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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주목되는 ‘신의주 특구’

    북한이 신의주에 독자적인 입법,사법,행정권을 부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을 대외적으로 공표했다.이는 북한이 지금까지 내놓은 개혁조치 중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내용으로 평가된다.우리는 뒤늦게나마 개방과 개혁이라는 국제 사회의 대열에 합류하려는 북한의 결정에 주목하며 기본법 내용에 걸맞은 후속 조치가 따르길 기대한다.북한은 지난 7월 초보적인 수준의 시장경제를 도입했듯이 더이상 폐쇄와 독자노선만을 고집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이번 조치도 고립은 결국 자멸(自滅)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북한 당국이 인정한 결과로 판단된다. 북한의 의도가 과거의 홍콩이든,마카오든 ‘신의주 특구’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국제 사회의 신뢰성 회복과 ‘특구’에 걸맞은 북한 체제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과거 나진·선봉지역의 특구 지정이 실패한 것은 핵무기 개발 의혹에 따른 국제 사회의 불신과 경직된 체제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따라서 북한은 국제 사회가 믿고투자할 수 있게끔 ‘불량국가’라는 이미지부터 벗어야 한다.국제 합의에 따른 핵사찰 전면 수용과 미사일 개발 및 수출 중단 등 가시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북한 당국은 또 신의주만 ‘해방구’로 지정한다고 해서 해외 투자자들이 제발로 찾으리라고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다.신의주 배후에 자리잡은 북한도 투자를 담보할 수 있을 정도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신의주가 중국과 북한을 오가는 보따리상들의 통로 정도의 수준이어서는 남한은 물론,제3국의 자본도 유치하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다.북한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면 국제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체제를 개방하고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신의주 특구’의 성패는 북한 당국의 의지와 인내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 신의주특구 홍콩식 개발

    북한이 자본주의체제 도입을 본격화하는 획기적 조치들을 잇달아 발표함에 따라 정부와 우리 기업들의 발빠른 대응이 요구된다. 지난 21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이달 12일 신의주 특별행정구에 독자적인 입법·행정·사법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신의주특구 기본법’을 채택했다.신의주특구는 중국의 홍콩과 비슷한 수준의 자치권을 줘 자본주의의 실험장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신의주특구는 신의주시와 의주군 흥남리,염주군의 다사노동자지구,철산군금산리 등 1개 시 3개 군에 걸쳐 있다.기본법에 따르면 북한은 특구의 법률제도를 향후 50년간 개정하지 않기로 했으며,신의주특구는 여권도 자체 발급할 수 있도록 했다.특히 특구를 국제적 금융·무역·상업·공업·첨단과학·오락·관광지구로 조성하는 한편 오는 2052년 12월31일까지 토지의 개발·이용·관리권을 부여해 투자장려 및 기업활동 여건을 보장토록 했다. 이와 함께 신의주특구에 국회격인 ‘입법회의’를 별도로 둬 특구 주민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피선거권을 주기로 했다.신의주특구를 대표하는 ‘장관’은 입법회의 결정과 특구 지시를 공포하고,특구의 행정집행기관인 행정부 성원(공무원) 및 구(區) 검찰소장에 대한 임면권을 갖게 된다. 이밖에 기본법은 신의주특구의 구장(區章)과 구기(區旗)를 자체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승렬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22일 “특구 기본법은 신의주에 영사권을 주는 등 중국의 특구보다 오히려 앞선 조치”라고 평가했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신의주특구는 화교자본 유치가 1차 목표로 보이지만 경의선이 연결되면 남한 자본도 적극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관건은 세법과 노동력 제공 부분인데 북측의 전향적 자세를 감안하면 투자유치를 위한 파격적인 추가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신의주특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경제활동보장,값싼 양질의 노동력 공급,인프라 구축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신의주특구 일대에 3m 높이의 울타리를 올해 들어 설치하기 시작한것으로 알려졌다.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북한 당국은 지난해 남신의주 일대 주민들을 신의주특구로 이주하도록 한 데 이어 올해 들어 신의주특구 일대에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신의주 ‘경제특구’ - 北, 자유무역 특별행정구역으로 지정

    북한이 신의주를 특별행정구역(경제특구)으로 지정,중국과의 자유무역을 허용키로 했다고 AFP통신이 북한 관영 중앙통신을 인용해 19일 보도했다. 지난 7월 배급제 폐지,임금 및 물가 인상,환율 평가절하 등 개혁조치를 발표한데 이은 이같은 발표는 북한이 과거의 중앙집권경제체제에서 벗어나 시장 개방을 포함한 시장경제제도를 부분적으로나마 도입하기 시작했음을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북한의 경제개혁 행보가 가속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주목된다. 중앙통신은 북한 최고 정책결정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지난 12일 신의주를 특별행정구역으로 지정하는 특별포고령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중앙통신은 포고령의 전문을 인용,“조선인민민주공화국은 신의주를 특별행정구역으로 지정할 것”이라면서 “신의주경제특구는 주변 지역을 묶는 특별행정단위로서 중앙 당국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한 이번 조치는 중국의 경제특구 선전(深□)을 모방한 것으로 북한은 신의주와 중국의 단둥을하나의 경제단위로 묶어 새로운 경제지역으로 키워나갈 계획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신의주의 경제특구 지정은 지난해 중국을 방문해 중국 경제의 급성장을 눈으로 확인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 방문 직후 신의주를 시찰하며 수행중이던 연형묵 국방위원회 위원,김국태 당중앙위 비서,매제 장성택,김희택 당중앙위 제1부부장 등에게 중국 상하이 방식을 참고,경제특구로 개발하는 방법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이전에도 나진·선봉지구를 경제특구로 지정한 바 있으나 나진·선봉지구는 북한 주민들의 통행이 규제되는 등 고립돼 경제특구로서 기대만큼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신의주는 유명무실화된 나진·선봉경제지대와는 달리 시민들의 자유로운 출입과 경제활동이 보장되는 등 개방된 데다 특구 지정 이전부터 이미 북한의 주요 항구였다는 점 등 유리한 교통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이밖에도 주변에 토지,공업용수,전력 등이 풍부해 특구로서 적합한 조건을 갖춰 90년대 초반 이후 줄곧 특구 지정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뿐만 아니라 경의선·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공사가 착공됨에 따라 신의주는 남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물류와 교역의 주요 기지로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족통일연구소의 서재진 북한전문가는 1980년에 중국에서 제일 먼저 경제특구로 지정됐던 광둥성의 선전을 예로 들면서 “신의주가 선전과 같이 자유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혜승 1fineday@
  • ‘신의주 특구’ 지정의미/ 北 경제개방 의지 ‘확고’

    북한이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남한과 동시에 가진 데 이어 19일 신의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한 것은 북한 경제의 체질변화가 가시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지난 7월1일 북한이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취한 이후 본격적으로 후속 조치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경제개방 의지를 명확히 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고유환(高有煥) 동국대 교수도 “북한이 개혁개방 의지를 대내외에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라며 “지난 7월 단행한 경제개혁에 따른 추가조치의 하나로 이해된다.”고 평가했다.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은 사실 올초부터 어느 정도 예견돼 왔던 게 사실이다.지난 2월 코트라는 북한의 대외관계전망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제2경제특구를 지정할 가능성이 있다.”며 후보지로 신의주를 지목했다.지난 7월에는 북한이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7월 ▲사유재산 일부 인정 ▲성과급(인센티브)제도 도입 ▲수입 확대 등 경제개혁 조치들을 단행하면서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도 함께 추진키로 하고 이를 군·당 책임비서들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에게도 고지시켰다는 것이다. 북한이 신의주 특구를 어떤 형태로 개발할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다만 북한 소식통과 대북투자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북한이 양빈이라는 중국계 네덜란드인과 손잡고 신의주 지역 87만평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놀이동산 등 위락시설과 산업시설이 함께 들어서는 복합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를 위해 북신의주 지역에 신도시를 조성하고 주민들을 남신의주나 인근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대신 기술 및 서비스 인력을 북신의주 지역으로 이동시킬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외국인의 자유투자와 상행위를 보장하고 지대법을 정비하는 한편 이르면 연말부터 화교재벌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전기·통신 등 인프라를 확충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신의주 특구는 외진 곳에 조성된 나진·선봉과 달리 도시형태의 경제개혁을 추진한다는 의미로,성공 가능성이 높다.”고진단했다.남북의 경의선 철도 연결에 이어 신의주 특구 지정으로 북한은 남한의 기술·자본과 중국의 거대한 시장을 연결하는 전략요충지를 확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정부 당국자는 “경의선 착공과 함께 남북경협 전반이 탄력을 받게 될것”이라고 내다봤다.신의주 특구는 그 자체로 중국의 단둥과 함께 ‘환발해경제권’으로 발전할 기반을 갖추게 된다.나아가 장기적으로 한국종단철도(TKR)와 중국횡단철도(TCR)를 연결함으로써 남측의 기술·자본과 중국의 거대시장을 연결하는 요충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김수정기자 crystal@ ■신의주는 어떤곳/ 北 최대 경공업도시… 中단둥시 인접 중국 동북지방의 단둥(丹東)시와 인접한 중국으로의 관문으로 제지공업과 방직공업이 발달한 북한 최대의 경공업 도시다.동쪽으로는 의주군과 피현군,남쪽으로는 용천군,북쪽에는 이성계의 회군으로 유명한 위화도가 있고 서쪽에는 유초도 등 10여개의 섬들이 있다. 신의주의 행정구역은 3구역 35개동과 13개리(里)이다.평야지대로 토층이 두꺼워 농작물재배에 유리하다.대륙성 기후로 연평균 기온은 8.8℃,강수량은 1058㎜이다. 경의선의 종점이며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단둥시와 인접하고 있어 평양∼베이징 국제열차가 정기적으로 운행된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1월 비공식 중국방문에 이어 신의주시 경공업공장들을 시찰하며 중국방문에서 얻은 경제건설에 대한 구상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남 목포시가 올해 초 신의주시와 교류협력의향서를 교환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평남 검단면 실향민 오기모옹 “플랫폼서 손흔들던 어머니…”눈시울

    “서울 오는 기차 탈 때 오마니가 손 흔들어 줬는데,그게 마지막이야.” 평안남도 평원군 검단면 소양리가 고향인 오기모(吳夔模·78·사진) 할아버지는 18일 오전 경기 파주시 장단면 도라산 인근 제2통문 철책 앞에서 열린 경의선 착공식 축포가 터지는 순간 고향 땅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57년전 봄 그는 신의주발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정든 고향을 떠났다.막내에게만은 대학공부를 시키겠다는 생각에 오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1945년 3월서울가는 기차표 한 장을 손에 꼭 쥐어 주셨다.봄비가 내리던 날 평양역 플랫폼에서 “서울가서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며 손을 흔들어 주시던 것이그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다. 해방 직후 남북이 갈리면서 철도가 막혀 버렸지만,그때만 해도 가족과 생이별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전쟁이 터진 1950년 겨울 어머니가 막내아들을 보러 서울로 오시려다 길이 막히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간 뒤 홧병을 얻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그는 “나 때문이라는 자책감은 지금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고려대로 통합된 국학대학을 마치고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그는 지난 92년 정년퇴직한 뒤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둘째아들과 살고 있다.“죽기전 조금이라도 고향 땅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그는 착공식장에 마련된 열차를 바라보며 “두시간이면 어머님이 묻힌 고향땅에 갈 수 있는데….”라며 북녘 땅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파주 유영규기자 whoami@
  • m.net 경의·동해선 착공기념음악회 생방송

    음악전문채널 m.net은 18일 오전 10시 도라산역 남방한계선 제2통문에서 경의선, 동해선 철도·도로착공 기념음악회 '다시 하나되어 세계로'를 케이블‥위성을 통해 전국에 생방송한다. '다시…'에서는 아나운서 최선규, 임성민이 진행을 맡아 가수 현미 이선희 태진아, 성악가 신동호 등이 출연한다. 평안도 실향민인 현미는 이북에 있는 동생을 그린 '보고싶은 얼굴'을 부른다. 경의선은 서울에서 개성, 사리원, 평양을 거쳐 신의주에 이르는 총 500여㎞의 철도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와 이어진다. 경의선 착공식은 남북 양쪽에서 동시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 北 전화번호부 내용 분석/ 주요기관 간부 자택 전화번호까지 실려

    (도쿄 황성기특파원) 대한매일이 입수한 북한 전화번호부는 국가의 주요 기관이 모여 있는 수도 평양은 물론 지방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기관이나 조직의 이름,전화번호를 망라하고 있어 북한의 구석구석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의 보고’이다.지방의 공장이나 농장,음식점,목욕탕은 물론 당이나 군 간부의 집 전화번호까지 기재돼 있어 생활상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주요 내용 -373쪽에 5만여건을 담은 전화번호부는 지역별로 평양,평성,남포,신의주,해주,사리원,강계,원산,함흥,청진,혜산,개성의 순으로 구성돼 있다.지역별 전화번호는 다시 정당,인민위원회(시청),사법검찰,사회안전 등 각 부문별로 세세하게 나뉘어져 있다.도시별 전화번호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지역은 평양으로 무려 180쪽에 이른다.중앙조직이 얼마나 비대한지 알수 있다. 평양시 전화에서 첫머리에 오른 곳은 북한의 심장부라 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321-1121 등 4개의 교환번호가 기재돼 있으나 상세한 부서이름은 전혀 없다.주요 부서의 경우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통제하는 사회임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중앙위가 아닌 노동당의 평양시 지역별 위원회는 부서마다 나와 있는 점이 다르다. 밀고자들이 수상한 이웃을 신고하거나 할 때는 ‘지역번호+82’를 돌리면 된다.우리의 112나 119에 해당되는 번호다. 평양시 인민위원회는 인민행정,검열,법무,총무 등 각 부서의 부장실 전화가 올라 있으며 주요 간부들의 집 전화번호도 ‘상임 부위원장집’,‘서기장집’ 등으로 기재돼 있어 관심을 끈다. 한국의 시청에 해당되는 평양시 행정경제위원회는 행정지도국,유자녀국,혁명사적관리총국,주민행정국,도시경영총국,상업총국 등 서울시청만큼이나 다양한 국과 과로 구분돼 있다.평양 행정경제위 아래는 지역별 행정경제위(구청)와 동사무소로 갈라진다.중앙 행정부처 전화번호는 양분된다.인민무력부처럼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부처는 달랑 전화번호 2개로 간단히 기재돼 있다.외교부의 경우 대부분의 국과 과를 올려놓았지만 숫자로 ‘1국’,‘4과’ 등으로 기재돼 있어 어떤 지역을 담당하는 국이나 과인지를 알기 힘들게 해놓았다. 또 핵 개발과 관련돼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원자력 공업부문도 아주 간단히 원자력총국 1곳의 교환번호만 올라 있다.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전화번호는 맨 뒤쪽 ‘급양 및 편의봉사부문’에 집중 배치돼 있다. 여기에는 양강호텔이나 대동강여관 등 주요 호텔의 전화번호가 실려 있으며,평양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이나 평양면옥 등 평양 시내 각종 식당의 이름도 올라 있다. 평양숭어국집,평양오리고기 전문식당,평양단고기(개고기)집,인흥국수집,순대국집,주체탑거리 국수집과 일본인들이 많이 가는 붉은거리 은반식당의 전화도 올라 있다.또한 지역별 편의 봉사업소로는 사진관,시계전문수리,냉동기 및 텔레비전 수리사업소,양복점 등도 기재돼 있고 목욕탕도 봉사업소로 분류돼 지역별로 기재돼 있다. ◇전문가 분석- 전화번호부 제작연도는 1995,96년으로 추정된다.북한 정보 분석에 정통한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98년 9월 헌법 개정으로 정무원이 내각으로 바뀌었는데 이 전화번호부는 정무원으로 쓰고 있는 점으로 볼 때 개헌 전 것”이라며 “일부 행정기관 이름은 다소 옛날 것이 있는 점으로 볼 때 96년쯤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유출 경로- 일본 정부의 한 정보관계자는 “전화번호부는 북한 국경을 통해 중국으로 들여온 것을 북한 서적을 다루는 R사가 일본으로 갖고 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R사는 이 전화번호부를 복사,1권에 2만 5000엔 전후로 일본 내 북한 연구자와 정보 관계자들에게 암암리에 판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북한에는 개인에게 전화가 거의 보급돼 있지 않아 전화번호부는 관공서들이나 호텔 등지에만 비치돼 있다. marry01@
  • 쌀30만t 對北 차관지원, 남북경추위 오늘 개막

    정부는 27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북한에 쌀 30만t을 ‘10년 거치 20년 상환 조건’의 차관형태로 지원하기로 했다.연이율은 1%가량이다. 또 철도·도로 구간 착공 등 현안이 순조롭게 마무리될 경우에 한해 추가로 비료 10만t가량을 제공할 수 있다는 내부방침을 정했다. 경추위 관계자는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의 쌀 부족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경추위를 계기로 쌀 지원을 하기로 했다.”며 “그러나 30만t 이상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북한에 쌀을 제공한다는 비공식적인 언급은 많았으나,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추석인 9월21일 이전에 경의선 철도·도로 북측구간을 착공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관계자는 “동해북부선의 경우 남북한 모두 철로가 제대로 놓여 있는 곳이 많지 않아 착공하더라도 7∼8년가량 걸리는 반면 경의선(서울∼신의주) 연결작업은 3개월가량이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경의선 철도·도로가 협상의 주의제가 될 것임을 내비쳤다. 동해선의 북측구간에 대한 건설비용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북측구간을 건설해 준다는 항간의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며 “특히 러시아가 남북관계의 중재자 역할을 맡으면서 그 대가로 경협차관(19억 4000만달러)을 상쇄할 것이라는 것도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주병철기자 bcjoo@
  • 통일플라자/ 한평생 독립·통일운동 구익균翁 ‘한반도 영세중립’ 꿈꾸는 老사상가

    “백범이 존경하는 사람은 도산뿐이었어요.상하이 임시정부의 정책,활동 방향,경제 등 모든 것의 중심에는 도산 선생이 있었죠.”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비서실장으로서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구익균(具益均·95)옹은 20일 기자와의 회견에서 그동안 도산 선생이 ‘온건한 계몽주의자’ 정도로 잘못 알려졌다고 말했다. 구옹은 “이상 사회를 꿈꿨던 혁명가 도산 선생은 민족의 독립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자유민주주의자는 물론 사회주의자,테러리스트까지 포괄했던 큰 인품을 갖춘 지도자”라고 말했다. 도산의 사상을 고스란히 체현한 ‘95세의 노(老) 독립운동가’ 구옹이 요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활동은 바로 ‘한반도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이다. 지난 83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91년 뉴욕에서 ‘코리아 영세중립화 추진본부’를 꾸린 뒤 국제사회에 한반도 영세중립국 보장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였다.지난해에는 한국에서 ‘영세중립통일협의회’의 공동대표를 맡는 등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반도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을벌이고 있다. 현재 스위스·벨기에·오스트리아 등이 영세중립국을 표방하고 있다.한반도 영세중립화는 미·중·일·러 한반도 주변 4강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반도를 이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또 국제사회는 이를 위해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인 한반도를 영세중립국으로 인정하고 보장해야 한다. 구옹은 이에 앞서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와 이념의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세중립화가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외국의 도움이나 개입없이 통일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통일의 방법”이라고 역설했다.구옹은 이어 “한반도가 영세중립국이 되면 남북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외교와 국방은 동시에 추구하는 형태가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회주의자도,자유민주주의자도 아니다.그저 같은 민족의 북쪽에 사회주의가 있고,남쪽에 자유민주주의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며 남북이 평화롭게 함께 어울려 지내며 전쟁과 대결을 거부하기를 바라는 평화주의자일 뿐이다.이와 더불어 지구상 어디에서도 대결과 전쟁도 없이 평화롭게 어울려지내야 한다는 확신과 철학을 지닌 순수한 평화주의자다. 그는 한반도의 영세중립화 통일운동은 도산 선생의 사상과 맥이 맞닿았다고 주장한다. “도산의 사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잃어버린 옛 나라를 찾아서 복스러운 새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이지요. ‘대공주의(大公主義)라고 불렀는데 이건 중국 쑨원(孫文)의 삼민주의처럼혼돈된 나라에서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사상이었어요.” 구옹은 “혁명가로서 도산 선생의 사상이 한국내 흥사단의 친일이나 제자춘원 이광수의 친일 행적 등에 의해 왜곡된 점이 너무 안타깝다.”면서 “혁명적 이상사회를 꿈꾸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 했던 사상가이자 모든 사람들을 독립운동의 대열에 세우려 노력했던 품이 넓은 혁명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벌써 잊은 듯 그가 세상을 향해 지르는 외침에도 별울림이 없다. 하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요즘도 그는 통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한민족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영세중립화밖에 없어요.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의 틈바구니에 있는 한반도를 어느 특정 외세가 주도한다면 한반도는 항상 분열과 전쟁의 장으로 전락할 위협에 놓이는 거지요.” 박록삼기자 youngtan@ ■구익균옹은 누구 구익균옹은 상하이 임시정부 활동을 생생히 기억하는 마지막 생존자다.구옹은 1908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났다.1928년 신의주고등보통학교 시절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을 거부하는 ‘신의주고보 학생사건’을 주도했고,일제의 검거령이 떨어지자 상하이 임시정부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벌였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는 안창호 선생이 일제에 검거되기 전까지 비서실장을 지냈고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을 모시는 등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두 차례나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렀다.또한 중국 광둥 중산(中山)대학에서 조교수를 하며 민족에 힘이 되는 인재를 양성했다. 구옹은 1945년 해방이 된 뒤 1947년 서울로 들어와 남북이통일될 수 있는현실적 방안을 추구하는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념과 다른 체제로 갈라진 한반도 현실에서 구옹은 ‘이방인이자 범법자’일 수밖에 없었다. 광복 이후 영세중립화 통일 및 평화를 주된 가치로 하는 혁신정당 운동에 힘쓰다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의해 다시 1년여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박록삼기자
  • 그룹새벽 ‘남북의 길 국도1호선’

    '8.15민족통일대회'의 막이 오른 지난 14일 서울 인사동 공평아트센터에서는 통일을 기원하는 미술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그룹 새벽'의 '남북의 길-국도 1호선 전'이 그것. 국도 1호선은 한반도의 남서단인 목포에서 북서쪽 끝 신의주를 연결하는 '남북의 대동맥'. 국도 2호선이 목포와 부산을 잇는 '남남의 대동맥'인 점을 떠올리면, 국도 1호가 갖는 상징성에는 제법 마음이 찡해진다. 그룹 새벽의 황순칠 회장은 “판문점에서 막혀버린 국도 1호선은 분단의 아픔을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표상”이라며 “예술인도 ‘6·15 남북공동선언’이후 세계 정세 변화에 주목하고,민족적 과제인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설치·회화·조각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새벽은 1991년 광주·전남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주축이 돼 창립한 미술단체로 개인전은 순수미술을 지향하지만,단체전은 사회성과 대중성을 강조해 왔다. 회원들은 지난해 8월부터 올 2월까지 목포에서 판문점까지 3차례나 답사했다.일제 수탈의 현장인 목포 ‘동양척식회사’터에서 출발,북상하면서 광주금남로,정읍 동학혁명지,천안 독립기념관,오산 미군부대,임진각 자유의 다리,문산 통일전망대에서 공동작업도 했다. 때문에 이번 전시회의 대표작은 고근호 김기범 김성식 김숙빈 박광구 이기원 전범수씨가 공동작업하고,자유의 다리를 찾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참여한 임진각 설치작품이다.목포의 ‘국도 1호선’도로 원표와,자유의 다리 표석·상판·교각에서 떠낸 석고를 먹물빛 30m 길이의 한지에 흩뿌려 놓았다. 한지는 지난 겨울 자유의 다리에 깔아놓고 국내외 관광객이 밟고 지나가도록 한 자취다.분단을 상징하는 철조망에는 민족의 소망이 적힌 오방색 깃발이 빽빽이 꽂혀 있다.“막힌 길은 열려야 한다.”는 외침이다. 작업 현장을 비디오에 생생히 담아 현장사진들과 함께 전시실에서 내내 영상으로 상영한다. 마음 속에 오랫동안 떨림을 유발하는 작품으로는 한희원씨의 ‘아버지의 길’연작을 손꼽을 수 있다.그 가운데 작가가 아버지 영정을 들고 있는 작품.“선친이 평양 출생으로 평양 숭실대 영문과를 졸업했다.”는 작가의 설명을 들으면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는다. 낡은 앨범에서 얼음 덮인 압록강 사진을 꺼내 꿈꾸는 눈으로 바라보던,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는 일이 그에겐 곧바로 작품이 됐다. 정용규씨의 ‘길’은 한국의 근·현대사 속 인물을 한폭에 담았다.최병구씨의 ‘꿈-희망’은 지도를 잘게 분할,이리저리 재구성해 남과 북의 분단을 지정학적으로 점검했다. 황순칠씨의 ‘혼불’은 흰색으로 그린 동양척식회사 위로 민족의 붉은 심장같은 획을 쭉 내리그어 민족의 분노를 시원하게 표출했다.서울 전시는 20일까지(02)733-5912,광주 전시는 9월29일부터 10월3일까지 남도예술회관(062)227-1136. 문소영기자 symun@
  • 北주민 해상귀순/탈북경위/中식품·獨가방…기획귀순 흔적

    19일 새벽 소형 어선을 타고 입국한 21명의 북한 주민들은 장기간의 치밀한 계획 아래 귀순을 결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행색이나 어선의 상태,소지한 물품 등을 살펴볼 때 오랜 기간 준비한 ‘기획 입국’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이 타고 온 어선에서 일반적인 소형 어선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위성항법장치(GPS)와 가스버너,압력밥솥,TV 등이 발견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이들이 장기간 항해를 예상한 듯 세찬 바람과 추위를 막기 위한 겨울용 점퍼와 긴소매 옷,두터운 담요 10여장 등이 어선에서 발견된 것도 이번 탈북이 치밀하게 준비된 ‘기획성’이었음을 시사한다. 이들이 처음에 신의주를 떠났다는 사실을 추정케 하는 ‘신의주 화장품공장’이 만든 ‘백학 치약’도 눈에 띄었다. 실제 순종식씨는 귀순 직후 취재진에게 “수개월전부터 탈북을 계획했으며 10일 전부터는 물품조달 등 본격적인 준비를 해왔다.”고 밝혔다.순씨의 동생 봉식(55)씨도 “지난 95년부터 중국에 있는 중개인과 형님이 여러 차례 접촉한 것을 계기로 서로의 소식을 주고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어선이나 복장 등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이들이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해 입국했을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고 있다. 해양경찰청 관계자는 이들이 타고 온 어선이 뱃머리가 높이 치솟은 전형적인 ‘중국식 저인망 어선’이라고 밝혔다.또 뱃머리 앞 오른쪽에 적힌 배 이름을 검은 페인트 등으로 지운 흔적이 뚜렷하다는 점에서도 ‘제3국 경유’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이 입고 있는 옷도 최근 중국을 거쳐 입국한 다른 탈북자의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북한 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흰색 고급 운동화와 구두,샌들 등을 신고 있었다.어린이들은 ‘SPORTS’,‘FASHION’이라는 영문이 적힌 티셔츠와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이 타고온 배의 조타실에서는 독일 유명 스포츠 브랜드 로고가 크게 새겨진 대형 배낭과 가방 등이 3개나 발견됐으며 항해중 배고픔을 달랜 것으로 보이는 중국 상표의 국수 꾸러미들도 놓여 있었다. 한 푸대자루에서는 실제 총과 똑같이 생긴 어린이용 외제 장난감 총도발견됐다. 배가 처음 발견된 지점이 북방한계선(NLL)에서 한참 내려온 인천 덕적도 인근 울도 서방 17마일 해상이라는 점도 이들이 중국 쪽에서 항해를 시작했다고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영표기자 tomcat@
  • “두달전 탈북 구체계획”순종식씨·南동생 2년전 中서 만나 준비

    19일 새벽 서해 공해상을 통해 집단 귀순한 탈북자 일행 21명 중 순종식(70·荀鍾植·평북 신의주)씨는 7년 전 남한에 사는 동생들과 편지를 교환한 데 이어 2년 전 중국에서 직접 상봉하면서 탈북을 준비해 왔고,2개월 전 큰아들 룡범(46)씨가 선장이 되면서 구체적인 탈출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에 사는 둘째 남동생 봉식(55·奉植)씨는 이날 “지난 95년 1월 편지를 통해 형님 소식을 들은 뒤 중국 옌볜 동포 주선으로 2000년 12월 중국 단둥(丹東)시 부근 동항에서 3일간 형님과 장조카를 직접 만나 탈북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순씨의 동생 4명은 현재 대전,인천,충남 홍성 등에서 살고 있다. 순씨의 큰아들 룡범씨는 “2개월 전부터 114지도국 소속 어선 8003호의 선장으로 근무하면서 어선에 있는 텔레비전으로 남한의 풍요로운 모습을 보고 구체적인 탈출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 어선 ‘대두 8003호(20t급)’에 탄 순씨 가족 12명,최동현(41)씨 가족 4명,방기복(44)씨 가족 3명 등 3가족 북한 주민 21명(남자 14명,여자7명,성인 11명,어린이 10명)은 북한을 출발한 지 만 이틀만인 19일 오전 4시 인천 해경부두에 도착한 즉시 관계기관에 의해 서울로 옮겨져 탈출 동기 등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1주일정도 조사받은 뒤 탈북자 교육기관인 하나원으로 옮겨져 2개월간 사회적응 훈련을 받는다. 순씨는 “충남 논산이 고향으로 6·25때인 50년 7월 의용군에 입대해 북한에 왔으나 최근 식량난 등으로 생계 유지가 어려워 탈출했다.”고 귀순 동기를 밝혔다. 탈북자들은 “지난 17일 오전 4시쯤 평북 선천군 홍건도 포구를 출발,북한경비정의 검문을 피하기 위해 서해 공해상을 우회하면서 중국 산둥성 인근해안을 지날 때 중국 경비정이 나타나 시속 11노트의 전속력으로 남하했다.”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해경측은 “탈북주민들을 태운 배는 서해 공해상인 경도 124도선을 통과해 우리 영해로 들어왔기 때문에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인천 김학준 대전 박승기기자 kimhj@
  • 北주민 해상귀순/ 순종식씨 남한 혈육 표정

    “장남과의 생이별을 한으로 품고 사셨던 어머니께서 땅 속에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동생들과 헤어져 반세기를 넘겨서야 극적으로 재회한 순종식(荀鍾植·70)씨 일가족은 지나온 세월의 회한을 눈물로 씻어냈다. 동생 봉식(奉植·55·부동산업·대전 중구 선화동)씨는 19일 “자라면서 어머니가 사망신고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런 일을 예상했나 봅니다.”라며 감격해했다. 6남 2녀중 맏형인 종식씨가 가족과 헤어진 것은 18세때인 지난 50년 7월 고향인 충남 논산군 부적면 신교리에서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가면서였다.이후 가족들은 종식씨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채 가슴 속에 깊이 묻어 두고 있었다.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95년 1월.종식씨는 북한 신의주에 살던 조선족 문모씨를 통해 “가족을 찾아달라.”는 한 통의 애절한 편지를 연고지인 논산경찰서로 보냈다.같은 달 백두산에 다녀온 한 관광객이 백두산호텔 종업원으로부터 전해 들은 종식씨의 소식을 알려 왔다. “죽은 아들이 살아온 것처럼 기뻐하며 북녘 하늘을 바라보던 어머니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양돈업을 하는 동생 동식(東植·61·충남 홍성군 홍북면 상하리)씨는 오늘 아침 TV에 나온 큰형의 모습에서 98년 3월 83세를 일기로 작고한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며 목이 멘듯 계속 냉수를 들이켰다. 막내동생 대식(大植·52·인천 서구 마전동)씨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어떻게 살아왔는지 형에게 자세히 알려주고 싶다.”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어머니 이영순씨는 눈을 감을 때까지 “따뜻한 밥 한그릇 못해 먹인 종식이를 꼭 한번 만나고 죽는 게 소원인데….”라고 되뇌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어머니가 숨을 거둔 3월 봉식씨는 중국 옌볜 동포의 주선으로 압록강 유람선을 이용,강 건너편으로 나온 종식씨를 처음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97년 9월 중국에 거주하는 중개인을 통해 종식씨의 구체적인 생활과 가족사항 등을 전해 들은 뒤였다. 애타는 마음은 더욱 달아 올라 봉식씨는 2000년 12월15일 중국 단둥시 부근에서 종식씨와 장조카 룡범씨를 만나 사흘 동안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봉식씨는 “당시 조카가 자식들은 자유의 땅에서 키우고 싶다며 탈북자의 남한생활상과 정부의 지원 내용 등을 물었다.”고 소개했다.배를 타고 남한으로 탈출하겠다는 얘기였다. 사흘 동안의 재회 이후 종식씨는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그리고 봉식씨는 오늘 아침 TV를 통해 꿈에 그리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이날 하루종일 형제들은 서로 전화를 주고받으며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다. 대전 박승기·홍성 유영규·인천 박지연기자 skpark@ ■부여 홍산·옥산에 순씨 집성촌 순종식(荀鍾植)씨의 본관은 홍산(鴻山)으로 알려졌다.홍산은 충남 부여의지역 명칭으로 지금도 홍산과 옥산 지역에 순씨 20여 가구가 살고 있다. 그러나 순종식씨의 고향인 논산 부적면 신교1리에는 순씨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현재 1명도 살고 있지 않다.신교1리 임성규(60) 이장은 “10여년쯤전 순종식씨의 막내 동생 대식씨가 마지막으로 떠나 순씨는 이제 살지 않는다.”고 말했다. 32대 종손인 순명기(45·경기 부천시 중동)씨는 “서울에 종친회가 있는데40∼50여명이 모인다.”고 말했다. 순씨의 본관은 홍산(鴻山) 말고도 임천(林川)·창원(昌原)·연곡(連谷·강릉 지방) 등이 있다.1975년 국세조사에서 순씨는 249성씨 가운데 인구 수로보아 176위였다.85년 조사에서는 956명으로 274성씨 가운데 160위였고 같은해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남북한 통틀어 149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돼 있다. 황장석기자 surono@
  • ‘해상탈출’ 남북관계 큰영향 없을듯

    ■귀순자 처리와 남북관계/ 北 탈북문제 공식화 불원…해상경비는 강화 북한주민 21명이 18일 서해상을 통해 우리측에 귀순해 옴에 따라 이들의 신병 처리와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해상탈출로 최근들어 급물살을 타는 남북관계가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을까 내심 고심하는 눈치다.그럼에도 통일부 당국자는 18일 “남북관계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탈북의 형태가 어떻든 올해에만 탈북자가 500명을 넘어설 정도로 탈북 자체는 일상화된 상황”이라며 “북한 역시 지금까지 체제안정과 대외관계를 감안해 일체 탈북문제를 공식화하지 않았으며 이번 경우에도 태도변화를 보이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다른 정부 당국자도 “중국을 거치지 않고 해상으로 직접 들어왔다는 점과 귀순 동기 등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는 있으나 전체적으로 남북관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지난 서해교전사태 이후 고조돼 있는 서해상의 남북 양측 해군의 긴장관계는 이번 해상탈출 사태로 다시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지난 97년 신의주에서 어선을 타고 남한으로 귀순한 안선국씨 등 14명의 경우 탈북 과정에서 북한 경비정에 두 차례 적발됐으나 모두 뇌물을 이용해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해상탈출로 북한군의 서해안 경비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북한 경제가 나아지지 않으면 유사한 ‘보트피플’ 사례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점쳐진다.이들의 신병처리는 기존의 탈북자 처리절차를 밟게 될 전망이다.즉 관계기관이 신병을 확보,정확한 신원과 탈북경위 등을 조사하고 귀순 의사를 파악하게 된다. 귀순의사가 확인되면 정부는 이들을 탈북자 남한정착지원 시설인 하나원에 입소시켜 2∼3개월간 남한정착에 필요한 교육을 실시하게 된다.이후 소정의 정착금과 함께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고 하나원을 퇴소,남한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하게 된다. 정부 당국자는 “중국 등 제3국의 외교공관을 통한 귀순이나 이번의 경우처럼 해상탈출을 통한 귀순 모두 처리절차는 달라질 게 없다.”며 “관계기관을 통해 면밀히 조사한 뒤 귀순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87년 이후 귀순일지 ●1987년 2월8일= 김만철씨 일가 11명 소형선박을 타고 청진항 탈출.일본 후쿠이현 쓰루가항,대만 거쳐 귀순. ●1994년 3월18일= 여만철씨 일가 4명 압록강 건너 중국으로 탈출.홍콩 거쳐귀순. ●1995년 3월27일= 북송교포 오수룡씨 일가 6명 압록강 건너 중국으로 탈출.제3국 거쳐 귀순. ●1995년 12월12일= 북한 최대무역회사 대성총국 유럽지사장 최세웅씨 일가 4명 유럽 제3국 거쳐 귀순. ●1996년 12월9일= 김경호씨 일가 17명 회령 떠나 중국 거쳐 모터보트로 홍콩 도착,망명 신청. ●1997년 5월13일= 선장 안선국씨 일가 14명 신의주항을 출발해 목선 타고 백령도 도착. ●1999년 11월30일= 조병수씨 등 13명 청진 탈출 제3국 체류중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도움으로 귀순. ●2001년 6월26일= 장길수군 일가 7명 UNHCR 베이징(北京)사무소 진입,망명요청 ●2002년 5월23일= 선양 주재 일본 총영사관 진입했다가 체포됐던 길수친척 김한미양 일가 5명,필리핀 거쳐 입국. ■北주민들 귀순 루트는/ 안선국씨 이후 5년만에 해상귀순 지금까지의 사례로 볼 때 북한 주민들의 집단귀순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첫째는 선박을 통한 해상 귀순이고,둘째는 중국이나 제3국을 통한 육로 우회귀순. 해상을 통한 귀순방식은 북한 내에서도 선박이용이 용이한 황해도·평안도일대 주민들이 주로 택했다. 지난 87년 2월8일 김만철씨 일가 11명이 ‘따뜻한 남쪽나라’를 향한다며 해상귀순을 감행한 이래 지난 97년 북한의 수산부 소속 지도선 선장인 안선국씨가 일가족 13명과 함께 서해상을 통해 귀순하는 등 중국을 경유하는 우회 귀순루트가 개발되기 이전까지 유력한 통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해상 귀순방식은 최근들어 북한 주민들이 중국으로 탈북,서방국가의 재외 공관을 통해 의거 망명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현저하게 그 횟수가 줄었다. 군사분계선을 넘는 육로 귀순도 종종 있어왔지만,이 방법은 휴전선 등 접경지역에 복무하는 군인들이 제한적으로 채택한 것으로, 그나마 북한 당국이 경계를 강화하면서는 거의 근절됐다. 해상 귀순이 어려워지면서 최근에는 중국을 통한 귀순이 ‘붐’을 이루고 있다.해외 공관 주재관이나 중국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중국을 1차거점으로 해서 우회 탈북하는 것. 지난 99년 11월 조병수씨 등 다섯가족 13명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을 통해 귀순했으며,지난해 6월에는 장길수군 등 탈북자 7명이 역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베이징사무소에 진입,우리나라로 귀순하는 등 지금까지 줄잡아 30∼40건의 크고 작은 귀순이 중국을 통해 우회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외교관 등 북한의 해외 주재관들은 현지에서 우리측 공관을 통해 귀순하는 방법을 사용했다.지난 95년 12월 북한 대외무역회사 대성총국 유럽지사장 최세웅씨가 일가족 3명과 함께 귀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그러나 18일 북한주민 21명을 태운 선박이 서해상을 통해 다시 우리측에 귀순해 옴으로써 ‘자유’와 ‘풍요’를 향한 탈북 귀순행렬은 빈도의 문제일뿐 특정 경로나 방법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입증됐다. 특별취재반
  • 도보 국토종단 마친 시각장애자 송경태씨

    “국토종단에 성공해,민족통일과 민족화합의 바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전남 목포를 지난 1일 출발한 시각장애인 송경태(宋京泰·41·1급 상이군경)씨가 15일 임진각에 도착해 총 518㎞의 도보행진을 마쳤다. 전북 시각장애인도서관 관장인 송씨는 맹인견 ‘찬미’와 함께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30㎞ 이상을 힘겹게 걸었다.각 지역을 지날 때마다 상이군경 동료 10여명이 동참해 송씨를 격려했다. 이날 임진각에 이르는 마지막 1km지점부턴 상이군경회 회원 300여명이 송씨와 함께 걸으며 힘을 북돋아줬다.상이군경회는 오후 3시쯤 임진각에서 송씨의 국토종단을 축하하는 환영행사를 열고,평화의 종을 울렸다. 송씨는 대학 3학년때인 지난 1982년 군에 입대,작전중 수류탄 폭발로 두 눈을 잃었다.현재 사비를 털어 전북 시각장애인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로키산맥의 줄기인 캐나다 스퀴미시의 치프봉을 정복했고,99년에는 2002년 한일월드컵 홍보를 위해 미국 대륙을 도보로 횡단했다. 또 재작년에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며한라산과 백두산을 등정했으며,지난 4월에는 ‘올해의 장애극복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앞으로 판문점을 통과해 신의주까지 종단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송씨는 “민족화합과 통일에 보탬이 되고 고령 국가유공자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며 “고령 국가유공자를 위한 기금마련을 위해 이달말까지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다음달초 상이군경회를 통해 성금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석영기자 palbati@
  • 문화광장/ 미술

    ◇남북의 길-국도 1호선= 20일까지 공평아트센터(02)733-5912.그룹 새벽의 창립 12년 기념전.목포와 신의주를 연결하는 국도 1호선을 통해 분단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표현한 설치,회화,영상물. ◇익숙한 것들에 대한 추상= 28일까지 목금토갤러리(02)764-0700.양동이 함지박 물주전자 등 생활 용기들을 오브제로 이용한 금속공예작품. ◇윤승희 개인전= 26일까지 갤러리피쉬(02)730-3280.인간의 영혼을 커다란 꽃으로 상징해 탄생과 죽음의 과정을 표현. ◇한정원전= 21일까지 백악예원(02)734-4205.지난 99년 돌아본 울릉도의 쪽빛 바다와 절벽들을 실경 산수화로 재현.
  • 시각장애인이 국도1호선 걷기 대장정

    암벽 등반과 마라톤 도전 등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시각장애인 송경태(宋京泰·41)씨가 이번에는 8·15 광복절을 앞두고 국도 1호선(518㎞) 도보 대장정에 나선다. 전북 시각장애인 도서관 관장인 송씨는 다음달 1일 국도 1호선의 시발점인목포시청을 출발,광복절인 15일 판문점에 도착할 계획이다. 그의 하루평균 도보 거리는 30∼40㎞로 항상 그의 눈 역할을 해주는 맹인견 ‘찬미’가 길 안내를 맡는다. 또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차량 1대와 수의사 등 관계자 8명이 동행한다. 송씨의 이번 도전의 주제는 ‘평화와 사랑으로 가는 길’.그의 도보 대장정은 인터넷(cafe.daum.net/songkt)을 통해 네티즌들에게 생생하게 공개된다.이번 행사가 끝나면 곧바로 북한지역내 국도 1호선(판문점∼신의주)도 종단하기로 하고 현재 이 문제를 통일부와 협의중이다. 송씨는 “이번 행사가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장애인들에게도 자립의지를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송씨는 지난 82년 군 복무시절 수류탄 폭발사고로 시력을 잃은 1급 시각장애인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美, 北교신 감청여부 주목

    미국이 서해교전의 정밀분석 작업에 들어간 가운데 지난 1일 북한이 서해교전 당일 미군의 정찰 내용을 보도,미군의 북한군 교신감청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군사소식통을 인용,교전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전 4시20분께 미군 U-2 전략정찰기가 경기도 오산 미 공군기지를 이륙,서해 덕적도와 경기도 포천,강원도 속초 일대 상공을 비행했다고 보도했다. U-2기는 고도 2만 7000m 상공에서 7시간 체공할 수 있고,통신 감청거리는 최대 28㎞로 마음만 먹으면 신의주 지역까지 가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한 미군측은 대북 신호·영상·전자정보 대부분을 U-2기를 통해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사설] 미심쩍은 ‘20만달러’ 공개

    ‘최규선 게이트’를 수사중인 검찰이 사실 확인도 하지않은 채 문제의 ‘20만달러’ 진술을 공개해 논란이 되고있다.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된 타이거풀스 송재빈(宋在斌) 대표 주장을 그대로 밝혀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 마치사실인 듯한 착각을 불러 왔기 때문이다.검찰이 피의 사실을 밝히기에 앞서 관련자의 모든 진술이 일치하더라도 전후 관계를 뒷받침하는 물증까지 확보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더구나 이번 사안의 경우 돈을 받았다는 한나라당 윤여준(尹汝雋) 의원이나 돈을 주었다는 최규선(崔圭善)씨마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있지 않은가. 검찰은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이 송씨의 진술 내용을 문의해 와 이를 확인해 주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공개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그러나 설득력이 없다.검찰은 지금까지 피의사실 공표 불가라거나 증거 불충분 등을 내세워 객관적으로 확인되기 전에는 일체 함구해온 게 관행이었다. 또 최씨의 잦은 ‘돌출’ 발언에 과민하게 대응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지만 역시 납득할 만한 이유가못된다.검찰이 녹음 테이프 등으로 궁지에 몰린 청와대나 명예훼손혐의로 피소된 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에게 탈출구를 터주려 했다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하다. 정치권은 아니나 다를까 검찰이 차후에 진상을 밝혀 줄사안을 놓고 쟁점화하여 분란을 가중시키고 있다.자신의주장을 증명할 녹음 테이프를 내놓지 못해 피소까지 당한설 의원은 즉각 반격에 나섰고,한나라당은 검찰이 정치 검찰로 회귀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신중하지 못한 처사가 엉뚱하게 그간의 의혹을 가라앉히기는커녕 부풀리는 결과를 빚었다.비단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대통령의 아들이 연루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검찰은 성역없이 수사도 해야겠지만 절차에서도 형평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정부, 北에 식량30만t 지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8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임동원(林東源) 특사 방북과 관련,“모든합의가 차질없이 실천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내각에지시했다.이어 “경의선은 연내에 연결될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되면 열차가 평양과 신의주를 지나 중국 대륙까지 갈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28일 4차 이산가족 방북단 100명과 취재진·진행요원 등 모두 150명이 먼저 금강산으로 가 북한 거주 가족과친척을 만나며, 이어 내달 1일 북측 상봉단 100명의 남한거주 가족 및 친척 500여명이 금강산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정부와 한적은 9일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이런 계획을 마련한 뒤 12일쯤 판문점 남북연락관 접촉을 갖고 세부 일정을 확정할 계획이다. 정부 당국자는 대북 식량·비료지원과 관련,“지난해 국회에서 마련된 공감대를 토대로 예년의 사례를 준용하게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북 차관형태의 식량 30만t이 5월 7∼10일 서울에서 열릴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 회의를 거쳐지원되고 비료 20만t은 이르면 이달말 지원될 예정이다. 한·미·일 3국은 이날 도쿄에서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 회의를 열고 북·미 및 북·일 대화 재개 방안을 놓고 본격적인 의견조율에 착수했다.특히 이태식(李泰植) 외교부 차관보와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김성환(金星煥) 북미국장과 프리처드 미 대북교섭 담당대사는 오후 양자 회담을 갖고 프리처드 대사의 방북 시기등을 집중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풍연 김수정 전영우기자 poong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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