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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플러스] 한국종합기술개발 사장 이강록씨

    한진중공업의 계열사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는 14일 이강록 부사장을 새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 신임 대표는 인하공대 토목과를 졸업하고 지난 1977년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토목본부장, 영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2001년부터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부사장으로 재직했다.
  • 중앙일보 대표이사 송필호씨 발 행 인 권영빈씨

    주미대사로 내정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뒤를 송필호(사진 왼쪽)·권영빈(오른쪽) 부사장이 이어받았다. 중앙일보는 14일 이사회를 열고 대표이사 사장과 인쇄인에 송필호 부사장, 사장 겸 발행인·편집인에 권영빈 부사장을 각각 선임했다. 송 신임 사장은 삼성그룹 출신으로 중앙일보 경영지원실장, 조인스닷컴 대표 등을 역임했고 권 신임 사장은 월간 세대 편집장을 거쳐 중앙일보 출판부장, 논설위원, 주필 등을 거쳤다. 한편 중앙일보 이사회는 경영 투명성 강화를 위해 사내인사 5명과 사외인사 4명으로 이사회를 개편하고 이홍구 중앙일보 고문을 의장으로 정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악인 최초 대학 수장 오른 박범훈 중앙대 신임총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악인 최초 대학 수장 오른 박범훈 중앙대 신임총장

    ‘태고의 용트름이/빚어놓은 선율이여…풀려마라 갚으려마라/네가슴의 눈물방울/이땅에서 살자꾸나/피리소리 뿌려가며/북망산 가는 길에도/듣고 싶은 네가락.’ 도올 김용옥 교수가 산사(山寺)에서 산보하던 중, 문득 한 음악인이 생각나 즉시(卽詩)를 써서 보냈다. 그러자 그 음악인은 곡(曲)을 붙여 화답했고 송창식이 노래를 처음 불렀다. 제목은 ‘이땅에서 살자꾸나’였다. ●국악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 그의 음악은 불혹의 경지를 넘어섰다. 풍진에도 흔들림 없다. 청아한 혼의 소리로 휘휘 감겨 있다. 때로는 백두대간을 관통한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지휘한다.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2002년 한·일월드컵 때에는 세계를 충격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의 소리는 태고의 한을 풀어낸다. 또 동서양을 오가며 인류의 미래문명을 화음(和音)해낸다. 그랬다. 고집스럽게 우리 소리를 찾아다녔다. 소리가 곧 인생이요, 삶의 은인이다. 지난해에는 우리시대 국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뽑혔다. 맞다. 그는 분명 우리 국악계의 거목으로 자리해 있다. 작곡가·지휘자·교육자·연주자로 숨가쁜 전방위 활동을 펼쳐 왔다. 이제는 교육행정가의 길을 하나 더 쌓고 있다. 박범훈(58) 중앙대 신임 총장. 국악인으로는 처음으로 대학총장에 올라 화제가 됐다. 총장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취임식(2월3일) 직후여서 그런지 축하 화환이 입구에 쭉 늘어서 있었다. 우선 국악인이 대학총장에 선출된 것은 국악계의 큰 경사요, 대학행정에도 많은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고 인사말을 건넸다. 그는 “어제 취임식 때 이어령 교수가 축하인사차 참석해 ‘대학이 살아나려면 개혁과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데 중앙대가 먼저 앞서나가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면서 “(총장에 선출된 된 것과 관련해)중앙대 교수들의 사고가 열려 있다. 열리지 않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미있는 대답을 했다. 또한 그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려면 화합이 가장 중요하며 전공처럼 화합과 창조를 화두로 삼아 변화를 추구해갈 것”이라면서 “특히 많은 해외 유학생들이 중앙대에서 맘껏 공부할 수 있도록 여건 조성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현실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대학은 큰 가르침의 전당인데 과연 이에 걸맞은 역할을 해왔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반대로 고급인력이 과잉공급되는 기현상, 즉 일을 부리는 사람만 양성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국 놀아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는 풍조가 만연했고 이러한 풍조는 곧 그동안 많은 대학들이 덕을 본 셈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구조조정이라는 현실 앞에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우리 대학교육의 현주소라고 강조했다. ●예술가의 손으로 세계적 대학 키울 것 “그동안 지휘봉을 잡고 세계를 누빈 저력이 있지 않습니까. 예술가의 창조적 머리와 화합의 손으로 세계적인 대학으로 키울 작정입니다.” 그의 행보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1987년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민간 국악관현악단인 ‘중앙국악관현악단’을 창단했다.8년간의 악단 경험과 그의 역량은 국립국악관현악단 창단으로 이어졌다.94년에는 세계 최초의 ‘한·중·일 아시아민족악단’을 창단했다.99년에는 서울국악유치원을 설립했으며 국악중학교를 신설, 중등 국악교육의 장을 새로 마련했다. 특히 중앙대 김희수 이사장에게 부탁해 우리나라 유일의 중앙대 국악대학과 국악교육대학원을 설립했다. 다들 소리의 종자를 키우려고 정신없이 뛰어다닌 결과물이었다. 그는 1948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어디서든 소리만 들리면 몽유병 환자처럼 소리를 찾아다녔다.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처음 들어본 풍금소리에 반해 밤마다 교무실을 무단침입했다. 풍금건반을 더듬어 자작곡 ‘생쥐 소나타’를 치다가 숙직 선생에게 걸려 혼쭐이 났다. 인근 동네에 풍물패가 왔다는 소문을 듣는 대로 달려가 해산할 때까지 풍물패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중학교 때에는 양평읍내를 행진하는 브라스 밴드부가 너무 멋있게 보여 그날로 밴드부에 가입, 트럼펫을 불기 시작했다. 16살 때 인생의 전환점이 된 남사당패거리를 만났다. 이들은 양평 동네에 우연히 들렀다가 그의 사랑채에 기거하게 됐다. 사랑채에는 하루 종일 장구소리가 났으며 항상 동네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때 소년 박범훈은 남사당패를 이끌었던 남운용 선생의 권유로 한국국악예술학교(현 서울국악예고)에 입학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그는 가정형편상 서울 유학은 엄두를 못낼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해질 무렵이면 이집저집 쌀을 꾸러 다녔고 아버지는 술에 의지한 채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6·25때 8사단 소속으로 전투에 참여했다가 포로로 붙잡혀 6년 동안 감옥생활하다가 포로교환이 이루어지면서 귀환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일을 거의 포기한 채 술만 마셔댔다. 결국 남운용 선생의 끈질긴 설득으로 서울 유학길에 올랐다. 국악예술학교 재학 시절 그는 박봉헌 교장의 권유로 피리를 배우게 됐고 지영희 선생을 평생 스승으로 모시게 됐다. 지 선생은 당시 예술부장으로서 국악관현악 지휘와 피리·해금 등을 가르쳤다. 지 선생 외에도 당시 내로라하는 명인들로부터 공부를 하게된다. 판소리 김동진 선생한테 새로 작곡한 가곡을 배우는 즐거움이 그만이었다. 또 김희조 선생한테는 음악이론을 배웠다. 박귀희 선생은 학생을 보는 대로 잡아다가 병창을 가르쳤고, 성금련·김윤덕 선생은 가야금, 신쾌동 선생은 거문고, 한범수·김광식 선생은 대금, 한영숙 선생은 무용, 전사종·전사습 선생은 농악을 배우라고 권유했다. ●유학시절 전두환대통령 취임식 곡 만들어 1968년 국악예고를 졸업하던 해 그는 멕시코올림픽에 파견되는 민속예술단에서 음악을 담당하게 됐다. 이때 가슴에 태극기를 단 유니폼을 입고 양평 고향을 방문하자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이제는 박씨네 집 고생 끝났다.”며 환영을 해주었다. 이후 육군 기갑부대에서 40주 동안 훈련만 받다가 의가사제대를 한 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에 진학, 본격적인 음악공부의 길로 들어선다. 맨처음에는 서울대 국악과에 진학하려 했으나 우리 것과 서양의 것을 접목시키자는 소명의식으로 서양음악의 작곡공부를 선택했다. 이때 학과장은 ‘자장가’로 유명한 김대현 교수가 맡고 있었다. 그는 중앙대에 다니면서 한편으로는 국악예고에 전임강사로 나갔다. 또 국립극장 개관공연 무용극 ‘별의 전설’을 비롯해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대학생치고는 돈도 꽤 벌었다. 오아시스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어 편곡 아르바이트 일도 했다. 이때 바니걸스의 노래 ‘님아’도 작곡했다. 대학4학년 때 일본 학습원 대학원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일본의 민족악기들이 서양악기와 어우러져 연주되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무사시노음악대학에 학부 1학년으로 입학해 현대음악 작곡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그는 유학 3학년때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에 연주할 곡을 작곡하기 위해 잠시 귀국했다. 유학을 다 마치고 돌아온 그는 도올 김용옥 교수를 만나면서 불교음악에 빠지게 된다. 특히 국사암의 석상훈 스님과 만나 20년 넘는 형제의 인연을 맺었고 ‘달마의 소리’를 깨닫게 됐다. 이후 동국대에서 5년간 고행을 거쳐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 불교음악사연구’를 만들어냈다. 그의 음악은 장르를 넘나드는 오묘함이 있다.‘사의 승무’(73년 송범 안무) 등 대형춤곡만 23편을 작곡했다. 또 윤문식과 김성녀씨를 만나면서 ‘허생전’‘별주부전’ 등 마당놀이극을 위한 작곡도 11편에 이른다. 국악관현악 12곡, 아시아민족악기를 위한 9개의 곡, 그리고 ‘교성곡’‘찬불가’ 등 불교곡도 수십편에 이른다. 이밖에 86아시안게임 개막식곡 ‘청실홍실’,88올림픽 개막식곡 ‘해맞이’,2002년 월드컵 개막식곡, 부산아시안게임 개·폐막식곡 등 ‘대∼한민국의 소리’를 만들었다. “오늘날 중앙대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 대학행정을 책임지게 된 것도 음악을 사랑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아직도 잃어버린 소리를 열심히 찾아야 합니다. 그 소리엔 조상이 있고 대한민국이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8년 4월 경기 양평 출생 ▲68년 서울국악예술고 졸업 ▲76년 중앙대 음악학과 졸업 ▲83년 일본 무사시노 음악대학원 석사 ▲86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 음악담당 ▲87년 중앙관현악단 창단 ▲93년 아시아민족악단 창단 ▲9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단장 겸 예술감독 ▲2001년 중앙대 제2캠퍼스 부총장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식 음악감독 ▲2003년 중앙대 국악교육대학원장 ▲2005년 2월 중앙대 총장 ● 저서 한국불교음악사연구, 박범훈의 예술세계, 내가 만난 소리 내가 만든 소리
  • 한국신문협회장에 장대환씨

    한국신문협회는 3일 이사회를 열어 장대환(53) 매일경제신문·매일경제TV 대표이사 회장을 제36대 한국신문협회 회장으로 선출했다. 신임 장대환 회장은 주미대사로 부임할 예정인 홍석현 회장이 이날 협회장 자리에서 공식 사임함에 따라 후임으로 선출되었다. 장 회장의 임기는 홍 회장의 잔여 임기인 2006년 정기총회 때까지다. 장 회장은 1986년 매일경제신문사에 입사, 기획실장과 전무를 거쳐 88년 대표이사 사장 겸 발행인에 취임했으며 93년부터는 매일경제TV 사장도 겸임했다. 2002년 8월 국무총리 서리에 지명됐으나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2003년 매일경제신문·매일경제TV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으며 5월29일부터 6월1일까지 열릴 예정인 세계신문협회(WAN) 서울총회 조직위원장도 맡고 있다.
  • [본사손님]

    ●이영탁(李永鐸·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이규성(李圭聖·〃 본부장보)씨 신임
  • 김복희교수, 무용협회 이사장에

    차기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에 현대무용가 김복희(57) 한양대 교수가 선출됐다. 김 교수는 22일 열린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선거에서 500표를 득표,260표를 얻은 송수남 전 단국대교수를 누르고 임기 4년의 신임 이사장으로 뽑혔다. 김 교수의 당선으로 한국무용협회는 처음으로 현대무용 전공자를 이사장으로 맞게 됐다.
  • LG증권 박종수사장 선임

    LG투자증권은 21일 임시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박종수 전 대우증권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확정, 선임했다. 황병기 전 감사원 사무총장과 주진형 우리금융지주 상무를 신임 사외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 방송진흥원 이사장에 임동훈씨

    임동훈 전 EBS 부사장이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이사장으로 21일 선임됐다. 임 신임 이사장은 MBC 경제부장, 스포츠국장을 거쳐 목포 MBC사장, 국제방송교류재단 방송본부장 이사,EBS 부사장을 역임했다. 진흥원은 이날 비상임 감사에 박종렬 가천의대 교수, 상임이사에 한국방송작가협회 이강덕 이사와 전 YTN보도국 노복미 부국장을 각각 선임했다.
  • 미래산업 대표에 권순도씨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래산업은 지난 19일 이사회를 열어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권순도 소프트포럼 대표를 선임했다고 20일 밝혔다. 권 사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에쓰-오일을 거쳐 미래산업 부사장으로 재직하다가 계열사인 소프트포럼 대표를 맡아왔다. 소프트포럼은 이날 정현철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 임명했다.
  • 메트로신문사 사장 김승종씨

    ㈜메트로 신문사는 18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신임 대표이사 사장에 김승종(35) 씨를 선임했다. 김 신임 사장은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뒤 액센추어,SK 구조조정추진본부, 베인&컴퍼니 등에서 전문 컨설턴트로 활동했으며 가트너코리아 한국컨설팅 대표를 역임했다.
  • 언론재단 이사장 정남기씨

    정남기(62) 전 연합뉴스 이사가 새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한국언론재단은 14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이사회를 열고 정남기씨를 신임 이사장에 선임하고 문화관광부에 임명제청했다. 또 기금이사에 최홍운 전 서울신문 논설실장, 연구이사에 윤후상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사업이사에 김광원 문화일보 논설위원을 각각 선임해 문화부의 승인을 요청했다. 문화부는 다음 주 초쯤 신임 이사장과 이사들을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전임 박기정 이사장의 연임 문제로 불거졌던 정부와 언론재단 간 갈등은 일단락됐다. 전북 고창 출신인 정 이사장은 동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합동통신 기자로 일하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해직됐다가 1988년 연합뉴스에 복직해 편집부장, 논설위원실장, 동북아정보문화센터 상임이사를 거쳐 한국편집미디어협회 부회장으로 일해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韓赤사무총장 장석준씨

    대한적십자사(총재 한완상)는 13일 신임 사무총장(차관급)에 장석준(59)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청주 출신으로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신임 장 사무총장은 행정고시(14회) 합격 후 재경원 예산총괄심의관, 기획예산처 예산실장, 보건복지부 차관 등을 역임했다.
  •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금호폴리켐 기옥 사장

    [한국을 빛낼 중견기업] 금호폴리켐 기옥 사장

    얼마 전 청와대는 우리나라의 벤치마킹 모델로 ‘강중국(强中國)’을 제시했다. 기업에도 강하고 튼실한 중견기업이 있다. 이들 강중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를 찾아 경영 노하우와 철학을 들어본다. 선진국들은 이미 새로운 촉매제를 제품에 쓰고 있었다. 기존 촉매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적은 양으로 똑같은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첨단 신물질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 기술을 팔지도, 전수해 주지도 않았다. 1년전 꼭 이맘때. 금호폴리켐의 새 CEO로 취임한 기옥(奇沃) 사장은 이같은 현실을 들어 “이대로 가면 죽는다.”고 일갈했다. 매출이 다소 줄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절대강자’의 자부심에 차 있던 직원들에게, 신임 사장의 ‘위기론’은 다소 생뚱맞게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만 해도 금호폴리켐의 국내 첨단고무(EP고무) 시장 점유율은 87%였다. ●국내 첨단고무시장 점유율 82% 직원들은 으레 의욕적이기 마련인 신임 사장의 취임 일성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기 사장의 목소리는 더욱 비장해졌다.“지금까지의 생각을 모두 버려라.” “그래도 종전 발상에 안주해 있는 직원은 떨어내겠다.” 기 사장은 새로운 공법(드볼) 적용도 전격 지시했다. 당시 회사측은 기술 개발을 끝내고도 위험부담 때문에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 무렵 원자재값이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연말에는 고무 원재료인 에틸렌 값이 연초 대비 3배까지 치솟았다. 프로필렌 값도 2배로 뛰었다. 살인적인 원자재값 폭등세 속에서도 금호폴리켐은 지난해 경상이익 흑자(63억원)를 냈다. 세금(법인세)을 내고도 40억원대의 흑자가 예상된다.2000년 이후 줄곧 내리막길이던 매출도 1000억원대(1108억원)를 넘기며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기 사장은 “전 임직원이 위기의식을 공유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사장에 취임하고 보니 앞으로 먹고 살 일이 막막했습니다. 선진국은 새 기술로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고, 원자재값 동향마저 심상찮았습니다. 그렇다고 (가공업체에) 가격 전가를 할 형편도 못됐습니다.” 그가 맨 먼저 한 일은 ‘위기의식의 공유’였다.“먹고 살 궁리를 찾아보자.”며 매월 워크숍을 열었다. 생산직 직원들도 참여시켰다. 임직원들 사이에 서서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긴장감은 자연스럽게 ‘혁신’으로 이어졌다. 우선 선진국의 첨단 촉매제(메탈로센)에 맞설 용매제(TSC)부터 성능을 끌어올려야 했다. 거듭된 실험 끝에 솔벤트에 녹아 있는 고무성분이 6.5%에서 13%로 올라갔다. 이는 같은 양의 용매제로 두 배나 많은 첨단고무를 만들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곧바로 특허신청을 냈다. 선진국과의 원가 경쟁력도 상당히 좁혀들었다. ●최종공정 압축… 생산성 향상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최종 공정에도 손을 댔다. 스팀을 강하게 넣어 용매제를 날려 없애는 종전 공법 대신 용매제를 바로 없애는 첨단공법을 도입했다. 스팀을 넣는 공정 하나가 생략되니 생산성이 자연 올라갈 수밖에 없다. 전남 여천의 2개 공장에서는 새 방식을 적용한 증설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공사가 끝나는 2007년에는 현 생산량(5만t)의 50%인 2만 5000t의 증산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일본 JSR사(7만t)를 제치고 아시아 1위 업체로 뛰어오르게 된다. 세계 순위도 9위에서 7위로 두 단계 오른다. ‘드볼’이라고 불리는 이 신공법은 금호폴리켐의 3대 주주이자 세계 1위의 첨단고무 생산업체인 미국 엑슨모빌조차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했었다. 회사가 기술개발을 끝내고도 생산공정 적용을 망설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기 사장은 “(위험부담을 잘 아는)전문 엔지니어였으면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기 사장은 경제학을 전공했다.1976년 금호실업에 입사하면서 30년 금호맨이 됐다. 경리사원 시절의 유명한 일화 한 가지. 계열사마다 일일이 은행과 외환증서를 거래하는 것을 보고, 그는 그룹 계열사간에 외화를 사고팔도록 했다. 은행에 갖다 바치던 환가 수수료는 고스란히 회사에 떨어졌다. 기 사장은 “조그만 발상의 전환의 예”라면서 “과장 때까지 직장생활의 신조가 하루에 한 건씩 회사경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였다.”고 털어놓았다. 이후로도 재무와 기획쪽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룹내 몇 안 되는 재무 전문가로 통한다. 지난해 환율 급등 속에서도 선물환거래로 환차익을 낸 것이나, 차입금 상환일정을 한달 단위로 쪼개 ‘놀리는’ 여유자금을 최소화한 것은 재무통 CEO로서의 자질이 발휘된 덕분이다. 그는 아시아나항공 사번 1번이기도 하다.1980년대말 그룹 회장실에 있으면서 항공사 창립 실무를 도맡아 했다. 원년 멤버로 회사의 기틀도 닦았다. 골프장(아시아나컨트리클럽) 사장 시절에는 항공사 근무시절에 터득한 정비방식을 운영에 적용해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했다. 항공기처럼 골프장 정비일정을 주기별로 쪼개 늘 새것처럼 유지하는 방식을 쓴 것이다. 아시아나컨트리클럽의 대표적인 서비스인 ‘온라인 부킹’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사람도 그다. 친화력이 좋아 정·재계, 금융계에 두루 발이 넓다. 롯데그룹 계열의 KP케미칼 기준 사장이 친형이다. 지난 연말에는 노조와의 무교섭 임금타결을 이끌어 냈다. 노조의 신년 출범식 때는 축사도 직접 했다.“회사가 생긴 이래 사장이 노조 행사에 축사를 한 전례는 없다.”며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전례는 만들면 된다.”며 원고까지 직접 썼다. ●2010년 매출액 2000억 달성 목표 그렇다면 CEO가 된 지금은 생활의 신조가 뭘까.“먹고 살 궁리”라는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CEO는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의 극대화를 꾀해야 한다. 그러자면 미래를 봐야 한다. 원가 1%를 줄이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는 과장도 할 수 있다.CEO는 10년 후에 먹고 살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신공법 개발로 앞으로 10∼20년은 먹고 살 걱정이 없다는 그는 “올해부터 1020프로젝트에 돌입했다.”고 했다.2010년까지 매출액 2000억원을 달성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골프채 손잡이나 칫솔 손잡이 등에 쓰이는 고부가가치 고무사업(TVP)을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증권거래소 상장은 2년쯤 후로 잡고 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금호폴리켐은 어떤 회사 타이어만 빼고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든 고무가 금호폴리켐의 첨단고무로 만들어진다.‘EPDM’으로 불리는 이 고무는 열과 공기에 매우 강해 장시간 노출돼도 푸석푸석해지지 않는다. 생산량의 85%가 자동차 재료로 쓰인다. 쉽게 말해 금호폴리켐이 밀가루 반죽 상태의 고무덩어리를 만들면 가공업체들이 윈도 브러시, 범퍼 테두리 등 자동차업체들이 원하는 형태로 재가공한다. 따라서 자동차산업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운동화 밑창, 전선 피복 등 다른 응용분야도 많다. 1997년 SK계열의 ‘유공엘라스토머’가 품질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으면서 국내 유일의 EP고무 생산업체가 됐다. 지난해말 현재 시장점유율은 82%. 나머지는 네덜란드(DSM)·미국(듀폰다우) 등 수입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내수 대 수출 비중은 7대3. 올해로 꼭 창립 20주년을 맞았다.1985년 6월 금호석유화학이 일본합성고무(JSR)와 지분을 절반씩 투자해 ‘금호EP고무’를 설립한 것이 시초다.JSR가 1988년 미국 엑슨모빌에 지분을 15% 넘기면서 3개국 합작법인이 됐다. 금호폴리켐으로 회사이름을 바꾼 것은 1997년. 창립 20년 만에 초우량 기업으로 도약한 데는 ‘한·미·일 3개국 주주회사’답게 선진기술과 경영기법을 발빠르게 받아들인 덕분이다. 직원수는 110명. 부채비율 49%로 재무구조가 탄탄하다. 환경문제에도 각별히 신경써 지난해에는 환경부가 주는 환경경영대상 특별상(베스트 그린팀상)을 받았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기옥 사장은 ▲1949년 서울 출생 ▲1967년 광주일고 졸업 ▲1976년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금호실업 입사 ▲1985년 그룹회장 부속실 차장 ▲1988∼1999년 아시아나항공 이사 서울여객지점장(상무) ▲2000∼2003년 아시아나컨트리클럽 대표이사 부사장 ▲2004년 1월∼ 금호폴리켐 대표이사 사장
  • LG투자증권 대표에 박종수씨

    LG투자증권은 4일 이사회를 열고 박종수(58) 전 대우증권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내정했다. 박씨는 오는 21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에서 선임돼 LG증권과 우리증권의 통합 절차를 진두지휘하게 된다.
  • 옥션 대표이사에 박주만씨

    전자상거래 업체 옥션은 3일 박주만(朴柱曼) 경영총괄 부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를 신임 대표이사 사장(CEO)으로 임명했다. 옥션은 이재현 CEO가 모기업 이베이(eBay) 아시아 지역의 총괄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박 부사장을 사장으로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 한기총 대표회장에 최성규 목사

    최성규(63ㆍ순복음인천교회 당회장) 목사가 30일 차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으로 선출됐다.1981년 기독교 대한하나님의성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최 신임 대표회장은 여의도순복음교회 교무국장, 순복음신학원 이사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 신영연구기금 이사장에 남중구씨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이사회는 27일 제10대 임원진을 구성하고 남중구(동아일보 21세기 평화연구소장)이사를 제10대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남 신임 이사장은 1964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정치부장, 런던특파원, 논설주간 등을 지냈고 93년 관훈클럽 총무와 99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을 역임했다. 새 임원진은 다음과 같다. ▲이사장=남중구 동아일보 21세기 평화연구소장▲이사=구본홍 MBC 보도본부장, 문창극 중앙일보 논설주간, 이상철 조선일보 편집국장, 강신철 경향신문 전무, 박정찬 연합뉴스 편집국장, 장정자 현대고 이사장▲감사=방민준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 지영선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국악인 박범훈씨 종합대 총장에

    한평생을 우리 가락의 현대화, 대중화에 매달려 온 ‘신 국악인 박범훈’이 중앙대 총장 자리에 올랐다. 국내 종합대학에서 국악인 출신 총장이 탄생하기는 처음이다. 중앙대 법인 이사회는 24일 직선제 투표에서 1위 후보로 올라온 박범훈(56) 국악대학원 창작음악학과 교수를 제12대 총장으로 뽑았다. 그는 고향인 경기 양평의 중학교 밴드에서 트럼펫을 불다가 17세 때 동네에 찾아온 남사당패에 매료돼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 가락과 인연을 맺은 그는 국악예고에 들어가려고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오면서 국악을 향한 도전의 길에 들어섰다. 인간문화재 지영희 선생에게서 피리를 배운 그는 예고 졸업 후 중앙대 음악학과(작곡)를 거쳐 일본 무사시노 음대에서 석사, 동국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도전을 즐기는 박 신임총장은 국악의 대중화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한영애, 송창식, 김수철 등 대중가수와 함께 국악 공연을 시도하고, 도올 김용옥의 시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86아시안게임,88올림픽,2002한·일월드컵, 대구유니버시아드 등 굵직한 행사의 개막식 음악 작곡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MBC 마당놀이 ‘허생전’,‘홍길동전’ 등도 그의 작품. 그에게는 ‘첫’이라는 말이 늘 따라다닌다.93년 처음으로 아시아민족악단 창단식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12현 가야금을 현대적으로 개량한 25현 가야금을 선보였다. 민간으로는 국내 최초인 중앙국악관현악단도 만들었다. 교육행정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해 10년 남짓 서울국악예고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한국 최초로 서울국악유치원, 국악중학교, 국악대학, 국악교육대학원을 잇따라 설립했다. 발도 넓어 지난 11월11일 열린 그의 ‘음악인생 40주년 기념공연’에는 정·관계, 문화계 인사 1500명이 참가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런 그가 총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자 음악계 선후배들이 “작곡이나 지휘는 누가 하느냐.”며 말리기도 했다는 후문. 그는 “4년 동안 부총장직을 맡아 중앙대의 행정이나 미래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고민했다.”면서 “그래도 막상 총장이 돼 발전기금을 모금하러 다닐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고 껄껄 웃었다. 박 신임총장은 내년 초 40장의 CD로 구성된 ‘박범훈 소리연(緣)’전집을 내고 잠시 창작활동을 쉴 작정이다.“예술이 노래하고 춤추는 딴따라만이 아닌, 행정과 정치가 모두 담겨져 있는 분야”라는 그의 예술철학이 어떻게 대학 운영으로 나타날지 자못 궁금해진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한국언론재단 이사회 쿠데타?

    한국언론재단 이사회가 청와대로부터 추천된 인사를 무시하고 현 박기정 이사장을 재선출해 파란이 일고 있다. 특히 새로 선임된 상임이사 2명이 모두 고사한 것으로 밝혀져 의혹을 사고 있다. 한국언론재단은 23일 오전 열린 제29차 임시 이사회에서 현 박 이사장을 청와대가 추천한 전 KBS사장이자 전 언론재단 부이사장인 서동구씨를 제치고 3년 임기의 차기 이사장으로 재선임했다. 이사회는 이어 이춘발 전 한국기자협회장과 고영재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을 각각 기금이사와 연구이사로 선임했고, 노정선 현 사업이사는 유임시켰다. 그러나 새로 선임된 2명 모두 “사전에 동의도 구하지 않았고 이사직에도 뜻이 없다.”며 거부, 결정 과정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날 이사회에는 서씨와 박 이사장이 신임 이사장 후보로 추천됐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서씨가 선출될 것으로 점쳤고 이날 이사회에서도 처음에는 서씨가 단독 추천됐다. 하지만 일부 이사들이 문제를 제기하며 박 이사장을 추천, 표결에 부쳤다.12명이 참가한 이사진 투표 결과 각각 6표씩을 얻어 동률을 이뤘고, 임시 의장을 맡은 노정선 이사가 결정권을 행사해 박 이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같은 결과를 두고 언론계에서는 “현직 이사진의 자리보전을 위한 ‘총성 없는 쿠데타’”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언론재단 노조는 이날 비상총회를 열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최종 임명권자인 문화관광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투표에 참가한 언론재단 이사는 노정선 사업이사, 김주언 연구이사 등 상임이사 2명과 한국신문협회 홍석현 회장(위임)과 박수만 사무총장, 이긍희 한국방송협회장(위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최규철 회장과 최문기 사무총장, 한국기자협회 이상기 회장과 홍원석 전 감사, 신동식 언론중재위원회 심의위원, 나형수 EBS 감사, 김순길 한국방송광고공사 전무 등 비상임 이사 10명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1급→4급’ 용기있는 직급파괴

    공무원으로서는 최고위직인 1급 관리관을 지낸 전직공무원이 4급 서기관이 맡는 기초자치단체 사업소 이사장직을 수락해 눈길을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22일 서울 성동구도시관리공단 초대 이사장에 선임된 이호조(59)씨. 이씨는 관선 성동구청장을 비롯해 1급인 서울시시설관리공단이사장 등을 역임한 뒤 지난해 11월 퇴임, 시정개발연구원의 초빙연구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이씨가 이날 수락한 성동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직은 통상적으로 4급직급에 해당한다. 주차·체육사업, 구립도서관운영, 문화회관 인수, 종합청사 관리가 주 업무다. 이씨는 이사장직 수락배경에 대해 “풍부한 경험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고재득 성동구청장의 간곡한 권유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하여 자신의 과거 직급보다 낮은 자리를 맡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고재득 성동구청장은 “이씨와 같은 공직 경험이 풍부한 인재가 필요했다.”면서 “신임 이사장의 용기있는 선택에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표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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