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신자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 이라크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 계정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 고의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 징역 2년
    2026-08-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146
  • [월드이슈-유럽 ‘다빈치 광풍’] ‘다빈치 투어’까지… 바티칸 속수무책

    [월드이슈-유럽 ‘다빈치 광풍’] ‘다빈치 투어’까지… 바티칸 속수무책

    미국 작가 댄 브라운의 역사스릴러 소설 ‘다빈치 코드’를 둘러싼 논란의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내용의 진위를 둘러싸고 성서 역사가들이 한바탕 논쟁을 벌인 데 이어 표절 논란에까지 휩싸인 이 소설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해 온 가톨릭 교계가 침묵을 깨고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논쟁에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들까지 가세하고 있어 파장이 커지고 있다. |파리 함혜리특파원| 바티칸이 이 소설에 대해 공식 반박 입장을 밝힌 가운데 교계에선 강경 대응과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가톨릭 교계의 논란 지난 17일 이탈리아 제노바 시청 강당에서는 제노바교구 주재로 다빈치 코드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는 강당 좌석과 복도·창문 밖까지 수백명이 운집해 이 소설에 대한 높은 관심을 단적으로 입증했다.“예수가 진짜 결혼을 했습니까?”“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기를 가졌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교회가 여성의 역할을 무시해 왔습니까?” 질문공세를 받으며 이날 토론회를 주재한 사람은 제노바 교구 대주교이자 차기 교황으로 유력시 되고 있는 타르치시오 베르토네(70) 추기경. 지난 15일 라디오 바티칸을 통해 이 책을 ‘수치스러운 거짓말’‘거짓의 성’으로 비유하며 “읽지도, 사지도 말 것”을 주문한 인물이다. 베르토네 추기경은 이날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왜곡된 이야기를 역사의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소설의 파장을 경고하기에는 너무 늦은감이 있지만 우리 신자들, 특히 젊은이들을 비판적 경각심으로 무장시키고 싶다.”면서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논박하는 목소리를 낸데 교계 내부에서 많은 반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베르토네 추기경이 다빈치 코드에 대한 신도들의 ‘보이콧’을 주문한 것과 달리 상파울루의 호세 마리아 핀헤이로 주교는 이 책을 금서(禁書)로 여길 것까지 없다는 입장이다. 역시 차기 교황 후보로 주목되고 있는 핀헤이로 주교는 베르토네 추기경의 목소리를 교황청의 공식적인 목소리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책을 읽더라도 사리분별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그는 “사람들이 소설 속에 담긴 사실과 허구적 요소를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며 “책을 읽지 못하게 할 것까지는 없다.”고 주장했다. 가톨릭 교계에서 이 책의 출간 2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공식대응에 나선 것은 이 소설의 놀라운 성공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사실과 허구가 마구 뒤섞여 혼동을 초래하고, 특히 로마 교황청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성서 대신 ‘다빈치 코드’를 기독교 역사 안내서로 사용하는 것에 경악해 왔다. ●표절 시비와 광고 패러디 논란 레바논에선 이 책에 대한 판매를 금지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인 이탈리아 피렌체 인근 빈치시에서는 성서의 진실에 이의를 제기한 소설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모의재판이 예술전문가와 가톨릭 성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기도 했다. 또 프랑스의 청바지 제조회사 ‘마리테 프랑소와 저버’는 소설에서 코드 분석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광고물을 제작했다가 법원의 게시 금지령을 받았다. 여자 예수를 등장시키고 예수의 제자 2명이 청바지를 입고 가슴을 드러낸 채 서로 안고 있는 이 광고물에 대해 법원은 “믿음에 대한 근거없는 공격행위”라며 신성성 훼손을 내세우며 소송을 제기한 프랑스 가톨릭교회의 손을 들어줬다. 표절 논란도 거세다. 영국 작가 마이클 바이젠트와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은 자신들이 지난 1982년 발간한 논픽션 ‘성혈과 성배’의 구성을 댄 브라운이 통째로 가져다 사용했다며 다빈치 코드 발행사인 더블데이사와 모회사인 랜덤하우스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수그러들 줄 모르는 인기 이런 논란 속에서도 ‘다빈치 코드’의 위세는 여전하다. 오히려 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새롭게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며 출판사측은 즐거움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프랑스어판을 출간해 170만부 판매를 기록한 JC 라테스 출판사의 홍보 담당자 에릭 디빌은 “교황청이 반박을 한 것이 오히려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켜 판매에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다빈치 코드 삽화 제작본 출간,‘천사와 악마’(댄 브라운이 2000년 출간한 책)의 번역 출간과 맞물려 교황청이 훌륭한 홍보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 출판사는 다빈치 코드 덕분에 창사 40년 만에 돈방석에 앉았다. 디빌은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의 진위여부에 대해 “단지 소설일 뿐”이라며 “암호해독과 비밀결사, 종교, 추리성 등이 어우러진 데다 소설의 대부분이 파리를 무대로 하고 있어 프랑스 독자들의 반응이 식을 줄 모른다.”고 말했다. 소설의 무대인 유럽은 ‘다빈치 코드’의 인기 덕분에 관광업계도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소설에 푹 빠진 독자들은 파리에서 런던·스코틀랜드까지 소설 주인공인 로버트 랭던과 소피 뇌브가 성배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에 거쳐간 장소들을 여행하며 소설 속의 무대들을 살피는 즐거움을 맛본다. 미술사·종교 등에 정통한 가이드와 함께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를 찾는 패키지 상품 ‘다빈치 투어’를 통해 소설 속의 미스터리를 풀며 여행한 관광객은 이미 2만여명을 넘는다. 내년에는 영화까지 개봉될 예정이다. 소니픽처스는 310만달러에 판권을 매입, 오는 6월 제작에 들어간다. 론 하워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톰 행크스와 오드리 토투, 장 르노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lotus@seoul.co.kr ■ ‘흥행 대박’ 원인은 허구와 실제의 환상적 결합 “미래의 소설은 모두 추리소설이 될 것.”한 추리작가의 지적은 다빈치 코드의 ‘흥행’ 성공 요인을 압축한다. 주인공 랭던은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를 연상시키며 유럽 각국을 오가는 빠른 전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이런 통속성을 극적으로 채색한 것이 가톨릭 교계의 음모를 둘러싼 논쟁적인 메시지와 이를 파헤치기 위해 동원된 예술사와 건축사, 종교철학, 기호학 등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 딸을 두었으며 이 혈통이 메로빙거 왕조로 이어졌고 교황청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해왔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시온수도회 수장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암굴의 성모’ 등에 여성성과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코드를 숨겨놓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교황의 적통(適統)을 은폐하려 했던 바티칸 비밀결사 ‘오푸스 데이’가 실존하며 현 교황청 대변인 나발로 발스를 비롯, 차기 교황 후보 일부가 이 결사 회원이란 주장은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과 실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게 한다. 미국에서만 700만부가 팔려나간 것을 비롯, 전세계 44개국에서 변역돼 2500만부가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다빈치코드, 진실과 거짓 |파리 함혜리특파원| 작가 댄 브라운은 “주인공 로버트 랭던 등 등장인물을 제외하고 예술과 건축, 밀교의식, 비밀결사에 관한 모든 내용은 역사에 근거하고 있다.”고 했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프랑스의 역사 전문지 ‘이스토리아(Historia)’는 3월호에서 특집으로 ‘다빈치 코드의 해독’을 다루며 내용의 진위를 파헤쳤다. ●템플 기사단 기사단의 역사는 11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설에서 성배를 보호하는 임무를 띤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1차 십자군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성물들을 소유하며 재물과 권력을 확보했다. 초창기 로마교회와 왕실은 이들 기사단에 우호적이었지만 권력이 커지면서 갈등 관계로 번져 1307년 10월13일 기습 공격을 받고 궤멸했다. ●시온 수도회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을 보호해 귀족혈통(메로빙거 왕조)을 만들었다는 이 수도회는 ‘가톨릭 교리와 전통 보존 연합 기사단’이라는 부속 명칭을 갖고 있다. 사브와지방의 생줄리앙 앙 제느브와시에 등록번호 KM94548로 1956년 6월25일 등록됐다. ●비밀 문서 시온수도회에 관한 문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1975년에 ‘4 LM 1249’라는 번호로 등록되어 있고 열람도 가능하다. 중세당시 기록은 찾기 힘들고 1967년에 정리돼 타이핑된 문서다. 이 문서에 따르면 당시 시온 수도회 회원은 1093명이며 7계급으로 구분돼 있다. 비밀문서는 시온수도회가 템플기사단의 비호세력이라고 주장했다. ●피에르 플랑타르 소설속 소니에르 루브르박물관장의 모티브를 제공한 시온수도회의 마지막 기사단장인 플랑타르는 1920년 3월18일 파리에서 태어난 실제 인물이다.17세에 학교공부를 그만두고 성당에서 생활하며 종교생활에 심취했다. 히틀러 추종자로 극우파 성향의 종교단체 활동을 했다.1942년에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는 잡지 ‘정복’을 발간했다. lotus@seoul.co.kr
  • [시론] 신자유주의 체제 하의 젊은 파우스트들/김명곤 국립극장장

    [시론] 신자유주의 체제 하의 젊은 파우스트들/김명곤 국립극장장

    대학을 졸업한 어느 젊은이가 인터넷에 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일을 하고 싶다.”라는 글이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오십대 초반인 내 주변에도 명예 퇴직한 ‘중년의 젊은이’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아직 오십도 안 된 ‘새파란’ 후배들마저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퇴직 준비를 하고 있는 터에 그들 모두의 속마음을 그 젊은이가 강렬한 한마디의 말로 대변했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을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는 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진리를 위해 계약을 한다. 악마는 노예가 되어 모든 소원을 들어주되, 만약 파우스트가 어느 순간 향락의 극치를 맛보고 거기에 만족하면, 그 순간에 그의 영혼을 빼앗는다는 계약이 피로 쓴 계약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파우스트를 타락시키고 영혼을 빼앗으려는 메피스토와, 악마를 노예처럼 부리며 학문으로 도달하지 못한 인간과 우주의 근본 진리를 얻으려는 파우스트의 싸움이 전개된다. 우리 사회에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젊은 파우스트와 중년의 파우스트들은 진리가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서 악마를 필요로 한다. 고귀한 영혼을 살찌우기 위한 계약이 아니라, 그와 가족들의 세속적 삶을 유지하기 위한 계약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절실한 건 한조각의 빵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이 사회에 증명하기 위한 ‘직업’이다. 자신이 무능하거나 패배자라서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줄 조직적 보호막이 필요한 것이다. 나처럼 자유롭게 살며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 직업을 가진 예술가나 프리랜서들은 일반 직장인보다는 실업 상태로 지내는 상황에 훈련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직업의 사람들도 실업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난폭해지거나, 이혼을 하거나, 자살을 결심한다. 하물며 취업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도 못한 채 가고 싶은 직장 근처를 서성이거나, 평생 몸담아 왔던 직장으로부터 강제로 쫓겨나-명예퇴직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도 강제이긴 마찬가지다-직장이 있던 쪽 하늘도 바라보기조차 싫어진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혼자서 해결하라고 하는 건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노동의 종말’의 저자 제러미 리프킨은 2003년 동아시아 공동체 초청으로 한국에 왔을 때 “현재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실패했다. 세계인구의 5분의1이 주도하면서 나머지 5분의4를 소외시키고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세계화는 부당하며, 장벽 없는 세계화를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성 향상이 고용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그는 “노동 시간 감축과 정부의 지원 증대, 세금 이전을 통한 불량기업 규제 및 우량산업화 유도, 시민 사회 영역의 경제적 활용 및 사회적 통화의 창출, 에너지 소외 계층을 없애기 위한 에너지 혁명”등을 들었다. 기존의 시장 모델을 시민사회 네트워크 모델로, 시장 자본을 사회적 자본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울분에 찬 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천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세계의 힘은 ‘부당한 세계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악순환의 고리는 더욱더 커져 가기만 한다.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명제도 경제의 효용성이라는 명제에 가려 더 이상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듯하다. 사회적 복지와 고용의 유연성을 고려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몰고 온 이 부작용을 치유할 묘약은 없는 것인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는 수많은 한국의 파우스트들과 피로써 계약을 맺어 줄 악마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 6개통신사 53억 과징금

    통신위원회가 21일 제114차 전체회의를 열고 발신자 표시와 통화연결음 등 휴대전화 부가서비스에 임의로 가입시킨 뒤 요금을 부과해온 SK텔레콤에 대해 14억원,KTF 3억 6000만원,LG텔레콤 2억 3000만원 등 이동통신 3사에 모두 19억 9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 해지위약금 대납과 차별적인 설치비, 요금면제 행위 등 불법적인 가입자 유인행위로 시장 질서를 교란한 KT에 26억원, 하나로텔레콤 6억 3000만원, 데이콤 9000만원 등 유선통신 3사에 대해서도 모두 33억 2000만원의 과징금 부과처분을 내렸다. 유ㆍ무선 통신업체들이 통신위에 무더기로 상정돼 처벌받기는 올들어 처음이다. 한편 통신위는 아이투라인과 케이디씨스텝스, 바이셀테레콤, 인텔프로, 오른기술, 에브리텔, 나라티앤씨 등 7개 국제전화 선불카드 업체들의 부당한 서비스 운영행위에 대해서도 시정명령을 내리고 모두 6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시론] 이 몸이 죽어 죽어…/오세영 서울대 인문대 교수·시인

    [시론] 이 몸이 죽어 죽어…/오세영 서울대 인문대 교수·시인

    중등학교 시절, 우리 세대가 자주 외우던 시조 가운데 고려말의 충신, 포은(圃隱) 선생의 ‘단심가(丹心歌)’가 있었다. 웬만한 사람은 누구나 기억하고 있겠지만 굳이 인용하자면 “이 몸이 죽어죽어 일 백번 고쳐죽어/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내용으로 가히 섬뜩한 공포감을 자아내게 할 만큼 왕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한 시조였다. 이 무렵의 우리들은 선조들의 이같은 충절의 미덕을 맹목적으로 추앙하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마치 왕이나 국부처럼 칭송하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충절에 대한 이 맹목적 흠모의 교육 탓일까. 오늘의 대통령을 포은이 노래한 봉건 왕조의 왕으로 착각해서인지 몇 주전 노무현 대통령과 국민의 대표들이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한 노인이 바닥에 꿇어 엎드려 대통령에게 큰절을 올리는 해프닝을 TV 화면을 통해 보았다. 오늘의 가치관에서도 충절이란 물론 존중되어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예컨대 군인은 국가를 위해서 충성을 바쳐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나 국민에 대한 것이지 한 특별한 개인에 대해 바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국의 대통령도 허물이 있거나 국가 이익에 심각하게 반하는 행위를 저지른다면 탄핵하여 물러나게 하는 것이 오늘의 민주주의이다. 충절이란 존중되어야 할 덕목이긴 하지만 이렇듯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오랜 전통을 이어온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 때문일까. 유럽사람들과 달리 우리들은 충(忠)뿐만 아니라 충에 유사한 행위들도 유달리 높이 사는 관습적 사고에 젖어 살고 있는 듯하다. 그 중 하나가 ‘소신’이라 부르는 어떤 정신자세이다. 오죽하면 ‘소신에 죽고 산다.’는 말까지 생겼으랴. 물론 소신도 존중되어야 할 가치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예컨대 정당하고 올바른 신념에 대한 소신은 가능한 한 실천되고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봉건시대의 충절이 그러하듯 소신 또한 한사코 고수하는 일만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특히 오늘의 시대-민주주의 시대-가 그러하다. 봉건주의와 달리 민주주의는 한 개인의 통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성원 모두의 참여에 의해서 이루어지므로 그 구성원 각자가 지닌 각기 다른 생각, 다른 신념들이 조정되지 않고서는 결코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없는 정치제도이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의 성원을 구성하는 각자는 그 지적 수준, 정서적 감수성, 인격, 능력, 성별이 어떠하든 모두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 판단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그 참여자의 한 사람일 뿐인 어떤 자가 타인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될 때까지 무작정 자신의 생각만을 관철하려 한다면 어떻게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인가. 하물며 그 같은 소신을 가진 자 바로 인간이며, 하늘 아래 인간이란 그 누구든 완전치 못함에랴. 최근 우리 사회에는 이렇듯-그 주장하는 바 신념이 옳든 옳지 않든-죽음을 불사하고 자신만의 소신을 관철하려는 풍조가 유행하고 있는 듯하다. 엊그제 아수라장이 된 민주노총 총회가 그러하고, 몇 주전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건설을 중지하라며 한 스님이 죽기 살기로 벌였던 단식투쟁이 그러하고, 몇 달전 새만금 방조제 공사에 반대, 마치 종교 의식처럼 전국토를 종단하여 포퓰리즘에 불을 지른 종교인들의 삼보일배가 그러하다. 그들의 상대가 어떤 태도로 그들을 대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들의 주장이 과연 최선의 것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자신만의 소신을 무작정 관찰하려 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라는 것, 누구나 귀를 활짝 열고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에 의해 최선의 해결책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옛 성현도 말하지 않았던가.“귀 있는 자 들어라.” 오세영 서울대 인문대 교수·시인
  • 정운찬 총장 교육부직원특강 전문

    한국 대학의 현실과 이상 1. 대학의 위기론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위기, 고등교육의 위기론이 들려온지도 제법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의 대학이 짧은 시기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감당해온 성취에 대해서 객관적인 인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의 유례없는 발전의 배후에는 물론 전 국민의 피땀어린 노력과 참여가 있습니다만, 그러한 성취동기를 교육을 통해 승화시키고 전문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던 대학의 기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수백년에 걸쳐 대학제도를 발전시켜 왔던 구미의 경험과는 달리 한국의 대학은 그 역사가 매우 짧습니다. 이웃 일본에 비해서도 우리는 매우 짧은 시기에 변화와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한국 대학이 수행해온 역할과 수고에 대한 응당의 평가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대학이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은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사회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사회로부터 대학에 요구하는 것이 달라졌고, 학생들이 교수와 맺는 관계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분화된 학문체제, 입시제도, 교육방식과 학교운영방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현상들도 자꾸 출현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며 복합적입니다. 한국경제의 발전 수준에서 볼 때 연구의 수준과 교육의 질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인문학의 위기론이 이야기되다가 이공계 위기론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급격히 변화하고 달라지는 사회를 대학이 채 따라가지 못해 현실적합성이 떨어진다는 염려도 있습니다. 기업들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이 별로 쓸모가 없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입시제도를 둘러싸고 학부모들과 중고등 학생들의 불만도 적지 않은 듯 합니다. 잘하는 사람은 잘하는 대로 못하는 사람은 못하는 대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부적합성과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제도적 노력을 개혁이라고 한다면 대학도 현재 개혁을 필요로 하는 시점에 있음은 분명합니다. 2. 세계화, 정보화, 신자유주의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고등교육, 대학의 위기는 도대체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요? 어떤 분들은 교수진을 탓하고 어떤 분들은 학생들의 질을 탓합니다.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위기의 요인들임은 분명합니다만, 보다 원천적으로 위기의 성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위기상을 지나치게 특수한 것, 즉, 우리만의 잘못된 현상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학들은 유사한 문제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가장 선진적인 대학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대학개혁의 문제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한국 대학의 위기상도 20세기 말 이후의 세계사적 변화와 관련하여 이해되어야 합니다. 저는 크게 세가지 현상이 위기의 배후에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세계화입니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상호작용의 빈도가 급증하면서 많은 영역에서 표준의 세계화, 즉 글로벌 스탠다드의 강화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나라별로, 지역별로 독자적인 개성을 갖고 존립이유를 찾아오던 제도나 기관, 관습들이 이 압력앞에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영어권이 아니면서 문화적인 축적 수준이 높은 아시아 국가의 대학들이 더욱 심한 몸살을 앓게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전달 매체의 발달에 따른 사회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정보의 산출과 유통방식이 지금까지와는 현저하게 달라지면서 전통적인 지식생산과 유통의 책임기구였던 대학의 위상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성적 담론 대신 감성적인 이미지가 더욱 중요시되는 변화도 함께 등장합니다. 지식을 전수하고 공유하는 절차도 현저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끝으로 대학의 위기를 가져오는 요소로는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의 확산을 들 수 있습니다. 시장과 경쟁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서 효율성을 극대화 하려는 논리가 큰 힘을 얻게 되면서 대학의 안팎에서도 경쟁논리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수들의 연구나 교육도 무한경쟁의 시스템 속에서만 더욱 발전하고 효율적일 것이라는 가정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습니다. 대학간에도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하고 기업처럼 홍보전략이 중시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대학이 기업연구소나 여타 지식정보기관들과 지식생산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오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 대학의 위기론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연구와 교육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의 시급성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대학이 선진국대학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는 관점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시스템구축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도 위기나 개혁이 이야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서 대학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시각도 좀더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것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21세기 세계질서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럼에도 무엇이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대두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이해와 대응이 없이 한국대학 만의 미시적 문제로 접근해서는 곤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한국적 특수성 그러나 한국대학의 위기상은 한국적 특수성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대학이 차지하는 엄청난 사회적 위상에 비해 대학 자체의 존립기반은 매우 취약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특수한 위기를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대학입시 뉴스가 사회의 톱뉴스가 되고, 대학 정책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이 되는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자녀의 대학입학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정도로 교육에 온 정성을 다 쏟는 것도 한국사회의 두드러진 모습니다. 사교육비가 큰 경제부담으로 되는 사회,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대접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유난히 강한 곳도 한국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대학의 위상이 한국처럼 강한 사회도 찾아보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 반면에 한국사회에서 정작 대학의 존립기반은 매우 취약합니다. 한국 근대 역사 속에서 우리는 대학이 과연 무엇하는 곳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본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먼저 제도적으로는 대학이 자신의 교육철학과 연구여건을 독창적으로 구축해나갈 자율성과 내적 권위도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정부의 대학정책 역시 자율성과 대학개성의 확립이란 점에서는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재정적으로는 대학이 연구와 교육에 지출하는 수준은 결코 충분하지 못합니다. 국립대학은 국립대학대로, 사립대학은 사립대학대로 우리 대학의 재정은 선진 교육과 연구를 감당하기에 한참 부족합니다. 사회적인 관심은 대단하면서도 정작 대학자체의 자율적 역량과 지적 권위는 뚜렷하지 못한 괴리로 인해 대학은 늘 대학외적인 문제들로 휘둘려온 감이 있습니다. 때로는 정부로부터, 때로는 기업이나 시장으로부터, 때로는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다양한 요구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진정으로 대학을 대학답게 만들기 위한 고민과 노력은 오히려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대학이 지성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사회의 다른 영역으로부터 독자적인 권위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기업들은 대학에게 점점 더 당장 쓰여질 기술교육, 전문교육을 요구합니다. 대학을 기업연구소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으며 실제로 그로 인한 대학교육의 파행을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대학을 자녀의 입시관문이란 잣대로만 바라봅니다. 대학의 연구와 교육실상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도 입시만은 최대의 관심대상이 됩니다. 정부기관이 대학을 행정과 규율의 대상으로만 파악하는 사례도 종종 경험합니다. 잠시 저희 서울대학교의 예를 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대학이 나름대로의 장점과 수행해야 할 지적 과제들이 있다고 봅니다만 특히 서울대학교가 한국사회에서 마땅히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장 뛰어난 연구자들을 기르고 전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지식산출기관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오늘 서울대학교의 연구여건은 매우 열악합니다.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지식 산출기관임에도 정작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크게 부족합니다. 대학 본연의 역할을 중심으로 변화를 모색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연구와 교육 자체와는 거리가 먼 일들로 대학의 지적자원이 소진되어야 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습니다. 저는 입시제도의 난맥상 못지 않게 대학이 뚜렷한 자기비전을 갖고 독자적인 연구와 교육의 내실을 키워가지 못하는 것 자체가 매우 심각한 위기현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서울대학교 만의 문제는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대학과 사회 간에 서로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의 편차가 커지고 상호작용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야기되는 혼란과 불만,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대학이 존립이유와 자기정체성을 뚜렷하게 확립하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위기의 징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위기극복을 명분으로 시행된 여러 가지 하향적 제도 개혁이나 정부간섭이 위기를 더욱 심화시킨 측면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위기는 반드시 대학 내부의 문제라기 보다는 대학-사회-정부가 한데 얽혀 있는 구조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라 생각합니다. 4. 개혁의 방향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매우 상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대학을 대학답게 만드는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학이라는 제도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그 본래적인 의미를 재확인하는 작업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대학이 우리 사회에 ‘진리’의 존재와 그 불멸의 가치를 알려주는 지성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이 고답적인 도덕공동체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세속적인 이해관심에 좌우되는 공리주의에 지배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저는 대학의 이런 정체성이 위협을 받는다면, 안팎의 어떤 요구나 강요에도 흔들리지 말고 우리 자신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변함없는 역할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교육과 연구입니다. 이 둘은 수레의 양 바퀴와 같아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학교의 사정과 여건에 따라 둘 중 어느 한곳에 더욱 집중할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이 양자는 대학의 존립근거입니다. 오늘날 대학교육은 너무도 기능위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 있는지 저는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때로는 막스베버가 말한 ‘비지성적 전문가’들만 양산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기조차 합니다. 개인의 명예나 출세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과 인류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진지한 젊은이들을 키우는 대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대학이 대중교육기관처럼 일반화되기 했지만 그래도 대학은 한 사회의 엘리트 집단을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입니다. 대학은 단순한 지식전수기관이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학생들이 즐거워할 취미활동이나 당장 쓰여질 기술교육의 장소도 아닙니다. 대학교육은 학생들의 잠재적인 지적 재능을 키워내고 그들이 창의적이고 건강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길러내는 최고수준의 가르침입니다. 때로는 힘든 훈련을 거쳐 유능한 연구자를 키워내는 과정이어야 하고, 냉정한 평가를 통해 지적으로 단련된 지성인을 키워내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분기점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사고할 줄 아는 식견과 혜안을 길러주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대학교육이 내용적으로나 질적으로 더욱 고급스러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이런 기대와 매우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보는 바대로 오늘날 뛰어난 인재들이 고시공부로, 의대진학으로 몰려들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 사회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단일한 가치를 추구하고 당장에 쓰여질 효용과 개인적 안락만을 중요시할 때 그 사회의 발전 잠재력이 약화될 것은 분명합니다. 대학이 이차적이고 직업적인 훈련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대학의 존재이유가 그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직접적 효용성으로부터 한걸음 물러서 진리 그 자체, 연구 그 자체의 의의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성찰성을 중시하는 인문학적인 연구나 실험논리를 중시하는 자연과학적 연구는 그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최근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에 대한 이분법적 논의를 자주 접합니다만, 이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과학의 양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함께 중시되어야 할 대학의 본령이 연구입니다. 자발적인 연구를 지원하고 진지한 연구성과를 존중하는 학문적인 분위기가 대학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한국대학은 여전히 선진국으로부터 최신의 지식들을 도입하고 전파해야 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우리 자신이 독창적이고 주체적인 지식을 산출하는 능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해방후 50년이 훨씬 넘은 역사 속에서 여전히 지적인 종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급속한 경제발전, 민주화, 남북관계의 변화, 정보사회로의 이행 등 한국사회가 보여준 현대사의 족적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현상임에도 아직 우리 대학이 이를 세계학계에 내놓을 수준의 연구물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연구역량을 강화하고 연구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방향으로의 개혁이 절실합니다. 한국의 대학은 연구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너무 빈약합니다. 교수들의 연구를 진작시킨다는 명목으로 요즈음 경쟁논리가 곳곳에 도입되고 있습니다. 분명히 교수사회도 좀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연구활동에 참여해야 하며 자기쇄신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경쟁구조와 관료적인 평가논리가 곧 연구역량의 강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연구에는 연구자의 각오와 역량 못지 않게 연구를 가능케 하는 여건과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자연과학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인문사회과학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연구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각종 인프라와 행정지원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자만을 다그치는 방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열정적으로 연구에 전념해야 할 젊은 교수들이 살아남기 위해 쏟아야하는 땀이 진정으로 연구작업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제도적 강요로 인해 창조성을 잃고 연구역량을 소진해 가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개별연구자들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조직입니다. 또한 다양한 사고와 행동이 인정되고 공존하는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전체적인 의사소통과 의사결정과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민주적인 소통을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종 민주적 의사결정은 추진력의 빈약함으로 귀결된다는 오해가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토론되고 그 속에서 결집된 의사가 확인될 수만 있다면 어떤 결정이나 개혁적인 조치들도 어렵지 않게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사회에 좋은 모델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성의 확보는 매우 중요한 개혁과제의 하나입니다. 대학마다 여건과 상황이 다를 것입니다. 따라서 각 대학이 자신에 맞는 최적의 구조들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대학 본연의 특성과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의 강요나 요구로부터 자율적인 권위를 민주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위해 학부모나 기업, 정부 당국 등은 모두 대학이 스스로의 권위를 지적인 차원에서 구축하고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의 권위를 우리 사회가 인정해주지 않고, 대학을 행정기관의 하나로 보거나 투자기관의 하나로 생각한다면 장기적으로 대학 자체는 물론이고 우리사회에도 큰 손실을 가져올 것입니다. 또한 제도만능주의적 사고도 재고할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특정한 제도의 도입이 곧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대학이 가진 문제 자체가 복잡 다양하며, 여러 대학간의 사정이 또한 다릅니다. 국립대학의 여건과 사립대학의 여건이 다르며 종합대학과 단과대학의 여건 또한 다를 것입니다.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본연의 역할을 강화하는 틀 위에서 각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개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한 사회의 요구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특히 한국사회처럼 대학입시와 졸업이 중요한 사회적 함의를 갖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대학개혁의 핵심은 오히려 대학본질의 회복, 다시 말해 지성의 권위를 확립하고 창조적인 지식생산의 능력을 배양하며 지적이고 비판적인 인재들을 양성하는 일에 일차적인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저희 경우를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만 서울대학교가 지역균형선발제를 비롯한 다양한 선발기준을 모색한다거나, 국내외적인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연구기능을 활성화함으로써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는 지식공동체로 개혁해 보려는 구상을 하는 이유도 이런 생각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각 대학마다 구체적인 형태는 달라도 대학 본연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유사한 개혁과제들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대학이 자율성과 독창성을 가진 교육과 연구의 중심지로서 제 기능을 더욱 강화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대학개혁의 근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
  • [피플 인 포커스] 정통관료 출신… ‘금융위기’ 극복 주역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홍콩의 차기 행정장관으로 내정된 도널드 창(曾蔭權·청인취안) 정무사장(총리·60)은 38년 동안 관직에 몸담아온 정통 관료 출신이다. 조기 퇴진한 둥젠화(董建華) 행정장관의 뒤를 잇는 그는 오는 7월10일 형식적 절차인 선거위원회 보궐선거를 거쳐 2년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 홍콩 언론들은 “도널드 창은 앞으로 4달 동안 홍콩인들로부터 혹독한 검증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정협(政協) 천융치(陳永棋) 상무위원은 “홍콩과 중국 모두의 이익을 고려한 인선”이라고 만족을 표시했다. 1944년 경찰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교 졸업 직후인 1967년 공직에 입문했다.1971년 행정관으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으로 행정 엘리트로서의 길로 들어섰고 1981년 뒤늦게 하버드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창 내정자는 95년 9월 홍콩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인으로부터 홍콩 재정사장직을 넘겨받는 등 순탄한 출세가도를 달려왔다.1977년 1년 동안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파견 근무한 경력도 있다. 항상 나비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창 내정자는 홍콩의 중국 반환 직전인 97년 6월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는 영예까지 누렸다. 하지만 영국과의 돈독한 관계는 홍콩 반환 이후 승진에 걸림돌이 됐고 이후 중국 중앙정부의 신임을 얻기 위해 조용하게 업무에만 전념했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탁월한 행정능력을 인정받아 2001년 2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정무사장에 임명,18만명의 홍콩 공무원들을 이끌어 왔다. 창 내정자는 중국 중앙정부의 서부대개발 발표가 나오자 2001년 5월 홍콩 재계 대표단을 이끌고 서부투자를 주도하면서 중국 지도부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홍콩을 직할 통치하려는 중국 지도부와 정치개혁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홍콩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수위조절’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어려움이 있거나 승진할 때 롤렉스 시계를 사모으는 취미로 유명한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oilman@seoul.co.kr
  • ‘대동아 공영권’ 반박할 논리 있는가

    지난 한 주 ‘한승조 파문’이 한국을 급습했다. 한승조 파문은 단지 군사독재에 찌든 노학자의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아니다. 한국 극우의 심중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어진 지만원-조갑제의 글은 이를 뒷받침한다. 지씨가 야만적 자본의 논리인 ‘약육강식’을 내세웠다면, 조씨는 이념의 극한대립을 강조하는 ‘반공주의’의 진수를 선보였다. 이 때문에 일부 진보적 학자들 사이에서는 “70대 정치학자치고 순진했다.”는 말이 나온다. 내놓고 말 못했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적 우익의 실상을 ‘단 한번에 화끈하게’ 드러냈다는 뜻이다. 보수진영은 당황하는 기색이다. 한승조를 공동대표로 ‘모셨던’ 자유시민연대는 “우리도 분노한다.”면서 비판하고 나섰다.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고치겠다고 나선 ‘교과서포럼’의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는 “우리와 한승조-조갑제식 논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 비교되는 것 자체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노무현정부=좌파’라는 도식을 내세운 보수언론들은 사실전달에 충실한, 간략한 기사만 내보냈다. 물론 비판사설도 실었다. 그러나 이는 ‘원로들의 시국선언’이나 ‘뉴라이트 운동’,‘자유주의 세력 결집’이란 타이틀로 극우세력의 반동적 태도까지도 비중있게 다루던 모습과 다르다. 지만원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보수언론을 지명하면서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그대로 받아쓰는 것에 실망했다.”고 쓴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언론이 평소 지씨 같은 사람에게 어떤 이미지였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한승조 파문이 과거사 청산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결론으로만 마무리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대 김기봉 교수는 한승조의 발언 내용에 앞서 ‘수준과 형식’을 문제삼았다.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 등이 걸려 있는 현실에서 일본 극우 매체에, 수준 이하의 표현까지 써가며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 교수는 “정말 소신이었다면 먼저 한국에서 정식으로 문제제기했어야 했다.”면서 동시에 “우리 역시 분노하기보다 그런 식의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MBC 100분토론에서 공창제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서울대 이영훈 교수와 같은 케이스라는 것이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해 이 교수의 정치적 위치는 비판하면서도 논리에 대해서는 “일점일획의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한국 우익의 주장은 결국 대동아공영권의 논리, 아시아해방전쟁의 논리의 변형인데 우리가 이것을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반박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대동아공영권을 뛰어넘을 수 있는 논리를 우리가 생산해냈느냐.”는 반문이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학술의 장에 던져” 대논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는 현재 상황을 “나에게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면서 한국의 우익 자체가 당황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도 “신자유주의적인 물량주의로만 따진다면 한승조식의 주장이 꼭 틀렸다고만 말하기 어렵다.”면서 “우리와 역사적 경험이 다르기는 하지만 인도와 타이완 등은 실제 그런 논리로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박 교수는 이 문제가 지나친 이분법이나 흑백논리로 내달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한승조식 주장에 당연히 동의할 수 없지만 이런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정치·경제논리를 차분하게 따져봐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과거사 청산이 덜 됐다는 문제도 다뤄져야 하지만 그것만이 원인인 것으로 단선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많이 거론되고 있는 동북아 공동체, 아시아 민족주의 논의와 연계해서 접근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양대 임지현 교수는 한승조 파문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비판했다. 임 교수는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에 먹혔다면 1917년에 조선은 독립했을 것”이라거나 “반공블록 때문에 독일에서도 나치전범 처리와 홀로코스트 문제가 흐지부지될 뻔했다.”면서 한승조-조갑제류의 주장을 “학문적·논리적 엄밀성이 전혀 없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임 교수는 너무 흥분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미 일본 우익 가운데 한승조류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많다.”면서 “그런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을 놓고 한국이 결집하고 그 핑계로 일본 우익이 다시 결집하는 악순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구적 근대화 혹은 발전모델을 우선가치로 삼는 ‘역사주의의 환상’에 빠져 있는 한 언젠가는 제기될 문제였다는 점에는 공감을 나타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공직 틀이 바뀐다] (2)인사·조직권 부처 자율로

    [공직 틀이 바뀐다] (2)인사·조직권 부처 자율로

    “5∼6개의 결재단계로는 참신한 의사결정과 창의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책임행정이 안돼요. 계급제 조직에서는 일이 되지 않는 거죠. 분명한 책임행정을 위해 본부제와 팀제도입이 불가피합니다.” 3월6일 오전 9시 정부중앙청사 별관 2층 회의실. 행정자치부 직원 400여명이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300여명이 들어가는 장소였던 만큼 통로와 뒤편까지 빈틈이 없었다. 이들은 오영교 행자부 장관의 ‘팀제 도입 목적’에 대해 귀를 기울이며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오 장관이 이미 5본부와 60팀제 도입 입장을 밝힌 터여서 관심은 더욱 집중됐다. 최근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행자부의 한 단면이다. 지각 변동의 서곡에 비유되기도 한다. 일부 직원들은 “쓰나미가 몰려온다. 행자부는 직격탄을 맞고, 곧 전체 부처로 번질 것”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오 장관이 기존 조직을 크게 흔들고 있는 것이다. 정권 3년차면 안정될 시기인데 변화의 물결이 강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직권 부처 자율로 지난 2일 통과된 정부조직법과 총액인건비제도 도입이 변화를 주도한다. 그동안 행자부가 틀어쥐고 있던 조직 및 인력운용권이 부처 자율로 대폭 넘어가게 됐다. 부처가 성과를 가장 잘 낼 수 있도록 조직 편성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갖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기존엔 실장-국장-과장 등 일률적으로 이뤄지던 보조기관의 명칭이 부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정할 수 있다. 본부장, 단장, 팀장 등 다양하게 하도록 했다. 현재의 감사관과 공보관도 감사팀, 공보단 등으로 바꿀 수 있다. 재경부 등 10개 부처에 반드시 두도록 돼 있던 차관보도 없앨 수 있다. 실·국장 밑에 있는 보조기관도 과·팀·반 등으로 자유롭게 구성토록 했다. 과 단위 장의 직급을 3·4급으로 하던 것을 5급까지 늘렸다. 행자부는 이를 근거로 이달 중 팀제로 전환한다. 본부장이 5명이다. 하지만 현재 본부의 1급은 3명이고, 국장급(2∼3급) 자리는 13개이다. 국장 가운데 2명밖에 본부장을 못한다. 이에 따라 같은 2급 본부장 밑에서 2급 팀장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직사회에 충격을 던져줄 게 틀림없다. ●3급 이상만 직제로 관리 정부의 속내를 살펴보자. 자율성에 무게를 두지만, 가급적이면 본부제와 팀제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행자부 최양식 정부혁신본부장은 8일 “팀제가 도입되면 계층이 축소돼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성과급제도를 확대시행할 수 있다.”면서 “이것은 혁신의 시작이며, 모든 부처가 행자부를 보고 따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조직권의 부처 이양은 7월부터 시범 도입되는 총액인건비제로 더욱 구체화된다. 정부가 공무원 총정원과 부처별 인건비 총액, 부처별 전체 인원만 제한하고 나머지는 모두 부처가 ‘알아서’하는 것이다. 배정된 인건비 내에서 고위직과 하위직,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운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정원 1명이라도 늘리려면 행자부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계급별·직종별 정원도 자율로 한다. 한시기구 및 정원도 승인제도를 폐지했다. 다만, 국장급(1∼3급) 이상 기구는 현행대로 직제를 정하기로 했다. 하위직보다 고위직의 비대화를 우려해 제한 규정을 뒀다. 이와 함께 부처별 정원 조정은 연초에 한 차례만 허용된다. 긴급한 이유로 갑자기 인력을 늘려 편법 증원이란 논란이 종종 일었던 ‘수시직제’는 인정되지 않는다. ●부처별 정원 결정은? 현 정부가 ‘일 잘하는 정부’를 추구하기 때문에 향후 인력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인건비 재원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행자부가 공무원의 분야·부처별 중기 정부 인력규모를 수립한다. 이미 별도 팀이 구성돼 작업 중이다. 지난해 맡겼던 ‘정부인력규모 예측모델’용역을 기초로 한다. 용역 결과 증가가 예상되는 분야는 치안·재난·농수산·과학기술·교육·보건·환경 등이다. 행자부는 이를 토대로 향후 3∼5년의 인력운영계획을 세운다. 중앙인사위는 민간의 임금 상승률과 경제 성장률 등을 고려해 보수 계획을 짠다. 기획예산처는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짜면서 부처별 인건비를 결정한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문제점은 없나 “직무 분석이 제대로 안 됐는데 적정 인력을 산출할 수 있습니까.” 정부의 총액인건비제 도입 방침에 대해 중앙부처 국장인 A씨는 이같이 반문했다. 정부가 총액인건비제 도입 등 조직과 인사권을 부처에 넘기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인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분권과 자율의 원리에 기초한다.’고 했다. 이같은 원칙에 문제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예상외로 문제점이 지적된다. 우선 거론되는 것이 직무 분석이 안 됐다는 것이다. 중앙인사위가 1∼3급에 대해 고위공무원단을 도입하기 위해 중앙부처 국장급 직위에 대해 직무분석을 했지만,4급 이하에 대해서는 직무분석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재 각 부처가 하는 일의 적정 인력이 몇 명인지 측정이 되지 않았다. 제대로 시행되려면 각 부처가 하는 일에 대해 정확한 분석이 선행돼야 하지만 갑자기 결정됐기 때문에 이런 절차가 생략됐다. 이에 따라 각 부처의 적정 인원은 현 수준에서 출발, 총액인건비가 책정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정원이 많은 부처는 유리하지만, 정원이 적게 책정된 부처는 난색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동안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한 것도 한계다. 상당수 부처가 이대로 정착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인력배정의 부처간 격차가 고착화된다는 것이다. 늘어나도 한계가 뻔하다는 것이다. 힘센 부처는 굳히기에 들어갈 수 있는 반면 인원이 적은 부처는 벗어날 길이 없다고 항변한다. 특히 국무총리실 등 일부 부처는 정원은 많지 않고, 그동안 다른 부처에서 파견받아 업무처리를 했기 때문에 매우 난감해한다. 그동안 파견 공무원은 원소속에서 인건비를 부담했지만, 앞으로는 파견받은 기관에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부담스럽다. 이 때문에 당분간 부처간 인력 부풀리기 전쟁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수시직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논란이다. 인력수급 계획에 따라 증원을 해주고, 편법 증원을 막자는 취지이지만, 수시직제 개정을 막으면 급변하는 환경과 갑자기 터진 일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시직제를 제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위직이나 비정규직이 양산될 수 있다는 점도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된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각 기관이 하위직이나 비정규직 늘리기에 집중하면 당장은 절감할 수 있지만, 나중엔 인건비 증가의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반발을 의식해 ‘퇴출’제도 도입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것도 향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중앙부처의 B장관은 이에 대해 “총액인건비제도가 성공하려면 일 못하는 직원을 퇴출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현재처럼 일하지 않고도 정년까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제”라면서 “정부가 수용성을 걱정해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전문가·공무원단체 반응 총액인건비제 등 조직과 인력의 부처 자율권 확대에 대해 전문가들은 “방향은 맞지만 현실적으로 실행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김병섭 교수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가야 한다.”고 밝혔다.“부처의 자율성이 많아지고, 성과보상제도를 도입해 경쟁체제를 갖추는 것은 잘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확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확대하게 되면 월급을 많이 받는 사람 위주로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범시행기간에 충분한 실험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성대 이창원 교수는 “추구하는 방향은 맞지만 인건비의 총액이 있기 때문에 실행 과정에 마찰이 심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인건비의 총액이 늘지 않아 제한된 재원으로 각 부처가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총액인건비제는 지방재정력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과거의 낙후지수와 발전지수 등을 감안해 낙후지역에 대해서는 특수한 지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서형택 정책실장은 “이 제도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하나로 현재보다 인력이 감소될 것”이라며 “공공부문의 고용불안은 일반사회의 노동조건 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에 전면 유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민에게는 저임금으로 인한 행정서비스의 질 저하를 가져 오고, 인력관리측면에서는 능력보다는 정치공무원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적극 반대한다.”고 밝혔다.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 류강연 사무총장은 “인건비 상한제는 필요할 경우 행정조직을 늘리는 등 수요에 따른 인력조정을 할 수 없게 되며, 보수를 차별화할 경우 기업과는 달리 조직활성화의 저해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교황의 인간관과 걸어온 길 2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84)의 회고록 ‘일어나 갑시다!’(성하은 옮김, 성염 주교황청 한국대사 감수, 경세원)가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이 책에는 카롤 보이틸라(교황의 본명)가 1958년 폴란드 크라코프 대주교의 보좌주교로 임명된 이후부터 1978년 첫 폴란드인 교황으로 선임되기까지 20년 동안을 “회상하고 반성한” 내용이 담겼다. 교황이 자신의 사제생활을 회고한 ‘은사와 신비’(1996년)의 후속편 격인 이 책은 일반적인 회고록처럼 사건 중심이 아니라 주제별로 구성돼 있는 것이 특징. 제목은 성경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 함께 온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일어나 가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교황은 이 책에서 특히 주교의 역할과 마음자세를 강조한다.“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는 요한복음의 구절을 인용하는 교황은 “주교는 무엇보다 되도록 많은 신자들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인격 하나하나는 각각 한 권의 책에 해당한다. 나는 늘 이런 확신에 따라 행동했다.”는 교황의 인간관도 전해준다. 교황은 필리핀 교회와 한국 교회의 역동성에 주목한다. 아시아 교회의 복음화야말로 제3000년기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라는 것이다. 책에는 1958년 크라코프 주교로 서임됐을 당시의 일화가 실려 있다. 교황은 주교가 된 날 폴란드 리나 강을 카누로 여행하던 중 스테판 비신스키 추기경으로부터 당시 교황 비오 12세의 결정을 통보받았다. 추기경을 만나러 바르샤바로 가던 그는 밀가루 부대를 실은 트럭에 몸을 싣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고 회상한다. 교황은 공산당 시잘 폴란드에서 성당 신축 허가를 번복한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는 “성직자의 가장 큰 역할 가운데 하나는 훈계이지만 크라코프 시절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것은 내 성격 때문이었다.”며 자책하기도 한다. 이 회고록은 폴란드를 제외한 세계독점 배포권을 갖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소유의 몬다도리 출판사에 의해 지난해 5월 처음 출간됐다. 회고록 내용은 이미 국내 언론을 통해 단편적으로 소개된 바 있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8) 계룡산과 원불교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8) 계룡산과 원불교

    ●신종교의 개벽사상엔 정도령이 숨쉰다 이십일 쯤 전 나는 뜻밖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정감록 산책을 빠짐없이 읽고 있다는 원불교 교무 김정원(가명 53세)씨의 글이었다. 그 뒤 우리는 수십 차례 전자우편을 주고받았는데 그러는 사이 나는 김 교무가 계룡산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 오늘은 김 교무와 주고받은 글을 대화체로 편집해 원불교와 계룡산의 관계를 정리해볼까 한다.‘교무’란 물론 원불교의 성직자다. 전자우편에서 나는 김 교무에게 이렇게 물었다.“원불교는 동학 및 증산교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신종교입니다. 그런데 제가 원불교의 경전 ‘대종경’을 읽어본 바로는 다른 신종교들에 비해 신비적, 주술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원불교의 그런 특성은 계룡산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나타나겠지요?” 김 교무의 답은 이랬다.“먼저 우리 원불교에 대해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1891∼1943)은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 동학교조) 선생과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 1871∼1909, 증산교조) 선생과 한 가지로 구한말 일제하라는 그야말로 한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대에 민중을 이끄신 분입니다. 이 분들이 세운 민족종교는 개벽사상(開闢思想)을 공유합니다. 개벽의 주체는 한국이요, 장차 세계의 도덕적·문명적, 그리고 정치적 중심지가 될 나라도 한국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는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교대하는 시기입니다만 곧 묵은 시대 지나가고 새 세상이 돌아옵니다.‘정감록’에서 말한 정도령 시대가 옵니다. 우리 원불교의 소태산 대종사는 새 시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바야흐로 동방에 밝은 해가 솟으려 하는 때이니, 서양이 먼저 문명함은 동방에 해가 오를 때에 그 광명이 서쪽 하늘에 먼저 비침과 같은 것이며, 태양이 중천에 이르면 그 광명이 시방 세계에 고루 비치게 되나니 그 때야말로 큰 도덕 세계요 참 문명 세계니라.” 우리가 좀더 수련해야 될 이유가 바로 거기 있습니다. 얼핏 보면 서양이 우리보다 나아 뵈지만 결국 동서양은 한가지입니다. 미국에 대해 기죽을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백:교무님이 말씀하신 대로 개벽사상이란 것은 원불교 고유의 사상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 땅에 예부터 전해온 미륵신앙 즉, 미륵불이 세상에 와 용화회상(龍華會上)을 연다는 그 신앙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미륵신앙은 ‘정감록’의 등장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된 것도 같습니다. 정감록에선 정도령이 계룡산 아래 새 세상을 펼친다고 했는데, 정도령이 바로 미륵 아닌가요? 많은 신종교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미륵불 또는 정도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미륵과 정도령은 구별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김:그건 옳은 판단이라고 봐요. 증산만 해도 후천개벽을 선언한 분인데 그 제자들은 증산을 미륵불로 보거든요. 그러나 우리 원불교의 입장은 다릅니다. 미륵불과 용화회상에 대해 소태산은 전혀 다르게 설명합니다.“미륵불이라 함은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드러나는 것이요, 용화회상이라 함은 크게 밝은 세상이 되는 것이니, 곧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의 대의가 널리 행하여지는 것이다.” 미륵불이란 특정한 인물이 아닙니다. 진리가 크게 밝혀져 곳곳에 부처가 가득 찬 세상이 용화세상입니다. 원불교의 2대 교조 정산종사는 ‘근실(勤實)한 세상’이 바로 용화세상이라고 했습니다. 백:착실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 바로 용화회상이라고요? 그렇담 원불교에선 정감록에 나오는 진인왕을 무어라 설명할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원불교에선 정감록 자체를 엉터리라며 근원적으로 부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불교는 신비적·초월적인 존재를 모두 부정하는 것 같으니까요. 김:정감록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만 원불교의 해석은 독특합니다. 소태산은 정도령을 鄭씨 성을 가진 특정인물이 아니라 ‘바른 지도자’라고 보았어요. 정도령과 함께 전개될 이상세계란 것도 새 왕조는 아니고 ‘밝은 세상’이라고 했어요. 정감록의 예언은 장차 참되고 바른 사람들이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움직이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백:교무님 말씀을 듣고 자료를 좀더 찾아봤습니다. 정산종사는 계룡산에 대해 아주 특이한 주장을 했더군요.“계룡산에 정씨 왕이 난다는 것은 닭이 울면 날이 새고 바른 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라고 했던가요? 그렇다면 정산이 말하는 ‘바른 법’은 무엇일까요? 종교를 가리킨 것 같지요. 정산의 주장대로라면 민중이 염원한 계룡산 정진인은 바른 종교의 등장이고, 바른 종교란 원불교란 말씀입니까? ●‘불종불박(佛宗佛朴)’의 예언 백:교무님이 답을 안 하시는군요. 전 사실 이렇게 짐작했습니다. 원불교에선 미신이나 이적 같은 것을 조금도 안 믿는 것 같으니까, 계룡산 같은 것은 원불교의 입장에서 무의미할 것이라고요. 원불교 교리에 따르면, 착실한 사람들이 주도하는 밝은 세상이 바로 미륵의 용화회상, 개벽된 세상 아닙니까? 그렇담 계룡산이든 지리산이든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생각되는 거죠. 김:백 소장님은 이런 얘기 혹 들어보셨나요? 1936년 4월21일 소태산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계룡산을 찾으셨는데 그 때 각석(刻石) 하나가 화제가 됐습니다. 신도안 대궐 터에 있던 이상한 바위인데 기이하게도 ‘불종불박(佛宗佛朴)’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바위는 이태조가 신도안에 대궐 터를 닦으면서 운반해 놓은 것이라 하고, 거기 새겨진 글씨는 무학대사의 필적이란 전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글귀를 이렇게 해석합니다.“장차 불법이 주도하는 세상이 되는데, 그 때 주세불(主世佛)은 박씨”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신도안은 정치적 의미의 새 도읍이 아니라, 새 불국토의 중심이 될 곳입니다. 이런 이유로 원불교에선 계룡산 신도안을 특별하게 여깁니다. 백:소태산은 자신을 그 전설의 주인공으로 보았던 게 아닐까요? 그가 신도안에 수도 도량을 지으라고 명령했다면 그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네요. 김:소태산의 속성(俗姓)이 박씨여서 저희들은 그 바위를 신비롭게 여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계룡산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선배 교무는 이렇게 말했어요.“지구의 축이라는 계룡산, 일찍이 무학대사가 이곳에 도(道, 종교)의 도시(都市)가 열릴 것이라 예언했던 세계의 수도 계룡산, 그래서 그런지 지명조차 갑사(甲寺), 신원사(新元寺), 상도리(上道里)가 있는 계룡산. 그 곳에 원시반본(原始反本)하여 상원갑(上元甲)의 시대가 예고된 곳이 아닌가.” 계룡산은 세계의 수도, 지구의 축이 될 것입니다.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새 세상이 펼쳐질 곳, 세계종교의 중심으로 예정된 성지가 계룡산입니다. ●“어서어서 신도안으로 들어가라” 백:조사를 해봤더니 1959년 10월 정산종사의 주도로 당시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 64번지 신도안 대궐터의 불종불박 바위 뒤에 있던 초가 1동을 원불교 측이 매입했더군요. 거기서 2㎞ 떨어져 있던 원불교 남선교당도 아마 그 곳으로 옮겨졌지요. 김:그건 그랬어요. 정산종사가 신도안 ‘불종불박’ 땅을 매입하라고 하셔서 그리 된 것입니다. 사실 원불교의 어른들은 모두 신도안에 다녀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산종사는 직접 다녀오신 일이 없었지만 신도안의 역사를 환히 꿰뚫고 계셨습니다.1961년 10월 정산종사가 열반에 앞서 3대교조가 될 대산종사에게 “지체 말고 어서 어서 신도안에 들어가 터를 잡아라.” 하셔 대산종사는 신도안에 정양을 하며 삼동원의 터를 닦았습니다. 백:제자들에겐 신도안으로 들어가라, 명령했지만 정산종사는 신도안에 다녀온 적이 없었다는 교무님 말씀이 이상하게 들립니다. 정산은 신도안을 그저 하나의 상징으로만 생각했을 뿐 실지로는 마음에 두지 않았던 것일까요? 김:전혀 잘못된 추측입니다. 정산종사는 신도안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어요. 어느 땐가 풍수에 밝은 제자를 보내 신도안의 지세를 살펴보고 오라고도 했습니다. 신도안을 한 바퀴 돌며 살펴본 제자가 돌아와 보고했습니다.“제가 계룡산 상봉에 올라가 내려다 보니 신도안은 천하제일의 귀(貴)한 터였습니다. 정상에 올라 신도안을 굽어 보니 그 산세가 만조백관이 조공을 바치는 형국이었습니다. 다만 너무도 아쉽게 시루봉 하나가 휙 돌아서 있어 어떤 사람들은 역적봉이라 부릅니다. 시루봉을 싫어봉이라고도 합니다. 자세히 따져 보면 신도안은 농사도 잘 안 되고, 천하에 빈(貧) 터입니다.” 이 말을 정산은 몹시 못마땅해 했다고 합니다. 정산은 계룡산이 명산 중의 명산임을 굳게 믿으셨어요. 그래서 3대 교조 대산종사는 계룡산을 가리켜 정산의 높은 덕을 상징하는 산으로 보았습니다. 사실 정산은 구도 수행하던 시절 가야산에서 ‘격암유록’의 갑을가를 얻으셨다 해요. 그 가운데 “상도(上道)에 가야 큰 스승을 만난다.”는 구절이 있는데 그 상도란 지명이 계룡산에 있어요. 상도는 지명이자 진리의 시작이며 진리 그 자체가 아니겠습니까. 대산은 그런 내력을 다 알아 계룡산과 정산종사를 연계시킨 겁니다. 백:저도 글에서 읽었습니다만 대산의 계룡산 사랑도 대단했더군요.“싫어봉이니 역적봉이니 그런 소리 당최 하지 마라. 성인을 맞이하려고 돌아선 형국이 아니냐. 영성봉(迎聖峯)이라 하거라.”라고 했다고요? 김:1962년 7월 대산종사는 계룡산 상봉을 오르다가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억조창생개복처(億兆蒼生開福處) 천불만성발아지(千佛萬聖發芽地)” 즉, 계룡산은 억조창생의 복을 여는 땅이니 천명의 부처, 만명의 성인이 나올 곳이란 뜻입니다. 원불교에선 큰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받들어 신도안 경영에 힘쓴 결과 1970년대 원불교의 신도안 삼동수양원은 5만 8000평 정도로 규모가 확대됐습니다. ●불교부흥을 예언한 정감록 백:이쯤에서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소태산 대종사 이래 원불교의 지도자들은 계룡산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 이유는 계룡산이 장차 불교 부흥의 성지가 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고요. 김:맞습니다. 불교부흥은 ‘정감록’ 예언의 핵심입니다. 정산종사는 일찍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정감록에 이런 말이 있다. 왕씨는 나를 벗 삼고(王氏我友), 이씨는 나를 노예 삼고(李氏奴我), 정씨는 나를 스승 삼는다(鄭氏師我) 하였는데 이는 불교를 두고 한 말이다.” 아시다시피 고려는 친불, 조선은 억불이었는데 다가올 세상은 숭불(崇佛)이란 해석이 아니겠습니까? 정산종사는 정감록이 예언한 미래 세상을 불교 세상으로 보신 겁니다. 또 이런 말씀도 남기셨어요.“도교가 하늘이라면 불교는 땅이며 유교는 사람이다. 지금은 땅에서 올라오는 세상이다. 불교 세상이다.” 앞으론 불교가 세상 도덕의 중심입니다. 백:원불교에선 신도안에서 대규모 선교사업을 펼쳤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야학을 운영해 생활 개선, 문맹 퇴치, 미신 타파 운동을 했고, 그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응도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보기에 따라선 마치 원불교가 신도안을 접수하려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김:접수라뇨? 나쁜 뜻으로 볼 일이 아닙니다. 원불교는 신도안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새 운수가 되기만을 기다리는 정감록 신자들을 깨우치려 한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미신이고, 그런 미신으론 밝은 세상을 절대 일으키지 못합니다. 생활이 우선 근실해야지요. 신도안 주민 가운데 무려 850명이 처음 7년 동안 원불교의 야학에서 올바른 가치를 배웠습니다. ●“계룡대 옮기면 우린 다시 들어간다” 백:그러나 원불교도 결국 신도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1983년 7월27일 제5공화국 정부는 신도안의 전주민에게 이 지역에서 철거하라는 통고를 했지요. 이른바 ‘6·20사업’이었습니다. 신도안 일대에 군사기지 ‘계룡대’가 들어서기로 확정됐습니다. 그렇다면 신도안이 세계종교의 중심이 될 거란 정감록의 해석은 완전히 빗나간 것 아니겠습니까? 김:매사를 그렇게 성급하게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1959년 정산종사가 이런 예언을 했습니다.“앞으로 30년 후에는 신도안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과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89년,‘6·20사업’으로 신도안 주민들은 모두 철수했고 육·해·공군 참모본부가 들어섰습니다. 실제로 엄청 변한 거지요. 백:요컨대 원불교가 신도안에 건설한 삼동원의 꿈은 백일몽이 된 거죠. 김:성인의 말씀을 범부의 안목으로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계룡산 신도안에 원불교도들의 염원이 실현됩니다. 천하를 뒤흔드는 권력의 위세도, 지금 여기 살아 숨쉬는 육신도 수명에 한계가 있으나 소중한 꿈은 한계를 벗어납니다.5공 정부의 무모한 계획으로 삼동원을 포기할 당시 원불교는 조건부로 매매계약에 서명했습니다. 언젠가 군사시설이 철거될 때 최우선 순위로 원불교 측에 반환해 달라고 명시했습니다. 백:신도안 땅은 이를테면 특정한 공간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거기 너무 집착하는 것도 일종의 미신이 아닌가요? 김:서산에 해가 지면 동산에 달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미륵불의 용화 세상에 대한 염원을 포기하지 않는 한 신도안의 꿈도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제 통일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냉전시대의 음해와 대립은 반드시 물러갑니다. 저 하늘에 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처럼 부처님의 원만한 정법이 이 세상을 평화로 이끌 것이고, 계룡대도 물러날 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백:계룡산 신도안이 정법을 상징한다, 정말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한때는 그저 새 왕조의 도읍터로 인식됐고, 그러다가 대한독립의 상징, 나아가 세계 중심국가를 향한 염원, 후천개벽의 근원지로 풀이되던 신도안. 현실적으론 중요 군사시설이 위치한 곳인데 이곳을 원불교에서는 용화세계의 구심점으로 보는군요. 원불교에 이르러 정감록에 관한 해석은 그야말로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고 여겨집니다. 참, 요즘 계룡대를 이전하는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는군요. 부디 성불하십시오. (푸른역사연구소장)
  • [사회플러스] 해고 불만 분신기도 24명 부상

    하도급 계약해지에 불만을 품은 40대 계약직 근로자가 노조 회의장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하다 화재가 발생해 24명이 부상을 입었다.25일 낮 12시쯤 전북 전주시 팔복동 GM대우자동차 직영 전주정비사업소 사무실 2층 회의장에서 강모(49)씨가 온몸에 시너를 뿌린 것이 옆에 있던 난로에 옮겨붙어 화재가 발생했다.
  • [교황 기관지 수술] 차기 누가 거론되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건강이상이 다시 돌출되면서 차기 교황 후보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례받은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교황이 될 자격을 갖지만 추기경 가운데 뽑는다.60∼70대 추기경 10여명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인망, 개혁 및 보수적 성향 등이 쟁점이다.80세 이하의 추기경 120여명이 투표로 뽑는다. ●디오지니 테타만치(70) 밀라노 대주교 전통적으로 교황을 배출해온 이탈리아 최대 교구의 최고위 성직자다. 교리 해석엔 보수적이면서도 사회 참여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안젤로 스콜라(63) 베네치아 총대주교 이탈리아 가톨릭계의 ‘젊은 별’.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갖춘 이슬람 전문가로 교회와 현대문명의 연결을 주장하고 있다. ●프랜시스 아린제(72) 교황청 신앙성성(聖省) 수장 흑인 가운데 가장 유력한 교황 후보.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교육받았다. ●클라디오 흄즈(70) 브라질 상파울루 대주교 라틴아메리카의 교황 후보중 선두주자. 독일계 이민 후손으로 노동운동에 동조하면서도 교리적으론 전통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요제프 라칭어(77) 교황청 신앙교리성 수장 독일 바이에른 출신으로 엄격한 보수성과 깔끔한 관리능력으로 ‘과도기 교황’으로 꼽힌다. 교회의 현안을 해결한 뒤 몇년 안에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 흥망사/이창위 지음

    2005년 을유년은 한민족에게 오욕과 환희의 역사가 오버랩되는 해다. 정확히 1세기 전인 1905년, 을사조약에 의해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본격화됐고,60년 전, 바로 전 을유년이었던 1945년 일제의 압제에서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이다. 참혹한 패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수십년 만에 거대한 경제 강국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경제강국이란 지위에 만족할 수 없다는 듯 역사적 죄악을 희석하는 망언을 툭툭 던지며 주변국들에 파시즘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는 듯한 일본 파시즘의 실체는 무엇일까. 일본 군부의 광기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고, 무모한 침략전쟁으로 이어졌을까. ●러일전쟁 승리로 일본 군국주의 태동 3·1절을 앞두고 일제 침탈과 파시즘, 을사조약, 친일문제 등을 재조명하는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중 침략전쟁의 뿌리인 일본 군국주의의 태동과 파시즘의 형성과정, 일본군 특유의 정신문화와 병리적 군사문화 등을 분석한 ‘우리의 눈으로 본 일본제국흥망사’(이창위 지음, 궁리 펴냄)를 중심으로 신구 일본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1974년 일본 국민과 언론은 오노다 희로라는 육군 소위의 귀환에 열광했다. 그는 2차대전이 막바지에 달했던 1944년부터 30년간 필리핀 루손섬 정글에서 일본의 패망을 부인하며 유격전을 계속해온 인물이었다. 죽지 말고 데리러 올 때까지 버티라는 상관의 명령 하나만을 믿고 산속에서 30년을 버틴 그의 눈동자는 광채가 번득였고, 총검은 여전히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그를 찾으려는 일본인들, 심지어는 가족의 모습까지 먼 발치에서 보았던 그는 일본의 패전을 믿지 않았고, 결국 30년 전의 직속상관으로부터 직접 투항명령서를 전달받고서야 1974년 일본으로 귀환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무 완수를 위한 30년 전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을 뿐,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의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도리어 일본전쟁이 모두 악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듬해 브라질로 이주했다. ●진주만기습·가미카제등 상세히 소개 오노다 소위는 극단으로 치달았던 일본 군국주의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지은이는 일본 군국주의의 태동을 러일전쟁의 승리에서 찾는다. 그 이전에 이미 메이지유신 이후 급속한 근대화로 상당한 군사력을 갖고는 있었지만, 러일전쟁 승리 후 지나친 자신감과 착각에 빠졌으며, 그후 일본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되었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대륙침략을 본격화한 일본은 조선병합, 시베리아 출병,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을 통하여 군부 파쇼체제를 확립하고 대미 개전에 이르게 된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시바 료타로는 광신적 군부가 이끌고 우중이 지지한 일본을 ‘술에 취해 말을 타고 달리는 여우’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책은 태평양전쟁의 주요 국면인 진주만 기습, 미드웨이 해전, 오키나와 전투, 그리고 가미카제에 대해 상세히 소개한다. 자결을 앞둔 일본군 장교들은 일왕에 대한 충성과 우국충정으로 가득 찬 최후진술을 남겼는데, 비장함을 넘어 광기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국력의 확연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무모한 항전 뒤엔 군인의 정신자세와 행동규범을 규정한 ‘군인칙유’‘전진훈’이 있었다. 특히 일왕이 발한 군인칙유(軍人勅諭)를 구체적으로 실천한다는 명분 하에, 태평양 전쟁 도발 당시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가 공포한 전진훈(戰陳訓)은 군인들이 금과옥조로 삼아 지켜야 할 절대적 가치가 되었다. 전진훈은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군인 최고의 명예라고 강조함으로써 전체주의적 사고를 주입시켰고, 특히 ‘살아서 포로의 치욕을 당하지 말고 죽어서 죄화(罪禍)의 오명을 남기지 말라.’(제2장 제8조)는 조항 때문에 수많은 병사들이 헛되이 죽어갔다. 생명을 경시하는 무모한 전술과 자결 각오 뒤엔 전진훈에서 강조한 도착적 군사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전진훈’ 통해 전체주의 사고 주입시켜 지은이는 책 말미에서 패전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정치적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현재의 일본은 패망한 일본의 밑그림 위에 덧칠된 그림이라고 본다. 그 밑그림이 다원화된 국제사회에서 다시 복원돼 서글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지은이는 소망한다.1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웨딩컨설팅寺

    “부처님의 자비 속에 불공을 드리며 배우자감을 찾으세요.” 한 사찰이 중매카페를 개설하고 ‘커플매니저’로 본격적으로 나서 화제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태고종 사찰인 대성사는 지난 11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따뜻한 만남’(cafe.daum.net/dasungsa)‘이라는 중매카페를 개설하고 미혼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문을 연지 10여일 만에 50여명의 남녀가 회원으로 가입해 맞선을 신청했다. 사찰측은 “적령기를 넘기고도 마땅한 연결고리가 없어 결혼 상대를 찾지 못하는 불자 가족들이 의외로 많다는 데 착안, 카페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사찰에서 운영하는 중매카페이어서 가입 조건은 무척 까다롭다. 신청자는 반드시 불교신자여야 하고, 집 주변 사찰이나 스님의 신원보증이 있어야 한다. 신청자들의 만남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열리는 ‘선남선녀 특별법회’를 통해 이뤄진다. 원하는 경우 가족과 친구 등이 함께 법회에 참석해 상견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주지인 혜철 스님은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서 좋은 연을 맺어주는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카페를 개설했다.”면서 “불자들의 반응이 뜨거워 카페운영이 즐겁다.”고 말했다.
  • “한국의 경제침체는 美 우파정책 도입 때문”

    “한국의 경제침체는 美 우파정책 도입 때문”

    우리 경제가 투자부진과 실업에 시달리고 있는 원인은 좌파정책이나 반미주의가 아니라 미국식 자본주의라는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싱가포르 국립대 경제학과 신장섭 교수는 이같은 내용의 ‘기업집단과 경제정책’이란 논문을 25일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주최하는 ‘중진국 함정 속의 한국경제’ 토론회에서 발표한다. 신 교수는 미국식 교육에 젖은 경제엘리트들이 신자유주의를 서투르게 도입, 한국경제를 망가뜨렸다고 주장한 바 있다. ●‘기업집단 재벌’ 일부 긍정적 평가 한국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각광받던 재벌은 IMF 위기 직후 ‘부채를 잔뜩 짊어진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부정적 문구와 동의어가 됐다. 이 때문에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가 재벌개혁이다. 신 교수는 그러나 재벌을 ‘기업집단’으로 개념화한 뒤 ▲초기자본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내부거래 등을 통해 필요한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선진국에 비해 자본과 기술에서 열세에 놓인 후진국으로서는 그나마 있는 자본과 기술이라도 한데 모아 효율적으로 쓰는 게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부거래를 악으로 규정하는 재벌개혁론과 달리 신 교수는 내부거래를 재벌의 ‘존재이유’로 파악했다. 재벌들에게 차관을 집중적으로 뿌려줘 경제성장을 이끌어 갔던 박정희시대 프로젝트들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도 난점은 있다. 이 모델의 현실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재벌체제가 낳은 갖가지 부작용까지 모두 정당화할 수 있다. 신 교수 역시 내부거래가 지나치면 “새로운 사업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게 되고, 기업집단의 확장이 “정부와 특수관계에 바탕을 두면 해당 기업집단은 성장하더라도 국민경제는 활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경유착, 개발독재를 정확히 짚는 언급이다. 그렇다면 재벌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측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신 교수는 우선 재벌 확장을 막는 각종 금융규제를 철폐해 산업금융 기능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내부거래를 허용하되 주주들이 동의할 수 있는 일정 수준에 머물러야 하고 ▲기업 투명성을 제고하고 감사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비슷한 논지를 펴고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가 ‘광범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주문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장 교수는 순환출자 대신 일본처럼 연기금, 노조, 하청업체 등을 통해 우호지분을 확보해야 성장 잠재력과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재벌확장 막는 금융규제 철폐 주장도 두 교수의 이런 논지는 자본시장 개방 이래 불거지고 있는 소버린 사태, 주주자본주의 바탕 아래 이뤄진 참여연대식 소액주주운동의 적합성,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고배당 행진, 연기금의 주식투자 허용문제 등 최근의 경제이슈들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관심있게 지켜볼 만한 문제다. 더 주목되는 부분은 이런 주장이 자칭 ‘한국의 경제성장론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하는 대목이다. 분배보다 성장이 우선이라던 몇몇 언론에 그의 주장은 아예 빠져 있거나, 포함됐더라도 재벌옹호론의 일면적인 모습에만 그치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7) 계룡산과 신종교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7) 계룡산과 신종교들

    ●정감록, 대항 이데올로기, 신종교, 주체적 근대화운동은 함수관계 ‘정감록’과 나의 만남은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을 꺾기 위한 대항 이데올로기가 과연 존재했느냐 하는 화두에서 비롯됐다. 이 문제를 풀려고 나는 서양의 종교사, 중국의 태평천국, 백련교 등에 관한 책을 읽으며 암중모색을 하던 중 ‘정감록’, 대항 이데올로기, 신종교 그리고 주체적 근대화운동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믿게 됐다.“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다양한 농촌운동을 전개한 천도교의 경우에서 보듯 신종교는 근대화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았다. 뭉뚱그려 말하면, 조선 후기 평민 지식인들이 생산·보급한 ‘정감록’은 동학·증산교 및 원불교 등 한국의 대표적인 신종교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들 신종교는 성리학에 대항한 새 이데올로기일 뿐만 아니라 근대화를 위한 대안의 구실도 할 만했다.19세기 말부터 이들 신종교는 민중의 입장에서 ‘제생의세’(생명을 살리고 병든 세상을 치료)와 ‘해원상생’(원한을 풀어 서로를 살림) 운동을 전개했다. 이것은 평민 지식인들이 주도한 운동이란 점에서 한국사상사의 큰 결실이었다. 그러나 이런 신종교들이 기성 이데올로기를 대체하기 전에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한국 사회는 조선 후기 평민 지식인들이 애써 창안한 대항 이데올로기를 외면한 채 기독교,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을 수입하는 처지가 됐다. 새 이데올로기를 도입한 사회세력들은 신종교를 일괄 매도하는 경향이 심했다. 그들은 신종교를 ‘유사종교’라든가 ‘사이비종교’라며 무시하고 억압했다. 비유컨대, 수입상품을 팔아먹으려고 토산품에 대해 흑색선전을 펴는 격이었다. 간혹 일부 신종교 단체들이 물의를 일으켰다 해도, 그것으로 신종교 전체를 매도해서 될 일인가. 참고로 말하면 일제시기 신종교 단체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오늘날의 기독교나 천주교보다 수십 배 신도 수가 많았다. 우리는 더 이상 냉혹한 비판자의 편향된 시각에서 신종교 단체들을 홀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수십년 전 수백만 민중의 지지를 받던 신종교는 ‘정감록’에서 영감을 얻었거나,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 그런 점 때문에 ‘정감록’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히 신종교를 말하게 되고, 신종교를 논의하면 당연히 정감록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다. 정감록이 신종교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부분은 ‘때가 되면 진인이 나와서 계룡산에 도읍한다.’는 대목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신종교마다 일치하지 않아 여러 형태로 구별된다. 나는 편의상 그 형태를 청림교형·보천교형·원불교형 등 3가지로 구분해 부르겠다. 이들의 차이점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정감록, 대항 이데올로기, 신종교 그리고 자주적 근대화운동의 상관관계라는 큰 주제에 접근하는 내 나름의 방법이다. ●전통적 정감록 신앙에 근접한 청림교형 신종교 단체들 가운데 조선 후기의 전통적인 정감록 신앙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띠는 것을 나는 청림교(靑林敎)형이라 한다. 엄밀히 말해, 청림교가 늘 그랬다는 뜻은 결코 아니며, 단지 1932년에 발생한 이른바 청림교 사건에서 드러난 그 교단의 모습에서 정감록 신앙의 원초적 형태를 재발견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자취 없이 사라진 청림교지만 본래 1920년 동학에서 갈라져 나올 때만 해도 그 세가 만만치 않았다. 교당이 만주와 지린에까지 세워져 한때 신도 수가 30만명을 오르내릴 정도였다. 청림교는 항일운동에도 열심이어서 일제가 눈엣가시처럼 여겼다고 하는데 마침 1932년 2월 말에 터진 청림교 사건이 결정적인 탄압의 구실이 됐다. 당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상상하던 정감록과 신종교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사건의 내용을 개관해 보자.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정감록’을 빙자해 ‘어리석은 백성’을 현혹하는 신종교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언론에 밝혀진 사건의 상당 부분은 일제가 조작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봐야 한다. ●자하도 진인이 보내온 만병통치약 1932년 2월27일자 경성일보에 따르면 일본 경찰은 청림교주 태두섭을 비롯한 30명을 긴급체포했다.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에게 금품을 갈취해 사복을 채운 혐의로 붙들려온 이 교단의 간부 11명에게는 결국 실형이 선고됐다. 청림교측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고 한다. “바야흐로 계룡산에 신국가 건설사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정감록’에 약속된 대로 곧 진인이 나와 국권을 손에 쥘 것이다. 진인은 이미 청림교 간부들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단계에 있는데 남해 자하도라는 무인도에 숨어 있는 칠성관이 바로 정감록에 예언된 진인이다. 누구든지 청림교를 제대로 믿기만 하면 이 다음에 크게 벼슬한다. 몸에 병이 있는 사람도 아무 걱정하지 마라. 청림교에는 자하도에서 몰래 가져온 신약이 있다. 이 약만 복용하면 만병이 통치되고 불로장생한다.” 청림교에서 말한 자하도와 칠성관은 물론 가공의 섬, 가공의 인물이었다. 다만 ‘정감록’에 남해의 어느 섬에서 진인이 나와 계룡산에 도읍한다고 돼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서 많은 정감록 신봉자들은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고 본다. 청림교측은 진인의 실체를 칠성관으로 파악하고 있던 데다가 진인이 머무는 남해의 섬을 자하도로 정확히(?) 밝혔고, 또 그 진인과 이미 왕래를 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하는 바람에 그럴싸하게 들렸던 것이다. 또한 청림교측은 진인이 직접 조제했다는 선약(仙藥)을 시판하기도 했다.‘정감록’에는 진인이 약을 만든다는 말이 전혀 없다. 그렇긴 해도 사람들은 세상을 구하러 나올 진인이라면 그 정도 능력쯤이야 있을 법하다고 믿었다. 진인이란 용어가 본래 도교적인 데다 도교는 장생술(長生術)을 추구하므로 진인과 선약의 관계는 누구에게나 밀접해 보였을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미뤄 볼 때 불치병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청림교측이 파는 선약에 관심을 가진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만일 식민지 경찰의 수사 결과가 사실이었다면, 청림교 간부들은 이런 ‘황당한’ 거짓말로 ‘어리석은’ 농민들을 속여 사기행각을 거듭했던 셈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일제가 발표한 청림교 사건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다. 이 사건은 청림교를 탄압하기 위해 일어난 것이었고, 수사 과정에 혹독한 고문이 있었다. 따라서 사건에 관한 보도 가운데도 일경의 왜곡과 조작이 섞여 있을 수가 있다. ●정감록 신앙의 원초적 형태 어쨌거나 청림교 간부들의 언동에는 조선 후기에 널리 퍼져 있던 정감록 신앙의 원초적인 모습이 재발견된다. 계룡산 천도설의 주인공인 진인의 능력을 빌미로 신도를 끌어들이고 조직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방법 말이다. 비슷한 일이 18세기 정조 때도 있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진인이 해도에서 몰래 군대를 기르고 있다며 군인들이 입을 군복을 마련한다는 빌미로 금품을 거둔 사례가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해도에 있는 진인에게 물어 미래의 운세를 봐주겠다며 의뢰인에게서 복채를 챙기기도 했다. 묘향산 등지에 머무는 진인에게 부탁해 액막이를 하겠다며 제수용품조로 거금을 제공받은 이도 있었다. 청림교 사건에 투영된 신종교의 모습은 대강 이렇다. 이 단계의 신종교는 아직 기성 이데올로기에 대항할 만큼 뚜렷이 정제된 이념을 갖지 못했다. 그 단체의 수장은 스스로를 진인이나 새 세상을 건설할 주역으로 제시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정감록에 언급된 진인을 내세워 교단의 조직을 보강하고 운용자금을 거두는 정도다. 이들 신종교는 그저 ‘정감록’을 시세에 맞춰 풀이해 현세적 이익을 도모하는 정감록 신앙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일제시기 계룡산에 난립해 있던 신종교 단체는 대체로 그 수준이었다. 각지로부터 계룡산에 이주해온 정감록 신봉자들 중에는 일인교단(一人敎團)에 머문 경우도 많았다. 계룡산을 처음 찾았던 1980년대 후반에도 나는 이런 형태의 정감록 신자들을 많이 보았다. ●국가적 차원에서 천지개벽을 바라본 보천교형 그와 다른 차원에서 정감록의 계룡천도설을 수용한 신종교 단체들도 있었다. 정연한 교리체계를 갖추고 국가나 민족의 입장을 내세운 경우인데, 그 대표적인 사례로 나는 보천교(普天敎)를 손꼽는다. 지금은 그 존재가 희미해졌지만 일제시기 보천교는 위세당당한 신종교였다. 보천교는 1911년 증산교에서 독립됐다. 창립자는 차경석(車京石·본명은 輪洪)으로 그는 증산교와 동학의 교리를 녹여내 나름대로 새 세상을 준비했다. 인의(仁義)의 실천을 기본교리로 정했고 경천(敬天)·명덕(明德)·정륜(正倫)·애인(愛人)을 4대강령으로 삼아 상생(相生)·대동(大同)을 강조했다. 한데 이 신종교의 가장 큰 특색이라면 교주 차경석이 ‘정감록’을 적극 원용한 점이다. 그는 천지운도(天地運度·새 세상)를 열 사람은 자기뿐이라며 진인을 자처했다. 새날이 오면 한국은 세계 종주국가가 된다던 차경석의 주장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1920년대 말 보천교는 동아시아가 한세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일제의 대동아공영권에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하였지만, 보천교의 본래 모습은 그렇게 친일적인 것이 아니었다. 보천교 신도들은 일본 상품을 철저히 배격했고 토산품 자급자족운동을 했다.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끝난 뒤 허탈감에 빠져 있던 민중은 이런 보천교의 민족적인 성격에 호응해 교세가 급속히 팽창했다.1920년대 중반은 보천교의 전성기로 간부 수가 55만명을 헤아렸고 신도는 6백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곧이듣기는 어렵지만 1920년 당시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기독교 신자 총수 32만 3574명과 비교해 볼 때 보천교의 교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보천교는 기독교의 20배쯤 되는 신도 수를 자랑했던 것이다. 그들은 ‘정감록’을 인용해 대한독립이 임박했다고 주장했으므로 일제는 보천교의 일거수일투족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세가 워낙 큰 데다 교주 차경석의 카리스마가 절대적이어서 감히 교단 해체를 명령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비유하면 당시 보천교는 구한말 동학이 누렸던 민중종교의 위상을 가졌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식민지 당국이 보천교의 활동을 방치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일설에 따르면 일경에 체포돼 곤욕을 치른 보천교 신도가 3만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는 보천교를 반국가적 ‘음모단체’로 규정해 놓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보천교의 ‘음모’는 대한독립을 목적으로 삼은 것이었고 그 핵심이 ‘정감록’의 계룡산 도읍설이었다.‘정감록’에 “계룡산의 돌이 하얗게 되고, 초포에 배가 다닐 때 세상일을 알 수 있다(鷄龍白石 草浦行舟 世事可知).”는 구절이 항상 문제였다.‘세상일을 알’ 거란 문구를 보천교측은 교주 차경석의 등극으로 풀이했다. 그런데 마침 1924년은 육십갑자가 새로 시작되는 갑자년이라 보천교 신도들은 그 해를 신국가 출범 시기로 보았다. 이른바 지상낙원인 후천세계(後天世界)가 시작될 갑자 원년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종교적 카리스마가 막강했던 차경석은 일반인들 사이에도 인기가 높아서 사람들은 동양을 지배할 권력자라는 의미로 그를 차천자(車天子)라고 불렀다 한다. 물론 비웃음을 담아 그렇게 부른 경우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 1929년 낙성된 보천교의 본부 건물 십일전(十一殿)은 보천교의 교세를 반영한다. 전북 정읍에 건립된 이 건물은 지붕을 덮은 기와가 황금빛을 뿜었으며, 경복궁 근정전보다 무려 2배나 컸다.1924년 등극설이 무위로 끝났기 때문에 보천교측에선 바로 그 십일전에서 기사년(己巳年·1929년) 기사월(己巳月) 기사일(己巳日)에 교주 차경석이 천자로 즉위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기(己)와 사(巳)는 글자의 생김이 서로 비슷한데, 두 글자는 10간과 12지의 중간으로 최상의 양기를 상징한다. 특히 뱀을 뜻하는 巳는 용(辰)과 더불어 성인(聖人) 즉 임금을 가리킨다. 따라서 “기사년 기사월 기사일”이라면 보통 임금이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들 만큼 지도력이 강한 왕이 등장할 시점으로 해석된다. 이 소문으로 수백만 보천교도들은 대한독립의 임박을 믿었고, 그러자 식민지 당국자들은 행여 큰 소요라도 일어날까 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차경석은 왕이 되지 못한 채 1936년 병으로 죽었다. 조선총독부는 그 소식을 환영했고 보천교 분쇄공작에 나섰다. 졸지에 지도자를 잃은 보천교는 사분오열돼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차경석이 죽은 뒤에도 보천교 신도의 상당 수는 여전히 ‘정감록’의 계룡산 도읍설에 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신왕조의 수도로 예언된 계룡산에는 후천개벽의 기운이 넘친다. 머지않아 계룡산 신도안에 도읍할 정진인은 차경석의 손자 정동영이 틀림없다.” 일부 신도들은 이런 말을 퍼뜨리며, 차경석의 어머니가 이웃의 정모라는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해 차경석을 낳았기 때문에, 그의 실제 성은 정씨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폈다. 1930년대 후반 총독부 관변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이 쓴 조사보고서를 읽어 보면, 당시 차경석의 손자는 행방불명이 되고 없었다. 그 점에 대해 신도들의 설명은 달랐다.“차천자의 손자 정동영은 깊은 산속에 숨어 밤낮으로 심신을 수련하고 있다. 이제 정동영이 다시 나타난다. 새 세상에선 정동영을 받드는 사람들이 신양반이 돼 요직을 차지한다.” 성폭행설까지 조작해 자기네 교주의 성까지 바꾼 것은 억지스럽고, 교주가 ‘천자’에 즉위한다고 했던 점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천교의 주장엔 긍정적으로 평가될 부분이 있다. 그들은 정감록 신앙을 대한독립, 지상천국인 후천세계의 관념과 결부시킴으로써 일제에 저항할 원동력을 제공했고, 단순히 항간에 떠도는 예언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탈바꿈시켰다. 비록 엉성하긴 했지만 큰 변화였다. 한편 원불교에선 계룡산을 무엇으로 이해했는가 하는 문제는 따로 살펴보겠다.(푸른역사연구소장)
  • 민노총에 총파업 촉구

    서울대 김세균 교수 등 좌파 성향의 전·현직 교수 58명이 민주노총의 노사정 복귀에 반대하며 총파업을 촉구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상임의장인 김 교수 등은 23일 ‘민주노총 대의원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 “사회적 교섭안건의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재상정에 우려를 표한다.”면서 “정부의 노동유연화 공세를 저지하려면 총파업을 포함한 대중의 총력 투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국내외 세력과의 연대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소문 발표에는 강내희(중앙대), 강수돌(고려대), 김달곤(경상대), 김수행(서울대), 박거용(상명대), 최갑수(서울대) 교수와 오세철 전 연세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긴급 투쟁본부회의를 열어 비정규직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할 경우 24일 오전 8시를 기해 전국에서 전면 총파업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벗으면 더 맛나

    |뉴욕 연합|벌거벗은 채 저녁식사를 즐기는 레스토랑이 뉴욕 맨해튼에 등장, 색다른 경험을 찾는 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곳에 도착하는 손님들은 2월의 쌀쌀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코트와 모자, 목도리에서 그치지 않고 스커트, 셔츠, 팬티, 속옷, 스타킹까지 모두 벗어 바 옆에 있는 비닐 가방에 넣어둬야 한다. 누드 저녁식사는 해변의 누드 리조트나 자연 휴양지보다는 약간 고상한 것을 찾던 뉴욕의 한 누드단체에 의해 시작됐으며 존 오도버가 1년 전 인터넷 등을 통해 클럽회원들을 모집했다. 기자가 찾은 이날 모임은 선택적으로 한두 가지를 몸에 치장할 수 있는 날로 장년 부부, 독신자,30대 청장년 등 다양한 부류의 중상류층 인사가 30여명 모였다. 프라이버시 유지를 위해 식당 창문은 모두 가려졌고 누드상태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게끔 특수히터가 온도를 유지시켜 주고 있었다. 목걸이와 귀걸이를 차고 흰 운동화를 신은 채 만찬행사에 참여한 전직 고교 영어교사 조지 키즈(65)는 “누드 상태로 식당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흥분된다.”고 말했다. 행사 시간 동안 위생규칙에 따라 식당 직원들은 자신들도 벗은 채 서빙하고 싶어도 옷을 입고 있어야 하며 참석자들도 수건이나 실크 스카프 같은 깔고 앉을 뭔가를 가져와야 한다. 레스토랑 주인 존 부시는 “좋은 계층의 사람들이고 계층차이가 별로 없다.”며 “해를 입히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난교파티를 벌이는 것도 아니다.”라며 색안경을 쓴 시각을 경계했다.
  • 儒林(289)-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89)-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그뿐 아니라 입맛도 간밤의 음식처럼 딱 맞았다. 이를 신기하게 여기며 막 출발하려는 퇴계에게 젊은 주인이 두 손으로 무슨 물건 하나를 바쳐 올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무엇인가.” 퇴계가 묻자 젊은 주인이 대답하였다. “먼 길을 떠나시는데 발이 편하시라고 버선을 가져 왔습니다. 이 버선으로 갈아 신으시지요.” 그것은 족의(足衣)라고 불리는 버선이었다. 집안의 어른이 먼 길로 출타할 때 보통 부인이나 며느리들이 정성스럽게 밤을 새워 무사히 다녀오라고 버선을 만들어 올리는 것이 법도로 되어 있지만 이처럼 객지에서 그것도 생면부지의 하룻밤 길손으로 묵은 퇴계에게 버선을 바쳐 올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무슨 이런 물건까지 주십니까. 하룻밤 신세진 것만 해도 고마운데.” 극구 퇴계가 사양하자 젊은 주인이 손을 내저으며 말하였다. “나으리의 존함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나으리께서 누추한 저희 집에서 하룻밤 묵은 것만으로 가문의 영광이나이다.” 버선은 솜을 넣어 누빈 겹버선이었다. 광목으로 만든 백포버선이었으나 퇴계가 버선을 신자 신기하게도 치수를 잰 것처럼 꼭 맞았다. 버선은 특히 발을 넣었을 때 뒤꿈치부터 앞목에 이르는 회목부분이 딱 맞아야 편안한데, 신기하게도 그 버선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꼭 맞았던 것이다. 순간 퇴계는 자신이 떠나보낸 새아기를 떠올렸다. 둘째아들 채(寀)가 죽고 집에 머문 것이 불과 몇 달 되지 않았으나 워낙 음식솜씨와 바느질솜씨가 뛰어나서 퇴계의 수발을 도맡아하던 새아기가 아니었던가. 그제서야 퇴계는 어째서 음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찬들로만 채워져 있고, 자신의 입에 꼭 맞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고, 또한 버선이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치수가 맞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틀림없이. 버선을 신으며 퇴계는 생각하였다. 이 버선은 며늘아기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한때 자신의 시아버지였던 이퇴계가 하룻밤 길손으로 묵게 되었다는 말을 남편에게서 전해듣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고 밤을 새워 버선을 만들었을 것이다. 저고리의 깃을 잘라 파의함으로써 엄격한 조선의 율법을 깨고 자유의 몸을 만들어준 고마운 시아버지께 한때의 며느리로서 보은을 한 것이었다. 퇴계는 며느리가 만들어준 새 버선을 신고 한양으로 출발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떠나는 이퇴계의 눈으로 처마 밑에서 몸을 감추고 서서 눈물을 흘리는 며느리의 모습이 보였다던가, 어쨌다던가. 그 여인의 등에는 갓난아이가 업혀서 칭얼댔다던가, 어쨌다던가. 이 에피소드는 한갓 전해오는 야담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혼을 하고 혼례식을 올리지 못하여 출가외인의 생과부가 된 둘째며느리를 파의하여 친정으로 돌려보냄으로써 삼종지의의 엄격한 계율을 깨뜨려버린 이퇴계의 통렬한 행동은 분명한 사실이었을 것이며, 며느리를 ‘길가는 사람 보듯 하지 아니하고’ 한 조상에서 온 똑같은 한 뿌리의 자손으로 본 퇴계의 박애정신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피우던 담배를 끄며 생각하였다. ―이퇴계와 두향의 상사는 틀림이 없는 사실일 것이다.
  • 한국 현대무용 40년 역사 한자리에

    한국 현대무용 40년 역사 한자리에

    한국 현대무용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뜻깊은 행사가 열린다. 오는 28일부터 3월9일까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에서 열리는 ‘한국현대무용뮤지엄’은 40여년의 현대무용사를 공연과 학술심포지엄, 전시, 출판 등 다각적인 방향에서 정리하는 자리다. 박물관을 뜻하는 ‘뮤지엄(Museum)’을 행사 명칭에 붙인 이유도 현대무용의 역사를 한데 아우른다는 의미에서다. 국내 현대무용의 기원은 1930년대 일본 무용가 이시이 바쿠를 사사한 최승희, 조택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본격적인 출발은 이화여대에서 일본 유학파 무용가 박외선을 사사한 육완순이 미국 유학후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로 잡고 있다. 이후 1971년 그의 제자인 김화숙·김복희 현대무용단이 탄생했고,1980년대 각 대학마다 무용과가 생기면서 자리를 잡았다. 육완순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과 김동호 국제부산영화제 위원장이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문화계 인사 100인이 선정한 역대 대표작들의 갈라 공연.1973년에 초연된 육완순의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해 전위예술가 홍신자의 ‘웃는 돌’, 안애순의 ‘온타임’, 박호빈의 ‘천적증후군’ 등 45개 작품이 3월2일부터 9일까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과 대극장에서 하루 두 차례씩 공연된다. 이에 앞서 개막일(28일)에는 현대무용사를 회고하는 영상전과 19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내 현대무용계 현황을 인명과 단체별로 정리한 ‘한국현대무용뮤지엄’ 책자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또 3월5일에는 ‘한국의 현대무용 발전과 새로운 지평’이란 주제의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육완순 조직위원장은 “반세기에 가까운 한국 현대무용의 역사를 한 자리에 모은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는 일”이라면서 “현대무용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1만 5000∼2만원.(02)738-3931.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