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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힐 계속 신으면 암 생길 위험 커진다”

    “하이힐 계속 신으면 암 생길 위험 커진다”

    하이힐이 발과 관절의 건강에 좋지 못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문제점이다. 그런데 이제 하이힐을 신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이유 하나가 더 생겼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한 저명한 암 전문가는 하이힐을 오래 신을수록 몸에 암이 생길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를 살리는 건강습관 65’(원제 A Short Guide To A Long Life)의 저자로도 유명한 미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데이비드 에이거스 박사는 연구를 통해 하이힐과 암 사이에 연관성을 밝히고 있다. 그는 매일 불편한 하이힐을 신으면 부자연스러운 자세와 걸음걸이가 될 수밖에 없어 단지 통증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염증이 유발된다고 지적했다. 염증은 인체의 자연적인 치료 과정의 일부이지만, 그 수준이 낮더라도 지속하면 만성이 돼 결국 몸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그런데 이처럼 가벼운 염증은 우리가 인지하기가 쉽지 않아 서서히 진행되고 우리 몸을 떠돌아다니며 세포 조직에 손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물론 이런 현상은 아직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해명된 것은 아니지만, 염증이라는 치료 과정에 영향을 주는 화학 전달물질이 의도치 않게 인체를 손상한다는 것이다. 에이거스 박사는 특정 염증은 심장질환과 알츠하이머병, 자가면역질환, 당뇨병 등 가장 골치아픈 퇴행성 질환과 연관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암 위험을 급격히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그는 암이 우리 DNA 속에 인코딩된 유전자의 손상이나 결함으로 생길 수 있으며, 자연 치유 과정이 방해되거나 손상된 DNA가 암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는 만성 염증이 계속되면 DNA 복구 과정이 종료될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이 때문에 몸은 암이나 다른 질병에 공격받기 쉬운 상태가 된다고 그는 말한다. 이뿐만 아니라 매일 온종일 힐을 신게 되면 발가락과 앞꿈치에 손상이 생기고 뒤꿈치가 까져 염증이 생길 수 있다. 그 영향은 다리에 퇴행성 관절과 무릎에 관절염을 유발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발목과 엉덩이, 심지어 허리 근육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힐이 높을수록 더 불편함을 느끼게 되지만, 이 같은 증상에 상관없이 힐을 계속 신으면 그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에이거스 박사는 힐을 신고 싶다면 되도록 3인치(7.6㎝) 이상의 하이힐은 피하라고 권고한다. 이 같은 힐은 몸을 앞으로 기울게 해 골반도 기울어지고 척추도 휘어질 뿐만 아니라 염증 문제도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사드’ 배치에 中 왕이 “신뢰에 해끼쳐”···윤병세 “중국 겨냥 안해”

    ‘사드’ 배치에 中 왕이 “신뢰에 해끼쳐”···윤병세 “중국 겨냥 안해”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대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쌍방(양국)의 호상(상호) 신뢰 기초에 해를 끼쳤다”며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왕이 부장은 24일(현지시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린 라오스 비엔티안의 한 호텔에서 윤병세 외교장관과 약 1시간 동안 한중 외교장관회담을 가지면서 한반도 사드 배치에 강한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은 한미 양국의 지난 8일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이후 처음이다. 왕이 부장은 “우리가 동료이기 때문에 의사 소통을 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한중 관계를 수호하기 위해서 한국 측이 “어떤 실질적 행동을 취할지에 대해 들어보려고 한다”고 요구했다. 왕이 부장이 언급한 ‘실질적 행동’은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중단할 것을 사실상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외교부는 25일 “한국의 사드 배치가 반드시 중한(한중) 양국의 상호신뢰를 훼손시킬 것”이라는 왕이 부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왕이 부장은 “사드는 결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틀림없는 전략적 문제”라면서 “사드가 끝내 한국에 배치될 경우 한반도 정세와 지역 안정, 중한(한중)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왕이 부장은 또 “한국 측이 중국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관심에 진정성 있게 응해주고, 이해득실을 따져보며 신중에 신중을 기해 심사숙고한 다음 행동하기를 재차 권고한다”면서 “양국의 좋은 관계가 가져올 양호한 형세를 소중히 여기기를 함께 당부한다”고 윤 장관을 향해 호소했다. 그러나 윤 장관은 “국가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 방어 조치로서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결정했으며, 이는 책임있는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전했다. 이 당국자는 사드가 중국 등 제3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 등 우리의 기존 입장을 윤 장관이 재차 밝히면서 “(윤 장관이) 사드 배치가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왜 해치지 않는지에 대해 상세하고 당당하게 설명했다”로 전했다. 왕이 부장과의 회담에서 윤 장관은 ‘장작불을 빼면 물을 식힐 수 있고, 풀을 뽑아 없애려면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뜻의 고사성어인 ‘추신지불(抽薪止沸), 전초제근(剪草除根)’을 인용했다. 문제의 근원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또 고사성어 ‘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라는 뜻의 고사성어인 ‘봉산개도 우수탑교’(逢山開道 遇水搭橋)를 언급하며 “양국이 여러 도전에 직면할 수 있지만 특정 사안으로 관계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거대 주상복합의 효시 유진상가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거대 주상복합의 효시 유진상가

    # 인왕산~중랑천까지… 15㎞ 물의 여행 인왕산에 비가 내린다. 서울 구도심을 향해 병풍처럼 열려 있는 동쪽 사면을 타고 흐르는 물은 수성동(水聲洞) 계곡을 따라 옥류동천이 되거나, 효자아파트(1969) 앞을 흐르는 백운동천을 이룬다. 이 두 갈래 물은 지금의 우리은행 효자동 지점 인근에서 만나 청계천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중랑천을 거쳐 서울숲 어귀에서 한강과 만난다. 서쪽 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무악재 정상을 기점으로 방향이 갈린다. 시내를 향해 남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계곡으로 내려온 물은 맞은편 안산에서 내려온 물과 만나 구도심 서쪽을 따라 흐르는 욱천, 즉 만초천이 된다. 그 물이 서대문 근처를 지나면서 부드럽게 굽이치는 위에 서소문아파트(1971)가 서 있다. 만초천은 서울역 서쪽을 지난 후 용산기지에서 흘러오는 지류와 만나 삼각지를 돌아, 용산 전자상가 아래를 지나,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간다. 무악재 정상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물은 홍제천으로 흘러들어간다. 평창동, 구기동 일대의 북한산, 그리고 부암동 일대의 북악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섞인다. 홍제천은 서울 서쪽 지역을 굽이굽이 흘러 월드컵 경기장 인근에서 불광천을 만나 난지도 어귀에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서울숲으로부터는 무려 15㎞ 이상 하류다. 인왕산 정상에서의 작은 차이가 만들어낸 거리다. 실로 장엄한 물의 여행이다. 무악재에 걸쳐진 통일로와 유난히 모래가 많아 모래내라고 불리는 홍제천이 만나는 지점에 장대한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유진상가, 혹은 유진맨숀 등으로 불리는 주상복합 건물이다. 1970년 7월 11일에 사용승인을 받았으니 2016년 기준 만 46세가 되었다. 같은 나이면 건물이 사람보다 더 늙어 보인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 이 건물도 예외는 아니다. # 물길 위에 세운 장대한 건물 서소문아파트는 하천 위에, 낙원빌딩(1969)은 도로 위에 지어져 둘 다 대지 지분이 없다. 홍제천 위에 세워진 유진상가도 마찬가지다. 가장 믿을 만한 기록이라고 할 건축물 관리대장의 대지면적이 0이다. 게다가 위치상 홍제동이어야 할 건물의 주소가 홍은동 48-84다. 이 일대는 대체로 홍제천을 기준으로 홍은동과 홍제동으로 나뉜다. 유진상가는 엄연히 홍제동 쪽에 있으면서도 홍은동으로 분류되고 있다. 짐작에 이 일대의 홍제천이 홍은동으로 분류되어 있고, 유진상가는 그 위에 지어진 건물이므로 주소지가 홍은동이 된 것이 아닐까.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홍제동과 홍은동이 뒤섞인 여러 개의 주소가 나오기도 한다. 현장에서 보면 과연 유진상가 전체가 홍제천 위에 지어진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상류 쪽에서 보나 하류 쪽에서 보나 적어도 남쪽의 A동 정도는 하천이 아니라 견고한 땅을 딛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초 하천 부지의 일부를 다시 되메웠다고 하면 이해가 된다. 마치 세상 끝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그 깊고 어두운 터널 안 어딘가에 단서가 있겠지만, 그 앞에서 기웃거리기만 했을 뿐 차마 들어가 볼 용기를 내지는 못했다. 유진상가는 건축면적이 9667.57㎡에 달하는 대형 건축물이다. 길이가 220m, 폭은 44m 정도다. 건물이 너무 넓으니 주거가 들어가는 상부를 길게 둘로 나누고 그 사이에 중정을 두었다. 단일 건물로서 이보다 더 큰 경우는 지금도 손꼽을 정도다. 통일로변 정면을 보면 1, 2층이 상가고 3, 4, 5층이 주거인 것 같지만, 2층 상가는 통일로 변에만 일부 있다. 중정이 2층에 있고 그 양쪽으로 남쪽에 A동, 북쪽에 B동, 이렇게 각각 4개 층의 주거동 두 개가 있는 것이다. 즉 전체적으로 보면 1층에 상가가 있고 2층부터 5층까지가 주거다. 다만 1999년 내부순환로가 위로 지나가면서 B동의 4, 5층이 철거되었고 나머지 2, 3층에 서대문구 신지식산업센터가 들어가 주거 기능이 많이 축소되었다. 신지식산업센터라는 이름은 건축물 관리대장에 이 건물의 대표 명칭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유진상가나 유진맨숀 입장에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셈이다. 현재의 유진상가는 원형과 다른 점들이 많다. 무엇보다 상층부가 철거된 B동의 경우 용도 자체가 사무공간으로 변하면서 리모델링되었다. A, B동의 각 가구는 어떤 방향을 보고 있었을까. A동의 경우 각 가구는 당연히 남향이고 중정에 면한 북쪽에 편복도가 있다. 문제는 B동이다. 당초 주거로 사용되던 시절 복도의 방향이 궁금하다. 남향을 선호하는 한국에서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구반포 주공 1단지의 상가아파트(1974)에서는 남향을 우선하여 신반포로 양옆의 입면이 서로 달라진 것을 연재 초반에 쓴 적이 있다. 유진상가의 경우 현재 모습만으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몇 개의 오래된 사진들로 추정해 보면 계단실 등이 중정을 중심으로 대칭의 배치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남향 선호라는, 좀처럼 양보할 수 없는 강력한 개념을 포기한 매우 드문 사례일 것이다. 반대로 이 가정이 틀렸다면 중정에 바로 면한 2층 가구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하고 입면을 조율하는 등의 처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어느 쪽이건 설계자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한편 이 건물의 주거 가구 면적은 33평에서 68평 사이로 건립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대형의 고급 아파트였다. 그래서 정부와 법조계의 고위직들이 많이 살았다. 지금의 낡은 모습 뒤에는 한때의 화려했던 역사가 있었다. 이 시대 아파트 대부분이 그렇다. # 무지개떡 건축의 또 다른 실험장, 홍제동 일대 모든 건물이 그렇지만 유진상가 또한 특히 건물의 입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중요하다. 이 지역은 서울 서북부 지역의 한 거점이다. 세검정로는 내부순환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 일대의 여러 권역을 굴비 꿰듯 엮어 주던 도로다. 통일로는 어떤가. 이전부터 서울에서 북한 지역을 지나 의주를 거쳐 대륙으로 이어지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로다. 이 도로변에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상징인 영은문, 그리고 그것을 헐고 독립문이 세워진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 두 개의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유진상가가 있다. 지금도 통일로를 따라 지하철 3호선이 달리고 있으며 홍제역이 바로 인근이다. 이렇게 사람이 모이면 물건이 모이고 그러다 보면 시장이 서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유진상가는 바로 옆의 인왕시장과 더불어 이 일대의 대표적 상권을 구성하고 있다. 비록 이전에 비해 그 세력이 많이 약화되어 상가 내의 공실률이 상당하지만 지역 거점으로서의 역할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인근의 원일아파트(1970)는 아예 인왕시장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특이한 경우다. 통인시장과 효자아파트(1969)의 관계를 연상케 하지만 일단 시장의 규모 자체가 동네 시장인 통인시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홍제동 일대는 유진상가를 기점으로 여러 개의 흥미로운 상가아파트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원일아파트를 비롯해서 안산맨숀(1972), 고은아파트(1975) 등이 그것이다. 서대문의 충정로 일대에 못지않은, 한국 무지개떡 건축의 살아 있는 실험장이 여기에 있다. 유진상가와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는 안보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자료들이 있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지만, 간단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진상가가 지어지던 당시 남북한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인근 지역까지 내려온 사건인 1·21 사태가 1968년의 일이었으니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결과적으로 ‘서울 요새화’라는 이름하에 홍제동 일대가 수도권 서북부 지역의 방어 거점이 되었다. 유진상가의 특징인 가로변 필로티는 시가전을 대비하여 탱크가 숨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함과 동시에,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세검정로를 차단하기 위해서 건물 전체를 쉽게 무너뜨리려는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었다고 전한다. 자유로로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한 배후 거점으로 건설되었다는 일산 신도시, 그리고 또 다른 남침 예상 통로인 통일로변의 유진상가는 안보 논리가 지배하던 시절의 대표적 ‘도시 괴담’이었다. # 자연과 건축, 도시 인프라의 조화 홍제천 상류 방향에서 유진상가로 접근해 본다. 이 지점의 풍광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홍제천은 원래 건천이었으나 지하철역의 지하수를 퍼올려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수량이 넉넉한 하천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흐름이 느려지면서 거울 같은 수면 위에 유진상가와 그 옆 허공을 가로지르는 내부순환로의 반영이 어린다. 자연과 건축, 그리고 도시 인프라가 함께 어울려 만들어내는 장엄한 풍경이다. 일상적인 의미에서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분명히 뚜렷한 미학을 담고 있다. 건물 동쪽에 있는 작은 계단을 타고 2층에 오르면 거대한 중정이다. 중정 자체의 길이가 158m, 폭이 16m에 달한다. 그네가 있고 독립 건물로 구성된 관리사무소가 있다. 그 밖에는 에어컨 실외기, 화분, 정체를 알 수 없는 금속 박스들이 이 중정에서 발견되는 것의 전부다. 현재의 풍경 자체는 황량하지만 한 층 올려 만들어 놓은 이 중정 덕분에 주변 시장의 혼잡함과 소음은 거의 느낄 수 없다. 내부순환로의 자동차 소리만 아니면 아주 고요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남쪽의 A동은 아파트, 북쪽의 B동은 서대문 신지식산업센터다.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섞여 만들어내는 중정의 일상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중정의 서쪽에는 상가가 있다. 안에 들어가 보니 피트니스센터 사람들이 러닝머신 위에서 세검정로를 내려다보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바로 통일로로 나온다. 인근 인왕시장의 열기와 대로변의 차량들,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황, 이것이 바로 도시다. 유진상가는 신성건설에서 지었다. 세운상가의 일부인 신성상가를 지은 바로 그 건설회사다. 신성상가는 1968년 5월에 완공되었고 유진상가는 1970년 7월 11일에 완공되었다. 거대 주상복합 건물이라는 점에서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적 대접은 완전히 다르다. 세운상가는 김수근과 그의 사단이 합작해서 설계한 나름 계보 있는 건물로서 지금 서울시가 공을 들여 재생을 시도하고 있다. 끊임없이 재건축 논의가 있어 온 유진상가의 미래는 아직 ‘준비 중’이다. 정면에 걸어 놓은 ‘홍제1구역 도시환경 정비사업’ 투시도의 색은 점점 바래가고 있다.
  • [부동산 플러스] 엄마 위한 설계… 평택 신촌지구 2803가구

    [부동산 플러스] 엄마 위한 설계… 평택 신촌지구 2803가구

    동문건설은 경기 평택시 신촌지구에 ‘평택 지제역 동문 굿모닝힐 맘시티(조감도)’ 2803가구를 분양한다. 모든 물량이 전용 59~84㎡ 중소형으로 구성됐다. 동문건설은 ‘평택 지제역 동문 굿모닝힐 맘시티’에 평택 내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엄마를 위한 설계인 이른바 ‘맘스특화 설계’를 도입했다. 인근 동삭지구, 동삭2지구, 영신지구, 세교지구의 풍부한 생활기반시설을 공유할 수 있다. 올해 개통 예정인 평택~수서 SRT 지제역(가칭) 이용도 쉽다. 모델하우스는 경기 안성시 공도읍 진사리 10-2에 문을 연다. 031-651-7733
  • 10여년간 지적장애인 돈 주지 않고 일만 시킨 축사 운영 부부

    10여년간 지적장애인 돈 주지 않고 일만 시킨 축사 운영 부부

    40대 지적 장애인이 10여년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하며 축사 옆 쪽방에서 잠을 자는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한 사실이 알려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청주 청원경찰서는 오창읍에서 축사를 운영하는 김모(68)씨 부부의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포착해 조사 중이라고 14일 밝혔다. 이 부부는 1997년부터 최근까지 자신의 축사에서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지적 장애인 A씨에게 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부부는 1997년 여름 직업소개소를 통해 소개받은 A씨를 데려와 소 40여마리를 키우는 축사에서 매일 일을 시켰다. A씨는 주민들 사이에 ‘만득이’로 불리며 축사 창고에 딸린 쪽방에서 숙식을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말을 더듬어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할 뿐 자신의 고향과 이름, 나이도 모르고 있다. A씨의 이 같은 처지는 지난 1일 오후 9시쯤 오창읍의 한 공장 건물 처마에서 A씨가 비를 피하는 과정에 사설 경비업체 경보기가 울리면서 드러났다. 경비업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를 김씨 부부에게 인계하는 과정에서 A씨가 무서움에 떠는 것을 이상히 여기고 탐문수사에 착수해 무임금 노역 정황을 포착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에게 임금을 주지 않았지만 일을 강제로 시킨 적은 없다”며 일부 혐의를 인정했다. A씨를 처음 발견한 오창지구대 관계자는 “A씨 몸에서 폭행을 당한 흔적 등은 없었고, 시골농부 차림이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정신지체 2급 장애를 가진 48세의 고모씨로 확인됐다. 청원경찰서 관계자는 “피해자가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한데다 대인기피증까지 보여 심리적으로 안정시킨 뒤 사회복지사 입회하에 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라며 “다리에 수술한 흔적만 있을 뿐 특별한 외상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사진작가 김중만

    김중만(62)과의 만남은 금요일인 지난 1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예정돼 있었다. 그 주 수요일부터 수영 박태환을 리우올림픽에 내보내자는 1인 시위를 국회 정문 앞에서 벌여 온 그가 일단은 그곳에서 보자고 제안해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후에 쏟아진 폭우로 그는 철수를 해야 했고 결국 청담동 스튜디오로 장소가 변경됐다. 폐렴 증세가 있는데 비까지 흠뻑 맞은 그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좀 있으니 그에게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법원에서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자격을 인정했다는 뉴스였다. 그의 표정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 이제 정말 사자도 보고 침팬지도 보고 하마랑 코뿔소도 보고 그러는 거예요?” 1970년 여름 어느 날 저녁 나는 만세를 불렀다. 끓어오르는 희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홍대부고 1학년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는 충남 한산에서 외과의원을 운영하셨는데, 가족들을 불러 앉혀 놓고 상상도 못했던 말씀을 하셨다. “정부에서 아프리카 봉사활동 파견 의사들을 모집하는데, 거기에 지원했다. 거기 가면 여기에서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나와 동생은 기뻐 날뛰기만 했지, 아버지의 입가에 흐르는 씁쓸한 미소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대접받는 의사의 자리를 버리고,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안 되는 나라로 떠나갈 결심을 한다는 게 얼마나 깊은 번민의 산물이었을지는 나중에 좀더 철이 든 뒤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6·25 참전 군의관이셨다. 내가 휴전 이듬해 강원도 철원에서 2남1녀의 맏이로 태어난 건 그래서였다. 아버지는 군인들이 이 땅을 계속 통치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요즘 ‘헬조선’이라며 이민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46년 전에 그걸 몸소 실천에 옮기셨던 것이다. 그것도 가난과 모래폭풍이 지배하는 아프리카 오지에 가는 걸로 말이다. -아버지는 전역 후 당신 아버지의 고향인 전북 군산 대신에 어머니의 고향인 한산에 정착해 의원을 차리셨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만 해도 우리 집이 양계장을 하는 줄 알았다. 아픈 사람들이 돈이 없으면 닭을 가져왔고 아버지는 늘 그걸 웃으며 받아주셨다. 매일 닭 요리가 밥상 위에 올라왔는데, 그때 물리게 먹어서 지금도 닭을 안 좋아한다. -내가 아프리카행에 그토록 환호했던 것은 탐험 소설가를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대니얼 디포의 고전 ‘로빈슨 크루소’를 주셨는데, 난생처음 밤을 새워 읽은 책이었다. 이후 내 머릿속에는 무인도나 정글 생활 같은 것들이 꽉 들어찼고, 중학생이 돼 서울로 올라와서는 틈만 나면 청계천 8가 헌책방 거리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중대 발표가 있고 보름 후 부모님과 우리 형제, 이렇게 네 식구가 탄 비행기가 서아프리카 오트볼타 상공에 도착했다. 오트볼타는 지금은 부르키나파소로 개명된 옛 프랑스 식민지였다. 하지만, 비행기가 랜딩 기어를 내릴 즈음 나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창밖의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그림이 전혀 아니었다. 밀림이나 사자는커녕 아래로 온통 시뻘건 모래사막뿐이었다.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사하라 남쪽에 위치한 오트볼타는 거대한 사막의 끝자락이었다. ‘아프리카면 다 똑같은 줄 알았더니….’ 게다가 우리가 살 곳은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버스로 20시간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였다. 철판으로 벽을 세운 묘한 형태의 집에 방 두 칸과 나무침대가 전부였다.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 계시는 아버지가 야속했고, 할머니와 함께 서울에 남은 여동생이 부러웠다. -아버지는 그 길로 평생을 아프리카 사람으로 사셨다. 오트볼타에서 의료 활동을 마친 후에는 더 남쪽에 있는 보츠와나로 옮기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계셨다. “내 통장에 2000풀라(보츠와나의 화폐 단위)가 있는데, 그 정도면 괜찮겠냐.” 1999년의 어느 날 생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직감한 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와 병 수발을 들고 있는 나에게 물으셨다. 그게 장남인 나에게 남겨 주시는 전 재산이란 얘기였다. 아버지의 표정은 대단했다. 2000풀라면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인데, 거의 200억원을 물려주시는 듯한 그 당당함이란. 얼마 후 돌아가셨을 때 당신이 남긴 거라곤 정말로 그 2000풀라와 양복 2벌, 청진기 3개, 모자 3개, 모터 달린 자전거 1대 그리고 ‘김정’이란 이름 두 글자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위대한 유산이 그리고 이만큼 멋진 분이 또 어디에 존재하겠는가. -나는 동생보다도 아프리카 생활을 못 견뎌했다. 일단 마을에 학교가 없어 답답했다. 불어를 익히는 것 말고는 나를 채워 줄 것이 없었다. 신물 나게 양배추 김치만 먹어야 하는 것도 싫었고, 독거미에 물려 사경을 헤맸던 일도 끔찍했다. 1971년 나는 아버지가 수소문한 끝에 프랑스 서부의 작은 도시 숄레로 보내져 고1부터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인생의 황금기가 열렸다. 사방이 포도밭이었는데, 모두가 와인을 만들어 먹고살았다. 학교건 기숙사건 와인이 넘쳐났다. 그리고 1500명 학생 중에 유일한 동양인인 나에 대한 남녀 학생들의 관심과 배려는 한이 없었다. 꿈결 같은 3년을 보냈다. -원래 꿈대로라면 문학을 전공해야 했는데, 그러기엔 수학 실력이 너무 달렸다. 수학 시험을 안 보고 갈 수 있는 대학 전공은 미술밖에 없었는데, 그건 자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으로 숱하게 상을 받은 나였다. 1974년 니스에 있는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에 입학해 1년을 보내고 난 어느 날, 기숙사에서 사진을 취미로 하는 법대생 친구가 인화 작업을 도와 달라고 했다. 사진 한 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 처음으로 보게 됐다. 3~5분 만에 인화지에 그림이 새겨지는 건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내 그림은 석 달이 걸려도 완성이 될까 말까인데. “맞다 저거야. 내 성격엔 저게 딱이야.” 친구에게 카메라를 빌렸다. 잠자고 씻을 때를 빼고는 카메라를 품고 살았다. 풍경, 얼굴, 동물 등을 닥치는 대로 찍었다. 아르바이트해서 몇 푼 손에 들어오면 무조건 필름 가게로 달려갔다. 늘 필름에 목이 말랐다. 주변에 있는 여자들의 누드도 찍었는데, 이는 내가 작가로서 초기에 명성을 얻게 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데뷔 시절 나의 주제가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1975년 대학 2학년 때 일찌감치 아들을 보았다. 아이의 엄마는 특수교육을 전공하던 한 살 어린 프랑스인 여자친구였다. 가장이 됐으니 생활비가 필요했고 필름값도 벌어야 했다. 돈을 아끼려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아이를 몰래 돌보다 쫓겨난 적도 있었다. 주말이건 심야건 닥치는 대로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디스코텍에서 DJ도 했다. 점심때 식당 주방에 설거지를 하러 가면 늘 4~5m 높이 분량의 접시들이 쌓여 있었다. 당시 아버지가 아프리카 의료 활동으로 받는 돈은 고작 석 달에 500달러였다. 멀리 프랑스에 있는 아들에게 전혀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사진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얼마 안 돼서 나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사진에 과감하게 미술적인 프레임을 접목한 게 먹혀들었다. 주어진 것을 찍는다는 생각보다는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장소를 정하고 모델을 세웠다. “니스에 동양인이 한 명 있는데 사진을 잘 찍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나를 찾는 곳이 늘어갔다. ‘프랑스 오늘의 사진 80인’ 등 몇몇 중요한 상을 거머쥐고 나는 파리로 진출했다. 자연히 니스에서의 학업은 더이상 이어갈 수가 없었다. 파리에서는 유명작가들 밑에서 패션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당시는 세계적인 대가일수록 동양인 어시스턴트를 두는 게 유행이었다. 이게 나에게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어떠한 다른 동양인 사진작가도 나만큼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는 못했다. -1977년 서울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23세 때였다. 칸 미술제 참석을 위해 프랑스에 온 우리나라 화가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내 사진을 보더니 “한국에는 이런 사진이 없다”며 전시회를 열어 보라고 했다. 전시회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그 인연으로 한국에 계속 머물게 됐다. 이듬해 배우 오수미(1950~1992)를 만났다. 남편인 신상옥 감독이 납북되고 혼자 살고 있던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아름다움에 현기증을 느꼈다. 얼마 후 한국에 같이 머물고 있던 첫 번째 아내에게 “새로운 운명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용서를 구했다. 아내는 별말 없이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떠났다. 그녀는 지금도 니스에서 전공을 살려 정신지체아들을 돌보고 있다. 지금도 아내와 아들과는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그녀는 가히 천사다. 방학이면 해마다 인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나는 테레사 수녀님을 따서 그녀를 ‘마더 테레사’라고 부른다. 지금도 우리들은 자주 연락하며 지낸다. 아들은 나와 같은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나는 이 땅에서 두 번의 추방을 당했다. 1985년에는 프랑스 국적의 외국인이면서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고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1986년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정보당국에 붙들려가 일본과 미국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 보내졌다. 두 번째 추방은 신상옥 감독이 북한을 탈출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지금도 모른다. 그걸 계기로 오수미와는 자연스레 결별을 하게 됐다. -1988년 프랑스 국적을 버리고 한국인이 됐다. 당시 나는 프랑스에서도 톱클래스에 있었다. 그런데 오기가 생겼다. 두 번이나 나를 추방한 이 나라에 뭔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해 당시 톱 모델이던 이인혜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1995년 5월에는 서울시립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됐다. 검찰이 일부 마약사범의 진술에 의존해 나에게 대마초 흡연 혐의를 씌웠는데, 나는 이미 2년 전에 같은 혐의로 구속돼 55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했고, 이후로는 완전히 절연한 상태였다. 검찰은 소변 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자 13일간 나를 정신병원에 가뒀고, 이는 인권탄압 사례로 신문 등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어쨌거나 이 일로 나는 국립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강사에서 잘리고 아내에게 이혼까지 당했다.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갔다. 1년을 아이와 둘이 살고 있으니 아내가 다시 찾아왔다. LA에서 3년 동안 패션사진, 상품 카탈로그 등을 찍으며 세 식구가 괜찮게 먹고살았다. 그런데 1997년 말 한국 외환위기의 파고가 멀리 LA까지 밀려왔다. 주된 고객이던 한국 기업들이 도산을 하거나 경영난에 빠지면서 일감이 뚝 끊겼다. 결국 월세 3000~4000달러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빈민들이 사는 300달러짜리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꼬박 1년을 살면서 전당포를 세 번을 갔다. 고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500달러에 카메라를 잡히면 그날은 LA갈비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서 얻은 건 가족애였다. 극심한 가난 속에 우리 셋은 정말로 하나가 됐다. 너무도 소중한 가치였다. -“형, 처자식 고생 그만 시킬래.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형이 사진전 좀 열 수 있도록 주선해 줘.” 1999년 LA라디오 사장이던 가수 이장희에게 귀국을 고했다. 떠나기 전에 라디오코리아에서 내 작품들의 전시회를 열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였다. 사람들에 신세진 것들 좀 갚고 남은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부모님 계신 보츠와나를 거쳐 서울로 오는 티켓이었다. 그런데 카메라 장비며 책이며 옷가지 등 해서 짐이 250kg이나 됐다. 추가 화물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수중에 남은 돈이 고작 400달러 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사진 5장을 별도의 휴대용 박스에 넣고 우리가 예매한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카운터를 찾아갔다. 책임자를 보자고 했다. 후덕해 보이는 여성이 나왔다. “저는 사진을 하는 예술가입니다. 짐이 좀 많은데, 추가 비용을 낼 형편은 안됩니다. 저의 작품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게 힘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녀는 내 사진을 한 장, 두 장 보더니 곧바로 ‘오케이’ 사인을 냈다. 이에 더해 우리 가족의 티켓을 이코노미석에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었다. 내가 절실할 때, 진실할 때 정성이 통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의 힘이란 걸 새삼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보츠와나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그의 30년 아프리카 여정을 기리는 뜻에서 카메라 장비를 챙겨 초원으로 나갔다. 요하네스버그, 세렝게티, 타랑기레 등의 동물들을 담아 2001년 8월 15일 광복절에 한국에 돌아왔다. -막상 귀국을 하니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내 한 몸은 고사하고 아내와 아들이 머물 수 있는 집 한 칸이 없었다. 상업사진을 시작했다. 명함을 만들고 압구정동에 스튜디오를 차렸다. 패션, 영화포스터, 음반표지 등 닥치는 대로 작업을 했다. 3년을 일하니까 서울 전농동에 아파트 한 채를 살 돈이 모였다. 3년을 더 하니까 한 해에 15억원 정도가 손에 들어왔다. -‘이게 내가 추구하던 삶인가? 맹목적으로 일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먹고 살 만 해지니까 또 다른 생각에 발동이 걸렸다. 2006년 고비 사막으로 여행을 갔다. 보름 동안 50대, 60대의 김중만은 어때야 할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돌아와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 상업사진 그만할게. 그래도 괜찮겠지?” 6년 동안 상업사진을 찍으면서 50억원 이상을 벌었는데 남은 건 거의 없었다. 빌딩 한 채 사 두라는 주위의 말들 무시한 채 어려운 나라에 학교 지어 주고, 카메라 장비 사고, 스튜디오 운영하고, 먹고 놀고 했더니 남은 게 없었다. -2008년 관광공사의 외주를 받은 것을 계기로 한국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앵글에 담기 시작했다. 한국의 이미지는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되어 주었다. 그동안 나는 우리나라의 이미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어느날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에 갔다. ‘600년 된 학교인데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고, 옆에는 숲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600년 전에 이런 학교를 지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우리나라를 너무 피상적으로만 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이미지 촬영은 나에게 새로운 전기가 됐다. 무엇보다도 해외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극단적으로 동양적인 본질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극단적으로 서양적인 표현력을 갖고 있다’, ‘동양과 서양을 겸비한 이중성을 갖고 있는 유일한 작가’ 등 평가들이 나왔다. -예술사진으로 다시 돌아와 시간이 흐르니 내 작품 가격이 2500만원, 5000만원, 7500만원 등으로 해가 다르게 뛰었다. 대부분 외국에서 구매하는데 3개월 전에 처음으로 작품 하나를 파리에서 1억원에 계약했다. 작품의 가격은 작가의 자존심이다. 5억원까지는 올려보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건 나의 철칙은 지키려 한다. 작품의 영역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순결해지자는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사진작가 김중만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다. 10대 중반 아프리카를 거쳐 프랑스에 유학해 21세 때인 1975년 니스에서 개인전을 열고 데뷔했다. 1977년 ‘프랑스 오늘의 사진’에 역대 최연소 작가로 선정되면서 주목받았다. 인물, 동물, 꽃, 풍경, 패션 등 다양한 주제에서 틀에 짜인 관습과 앵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을 창조해 왔다. 현재 스튜디오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운영하고 있다. 2006년부터 상업 활동을 중단하고 예술 사진에 집중하고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 지원과 캄보디아, 베트남 학교 건립 등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1954년 강원 철원 출생 ▲한산초, 홍익중, 프랑스 숄레 고등학교, 니스 국립응용미술대 서양화과 중퇴 ▲프랑스 아를 국제 사진페스티벌 젊은 작가상(1977), 올해의 패션사진가상(2000), 마크 오브 리스펙트상(2010), 한국패션 100년 어워즈(2011) ▲ 작품집 ‘불새’, ‘인스턴트 커피’, ‘동물왕국’, ‘아프리카 여정’, ‘애프터 레인’, ‘네이키드 소울’, ‘오키드’ 등
  • ‘그것이 알고싶다’ 유영철 둘러싼 미제사건···‘프로파일러’ 표창원 “면식범 소행”

    ‘그것이 알고싶다’ 유영철 둘러싼 미제사건···‘프로파일러’ 표창원 “면식범 소행”

    전날 방송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콜드 케이스’(장기 미제 사건)로 남은 서울 종로구 원남동 60대 여성 살인사건을 재조명했다. 방송에는 국내 1세대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출신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 2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2004년 서울 종로구 원남동 5층 건물에서 발생한 60대 여성 최모씨의 살인사건을 다뤘다. 당시 동네에서 부자로 유명했던 최씨는 남편과 사별한 후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피해자의 현관문에는 잠금 장치만 여러 개 설치돼 있었다. 문 역시 일반적인 것들과 달리 굉장히 단단했다. 하지만 2004년 5월 어느 토요일 아침 가스검침원이 최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최씨는 숨진 채로 발견됐다. 가스검침원은 현관문 부근에 쓰러진 최씨를 발견한 인물이다. 최씨의 몸에서는 20여차례 흉기로 찔린 상처가 발견됐다. 현장에는 지문 하나 남지 않았다. 그런데 2004월 7월 검거된 유영철은 원남동 살인사건이 본인의 소행이라고 자백했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여성 등 20여명을 살해해 암매장한 ‘희대의 살인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최씨의 핸드폰 마지막 발신지가 마포구 공덕동이었던 점(유영철의 주거지), 족적이 일치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또한 최씨가 살던 집의 구조를 자세히 알고 있었던 점과 당시 유영철이 부유층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 등을 미루어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유영철은 갑작스레 자신의 진술을 완강하게 뒤집었고,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졌다. 이 사건에 대해 표창원 전 프로파일러는 ‘면식범’(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아는 관계에서 발생한 사건의 범인)의 소행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표 의원은 “피해자 최씨가 범인을 알아서 문을 열어줬거나, 범인이 한 이야기가 피해자로 하여금 신뢰를 얻을 수 있어서 문을 열어줬을 수도 있다”면서 “익숙한 상황이 문을 열게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표 의원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모르지만, 상대방은 피해자를 아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의 특성을 이미 아는 사람은 알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 장소에 가면 그런 돈을 얻을 수 있다’고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영철은 과거 이 사건을 수사하던 수사관의 “사건 현장은 어떻게 자세히 알았냐”는 질문에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답한 적이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것이 알고싶다’ 유영철의 진실게임···풀리지 않은 12년 전 살인사건

    ‘그것이 알고싶다’ 유영철의 진실게임···풀리지 않은 12년 전 살인사건

    전날 방송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12년 전인 2004년 서울 종로구 원남동에서 벌어진 60대 여성 살인사건을 다뤘다. 방송은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 스스로 이 사건의 범인이 본인이라고 자백했다가 진술을 번복해 ‘미궁’에 빠진 과정을 다뤘다. 지난 2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2004년 서울 종로구 원남동 5층 건물에서 발생한 60대 여성 최모씨의 살인사건을 파헤쳤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아 ‘장기 미제 사건’(콜드 케이스)으로 남아있다. 당시 동네에서 부자로 유명했던 최씨는 남편과 사별한 후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피해자의 현관문에는 잠금 장치만 여러 개 설치돼 있었다. 문 역시 일반적인 것들과 달리 굉장히 단단했다. 하지만 2004년 5월 어느 토요일 아침 가스검침원이 최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최씨는 숨진 채로 발견됐다. 가스검침원은 현관문 부근에 쓰러진 최씨를 발견한 인물이다. 최씨의 목, 어깨, 가슴, 배 등에는 20여군데의 흉기로 찔린 상처가 발견됐다. 현장에는 지문 하나 남지 않았다. 범인은 최씨의 휴대전화와 손가방을 가져 갔고, 그의 몸에 섬유 유연제를 뿌리고 떠나 범행에 지식이 있고 최씨가 스스로 문을 열어준 사람들이 용의자로 떠올랐다. 그런데 2004월 7월 검거된 유영철은 원남동 살인사건이 본인의 소행이라고 자백했다. 유영철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여성 등 20여명을 살해해 암매장한 ‘희대의 살인마’다. 실제로 한 경찰 관계자는 유영철이 범행 기간에 사람을 죽인 장소를 적은 메모에 원남동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최씨의 핸드폰 마지막 발신지가 마포구 공덕동이었던 점(유영철의 주거지), 족적이 일치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또한 최씨가 살던 집의 구조를 자세히 알고 있었던 점과 당시 유영철이 부유층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 등을 미루어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유영철은 갑작스레 자신의 진술을 완강하게 뒤집었고,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졌다. 당시 유영철은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 수사관에게 “제가 검찰에 가서 여죄를 한 두 개씩 더 불어야 검찰들도 공과를 올리고 수사 때문에 사형이 미뤄질 것 아닙니까. 바로 죽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즉 유영철은 사형을 미뤄 2~3년은 더 살고자 했던 것이다. 이에 수사관이 “사건 현장은 어떻게 자세히 알았냐”고 묻자 유영철은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답했다. 한편 최씨의 유족들은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성 억압VS자존감 고취…하이힐을 둘러싼 두 가지 시선

    여성 억압VS자존감 고취…하이힐을 둘러싼 두 가지 시선

    이 물건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발명'된 이래 지금까지 여성들로부터 찬사와 비난을 한몸에 받아왔다. 여성의 굴곡진 신체적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도와준 발명품이라는 평가가 이어지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며 외모지상주의에 빠지게 만들며 여성의 신체를 억압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바로 문제의 '하이힐'이다. 실제 지난 5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는 유명 여배우들이 드레스코드를 어긴 플랫슈즈나 굽이 없는 신발 또는 맨발로 레드카펫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 속에서도 지난해 칸 영화제 당시 헤인즈 감독의 ‘캐롤’ 상영회 때는 하이힐을 신지 않은 여성들이 입장이 거부당한 일까지 있으니 여전히 논란의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당시 여배우들은 이를 성차별이라며 반발했다. 더더욱 분명한 것은 여권신장 속 양성평등이 대세를 이룬 사회에서 드러내놓고 하이힐을 옹호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이다. 설령 일상 속에서 개개인이 하이힐을 신더라도 하이힐이 성차별적 요소를 갖고 있음이 분명한 이상, 마냥 이를 찬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단체가 있어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하이힐이 오히려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최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하이힐협회(이하 Japan High Heel Association, 이하 JHA)는 매년 수강생을 모집해 하이힐의 올바른 착용방법을 교육하고, 굽이 없는 플랫슈즈가 아닌 하이힐을 신을 것을 주장한다. 이들이 여성들에게 하이힐을 적극 권장하는 것은 하이힐이 여성의 사회적 자신감과 올바른 신체적 자세를 가지는데 도움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이 단체는 6개월에 40만 엔(약 463만원)의 교육비를 받고 ‘워킹 에티켓 클래스’를 열고 있으며, 이 과정을 수료한 일본 여성은 무려 4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현지의 유명 사회평론가인 미츠코 시모무라는 “JHA의 주장은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및 자신감과 하이힐을 신는 것 사이에는 어떤 연관관계도 없다”고 비난했다. 이에 전 발레리나이자 JHA의 고위 관계자는 AFP와 가진 인터뷰에서 “여성에게 하이힐을 신으라고 권유하는 행동은 일본 여성들의 자신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면서 “많은 일본 여성들은 자신을 스스로 표현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일본 문화는 여성들이 스스로 가장 맨 앞에 서거나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이힐을 신는 행동은 여성들을 이러한 정신에서 해방시켜 줄 뿐만 아니라 기모노의 유산과도 같은 나쁜 자세를 교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 여성들은 오리처럼 뒤뚱뒤뚱 걷고 안짱다리가 심한 경향이 있다. 한국이나 중국 여성들에게서는 이런 문제를 찾을 수 없는데, 이러한 것은 모두 기모노 문화와 샌들을 질질 끌면서 걷는 습성에서 온 문제라는 것. 때문에 서양문화를 정확히 알고 하이힐을 올바르게 시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이러한 잘못된 걸음걸이와 자세를 고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JHA의 주장이다. 한편 의학계에서는 하이힐이 오히려 자세를 흐트러뜨리고 발가락의 변형 및 무릎 연골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본·AFP=연합뉴스/ beeboys Fotolia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울릉도 여행자를 위한 해안일주코스

    울릉도 여행자를 위한 해안일주코스

    울릉도 여행자를 위한해안일주코스 울릉도 여행이 바뀌고 있다. 자유여행이 대세다. 갈 수 있는 배편도, 빌릴 수 있는 차량도 많아졌다. 굽이마다 비경이 즐비한데다, 우리땅 독도도 지척에 있다. 울릉도에 착륙한 자유여행 포항을 출발해 배로 이동하길 3시간 10분, 울릉도의 관문 중 한 곳인 도동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울릉도를 오가는 배편이 과거에 비해 많이 늘었다지만 여전히 울릉도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날씨에 따라 배의 결항도 잦은데다, 바다가 거칠어지고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의 경우는 배편도 운휴되는 경우가 많고, 또 울릉도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계획대로 울릉도에서 나온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울릉도는 울릉읍, 서면, 북면 등 총 세 구역으로 나뉜다. 배가 닿는 곳은 울릉읍의 도동, 저동 또는 사동이다.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도동 여객선 터미널은 분주하다. 배에서 내린 관광객과 울릉도 주민, 또 이들을 태울 관광버스와 택시, 렌터카들이 한데 얽힌다. 도동뿐 아니라 저동의 경우도 배가 들어올 때는 같은 풍경이다. 각자 이동할 수단을 확보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터미널과 주변은 조용해진다. 울릉도의 지형은 변화무쌍하다. 산세가 험하고 평지도 드물다. 마을과 마을을 이동할 교통수단도 마땅치 않다. 그렇다 보니 울릉도 여행에서는 차량 확보가 필수적이었고, 교통수단이 가장 확실한 단체여행이나 택시관광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 울릉도 여행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렌터카 자유여행’이 뜨고 있는 것.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울릉도의 렌터카 사업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울릉도여행사 이성범 대표는 “제주도가 그랬듯 최근 울릉도 여행 트렌드는 자유여행이다. 렌터카를 활용하는 여행자의 문의도 많이 늘었다. 울릉도도 이들을 위해 다양한 관광 명소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울릉도행 배편 | 포항과 묵호, 강릉 총 세 곳에서 출발한다. 포항에서는 (주)대저해운www.daezer.com에서 운영하는 썬플라워가 도동으로, 태성해운www.tssc.co.kr에서 운영하는 우리누리1호가 저동으로 운항한다. 묵호에서는 씨스포빌www.seaspovill.co.kr에서 운영하는 씨스타 7호가 도동으로, 씨스타 1호가 사동으로 운항 중이며, 강릉에서는 씨스포빌에서 운영하는 씨스타 3호와 5호가 저동으로 운항 중이다. 단 자동차를 이용해 울릉도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차량선적이 가능한 썬플라워호와 씨스타 7호를 이용해야 한다. ●하루에 하나씩, 해안일주도로 A & B 울릉도가 초행이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여객선 터미널에 당도한다면 터미널 곳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울릉도 지도부터 챙기자. 울릉도의 해안일주도로는 아직 완공되진 않았다. 도동항을 기준으로 시계 방향을 A코스, 시계 반대 방향을 B코스로 구분한다. 섬목에서 내수전까지는 아직 미개통 구간으로 올해 말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미개통 구간을 넘어가려면 선창에서 저동항을 연결하는 섬목페리호를 탑승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2일에 걸쳐 하나씩, 해안일주 코스를 따라 여행하기를 권장한다. 바쁘게 움직인다면 하루에도 모두 둘러볼 수 있지만 구석구석 숨어 있는 명소들이 의외로 꽤 많다. 울릉도 투어맵 www.ulleung.go.kr ▶울릉도 추천 여행길 코스 A도동항–사동–통구미–태하리–현포–천부–나리분지 ▷ 섬 산책의 묘미 행남해안산책로(도동해안산책로)도동 여객선 터미널 뒤쪽 해안선을 따라 행남등대(도동등대)를 지나 저동항의 촛대바위까지 이어져 있는 해안산책로다. 길이는 약 3km로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산책로는 해안을 따라 깎아지를 듯한 절벽 밑으로 골짜기와 자연동굴 등을 교량으로 연결해 놓았다. 과거 활발했던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울릉도 특유의 지질구조이자 자연스럽게 이뤄진 비경이다. 파도가 세게 몰아치는 날에는 안전을 위해 폐쇄된다. ▷ 신기한 통구미 거북바위 통구미 몽돌해변을 따라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바위섬이다. 바위 위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거북이들처럼 보인다고 해서 거북바위로 불린다. 보는 방향에 따라 6~9마리의 거북 형상이 보인다. 바위가 있는 마을을 ‘거북이가 통(마을)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라고 해서 통구미로 부른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마즙을 마시는 재미도 쏠쏠하다. 울릉도산 마를 갈아 음료수에 타서 단돈 1,000원에 팔고 있는데 잠시 쉬어 갈 가치가 충분하다. ▷ 10대 비경의 위엄 태하 항목전망대모노레일에서 내려 대풍감 산책로를 따라 1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한다. 산책로는 해송은 물론 동백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봄에 더 반가운 길이다. 항목전망대의 탁 트인 풍광은 우리나라 10대 비경으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 용암이 분출해 빠르게 식으며 형성됐다는 대풍감의 해안절벽, 현포리 너머 보이는 코끼리바위와 송곳봉, 노인봉 등은 설명하기 힘든 절경이다. 대풍待風감은 ‘바람을 기다리는 언덕’이라는 뜻으로 과거 돛단배가 이곳의 순풍을 받아 출항하면 육지로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전망대 왼편은 천연기념물 49호인 대풍감향나무의 자생지다. ▷ 6분이면 정상에 태하 항목관광 모노레일 태하리에서 꼭 들러야 할 곳이다. 항목전망대를 오르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가장 쉽게 오르는 방법은 모노레일을 타는 곳이다. 39도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304m 길이의 모노레일 두 대가 동시 운항하고 있다. 1대당 최대 탑승 인원은 20명. 분당 50m의 속도로 약 6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 우산국의 도읍지 현포항과 현포고분 고대 우산국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현포고분군이 존재하며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이곳에 촌락과 석물, 석탑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태하리에서 현포리로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한 현포전망대의 풍경도 아름답다. ▷ 코가 길어 코끼리바위 현포리와 천부리 사이에 위치해 있는 바위다. 주상절리로 이뤄진 바위에는 작은 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있는데, 코끼리 코가 늘어져 있는 모습이라 코끼리바위라고 불린다. ▷사람이 사는 분화구 나리분지 울릉도의 성인봉 화산 분화구 일부가 함몰돼 만들어진 분지다. 산세가 험한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지형이자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유일한 분화구 분지로도 유명하다. 나리분지 입구에서 내려다보면 분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울릉도 전통 가옥형태인 너와집과 투막집도 볼 수 있다. ▷울릉도 으뜸 비경 삼선암 해안 비경이 연속되는 A코스 끝자락에 위치한 섬목에서 기이하게 생긴 천연 바위굴을 통과해 보이는 것이 삼선암이다. 울릉도 3대 비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2개의 바위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3개로 보인다. 지상에 내려온 세 선녀가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으니 3개가 맞을 것 같다. 제일 작은 바위는 늑장을 부린 막내선녀 바위로 불리며, 신기하게도 이 바위에만 풀이 자라지 않는단다. ▶울릉도 추천 여행길 코스 B봉래폭포–저동 촛대바위–내수전 전망대 ▷ 연중 시원한 봉래폭포 저동항을 기준으로 2km 정도 떨어져 있다. 울릉읍 주민들의 상수원이기도 하다. 폭포로 오르는 길에는 삼나무 숲 산림욕장과 함께 나무 데크길, 쉼터 등이 있으며 시원한 자연 바람이 흐르는 풍혈이 있다. 연중 4도의 온도가 유지된다는 풍혈은 냉장고가 없던 과거에 울릉도 주민들이 천연냉장고로 이용했던 곳이다. ▷ 효심 깊은 저동 촛대바위 저동항은 울릉도의 오징어잡이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곳이다. 고기잡이배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인 만큼 신선한 회를 맛볼 수 있다. 촛대바위에 걸쳐진 울릉도의 일출과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조업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딸이 돌로 굳어 버렸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어 효녀바위라고도 불린다. ▷ 해가 좋아 내수전 일출전망대 전망대 주차장에서 일출전망대로 가는 길은 수많은 동백나무와 마가목 등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입구에서부터 전망대까지는 약 15분 정도 소요된다. 전망대에서는 울릉도의 북쪽과 동쪽, 남쪽 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북으로 관음도, 섬목 등이 보이며, 남으로 저동항과 저동, 행남등대 등을 볼 수 있다. 또 해돋이를 보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 3대의 덕을 모아 독도!울릉도에서 독도를 가는 배편은 총 다섯 편이다. 그러나 3대가 덕을 쌓아야 입도할 수 있단다. 독도 운항 여부는 기상상황 및 (비)성수기에 따라 변동이 잦으므로 반드시 사전 문의를 해야 한다. 씨스포빌에서 운항하는 씨스타 1호가 사동에서, 씨스타 3호와 5호가 저동에서 출발하고 있다. 또 돌핀해운의 돌핀호와 대저해운의 썬라이즈호가 각각 사동과 저동에서 출발한다. 소요시간은 왕복 약 3~4시간이다. 독도는 크게 동도와 서도를 비롯해 89개의 부속섬으로 이뤄져 있다. 머무는 시간은 고작 30여 분이지만 파도가 높아 선착장에 접안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입도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글·사진 신지훈 기자 취재협조 여행박사 www.tourbaksa.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하이힐이 女 자신감 높인다”…日단체 이색 주장

    “하이힐이 女 자신감 높인다”…日단체 이색 주장

    지난 5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는 유명 여배우들이 드레스코드를 어긴 플랫슈즈나 굽이 없는 신발 또는 맨발로 레드카펫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작년 칸 영화제 당시 헤인즈 감독의 ‘캐롤’ 상영회 때 하이힐을 신지 않은 여성들이 입장이 거부당해 여배우들이 이는 성차별이라며 반발한 사례와 연관이 있다. 이렇게 하이힐이 여성들에게 있어서 성차별적 수단으로 읽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일본에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단체가 있어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26일자 보도에 따르면 일본하이힐협회(이하 Japan High Heel Association, 이하 JHA)는 매년 수강생을 모집해 하이힐의 올바른 착용방법을 교육하고, 굽이 없는 플랫슈즈가 아닌 하이힐을 신을 것을 주장한다. 이들이 여성들에게 하이힐을 적극 권장하는 것은 하이힐이 여성의 사회적 자신감과 올바른 신체적 자세를 가지는데 도움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이 단체는 6개월에 40만 엔(약 463만원)의 교육비를 받고 ‘워킹 에티켓 클래스’를 열고 있으며, 이 과정을 수료한 일본 여성은 무려 4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현지의 유명 사회평론가인 미츠코 시모무라는 “JHA의 주장은 허튼 소리에 불과하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및 자신감과 하이힐을 신는 것 사이에는 어떤 연관관계도 없다”고 비난했다. 이에 전 발레리나이자 JHA의 고위 관계자는 AFP와 가진 인터뷰에서 “여성에게 하이힐을 신으라고 권유하는 행동은 일본 여성들의 자신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면서 “많은 일본 여성들은 자신을 스스로 표현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일본 문화는 여성들이 스스로 가장 맨 앞에 서거나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이힐을 신는 행동은 여성들을 이러한 정신에서 해방시켜 줄 뿐만 아니라 기모노의 유산과도 같은 나쁜 자세를 교정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 여성들은 오리처럼 뒤뚱뒤뚱 걷고 안짱다리가 심한 경향이 있다. 한국이나 중국 여성들에게서는 이런 문제를 찾을 수 없는데, 이러한 것은 모두 기모노 문화와 샌들을 질질 끌면서 걷는 습성에서 온 문제라는 것. 때문에 서양문화를 정확히 알고 하이힐을 올바르게 시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이러한 잘못된 걸음걸이와 자세를 고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JHA의 주장이다. 한편 의학계에서는 하이힐이 오히려 자세를 흐트러뜨리고 발가락의 변형 및 무릎 연골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본·AFP=연합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보미·박준원 日골프 나란히 우승

    이보미·박준원 日골프 나란히 우승

    이보미(왼쪽·28)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2016 어스 먼다민컵 2연패를 일궈냈다. 이보미는 26일 일본 지바현 소데가우라시 카멜리아힐스 컨트리클럽(파72·6541야드)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뽑아내 5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합계 20언더파 268타가 된 이보미는 15언더파 273타의 배희경(24)을 5타 차로 여유 있게 따돌리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이다. 지난 3일 요코하마 타이어 PRGR 레이디스컵에서 우승한 데 이어 시즌 2승째, JLPGA 투어 통산 17승째다. 최근 11개 대회에서 연속 5위 이내의 성적을 올리는 꾸준한 모습을 이어간 이보미는 우승 상금 2520만엔(약 2억 9000만원)을 받았다. 시즌 상금 9391만 3332엔을 쌓은 이보미는 신지애(28)를 일주일 만에 다시 2위로 밀어내고 상금 선두에 복귀했다. 이날 이보미의 우승으로 올 시즌 16개 JLPGA 투어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은 절반에 가까운 7승을 수확했다. 한편 2004년 매경오픈 우승자 박준원(오른쪽·30·하이트진로)은 이시카와현에서 끝난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ISPS 한다 글로벌컵에서 연장 끝에 일본무대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최종합계 17언더파 267타로 에밀리아노 그리요(아르헨티나)와 동타를 이룬 뒤 우승 상금 2000만엔(약 2억 2000만원)의 주인공이 됐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비밀은 없다’ 개봉, 촬영+미술+음악 ‘섬세’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 공개

    ‘비밀은 없다’ 개봉, 촬영+미술+음악 ‘섬세’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 공개

    미스터리 스릴러 ‘비밀은 없다’(감독 이경미 |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제작 영화사 거미, 필름 트레인)가 촬영부터 미술, 음악까지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비밀은 없다’는 국회입성을 노리는 ‘종찬’(김주혁)과 그의 아내 ‘연홍’(손예진)에게 닥친, 선거기간 15일 동안의 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다. 이경미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과 손예진의 극한의 감정을 넘나드는 열연, 김주혁의 새로운 변신으로 호평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비밀은 없다’가 영화만의 독보적인 분위기를 더하기 위해 공들인 촬영, 미술, 음악에 대한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강렬하면서도 섬세함을 놓치지 않은 ‘비밀은 없다’의 촬영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 일상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주성림 촬영감독은 어두운 장면에 블루와 같은 차가운 계열의 색을 배합하는 등 일반적으로 영화에 잘 사용하지 않는 컬러로 톤을 조절했으며, 가상의 도시가 주는 낯설고 차별화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비와 안개를 통해 보다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한 실종된 딸의 흔적은 쫓는 ‘연홍’과 전도유망한 신예 정치인 ‘종찬’이 격한 감정으로 싸우는 장면은 두 배우의 폭발하는 감정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컷을 나누지 않고 롱 테이크로 촬영, 극도의 감정을 고스란히 화면으로 담아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홍주희 미술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각자의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오히려 아름다운 이미지로 그려내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연홍’과 ‘종찬’의 딸 ‘민진’의 주요 공간들은 겉으로는 밝고 예쁘지만 실은 아프고 불안하며 복잡한 속내를 지닌 인물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특히 ‘민진’에게 중요한 공간인 찔레꽃 언덕은 실제 계절상 찔레꽃이 피지 않는 시기에 촬영이 진행되었기에, 숲 속 공간에 사전에 미리 준비해둔 찔레 나무를 심었으며 바닥에 잎을 깔고 꽃을 심는 등 신비롭고 아름다운 공간을 완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 음악과 사운드에 있어서도 긴장의 강도를 높이는 동시에 시청각의 자극을 최대화하고자 했던 제작진은 장면과 캐릭터의 감정에 맞춰 음악과 사운드의 적절한 밸런스를 찾아 차별화된 영화적 재미를 전하고자 했다. 섬세한 감정과 극도의 긴장을 오가는 ‘비밀은 없다’의 음악은 마지막 순간까지 예측할 수 없는 극의 전개에 힘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극중 딸 ‘민진’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곡인 ‘와일드 로즈 힐(Wild Rose Hill)’은 이경미 감독이 직접 가사를 쓰고, 장영규 음악감독이 곡을 완성했으며, 특히 이 곡은 장영규 음악감독의 제안으로 ‘민진’ 역을 맡은 배우이자 SBS K팝스타 출신 가수인 신지훈이 직접 노래를 불러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이렇듯 촬영, 미술, 음악까지 남다른 고민과 노력 끝에 완성한 영화 ‘비밀은 없다’는 예측불허 스토리와 감각적인 연출, 강렬한 캐릭터가 어우러진 새로운 스타일의 미스터리 스릴러로 관객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미쓰 홍당무’로 호평 받은 이경미 감독의 차기작으로, 부부로 조우한 충무로 대표 여배우 손예진과 국민 매력남 김주혁의 강렬한 변신이 기대를 모으는 영화 ‘비밀은 없다’는 탄탄한 전개, 새로운 스타일의 미스터리 스릴러로 오늘(23일) 개봉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시간 끌면 정치적 오해 생길라” 조사팀 입국 다음날 발표 결정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영남권 신공항 발표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만 박 대통령은 전날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연구용역 결과를 보고받은 뒤 “결과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이날 신공항 부지 선정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지난 며칠간 청와대는 극도로 입조심을 해 왔다. 청와대 참모들은 기자들이 신공항 얘기를 물을 때마다 직답을 피한 채 “관련 부처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대답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등 애써 거리를 두는 모습이 역력했다.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밀양이 선정되면 부산·경남(PK) 민심이, 가덕도가 선정되면 대구·경북(TK) 민심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에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도 못하고 끙끙 앓는 눈치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신공항 얘기가 나오자 한숨을 쉬며 “(후유증이) 걱정된다”는 말을 털어놓기도 했다. 청와대가 프랑스 용역 조사팀이 입국한 바로 다음날인 21일 결과 발표를 결정한 것도 시간을 끌면 괜한 정치적 오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입조심·거리두기 기류는 결과 발표일인 이날도 이어졌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아침 기자들의 질문에 “아는 바가 없다”고 입을 닫았다. 발표가 나온 뒤에도 청와대는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는 등 거리두기를 계속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고만 했다. 결과적으로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제3의 결과가 나오자 청와대 주변에서는 뜻밖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박 대통령의 출신지인 TK에 가까운 쪽, 즉 밀양으로 결정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그동안 우세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청와대 입장에서는 이날 발표된 결과가 최악의 후유증을 예상했던 것보다는 나은 편이라며 안도하는 눈치도 감지된다. 밀양이나 가덕도 중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결과가 나왔을 경우 탈락한 쪽에서 엄청난 반발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일부 참모진 사이에서는 “이 결과가 차라리 낫다”는 반응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전설 넘은 45승…신지애 니치레이 레이디스 정상

    전설 넘은 45승…신지애 니치레이 레이디스 정상

    ‘골프 지존’ 신지애(28·스리본드)가 한국 여자 선수의 최다승 기록을 갈아 치웠다. 신지애는 19일 일본 지바현 지바시 소데가우라 컨트리클럽(파72·6569야드)에서 끝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니치레이 레이디스 3라운드에서 4언더파 68타를 쳐 최종합계 12언더파 204타로 우승했다. 지난달 호켄 마도구치 레이디스에 이어 시즌 2승째다. 2014년부터 대회 3연패를 일궈낸 신지애의 우승 상금은 1440만엔(약 1억 6200만원)이다. 특히 신지애는 이날 우승으로 프로 통산 45승을 달성, 고(故) 구옥희 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장의 44승 기록을 뛰어넘어 프로선수대회에서 가장 많은 승수를 올린 선수가 됐다. 신지애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20승,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11승, JLPGA 투어에서는 12승(LPGA 공동주관대회 제외)을 거뒀으며,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와 레디이스 아시안투어에서 각 1승을 더해 45승 금자탑을 쌓았다. 구 전 회장은 국내에서 20승, 일본에서 23승을 올렸고 LPGA 투어에서도 1승을 보태 모두 44승을 기록했다. 지난해 KLPGA 투어 명예의 전당에 구 전 회장, 박세리(39)에 이어 역대 최연소로 이름을 올린 신지애는 이제 사상 최초로 한·미·일 3개국 상금왕 석권이라는 대기록을 남겨 뒀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KLPGA 투어 무대에서 3년 연속 상금왕을 휩쓴 데 이어 LPGA 투어 진출 첫해인 2009년에도 시즌 상금 부문 1위에 올랐던 신지애는 이날 우승으로 시즌 상금 7545만 5000엔을 쌓아 올 시즌 JLPGA 투어 상금 부문 1위에 올랐다. 신지애는 “한 대회 3연패는 처음인데 아버지 생신날 아버지가 보시는 앞에서 우승해 더욱 기쁘다. 지금까지 쌓은 기록을 넘어 더 많은 우승을 만들어 가겠다”면서 “한 달 뒤 일본에서 제 이름을 걸고 주니어대회를 연다.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도록 더 많은 고민을 할 것이고 목표인 상금왕에도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신지애,니치레이 레이디스 대회 3연패

    신지애,니치레이 레이디스 대회 3연패

    신지애(28)가 19일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니치레이 레이디스(총상금 8000만엔) 우승을 차지했다. 2014, 2015년 우승에 이은 3년 연속 우승이다. 우승 상금은 1440만엔(약 1억6200만원)이다. 특히 신지애는 이번 우승으로 개인 통산 45승을 달성, 고 구옥희 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장의 44승 기록을 뛰어넘어 한국 선수 프로대회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신지애는 이날 일본 지바현 지바시 소데가우라 컨트리클럽(파72·6569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4언더파 68타를 쳐 최종합계 12언더파 204타로 우승했다. 2위는 9언더파 207타를 기록한 일본의 아마추어인 가쓰 미나미다. 이보미(28)는 니시야마 유카리, 와타나베 아야카(이상 일본)와 함께 8언더파 208타, 공동 3위로 올랐다. 신지애는 이번 우승으로 한국 프로선수 가운데 개인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20승,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11승을 거뒀으며 JLPGA 투어에서는 14승을 기록했다. JLPGA 투어 14승 중에는 LPGA 투어와 공동 개최한 미즈노 클래식 2회가 들어가 실제 한·미·일에서 우승은 총 43승이다. 여기에 유럽여자프로골프 투어(LET) 2승을 더해 45승을 달성했다. 신지애는 우승이 확정된 뒤 세마스포츠마케팅을 통해 “대회 3연패가 처음이기 때문에 더욱 기쁘다. 한·미·일 투어 통산 최다승을 기록했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접했는데 너무 신기하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신지애라는 이름으로 일궈낸 기록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면서 “일본투어로 오면서 목표로 삼았던 상금왕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지애 선수는 이번 우승으로 시즌상금 규모를 7545만 5000엔으로 늘리며 상금 부문 1위에 올랐다. 신지애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왕에 올랐으며 2009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상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조희팔 측 17억 받은 전 검찰서기관 징역 9년 벌금 14억 추징금18억

    조희팔 측 17억 받은 전 검찰서기관 징역 9년 벌금 14억 추징금18억

    대구고법 제1형사부(부장 이범균)는 16일 희대의 유사수신 사기범 조희팔 측에서 수사 무마 등 부탁을 받고 17억여원의 뇌물을 챙긴 대구지검 서부지청 오모(54) 전 서기관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검사와 피고인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과 같이 징역 9년에 벌금 14억원, 추징금 18억 6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직무와 관련해 대가성 있는 돈을 받았다는 점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충분히 입증됐다고 보인다”며 “일부가 자금 유치를 도와준 사례금 성격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볼 때는 뇌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이 1, 2심 재판 과정에 변명으로 일관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엄한 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뇌물 공여자 청탁에 따라 부정한 업무 수행으로까지 나아갔다는 증거는 제출되지 않은 점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오 전 서기관은 조희팔 은닉재산을 관리한 고철사업자 현모(54·구속)씨에게서 조씨 관련 수사정보 제공과 수사 무마 등 부탁을 받고 2008년부터 5년여 동안 수십 차례 현금과 양도성예금증서(CD) 등 15억 8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뇌물수수 정황을 감추려고 동업 계약에 따른 투자 수익금을 돌려받는 형식으로 돈을 받았다. 2008년 3월 조희팔에게서 290억원을 투자받아 김천 대신지구(삼애원) 도시개발사업에 참여한 장모(68·구속)씨에게서 2억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만 22년간 검찰 수사관 등으로 일한 오씨는 2007년 8월부터 2012년 7월 사이 대구지검 특수부 수사과 소속으로 조희팔 사건 등 범죄정보 수집·분석 업무를 담당했다. 그가 고철사업자 현씨를 조희팔에게 소개하고 개발업자 장씨가 조희팔 자금을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오씨는 “받은 돈은 대가성이 없고 직무 관련성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1, 2심 재판부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新국토기행] 섬 265개 모인 전남 완도

    [新국토기행] 섬 265개 모인 전남 완도

    전남의 서남단 끝자락에 자리한 완도군은 265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다. 육지보다 12배가 넘는 바다를 보유하고 있다. 제일 큰 완도 체도를 비롯해 고금도, 약산도, 평일도(금일읍), 신지도, 노화도, 보길도, 청산도 등 55개의 유인도와 210개의 무인도가 있다. 푸른 남해 위에 마치 구슬을 뿌린 듯 섬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완도군은 북서쪽에 있는 해남반도가 차디찬 북서풍을 막아주고 난류가 흘러 따뜻한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이 때문에 아열대 식물이 잘 자라 주도의 상록수림과 보길도 예송리의 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또 완도읍 정도리 해변은 모래 대신 둥글게 잘 닳아진 갯돌이 펼쳐져 있어 보길도 예송리의 자갈밭 해안과 더불어 독특한 해변으로 유명하다. 이뿐만 아니라 언제나 티 없이 푸른 청산도와 항일운동의 성지 소안도, 사계절 휴양지로 각광받는 신지명사십리해수욕장, 충무공의 혼이 깃든 고금도, 신비한 약초가 자생하는 약산도, 우리나라 최대의 전복 산지인 노화도, 고산 윤선도의 숨결이 서린 보길도 등 군 전체가 보석같이 빛나는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구성돼 있다. 완도는 신석기시대에도 사람이 살았음을 알려주는 조개무덤과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등이 산재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장보고 대사가 청해진을 설치해 당과 일본은 물론 멀리 페르시아만까지 해상 항로를 열어 무역하는 등 해상 왕국의 시대를 개척했다. [볼거리] ●보길도 윤선도 원림… 조선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 윤선도 원림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하고 있다. 윤선도 선생이 병자호란으로 인해 제주로 향하다 보길도 절경에 매료돼 머물며 조성했다. ‘어부사시사’ 등 주옥 같은 문학작품이 이곳에서 창작됐다. 고산은 낙서재 앞 미산(薇山)의 이름을 백이와 숙제의 고사에서, 미산 옆의 산봉우리 혁희대(赫羲臺)는 굴원의 옛 고사로부터 가져와 명명했다. 그는 부용동에서 생활하는 자신의 모습을 신선으로 승화시켜 중국의 선인인 희황에 자신을 비유하기도 했으며, 승룡대에 올라앉아 우화등선(사람이 신선이 돼 하늘로 올라감)하는 기분으로 시가를 읊기도 했다. 낙서재 입구에는 정자 세연정을 지었는데 고정원을 축조한 고산의 기발한 조경가적 수법을 볼 수 있다. 개울에 구들 모양의 판석으로 보를 막아 못을 만드는 특별한 방법으로 조성했다. 자연형의 계담과 사각의 방지가 세연정을 중심으로 양쪽에 있다. 이곳에서 고산은 바다를 바라보며 ‘어부사시사’를 지었고,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가야금을 타며 계담에 배를 띄우고 낚시를 하기도 했다. 세연지에서 1㎞쯤 올라가면 낙서재 터 건너편 산 중턱에 동천석실이 있다. 해발 100m 정도에 있는 석실에는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대 및 희황교 유적이 있다. 동천석실은 부용동 원림의 중심 건물인 낙서재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특히 아름답다. 앞산의 우거진 숲 사이에 자리한 바위 위의 조그마한 단칸 정자가 날 듯이 올라앉아 있는 동천석실의 모습은 신비스러운 느낌을 갖는다. 또한 이곳은 정자에 올라 부용동 전경을 내려다보는 전망 위치로도 으뜸이다. ●완도수목원… 국내 유일 난대수목원 완도수목원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국내 유일의 난대수목원’이다. 규모는 2050만㎡에 달하고, 3830종의 수목유전자원을 갖고 있다. 인간의 삶과 산림의 효능에 관한 모델 제시로 질 높은 산림·문화·휴양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설립됐다. 주요 난대수종으로 완도호랑가시나무,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황칠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감탕나무, 녹나무, 이나무 등이 있다. 183과 3801종이 있다. 난대성 목·초본 등 희귀식물 750여종이 자생한다. 아열대·온대 교차지에 다양한 식물이 분포해 학술적 가치가 높은 수목원이다. 종합 산림전시·교육·연구·관광자원지이다. 수목원에 들어서면 좌측에 있는 넓은 대문리저수지와 수변 데크가 방문객들을 아름다운 경치 속으로 안내한다. 주요 시설물로 교육관리동, 산림박물관, 아열대 온실, 산림환경교육관, 전망대 등이 있다. 방향식물원, 수생식물원, 녹나무과원, 참나무과원, 외래소원 등 총 21개의 주제원으로 구성됐다. 계곡 쉼터를 마주 보며 위치한 산림박물관은 4개의 전시공간과 휴게실을 비롯해 기획전시실이 구비된 난대림 전문박물관이다. 열대·아열대식물원에는 야자류, 관엽식물류, 열대·아열대 과일류, 허브, 초화류 등 200여종에 달하는 식물자원이 있다. 금호나 펜타금과 같은 선인장류와 알로에, 용설란과 같은 다육식물 등을 보유한 다육식물원에는 300여종의 식물자원이 있고 온실 안에도 총 506종의 식물자원이 전시 및 보존·관리되고 있다. ●청해포구 촬영장… ‘명량’ 사극 촬영 명소로 각광 최인호의 역사소설을 원작으로 한 특별기획 드라마 ‘해신’과 ‘추노’, ‘대조영’, ‘주몽’, ‘태왕사신기’, ‘근초고왕’, ‘정도전’, 영화 ‘명량’ 등 50여편의 수많은 인기 드라마와 영화 등이 촬영되는 등 영상종합문화센터로서 지속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청해포구 세트장은 5만㎡의 규모로 청해진 본영을 비롯해 객사, 저잣거리, 양주, 청해포구, 양주일각, 해적 본거지인 진월도 등 본영 17동을 비롯한 59동의 건물이 있다. 촬영장 곳곳에는 교육과 체험에 필요한 자료들이 있다. 1만여년 전에 화석으로 변한 규화목, 수십 종의 각종 수목과 분재, 석상, 사진자료 등의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는 교육과 체험의 공간이다. 촬영장 내에 예스러운 초가지붕 저잣거리와 토끼, 꿩, 앵무새, 칠면조, 공작새, 물고기와 각종 조류, 가축 등이 있어 먹이를 주며 동물들과 친해질 수 있다. 이곳에선 과거의 생활유물인 탈곡기·풍금 등과 선조들이 놀이한 투호·널뛰기 등 전통 민속놀이, 각종 농기구, 절구, 맷돌, 탈곡기, 다듬이 등 농경 및 생태체험을 할 수 있다. 입장한 관광객은 드라마전시관, 곤장 체험, 굴렁쇠 굴리기, 다듬이질, 물지게 체험, 손바닥 씨름, 윷놀이, 절구 체험, 제기차기, 지게 체험, 작두펌프 등을 무료로 체험하고 관람할 수 있다. 조각공원 포토존에서 행복한 추억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정도리 구계등… 통일신라 황실 녹원지로 지정 통일신라시대 황실의 녹원지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구계등은 크고 작은 돌이 모여 아홉 계단을 이루고 여기에 파도가 밀려와 아름다운 해조음을 온종일 관광객들에게 들려준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다와 숲의 신록이, 겨울에는 일출과 일몰이 일품이다. 후사면에는 수령 100년 이상의 소나무·참나무·후박·팽나무 등 40여종의 상록활엽수가 자라고 있으며 숲속 탐방로가 잘 갖춰져 있어 자녀들과 함께 쉽게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다도해 일출공원과 완도타워… 저녁엔 환상적인 레이저쇼 365일 일출과 일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다도해의 중심에 우뚝 솟아 ‘관광 완도’의 상징이 되고 있다. 완도타워는 첨탑까지 76m로 지상 2층과 전망층으로 돼 있다. 1층은 특산품 전시장, 크로마키 포토존(영상 합성사진), 휴게공간, 휴게 음식점 겸 매점, 영상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영상시설은 ‘건강의 섬’, ‘슬로시티’, ‘완도의 소리’를 주제로 완도를 상징하는 여러 가지 영상과 소리로 관람객들에게 완도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마련했다. 2층은 이미지 벤치, 포토존, 완도의 인물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전망 데크에는 완도의 인물인 최경주 선수와 장보고 대사를 모형으로 제작해 관람객들에게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전망층에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모습을 촬영한 영상 모니터와 전망 쌍안경이 있다. 완도타워는 야간에 경관 조명이 켜지고, 환상적인 레이저 쇼를 연출한다. ●청산도 슬로길…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인증 청산도는 이름 그대로 푸른 섬이다. 맑고 푸른 다도해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예로부터 신선들이 산다는 ‘선산’ 또는 ‘선원’이라고도 불렸다. 2007년 12월 이탈리아에 본부를 둔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인증받았다. 청산도 슬로길은 주민들의 마을 간 이동으로 이용되던 길로서 풍경에 취해 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해서 슬로길이라 이름 붙여졌다. 전체 11코스 17개 길, 총 42.195㎞에 이르며 길에 얽힌 이야기와 어우러져 걸을 수 있다. 청산도 슬로길은 2011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세계 슬로길 제1호’로 공식 인증을 받았다. 2013년에는 조상들의 지혜와 애환이 담긴 청산 ‘구들장 논’이 과학적인 영농기법으로 인정돼 국가 중요농업유산 제1호로 지정됐으며 2014년 3월 우리나라 최초 유네스코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군은 슬로시티 인증을 계기로 청산도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슬로시티로 가꾸고 있다. 세계적 브랜드 창출과 관광상품으로 연계해 나가는 등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먹거리] 완도에 전복만 있다라면 섭하당께 ●완도 대표상품 전복… 전국 생산량의 81% 차지 완도는 전국 전복 생산량의 81%를 차지한다. 완도 전복의 맛과 영양은 깨끗한 바다와 다시마, 미역 등 건강한 먹이에서 나온다. 겨울에는 7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여름에는 28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 맑은 바닷물 수온이 전복의 맛을 좌우한다. 전복은 약리작용도 탁월해 궁중요리에 빠뜨릴 수 없는 진상품이었다. 저지방 고단백 식품으로 분류된다. 전복은 회, 구이, 찜, 죽 등 다양한 형태의 보양식으로 먹는다. ●천연 약초 먹고 자란 약산 흑염소… 궁중 진상품으로 알려져 약산 흑염소는 천연의 약초를 먹고 자란 야생의 보약이다. 약산 흑염소가 유명한 이유는 삼지구엽초를 비롯해 갖가지 약초를 뜯어먹으며 자라기 때문이다. 130여종의 천연약초가 자생하는 섬 약산면 조약도의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키우기 때문에 궁중 진상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염소 떼는 방목 형태로 키워져 온 산을 헤매며 약초를 먹고 자란다. ●의사 못잖은 웰빙 먹거리 ‘비파’… 기관지염 예방에 특효 완도 비파는 맛과 향이 뛰어나고 항산화, 피로회복 등의 효능을 갖춰 웰빙 먹거리로 각광을 받는다. 겨울에 꽃을 피우는 비파는 생명력이 강해 예로부터 ‘집 마당에 비파나무가 한 그루 있으면 집안에 의사가 2명이다’는 말이 전해진다. 비파 열매는 기침, 천식, 가래, 기관지염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으며 갈증 해소에도 탁월하다. 비파 잎을 달여 차로 마시면 신경증을 완화하고 기억력 개선이나 면역력 향상, 비만·당뇨·고혈압 개선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생제 안 쓰는 친환경 광어 양식… 전국 생산량의 30% 광어는 우리나라 전 연안을 비롯해 쿠릴열도, 사할린, 일본 및 중국 연안에 분포하나 국내에서는 양식산이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완도 광어는 바닥이 맥반석과 지반초석으로 이뤄진 청정바다에서 키운다. 수분 단백질, 지질 함량이 높아 항생제를 쓸 필요가 없는 친환경적으로 양식, 소비자 신뢰를 얻었다. 완도지역 광어 양식 규모는 연간 1300여t, 1700억원대로 전국 생산량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완도 광어는 비린내가 적고 쫄깃한 육질과 단맛으로 유명하다. 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와인 박사’ 육철 영동대 교수 제자들 위해 9000만원 쾌척

    ‘와인 박사’ 육철 영동대 교수 제자들 위해 9000만원 쾌척

    ‘와인박사’로 불리는 충북 영동대학교 와인발효·식음료서비스학과 육철(56) 교수가 제자들을 위해 통 큰 기부를 했다. 15일 영동대에 따르면 육 교수가 영동대 학교법인 금강학원에 대학발전기금 9000만원을 기탁했다. 금강학원은 이 기금을 영동대학생 장학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영동대 개교 2년 후인 1996년부터 영동대 교수로 재직한 육 교수는 제자들을 위해 뜻깊은 일을 하고 싶다며 10년 전부터 돈을 모아 온 것으로 전해졌다. 육 교수는 영동군의 포도·와인산업 성장을 주도해 지역에서 ‘와인박사’로 통한다. 그는 1999년 충북 제1호 대학교 벤처기업인 ‘영동대벤처식품’을 설립하고, 와인아카데미를 통해 다수의 와인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04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선정, 지난해엔 농업·농촌 발전에 이바지한 유공자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영동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조양호 회장 일가, 한진칼 유상증자 참여한다

    조양호 회장 일가, 한진칼 유상증자 참여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한진칼은 조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부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등 특수관계인 7인이 유상증자에 나선다고 15일 공시했다. 출자금액은 174만 587주로 총 247억 1600만원(주당 1만 4200원) 규모다. 총 증자액(908억원) 중 27.2%로 기준 지분율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증자에 참여했다. 따라서 조 회장 일가의 지분율에는 변동이 없다.  이번 유상증자는 최근 한진해운 채권단이 요구하는 대주주 고통분담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 2월 한진해운이 보유한 해외 상표권 1100억원어치를 사들이면서 발생한 단기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한진칼은 지난 3월 말 신용등급이 A-에서 BBB+로 떨어지면서 회사채 발행이 어렵다고 보고 4월부터 유상증자를 진행해 왔다.  조 회장은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지난 14일 한진그룹 계열사인 정석기업 보유 주식 8만 4530주를 251억 300만원(주당 29만 6966원)에 처분했다. 한진그룹도 “이번 유상증자 참여는 책임경영의 일환이며 한진해운 지원 목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유동성 위기를 겪는 한진해운이 연말까지 1조원대의 운영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알려져 그룹 차원의 지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경우 한진칼보다는 한진해운 대주주인 대한항공이 총대를 멜 것으로 보인다. 신지윤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진칼이 또 다시 유상증자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대한항공이 한진해운에 자금 지원을 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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