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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4회 교정대상 수상자] ‘자비상’ 이복열 창원교도소 교정위원

    [34회 교정대상 수상자] ‘자비상’ 이복열 창원교도소 교정위원

    경남 창원에 있는 석봉암의 주지로서 1990년부터 불교 종교 봉사활동을 통해 수용자들을 교화해 온 모범 종교위원이다. 17회에 걸쳐 1120명의 수용자에게 수계를 받게 함으로써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 매년 빵, 우유 등 752만원 상당을 지원해 수용자들을 격려했다. 2001년부터 2009년까지는 수용자들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도록 털장갑을 나눠 주기도 했다. 2002년에는 교도소 불상이 태풍으로 파손되자 새로 건립하면서 수용자들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 평창 마스코트 백호 ‘수호랑’

    평창 마스코트 백호 ‘수호랑’

    영험한 동물로 여겨지는 ‘흰 호랑이’ 백호(白虎)가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로 확정됐다. 백호의 이름은 ‘수호랑’(왼쪽·Soohorang)으로 정해졌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는 2일 “전 세계인과 평창의 소통 매개체 역할을 할 공식 마스코트로 백호와 반달곰을 선정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수호랑’은 한국의 대표 상징 동물인 호랑이를 소재로 올림픽 정신인 세계평화를 보호한다는 의미의 ‘수호’와 강원도 정선아리랑을 상징하는 ‘랑’이 결합된 것이다. 조직위가 마스코트로 백호를 선택한 것은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마스코트였던 ‘호돌이’의 연속성을 지키면서 민속신앙에서 마을 안녕을 기원하며 인간을 보살피는 신으로 자주 등장하는 신성함도 강조하겠다는 의도다. 조직위는 또 동계패럴림픽 마스코트는 반달가슴곰을 형상화한 ‘반다비’(오른쪽·Bandabi)로 결정했다. 반다비는 한국과 강원도의 대표 동물인 반달가슴곰의 의지와 용기를 뜻한다. 반달가슴곰의 ‘반달’과 대회를 기념하는 ‘비’를 결합해 명명했다. 조직위는 다음달 수호랑과 반다비에 대한 소개 행사를 서울과 평창에서 연다. 이어 8월에는 리우올림픽 현장에서 해외 홍보에 나서며 9월에는 조형물 제작, 지역 순회 전시 등을 통해 대회 붐 조성에 나설 계획이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해외여행 | 나가사키현 시마바라 반도 운젠雲仙의 3가지 선물③水 운젠온천 & 운젠지옥

    해외여행 | 나가사키현 시마바라 반도 운젠雲仙의 3가지 선물③水 운젠온천 & 운젠지옥

    ●水 운젠온천 & 운젠지옥 신선은 지옥에 산다 운젠의 온천탕들은 지표에서 용출되는 온천수만을 끌어다 사용한다. 지붕은 모두 빨간색이다. 국립공원에 적용되는 규칙이다. 그래서 운젠온천은 화려하지 않지만 평화롭다. 오랫동안 쉬어 가고 싶은 곳이다. 온천이라고 쓰고 운젠이라고 읽다 운젠온천雲仙溫泉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 료칸의 객실을 배정 받고 짐을 풀었다. 테라스의 창문을 열었더니 눈앞에 운젠 지고쿠雲仙地獄, 즉 지옥이 펼쳐졌다. 유황냄새도 훅 끼쳐 왔다. 그리고 그날 밤은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비보를 들었다. 운젠시 최고의 여행지는 단연 운젠온천이다. 운젠온천의 역사는 승려 교기가 만묘지滿明寺라는 절을 창건한 701년에 시작됐다. 한때는 1,000여 명 이상의 승려들이 수행했을 정도로 흥했던 곳. 당시 승려들은 이곳의 명칭을 온천温泉이라고 쓰고 운젠雲仙이라고 읽었다. ‘温泉’이라는 한자를 ‘온센’으로 읽을 수도, ‘운젠’으로 읽을 수도 있었기 때문. 하지만 운젠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헛갈리지 않도록 표기를 ‘雲仙’으로 통일했다. 만묘지는 시마바라 난 때 소실되었지만 1년 후 재건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한밤의 지옥순례를 신청한 사람들이 모두 집합했다. 지옥에는 가로등이 없다. 랜턴 하나에 의존한 채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겠다고 모인 사람이 30여 명은 족히 넘었다. 시각을 지워 버리자 후각과 청각이 예민해졌다. 무슨 사건의 실마리라도 찾듯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발을 옮기며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온천수가 흘러나오는 이 일대는 마치 폭격을 당한 듯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지옥의 종류가 무려 30여 가지나 된다. 오이토라는 여자가 간음 후 남편을 죽인 죄로 처형된 장소라는 오이토지옥이 있는가 하면 키리시탄(그리스도교도)*을 처형한 날 분출을 시작했다는 세이시치 지옥도 있다. 지옥 중의 지옥은 ‘대규환 지옥’이다. 귀를 기울이면 아비규환의 비명이 들려올 것이라는 가이드의 집요한 설명에 한참 동안 귓불에 손바닥을 대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깨끗이 포기하고 료칸으로 돌아와 그 지옥에서 흘러나온 물에 몸을 담갔다. 운젠화산 중턱에 자리잡은 운젠온천은 고지대에서 분출되는 유황온천이다. 산 아래 해안가에서 분출되는 오바마온천이 나트륨 함량이 높은 것과는 크게 다르다. 혈액 순환 촉진과 노폐물 배출 효과가 있으며 피부 탄력과 미백에 좋다. 지옥을 통과하니 드디어 천국이다. *시마바라 키리시탄 | 1549년부터 나가사키를 통해 일본에 전파된 기독교는 곧 시마바라 반도까지 확장됐다. 1600년대에 7만여 명에 이르는 시마바라 반도의 주민 모두가 ‘키리시탄그리스도교도’이었을 정도로 포교가 활발했지만 도쿠가와막부의 금교령으로 곧 탄압이 시작되었다. 당시 운젠지옥의 열탕은 배교를 강요하는 고문과 처형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1637년에 하라성에서 시마바라의 난1637~1638년이 발생해 3만여 명의 신도들이 희생을 당했다. 이후 살아남은 소수의 신도들은 1873년 금교령이 철회되기까지 250여 년 동안 숨어서 신앙을 이어 왔다. 운젠지옥에 세워진 순교자비를 포함해 시마바라 반도 곳곳에 성지순례 유적지가 남아 있다. 운젠지옥 나이트 투어1시간 정도의 도보투어. 오직 밤에만 들린다는 지옥의 소리와 금빛으로 빛나는 광물 등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숙박하는 료칸이나 운젠관광협회에서 예약할 수 있다. 걷기 편안한 신발만 준비하면 된다. 1인당 500엔 저녁 7시, 8시 출발 +81 957 73 2626 www.unzen.or.jp 지옥은 동쪽에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옥에도 흥망성쇠가 있다는 점이다. 운젠의 지옥들은 조금씩 동쪽으로 이동 중이다. 일례로 8만4,000가지 번뇌로 인해 저지른 악업 때문에 사후에도 고통을 받는다는 구舊 팔만지옥은 확연하게 그 기세가 쇠퇴한 모습이다. 아직도 60℃ 정도의 온천수가 솟아나지만 지옥지열체험장소로 용도를 변경했다. 테이블을 놓고 보를 한 장 덮었을 뿐인데 엉덩이가 뜨끈하다. 히터가 필요 없는 코타츠라고 하여 ‘에코타츠’라 부른다. 테이블에 둘러앉으니 피해 갈 수 없는 간식타임. 온천수로 삶아낸 계란과 많이 달지 않고 개운한 운젠 레모네이드 한 병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시마바라의 천연 탄산수로 만든 운젠 레모네이드는 초창기에 운젠을 찾았던 외국인들이 마셨던 레모네이드를 재현한 것이다. 따끈해진 엉덩이가 바닥에서 잘 떨어지지 않지만 운젠산 정보관을 빼놓을 수는 없다. 시마바라 반도의 기원뿐 아니라 조류 관찰 등 다양한 이벤트에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유료지만 짐도 보관할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지옥을 벗어나 맑은 공기와 차가운 물을 찾아 갔다. 운젠지역에 식수를 공급하는 오시도리노이케원앙 연못는 에메랄드 물빛으로 유명하다. 이 오묘한 색의 비밀은 온천에서 나온 강한 산성 성분에 있다. 마을과 멀어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것은 붉은 지붕으로 통일된 단정한 온천마을의 전경이었다. 운젠온천은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편의점도 만들 수 없고, 지붕색도 붉은 색 한 가지로 통일되어 있다. 붉은 지붕의 마을과 에메랄드빛 호수는 서로를 더 도드라지게 한다. 산책로를 걷다 보니 푸른 이끼로 뒤덮인 숲과 암석으로 이뤄진 신사가 나타났다. 바위에 새겨진 다이코쿠텐상大黑天像은 일본에서는 칠복신중 하나로 음식과 재물복을 관장한다. 원래는 익살스런 표정으로 오른쪽에 황금망치를 왼쪽에 황금자루를 쥐고 있다는데, 바위 위에 새겨져서인지 오히려 신비로운 분위기다. 현지에서는 ‘파워 스폿’이라고 부를 만큼 특별한 기가 넘치는 곳이니 기운을 ‘충전’해 보자. 글 천소현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이진혁 취재협조 운젠시 관광물산과 www.city.unzen.nagasaki.jp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은평 금성당, 박물관으로 재탄생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금성당은 조선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을 모신 신당(神堂)이다. 금성대군은 둘째 형인 수양대군(세조)에게서 조카 단종의 안위를 지키려다 여러 차례 유배당하고 단종의 복위를 시도하다가 세조에게 처형당했다. 무속신앙은 강직한 성품과 충정이 높은 금성대군을 신격화했고, 서울 지역에 금성당이 세 곳이나 있었다. 1970년대 도시개발에 밀려 두 곳이 사라지고 진관동 금성당만 남았다. 금성당은 전통 굿당의 모습을 그대로 품고 있어 건축적 가치도 높다. 2008년에는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58호로 지정됐다. 이런 금성당이 샤머니즘박물관으로 재탄생한다. 금성당의 보존과 활용 방안을 고민하던 은평구는 이곳에서 토속신앙을 바탕으로 한 전통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 승인을 받아 샤머니즘박물관으로 개관했다고 26일 밝혔다.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2008년 은평뉴타운 공사를 할 때 사라질 뻔했지만 구와 서울시, 문화재청의 노력으로 보존할 수 있었다”면서 “종교를 떠나 일반인이 쉽게 접하지 못했던 한국과 다른 나라의 토속 샤머니즘 유물들을 만나는 의미 있는 곳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씨줄날줄] 반가사유상/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반가사유상/서동철 논설위원

    싯다르타 태자는 벌레가 새에게 쪼아 먹히고, 새는 다시 맹금류에 잡아먹히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비참함에 눈뜬다. 사람이 늙고 병들어 죽어 가는 모습에서는 더욱 고뇌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깊이 사유하게 됐다. 지금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일부 지역인 간다라에서 나타난 반가사유상은 이렇듯 깊은 고뇌에 잠긴 싯다르타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결국 출가를 결심하는데, 경주 석굴암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본존불은 바로 깨달음을 이루는 순간 석가모니의 모습이다. 반가사유상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채 오른 손가락을 왼쪽 뺨에 살짝 대어 깊이 사유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반가(半跏)는 아래로 내린 왼쪽 다리의 무릎 위에 오른 다리를 올린 모습을 말한다. 반가는 반가부좌의 줄임말이다. 반가사유상에 ‘미륵보살’이라는 표현을 덧붙였던 시절도 있었다. 일본 오사카의 야추지(野中寺)에 전하는 반가사유상의 발바닥에 ‘병인년’(666년)과 함께 ‘미륵’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반가사유상은 곧 미륵보살’이라는 등식이 한동안 통용됐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반가사유상 역시 미륵보살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 반가사유상의 제작 시기가 삼국시대 말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당시 불교 신앙의 양상과 궤를 같이한다.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의 왼쪽 협시보살도 반가사유상의 모습이다. 반가사유상이 집중 조성된 6세기 말 7세기 초의 마애불이다. 미륵은 미래 이 땅에 내려와 죽음이 없고 평화로우며 풍요로운 도솔천을 구현하는 존재다. 싯다르타의 고뇌를 극복한 세상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싯다르타가 고뇌한 이유와 미륵의 역할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반가상이 꼭 미륵이라고 할 수도 없어 오늘날에는 반가사유상이라는 표현이 지지를 얻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 국보인 나라 주구지(中宮寺)의 목조반가사유상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현실화되기 어려운 일이 성사된 것이다. 두 반가사유상을 보고 있노라면 닮았으면서도 다른 한·일 두 나라의 미의식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사실 닮은 것으로 따지면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 고류지(廣隆寺)의 반가사유상은 쌍둥이만큼이나 닮았다. 개인적으로 두 반가사유상도 우리 것은 우리식의, 일본 것은 일본식의 미의식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함께 전시했다면 특별전의 취지와는 관계없이 불필요한 고류지 반가상의 제작지 논란만 다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보 제78호와 주구지 반가사유상을 특별전에 앞세운 것 역시 고심의 결과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美·日 정상회담] G7 정상, 日우익 성지 이세신궁 방문… ‘전쟁 미화’ 논란

    [美·日 정상회담] G7 정상, 日우익 성지 이세신궁 방문… ‘전쟁 미화’ 논란

    아베 회담 명칭 정할 때부터 신궁 방문 일정 염두해 둔 듯 주회담장 앞엔 경찰 2만명 경계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26일 오전 단체로 방문하는 이세신궁에 대해 관심이 집중된다. 이세신궁은 도쿄의 메이지신궁, 오이타의 우사신궁과 함께 일본의 3대 신궁으로 불린다. 신궁은 역대 일본 왕실과 관련된 인물을 기리는 신사로, 다른 신사보다 격이 높다. 신궁이나 신사는 일본 고유의 토속 신앙인 신토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5일 오후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이세시마로 이동하는 길에 이세신궁을 참배했다. 이세신궁은 일본 왕실의 조상신으로 전하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사다. 일본에 있는 약 8만개의 신사를 총괄하는 신사 총본산에 해당한다. 이런 연유로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들이 합사된 도쿄의 야스쿠니신사와 차이가 있지만 과거 전쟁을 미화했던 일본 보수 우익들이 신성하게 여기기는 마찬가지다. 이세신궁은 과거 제정일치와 일본 왕을 떠받드는 국체 원리주의 총본산 역할을 하던 종교 시설이다. 지도자들의 이세신궁 방문은 일본 헌법이 규정한 ‘정교분리’를 위반했다는 논란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G7 정상회의 장소를 미에현 시마시(市)로 정하고도, 회담 명칭을 이웃 이세와 합쳐 ‘이세시마 서밋’으로 정할 때부터 정상들의 이세신궁 방문 일정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이세신궁은 오래된 문화재로서 정상들의 방문에 깊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보기도 한다. 주 회담장인 가시코지마 섬에 있는 시마관광호텔은 진주 양식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아고 만을 바라보고 있다. 1951년 개장한 서양식 리조트 호텔로, 쇼와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무라노 도고가 설계했다. 쇼와 일왕 등 저명인사들이 다녀갔으며 여러 소설의 무대가 됐던 명소다. 아고 만에 있는 크고 작은 섬, 석양 같은 조망이 일품이다. 이세 새우, 전복 등 현지의 어패류를 이용한 요리로 유명한 관광지다. 섬은 가시코지마대교 등 2개의 다리로 외부와 연결된다. 교량 2개만 차단하면 난공불락의 요새로 바뀐다. 일본 정부는 정상회의를 위해 지난 21일부터 대교와 철도를 통제하고 있다. 가시코지마 주변 약 5㎢에 대해서도 선박 접근 제한 조치가 내려졌다. 경찰 2만 3000여명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신이 죽은 시대’ 인간이 사는 힘은

    ‘신이 죽은 시대’ 인간이 사는 힘은

    무신론자의 시대/피터 왓슨 지음/정지인 옮김/책과함께/832쪽/3만 8000원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1882년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이 단호한 선언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렀고 여전히 회자되는 명언이다. ‘신의 죽음’ 이후 인간이 의지할 존재로서 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 방법을 찾았을까. 실제로 니체는 신 없는 세상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이 책은 그 대목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니체의 선언이 있은 뒤 신이 사라진 세계를 개탄하며 고통스러워한 이들도 있었지만 남겨진 것들에서 살아갈 힘을 길어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오히려 그 세상에서 더욱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더욱 진지하고 치열하게 성찰한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영국 출신의 언론인이자 지성사가인 저자는 바로 그들을 주목한다. 니체 직후 세대부터 현재까지 거대한 문화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숨 가쁘게 연대기적으로 조망했다. 문학에서 미술, 철학, 심리학과 정치운동, 세계대전과 극예술 대중문화까지를 832쪽의 방대한 서사로 엮어 놓았다. 놀랍다. 종교적 신앙이 사라진 곳에서 대담하게 피어난 새로운 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책에 드러난 극복의 방안은 이렇게 압축된다. 모든 것에 존재하는 끈질긴 실체성, 절정의 순간, 작은 기쁨, 휴일의 삶, 자발적 긍정…. 프루스트가 말한 ‘지복의 순간들’, 입센의 ‘정신적 가치의 섬광들’, 예이츠가 강조한 ‘황홀한 긍정의 짧은 순간’이 모두 그런 화두로 꿰어진다. 전체성과 단일성에서 벗어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순간을 붙잡으려 노력한 결과물들이다. 특히 저자는 ‘전체성’이나 ‘단일성’이라는 관념의 퇴조야말로 20세기에 이뤄진 큰 성취라고 꼽는다. 그런 차원에서 1·2차 세계대전기 문화·사회상의 변화를 꼼꼼하게 정리해 흥미롭다. 1차 세계대전 무렵 니체는 “새로운 무엇이 되고 새로운 무엇을 나타내고 새로운 가치들을 표상하라”고 제안했다. 그 말은 바로 기성의 고급문화에서 소외된 아방가르드에 대한 의미의 부여다. 실제로 표현주의 시인 에른스트 블라스는 독일제국 시기 베를린의 카페 생활을 이렇게 묘사한다. “내가 한 일은 당시의 거대한 속물주의에 맞선 전쟁이었다. 그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이들은 누구보다도 반 고흐와 니체, 프로이트, 베데킨트였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 합리주의 이후의 디오니소스였다.” 저자는 2차대전으로 인류는 ‘0시’에 도달했고 장기적 결과와 마주했다고 쓰고 있다. 들끓는 전쟁과 점령 상황 속에서 결실을 맺은 실존주의의 태동, 미국 사회에서 깊이 각인된 자유방임적 방향 전환, 홀로코스트가 유대인들의 생각에 남긴 영향이 그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이 세 가지 결과는 커다란 사건이었으며 무력 충돌이 다 끝난 뒤에도 종교적 맥락과 세속적 맥락에서 오래도록 사상과 문화를 형성했고 오늘날까지도 계속 형성하고 있는 관심사들이다.” 니체의 ‘신의 죽음’ 선언 이후 형성되고 세상에 영향을 미쳐 온 일들을 놓고 저자는 이렇게 압축해 표현한다. “자기 삶을 좋은 삶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면 나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론의 끝은 이렇게 맺어진다. “사람은 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이성의 빛 속에서 걷기보다는 스스로 다음 시대의 예언으로서 걸어야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국 개신교 특성 살린 바이블 벨트 조성”

    “한국 개신교 특성 살린 바이블 벨트 조성”

    “미국의 중남부와 동남부에 걸쳐 복음주의 교회공동체가 밀집된 바이블 벨트는 개신교인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130년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의 개신교도 나름의 특성이 많은 만큼 문화적 특징을 살린 한국적 바이블 벨트를 만들려고 합니다.” 경기도 양평 일대에 가정치유센터 ‘W-zone’을 조성해 오는 8월 말 완공 예정인 사단법인 행복발전소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는 1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 개신교 특성을 살려 기독교 선교문화를 다시 쓰겠다”고 밝혔다. W-zone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가족생태계 바꾸기’ 사역에 앞장서 온 송 목사가 수년에 걸쳐 공을 들인 종합가정치유센터. 3만평 부지에 독특한 원형교회인 청란교회와 친환경 수목장, 산티아고 순례길이 조성될 예정이다. 가정사역의 씨앗을 뿌린 이동원 목사 기념홀과 고 강영우 박사를 기리는 강영우광장도 들어선다. 특히 국내에 들어온 선교사들에게 한국의 고유한 가정문화를 교육하는 선교 교육센터까지 만들어 “‘선교 한류’를 온 세계에 퍼뜨릴 계획”이라고 송 목사는 귀띔했다. 이 가운데 청란교회는 4.5평 규모에 높이 9.7m의 초소형 예배당이다. 초기 교회의 관행을 살려 입식 예배당으로 만든 이 교회는 독특한 공간울림(공명)과 양식으로 미국의 한 블로그에 ‘죽기 전 가 봐야 할 세계의 12개 교회’ 중 하나로 소개된 바 있다. “전 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교포들, 특히 기독교 신자들은 고국을 방문할 때 틀에 박힌 일정을 보내곤 합니다. 기껏해야 가족과 만나거나 남대문시장이며 동대문시장 쇼핑 정도가 고작입니다. 그들에게 한국 기독교 문화를 돌아보며 신앙적 도전을 해 볼 기회를 줄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 말마따나 8월 말 W-zone이 완성되면 경기도 가평에 들어선 필그림하우스와 생명의빛 예배당을 연결하는 삼각형의 바이블 벨트가 모습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필그림하우스는 원로 목사인 이동원 목사가, 생명의빛 예배당은 역시 은퇴 목사인 홍정길 목사가 오래전에 조성해 개신교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필그림하우스는 영성, 생명의빛 예배당은 선교, W-zone은 가정의 테마를 각각 맡게 된다고 한다. “기독교계는 흔히 템플스테이 등 불교 문화유산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못마땅해합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전통 문화유산을 프로그램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보며 오히려 반성하고 배워야 합니다.” 지금 개신교계야말로 가정과 행복의 화두를 구체적으로 우리 삶과 사역으로 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송 목사. 그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 교회가 더이상 가면을 쓰지 않고 더 많은 고백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차원에서 “전인적 삶을 이끄는 동력으로서의 바이블 벨트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머물며 자신과 가정, 교회를 세우는 산파역을 톡톡히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염수정 추기경, 강영훈 전 총리 애도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11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강영훈 전 국무총리 빈소를 방문, 애도 메시지를 전했다. 강영훈 전 국무총리는 가톨릭 신자로 교회를 위해 오랜 시간 봉사해왔다. 염 추기경은 애도 메시지를 통해 “강 전 국무총리는 충실한 신앙인이셨다”며 “주교황청 한국 대사와 국무총리를 역임하는 동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을 두 차례나 성공적으로 이끄는 한편, 본인이 신앙생활을 해온 중림동 약현성당이 1998년 화재를 입은 직후 성전복원위원장으로서 소실된 본당의 빠른 재건을 위해 봉사했다”고 회고했다. 염 추기경은 “하느님의 품에 안긴 강 세례자 요한 전 국무총리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간절히 기도드린다”고 염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무슬림 런던 시장, 트럼프에 따끔한 충고

    무슬림 런던 시장, 트럼프에 따끔한 충고

    무슬림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런던 시장이 된 사디크 칸(?사진?)이 반무슬림 공약과 막말을 일삼는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따끔하게 충고했다. 지난해 ‘무슬림 입국 금지’를 선언한 트럼프가 칸 시장의 미국 방문에 대해선 “예외를 두겠다”고 하자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쏘아붙였다.칸 신임 시장은 9일 미국 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내 신앙 때문에 거기(미국)에 가는 것을 제지당할 수 있다”면서 자신의 미국행을 걱정했다. 지난주 사실상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트럼프가 지난해 12월 파리 테러와 미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 총격 사건 이후 “무슬림의 입국을 잠정 금지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칸 시장은 뉴욕과 시카고 등을 방문해 해당 도시 시장과 협력을 논의하고 싶다면서 만약 미국에 가게되면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를 대비해 취임식 전인 내년 1월 전에 방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트럼프는 이날 뉴욕타임스에 칸 시장의 당선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어디에나 예외는 있다”면서 칸 시장은 입국 금지조치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 무슬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칸 시장은 예외 규정에 감동하지 않았다. 그는 “(무슬림 입국 금지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친구, 가족과 나와 같은 배경을 가진 전 세계 모든 이와 관련 있는 것”이라며 “나에게 예외를 두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더 나아가 칸 시장은 “이슬람에 대한 트럼프의 무지는 무슬림을 소외시켜 극단주의를 양산해 세상을 위험하게 만든다”고 비판한 뒤 “이슬람과 서양의 자유주의적 가치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트럼프와 그 측근들에게 런던이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강조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유럽은 마녀 내세워 문명 키웠다”

    “유럽은 마녀 내세워 문명 키웠다”

    여성을 악의 대명사 격으로 묘사 지배층의 반여성적 시각 드러내 마녀/주경철 지음/생각의 힘/336쪽/1만 6000원 흔히들 ‘마녀사냥’은 중세 시대의 광기로 생각된다. 그러나 마녀사냥은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을 거쳐 계몽주의의 환한 빛이 세상을 비추는 근대 유럽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중세 이후 근대까지 공포에 떨게 했던 마녀사냥은 독일 뷔르템베르크에서 1805년 최후의 재판을 기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 책은 그동안 근대 세계의 형성에 관심을 두고 저작 활동을 해온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신작이다. 그의 전작 ‘문화로 읽는 세계사’와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등에서 단편적으로 다뤄진 마녀사냥을 서구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의 필연성과 마녀사냥의 문화적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미시사회학적으로 조명한 역작이다. 저자가 근대 초에 마녀사냥이 정점을 이뤘다는 점에 주목하며 풀어낸 원인은 이렇다. 문명의 이면에 ‘야만의 심연’을 정치적 기제로 숨겨 놓았다는 지적이다. 서구 근대성은 진리에 관한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어기는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권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동원했고, 마녀사냥은 이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 근대성의 산물이었다. 중세부터 유럽은 표면적으로는 기독교가 지배하는 종교 문화로 떠올랐지만 실상은 귀신이나 요정, 각종 영과 고대 이교 신들의 흔적이 강력하게 잔존해 있었다. 초자연적인 힘들에 대한 믿음은 민중들에게 마술적 세계관이 되어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교회와 국가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각하고 신민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동원한 것이 바로 마녀사냥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점을 치거나 병을 치료해주던 민간 신앙 전파자들이 악마의 하수인으로 몰렸으며 국가와 교회, 마을공동체의 복합적 관계 속에 16~17세기 마녀사냥이 유럽을 휩쓸었다. 1400년부터 1775년 사이 유럽과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마녀 재판으로 처형된 사람은 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점에서 마녀사냥의 첫 번째 성격은 민중을 억압하는 근대성의 기제였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마녀사냥을 유럽 문명 발전의 궤적에서 한때 일탈했던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자라온 현상으로 규정한다. 이게 이 책의 핵심이다. 근대 유럽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신성과 마성 등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확고했고, 이런 의미에서 신성의 반대되는 개념인 마녀는 억지로라도 발명됐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마녀사냥이 ‘반(反)여성성’을 띤 억압이었다는 점이다. 마녀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성 희생자의 비중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1350년 이전 악마적인 사악한 행위의 재판 대상자 중 70%가 남성이었고 30%가 여성이었지만 14세기 후반에는 남성 대 여성 비율이 42% 대 58%로, 15세기에는 여성 비율이 60~70%로 늘게 되고, 16~17세기로 가면 80%에 달하게 된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지배계층인 남성들의 인식에서 여성은 욕망에 약하며, 모든 악덕은 그들의 본성에서 비롯되었다는 반여성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같은 생각은 악의 대변인인 마녀가 대개 여성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고착화된다. 프랑스의 영웅이자 신의 뜻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잔 다르크는 이 점에서 마녀라는 강한 의심을 받았다. 잔 다르크를 생포한 영국 역시 프랑스 국왕 샤를 7세의 정통성을 훼손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녀가 마녀 혹은 이단이라는 증명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잔 다르크는 자신을 우상화하고, 악령의 도움을 받았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주 교수는 결론에서 정당성을 위해 악을 필요로 하는 행위는 중·근대 유럽뿐 아니라 초역사적으로 존재했다고 지적한다. 나치 치하에선 유대인이, 파시스트에게는 공산당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는 미제(美帝) 스파이가 ‘마녀’ 역할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편을 악으로 모는 마녀사냥은 문명의 이면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야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느낌, 극락(極樂)같은…길상사(吉祥寺)

    느낌, 극락(極樂)같은…길상사(吉祥寺)

    “내가 우둔해서 그런가--- 운장산 가는 길엔 절도 많더군. 이런 절도 구경하고 저런 절도 구경하면서 온갖 불상들을 봤었네만.. 부처님 마음은 못 보았네.” 극작가 이강백(69)의 희곡 중 ‘느낌, 극락 같은’에 나오는 주인공 ‘서연’의 대사다. 작품은 불상의 ‘형태’를 중시하는 ‘동연’, 이와 반대로 상(相)에 집착하지 않고 부처의 마음을 드러내고픈 ‘서연’의 갈등이 주요한 맥락을 이루고 있다. 만약 ‘서연’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吉祥寺)를 둘러보고 어떤 느낌을 지닐까? 과연 부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절이라고 하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길상사의 주불전은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모시는 대웅전(大雄殿)이 아니라 중생들의 자비와 깨달음을 추구하는 아미타불의 ‘극락전(極樂殿)’이기도 하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323에 위치한 길상사(吉祥寺). 7000여 평에 이르는 넓은 대지, 연건평 3000평과 지상건물 40여동이 1996년 5월 20일에 조계종 송광사 분원으로 등기이전 되었다. 1997년 12월 14일에 개원법회를 열면서 지금의 길상사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이 개원법회에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면서 더더욱 사찰의 이름값을 높이기도 하였다. 원래 3공화국을 대표하는 요정정치의 대명사였던 대원각(大宛閣)이라는 ‘술집’이, 중생을 맑고 밝은 곳으로 교화하는 청정도량인 길상사라는 절집으로 갈음한 것이다. 길상사는 과연 유명세만큼이나 숱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절집이기도 하다. 남로당의 당수였던 박헌영(1900~1955), 이제는 월북시인이 아닌 재북시인이 된 백석(1912~1996), ‘자야(子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길상사의 공덕주인 길상화(吉祥華) 김영한(1916∼1999), 그리고 길상사의 회주 법정스님(1932~2010), 박헌영의 유일한 남한 생육인 원경스님, 그리고 기생 김소산 등등 실로 한국 근현대사 이면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인물들의 삶이 빚어내는 이야기는 뒤로 한 채 여행지로서, 도심의 선원으로서의 길상사를 방문해보자. 막상 길상사에 들어서면, 눈치 빠른 여행객은 입구부터 이 절집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가 있다. 대개의 선종불교 사찰에는 입구에 문(門)만 따로 있는 일주문(一柱門), 혹은 산문(山門)이 있다. 일주문 밖을 속계, 일주문 안을 진계라고 구분 짓는데 오직 일심으로 부처에 귀의한다는 결심을 갖도록 하는 문이다. 그러나 길상사는 애당초에 ‘술집’이었으니 그윽한 맞배지붕으로 만든 본 모양새의 일주문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들어가는 입구가 경복궁 근정전에서나 볼 수 있는 팔작지붕이 하늘높이 솟구쳐 있다. 원래 팔작(八作)지붕이란 물론 절에서도 쓰이지만, 속가(俗家)에서는 권력을 지닌 고관대작들이 드나드는 문의 모양새로 많이 쓰인다. 이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는 권력의 상징이 길상사의 일주문으로 쓰이니 벌써부터 이 절집의 곡절이 심상치 않다. 여기에 내처 길상사에는 여느 절이나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모신 천왕문조차도 없다. 팔작지붕 일주문을 지나 불과 30여 미터 오르막을 오르면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관세음보살상’을 보자마자 대개의 사람들은 뜬금없이 천주교의 ‘마리아상’을 떠올릴 것이다. 맞는 짐작이다. 이 관세음보살상은 독실한 카톨릭 신앙을 지닌 원로 조각가 최종태 작가의 작품으로 2000년 4월에 조성된 관음상이다. 조각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섯 개의 봉우리가 올라 온 관을 쓰고 왼손에는 진리의 맑은 물을 상징하는 정병(淨甁)이 있고, 오른손에는 중생들의 모든 고뇌를 어루만지는 시무외(施無畏)를 드러내고 있다. 조각을 보는 순간 여느 관음불상의 기본 형태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마리아의 형상으로 부처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했던 작가의 깊은 고뇌를 짐작할 수가 있다. 최종태 작가는 종교의 형태를 넘어 믿음의 본질인 구원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기에 굳이 겉모습에 얽매이지 않았던 것이다. ‘구원(久遠)의 모상’이라는 그만의 독특한 구도적인 예술 철학이 오히려 우리에게 부처의 원형, 관음의 원형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관음상을 뒤로 한 채 길상사의 주불전인 극락전으로 다가가본다. 분명 ‘대웅전’이 아니라 ‘극락전’인 것이다. 이 극락전이 길상사의 모양새를 정확히 규정해준다. 과거 요정으로서 대원각의 주연회장이었던 본채가 이제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성스러운 법당이 되었다. 아미타부처님은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 극락세계, 즉 저세상에 머물면서 불법을 설한다는 부처다. 길상사를 조성한 법정이 지닌 중생구제의 뜻을 그대로 드러내어주는 본채의 본존불로서는 제격인 셈이다. 수십 년 세월동안 주지육림의 흥성거림속에서 여인의 분내와 부패한 권력의 오취가 스며든 나무 기둥의 껍질을 일일이 벗기면서 법정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또한 서방정토의 아미타부처님은 현세에서 못이룬 ‘자야’와 ‘백석’의 사랑을 다시금 이어주었으리라. 또다시 극락전의 왼편 길을 걸어 올라가면 바로 선방과 길상선원, 그리고 법정의 진영을 모신 ‘진영각(眞影閣)’이 소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법정은 입적하기 하루 전 날에야,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길상사에서 하룻밤을 보내었다. 그의 유언은 바로 “내 이름으로 번거롭게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으려고도 하지 말며, 관과 수의를 마련하지 말고,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 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하여 주기 바란다”였다. 그는 사찰에 돈이 넘치면 불성은 깨어진다 하여 늘 풍요로움을 경계하였다. 이에 관한 한 가지 일화는 국수에 대한 것이었다. 국수는 흔히 승소면(僧笑麵:스님을 웃게 만드는 면)이라고 해서 불가에 입문한 스님들에게는 별식 중의 별식이었을 터. 법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먹는 방법이 극단의 절제였다. ‘맹물국수’, 말 그대로 삶은 소면을 시냇물만을 담은 그릇에 두서너 번 휘휘 가락지어 한 움큼 건져내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법정의 성품이 이렇듯 간장 한 방울 들어갈 틈도 없이 담백하였다. 이러하니 평생을 뭇 남정네 마음을 번철 위 부침개 뒤집는 것보다 쉽게 바꿀 수 있었던 김영한씨도, 겨우 10년이 지나서야 저어하는 법정의 마음을 돌려 대원각을 시주로 바칠 수가 있었다. <사진6. 김영한 님의 사당과 공덕비. 그녀의 마음을 어찌 일반인이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 법정 스님의 진영을 모신 진영각을 뒤로 하고 출입문으로 내려오면 바로 오른편에 계곡이 있고, 작은 시냇물이 흐른다. 이 시내를 건너면 길상사 창건 공덕주 김영한의 사당이 있다. 김영한의 일생에 관하여서는 이견들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녀가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1916년 종로구 관철동에서 태어나 1932년에 기생이 되기 위하여 조선 권번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1936년 가을, 함경남도 함흥에서 시인 백석을 만나 ‘자야(子夜)’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백석의 여러 ‘자야’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고 백석이 가장 사랑하는 ‘자야’는 바로 통영 출신의 ‘란(蘭)’이라는 여성임도 이미 짐작하였다. 1938년 백석이 ‘란’과의 실연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때 찾았던 사람이 바로 ‘김영한’이었다. 이때 김영한은 ‘ 그대의 아내가 누구이든지 간에 평생 사랑하리라 굳게 결심하였다’라고 술회하였다. 이 만남을 끝으로 두 번 다시 백석을 만나지 못하였고, 그녀는 화수분같은 대원각의 안주인으로 거부가 된다. 하지만, 후일 당시 값어치로 1000억원이 넘은 대원각을 법정에게 시주할 때 그녀의 말 한마디는 지금 살펴보아도 놀라울 따름이다. “백천억도 백석시인의 시 한 줄만 못하다’라고 했던 것이다. 이후 그녀가 영가(靈駕)의 세계에 들어서고 한 달 뒤 놀라운 일이 또 일어나게 된다. 1999년 12월 KAIST에 발신자가 김영한이라고 적힌 한 통의 편지가 전해진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130억 가량의 부동산 전부를 ‘국가과학기술 영재 양성’에 힘써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정도 크기의 그릇을 지니었으니 대원각을 시주할 당시 주변의 뜨악스러운 눈길과 의혹 따위야 이미 그녀의 삶의 깊이에서는 눈길조차 줄 필요가 없을 정도의 하찮음이었으리라. 사당 앞 공덕비에는 간단한. 그녀의 약력이 있다. 하지만 작은 돌조각에는 조선 말 몰락했던 양반가 출신으로, 기생이 되어버린 한 여인의 품격을 결코 다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외에도 길상사를 찬찬히 둘러보면 설법전, 지장전, 범종각, 길상선원, 적묵당, 청향당, 길상보탑, 정랑(화장실), 청향당 등 작은 요사(寮舍)채들이 있어 도심선원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 또한 서울 도심 한 가운데 있어 지친 마음을 추스르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 될 수가 있으며 템플스테이, 경전강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있어 편안히 다가서기에도 좋은 공간임은 분명하다. < 길상사(吉祥寺)에 대한 사소한 여행 일문일답> 1. 꼭 가봐야 할 곳인가?- 마음에 평화로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굳이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홈페이지 주소 : http://kilsangsa.info/ 2. 누구와 함께- 가능하면 혼자. 3. 교통편?- 한성대입구역 6번출구에서 마을버스 성북02번을 타고 길상사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됨. 아니면 천천히 걸어올라오면 큰 길입구에서 약 20분 정도 소요됨. 걷는 것을 추천. 표지판이 잘 되어 있음. 4. 인근 편의시설, 주차장?- 기본적으로 종교시설이다. 짧은 반바지나 치마 등은 삼가길 바람. 주차시설 있음. 5. 유명세에 비하여 실제 모습은?- 더 유명해져서 관광지가 될까 두럽다. 6. 친절도?- 관광지가 아닌 절이다. 신도들끼리 조심하고 서로 친절해야 한다. 7. 전문성은?- 김영한, 백석, 법정스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알고 가면 좋다. 8. 관람시간은? - 종교시설이다. 관람하는 곳이 아니다. 9. 감탄하는 점?- 이 엄청난 땅과 건물을 무상으로 시주하신 김영한의 인품과 봄이면 흐드러지는 꽃무릇들. 길상사 창건 이면에 있는 거대한 한국 근현대사의 비화와 이에 얽힌 숱한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삶. 10. 아쉬운 점?- 없다. 11. 운영진에게 한마디?- 감히 무슨 말을 하리오. 12. 여행 전 기대감과 후기?- 이미 김영한과 백석, 그리고 법정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절을 둘러보면 감동이 배가 될 수 있다. 천천히 둘러보길 바란다. 한 때 우리나라 최고의 요정자리이다 보니 정원의 구성이나 경치는 서울의 여느 공간과 비견할 수 없다. 13. 추천하고픈 사람?- 당신. 14. 비추하고픈 사람?- 비추하면 안 된다. 15. 먹거리 정보- 종교시설이다. 큰 길에 나오면 식당이 많다. 16. 쇼핑매력도- 쇼핑할 돈으로 시주를 하시길. 17. 숙박편의성- 도심 종교시설이다. 18. 인근 관광지 매력도-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다. 이왕 길상사에 온 길이라면 넉넉히 시간을 두고 오면 좋다. 이 주변에 선잠단지, 성락원, 한국가구박물관, 정법사, 우리옛돌박물관, 삼청각, 북정마을, 심우장 등이 있는 데, 이중 한국가구박물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있고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리고 길상사 여행 꿀팁을 한 가지 드리자면, 길상사 올라가는 길에 ‘누브티스 넥타이 박물관’이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들어가기가 주저하는 곳이지만 실상은 마음껏 들어가서 커피 한 잔을 먹어도 되는 곳이다. 물론 유료이지만 이 근처에 이만한 커피숍은 찾기가 힘들다. 간단한 식사도 판매한다. 19. 꼭 해봐야 할 것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길상사에 가 보는 것을 권유함. 20. 총평- 길상사(吉祥寺)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약간의 공부가 필요한 장소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조선 사람들이 보고 느낀 ‘삼국지’ 엿보기

    조선 사람들이 보고 느낀 ‘삼국지’ 엿보기

    신앙 차원 조명… 동묘 그림 공개 도원결의·장판교 장면 등 생생 14세기 중국소설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일명 삼국지) 속 관우(關羽)를 신앙의 관점에서 조명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지난달 29일 개막해 오는 7월 4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에서 열리는 ‘신이 된 관우 그리고 삼국지연의도’ 특별전이다. 관우신앙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 관우를 신격화해 관제(關帝) 또는 관왕(關王)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이다. 관왕묘는 관우를 신으로 모신 사당으로, 정유재란(1597) 당시 명나라 장수에 의해 남관왕묘(南關王墓)가 한양 숭례문 밖에 처음 건립됐다. 이후 안동, 성주, 강진, 전주, 강화 등지에 세워졌다. 이번 전시엔 서울 종로구 동관왕묘(東關王廟·일명 동묘)에 있었던 대형 그림 ‘삼국지연의도’(三國志演義圖) 5점이 2년간의 보존 처리 과정을 거쳐 일반에 공개된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삼국지도’ 2점과 관우 신앙 관련 자료 20여점도 선보인다. ‘삼국지연의도’는 민속학자인 김태곤(1936∼1996) 전 경희대 교수가 수집, 2012년 그의 부인인 손장연씨가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림 한 점의 크기가 가로 230㎝, 세로 133㎝로, 서울역사박물관의 ‘삼국지도’와 함께 동관왕묘의 동무와 서무에 걸려 있었다. ‘삼국지연의도’는 삼국지의 주요 장면과 인물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다. 유비·관우·장비가 의형제를 맺는 도원결의(桃園結義)에서부터 장비가 장판교에서 조조의 대군을 막는 장면,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오림으로 도망가는 모습 등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온 나라·전 세계에 ‘대도’ 중흥을”

    “온 나라·전 세계에 ‘대도’ 중흥을”

    “물질보다 정신문명이 중요… 범국민 의식개혁 운동할 것” “사람이 곧 하느님이며 만물이 모두 하느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천도교는 천도교 교인만의 종교가 아닙니다. 온 나라와 전 세계에 천도교 사상이 뻗치는 대도(大道) 중흥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근 임기 3년의 천도교 수장에 임명된 이정희(71) 신임 교령은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물질문명의 발달에 정신문명이 따르지 못하는 지금, 무형의 GNP(국민총생산)가 유형의 GNP를 앞서가도록 범국민 의식개혁 운동을 벌여 나가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3·1운동과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에 섰던 천도교는 당시 교인 수가 300만명에 달했지만 지금 교세가 크게 위축돼 안타깝다”는 이 교령은 우선 천도교의 심장인 중앙총부를 개혁해 교역자의 의식 풍토를 확 바꿀 계획을 비쳤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창교하던 시점으로 돌아가 민족종교 천도교를 신앙 중심의 종교로 거듭 세우겠다는 선언이다. “교헌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새로운 시대, 모든 교인들의 꿈과 의지가 담긴 교헌과 규정을 만들 것입니다.”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고 혁명의 단계에선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마련”이라는 이 교령은 모든 교인과 천도교 바깥의 사람들과도 뜻을 모아 점진적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열린 논의의 수렴을 통해 천도교 수운회관에 동학문화센터를 마련, 3·1운동 성지인 중앙대교당을 일반시민과 함께하는 마당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을 전했다. 여기에 전국에 걸쳐 수백개에 달하는 동학농민혁명 사적지와 문화유적지를 세계인들이 찾는 성지로 자리매김할 뜻도 덧붙였다. “민족통일 과업에 천도교가 앞장서야 한다”는 이 교령은 북측 천도교와 연대, 소통하면서 통일시대 지도자를 대대적으로 양성할 민족통일대학을 개설하겠단다. 특히 “진리를 믿는 조직과 집단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며 천도교의 진리를 전파할 전문교역자 양성과 경전의 5개 국어 번역, 해외 포덕 전진기지 설치를 임기 중 반드시 이루겠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43년 한센인과 행복한 동행… 좋은 친구로 기억됐으면”

    “43년 한센인과 행복한 동행… 좋은 친구로 기억됐으면”

    43년간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의 육신과 영혼을 치유하며 살다가 2005년 홀연히 고국 오스트리아로 떠났던 ‘소록도의 어머니’ 마리안네 스퇴거(82) 수녀. 국립소록도병원 100주년 기념식 참석차 소록도성당 초청으로 최근 방한한 스퇴거 수녀는 26일 소록도병원 본관 2층 회의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한 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며 요란하게 대접받을 게 못 된다”고 거듭 밝혔다. →소록도를 다시 찾은 소감은. -아름다운 모습의 소록도를 보게 돼 정말 기쁘다. →소록도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그동안 많이 변한 것 같다. 한센병 환자들이 생활하는 건물이며 대우가 개선된 것 같아 고맙게 생각한다. →43년간 소록도에 살면서 뭘 이루려 했나. -특별한 게 아니었다. 아픈 이들을 도우면서 예수님 복음을 실현하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환자들이 치료가 잘돼 가족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편견 탓에 한센병 환자를 내팽개친 가족들이 환자를 다시 보듬어 안는 모습 말이다. →소록도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 -당시 환자나 치료하는 사람이나 모두 종교를 가리지 않았다. 서로가 치료하고 치유, 위안받았던 좋은 친구로 기억됐으면 한다. →43년의 힘겨운 봉사 활동을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며 매일매일을 산 것이다. 주변의 크고 작은 도움도 힘이 됐다. →한센인을 포함해 환자는 수녀님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 사람들도 모두 축복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아들 같고, 딸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주 친한 친구다.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홀연히 소록도를 떠난 이유가 있었나. -당시 대장암 수술 등으로 많이 힘들었다. 떠나기 이틀 전 주교와 신부에게 귀띔했었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너무 무겁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하지만 나중에 전화통화를 하면서 모두 풀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모두 신앙 안에서 기쁘게, 그리고 자연 안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왜 그렇게 피했나. -그냥 한센인들을 좋아하면서 좋은 날들을 보냈다. 뭐 특별한 일을 한 게 아니었는데 내가 한 일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삶을 소록도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정말 행복했나. -하늘만큼 행복했다. 글 사진 소록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사회신용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가(클리포드 더글러스 지음, 이승현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 192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사회신용론’의 창시자가 1924년 쓴 ‘사회신용’ 한국어판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엔지니어로서 여러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저자는 노동자들의 소득 총액으로는 상품의 총체를 매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문제를 깊이 탐구해 사회신용론을 탄생시켰다. 재산·노동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인 ‘기본소득’의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특히 기본소득을 통한 분배 정의의 실현 등 사회신용론이 지향하는 핵심 주장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면서 불황과 공황의 시대에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짚었다. 200쪽. 1만 2800원. 북한, 조선으로 다시 읽다(김병로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 ‘조선’으로 북한을 읽는다는 말은 북한을 과학적이고 내재적인 분석을 통해 평가해야 한다는 방법론을 가리킨다. 남한은 대한민국이라는 역사적 정체성이 있듯이 북한도 조선의 역사와 정체성이 있다. 조선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나름대로 합리적 행동 원칙이 존재한다. 저자는 그 안에 깊은 좌절과 분노, 한국전쟁의 엄청난 피해와 충격으로 자폐적 특질이 형성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전쟁 이후 전시체제 형성(1950~60년대), ‘주체’ 사회주의 체제 구축(1970~80년대), 탈냉전 후 ‘조선’ 사회의 분화(1990~2000년대), 사회 체제의 미래전망(2010~2020년대) 등 4부로 구성된 책은 북한의 폐쇄적 사회체제의 진화 과정을 탐구했다. 532쪽. 3만 2000원. 과학의 망상(루퍼트 셸드레이크 지음, 하창수 옮김, 김영사 펴냄) 우리가 믿고 있는 현대 과학의 이론은 모두 진리일까? 영국 과학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대 과학이 ‘착각’하는 믿음 10가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자연법칙은 영원불변한 것’이라는 현대 과학의 믿음에 저자는 ‘모든 것이 진화하는 거라면 왜 자연의 법칙만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 진화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품는다. 특히 세상 만물의 근본적인 이치는 이미 이론적으로 설명됐다고 여기는 현대 과학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과학적 사고를 지배하는 신념 체계는 사실 19세기에 구축된 이념에 근거한 신앙과도 같은 행위일 뿐이며 이런 믿음이 강력한 힘을 가지는 것은 대부분 과학자가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 주장이다. 524쪽. 2만 2000원. 태양 아래 모든 것(데이비드 스즈키·이언 해닝턴 지음, 우석영 옮김, 로도스 펴냄) 4월 22일은 전 세계적으로 기념하는 ‘지구의 날’이다. 이 책은 캐나다의 유전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저자들이 지구 환경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대처를 담아 자연과 인간이 함께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을 제시한다. 책은 오늘날 인류의 활동으로 어떤 규모로 생물종들이 멸종되고 있는지부터, 현대도시와 에너지 문제, 경제와 기후변화, 그리고 어류 남획의 현실과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틱 섬 이야기를 건넨다. 저자들은 개인이나 단체, 국가 단위가 아닌 지역·국제 단위의 조속한 협력이 필요하며 현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로는 지구 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336쪽. 1만 6000원. 후쿠시마의 고양이(오오타 야스스케 지음, 하상련 옮김, 책공장더불어 펴냄) 2011년 3월 동일본 원전 폭발사고 이후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을 촬영해 사진집을 낸 일본 사진작가의 두 번째 책. 동물을 돌보는 마츠무라와 고양이 시로·사비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후쿠시마 모습을 담았다. 마츠무라는 후쿠시마에 자발적으로 남아 동물을 돌보는 사람이다. 사진 속 자연은 마치 원전 폭발이 없었던 것처럼 아름답다. 또 천진난만하게 노는 시로와 사비의 모습도 평화롭다. 그러나 마츠무라와 시로·사비 외에는 어느 한 명 보이지 않는 배경이 후쿠시마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츠무라는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을 돌보며 끝까지 지켜주며 살아가고 싶다. 버려진 동물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기에…. 104쪽. 1만원.
  • “교회 안 신앙과 교회 밖 생활이 다른 게 문제”

    “교회 안 신앙과 교회 밖 생활이 다른 게 문제”

    개신교 문화사역 단체 ‘나의미래공작소’를 이끄는 김준영(43)씨는 종교계에서 독특한 인물로 유명하다. 군 제대후 ‘나의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하느님의 소명을 받아 20여년간 ‘예수’와 ‘예술’을 접목해 젊은이들에게 ‘하느님의 방법’으로 문화를 회복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개신교계의 문화게릴라’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의 일상생활과 종교생활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산다”는 김씨를 21일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만났다. →나의미래공작소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어떤 단체인가. -문화 예술 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 교회 안의 신앙 차이에서 혼란과 갈등을 느낀다.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크리스천이라면 예술활동도 성경적 안목을 갖고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교나 기술보다는 일반 교회에서 가르치지 못하는 성경적 안목의 예술 프로그램을 선도, 교육하는 사역단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많은 교회들이 앞다투어 문화 사역에 치중하는 추세이다. 그런 사역과 무슨 차이점이 있나. -교회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원론적인 성경 말씀을 삶에서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착하게 산다는 것’도 사람과 분야마다 모두 기준이 다르지 않은가. 신앙생활은 실제적인 사회나 삶에서 적용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욕을 먹는 경우가 많다. 바로 개신교계 교육의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신학 교육도 변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의 문화 사역은 문화를 수단으로 보기 일쑤이다. 문화를 도구로 사용하면 목표가 목적이 되기 마련이다. 그것보다는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켜 살기 좋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주역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 안의 신앙과 교회 밖 생활의 차이가 왜 그렇게 크다고 생각하나. -교회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끝나곤 한다. 하느님의 말씀에 매달리기보다는 하느님과의 관계성을 더 중시하는 게 중요하다. 불평등에 도전하고 약자의 편에 서서 예수님처럼 살자고 가르치지만 현실 삶에선 거꾸로 이익과 명예가 큰 기준이 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측면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개선의 노력이라면. -개혁은 혁명적으로 뒤집는 게 아니다. 점진적, 점차적으로 바꾸고 예수님의 정신을 회복해 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 교회는 일반 사회와 마찬가지로 도덕, 정의, 아름다움의 기준이 상업적 측면에 기운 측면이 강하다. 진정한 크리스천 삶의 모습을 앞장서 제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신학교 출신의 목회자들이 공동체 안의 사역을 도맡는다면 다음 세대에게도 희망을 갖기 어렵다. 보수 대형교회들의 권력에 대한 눈총이 따갑다. 목회자들의 예배사역과 구분해 문화사역처럼 영역을 나눠 전문 사역자들을 키워내야 한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게 뭔가. 계획이 있다면. -성경적 안목을 갖고 착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려는 이들에 대한 문화사역이 중요하다고 본다. 청소년 예배단체인 디사이플스(제자들)의 창립 멤버였고 기독교출판사인 두란노서원의 음반사업 책임자로 일했다. 지난 20년간 살아온 것처럼 마커스(예수 그리스도의 흔적)로 있고 싶다. 2003년 창립한 마커스와 2012년 시작한 나의미래공작소는 흔치 않은 문화사역의 실질적인 첨병으로 자부한다. 그동안의 일을 바탕으로 모든 문화예술인들과 연대하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 거점 공간도 하나 마련할 수 있었으면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난민에게 손 내민 교황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난민에게 손 내민 교황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나의 행동은 드넓은 바다에 물 한 방울 보태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물 한 방울로 바다는 그 이전의 바다와는 달라지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현지시간)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난민 캠프에 방문한 뒤 시리아 출신 무슬림 난민 12명을 바티칸으로 데려오면서 이같이 말했다. 교황은 이날 바르톨로뮤 1세 동방정교회 총대주교, 아에로니모스 2세 그리스정교회 아테네 대주교 등과 함께 레스보스 섬의 모리아 난민 캠프를 방문해 난민을 위로했다. 모리아 난민 캠프에는 시리아 등 중동 출신의 난민 3000여명이 수용돼 있다. 교황은 캠프에서 한 연설에서 “세계가 이런 인도주의적 위기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방문했다”며 “신앙인으로서 여러분을 위해 목소리를 보태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면서 “희망을 잃지 말아 달라.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전용기에서 “유럽은 난민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통합시켜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극단주의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최근 유럽에 부는 반이민 정서 및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교황, 그리스 난민 캠프서 무슬림 12명 데려와

    교황, 그리스 난민 캠프서 무슬림 12명 데려와

      “나의 행동은 드넓은 바다에 물 한 방울 보태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물 한 방울로 바다는 그 이전의 바다와는 달라지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현지시간)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난민 캠프에 방문한 뒤 시리아 출신 무슬림 난민 12명을 바티칸으로 데려오면서 이같이 말했다. AP는 최근 유럽연합(EU)과 터키가 유럽에 온 중동 난민을 터키로 송환하기로 합의한 것과 연관 지어 교황의 이번 행보가 매우 정치적이면서도 인도주의적이라고 평가했다.  교황은 이날 바르톨로뮤 1세 동방정교회 총대주교, 아에로니모스 2세 그리스정교회 아테네 대주교 등과 함께 레스보스 섬의 모리아 난민 캠프를 방문해 난민을 위로했다. 모리아 난민 캠프에는 시리아 등 중동 출신의 난민 3000여명이 수용돼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EU와 터키의 난민 송환 합의로 인해 조만간 터키나 본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처지다.  교황은 캠프에서 한 연설에서 “세계가 이런 인도주의적 위기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방문했다”며 “신앙인으로서 여러분을 위해 목소리를 보태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면서 “희망을 잃지 말아 달라.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교황과 함께 레스보스 섬을 떠나 바티칸에 도착한 난민 12명은 세 가족으로 모두 시리아 출신이며 이슬람교도다.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난민을 데려온 것이 “순수하게 인도주의적인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황은 “유럽은 난민을 환영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통합시켜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극단주의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최근 유럽에 부는 반이민 정서 및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월드피플+] 학교에서는 왕따… ‘늑대인간’ 소년의 비애

    일명 ‘늑대인간 증후군’으로 불리는 질환인 ‘범발성다모증’(汎發性多毛症) 때문에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마을에서는 반대로 신으로 추앙받는 한 인도네시아 소년의 사연이 눈길을 끈다. 13세 소년 무하마드 라이한이 앓고 있는 범발성다모증은 신체 전반에 걸쳐 털이 자라나는 매우 드문 유전질환이다. 라이한의 경우 손, 다리, 배 등 신체 곳곳에 굵고 긴 털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신체 특성 때문에 라이한은 마을에서 ‘신의 화신’으로 대우받는다. 그의 마을에 사는 힌두교 신자들은 라이한을 힌두교 원숭이 신 ‘하누만’의 현신으로 여기고 있다. 그의 모습을 잠시나마 보기 위해 먼 마을에서 그를 찾아오는 열성 신자도 있다. 하지만 라이만의 특이한 외모는 그가 학교에서 심한 놀림을 받는 원인이기도 하다. 라이한의 모습이 원숭이 신을 연상시킨다는 사실은 어린 친구들에게는 그저 놀림거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극과 극을 달리는 대우에 혼란과 우울함을 느낄 법도 하지만, 독실한 무슬림 신자 라이한은 사람들의 시선에 크게 개의치 않은 채 자신을 존중하며 살아 나가고 있다. 라이한은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며 비웃고 또 어떤 이들은 나에게 축복을 받으려 한다”고 말한다. 이어 “이런 사람들은 내게 특별한 힘이 있다거나 내가 신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관심은 괜찮다. 내가 다르게 생겼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어린 라이한이 이렇듯 의연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것에는 홀어머니로서 다섯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강인한 어머니 파르단의 도움이 컸다. 라이한의 어린시절, 아들의 신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파르단은 당시에는 살아있던 남편과 함께 수많은 의사들을 방문하며 치료 방안을 찾아 헤맸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는 치료 방법을 전혀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일부 의사가 추천하는 레이저 제모 수술은 파르단의 가족이 감당하기엔 재정적으로 지나치게 버거웠다. 안타깝게도 결국 아들의 치료를 포기해야만 했던 파르단은 대신 라이한이 미래에 상처받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강한 자존감과 신앙심을 심어주었다.그는 “나는 라이단이 신의 선물이며, 그 외모 또한 신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며 “아들에게도 절대로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말고 대신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가르쳤다”고 전했다. 이런 가르침을 잘 받아들인 라이한은 자기 외모가 신의 특별한 선물이라 여기며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나는 신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덕분에 만족스럽다”며 “나는 이대로도 행복하기에 치료는 바라지 않는다“고 전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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