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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진난민 신음…물·식량 부족에 통신두절

    강진과 쓰나미로 일본 열도가 패닉상태에 빠진 가운데 ‘지진 난민’들이 식량과 물부족, 통신두절 속에 신음하고 있다. 센다이시 등 일본의 강진 피해지역들은 지진 발생 사흘째인 13일에도 여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쓰나미가 논밭과 집 등 마을을 통째로 삼켰고 지진으로 불이 난 건물에는 여전히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또 진흙을 뒤집어쓴 생존자들은 쓰러진 고목 사이를 넋나간 듯 헤매며 가족들을 찾았고 전력과 전화는 여전히 끊긴 상태였다. 센다이에 사는 사타코 유사와(69·여)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마을을 잠시 비운 사이 쓰나미가 덮쳐 새로 지은 집과 차, 보트 등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면서 “그나마 살아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이것이 인생인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통신두절로 전화통화가 되지 않자 가족과 연락이 끊긴 피해지역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웠다. CNN의 프리랜서 도쿄 특파원인 루시 크래프트는 센다이 근처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이틀이 지나도록 연락이 닿지 않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CNN이 전했다. 또 식수 등 생필품이 바닥나면서 이재민들은 편의점 앞에 길게 늘어서 마실것을 구하려고 애쓰고 있다. 상점에서 음식과 물, 휘발유를 사려는 사람들은 차분했지만 선반 위 물건들이 빠르게 동나고 휘발유도 곧 떨어질 기미가 보이자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13일 “식량과 물, 모포 등을 (끊긴 육로 대신) 비행기와 배를 이용해 피해지역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co.kr
  • [사설] 늙어가는 대한민국 시대변화 탓만 할 것인가

    대한민국이 늙어가고 있다는 건 이미 뉴스가 아니다. 전국 수십개 군이 65세 노인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아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무출산 동네가 허다하다. 2018년 고령사회, 2026년 초고령사회 진입 등의 도식적 전망이 무색할 지경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 사회의 화두는 단연 저출산·고령화다. 통계청이 그제 내놓은 ‘2010년 한국 사회지표’는 그 냉엄한 현실을 다시금 확인해 준다. 발표에 따르면 2050년에는 10명 가운데 4명이 고령자로, 생산가능인구(15∼64세) 1.4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건강보험 기준 전체 의료비 중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 공적 연금의 가입자 대비 수혜자 비율 또한 꾸준히 늘어 20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급증했다.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연금 수급자 비율은 계속 높아질 것이다. 하나같이 국가에 엄청난 재정 부담을 안기는 일들이다. 하지만 고령화의 그늘을 외면해선 안 된다. 요즘 폐품을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극빈 노인층이 늘고 있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사회구조가 지속될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세대 간의 갈등이 불가피하다. 많은 이들이 고령화 해법의 하나로 노인 일자리 창출을 꼽는다. 청년실업률이 8%를 웃도는 상황에서 노인 취업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가 올해 민간협력을 통해 자립형 노인 일자리 4000개를 만들기로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취업역량을 갖춘 베이비붐 세대가 고등실업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복지사각지대에서 신음하는 노인의 삶은 무상복지 논쟁을 한층 공허하게 만든다. 고령화 문제는 단순한 노인복지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제일의적인 국가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 한국경제 ‘3重 가시밭길’

    한국경제 ‘3重 가시밭길’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증대로 한국 경제의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남유럽발(發) 재정위기가 재부각되는 것도 부담스럽다. ‘물가 대란’에 신음하는 우리 경제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중국이 지난 13년간 유지해온 ‘바오바’(8% 고성장 유지) 정책을 접기로 한 것도 향후 수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기획재정부는 8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에서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중동 정세의 불안과 중국 등 신흥국의 긴축, 남유럽발 재정위기의 장기화 가능성 등 불확실성이 늘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신흥시장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3일 올해 인플레 전망을 1.8%에서 2.3%로 상향 조정했다. 한국은행도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과 신흥시장국에 대한 물가 불안, 일부 유럽국가의 재정 문제로 인해 국제 금융시장 불안이 재연될 수 있다면서 여전히 적지 않은 위험 요인이 상존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고유가의 장기화는 한국경제에 치명적이다. 기업실적이 악화될 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을 이끌어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두바이유는 지난해 10월 월 평균 배럴당 80달러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현재 111달러를 찍었다. 5개월 동안 무려 39%가량 올랐다. 재정부 관계자는 “중동 사태, 이상 기후 등 공급 측면이 견인한 물가 상승이 사회 전반의 인플레이션 심리 확산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면서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원·달러 환율도 물가에 우호적이지 않다. 환율 하락이 수입 물가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되지만 최근엔 환율상승 요인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월 들어 산유국들의 반정부 시위 확산에 따른 유가 불안과 코스피지수 하락 등으로 7.2원 올랐다. 원·엔 환율도 안전자산 선호심리에 따른 엔화 강세로 14.3원 상승했다. 3월과 4월에도 ‘환율 악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면서 달러 강세를 이끌고 있다.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은 3단계 떨어졌고, 스페인의 신용등급은 안정적에서 부정적 전망으로 하향 조정됐다. 지난 7일 유로화 대비 달러화 가치는 0.7159달러로 전일(0.7149달러) 대비 소폭 상승했다. 여기에 국내 배당 시즌을 맞아 외국인 배당금이 환율 상승을 이끌 수도 있다. 올해 외국인 주식배당 규모는 36억 달러(약 4조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국경제의 가장 큰 고민은 고유가와 고물가”라면서 “하지만 최근 나타나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이 같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두·황비웅기자 golders@seoul.co.kr
  • [기고] 박지원의 ‘열녀전’ /정일남 시인

    [기고] 박지원의 ‘열녀전’ /정일남 시인

    조선시대 신분제의 질곡에서 신음한 계급은 노비들뿐만이 아니다. 서자(庶子)들도 같은 맥락에서 설움을 받고 살았다. 천재적인 문재(文才)를 소유하고도 어머니의 신분이 후처라는 이유로 자식은 출세 길이 막혀 벼슬에 오르지 못했다. 조선의 신분제는 근대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얼마나 많은 인재가 여기에 묶여 이름도 없이 사라졌던가. 이런 신분제도에 의해 조선사회의 인재들은 사회진출이 균등하지 못했다. ‘다시 시집간 여자의 자손에게는 벼슬을 주지 마라.’는 법이 있다. 조선시대 양반들을 위해서 만든 악법이었다. 그래서 서자는 아무리 두뇌가 영리해도 벼슬길에 오를 수가 없었다. 이런 제도에서 살아온 여인들의 한을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으랴. 한국 여인들의 한이 독특한 양상을 띠게 된 원인이 여기에 기인했다. 자식의 출세를 위해서 과부로 살아야 했던 여인들의 괴로움은 천형과도 같았다. 연암 박지원이 쓴 ‘열녀전’의 줄거리는 이렇다. 열녀가 된 어머니가 어느 날 동전 한닢을 꺼내 아들에게 보인다. 차마 꺼내기 어려운 말을 아들 앞에서 호소한다. “이 돈에 윤곽이 있느냐?” “없습니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네 어미의 죽음을 참게 한 부적이다. 내가 이 동전을 십년이나 문질러서 글자가 다 닳아진 것이란다. 어찌 과부라 해서 정욕이 없겠느냐.” 결국, 어머니는 십년 동안을 동전을 문지르며 정욕을 견디어 냈다는 이야기다. 너무도 감동적이고 슬픈 이야기다. 아들의 출세를 위해 재혼하지 않고 동전만 굴린 십년의 세월을 상상해 보자. 어머니는 그런 희생으로 오직 아들만을 생각했다. 비록 과부로 살더라도 아들이 출세해서 벼슬에 오르기를 갈망했다. “가물가물한 등잔불이 내 그림자를 조롱하는 것처럼 고독한 밤에는 새벽도 더디 오더구나. 창가에 비치는 달이 흰빛을 흘리는 밤, 나뭇잎 떨어지는 때나 외기러기 하늘을 울며 갈 때나, 닭 우는 소리도 없고 어린 종년이 코를 골 때, 내가 누구에게 고충을 호소하겠느냐. 그때마다 이 동전을 꺼내 매만지고 방바닥에 굴렸다.” 이 기막힌 말을 듣고 아들과 어머니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없이 울었다. 오늘의 여인들이여. 우리 어머니들이 겪었던 고충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륜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사회가 오늘의 사회가 되었다. 옛날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불륜의 사회에서, 향락의 사회에서, 사치와 방종의 사회에서 우리는 로마의 멸망을 읽었다. 성의 개방사회를 그릇된 사회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방사회라고 해서 분별력을 잃어서야 되겠는가. 연암 박지원은 말한다. ‘동전을 십년 동안 굴린 과부의 고백을 통하여 죽는 것보다 과부가 되어 수절하는 것이 더 어렵다.’라고 주장한다. 이치에 맞는 얘기다. 박지원은 이 작품을 통해서 조선사회의 모순된 제도에 의해 고통받았던 여인들의 한을 세상에 고발했다. 하지만, 오늘의 사회와 같은 불륜의 사회를 연암이 바란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열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일본통신] 박찬호를 혼란스럽게 한 日보크 규정

    [일본통신] 박찬호를 혼란스럽게 한 日보크 규정

    박찬호(오릭스)가 자체 홍백전 연습경기에서 또다시 보크를 범하며 부진했다. 25일 일본 고지현 동부구장에서 열린 청백전에서 박찬호는 백팀 선발투수로 등판해 3.2이닝 동안 3안타 4실점(3자책)을 기록했다. 포심패스트볼은 최고 145km(투구수 62개, 스트라이크 26개, 볼 36개). 탈삼진은 1개를 잡아냈다. 비록 연습경기였다고는 하나 이날 박찬호가 보여준 투구내용은 실망스러웠다. 특히 보크를 2개씩이나 내준 것은 정규시즌을 앞두고 있는 박찬호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미 지난 15일 미야코지마에서 열린 자체 홍백전에서도 보크 판정을 받은 바 있는 박찬호다. 더 큰 문제는 아직 박찬호가 일본야구에서 기준으로 하는 보크에 대한 개념을 헷갈려 한다는 사실이다. 박찬호를 혼란스럽게 한 것은 세트포지션시 정지 동작에서의 문제다. 투수가 세트포지션을 취할때 모았던 두 손은 1초정도 머물렀다가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야 한다. 세트포지션에서 완전히 정지하지 않고 던지면 보크다. 일본은 이 규정에 있어서 타 리그에 비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뛰다 지난 2008년 일본으로 건너간 다니엘 리오스(전 야쿠르트)도 보크논란에 휩싸이며 힘들어했던 전례가 있다. 한국시절, SK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지적받았던게 현실이 됐던 것. 세트포지션에서 정지유무가 보크냐 아니냐의 논란이 되는 것은 타자의 타이밍과 연관이 있어서다. 야구는 리듬의 운동, 특히 타자는 투수에게 자신의 리듬감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다. 투수가 세트포지션에서 정지동작 없이 곧바로 던지게 되면 타자입장에서는 타이밍을 잃어버릴수 밖에 없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지금 박찬호에게 닥친 세트포지션에서의 문제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듯 싶다. 김병현(라쿠텐)이 4년만에 첫 실전 마운드에 오른다. 그동안 투구밸런스 찾기에 열정을 쏟았던 김병현은 26일 오키나와 차탄구장에서 열리는 주니치와의 연습경기에 등판해 실전 감각을 키울 예정이다. 최근 김병현은 이틀(22일,23일)동안 200여개의 불펜피칭을 소화할 정도로 강행군을 하고 있다. 현재 김병현에게 부여된 숙제는 하체를 이용한 피칭. 명 투수코치 사토 요시노리의 지도로 날이 갈수록 볼 끝에 힘이 붙고 있는 김병현은 아직 전성기 시절의 투구폼을 되찾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고는 있지만 ‘완벽주의’ 성격의 김병현 입장에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초 스프링캠프가 시작할때만 해도 올해 김병현은 팀의 마무리 보직이 확정된게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나 긴 공백에 따른 실전감각 회복여부가 불투명 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주요언론에서도 김병현이 시즌 시작과 함께 마무리 보직을 맡을거라고 예상했던 곳은 거의 없었다. 기대감과 현실에서 오는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선천적인 천재성을 지닌 김병현은 역시 달랐다. 이젠 잘하면 후반기 때나 돼야 실전에서 써먹을수 있을거란 전망이 앞당겨져 있다. 이것은 김병현 뿐만 아니라 라쿠텐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지난해 라쿠텐은 매우 좋은 불펜투수들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마무리 부재로 신음했던 팀이다. ‘쓰리마운텐즈’ 즉 코야마 신이치로-아오야마 코지-카타야마 히로시에 더해 김병현까지 가세한다면 최고수준이다. 물론 코야마는 김병현과 함께 마무리 보직을 놓고 경쟁을 해야하는 선수다. 지금으로써는 코야마가 앞서 있지만 앞으로 김병현의 구위가 일정 정도만 회복한다면 선의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첫 관문이 26일 주니치와의 연습경기다. 그동안 김병현이 흘린 땀의 성과가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미국 문화 바꿔버린 ‘현대차 그룹의 힘’

    “9년전 디트로이트에서 800마일 가량 떨어진 이 도시에서 자동차 산업에 관해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 곳 사람들은 자동차 산업과 현대자동차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18일(현지시간) 채 10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현대자동차 그룹이 바꿔놓은 미국의 오래된 도시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와 알라배마주 몽고메리를 집중 조망했다. 초창기 미합중국의 수도였던 몽고메리시는 최근 몇 년새 쉴 틈이 없다. 수천개의 일자리가 생겨났고, 근로자들은 더 많은 차를 만들어내기 위해 여념이 없다. NYT는 “올해로 미국 운전자들에게 차를 팔기 시작한지 25주년이 된 현대차는 이제 포드를 제치고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자동차 회사가 됐다.”면서 “그 사이 몽고메리는 다른 알라배마 지역보다 두배의 소득을 거둬들이는 도시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몽고메리를 거점으로 한 현대차와 조지아 공장을 갖고 있는 기아차는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인 자동차 회사다. 현대차는 지난해 몽고메리 공장에서만 30만대의 차를 생산해 미 전역에 팔아치웠다. 존 크래프칙 현대차 미주지사장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5년간 어느 미국 제조업체도 우리만한 성장세를 보이지 못했다.”면서 “심지어 우리 스스로도 현대차가 이렇게 빨리 커질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NYT는 특히 미시간호를 중심으로 한 미국 전통의 자동차 산업이 침체되면서 높은 실직률에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이 미국 고용시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현대차는 몽고메리에서 265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이들이 받은 높은 임금은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시장창출 효과를 낳고 있다. 조지아 기아차 공장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산타페 생산을 시작하면서 600명을 추가로 고용하는 등 최근 1000여명을 신규채용했다. 계열사와 협력업체 역시 지역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현대차에 공급하는 계열사 파워테크를 비롯해 알라배마 지역에만 최소한 138개의 현대차그룹 협력사가 위치해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혼다와 메르세데스, 토요타 등에도 부품을 공급하면서 덩치를 키우고 있다. 한국인들의 파견과 이민도 크게 늘었고, 도시문화 자체도 변하기 시작했다. 9년전 현대차 공장이 지어지기전 100여명을 밑돌던 몽고메리지역 한국인은 현재 3000명에 이른다. 10여개의 한국식당이 성업중이고, ‘서울마켓’ 등 한국식품점도 생겼다. 애틀랜타에서 몽고메리로 이사와 한인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지니박씨는 “주말이면 머리를 자르려는 남자들이 줄을 선다.”면서 “가끔 한국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라고 밝혔다. 이같은 현상은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 자리잡은 기아차 공장 주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내의 오래된 19세기 건물들 사이에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초밥식당이 문을 열었고, 피자헛은 갈비집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NYT는 “웨스트포인트의 주요산업이었던 섬유공장들은 기아차에 자리를 내주고 중국과 인도로 옮겨갔다.”면서 “이곳에서 기아차는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고 설명했다. 애쉴리 프리예 부사장은 “사람들은 현대차그룹의 등장을 마치 록스타가 시골 도시에 온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현대차 로고가 찍힌 자켓이나 티셔츠를 입고 시내로 나가면 사람들이 쫓아와서 ‘어떻게 그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느냐’고 묻느라 난리를 친다.”고 전했다. NYT는 현대차그룹의 성장세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NYT는 “현대차는 지난 1월에만 22%가량 판매가 늘었고, 기아는 무려 25.6% 성장했다.”면서 “이는 대형 자동차 브랜드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로 2위 크라이슬러보다 6만 5000대를 더 팔았다.”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SNS 차단한 멍청한 정부 오히려 감사”

    “감옥에서 풀려나던 날 안대를 풀고 저를 때린 군인 모두와 입을 맞췄어요.” 이집트 혁명의 도화선이 된 와엘 고님(30) 구글 중동·아프리카 마케팅 임원이 13일(현지시간) CBS ‘60분’과의 인터뷰에서 12일간의 수감 당시 자신을 구타한 군인들을 용서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혁명의 두려움 스스로 인정” 고님은 지난해 6월 경찰의 부패를 밝힌 뒤 경찰의 구타로 숨진 26세 청년 칼리드 사이드의 죽음을 페이스북에 알리며 이집트 시민들을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때린 이들은 정부 관리가 아니라 군인들이었다면서 “구타는 체계적이지도 않았고 개개인의 성향에 따른 것으로 교육을 받지 못한 단순한 사람들이 내가 나라를 위험하게 만든 반역자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나를 때린 것”이라고 군인들의 입장을 이해했다. 그래서 지난달 28일 이후 12일간의 수감 생활에서 풀려나던 날 그는 군인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정식으로 인사를 건네며 그들에게 입을 맞췄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없었다면 이번 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소셜네트워크가 없었다면 이번 시위는 불꽃을 일으키지 못했을 겁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유투브가 없었다면(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은) 불가능했을 일이죠.” 따라서 소셜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을 봉쇄한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더 사람들을 페이스북 뉴스에 관심을 갖게 하고 거리로 뛰쳐나오게 했다면서 그는 “멍청한 정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가장 큰 전략적 실수는 페이스북을 막은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400만명에게 혁명을 지옥처럼 두려워한다고 자인한 꼴이 된 거죠.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한다면 이 모든 일을 해준 멍청한 정부에 감사해야겠네요.” 그를 분노케 한 동력은 그에게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게 한 청년 ‘칼리드 사이드’였다. 고님은 칼리드 사이드가 이집트어로 ‘영원한 행복’이라는 뜻이라고 상기시키면서 그의 죽음은 경찰이 세상을 조종할 수 있다는 듯 행동하며 사람들의 권리를 빼앗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가 죽자 깊이 상처를 받았고 이 정부와 싸우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정치 관심없어… 구글 복귀 원해” 하지만 영웅이 된 고님은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구글이 나를 자르지 않으면 다시 구글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무바라크가 재판대에 서야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복수는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는 무바라크 일가가 이집트에서 훔친 수백만 달러의 돈은 지금도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는 이집트인들의 돈이므로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님은 지금도 독재자로 신음하는 다른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거리로 처음 나갔을 때 ‘와, 일이 벌어지겠구나’ 생각했어요. 사람들의 혁명을 막는 유일한 것은 두려움이라는 심리적 장벽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심리적 장벽을 깰 수 있다면 당신들도 반드시 혁명을 이룰 것입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빛 바랜 ‘밴쿠버 영광’ 빙속·쇼트트랙 金추가 못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던 한국 빙상이 미끄러졌다. 1일 계속된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없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녀 500m에서 이강석(의정부시청)이 은메달, 이상화(한국체대)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모태범(한국체대)은 5위에 그쳤다. 쇼트트랙 500m도 노메달이었다. ●모태범·이상화 빙속 동반 불발 밴쿠버올림픽이 끝나고 일본·중국 선수들이 이를 많이 갈았나 보다. ‘스피드 코리아’가 무색했다. 남자는 일본에, 여자는 중국에 졌다. 부상으로 페이스가 주춤했던 이상화는 1차 시기부터 3위(38초 31)로 처지면서 부담을 느꼈고, 2차 시기에서도 38초 26(3위)으로 기록을 많이 줄이지 못했다. 결국 1·2차 레이스 합계 76초 58, 3위에 만족해야 했다. 금·은메달은 중국의 위징(76초 09)과 왕베이싱(76초 53)에게 돌아갔다. 2007년 창춘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던 이상화는 ‘만리장성’에 고배를 마셨다. 남자부도 아쉬웠다. 쾌조의 컨디션을 보였던 이강석이 1·2차 시기 합계 70초 35로 2위에 그쳤다. 가토 조지(70초00)가 금메달. 이강석은 가토와 함께 출발한 2차 레이스에서 승부를 뒤집을 찬스를 잡았지만, 부정 출발로 한 차례 힘을 뺐던 게 아쉬웠다. 올 시즌 부상으로 신음하다 이달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첫 실전 경험을 한 모태범도 부진했다. 5위(70초 97). 긴장한 데다 스트로크 잔실수까지 겹쳐 ‘올림픽 챔피언’의 자존심을 구겼다. ●쇼트트랙 500m는 노메달 역시 단거리는 어려웠다. 아스타나 국립사이클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녀 500m에서 이호석과 조해리(이상 고양시청)가 결승까지 올랐지만 메달은 없었다. 이호석은 결승점을 한 바퀴 반 남기고 넘어졌고, 조해리는 초반부터 중국·일본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해 4위에 머물렀다. ‘쇼트트랙 최강국’ 한국은 유독 500m에 약했다. 1986년 삿포로 대회부터 이번 대회까지 500m 금메달은 1999년 강원 대회 때 이준환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번엔 더욱 심각했다. ‘골드’는커녕 메달도 없었다. 남자부 김병준(경희대)은 예선에서, 여자부 양신영(한국체대)은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결승에서 이렇다 할 작전도 없이 고독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과 작전으로 스케이트를 타는 한국에 힘과 체격이 중요한 500m는 이번에도 숙제를 남겼다. 그러나 한국은 이어 열린 남자 5000m 계주와 여자 3000m 계주에서 모두 1위로 결승에 올라 2일 결승에서 메달 전망을 밝혔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金金金金 골든데이… 출발이 좋다

    金金金金 골든데이… 출발이 좋다

    출발이 좋다.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태극전사들이 대회 첫날인 31일 금메달 4개(은3·동1)를 캐냈다. 알파인스키 활강 김선주(26·경기도청)의 첫 ‘골드’를 시작으로, 쇼트트랙 노진규(19·경기고)·조해리(25·고양시청)와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23·한국체대)이 정상에 올랐다. ●알파인 김선주, 한국 첫 골드 금메달 테이프는 김선주가 끊었다. 알파인스키 활강에서 1분 37초 61로 출전선수 9명 중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동계아시안게임에 처음 도입된 활강 종목의 첫 여자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사실 ‘깜짝 1등’이다. 활강은 500~700m높이에서 최고시속 140㎞로 달리는 경기. 한국에는 제대로 된 훈련 코스조차 없다. 게다가 2007년 창춘대회 때 동메달을 딴 김선주는 발목·무릎 등 잇단 부상으로 신음해 왔다. 그러나 승부 근성과 집중력을 앞세워 태극마크를 단 지 8년 만에 겁없이 ‘아시아 설원’을 평정했다. 남자부 정동현(23·한체대)은 1분 29초 78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해리·박승희 밴쿠버 恨풀이 쇼트트랙은 이변이 없었다. 남녀 1500m 금·은메달을 휩쓸었다. 여자부 조해리와 박승희(19·수원경성고)가 차례로 결승선을 통과해 대회 4연패를 달성하더니, 이어진 남자부에서도 노진규와 엄천호(19·한국체대)가 기세를 이어 8년 만에 금메달을 되찾았다. 매번 부상과 불운에 울었던 조해리는 아시안게임 개인전 첫 금메달로 ‘맏언니’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남자부 ‘막내’ 노진규는 큰 무대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묵묵한 질주로 에이스로 거듭났다. ●스피드 리, 아시아新…다관왕 장밋빛 이승훈도 첫 단추를 잘 뀄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6분 25초 56으로 드미트리 바벤코(카자흐스탄·6분 28초 40)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이 동계아시안게임 장거리 금메달을 딴 것은 이승훈이 처음. 아시아기록은 덤이었다. 시원시원한 스트로크와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는 올림픽 때 그대로였다. 1만m와 팀추월, 매스스타트 등 4종목에 출전하는 이승훈은 여유있게 첫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다관왕 전망도 밝혔다. 쇼트트랙에서 전향한 여자부 김보름(19·정화여고)은 3000m 은메달(4분 10초 54)을 획득, ‘여자 이승훈’의 탄생을 알렸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민중의 지팡이’ 경찰 맞아?] 경찰대 출신 엘리트가 모친살해 용의자

    경찰대학 출신의 엘리트 경찰 간부가 자신의 어머니를 폭행해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대전 둔산경찰서는 28일 대전지방경찰청 소속 이모(40·경정)씨를 존속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이씨는 지난 21일 오후 11시 25분쯤 대전 서구 탄방동 H아파트 4층의 어머니 윤모(68)씨 집에 얼굴을 숨기고 몰래 침입했다가 어머니를 손과 발로 폭행함으로써 5시간여 만에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빨간색 오토바이 헬멧을 쓴 뒤 청테이프 등을 들고 어머니 집에 몰래 들어가 서랍을 뒤졌다.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나자 발로 가슴 등을 차고 청테이프로 몸을 묶은 뒤, 외할머니 집에 놀러와 함께 잠자고 있던 여동생의 4살, 5살 된 자녀 2명에게 이불을 뒤집어씌웠다. 이어 단순 강도로 위장하기 위해 장롱 등을 뒤지고 어머니 지갑에서 현금을 꺼낸 뒤 경찰청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 범인이 도주한 지 20분 정도 지난 22일 오전 0시 5분쯤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에서 신음소리만 나기에 집으로 달려갔다.”고 진술했다. 그는 범인이 아들인 줄 모르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방안을 깨끗하게 치운 뒤 아내를 불러 어머니와 함께 잠을 잤다는 것이다. 경찰은 여동생의 어린 자녀들이 “범인이 빨간 헬멧을 썼다.”고 진술한 점을 집중 조사해 이씨가 범행 전날 중구 문창동 오토바이거리에서 새 헬멧을 구입한 사실 등을 확인하고 이씨를 용의자로 판단했다. 또 이씨가 ▲어머니를 곧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점 ▲경찰관답지 않게 범행 현장을 훼손한 점 ▲범행 발생 시각의 알리바이가 불분명한 점 등을 수상하게 여겼다. ▲강도를 당한 어머니가 묶인 상태에서 전화를 걸었다는 점도 의심을 샀다. 이씨는 지난 24일 어머니 장례를 치른 뒤 자신의 컴퓨터 하드를 통째로 바꿨고 사무실의 개인 소지품을 모두 정리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동료 경찰들은 이씨가 주식투자를 하면서 늘 목돈을 구하러 다녔다고 말했다. 반면 어머니 윤씨는 부동산과 현금 등 모두 7억원 정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내성적인 성격의 이씨가 “어머니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 계속 범행을 부인하자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을 투입해 자백을 받아낸 뒤 29일쯤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괴성녀, 목소리만 요란했네

    괴성녀, 목소리만 요란했네

    여자 테니스계의 해묵은 논란이 있다. 속살과 헷갈리는 커피색 속바지를 굳이(!) 입는 비너스 윌리엄스(세계 5위·미국)뿐만이 아니다. 코트를 쩌렁쩌렁 울리는 야릇한 괴성도 그렇다. 대회마다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1990년대 초반 모니카 셀레스(은퇴·유고슬라비아)가 시초였고, 마리야 샤라포바(16위·러시아)가 불을 지폈다. 괴성은 단순히 히팅 타이밍을 잡는 수준을 넘어섰다. ‘괴성녀’들은 플레이 상황이나 공의 세기와 무관하게 샷마다 ‘의무적으로’ 소리를 내지른다. 특히 세계적인 아카데미인 닉 볼리티에리 출신인 샤라포바, 세리나 윌리엄스(4위·미국), 미셸 라셰르 데 브리토(208위·포르투갈) 등은 악명 높다. 야니나 위크마이어(24위·벨기에)는 이름보다 ‘후피’(whoopee·샷을 칠 때 내는 특유의 소리)로 더 유명하다. 괴성은 소형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나는 소음인 100데시벨(dB)을 넘나든다. 선수들은 원활하게 숨을 쉬는 방법이라고 변명하지만, 이쯤 되면 소음공해다. 그랜드슬램 챔피언만 18차례 차지한 ‘철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은퇴·체코)는 “괴성은 반칙이다. 경고나 벌점 등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경하게 주장한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공이 라켓에 맞는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쩌렁쩌렁한 괴성 때문에 상대 선수는 히팅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때문에 공의 파워나 스핀, 바운드 등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논문 결과도 있다. 논란이 가열되자 여자프로테니스협회(WTA) 역시 규제를 검토 중이다. 하지만 어쩐 일일까. 시대를 풍미했던(?) 시끌벅적한 괴성녀들이 호주오픈(17~30일)에선 일찍부터 짐을 쌌다. 신음의 대표 주자 샤라포바는 16강에서 탈락했다. 위크마이어도 2회전에서 아나스타시야 세바스토바(46위·라트비아)에게 막혀 고배를 마셨다. ‘디펜딩챔피언’ 세리나는 부상으로 불참했다. 결승에는 카롤리네 보즈니아츠키(1위·덴마크), 베라 즈보나레바(2위·러시아), 킴 클리스터스(3위·벨기에) 등 잠잠한(?) 여제들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목소리로 주름 잡던 시대는 갔다. 모처럼 조용한 챔프전이 될 예감이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아시안컵서 희비 엇갈린 K-리거들 ‘51년만의 정상’ 인도전 출격 대기

    아시안컵서 희비 엇갈린 K-리거들 ‘51년만의 정상’ 인도전 출격 대기

    언제부턴가 한국 축구대표팀의 주축은 해외파가 됐다. ‘유럽파’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청용(볼턴)·차두리(셀틱) 등에 ‘중동파’ 이영표(알 힐랄)·이정수(알 사드) 등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쟁쟁한 해외파 사이에 K-리거도 명함을 내밀었다. 특히 구자철(제주)·이용래(수원)·지동원(전남)은 아시안컵에서 ‘베스트11’로 만점활약을 펼치고 있다. 구자철은 이견의 여지없는 ‘조광래호의 황태자’다. 4-2-3-1 포메이션의 섀도 스트라이커로 기용된 구자철은 벌써 3골을 뽑았다. 대표팀의 유일한 득점원. 박주영(AS모나코)의 공백으로 우려됐던 공격진의 빈틈을 완벽하게 메웠다. 지난해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했던 아픔은 잊은 지 오래. 광저우 아시안게임 ‘캡틴’으로 잠재력을 펼치더니, 아시안컵에서 완전 물 만났다. 지동원(전남)도 빠지면 섭섭하다. 20세의 나이에 대표팀 원톱을 꿰찼다. 187㎝의 큰 키에 유연한 볼터치와 드리블, 날카롭고 침착한 슈팅은 일품이다. 아직 득점은 없지만, 수비를 몰고 다니며 공간을 만드는 능력은 검증 받았다. 박지성과 이청용, 구자철 등 동료와의 유기적인 움직임도 합격점이다. 수비에도 적극적이다. 이용래(수원) 역시 초고속 신분상승 중이다. 고려대에 진학할 때만 해도 ‘초특급 우량주’였던 이용래는 부상에 신음하다 2008년 번외지명으로 초라하게 경남FC 유니폼을 입었다. 2009년 연봉은 1200만원. 그러나 2년 동안 조광래 감독 밑에서 야무지게 배웠고, 두 시즌 동안 10골7도움(62경기)을 기록했다. 제주 전지훈련 명단 발표 때만 해도 “이용래가 어떤 선수인지 설명해 달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최종엔트리를 넘어 주전 미드필더가 됐다. 아시안컵 1·2차전에서 풀타임을 뛰었다. 공격성향이 강한 기성용(셀틱)이 마음껏 ‘킬러본능’을 뽐낼 수 있는 것도 안정적으로 뒤를 책임지는 이용래가 있어서다. 반면, 어둠의 시기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유병수(인천)가 대표적이다. 2010시즌 K-리그 득점왕(22골) 유병수는 호주와의 2차전에서 후반 교체투입됐다가 다시 교체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겨우 23분을 뛰었다. 조 감독은 미드필더와 쉴 새 없이 자리를 바꾸면서 최상의 골찬스를 만들기를 주문한다. 공격 때는 날카롭고 빠르게 움직이고, 수비 때는 상대를 압박해야 한다. 그러나 유병수는 여전히 ‘어슬렁거리다 한 방 넣는’ 스타일을 버리지 못했다. 유병수가 들어가면 박지성-이청용이 느려지고 고립된다. 염기훈(수원)은 또 도마에 올랐다. 왼쪽 날개 박지성과 포지션이 겹치면서 선발은 내줬지만, 교체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러나 중계방송에 얼굴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몸놀림을 보였다. 월드컵 후 ‘국민골키퍼’로 거듭난 정성룡(성남) 역시 불안하다. 특히 호주전 실점은 골키퍼의 판단 미스였다는 게 중론이다. 롱킥으로 선제골을 만들었지만, 골키퍼의 역할은 ‘막는 것’이다. 호주전에서 치통을 참고 뛰었던 박지성은 어금니를 뽑고 인도전에 나선다. 캡틴도 캡틴이지만, 왼쪽 가슴에 호랑이를 새긴 K-리거들이 살아야 한국은 51년 만에 아시안컵 정상에 설 수 있다. ‘쌍룡’ 이청용·기성용도 2009년까지는 K-리거였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씨줄날줄] 51초의 침묵/박홍기 논설위원

    미국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지난 1933년 3월 4일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라며 입을 뗐다. 대공황 아래 신음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용기를 복돋워 주기 위해서였다. 또 “진정한 운명이란 그 운명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우리 동포들을 섬기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면… 어두운 날들도 우리의 희생만큼이나 값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어떻게 연설해야 할지, 언제 목소리를 높이고 낮춰야 할지, 언제 모든 사람의 할아버지처럼 또는 리더답게 활기차고 힘있게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책, ‘위대한 연설 100’에서). 말의 정수(精髓)는 연설이다. 한편의 연설로 주장·가치관, 신념을 드러낼 수 있는 데다 감동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로 사람을 움직이고, 말로 세상을 뒤흔든 ‘명연설’은 동서양을 떠나 짧게는 몇년 또는 수백년, 심지어 수천년의 세월도 건너뛴다. 마르쿠스 키케로, 링컨, 원스턴 처칠, 존 F 케네디를 비롯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꿈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마틴 루터 킹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움직이는 순간, 그곳에 연설이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를 목소리 높이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명연설가로 인정받은 터다. 2008년 11월 4일 대선 승리 수락 연설에서는 “미국이 모든 것이 가능한 나라라는 점을…, 그리고 민주주의가 가진 힘을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이 바로 그 답입니다.”라며 시대의 희망과 변화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오마바 대통령이 다시 국민을 단합시켰다. 지난 13일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의 현장인 투손을 방문, 30분이 넘는 추모연설에서 9살 난 최연소 희생자 크리스티나 그린을 언급하다 말이 아닌 ‘51초의 침묵’으로 독설이 판치던 정치판과 국민들의 삭막해진 마음을 녹여냈다. “우리 민주주의가 크리스티나가 상상한 것과 같이 좋았으면 한다.”고 말한 뒤 연설을 중단, 10초가 지나자 오른쪽을 봤다. 10초가 더 흐르자 심호흡, 30초가 되자 감정을 추스른 뒤 어금니를 깨물고 연설을 이어갔다. 뉴욕타임스는 14일 “국민과 소통한 극적 순간”, ‘오바마의 저격수’인 폭스뉴스 토크쇼 진행자 글렌 벡도 “연설 중 최고”라고 극찬했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연설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패스트푸드점 이제 그만!

    미 로스앤젤레스(LA) 시가 LA 남부지역에 새로운 패스트푸드점의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고 뉴욕타임스가 16일 보도했다. 가난한 사람이 많이 몰려 사는 LA 남부는 주민들이 비만과 당뇨 등 심각한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다. 시당국에 따르면 이 지역 75만명의 주민 중 30%가 비만으로, 이는 LA시 부자동네의 2배에 해당한다. 신문에 따르면 LA시의 이 같은 정책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급진적이다. 몇몇 작은 도시에서 도시 미관을 위해 비슷한 정책을 실시한 적은 있지만, 건강을 위해 패스트푸드점 신설을 금하기는 LA시가 처음이다. 물론 기존 패스트푸드점 영업은 계속 인정된다. 또 쇼핑센터 내 패스트푸드점 입점, 소규모 생계형 패스트푸드점 창업도 허용된다. 결국 대형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단독 신설만 금지되는 셈이다. LA시의 이 같은 방침에 캘리포니아 식당연합회 등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으나 보건 관련 단체는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LA시의 ‘담대한 실험’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비만의 주범은 주유소나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불량식품이라는 분석도 있기 때문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튀니지 ‘재스민 혁명’ SNS의 힘

    튀니지 ‘재스민 혁명’ SNS의 힘

    지난해 12월 17일. 튀니지 중부에 있는 인구 4만명의 소도시 ‘시디 부 지드’가 지구촌에 조용히, 그러나 빠른 속도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노점상을 하던 26세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 소식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달이 채 안 된 지난 14일(현지시간).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튀니지의 23년 독재 체제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인구의 18%가 페이스북 가입자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부아지지는 독재정부가 망쳐 놓은 경제난 탓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과일 노점상으로 겨우 생계를 꾸렸다. 노점 단속에 나선 경찰이 그의 뺨을 때리고 과일 수레를 부순 뒤 외상으로 구입한 과일 200달러어치를 압수했다. 시청을 찾아가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자기만 바라보는 가족과 아직 갚지 못한 빚, 암울한 내일…. 부아지지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정부 청사 앞에서 머리에 기름을 붓고 불을 댕겼다. 그의 희생은 그러나 헛되지 않았다. 살인적 실업률에 신음하던 튀니지 국민들은 부아지지의 분신 소식에 들고 일어났다. 튀니지의 공식 실업률은 14%. 하지만 이 숫자를 믿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튀니지 경제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특히 15~29세 청년 실업률은 30%에 이른다. ●위키리크스도 혁명 성공 한몫 혁명 성공의 또 다른 열쇠는 내부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제공했다. 대통령 일가의 과도한 재산 축적과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담은 외교 문서들이 튀니지 민주화 운동가들이 만든 ‘튀니리크스’(Tunileaks)를 통해 확산되면서 혁명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더욱 북돋았다. 시위가 열흘 넘게 계속되자 독재자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은 뒤늦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사경을 헤매던 부아지지는 지난 4일 끝내 세상을 떠났다. 성난 민심은 더욱 달아올랐고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사망자가 잇따라 발생하자 항의 시위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매개로 한 정권 퇴진 운동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1987년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로 인권 탄압과 부정부패 등 독재의 전형을 보여 온 벤 알리는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로 달아났고, 철옹정권은 무너졌다. 전 세계 언론은 튀니지의 민중 봉기를 ‘SNS가 꽃피운 재스민 혁명’이라 불렀다. 튀니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스민처럼 평범한 민초들이 SNS를 통해 하나로 뭉쳐 거둔 승리라고 평가했다. 튀니지는 인구의 60%가 25세가 채 안 되는 ‘젊은 국가’다. 이 때문에 페이스북 가입자가 18%에 이를 만큼 SNS 이용률이 높다. 튀니지 독재를 무너뜨린 SNS는 이제 이웃 중동과 아프리카, 남미의 독재국들을 겨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청년층 비율이 높고 경제 사정이 열악한 예멘(70%), 알제리(75%)가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찰스 英왕세자 인도에 ‘유토피아’ 세운다

    찰스 英왕세자 인도에 ‘유토피아’ 세운다

    영국 찰스 왕세자가 인도에 ‘친환경 유토피아’를 세운다. 찰스 왕세자는 인도 콜카타나 벵갈루루 외곽의 황무지 25에이커(약 10만 1171㎡)를 ‘지속 가능한 오아시스’(oasis of sustainability)로 변모시킬 계획이라고 시사주간 타임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찰스 왕세자는 이 마을 개발과 관련해 영국 남서부의 친환경 도시 파운드베리를 본뜰 것으로 전해졌다. 19세기 영국의 전통마을을 재현한 이 도시 역시 찰스 왕세자의 아이디어로 지어졌다. 그는 오스카상 수상작인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무대 인도 뭄바이의 빈민촌 다라비에 영감을 받아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때문에 살인적인 인구 밀도나 턱없이 부족한 위생시설로 신음하는 판자촌과는 거리를 둘 계획이다. 예를 들어 빗물을 곧바로 수력발전소로 보내기 전에 야자수로 받아 모아 샤워나 세탁 등에 사용하는 친환경 모델을 마을에 구축할 계획이다. 올 가을부터 시작되는 공사 비용은 찰스 왕세자의 자선재단에서 댈 예정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아이티 대지진 참사 1년] 아이티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땅.’ 12일로 대지진 참사 1년을 맞는 아이티는 아직도 재앙의 땅으로 머물러 있다. 그동안 21억달러의 구호금이 전달됐고, 1만 2000개의 구호단체에서 앞다퉈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 구슬땀을 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티의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끝 없는 빈곤, 폭동, 약탈, 콜레라, 여기에 무정부 상태나 다름 없는 정국 혼란…. 희망이 싹을 틔울 때도 됐건만 아이티에서는 여전히 신음과 절규가 끊이질 않는다. 여전히 150만명이 노숙자로 떠돌고 있고 35만채의 집이 산산조각난 채 방치돼 있다. 생존자의 87%는 매일 수십건의 강간과 약탈이 일어나는 위험천만한 난민촌에서 하루살이를 하고 있다. ●아이티 정부 컨트롤타워 부재 1년 전 지진이 23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면, 최근에는 콜레라가 주민들을 덮치고 있다. 현재 확인된 콜레라 감염자는 17만명, 사망자는 3600여명이다. 하지만 권기정 굿네이버스 아이티 지부장은 “실제 숨진 사람은 정부가 발표한 것보다 2~3배 많을 것”이라면서 “콜레라는 증상이 심할 때는 15분마다 한번씩 링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질병인데 의료진이 적어 제때 치료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유엔총회 보고에서 아이티의 콜레라 감염환자가 앞으로 6개월간 65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살 집도 턱없이 부족하다. 인디펜던트는 난민촌에서 변변한 집으로 옮긴 사람은 3만명도 채 안 된다고 보도했다. 아이티를 뒤덮은 2000만㎡의 잔해 가운데 치워진 분량은 5%도 채 안 된다. 인도네시아가 2004년 쓰나미로 파괴된 13만 9000가구를 재건하는 데 5년이 걸렸고, 일본 고베시에서도 1995년 지진 이후 수 년 뒤까지 소유권 문제로 여전히 시민들이 임시 거처를 떠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아이티의 재건은 아직도 요원하다. 가장 큰 비극은 ‘정부의 실종’ ‘정치의 파탄’이다. 컨트롤타워가 없는 정국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다. 지난해 11월 부정선거 논란 끝에 가까스로 오는 16일 실시하기로 합의했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는 또다시 2월 말로 연기됐다. 정부의 무능과 우유부단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국제구호단체인 ‘액션에이드(Action Aid)’의 제인 모요는 “지진 이전에도 기본적인 사회복지의 80%를 비정부기구가 공급했는데 지금은 아예 전무하다.”면서 “아이티 정부는 이제 다 포기하고 국제사회가 자신의 일을 대신 해주길 바란다. 이것이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호금 42%밖에 배분 안돼 정부가 무너지면서 구호금 전달도 여의치 않은 모습이다. 그나마 구호금의 일부라도 만져보는 난민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아이티 유엔 특사에 따르면 구호금 21억달러 가운데 쓰인 돈은 42%에 불과하다. 무너진 땅 위에서 아이티 사람들이 이제 기댈 곳은 신뿐이다. AFP는 10일 지진 1주년을 앞둔 아이티 전역이 종파를 막론하고 기도 열풍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정서린·유대근기자 rin@seoul.co.kr
  • [신년 특별대담] 향후 10년… 한국의 미래를 말하다

    [신년 특별대담] 향후 10년… 한국의 미래를 말하다

    전 지구적인 기후 변화와 지구 온난화, 반복되는 세계 경제의 위기,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에 신음하는 사람들, 끊이지 않는 전쟁…. 희망찬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10년. 지구촌이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인류의 오래된 고민은 더욱 깊어졌고,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와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을 맞아 우리는 어떤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가야 할까. 서울신문은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연초 자크 아탈리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과 민동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을 이메일·전화·대면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지상대담 형식으로 꾸몄다. 한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온 아탈리 회장은 지한파답게 구체적인 사례를 거론해 가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민 이사장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분화된 학문’의 해결 방법을 고민하면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대담·정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이 시작됐다. 향후 10년의 키워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탈리 인류의 삶을 결정하는 키워드는 의외로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다. 음악, 사랑, 죽음, 행복, 건강, 교육 등이다. 모두가 원하는 것들이다. 고민은 이것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다. 다만 개인이 아닌 국가나 세계적인 관점에서는 항상 새로운 이슈와 키워드가 추가된다. 향후 10년간 추가되는 키워드라면 기후변화와 빈곤을 꼽을 수 있고 기술적으로는 로봇의 발전을 들 수 있다. 민동필 21세기의 첫 번째 10년은 대부분이 위기 속에서 흘러갔다. 다음 10년은 이 같은 위기를 돌파하고 도약하기 위한 단계가 될 것이다. 키워드로는 ‘스마트화’를 꼽을 수 있다. 스마트하다는 것은 스스로 참여할 수 있고,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갖고 있는 조그만 지식들이 다같이 합쳐지면 시스템을 형성하고, 시스템은 규칙을 만들어 진화한다. 특히 20세기가 분화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만들어낸 문제들은 스마트화에서 진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전체를 바라보지 못한 과학의 분화에서 비롯된 생태계와 환경의 문제 역시 분화된 지식이 합쳐지면 해결될 수 있다. →중국의 급부상과 함께 전 세계적인 권력이동이 주목받고 있다. 아시아의 세계중심화는 가능한 시나리오인가. 아탈리 1980년에 몇 권의 저서에서 공산주의의 약화, 테러 위협의 증가, 기후 변화, 금융 거품 등을 언급했고, 지금 다 현실화됐다. 남아 있는 것이 미국과 유럽에서 중국 등 아시아로의 국제사회의 권력이동이다. 아시아 중에서도 항구도시들이 가능성이 높다. 브뤼헤, 베니스, 제네바, 암스테르담, 런던, 보스턴, 뉴욕 등 세계를 주도했던 서구 도시들은 모두 항구도시였다. 지중해에서 북해, 대서양으로 이동했고 현재는 태평양이 중심인 만큼 다음은 분명 한국, 중국, 일본의 항구도시가 될 것이다. 민동필 중국은 이미 G2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발전을 주도하는 과학의 측면에서 보면 아직까지 아시아는 갈 길이 멀다. 과학의 리더십은 창의성에 의해 지배되는데, 창의성을 나타내는 논문이나 기술의 측면을 보면 여전히 미국이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의 절반은 유럽이 차지하고, 아시아는 유럽의 3분의2 수준이다. 다만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창의적인 세계로 진화하는 것이 인력과 전문가의 싸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풍부한 인적자원을 가진 아시아가 대세가 되는 것은 시간상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경제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한다. 한국은 어떤 전략으로 맞서야 하나. 아탈리 한국의 경쟁력은 첨단기술에서 나온다. 지금까지의 성장기반이 됐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히 나노와 바이오, 신경과학은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연구와 혁신에 대한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되고,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폐쇄성을 극복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한국은 산업분야와 대학, 연구소 모두에서 외국인력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다. 전반적인 사회운영 시스템도 상당히 노후화돼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직급과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구조가 정착돼야 젊고 똑똑한 인재를 많이 확보할 수 있다. 민동필 스위스의 사례에서 배울 것이 많다. 전체 면적이 한국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6위인 6만 7000달러에 이른다. 수많은 강대국들 틈새에서 말이다. 제조업, 정밀기계공업 같은 분야에서는 질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스위스 연구진의 논문 피인용 지수는 세계 최고일 정도로 창의적인 지식 역량이 아주 강하다. 중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낮고 앞으로도 한참 동안은 양적인 면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양과 질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한국에 남은 선택은 ‘완전한 질’뿐이다. →미래를 예측하고 내다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분야를 넘나드는 ‘통섭적 지식’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분화된 사회가 낳은 문제와 해결책을 말해 달라. 아탈리 어떤 학문을 배워야 하느냐 같은 물음은 이미 의미가 없다. ‘가능한 한 많은 학문을 가능한 한 많이 배우라.’는 것이 나의 조언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있어서 여행을 다니고 외국어를 배우고, 문학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은 모두 통섭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에게도 다가가 말을 걸고 대화를 해라. 분화된 사회는 사람의 시각을 편협하게 만들 뿐이다. 1985년에 내가 디지털 노마드와 모바일 기기의 등장을 예상한 것은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디지털 노마드는 단순히 디지털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내가 디지털 노마드를 떠올린 것은 신발, 옷, 책 등 아주 간단한 것들을 비틀어 보면서부터다. 반면 생각이 퍼져나가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이 아니라 세계적이다. 최대한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볼 수 없다. 민동필 현대 사회의 당면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결코 한 분야의 지식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수많은 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은 대개 한계를 느끼면 더 깊게 파고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고,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게 더 현명한 일인데 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학문을 다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장 중심의 교육·체력을 쌓을 수 있는 공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히딩크가 체력을 키워 전술과 전략을 세울 수 있었듯이 기초적인 지식을 다양하게 알려주면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다. 앞으로는 박사학위라는 개념이 약화되고, 석사나 학사를 많이 가진 사람이 각광 받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인해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녹색성장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어떤 기술이 성공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략을 어떻게 짜는 것이 좋은가. 아탈리 ‘21세기의 역사’라는 책에서 ‘이타적인 것이 돈을 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성공 가능성이 낮은 녹색기술에 투자하는 것은 국가나 기업의 이타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많이, 먼저 투자한 사람이 더 많은 열매를 딸 수 있다. 분명히 올 것으로 보이는 분야도 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자동차는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다. 연료전지 역시 마찬가지다. 탄소세를 높이는 방안이 유력한 만큼 탄소거래도 유망산업이다. 녹색성장에 직접적으로 투자하지 않고도 녹색성장을 이끌 수 있는 아이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3차원 비디오나 홀로그램은 실제 이동하지 않고도 경험이 가능하도록 해 준다는 측면에서 기후변화 대응기술로 볼 수도 있지 않은가. 민동필 정확하게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를 때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위험요소를 줄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초점을 집중해야 할 부분도 있다. 에너지와 물의 문제는 삶과 직결되기 때문에 의무적이자 확실하게 먼저 개발해야 한다. 에너지와 물은 미래기술을 개발한다면 세계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다. →성장이 멈춘 유럽의 위기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앞으로 유럽은 어떤 길을 가게 될 것으로 보나. 아탈리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유럽은 이미 변하고 있다. 기존 부분을 지켜가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유럽의 살 길이다. 특히 경제적 통합은 유럽이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하는 몸부림이고, 실제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반적인 사회구조를 젊게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성공 비결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산업적 역량을 강화하고, 연구와 혁신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올해부터 가시화된다. 벨트가 한국의 미래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가. 또 어떤 과제가 남아 있나. 민동필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우리의 여건을 바꾸자는 시도다. 국가의 성장동력이 되는 과학을 고급인력들이 선호하는 학문으로 바꿔야 한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국내 과학자들이 한국에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그쪽에 세계 최고의 시설과 연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잘 맞는 사람과 좋은 환경에서 정확한 시기에 연구를 진행했다.’는 거다. 과학비즈니스벨트가 하버드나 케임브리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연구자들이 원하는 부분을 정확히 충족시켜 주면 21세기 주도권을 한국이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석학을 데려오면서 그 사람이 연구팀을 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왜 저기에만 퍼주느냐.’는 식으로 발목을 잡으려 드는 사회적 행태를 바꿔 나가는 일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 일제시대 한국의 모더니즘 리얼리즘과 어떻게 다른가

    일제시대 한국의 모더니즘 리얼리즘과 어떻게 다른가

    일제시대에 대한 상식적 기억은 늘 두가지다. 하나는 만주벌판에서 무장독립투쟁을 벌이는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일제의 가혹한 수탈과 착취에 신음하는 농민이다. 식민지 경험이 안겨다 준 충격과 공포가 클수록 더더욱 그렇다. 여기에 미묘한, 아니 제법 큰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가령 김지운 감독의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일제시대 만주벌판에서 일본군과 독립군만 뛰어다닌 것이 아니라, 돈에 눈먼 잡놈들도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증언한다. 이 영화에서 아편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은밀한 상품이 아니라, 개개인의 퇴폐와 쾌락을 보여 주는 소재로 등장한다. 최근 당대의 신문·잡지를 열심히 뒤져서 그때도 자본주의적 욕망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황금광’ 시대가 있었고, ‘모던 뽀이’와 ‘모던 껄’들은 ‘딴스홀’을 욕망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예전 일제시대 연구자가 당시 신문·잡지에 실린 사회면 기사를 보고서 식민지적 암울한 현실을 이끌어 냈다면, 최근 연구자들은 사회면 기사 대신 가벼운 가십거리나 아예 기사를 벗어나 신문 하단에 실린 광고에 집중한다. 가벼운 가십이나 광고에서야말로 대중들의 은밀한 욕망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꽤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인데 여기에도 난점은 있다. 과연 그것이 당대 조선인의 평균적인 삶과 얼마나 가까우냐 하는 문제다. 문맹률도 높고 인쇄술도 좋지 않던 시절에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내용만 골라 담은 신문·잡지 내용을 얼마나 일반화할 수 있느냐다. 한마디로 서울 청담동 클럽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얼굴에서 21세기 대한민국 20대 남녀의 평균적 얼굴을 추출했을 때, 싱크로율(일치율)을 얼마로 볼 것인지는 의문이다. 이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하는 논쟁과 상통한다. 구체적 삶보다 예술의 형식성을 탐구하는 것이 모더니즘인 만큼 리얼리즘과는 다르다는 주장이 한쪽에 있다면, 신형기 연세대 국어국문과 교수가 쓴 ‘분열의 기록’(문학과지성사 펴냄)은 모더니즘을 일러 좀 다른 차원의 리얼리즘이라고 주장하는 쪽에 서 있다. 책은 흔히 모더니스트 문인으로 꼽히는 이상(1910~1937), 박태원(1909~1986), 최명익(1903~?), 허준(1910~?), 유향림(1914∼1980), 현덕(1909~?) 6명 작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좇았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 다르다고 보는 쪽에서는 모더니스트들의 삶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어정쩡한 기생충 같은 삶’이다. 집안이나 머리가 좋아 뭘 많이 보고 익혔는데, 그 지식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고 그냥 낭비해 버리다 말기 때문이다. 무력 항일투쟁을 벌인 것도 아니요, 억압받는 조선 민중의 심장을 벌렁이게 할 명문장을 남긴 것도 아니요, 하다못해 농민들에게 뛰어들어 교육사업에 매달린 것도 아니다. 문학이네 뭐네 하다 이상은 자살해 버렸고, 나머지 작가들은 1930년대 말 일제의 총동원 체제가 가동된 뒤 초기의 산뜻하고 실험적인 작품세계마저 잃어버린 채 단편적인 역사소설만 남발했다. 또 월북해서는 북한의 집단주의에 매혹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그리고 부제 ‘주변부 모더니즘 소설을 다시 읽다’에서 드러나듯 신 교수는 이를 ‘주변부 모더니즘’이 겪을 수밖에 없는 ‘분열’로 규정한다. 지식인들의 이런 자기 분열적 행보야말로, 즉 일제시대 모더니즘 그 자체가 바로 식민지의 아픈 경험을 폭로하는 리얼리즘이라는, 역설적 그림을 그려낸다. 이상을 제외하고는 월북 작가들이다. 때문에 해금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작가들이기도 하다. ‘분열의’는 북한문학 전문가가 쓴 책이기에 이들 작가에 대한 입문서로도 좋을 법하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평론 당선작] ‘아비 되기’를 바라보는 이중의 시선-박민규 소설 다시 읽기/허진

    1 아들은 아버지가 된다 ‘오감도’ 시 제2호에서 이상은 “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라고 토로했다. 이상의 토로는 세상의 모든 아들들이 한번쯤 맞닥뜨리게 되는 고민을 보여 준다. 그 고민은 ‘나도 언젠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을 닮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이 제시한 규범에 자신을 맞추고, 세상의 질서에 동화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을 포괄한다. 그 과정에서 아들은 자아를 억압하고 순치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자아가 찢기고 쪼개지고 일그러지는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박민규의 소설은 그러한 ‘아비 되기’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아비 되기’의 관점에서 박민규 소설의 서사를 재배열하면, 세상에게 “닥쳐 개새끼야!”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던 ‘나’(‘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50쪽)가 학창 시절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맞벌이를 해서 “한국의 표준이라 봐도 무방한 34평 아파트”를 마련하고(‘코리언 스탠더즈’, 183쪽), 그 집을 팔아 자식들에게 돈을 마련해준 뒤(‘누런 강 배 한 척’) 요양원에 들어가 사랑했던 여인에게 “아버지… 일어나요, 예?”라는 말을 들으며 죽음을 맞이하는(‘낮잠’, 200쪽) 시간적 스펙트럼이 도출된다. 그 시간적 스펙트럼을 아비의 질서와 규율을 내면화하고, 그에 맞게 자아를 변형시키는 ‘아비 되기’의 과정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박민규의 소설은 그러한 ‘아비 되기’의 과정에서 분열되고 일그러지는 주체의 모습을 보여 준다.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은 ‘아비 되기’에 대해 이중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아비 되기’를 받아들이고 아비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비의 세계를 부정하며 그 세계의 전복을 꿈꾼다. 박민규가 종종 구사하는 모순적인 문장은 그러한 분열의 징후를 보여 주는 단서이다. ⑴ 서늘한 창에 이마를 맞대고서 나는 빨리 고등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빨리 중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 빨리 핼리가 와 주기를 바랐다. 다행할수록, 삶은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그래서 짧게, 나는 가혹해지고 싶었다. (‘핑퐁’, 95쪽) ⑵ 죽어간 이들의 진실을 보았고, 살아 진실을 논하는 자들의 거짓을 참아야 했었다. 변질과 변절, 변이와 변태…, 적도 동지도 사라진 세상 속에서 그는 홀로이 외롭고 외로웠다. 싸워야 하지만 싸울 수 없는 세계……, 다시 만난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龍龍龍龍’, 108~109쪽) 인용문 중 굵게 표시한 부분은 하나의 문장 안에 모순되는 두 가지 내용이 담긴 경우이다. 여러 작품에서 박민규는 이러한 문장을 빈번하게 구사하는데, 이를 우리는 ‘아비 되기’를 바라보는 화자의 복잡다단한 심경과 관련해서 읽을 수 있다.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이 아비가 되기를 바라거나 상징세계의 아비가 되었을 때, 그들 내면의 다른 쪽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부정하는 에너지가 추동된다. 아비가 된다는 것은 박민규 식으로 말하면, “‘무슨 상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직장”에서 “갸냘픈 표정으로 사무를 보는 일”이며(‘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72쪽), “세상이 변하기보다는 직급이 변하길 바라는 사람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코리언 스탠다즈’, 184쪽). 그것은 한때 몸담았던 학생운동 판을 “운동권(運動圈)이란 단어가 있다.”고 낯설게 말하게 되는 것이며(‘코리언 스탠다즈’, 182쪽), 록 음악을 하던 청년이 남색(男色) 취향을 가진 부장의 추행을 “잠깐만 참으면 돼”라고 넘길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62쪽). 요컨대 ‘아비 되기’는 아들의 자아가 찢기고 쪼개어져 아비의 문법에 맞게 재배치되는 손상 혹은 훼손의 과정이다. 박민규의 모순적 진술은 그러한 맥락 속에서 ‘아들의 세계’와 ‘아비의 세계’가 충돌한 끝에 생겨난 불가피한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인용문 ⑴에서 ‘핑퐁’의 ‘나’는 중학생이다. 아직 성인의 세계에 진입하지 않은 이 중학생에게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는 일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또래집단이 행사하는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점에서는 반갑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소년에게 “무난한 옷을 입고… 무난한 취미를 가지고… 절대 남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바람직한 얼굴로 살아가”(87쪽)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년은 “다행”한 삶을 오히려 “가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핑퐁’의 ‘나’가 아직 소년인 상태에서 ‘아비 되기’를 모순적인 진술로 표현했다면, ‘龍龍龍龍’의 이장록은 어른의 입장에서 ‘아비 되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해준다. 이장록은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징역 20년을 언도받고 복역을 마친 변호사이다. 이장록에게 세계는 “싸워야 하지만 싸울 수 없는”(109쪽) 곳이다. 아비가 되기 전 세계는 ‘싸워야 하는 곳’이었지만, 아비의 세계에 진입해 변형되고 일그러진 주체에게 세계는 ‘싸울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장록은 그가 ‘지향했던 세계’와 ‘지금 사는 세계’의 간극을 “싸워야 하지만 싸울 수 없는 세계”라는 모순적인 어법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박민규의 소설에서 ‘아비 되기’는 아들이 ‘아버지’라는 상징의 옷을 덧입어 변형되고 일그러지는 일이며, “뜨고 싶은”(‘龍龍龍龍’, 115쪽) 일인 동시에 “할 일이 더 많아”지는(‘龍龍龍龍’, 115쪽) 모순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아비 되기 : ‘잔존’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기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이 아비가 되는 과정에서 자아와 세계의 충돌을 경험한다고 할 때, 이 인물들은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세상에 순응하든가, 혹은 거부하든가. 놀랍게도 박민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순응을 선택한다. 그들은 일흔세 번이나 이력서를 낸 끝에 유원지의 직원이 되어 오리배를 관리하기도 하고(‘아, 하세요 펠리컨’),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 고시원을 떠나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기도 한다(‘갑을고시원 체류기’). 또 운동권이던 선배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선배의 애인과 결혼을 하는가 하면(‘코리언 스탠다즈’), 253명의 무고한 사람들에게 헤드록을 감행하다가 나중에는 순백의 얼굴을 가진 아이를 낳고 교회의 집사가 되기도 한다(‘헤드락’). 하지만 그 ‘순응’의 과정은 눈물겨운 것이어서, 그것은 ‘실존(實存)’이라는 말보다는 ‘생존(生存)’이나 ‘잔존(殘存)’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고단한 과정이다. 그러한 생존 혹은 잔존의 간난신고가 여실하게 드러난 작품이 있는데, 바로 ‘헤드락’이다. ‘헤드락’에서 ‘나’는 평화롭게 산책을 하다가 헐크 호건에게 린치를 당한다. 이 린치는 소설에서 ‘헤드락’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에서 ‘헤드락’의 정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헤드락’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잠시 ‘호두’로 우회하도록 하자. ‘헤드락’은 <호두나무 아래에서>와 <호두까기 인형>, <마지막 호두과자를 먹은 것은 언제였나?>, <다시 호두가 열린다면>이라는 네 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개의 장을 이루는 소제목은 모두 ‘호두’를 키워드로 삼고 있는데, 이 ‘호두’의 의미에 주목하는 것이 ‘헤드락’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호두가 인간의 ‘뇌’를 닮은 과실임을 기억하면서 다시 ‘헤드락’의 소제목을 따라가 보자. <호두나무 아래에서> 산책하기를 좋아하던 ‘나’는 헤드록을 당한 뒤 <호두까기 인형>이 된다. ‘인간’에서 ‘인형’으로 전락한 ‘나’는 <마지막 호두과자를 먹은 것은 언제였나?>를 생각하며, 다른 인간들의 ‘호두’를 파먹기 위해 고심한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나’는 아이들의 이름으로 심은 나무를 보며, <다시 호두가 열린다면>이라는 긍정적인 삶의 의지를 갖는다. 이상의 서술로 미루어 보면, 인간의 뇌를 닮은 과실인 ‘호두’가 ‘헤드락’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어떤 것’에 대한 상징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다시 헤드락으로 돌아오자. 어 헤드락이네? 그리고 직장에서, 도처에서 나는 종종 습격의 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헤드락 강좌, 헤드락 세미나, 헤드락 부흥회, 헤드락 워크샵, 헤드락 클리닉에 이르기까지 - 아무튼 헤드락도 이젠 한국의 보편적인 생활문화가 되었지만 나로선 쓴웃음의 대상일 뿐이었다. (‘헤드락’, 264쪽) 인용문을 보면 레슬링에서 상대의 ‘머리’를 붙잡아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기술인 헤드록이 아비의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민규는 소설의 다른 부분에서 “이 세계가 어느 정도 헤드락을 묵인하거나 권장한다”(262쪽)고 쓰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헤드록이 아비의 세계가 아들에게 가하는 폭력, 혹은 아비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 아들이 견뎌야 하는 통과의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나’가 ‘헤드록의 세계’, 즉, 아비의 세계에 편입되기 위해 벌이는 눈물겨운 노력이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258쪽)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병행하고, 충분한 수면과 영양제로 체력을 보충하는 과정을 통해 “폭력의 대상”에서 “폭력의 주체”(259쪽)로 다시 태어난다. 헤드록의 상처를 내장한 채, “건강”하고 “건장”한 “완전히 다른 생물”(259쪽)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후 ‘나’는 결혼을 하고, 직장을 갖고, “순백의 얼굴”(263쪽)을 한 아이를 낳고, 심지어 교회의 집사가 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나’가 아비의 세계에 무사히 안착했음을 의미한다. 이를 입증하듯 ‘나’는 다른 상대들에게 253번의 ‘헤드록 습격’을 감행하고, 마침내는 “헤드록의 쾌감 같은 것을 깨쳐나가기”(263쪽)에 이른다. 이처럼 박민규 소설의 인물은 한편으로는 아비의 질서에 상처받고, 분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반복, 재생산하는 상징 세계의 ‘아비’가 된다. ‘아비’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을 우리는 박민규의 다른 소설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그 인물들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 아버지의 회사에 다녀온 뒤 ‘나의 산수’를 생각하게 된 고등학생,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끝에 취업과 결혼을 해 고시원을 떠나는 ‘나’, ‘아, 하세요 펠리컨’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재수생, ‘누런 강 배 한 척’에서 이십구 년을 영업사원으로 근무한 끝에 자살여행을 떠나는 아버지 등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3 아비부정 : ‘배제’된 자들의 세계 교란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이 아비가 되기 위해 몸부림친다고 해서 박민규가 ‘아비 되기’를 긍정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박민규의 인물들은 아비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아비 되기’에 대해 뿌리 깊은 반발심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발심은 어른보다는 주로 소년에게서 잉태된다. ‘핑퐁’은 세상으로부터 ‘배제’당한 ‘못’과 ‘모아이’라는 두 중학생의 이야기이다. 소위 ‘왕따’인 이들은 치수 패거리에게 불려 다니며 매일 얻어맞는데, 맞으면서도 “그냥, 사는 게 이런 것 같다.”(12쪽)고 생각할 뿐, 저항을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폭력적인 세계에서 잔존하기 위해 탁구 치는 것을 선택한다. 이들에게 탁구는 “이상하리만치 경쾌한”(23쪽) 것이었고, “국경 따위 없는 거”(43쪽)였으며, “지루하지 않은”(186쪽) 유일한 것이다. 그러한 소설의 진술로 미루어 우리는 탁구가 폭력적이고 지루한 세계, 즉, 인종과 국경이라는 상징계적 질서(아비의 세계)에 대립되는 어떤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못’과 ‘모아이’는 탁구를 치면서 비로소 소심하나마 “이것이 나의 의견이다”(47쪽)라고 말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에너지를 가질 수 있었고 “맞은 자리의 통증 같은 것이 땀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가는”(23쪽) 해방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핑퐁’에서 박민규는 ‘탁구’와 ‘핑퐁’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탁구’가 대타자의 세계에서 배제당한 소년들이 즐기는 소심하지만 전복적인 오락이라면 ‘핑퐁’은 보다 중립적인 용어이다. 핑퐁은 “인류가 깜박해 버린 것과 절대 깜박하지 않을 것 간의 전쟁”(219쪽)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탁구를 즐기는 자(못과 모아이)와 조건반사 훈련을 통해 연습한 자(쥐와 새)가 벌이는 한판 ‘대결’을 의미한다. 이 ‘핑퐁(대결)’의 결과 ‘탁구(유희)’를 즐겼던 못과 모아이가 승리하고, 이들은 인류의 ‘언인스톨’(전복)을 선택한다. 이 소설의 전복적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 유사한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떠올려 보도록 하자. ‘핑퐁’은 두 가지 점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다른데, 우선 폭력적인 상황을 종식시키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담임선생’이라는 상징세계 내의 합목적적인 권위를 빌려 엄석대의 만행과 폭력에 안녕을 고한다면, ‘핑퐁’에서는 상징계로부터 ‘배제’당한 못과 모아이의 선택(언인스톨)에 의해 인류의 폭력적인 삶이 종결된다. ‘핑퐁’과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결말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교실이 결국 안정과 평온을 찾는 것과 달리, ‘핑퐁’에서는 인류가 생활을 지속해 왔던 모든 공간이 언인스톨되고 완전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처럼 박민규의 ‘핑퐁’에는 이 세계의 문법이 아닌, ‘핑퐁’이라는 상상적 대결을 통해 아비의 세계를 뒤집어엎는 발칙함이 도사리고 있다. 허구적인 방법으로 상징계의 질서를 교란하는 경향은 ‘대왕오징어의 기습’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나’는 어렸을 때 잡지에서 몸길이가 150미터에 이르는 대왕오징어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호기심을 갖는다. 결국 그 기사는 오보인 것으로 판명이 나지만, ‘나’와 ‘B’는 각각 ‘대왕오징어로부터 인류를 지키겠다.’는 꿈과 ‘외로운 괴수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다. 하지만 이들은 애초에 가졌던 꿈과는 달리 “해변의 모래알처럼 평범한 인류”(230쪽)가 되고, 대왕오징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이쯤에서 이 소설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대왕오징어’의 의미를 점검하도록 하자. 소설에 따르면 대왕오징어는 “심해에서만 활동하는”(219쪽) “신비의 대상”(219쪽)이고, 고등학생이 된 뒤(예비 성인)로 ‘나’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기도 하다. 또 대왕오징어는 “순식간에 뭍으로 올라”(232쪽)와, “일시에 모든 것을 마비시”(232쪽)키는 파괴적인 에너지라고도 묘사된다. 그러한 단서를 통해 ‘대왕오징어’의 의미를 유추하면, ‘대왕오징어’가 상징계 너머에 있으면서 상징계의 질서를 교란하는 ‘괴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의 말미에서 대왕오징어는 사우나로 향하던 샐러리맨, 자녀의 도시락을 걱정하던 주부, 속도위반을 한 오토바이 운전자, 잡지 ‘사상계’를 버리기로 결심한 교육자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유년의 판타지 속에 존재했던 괴수가 장년의 현실 앞에 모습을 드러내 아비의 세계를 위협하고 교란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전복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현실에서는 ‘핑퐁’을 통해 세계를 ‘언인스톨’할 수도 없고, ‘대왕오징어’가 나타나 일상의 공간을 교란해주지도 않는다. 아비의 세계는 견고하고, 그 세계의 진입 문턱은 갈수록 높아져만 간다. 설혹 그 세계에 진입한다 하더라도,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고통스러운 ‘잔존’의 과정이라는 것도 자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 그러한 상황에서 박민규의 가련한 주체가 떠올리는 방법이 바로 ‘죽음’이다. 4 경계에 선 아버지들 최근 발표한 소설집 ‘더블’에서 박민규는 ‘죽음’이라는 다소 묵직한 키워드를 들고 나왔다. ‘지구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카스테라’, ‘핑퐁’ 등 지금까지 발표한 소설들에서 박민규가 보여 주었던 중요한 코드가 ‘유머’ 혹은 ‘블랙코미디’라는 점을 상기할 때, ‘죽음’이라는 테마가 다소 이질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박민규 소설의 유머 이면에 생(生)에 대한 씁쓸함, 분노, 반박, 체념이 복합적으로 깔려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박민규의 ‘죽음’이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말하자면 박민규의 소설은 지금까지 묶여 나온 작품집에서도 ‘죽음’의 징후를 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치’는 자살을 기도하는 사내와 그를 말리러 출동한 경찰관의 이야기이다. 사내의 신세한탄과 그에 대한 김 순경의 동조로 이루어진 소설의 서사는 역시나 ‘아비 되기’의 고단함을 생각하게 한다. ㈀ 노력해 봤냐고…… 그런 얘기 나한테 하지도 마. 나처럼 열심히 산 사람 있음 나와 보라 해! 손 다치기 전까지…… 나 백수 같은 놈 아니야. 그래, 별 볼일 없는 일거리지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알아? 월급 못 받은 적은 많아도 일 쉰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응? (‘아치’, 262쪽) ㈁ 딸들 이제 시집보내야 돼. 곧 그럴 나이야. 이것들 공부시킨다고 돈도 별로 못 모았어. 줄줄이…… 이제 겁나. 요새 딸 시집보내려면 돈 얼마나 드는지 알아? 겁나 죽겠어. 그래, 또 대출받아야겠지. 그때 가서 옷을 벗든가, 퇴직금을 또 어떻게 하든가. (‘아치’, 263쪽) 인용문 ㈀과 ㈁은 각각 사내와 김 순경의 독백이다. 사내는 자신이 아비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음을 강변한다. 사내는 열심히 살았고, 별 볼일 없는 일거리에도 최선을 다했다. 이를 위무하고, 죽음의 의지를 철회하도록 종용하는 김 순경의 삶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아비’로 살기 위해 김 순경도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김 순경에게 돌아온 현실은 양로원에 갈 돈도 안 남은 답답한 상황뿐이다. 김 순경은 사내를 설득해 아치에서 내려오게 하지만, 설득의 근거가 빈약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오십 년을 더 살아도 여전히 이 아치에 뒤엉켜 있겠지”(269쪽)라는 자조 섞인 독백은 김 순경이 그 스스로에게도 살아야 하는 당위를 설득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한 속사정으로 김 순경은 “나도 한 번쯤, 이곳에서 뛰어도 좋겠다는 생각”(269쪽)을 하고, 검은 강물을 내려다본다. ‘누런 강, 배 한 척’은 중년의 가장(家長)이 치매에 걸린 아내와 자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십구 년을 같은 직장에서 성실하게 근무한 ‘나’는 “소소하고 뻔한, 괴롭고 슬픈 하루하루를 똑같은 속도로 더디게 견뎌야 하는 것”(65쪽)에 지쳐 “더는 살고 싶지 않다”(65쪽)고 생각한다. ‘나’는 자살을 결심하고 “지나온 수십 년과는 다른, 한 달”(68쪽)을 보내기 위해 아내와 여행을 떠난다. 이를테면 자살 여행인 셈이다. 하지만 자살을 결행하려는 순간 ‘나’와 아내에게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다.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사지사가 중노인 두 명이 묵고 있는 호텔 방으로 찾아온 것이다. 다소 이상한 결정이었지만, ‘나’는 마사지를 받기로 결정하고, 아내에게 먼저 마사지를 받게 한다. 아 아내가 신음을 지른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하마터면, 들고 있던 담배를 나는 떨어트릴 뻔했다. 수십 년 만에 들어 보는, 그런 성격의 신음이었다. 아…… 낮은 신음이 또다시 아내의 입에서 새 나왔다. (‘누런 강 배 한 척’, 74쪽) 이 소설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이 장면은 ‘나’에게 죽음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상징의 세계에서 가장 확실하게 벗어나려는 순간 출현한 아내의 신음 소리는 상징계의 기표로는 포획되지 않는 ‘어떤 것’을 암시한다. 아내의 신음 소리는 “수십 년 만에 들어 보는, 그런 성격”(74쪽)의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아비’, ‘남편’, ‘가장’, ‘영업사원’의 이름(상징)으로 살던 수십 년 동안 ‘나’가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이다. 상징계의 질서와 영원한 안녕을 고하려는 순간, 돌연히 출연한 이 신음 소리가 ‘나’를 착란에 빠지게 하고, 확고했던 ‘나’의 자살 의지를 유예시킨다. 이 소설은 끝내 ‘나’가 자살을 결행했는지 여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소설은 “냉장고에는 아직 한 캔의 맥주가 남아 있었다”(75쪽)라는 모호한 문장으로 종결된다. 박민규의 ‘죽음’이 가진 미덕이 여기에 있다. 박민규는 그의 소설에서 성급하게 ‘죽음’을 실현시키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룬다. ‘아치’의 마지막 문장(“이제 아치를 내려선다”)과 ‘누런 강 배 한 척’의 마지막 문장(“냉장고에는 아직 한 캔의 맥주가 남아 있었다.”)은 그 자체로 화자가 죽음을 실행에 옮겼는지 여부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두 문장은 화자가 죽음의 세계를 넘겨다보고 있음을 암시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박민규의 인물들이 이보다 앞서 삶의 순간을 되돌아보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치’의 경찰관은 죽겠다고 아치에 올라간 사내에게 “당신 진짜 이러면 안 돼.”(258쪽)라고 말했고, ‘누런 강 배 한 척’의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삶을 즐긴 후 아내와 함께 죽고 싶었다.”(67쪽)고 생각하며 여행을 떠났다. 이처럼 박민규의 인물들은 삶의 순간에서 죽음을 동경하고, 죽음의 순간에서 다시 삶을 넘겨다보는 딜레마 속에 위치한다. 박민규 소설의 인물들에게서 나는 나와 내 아버지와 동료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신용불량을 면하기 위해 대리 운전을 하고(‘별’), 차를 팔기 위해 고객의 택배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으며(‘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하늘에 떠 있는 직경 10킬로미터짜리 아스피린을 보고도 “자, 일해야지”라는 부장의 말에 “예”라고 대답한다(‘아스피린’). 또 그들은 12년간 용역 사원으로 근무한 끝에 마침내 괴물이 되어 버린 사내이기도 하다(‘루디’). 그래서 나는 박민규의 인물들이 손쉽게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에 나는 그들이 삶의 긴장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외롭고 고단한 곡예를 계속해주기를 바란다. 삶을 이어 나가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의 소설을 읽으며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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