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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살인 40대 용의자/자해기도 중태

    【수원=조덕현기자】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의 조사를 받다 풀려난 김종경씨(41·수원시 팔달구 매탄동 196의156)가 3일 상오 5시40분쯤 자기집 거실에서 흉기로 왼쪽 가슴등을 찔러 자살을 기도,중태에 빠졌다.김씨는 자해후 인근 동수원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간과 왼쪽 가슴등 2곳에 자상을 입어 손상부위에 대한 지혈과 몸안에 고인 피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김씨의 부인 오윤자씨(39)는 『방에서 잠을 자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 나와보니 남편 김씨가 가슴에 흉기가 꽂힌채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자살을 기도한 김씨는 이틀전부터 『농장에서 돼지는 잡았지만 소는 잡지 않았다.왜 잡지도 않은 소를 잡았다고 하느냐』 『경찰이 자신을 권총으로 죽이려 한다』는 등의 정신착란증세와 함께 팔다리가 마비되는 증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 아시아나기 참사 해남 마산리의 7월 26일

    ◎“뒷산에 비행기 추락… 모두 나오시오”/산마을 인간애가 희생 줄였다/주민 3백여명 필사적 구조작전/빗속 진흙길 부상자 업고 줄달음/뒤늦게 온 유가족·구조대원엔 식사대접 『뒷산에 비행기가 떨어졌으니 동네사람들은 모두 낫과 삽을 들고 마을회관으로 모이시오』 아시아나 여객기추락 직후인 26일 하오 5시30분.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산리 이장 김석진씨(60)의 비상을 알리는 급박한 목소리가 마을 스피커를 타고 온동네에 울려 퍼졌다.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삽과 톱등을 들고 마을회관으로 달려왔으며 『우선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김씨의 설명을 대충 듣고 운거산으로 내달았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덤불을 연장으로 잘라 헤치며 해발 3백20m의 운거산 8부능선에 다다른 이들은 너무나도 참혹한 현장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처참하게 산산조각난 비행기 잔해와 옷가지,짐꾸러미 등등. 쓰러진 사람들에게 달려가 옷가지를 찢어 상처를 싸매 지혈을 해주었고 비행기 잔해 사이에 끼여 신음하는 사람들을 끄집어 내기 시작했다.힘센 장정들은 부상자들을 들쳐업고 산밑으로 뛰고 노인이나 부녀자들은 사고현장에서 정신없이 승객들을 보살폈다. 이렇게 하길 1시간쯤.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어느새 3백여명의 마천부락 주민들로 대규모 「인명구조단」이 자연스레 구성됐다. 아시아나항공 737편 보잉 737국내선 여객기 추락사고의 구조작전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결국 44명의 귀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끔찍한 대형참사속에서 여객기 추락사고치고는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많은 인명을 구한 것이다. 사고 여객기 승객 김현식씨(21)가 하오 5시20분쯤 홀로 산밑으로 기어내려와 마을에 사고소식을 전한 뒤부터 군·경의 본격적인 구조작업이 이루어지기까지 두시간동안 마천부락 주민들의 필사적인 희생노력이 없었다면 이번 사고는 엄청나게 더 큰 재해로 이어졌을 것이다. 한차례 폭우가 내린 뒤끝인데다 40도의 급경사인 산을 오르내리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미끄러운 산길을 오르면서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기느라 주민들의 몸은 어느새 땀으로 뒤범벅됐다. 이장 김씨는 김성수씨(23)등 청년 3∼4명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생존자들을 마을로 후송시켰고 나머지 주민들은 승객들의 안전벨트를 낫으로 끊어가며 생사를 확인했다.청년들이 생존자들을 등에 업고 막 산을 내려갈때 면사무소의 연락을 받고 출동한 군용헬기가 계곡위에서 맴돌았다.헬기에서 구조로프와 카고네트가 내려왔고 주민들은 무게가 가벼운 어린이 4명을 우선 헬기로 올렸다.곧이어 또다른 헬기가 도착하자 주민들은 헬기에서 내려온 군인 1명의 도움을 받아 생존가능성이 있는 중환자를 로프에 묶기 시작했다. 『헬기에서 구조로프를 내렸을때 강한 바람으로 로프가 흔들리는 바람에 한사람을 묶는데만도 10분씩이 걸렸습니다』주민 천용진씨(45)는 온몸이 피로 물든 자신을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박연규씨 등 동네주민들과 함께 8명의 생존자를 로프에 묶어 헬기로 올려 보냈다. 박씨는 『서로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환자들을 대할때 누구부터 구해야할지 괴로웠으나 어린이나 피를많이 흘린 중환자에게 먼저 손이 닿았다』면서 사고 신고가 조금이라도 빨랐더라도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주민들은 생존자들을 확인하기위해 사고 현장인 고도 2백50m의 계곡을 중심으로 직경 1백여m안쪽의 숲과 나무를 헤치며 샅샅이 뒤졌다.다리가 부러진채 근처 숲에 쓰러져 있던 40대 승객은 『나는 괜찮으니 급한 환자부터 옮겨달라』고 애원해 함께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고 당시 이곳에는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여객기가 추락할때 「꽝」하는 굉음을 천둥소리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주민들은 한결같이 사고소식을 뒤늦게 알아 유가족들에게 죄를 진 것같다고 말했다.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은 각 가정에 있는 밥솥 30여개를 총 동원,생존자와 뒤늦게 달려온 구조대원등 3백여명에게 따뜻한 저녁식사를 대접했다.또 화원면장 김한철씨(53)는 근처 방앗간에서 2백여명분의 주먹밥을 만들어 사고 현장에 긴급 운반하기도 했다. 『많은 희생자가 나 마음이 아프지만 구조된 생존자들만이라도 빨리 완쾌되길 바랄뿐입니다』이 마을 사람들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사고현장에 찾아와 울부짖는 유가족들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특별취재반 전국부 임정용부장 최치봉기자 박성수〃 남기창〃 김수환〃 사회부 김재순〃 박찬구〃 사진부 김명환〃 남상인〃
  • 서늘한 대서(외언내언)

    절서는 복중으로 들어섰다.오늘이 복중에 맞는 대서이건만 그런 여름날씨로 느껴지지가 않는다.초가을의 삽상한 바람결이 피부를 간질이는게 아닌가.하늘까지도 높푸르러 가을하늘의 모습을 보여준다.덥지않아서 좋다지만 땀의 계절이 과연 이래도 되는것인가 싶기만 하다. 특히 21일 아침의 서울지방 최저기온은 16.2도까지 떨어졌다.7월의 기온으로는 1912년이후 81년만의 최저치인 것으로 알려진다.이같은 저온현상은 서울지방뿐 아니라 전국적인 것으로서 예년보다 2∼10도 떨어진 기온분포를 보여주었다.혹시라도 한여름을 건너뛰는 것이나 아닌가 생각게 하는 기상이변이다. 지금 기상이변으로 고통을 겪고있는 나라가 미국이다.지난5일을 전후해서부터 중서부지역에 퍼부은 폭우는 노아의 홍수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한다.인명·재산피해가 엄청나다.그런가하면 동북부지방에는 살인적인 더위가 엄습하여 인명피해를 내고있다.화씨1백도를 넘어섰다니 그 정황을 짐작할 만하다. 얼마전 미연방 기상분석센터는 지구촌의 기상이변이 태평양의 해수온도 이상상승현상 장기화에 기인한다고 발표한바 있다.이 「태평양 엘니뇨현상」은 적도주변의 대기움직임과 기압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대기권상층의 제트기류 흐름을 교란하면서 세계적 기상이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었다.그래선지 기상이변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아프리카쪽에서도 겪는다.지구촌이 신음하는 재채기가 우리의 이 이상저온현상일까.은근히 태풍걱정까지 하게된다. 기상이 정상을 잃게될때 동식물이 그영향을 받게 되는것은 당연하다.걱정되는것이 각종 농작물 피해이다.특히 산간지방의 경우가 더그렇다.사람의 건강에도 좋을리가 없다.심한 일각차는 우선 감기환자부터 많이 내는것 아니던가. 기상이변을 겪으면서 두려워지는 것은 그것이 인간들의 자업자득아닌가 하는점 때문이다.기상이변은 대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자세를 일깨운다.
  • 3중고에 신음/현대 협력업체/3천8백사 피해액 3천억대

    ◎일부 회사 이미 도산… 대량실직 우려/재고쌓여 분규끝나도 조업단축 불가피 한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울산지역 현대계열사들의 노사분규로 현대 협력업체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납품중단에 따른 재고누적과 조업단축에 자금난까지 겹치는 3중고를 겪고있다.이 때문에 분규가 계속될 경우 이 협력업체들이 엄청난 손실을 내고 연쇄도산으로 「침몰」하는 것은 물론 종업원들의 「대량실직」이라는 사태마저 예고되고 있다. 현대계열사의 협력업체는 전국적으로 3천8백21개사에 근로자만 39만명.이 가운데 울산시·군에 8백80개 업체가 몰려있고 나머지는 서울,부산,대구,경주 등에 흩어져있다. 모기업 노사분규로 이들 업체의 손실은 하루 85억원으로 9일까지의 총피해액은 3천여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또 재고가 쌓이는데 따른 이자부담액만도 1백여억원정도로 어림된다.이들업체의 이날 현재 평균조업률은 50%정도로 분규중인 현대계열사들이 정상조업을 하더라도 상당기간 재고소화를 위해 조업단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현대자동차 협력업체 모임인 「협동회」(회장 이상일·일진산업대표)는 모기업의 한달간 부분파업은 보름간의 전면파업과 맞먹는 심각한 피해를 준다고 지적하고 있다. 협동회측은 『4백67개의 1차 협력업체 가운데 조업률이 50%미만인 업체가 70%인 3백30개에 달하고 있으며 조업시간도 근로자의 20%정도는 정신교육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실상을 소개했다. 자동차 연료탱크와 냉동컨테이너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두서농공단지의 대창금속(대표 임수상)은 조업률이 20%로 뚝떨어지는 바람에 평소 하루 4억원이던 매출도 1억원으로 감소,위기를 맞고있다.회사측이 잔업을 없애 1백명남짓 근로자들의 월급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임사장은 『이같은 상태가 이달말까지 계속될 경우 회사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현대자동차에 프레스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종업원 1백30명의 울산군 농소면 유진산업(대표 진현무)도 조업률이 40%로 떨어져 10억원에 달하던 한달 납품액이 4억원으로 감소하고 재고도 계속 쌓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밖에 비교적 규모가 큰 부산시 반여1동 동승기업 등 부산지역 협력업체들도 조업률을 30%정도 낮추었으며 대구지역 협력업체들도 지난달 15일부터 잔업을 없애는 등 조업단축에 들어갔다.특히 대구지역 5백40여개 자동차부픔업체 가운데 절반이상이 현대자동차 납품업체로,매출액이 40%정도로 줄어 피해액은 2백여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오해룡 울산중소기업협의회장은 『부분파업이든 전면파업이든 중소기업이 받는 충격은 비슷하다』면서 『이달말까지 분규가 계속될 경우 연쇄도산은 불보듯하기 때문에 현대 노사가 조속한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호소했다.
  • TV콘서트/20∼40대에 큰 인기/K­1TV 「열린…」 M­TV

    「음악이 있는…」 각광/다양한 레퍼토리·방청객 참여 등 호응 좋은 음악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프로그램들이 안방에 새 맛을 주고 있다.지난 봄개편때 신설된 MBC­TV 「음악이 있는 곳에」(일·하오11시 연출 안우정)와 KBS­1TV 「열린음악회」(일·하오7시 연출 장찬성·서태룡)가 그 프로그램들로 10대 취향의 현란한 TV쇼를 외면해온 20대 후반∼40대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모으고 있다. 이들 두 프로그램은 많은 가수들이 자발적으로 출연을 희망하는 프로그램으로까지 부상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그동안 방송에서 소외됐던 수준급 대중가요를 레퍼터리로 채택,가수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본령이 어디에 있는가를 확인시켜주는 진솔한 음악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이 있는 곳에」는 MBC가 지난 봄개편때 내놓은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호응이 큰 고급 음악프로그램이다.전자악기를 쓰지않는 이른바 「언플러그드 라이브 콘서트」를 표방하는 이 무대는 격조있고 풍부한 음악세계를 전한다는 점외에도 비디오 중심의 요란스런 TV쇼와 테크노·랩·댄스음악의 지나친 부상등 최근 가요계의 이장 흐름을 치유한다는 숨은 의도를 담고 있다. 시청자의 반응조사를 위해 파일럿 프로그램을 내보내는등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제작된 「음악이 있는 곳에」는 한마디로 음악성 있는 가수들의 안방 콘서트.특히 이 프로에는 20대후반∼40대 시청자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반가운 얼굴들이 출연하고 있다.근래에 TV출연을 거의 안해 근황이 궁금했던 가수들이 나와 감회깊은 분위기로 히트곡을 부른다.탤런트 최명길의 차분하고 분위기있는 진행으로 3명내외의 가수가 초대돼 7∼9곡의 노래를 부르는 이 자리에는 송창식 양희은등 70년대 통기타 가수에서부터 나미,김수희,최진희,윤시내등 성향을 달리하는 가수들이 참여하면서 음악장르간의 벽을 허물고 있기도 하다. 「음악이 있는 곳에」가 시청자층에 제한을 두고 있는 프로라면 KBS­1TV의 「열린 음악회」는 제목이 암시하듯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본래 중장년층이 즐길만한 쇼프로가 없다는데서 출발했으나 여기에자녀와 부모가 함께 감상함으로써 세대간의 벽을 허물겠다는 의도가 더해져 보다 자유로운 포맷으로 꾸며지고 있다.더구나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싱어롱 코너도 있어 방청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오현명,박인수등 국내 유명 성악가들이 출연해 주옥같은 가곡은 물론 가요,팝송까지 불러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깨고 있기도 하다.30∼40대 가수들이 동요를 부르기도 하고 또 최근 인기있는 젊은 가수도 가끔 등장시켜 부모와 자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최신음악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자연스런 계기를 제공,각광받고 있다. 따라서 이런 좋은 프로그램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시간대에 편성하는 한편 10대에 빼앗긴 채널권으로 인해 획일화된 프로그램을 다양화시킬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 약사님들 약국문 여시오(사설)

    『전국 2만1천여 약국의 약사님들은 지금 당장 일어나 약국문을 활짝 여시오.이 무슨 가당찮은 행동들이란 말입니까』 아무리 대한약사회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의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전국민의 보건과 직결되는 약국의 문을,그것도 사흘씩이나 닫아걸고 있다니 말도 안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약사법시행규칙개정을 둘러싸고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약사와 한의사간의 분쟁은 한의대생의 수업거부로 인한 집단유급사태에 이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일찍이 없었던 「약국집단휴업」이라는,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해괴한 사태를 쳐다보게 된것이다. 약사법 분쟁의 발단은 재래식 한약장설치금지규정(약사법 시행령 규칙 제11조1항7호)을 지난 2월 보사부가 삭제함으로써 약국의 한약조제를 인정하게돼 시작됐다.이에 반발한 전국 한의대생들은 지난 3월부터 수업거부를 강행해 왔으며 한의사들은 면허증반납을 결의하는 등의 사태로 치닫게 되었다.작금에는 약사회측의 대보사부 로비 의혹설이 제기된 가운데 한의사측에서전보사부장관을 포함한 법개정당시 관계자들을 직무유기로 고발함으로써 더욱 악화됐다.이들간의 분쟁은 결국 영업권역다툼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약사들의 일제휴업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이라는 점에서 지탄을 면할 수 없다.국민의 건강과 보건을 보살피고 시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약국들이 집단리기주의에 사로잡혀 국민건강을 외면한다는 것은 약사의 본분을 망각한 것은 물론이요,지극히 비국민적인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약국이 단 한시간이라도 문을 닫으면 국민들이 겪는 고통과 피해가 얼마나 클 것인가를 약사들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바로 그 점을 노리고 감행된 이번 집단행동은 사회규범에도 어긋나며 부도덕한 행위에 다름 아니다.자신들의 영역권싸움에 왜 국민을 희생시키려 하는가.약사회측의 어떤 명분이나 이유로도 이번 행동은 정당화될 수가 없다. 국민들은 몸이 아프면 먼저 찾는 곳이 약국이다.병원을 찾기보다는 우선 약국부터 들르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오랜 「의료관행」이다. 대한약사회는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한 지극히 무모한 일제휴업결의를 즉각 철회하고 당장 약국문을 열어야 한다.지금 이 아침에도 병으로 고통받고 신음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집과 이웃에 수없이 많다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할줄 안다. 약사·한의 분규의 틈바구니에서 명확한 정책대안을 못내놓고 있던 보사당국도 이제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미뤄서 될 일도 아니고 시간이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라면 역시 당장 무언가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 6·25… 모두 잊고들 있는가(사설)

    국토의 허리가 잘려있는 그 상태대로 또 한번의 6·25를 맞는다.동서이념대결의 시대상황으로 해서 광복된 조국이 남북으로 갈려 동족끼리 3년 남짓한 전쟁을 치러야했던 비극이 6·25였다.이제 그 싸움 있게한 냉전시대는 공산주의의 조락과 함께 스러졌건만 지구촌에 유일한 냉전시대 산물로서의 분단국인채로 그날의 아픔을 되새겨야하는 우리의 마음은 쓰리고 착잡해진다. ○「침략상기」와 「통일추구」 사이 6·25에대한 인식은 해가 갈수록 달라져간다.흔히 구세대는 「침략의 상기」로서,전후세대는 「통일의 추구」로서 인식한다고 표현되기도 한다.그만큼 「역사」는 흘렀다.발발한 그해가 43년전이고 보면 지금 50세초로가 국민학교 1∼2학년이었다는 얘기이다.그렇다할때 이 역사적인 민족의 비극을 피부로 지각할수 있었던 세대는 이제 20%안팎으로 좁아들었다고 할것이다.그 현실 속에서 「역사」로서만 객관화하려는 경향은 짙어간다.그탓에선지 일부 체험세대까지 잊어가고들 있고 또 그러한 사고의맥락에서 남북한문제에 접근하는 층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현실은 포성만 멎었다뿐 그날의 연장선상에서 대치가 계속되고있는 상황이다.힘의 균형이 무너질때 언제 그날이 재현될지 모르는 살얼음판 휴전선이 그 대치의 경계가 아닌가.더구나 그날에 전단을 연 북의 무리들은 그날에 내건 「적화통일」의 기치를 이 엄청나게 변화한 지구촌의 시대상황 속에서도 결코 내리지않고 있다.붙들어야할 종주국을 잃은 마당에서 외로워진 생존을 위하여 더 배타적으로 냉혹해졌다고도 할 것이다.핵무기 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세계에 도전장을 낸사실이 그 일단을 말해준다. ○불변의 노선 「적화통일」 그들은 휴전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높이2백m에 이른다는 「전승」기념탑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인민들은 굶주리고 있는데도 6·25를 「이긴전쟁」으로 선전하고자하는 무리한 공사이다.그들은 그렇게 내부결속을 다지면서 개방을 외면한채 체제유지를 위한 폐쇄사회의 틀을 더 굳혀나가고 있다.이와같은 그들의 기본자세를 외면한채 공개사회이기에 지닐수있는 가치관의 잣대로써저들을 재려하는데는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통일의 추구」도 「침략의 상기」를 바탕에 깔때 비로소 올바른 이정표를 세워나갈수 있다고 할것이다. 사실,민주사에 커다란 오점을 찍은 저들의 죄업을 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물질적 피해는 잠시 젖혀두더라도 국군·유엔군의 사망·실종·부상자 1백15만8천명,민간인 1백만명이라는 인명피해만으로도 참상을 알기엔 충분하다.거기에 전재민 4백만명,전쟁미망인 30만명,전쟁고아 6만명,수많은 실향민이 있다.이는 이쪽의 피해일뿐이니 피아를 합치면 얼마로 될것인지 모른다.그 상처를 쉬이 잊을수가 있겠는가.또 잊어서 되겠는가.국립묘지에 잠들어있는 영령은 말할것 없고 수많은 무명용사와 무고하게 죽어간 원혼이 잊지못한다.그뿐이 아니다.그날의 상이용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보훈병원에 누워 그날을 신음한다.「침략의 상기」를 바탕에 깐 「통일의 추구」여야 한다는 뜻이 여기에 있다. ○잊지 않는것이 재발 막는길 그날에 배후조종한 구소련과는 물론 그날에 우리와 직접 총칼을 맞댄중국과도 수교를 했다.그만큼 세상은 변전했다.그렇건만 유독 북녘의 내나라 내겨레와는 그날과 다름없이 갈라선 채로 오가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한다.그럴수록 겨레의 통일에의 욕구는 용솟음친다.현실보다도 이상쪽에 치우치는 젊은 혈기의 경우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냉철할수 있어야한다.북한의 인민을 생각하면서도 그 인민과 그 위에 군림하는 집권층은 다르다는 사실에 상도해야한다.남한에 남아도는 쌀을 괭이낯짝같은 체면때문에 못받는것이 집권층이라면 이밥에 고기국물 배부르게 먹기 바라는 것이 인민들이다.감시원 있는데서는 『경애하는…』 운운하다가도 그가 잠시 눈돌리는사이 손을 꼭쥐며 눈물흘리는 고향방문단 누이동생의 마음과 집권층마음을 혼동하지 말자는 뜻이다.하건만 대화의 상대는 불행하게도 그 집권층이다.그점에서 민족을 앞세운 감상이나 여과되지못한 정열은 저들에게 자칫 오판만 심어줄 뿐 지향하는바 통일에의 길에는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겠다. 국민들은 전쟁재발에 대한 우려도 적잖이하고있다(61.1%=91년조사).그러나 그날을 잊지않는 것이 재발을 막는 길임은 두말할것이 없다.잊진않되 민족의 양심으로 돌아올때 용서하고 그 바탕에서 순이에 따를때 통일은 이뤄진다고 할것이다.새문민정부 아래서 그를 위한 지혜와 힘을 모아 나가게 돼야겠다.
  • 연천 군부대 폭발사고 현장/“참혹”…피범벅된 포주위엔 찢긴 군화만

    ◎결혼 7개월주부,통곡끝에 실신/입소자가족,생사몰라 발만 동동 ○…이날 사고현장에서 승용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경기도 양주군 해천읍 덕계리 국군덕정병원에는 사고가 나자 내·외과등 10여개과 군의관 10여명과 간호장교·위생병 20여명등 모두 30여명이 후송돼온 환자들을 응급처치하느라 분주. 병원측은 보도진들이 몰려들자 장교·하사관등 10여명을 정문앞에 배치,취재기자들의 출입을 통제. 이들은 기자들이 사상자들의 신원을 묻자 『명찰은 물론 인식표가 없어 알수없다』며 함구. ○…이날 사고소식을 전해들은 입소자의 가족들은 국군덕정병원 앞에서 울부짖으며 『생사만이라도 확인해달라』고 애원. 박복례씨(53·여·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일영2리 944의4)는 하오6시30분쯤 병원에 도착,『차남이 지난 8일 이 부대에 훈련받으러 왔는데 무사한지 모르겠다』면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박씨는 이 병원 소속 하사관들이 정문앞에서 『여기서는 희생자 명단을 확인할수 없으니 소집부대인 서울 수도군단 포병사령부로 직접 찾아가라』고 하자 발길을 되돌리기도. ○…사고 발생 4시간이 지나도록 사고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자 예비군,군관계자,보도진 사이에서 사고 원인을 놓고 엇갈린 지적이 나오는 등 억측이 구구. 군관계자는 훈련중인 예비군들이 피우다 버린 담배불이 장약에 인화되면서 폭발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훈련중인 예비군들은 포사격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는 예비군들이 포탄관리를 부실하게 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추측. 예비군 박모씨(28)는 『훈련에 참가중인 예비군 4백여명 가운데 포를 쏠 줄 모르는 보병 출신이 나를 포함해 4분 1가량 된다』며 『포사격에 대한 기본지식이 전혀 없어 예비군들이 사격 당시 포탄을 잘못 다뤄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 ○…사고 직후 현장에는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뒤엉켜 있는 가운데 부상자들의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 등 아수라장을 이루었다고 현장을 목격한 임재형씨(30·철공업·연천읍 차탄4리)가 전언. 임씨에 따르면 사격장 철책 옆에서 동네 부인들과 나물을 캐던 중 귀가 멍할정도의 『꽝』하는폭음이 서너차례 들린 뒤 매캐한 화약냄새와 함께 부상자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살려달라』며 아우성을 쳤으며 사고를 면한 예비군,현역 사병들이 모포로 사상자들을 감싸기도 했다는 것. ○…동원예비군 사망자 임성택씨(26·예비역 병장·회사원)의 큰형 은식씨(45·인천시 북구 작전2동 863의18 진달래아파트 다동 103호)는 이날 하오 9시30분쯤 텔레비전에서 막내동생의 사망소식을 보고 작전2동 사무소로 몰려와 대성 통곡. 임씨는 『지난 8일 3박4일로 가까운 예비군 훈련장으로 동원훈련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오열. ○…또 사망자 이덕현씨(34·진도인천공장근무·인천시 남구 선학동) 집에는 이씨의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마을 부녀회장 하재길씨(53)등 마을주민 6명이 『사망한 것이 사실이냐』 『시신이 어디있느냐』며 이씨의 죽음을 크게 안타까워하며 발을 구르는 모습. 이씨의 부인 장영미씨(29)는 시댁에서 텔레비전을 보다 남편의 사망소식을 듣고 한때 기절한후 서울 수도병원에 남편의 시신을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시부모와 함께 급거상경. 이씨는 지난해 11월 장씨와 결혼한뒤 7개월만에 변을 당해 이웃주민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기도.
  • 스트레스 해소 상품 속속 등장/뇌파 긴장 푸는 정신안정 음악 선봬

    ◎음성정보 문답통해 해결책 제시도 『스트레스는 그때 그때 풉시다』최근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준다는 상품들이 많이 나와 직장인이나 가정주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스트레스 매니지먼트 연구소는 지난3월부터 스트레스 백신 음성정보 프로그램을 개발,한국통신을 이용해 서비스(700의 61 19)에 들어갔다. 이 프로그램은 초·중·고·대학생및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교우관계,건강,가정생활,취미등 10∼17개의 질문을 해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해주고 해결방안까지 제시한다. 또 뇌파의 긴장을 풀고 쉬는 상태인 알파파로 변환시키는 스트레스 해소음악상품도 나오고 있다. 선경 SKC,소니사,한국음반등은 「평온의 소리」라는 소위 정신안정음악을 컴팩트 디스크와 카세트 테이프로 제작,판매하고 있다. 「환경음악」이라고도 불리는 이 음악은 시냇물 흐르는소리,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소리,파도소리등 자연의 소리에 가장 가깝게 표현한 것이다. 「평온의 소리」는 수험생을 위한 음악,수면음악,종합정신음악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 이같은 음악은 병원에서도 환자들의 정신 안정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이밖에 규칙적이고 깊은 호흡을 통해 폐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근육의 긴장을 푸는 이완(Relax)법,몸통돌리기등 실내에서의 가벼운 운동법,명상법등도 보급되어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원하는 이들을 돕고 있다. 스트레스 매니지먼트 연구소 김재영연구원은 『정신안정음악은 일본과 미국등에서 임상실험을 거쳐 커다란 효과를 보고있는 것』이라면서 『우리도 이제 스트레스를 개인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해소시킬수 있는 많은 연구가 돼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개혁,각계의 자정으로 승화돼야(사설)

    썩어도 이렇게 썩은 줄 몰랐다고 개탄했던 김영삼대통령의 심경은 바로 근자의 시국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경이기도 하다.어느 곳이건 들추기만 하면 비이의 줄기는 얽히고 설킨채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광복후 50년 가까운 세월을 두고 쌓여온 폐습이 한번도 제대로의 정화과정을 거치지 않은채 웅덩이에 괸 물과 같이 썩어온 결과가 이것이다.그 썩은 환부가 깊다.우리 사회는 그 질환 속에 신음해 온 것이다. 이 환부를 도려내야 하고 거기서 새살이 돋아나도록 해야 한다.새 문민정부는 지금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어찌 통증이 따르지 않는다고 하겠는가.하지만 수술을 중단할 수는 없다.더구나 우리사회를 건강한 새 생명체로 재생시키기 위한 이 수술에는 국민 모두의 지지·성원이 뒷받치고 있다.그러므로 개혁은 중단 없이 추진돼 나가야 한다.그것이 새롭고 건강한 사회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뜻에 부응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새정부의 의지가 보다 확고하게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기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개혁을 위한 지속적인 자정노력으로 승화,확산돼 나가야 한다고 본다.그것이 목적달성에의 촉매제로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사실 50년 가까운 적폐이고 보면 어느 일정기간에 타율적으로 삼제해낼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직의 능률이나 능력에도 한계는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총체적 자정노력이 요청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특히 사정의 일선을 맡은 기관의 경우는 「결백한 메스」로써 수술에 임해야 한다는 도덕성 내지는 당위성을 안고 있다.불정한 메스로써 남을 정화한다고 나설수는 없는일 아니겠는가.그래서 감사원·검찰·경찰등 유관기관들이 자체비리의 척결을 위한 내부감찰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이와 함께 군을 비롯하여 국회·교육계·국세청등도 자기정화에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터이지만 그렇게 자율적으로 펼쳐질 때 필요이상으로 위축되는 현상도 줄어든다고 할 것이다.또 그것은 사정이 균형있게 추진되게 하는 자연스러운 조율이기도 하다. 어느 분야고 간에 제도적 모순점이나 허점이 부정 부패로 이어지는 상관관계를 가장 정확히 알고있는 사람은 바로 그분야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들이다.그들은 오랜 세월동안 그 상관관계 속에서 받고 상납하고 하는일을 죄의식 없이 관례화해 왔고 대물림해왔다.자기정화는 이 고리를 끊어야 하고 이 고리에 의해 지탄받는 사람들을 몰아내는데까지 이르러야겠다.그러면서 새로운 사회건설에 걸맞은,능력과 도덕성을 확립한 공인으로 재탄생해야 한다.각계각층이 이 새시대의 흐름을 똑바로 보아야 할줄로 안다.
  • 아파트 40대 주부 피살

    8일 하오 4시20분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무지개아파트 10동 1008호 손두영씨(45·건축설계사) 집 안방에서 손씨의 부인 김선희씨(41)가 얼굴과 목 등을 흉기로 찔려 피를 흘린 채 신음중인 것을 맏딸(17·S고2년)이 발견,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손양은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보니 현관문이 열려 있고 인기척
  • 안전무시 폭파공사의 뒤끝/이석우 사회부기자(현장)

    ◎지반 연약… 구조작업도 애먹어 『23년간의 사고처리반 생활가운데 이처럼 처참한 사고는 처음입니다.사망자 대부분은 탈선의 충격으로 종이를 구겨놓은듯 찌그러진 열차 철판에 끼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부상자들도 피투성이로 찌그러진 철판틈에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사고가 난지 21시간만인 29일 하오2시50분무렵,승객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북구 덕천2가의 사고지점. 7∼8세가량된 남자어린이의 신체일부를 찾아내고 발전차안에 끼인 50대 승무원의 사체를 철판을 뜯어낸뒤 간신히 끌어낸 것을 끝으로 인명구조작업을 마친 한국해양구조대 구본정대장(49)과 129인명구조요원들은 피범벅이 된 희생자들의 유품을 차에 실으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129응급구조대의 양충효씨(33)도 『웬만한 사고모습엔 이골이 나 눈하나 깜빡않는 사고처리·인명구조대원들도 아이들과 부녀자들이 철판에 짓이겨진채 떼죽음당한 모습에는 제대로 사고처리를 진행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숨짓는 이들 주위에선 초대형 기중기등 각종 중장비를 동원한 철도청직원들이 뚝 잘려 나간듯 30m나 붕괴돼 버린 철로 양끝에서 지난밤에 이어 또다시 차체가 절반 가량으로 찌그러든 객차와 활로 밑으로 곤두박질쳐 있는 기관차를 해체,이동시키는 작업을 한창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암반이라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 토사로 이루어져 있는 철로의 불안정한 지반때문에 적지 않게 애를 먹고 있었다. 『갑자기 지반이 꺼지면서 열차가 전복되는 것을 목격했다』는 이 지역주민인 윤정자씨(35·여·부산시 북구 덕천2동 331의1)는 『이 부근은 상습침수지역에다가 1년이면 수차례에 걸쳐 철로보수공사를 벌일 정도로 붕괴등의 위험이 높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적절한 안전대책없이 폭파작업을 계속하며 철로의 지반을 관통하는 공사를 진행할 수 있는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에 대한 책임소재를 꼭 가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너진 철로지반밑에 처박힌 기관차와 객차에 대한 제거작업은 이날 하오 늦게까지 진행됐고 부산시 20개병원에 분산돼 있는 사상자들을 둘러싸고 유가족과 가족들의 오열은 더 심해져만 가는것 같았다.
  • 찌그러진 열차틈서 신음… 비명…/무궁화호 참사

    ◎“꽝” 소리나며 순식간에 곤두박질/잔해·사체 엉겨 폭격현장 방불/포크레인 동원 시신 밤샘발굴 【부산=임시취재반】 휴일 하오 삽시간에 72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시 북구 부근의 무궁화호열차 전복참사현장은 바로 생지옥이었다. 조각나고 찌그러진 열차,피를 흘리며 살려달라는 승객들의 울부짖음,쏟아져 나오는 시신 등이 뒤엉킨 사고현장 주변은 마치 폭격을 받아 피폐화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사고순간◁ 「끽!」하는 급제동 소리와 함께 「쾅!」하고 2∼6호 객차가 잇따라 추돌하면서 순간적으로 열차가 3m 아래로 처박히고 객차들이 선로를 이탈,지그재그로 탈선했다. 사고현장은 이날 한전당국에서 지중화사업을 벌이기 위해 굴착작업을 한 상부지점으로 철로선 길이 5m·하행 선로폭 20m가 아래로 꺼지면서 기관차와 발전열차가 5m 아래로 곤두박질해 처박해 있었다. 선로 5m가 부러지고 50여m는 엿가락처럼 휘어졌으며 5·6호 객차량은 크게 파손돼 승객들이 열차에서 튕겨나오거나 압사하는 사고로 인명피해가 크게 늘었다. 승객들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같은 느낌을 받는 순간 곧바로 차체가 뒤집어졌다고 말했다. ▷사고현장◁ 탈선된 5·6호 객차는 자동차 바퀴에 깔려 깨진 플라스틱 장난감열차를 연상케할 정도로 일그러졌고 승객들은 객차 틈새에 끼인채 신음했다. 탈선기관차는 길이 5m,너비 20m의 지반이 무너져내린 5m 아래쪽으로 처박혔고 나머지 차량들도 연쇄추돌,지그재그로 일그러졌다. ▷사고원인◁ 사고원인을 수사중인 부산북구경찰서는 사고현장 부근에서 전력구 설치를 위해 지하굴착공사를 벌이면서 지반강화조치등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약화된 지반이 열차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지반이 붕괴돼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공사관계자 등을 긴급수배했다. 이번 공사를 하면서 한전은 관계당국과 사전협의도 없었고 철도당국에 통보도 하지 않아 예견된 인재(인재)였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사고현장 부근 주민들은 지하전력구 시공업체인 한진건설(대표 박주백)측이 지하에서 수시로 발파작업을 벌여 집이 흔들리는등 무리한 공사를 계속해 여러차례 안전대책마련을 촉구했으나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고수습◁ 사고가 발생한 직후 경찰과 군부대 119구급대 등이 긴급출동,사망자및 부상자 후송작업을 벌였으나 강한 비바람이 불고 날이 어두워진데다 사고현장 인근의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수습및 복구에 어려움을 겪었다. ◎철도청,대책본부 구성 철도청은 사고가 나자 본청 종합상황실에 사고대책본부(본부장 김경회차장)를 구성,본부아래 복구지원반·수송지원반·섭외지원반을 만들어 부산지방철도청측과 연락을 취했다. 또 사고현장 부산에는 보선원,차량반등 모두 5백36명의 인원으로 사고복구반을 구성,강신태철도청장의 현장지휘아래 복구작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 철로 50m 엿가락처럼 휘어/대참사현장 이모저모

    ◎응급차 모자라 부상자 발동동 ○…사고현장은 한마디로 아비규환 그자체였다. 열차가 급제동하면서 탈선 전복된 탓에 객차의 철제구조물은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지거나 조각나있고 그 사이에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끼여 있어 처참한 사고순간을 실감나게 했다. 사고 뒤 경찰과 소방관등 1천여명이 사고수습을 위해 포클레인등 중장비를 이용,부상자 구조와 사체발굴에 나섰으나 중장비의 도착이 늦은데다 철제구조물이 뒤엉켜 있어 작업에 애를 먹었다. 이에앞서 사고가 나자마자 주변을 지나던 차량들이 급히 달려와 부상자와 사체를 이웃 병원으로 옮기기도 했다. ○…황인성국무총리는 이날 하오9시30분쯤 철도청 상황실에 나와 사고에 따른 수습과정을 보고받고 사고대책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 ○…탈선된 5,6호 객차는 고철덩이처럼 찌그러져 승객들이 객차틈새에 끼인채 신음하고 있어 아비규환. 5호차 앞부분에 앉아있다 다리를 다쳐 한중병원에 입원중인 김태성씨(39·부산 진구 전포1동 276의36)는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앞쪽으로 밀리면서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사고당시 6호차 중간부분 좌석에 있다가 목적지인 구포역에서 내리기 위해 일어서는 순간 열차가 전복돼 오른손과 양다리를 다친 최지원씨(24·여·부산시 북구 삼락동 365의1)는 『구포역 도착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구내방송이 끝나자마자 열차가 땅밑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큰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고 사고당시를 기억. 최씨는 중상자들이 앰뷸런스가 모자라 피를 흘리면서도 사고현장의 땅바닥에 비가 오는 가운데 장시간 드러누워 있어야 했다』며 사고당시의 참상을 전했다. ○…군복무중인 아들과 오빠를 면회하고 귀가하던 일가족 3명중 아버지는 숨지고 어머니는 실종되고 여동생은 중상을 당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백병원에 안치된 안상근씨(53·남구 감만동 511)는 28일 아침 부인 차삼조씨(50),딸 선희양(18)과 함께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끝내고 대구시 소재 육군병원에 배속받은 작은 아들 태호씨(20·경성대 법학과 1년 휴학)를 면회하고 돌아오다 변을 당했는데 부인은 실종되고 딸은 다리골절상을 입고 신라병원에서 가료중. ○…아들과 함께 시어머니 생신에 다녀오려고 사고열차를 탄 아내의 행방을 찾고 있던 박상택씨(38·부산시 북구 덕천2동 주공아파트 105호)는 제중병원등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백병원 영안실에서 아내 권순남씨(32)의 시신을 확인하고는 망연자실.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가운데 군인이 6명으로 단일직종으로는 가장 많았다. 군관계자들은 『교육중 외박나온 장교들이 많아 사망자가 많은 것 같다』고 설명. ○…황인성국무총리는 이날 하오 이계익교통부장관과 함께 사고현장으로 내려가 사고수습을 지시했다. □대형열차사고 일지 ▲45년 9월 대구역 열차충돌사고=사망73명,부상78명 ▲48년 9월 충남 내판역 열차충돌사고=사망 1백명 ▲49년 8월 죽령터널탈선사고=사망46명,부상3백1명 ▲51년 10월 순천∼여수선열차탈선사고=사망 1백20명 ▲54년 1월 오산역열차탈선사고=사망56명,부상78명 ▲55년 3월 부산역열차화재사고=사망 42명,부상45명 ▲69년 1월 휘경동건널목사고=사망17명,부상 68명 ▲69년 1월 천안열차충돌사고=사망 41명,부상 1백3명 ▲70년 10월 충남 모산건널목사고=사망 45명,부상32명 ▲70년 10월 원주터널사고=사망 14명,부상59명 ▲71년10월 남원열차사고=사망20명,부상48명 ▲73년8월 영동역유조열차탈선=사망38명,부상12명 ▲75년6월 정선건널목사고=사망12명,부상74명 ▲76년5월 서울 방학동유조차충돌=사망19명,부상95명 ▲77년7월 충북지난역열차추돌=사망18명,부상1백60명 ▲77년11월 이이열차폭발사고=사망60명,부상1천여명 ▲81년5월 경산열차추돌=사망53명,부상2백44명 ▲84년12월 나주열차충돌=14명사망,14명부상 ▲85년2월 사북화물열차탈선=13명사망,14명부상 ▲87년1월 대구방촌동건널목사고=9명사망,16명부상 ▲91년12월 동두천건널목사고=6명사망,8명부상
  • 열차전복… 71명 사망/철로침하로 9량중 4량 탈선

    ◎어제 하오 무궁화호/서울발 부산행 구포역 부근/1백여명 중경상… 사망자 늘듯 【부산=임시취재반】 6백34명이 탄 무궁화호 열차가 전복,승객 1백80여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28일 하오5시30분쯤 부산시 북구 덕천2동 빅토리아호텔뒤 덕천천 교량 2백m 전방지점인 경부선(구포역기점 서울방향 2·5㎞지점)에서 갑자기 선로지반이 내려 앉으면서 서울발 부산행 117호 무궁화호열차(기관사 노진환·33)의 9량 가운데 객실 2량과 기관차·발전차등 4량이 탈선되면서 전복됐다. 이사고로 29일 상오4시 현재 이용오씨(22·군인·대구시 중구 남산4동 2930의8)등 승객 72명이 숨졌으며 1백8명이 중경상(철도청집계)을 입고 한중·성심·누가·대동·강혜·백병원등 13개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고있다.부상자 가운데는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복된 객실 5·6호 2량에는 1백85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는 기관사 노씨가 사고지점 50m쯤 앞에서 선로가 내려앉은 것을 보고 급제동을 걸었으나 열차가 미처 멈추지 못하고 탈선,전복돼 일어났다. 사고지점은 물금방면에서 구포역으로 접어드는 곡각지점이었으며 사고순간 열차는 시속 85㎞로 달리던 중이었다.사망자나 중상자들은 구포역에서 내리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있다가 변을 당했다. 사고지점 근처에서는 삼성종합건설이 사고지점 지하25m에서 한전 케이블 매설공사를 하면서 발파작업을 벌여 충격으로 지반이 약화된데다 지하수가 스며들어 노면의 침하현상이 일어난것으로 짐작된다. 사고현장의 전복열차는 휴지조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찌그러져 있었으며 부상당한 승객들은 열차안에서 서로 엉켜 신음하고 있었다. 이 열차는 이날 낮12시45분 서울역을 출발,하오5시41분 부산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철도청은 사망자에 대해서는 일단 1인당 2백만원의 장례비를 지불하고 라이프니치방식으로 국고에서 보상키로 했다. 한편 부산지검은 형사 1부 정종우 부장검사를 반장으로 하는 사고전담수사반을 편성,사고원인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 인왕산의 앓는 소리는…(박갑천칼럼)

    역사를 뒤돌아보느라면 현군아래 현신있었음이 눈에 뜨인다.가령 우리의 조선왕조만 보아도 세종임금 때에 어질고 학문 깊으며 충성심 짙은 신하가 많았음을 알게 한다.왜일까.현군은 보배로운 재목을 볼줄 아는 위에 그러안을 줄까지도 알았기 때문이다.다른 시대라고 해서 어찌 재목이 없었다고 할 것인가.중요한 것은 그것을 볼 줄 아는 눈이었다고 할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유명한 보물이 이른바 「화씨의 구슬」(화씨벽)이다.초나라의 화씨가 발견했대서 붙은 이름이다.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가장 값비싼 보물로서 어느 때던가,성 열다섯개와 바꾸자는 말이 나왔을 정도이다.그렇건만 화씨가 이를 여왕에게 바쳤을 때 그는 보배임을 몰랐다.도리어 왕을 속였다 하여 왼다리를 잘린다.그 다음 무왕이 즉위한다.그 또한 돌로밖에 못보게 된다.이번에는 오른발까지 잘려 앉은뱅이가 된다.그를 잇는 임금이 문왕이다.그가 비로소 이 구슬을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들어오는 복을 발로 찬다는 우리 속담을 생각케 한다.여왕이나 무왕은 보배를 보는 눈이 멀어 있었다.그것은 그 복을 받을 만한 주제가 못되어서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마태복음」(7장 6절)에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가르친 뜻도 거기에 있다.그 진가를 모르는 자에게 고귀한 것을 주어도 무의미하다는 뜻이었다.여왕이나 무왕은 그 「돼지」였다고 할 것이다. 보배로운 것을 안겨주는데도 옅은 생각이나 어두운 시력으로 해서 괘괘떼는 것을 볼때 사람들은 이를 비웃는다.알아주면서 소중히 간직할 줄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보기 때문이다.그 어리석음은 더 빛나는 보물이 들어오는 길까지 막는 짓이기도 하다.모든 보배로운 것은 보배로움으로 보아줄 줄 아는 사람의 품을 동경하는 게 아니던가. 청와대 언저리를 개방한 것은 민주발전이라는 보배로운 빛에 연유한다.그것은 우리 모두가 소중히 북돋워야 할 보배로운 계기이다.그런 곳을 시위하고 소리치는 곳으로 만드는 짓은 어리석다.인왕산을 신음하게 하는 공중도덕 부재 역시 그렇다.「화씨의 구슬」을 돌로 아는 짓이며 돼지 앞에 던져진 진주 꼴로 만드는 짓이다.스스로 「누릴 자격 없음」을 고백하며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작태들이 아닌가.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대형철제책장 붕괴/출판사직원 둘 압사

    12일 하오7시30분쯤 서울 송파구 삼전동14 강남출판영업소(소장 정천상·48·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아파트135동601호)지하1층 서고에서 정씨와 직원 차정은씨(21·여·성동구 금호동4가426)등 3명이 신음중인 것을 외근사원 정윤상씨(32·서초구 염곡동 208)가 발견,이웃 병원으로 옮겼으나 차씨와 여직원 김정란씨(21·송파구 삼전동 15의9)등 2명은 숨졌다. 외근사원 정씨는 경찰에서 『판매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와보니 높이2m 폭6m짜리 철제앵글 책장 3개가 무너져 있었고 책더미 밑에서 소장등이 신음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차씨등이 서고에서 재고정리를 하다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책장이 무너져 변을 당한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중이다.
  • 작업중 라면 끓여먹던 공원/들키자 전기선 잡아 감전사(조약돌)

    ○…작업시간에 감독자 몰래 라면을 끓여 먹던 10대 공원이 작업반장이 부르는 소리에 놀라 엉겁결에 전기선을 잡아 감전사. 지난 6일 상오 11시쯤 부산시 북구 모라1동 282의 4 동양알미늄(사장·안해남·42)조립공 김성철군(19·부산 북구 덕포1동 421의 14)이 전기에 감전돼 신음중인 것을 동료 조정원군(19)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조군에 따르면 김군은 자신과 함께 작업장내에 있는 가스버너에 감독자 몰래 라면을 끓여 숨어서 먹던중 작업반장인 변모씨(21)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일어서다 벽에 설치된 2백20v짜리 고주파기 스위치 전기선을 손으로 잡는 순간 감전됐다는 것.
  • 달라진 각의…안기부장 등 배제/문민시대 실감…첫 국무회의 이모저모

    ◎“우리부터 달라져야”… 시종 개혁 강조/격식 간소화… 자유토론 유도 두차례/회의후엔 칼국수 점심… 부처 현황 대화 김영삼대통령은 27일 청와대에서 새정부 첫 국무회의를 주재,개혁과 변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하고 국무위원들의 자기혁신과 자기정화를 촉구했다. 이날 청와대회의는 종전에 비해 1시간 이상이 빠른 상오8시30분에 시작됐으며 감사원장,안기부장과 차관급으로 격하된 대통령경호실장이 참석하지 않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김대통령은 감사원장과 안기부장의 불참에 대해 『국무회의에 그분들이 참석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참석하지 말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국무회의를 마치고 이날 낮 청와대에서 국무위원들과 칼국수로 오찬을 함께 하며 『차관을 비롯한 후속인사가 시간을 끌면 공무원들이 불안해 하니 업무파악을 빨리 해 서둘러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국무회의 서두에 『이른 아침에 새정부 출범후 첫 국무회의를 개의하게 돼 정말 반갑고 여러가지 한없는 감회가 앞선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대통령은 『국무위원 모두가 새사람으로 구성된 만큼 완전한 새정부의 출범이며 이번 내각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지적하고 『국민들도 새내각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가 나와있다』고 자신감을 피력. 김대통령은 이어 단호한 어조로 『국민의 일상적인 삶에서 빚어지는 애환과 고통을 우리 공직자들은 듣고 또 그것을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면서 『짐에 눌려 신음하는 사람,힘 있는 사람에게 짓밟히고도 호소할 데 없는 사람들을 우리가 돌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변화와 개혁이 대통령의 의지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개혁은 누구에게 피해를 주고 누구에게 득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하고 깨끗해져야 하며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면서 국무위원들의 솔선을 강조하고 대통령자격으로 본인의 재산을 공개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김대통령은 행정조직의권위주의,관료주의청산을 강조하고 『국무위원 모두가 국민에게 참된 봉사자가 된다는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짐하자』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지시에 앞서 황인성총리는 『30년만에 처음으로 출범하는 문민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국무위원들이 솔선수범해 국정쇄신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하고 자신의 재산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취임후 의전·경호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새로운 집무스타일을 선보여온 김대통령은 이날도 폐회선언에 앞서 두차례씩이나 국무위원들에게 자유로운 대화를 유도하는 등 문민시대에 걸맞게 달라질 국무회의의 모습을 예고. ◎…김대통령은 이날 낮 국무위원들과 오찬을 시작하면서 『청와대 점심이라고 해서 대단할 줄 알았겠지만 칼국수다』라면서 『앞으로도 청와대 식사는 칼국수나 설렁탕』이라고 이해를 구했다. 이에 황산성환경처장관이 『이미 밖에서 알고 들어왔다』고 말해 폭소. 이어 한완상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국회에서 신임인사를 한 것과 관련,『국회의원이 말할 때는 잘한다고 격려해 주더니 우리에게는 너무 차별하더라』고 말한데 이어 황환경처장관이 『의원에 대해서는 못해도 의레 잘한다고 하더라』고 맞받아 좌중은 연이어 웃음바다. 김대통령은 『인사말은 짧을 수록 좋고 연설도 짧을 수록 좋다』면서 『후르시초프는 3∼4시간 연설을 했다더라』고 언급. 김대통령이 이어 『이번 각료임명에 대해 여론조사를 해 본 결과 75%가 잘됐다고 응답했다』고 소개하고 『정말 책임이 크다』고 말하자 박관용비서실장이 『그런데도 칼국수만으로 됩니까』라고 조크,또 다시 폭소. 김대통령은 여성장관 3명 기용에 대해 언급,『이렇게 여성장관이 많은 것은 우리 사상 최초』라면서 『여성을 담당하는 제2정무장관실 차관이 남자인 것은 이상하며 앞으로 여성으로 차관을 임명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황환경처장관에게 『환경문제의 중요성에 비추어 사실 환경처장관은 부총리로 격상시키려 했던 자리』라고 말하고 『여성을 환경처장관에 임명한 것은 특히 여성들이 깨끗한 물·쓰레기 등 환경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사과와 배의 산출량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며 『대만에 사과와 배를 수출할 수 있도록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대만과 모종의 교섭이 순조롭게 진행중임을 시사. 김대통령은 식사를 끝내며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개혁은 하되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의견이 60%를 넘었다』면서 『속도는 조절해야겠지만 개혁을 두려워하지 말고 착실히 추진하라』고 강조했다.
  • 장진홍의사 기념관 동상건립 추진

    ◎일제에 항거…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추모사업회,의거 66주년 맞아 왜관에 1927년 10월 18일,단신으로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식민지지배에 신음하던 2천만동포들에게 독립의지를 다져준 창려 장진홍의사(1895∼1930년)의 의거 66주년을 맞아 기념관과 동상건립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번 사업은 장의사추모기념사업회(위원장 박세직)가 지난해 8월 의거65주기에 맞춰 발간한 장의사의 일대기 「창려 장진홍 의사」에 이은 2번째 추모사업.이를위해 관련인사들은 기념사업회재발족준비위원회(위원장 윤복수)를 구성했다.기념관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동에 세워진 기념비각옆에 건립될 계획이며 규모,착공일등 구체적인 세부계획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장의사는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한뒤 도피생활 14개월만에 일경에 체포돼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사형집행 바로 전날 자결했다.이 사건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8년전의 3·1운동과 2년뒤의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 장렬한 항일무장투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왜관문화원 장재영원장(80)은 『일대기발간을 계기로 뜻있는 사람들끼리 우리 향리를 빛낸 선생의 동상과 기념관을 건립해 후세에 선생의 애국의지를 남기려 하고 있으나 사업비마련에 차질이 생겨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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