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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플러스] 자연미인 만드는 ‘약손’… 세계 테라피 시장 ‘손짓’

    [인터뷰 플러스] 자연미인 만드는 ‘약손’… 세계 테라피 시장 ‘손짓’

    한국의 미용 산업의 글로벌화를 뜻하는 ‘K뷰티’는 어느새 ‘K팝’과 더불어 세계 한류를 이끄는 양대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에스테틱 그룹 ‘약손명가’(회장 이병철)는 K뷰티의 흐름을 주도하는 한류 기업 중 하나다. 화장품이나 미용 성형이 아닌 독창적인 테라피 기술로 일본·중국·싱가포르 등 아시아 각국의 부유층을 사로잡았다. 일본에서는 이미 유명 연예인들이 받는 테라피로 알려져서 약손명가의 기술을 소개한 책이 20만권 넘게 팔릴 정도다. 약손명가 테라피의 핵심인 ‘약손 테라피’는 1979년 이병철 회장이 직접 창안한 요법이다. 아시아 대표 테라피 브랜드가 된 약손명가는 지난해 베트남에 진출해 또 한 번 큰 성공을 이뤄냈다. 2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한 뒤 계속해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 테라피 산업의 중심을 한국으로 옮겨오고 있는 이병철 회장에게 베트남 진출 성과와 약손명가 테라피의 미래 가능성을 직접 들었다. 편집자 주→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는 약손명가의 베트남 진출이 이슈입니다. 베트남 진출에 힘을 쏟은 이유가 특별히 있습니까. -해외 진출은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일본 진출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필리핀, 중국 등에서 약손명가 테라피가 인정을 받고 있죠. 베트남은 특별히 한국적인 특성이 많은 나라입니다. 또 부유층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신흥 경제국이고요. 그러나 경제 성장 속도에 비해 아직 소비할 문화상품은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다 보니 부유층 사람들은 자신을 가꾸는 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요. 우리 약손명가의 테크닉이라면 승산이 있겠다 싶어서 진출했는데 1년 만에 하노이 8곳, 호찌민 2곳 등 10개점이 오픈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처럼 부유한 핵심 지역을 중심으로 하나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자신들의 정통 마사지를 관광상품으로 내세울 만큼 테라피 강국인데요. 어떤 강점으로 차별화를 하셨나요. -우선은 약손명가의 ‘약손 테라피’ 테크닉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이건 일반 마사지가 아니고, 얼굴을 손으로 만져서 작게 만들어주는 ‘수기 성형’ 개념입니다. 전혀 다르면서 효과를 즉각 체감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최고의 마케팅 요소가 됩니다. 어느 나라든 부자들은 많은 테라피를 다 받아보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정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걸 경험하는데 거기서 큰 효과를 느낀다면 당연히 소문이 납니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끌었지요. 저희는 한국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스태프들이 직접 베트남에 점장·실장으로 오기 때문에 서비스 품질 관리 측면에서도 만족도를 높일 수 있었고요. 또 현지화에 강점이 있었습니다. 베트남의 경우는 약손명가의 다른 해외 진출 파트와 달리 현지 기업이 체인점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서비스 운영은 저희가 하되 사업적인 부분은 현지 기업에서 진행합니다. 그 회사가 베트남 상장회사예요. 이미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베트남에 도입해서 큰 성공을 거둔 회사라서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도도 높습니다. 충분한 서비스 기술력과 현지 회사의 경험이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진출 단계가 아닌 완전한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난해 진출해서 손익분기점에 2개월 만에 도달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베트남에서 일할 한국 스태프들이 부족해서 확장 속도를 조절하고 있어요. 베트남 기업에서는 1년에 20~30개씩 확장을 해서 100개를 만들고 싶어 하는데, 저희가 인력 공급을 그만큼 하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속도를 못 내고 있는 상황이죠. →고용 창출로도 굉장한 성과입니다. 베트남뿐 아니라 모든 해외지점에 한국 직원들이 나가는 건가요. -현재 저희가 6개국에 나가 있는데, 일본과 중국은 직영을 하고 다른 국가들은 체인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체인 형태라고 해도 테라피 서비스는 한국에서 가서 직접 하고 있어요. 이건 일반 피부관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더 성장하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뷰티 관련 전공자들을 많이 뽑고, 대학과 함께 약손명가 브랜드 학과를 만들어서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일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처음 해외에 진출할 때에는 어떠셨나요.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본 신주쿠에 처음 해외 1호점을 냈어요. 처음 부동산에 가서 ‘이누끼’를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피부숍을 하다가 망한 자리를 찾는 거였어요. 적어도 이전에 피부숍을 했던 곳이라면 장소도 나름대로 선정한 곳일 것이고, 인테리어도 어느 정도는 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던 거죠. 저는 일본을 잘 모르니까 그런 방법으로 자리를 찾았습니다. 1년 동안 일본을 계속 다니다가 결국 한 곳을 찾았고 그게 해외 1호점이 됐습니다. 여러 문제가 생겨서 인테리어도 거의 직접 했고, 공사장에서 철거하고 나온 합판을 가져다가 매장을 보수할 정도로 어렵게 문을 열었습니다. 다행히 결과는 ‘대박’이었죠. 지금은 일본에만 10곳 넘는 지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약손 테라피를 가르쳐서 보급할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현재까지는 해외에도 한국 약손명가 직원들이 직접 나가기 때문에 직원들 외에는 가르치지 않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걸 배우고 싶어서 요청하는 곳들도 많고, 외국에서 경복대나 여주대의 약손명가 학과에 유학을 하고 싶다는 문의도 많아서 방법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세계인들이 배울 수 있게 한다면 태권도와 같이 한국이 종주국으로서 아카데미를 열고 라이선스를 줄 수도 있을 겁니다. →끝으로 꿈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뷰티 쪽으로 공부를 하고 직업을 선택하는 친구들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싶습니다. 아주 공부를 많이 하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약손 테라피의 기술로 누구나 새로운 시대에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놔 주고 싶어요. 또 정말 우리나라가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테라피를 세계에 제시하는, 테라피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세계인들이 한국의 약손 테라피 라이선스를 받으러 우리나라로 온다고 하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제 개인뿐 아니라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약손명가 베트남 지점 하노이 1. Yakson Hoang Dao Thuy (황따오튀) 2. Yakson Nui Truc (누이쭉) 3. Yakson Dao Duy Anh (따오쥐아잉) 4. Yakson Tran Hung Dao (쩐흥따오) 5. Yakson Nguyen Huy Tuong (응우엔휘뜨엉) 6. Yakson Phung Chi Kien (풍찌기엔) 7. Yakson Ham Nghi (함응이) 8. Yakson Park Hill (파크힐) 호찌민 1. Yakson Nguyen Thi Minh Khai (응우엔티민카이) 2. Yakson Cach Mang Thang 8 (깍망탕땀)
  • ‘물의 도시 부산서 즐기는 봄의 축제’…부산국제연극제 18일 개막

    ‘물의 도시 부산에서 즐기는 봄 축제’ 제15회 부산국제연극제가 오는 18일부터 27일까지 영화의전당과 광안리해수욕장 등에서 열린다. 9일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국제연극제는 18일 오후 6시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열리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세계 10개국 24개 국내외 우수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올해는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아동극 프로그램을 신설했는데 이스라엘 극단 트레인 시어터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공연(타이니 오션, 테일러 메이드)을 한다. 부산국제연극제는 공연프로그램과 참여프로그램으로 나눠 구성된다. 공연프로그램으로는 국내외 우수 초청작품 7개국 7개 작품 공연과 제36회 부산연극제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및 해외 거리극 공연, 광안리 해변 거리극 경연대회 등이 관객을 맞는다. 참여프로그램으로는 시민 참여 10분 연극제, 폴란드 강사 초청 워크숍, 관객과 공연전문가의 만남의 장 ‘아티스트 토크’, 배리어프리(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 및 음성 해설 ) 특별공연 등이 마련된다. 올해 개막작은 일본 극단 ‘신주쿠 양산박’의 ‘맥베스’가, 폐막작은 브라질·프랑스 극단 ‘도자두’의 ‘그리토스’(Gritos)가 공연된다. 자세한 사항은 부산국제연극제 홈페이지(www.bipaf.org)를 참고하면 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20대, 우리는 재테크 대신 ‘현재테크’한다

    20대, 우리는 재테크 대신 ‘현재테크’한다

    직장인 이건우(29)씨는 최근 일본 여행 때 신주쿠의 한 중고 매장에서 빈티지컵을 샀다. 빈티지컵이란 1980~1990년대 음료회사에서 홍보용으로 나눠주던 로고 컵을 말한다.빈티지컵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싼 건 3000원도 안 하지만 구하기 힘든 한정판일수록 값이 비싸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기념으로 출시된 ‘호돌이’ 캐릭터 컵은 4만~5만원을 호가한다. 한국 돈 5000~8000원을 주고 컵 7개를 구매한 이씨가 생각하는 빈티지컵의 매력은 ‘투박함’이다. 이씨는 “요즘 나오는 세련되고 깔끔한 무늬의 컵과는 다른, 옛날 컵만의 특이한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면서 “옛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런 매력 때문에 실제 소셜미디어(SNS)에서도 빈티지컵은 인기다. 인스타그램에서 ‘빈티지컵’을 검색하면 3만 건 이상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인스타그램에 빈티지컵 사진을 꾸준히 올리는 정재희(28)씨 역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다가 옛날 컵 모양에 반해 모으기 시작했다”면서 “어릴 때 자주 먹던 음료수 컵이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다. 정씨가 이때까지 모은 컵은 60여개.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지만, 나중에 카페를 차릴 때 이 컵들을 쓸 생각이다. 이씨는 한정판 레고 블록을 사모았다가 비싼 값에 되파는 레테크(레고와 재테크의 합성어)족이었지만 최근 유행하는 레트로(복고주의) 문화에 관심이 생기면서 수집 품목이 늘었다. 한 분야에 심취하는 취미생활을 뜻하는 ‘덕질’과 돈벌이를 동시에 한다는 점에서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면바지에 핫팩 붙이고…‘아이돌 굿즈’ 대리 구매로 일당 10만원 재테크 대신 ‘현재(現在)테크’를 하는 20대가 늘고 있다. 펀드, 적금 등 기존 공식을 무작정 따르기보단 지금을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방법을 선호한다. 이씨처럼 희소가치가 있는 물건을 수집했다가 되파는 방식으로 재테크를 하는 사람도 있다.기존에는 피규어, 레고가 대표적인 ‘현재테크’의 품목으로 꼽혔다. 피규어를 모은 지 3년째라는 신상우(26)씨는 사고 팔기를 반복해 차익을 얻는다고 말했다. 신씨는 “마블 영화 ‘어벤져스 1’ 버전 호크아이 제품은 발매가 17만 8000원에 사서 33만원에 판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씨 역시 ‘MISB’(미개봉 신품을 뜻하는 은어)를 빨리 사서 가격이 오르면 되파는 방식으로 레테크를 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앤 여왕의 저주’ 레고 컬렉션을 30만원에 사서 다 뜯고 조립을 했는데도 1년 후 구매가보다 3만원 더 비싸게 팔았다. 일반적인 제품은 한 번 개봉하면 중고 판매 가격이 확 떨어지지만, 레고 같은 한정판 제품은 가격이 유지된다는 게 장점이다.아이돌 굿즈(상품), 평창 올림픽 굿즈 등 희귀한 상품이면 뭐든지 20대의 ‘현재테크’ 품목이 된다. 아이템을 사려는 사람이 몰려 프리미엄이 붙으면 남는 장사가 된다. 굿즈가 나오면 대량 구매한 후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것이다. 굿즈를 대신 구매한 뒤 3000원 가량의 수고비를 받고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한 아이돌 팬은 “한겨울에도 수면바지에 핫팩을 붙이고 몇 시간씩 기다리며 굿즈를 사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는데, 하루에 수고비로 버는 총액이 10만원이 넘더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콘서트 때 응원봉을 잠깐 빌려주고 돈을 받는 사례까지 생겨났다. ●“오늘의 내가 있어야 미래의 나도 있다” 20대가 새로운 재테크를 지향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치관의 변화에 있다. ‘인생은 한 번뿐’이란 뜻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는 현재를 소중히 여기는 20대의 가치관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막연한 미래에 대비하려고 적금을 붓고 돈을 절약하는 대신 지금 좋아하는 일에 과감히 돈을 쓰고, 이런 취미를 통해 부가소득을 얻는 것을 합리적인 경제생활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호영성 대학내일20대연구소 연구원은 “오늘날 20대는 집, 차 등 막연한 미래보다는 당장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선호한다”면서 “스마트폰 어플이나 중고시장처럼 물건을 쉽게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20대가 특이한 재테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대학내일 20대연구소에서 만 19~34세 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71.3%)이 재테크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적금, 펀드 등을 계획적으로 운용하는 20대도 적지 않다. 반도체 관련 회사에서 일하는 라연경(27)씨는 직업 특성상 미래가 불안정해 꾸준히 저축을 한다. 라씨는 “월급의 일부는 고정 장기 적금을 넣고, 상시 상여금 50%는 수익률 높은 펀드에 투자한다”면서 “남은 상여금 50% 중 절반은 여행이나 운동 등을 위한 단기적금을 들고 나머지 돈은 나를 위해 쓴다”고 말했다.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결혼하려는 생각이 있는 설진웅(26)씨의 경우 결혼 자금을 모으기 위해 개인형 퇴직연금(IRP), 청약 저축연금, 부동산 신탁 등에 다양하게 투자하고 있다. 직업이 은행원이라 정보를 보다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취준생에겐 적금도 ‘그림의 떡’ 경제적 여유가 부족해 재테크가 어렵다고 말하는 20대도 있다. 취업 준비생인 최홍규(27)씨는 “여윳돈이 없다. 대학생 때는 적금을 꼬박꼬박 부었는데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적금을 깼다”고 말했다.3년차 직장인 홍승현(29)씨도 “투자할 종잣돈이 없으니 부동산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마땅히 할 만한 재테크를 못 찾겠다”면서 “펀드나 적금은 이자율이 낮아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렵고 남은 건 주식이나 비트코인인데 위험부담이 커서 무섭다. 결국 아무것도 안하고 얌전히 통장에만 모은다”라고 말했다. 입사 2년차 김유진(27)씨도 “사회 초년생이라 아직까지는 돈 쓸 데가 많다”며 재테크를 미뤘다. 김재휘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안하는 것도 있겠지만 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라는 것도 있다”면서 “저축만으로 미래가 보장된다고 하는 확실성이 적으니 현실에 더 집중하는 양상이 나타난 것”고 분석했다. 헬조선, 흙수저 등 구조적으로 패배감을 주는 세상에서 청년들은 자신과 현재에 집중하며 자신만의 재테크를 하고 있다. “오늘의 내가 있어야 미래의 나도 있죠.” 어른들이 보기엔 이상한, ‘컵 모으는 청년’들의 말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포토] 봄소식 들려오는 도쿄…‘벚꽃 놀이’ 한창

    [포토] 봄소식 들려오는 도쿄…‘벚꽃 놀이’ 한창

    26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교엔을 찾은 관광객들이 활짝 핀 벚꽃 아래에서 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특파원 생생 리포트] ‘범죄 온상’ 된 불법 민박…규제는 난센스

    [특파원 생생 리포트] ‘범죄 온상’ 된 불법 민박…규제는 난센스

    개정법 시행 앞두고 사업자 신고 받아 지자체 까다로운 규제에 음성 영업 기승 민박 금지 아파트 증가…음성화 부추겨일본에 불법 민박, 음성 민박 비상이 걸렸다. 오는 6월 민박 활성화를 위한 개정 주택숙박사업법(민박법)의 시행을 앞두고, 불법 민박, 지하 민박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민박 사업자에 대한 신고를 받는데, 벌써부터 까다로운 규제를 피하려고 신고하지 않고 몰래 영업하는 불법 민박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최근 오사카 시내 민박에서 일어난 일본 여성 살해 및 시신 유기 사건은 이 문제를 더 부각시켰다. 용의자로 체포된 미국인 바이락탈 에프게니(26)는 1월 말 일본에 온 뒤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민박을 전전하면서 살해와 시신 유기를 저지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고 최근 NHK 등은 전했다. 행정 감시를 피한 불법 민박이 범죄의 온상이 되기 쉽다는 우려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사회적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경찰은 오사카 시내에만 불법 민박이 최소 1만곳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후생노동성은 이미 영업 중인 도쿄의 민박 가운데 합법적인 물량은 20%인 2만곳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불법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민박 업자들이 신고 없이 음성 영업을 하는 이유는 자치단체들의 까다로운 규제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소음과 쓰레기, 이웃과의 마찰 등 민박 활성화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지자체 조례 등이 오히려 민박 음성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민박법은 생활 환경 악화를 막기 위해 지자체에 독자 조례 제정을 인정하고 있다. 도쿄 23개 구 가운데 80% 이상이 독자 규정을 검토 중인데, 더 까다로워지는 ‘추가조례’가 민박 사업자들의 등록 의욕을 꺾고, 민박 음성화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민박법은 영업일수 상한을 두어 연간 180일만 운영하도록 했고, 주거 전용 지역에서는 영업을 금요일부터 일요일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도쿄 신주쿠구 등 지자체들은 영업 일수 상한을 156일 등으로 하는 등 더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도쿄 시부야의 부동산업자 간다 미유키(46)는 “숙박 요일에 따라 제한하고, 총 영업일수 등을 법으로 묶는 것은 난센스”라고 반발했다. 민박에 관심을 가졌던 간다는 까다로운 지자체 조례를 이유로 6채의 아파트를 그냥 보통의 월정 임대 아파트로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아파트 주민회, 맨션 단지 등 지역공동체들이 자신들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민박을 금지하는 결정을 속속 내리고 있는 것도 역설적으로 민박 음성화를 부추긴다. 도쿄 맨션 관리업협회에 따르면 민박을 금지한 아파트 관리 조합은 80%를 넘었다. 지자체들도 민박 관련 전담 부서와 콜센터 등을 만들고 있지만, 늘어나는 민박 수에 비해 담당 직원이 턱없이 적은 것도 음성화를 막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글 사진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공장직원·화학도·공무원… 하루키처럼 ‘불현듯’ 작가 됐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소설집으로 출판계를 뒤흔든 무명작가가 있다. 소설집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이상 요다)를 쓴 김동식(33)씨다. 지저세계, 외계인 침공, 말하는 목각 인형, 손가락이 열두 개인 신인류 등 만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의 서늘한 이면을 짚어낸 짧은 글들을 모았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회색인간’은 약 두 달 반 만에 6쇄, 2만 2000부가 팔려나갔다. 유명 작가의 소설이 1만부를 찍기도 어려운 요즘 이례적인 흥행 성적이다.●‘누구나’ 소설가 될 수 있어김씨가 글쓰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래서 놀랍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2006년 서울에 올라왔다. 외삼촌의 권유로 서울 성수동의 한 주물공장에서 금형에 뜨거운 쇳물을 부어 단추, 지퍼, 액세서리 등을 찍어내는 일을 2016년 말까지 10년간 했다. 김씨는 2016년 5월 특별한 목적 없이 자주 들르던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오유) 공포게시판에 첫 번째 글 ‘이미지 메이킹’을 올렸다. 김씨의 말을 빌리자면 “엉망진창”인 소설이었지만 ‘다른 글도 보고 싶다’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평소 책을 거의 보지 않았던 김씨를 가르친 건 온라인 독자들의 댓글과 포털사이트였다. 김씨는 사람들이 오유 게시판에 올린 창작글을 통해 기승전결과 반전의 서사를 배우고, 인터넷에서 ‘글 쓰는 법’을 검색하며 작법을 익혔다. 김씨는 “공장에서 내가 만든 수만 개의 물건은 누가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올린 글을 본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 때문에 창작의 중독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2016년 5월 첫 작품을 올린 이후 김씨는 지금까지 360여편에 달하는 단편을 완성했다. “최소 3일에 1편씩은 쓴다”는 개인적인 원칙을 고수한 결과다.이 소설집을 기획한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는 “어느 시대든 소설이라는 것은 그 시대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김 작가의 등장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규정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최근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나고, 작가들이 (등단과 관련한) 물리적인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글쓰기에 대한 도전 자체가 무한대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작품의 질과 순정성 등 기본적인 것만 뒷받침되면 누구나 스타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설명했다.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지난 2월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초엽(25)씨는 최근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각각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습작을 한 지 2년 만에 거둔 성과다. 이번에 다른 수상작과 함께 책으로 엮어 나온 ‘관내분실’(허블)은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보관하는 도서관에서 분실된 엄마의 기록을 찾아나서는 딸의 이야기다. 과학적 공간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의 깊은 곳을 들여다본 이 작품은 “문장과 구성, 아이디어, 장르적 이해, 과학적 정밀함 모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김씨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것에 익숙했다. 글쓰기는 그의 생활방식이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고. 주로 에세이를 많이 쓰던 그는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과학책을 접하면서 새로운 글쓰기에 눈뜨게 됐다. 김씨는 “과학적인 소재를 이용해 인간 삶의 바깥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좀더 다양한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과학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소설 쓰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김씨는 작법서를 보면서 시험공부 하듯이 소설을 배웠다. 그는 “경험상 스스로 배우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소설”이라면서 “단순히 어떤 기술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늘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도전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누구나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업의 공무원이 소설이라는 모험에 도전장을 내민 경우도 있다. 현재 국회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에서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이수(52·본명 김종규)씨. 평탄한 생활에도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소설을 택한 그는 2009년 문화센터에 등록해 소설 작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과 주말을 글쓰기에 할애했고 노력 끝에 2013년 단편 ‘위대한 유산’으로 김유정신인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럼에도 무명의 작가가 글을 실을 수 있는 지면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소설 공모전에 꾸준히 작품을 투고했다. 세계문학상 본선에 오르면서 편집자의 눈에 띄었던 장편 ‘가토의 검’과 ‘갈때기 포트’(이상 나무옆의자)는 각각 2015년과 올해 세상 빛을 보게 됐다. 그는 “글을 쓰면 아무래도 나 자신의 과거를 끌어들이게 되기 때문에 예전에 겪었던 아픔이 떠오르지만 글은 끝끝내 내 삶에 위로를 건넸다”면서 “은퇴 후에는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소설 쓰기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회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와 추리를 접목한 소설을 집필하는 것이 목표다.●“침체된 문단 활력소로”비등단 작가·겸업 작가의 탄생은 침체된 문단에도 활력소가 될 만하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주류 문학 체계를 벗어나 동호회 등을 통해 자생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불현듯’ 작가가 됐다. 서른 살을 앞둔 1978년 도쿄 신주쿠 진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던 그는 문득 “재능이나 능력이 있든 없든, 아무튼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날부터 재즈 카페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한밤중에 부엌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79년 문예지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은 그의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가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밝혔듯 이처럼 소설은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매우 폭이 넓은 표현 형태”다. 거칠게 말하면 ‘아무나’ 작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아무나 작가’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기성 문단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일을 하다가 혹은 공부를 하다가 하루키처럼 ‘불현듯’ 도전한 소설 쓰기가 어느덧 자신의 삶이 됐다는, 최근 주목받는 작가들을 소개한다.
  • 공장직원·화학도·공무원… 하루키처럼 ‘불현듯’ 작가 됐다

    공장직원·화학도·공무원… 하루키처럼 ‘불현듯’ 작가 됐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불현듯’ 작가가 됐다. 서른 살을 앞둔 1978년 도쿄 신주쿠 진구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을 보던 그는 문득 “재능이나 능력이 있든 없든, 아무튼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그날부터 재즈 카페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한밤중에 부엌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79년 문예지 ‘군조’ 신인문학상을 받은 그의 첫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가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밝혔듯 이처럼 소설은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매우 폭이 넓은 표현 형태”다. 거칠게 말하면 ‘아무나’ 작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아무나 작가’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기성 문단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일을 하다가 혹은 공부를 하다가 하루키처럼 ‘불현듯’ 도전한 소설 쓰기가 어느덧 자신의 삶이 됐다는, 최근 주목받는 작가들을 소개한다.지난해 12월 발표한 소설집으로 출판계를 뒤흔든 무명작가가 있다. 소설집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이상 요다)를 쓴 김동식(33)씨다. 지저세계, 외계인 침공, 말하는 목각 인형, 손가락이 열두 개인 신인류 등 만화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의 서늘한 이면을 짚어낸 짧은 글들을 모았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회색인간’은 약 두 달 반 만에 6쇄, 2만 2000부가 팔려나갔다. 유명 작가의 소설이 1만부를 찍기도 어려운 요즘 이례적인 흥행 성적이다.●‘누구나’ 소설가 될 수 있어 김씨가 글쓰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래서 놀랍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2006년 서울에 올라왔다. 외삼촌의 권유로 서울 성수동의 한 주물공장에서 금형에 뜨거운 쇳물을 부어 단추, 지퍼, 액세서리 등을 찍어내는 일을 2016년 말까지 10년간 했다. 김씨는 2016년 5월 특별한 목적 없이 자주 들르던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오유) 공포게시판에 첫 번째 글 ‘이미지 메이킹’을 올렸다. 김씨의 말을 빌리자면 “엉망진창”인 소설이었지만 ‘다른 글도 보고 싶다’는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평소 책을 거의 보지 않았던 김씨를 가르친 건 온라인 독자들의 댓글과 포털사이트였다. 김씨는 사람들이 오유 게시판에 올린 창작글을 통해 기승전결과 반전의 서사를 배우고, 인터넷에서 ‘글 쓰는 법’을 검색하며 작법을 익혔다. 김씨는 “공장에서 내가 만든 수만 개의 물건은 누가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올린 글을 본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 때문에 창작의 중독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2016년 5월 첫 작품을 올린 이후 김씨는 지금까지 360여편에 달하는 단편을 완성했다. “최소 3일에 1편씩은 쓴다”는 개인적인 원칙을 고수한 결과다. 이 소설집을 기획한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는 “어느 시대든 소설이라는 것은 그 시대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김 작가의 등장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규정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최근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늘어나고, 작가들이 (등단과 관련한) 물리적인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글쓰기에 대한 도전 자체가 무한대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작품의 질과 순정성 등 기본적인 것만 뒷받침되면 누구나 스타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설명했다.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지난 2월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초엽(25)씨는 최근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각각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대상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습작을 한 지 2년 만에 거둔 성과다. 이번에 다른 수상작과 함께 책으로 엮어 나온 ‘관내분실’(허블)은 죽은 사람들의 기억을 보관하는 도서관에서 분실된 엄마의 기록을 찾아나서는 딸의 이야기다. 과학적 공간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의 깊은 곳을 들여다본 이 작품은 “문장과 구성, 아이디어, 장르적 이해, 과학적 정밀함 모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씨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것에 익숙했다. 글쓰기는 그의 생활방식이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고. 주로 에세이를 많이 쓰던 그는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같은 과학책을 접하면서 새로운 글쓰기에 눈뜨게 됐다. 김씨는 “과학적인 소재를 이용해 인간 삶의 바깥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좀더 다양한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과학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소설 쓰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김씨는 작법서를 보면서 시험공부 하듯이 소설을 배웠다. 그는 “경험상 스스로 배우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소설”이라면서 “단순히 어떤 기술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늘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도전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누구나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업의 공무원이 소설이라는 모험에 도전장을 내민 경우도 있다. 현재 국회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에서 입법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이수(52·본명 김종규)씨. 평탄한 생활에도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소설을 택한 그는 2009년 문화센터에 등록해 소설 작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과 주말을 글쓰기에 할애했고 노력 끝에 2013년 단편 ‘위대한 유산’으로 김유정신인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한 첫발을 내디뎠다.그럼에도 무명의 작가가 글을 실을 수 있는 지면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소설 공모전에 꾸준히 작품을 투고했다. 세계문학상 본선에 오르면서 편집자의 눈에 띄었던 장편 ‘가토의 검’과 ‘깔때기 포트’(이상 나무옆의자)는 각각 2015년과 올해 세상 빛을 보게 됐다. 그는 “글을 쓰면 아무래도 나 자신의 과거를 끌어들이게 되기 때문에 예전에 겪었던 아픔이 떠오르지만 글은 끝끝내 내 삶에 위로를 건넸다”면서 “은퇴 후에는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고 소설 쓰기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회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와 추리를 접목한 소설을 집필하는 것이 목표다. ●“침체된 문단 활력소로” 비등단 작가·겸업 작가의 탄생은 침체된 문단에도 활력소가 될 만하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주류 문학 체계를 벗어나 동호회 등을 통해 자생적으로 글을 써 온 아마추어들이 생산한 작품은 문학성과 규범성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기존 작품이 채우지 못한 부분을 채우며 한국 문학의 저변을 넓혀 왔다”고 설명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日, 잔업수당 없는 ‘재량노동제 입법’ 저지 시위

    아베 “재량노동자 근무시간 적어” 거짓 발언으로 드러나 반발 심화 “재량노동제 중단하라.” “밤마다 잔업을 강요하지 말라.” 휴일인 지난 25일 일본 도쿄 최대 번화가 중 하나인 신주쿠에서 수백명의 시민이 가두행진 시위를 벌였다. 차도까지 일부 점거한 시위대는 손팻말과 플래카드 등을 들고 아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량노동제 적용 대상 확대’가 원래 입법 취지와 달리 근로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위대 중에는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나가쓰마 아키라 대표대행도 있었다. 우에니시 미쓰코 호세이대 교수는 “대부분 사람들이 (노동을 선택할) 재량이 없고, 업무를 고를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장시간 노동이 증가할 것”이라고 시위대에 입법 저지를 호소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정권의 주요 시정 목표로 내건 가운데 곳곳에서 반대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재량노동 대상 업무의 확대를 비롯해 초과근무시간 상한 규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등의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재량노동제는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일한 시간에 비례해 수당을 주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정해 놓은 임금만을 지급하는 제도다. 정부는 수당을 더 벌기 위해 불필요하게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노동 관행을 없애고 노동자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뜻에서 제도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나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결국 수당 없는 노동시간만 늘어나게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거짓 데이터’ 사건까지 터졌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재량노동제 노동자의 근무시간이 일반 노동자보다 짧다는 데이터가 있다”고 국회에서 말했으나 실제로 그런 데이터는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베 총리가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를 했지만, 정부가 여론을 호도하려 했다는 비판까지 더해지면서 반발 수위만 높이는 꼴이 됐다. 실제로 25일 신주쿠 시위에 나온 도쿄도의 정보기술(IT) 회사 직원 다카하시 사토시(25)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적절한 데이터를 둘러싼 정부의 대응에 의문을 느껴 시위에 나왔다고 말했다. 사토시는 “이미 재량노동제로 근무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장시간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정부가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24~25일 전국의 유권자 57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재량노동제 적용 대상 확대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전체 응답의 57%로, 찬성 응답(18%)을 압도했다고 26일자에서 보도했다. 아베 내각을 지지하는 계층에서조차 46%가 “반대”라고 답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후생노동성은 제도 확대 등 시행시기를 당초 예정보다 1년 늦춰 2020년 4월로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야당은 법안 제출 자체를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태균 기자 windsea@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가깝고도 먼 일본의 맛, 야키토리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가깝고도 먼 일본의 맛, 야키토리

    부산이 고향이라고 하면 으레 듣는 것이 “바다가 가까워서 좋았겠네”라는 소리다. 살면서 바다가 가까워서 좋다고 느낀 적은 특별히 없었다. 집이 바닷가 근처가 아닌 이상 부산 사람이라도 바다 구경은 꽤 수고스러움을 요하는 일이다. 가까운 곳은 언제라도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먼 곳보다 잘 찾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서쪽으로는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서부터, 북쪽으로는 노르웨이, 남쪽으로는 적도 아래 인도네시아까지 부지런히 다녀 보았건만 정작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짧은 일정으로 도쿄를 방문한 건 말로만 듣던 일본의 수준 높은 외식산업과 식문화를 엿보기 위해서였다. 요리사의 눈으로 도쿄 구석구석을 다녀 보니 우리나라보다 10년은 앞서 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이탈리아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는 이탈리아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이 도쿄라고 한다. 그야말로 각국의 요리를 최고 수준으로 맛볼 수 있는 미식의 성지이지만, 정작 마음을 앗아간 건 엉뚱한 곳이었다.신주쿠 역 서쪽 출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모이데요코초’라는 골목이 있다. 직역하면 ‘추억의 골목’이라고 불리는 이곳엔 서너 평 안팎의 작은 꼬치구이(야키토리)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닭꼬치구이는 이미 익숙한 음식이지만 수십 가지로 세분화되어 있는 메뉴와 어수선하면서 동시에 묘하게 정갈한 분위기,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놀라운 미각 경험은 한국에서 흔히 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먹기 좋게 작게 자른 고기를 나무 꼬챙이에 꿰어 숯불이나 철판 등에 구워 내는 요리를 야키토리라 한다. ‘야키토리’의 ‘토리’가 닭을 뜻하기에 ‘닭꼬치’로 번역되지만 돼지고기나 소고기, 말고기를 이용한 꼬치구이도 모두 야키토리로 통용된다. 돼지고기, 특히 각종 특수부위를 이용한 야키토리는 도쿄를 중심으로 한 간토 지방의 명물이다. 믿기 어렵지만 일본에서는 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닭을 비롯한 소, 말 등 가축의 고기를 먹는 것을 금했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실은 생활에 쓸모가 있는 가축의 도살을 막기 위한 일종의 재산보호 차원의 이유가 컸다. 닭은 시간과 낯선 이의 침입을 알려 준다는 명목으로 식육이 금지됐다. 그렇다고 그동안 누구도 고기를 먹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사냥으로 잡은 야생동물이나 생선을 먹는 것은 허용됐다. 기록에 따르면 닭꼬치구이가 일본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17세기 무렵이다.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일본 땅에 상륙한 남만인을 통해 닭 요리법이 전해졌지만 대다수의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당시는 지금처럼 양계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닭꼬치구이는 지체 높은 분들이나 먹을 수 있는 고급 요리로 통했다. 야키토리가 저렴한 술안주의 대명사가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23년 벌어진 간토 대지진과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 저렴한 길거리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가 도쿄 시내 곳곳에 탄생했다. 간장과 설탕 대용으로 쓰는 사카린으로 만든 소스를 발라 구운 야키토리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육계 산업이 육성되면서 공급이 많아지자 닭은 저렴한 식재료로 자리잡았고 주로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쏟아져 나오는 역 근처에 야키토리 집들이 들어섰다. 퇴근 후 지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는 한 잔의 술과 어울리는 값싼 안주로 이만 한 것이 없었으리라. 요리의 관점에서 보면 야키토리는 매력적인 음식이다. 야키토리의 스타일은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소금과 양념(다레)이다. 재료 위에 가볍게 뿌려지는 소금은 원재료가 신선하고 좋을 때 빛을 본다. 양념은 각종 내장으로 만든 야키토리에 더 어울린다. 집집마다 비장의 양념 레시피가 존재하는데 대부분 간장과 된장, 설탕, 미림, 청주의 범주 안에서 만들어진다. 흥미로운 건 야키토리는 가게 수만큼 각각의 스타일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맛이나 스타일에 정답이 없듯 야키토리를 구워 내는 요리사들은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단지 소스를 얇게 펴 발라 굽는 곳도 있는 반면 된장과 미림을 푼 국물에 푹 담갔다가 간장을 발라 구워 내는 곳도 있다. 감칠맛을 내는 된장과 간장 그리고 단맛, 거기에 숯에 구워 풍미를 한층 배가시킨 야키토리는 공식으로 따지면 결코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제아무리 무적의 공식이라고 해도 야키토리를 굽는 기술과 정성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육즙을 많이 증발시키지 않으면서 동시에 타지 않고 속이 고루 익게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뜨거운 열원 앞에서 무서울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보이며 완벽한 야키토리를 굽기 위해 노력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 ‘장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야키토리 집이 수없이 많아도 같은 맛을 내는 야키토리 집은 없다고 한다. 디테일에 강한 일본인다움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도심에서 크고 오래된 나무를 보셨나요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도심에서 크고 오래된 나무를 보셨나요

    일본 도쿄 시내에 있는 신주쿠공원에 처음 갔을 때를 기억한다. 도쿄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붐빈다는 신주쿠의 중심에 있는 공원. ‘도심 공원에 있는 나무가 얼마나 크겠어.’ 별 기대 없이 정문을 지나 공원에 들어섰을 때 눈앞엔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숲처럼 울창한 모습으로 펼쳐졌다. 높이가 15m는 되어 보이는 튤립나무와 잎갈나무,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 이곳의 거대한 나무들을 올려다보면서, 그리고 나무 아래 붙어 있던 나무에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문을 보면서 나는 어쩐지 서울의 나무들이 떠올랐다.나는 우리나라에서 나무에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문을 본 적이 없다. 그건 올라갈 만큼 큰 나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쟁과 일본의 침략을 겪으며 우리나라에 터를 잡고 오래전부터 살아온 나무들은 과거 모조리 베어져, 현재 도시에 있는 대다수의 나무는 심어진 지 불과 오십 년도 채 안 된 젊은 나무들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베어진 우리나라 나무들을 생각하니, 어쩐지 그들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돌아가면 얼마 안 남은 오래되고 거대한 나무들을 그림으로 기록해야지.’ 이럴 때마다 나는 식물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된다.수많은 전쟁과 외부의 침입,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우리나라의 나무들은 주기적으로 심어지고 베어지고, 심어지고 베어지고를 반복해 왔다. 전쟁을 치르고 배고픔에 허덕이던 우리나라 국민은 쓸모가 많아 값어치 있던 곳곳의 소나무들을 베어야 했고, 한반도를 수탈하던 일본은 우리나라의 국화이자 상징인 무궁화를 모조리 베었다. 무궁화는 수백년을 살 수 있는 나무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수백 년 된 무궁화 나무가 없다.오래전 나무는 가난했던 우리에게 식량이었고, 땔감이었지만 제국주의 일본에는 식민지를 지배하는 데 거슬리는 생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무는 베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슬픈 역사 속에서 고맙게도 몇몇 나무는 꿋꿋이 살아남았다.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지키는 정자목인 느티나무와 소나무, 절 마당의 은행나무와 같은 나무들 말이다. 다른 나무들이 베어지는 동안 느티나무는 마을 수호신인 정자목으로서 수백년간 꿋꿋이 살아남았다. 정자목에는 혼이 깃들어 있어 함부로 베면 그 사람에게 해가 간다는 소문 덕분에 유독 이들은 베어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살아왔다는 것보다는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이런 크고 오래된 나무의 존재를 소중히 여겨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을 보호수로 지정해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형이 아름답고, 크고, 희귀하고, 오래된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한다. 그리고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보호수 중 가장 많은 수종이다. 내가 사는 남양주에는 300년 된 느티나무가, 저 먼 부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1300년 된 느티나무가 살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오래되고 거대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나무는 ‘헤리티지 트리’로 관리되고 보호받는다. 몇 년 전 세계적 식물연구기관이자 식물 문화가 가장 많이 발달한 영국의 왕립식물원인 큐가든(Kew Royal Botanic Gardens)에서는 그곳을 울창하게 만든, 100년 이상 된 오래되고 거대하고 역사적인 나무 개체들을 그림으로 기록해 ‘헤리티지 트리’라는 책으로 엮고, 동명의 전시도 열었다. 사람들은 이 책과 전시의 그림으로 얼마나 다양한 나무들이 우리 곁에 오래도록 살아왔는지, 그들이 그 긴 역사 동안 어떤 형태로 진화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미세먼지나 황사와 같은 공기오염 문제를 겪으며 요 몇 년 새 우리나라 사람들도 나무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나무 심는 회사들이 하나둘 생기고, 어린 학생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을 딴 나무숲을 만들고 휴일이면 전국의 학생들이 모여 나무 심기 운동을 한다. 우리나라 역사 속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풍경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나무 심기 운동을 하는 동안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아파트를 짓기 위해 산속의 소나무를 베어내고, 불타버린 숭례문을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오래된 숲의 금강소나무를 베어내고, 열매의 냄새가 지독하다며 가로수인 은행나무를 베어내고 있다. 우리는 나무를 심으면서 또 나무를 계속 베어낸다. 느티나무를 그리려 삼백년 동안 살아온 느티나무의 거친 수피를 만지면서, 두터운 잔가지들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이들이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상상할 수 있다. 긴 시간을 지나 그 어느 존재보다 묵직하고 강인한 힘을 축적해 온 나무들. 나는 그들을 더 오래 바라보고 싶다. 작업실 창문 밖으로 재작년 어느 수목원에서 사와 심은 어린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보인다. 오십년 즈음 후에도 이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잘 살고 있을까. 자라고 또 자라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된 이들을 저만치 올려다볼 그날을 상상해 본다.
  • [특파원 생생 리포트] 관광객 몰려드는데… 지자체는 왜 민박영업 제한할까

    [특파원 생생 리포트] 관광객 몰려드는데… 지자체는 왜 민박영업 제한할까

    도쿄 신주쿠 평일 영업 제한 조례 통과 교토 3월부터 버스 일일패스 가격 인상“관광객도 싫다. 방해받지 않고 조용하게 살고 싶다.” 오는 6월 15일 주거전용지역에서도 민박 영업을 가능하게 하는 ‘주택숙박사업법 개정안’(민박법) 시행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2869만명으로, 전년보다 19.3%나 늘었다. 해마다 기록을 갈아치우는 외국 관광객들의 수는 경제활성화 차원에선 반가운 일이지만, 일부 지역 주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한다. “주택가에 민박을 허용하면 치안이 나빠지고, 청결과 소음 문제도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지역 주민들이 “민박에 대해 엄격한 제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하자 지자체들이 이에 호응해 속속 민박에 제한을 가하는 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민박법은 일정 조건이 갖춰지면 연간 180일까지 신고만으로 주택이나 아파트 빈방을 유료로 빌려주는 ‘민박 영업’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소음 등 생활환경 악화 등이 예상될 경우 지자체가 조례 등으로 구역 등을 정하고 영업 시간 등을 제한할 수 있게 했다. NHK는 최근 “140여개 지자체 가운데 생활환경 악화 방지를 이유로 조례로 민박에 제한을 가하려는 지자체가 42%에 달했다”고 전했다. ‘유흥 1번가’ 가부키초, 한인 타운인 신오쿠보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도쿄 신주쿠구는 주거 전용 지역에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민박 영업을 제한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아사쿠사, 우에노 등 명소를 끼고 있는 도쿄 다이토구는 집주인이 같이 거주하지 않는 경우 월요일 정오부터 토요일 정오까지 영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만들었다. 집주인이 주변에 없으면 외국인 관광객들로 인한 소음과 쓰레기 처리 등을 즉각 해결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또 민박 사업자가 반경 110m 이내의 학교·탁아소 등에 대한 사전 통보 등 양해를 구하도록 하는 절차도 의무화하기로 했다. 구 전역을 민박 제한 구역으로 지정한 다이토구는 이런 내용의 조례안을 2월 구의회에 제출한다. ‘관광의 섬’ 홋카이도도 집주인이 주변에 살지 않는 민박으로 초·중·고 주변 100m에 있을 경우 수업 있는 날에는 민박 영업을 제한하기로 했다. 일본식 전통 호텔인 료칸 등이 밀집한 온천 휴양지 가루이자와 마치는 지역 전역의 민박 금지를 나가노현(県)에 요구했다. 현은 “별장지 주변에 관리자가 상주하지 않는 형태의 민박만 규제한다”는 입장이다. 가마쿠라, 교토 등 전통 관광지의 경우 민박이 허용되면 외국 관광객 유입이 더 늘어 지역 주민과의 시비, 교통 혼잡, 환경 훼손 등을 야기할 것으로 고민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외국 관광객이 3배가 늘어난 ‘천년의 수도’ 교토시는 지상의 유동 인구를 지하철로 유인하기 위해 오는 3월부터 버스 일일패스 가격을 올린다. 인구 17만명의 가마쿠라시 관계자는 “연 관광객이 2000만명이 넘어 더이상 수용이 불가능하다”며 ‘관광공해’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글 사진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하루키는 아니어도…일본계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에 흥분한 日

    하루키는 아니어도…일본계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에 흥분한 日

    일본계 영국인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63)가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일본이 흥분하는 모습이다.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속보를 통해 이시구로 작가와 일본과의 인연 등을 강조했다.NHK와 교도통신은 이날 이시구로 작가의 수상 소식을 신속하게 보도하면서 작가와 일본의 인연, 과거 인터뷰, 시민들의 반응 등을 전했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이시구로 작가는 5살 되던 해 아버지가 영국국립해양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이직하면서 영국으로 이주했다. 일본계이긴 하지만 그는 현대 영미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다. NHK는 이날 수상 직후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의 출생지인 나가사키를 포함해 거리 시민들의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서점의 분위기를 소개하며 수상 발표가 나오자마자 작가의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도쿄 신바시역에서 인터뷰한 한 남성은 “일본인으로서 자랑”이라며 “(작품을) 읽은 적은 없지만 읽고 싶다”고 말했다. 나가사키의 한 시민은 “나가사키 출신이 노벨문학상을 타서 자랑스럽다”며 “두근두근하다”고 기뻐했다. NHK는 도쿄 신주쿠 한 서점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이 서점이 수상 발표 직후 이시구로 작가의 작품을 모은 코너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해당 서점은 당초 노벨상 수상이 유력시되던 무라카미 하루키 코너를 마련했지만, 수상자 발표 이후 이시구로 작가의 작품을 급히 모아 전시하고 있다. NHK는 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인터뷰 장면을 편집해 방송하기도 했다. 이시구로 작가는 과거 인터뷰에서 “(일본에 와서) 거리를 걷고 식사를 하니 어릴 적 일본의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 있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일본과의 인연을 말했다. 교도통신은 “사전 예상에서는 상위에 오르지 않았던 나가사키 출신 영국인 소설가가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보도하며 “당연히 수상해야 할 작가인데, 좀처럼 하마평에 오르지 않았었다”는 출판사 관계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한 서점 관계자는 “예상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였다”며 “수상자의 이름을 듣고 재고를 검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신속하게 호외를 만들어 거리에서 배포했다. 아사히는 이시구로 작가의 작품 중 ‘창백한 언덕 풍경(1982년)’과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1986년)이 일본을 무대로 하고 일본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라고 소개하며 그가 일본어는 못하지만 일본 영화를 좋아해 일본 영화 감독 오즈야스지로의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날 이시구로 작가의 수상 소식과 관련해 “일본에도 많은 팬이 있다. 함께 축하하고 싶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公슐랭 가이드] 서초동 식당골목, 화끈한 젊음의 그곳

    [公슐랭 가이드] 서초동 식당골목, 화끈한 젊음의 그곳

    양복 차림의 남자 어른들로 북적이는 서울 서초동 식당골목의 점심시간. 이들이 복국집과 보리굴비집 사이에서 고민하는 동안, 아직은 ‘초딩 입맛’을 포기하지 못한 20·30대 직원들이 모이는 곳은 따로 있다. 식사를 마친 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는 달콤한 캐러멜 마키아토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 마무리하는 것이 필수. 검찰 가족은 무조건 내리사랑이라지만 요즘은 선배가 밥을 샀으면 후배가 커피를 사는 ‘융통성’ 있는 분위기가 대세다.#신숙(신주쿠)-국물이 끝내주는 칼국수 간판에 한자만 표시되어 있어 한글 전용 세대를 당황케 하는 식당이다. 고급 일식집으로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주 메뉴가 칼국수라 또 한번 놀란다. 칼국수 외에 만두, 빈대떡 등 소박한 음식을 내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깔끔한 나무쟁반에 받친 뜨거운 물수건과 차게 식힌 결명자차 등을 제공해 ‘제대로 대접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가쓰오부시와 다시마, 표고버섯 향이 나는 육수는 꼭 일식 우동 국물 같은데 클로렐라를 넣은 초록색 면발은 한국 칼국수 모양이다. 양념을 아끼지 않고 담근 배추김치와 잘 익은 갓김치가 칼국수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도쿄 신주쿠서 음식점을 하다 귀국해 서초동에 개업한 사장님의 고향은 맛의 고향 전남 여수다. 점심시간이면 테이블 여기저기서 갓김치를 더 청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른을 모시고 가도 민망하지 않은 음식점이지만 예약은 따로 받지 않으니, 점심시간은 피할 것.#조랭이 - 동료랑 함께 해야 맛있는 부대찌개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다 ‘이제는 좀 재미있는 일을 해 보고 싶다’며 돌연 퇴사해 식당을 차렸다는 멋진 사장님이 계시는 곳이다. 조랭이떡을 좋아해 식당 이름도 그렇게 지었다는 사장님은 손님들의 얼굴과 소속청뿐만 아니라 ‘누가 누구와 언제 방문했다’는 것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특별히 예뻐하는 후배를 데려간 날에는 통 크게 계란말이를 추가하면 좋다. 최근 2호점을 개점했고, 인근 지역으로의 배달·포장도 가능하다. 물론 동료들과 함께 식당에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폴라베어-해물찜인 듯 푸짐한 즉석 떡볶이 귀여운 식당 이름만으로는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짐작하기 어렵겠다. ‘폴라베어’는 서초동에서는 굉장히 귀한 ‘즉석떡볶이’ 전문점이다. 떡볶이 국물에 콩나물과 바지락을 넉넉히 넣어, 얼핏 해물찜 느낌도 나면서 뒷맛이 개운해 해장용으로도 제격이다. 고추장 양념과 짜장 양념을 섞어 주문할 수 있어 매운맛 조절도 가능. 사리를 건져먹고 난 뒤 국물에 밥을 볶는 게 별미이므로 식사량을 미리 조절할 필요가 있다. 보글보글 떡볶이가 끓는 ‘폴라베어’의 좁은 테이블에 가끔 새치가 희끗한 ‘과장님’ 포스의 손님이 앞치마를 걸치고 끼어 앉아 있을 때가 있는데,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므로 존경할 만하다. 이런 곳에서 열리는 ‘젊은이들과의 점심식사’에 초대받을 정도로 진정한 ‘소통’을 실천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손진영 명예기자(대검찰청 수사관)
  • [특파원 칼럼] 민족의 유산과 오래된 미래/이석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민족의 유산과 오래된 미래/이석우 도쿄 특파원

    1961년 이후에만 재일 한인학생 및 유학생 7만 80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온 재일 장학재단이 있다. 1960~80년대 일본에서 유학하던 상당수의 한국인 유학생들도 혜택의 예외는 아니었다.조선장학회이다. 대한민국을 모국으로 삼고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추종하는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 각각 추천하는 재일 동포들과 저명한 일본 학계인사 등 3자가 공동 운영하는 일본 법규에 의거한 공익재단법인이다. 장학회 이름에 ‘조선’이 붙은 탓에 ‘총련이나 북한이 직접 운영한다’는 오해도 없지 않았지만 장학생 가운데 훗날 주일 한국대사가 된 유학생도 있다. 출발점은 1900년 대한제국의 주일 한국공사관에 설치됐던 ‘유학생 감독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권을 빼앗기면서 일제 산하기관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다가 1945년 일제 패망으로 그해 11월 재일 한인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출범하며 전기를 맞는다. 남북 분단 등 한반도 내 좌우익 충돌의 영향으로 공중분해돼 일본 국고로 환수될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재일 좌우익 동포사회의 자제와 타협, 뜻 있는 일본 지성인들의 중재와 성원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재단 이사회 및 평의회를 재일동포 사회의 좌우익이 같은 수의 구성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수결이 아닌 합의를 전제로 한 운영’이 재단 운영의 묘(妙)였다. “이사회나 평의원회에서 (민단과 총련이 추천하는) 구성원들이 합의하면 일본인 이사와 평의원들도 합의해 주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이데 요시노리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비상임 이사로, 오쿠시마 다카야스 전 와세다대 총장, 다나카 유코 호세대 총장,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평의원으로 각각 재단에 참여하고 있다. 도쿄의 9개 전철 노선이 교차하는 신주쿠역에서 서쪽 출구 쪽으로 3~4분 걷다 보면 육상과 지하 통로로 이어지는 지하 3층, 지상 9층의 장학회 본관을 만나게 된다. ‘장학회관’이란 이름의 신주쿠의 장학회 본관 등에서 나오는 임대료가 장학회 재원이다. 지난해 경상수익이 13억 4600만엔(약 141억 1348만원)이었고, 그 가운데 3억 8257만엔이 장학금으로 쓰였다. 대한제국에 연원을 둔 오랜 유산이 민족 후세들을 위해 쓰이고 있었다. 장학회의 역사는 어떻게 민족을 위해 함께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오래된 미래’이다. 그러나 재일교포 6세들이 나오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장학회도 변신과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젊은 교포들의 민족적 구심점 유지에 어떻게 기여할까 등이다. 민족 교육의 이념을 어떻게 정립할지에 대한 숙제도 산적해 있다. 이념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재일동포사회의 좌우익들이 재단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만도 경이롭지만, 미래는 늘 도전과 시련을 안겨 준다. 재일동포사회가 어떻게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과 구심점을 확립해 나갈 수 있을까. 조선장학회는 재일동포사회의 과거 성취와 함께 미래 도전을 상징하는 단면이다. 빠른 속도로 일본 사회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원심력이 커진 젊은 재일동포들과 재일동포사회를 어떻게 유지시켜 나갈 수 있을까. 애환의 민족 근대사가 서려 있는 117년 역사의 민족 유산은 좌우익의 대립, 동포사회의 해체 등 우리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문제들을 던지고 있다. jun88@seoul.co.kr
  • 재일 한인 동포 8만에 장학금… “광복 이후 좌·우익 함께 운영”

    재일 한인 동포 8만에 장학금… “광복 이후 좌·우익 함께 운영”

    “동포 학생과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며, 재정적 도움뿐 아니라 차별과 질시 속에서 마음의 갈등과 고민을 해결해 주고, 정체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역사가 장학회가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공중분해돼 일본 국고로 환수될 위기도 있었지만 선배들과 동포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정몽주(70) 조선장학회 대표이사(이사장)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일본 도쿄 신주쿠 장학회 본관 사무실에서 117년의 연혁을 가진 장학회의 역할과 미래를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장학회는 대한민국을 모국으로 삼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및 북한을 지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각각 추천하는 인사들과 여기에 일본 학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3자가 공동 운영하는 공익재단법인으로, 대한제국 때인 1900년 주일본 한국공사관에 설치됐던 ‘유학생 감독부’가 기원이다. 국권을 빼앗기면서 조선총독부 유학생감독부(1911년), 조선교육회 장학부(1925년), 조선장학회(1941년), 재단법인 조선장학회(1943년) 등으로 변천을 거듭했다. 현재는 총련의 조선고급학교 교장을 지낸 최인태씨가 정 대표와 함께 장학회 공동대표를, 조선대학 교수를 지낸 김종기씨가 상근 이사를 맡고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좌우익의 대립으로 표류하다가 1957년 좌우익 양측 및 일본 정부 추천 인사들이 참여하는 ‘3자 운영 형태’를 확립했다. “1961년부터만 따져도 지금까지 재일 한국인 등 한반도 출신 7만 8000여명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2016년에는 고교생 754명, 대학생 877명에게 장학금 3억 8257만엔이 전달됐죠. 한국이나 조선(북한) 국적자가 대상이고, 장학금을 받은 한국 유학생 가운데는 주일 한국대사가 된 분도 있어요.” ‘60년 넘게 일본에서 재일 한인 좌우익들이 어떻게 함께 장학활동을 해 올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정 대표는 “체제와 이념을 떠나 실제로 동포 젊은이들을 뒷받침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풀어 주겠다는 의지와 실천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장학회 관계자는 “이질적인 구성에도 불구, 합의제란 운영 방식이 재단 유지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재단은 매년 학생문화제, 계절별 학생 간담회 및 강연회, 여름캠프, 한글강좌 등을 연다. “동포 젊은이들끼리 더 많이 알고 사귀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 줘야겠다는 생각에서 만남의 기회를 가능하면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반도 출신임을 밝히지 못하고, 차별받고, 식민지 출신이라는 열등감을 느껴야 했던 그 시절부터 장학회는 동포 젊은이들을 지탱하고 묶어 주는 구심점이었다. 장학회의 미래를 묻자 그는 “공익재단의 제약 아래에서 수익 증대 방안에도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말했다. 장학회 재원은 신주쿠의 장학회 본관 등 3채의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지난해 경상수익은 13억 4600만엔이었다. 정 대표는 “더 중요한 일은 민족 교육 이념을 정립하며 앞으로 100년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재일동포의 일본 국적 취득이 늘고, 낮은 출산율로 동포 젊은이들의 절대 숫자도 줄어드는 가운데 이념이 상반된 좌우 두 집단이 함께 넘어야 할 고개가 적지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조선장학회는 60년 넘게 좌우익이 일본 땅에서 민족의 다음 세대를 위해 함께 일해 온 경험과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한끼줍쇼’ 이홍기, 일본 신주쿠에서 굴욕 “근짱?”

    ‘한끼줍쇼’ 이홍기, 일본 신주쿠에서 굴욕 “근짱?”

    산다라박과 이홍기가 신주쿠에서 한 끼에 도전한다. 오늘(26일) 밤 방송되는 JTBC ‘한끼줍쇼’에는 가수 산다라박과 이홍기가 밥 동무로 출연해 일본 신주쿠를 찾는다. 신주쿠는 비즈니스, 쇼핑, 유흥의 중심지이자, 교통의 요지로 도쿄의 심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요코하마 편에서 밥 동무 없이 한 끼에 도전 한 이후 밥 동무의 소중함을 느낀 규동형제는 “이번에도 밥 동무가 없는 것은 학대”라며 제작진에게 힘든 마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은 재일동포들을 찾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에도 게스트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했고, 산다라박과 이홍기가 등장하자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한류열풍의 주역인 산다라박과 이홍기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에 밥동무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강호동은 두 사람의 등장에 “한류스타가 두 명이라 팬들이 몰리면 녹화가 힘들 수 있다”라며 걱정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일부 팬들은 이홍기를 향해 “근짱?”이라고 물었고, 이홍기는 “종종 배우 장근석으로 오해받는 일이 있다”라며 씁쓸해해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필리핀에서 활동했었던 산다라박은 “어떻게 하면 외국어를 잘 할 수 있냐”는 질문에 “그 나라 언어로 연애를 하고난 후 언어가 확 늘었다. 지금은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한다”라며 폭탄 고백을 해 규동형제를 당황하게 했다. 이날 두 사람은 재일동포를 찾기 위해 신주쿠를 샅샅이 살폈다. 한국 과자 쓰레기와 곳곳에 적힌 한글을 찾는 등 ‘셜록’에 빙의하여 재일동포들과의 만남에 만전을 기했다는 후문이다. 산다라박과 이홍기가 활약한 ‘신주쿠 편’은 26일 수요일 밤 10시 50분에 방송되는 JTBC ‘한끼줍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치즈 닭갈비 먹으려고 3시간 줄서기…‘혐한의 겨울’은 간다

    치즈 닭갈비 먹으려고 3시간 줄서기…‘혐한의 겨울’은 간다

    한국식 호떡을 입에 문 채 걸어가는 소녀들, 떡볶이와 순대 등 주전부리를 모여서 먹고 있는 중고생들, 한국 가수·영화배우들의 책자와 대형 브로마이드를 손에 든 중년 부인, 막걸리와 한국 식자재를 한 무더기씩 사서 들고 가는 일본인들….●코리아타운 한류 전성기의 80% 회복 도쿄 신주쿠구(區)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은 요사이 평일에도 붐볐다. 섭씨 30도가 넘는 찌는 듯한 더위 속에도 오후 무렵이면 한국 슈퍼와 상품점, 음식점을 찾는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저녁 무렵 신오쿠보역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금요일 오후와 휴일에는 한국 음식점과 상품점마다 긴 줄이 만들어지고, 찻길까지 인파가 밀렸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한 방문객 수는 이제 한류 전성기 때의 80%를 회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치즈 닭갈비’라는 새 메뉴도 지난해 10월 무렵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입소문을 통해 대박을 치면서 회복세를 도왔다. 친구들과 이곳을 찾은 대학생 이토 모모카는 “몇몇 가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3시간씩 줄을 서야 했는데, 이제는 예약제로 바뀌었다”면서 소문난 치즈 닭갈비집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 메뉴 하나가 방문객의 10~15%를 늘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2012년 한·일 관계 악화 이후, 신오쿠보와 한류 스타들을 외면해 오던 TV 등 일본 언론들도 올 들어선 한국 연예인과 음식문화 등을 자주 화면에 올리고, 보도하면서 일본인들의 관심을 북돋웠다. 도쿄 코리아타운의 주도로인 신오쿠보 도리(길)에는 빈 가게나 매물도 싹 사라져 버렸고, 가게 권리금도 뛰고 있었다. 겨울연가 등 한류드라마 열풍과 케이팝 열기 속에서 한국인 거리를 형성하며 10년 동안 절정기를 보냈던 코리아타운은 지난 4년 가까운 시련기 끝에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2015년 상인회 발족… 日사회에 호소 “이제 추운 겨울은 지나간 것 아니냐”는 말들도 조심스럽게 나왔다. 신주쿠 한인상인연합회 정재욱 사무국장은 “지난해 양국 소녀상 분쟁이 불거지면서 다시 혐한 분위기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이 지역 한국인들이 가슴을 졸였다”고 말했다. 다행히 큰 영향 없이 방문객들이 늘어나는 회복세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인들은 쇼쿠안도리와 신오쿠보 도리 일대를 신주쿠의 코리아타운으로 부른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및 일왕의 사과 요구 발언 등으로 격화된 일본 내 혐한 분위기 속에서 한류 열기는 수그러들었고, 그 여파는 코리아타운을 뒤흔들었다. 2012년 말부터 1년 넘게 매주 휴일이면 혐한 데모대 400~500명과 이를 반대하는 300여명의 친한 일본인 데모대가 경찰관들과 뒤엉켰던 상황은 이들에겐 악몽으로 남아 있다. 당시 코리아타운을 찾던 일본인들의 발길은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한류 전성기 때 전체 628개였던 한인 가게는 396개로 줄었고, 284개였던 음식점 수는 199개로 감소했다. 미용실, 잡화점 등도 격감했고, 한국 슈퍼도 6개만 남았다. 시련의 와중에서 2015년 9월 이 지역 150개 상점 대표들이 “바라만 볼 수 없다”는 결의로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를 발족시키면서 자구 노력에 나섰다. 상인연합회의 오영석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일본 시민사회에 호소하고, 정치권과 지역사회를 설득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말했다. ●천대받던 김치 명성 찾았듯 재기 몸부림 일본 내 45개의 직영점을 가진 한국 음식점 체인인 사이카보(처가방)와 김치 공장 등을 운영하는 오 회장은 4년 남짓한 혐한 분위기 속에서 사이카보의 몇몇 직영점을 비롯한 많은 한국 음식점이 장소 재계약을 하지 못해 문을 닫고, 영업을 중단하는 아픔도 겪었다고 전했다. 찾는 이들이 줄어 매출이 격감하자, 자금력이 달린 업주들은 폐업하고 귀국하거나 다른 곳으로 떠났지만, 오 회장 등은 내일의 가능성을 보면서 이곳을 지켰다. “냄새난다고 천대받던 김치가 이제는 일본에서 사랑받는 빼놓을 수 없는 밑반찬이 됐다. 힘들고, 시간은 걸리지만, 신오쿠보의 코리아타운도 시련을 극복할 것을 의심치 않았다.” 오 회장은 일본 땅에서 김치와 한국음식의 진가를 20년 넘게 알려 왔던 그 과정을 떠올리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상인연합회는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을 한국에 직접 가지 못해도, 한국에 온 듯이 한국을 느낄 수 있고,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한국문화의 발신지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생각으로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의 내일을 그리고 있었다.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신오쿠보 영화제, 김치 축제, 가부키초 시네시티 광장 및 서울 시청 앞에서 동시에 열리는 자선행사를 기획 중이다. 한인 상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쿠폰 제작, 한류 인터넷TV 개설 등도 준비하고 있었다. 7가지 무지개 색을 뜻하는 ‘나나이로 마키’란 신오쿠보의 공동 김밥 브랜드의 출범도 앞두고 있다. 상인연합회의 셔틀버스도 신오쿠보 등 코리아타운 주변을 정기적으로 순회하고 있었다. 중장기적으로는 한류 문화가 숨쉬는 역사박물관, 문화갤러리, 김치박물관, 한국어 교육센터 등이 한곳에 모인 한류 랜드마크 건설 계획도 갖고 있었다. 신오쿠보의 미래는 한류와 한국문화의 확산과 비례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발길 끊었던 젊은이들 되돌아와 상인연합회가 1300여년 전 고구려 유민들이 정착한 사이타마현 히타카시 고마 지역에 한국에서 가져온 씨로 배추를 재배하고, 그 지역 초등학교에 김치 체험교실을 운영하고, 김치 축제를 여는 것도 이 같은 생각에서였다. 한류 전성기 때 일본의 지방에서 도쿄로 여행을 오면, 코리아타운은 꼭 들려야 하는 곳이었다. 신오쿠보의 코리아타운에서 새로운 문화와 한국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일본인들은 적지 않았다. 그동안 발길을 끊었던 젊은 여성들도 이제는 거의 되돌아왔고, 비어 있던 신오쿠보의 거리와 골목들은 중고생·대학생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사이 한국 국내 음식 체인점들도 속속 신오쿠보와 쇼쿠안도리의 코리아타운에 들어왔다. 한국 화장품점들을 찾는 일본 여성들의 발길도 크게 늘고 있다. 생활정보지 한터의 황귀성 대표는 “혐한 분위기 고조 속의 시련기를 견딘 한인 가게들은 이제 더 탄력을 받게 됐다”고 진단했다. 코리아타운 지역은 하루 승차 인원이 4만명이 넘는 JR신오쿠보역 등 도쿄 3개 전철라인이 교차하는 교통 요지란 점에서 발전 가능성이 크다. 방문 관광객도 이미 한 해 900만명대에 도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재일한국인연합회 정용수 사무총장은 “한·일 정치 관계가 악화되면 언제 또 상황이 급변할까 조심스러운 마음은 여전하지만, 한류와 신오쿠보 지역이 살아나고 있다는 기대도 크다”면서 “여러 한인단체들과 힘을 합쳐 한류 재도약과 지역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젠 한국인 일손 구하기 ‘별따기’ 시련기에 한인 상점들이 떠난 빈자리는 대부분 중국인과 동남아인들의 가게들이 들어섰다. 이 일대에 중국인들은 1만 3000여명으로 1만 1000여명인 한국인을 수적으로 앞섰다. 베트남, 네팔, 미얀마인도 각각 3000여명에서 2500여명으로 불었다. 코리아타운이 다문화 거리로 변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이래서 나왔다. 그렇지만 다문화 요소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시각들도 많다. 김상열 한일부동산 대표는 “유동인구 급증과 2020년 도쿄올림픽 등은 한인공동체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라면서 “주변 일본인 사회와 협력하고, 그들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신뢰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케이팝도 최전성기는 아니지만, 카라, 소녀시대, 트와이스 등이 꾸준하게 이어주면서 한류를 일본 내 문화로 정착시켰다”고 평가했다. 신오쿠보의 코리아타운의 경기가 살아나면서 조리사 등 한국인 일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일본 전체의 일손 부족 상황과 줄어든 한국인 유학생 수 등까지 겹쳐 손맛을 유지시킬 주방장과 조리사 구하기가 비상이다. 상인연합회 정재욱 사무국장은 “워킹홀리데이를 활용하고, 국내 조리 전문학교 등과 협력하는 등 여러 통로로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상인연합회는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오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사전 정보를 제공하고, 숙박, 직장, 일본어 교육 등도 알선해 줄 계획이다. 신오쿠보는 새로운 ‘신오쿠보 드림’을 꿈꾸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글 사진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70년 만에 막 내린 ‘신격호의 롯데’

    70년 만에 막 내린 ‘신격호의 롯데’

    신동빈 회장 등 이사 8명 재선임…신동주 前부회장은 세번째 부결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 양쪽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1948년 일본 도쿄에서 롯데홀딩스의 전신인 롯데주식회사를 창업한 지 70년 만이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지난 24일 도쿄 신주쿠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어 임기가 만료된 신 총괄회장의 이사직을 연장하지 않기로 의결하고, 그를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신 명예회장은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완전히 떼게 됐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 13개 계열사의 지주회사로,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최대주주(지분 19%)다.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인 셈이다. 신 명예회장은 지난해부터 롯데제과, 호텔롯데, 롯데쇼핑 등 국내 주요 계열사의 이사직을 줄줄이 내려놓으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수순을 밟아 왔다. 현재 국내의 롯데 계열사 중에서는 롯데알미늄 이사직만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오는 8월 임기가 만료되면 연장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 명예회장은 1948년 도쿄에서 껌 회사인 롯데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롯데 신화’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1963년 초콜릿, 1969년 사탕, 1972년 아이스크림, 1976년 비스킷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롯데를 종합 제과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후 롯데상사, 롯데부동산, 롯데전자공업, 프로야구단 롯데오리온즈(현 롯데마린스), 롯데리아 등을 잇달아 세우며 일본 내 재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인 1967년 4월에는 국내에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역시 껌으로 시작해 갖가지 제과류를 선보이며 성공적으로 모국에 안착한 롯데는 1974년과 1977년 칠성한미음료와 삼강산업을 각각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이후 1973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을 선보이며 관광업을 시작했고, 1979년에는 그 옆에 롯데백화점을 개장, 유통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후 건설과 석유화학 등 분야에도 잇달아 발을 뻗으며 국내 재계 서열 5위 그룹으로 수직상승했다. 그러나 2015년 첫째 아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둘째 아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롯데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대표이사 부회장에 선임되자 신 전 부회장은 곧바로 아버지인 신 명예회장을 앞세워 ‘쿠데타’를 시도했다. 이를 계기로 신 명예회장은 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전격 해임됐다. 이후 신 명예회장의 정신건강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대법원은 한정후견인 지정 선고를 내렸다.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신 회장을 포함한 8명의 이사가 재선임됐다. 신 전 부회장 등 4명의 이사 선임안과 신 회장 등 현 경영진의 이사직 해임안은 지난해 3월과 6월에 이어 또다시 부결됐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그룹 내 지배력을 다시금 공고히 하게 됐다. 롯데 관계자는 “2015년부터 신 회장이 한·일 통합 경영을 시작하면서 일본 롯데 실적이 개선되자 주주들이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경영에서 배제돼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경영에서 배제돼

    일본 롯데홀딩스가 24일 오전 도쿄 신주쿠(新宿) 하쓰다이(初台)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이번에 임기가 만료된 신격호(95) 총괄회장을 새 이사진에서 배제했다.일본 롯데홀딩스는 롯데 일본 계열사의 지주회사이다. 또한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의 지분 19%를 보유한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다. 롯데는 이날 “신동빈 회장과 사외이사 2명을 포함한 8명이 재선임 됐으며 신격호 총괄회장은 이사 임기 만료에 따라 이사직을 퇴임하고 명예회장에 취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 총괄회장은 1948년 ㈜롯데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롯데그룹을 창립한 지 약 70년 만에 사실상 롯데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해 롯데제과와 롯데호텔 이사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지난 3월에는 롯데쇼핑 이사직도 내려놓는 등 자연스럽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수순을 밟아 왔다. 현재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 중에서도 롯데알미늄 이사직만 유지하고 있다. 이마저도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8월에 물러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신 회장의 친형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상정한 본인 등 4명의 이사 선임안과 신동빈 회장 등 현 경영진의 이사직 해임안은 부결됐다. 신 전 부회장이 롯데홀딩스 이사 선임을 통해 경영복귀를 시도했다가 좌절된 것은 2016년 3월과 6월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2015년 8월에 신동빈 회장이 낸 안건에 대해 신동주 전 부회장 측에서 반대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주총 표 대결에서 신동빈 회장이 네번째 승리한 셈이다. 롯데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에 대한 주주들의 지속적인 신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2015년부터 신동빈 회장이 한일 통합경영을 시작하면서 일본 롯데 실적이 개선되고 미래 투자도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주주들이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 롯데까지 장악한 신동빈 회장은 한·일 롯데 공조를 통한 ‘동반 성장’과 일본 롯데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롯데는 50년 만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해 올해 약 320억엔 투자해 초콜릿 중간원료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초콜릿 시장 규모가 5년 전 대비 18% 증가하는 등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번 투자로 2년 후 일본 롯데는 초콜릿 매출이 기존보다 40% 증가한 1100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본 롯데아이스는 기존 우라와 공장에 추가로 70억엔을 투자해 생산라인 신설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할 계획이다. 지난해 일본 롯데는 과자, 아이스크림 매출 호조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6% 증가한 270억엔을 기록, 과거 최고치를 경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희사이버대 -日 동경한국교육원 한국어교육 발전 MOU

    경희사이버대 -日 동경한국교육원 한국어교육 발전 MOU

    경희사이버대는 최근 일본 도쿄 신주쿠 코리아센터에서 동경한국교육원과 국제교류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식에 참석한 김혜영(오른쪽) 입학관리처장·대외협력실장과 유호선(왼쪽) 교육원 원장은 교육·문화 관련해 서로 협력하고, 도쿄지역에 한국어 보급을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또 교육원 추천으로 경희사이버대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고, 교육원을 통한 도쿄지역 학생들의 오프라인 수업 참관 및 실습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경희사이버대 관계자는 “재외국민의 교육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면서 “세계 각국 한인의 평생교육과 재교육을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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