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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엄유수씨 별세, 원순애(도림교회 권사)씨 남편상, 엄성원(머니투데이 차장)·봉원(프리랜서)씨 부친상, 양유인(두산중공업 차장)씨 시부상=12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 14일 오전 6시, (02)2227-7566
  • [부고]

    ●장훈경(SBS 경제부 기자) 영심(하계중 교사)씨 부친상 최용선(한양공고 교사)씨 장인상 천은정(중암중 교사)씨 시부상 9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발인 12일 (02)2227-7504 ●이상배(머니투데이 뉴욕특파원) 원호(일심재활원 간호사)씨 부친상 9일 대구파티마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 (053)-940-8196 ●함승훈(거창국제학교 이사장)씨 부친상 9일 경남 거창국제학교 학교장, 발인 11일 010-3548-5564 ●조정(SBS 경영본부 부장) 조범(MBC플러스 에브리원센터장) 조현(중앙일보마케팅 마케팅본부 차장)씨 부친상 10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2일 오전 7시 (02)2258-5940 ●박은호(조선일보 논설위원)씨 모친상 10일 대구 영남대병원, 발인 12일 오전 9시 (053)620-4241 ●이정석(한국리니어기술 대표이사)씨 모친상 임영근(코린산업 대표이사)씨 장모상 1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2일 오전 7시 (02)3410-6915
  • KT 화재 소상공인 피해보상 15일부터 신청

    지난해 11월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피해 위로금 지급 절차가 지연되며 소상공인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위로금 지급을 위한 전수조사가 오는 15일 시작된다. KT 통신구 화재에 따른 상생보상협의체는 15일부터 한 달간 피해 전수조사를 안내하고 보상 신청서를 접수하기로 최근 정했다고 10일 밝혔다. KT는 앞서 내놓은 보상안에 따라 피해 고객 1월분 청구서에 1개월치 요금 감면을 적용했으며, 소상공인의 영업손실 등 추가 피해에 대해 1월 중순 위로금을 지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이 정부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이 문제를 논의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위로금 지급 절차가 원점에서 다시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KT는 직원들을 피해 지역 식당에서 식사하게 하고, 지난 8일엔 해당 지역 맛집 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 불만을 제기하는 피해 상공인도 여럿 있다. 신촌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KT가 소상공인 마음을 달래려 노력하고 있는 건 알지만, 그런게 사실 자영업자들에겐 별 도움이 안 된다”면서 “실질적인 보상은 미루고 보여 주기식 행사만 하고 있는 걸 보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주는 “KT가 벌이는 행사들은 우리 같은 업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면서 “당시 전화가 안 돼서 가장 매출이 많은 주말을 통째로 날렸다”고 주장했다. KT 측도 속이 타긴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피해 고객 요구대로 위로금을 지급하면 황창규 회장이 배임 혐의를 받게 될 수도 있고, 그렇다고 약관대로만 보상했다간 피해 고객들 불만이 폭주할 터라 KT도 진퇴양난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부고]

    ●주철기(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씨 별세 건형(디더블유에스자산운용 실장) 종륜씨 부친상 7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1일 오전 9시 (02)2227-7500 ●오현석(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씨 모친상 이하중(제일은행 지점장) 김수용(동서물산 부장) 김도균(삼화회계법인 부대표)씨 장모상 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02-3410-6914 ●민성기(전 한국신용정보원장) 씨 부친상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3010-2000
  • [부고]

    ●윤진호(전 대한항공 상무)씨 모친상 6일 수원요양병원, 발인 8일 (031)640-9790 ●노영섭(명진섬유 대표이사) 주섭(파이낸셜뉴스 부산취재본부장) 호섭(포스코 광양제철소 냉연부장)씨 부친상 5일 해운대백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51)711-4400 ●이성오(광남일보 서울취재팀장)씨 모친상 6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8시 (062)250-4455 ●김문채(전 중암중학교 교장)씨 부인상 지나(롯데카드 마케팅부문장) 영지(두앤비 주식회 사) 영나(제주MBC 작가)씨 모친상 5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2)2227-7500 ●강호균(한화그룹 상무)씨 장인상 5일 경남 창원 경상대병원, 발인 8일 (055)214-1900 ●황성돈(한국외대 행정학과 교수) 성권(바이오미스트 점주) 아란(부산대 공공정책학부 교수)씨 모친상 4일 서울대병원, 발인 8일 오전 7시 (02)2075-2044
  • “평화로운 곳에서 훨훨 날아다니시길”…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인사

    “평화로운 곳에서 훨훨 날아다니시길”…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인사

    조문객 1000여명, 시청광장부터 행진운구차, 평화의우리집-서울광장-옛 일본대사관 앞으로 이동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 운동가였던 김복동 할머니가 추모객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고 깊은 안식에 들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는 1일 오전 6시 김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이 엄수됐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윤 대표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등 정의연 관계자 40여명은 김 할머니 빈소에서 헌화하고 큰절을 2번 올렸다. 일부는 눈물을 훔치며 김 할머니를 추모했다. 30분 뒤 1층 김 할머니를 모신 관이 운구차로 이동했다. 윤 대표는 매직펜으로 ‘훨훨 날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길이길이 행복을 누리소서’라고 관에 적었다. 이어 운구차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으로 향했다. 평화의 우리집은 김 할머니가 생전에 머물던 곳이다. 운구차 앞에는 양팔을 벌리고 환한 표정을 짓는 김 할머니의 사진을 설치하고 꽃으로 장식한 트럭이 길을 안내했다. 경찰차와 경찰 오토바이가 교통을 통제하며 함께 이동했다. 오전 7시 5분쯤 운구차가 평화의 우리집 앞에 도착했다.윤미향 대표와 이 할머니 등 40여명도 버스에서 내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발인식 내내 눈물을 참았던 참석자들은 집 앞에서 이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평화의 우리집 안에 영정사진과 윤미향 대표 등이 들어가자 김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길원옥 할머니가 영정사진을 양손으로 어루만졌다. 길 할머니는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 이렇게 빨리 안 갔어도 좋은데”라며 “먼저 좋은 데 가서 편안히 계세요.나도 이따가 갈게요”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어 김 할머니가 생전에 지냈던 방으로 이동했다.윤 대표는 김 할머니 방 안의 장롱 앞에서 “할머니 저 외출복 수요시위 갈 때 입었던 저 옷 어떡하지.그대로 잘 둘게.할머니”라고 말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참석자들은 통곡했다.영정사진과 함께 윤미향 대표 등이 집을 나서자 길 할머니는 현관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침통한 표정으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들은 다시 버스에 올랐고,운구차와 함께 김 할머니 노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정의연과 시민 1000여명(주최 측 추산)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김 할머니를 위한 추모 행진을 시작했다. 김 할머니 영정사진을 든 윤홍조 대표가 선두에 서고 그 뒤로 운구차와 현수막, 만장 94개를 든 시민들이 뒤따랐다. 만장을 들지 않은 시민들은 노란색 나비 모양의 종이가 달린 막대를 들었다. 한국 나이로 94세인 김 할머니를 기리는 의미에서 만장 94개를 만들었다. 현수막에는 ‘김복동님 나비 되어 훨훨 날으소서’라고 적혀있었다. 만장에는 ‘김복동 우리의 영웅,희망,마마’,‘일본은 조선학교 처벌 마라’,‘전쟁 없는 통일된 나라’,‘일본군 성노예 책임자 처벌’,전시 성폭력 없는 세상‘ 등이 적혀있었다. “할머니 사랑합니다.큰 꿈을 이뤄 드리겠습니다”라는 정의연 관계자의 발언과 함께 행진이 시작됐고,시민들은 함성을 질렀다.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방송차에서는 “하루빨리 해결 지으라고 일본 정부에 전하세요.알겠습니까”,“우리가 위로금 받으려고 이렇게 싸웠나. 1000억을 준다 해도 받을 수 없다.하루빨리 사죄하라”를 외치는 김 할머니의 생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행진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을 지나 오전 9시 50분쯤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도착했다. “김복동 할머니 기억하겠습니다.할머니 꿈 반드시 이루겠습니다”라는 정의연 관계자의 발언이 나오자 참가자들은 다시 옛 일본대사관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이어 “일본은 공식 사과하라”,“법적 배상을 이행하라” 구호를 외쳤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훨훨 날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행복을…” 김복동 할머니 발인

    “훨훨 날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행복을…” 김복동 할머니 발인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이자 여성인권·평화운동가인 고 김복동 할머니(94)의 발인이 1일 오전 엄수됐다. 추모객들은 이날 오전 6시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모였다. 추모객들은 빈소에서 고인에게 헌화하고 큰절을 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이른 시간에 나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오전 6시 30분쯤 영결식장에서 김복동 할머니를 모신 관이 나왔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디자인 제품을 만들며 고인과 연을 쌓은 윤홍조 마리몬드 대표가 고인의 영정과 위패를 들고 앞장섰다.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 등 추모객 40여명이 뒤를 따랐다. 고인의 관이 나오자 추모객들 사이에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윤 대표가 관에 매직펜으로 ‘훨훨 날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길이길이 행복을 누리소서’라고 적었다. 김복동 할머니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자 추모객들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묵념했다. 운구차는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에 머물렀던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으로 향했다. 운구차 앞에는 양팔을 벌리고 환한 표정을 짓는 김복동 할머니의 사진을 설치하고, 꽃으로 장식한 트럭이 길을 안내했다. 경찰차와 경찰 오토바이가 교통을 통제하며 함께 이동했다. 오전 7시 5분쯤 운구차가 평화의 우리집 앞에 도착했다. 발인식 내내 눈물을 참았던 추모객들은 집 앞에서 이내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평화의 우리집 안에 영정과 들어가자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길원옥 할머니가 영정을 양손으로 어루만졌다. 길원옥 할머니는 고인에게 “왜 이렇게 빨리 가셨어. 이렇게 빨리 안 갔어도 좋은데”라면서 “먼저 좋은 데 가서 편안히 계세요. 나도 이따가 갈게요”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에 지냈던 방으로 이동했다. 윤 대표는 방 안의 장롱 앞에서 “할머니 저 외출복 수요시위 갈 때 입었던 저 옷 어떡하지. 그대로 잘 둘게. 할머니”라고 말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통곡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다. 그 전에 시민들이 서울시청 광장에 모여 광화문광장과 안국역을 거쳐 옛 일본대사관으로 행진한다.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유해는 화장 후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복동 할머니 추모 행렬… 외신도 소식 타전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은 조문 사흘째인 31일에도 각계 인사와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빈소를 찾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김 할머니는 일제에 유린당했던 여성 인권의 문제, 위안부 피해 문제를 드러내 세계 인류의 양심에 호소했다”고 말했다. 서주석 국방부 차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등도 빈소를 찾았다. 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허스토리’의 배우 김희애씨와 민규동 감독,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남주인공 배우 이제훈씨도 빈소를 방문했다. 서지현 검사는 전날 오후 조문을 한 데 이어 이날 오후에도 빈소를 찾았고,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도 모습을 보였다. 시민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졌다. 일본 교도통신과 미국 AP통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도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과 추모 분위기를 전했다. 교도통신은 지난 30일 영문판에서 “김 할머니는 인권운동가이면서 일본에 의한 위안부 피해의 상징적 인물”이라며 일본 언론으로는 이례적으로 김 할머니의 별세를 상세히 다뤘다. NYT는 김 할머니를 ‘거침없는 불굴의 활동가’라고 표현하며 고인의 활동을 자세히 소개했다. NYT는 “김 할머니의 지칠 줄 모르는 활동이 자신과 같은 수천명의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에 대해 국제적인 관심을 끌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했다. AP통신도 지난 30일 수요집회 참가자 수백명이 김 할머니에게 조의를 표한 사실과 함께 할머니의 삶과 활동에 대해 보도했다. 서울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포토] 고 김복동 할머니 조문하는 강경화 장관

    [포토] 고 김복동 할머니 조문하는 강경화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0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가 차려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이날 오전 8시 9분께 검은 정장 차림으로 장례식장에 도착한 강 장관은 빈소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나비 모양의 종이에 ‘우리의 마음과 역사 속에 길이 남아주시오소서’라고 추모글을 적고 벽에 부착했다. 이어 빈소에 들어간 강 장관은 30초가량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연합뉴스
  • [김복동 할머니 별세] “역사 바로 세우기, 잊지 않겠습니다” 큰절 올린 文대통령

    [김복동 할머니 별세] “역사 바로 세우기, 잊지 않겠습니다” 큰절 올린 文대통령

    “문제 해결 않은 채 떠나보내 마음 아파…살아계신 스물세 분 위해 도리 다할 것” 조객록엔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십시오’ 한·일 냉각기 속 역사 바로 세우기 강조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잊지 않겠다. 살아 계신 위안부 피해자 스물세 분을 위해 도리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문 대통령의 추모메시지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전면 재검토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지난해 화해치유재단 해산에 이르기까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와 ‘역사 바로 세우기’는 병행돼야 한다는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해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일본 정부의 반발, 최근 일본 초계기의 한국 해군함정에 대한 잇따른 위협비행으로 양국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는 시점에서 대통령이 조문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를 강조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오후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문 대통령은 천주교 신자임에도 헌화 후 두 번 큰절을 올린 뒤 반 배를 하는 등 예를 다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제천 화재 희생자 조문 당시에도 큰절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영정 사진을 7~8초가량 응시하면서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과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 등에게 “우리 어머님하고 연세가 비슷하신데 훨씬 정정하셨다. 참 꼿꼿하셨다”며 “조금만 더 사셨으면 3·1절 100주년도 보시고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평양도 다녀오실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제 스물세 분 남으셨죠”라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떠나보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조객록(弔客錄)에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십시오. 문재인’이라고 남겼다. 앞서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김복동 할머니께서 어제 영면하셨다. 흰 저고리 입고 뭉게구름 가득한 열네 살 고향 언덕으로 돌아가셨다”며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적었다. 이어 “1993년 할머니의 유엔 인권위 공개 증언으로 감춰진 역사가 우리 곁으로 왔고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용기를 갖게 됐다”며 “피해자로 머물지 않았고 일제 만행에 대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며 역사 바로잡기에 앞장섰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편히 쉬십시오”라고 글을 마쳤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김 할머니를 문병하며 ‘12·28 위안부 합의’로 과거사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밝혔다. 2017년 8월 청와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오찬에 김 할머니를 초대함으로써 과거사를 외면하는 일본 정부를 향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김복동 할머니 마지막 한마디 “끝까지 싸워줘”

    김복동 할머니 마지막 한마디 “끝까지 싸워줘”

    위안부 피해자면서 여성인권운동 투사… ‘불꽃’ 같았던 삶“끝까지 싸워 줘. 나 대신 일본군 위안부 문제 꼭 해결해 줘.” 암 투병 끝에 지난 28일 눈을 감은 김복동(94)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불꽃’ 같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면서 여성 인권 운동을 위해 평생 몸을 불살라 싸운 그의 삶은 위안부 피해 투쟁사 그 자체였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 정부를 향해 진심 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했다. 적은 돈이라도 생기면 자신보다 세계 전쟁 피해자들을 위해 쓰이길 바랐다. ●“나 대신 위안부 문제 꼭 해결해달라”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진 장례식장에서 윤미향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은 “김복동 할머니는 평화 지킴이이자 버팀목이자 바위 같은 분이셨다”고 회고했다. 임종을 곁에서 지킨 윤 이사장은 “은퇴할 나이인 60대에 할머니는 투쟁을 시작했고 94살이 되도록 치열하게 싸워 왔다”면서 “말년에 대장암, 복막암 등을 앓으면서도 일본 정부에 항의했고, 2015년 일본과 (미봉책) 합의를 맺은 한국 정부에도 책임을 다하라고 외쳤다”고 말했다. 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마지막 순간에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 달라’고 하며 떠나셨다”면서 “할머니가 평화로운 세상에서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실 수 있도록 남은 우리가 뜻을 이어받겠다”고 말했다. ●대장암 앓으면서도 日정부에 항의 김 할머니는 ‘생존자’의 상징이기도 했다. 1992년 3월 피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신고한 뒤 약 30년 동안 쉼 없이 일본군 위안부와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현장을 노송처럼 지켰다. 남녀노소, 국적 등을 가릴 것 없이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이유다. 김 할머니의 공동장례위원장인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김 할머니는 지난번 베트남을 방문해 전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에게 조화를 바쳤다”면서 “인권 운동가 김복동 할머니의 뜻을 실천하며 살겠다”고 밝혔다.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요. 아무 죄 없어요.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가서 우리 도와주세요.”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1) 할머니는 29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동지였던 김복동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김 할머니에게 “왜 갔어. 안 간다고 했잖아”라며 애끓는 슬픔을 드러냈다. 또 다른 생존자 길원옥 할머니는 비통함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민들의 추모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서울 은평구 선정국제관광고 학생 정윤지(18)양은 교내 ‘GRG’(소녀가 소녀를 기억한다) 동아리 친구 4명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정양은 “수요집회에서 김 할머니를 뵀었는데 일본의 사죄를 못 받고 눈감게 돼 마음이 편치 않으실 것 같다”면서 “앞으로 저희가 더 열심히 노력해 문제 해결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위안부 피해자 역할을 맡았던 배우 나문희씨도 빈소를 찾아 애도했다. 온라인에서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정의연 측이 29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할머니의 부고 글에는 수백명이 댓글을 달며 명복을 빌었다.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감독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고인의 사진과 함께 “그녀는 세상에 스스로를 밝히고 전선의 앞줄에 힘겹게 섰고, 세상 모든 피해 여성의 깃발이 됐다”며 뜻을 기렸다. 정의연은 시민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다음달 1일 발인하기로 했다. 발인일에는 오전 8시 30분 서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일본대사관으로 추모 행진을 한다. 이후 오전 10시 30분부터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영결식이 열린다.김 할머니의 삶은 굴곡의 연속이었지만 의지로 극복해 왔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만 14세 때인 1940년 위안부로 연행됐다. 일본 순사가 집에 들이닥쳐 “군복 만드는 공장에 가야 된다”고 했다. 안 가면 식구들을 다 추방하고 재산도 빼앗는다고 하니 도리 없었다. ‘설마 죽기야 하겠나’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 피해를 겪었다. 하루 5~9시간씩 일본 군인을 대해야 했다. 해방 2년 뒤인 1947년 겨우 고향에 돌아왔지만 결혼과 출산은 포기했다. 할머니는 1992년 3월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하며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전까지 가족조차 피해 사실을 몰랐다. 공개 증언에 나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이가 먹어도 과거에 당한 건 잊히지가 않아. 머리에 생하게 박혀 있어 잊어버릴 수가 없어. 그래서 증언을 한 거야. 꼭 이것은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싶으니까.” 이듬해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엔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피해 실상을 문서로 남겼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으로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시 성폭력 반대운동에 참여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2015년 김 할머니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했다. 할머니는 국내든 해외든 재난 피해자가 있다면 공감과 연대의 손을 내밀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피해자들을 돕는 모금활동에 참여했고, 2012년 3월에는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설립했다. 이후에도 재일 조선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포항 지진 피해자를 돕는 일에 아낌없이 후원했다. 할머니는 생전에 “피해자들의 희망이 돼 달라”며 ‘김복동평화상’을 만든 뒤 5000만원을 기부하고, 재일 조선학교에 5000만원을 지원했다. 그렇게 기부한 돈은 모두 2억원. 세상을 등진 할머니 통장의 잔고는 160만원뿐이었다. 2012년 나비기금 설립 기자회견에서 할머니가 보낸 메시지는 원망도 분노도 아닌 사죄와 연대였다. “나도 위안부 피해자이고 아직도 싸움하고 있지만 지금 세계 각지의 성폭력 피해 여성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너무나 잘 알아요. 그래서 돕고 싶어요. 후손과 어린애들은 꼭 전쟁 없는 사회에서 살게 하고 싶습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나경원,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서 위안부 합의 질문 받자…

    나경원,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서 위안부 합의 질문 받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조문했다. 나 원내대표는 29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전날밤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의 명복을 빌었다. 조문을 마친 나 원내대표는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일본에게 다시 한번 촉구한다. 사과에 인색하지 말아달라”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뿐만 아니라 유족들에게도 합당한 대우를 해줄 수 있는 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맺은 ‘위안부 합의’에 대해 찬성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외교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지 그때도 할머니들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위안부 합의 당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나 원내대표는 “아쉬움과 한계가 있지만 외교적 협상으로는 차선의 선택 아니었나 싶다”고 평가한 바 있다.나 원내대표는 당시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 KBS1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 등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나 원내대표는 “한일관계 정상화 요구와 생존해 계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를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는 요구가 상당했다며 위안부 합의안을 두둔했다. 그러면서도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이 합의에서 배제된 것에 대해 ”미리 이해를 구하는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아베 총리의 공식적인 사죄 표명 등 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에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양국의 성실한 후속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합의안에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문구가 논란인 것에 대해 나 원내대표는 ”합의의 전제는 조치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인데 일본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시도를 하면 우리가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만약 거꾸로 한다면 우리도 후속 조치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합의안을 두둔한 것에 대해 나 원내대표는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하신 발언“이라며 ”한일관계가 어려운 국면이었는데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도록 하고 일본 정부 예산을 반영한 부분 등에 대한 성과를 언급한 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나 원내대표는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발언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나 원내대표는 2016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해 기시 노부오 당시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을 통해 그는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인하는 등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文대통령 “3·1절 100주년도 보시지…역사 바로 세우기 잊지 않겠다”

    文대통령 “3·1절 100주년도 보시지…역사 바로 세우기 잊지 않겠다”

    김복동 할머니 빈소 찾아…침통한 표정으로 큰절현직 대통령으론 처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조문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잊지 않겠다. 살아 계신 위안부 피해자 스물세 분을 위해 도리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문 대통령의 추모메시지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가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전면 재검토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지난해 화해·치유재단 해산에 이르기까지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와 ‘역사 바로 세우기’는 병행돼야 한다는 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해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일본 정부의 반발, 최근 일본 초계기의 한국 해군함정에 대한 잇따른 위협비행으로 양국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는 시점에서 대통령이 조문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를 강조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이날 오후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문 대통령은 천주교 신자임에도 헌화 후 두 번 큰절을 올린 뒤 반 배를 하는 등 예를 다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제천 화재 희생자 조문 당시에도 큰절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영정 사진을 7~8초가량 응시하면서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윤미향 정신기억연대 이사장과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 등에게 “우리 어머님하고 연세가 비슷하신데 훨씬 정정하셨다. 참 꼿꼿하셨다”며 “조금만 더 사셨으면 3·1절 100주년도 보시고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평양도 다녀오실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이제 스물세 분 남으셨죠”라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떠나보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윤 이사장은 “돌아가시면서도 ‘나쁜 일본’이라며 일본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셨고 ‘재일 조선인 학교를 도와달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김 할머니가)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빨리 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할머니가 ‘김정은’이라고 새겨진 금도장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셨다. 통일 문서에 그 금도장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대화 도중 길 할머니의 고향이 평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평양 가보셨나요”라고 묻기도 했다. 그러면서 “저는 남쪽에서 태어나 고향에 대한 절실함이 덜하지만 우리 어머니처럼 흥남 출신이신 분들은 모여서 고향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가 그 모임에 가고는 했는데 모일 때마다 흥남 출신 신부님이 어디선가 흥남의 최신 지도를 가지고 오셔서 ‘여기는 아파트 단지다’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도를 함께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산가족이 한꺼번에 다 (북에) 갈 수는 없어도 고향이 절실한 분이라도 먼저 다녀올 수 있어야 한다”며 “고향은 아니더라도 평양, 금강산, 흥남 등을 가면서 소원의 반이라도 풀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조객록(弔客錄)에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십시오. 문재인’이라고 남겼다.앞서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김복동 할머니께서 어제 영면하셨다. 흰 저고리 입고 뭉게구름 가득한 열네 살 고향 언덕으로 돌아가셨다”며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적었다. 이어 “1993년 할머니의 유엔 인권위 공개 증언으로 감춰진 역사가 우리 곁으로 왔고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용기를 갖게 됐다”며 “피해자로 머물지 않았고 일제 만행에 대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며 역사 바로잡기에 앞장섰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편히 쉬십시오”라고 글을 마쳤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김 할머니를 문병하며 ‘12·28 위안부 합의’로 과거사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밝혔다. 2017년 8월 청와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오찬에 김 할머니를 초대함으로써 과거사를 외면하는 일본 정부를 향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김복동 할머니 별세 소식에 문 대통령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추모

    김복동 할머니 별세 소식에 문 대통령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추모

    평생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싸워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와 관련해 “역사 바로 세우기를 잊지 않겠다.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자 스물 세분을 위해 도리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김복동 할머니께서 어제 영면하셨다. 흰 저고리 입고 뭉게구름 가득한 열네 살 고향 언덕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1993년 할머니의 유엔 인권위 위안부 피해 공개 증언으로 감춰진 역사가 우리 곁으로 왔다.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용기를 갖게 됐다. 할머니께서는 피해자로 머물지 않았고 일제 만행에 대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며 역사 바로잡기에 앞장섰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조선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다른 나라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연대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는 일에 여생을 다하셨다”라며 “지난해 병실에서 뵈었을 때, 여전히 의지가 꺾이지 않았던 모습이 생생하다. 할머니, 편히 쉬십시오”라고 글을 마쳤다. 앞서 문 대통령은 작년 1월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김 할머니를 문병해 쾌유를 기원하고 한일 정부 간 ‘12·28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문제 해결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김 할머니는 1992년 위안부 피해를 공개하며 본격적인 여성 인권 운동의 길을 걸었다. 김 할머니는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1993년 오스트리아 빈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는 것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증언을 이어갔다. 김 할머니는 2012년 3월 8일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일본대사관 앞에 서서 우리에게 명예와 인권을 회복시키라고 싸우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지금 세계 각지에서 우리처럼 전시 성폭력 피해를 보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여성들을 돕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할머니는 지난해 9월 암 투병 중에도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위해 1인 시위를 했다. 정의기억연대는 “김 할머니는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징이었다.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제대로 된 배상을 요구해온 인권 평화 활동가였다”고 설명했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앞서 이날 오전에도 위안부 피해자 이모 할머니가 별세했다. 정의연은 김 할머니의 장례식을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진행한다. 정의연은 다음달 1일 오전 10시 30분 일본대사관 앞에서 영결식을 연다고 밝혔다. 장지는 천안 망향의동산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안양시, 칙칙한 지하보도 갤러리 감성 입은 미술관으로 새 단장

    안양시, 칙칙한 지하보도 갤러리 감성 입은 미술관으로 새 단장

    어둡고 칙칙했던 지하보도 문화공간이 새 디자인에 감성까지 입은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경기도 안양시는 신촌동 학원가 지하보도에 있는 평촌문화갤러리를 새롭게 단장해 이달 초 문을 열었다고 29일 밝혔다. 시는 사업비 5억여원을 들여 2010년 청소년에게 창작미술기회를 제공하고자 조성했던 문화공간을 새롭게 꾸몄다. 10여년이 지나 노후한 공간은 이번 새 단장으로 더욱 세련되고 산뜻한 모습으로 변모했다. 특히 새 모습의 평촌문화갤러리는 출입구에 사계절을 이미지화 한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디자인 간판이 계절 별 감성을 자극한다. 지하보도로 통하는 계단중간에는 고보조명을 활용한 CI형식의 응원·위로의 문구도 눈에 뛴다. 천장조명도 LED조명으로 교체하는 등 분위기를 산뜻하게 바꿨다. 평촌문화갤러리 규모는 길이 49m, 폭 7.7m, 높이 3.5m이며, 미술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 지하공간을 활용한 명소이자 만남의 장소로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권순일 동안구청장은 “지하 보행로이자 전시 공간인 평촌갤러리는 계절 이미지를 담은 디자인에 감성적 문구가 어우러져 그자체가 예술작품”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서울포토] ‘같은 아픔안고 먼저’ 고 김복동 할머니 빈소 찾은 길원옥 할머니

    [서울포토] ‘같은 아픔안고 먼저’ 고 김복동 할머니 빈소 찾은 길원옥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가 29일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故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김복동 할머니 별세]“60대에 시작한 투쟁…삶 자체가 위안부 고발의 역사”

    [김복동 할머니 별세]“60대에 시작한 투쟁…삶 자체가 위안부 고발의 역사”

    윤미향 이사장, “마지막 순간에도 ‘위안부 해결’ 유언 남겨”김 할머니, 동일본 대지진 땐 일본인 피해자 도와“김복동 할머니는 버팀목이자 바위 같은 분이셨습니다. 가시는 길까지 위안부 문제 해결을 부르짖으셨고 전 세계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저희에게 ‘끝까지 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 없는 현장이 어떤 곳일지 아직 상상도 안 가요.”(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암 투병 끝에 28일 눈을 감은 김복동(94)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면서 인권 운동가였다. 그의 삶은 위안부 피해자의 투쟁사 그 자체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 정부를 향해 진심 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했고, 돈 한 푼도 자신보다 또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쓰이길 바랐다. 2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차려진 장례식장에서 윤 이사장은 “김 할머니는 기력이 쇠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마지막 순간에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힘 써달라’고 하며 떠나셨다”면서 “평화로운 세상에서 할머니가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실 수 있도록 남은 우리들이 뜻을 이어받겠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의 삶은 굴곡의 연속이었지만, 의지로 딛고 일어섰다. 할머니는 1925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열다섯 되던 해인 1940년 위안부로 연행됐고,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 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 피해를 겪었다. 광복 후인 1948년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결혼과 출산도 포기하고 1992년 3월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하며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할머니는 이듬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엔(UN)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하면서 국제사회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2000년에는 일본군성노예전법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피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른 재난 피해자들에게도 공감과 연대의 몸짓을 보였다.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대지진 당시 피해자들을 돕는 모금활동에 참여했고, 2012년 3월에는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설립했다.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 각국으로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시 성폭력 반대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2015년 7월 미국 워싱턴 방문 당시 “죽을래야 억울해서 죽지 못한다”면서 “아베 일본 총리는 법적으로 사죄하고 우리 명예를 회복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5년 5월 국경없는기자회는 김 할머니는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했다. 전날 할머니의 임종을 곁에서 지킨 윤 이사장은 이날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보통 사람들이 은퇴하는 나이인 60대에 할머니는 투쟁을 시작하고 94살이 되도록 치열하게 싸워 왔다”면서 “말년에 대장암, 복막암 등을 앓으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와중에도 일본 정부에 항의하고 지난 2015년 한일 합의를 맺은 한국 정부에도 책임을 다하라고 외쳤다”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는 당신 통장에는 마지막에 160만원만 남겨두면서 총 2억원이 넘는 돈을 포항 지진 피해자, 콩고와 우간다 성폭력 피해자,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포토]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포토]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93) 할머니가 28일 오후 10시 41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3일 제1355차 정기수요집회에 참가해 발언하는 김복동 할머니 모습. 2019.1.29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 끝내 日사죄 못 들은 채… ‘위안부 피해 상징’ 지다

    끝내 日사죄 못 들은 채… ‘위안부 피해 상징’ 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장섰던 김복동(93)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2명이 28일 별세했다. 이에 따라 정부에 등록된 피해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정의기억연대는 28일 밤 김 할머니가 소천했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지난 12일부터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지냈다. 2년 전 대장암 판정을 받고 수 차례 수술했지만 암이 퍼지면서 건강이 악화했다. 정의기억연대 측은 “장례 절차를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진행하게 되며 발인은 2월 1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문은 29일 오전 11시부터 할 수 있다.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만 14세 때인 1940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군복 만드는 공장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속아 떠난 길이었다. 이후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 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고초를 겪었다. 해방 뒤 2년이 지난 1947년에야 고국으로 돌아왔다. 김 할머니는 1992년부터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공개하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후 김 할머니의 활동 하나하나는 위안부 피해자 투쟁사에 발자취가 됐다. 1993년에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피해 사실을 알렸고,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피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했다. 2010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의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을 받기도 했다. 또, 이듬해 3월에는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일본에서 도후쿠 대지진이 발생하자 피해자 돕기 모금을 제안했고, 직접 기부하기도 했다. 2012~16년에는 유엔인권이사회,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 매년 수차례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쟁과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없는 세상을 위해 활동했다. 김 할머니는 특히 매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여해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해왔다. 그는 2012년 나비기금 설립 기자회견에서 “세계 각지에서 우리처럼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너무 잘 알기에 그들을 돕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오전에는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이모 할머니도 별세했다. 이 할머니는 노환으로 건강이 악화돼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오전 7시 30분쯤 유명을 달리했다. 유족 측 요청으로 피해 할머니의 신원과 이후 장례 절차는 공개되지 않았다. 정의기억연대는 “할머니는 활동가들을 보면 무척 반가워하고 집에 잘 돌아갔는지 확인 전화를 할 정도로 정이 많으셨던 분”이라고 전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성남소방서 태평119안전센터 문열어

    성남소방서 태평119안전센터 문열어

    경기 성남소방서는 태평동, 신촌동, 심곡동, 오야동 지역의 소방 안전을 담당하는 태평119 안전센터가 착공 1년 여만에 완공돼 23일 문을 열었다고 밝혔다. 태평 119 안전센터는 양질의 소방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총사업비 72억6200만원을 들여 지상 3층 연면적 984.97㎡ 규모로 만들어졌다. 22명의 전문 소방인력과 펌프차 2대, 구급차 1대 등 소방장비 3대를 갖추고 태평동 일대의 소방 안전을 책임지게 된다. 태평 119안전센터의 관할면적은 6.77㎢이고, 1만70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권은택 성남소방서장은 “태평 119 안전센터는 태평동 지역의 소방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시민의 안전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시설”이라며 “태평 지역의 소방 안전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주민이 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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