 그가 마주친 과제는 공부가 아니라 돈 버는 일이었다. 당시 단기간에 목돈 버는 방법은 원양어선 타는 것과 광부 생활이었다. 둘 다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단기간에 졸업 때까지 학비를 벌 수 있었다. 원양어선은 멀미가 걸려서 원주역 맞은편 구인 광고업체를 찾아가 서류를 작성하고 태백으로 갔다.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2개월간 훈련을 받고 광산에 배치됐다. “고한에 있는 성동광업소에 차출돼 일했죠. 희멀건 얼굴로 광업소에 왔으니 남들보다 신원조회를 더 까다롭게 해요.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는 일이기도 했고 지하로 들어온 운동권들이 많아 더 그랬겠지요.”●근대 표상하는 대표 도록 장정으로 내 월급 타면 신간 시집을 사 읽었다. 사북에 있는 서점에서 산 시집들을 지금도 제법 여러 권 가지고 있다. 주로 신문 신간 면에 소개된 책들을 주문해서 보았다. “당시 문화면들은 읽을거리가 많았죠. 3학년 복학해서야 현실 사회에 눈을 떴어요. 대학 입학하고 3학년이 되기까지 나름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죠. 그때 읽은 책들이 지금 제 자산의 팔할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복학 후에 그는 스승인 비평가 구중서 선생을 만난다. “처음엔 꽤나 어려웠어요. 말수가 적으신 데다 느리시고, 넘어질 듯 휘청휘청 걸으시는 모습은 어딘가 함부로 다가가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매우 흥미로웠죠. 성큼성큼 건너는 강의였지만 오히려 그게 핵심을 짚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서정주를 넘어 임화와 이태준을 읽고 있었다. ‘문학인’에 있는 ‘정전의 재발견’ 코너에 들어가는 문인 이름은 그때 구중서 선생께서 다 말씀해 주신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습작과 신춘문예 병에 빠져 있었다. 10년은 그랬고 능력이 안 됨을 스스로 인정하는 데 5년이 걸렸다. 불면증이 깊어 유체이탈 같은 고통, 이명 등의 증상을 경험하면서 더는 그런 고통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졌다. 조금씩 시로부터 멀어지니 평안이 찾아왔다. “지금도 가끔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본선에 딱 한 번 이름이 거론된 적이 있었지만 그 이상은 능력이 안 되었죠. 그러고 보면 시인이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 모든 고통과 좌절의 경험이 지금 그의 자존감을 이루는 파고(波高) 높은 바탕이 됐으리라.박 대표는 출판을 여기(餘技)로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출판은 매우 정교하고 전문적인 영역이고 평생을 거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가 아니라 ‘결기’로 해 가는 출판문화의 최전선 작업이 ‘출판인 박성모’의 철학이자 미래로 훤칠하게 다가온다. 지금 우리는 타자를 읽을 생각은 없고 자기만 노출하려는 욕망이 훨씬 강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 결과 깊이를 잃은 자기 노출의 문학이 부유하는 현상을 자주 목도하곤 한다. “글이 신변잡기에 그쳐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많이 보게 됩니다. 시인이 산문집을 내고, 소설가가 출판사를 차리고, 지자체는 이들과 융복합 문화를 창출하는 역설의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컴퓨터 시대의 글쓰기는 댓글 문화의 연장인 토막글이 기워져 멋진 문장이 되고 하나의 책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원주의 가난했던 소년이 질풍노도의 청년 시절을 지나 비로소 꿈꾸는 문예지 발간과 출판문화 정예화를 응원하는 4월의 한나절이었다. 이태준은 한 수필에서 ‘책’만은 ‘冊’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그 ‘冊’이 ‘영원한 문청’ 박성모의 손길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나올 것을 기대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사반세기 고집쟁이 출판 외길을 걸어왔고, 어려운 형편에도 임화문학예술상을 13회째 시행하고 있고, 근대를 표상하는 대표 도록(圖錄)들을 아름다운 장정으로 펴내고 있지 않은가. ‘문학인’으로서의 남다른 ‘소명’을 안고서 말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일평생 남 뒤치다꺼리한 여성들, 왜 누구의 돌봄도 못 받고 떠나나

    일평생 남 뒤치다꺼리한 여성들, 왜 누구의 돌봄도 못 받고 떠나나

    큰엄마는 집안 친척들을 살뜰히 보살피며 헌신적으로 살았지만, 누구에게도 그런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안(安)’). 회사에서는 친절을 요구하는 고객을 관리하고, 집에서는 베이비시터를 관리한다(‘돌보는 마음’).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도 남편과 손녀, 요양병원에 있는 치매 걸린 아버지까지 돌봐야 한다(‘특별재난지역’).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신동엽문학상·김유정작가상을 받으며 문단의 기대주로 떠오른 김유담(39) 작가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민음사)은 이처럼 다양한 돌봄 노동을 홀로 감내하는 각계각층의 여성에게 주목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만난 작가는 “제게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보거나 마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파고든 마음을 담아 특정 상태에 처하게 된 여성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돌보는 마음은 굉장히 귀하고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지만, 어떤 집단이나 가족 안에서 한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의무처럼 여겨졌을 때 그것이 서로를 힘들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수록된 10개의 단편은 돌봄 공백이 가정의 부담으로 돌아온 시대를 오롯이 담았다. 작가는 크게 3부로 나눈 이 책에 대해 “1부는 자신의 선택과 다르게 맺어진 관계 속에서의 여성들의 삶을, 2부에서는 실제 아이를 키우면서 제가 느꼈던 것들, 3부는 제 고향(밀양)과 가까운 노년 여성의 삶에 대해 쓴 작품을 묶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우리 할머니, 엄마 세대는 자신이 여성으로서의 삶에 불만과 부당함을 인식하면서도 정작 아들을 딸보다 더 좋아하게 되는 심리들이 있어 그게 무엇일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표제작 ‘돌보는 마음’에는 베이비시터를 구하고자 하는 워킹맘들의 심정이 절절히 녹아 있다. 또 예상치 못한 반전이 포함되는 등 인간 심리에 대한 고찰이 탁월하다. 지난해 김유정작가상을 받은 ‘안(安)’과 ‘대추’는 가부장제를 지탱했던 여성들이 노년에는 자신이 희생하며 쌓아 올린 질서로부터 소외된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특히 ‘안(安)’에 대해 작가는 “‘집’()에 ‘여자’(女)가 있으면 편안하다는 한자의 보수적 의미가 답답하고 부당하면서도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쓰게 됐다”고 했다. 이어 “주인공의 이혼을 다룬 이 작품에 대해 5060 독자는 ‘왜 이혼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고, 2030 독자는 ‘애초에 왜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해 세대의 간극을 실감했다”고 덧붙였다. 신동엽문학상을 받은 전작 ‘탬버린’(2020)에서 작가는 지역 출신으로서 ‘생존’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했다. 그는 “제게 생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며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직장인과 달리 프리랜서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아이를 돌보느라 글을 쓸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게 다음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고 털어놨다. 김 작가는 올 하반기엔 20대 직장 생활을 담은 장편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를 출간한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탬버린’, ‘이완의 자세’(2021)에 이은 ‘청춘 3부작’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 “돌보는 마음 숭고하지만, 한 사람만의 의무가 되면 서로 힘들죠”

    “돌보는 마음 숭고하지만, 한 사람만의 의무가 되면 서로 힘들죠”

    큰엄마는 집안 친척들을 살뜰히 보살피며 헌신적으로 살았지만, 누구에게도 그런 돌봄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안(安)’). 회사에서는 친절을 요구하는 고객을 관리하고, 집에서는 베이비시터를 관리한다(‘돌보는 마음’).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도 남편과 손녀, 요양병원에 있는 치매 걸린 아버지까지 돌봐야 한다(‘특별재난지역’).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신동엽문학상·김유정작가상을 받으며 문단의 기대주로 떠오른 김유담(39) 작가의 소설집 ‘돌보는 마음’(민음사)은 이처럼 다양한 돌봄 노동을 홀로 감내하는 각계각층의 여성에게 주목한다. 최근 서울 강남구 민음사에서 만난 작가는 “제게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보거나 마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어린아이를 키우면서 파고든 마음을 담아 특정 상태에 처하게 된 여성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돌보는 마음은 굉장히 귀하고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지만, 어떤 집단이나 가족 안에서 한 사람에게만 부과되는 의무처럼 여겨졌을 때 그것이 서로를 힘들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수록된 10개의 단편은 돌봄 공백이 가정의 부담으로 돌아온 시대를 오롯이 담았다. 작가는 크게 3부로 나눈 이 책에 대해 “1부는 자신의 선택과 다르게 맺어진 관계 속에서의 여성들의 삶을, 2부에서는 실제 아이를 키우면서 제가 느꼈던 것들, 3부는 제 고향(밀양)과 가까운 노년 여성의 삶에 대해 쓴 작품을 묶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우리 할머니, 엄마 세대는 자신이 여성으로서의 삶에 불만과 부당함을 인식하면서도 정작 아들을 딸보다 더 좋아하게 되는 심리들이 있어 그게 무엇일까 생각했다”고 말했다.표제작 ‘돌보는 마음’에는 베이비시터를 구하고자 하는 워킹맘들의 심정이 절절히 녹아 있다. 또 예상치 못한 반전이 포함되는 등 인간 심리에 대한 고찰이 탁월하다. 지난해 김유정작가상을 받은 ‘안(安)’과 ‘대추’는 가부장제를 지탱했던 여성들이 노년에는 자신이 희생하며 쌓아 올린 질서로부터 소외된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특히 ‘안(安)’에 대해 작가는 “‘집’(宀)에 ‘여자’(女)가 있으면 편안하다는 한자의 보수적 의미가 답답하고 부당하면서도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쓰게 됐다”고 했다. 이어 “주인공의 이혼을 다룬 이 작품에 대해 5060 독자는 ‘왜 이혼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고, 2030 독자는 ‘애초에 왜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해 세대의 간극을 실감했다”고 덧붙였다. 신동엽문학상을 받은 전작 ‘탬버린’(2020)에서 작가는 지역 출신으로서 ‘생존’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했다. 그는 “제게 생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며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직장인과 달리 프리랜서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아이를 돌보느라 글을 쓸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게 다음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위기감을 느껴야 한다”고 털어놨다. 김 작가는 올 하반기엔 20대 직장 생활을 담은 장편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를 출간한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탬버린’, ‘이완의 자세’(2021)에 이은 ‘청춘 3부작’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 ‘작가의 꿈’ 중랑신춘문예로 이루세요

    서울 중랑구가 오는 5월 31일까지 ‘제18회 중랑신춘문예 공모전’을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공모 주제는 구의 자연, 환경, 문화, 생활상 등이다. 시(시조), 수필, 아동문학(동시·동화), 단편소설 등 총 4개 부문의 작품을 모집한다. 분야별 작품 분량은 ▲시(시조) 1인 3편 이상 ▲수필 200자 원고지 기준 15매 내외 ▲아동문학 동시 1인 3편 이상 ▲동화 200자 원고지 기준 30매 내외 ▲단편소설 200자 원고지 기준 80매 내외다. 심사를 통해 통합 부문으로 최우수 1명을 선정하고 각 부문별로 우수 1명, 장려 2명을 선정한다.지역, 나이에 상관없이 미등단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중랑구청 홈페이지의 ‘제18회 중랑신춘문예 공모전’ 게시판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시민에 한해 중랑구청 문화관광과로 방문 또는 우편 접수를 할 수 있다. 류경기 중랑구청장은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을 맞아 시민들에게 문학적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공모전을 이어 오고 있다”며 “많은 시민들이 중랑을 소재로 참신한 작품을 써 주시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 ‘작가의 꿈’ 중랑신춘문예로 이루세요

    서울 중랑구가 오는 5월 31일까지 ‘제18회 중랑신춘문예 공모전’을 개최한다고 9일 밝혔다. 공모 주제는 구의 자연, 환경, 문화, 생활상 등이다. 시(시조), 수필, 아동문학(동시·동화), 단편소설 등 총 4개 부문의 작품을 모집한다. 분야별 작품 분량은 ▲시(시조) 1인 3편 이상 ▲수필 200자 원고지 기준 15매 내외 ▲아동문학 동시 1인 3편 이상 ▲동화 200자 원고지 기준 30매 내외 ▲단편소설 200자 원고지 기준 80매 내외다. 심사를 통해 통합 부문으로 최우수 1명을 선정하고 각 부문별로 우수 1명, 장려 2명을 선정한다.지역, 나이에 상관없이 미등단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중랑구청 홈페이지의 ‘제18회 중랑신춘문예 공모전’ 게시판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시민에 한해 중랑구청 문화관광과로 방문 또는 우편 접수를 할 수 있다. 류경기 중랑구청장은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을 맞아 시민들에게 문학적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공모전을 이어 오고 있다”며 “많은 시민들이 중랑을 소재로 참신한 작품을 써 주시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 바로 봐도 거꾸로 봐도… 토마토는 ‘토마토’예요[어린이 책]

    바로 봐도 거꾸로 봐도… 토마토는 ‘토마토’예요[어린이 책]

    “어떤 말은 잘 구운 바게트 냄새로 바꾸고 싶었다. 어떤 말은 베란다에 널어놓은 아이의 옷으로 바꾸고 싶었다. 어떤 말은 주머니에 넣어 다니고 싶었다.” 시인의 말은 소리가 모양이 되고 모양은 냄새가 된다. 멀찍이 작아졌다가 가까이 커진다. 폭신하게 안겼다가 냄새를 풍기고 우당탕 사라진다. 첫 동시집 ‘나는 법’ 이후 5년 만에 동시집 ‘토마토 기준’(문학동네)을 들고 찾아온 김준현(35) 시인 이야기다. 2013년 본지 신춘문예 시로 등단한 이후 2015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동시 부문 당선, 2020년 현대시 상반기 신인추천작품상 평론 부문 수상 등 시, 동시, 평론 분야까지 섭렵하며 활발히 기량을 뽐내고 있다. 잡지 ‘동시마중’의 편집위원으로 일하며 동시 문화를 이끄는 그답게 새로운 실험이 동시집에 가득하다. “시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이 덩어리로 어린이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동시집은 어린이의 오감을 자극한다. 그동안 말놀이 시들이 주로 청각적인 요소를 다뤘다면 그의 말놀이는 시각적인 형태로 다가온다. ‘킁킁’ 밑의 이응 두 개는 콧구멍이 되고(여름 냄새) 어색한 두 나무 사이는 띄어쓰기를 많이 해서 표현한다(나무). 시력검사표를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글씨가 점점 작아지기도(시력 검사) 하고 기러기 떼를 말줄임표로 연상시킨다(기러기 점선). 그는 “동시에 대한 편견 중에 의성어가 많고 유치하다는 말이 있다”며 “다양한 감각이 조화롭게 섞여서 읽을 때도 말맛이 있었으면 좋겠고 또 시각적으로도 재밌어 보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동시가 가볍지 않은 이유는 말을 가뿐하게 굴리면서도 그 의미망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표제작인 ‘토마토 기준’ 역시 그런 매력이 흠뻑 들어가 있다. 토마토를 가로와 세로로 나열한 표지는 가로로 읽어도 세로로 읽어도 똑같은 토마토,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똑같은 토마토의 모습과 닮아 있다. 내 눈에는 전부 그게 그거 같은데 빛에 비춰 보며 이리저리 굴려 보며 꼼꼼히 고르고 있는 엄마의 손과 눈동자가 그려지는 듯하다.이 책은 특이하게 평론가 서평 대신 먼저 읽은 어린이들의 감상이 실렸다. 다수의 어린이가 ‘나도 이런 적 있는데’라며 그의 시에 공감을 표했다. “‘작은 일에 감동받고 잘 우는 내가 어른인가’라는 의심이 있다”는 그가 계속 어른스럽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다.
  •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에 윤범모 관장 재임명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에 윤범모 관장 재임명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에 윤범모 관장을 재임명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임명은 지난해 11월 인사혁신처 공개모집과 심사를 거쳐 이뤄졌으며 관장 임기는 2025년 2월까지 3년이다. 윤 관장은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미술평단에 등단한 후 30여 년간 미술비평가로 활동했으며 기자, 전시기획자(큐레이터), 교수, 비엔날레 총감독 등을 지냈다. 지난 임기 중에는 미술 한류 확산을 위한 국내외 교류 전시 기획, 협업 사업 등을 추진했으며 국문과 영문으로 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발간했다. 문체부는 “윤범모 관장이 최근 여러 문제와 현안 해결이 필요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상황을 인식해 책임 있게 조직을 이끌어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내 소비성향은 이불 속 쇼핑천재?… 신한카드 MBTI 응용 ‘소BTI’ 출시

    내 소비성향은 이불 속 쇼핑천재?… 신한카드 MBTI 응용 ‘소BTI’ 출시

    “내 소비성향은 ‘이불 속 쇼핑천재’(INTJ)일까, ‘질주본능 라이더’(ENTP)일까?” 신한카드가 자신도 몰랐던 개인 소비성향을 알려 주는 ‘소BTI’(소비+MBTI) 서비스(사진)를 선보인다고 17일 밝혔다. 최근 MZ세대에서 유행하고 있는 ‘MBTI’(성격유형검사)를 응용해 소비 유형을 장소, 방식, 우선순위, 가치기준 등 4가지 기준으로 구분하고 이에 따른 8개 유형을 도출해 냈다. 소비 장소에 따라 E(외부·원거리)와 I(집근처), 방식에 따라 S(오프라인·체험형)과 N(온라인), 우선순위에 따라 T(사고적·나를 위한)와 F(감정적·우리를 위한), 가치기준에 따라 J(계획형)와 P(유행선호형)로 나뉜다. 신한카드는 8개 유형을 조합해 16가지 성향으로 분류하고 각 성향의 특징을 담은 이름을 붙였다. 신한카드는 서비스 출시 기념으로 다음달 15일까지 ‘소BTI 신춘문예’를 진행한다. 주제어에 대해 짧은 글짓기를 한 참가자 전원에게는 100마이신한포인트를 제공하고, 심사를 거쳐 당선되면 Z플립3, 다이슨 에어랩, 비스포크 등의 경품을 준다.
  • 남 말고 나를 사랑한 육식남의 일방통행 연애

    남 말고 나를 사랑한 육식남의 일방통행 연애

    연애를 하다 보면 종종 자신이 상대방을 가장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특히 애인 혹은 부부라는 이유로 상대를 잘 안다고 확신하는 순간 더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서울신문과 조선일보 신춘문예 2관왕을 거머쥐며 등단한 윤치규 작가의 첫 소설집 ‘러브 플랜트’는 연애, 결혼, 이혼을 소재로 한 단편 세 편을 통해 평소 간과하기 쉬운 사랑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 단편 ‘일인칭 컷’은 비혼을 선언한 여자친구 희주와 여행을 떠난 ‘나’의 이야기를 담았다. 나는 희주가 왜 자신을 두고 비혼식을 했는지,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한 뒤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현영과 ‘나’의 신혼여행을 그린 ‘완벽한 밀 플랜’에서 나는 현영의 알코올의존증을 알고 있었지만, 사랑을 통해 현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결혼을 강행한다. 표제작 ‘러브 플랜트’에서는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에 이혼한 경험이 있는 꽃집 사장 백현준이 마찬가지로 이혼한 인근 회사의 이미나 차장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가까워진다. 작가는 연애, 결혼, 이혼의 세 장면을 자신만의 고유한 컷으로 묘사했다. 연애 중이라는 이유로 여자친구가 당연히 자신과 결혼할 것으로 단정하는 남성의 일방적 관점을 꼬집는다. 한편으로는 결혼한 아내에게 사랑을 이유로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 일방적 욕심이었다고 반성하는 모습도 보여 주지만, 현영과 나의 대화가 단절되고 멀어지는 모습을 통해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 없이 어려운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다. 조심스럽게 꽃을 키우는 백현준의 모습에서 사랑하는 상대에게는 인내와 기다림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스스로도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한 것 같다는 작가는 “기존의 남성들이 연애할 때 육식 동물같이 공격적·일방적인 연애를 했다면, 이제 식물의 방식으로 배려심이 풍부한 새로운 남성상을 제시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상을 탄탄한 문장으로 압축해 보여 준 이 책은 남녀 갈등이 격화된 오늘날 청년들에게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연애를 해 보라고 권하는 듯하다.
  • 활활 타오르던 문장, 부채의 바람결 따라 네 마음에 가닿기를

    활활 타오르던 문장, 부채의 바람결 따라 네 마음에 가닿기를

    ‘혼불’ 7년 2개월 월간지 최장 연재총 10권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작가 “조상의 삶이 수놓여진 글” 생이 끝날 때까지 집필에만 몰두 어릴 때 지낸 전주에 문학관 건립호남 노래·풍속 등 생생하게 풀어힘든 서민의 생활 아름답게 표현“글 속 문장은 고급 한국어의 백미”“무겁게 감은 청암부인의 왼쪽 눈귀에 찐득한 눈물이 배어났다. 그것은 댓진 같은 진액이었다. 차마 흘러내리지도 못한 채 눈언저리에 엉기어 있기만 하는 그 눈물은, 무슨 응어리 같기도 하였다. 그날 밤, 인월댁은 종가의 지붕 위로 훌렁 떠오르는 푸른 불덩어리를 보았다. 안채 쪽에서 솟아오른 그 불덩어리는 보름달만큼 크고 투명하였다. 그러나 달보다 더 투명하고 시리어 섬뜩하도록 푸른빛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청암부인의 혼불이었다. 어두운 밤 우뚝한 용마루 근처에서 그 혼불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윽고 혀를 차듯 한 번 출렁하고는, 검푸른 대밭을 넘어 너훌너훌 들판 쪽으로 날아갔다.” - 최명희 ‘혼불’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최명희길을 걷다 중앙초등학교 옆의 작은 골목으로 빨려 들어가 홀리듯 앞으로 향하면 부채문화관이 나온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최명희 문학관’이 나타난다. 예스러운 기와집이야 한옥마을 전체가 다 그러하니 크게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그 문 앞에서는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고치게 된다. 문학관의 대문은 언제나 열려 있는데 아마도 그 자리가 옆집에서 부쳐 온 부채의 바람이 드나드는 바람목이지 싶다. 바람을 따라 찾아온 누군가의 혼백 아니 도깨비불마저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길목이어서인지 그곳은 늘 생과 사가 공존하고, 먼저 간 사람의 마음까지도 매만져 볼 수 있는 자리다. 부채의 바람결에 실려 있는 최명희의 문장들 덕분이다. 남원의 혼불 문학관이 아닌 전주 한옥마을의 최명희 문학관을 찾은 것은 바로 그 ‘바람’과 ‘푸른 불’ 때문이었다. 문학관이 표방한 ‘작가가 다시 살러 온 집’은 그리하여 누구라도 계속 머물 것만 같고, 떠났던 이가 돌아와 여장을 풀며 몸과 마음을 바람에 말리는 장소다. 인간이 듣지 못하는 신의 음성, 차마 못다 한 말들이 부채가 일으킨 공명을 타고 일어나는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눈 밝은 이들이 찾아드는 것이다.‘혼불’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없다. 그러나 실제로 혼불을 봤다는 사람은 많다. 그것은 우리 몸 안에 있는 불덩어리로서 모양은 둥글고 크기는 종발만 한데, 빛살 없는 푸른색이며,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한다. (중략) 이것이 미신이냐 실화냐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의 몸에 혼불이 있으면 산 것이고, 없으면 죽은 것이다. 그러니까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 삶의 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또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힘의 불이기도 하다. 즉, 혼불은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인 것이다. -최명희 ‘나는 왜 ‘혼불’을 쓰는가’ 소설가 최명희는 1947년 전북 전주시 화원동에서 출생했다. 풍남초등학교와 전주사범병설중학교, 기전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전북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2년부터 1981년까지 전주 기전여고와 서울 보성여중, 보성여고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쓰러지는 빛’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혼불’ 제1부가 당선됐다. 교직을 그만두고 혼불 창작에만 매진하기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혼불’ 제2부부터 5부까지 연재했다. 이는 국내 월간지 사상 최장기 연재(만 7년 2개월)다. 1990년에 혼불 제1부와 2부를 발간했으며 1996년에 혼불 제1부부터 5부까지 총 10권(한길사)을 발간했다. 이는 200자 원고지 1만 2000장 분량이다.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혼불’ 작가 후기 최명희의 주요 작품으로는 ‘몌별’, ‘만종’, ‘정옥이’, ‘주소’와 마지막으로 ‘혼불’이 있다. 혼불은 10권으로 된 방대한 분량이지만 미완성된 작품이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죽기 직전까지 혼불의 제5부를 구상했다고 한다. 작가가 된 이후 생이 끝날 때까지 ‘혼불’을 구상하고 집필에 몰두했던 최명희는 1998년에 난소암의 발병으로 51세에 사망했다. ‘혼불’ 제5부 완간 4개월을 앞두고 암이 발병했지만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집필에만 몰두하다 1996년 12월에 혼불의 마지막 부분을 썼다. 그가 죽었으니 제5부가 마지막일 뿐, 그가 살아 있었다면 혼불은 어쩌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여정을 계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책이 출간되자 일부에서는 ‘완간’이라고 표현했지만 작가는 “이 작품은 아직 완간이 아니다. 작품의 시대 배경은 해방 공간 이후 6.25, 4.19, 5.16 등 가까운 현대사까지 이어져 한국사의 격동기를 그리게 될 것”이라 말했다. 우리의 풍속을 잃지 않으면서도 격변하는 사회상과 민중의 삶을 잘 그려 냈다는 평에 대하여 작가는 생전에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글은 제가 쓴 것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아득한 개국의 시원에 웅녀 할머니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던 이 땅의 조상들의 말 없는 한숨, 괴로움, 아픔, 그들이 나서 살고 보고 느낀 모든 것이 저절로 와서 한 자씩 수놓아져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소설은 이미 제 자신의 것이 아니었고, 그것은 거대한 강물로 저를 붙잡고 있어서 작중의 인물들이 토해 내는 많은 이야기를 주워 담는 것만이 제 역할이었어요.”(‘필’ 1997년 1월호)라고 소회를 밝혔다. 만 17년을 한 작품에 쏟는 열정, 그 때문에 그가 일찍 혼불이 돼 날아갔을까. 작가는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장례는 전주시 사회장으로 5일 동안 치러졌다. 전주시청 앞에서 영결식이 열렸고, 고인의 생가와 모교인 기전여고를 거친 시가지 운구 행렬에 이어 전북대에서 노제를 지냈다. 그가 남긴 노트에는 앞으로 써야 할 글감이 130여개나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저쪽에서도 끊임없이 쓰고 있을까. ‘혼불’을 일컬어 ‘한국 혼 일깨우는 이 땅 문학사의 영원한 기념비’라고들 한다. 소설 속에서 역사와 사람들의 삶을 잘 버무리며 생의 질곡과 역사의 너울을 한없이 순정하고도 곡진한 우리말로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인의 생활사, 풍속사, 의례와 속신들을 유장하게 풀어낸 소설의 문장들은 ‘고급 한국어’의 백미라 일컬어진다.또한 ‘혼불’은 호남지방의 관혼상제, 노래, 음식, 세시풍속 등을 생생하게 표현해 내서 ‘우리 풍속의 보고,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일제 식민지의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토착적인 서민생활 풍속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름답게’가 아닐까. 최명희는 그 유장하고 지리멸렬했던 한국사와 생활사 그리고 사람살이를 어떻게든 ‘아름답게’ 표현해 내려 평생을 바쳤던 작가다. 단재상과 세종문화상, 전북 예향대상과 여성동아대상, 호암상 예술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2000년에는 육관 문화훈장을 수상했다. 1997년에 독자들이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을 꾸린 것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혼불기념사업회가 발족됐고, 이듬해부터 혼불문학제가 개최됐다. ‘혼불’의 배경 지역인 남원시는 2004년 10월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 혼불 문학관을 개관했다. 전주시는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완산구 풍남동에 최명희 문학관을 세웠다. 최명희 문학관은 2006년 4월에 전주한옥마을에 터를 잡았다. 작가 최명희의 녹록지 않았던 삶과 그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친필 원고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들, 생전 인터뷰와 문학 강연 모습을 담은 동영상과 여러 작품에서 추려 낸 글이 새겨진 각종 패널들이 전시돼 있다. 1층에는 전시관인 독락재가 있고 지하는 문학강연장 및 기획전시장인 비시동락지실로 꾸며졌다. 한옥마을의 최명희길이 끝나 가는 즈음에 생가터가 있다. 자신의 고향, 생가터에 관하여 최명희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이라고 하는 동네입니다. (중략) 전 이상하게 전라북도 전주시 화원동 몇 번지라고 했을 때, 그 어린 마음에도 ‘화원동’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제 맘에 좋아서, 굉장히, 제가 뭔지 아름다운 동네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 ‘화원’이라고 하는 그 음률이, 그 음색이 주는 울림이 저로 하여금 굉장히, 제 마음에 화사한 꽃밭 하나를 지니고 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곤 했어요.”마음에 꽃밭 하나, 활활 타오르는 문장의 불 하나를 지니고 살았던 사람. 그리하여 그 불꽃과 화원을 함께 하늘로 태워 보낸 사람. 우리 곁에는 언제나 ‘푸른 불꽃’으로 남은 사람의 마지막 거처, 최명희 문학관이다. 부채의 바람을 탄 문장들이 이끄는 자리로 오늘의 당신을 초대한다. 바람이 푸른 불꽃을 당신의 거처에까지 가져가 준다면, 그대여 그 뒤를 따라오시라. 소설가 이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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