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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회大서 첫 명예 신학박사 학위 받은 박형규 목사

    성공회大서 첫 명예 신학박사 학위 받은 박형규 목사

    지난달 30일 성공회대학교가 문을 연 지 98년 만에 처음으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신학과 창립 30주년을 겸해 이 대학이 기획한 명예 신학박사 학위의 수여자는 다름 아닌 박형규(89·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목사. 그는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민주화운동에 몸담아 영혼을 살랐던 ‘길 위의 신학자’요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통한다. 현대사는 물론 한국 개신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목회자. 지난해 부인과 사별한 뒤 거처를 옮겨 살고 있는 경기 용인의 자택을 1일 오전 찾아 그간의 소회를 들었다. “내가 성공회 시설과 공간을 남달리 많이 활용했기 때문이겠지요.” 전날 학위를 받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웃음 섞어 돌려준 대답. 덤덤한 반응과는 다르게 박 목사와 대한성공회의 관계는 골이 깊다. 그 유명한 서울 중구 오장동 서울제일교회 담임목사 시절, 학생이며 노동자들과 밤을 세워 민주화를 놓고 토론했던 곳이 성공회 수양관이고, 독재 권력의 손을 들게 한 1987년 6월항쟁기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차린 곳이 성공회 주교좌성당이다. 그래서 성공회대는 그에게 학위를 준 배경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불의와 폭력을 이겨낸 참 신앙인’ ●길위의 신학자, 실천하는 신앙인 “사실 처음부터 목사가 되려는 생각이 없었고 몸도 약할 뿐만 아니라 성정도 온순해 그 험한 목회를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 박 목사가 가시밭 같은 ‘목회의 길’을 택한 건 4·19혁명 때였다.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근처 궁정동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학생들을 보고 결심한 게 바로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 결심과 다짐답게 박 목사는 문민정부가 탄생할 때까지 군사정권 시절 무려 6차례나 감옥에 끌려가는 고초를 겪었다. ●교회라면 구원의 말씀 가르쳐야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그의 회고록 제목은 남달랐던 ‘목회의 길’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실천하는 신앙인의 입장에서 요즘 신학생들은 어떻게 보일까. “신학생이라면 세상과 사회의 여러 문제를 신학적인 입장에서 판단하고 때로는 저항도 할 수 있어야지요. 하나님의 축복만 받고 편안하게 살 생각을 할 게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자의 편에 서는 게 당연합니다.” 예수님과 예언자들이 그랬듯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불의에 무관심하지 않는다는 박 목사. 그래서 교회가 대형화되면 될수록 타락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고 ‘제 복’만을 찾아 교회를 드나드는 일그러진 신앙은 예수를 배반하는 으뜸의 지름길이란다. “근본적으로 구원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됐다고 자각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지요. 교회라면 응당 사람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하나님 말씀을 통해 가르쳐야 할 텐데….” 1950년대 서울 공덕교회 담임 시절 교인이 불어나자 “내 뜻대로 목회를 하지 못하겠다.”며 가족에게 거처도 알리지 않은 채 불쑥 속리산으로 떠났던 그다. 결국 4·19혁명 때 꽃다운 청춘들의 아까운 희생을 보고 돌아와 뼈에 새긴 ‘교회다운 교회’. 그는 1992년 은퇴할 때까지 그 원칙에서 조금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도시산업선교회며 사회선교협의회를 설립해 약하고 가난한 자의 편에 늘상 섰던 ‘개혁과 실천의 목자’다. 그래서일까 함석헌 선생은 그에게 이런 별명을 붙여줬고 박 목사는 그 별명을 아주 좋아했단다. ‘하나님의 발길에 차인 사람’ ●하나님의 종 노릇 제대로 한 것인지… “글쎄요 돌이켜보면 원치 않았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하나님이 정해 밀었던 까닭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종 노릇을 제대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자신과 함께했던 모든 양심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험한 목회활동에 반발해 울면서 살다가 나중엔 자신보다 더한 투사가 됐던 아내에게 감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헛된 목회의 삶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박형규 목사 성공회대 명예박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지낸 박형규(89) 목사가 성공회대에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공회대는 30일 “개교 98돌과 신학과 창립 30돌을 맞아 기독교적 신앙을 몸소 실천하고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박 목사에게 개교 이래 첫 번째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박 목사는 부산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신학대 대학원과 미국 뉴욕 유니온신학대에서 공부했다. 박 목사는 1973년 부활절 남산 야외 음악당 사건을 계기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 독재에 대한 개신교계의 저항에 앞장섰고 기독교회관 목요기도회를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배흘림 기둥…신비로 둔갑한 과학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가 들려주는 얘기들은 꽤나 건조하다. 저자는 전통 건축을 두고, 미적인 쾌감을 논하기 전에 먼저 이해부터 하라고 촉구하는 입장이어서다. 하기야 지은 뒤 멋이지, 멋이 생긴 뒤 지었을 리 없다. 저자는 건축학을 공부하고 건축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전통건축 문외한이라면서도 이 책을 쓴 이유는 하나다. 전통건축에 대한 기존 이야기들이 너무 미학적이기만 해서다.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사는 지금의 우리야 미학을 논한다 쳐도, 저 집을 직접 지어야 했던 옛 시절 목수들도 그랬을까. 요즘도 한옥 유행에 따르려면 ‘억’ 소리가 나는 판국에, 기술도 변변찮던 옛 시절 그렇게 멋내기에 열중했다고? 저자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해서 스스로 수백년 전 도편수가 되어 독자들과 함께 집 짓는 과정을 밟아 나간다. 이 과정에서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완곡하게 휘어지는 처마, 처마와 처마가 맞닿아 치솟는 추녀의 문제만 간단하게 언급하면 이렇다. 주재료는 나무다. 애써 굵은 나무 구해 기둥 세워도 밑동이 썩으면 끝이다. 비를 막으려 지붕을 넓게 펼친다. 그런데 너무 펼치면 그늘 때문에 기둥 밑동이 햇볕에 노출되지 않는다. 햇볕에 노출돼야 볕 좋은 날에 바짝 마른다. 비와 해의 타협지점이 처마의 기울기다. 문제는 또 하나 있다. 건물이 사각형이다 보니 바람의 압력 때문에 네 귀퉁이가 빨리 닳는다. 처마와 처마가 맞닿은 추녀를 더 높이 들어올려 바람을 통과시켜 주는 게 해법이다. 바람을 자연스레 흘려보내니 습기 제거에 더 도움이 된다. 그런데 비가 들이친다. 이를 막기 위해 추녀는 높이 들어올려질 뿐 아니라 더 길고 뾰족하게 밖으로 빼내진다. 이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 지역으로 갈수록 지붕경사가 급해져서 지붕이 뾰족해지면서 추녀가 아예 하늘로 치솟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남방지역일수록 부처에 대한 신앙심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서, 기암괴석으로 삐죽하니 솟은 산들이 많아서, 눈꼬리가 치솟은 미녀들이 많아서 그렇게 된 게 아니다. 적도에 가까워지면서 폭포처럼 내리꽂히는 비를 빨리 흘려보내고 고도가 높아진 태양의 빛을 더 많이 건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바꿔 말해 등산길에 들른 산사에 앉아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 소리를 들을 때면 버선코와 저고리 팔 아랫부분에서 발견되는 한국적인 곡선의 미학을 떠올릴 게 아니라, 비와 바람과 햇볕의 배합을 두고 우리 조상들이 수천년에 걸쳐 자연과 교감해 온 과정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맞배지붕, 풍판, 우진각지붕, 눈썹지붕, 팔작지붕, 주심포양식과 다포양식 등 전통건축의 다양한 요소들을 설명해 나간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대한 얘기도 있다. 저자는 착시효과 운운하는 기존 설명을 두고 건축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없다 보니 서구건축에 붙은 해석을 고스란히 베껴 왔다고 혹평하면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그 내용은 직접 읽어 보길. 다만 한 가지 힌트를 흘리자면, 앞으로 배흘림기둥을 만나게 되면 왠지 기둥 자체보다 기둥을 떠받치는 주춧돌에 눈길이 더 많이 갈 것 같다. 1만 6000원.
  • [종교플러스]

    ●단기선교여행 표준지침 발표 선교한국 파트너스는 최근 ‘21세기형 단기선교여행 표준지침’을 발표했다. 선교한국 39개 회원단체가 서명한 이 표준지침은 전국 교회에 배포돼 선교여행 준비 지침으로 사용된다. 표준지침서는 선교한국 파트너스 사무실로 연락하면 받아볼 수 있다. 선교한국 파트너스는 이와 관련해 다음 달 8일 남서울교회에서 ‘이제 우리는 어떤 선교사를 보낼 것인가’라는 주제로 포럼을 연다. ●국제선센터, 외국인 스님 연수회 조계종 교육원은 다음 달 11일 서울 신정동 국제선센터에서 ‘외국인 스님들을 위한 연수회’를 개최한다. 이번 연수회는 국내외서 활동하는 외국인 스님들에게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주요 사업과 활동 방향을 설명하고 외국인 스님들의 동참을 독려하기 위한 자리. 교육원 측은 이날 외국인 스님들에게 한국불교 세계화 관련기관에 대한 정보와 주요사업을 전달하고 외국인 스님들이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 및 요구사항을 수렴해 종단 운영에 반영한다.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창립총회 탈북민 교회·선교단체 연합체인 ‘북한기독교총연합회’(북기총)가 21일 오후 3시 서울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창립총회를 연다. 북기총 창립총회 준비위원회는 “북한을 잘 아는 탈북민들을 영적 신앙으로 무장시켜 통일의 날을 대비하고 북한 복음화를 준비하고자 기독 탈북민 단체들이 힘을 모았다.”고 밝혔다. 북기총은 특히 북한의 봉수·칠골교회와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을 북한 기독교회 대표 기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 장흥 신와고택·오헌고택 영덕 난고종택…문화재청,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

    문화재청은 전남 장흥군 신와고택(新窩古宅)과 오헌고택(梧軒古宅), 경북 영덕군 영양남씨 난고종택(英陽南氏蘭皐宗宅)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문화재 제269, 270, 271호로 각각 지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신와고택은 1800년대 현 소유자의 6대조 위영형이 터를 잡기 시작해 1920년대 고조부인 신와(新窩) 위준식이 완성한 집이다. 사당·안채·사랑채·행랑채·헛간채·문간채가 남도 지역 전통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례나 민속생활사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서화, 유물 자료 등이 잘 보존돼 있어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오헌고택은 조선 말기 원취당 위도순이 처음 집터를 잡고 오헌(梧軒) 위계룡이 완성했다. 남도 대농(大農) 반가(班家)의 대표성을 지니며 고택이 위치한 방촌 마을의 대표적 상류 주택이다. 영양남씨 난고종택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성균진사 난고(皐) 남경훈을 위해 그의 아들 안분당 남길이 1624년(인조 2) 정침(正寢)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이후 남경훈의 3대손 남노명이 세운 만취헌(晩翠軒)을 비롯해 불천위사당·별묘 등 총 7동의 건물로 완성돼 지금에 이른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국 개신교의 위기… ‘작은교회’가 대안이다

    한국 개신교의 성장세는 폭발적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적어도 1990년대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교회는 많이 걱정한다. 중소형 교회를 중심으로 교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당장 운영조차 힘든 교회들이 즐비하다. 그런가 하면 교회와 목회자의 배타적 일탈과 고집스러운 편협성은 ‘공공의 적’으로까지 공격받는다. 개신교가 맞닥뜨린 유무형의 퇴조와 위기는 개신교 스스로가 자초했다면 잘못일까. ‘시민 K, 교회를 나가다’(김진호 지음, 현암사 펴냄)는 한국 개신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대안적 미래를 짚어 낸 일종의 한국 교회 보고서다. 한국 개신교계에서 ‘방외의 신학자’로 통하는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이 정색하고 한국 교회의 명암을 솔직하게 들춰낸다. 우선 그가 말하는 한국 교회의 특성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바로 배타성과 성공(혹은 성장) 지상주의, 극우반공, 친미성이다. 그러면 그 네 가지의 특성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저자는 먼저 한국 교회가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 장로교(북한 황해도·평안도에서 활발히 선교)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배타성의 시작이 그것이다. 이후 북한 땅에서 버티지 못한 근본주의 성향의 교회들이 남하해 세운, 이른바 월남교회를 주축으로 목소리를 높였던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군사정권 시절 거셌던 산업화와 성장의 깃발에 교회들이 맞장구를 치며 동참한 결과가 전대미문의 폭발적인 성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장에 매몰된 나머지 참신앙에 소홀했다는 점이다. 교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담임목사 세습과 교회 매매, 목회자 탈선은 바닥까지 팽개쳐진 교회 윤리의 절절한 징후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눈에 띄게 교세가 줄고 있는 그 바탕엔 바로 타자(이웃)의 존재와 가치를 철저하게 외면한 채 ‘나와 우리 교회’만의 외형적인 크기를 위해 살았던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교회는 외형의 성장이 아닌 영적인 부활을 절실하게 느끼고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교계 안팎에서 분출하고 있다. 실제로 저자는 곳곳에서 생겨나 알게 모르게 이웃과 호흡하며 활동하는 독립적인 ‘작은 교회’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그 ‘작은 교회’는 물론 규모의 작음에 국한하지 않는다. 겉으론 작은 교회를 주장하면서도 속으로는 큰 교회를 닮으려는 교회들이 꽤 있다. 그래서 저자는 삶에 대한 권리와 자아에 눈뜬 이들이 타자와 함께하는 진정한 공생과 부활의 교회를 대안으로 삼는다. 혼돈의 상황, 그리고 위기의 상황에서 절대자에 의지하고픈 사람이 늘고 있음을 ‘신의 귀환’으로 여기는 저자. 그는 ‘귀환한 신’을 위해 이제 작은 교회들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 작은 교회를 ‘시민 교회’라 부른다. 1만 38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이스라엘, 성지와 날선 긴장이 공존하는 곳

    이스라엘, 성지와 날선 긴장이 공존하는 곳

    이스라엘의 정신적 수도, 예루살렘의 구시가지(Old City)는 1㎢의 성벽으로 둘러쳐진 땅입니다. 이 좁은 땅 안에 유대교와 이슬람교, 기독교의 성지가 다 들어 있습니다. 아랍인과 유대인, 그리고 기독교를 믿는 여러 민족이 성벽 안에 나뉜 4개의 구역에 뒤섞여 삽니다. 예루살렘은 기원전 10세기 초 다윗 왕이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삼은 뒤, 약 3000년 동안 외침을 겪으며 부서지고 재건되기를 40여 차례나 반복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성지를 둘러싼 민족 간 갈등은 계속되고 있지요. 종교 성지와 날선 긴장이 늘 공존하는 곳, 이스라엘을 다녀왔습니다. ●무슬림과 유대인의 공통 성지 ‘바위의 돔’ 사원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 동쪽으로 약 50분간 차를 달린다. 무장한 군인의 검문을 통과해 예루살렘에 들어서면 곧 황금빛 돔 지붕이 모습을 드러낸다. 예루살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이 이슬람 사원의 이름은 ‘바위의 돔’이다. 사원 가운데 놓인 널찍한 바위 때문에 이름지어졌다. 바위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말을 타고 승천한 자리인 동시에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제단이라고 알려졌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공통 성지다. 구약성서는 또 이 바위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언약궤(모세의 십계명 석판을 보관했던 도금형 나무상자)를 안치한 장소라고 전한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1967년까지 이곳을 두고 싸웠다. 다른 아랍국가들도 탐을 내는 중요한 성지다. 이스라엘의 땅이 된 뒤인 지금도 입장할 때는 무장 군인의 소지품 검색을 받는다. 반바지나 어깨가 드러난 옷을 입어도 입장이 제한된다. 사원의 벽면은 푸른빛의 페르시안 타일과 코란의 문구로 장식돼 있다. 금요일이 되면 수천 명의 무슬림들이 사원을 찾아 기도한다. 다른 종교 시설 출입을 엄격히 금하는 유대인들도 아침 한 차례 이스라엘 군의 보호를 받으며 마당까지 입장한다. 적대적인 두 종교가 긴장 속에 공존하는 시간. 그 옛날 로마와 십자군, 무슬림이 공통으로 손에 넣고 싶어 하던 곳도 바로 이 바위를 중심으로 한 모리야 산과 예루살렘이었다. ●유대인의 자존심-통곡의 벽 ‘바위의 돔’ 사원 바로 아래엔 저 유명한 ‘통곡의 벽’이 있다. 솔로몬이 기원전 957년에 처음 세운 성전의 서쪽 벽이다. 유대인이 바빌로니아로 강제 이주 당할 무렵 처음 무너졌다. 페르시아에 의해 해방된 유대인이 재건한 성전과 벽을 로마 시대에 헤롯왕이 대대적으로 개축했다. 서쪽 벽은 폭 485m의 거대한 벽으로 거듭났지만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6년 만에 다시 무너뜨린다. 티투스 장군은 서쪽 벽의 일부를 남겨 놓았다. 유대인은 서기 135년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추방당하고 비잔틴 시대가 돼서야 1년에 한 번 들어올 수 있게 됐다. 유대인은 해마다 성전이 무너졌던 날 성안으로 들어와 서쪽 벽의 잔해를 두드리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통곡은 근현대까지 이어졌다. 유대인이 지금처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 건 1967년 3차 중동전쟁이 끝난 뒤부터다.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남녀 유대교인이 따로 벽 앞에 선다. 기도하는 모습이 제각각이다. 벽에 머리를 대고 서서, 의자에 앉아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어떤 이는 허리를 연신 구부렸다 펴며 기도에 열중한다. 독실한 유대교인 중 살림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따로 직업이 없이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벽의 높이는 18m 정도. 벽돌 크기는 위로 올라가면서 달라진다. 여러 번 다시 세운 흔적이다. 돌 틈엔 쪽지가 무수히 꽂혀 있다. 오스만제국 시대부터 전 세계에서 순례 온 유대교인들이 소원을 적어 끼워 넣고 기도했다. 교인이 아니더라도 소원을 적어 꽂아 보는 것도 좋겠다. 쪽지는 정기적으로 수거된다. 운이 좋다면 서쪽 벽 부근에서 군인의 선서식, 13세가 된 아이의 유대교 성인식 등을 구경할 수 있다. 해가 진 뒤 성곽 서쪽 다윗의 탑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레이저 쇼 ‘예루살렘 라이트 더 나이트’(Jerusalem Light the Night)는 예루살렘의 400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성벽 안쪽 면을 스크린 삼아, 프로젝터로 영상물을 보여 준다. 외국인을 염두에 둔 듯 언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시청각으로만 의미를 전달한다. 여러 대의 프로젝터가 나눠 비추는 하나의 영상은 형태와 내용이 성벽 모양에 맞춰 치밀하게 계산돼 있다. ●기독교의 수난사-비아 돌로로사와 성묘교회 오는 8일은 부활절.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 죽은 뒤 부활했다는 500m의 길 역시 이 좁은 구시가지 안에 있다. 이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은 전 세계의 순례자를 끌어들인다. 지난해 이스라엘을 방문한 한국인 약 3만 2000명 중 90%가 이 길을 찾았다. 길은 14개의 지점으로 나뉘어 있다. 예수가 재판을 받은 빌라도 법정 자리부터 로마군에 희롱당한 곳, 십자가를 지고 처음 쓰러진 곳 등을 지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어 묻힌 곳까지 지점마다 교회나 작은 예배당이 있다. 통곡의 벽이 유대교의 수난을 상징한다면 이 십자가의 길의 종착지인 성묘교회는 기독교의 고난을 대변한다. 지금의 교회는 십자군에 의해 세워진 이래 개보수를 계속해 온 것이다. 10지점부터 14지점까지가 교회 안에 들어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한 사람 누울 정도의 편평한 돌이 보인다. 예수의 시신을 놓았다는 13지점이다. 윗면은 닳아서 반들반들하다. 신자들이 무릎을 꿇고 돌 위에 물을 붓는다. 돌을 정성스럽게 닦다가 입을 맞추기도 하고,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한다. 예수가 묻히고 부활했다는 14지점은 작은 교회당처럼 생겼다. 밖에선 토굴 같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으므로 길게 줄을 서서라도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교회 주변의 크리스천 구역 상점가는 특히 쇼핑하기 좋다. 간혹 남다른 솜씨로 만든 기념품들을 찾을 수 있다. ●예루살렘 밖 여행지들-텔아비브·마사다 요새 예루살렘 성지 순례가 아니라도 이스라엘엔 즐길 거리가 충분하다. 사막의 모래바람과 터번 쓴 아랍인을 상상했던 여행자는 텔아비브의 도시 풍경에 충격 받을 수도 있다. 짙은 청색 바다에 이는 파도는 아침부터 서퍼들을 불러들이고, 파라솔 밑에 누운 비키니 여성들은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선착장에 늘어선 수많은 요트의 돛대들은 하늘을 찌를 듯 빽빽하게 솟아 있다. 육지 쪽으로는 고층빌딩들이 스카이라인을 만든다. 아침엔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남쪽으로 욥바까지 걸어가 그리스 산토리니 뺨치는 해안 도시 풍경을 감상하고 해가 떨어지면 텔아비브 도심으로 들어가 ‘잠들지 않는 도시’를 즐길 수 있다. 사해 인근의 마사다 요새도 빠트려선 안 된다. 유대인이 로마군을 상대로 2년간 최후의 항전을 벌인 곳. 434m 높이의 벼랑으로 둘러싸인 약 7만㎡의 편평한 땅에 지은 요새다. 로마군이 흙을 쌓아 경사로를 만들어 요새를 함락했을 때, 유대인은 굴복 대신 죽음을 택했다. 오늘날 이스라엘 장교 후보생들은 훈련 마지막에 이 언덕 꼭대기까지 행군한 뒤, 뜨는 해를 보며 임관 선서를 한다. 어떤 적에게도 항복하거나 민족을 내주지 않겠다는 의미다. 가파른 언덕을 걸어 오르려면 40분 이상 걸린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도 있다. 창밖에 펼쳐지는 풍경도 그럴싸하지만 꼭대기에 오르면 사해가 한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최고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 글 사진 예루살렘·텔아비브(이스라엘) 김민석기자 shiho@seoul.co.kr ●여행수첩 날씨 3~4월이 여행 적기다. 우기가 끝날 무렵이라 광야에 초원이 형성되고 꽃이 핀다. 햇살이 따갑고 일교차가 크므로 선글라스와 겹쳐입을 얇은 옷 여러 벌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바람도 강하다. 예루살렘 국제마라톤 예루살렘 국제 마라톤의 풀, 하프, 10㎞ 코스는 구시가지를 통과하고 박물관이나 대통령 관저 등 시내 명소도 지나간다. 지난달 16일에 2회째를 맞은 대회는 세계 40여개 국가에서 1만 5000명의 마라토너가 참가했다. 지난해 첫 대회보다 50%정도 늘어난 수치다. 내년 대회는 3월 1일 열릴 예정인데, 시는 스폰서 기업의 기념품 외에도 참가자에게 시내 관광지와 음식점에서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쿠폰 책자를 준다. 환전 우리나라에선 이스라엘 세켈(1세켈=약 303원)을 환전할 수 없다. 달러를 가져가 현지에서 환전하는 게 좋다. 달러도 통용은 되지만 거스름돈을 세켈로 받는 등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 시내에 수수료를 받지 않는 환전소가 있다. 안식일 피할 수 없으니 즐겨야 한다.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는 유대인의 휴일인 안식일(샤바트)이다. 유대인은 이때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상점은 오후 2시를 전후로 문을 닫는다. 선물 구시가지의 크리스천 구역 상점을 이용하면 좋다. 안식일에도 문을 닫지 않고 신앙과 상관없이 살 물건이 많다. 가톨릭 신자의 선물을 사려면 프란체스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성물 판매점을 찾아가길 권한다. 은퇴한 수도사들이 직접 깎은 십자가나 성모상, 묵주 등이 예술작품에 가깝다. 값은 바깥보다 오히려 싸다.
  • 그때 민초들은 목숨 대신 신앙을 택했다

    19세기 중반은 세계사에서 보면 사상과 체제의 분수령으로 꼽힌다. 서구의 문명국가들은 보호령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3세계 국가들을 식민지화했다. 일본은 외세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군국주의의 기점이 되는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고 러시아에서는 차르 체제 아래서 사회주의가 태동했다. 조선에도 개화의 물결이 다가왔다. 북에서는 러시아가 교역을 요구했고 프랑스 군대와는 전쟁을 겪었다. ‘조선이 버린 사람들’(이수광 지음, 지식의 숲 펴냄)은 이 시기 중 1866년(병인년)에 집중한다. 천주교를 중심으로 한 당시 정치·사회 현상을 살피면서 ‘1866, 애절한 죽음의 기록’이라는 부제처럼 처절한 천주교 박해 사건들을 파헤친다. 책은 김아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1839년에 순교한 아가타 김아기와 다른 인물이다). 천주교도인 남편 김진은 이미 닷새 전에 양화진에서 처형됐다. 김아기는 배교(背敎)를 종용받으며 모진 고초를 당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천주교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다가 결국 참수에 처해졌다. 이 이야기가 마치 드라마처럼 펼쳐지지만 실제로 이 인물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줄 나와 있다.”는 저자의 설명처럼 언제 세례를 받았는지 어디 출신인지조차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김아기를 시작점에 둔 것은 그가 책에서 다루려는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과 민초의 삶을 대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경제 대부분을 사대부에게 장악당하고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거나 도적이 되는 궁핍한 시기였다. 백성은 굶지 않고 고통도 없는 세상을 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세의 고통도 내세의 행복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 천주교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이 천주교와 함께 빠르게 확산한 배경도 같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부터 흥선대원군의 과감한 개혁 정치와 남인과 유림의 대립, 러시아의 침략 속에서 대원군이 프랑스 신부들에게 요구했던 역할과 그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시작된 천주교 탄압 등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저자가 낸 대중 역사서가 그랬듯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장면 장면을 소설처럼 풀어내 재미를 더한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직접 천주교 성지를 찾아 역사의 흔적을 살폈다. 출판 전에는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찍기 위해 보름 동안 카메라를 들고 곳곳을 누볐다. 그러면서 저자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신념을 지켜내는 숭고함과 종교의 진정성을 느꼈다.”고 했다. 어쩌면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그들은 신앙을 위해 귀한 목숨까지 버렸는데 오늘날의 교회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책의 핵심일 수도 있겠다. 1만 28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신앙 다른 부부 5% ‘종교에 갇힌 결혼’

    신앙 다른 부부 5% ‘종교에 갇힌 결혼’

    기독교인인 회사원 최모(32)씨는 지난해 8월 불교를 믿는 이모(30)씨와 결혼했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양가 부모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8년간 변함없이 사랑을 이어온 터라 종교는 결혼 생활과 전혀 상관없을 줄 알았다. 현실은 달랐다. 최씨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부터 종교 문제로 아내와 부딪쳤다. 주례를 목사에게 부탁할지를 놓고 티격태격했는가 하면 밥 먹을 때 기도하는 문제로도 다퉜다. 최씨는 “종교가 다르니 생활 태도나 의식에서 이질감이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결혼에서 ‘종교’의 벽은 여전히 높다. 사회가 대체로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커플의 결혼을 감싸안지 못하는 분위기다. 결혼할 배우자 조건으로 부모직업·연봉 등 각종 조건을 따지는 풍토가 만연한 가운데 종교 역시 결혼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결혼 상대자 선택 기준은 사회의 개방성·폐쇄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라고 분석하고 있다. 29일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최근 3년 사이 결혼한 회원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배우자와 종교가 다르다’고 밝힌 비율은 5%인 300명에 불과했다. 20명 가운데 1명꼴이다. ‘같은 종교’라는 회원은 13.1%인 786명으로 집계됐다. 종교를 가진 쪽과 갖지 않은 쪽이 만나 결혼한 사례는 42%인 2520명로 가장 많았다. 또 아예 종교가 없는 사람끼리 결혼한 경우는 39.9%인 2394명에 달했다. 종교가 같은 부부도 종교 문제가 없지 않다. 주로 종교적 신념의 깊고 낮음과 정체감의 차이 등에서 비롯되는 갈등이다. 약사인 최모(34)씨 부부는 둘다 기독교인이지만 믿음 때문에 종종 말싸움을 벌인다. 아내는 “기독교만이 진리”라며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최씨는 “종교인들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김수정 듀오 커플매니저는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선호하는 배우자 조건은 변하지만 종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배우자 선택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요소”라면서 “요즘은 ‘종교가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게 속편하다’는 예비 부부들이 많다.”고 전했다. 종교 가운데 개신교가 다른 종교 간의 결혼을 가장 꺼린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돼 주목되기도 했다. 한내창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가 ‘2012 한국사회학 학회지’ 제46집에 발표한 ‘종교성과 타 종교와의 결혼 허용도’ 연구 논문에 따르면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5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타 종교 결혼 허용도’는 5점 만점에 ▲개신교 2.76점 ▲천주교 3.21점 ▲불교 3.04점으로 나타났다. 한 교수는 “개신교인은 비교적 큰 결혼 시장을 가지고 있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종교적 신념 때문에 폐쇄적 결정이 이뤄져 가족의 갈등·해체가 야기되는 등 사회 문제로 번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준·조희선기자 apple@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젊은 공자 종손이 과학보다 강조한 것은

    [김병일 사람과 향기] 젊은 공자 종손이 과학보다 강조한 것은

    얼마 전 도산서원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공자의 79대 종손 쿵추이창(孔垂長·37)과 맹자의 76대 종손 멍링지(孟令繼·34)가 그들이다. 한국 유학의 태두인 퇴계 선생을 모신 서원에 그분이 공부했던 유학의 개창자인 공자와 맹자의 제사를 받드는 직계 후손이 방문한 것이다. 공자 종손의 도산서원 방문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 종손의 할아버지인 타이완의 쿵더청(孔德成) 박사가 1980년 첫 방문한 이후 몇 차례 찾아왔고, 2001년에는 베이징에 사는 쿵 박사의 누이 쿵더마오(孔德懋) 여사도 방문한 바 있다. 그럼에도 79대 종손의 이번 방문은 여러 면에서 유교문화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쿵더청 박사는 방문 당시 이미 60을 넘긴 나이였기 때문에 외모상으로도 ‘유교’의 이미지와 여러모로 어울렸다. 이에 반하여 손자인 지금 종손은 호주에서 유학한 30대 사업가여서 ‘공자 종손’이라는 말이 풍기는 이미지와 어떻게 조화될지 자못 궁금하였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기우였다. 겉모습은 동년배와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사람다움의 본질을 타인을 배려하는 ‘인’(仁)으로 파악했던 대철학자의 후손답게 그의 생각 속에는 조상의 가르침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방문 둘째 날 선비 수련을 위해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 입소해 있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공자 종손은 ‘과학의 시대’를 살면서 현대인들이 범하는 가장 큰 과오는 인간의 가치를 외부에 두는 것이라 역설했다. 가치 중립적인 과학을 신앙으로 떠받든 결과 현대인은 내면적 가치라는 자신의 고유한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인간다움의 조건을 자신에게 묻는 유학의 ‘반구저기’(反求諸己) 정신을 그는 강조하였다. 자신부터 되돌아보는 이 자세가 2500여년 전 그의 먼 할아버지가 강조했던 ‘인’의 근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공자 종손의 이런 모습을 보며 그 조상에 그 후손이라는 생각과 함께 명문가의 전통이라는 것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낮추며 날로 새로워지고자 하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정신이 이어지기 때문에 비로소 명문가인 것이다. 퇴계 종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80이 넘은 연세에도 방문하는 손님에게 무릎을 꿇은 자세로 퇴계 선생에 대한 한 마디 자랑도 없이 ‘예인조복’(譽人造福:남을 칭찬하는 것이 곧 자신의 복을 짓는 일이라는 뜻)을 이야기하고 글로 써 주시는 노종손의 삶 역시 자신을 낮춤으로써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전형이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두 명문가가 대를 이어 우의를 쌓아가는 데에는 이처럼 지향하는 바가 같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우리는 공자와 퇴계라는 이 두 명문가 개창자의 역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두 선현이 뿌린 덕성의 씨앗이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런 지향의 밑거름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덕성의 향기를 피우는 일이라 해야 할 것이다. 동양에서 만대가 흘러도 없어지지 않을 사람의 세 가지 업적, 즉 삼불후(三不朽)로 입덕(立德:덕성을 세우는 일)과 입공(立功:공훈을 세우는 일), 입언(立言:학설을 세우는 일)을 말하면서 그 가운데 입덕을 제일로 친 것도 아마 이 때문이리라. 오늘 우리 앞에 얽혀 있는 문제를 푸는 열쇠도 결국 사람의 덕성이 아닐까? 근래 사회문제화된 학교폭력만 해도 그렇다. 부모와 교사 그리고 이웃 어른들이 평소 우리 아이들에게 절제하고 배려하는 덕성의 향기를 맡으며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면 그런 일들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통 있는 명문가는 ‘온고’(溫故) 못지않게 ‘지신’(知新)에 의해 계승되는 측면도 크다. 역사가 일천한 현대의 명문가일수록 특히 그렇다.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덕성의 씨를 뿌려 우리 모두 새로운 명문가의 개창자가 되어보자.
  • 멕시코 성매매 여성들, 교황방문에 서비스 중지

    중미의 성매매 여성들이 남다른 신앙심을 과시, 새로운 관심을 끌고 있다. 멕시코 구아나후아토의 레온 시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휴업을 마치고 서비스를 재개했다고 CNN 등이 27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중미 순방에 나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4일부터 26일까지 멕시코를 방문했다. 레온 시에서는 대규모 야외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한 레온 시의 가톨릭신자 성매매 여성들은 방문기간 중 성매매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 한 성매매 여성은 “사정이 있어 성매매를 하지만 우리도 가톨릭 신자로 하나님을 믿고 성모를 믿는다.”면서 “교황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방문기간 중에는 성매매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은 “레온 시에서 성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4개 호텔이 24일 밤 텅 비는 등 성매매 여성들의 휴업으로 호텔업계는 대체로 썰렁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레온 시의 성매매 여성들은 26일 베네딕토 16세가 멕시코를 떠난 뒤 성매매를 재개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데스크 시각] 박주영 욕만 하지 말자고?/임병선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박주영 욕만 하지 말자고?/임병선 체육부장

    애초에 쉽사리 꺼질 수 없는 불이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아스널의 공격수 박주영(27)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반드시 35세 이전에 시기가 언제일지 아직 모르겠으나 현역으로 입대할 각오”라고 밝혔다. 그러나 주말 동안 인터넷 댓글을 훑어 보면 비난의 강도는 수그러들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축구를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그의 얼굴에 드리운 느긋함이 화제가 된 건 올 초부터였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그를 벤치나 덥히는 존재로 취급하는데도 늘 편안해 보였다. 누구는 신앙의 힘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느긋함이 현역 입대를 10년이나 미룬 안도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아 온 축구 기자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박주영은 현역 입대를 10년 미룸으로써 적지 않은 것을 얻었다. 한국에 6개월 이상 체류하거나 영리 활동을 하지 않는 한, 영장이 나와 군대에 붙들려 가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됐다. 그 기간 해외 구단을 이리저리 옮겨다닐 수 있게 된 점도 결코 작지 않은 이득이다. 법을 어기지 않고도 이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박주영과 그를 도운 법률 대리인이 성과를 올렸다고도 볼 수 있다. 모나코 왕실이 구단주인 AS 모나코는 병역 문제가 해결된 그를 아스널에 넘기면서 이득을 챙겼다. 이적료가 선수 몸값인 점을 감안하면 그로서도 손해 볼 일이 아니었다. 비즈니스 측면만 따지면 박주영이나 두 구단 모두 빼어났다고 얘기할 수 있다. 유럽리그 구단들이 한반도의 특별한 사정과 병역 문제에 민감한 팬들의 심사까지 돌아봤을 리 만무하다. 때문에 이를 잘 아는 박주영과 대리인이 적절한 시점에 공개, 팬들의 납득을 구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박주영 스스로도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법률 대리인은 모나코처럼 영주권 제도가 없는 나라에서 장기 체류자격을 얻으면 현역 입대를 10년간 미룰 수 있음을 파악한 것이 지난해 7월 무렵이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리고 한달 뒤 병무청의 허가를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때 왜 공표하지 않았느냐고 기자들이 따지자 이적 협상 중이던 두 구단이 이 문제의 공표를 원치 않았다고, 앞뒤가 다른 해명을 했다. 박주영이 얻은 것은 시간이요, 잃은 것은 팬들의 신뢰와 사랑이다. 더욱 큰 문제는 박주영 개인의 신뢰 상실뿐만 아니라 그를 정말로 필요로 한 이들의 발까지 묶어 버린 점이다. 당장 런던올림픽 본선에서 와일드카드로 그를 기용해야 하는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에서 그를 필요로 하는 최강희 대표팀 감독이 난감해졌다. 홍 감독은 다음 달 영국에서 그를 만날 요량이었는데 어찌됐건 ‘미운 X 떡 하나 더 주려는 거냐’는 팬들의 분노에 직면하게 됐다. 일부에서는 박주영의 입장 표명을 계기로 ‘욕만 하지 말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이 땅에 태어난 남자 선수들이 누구나 받게 되는 병역 기피의 유혹을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 국방 의무와 직업선택의 자유, 그리고 일할 권리의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올림픽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이들이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공익근무요원(34개월)으로 편성돼 군 복무를 대체하도록 한 것도 종목 간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또 지난해 5월 병무청이 국제대회에서 거둔 성적을 점수화해 병역 대신 사회봉사활동으로 대체하는 대체복무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을 근거로 내세우며 이를 빨리 제도화하라고 촉구한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선수나 종목 간 형평성만 문제 삼지, 일반인과 선수 사이의 형평성에는 눈을 감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박주영이 기여한 점이 있다면 이런 논의에 불을 댕겼다는 점일 텐데, 그렇다면 팬으로서 너무 씁쓸한 대차대조표다.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돈/주병철 논설위원

    마크 트웨인이 실업가 앤드루 카네기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말이 있었다. “귀하께서는 매우 돈이 많을뿐더러 신앙이 두터우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찬송가 책 한 권을 갖고 싶은데 저에게는 분에 넘치는 1달러 50센트나 됩니다. 저에게 찬송가 책 한 권만 보내 주세요… 귀하를 존경하는 마크 트웨인. 추신:찬송가 한 권을 보내 주실 바에는 차라리 현금 1달러를 보내 주십시오.” 아인슈타인은 돈에 무관심했다고 한다. 미국의 석유 왕 록펠러 재단에서 1500달러짜리 수표를 받았는데, 이것을 현금으로 바꾸지도 않고 책상 위에 그대로 놓아두었다. 책을 보다 수표를 책갈피로 사용했다. 얼마 후 수표가 없어졌는데 책도 누가 집어가 버렸다. 아인슈타인은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지. 책까지 돈을 보고 따라갔으니….”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돌고 돈다.’는 말에서 유래됐다는 돈은 정말 천(千)의 얼굴을 하고 있다. 누가 어떻게 벌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돈은 축복이자 행운으로 미화된다. 반대로 요물덩어리나 저주스러운 악마로 둔갑하기도 한다. 화폐경제 측면에서만 보면 돈이 있기 때문에 가격이 형성돼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이뤄지고, 무겁고 부피가 큰 물건을 돈으로 바꾸어 운반할 수 있으니 일상생활에서 돈처럼 편리한 게 없다. 오스트리아 유대계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음의 파멸’에서 돈에 대해 이렇게 썼다. “돈, 그 망할 놈의 돈이 그들을 다 버려 놓은 거야. 어리석은 나는 그것을 모으느라고 고생을 한 끝에 나 스스로를 도난당하고 나 스스로를 빈곤하게 하고, 그들까지도 나쁘게 만들어 놓았어….” “요 닷돈을 누를 줄꼬? 요 마음/ 닷돈 가지고 갑사댕기 못 끊갔네/은가락지는 못 사겠네 아하!/마코를 열 개 사다가 불을 옇자 요 마음”(김소월의 돈타령) 통계청이 지난해 사회조사에서 15세 이상 인구 중 직업 선택의 이유를 물었더니 ‘수입’(돈)을 꼽은 비율이 38.3%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외환위기 때보다 2배나 높았다. 그만큼 팍팍해진 삶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직장인들에게 요한 웨슬러 신부의 ‘돈에 관한 세 가지 규칙’은 나름대로 참고가 될 만하다. 첫째, 벌 수 있는 대로 벌어라. 둘째, 모을 수 있는 대로 모아라. 셋째, 줄 수 있는 대로 주어라. “돈은 더럽게 벌어도 깨끗이 쓰라.”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우리 속담과 일맥상통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 철학’은 비슷한 것 같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청용 동료’ 무암바, 경기 중 심장마비

    18일 토트넘과의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8강전 경기 도중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된 파브리스 무암바(24·볼턴)가 위독한 상태라고 BBC방송이 전했다. 그는 두 팀이 1-1로 맞선 전반 41분쯤 다른 선수와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경기장에서 대기하던 의무 요원들이 심폐소생술 등 6분의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그는 정신을 수습하지 못했고 얼굴에 산소마스크를 쓴 채 들것에 실려 운동장을 빠져나와 런던체스트병원의 심장마비센터로 옮겨졌다. 하워드 웹 주심은 곧바로 해리 레드넵 토트넘 감독, 오언 코일 볼턴 감독과 협의해 경기를 취소시켰다. 코일 감독은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며 신의 의지밖에는 바랄 게 없다.”며 “앞으로 24시간 안에 무암바의 소생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에서 태어났지만 영국 국적을 갖고 있는 무암바는 아스널 유스 아카데미 출신으로 21세 이하 대표팀 선수로 33경기에 출전했으며 2007년 버밍엄을 거쳐 이듬해 볼턴으로 이적, 지금까지 이청용과 함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많은 축구선수들이 트위터를 통해 그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인 루니는 “그가 쾌차하길 바란다. 아직도 충격”이라고 적었으며 토트넘 수비수 카일 워커는 “어느 팀을 응원하건, 축구팬이 아니어도, 신앙인이 아니어도 무암바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아르헨 가정집 벽에 나타난 ‘예수 얼굴’ 화제

    아르헨 가정집 벽에 나타난 ‘예수 얼굴’ 화제

    아르헨티나 지방의 한 가정집 벽에 예수의 얼굴이 나타나 화제가 되고 있다. 집주인은 “예수의 얼굴이 나타난 뒤 가족들이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 라면서도 주소를 공개하진 않았다. 예수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오는 건 싫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예수의 얼굴은 아르헨티나 지방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의 라반다라는 곳에 있는 한 가정집이다. 3개월부터 습기가 차면서 벽에 얼룩이 지기 시작하다가 최근엔 완벽한(?) 예수의 얼굴이 완성됐다. 습기가 그린 ‘예수’는 수염을 기른 얼굴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다. 가족들은 즉시 이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신의 계시로 받아들였다. 여자 집주인은 “벽예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후 영적으로 매우 특별한 상황을 맞고 있다.”면서 “신앙심이 돈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느님에게 돌아오라는 특별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지역 성당의 신부 후안 카스트로 사발리아는 “예수 얼굴이 벽에 그려진 데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무조건 하느님의 계시로 보는 것도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라반다에서는 몇 해 전 공원에 있는 나무에 예수의 얼굴이 나타나 화제가 됐었다. 사진=리베랄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콘돔사용 등 교황의 솔직한 말 들어보세요

    콘돔사용 등 교황의 솔직한 말 들어보세요

    천주교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며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 통하는 가톨릭 교회의 최고사제이자 1억 2000만 신자의 수장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천주교계뿐 아니라 일반의 큰 관심거리인 만큼 적지 않은 마찰과 동요를 일으키기도 한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교황의 생각을 접하게 되는 계기는 연설과 훈령 형식의 발언이 고작. 교황의 사적, 혹은 비공식적 차원의 말씀을 듣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세상의 빛’(가톨릭출판사 펴냄)은 신자들에겐 ‘가뭄 속 단비’와 같은, 꾸밈 없는 교황의 어록이다.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독일 저널리스트 페터 제발트의 대담집. 페터 제발트라면 베네딕토 16세가 추기경으로 재직할 무렵 대담을 두 차례 했던 인물. 추기경을 공격할 목적으로 대담을 가진 후 거꾸로 천주교에 귀의했고 그 인연으로 지난 2010년 세상에선 처음으로 교황과의 대담을 진행해 유명인이 됐다. 따라서 이 책은 가톨릭 교회사상 첫 교황 대담집인 셈이다. 페터 제발트가 6시간에 걸쳐 교황을 만나 나눈 대담집인 책에는 세상의 큰 문제와 교회의 위기, 그리고 흔들리는 천주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천주교 수장의 고뇌와 신학적 확신이 곳곳에 스며 있다. “잘못된 영향에 대적할 힘을 내고 악의 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은 이들과 착한 사람들의 힘을 모두 모아야 합니다.”(‘회개할 시기’)/“교회가 신앙과 이성, 이해 가능한 것의 범위를 넘어 내다보는 것과 동시에 합리적인 책임을 함께 연결하는 것이 교회의 큰 책임으로 남아 있습니다.”(‘새 교황 뽑히셨네’) 사제들의 성 추행을 비롯한 가톨릭교회의 성도덕 문제며 2009년 아프리카 순방 때 논란을 일으켰던 ’콘돔사용 금지 발언’에 대한 해명도 눈에 띈다. “몸에 대한 긍정과 기쁨, 그러니까 성적인 것에 대한 긍정이란 늘 원칙과 책임이 수반되는 선물로 봐야 합니다. 자유와 책임이 궤를 함께하는 것은 늘 중요합니다.”/“저는 콘돔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입장을 밝힌 게 아니라 그저 그 문제를 콘돔을 나눠 주는 것만으론 해결할 수 없고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그들이 병에 들기 전뿐만 아니라 병든 다음에도 도와 줘야 한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그것이 큰 말썽이 되고 말았지만 말예요.”(‘사목방문’) 페터 제발트는 대담을 마친 뒤 교황에 대해 가졌던 느낌을 서문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교황은 상대주의의 시대, 즉 ‘아무것도 궁극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자신과 자신이 바라는 것만을 최후의 척도로 삼으려는 세계관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고 보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제주 해군기지 기상악화로 발파 일시중단

    제주 해군기지 기상악화로 발파 일시중단

    제주 해군기지 조성 사업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11일 풍랑주의보가 발효돼 작업이 일시 중단됐다. 해군 제주기지사업단은 이날 “지난 7일부터 나흘 동안 육상 케이슨 제작장 부근에서 부지 평탄화 작업 등을 위한 발파작업을 벌였고 기상 악화로 일시 중단했지만 다음 주 재개하는 등 기지 기반 공사에 속도를 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해군은 지난 1일부터 시작한 해저 바닥 평탄화 작업도 일시 중단했다. 이 작업이 끝나야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인 케이슨을 해상에 고정해 방파제 기초 공사를 할 수 있다. 제주기지사업단 관계자는 “앞으로 휴일 없이 육상·해상 공사를 동시에 진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강풍으로 인한 사고도 발생했다. 오후 2시 10분쯤 서귀포시 화순항 외항에 있던 케이슨 운반용 플로팅독(반잠수식 야외 작업장)이 강풍에 떠밀려 정박 중인 어선 3척에 잇따라 부딪혔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2척이 파손돼 물속에 가라앉고 1척은 옆부분이 부서졌다. 반대 집회도 계속됐다. 진보신당 등은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사업단 주변에서 집회를 열고 공사 중단과 연행자 석방 등을 요구했다. 군사기지저지 범도민대책위원회 등도 “7일 이후 외국인 활동가 등 모두 53명이 연행됐다.”며 “경찰이 무차별 연행 작전을 펼치면서 가벼운 경범죄에도 연행해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주 해적기지’ 발언 논란에 소설가 공지영씨도 동조하고 나섰다. 공씨는 지난 10일 트위터에서 “시민 패고 물속에 처넣는 너희들 해적 맞다.”고 주장했다.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후보 김지윤씨가 4일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라고 트위터에 올리자 해군이 9일 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등 논란이 일어난 데 따른 것이다. 구럼비 바위에 대한 논란도 이어졌다. 해군 측의 “보존 가치가 낮다.”는 주장에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강정마을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반박했다. 황 소장은 “2007년 문화재 기본 지표 조사 보고서에 구럼비 바위에 대한 민간신앙이 유지돼야 하고 고고학 조사나 민속 조사, 연산호 대책을 세우라고 나와 있다.”며 “구럼비 바위를 중요문화재로 가지정해 공사를 중단시킨 후 정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제주동부경찰서는 지난 8일 해군기지 공사장 펜스를 부수고 들어가 항의 시위를 벌인 이정훈 목사와 김정욱 신부 등 2명을 재물손괴 혐의로 이날 구속했다. 이들과 함께 공사 부지 안으로 들어갔던 26명 중 22명은 무단침입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신·영웅 사진 찢어 붙여 또 다른 신을 창조

    신·영웅 사진 찢어 붙여 또 다른 신을 창조

    전시장에 들어서면 신전 같다. 작가도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이 신전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사진 콜라주와 오일스틱 드로잉이다. 사진 콜라주는 동서양의 신상이나 영웅상 사진을 손으로 일일이 찢어서 해체한 뒤 다시 이어 붙여 또 하나의 신상을 만들어 냈다. 실제 동상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예산 때문에 일단 포기한 상태다. 오일스틱 드로잉은 원본 사진의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조금 더 자유롭고 추상적이다. 작가는 “동상으로 만들긴 어려우니 드로잉으로 가볍게 접근했는데, 주변 반응은 더 좋다. 역시 마음을 내려놓고 작가가 하고 싶은 걸 하니 보는 사람들도 그 마음을 알아보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이들 작품 주변에는 각종 신상과 성물들이 배치됐다. 작가가 인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태국, 독일, 영국 등 10여개국을 떠돌아다니며 모은 것들이다. 사진도 이때 수집한 500여권의 책에서 나왔다.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표지가 떠오른다. 오글오글 민중들이 모여 절대권력자인 왕을 구성하고 있는 그림이다. 양쪽에서 다 욕먹었다. 왕당파는 민중을 등장시킨 것에, 공화파는 결국 결론은 왕이냐며 불편해했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특정 신앙이나 이데올로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잡탕처럼 보일 법하고,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또 하나의 신앙을 만들어 낸 게 아니냐고 물을 법하다. 29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김기라(38) 작가는 그걸 일러 “조화와 공존을 말하지 않는 발전은 폭력이라는 고민의 반영”이라고 했다. 작가의 삶과도 연관이 있다. 충남 대천, 9대 종손 집안에서 태어났다. 비주류 대학을 다녔고, 그나마도 대학원에서는 전공을 회화에서 조각으로 바꿨다. 영국 유학 때는 제3세계인이라는 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이 세상의 표준과 그것의 가치는 뭐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작품들은 모두 이 질문 위에 서 있다. 전시 제목 ‘공동선 - 모든 산에 오르라’는 이를 압축한 말이다. 전시의 마지막은 전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우리의 잃어버린 마음가짐’이다. 다이아몬드, 금덩어리, 진주 몇 알이 테이블에 놓여 있다. 이것들의 진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결혼을 앞둔 작가는 이 작품을 농담 삼아 ‘예물 3종 세트’라고도 부른다. (02)708-505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창렬 주교 60년 종교생활 묵상집 2권 출간

    천주교 제3대 제주교구장을 지낸 김창렬 주교가 60여년간 사제와 은수자의 길을 걸으면서 건져 올린 묵상집 ‘은수잡록’과 ‘밀어’를 나란히 세상에 내놓았다. 황해도 연백 태생인 김 주교는 1953년 사제 서품을 받고 가톨릭대 교수와 가톨릭중앙의료원장, 가톨릭대학장을 역임한 뒤 1983년부터 2003년까지 제주교구장을 지냈다. 은퇴 이후 제주도 ‘새미 운동의 동산’에서 은수 생활을 하고 있다. ‘은수잡록’은 50년에 걸친 사제 생활 중 얻은 깨달음과 고찰을 묶은 묵상집이다. “나의 제1의 성소는 기도”라고 할 만큼 기도에 충실한 김 주교가 신앙과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적은 글들을 모았다. 하느님만을 향한 삶을 반추하며 쓴 글들은 때로는 충고하듯 때로는 위로하듯 말을 건네며 독자들을 묵상으로 인도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간다. 즉 고통 속에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 고통들이 모두 다 십자가는 아니다. 십자가의 재료이기는 하지만 결코 십자가는 아닌 것들이다.’(나의 십자가)/‘나는 감사가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감사하는 인생에는 사랑과 평화와 기쁨이 자리 잡을 것이다.’(감사는 나의 또 하나의 성소) 스스로 하느님의 어릿광대임을 자처하며 살아왔다는 김 주교가 경험과 사색을 통해 전해 주는 올바른 신앙에 대한 이정표는 ‘밀어’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밀어’는 1998년 출간한 ‘그의 소리 나의 소리’를 가난, 감사, 겸손, 구원, 기도 등 20가지 주제로 분류해 새롭게 엮은 묵상집이다. 하느님 앞에서 깨닫게 되는 내면의 소리들을 하느님이 직접 전하는 형식으로 적어간 기록이다. ‘너는 항상 기억하여라. 하나하나의 일에 내 손길이 있고 내가 보살피고 있음을. 그러니 너는 서두르지 마라. 불안해하지 마라.’(섭리)/‘사랑의 본질은 우리의 능동성과 하느님의 수동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하느님의 능동성과 우리의 수동성에 있는 것이다.’(사랑). 가톨릭출판사. 각 권 1만 2000원, 7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많은 장애인들에게 밖으로 나올 용기 주고 싶어”

    “많은 장애인들에게 밖으로 나올 용기 주고 싶어”

    “올해 딱 마흔 살이지만 새 출발을 하는 데 조금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최근 경희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김병일(40)씨는 2002년 교통사고를 당해 지체장애 1급이 됐다. 당시 대기업 애프터서비스팀에서 일하던 김씨는 190㎝가 넘는 훌륭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프로골프 선수에 도전, 호주 전지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씨는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한 뒤 숙소로 돌아가다 차량 전복 사고가 났다. 목뼈를 다쳐 팔다리를 못 쓸 거라는 의사 진단을 받았다. ●10년 전 교통사고… 재활치료도 실패 김씨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1년 2개월간 재활치료에 매달렸다. 하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신앙심마저 흔들렸다. 한동안 집에서 TV만 보며 무기력한 생활을 이어 갔다. 그러던 김씨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2007년 자신을 돌봐주던 병원 물리치료사와 결혼을 하면서다. 김씨는 “장인·장모님이 결혼을 반대해 잠시 헤어지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아내가 부모님을 끈질기게 설득,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내를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갖기로 결심했다. 1992년 경기 성남의 한 전문대에 입학했지만 가정 형편 탓에 학업을 중단했다. 김씨는 2009년 경희사이버대에 2학년으로 편입했다. 공부는 쉽지 않았다. 가슴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어서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강의을 들으며 교재를 읽고 또 읽어 아예 외워 버렸다. 엉덩이에 욕창이 생겼을 때도 쉬지 않고 누워서 공부했다. 그 결과 지난 5일 치러진 사회복지사 1급 시험에서 합격으로 돌아왔다. ●힘겹게 공부… 사회복지사 1급 합격 장애인 단체의 사회복지사 모집에 지원할 계획인 김씨는 “사람들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이젠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서 “특히 중도 장애를 겪는 사람의 심경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상담에 자신이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씨는 “집에서 소일하는 많은 장애인에게 용기를 내서 밖으로 나오라고 권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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