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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알순례길 새달 3일 당산역 출발 씨알재단은 3월 3일 네 번째 ‘씨알 순례길’ 행사를 연다. 순례는 당일 오전 10시 서울 당산역에서 출발해 양화대교~양화나루(망원지구)~마포나루(마포대교)~원효로 나들목~함석헌 자택지~효창공원역에 이르는 약 6㎞(3시간 소요) 구간에서 진행한다. 4월에 열리는 ‘씨알 순례길’ 행사는 서울 정릉에서부터 4·19 국립묘지까지의 구간에서 마련될 예정이다. (02)2279-5157. ‘화쟁 아카데미’ 새달 5일 개강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화쟁위원회와 불교사회연구소는 제3기 ‘화쟁 리더십 아카데미’를 3월 5일부터 5월 14일까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에 개최한다. 아카데미는 강의와 토론으로 진행하며 도법·현응·흥선 스님과 이시형 신경정신과 의사,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김종철 녹색평론 대표, 김형효(서강대)·윤성식(고려대)·성태용(건국대) 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 입학식은 5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한다. (02)730-0884. 한국기독교 역사강좌 매주 월요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는 3월 5일부터 4월 30일까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역사연구소 세미나실에서 ‘제16회 한국기독교 역사강좌’를 연다. 강좌는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의 강의로 ▲천주교의 전래와 박해 ▲개신교의 수용 ▲한국 기독교의 ‘성경기독교’적 성격 ▲교회의 설립과 교단 조직 ▲신학과 신앙운동 ▲기독교와 민족운동 ▲신사 참배 문제와 훼절 등을 다룬다. (02)2226-0850.
  • [기획]최고경영자=⑦대한농산(大韓農産)「그룹」박용학(朴龍學)씨

    [기획]최고경영자=⑦대한농산(大韓農産)「그룹」박용학(朴龍學)씨

     72년도 수출실적 4천8백만불(약 2백억원)로 국내 제4위 금성(金星)방직·태평(太平)방직에 이어 옛 삼호(三頀)방직까지 인수, 총 26만5천추를 확보해 우리나라 방직시설의 4분의 1을 차지한「메머드」기업이 바로 대한농산(大韓農産)「그룹」이다. 방직업 외에도 수산·제분·관광·백화점·해운업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박용학(朴龍學·58)씨. 해방되던 해 빚 8만원을 받으러 서울에 왔다가 영영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만 우체국장님이기도 하다.   부실한 태평(太平)·금성(金星)방직 맡으며 강자(强者)로 껑충  박용학(朴龍學)씨가 재계의 강자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68년 운영난에 허덕이던 금성(金星)방직과 태평(太平)방직을 인수하면서부터였다. 소위『영락(永樂)교회그룹』으로 불린 월남 기업인들 중 박용학(朴龍學)씨가「그룹·리더」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  지난 해 대한농산(大韓農産)「그룹」의 총 외형 거래액은 약 3백억원. 이 중 3분의 2가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다. 모회사(母會社)인 대한(大韓)농산은 수출입업이 전문. 공칭 자본금은 1억1천만원에 불과하지만 참치어선 7척을 갖고 있는 고려(高麗)수산이 수산부로 통합되어 있다.  대한(大韓)농산「그룹」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태평(太平)방직의 공칭 자본금은 42억5천만원. 예전 금성(金星)방직과 태평(太平)방직을 합친 것으로 안양(安養)·청주(淸州)·대구(大邱)에 공장을 갖고 있으며 옛 삼호(三頀)방직 대전(大田)공장 등을 인수한 합동(合同)방직까지 합하면 모두 26만5천추의 생산 능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프랑스」와 50대 50의 합작 투자로 세워진 태평(太平)특수섬유(부평(富平)에 공장)가 한해 4백80만「타스」의「팬티·스토킹」을 만들어「유럽」「홍콩」등지에 팔고 있다.  부산(釜山)에 있던 부국제분, 서울의 공성제분 등 3개 공장을 사들여 통합한 한일제분은 한해 8백36만부대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다.  올 9월부터 직영 백화점으로 다시 문을 열 미도파백화점도 박용학(朴龍學)씨 소유. 한양「호텔」신축을 검토 중인 미도파관광도 박(朴)씨의 소유이며 이밖에 대한(大韓)선박(이정림(李庭林)씨와 50대 50 투자)·신동아(新東亞)화재해상보험(최성모(崔聖模)씨와 합작)·강원(江原)은행·충북(忠北)은행·「그레이·하운드」등에도 투자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5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고 보면 박(朴)씨의 재계에서의 성장도가 얼마나 경이적이고 엄청난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재계 표면에 나타난 것이 5년 사이일뿐 그 전부터 박(朴)씨의 재력은 차곡차곡 쌓여 왔다는 게 박(朴)씨를 아는 주위 사람들의 얘기다.  『장사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가 쓰는 사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믿으면 결코 배신당하지 않아요. 일을 맡기면 그 사람을 믿고 그 사람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게 가정생활까지도 보살펴 주어야 하는 게「보스」의 책임이지요. 그래서 전 간부급 직원들의 가정 형편은 물론 건강에까지 신경을 씁니다. 피곤해 하면 쉬게 해야죠. 무슨 골치아픈 일이 생기면 제가「어드바이저」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이게 박(朴) 사장의 경영철학 제1조다. 정실 인사를 없애고 10년전 뽑아 쓴 서울대 상대(商大), 공대(工大) 출신이 지금은 대한(大韓)농산을 움직이는 주축 인재로 자라났다는 것도 박(朴)사장의 자랑. 신용을 지켜야 한다든가, 부지런해야 한다든가, 여행을 자주해 세계경제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하는 것 등은 모두『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은 다음에 필요한 것이라고.  다음은 종교다.  『사람이란 항상 약하고 자기 앞에 놓인 함정을 모르기 마련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재기의「찬스」를 잡기 마련입니다. 사업 하는 젊은이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어요』  자신이 독실한「크리스천」인 것은 물론 박(朴)씨의 부인은 거의 영락(永樂)교회서 살다시피 한다고.  박(朴)씨의 고향은 지금은 이북인 강원도 통천(通川)군 임남(臨南)면. 총석정(叢石亭)이 있는 통천(通川)은 원산(元山)과 금강산(金剛山)의 중간쯤에 자리잡고 있다. 원산(元山)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첫 취직한 것이 섬유회사다.  『그래서 지금도 방직업이 주축이 됐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 박(朴)씨의 회고다.  한 3년 월급장이(쟁이)를 하다 한(韓)·만(滿) 국경인 신의주(新義州)로 옮겨가「삼창산업」이란 자그마한 무역회사를 처음 차렸다. 면직물을 수입해다가 국내에도 팔고 만주에도 수출했다. 소위「대동아전쟁」이 터지면서 전쟁통에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제 2차대전이 말기에 접어드면서 일제(日帝)는 한반도에도 통제 경제를 실시하기 시작, 박(朴)씨도 장사를 집어치우고 고향인 통천(通川)으로 돌아왔다.   첫 출발 섬유회사 사원… “신앙 있으면 찬스는 쉽게”   고향에 돌아온 박(朴)씨가 소일(消日)거리 삼아 맡은 것이 우편국장. 서울지방체신국 관할이던 임남(臨南)우편국장(지금의 별정(別定)우체국)으로 고등관 대우를 받다가 해방을 맞았다.  45년 10월15일 서울 체신국에 돈 8만원을 받을 게 있어 이웃 우편국장 3사람과 함께 38선을 다녀온 것이 영영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것. 고향에서는 소련군을 보지 못했는데 38선 근처에 와서 처음으로 소련군으로 보았으며 동두천(東豆川) 근처에선 총소리도 들었다고. 서울에 도착한 것은 3일만인 10월27일.  서울 체신국에서 받은 돈 9만원과 그 해 12월말께 가족들이 배를 타고 동해(東海)로 월남하면서 가지고 나온 돈 20만원이 박(朴)씨의 장사 밑천 전부였다. 박(朴)씨는 그 돈으로 지금의 외환은행 본점 건너편에 있던 옛「스즈끼」자전거 도매상(적산)을 사들였다. 당시 경성(京城)방직에서 만들어 내던 광목을 받아 파는 광목도매상을 차렸다. 당시로선 광목이 최고 인기품목. 꽤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이 돈으로 오양산업을 차리고 도량형기를 만들어 내는 대한계기주식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좀 자리가 잡힐만하니까 6·25 동란이 터졌다. 부산(釜山)에 피난 가서 대한(大韓)비료란 비료 수입회사를 차렸다.  『장사하다가 이때 처음 크게 실패했죠.「이탈리아」서 비료를 싣고 오는 중인데 그만「달러」환율이 바뀌었어요. 엄청난 손해를 봤지요』  그후 수출산업에 손을 대 새우·오징어 등을 수출하는 부산(釜山)냉동을 세웠고 다시 참치잡이 어선 12척(당시로선 우리나라 전체 원양어선 30% 차지)으로 고려수산을 세웠다. 이때부터 박(朴)씨의 재산은 눈덩이 굴려 커지듯 불어나기만 했다.  3개 제분공장을 인수해 한일제분을 세우면서 재산은 더욱 커졌고 68년 금성(金星)방직을 인수하면서부터 재계의 「다크·호스」로 등장, 이제는 어디 내놓아도 나무랄 데 없는 재벌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면방업이 지난 해 하반기부터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3~5년 동안은 이 경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 집약적인 사업이라 인건비가 싼 우리나라 여건에 알맞죠』  그러나 박(朴)씨의 사업 의욕은 이제 면방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화학·전자공업까지 뻗어가고 있다.  『지난 번 여행에서 서독(西獨)의 대「메이커」와 중화학공업의 합작 투자에 합의를 보았읍(습)니다. 올해 하반기에 착공해 74년부터는 수출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중화학공업은 석유화학계열이 될 것이란 얘기. 제품은 서독(西獨)의 합작선에 전량 수출한다는 조건이라고. 또 전자공업도 전량 수출의 합작투자인데 TV와 같은 기존 제품이 아닌 정밀기계분야이며 석유화학·전자공업을 합친 수출 규모가 한해 2억불을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되리라고.  또 방직업도 74년까지는 50만~60만추의 규모로 확장할 계획이며 대한(大韓)해운의 규모도 지금의 2배인 30만t 규모로 늘릴 계획.   서독 메이커와 합작 투자…전자·중화학 공장 곧 건설   9월에 새로 문을 열 미도파백화점은 1백% 직영으로 하는 한편 외국인「쇼핑·코너」를 새로 두어 관광 수요를 메우겠다고. 또 올해 안에 5곳에「슈퍼·마케트」「체인」을 만들겠다는 등 국내시장 판로 개척에도 크게 열을 올리고 있다.  『예전에 아침 6시면 꼬박꼬박 일어나지던 게 이젠 7시가 되어야 깨는군요. 나이 먹은 탓인지···』  그래도 박(朴)씨는 부지런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 대개 오전 중에는 필동(筆洞) 자택에서 집무하고 오후에는 회사로 나오거나 공장을 둘러본다.  슬하에 1남3녀를 두고 있는데 맏아들 영일(泳逸·29)씨는 대한(大韓)농산의 수석 부사장으로 현재 최고경영자의 수습「코스」를 밟고 있다. 큰 따님은 대한(大韓)「그룹」설경동(薛卿東)씨의 아드님(원봉(元鳳)씨)에게 출가했고 두 따님은 미국 유학중.  『취미요? 사업하는 틈틈이 머리를 식힐 겸 화초를 가꾸죠』  그러고 보니 자택 정원은 물론 30평이 넘는 응접실도 구석구석에 화분이 놓여 있다.  4~5급 실력인 바둑은 호남(湖南)정유의 서정귀(徐廷貴)씨가 호적수이고 을지로(乙支路)4가에 있는 우래실(又來室)의 불고기와 냉면은 20년래의 단골이라고.  『어려서 먹어본 음식이라 그러지 제일 좋기는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참가자미를 숯불에 구워 소금쳐 먹는 거죠. 그 맛이 최고예요. 어디서 구했는지 용케 구해왔더군. 오래간만에 맛있게 먹어요』  <김창웅(金昌雄) 기자>   ◇박용학(朴龍學)씨 약력◇  ■1915년 10월=강원도 통천(通川)서 출생  ■1935년 3월=원산(元山)공립상업학교 졸업  ■1955년 10월=대한농산(大韓農産) 대표이사  ■1967년 3월=진흥(進興)기업 회장  ■1967년 6월=대한(大韓)선박 회장  ■1967년 9월=유풍(裕豊)「사일로」사장  ■1967년 11월=금강(金剛)장학회 부이사장  ■1968년 3월=금성(金星)·태평(太平)방직 사장  ■1968년 4월=고려(高麗)수산 사장·전경련(全經聯)·방협(紡協) 이사  ■1968년 5월=대한(大韓)화섬 감사  ■1969년 2월=한일(韓一)제분 사장  ■1969년 4월=무역협회 부회장  ■1970년 7월=태평(太平)특수섬유 사장 한미면업(韓美棉業) 이사  ■1971년 5월=미도파백화점 회장  ■1972년 2월=제분협회·홍보협회 이사 신동아(新東亞)화재보험 이사   대한면방(大韓綿紡)통상 사장 [선데이서울 73년 2월18일 제6권 5호 통권 제227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9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기사 내용과 광고 카피 등 당시의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한권에 얼마냐고요? 50원이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 판권 등 지적재산권은 서울신문의 소유입니다. 무단 전재, 복사, 저장, 전송, 개작 등은 관련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 목회자 세금납부 어떻게 봐야 하나

    ‘목회자들의 세금 납부 어떻게 봐야 하나.’ 개신교 교회의 재정 투명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거센 가운데 목회자의 세금 납부를 따져보는 자리가 마련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한국교회발전연구원(원장 이성희 목사)이 23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 2층 세미나실에서 ‘교회의 재정과 목회자의 세금 납부’를 주제로 여는 연구 발표회가 그것이다. 이 모임에선 최호윤 회계사(제일회계법인 이사·교회개혁실천연대 이사)와 감신대 유경동 교수가 발제자로 나서 각각 ‘한국 교회의 재정 투명성과 신뢰 회복’, ‘목회자(교회)의 세금 납부’를 주제로 발표한다. 이번 발표회는 그동안 개신교계에 만연한 비리와 부정이 교회의 투명하지 못한 재정 운영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을 수렴해 어렵게 열리게 됐다. 발표회를 주관한 연구원은 “어느 때보다도 교회 재정의 투명성을 통한 신뢰 회복이 교회 안팎에서 요구되고 있다.”고 발표회 취지를 설명했다. ●“교회재정 투명성 통한 신뢰 회복” 연구원 주장대로 지금 교계에선 교회 개혁을 위한 시민사회단체며 개별 교회의 자성과 개선 운동이 번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목회자의 세금 납부에 대해서는 교단과 교회 간 입장 차이가 극명해 사실상 이렇다 할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봉사에 대한 예우금인 만큼 갑근세가 부당하다는 견해와 사회 윤리적 관점에서 목회자 납세는 필요하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갑근세 부당” vs “사회윤리 차원 필요” 최 회계사는 “지금 교인은 일반인보다 더 기업적인 관점에서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 치부된다.”면서 “이는 개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집단체인 교회에 대한 기대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교회에 대한 실망감으로 변하면서 드러난 시각 차이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최 회계사는 특히 “교인들은 교회 재정 관리의 주체로서, 청지기로서, 책임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했고 교회 내부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집단은 이런 무관심을 적절히 활용했다.”며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재정 관리의 주체적 책임자이고 청지기임이 회복될 때 교회 재정 관리도 의미를 가지며, 교회 내부와 사회적으로도 신뢰성을 회복하게 된다.”고 말했다. 연구원 측이 설명한 이날 모임의 성격은 “하나님이 신앙인들에게 허락한 물질에 대한 거룩성과 공공성을 고찰해 보는 자리”이다. 따라서 발표회 참석자들은 교계에 확산되고 있는 재정 투명성 논란과 세금 납부에 대한 찬반을 놓고 열띤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각각의 발제에 빛과소금교회 신동식 목사와 연합감리교회 김홍덕 목사가 참여하며 일반 참석자들의 질의 응답도 이어질 전망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사회적 병폐·불안·공포… ‘날선 언어’로 고발하다

    사회적 병폐·불안·공포… ‘날선 언어’로 고발하다

    문학이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고, 치유하는 방식은 부조리한 현실에 정밀 카메라를 직접 들이대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신성한 힘을 끌어들여 에둘러 가는 방식도 있겠다. 김사과의 ‘테러의 시’(민음사 펴냄)와 오수연의 ‘돌의 말’(문학동네 펴냄)은 제목만큼이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현실을 보여 준다. 사실 그것이 우리가 겪는 현실인가 하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비정한 사회 20대 후반의 소설가 김사과의 ‘테러의 시’는 검은색 바탕에 반짝이는 것들이 여인의 얼굴 형상을 한 대지로 떨어지는 표지만큼이나 어둡고 읽어 나갈수록 착잡하다. 소설의 시작은 서울 강남의 최고급 룸살롱을 급습한 방송 카메라를 연상시키는 듯한 디테일로 시작한다. 1990년대 북창동 환락가 어딘가에서 경험해 봤거나 그와 관련한 풍문들을 들어 본 사람들이 연상할 수 있을 만한 진한 섹스 장면들이 묘사돼 있다. 그러나 그 묘사가 에로영화처럼 마음을 흥분시키거나 즐겁게 하지 않는다. 구토와 심각한 두통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조선족 ‘제니’는 서울 외곽의 불법 섹스클럽에서 필리핀,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여자들과 함께 몸을 판다. 제니는 핑크방으로 오는 와이셔츠와 넥타이, 검은 양복의 남자들에게 그저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가끔 질문을 하지만, 제니가 할 수 있는 답은 “모른다.”이다. 시에서 가장 부유한 구역에는 신기하게도 교회와 고시원, 김밥천국이 많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시에서 가장 부유한 구역에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산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곳을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재개발하려고도 한다. 온몸에 문신을 한 ‘거짓’ 목사는 섹스클럽을 운영한다. 영어 개인교습을 하는 영국인 리는 수년째 한국에 불법체류 중이고,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마약과 섹스, 도박으로 해결하고 있다. 사회적 병폐가 현실의 사람들을 가격하고 있다면, 작가 김사과는 그보다 더 폭력적인 언어로 그 비정함을 드러냈다. 세상이 아름답고 잘 운영되고 있다고 믿는 독자라면 이 소설을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애처로운 사람들의 ‘외마디 비명’ 오수연의 ‘돌의 말’을 읽으려면 신화를 이해할 능력이 필요하다. 무속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21세기 정숙이의 입을 통해 부활한 ‘복순이’는 신라의 용이다. 2년 5개월 전쯤 골동품상에서 만난 용 같은 수석이 그들을 묶어 주었다. 복순이는 이렇게 말한다. 초기 신라는 용의 나라였다. 우물가에서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신라 시조모 알영, 2대 남해차차웅의 누이이자 최초의 여자 제사장이었던 아로부인, 남해차차웅의 딸로서 용성국에서 온 왕자 석탈해와 결혼한 아니부인 등은 모두 용의 화현(化現)이었다. 복순이는 용 신앙을 믿는 호족들의 계보 끄트머리에 있다. 이차돈의 순교로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면서 용토템은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이차돈은 불교를 위해 용들의 호수에 나무를 심어 ‘천경림’을 조성하고, 땅속의 물줄기와 지상을 잇는 거점을 봉쇄한다. 화현하는 용은 사라졌다. 소설의 마지막장을 넘길 때까지도 용이 씐 돌로부터 말을 듣고 전하는 빙의(憑依)의 상황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다만 작가의 말을 참조할 수는 있겠다. “버젓한 회사원이나 안정된 자영업자 같은, 이 사회가 상정하는 보통사람 되기가 많은 이들에게는 너무 어렵다. 실은 기적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복순이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불안과 공포를 누르고 평범을 쥐어짜며 사는 이들의 모습일까. 시대가 바뀌어 낙오하고, 저류로 흘러들어 존재도 잊혀진 어느 중산층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많은 말 속에 숨어 있는 애처로운 사람들의 외마디 비명도 이해할 것 같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인어가 무서워서”…고위간부의 ‘황당 성명’

    아프리카의 한 고위 정치가가 저수지 공사 중단이 ‘인어 때문’이라고 황당한 사유를 밝혀 화제다. 9일(현지시각) 영국 오렌지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짐바브웨 공화국 은코모(Samuel S. Nkomo) 수자원개발부 장관이 저수지 건설 근로자들이 인어에 놀라 공사 지역으로 돌아가길 거부했다고 말했다. 은코모 장관은 지난 2009년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은코모 장관은 짐바브웨 국영일간 헤럴드에 “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전통술을 만들어 그 영혼(인어)을 달래는 의식을 하는 것”이라면서 “인어들은 다른 저수지 지역에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는 모든 근로자들은 다시는 곡웨와 무타레 도시 인근 저수지 공사 지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했기 때문. 짐바브웨는 물 부족 국가로 국민에게 충분한 식수를 제공하고 농업 생산량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저수지 공사를 시행해야만 한다고. 이 같은 저수지 공사는 매번 민간 신앙 때문에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짐바브웨에서는 기존 토속 신앙과 선교로 들어온 기독교를 함께 믿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인어나 다른 신화의 생물을 믿고 있다고 알려졌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평신도 95% “천주교신자 의식하고 생활”

    한국 천주교 평신도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평협이 ‘40주년 백서’ 부록으로 붙인 ‘평신도 신앙실태 조사’는 평신도의 위상과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국 35개 본당 신자 3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평신도들은 ‘교회에 속해 있고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자각을 갖고 생활하면서도, 가톨릭 생명윤리에 관한 인식과 실천 의지는 대체로 부족했다. 먼저 ‘천주교 신자임을 인식하고 생활하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6%가 ‘항상 의식하고 생활하고 있다’, 39%가 ‘어느 정도 의식하고 생활하고 있다’고 응답해 대체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원의식을 갖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러나 신자들의 본당 평신도 지도자들에 대한 생각은 상반된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가량이 ‘진정한 봉사자로 느껴진다’(46%)고 답했지만 ‘권위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35%)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이와 함께 교회 공동체 쇄신을 위해 가장 먼저 변해야 할 대상을 묻는 질문에는 58%가 평신도를 꼽았고, 성직자(25%), 잘 모르겠다(13%), 수도자(4%)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평신도들의 가톨릭 생명윤리에 관한 인식은 비교적 낮았다. 낙태에 관한 질문에서는 과반수(56%)가 ‘살인’이라는 데 동감하면서도 성폭력·근친상간에 의한 낙태나 부부간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25%와 8%나 됐다. 안락사에 대해서도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거나 ‘경제적 압박이 있는 경우’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44%와 16%나 돼 교회의 입장과는 매우 다른 생각을 보인 반면 ‘당연히 금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31%에 그쳤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책꽂이]

    ●자본주의적 인간, 중국 남부인(정재용 지음, 리더스 북 펴냄) 중국 성장의 근원을 좇다 중국 남부인들을 만났다. 돈을 신앙처럼 여기다 보니 부와 길운을 뜻하는 숫자에 열광하고 오직 현금만을 받아들이며 풍수를 진지하게 믿는다.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체제 이전에 이들은 이미 자본주의적 인간이었다는 진단이다. 1만 5000원. ●언론이 말해주지 않는 불편한 진실(박종성 지음, 북스코프 펴냄) 미디어 발달에 따라 국제 뉴스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 사안의 속살에 대해 조명해 주는 뉴스는 드물다. 익숙지 않은 맥락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단편적으로 던져놓기만 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요원하다. 양극화, 분쟁, 종교, 민족, 환경, 질병 등 6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배경을 설명한다. 1만 5000원. ●유로의 미래를 말하다(조지 소로스 지음, 하창희 옮김, 지식트리 펴냄) 유럽 경제통합은 어정쩡한 수준이다. 경제를 통합하면서 정치 통합은 미루는 방식이어서다. 해서 단일통화경제권을 만들어두긴 했는데 이를 엄격히 관리·감독할 시스템이 없다. 해서 언제든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는 점은 누누히 지적되어 왔다. 지난 금융위기 때 정확히 드러났다. 헤지펀드의 제왕 조지 소로스는 USA처럼 USE(United States of Europe)를 꿈꾼다면 좀 더 강력한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1만 3000원. ●보수 시대의 종언과 새로운 권력의 탄생, 정치의 몰락(박성민 지음, 강양구 인터뷰, 민음사 펴냄) 정치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면서 수년간 선거를 치러본 저자와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 기자의 대화록이다. 정치에 대한 여러 평이나 말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결론은 투표이고 정당이고 정치인일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1만 4000원.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힘 경제고전(다케나카 헤이조 지음, 김소운 옮김, 북하이브 펴냄) 애덤 스미스에서 케인즈, 슘페터를 거쳐 하이에크와 뷰캐넌에 이르기까지 경제고전에 대한 짧은 평을 달아뒀다. 저자는 고이즈미 내각의 경제개혁을 지휘한 게이오대 경제학과 교수다. 그 개혁으로 말미암아 신자유주의자라 강하게 비판받았다. 해서 경제사상으로 경제현실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분노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1만 5000원. ●만화가 정현웅의 재발견(정현웅 지음, 백정숙·최석태 해설, 정현웅기념사업회 엮음, 현실문화 펴냄) 고등학생 시절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을 비롯해 장정, 삽화, 미술평론 등 다방면에 걸쳐 재능을 펼친 일제강점기 조선의 대표적 예술가 정현웅. 월북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60년 만에 조명한다. 초창기 한국만화를 들여다보고 당시 문화상을 엿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1만 8000원.
  • 당신의 영혼은 얼마?

    당신의 영혼은 얼마?

    눈앞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영혼을 파는 대가로 막대한 금액을 제시한다. 지식에 대한 갈망과 젊음의 사랑을 느끼고 싶었던 파우스트가 그랬듯 욕망을 위해 영혼을 파는 것은 아주 손쉬운 일일까.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현대인들이 팔아 치울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어떠한 금전적 이득으로도 팔 수 없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손쉽게 팔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는 어느 정도일까.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사람의 뇌 활동을 살펴보는 신경경제학의 대가인 그레고리 번스 미 에모리대 교수가 돈으로 팔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사람의 성역’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번스 교수는 국제저널 왕립언론사회회보에 게재한 최신 논문에서 “사람의 뇌는 사람의 종교적 믿음, 조국에 대한 정체성, 문화에 대한 가치 등이 금전적 보상으로는 쉽사리 바뀌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고 밝혔다. 연구에는 경제학자와 정보과학자, 심리학자는 물론 미 국방부와 미과학재단 등이 함께 참여했다. 번스 교수는 “사람의 뇌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알아보고, 대답하기 어렵거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바꿔야 하는 경우에는 뇌 활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봤다.”면서 “이를 통해 ‘신념’이나 ‘성역’ 같은 부분이 뇌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알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32명의 성인 남성을 fMRI에 넣은 후 질문을 던지며 그들의 뇌 활동을 살폈다. ‘당신은 차를 마십니까’ 같은 평범한 질문부터 시작해 ‘당신은 동성결혼을 지지합니까’ 등 가치판단에 관한 질문 등 총 62개를 던졌다. 각각의 질문은 ‘당신은 낙태 반대론자입니까’와 ‘당신은 낙태 찬성론자입니까’처럼 상반된 두 개의 쌍으로 이뤄져 있었다. 두 번째 단계에서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앞서 한 답변을 바꾸는 데 대한 보상을 제시했다. 참가자들은 하나의 답변을 바꿀 때마다 실제로 100달러를 받았고, 만약 결코 본인이 바꾸지 않겠다는 질문이 나올 경우 실험을 스스로 중단할 수 있었다. 실험 결과 실험 참가자의 뇌 활동은 별다른 고민 없이 쉽게 바꿀 수 있는 질문과 신앙이나 도덕적 가치 같은 질문들에 대해 확연히 다른 모습을 나타냈다. 일반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진 뇌의 감정적 보상 시스템이 작용했다. 돈을 받으면 쉽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나 도덕적 가치 또는 문화적 신념이 들어간 문항의 경우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진 뇌의 왼쪽 측두정엽과 좌측외배측전두엽피질이 활성화되면서 보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교회, 환경단체, 음악적 성향 등에 대한 질문이 이 같은 경우에 해당됐다. 심지어 스포츠팀에 대한 선호도 역시 보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성역’에 포함됐다. 특히 ‘성역’에 해당하는 질문에 대해 바꾸도록 강요받는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분노의 징후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 같은 실험 결과는 사람들이 금전적인 보상이나 이득으로 쉽사리 바꿀 수 없는 자신만의 ‘성역’을 갖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돈과 맞바꿀 수 없는 분명한 가치를 뇌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번스 교수는 “대부분의 사회적 정책은 사람들에 대한 보상과 규제로 이뤄져 있다.”면서 “그러나 이번 연구를 통해 개인의 가치나 문화에 대한 정책은 금전적 보상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장태평 징검다리] 순교자의 정신

    [장태평 징검다리] 순교자의 정신

    올해는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함께 이루어지는 해이다. 선거의 결과에 따라 국가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정치의 해’이다. 세계는 지금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여기에서 오는 경제적 불안과 최근에 더욱 부각되고 있는 남북문제 등 해결해야 할 큰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리는 이러한 국가적 과제들을 잘 해결하지 못하면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절할지도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 국가의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때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의 상황은 가장 중요한 정치 리더십이 제 몸 추스르기에도 힘에 겨운 것 같다. 정치인은 자기보다는 국가와 국민을 우선 생각하고, 자기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과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당선을 위해 득표에 집착해야 하고, 점점 자기중심적이고 지역적 이해에 갇혀 가는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이제는 사라져 가는 순교자의 정신을 생각해 본다. 순교자란 종교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기보다 차라리 자기 생명이나 그보다 더 귀중한 것도 희생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순교자의 정신이란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는 정신이다. 50여년 전, 에콰도르의 한 마을로 선교하러 간 짐 엘리엇을 비롯한 4명의 미국인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이 선교하고자 했던 지역의 부족은 수백년 동안 외부인들을 보면 모두 다 죽이는 포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선교를 시작하기도 전에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다. 그들의 선교사업은 실패하였다. 당시 미국 주요 언론은 이 사건을 다루면서 그들의 죽음이 불필요한 낭비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엘리엇의 아내는 달랐다. 남편의 죽음이 낭비가 아니었으며, 자신의 뜻을 달성하고 죽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2년 후 자신도 그곳으로 갔고, 5년간 최선을 다해 사랑의 봉사를 했다. 그 부족은 그녀가 예전에 자신들이 죽인 남자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 큰 감동을 받아 결국에는 모두 교인이 되었다. 순교자는 이렇게 믿음을 굽히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당하는 때에도 결코 꺾이지 않는다. 당연히 좌절하거나 절망하지도 않는다. 순교자는 또한 자기중심으로 살지 않는다.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大義)를 위해 일을 하고, 자기중심이 아니라 대의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자기가 죽어도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죽는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난 것 같고, 실패한 것 같고, 부질없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순교자의 믿음은 그 사람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뜻을 같이하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끝내 부활한다. 이는 죽은 후에도 남아 있는 가치가 있고, 비전이 있고, 동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 불굴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교자는 실패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성공한 사람들이다. 요즈음 우리는 너무나 자기중심으로 살지 않는가 생각한다. 육신이 편안히 살기 위해, 정신은 아무래도 좋은 물질적 세상이 되었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어떠한 부정한 수를 써서라도 자리를 유지하려 애를 쓰고,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않다! 내가 없다고, 나의 때가 지났다고 해서, 그 매듭으로 끝이 아니다. 대나무는 30~40㎝ 한 척마다 마디를 지으나, 백 척이나 높이 자란다. 올해 출전하는 우리 정치인들도 내가 그만두면 끝나는 정치, 내가 죽으면 끝나는 나만의 정치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서 지속되는 우리의 정치를 해주었으면 한다. 가치와 비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정신이 물질보다 영원하다. 우리 정치인들이 눈앞의 욕심보다 미래에 남을 자신의 이름을 중시하고, 국민과 역사를 귀하게 생각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굳은 믿음과 나를 비우는 순교자의 정신이 그립다. 한국마사회장
  • 천주교 주교회의·한국외방선교회 공동 설립…해외파견 선교사학교 3월 개교

    천주교 주교회의·한국외방선교회 공동 설립…해외파견 선교사학교 3월 개교

    한국 천주교가 해외파견 선교사 양성기관인 ‘해외선교사 학교’를 설립해 오는 3월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특히 이 선교사 학교는 평신도들에게도 문을 개방해 한국천주교의 해외선교가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17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 따르면 주교회의 해외이주사목위원회와 한국외방선교회는 3월 7일 오전 11시 서울 성북동 한국외방선교회 본부에서 ‘해외선교사 학교’ 개교 미사를 열고 강의를 시작한다. 4학기로 운영되는 1년 과정의 이 학교는 우선 성직자와 수도자 20명을 대상으로 선교 기본양식과 해외선교 의식 고취와 관련한 교육을 중점적으로 실시한다. 교육 과정에는 선교학을 비롯해 교회사, 문화, 영성, 신학 등 다양한 과목이 들어 있다. 한국 천주교가 해외에 선교사를 파견하기 시작한 것은 1981년 한국외방선교회가 파퓨아뉴기니에 사제를 보낸 게 처음.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지에 선교사를 꾸준히 파견해와 현재 600여명이 해외에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번 선교사 학교는 한국 천주교계에 높아지는 해외 선교사 파견 확대의 목소리를 주교회의가 적극적으로 수용해 결실을 보게 됐다. 한국외방선교회는 설립 25주년을 맞았던 7년 전부터 해외선교 교육기관 마련을 고민해 왔고 주교회의 해외이주사목위원회와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의 도움으로 마침내 선교사 학교의 문을 열기에 이르렀다. 이번 선교사 학교는 한국천주교의 대표기관인 주교회의와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해외선교 단체가 협의해 세운 첫 교육기관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번 문을 여는 선교사 학교는 선교사와 해외선교에 관심있는 예비선교사를 대상으로 해외선교를 위한 한국교회의 토양을 다지자는 장기적 안목의 학교로 볼 수 있다. 여기에 평신도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한 것도 큰 변화이다. 그동안 평신도들이 해외 선교사로 활동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신앙과 영성 차원에서 사제나 수도사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이번 선교사 학교의 평신도 교육은 그동안 이어왔던 한국천주교의 해외선교에 적지않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책꽂이]

    ●계절 밥상 여행 (손현주 지음, 아트북스 펴냄) 여행작가이자 와인 칼럼니스트, 파워블로거인 저자가 전국을 돌며 맛있는 제철 음식과 사람 이야기를 담았다. 봄에는 여수에서 제주까지, 여름에는 전남 증도에서 경북 영주까지, 가을에는 안면도에서 마라도까지, 겨울은 강원도부터 포항까지, 계절별로 맛과 길을 엮어 여행 동선을 그리기에 딱이다. 1만 5000원. ●당신의 목자는 누구십니까? (장석영 지음, 팔복원 펴냄) 서울신문 기자 출신이자 현역 시인인 저자가 신문 사설, 대학 강의를 통해 전하던 신앙 에세이 중 135편을 골랐다. 성경 속에서 깨달은 진리를 통해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1만 3000원. ●나라를 망친 조선의 임금들 (이충래 지음, 청조사 펴냄) 조선은 왜 망했는가. 성리학, 지방관리, 국가권력의 사적 남용…. 다양한 원인 중 저자는 ‘궁방 절수’에 집중한다. 임금이 제 식구에게 면세를 일삼고, 왕실과 그 부속(궁방)에까지 토지를 떼어주는 일(절수)이 파다해지면서 나라가 기울었다는 것이다. 위정자들은 뜨끔할 수도. 1만 2800원. ●마오의 독서생활 (꿍위즈·펑센즈·스증취안 외 지음, 조경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 중국의 정치·경제·사회 뼈대를 만든 마오쩌둥, “사람은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 그는 어떤 책을 읽었을까. 1986년에 출간돼 지금까지 ‘마오 참고서’로 평가받는 이 책은 고전, 문학, 역사, 산문, 영어공부, 혁명기 소련 정치학, 철학서 등 마오의 평생 독서를 한 권에 담았다. 1만 8000원. ●어떻게 살 것인가 (사라 베이크웰 지음, 김유신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 정치적·종교적으로 혼돈의 시기였던 16세기 후반, 몽테뉴는 산문집 ‘에세’를 내놓았다. 에고이스트, 회의주의자, 순례자, 자유주의자, 로맨시스트 등 갖가지 수식어를 달고 산 몽테뉴의 생애와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에세’에서 스무 가지 테마를 뽑고, 그 답을 풀어내면서 21세기 현대인에게 삶의 방향을 안내한다. 1만 8000원.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김용진 지음, 개마고원 펴냄) 2010년 11월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위키리크스의 미국 외교전문 25만건 중 한국에 관련된 문서를 심층분석한 종합 보고서.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아프간 파병, UAE 원전 수주, 론스타와 한·미FTA 등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의 정치·외교라인을 발가벗겼다. 1만 6000원. ●넥스트 컨버전스 (마이클 스펜스 지음, 이현주 옮김, 곽수종 감수, 리더스북 펴냄)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미국와 유럽이 잇따른 위기를 맞으면서 세계 경제 지형도가 바뀌는 결정적인 길목에서 누가 세계경제의 미래를 주도할 것인가. 저자는 중국과 인도, 한국 등을 주목하는 한편 미래 성장과 세계 경제구조 등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등을 심도있게 고찰했다. 2만원.
  • ‘종의 기원’ 20년간 묵혀둔 이유는

    “당신과 관계된 것은 모두 저와 관계된 것입니다.” 그는 이 편지를 줄곧 안전하게 보관해뒀다. 얼마쯤 뒤 그는 편지 가장자리에 이렇게 써두었다. “나 죽고 나면 알아주오. 몇번이고 내가 이 편지에 입 맞추고 눈물 흘린 것을…. C.D.” 서명 C.D.는 진화론을 처음 밝힌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을 뜻한다. 다윈은 5년간의 비글호 여행에서 진화론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물론 그 속에 신의 자리는 없었다. 그 확신에도 불구하고 책으로 내는 데 20여년의 세월을 보냈다. 당시는 “기원전 4004년 우주가 창조됐다.”고, 화석이 발견되면 “하느님이 언짢은 나머지 기존 종을 멸하고 새로이 창조를 시작”한 증거라 믿던 시기다. 그래서 20여년을 다윈의 망설임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알프레드 윌리스라는 젊은 학자가 비슷한 내용의 논문을 검토해달라고 다윈에게 요청하지 않았다면, ‘종의 기원’은 다윈이 죽은 뒤에나 발표됐을는지도 모른다. 다윈은 세상의 비난이 그토록 두려웠을까. ‘찰스와 엠마 - 다윈의 러브스토리’(데보라 하이리그먼 지음·이승민 옮김, 정은문고 펴냄)는 그게 혹시 부인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묻는다. 비글호 항해 뒤 영국으로 돌아온 다윈은 결혼을 망설인다. 그 엄청난 연구를 강행하려면, 가족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여성들은 대부분 신앙심이 깊고 자기 남편도 그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대한 다윈의 확신을 이해했던 아버지조차 “결혼하고 싶은 여성을 만나거든 그 사람에게는 그런 말을 절대 하지 말거라!”고 조언할 정도였다. 그러나 다윈은 엠마 웨지우드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른다. 엠마는 흠잡을 데 없다. 웨지우드라는 성이 일러주듯 도자기 제조로 유명한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랐고, 쇼팽에게 따로 피아노를 배울 정도로 솜씨도 넘쳤다. 문제는 엠마가 독실한 신자라는 점이다. 부인을 평생 속일 수는 없는 법. 다윈은 엠마에게 진화론에 대한 구상을 차츰 털어놓기 시작한다. 엠마는 두려워한다. 죽으면 엠마 자신은 천국으로, 찰스는 지옥으로 갈테니 영원히 갈라져 이별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다. 더구나 남편은 평생 지옥불에 불타오르게 될 것이다. 어릴 적 단짝 언니를 잃고, 가장 아끼는 딸 애니까지 잃었던 엠마는 남편과 만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괴로워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다 증명할 수는 없다.”고 남편에게 호소한다. 다윈이 “일기와 공책 표지에 ‘비밀’이라고 쓰면서까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생각을 혼자 간직하기로 마음먹은 이유”가 이게 아니었을까. 다정다감하고 섬세했던 다윈의 내면과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 대한 묘사가 진화론 혁명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띠동물 민속학자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김문이 만난사람] 띠동물 민속학자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Q. 올해는 왜 ‘흑룡의 해’라고 하나요? A. “오행과 오방색에 따라 갑진년은 청룡(靑龍), 병진년은 적룡(赤龍), 무진년은 황룡(黃龍), 경진년은 백룡(白龍), 그리고 임진년을 흑룡(黑龍)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임진년을 ‘흑룡의 해라고 부른다’는 말은 역사 자료나 문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말연시를 맞아 현대적 속설과 어떤 상술이 결합돼 갑자기 만들어진 것입니다.” #의문 “열두 띠 동물 중에 왜 쥐가 가장 먼저인가요.” #풀이 “설화에 등장합니다. 아주 먼 옛날이었습니다. 하늘의 천황이 새해 첫날 세배 오는 순서대로 벼슬을 주겠다고 천하에 알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쥐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날개도 없고 다리도 짧은 쥐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던 쥐는 충직하게 떠날 채비를 하던 소를 보게 됐습니다. 꾀를 낸 쥐는 섣달 그믐날 소 외양간에 들어가 소 꼬리에 찰싹 매달렸습니다. 이윽고 날이 새기 전부터 부지런히 걸은 소는 천상의 문에 맨 먼저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쥐가 소보다 먼저 폴짝 뛰어내려 천상의 문으로 쏙 들어갔습니다. 소는 아깝게 2등이었고 뒤이어 호랑이 토끼 등이 들어오면서 지금의 열두 동물 순서가 정해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밖에 동물의 출몰 시간과 생활 특성에 근거해 순서를 정했다는 설도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자시(오후 11시~새벽 1시)에는 쥐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간이고, 축시(오전 1~3시)에는 소가 아주 편안하게 되새김을 하는 시간이며, 호랑이는 오전 3~5시(인시)에 가장 많이 활동하며, 마지막 순서인 돼지는 오후 9~11시(해시)에 가장 잠을 많이 자는 시간이라는 것 등등이다. 올해는 용의 해. 용은 열두 동물 가운데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전설에 의하면 용은 주로 오전 7~9시(진시)에 비를 내렸다고 해서 그렇게 순서를 정했다는 것이다. 하여 수신(水神)인 용은 예부터 왕을 상징하며 태몽으로서 가장 좋은 꿈으로 여겨 왔다. 그만큼 최고 권위를 가진 최상의 동물이 바로 용이다. 하지만 용은 용이로되 ‘흑룡의 해’라고 한다. 말 그대로 ‘검은 용’이다. 왜 이런 얘기가 나올까. 60갑자 중 용띠해는 다섯 번 든다. 용띠해가 10간(干), 오행 오방색 등과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색깔별로 표현할 수 있다. 임진년(壬辰年)의 천간(天干)인 임(壬)이 오행으로는 수(水)이고, 오방색으로는 검은 색(玄 또는 黑)에 해당돼 ‘흑룡의 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흑룡의 해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며, 또 어떤 오해와 진실이 있을까.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천진기(51) 박물관장을 만났다. 그는 띠 동물 민속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 등 띠 동물들과 관련된 책을 다수 펴냈고 13년째 민속박물관에서 띠 동물 전시를 열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용, 꿈을 꾸다’라는 제목으로 ‘용띠해 특별전’(2월 27일까지)을 마련하고 있다. 그는 1988년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으로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경복궁에서 입·퇴궐(출·퇴근)하는 흔치 않은 기록을 세우고 있다. 박물관장실에서 만난 그는 이런 기록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저는 외부강의를 나갈 때마다 ‘24년 똥 펐다’라는 말을 먼저 한다.”며 웃는다. 이어 그는 “임금님이 쓰던 변기를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고 반문했다. 고개를 갸우뚱하자 ‘매화틀 또는 매우틀’이라고 궁금증을 풀어 준다. 이어 “궁궐 보수를 할 때 궁궐에서 사용하던 화장실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아직까지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 까닭은 다들 이동식 변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옛날 궁궐에서 24시간 살았던 사람은 아마도 이동식 변기에서 똥 푸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천 관장은 자기 스스로 (경복궁에서) ‘똥 푸는 사람’이라며 웃는다. 임금님이 큰 일을 보던 이동식 변기 ‘매화틀’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화제를 ‘띠 동물’로 옮겼다. “보통 한국인은 한 해의 운세나 평생의 운명을 열두 띠 동물로 예견해 왔습니다. 한 해 또는 평생의 수호 동물이라 할 수 있는 띠 동물의 성정과 덕성을 따져 새해의 운세와 평생의 팔자를 미리 점쳐 왔지요.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지만 이보다 훨씬 앞선 것이 바로 ‘띠’였어요. 이처럼 한국인에게 띠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자기 띠 동물의 생태와 특징을 자신의 팔자와 동일시해 왔습니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띠 동물’의 의미와 해석은 세월을 거치면서 변하는데, 띠 동물에 색깔이 입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라는 설명. 특히 ‘백말띠 여자는 드세다.’라는 속설은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손녀가 백말띠(경오생)였는데 성격이 어찌나 거세고 드셌는지 웬만한 남자는 접근조차 못했단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말띠에 색깔을 입힌 ‘백말띠’가 지금까지 구전되고 있다고 한다. 천 관장은 “백말띠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싫어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면서 “황금돼지띠는 중국에서, 백호띠와 흑룡띠는 우리나라에서 자가발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자가발전’에는 10천간(天干)에서 비롯된다. 즉, 갑을(甲乙)은 푸른색이며 동쪽을 뜻하고, 병정(丙丁은 붉은 색과 남쪽, 무기(戊己)는 황색과 중앙, 경신(庚辛)은 백색과 서쪽, 임계(壬癸)는 검은색과 북쪽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동서남북 방향의 의미는 그쪽의 기운이 왕성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임진년은 북쪽의 수(水) 기운이 왕성한 흑룡의 해로 풀이해도 틀렸다고 할 수 없다는 게 천 관장의 해석. 다만 지난친 상술에 의해 과·포장된 것들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띠 동물에 색깔을 입혀서 인간의 길흉화복이나 한 해 운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역사적 자료나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흑룡’이라는 말도 올해 처음 나온 것입니다. 하여튼 새해 초에 그해 수호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 띠 동물의 좋은 덕성과 상서로움을 덕담이나 축원으로 나누는 것이 우리네 전통 민속이지요. 용은 바람을 부르고 구름을 일으키며 비, 천둥, 번개와 함께하는 장엄한 비상과 승천에 있습니다. 용이 갈구하는 최후의 목표와 희망은 구름을 박차고 승천하는 일이거든요.” 또한 ‘본 뱀은 못 그려도 안 본 용은 그릴 수 있다.’는 속담을 꺼내면서 “용은 다양하게 우리 문화사에 등장하고 있다. 용은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문화적 동물이다.”라면서 본초강목의 구절을 인용한다. ‘머리는 낙타 같고 뿔은 사슴 같고, 눈은 토끼 같고, 귀는 소와 같으며, 목은 뱀과 같고, 배는 신(큰 조개)과 같고, 비늘은 잉어와 같고, 발톱은 매와 같으며 발바닥은 범과 같다. 그리고 등에는 81개의 비늘이 있어서 9·9의 양수를 갖추었으며….’ 이렇듯 여러 동물이 가진 최대의 강점들만 모았으니 최고의 존재가 되고도 남음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울러 용은 민간신앙에서 비를 가져오는 우사(雨師)이고 사귀를 물리치며 복을 가져다주는 벽사의 착한 신으로 여겨 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국토지리정보원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명 150만여개 가운데 십이지(十二支) 동물 중 가장 많이 쓰인 것이 ‘용’이다. 용 지명은 전국 1261곳에 쓰여 호랑이(虎) 관련 지명 389곳의 3배, 토끼(卯) 관련 지명 158곳보다 약 8배 많다. 용이 들어간 지명 중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용산’으로 서울의 용산 등 전국 70곳에 쓰인다. 이 밖에도 용동(52곳), 용암(46곳), 용두(45곳), 용전(38곳), 용강·용정(27곳) 등이 있다. 경복궁 건물에 남아 있는 동물 모습 가운데 가장 많은 것 또한 용이다. “우리 민속박물관을 찾는 관광객은 한해 236만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외국인은 125만명(2011년)에 달합니다. 매년 연말연시를 맞아 띠 동물을 전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관심과 호응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요. 현재 전시 중인 ‘용, 꿈을 꾸다’에는 특히 중국인들이 많이 찾고 있습니다.” km@seoul.co.kr ●천진기는 196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 석사(민속학 전공), 중앙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고전문학 전공) 과정을 수료했다. 1988년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으로 들어간 이후 유물관리부,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등에서 근무했고 가톨릭대, 한국전통문화학교 등에 출강했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관장으로 몸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동물 민속론’(2002, 민속원), ‘한국 말 민속론’(2006, 한국마사회), ‘운명을 읽는 코드 열두 동물’(2008, 서울대출판부) 등이 있다. 문화체육부장관 표창(1994), 대통령 표창(2000) 등 다수의 수상 경력도 있다.
  • 터키 겨울 식도락 여행…차가운 黑海 뜨거운 유혹 ‘함시’

    터키 겨울 식도락 여행…차가운 黑海 뜨거운 유혹 ‘함시’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흑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의 품에 갇힌 내해(內海)다. 그래도 남한 면적의 4.2배에 달하니 제법 큰 바다인 셈이다. 겨울철 흑해 연안의 항구에 가면 생선을 굽고 튀기는 냄새가 진동한다. 특히 흑해 연안의 도시 중 가장 번창한 트라브존 어디에서든 생선 좌판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불러들인다는 ‘가을 전어’의 터키 버전인 함시가 치명적 유혹의 주인공이다. ●튀기고… 굽고… 한국의 가을전어와 닮았다 지난해 12월 어느 아침. 트라브존 공항을 나선 순간 흑해의 바다 냄새가 먼저 코끝을 건드렸다. 비릿한 짠 내는 아니었다. 도나우강과 드네푸르강 등의 유입량이 많은 데다 강수량도 풍족해 염도가 낮기 때문이다.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른 건 여행 책자에서 미리 봤던 함시였다. 전 국토가 세계문화유산이나 다름없는 터키에서 음식 타령이 웬 말이냐 할지 모르겠다. 물론 동서양 문명이 교차하며 남긴 황홀한 유산을 보는 즐거움은 터키 여행의 최대 매력이다. 하지만 터키 요리가 중국, 프랑스, 태국과 더불어 세계 4대 요리로 꼽힌다는 점을 생각하면 식도락을 뺀 터키 여행은 동전의 앞만 보고 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구나 겨울이라면. 함시는 멸치과 생선이라는데, 어시장에서 본 실물은 좀 달랐다. 굵기는 성인 남자 엄지손가락 정도, 길이는 그 두 배쯤 된다. 주산지인 트라브존 일대의 어시장에서 ㎏당 10리라(1리라=약 610원) 정도에 팔린다. 맛까지 저렴하다고 생각하면 함시에게 결례다. 고등어와 비슷한 풍미를 지닌 함시는 터키 서민들의 겨울 식탁을 지배하는 대표 어종인 동시에 케밥과 더불어 식당의 인기 메뉴다. 함시 타바(요리)와의 ‘운명적 조우’는 트라브존의 한 레스토랑에서 이뤄졌다. 서울 종로 일대의 생선 골목을 지날 때처럼 후각으로 먼저 다가왔다. 부챗살처럼 펼쳐 놓은 듯 노릇노릇 구워진 함시가 접시의 절반을 가득 메웠다. 눈대중으로 살피니 족히 20마리가 넘었다. 엄청난 양인데도 순식간에 흰 바닥을 드러냈다. 중독성이 강했다. 배와 머리는 포만감을 느끼는데 포크와 나이프는 계속 접시를 향했다. 1인분에 20~25리라선. 함시 타바와 환상의 짝패인 터키 대표 맥주 에페스까지 질펀하게 즐기더라도 부담 없는 가격이다. 다만 신앙심이 깊은 터키의 레스토랑 사장들은 알코올이 포함된 음료를 아예 안 파는 경우도 있으니, 주문하기 전에 확인하는 게 좋다. 낯선 생선의 마법 같은 맛의 비결이 궁금했다. 우리나라 맛집이라면 꺼릴 법도 한데, 마음씨 좋은 터키인들은 주방을 선뜻 공개했다. 요리사들에게 물었더니 “함시 요리법은 한두 가지로 규정짓기 어렵다. 셰프마다 생선에 옷을 입히는 가루의 배합 비율부터 뼈를 제거할지, 튀길지, 구울지까지 제각각”이라고 입을 모았다. 머리를 분리하고, 내장을 제거하는 1단계는 어느 곳이나 같았다. 그 다음이 관건이다. 트라브존의 레스토랑 셰프는 노란색 옥수수 가루에 소금으로 간을 한 뒤 함시를 앞뒤로 뒤집어 옷을 입혔다. 미리 달궈진 프라이팬에 함시를 먹음직스럽게 구워 냈다. 프라이팬을 썼지만 해바라기 기름을 충분히 둘러 튀김의 맛이 느껴지도록 했다. 뼈는 빼지 않았다. 주방장은 “뼈째 우적우적 씹어 먹어야 더 고소하고 맛있다.”고 설명했다. 이스탄불의 명소 갈라타 다리 식당가에서 만난 셰프는 아예 뼈까지 발라냈다. 손질한 두 마리의 함시를 하나로 포개더니 밀가루에 옥수수 가루를 7대3 비율로 섞은 튀김옷을 입혔다. 옥수수 가루만 쓸 때보다 더 부드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프라이팬을 쓰지 않았다. 대신 커다란 튀김 냄비에 5분 동안 튀겼다. 한식, 중식, 일식처럼 튀김옷을 두껍게 입히지 않기 때문에 함시 특유의 맛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고등어… 홍합… 케밥, 千의 얼굴을 가지다 한국 사람은 케밥 하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꼬챙이에 꿴 양념을 한 소고기나 닭고기, 양고기를 주방장이 거대한 칼로 쓱쓱 긁어 내민 요리를 떠올릴 터다. 웬만한 유럽 대도시의 터미널이나 도심,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테이크아웃식 케밥 집의 모습이 뇌리에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빙글빙글 회전한다’라는 의미의 ‘도네르’는 수없이 많은 케밥의 한 종류일 뿐이다. 세운 채로 서서히 굽기 때문에 기름기가 빠져나가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도네르 케밥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케밥이란 본래 불에 굽는다는 뜻이다. 한식의 고등어구이, 갈치구이, 조기구이가 터키로 건너가면 고등어 케밥, 갈치 케밥, 조기 케밥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케밥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대략 200~300가지에 이른다. 도네르 케밥 외에도 닭고기를 꼬치에 꿰어 구어 낸 닭고기 시쉬 케밥이나 부드럽게 다진 양고기(혹은 소고기) 반죽에 매운 고춧가루와 향신료를 뿌린 뒤 널따란 꼬치에 꿰어 석쇠에 구워낸 아다나 케밥, 움푹 파인 철판에 토마토 소스와 소고기(또는 양고기), 고추, 가지, 감자 등을 넣고 자작자작하게 끓여 내고서 치즈를 얹어 먹는 키레미트 케밥, 도네르 케밥에 얇게 썬 터키 빵과 토마토 소스를 얹어 그릴에 구운 이스켄데르 케밥, 홍합에 익힌 쌀을 넣고 양념을 한 뒤 구워 내는 홍합 케밥 등이 대표적이다. 도네르 케밥조차 곁들이는 빵과 밥에 따라 세분화된다. 터키식 밥인 필라브와 한 접시에 내는 포르시욘, 얇은 빵에 싸서 먹는 두룸(다국적 패스트푸드점의 OO랩, OO트위스터 메뉴를 떠올리면 된다), 두툼한 빵에 넣어 먹는 피데 등으로 나뉜다. 두룸에 도네르 케밥만 넣어 먹는 것도 아니다. 터키 사람들은 미트볼과 유사한 쾨프테나 꼬치 요리인 시쉬를 두룸에 싸서 먹기도 한다. 터키 땅에 발을 디뎠다면 기회가 있는 대로 케밥을 먹어 볼 일이다. 지갑 사정이 빡빡한 배낭족이라면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을 필요도 없다. 바자(재래시장)는 물론 거리 곳곳에 소규모 케밥 전문점이 깔렸다. 터키에서 물가가 비싼 편인 이스탄불에서도 음료까지 합쳐 10리라면 너끈하게 케밥을 즐길 수 있다. 재료의 품질 차이는 있겠지만, 웬만한 미식가가 아니라면 맛에서는 고급 레스토랑과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트라브존·이스탄불(터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문화마당] 아이돌만 기억하는 오만한 세상/주원규 소설가

    [문화마당] 아이돌만 기억하는 오만한 세상/주원규 소설가

    바야흐로 한류의 시대가 본격화된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류, K팝의 열기는 엇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아시아 대륙에서만 유효한 것으로 이해돼 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류가 대세라는 분위기가 아시아 대륙을 넘어 유럽과 미국에서도 연착륙하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K팝을 특별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에 아이돌이 자리하는 것 역시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또 한 가지, 아이돌을 떠올릴 때 10대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10대는 언뜻 불완전한 존재로 다가온다. 하지만 오히려 그 미성숙함이 뜻 모를 풋풋함과 신선함을 제공한다. 게다가 10대는 20, 30대보다 훨씬 더 자신만의 세계에 깊이 몰두할 수 있는 헌신의 열정까지 품고 있다. 그러기에 ‘K팝 열풍의 핵심=아이돌=10대’라는 공식의 성립 또한 긍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류 문화 콘텐츠의 주류를 말하는 대표명사이며, 아이돌이란 트렌드는 2012년에도 지속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K팝의 존재가치가 갖는 중대한 의미, 이를 테면 한국사회가 일방적 문화수입국의 역할에서 벗어나 문화수출국으로 전환했다는 자부심으로까지 작용할 수 있는 훌륭한 미덕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일까. 한국문화를 세계에 널리 전파하여 대한민국 국격을 높이자는 데 그 어떤 반발심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연치 않은 씁쓸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아이돌로 대표되는 문화적 흐름에서 비롯된 오만함의 정서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10대는 오직 아이돌을 위한, 아이돌에 의한 아이돌의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10대를 대상으로 장래희망을 묻는 각종 설문조사에서 연예인, 그것도 아이돌 가수가 1위를 차지하는 통계학적 결과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위 말하는 아이돌 현상은 세대 전체에서 일어나는 광범위한 경향이다. 이 경향은 10대가 아이돌을 열망하고 아이돌의 주인이 되기 위해 광분하도록 배후에서 조장하는 문화인프라의 일방향적 지향성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지향성이 가능한 이유는 단순하다. 세대 전체가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이돌의 전능성에 대한 비판의식 없는 맹목적 합의의 토양 속에서 자라나기 때문이다. 아이돌, 이른바 스타의 개념은 비단 연예계라는 하나의 직업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연예계를 넘어서서 사회 전반에서 아이돌은 말 그대로 대중의 우상이 되려 하는 체질에 길들여져 버렸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많은 이들은 우상이 오직 하나이기를 원한다.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 우상, 스타의 희소가치는 하나가 되면 될수록 더 찬란한 광채를 발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우상이 되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경쟁이 발발한다. 피 말리는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결과 도태되는 다수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아이돌만 기억하는 가치관을 품은 시선으로 본 무한경쟁의 굿판은 더 이상 소통이나 평등적 연대에 갈수록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있다. 아이돌에 대한 숭배가 드높아질수록 소통과 평등성에 근거한 문화적 다양성은 황폐해지고, 결국 아이돌이 되기 위해, 아이돌을 만들기 위해 1년 365일 아이돌만 기억하는 오만한 세상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최근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로 인해 우리의 10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논리의 비약일지 모르지만 이 가슴 아픈 사건들 배후에 일방적인 오만함만을 추구하는 아이돌 추종의 정서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의구심을 저버리기 어렵다. 우리의 10대들이 겪는 총체적 고통은 물질주의의 화려함과 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만을 최고선으로 용납하는 우리의 문화, 교육 현실이 낳은 것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2012년에는 아이돌로 대표되는 승자의 가치만을 신앙하는 오만함의 대세를 과감히 거스르는 문화적 대안들이 터져 나오길 희망해 본다. 소통과 평등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문화 이야기 말이다.
  • 스톤헨지보다 800년 앞선 석기시대 신전 발굴

    스톤헨지보다 800년 앞선 석기시대 신전 발굴

    석기 시대의 환경과 건축·생활양식을 알게 해 줄 귀중한 유적이 영국서 발굴돼 전 세계 학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3일자 보도에 따르면, 최근 BBC2 채널의 다큐멘터리 제작팀과 고고학자 연구팀은 그레이트브리튼섬 북쪽 앞바다의 오크니제도에서 석기시대 사원으로 보이는 대규모 건축물들을 발굴해냈다. BC 3000~BC 2000년 경의 신석기 유적지로 알려진 오크니제도에서 이 같은 큰 규모의 사원의 흔적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며, 특히 신석기시대의 대표 건축유적으로 알려진 스톤헨지보다 800년 앞선 것으로 알려져 더욱 눈길이 쏠리고 있다. 발굴팀은 이곳에서 석기시대 사원으로 추정되는 돌 건축물 14채를 발견했으며, 100여 채가 땅속에 더 묻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과거 스톤헨지가 신석기문화의 대표 유적지로 인식돼 왔지만 이번 발굴을 통해 타이틀이 바뀔 것이라고 보는 만큼, 이번 발굴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이랜즈 앤 아일랜즈 대학의 고고학자 닉 카드는 “이번 발굴로 석기시대 사람들의 신앙과 세계관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이곳은 고고학자들의 꿈의 장소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요크대학교의 마크 애드먼드 박사도 “국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면서 “일부 건축물은 스톤헨지보다 800년이나 앞서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일부 건축물에서 지그재그로 그려진 붉은색 선을 발견했으며, 이것이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석기시대 예술인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오크니 지역의 사원발굴은 단 10%가량만 진행된 상태며, 유적지 전체의 정확한 연구와 검토에는 10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9) ‘범신론’ 사상가 스피노자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9) ‘범신론’ 사상가 스피노자

    1677년 네덜란드 헤이그. 판 데르 스픽은 자신의 집에 하숙했던 친구의 책상을 조심스레 포장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그는 시신도 없는 텅 빈 관(棺)으로 친구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참이었다. 친구의 시신은 교회에 안치되어 있던 중 도난당했다. ‘신을 모독한 불경스러운 자’라는 꼬리표가 시신 역시 편치 못하게 한 게 틀림없었다. 그 친구는 몇 주 전, 자신이 죽으면 책상을 암스테르담의 한 출판사에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포장재에는 어떤 것도 적지 말고 세관에 내용물을 신고하지도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조심성 많은 친구의 도움 덕에 책상은 무사히 출판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에티카’라는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그 책은 곧 금서로 지정돼 압수되었다. 비록 익명으로 출간되었지만, 사람들은 그 글의 주인이 누군지 바로 알아보았던 것. 그 책의 저자는 ‘베네딕투스 스피노자’였다. 베네딕투스가 불경한 자로 낙인 찍힌 것은 1656년, 그의 나이 겨우 24세가 되던 해였다. 그는 종교재판을 피해 에스파냐에서 포르투갈로, 그리고 다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1632년에 태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이름은 ‘바뤼흐’. 이 말은 히브리어로 ‘축복받은 자’라는 뜻이었다. ●불경한 자에게 저주가 있으리니 당시 신생 공화국이었던 네덜란드는 유대인 상인들을 받아들여 번영을 이루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공화국은 종교와 인종에 관용적이었던 만큼 한계 또한 분명히 규정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기존의 신앙 이외에 이단적 교리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것. 그런데 바뤼흐 스피노자는 이 금지의 선을 넘어버렸다. “낮에도 그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고, 밤에도 그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가 앉아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 것이고, 그가 일어서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가 밖에 나가도…그가 안에 있어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신은 그를 용서치 않을 것이며…모든 천계의 저주를 통해 그를 전체 이스라엘 부족으로부터 격리시킬 것이다.” 스피노자가 신성모독의 발언들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해지자, 유대인 공동체는 그의 파문을 결정했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태어난 이후 발생한 14건의 파문 중 이와 같은 분노의 파문서는 없었다. 그것은 공식적인 책이나 가르침을 퍼뜨린 적 없는 청년이 받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저주였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파문을 전후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상례였다. 요컨대 파문은 일종의 경고였던 셈. 그러나 스피노자는 ‘회개’하지 않았다. 돈을 주겠다는 회유도, 격리시키겠다는 협박도, 암살 기도의 공포도 그를 움직이지 못했다. 스피노자는 부모님의 침대를 제외한 모든 상속을 거부했고, 유대인의 흔적을 없애려고 라틴어 ‘베네딕투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평생토록 이 파문 사건에 대해 어떤 억울한 심정도, 항변도 토로하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에게 열려 있는 길로 기쁜 마음으로 들어서련다.” 신성모독죄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자신을 그 누구보다 신을 사랑하는 자라 여겼다. 그는 신의 뜻에 따라 살기를 원했다. 신이란 말 그대로 무한하고 절대적이고 완전한 존재다. 그런 존재는 외부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완전한 자유 속에서 자족적인 삶을 영위할 것이다. 요컨대 신이란 스스로 그러한 존재인 자연 그 자체며, 세상 만물 속에 깃들어 있다. 인간이 성취해야 할 것은 신의 본성에 따라 사는 것, 즉 자유로운 삶이었다. 스피노자에게 자유로운 삶을 일구는 것이야말로 구원이었다. 하지만 기존 교회 속의 신은 복종을 원했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그러한 신은 인간을 자유가 아닌 예속 상태에 두기 위한 상상의 작품이었다. 교회는 응답하고, 심판하고, 처벌하는 신, 즉 인간화된 신을 꾸며냈다. 스피노자에게 공화국이란 종교의 예속과 반대되는 자유를 의미했다. 전제군주와 결탁한 교회의 종교적 핍박을 피해 유대인들이 정착했던 자유의 국가. 바로 이곳 네덜란드가 그러한 공화국이었다. 하지만 그 공화국은 1669년 스피노자의 친구인 쿠르바흐에 대한 종교적 탄압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은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응답이었다. “전제주의 최고의 비결이자 그것을 떠받치는 큰 기둥은 사람들을 계속 기만의 상태에 처해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억압될 수밖에 없게끔 공포를 조장하고 그것을 종교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마치 그것이 구원인 양 오히려 자신들의 예속을 위해서 싸우게 될 것이다.” 전제주의를 이끄는 원리가 공포라면, 공화국의 존립 근거는 무엇보다도 자유에 있었다. 그렇다면 쿠르바흐에 대한 탄압을 공모한 공화국은 스스로 자기의 존재 근거를 무너뜨려버린 셈이었다. 자유에 대한 억압, 그것은 곧 공화국의 종말을 의미했다. 스피노자의 이러한 우려는 2년 후 현실로 드러난다. ●자유인, 그 불온한 자 1672년 프랑스의 침공에 네덜란드는 가까스로 나라를 지켰다. 하지만 전쟁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죽음과 기근이 만연했다. 이 절망의 틈새를 군주제를 원했던 오란예 집안이 파고들었다. 그들은 위기의 원인을 공화국의 탓으로 돌렸다. 폭도로 변한 군중은 공화국의 지도자인 데 비트 형제를 거리로 끌어내 처참하게 살해하고, 살점은 구워 먹거나 기념품으로 팔았다. 비통함에 빠진 스피노자는 ‘극한의 야만인들’이란 격문을 들고 거리로 나서려 했지만 하숙집 주인이자 친구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완강히 스피노자를 막아 세웠다. 왜 군중은 자신들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공화국을 거부하고 전제주의라는 예속을 향해 달려가는가. 스피노자는 공화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알았다. 자유는 국가가 ‘보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자유를 ‘구성’하지 않는 한, 어떤 국가 체제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스피노자는 자신의 생각을 ‘에티카’에 적어내려 간다. ‘에티카’는 수학책을 방불케 하는 공리와 정의, 증명들로 가득하다. 이 건조한 윤리학의 주제는 우리의 감정이다. 스피노자에게 자유인의 열쇠는 감정에 있었다. 감정이란 우리 신체에 일어나는 변용에 대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며 산다. 요컨대, 우연적인 외적 원인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상태다. 그렇기에 “더 나은 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쁜 길을 따라”간다.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이 수동적 신체를 능동적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권력은 오로지 수동적 신체를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돈과 명예, 신의 이름으로 쾌락과 절망, 희망과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우리에게 복종을 이끌어냈다. 지배자들에게 두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신들이 작동할 수 없는 능동적 신체를 가진 자유인이었다. ‘에티카’는 단지 자유인이라는 자기 구원을 위해 능동적 신체를 구성하는 길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길이야말로 지배자들에게는 불온한 것이었다. ●자유를 생산하는 앎과 삶 스피노자는 1676년 하이델베르크의 교수직 제안을 거절한다. 그에게 대학이란 기존의 법과 종교의 계율 위에서 작동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대학은 철학함의 자유를 제한할 뿐 아니라, 자유의 철학을 생산하기에도 부적합한 곳이었다. 대학교수직을 거절한 스피노자는 하숙집 책상 위를 자기의 공부 현장으로 삼았다. 지인들과 주고받는 편지와 만남은 그 자체로 배움의 과정이었다. 그는 대학 강당 대신 헤이그의 하숙집에서 조용히, 하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자유인의 삶을 만드는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안, 사실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국가나 돈, 명예나 신, 그 무언가에 의해 미래에 찾아올 자유를 꿈꾸지 않았다. 미래로 유예된 자유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자유란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뿐이었다. 시신마저 사라진 뒤 스피노자의 이름으로 남은 것은 바지 두 벌, 셔츠 일곱 장, 손수건 다섯 장뿐이었다. 예속에 대한 단호함과 자기 구원의 열정. 그리고 자유인의 소박하지만 정갈했던 삶. 바로 이것이 혁명을 외친 적 없었던 스피노자를 역사상 가장 위험한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남게 했다. 남산 강학원 연구원 신근영
  • [글로벌 시대] 일본 안의 이향(異鄕) 홋카이도/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일본 안의 이향(異鄕) 홋카이도/고토 노부유키 홍익대 교양외국어학부 교수

    일본 북부의 홋카이도에 대해 한국인들은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 한국에 견주어 생각하면 강원도와 같은 시골이며, 스키나 스노보드를 하는 데 최적지인 겨울 리조트 지역이다. 1972년에는 삿포로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됐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광대한 토지에는 대규모 골프장이 여기저기에 있다. 나는 1960년대~1970년대 6년 동안 소년 시대를 홋카이도에서 지낸 적이 있다. 홋카이도의 눈은 스키를 타기에 정말 최고였다. 홋카이도에는 원래 ‘아이누인’이라는 선주민 사회와 문화가 있었다. 아이누 민족은 일찍이 사할린으로부터 쿠릴 열도, 홋카이도, 일본본토 북부에 걸쳐서 넓은 지역에 살고 있었다. 수렵, 어로, 채집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생활을 영위해 왔다. 자연으로부터 배운 지혜, 신앙, 풍속, 언어는 대대로 계승되어 고유 문화가 싹텄다. 홋카이도에 살고 있었을 무렵, 따뜻한 계절에는 휴일이면 산에 나물을 채집하러 갔다. 나물에 대한 지식은 원래 아이누인한테서 배운 것이었다. 먼 옛날 아이누인은 일본인과 교역을 해온 관계였지만, 17세기 후반에 일어난 큰 전쟁에서 패한 뒤 일본인에 의해 정치·경제적으로 지배받게 되었다. 아이누인이면서 아이누 문화 연구자였던 가야노 시게루(1926~2006)는 그 전쟁 이후의 아이누인의 삶에 대해 1990년에 집필한 책에서 “일본인들은 우리 땅(홋카이도)에 수백년 전부터 건너왔었는데, 본격적이면서 전면적으로 침략한 것은 메이지 시대 이후”라고 밝히고 있다. 일본정부는 아이누인에 대해 강제노동, 강제이주, 창씨개명 및 일본어의 강제사용 등의 동화정책을 펼쳤다. 산이나 강에서 자유로이 수렵, 어로, 채집하는 수렵민족으로서의 기본생존권을 박탈시키는 한편, 홋카이도를 국유화한 이후 재벌에게 넘겼다. 거의 동시기에 일본한테서 침략을 당한 한국인에게는 그러한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조선 침략과 다른 점은 한민족은 1945년에 해방되어 독립국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아이누인은 1945년 이후에도 민족차별과 인권침해를 받아왔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현재 홋카이도에는 2만여명의 아이누인이 살고 있는데, 본인 스스로 아이누인임을 밝히지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실제 아이누의 인구는 더 많을 거라고 한다. 몇 세대에 걸쳐 비참한 시대를 참고 견디며 살아왔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 뒤늦게나마 아이누 민족을 둘러싼 상황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 같다. 그 계기는 2007년 유엔 총회에서 결의된 ‘원주민의 권리에 관한 유엔 선언’이다. 이 결의를 수용하여 2008년 일본 국회에서 아이누 민족을 원주민으로 인정하는 것을 요구하는 결의가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그러한 움직임에 따라 2009년에는 ‘홋카이도 우타리 협회’가 ‘홋카이도 아이누 협회’로 개칭되었다. 원래 ‘홋카이도 아이누 협회’가 1930년에 설립되었는데, ‘아이누’라는 민족명이 일본 사회에서 차별용어로 통했기 때문에 1961년에 아이누어로 ‘동포’를 뜻하는 ‘우타리’라는 호칭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 그것을 다시 민족명인 ‘아이누’로 회복한 것이다. 이러한 협회의 명칭 변천을 보아도 아이누인들이 일본 사회에서 얼마나 절망적으로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내년 1월 아이누 민족 첫 정치단체인 ‘아이누 민족당’이 결성된다고 한다. 기본정책으로 아이누 민족의 권리 회복과 교육·복지의 충실, 다문화·다민족 공생사회의 실현, 자연과의 공생을 기반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사회의 실현을 내걸고 있다. 아이누 민족의 권리 회복은 물론이지만, 그동안 시달려 온 민족적 경험과 자연과의 공존을 기조로 하는 아이누 문화에 입각해서 일본의 폐쇄된 정치 상황에 새로운 계기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홋카이도에 여행을 간다면 스키장이나 골프장은 아이누인의 숲을 벌채해서 만든 것이라는 점을 알아두었으면 한다. 또 홋카이도에 가서 아이누인을 만나면, 아이누어로 “이람카랍테(안녕하세요)”라고 말을 걸어 보자. 일본어로 말을 거는 것보다 훨씬 반갑게 맞이해줄 것이다.
  • 中 “공산당원에게 종교는 없다”

    중국 당국이 공산당원들을 상대로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지침을 천명했다.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부 주웨이췬(朱维群) 부부장(차관급)은 공산당 이론지 구시(求是)에서 ‘일부 공산당원들이 종교 신도가 되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당원의 종교 자유 규제 지침을 재확인했다고 신화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주 차관은 칼럼에서 “일각에서 당원에 대한 종교 자유 제한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시민의 종교 자유 보장에 위배되는 만큼 당원의 종교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면서 “그러나 당원이 종교 신앙을 가질 수 없는 것은 한 치의 동요도 없이 이어져 온 당의 일관된 원칙”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산당의 신앙인 마르크스주의는 유물주의에 입각한 반면 종교 신앙은 유심주의에 기초한 것”이라면서 “당원에게 종교를 허용하는 것은 섞일 수 없는 유물론과 유심론을 혼합시킴으로써 결국 당의 분열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당국은 공산당원은 원래부터 신앙을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칼럼의 내용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반응이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빠르게 확산중인 기독교를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지난 1979년 개혁 개방을 선언하면서 불교 등 일부 전통 종교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나 기독교와 가톨릭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란 평을 받고 있다. 과거 가톨릭이 폴란드의 공산주의 붕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만큼 종교는 중국 공산 정권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종교플러스]

    천주교 ‘유아세례 증서’ 발급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은 유아를 비롯한 가정 전체가 세례성사를 더욱 뜻깊게 추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자는 취지에서 ‘유아세례 증서’를 냈다. 이 증서는 청소년국 유아부가 지난 3∼9월 진행한 ‘우리아기 유아세례 받기’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서 마련한 증서. 임신부 태교 프로그램이 시범적으로 운영됐던 서울 당산동 본당 유아세례식에서 처음 발급됐다. 서울대교구는 “유아세례는 부모가 아이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신앙적 실천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유아세례증서가 단순히 종이 한 장이 아니라 아이와 가족 모두에게 사랑이 담긴 하나의 징표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아세례 증서 사용을 원하는 본당은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장터 누리방(www.catholicshop.or.kr)에서 증서를 구매할 수 있다.(02)727-2343. 원불교 호스피스회 창립 원불교는 최근 원광대병원에서 사단법인 원불교 호스피스회 창립식을 갖고 본격 활동에 들어갔다. 원불교 호스피스회는 생사관 정립,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연구 및 사회화 사업, 호스피스 관련 전문인 양성교육, 실천사업, 말기 환자와 그 가족들을 돌보는 연계 활동 등을 수행한다. 호스피스 회원들은 지난 1993년부터 서울과 전북 익산에서 각각 활동해왔으며 창립총회를 계기로 전국 조직망을 갖춰나가기로 했다. 원광대병원 정은택 병원장은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할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강하다. 병고에 지친 수많은 영혼과 그 가족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길 염원한다.”며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호스피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길에 앞장서 달라.”고 회원들을 격려했다. 한편 총회에서는 환자들이 온전한 상태에서 직접 적은 ‘안녕카드’(유언장)도 나눠 눈길을 끌었다. 원불교 호스피스회가 마련한 이 ‘안녕카드’는 죽는 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한 연명조치에 대한 거부,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인위적 생명유지 치료 중단과 함께 고통 완화를 위한 조치는 최대한 취해주길 염원한다는 메시지를 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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