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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의 窓] “복 많이 받으세요”/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생명의 窓] “복 많이 받으세요”/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지난주 설을 보내며 서로 주고받는 덕담 중 단연 1위를 차지하는 것이 “복 많이 받으세요.”일 것이다. 요즘은 더욱 구체적으로 “돈 많이 버세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홍콩 사람들의 경우 설 인사가 “쿵하이팟초이”(恭賀發財)다. 새해에 재산이 불 일듯 일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복 받는 일’이 결국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짐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런데 ‘복’이라는 것이 이런 경제적 풍요로움만일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누가복음 6:20)고 했다. 부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경계하는 말임에 틀림이 없다. 부에 대한 집착을 끊고 자유스러워진 삶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에서 사는 복된 삶이라는 뜻이 아닐까? 유교에서도 소인배가 탐하는 이(利)가 아니라 군자가 추구하는 의(義)를 이상으로 삼기 때문에 외적 빈부에 상관하지 않고, 심지어 의롭게 살다가 어쩔 수 없이 가난해진다 해도, 이런 청빈(淸貧)이야말로 참된 청복(淸福)의 근원이라 가르친다. 종교사를 통해서 볼 때 여러 종교에서 재물을 탐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있는 재물이라도 이를 뒤로하고 이른바 ‘자발적 가난’으로 살아가는 것을 종교적 삶의 이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부처님이나 성 프란체스코의 경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경우 본래 목수 일을 하며 번 재산이 있었는데 스스로 가난해졌는지 모르지만, 재산이 많은 어느 부자 젊은이에게 “가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충고한 것을 보면 자발적 가난을 선호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요즘 우리 주위에서는 ‘잘살아 보자’를 종교적 목표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잘 믿으면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잘살게 되므로 남보란 듯 살려면 잘 믿으라는 것이다. 이런 자세를 가진 종교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어쩌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한 예수님이나 욕심·성냄·어리석음을 삼독(三毒)이라 가르친 부처님은 실수한 분들이다. 지금은 성경이든 불경이든 현실에 맞게 개정판을 내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종교를 이런 기복(祈福) 일변도로 받아들일 때 우리도 모르게 빠져들 수 있는 몇 가지 위험이 있다. 첫째, 우리가 가진 신앙은 나의 경제적 부를 축적하기 위한 한갓 수단으로 전락되고 만다.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결국은 우리가 두들기기만 하면 무엇이나 내놓는 복방망이나, 카드 넣고 단추 몇개만 누르면 곧바로 현금을 내주는 현금인출기로 둔갑하게 된다. 둘째, 가난은 잘 믿지 못한 결과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어떻게 살든 결과적으로 가난하면 불편함뿐 아니라 이제 죄책감까지 감내해야만 한다. 셋째, 더욱 문제되는 것은 부함이 잘 믿은 덕이므로, 일단 부하게 되면 부를 모으면서 있었던 여러가지 부정한 수단까지 정당화된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뇌물을 주어도 그것이 위에서 축복해 주시는 특별한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말 무서운 일 아닌가.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주는 것 같은 ‘경제 활동’이라면 그것이 최우선의 과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빈익빈 부익부’, 철저히 천박한 자본주의적 재테크에 따라 땅 투기나 기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오로지 돈을 모으겠다는 일념으로 살고, 그것을 신이 내린 축복이라 여기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종교인이라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냥 금송아지를 섬기는 사람일 뿐이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라면 금송아지에 목을 매고 사는 대신,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마태복음 6:25)고 한 예수님이나,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빌립보서 4:11~12)라고 한 바울, 모든 욕심을 버리라는 부처님 말씀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럴 때 우리에게 참된 복이 오는 것 아닐까?
  •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 정신적 스승 만나볼까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 정신적 스승 만나볼까

    심각한 주제를 밝고 가볍게 그려낸 미국의 팝 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그래피티 아트’(낙서 예술)의 뿌리는 아프리카에 있다? 다음 달 1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통큰에서 열리는 ‘키스 해링의 멘토, 릴랑가’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조지 릴랑가(1934~2005)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화가. 1977~78년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잇따라 전시회를 열면서 화제를 모았고, 키스 해링(1958~1990)이 이 전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강렬한 원색 바탕 위에 인물을 간결한 선으로 단순화시켜 표현했다. 인물마다 재미난 율동과 익살스러운 포즈를 부여했다. 회화라기보다 만화의 캐리커처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해링의 작업을 예감케 한다. 전체적으로 다양한 포즈의 인물들을 화면 한가득 채워 넣으면서 중간중간에 이런저런 일상용품이나 상징물을 배치해둔 것도 해링이 밑그림도 없이 길거리 벽면 같은 곳에 그려둔 대작을 떠올리게 한다. 해링이 도시 전체를 캔버스로 썼듯, 릴랑가 역시 합판이나 가죽 같은 일상 용품에 그림을 그려넣어 누구나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이야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 선택이었다. 인물들을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아귀지옥이 떠오른다. 배는 불룩하고 입은 넓어 언제나 배고프지만 목구멍이 너무도 가늘어 늘상 먹는 게 성에 안 차 울부짖는 탐욕의 아귀들 말이다. 릴랑가가 그린 인물들을 보면 입은 튀어나오고 배도 부른 것이 비슷한 모양새다. 그런데 의미는 반대다. 아귀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면 릴랑가의 인물들은 여럿이 어울려 함께 춤추며 즐겁게 지내는 모습들이다. 인간의 작은 욕망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메시지다. ‘둘이 아닌 하나’에서 인물들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모습을 그려넣은 것이나 ‘생명의 나무’, ‘즐거운 인생’에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즐겁게 뭔가 먹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인물들은 아프리카 토속신앙에서 인간의 욕망을 나타내는 ‘셰타니’로, 우리로 치자면 괴상하긴 하지만 밉지 않은 도깨비 같은 존재다. 2000~3000원. (02)730-243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해성사도 아이폰 앱으로…미국 가톨릭교회 정식 승인

     스마트폰을 이용해 고해성사를 하는 시대가 됐다.  미국 인디애나 사우스벤드에 있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인 리틀 아이앱스사는 8일 가톨릭 관련 앱 가운데 ‘고해성사(Confession):로마 가톨릭 앱’이 처음으로 인디애나 가톨릭교회 케빈 로드 주교의 정식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앱 스토어를 통해 1.19 파운드(1.99달러)에 팔리는 이 앱은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고백을 돕고 신을 멀리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신앙심을 북돋워주기 위해 고안됐다.  이 콘텐츠는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토머스 웨이낸디 신부 등의 조언을 받아 꾸며졌다. 이용자들이 십계명을 지켰는지 점검해 고백하고 나이,성별,결혼 유무 등의 개인화 설정을 통해 양심을 되돌아 보도록 하고 있다. 또 신도들이 교회에 가는 것을 대체하기 보다는 교회를 찾아 죄를 용서받도록 유도하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달 24일 강론을 통해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를 활용하는 것은 죄가 아니며 젊은 신도들에게 온라인을 통해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복음을 전하도록 독려했다.  로마 교황청은 2007년 유튜브 채널을 열었으며 2009년에는 신도들이 교황의 사진과 메시지가 담긴 온라인 엽서를 페이스북을 통해 주고받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마련하는 등 디지털 시대에 맞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기독교의 위상 추락 대형교회 공동 책임”

    “기독교의 위상 추락 대형교회 공동 책임”

    최근 한국 종교계의 온갖 추문의 진원지는 기독교계다. 개별 교회에서는 교회 운영권을 둘러싸고 각종 고소·고발과 폭력이 횡행하고, 대표적 개신교단체는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한치의 물러섬 없이 갈등이 이어지며 두 동강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여기에 이웃종교의 성지에 들어가 ‘땅밟기’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보는 등 오만과 무례도 서슴지 않았다. 교회 내부에서 성찰의 목소리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앞세워 교회의 성찰과 혁신을 촉구한 ‘2010 생명평화선언’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 생명평화운동의 주요 의제를 놓고 토론하는 ‘생명평화포럼’으로 정례화된다. 매달 두 번째 화요일 저녁 서울 충정로2가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열린다. 포럼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독교계 인터넷 언론인 ‘에큐메니안’(www.ecumenian.com)으로도 생중계된다. 8일 열린 첫 번째 포럼에서는 ‘생명평화마당을 출범하며-생명평화신앙을 통한 기독교의 정체성 재확립’이 주제였다. 발제를 맡은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삭개오 작은교회 목사는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이웃종교에 대한 비상식적인 개신교인들의 폄하 행태, 전철이나 역 광장에서 공공적 사회윤리성을 무시하는 전도 행각, 일부 문란한 성직자들의 탈선과 수준 이하의 공중파 설교, 집단이기주의 행태마저 보이는 개신교 평신도들의 기복신앙 등에 대해 ‘내가 목회하는 교회와 관계없으니 난 책임 없다’는 식으로 방관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사회와 역사는 기독교 전체 위상과 한국 개신교의 공동책임을 묻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 교회는 수치와 조롱도 함께 받고, 칭찬과 영광도 함께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대형 교회 지도자들은 오늘의 한국 개신교 위상 타락에 대한 무한 공동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며, 개별 교회 중심의 성장 선교신학이 비복음적인 것임을 알고 하루속히 청산해야 한다.”며 대형교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아울러 김 목사는 “한때 전쟁불사론까지 함부로 입에 올렸던 무책임한 정치지도자들이나 반공주의 극우파 집단들의 발언은 생각할수록 모골이 송연한 일”이라며 이념의 틀에 갇혀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에 동조하는 일부 개신교의 행태를 지적하는 한편, “정부의 4대강 개발사업처럼 학계와 종교계, 시민단체 등이 줄기차게 (정부 정책에)반대해온 사례가 없을 것이며, 동시에 지난 2년간 이명박 정부만큼 국민과의 소통에 귀를 꼭 막은 정부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토론자로 나선 조석민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신학적 활동과 교회 운동의 시작은 성서의 가르침에서 출발해 현재의 상황을 점검 분석한 뒤, 성서적 대안을 모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담론의 시작이 현재의 사회적 현상에서 출발한 점은 아쉽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조 교수는 또 “생명과 평화, 그리고 정의 개념과 역사성 역시 성서 속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토론자인 김준우 한국기독교연구소장은 “교회가 한국 사회에 대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반지성주의, 권위주의, 배타주의, 우월주의만이 아니라 무한경쟁에서의 성공과 번영을 조장하고 탈정치성을 세뇌시킴으로써 세상의 위기에 대해 외면하고 침묵하도록 만드는 등 권력과 자본의 시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면서 “내세 구원 중심이 아니라 지구공동체 중심으로, 교리 중심이 아니라 실천 중심으로, 돈과 양적 성장 중심이 아니라 생명과 평화중심으로, 경제 중심의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생태계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전통 신학과 교회의 역할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며 김 목사의 발제에 동의하는 입장을 밝혔다. 다음달 8일 열리는 두 번째 포럼의 토론 의제는 ‘장로 이명박 정권에 대한 기독교의 교회적, 성서적, 신학적 평가’로, 현 정부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전면적으로 접근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종교계 “구제역 살처분 反생명적”

    천도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불교 등 종교 단체 관계자들이 8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의 구제역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구제역 사태를 바라보는 범종교인의 입장과 기도’라는 주제의 회견문에서 “구제역으로 살처분·매장당한 가축 수가 300만 마리를 넘었는데도 아직도 구제역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지 않고 있다.”면서 “이 엄청난 재앙과 반생명적 현실에서 우리 종교인은 우리 사회의 현실과 우리 자신의 삶, 신앙을 되돌아보면서 생명 존중 문화의 필요성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공장식으로 사육된 것이 아니라 방목된 가축의 고기를 소비하는 캠페인인 ‘소박한 생명의 밥상을 위한 범종교 네트워크’ 등을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천도교 한울연대, 원불교 환경연대, 가톨릭환경연대, 우리신학연구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한국가톨릭농민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환경소위원회 등 19개 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옭아매는 것은 교육”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옭아매는 것은 교육”

    루소의 대표작 ‘에밀’은 ‘에밀’이라는 주인공과 스승의 일화를 중심으로 인간의 성장과 배움에 대해 기술한 교육서다. 인간의 품성과 자연적인 성장 과정을 고려한 교육 방식 때문에 자연주의 교육의 복음서로 여겨진 이래 ‘에밀’은 지금까지도 교육학의 고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판금과 분서, 체포명령과 망명에 이르기까지 루소는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고난을 겪게 된다.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은 4부에 등장하는 ‘사부아 신부의 신앙고백’이었다. 루소는 사부아 신부의 목소리를 빌려 신의 계시를 확언하는 교회와 이성적 앎으로 세계를 재단하는 철학자 모두를 비판한다. 교회와 철학은 각각 신앙과 이성의 이름으로 사유를 구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소가 생각하기에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고 규율화하는 결정적 기제는 교육이다. 따라서 ‘에밀’을 단순한 교육서로 읽을 경우 우리는 당혹스러움에 부딪히게 된다. 루소는 에밀의 환경과 성격, 수업 장소와 내용, 교사와 대화가 가져올 효과 등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그러나 사실 에밀이라는 인물을 비롯한 모든 상황은 상상의 산물이다. 무균질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완벽하게 이상적인 교육 상황. 때문에 루소는 ‘에밀’의 교수법을 따라 하는 자는 반드시 실패할 거라고 말한다. 학습자를 포함한 모든 상황을 교사의 의도대로 세팅할 수 없거나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개입한다면 ‘에밀’의 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루소가 제시한 ‘자연주의 교육’의 아이러니가 있다. 인간이란 나약한 존재고, ‘자연’이란 질서 속의 예기치 않음을 그 본질로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연주의 교육이란 ‘의도하지 않은 인간’을 만들어 내는 실험으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을 통해 알 수 없는 결과를 희망하기. 교회와 철학이 ‘에밀’을 불온하게 본 까닭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어디를 가나 불가해한 신비가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어. 그것은 우리 감각의 영역을 벗어나지. 그것을 간파하기 위한 오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상상력밖에 없네. 우리 각자는 그 상상의 세계를 통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터나가지. 하지만 자신의 길이 목적지를 향한 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 ‘불온선물세트’ 강이천 ‘개혁군주’ 정조를 궁지에…

    ‘불온선물세트’ 강이천 ‘개혁군주’ 정조를 궁지에…

    ‘시대를 잘못 타고난 선비’ 강이천이 한 역사학자에 의해 되살아났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백승종 지음, 푸른역사 펴냄)은 ‘조선 후기 르네상스’라 불리는 영·정조 시대에 ‘문화투쟁’을 벌이다 옥중에서 사망한 강이천(1768~1801)을 주인공으로, 조선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다.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등의 책을 쓴 저자 백승종씨는 정감록을 연구하다 강이천을 만나게 된다. 현재 백씨는 충남의 한 시골마을에서 한문고전과 독일어 성경을 가르치며 마을 사람들의 구술생애사를 연구 중이다. 18세기만 해도 천주교는 당시 크게 유행했던 예언서인 ‘정감록’과 밀접한 관계였다. 몇몇 천주교 신자들은 정감록에 담긴 ‘해도진인’(海島眞人·섬에서 진인이라 불리는 영웅이 나와 조선을 멸망시키고 새 나라를 세운다는 설)이란 관념을 빌려 갔다. 정감록 신앙집단은 천주교의 말세관에서 왕조 교체의 심층적 의미를 발견하기도 했다. 일찍이 진사 시험에 합격했고, 소년 시절부터 몇 차례나 정조 앞에 불려 나가 시를 짓기도 했던 강이천은 꽤 유명한 선비였다. 하지만 천주교뿐 아니라 정감록에도 마음을 빼앗겨 결국 정조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꼴이 되고 만다. 흔히 ‘조선 시대의 개혁 군주’라 불리는 정조에 대해 백씨는 “정조처럼 개인적으로 특출한 능력을 갖춘 왕이라면 응당 시대를 앞서가는 진보 성향을 띠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런 믿음은 그릇된 것으로, 정조는 결코 실험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정조는 도교와 불교는 물론 새로 도입되기 시작한 천주교에 대해서도 적대적이었다. 오직 주자의 사상만을 정학(正學)으로 여겼고 양명학은 물론이고 중국에서 나온 신간 서적의 수입도 엄금했다. 이른바 ‘패관소품’(요즘의 단편소설이나 수필에 해당하는, 사람이 느낀 감정을 거짓 없이 기록하는 글.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당시 이런 문체를 대표함)의 문체가 조금이라도 묻어 있는 글이면 무조건 과거시험에서 떨어뜨렸다. 이는 조선의 왕들은 보수 성향을 띨 때만 비로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 게 저자의 분석이다. 조선의 어떤 왕보다 두뇌가 명석했던 정조는 기득권 세력인 양반의 특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조선 국왕의 권위는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서 나왔고, 이를 부정하는 북학이나 실학, 천주교와 서양의 새로운 과학기술을 받아들였다가는 왕의 권위가 추락하는 것은 물론이요, 자칫하면 목숨조차 건지기 어려웠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본 정조는 누구보다 보수적인 왕이었다. 하지만 강이천은 조선 사회가 요구하던 성리학 공부에 묻히기를 거부했다. 조선의 지배층이 이단으로 규정한 천주교와 정감록, 패관소품에 관심을 뒀다가 1797년 불길한 유언비어를 퍼뜨려 혹세무민한 죄로 유배를 갔고 정조 사후 이 사건으로 결국 옥중에서 숨진다. 저자는 강이천이 18세기 불온한 분위기를 한몸에 지닌 ‘종합선물세트’였으며 정조를 궁지에 빠뜨린 공상적 이상주의자였다고 평가한다. 존재 자체가 체제에 대한 위협이었던 강이천의 말로가 결국 옥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1만 65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열린세상] 예술적 허구의 힘/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열린세상] 예술적 허구의 힘/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1980년대 초반, 정정하던 60대 후반 황순원 선생 댁에 제자와 문인들이 신정 세배를 드리러 모인 자리였다. 대학원에서 문예이론과 문학비평을 공부하던 필자가 동석한 어느 선배 문인에게 매우 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출간된 신문 연재 장편은 단편을 확장했으며 다른 작품에 비해 문학성이 뒤떨어지니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낫지 않았겠느냐고. 기실 모임의 분위기를 밝게 해 보자는, 또 매우 가까운 분이라 어리광도 겸한 어투였으나, 지금 생각하면 뒷덜미가 서늘할 만큼 철없는 발설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과연 동석한 다른 선배 한분이 정색하고 반박했다. 책임 있는 한 작가가 작품을 쓰면 어떤 경우라도 그 나라의 문학적 성과에 기여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필자는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한 비판에는 칭찬보다 더 신중을 기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익혔다. 이 해묵은 삽화를 다시 들추어낸 이유는, 근자에 여러 논쟁을 유발한 심형래 영화 ‘라스트 갓 파더’를 변호하기 위해서이다. 이 작품이 영화사에 기록될 정도로 뛰어난 수준을 갖추었다고는 평가하지 않지만, 여기에 불량식품 파는 가게의 상품이라고까지 매도하는 것은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가볍지만 따뜻한 코미디를 지향했고, 그러한 의도는 상영관의 관객 숫자가 말해주듯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심형래 영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발원은 앞선 작품 ‘디워’에 있다. 많은 제작비와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동원하고도 소기의 수확에 이르지 못한 것은, 그리고 국내외의 냉담한 반응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성숙한 스토리텔링 때문이었다. 황당해 보이는 이야기일수록 그 형성 기반이 단단해야 한다는, 예술적 허구의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그러나 한번의 미비나 실패를 다음번의 사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자칫 비판을 위한 비판이기 쉽다. 이 불을 보듯 밝은 이치를 각성하고 바라보면 두 영화를 한 솥에 함께 삶을 수는 없다. 독설이 그 나름의 의미를 지니려면 상황을 압도할 만한 논거나 기지, 또는 표현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금껏 많은 이들이 버나드 쇼를 희대의 독설가라 부르면서도 그의 언사들을 뜻깊게 반추하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까닭에서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건강한 비판정신에 근거한 합리적 비난에 귀 기울일 준비를 하는 것이 옳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연말 윤복희의 ‘여러분’ 콘서트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처음부터 가스펠 무대임을 강력하게 천명하든지, 아니면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제대로 된 스토리텔링으로 표현해야 했다. 명성과 가창력을 다시 만나려는 관객들에게 잘 준비되지 않은 무대로 신앙적 감동을 요구하는 방식은, 마치 심형래의 앞 영화가 단순한 애국심에 호소한 것처럼 생경하게 보였다. 역사소설이 역사가 아니라 소설인 것처럼, 종교예술도 종교가 아닌 예술이어야 한다. 종교가 맨얼굴을 내밀고 있으면 예술이 설 빈 곳이 없다. 반면 예술적 형식이 충일하면 종교는 곳곳에 그 입지를 얻는다.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는 한번도 예수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로 인해 오히려 사랑과 은혜의 감각을 한층 증폭시킬 수 있었다. 이 사례가 말하는 바는 곧 진정한 예술적 허구가 무엇이며 그것을 현현하는 스토리텔링의 의미와 기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어쩌면 잘 만들어진 허구 속에, 현실보다 더 박진감 있는 감응이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작가 복거일은 ‘비명을 찾아서’란 제목의 오래 기억할 만한 장편에서, 설득력 있는 가상의 세계를 축조하기 위해 그 밑바탕을 모두 핍진한 현실의 자료로 채웠다. 일제강점기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대체역사의 새로운 형식 실험은, 그렇게 허구와 현실을 절묘하게 조합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충분한 힘을 얻었다. 윤복희와 심형래의 미비는 바로 이 대목에 문제가 있었다. 글 서두에 적은 필자의 설익고 치기 어린 비판을 조용히 웃으며 바라보던 황순원 선생은 소설적 허구의 장인이었다. 말없이 말을 전하던 그 깊은 눈빛은 두고두고 내 삶에 경종이 되었다.
  • 조향기, 2살 연상 회사원과 4월 결혼

    조향기, 2살 연상 회사원과 4월 결혼

    연기자 조향기(31)가 결혼식을 올린다. 조향기는 오는 4월 30일 경기도 분당의 한 교회에서 2살 연상의 회사원 안태민 씨와 화촉을 밝힌다. 그 동안 바쁜 연예활동으로 방송활동에 전념하며 수년간 솔로로 지낸 조향기는 약 1년 전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예비신랑과 만나 사랑을 키워왔다. 이후 서로에 성격에 호감을 느끼고 또한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신앙생활을 같이하며 연애를 하다 결혼을 결심했다. 예비신랑 안태민 씨는 연예계 종사자가 아닌 평범한 회사원으로 성실하고 다정다감하며 독실한 신앙인으로 1년여의 짧은 기간의 연애에도 서로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 전격적으로 결혼을 결정 하게 됐다고 알려졌다. 앞서 조향기는 이미 각종 방송을 통해 “배려심 많고 부모님도 잘 챙기는 남자친구에게 마음이 움직였다”고 열애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는 평소 친분이 있는 가수 김태우와 박기영이 참석해 축가를 부를 예정이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
  • ‘영원한 불혹의 작가’ 남편·아들 곁에 잠들다

    ‘영원한 불혹의 작가’ 남편·아들 곁에 잠들다

    지난 22일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씨가 멀리 떠나는 날은 매서운 한파도 잠시 멈칫하며 아득한 먼길을 애도했다. 25일 오전 10시 경기 구리시 토평동 성당에서 치러진 장례미사는 신정순 주임신부의 집전으로 열렸다. ●각계 인사 500여명 마지막 길 지켜봐 큰딸인 작가 호원숙씨 등 유가족과 고인에게 세례를 줬던 김자문 신부를 비롯해 김화태 신부, 조광호 신부 등 고인과 인연이 있었던 성직자들이 참석했다. 또한 소설가 박범신,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 이근배 시인, 이해인 수녀 등을 비롯해 정과리, 강영숙, 조선희, 정종현, 민병일, 이경자, 심윤경, 임철우, 은희경, 공지영 등 여러 문인들과 양숙진 현대문학 대표,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 김영현 실천문학사 대표와 같은 문학계 인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관계 인사, 독자 등 500여명이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김성길 신부는 “수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지만 늘 한 송이 수선화처럼 다소곳하고 겸손의 향기를 풍기신 분”이라면서 “영정 사진 속 웃는 모습 역시 시골장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낙네 같은 소박한 모습”이라고 돌이켰다. 또 “참으로 큰 분이셨음에도 모든 요란하고 화려한 장례를 마다하시고 신앙의 여정을 걸었던 성당에 소박한 영결미사를 맡기셨다.”면서 “책 읽는 즐거움과 독서를 통해 삶을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신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소박하고도 단아했던 고인의 삶과 죽음을 기렸다. ●“쓰셔야 할 소설이 동백처럼 있는데…” 정호승 시인은 조시에서 “선생님께서는 영원히 불혹의 작가이십니다/ 아직도 쓰셔야 할 소설이 흰 눈 속에 피어날 동백처럼 숨죽이고 있습니다/ 못 가본 길이 그토록 아름다우십니까/ 좀 늦게 가보시면 아니 되옵니까.”라고 안타까워했다. 고인과 각별함을 유지했던 문학평론가 유종호 연세대 교수는 조사에서 “선생님이 계셔서 그나마 따뜻했던 겨울이 오늘 이렇게 모질고 춥다.”면서 “이 시대의 어둠과 아픔을 누구보다 간절하게 표현하셨으며 비상한 재능에도 전혀 거부감을 촉발하지 않는 인품에서 늘 참다운 재능의 깊이를 실감했다.”고 고인의 부재에 대한 공허함을 절감했다. 이어 “사나운 시대의 험한 꼴을 많이 보셨지만 그 아픔과 쓰림이 국민문학이 됐으니 결코 헛되지 않았다.”면서 “이제 하늘에서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조사를 끝맺어 마지막 길을 지켜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장례미사를 마친 고인의 운구 행렬은 환한 미소의 영정 사진과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을 앞세워 길게 이어졌다. 시신은 경기 용인 천주교 공원 묘지의 남편과 아들 곁에 묻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처치 스테이, 기독교 명물 될것”

    “처치 스테이(교회 체험)는 기독교 신앙과 문화를 국민에게 심어 주려는 운동이지 결코 템플(사찰) 스테이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잘만 역량을 발휘하면 기독교의 명물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보수 개신교 교단·단체들의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길자연(70) 신임 대표회장이 2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 같이 말했다. 길 회장은 “1000개에 이르는 전국의 기도원, 경기 용인 순교자 묘역, 그 외 공간과 시설을 갖춘 교회에서 처치 스테이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교회 스스로 모금을 통해 충당하는 것이 원칙이며 정부에 손을 내밀 생각은 없다.”면서도 “기독교인도 세금을 내는 만큼 정부에서 국민 공리에 도움된다고 판단해 지원한다면 받을 작정”이라고 덧붙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학의 기둥 사라졌다” 각계 애도… 인터넷도 추모 물결

    “문학의 기둥 사라졌다” 각계 애도… 인터넷도 추모 물결

    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는 전날에 이어 23일에도 추모객들이 줄을 이었다. 특히 50~70대 여성 조문객들이 많았다. 그들은 방명록에 “4년 전 작은 찻집에서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도란도란 말씀 나누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학생’이었던 저의 꿈 많던 시절, 선생님과 함께했던 그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라고 적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빈소에는 이명박 대통령,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각계에서 보낸 조화가 가득했다. 빈소를 찾은 시인 황동규(73) 서울대 명예교수는 “선생님은 글과 삶이 일치했다. 그분의 글은 정직했고 트릭이 없었다.”면서 “문학의 기둥이 사라졌다.”고 애통해했다. 고인의 조카며느리인 김모(56)씨는 고인이 생전에 “온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을 맞은 사람들의 심경을 알겠다.”면서 방사선 치료 때문에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트위터, 블로그 등 인터넷 공간에서도 추모 물결이 넘쳤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선생님께서 이 세상 소풍을 끝내시고,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애도했다. 소설가 은희경씨는 “봄이 오면, 영화 보고 맛있는 거 사주신다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강한 분이 앓을 때 얼마나 두려울까 하면서도 오지 말란다고 안 갔던 게 후회되어 눈물 흐른다.”고 그리움과 자책감을 드러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고인의 유해는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른 뒤 25일 오전 경기 용인 천주교 묘지에 안장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박완서(세례명 정혜 엘리사벳) 작가님은 가톨릭 신앙인으로서도 훌륭한 모범을 보이신 분이셨다.”고 애도를 표했다. 고인과 함께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한 영화배우 안성기씨는 “에티오피아에 함께 갔을 때 앙상한 영양실조 아이들을 본 뒤 식사조차 못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회고했다. 유족으로는 장녀 호원숙(작가)·차녀 원순·삼녀 원경(서울대 의대 교수)·사녀 원균씨와 사위 황창윤(신라대 교수)·김광하(도이상사 대표)·권오정(성균관대 의대 학장)·김장섭(대구대 교수)씨가 있다. 박록삼·이영준·김소라기자 apple@seoul.co.kr
  • [사설] 개신교의 이슬람권 공개선교 만용 아닌가

    엊그제 예멘 사나에서 우리 개신교 청년들이 선교활동을 하다가 한국대사관 직원들에게 제지당했다. 정정이 극도로 불안한 이슬람 국가의 수도, 그것도 최고 번화가 한복판에서 버젓이 기타를 치면서 찬송을 불렀다고 한다. 대사관 직원의 만류가 없었다면 이들은 어떤 봉변을 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현지 우리 대사관이 이런 공개선교를 만류하고 나선 게 이달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란다. 2007년 분당 샘물교회 피랍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위험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분당 샘물교회 피랍 사태 후 우리 개신교 주요 교단과 정부는 나름대로 이슬람권 지역의 무모한 선교를 차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위험지역에 대한 선교사·신도들의 파송 제한이며 사전교육이 그것이다. 하지만 개신교계엔 이런 단속의 노력들이 별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암암리에 제3국을 통한 이슬람 나라들에의 밀입국이며 봉사·구호활동을 위장한 선교사·신자들의 선교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슬람 테러단체들이 한국인을 표적 삼겠다고 공개 선언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공격의 이유로 자주 거론되는 게 바로 선교에 대한 응징이다. 그런데도 위험지역을 굳이 파고드는 무모한 선교가 횡행하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땅끝까지 말씀을 전하라.’는 복음은 자비·관용의 종교적 본질을 살릴 때 유효하고 더 빛이 날 것이다. 선교를 법과·교리로 엄단하는 이슬람 나라에서 대놓고 ‘내 종교를 믿으라.’는 무모함은 만용을 넘어 종교의 가치를 스스로 깨는 모순이다. 국내 개신교계는 “교리와 신앙 차 탓에 해외선교를 막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변명 대신 봉사와 상생의 본질적 가치를 먼저 다져야 할 것이다. 만약 분당 샘물교회 피랍사건과 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국민의 거센 비난은 물론 교회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 후 ‘위안화’ 판정승… 오바마 ‘한반도·타이완’ 선방

    후 ‘위안화’ 판정승… 오바마 ‘한반도·타이완’ 선방

    미국과 중국 모두 이번 ‘세기의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평가했다. 미국으로서는 그동안 글로벌 이슈에 소극적이던 중국을 주요 2개국(G2)으로 확실하게 끌어들임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역할이 가능하도록 했다. 중국으로서도 미국과의 대립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그런 평가가 가능하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림이 달라진다. 뚜껑이 열린 공동성명은 문구 곳곳에서 양측의 고민과 이견이 엿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양국 간 협력을 강조하는 등 전반적인 양국관계의 발전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공감했지만 인권과 환율 문제 등 각론에서는 팽팽한 평행선을 달렸다. 우선 인권 분야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후 주석을 상대로 언론과 신앙의 자유 등 보편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009년 11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인권에 대한 소극적 언급으로 미국 언론들로부터 혹독하게 비판당한 전례를 감안한 듯 작심하고 쏟아냈다. 중국과의 인권회담 재개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후 주석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침착하게 “각국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비켜 갔다. 위안화 절상 문제에서 두 정상은 가장 첨예하게 맞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 주석과의 8차례 만남 가운데 가장 강경한 어조로 위안화를 절상하라고 압박했지만 후 주석은 거론을 꺼리면서 중국 내 미국기업 보호를 위한 새로운 정책만을 강조했다. 사실상 진전된 조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후 주석의 ‘판정승’일 수도 있지만 중국으로부터 450억 달러의 대규모 구매계약을 받아낸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성과로 풀이된다. 한반도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가 상당 부분 반영됐다. 공동성명에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에 대한 우려를 명기했고, 후 주석으로부터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아야 한다.”는 동의도 이끌어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후 주석이 남북대화를 강조하는 선에서 한반도 문제를 봉합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지난 15일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이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과 마지막 전화협의에 나섰지만 입장을 관철시키지 못한 셈이다. 타이완 문제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의 선방이 두드러졌다. 중국은 타이완에 대한 무기 판매 중단 등을 요구해 왔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는 선에서 후 주석의 공세를 막아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타이완 관계법’을 언급함으로써 타이완 방위와 무기 판매의 지속 가능성을 열어뒀다. 2009년 11월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기된 ‘핵심 이익’이 이번에는 빠진 것도 주목된다. 중국은 타이완, 티베트, 신장·위구르자치구, 남중국해 등을 중국의 ‘핵심 이익’으로 규정하고 있다. 당시 공동성명에는 “상대방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것이 양국관계의 안정적인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명시돼 있으며, 중국은 이 문구를 토대로 미국의 간섭에 강력하게 항의해 왔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이 공동성명에 핵심 이익이라는 문구를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각오가 대단했다.”고 전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오늘의 눈]황우여 덕담에 누군가는 불안/박록삼 문화부 기자

    [오늘의 눈]황우여 덕담에 누군가는 불안/박록삼 문화부 기자

    지난 18일 오후 황우여 한나라당 의원의 홈페이지(www.hwy.pe.kr)에는 다섯줄에 걸친 짤막한 ‘공지 사항’이 올라왔다. 원문의 일부를 옮겨본다. ‘작년 12월 6일 기독법조인 축하예배에서 분발과 격려의 말을 하고 마지막에 크리스천들이 하는 식의 덕담을 한 것… 불필요한 종교에 관한 논란을 피하기 위하여 자제하고 있습니다.’ 전날 황 의원의 사퇴를 요구한 대한불교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성명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덕담(德談).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며 하는 얘기다. 덕담 한 마디에 조계종이 지나치게 발끈했을 수도 있다. 개신교 신자들끼리 모여 앉아 “좀 더 많은 대법관 기독교인이 나와야 한다.”며 주고받은 ‘덕담’을 트집 잡으니 황 의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말이 옮겨가는 과정에서 보태진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파장은 쉬 가라앉지 않는다. 조계종에 이어 시민단체인 종교자유정책연구원과 황 의원의 지역구(인천 연수) 시민단체 등에서도 일제히 그의 발언을 비난하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시민들 역시 트위터와 블로그 등을 통해 그의 과거 발언과 행적까지 드러내고 나섰다. 판사 출신의 4선 중진인 황 의원은 교회 장로다. 10년째 한국기독교정치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관련 잡지 ‘신앙과 정치’를 창간했고, ‘기독교 정치인’을 양성하기 위해 크리스천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국회조찬기도회장이기도 한 황 의원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실천하고자 하는 소명의식이 투철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그의 덕담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포에 가까울 정도의 불안감을 안겨주는 이유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시절,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했다. 청와대 고위인사는 “나의 꿈은 모든 정부부처의 복음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종교 편향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이들에게 황 의원의 발언은 더 이상 덕담일 수 없다. 덕담에 필요한 것은 세심한 배려다. youngtan@seoul.co.kr
  • “명상을 예배에 접목… 超종교 활동 펼칠 것”

    “명상을 예배에 접목… 超종교 활동 펼칠 것”

    “새해 천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내 이연아 목사와 함께 18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기자간담회장에 들어선 문형진(32) 통일교 세계회장은 반듯한 얼굴로 두 손 모아 합장하며 인사를 건넸다. 180㎝가 훌쩍 넘는 훤칠한 키에 흰색 생활한복을 입고 나온 그는 금색 통일교 원리 마크가 있는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모습만큼이나 인사도 낯설다. ‘천복’(天福)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으라는 통일교식 인사다. 문 회장은 문선명 통일교 총재의 막내아들이다. ●“한동안 삭발하고 한복 차림 고집해” 문 회장은 “한동안 머리를 삭발하고 한복 입고 다니면서 불교와 불교철학에 심취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통일교 내부에서 약간의 압박이 있었다.”면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분위기여서 머리를 기르는 대신 생활한복은 계속 고집하고 있다.”며 멋쩍게 웃었다. 통일교는 더 이상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명칭을 내세우지 않는다. 지난해 2월부터 통일교라는 이름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문 회장은 “우리야 떳떳하게 신앙활동을 하고 있지만 다른 이름 아래에서 숨는 것 아니냐는 외부의 시선도 있었고, 우리 스스로도 명확하게 가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가톨릭, 불교 등을 섭렵한 뒤 하버드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다. 유교, 도교 경전도 그의 주된 관심 대상이었다. 이러한 이력은 통일교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예배 시간마다 종교적 명상을 중요한 순서로 집어 넣고, 120경배를 올리며 자기 성찰의 몫을 키워 갔다. 예배당에 4대 성인의 초상을 내걸고 존경의 뜻을 표하는 한편 등록신자 중심의 외형 확장이 아닌, 매주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하는 ‘진성 신자’들로 재편했다. ●이웃 종교 존중… 외형 단순 확장 자제 문 회장은 “1970년대 1만 6000여명이었던 신도 수가 2005년 1만 1000여명으로 줄었으나 지난해 말 기준 1만 9000여명으로 다시 늘어났다.”면서 “올해는 세계 4대 종교 지도자의 성지를 직접 방문해 흙을 가져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초(超)종교 활동을 펴나가겠다는 의지다. 다음달 3~9일에는 참평화통일 천복축제를 갖는다. 문 총재의 생일을 축하하고 유·무신론 논쟁 등을 전개한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학영재반 ‘집현전’ 학생들의 출판기념회 가보니

    문학영재반 ‘집현전’ 학생들의 출판기념회 가보니

    지난해 12월 어느 겨울 밤. 서울 서초구의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는 문학 작품집 ‘성뒤골의 글꾼들’(좋은세상)의 조촐한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이 문집을 펴낸 주인공은 15살 까까머리 중학생부터 대학교 신입생을 포함한 열명 남짓의 예비 작가들이다. “해리포터 신드롬에 빠져서”(강승민·동대부고 1년) 혹은 “가족과 친구들의 칭찬이 좋아서”(고은별·혜화여고 2년), “한국 문학과 인문학 부흥을 위해서”(유기웅·서울시립대 1년) 등 글을 쓰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모두 한마음이었다. 작품집 제목인 ‘성뒤골’은 과거 부자촌으로 도둑이 자주 출몰했던 우면산 골짜기를 이르는 말인데, 지난해 이곳 연수원에서 동고동락하며 창작의 열정을 불태웠던 것을 기념해 지은 이름이다. 이들의 첫 만남은 2006년으로 거슬러 간다. 김재천 시인과 故 김기순 소설가, 당시 수유중 교장이던 오대석 서울시교육원장 등 문학을 사랑하는 세 사람이 함께 뜻을 모아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학생을 상대로 시와 소설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집현전’이 첫 출발점이다. 집현전은 같은 해 국내 최초의 방과후학교 문학영재반인 성북교육청 문예창작 영재교육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첫 수업 당시 중학생이었던 학생들이 지난해부터 대학의 국문학과와 문예창작과로 진학해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는가 하면, 개중에 몇몇은 이미 중·고교 시절부터 전문 작가로 등단해 시인과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집현전 1기로 참여한 문지은(영훈고 3년) 학생은 “머릿속에만 갇혀 있는 생각들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하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소설 쓰기의 매력”이라면서 “(소설이) 친구처럼 천천히 다가왔지만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정식 소설가로 등단해 올해 경희대 국문학과에 진학하는 구태희(명덕여고 3년) 학생은 창작소설 ‘당신이 살아남는 법’에 대해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통해 주인공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고 결말도 정하지 않아, 작가가 일방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독자들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작품 설명에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이번 작품집에는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손자인 김병도(방배중 2년) 학생이 직접 할아버지의 대표 작품인 ‘무녀도’에 대한 독후감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김군은 “모자 사이인 모화와 욱이를 각각 샤머니즘인 토속신앙과 외래적인 기독교로 나눠 대립시키면서 당시 시대상을 제대로 묘사했고, 인물 간의 섬세한 심리 묘사도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6년간 아이들을 가르쳐온 소설 창작반 선생님이자 현직 소설가이기도 한 오 원장은 “최근에는 학생들 스스로 동인을 결성해 작품집을 내는가 하면 학생 신분으로 소설가로 등단한 제자도 나오고, 대학 진학도 국문학과로 할 정도로 다들 열정적”이라면서 “앞으로는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라 아이들과 경쟁을 해야 할 처지”라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글 사진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권력화된 교회의 부끄러운 속살

    그냥 교회가 아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잡은, 등록 교인만 7만명이 넘는 대형 교회다. 61명의 시무장로가 있고, 그중 한 사람이 현직 대통령이다. ‘고(려대)·소(망교회)·영(남) 정부’라는 신조어를 낳았을 정도로 정부 안팎의 시선이 집중된 곳이기도 하다. 소망교회다. 지난 2일 발생한 폭력 사태가 더 유감스러운 까닭이기도 하다. 김지철 담임목사와 전·현직 부목사가 새해 첫 주일 오전 교회 안에서 얼굴뼈가 함몰될 정도의 난투극을 벌였다. 소망교회의 주먹다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장로와 집사가 격하게 맞붙어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폭력사태만 벌써 세 번째다. 업무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주고받은 고소·고발은 열 건이 넘는다. 소망교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 다른 대형 교회인 서울 청파동 삼일교회의 스타목사 전병욱 목사는 지난해 11월 여자 신도를 성추행하려다 교회에서 ‘잠시’ 쫓겨나기까지 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송구영신 예배를 보던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담임 목사를 비난하는 유인물을 돌리던 다른 교회 목사들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등 명예훼손 송사에 휘말린 상태다. 부끄러움이나 바깥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익집단의 모습 그대로다. 교인들조차 “권력화된 교회의 부끄러운 속살”이라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오죽했으면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주먹’이라는 비아냥이 교회 게시판에 올랐겠는가. 이는 교회를 목사 사유물로 여기는 교계의 오랜 관행이 빚어낸 부정적 산물이다. 목사가 바뀌면 ‘내 사람’을 심거나 자르려 하고, 그 과정에서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소망교회 사태도 따지고 보면 신·구 목사 세력 간의 알력에서 비롯됐다. 일각에서는 그 원인을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찾기도 한다. 1970~1980년대 군부독재 정권 시절 주류 개신교계는 정·교 분리 원칙을 앞세워 사회현실에 개입하기를 꺼렸다. 그랬던 교단이 민주화가 이뤄지자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를 향해 발언하기 시작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기독교인 대통령 만들기’에 열성적이었고, 성공했다.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은 5일 “소망교회 사태는 목사들의 윤리, 도덕성 수준이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못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개탄한 뒤 “교단 제도를 정비하고 신앙공동체를 회복하지 않으면 이 같은 사태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망교회는 전날 “하나님과 국민 여러분 앞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고 사과 성명을 냈다. 이름값에 걸맞은 통렬한 반성과 성찰이 절실한 순간이다. 그래서 ‘낮은 데로 임하며’ 묵묵히 세상과 교감하는 목회자들과 마주쳤을 때, 더는 부끄럽지 않기를 주문해 본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미국인 동양철학자 ‘백두대간 알림이’로

    미국인 동양철학자 ‘백두대간 알림이’로

    백두대간의 한국적 가치와 경이로움에 매료된 한 미국인 동양철학자가 백두대간을 세계에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맡게 됐다. 산림청은 5일 경희대 문화관광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데이비드 메이슨(54)을 백두대간 홍보대사로 위촉했다고 밝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한 메이슨 교수는 1997년 연세대에서 한국학 석사학위를 받은 ‘한국통’이다. 그는 백두대간에 대한 연구용역 등을 수행하며 백두대간의 매력에 빠져들어 지난해 7월에는 ‘백두대간 트레일 가이드북’을 영문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메이슨 교수는 “백두대간은 경관이 수려하면서도 경이롭다.”며 “무속신앙을 비롯해 불교, 도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터전이라는 점에도 큰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홍보대사 위촉에 앞서 지난 3일 산림청 시무식에 메이슨 교수를 초청, ‘백두대간, 그 문화적 가치의 조명’이라는 주제의 특강을 갖기도 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갈등의 시대, 해법을 논하다] ‘부디스트 크리스찬’ 폴 니터 & ‘한국의 고승’ 진제 대선사

    [갈등의 시대, 해법을 논하다] ‘부디스트 크리스찬’ 폴 니터 & ‘한국의 고승’ 진제 대선사

    “일부 비뚤어진,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리스도교인을 향해 함께 미워하지 말고 불교가 먼저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폴 니터 교수) “불교는 갈등을 부추기고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형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둘이 아니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닌데, 무슨 투쟁이 있고 반목이 있겠습니까.”(진제 대선사) 이심전심(以心傳心)이며, 염화미소(拈華微笑)였다. 한국 선(禪) 불교의 법맥을 잇는 큰스님이 알 듯 모를 듯한 총론을 얘기하면 푸른 눈의 세계적인 신학자는 구체적인 각론으로 응답했다. 통역을 가운데 두고 선문답처럼 오가는 대화 속에서도 현실적 의제에 대한 공감의 폭과 깊이는 무르익어만 갔다. 언뜻 낯설어 보이는 만남과 대화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세 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갈등이 증폭되는 시대에 적지 않은 울림을 줬다. 2010년이 저물어가는 31일 오후 대구 동화사 설법전 앞마당은 전날 내린 눈이 소복이 덮여 있었다. 동화사 들머리 앞쪽에 내걸린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과 사찰 경내에 걸린 ‘불교를 탄압하는 이명박 정부 규탄한다’는 현수막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종교 갈등, 사회 갈등이 심상치않은 시기임을 짐작케 한다. ●“기독교·불자간 갈등 유감스러워” 조계종의 대표 선승인 진제 대선사와 세계적인 종교신학자인 폴 니터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교 교수가 불교, 기독교 사이의 경계와 벽을 허물고 나눈 대화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설명하기도 한다. 종교 간 갈등, ‘4대강 개발 논란’ 갈등 등 사회 전반에 반목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두 사람의 만남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동화사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이른바 ‘동화사 땅밟기’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이는 등 한국 사회 내 종교 간 갈등의 첨예한 현장 중 한 곳이었기에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상처가 깊을수록 치유의 효과도 큰 법이다. 니터 교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최근 한국 사회의 군사적, 종교적 갈등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내놓았다. 니터 교수는 “현재 남북 사이에 커다란 군사적 긴장 관계가 형성돼 있으며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기독교와 불자들 사이의 갈등도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봉은사와 동화사에서 무례하게 행동한 이들은 전체 그리스도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럽게도 생각하고 내가 대신 사죄한다.”고 말했다. 진제 대선사는 이에 대해 “어려운 시기에 니터 교수가 구만리 장도에 오셔서 한국을 염려해주니 대단히 반갑고 고맙다.”면서 “모든 불자와 그리스도인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합심해 인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라고 화답했다. 니터 교수는 단순한 사과의 뜻을 넘어 그리스도인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도 에둘러가지 않았다. 그는 “이웃은 물론 적까지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는데 이들은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고 이는 예수님의 복음과 어긋난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예수님의 근본적 가르침인 정의, 평화, 사랑의 가치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자신의 다원주의적 종교관의 핵심을 피력했다. 두 영적 지도자들은 굳이 수다스럽게 자기 의견을 내놓을 것도, 서로 상대방 의견에 애써 동의할 것도 없었다. 많은 말을 섞지 않았음에도 종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상통됐다. 72세, 77세 두 원로의 대화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겼건만 훈훈함만 쌓여가며 그칠 줄 몰랐다. 서로에 대한 인간적 궁금함도 묻고 답해졌다. “저는 로만-가톨릭이에요. 어릴 적 사제가 됐다가 30세에 사회로 돌아왔죠. 유일 진리를 얘기하는 그리스도교임에도 다원주의 가치를 갖게 된 것은 20대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마침 로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2000명 이상의 가톨릭 주교들이 모였고 ‘다른 종교에도 하느님이 계시고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의견들이 오고갔었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배우는 것은 기회일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큰스님’께서는 어떻게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니터 교수는 진제 대선사를 부를 때마다 꼬박꼬박 서툰 우리말로 ‘큰스님’이라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한국 선불교의 대표적 은둔 수행승인 진제 대선사는 10여분가량 깨달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니터 교수는 눈을 반짝거리며 듣다가 하나의 화두를 붙들고 2년 반 동안 수행한 뒤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진제 대선사는 “분별없는 참된 나, 즉 인간 본연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 청정무구의 평화로운 마음을 되찾는 방법으로서 선 수행이 중요하다.”면서 “선은 불교 전통으로 이어오는 것이지만 신앙의 대상이 아닌 만큼 종교를 떠나 인간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세상에 접근하는 구체적인 방식에는 작은 이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진제 대선사가 “우리는 자아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참나를 발견하라는 간화선을 던지는 것”이라면서 “내 눈이 어두운데 중생을 안락국토로 인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명상 수행 동안에도 고통받는 사람 있음을 생각해야” 하지만 니터 교수는 “내가 지금 명상 수행을 하는 동안에도 지구에는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들, 전쟁과 폭력, 고문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진제 대선사와 생각이 다름을 내비쳤다. 니터 교수는 함께 방문한 그의 부인 캐서린 코넬과 함께 서구사회에서 보기드물게 ‘그리스도-불자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1980년대부터 전쟁과 기아, 고통이 있는 곳에서 사회운동을 해온 탓이다. 그 또한 세계적 권위의 가톨릭 신학자이면서도 오랫동안 불교 선(禪) 수행을 해왔고, 최근에는 달라이 라마로부터 티베트불교 전통에 따라 ‘연꽃 치유자’(Lotus Healer)라는 법명과 함께 수계도 받았다. 공식적으로 ‘불자-그리스도인’이 된 셈이다. ‘부처님이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는 그의 최근 저서는 미국을 비롯해 서구 종교계에 큰 화제를 몰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진제 대선사는 대담을 마친 뒤 니터 교수에게 ‘진아’(眞我)라는 법명과 함께 직접 쓴 ‘처처작주’(處處作主·어디에 머무르건 참나를 찾아 삶의 주인이 되라는 뜻) 편액을 선물하며 이미 충분히 가까워진 종교 간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니터 교수는 “불교식 선 수행이 나의 기독교 신앙을 더욱 성숙시켰다.”면서 “나는 이제 72세인데 큰스님처럼 수년 동안 화두 붙들고 수행하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까요?”라고 기쁨과 감사의 뜻을 표현했다. 이날 두 정신적 지도자의 만남은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고려 최초의 대장경) 제작 1000년인 2011년을 맞아 특별히 성사된 ‘밀레니엄 평화 대담’이다. 외세 침략 앞에 무력으로 맞서지 않고 종교적 염원이라는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장경을 조성했던 정신을 기린다는 의미다. ●종교초월 사회 통합위한 ‘야단법석’ 진제 대선사와 니터 교수의 대담 이후에는 동화사 수좌 스님들을 비롯해 대구 경북 지역 불자와 기독교 단체가 니터 교수와 함께 한자리에 모이는 ‘야단법석’(野檀法席)을 펼쳤다. ‘불교-기독교 간 수행 전통에 대한 이해와 교류’를 주제로 한바탕 깊은 얘기를 나눴다. 행사를 주관한 동화사 주지 성문 스님은 “이번 대화는 종교의 벽을 넘어 21세기 함께 사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마련했다.”면서 “대화를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선 불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종교를 초월하여 사회 통합과 평화를 이뤄내자는 불교계의 간절한 의지를 전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니터 교수는 1일 동화사에서 초청 강연을 마친 뒤 5일까지 부산 해운정사, 부산 범어사, 서울 국제선센터 금차선원을 잇는 전국 순회 평화 토크를 가진 뒤 6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대구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폴 니터 1939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1966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정을 이수, 목사가 됐으며 1972년 독일 마르부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부터 미국 유니온 신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달라이 라마, 데스몬드 투투 등과 함께 평화평의회국제위원회의 이사로 활동해으며 무슬림과 힌두, 불교 신도들과의 심층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의 정점에 서 있는 그는 교회 중심주의·그리스도 중심주의에서 신 중심주의로, 해방의 실천을 통한 구원 중심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세계를 돌며 마음의 평화와 세계 평화에 대해 설파하는 인기 강연자이다. ●진제 대선사 1934년 남해에서 태어났다. 1954년 해인사로 출가해 전국 선원에서 수행했으며, 향곡 선사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았다. 경허-해월-운봉-향곡으로 이어지는 한국 선불교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사찰의 최고 어른)과 동화사 조실이다. 선객들 사이에서 ‘북송담, 남진제’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인천 용화사의 송담스님과 더불어 불교계를 대표하는 정신적 지도자로 꼽힌다. 1971년 부산에 해운정사를 창건했다. 선학원 이사장, 문경 봉암사 조실을 거쳤고 1998년과 2000년 백양사 1·2차 무차선대법회 초청법주, 2002년 국제무차선대법회 법주에도 몸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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