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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 테러, 그 후 10년] (상) 아물지 않는 상처

    [9·11 테러, 그 후 10년] (상) 아물지 않는 상처

    미국과 전 세계를 경악케 한 9·11테러가 일어난 지 오는 11일로 10주년이 된다. 19명의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된 4대의 민간항공기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워싱턴DC의 국방부 건물 등을 타격, 2983명의 희생자를 낸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미국인의 의식과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미국은 공룡 부처 국토안보부를 신설하고 입국심사를 강화했지만 테러 공포를 안고 사는 나라가 됐다. 미국은 알카에다에 대한 보복에 나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을 축출하고 올해 5월 주범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는 등 국제정세도 격변했다. 하지만 9·11 이후가 이전보다 안전해졌는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테러 공포는 여전히 미국과 세계를 짓누르고 있다. “지난 10년 간 미국은 더 안전해졌다. 하지만 위협은 남아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의 초대 장관을 역임한 톰 리지 전 장관은 9·11테러 10주년을 맞아 지난달 17일 워싱턴DC의 미 상공회의소에서 서울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미국 정부가 취해 온 대테러 정책의 허실을 짚었다. 9·11테러를 계기로 2002년 11월 신설된 국토안보부는 직원 17만 명에 연간 예산 400억 달러(약 42조원)를 쓰는 미 행정부 내 최대부처다. →국토안보부가 지금까지 한 일은. -정보자산을 강화했고 우방국과 파트너십을 다졌다.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했다. 공항에 지문인식장치와 방사능 검색대를 설치했다. 미국민의 자유와 헌법, 아메리카라는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겹겹의 안보를 구축했다. →국토안보부의 역할에 미흡한 점은. -민간 부문과 연대를 더 적극적으로 했어야 했다. 대테러 기획단계에서부터 민간을 참여시켜 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 각 부처 비상대책반 사이에 정치적인 이유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은 문제도 여전하다. 기득권을 버리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입국심사 강화에 따른 효과에 대해서는 만족하나. -입국심사는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출국심사에는 허점이 많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자 기간을 초과해 미국에 머무는지,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누구도 모른다. 아직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토안보부가 강하긴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됐는데 테러와의 전쟁도 변화해야 하나. -그를 죽인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의 지하드 이념을 땅에 묻어야 한다. 이념이라는 것은 극소수에게라도 전염되면 글로벌 테러리즘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이제는 테러와의 전쟁이란 말 대신 신앙체계와의 전쟁, 악의 이념과의 전쟁이란 말을 써야 한다. →미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테러 위험성은 얼마나 될까. -한국은 미국의 친구이기 때문에 위험에 잠재적으로 노출돼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가장 큰 안보 위협은 역시 북한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한국도 국토안보부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야 할까. -미국은 한국과 동맹 관계이기 때문에 한국의 내부 문제에 대해 내가 이래라, 저래라 조언하기 조심스럽다. 원론적으로, 제대로 된 정부라면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사회나 군대가 도발에 즉각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그런 문제를 포괄적으로 잘 다뤄왔다. →9·11을 기점으로 미국민의 의식구조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9·11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됐다. 테러가 글로벌화됐고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개개인이 테러에 매우 민감해졌고 각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제2의 9·11테러가 일어날까. -정부가 겹겹이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9·11처럼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와 다른 유형의 테러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 시민권자가 저지르는 테러다. 지난 18개월 동안 이런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60~70명이나 붙잡혔다. 테러의 유형은 더 늘어난 셈이다. 우리는 더 안전해졌지만 여전히 위협은 남아 있다. 글 사진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톰 리지는 누구 베트남 참전용사 가운데 처음으로 1982년 미국 하원의원에 당선돼 6선을 했다. 1994년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로 당선돼 재선했다.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나자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를 백악관 국토안보보좌관에 임명했다. 이듬해 국토안보부가 신설되면서 그는 초대 국토안보부 장관에 취임했다. 2005년 사임한 뒤 민간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 [9·11 테러, 그 후 10년] “10년 전 사진속 도움 청하는 사람들 모두 내 아들 같아 아직도 가슴 아파”

    [9·11 테러, 그 후 10년] “10년 전 사진속 도움 청하는 사람들 모두 내 아들 같아 아직도 가슴 아파”

    10년 전 9월 11일 오전 강성순(현재 72세)씨는 뉴욕의 한인회 사무실에 앉아 있던 중 세계무역센터(WTC)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정신없이 WTC 쪽으로 달려갔다. 희뿌연 분진 가루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강씨는 경찰의 제지로 현장에 접근하지 못했다. 그는 끝내 WTC 104층 ‘캔터 피츠 제럴드’사에서 증권시스템 분석가로 일하던 아들 준구(당시 34세)씨의 유해를 찾지 못했다. 지난 26일 뉴욕주 서니사이드에 있는 강씨의 아파트에 기자가 도착했을 때 강씨는 부인 강필순(68)씨와 함께 아들의 사진과 당시 신문기사 스크랩을 보고 있었다. 4남매 중 외아들로 강씨 부부에게는 ‘전부’였던 준구씨에 대해 강씨는 “똑똑하고 성실하고 신앙심 깊은, 흠잡을 데 없는 아들이었다.”고 했다. 강씨 부부에게 10년이란 숫자는 무의미하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음의 고통은 똑같고 눈물도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강씨는 화염에 휩싸인 WTC 사진을 가리키면서 “살려 달라고 흰 옷을 흔드는 사람이 마치 내 아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매일 괴롭지만 9월이 되면 더 못견딘다.”면서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준구씨 사망 이후 그의 부인과 두딸(4살, 2살)은 다른 주로 이사갔다. 9·11로 희생된 한인은 21명이다. 유족들 대부분은 충격으로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강씨 부부는 잃어버린 사랑을 새로운 사랑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선교 사업을 꿈꿨던 아들의 뜻을 기려 6만 달러를 기부, 도미니카의 빈민촌에 준구씨의 이름을 딴 학교를 2009년 세운 것이다. 강씨는 기자가 아들과 비슷한 나이인 것을 알고는 자녀는 있느냐, 가족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글 사진 뉴욕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수상록’의 미셸 드 몽테뉴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수상록’의 미셸 드 몽테뉴

    1560년, 수년간 ‘진짜’ 마르탱 게르 행세를 한 ‘가짜’ 마르탱 게르에 대한 재판이 파리 고등법원에서 진행되었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책과 영화로도 잘 알려진 이 희대의 사건은, 재판 말미에 진짜 마르탱 게르가 출현하는 대반전을 거쳐 가짜 마르탱 게르가 처형당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당시 보르도 고등법원에서 근무하면서 이 사건을 전해들은 몽테뉴는, 이 사건의 진실을 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가짜 마르탱 게르는 최선을 다해 진짜 마르탱 게르로 살았고, 진짜의 죽마고우도 아내도 모두 가짜 마르탱 게르를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진실은 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법이 진실을 판단할 권리와 능력이 있는가. 몽테뉴가 보기에 마르탱 게르 사건은 법이나 지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모순성과 삶의 불가해함, 사실을 넘어선 진실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 루터파냐 칼뱅파냐를 기준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가짜 마르탱 게르’처럼 온전히 자신의 행위와 말과 정신으로 자립(自立)하기를 갈망했던 자. 삶의 진실을 신에게 묻지 않고 자신의 걸음 속에 담고자 했던 자. 스스로 미친 자가 되어 길을 떠난 돈키호테보다 조금 앞서, 여기, 자신을 탐색함으로써 광기의 시대를 온전히 살아낸 자, 몽테뉴가 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 네가 어떤 일을 하든지, 네 힘을 다해서 하여라. 네가 장차 들어갈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 몽테뉴는 ‘전도서’의 구절을 12개나 발췌하여 서재 천장에 명문으로 새겨 놓았다고 한다. 몽테뉴가 인용한 유일한 성서 구절이다. 살벌한 ‘종교의 시대’에 몽테뉴는 대담하게도,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 그는 고전 속에서 자기 시대와 인간을 읽었으며, 고전을 통해 전란의 늪에서 재생(Re-naissance)할 수 있었다. 흔히 르네상스를 찬란한 빛과 색의 시대로 상상하지만, 정작 16세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전쟁과 죽음이다. 1598년에 낭트칙령이 공포됨으로써 기나긴 종교전쟁이 막을 내리기 전까지, 가톨릭과 이에 ‘항의’하는 프로테스탄트, 종교를 내세운 왕과 귀족들의 대규모 살육경쟁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거기에 기근과 페스트까지, 16세기는 흡사 태피스트리처럼, 화려한 문예부흥의 뒷면에 상상할 수도 없는 상처와 모순을 깔고 있었다. 휴머니즘? 그런 건 헛되고 헛된 이상에 불과했고, ‘그리스도의 이름’은 살육에 필요한 명분일 뿐이었다. “기독교의 적개심만큼 격렬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의 신앙심은 우리의 증오심, 잔혹함, 야심, 탐혹, 중상모략, 반역의 성향을 조장할 때는 참으로 놀랄 만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의 종교는 악덕을 근절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오히려 악덕을 감추고 키우고 부추기고 있다.” 전란의 한복판에서 몽테뉴는 그리스, 로마인들의 절제된 태도를 견지한 채 광신의 결과를 묵묵히 응시했다. 에라스무스의 자유주의 교육을 신봉하고, 칼 대신 펜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간파한 부친은 몽테뉴에게 두 살 때부터 라틴어를 교육시킨다. 우리로 치면, 모두가 한글을 쓰는 시대에 한문으로만 말하고 쓰게 하는, 기이한 조기교육을 실행한 셈이다. 몽테뉴가 어떤 종교나 정파와도 거리를 두며 보신(保身)할 수 있었던 데는 부친의 이런 ‘반시대적’ 조기교육이 공헌한 바가 크다. 청년기에 파리 왕립교수단에서 그리스 철학을 공부한 몽테뉴는 유학을 마치고 고향 보르도로 돌아온 1557년부터 고등법원에서 조세심의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어떤 절차로 법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법관이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법률이 신뢰를 얻는 것은 공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법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법률이 가진 권위의 불가사의한 근거이고, 그 밖에는 아무 근거도 없다. 어쨌든 늘 공허하고 판단이 불안정한 인간이 법률을 만든다.” 몽테뉴의 ‘몽테뉴다움’이 여기 있다. 그는 한번도 자신이 서 있는 지반을 확신한 적이 없다. 법관으로 근무할 때는 법의 판단력을, 파리 궁정에서 왕의 시종무관으로 근무할 때는 국가와 군주권력의 토대를 의심했다. 가톨릭이었지만 프로테스탄트에 적대적이지 않았고, 또 한편으로는 ‘새것’을 만들려는 일체의 개혁주의에 진저리를 쳤다. 확신으로 움직이는 제도와 권력에 대한 주의 깊은 거리감 때문인지, 후대는 그를 비겁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몽테뉴는, 모든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유토피아’를 상상한 대가로 처형된 토머스 모어보다는, “우리 인간은 얻어맞거나 걷어차이면서도 왜 이처럼 참을성 있게 폭군의 굴레와 족쇄를 감수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했던 에티엔 드 라 보에시에 주목한다. 나는, 인간은 왜 이토록 무력한가. 인간이란 모순으로 가득 찬 존재고, “자신에 대해 절대적으로, 단순하게, 결정적으로, 혼란이나 혼동 없이, 단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자신을 끔찍하게 미워했던 어머니와, 동생과 바람난 아내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음경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을 동반한 신장결석증을 앓으면서도 병원 한번 찾지 않고 고통을 감내한 것도, 어떤 것도(그것이 심지어 병이나 죽음일지라도) 함부로 판단하거나 내쳐서는 안 된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일생의 화두는 이런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13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마흔 살이 된 몽테뉴는 고향으로 내려가 이 문제에 대한 탐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에세’, 전장에서의 산책 “무언가를 찾는 사람은 누구나 ‘찾아냈다’, ‘찾을 수 없다’, ‘아직 찾고 있다’ 가운데 어느 하나로 귀착한다.” 몽테뉴가 주목한 것은 ‘아직 찾고 있는 중’이었던 회의론자들이다. “확실한 것은 하나도 입증될 수 없다. 판단의 주체도, 판단의 대상도 끊임없는 변화와 동요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성을 필요로 하는 건, 결정하고 선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전제를 의심하기 위해서다. “회의론자는 온갖 의견들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반대되는 판단은 나를 분개시키지도 흥분시키지도 않고, 오히려 나를 눈뜨게 하고 단련할 뿐이다.” 이것이 몽테뉴 식의 회의였고, 때문에 그의 회의는 가볍고 명랑하다. 1572년부터 거의 죽기 직전까지 수정과 첨삭을 거듭하며 집필한 ‘에세’는 그의 명랑하고도 예리한 질문들로 가득하다. 흔히 ‘수상록’으로 번역되는 ‘에세’(Les Essais)는 몽테뉴 자신의 말을 빌리면 “정신의 잡동사니”이자 사유 시험(essai)이라고 할 수 있다. 몽테뉴는 “평화가 그 온전한 모습을 보여준 일이 전혀 없던” 전쟁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즉흥적 사유를 기록하는 일에 몰두한다. “여기에 쓰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내 타고난 능력의 시험(essai)일 뿐, 후천적으로 얻은 능력의 시험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남들이 내 무지를 공격해도 별로 곤란할 건 없다. 무지의 자각이야말로 판단력을 갖추고 있다는 가장 아름답고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리 흐트러진 걸음걸이라도 평소의 자연스러운 내 걸음걸이를 보여주고 싶다.” 문체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침착함과 단순함, 종종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명랑한 어조 때문에 ‘에세’를 읽으며 화약냄새와 총포 소리를 연상하기란 쉽지 않다. 몽테뉴는 평가하고 판단하기보다는, 판단을 중지한 채 의심하고 회의한다. 그는 신 앞에서 맹세의 언어를 남발하는 권력자보다는 시장의 언어로 삶의 지혜를 기록하는 은자(隱者)가 되길 꿈꿨다. 무도한 세상이 종종 그의 판단과 능력을 필요로 하기도 했지만, 그때도 그는 중심을 잃지 않고 나아갔다가 침착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펜으로 걸었다”. “인생은 그 자체로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대가 인생에 마련해 주는 자리의 좋고 나쁨에 따른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서 인간과 자연과 이성을 사유한 몽테뉴가 터득한 지혜다. ●니체·푸코가 회의주의 본받아 세상을 편히 사는 법을 알아내라는 과제가 주어진다면 몽테뉴와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던 니체는, 손을 떨게 하거나 눈물을 글썽거리게 하지 않는, 겸허하면서도 용기 있는 그의 사상을 예찬했다. 우리는 인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만 말할 수 있을 뿐, 인간의 본질이라든가 의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푸코 역시 몽테뉴의 회의주의를 한편에 늘 품고 있었다. 우리 자신의 최고 걸작품은 “떳떳하게 살아가는 일”이라며, 과(過)도 부족도 없이 “분수에 맞는 평이하고 건강한 지혜”를 최고의 지혜로 삼았던 몽테뉴. 이 죽음과 불안의 시대에, 나 역시 그의 가르침을 본받고 싶다. “나는 그날그날을 살고 있다. 그리고 실례인 줄 알면서도, 단지 나만을 위해 살고 있다. 내 목적은 그것뿐이다.” 채운 남산강학원
  • [열린세상] 조계종의 종교평화선언을 바라보며/석영중 고려대 노문학과 교수

    [열린세상] 조계종의 종교평화선언을 바라보며/석영중 고려대 노문학과 교수

    조계종이 며칠 전 ‘종교평화선언’의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 작성 작업을 주도한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도법 스님은 그동안 종교가 화합과 평화가 아닌 갈등을 초래했음을 반성하면서 뼈저린 성찰과 자성을 통한 쇄신을 다짐했다. ‘나의 종교가 소중한 만큼 타인의 종교도 소중하게 여기고, 나의 종교에만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지 않고 타인의 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하겠다.’는 것이 이 선언의 취지다. 오랜만에 접하는 화합의 메시지다.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우리사회에도 갈등 요인이 많다. 이념·계층·세대 간은 물론 종교 갈등까지 상존해 있다. 이 때문에 상생과 공존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적잖다. 특히 다인종·다문화를 향한 문이 열린 마당에 종교 간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이럴 때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이 관용과 평화의 선언을 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종교는 이데올로기, 민족과 더불어 인류의 화합을 저해하는 3대 요소로 간주된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종교로 인한 반목과 분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십자군 전쟁에서 보스니아 내전과 9·11 테러에 이르기까지 많은 재앙과 대학살의 근저에는 종교적 원인이 깔려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종교야말로 모든 갈등의 근원이라는 극단적인 말이 나오기까지 했다. 도법 스님이 “종교는 사람들의 근심을 덜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종교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말도 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정말 종교가 모든 분쟁의 근원인가. 통계에 의하면 세계 69억 인구의 70% 이상이 가톨릭, 개신교, 무슬림, 불교, 힌두교, 유대교 등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이 모든 종교들 중 분쟁과 대학살을 교의로 삼아 가르치는 종교는 없다. 저명한 영국의 종교비평가 카렌 암스트롱은 종교가 가르치는 교의는 참인지 거짓인지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으며, 윤리적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종교로 인한 모든 분쟁은 종교 교의를 정치적 담론으로 만들 때 발생한다. 그리고 종교의 정치화, 권력화를 조장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근본주의다. 요컨대,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 근본주의가 문제다. 근본주의의 핵심은 편협과 오만과 탐욕이다. 자기가 믿는 것은 선이고 상대방이 믿는 것은 악이라는 믿음, 자기가 믿는 것만이 진리라는 믿음, 그것을 지지하기 위한 문자주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상대를 지배하려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근본주의의 본질이다. 엄밀히 말해서 여기에는 그 어떤 종교적 내용도 없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이러한 근본주의와는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한다. 종교가 원인이라고 알려진 역사상의 대재앙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면에 있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빙자한 지배욕일 때가 많다. 이런 의미에서 근본주의는 광신이나 맹신과는 또 다르다. 맹신과 광신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믿는 것이지만 종교적 근본주의는 미친 듯이 믿는 것이 아니다. 지배하기 위해 믿는 척하는 것이다. 조계종의 선언이 반가운 게 종교적인 화합을 촉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무신론적 근본주의, 과학적 근본주의 역시 종교적 근본주의 못지않게 위험한 현상이다. 일부 미래학자들은 미래의 양극화 현상에 종교와 무신론 간의 대립을 첨가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런 대립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모든 종교를 악으로 규정하는 무신론적 근본주의, 무신론과 과학만능을 결합해 모든 종교를 비과학적 편견으로 비난하는 과학주의적 근본주의가 벌써부터 고개를 든다. “상대방을 악이라 부르는 사람이 곧 악이다.”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도법 스님의 선언을 읽다 보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생각난다. 2000년에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뉘우쳤다. 진리에 봉사한다는 명목으로 사랑을 멀리했다는 것이 교황 발언의 요지였다.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종교인이 한 말이지만 결국 같은 얘기다. 상대방이 믿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진리, 사랑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 “타인의 종교 소중히 여기자” 조계종, 자정·종교평화 선언

    “타인의 종교 소중히 여기자” 조계종, 자정·종교평화 선언

    ‘각 종교마다 기본 교리는 다를 수 있으며, 자신의 종교를 선전하느라 남의 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어떤 의도에서이건 자신의 종교에 오히려 더 큰 해악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존경해야 합니다.’(인도 아소카왕·기원전 268~기원전 232년 재위) 불교계가 종교 갈등을 없애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앞장설 것을 선언하고 나섰다. 조계종 자정과 쇄신 결사추진본부 화쟁위원회(위원장 도법스님)가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 초안을 발표했다. 종단 차원에서 종교평화 선언문을 내기는 처음이다. ‘21세기 아소카 선언’으로 이름 붙여진 이 선언은 조계종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정과 쇄신운동의 사실상 첫 작품으로 불교계 안팎의 큰 반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아소카 선언’은 불교계 스스로의 반성을 토대로 평화를 실현하자는 선언과 실천 다짐으로 요약된다. “우리 불교인들은 이웃 종교를 진정한 이웃으로 생각하는 데 충분하지 못했으며 이웃 종교인의 허물을 내 허물로 여기고 그들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기는 데 충분하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총론) 여기에 덧붙여 실천강령으로 ‘진리는 모두에게, 모든 믿음에 다 열려있다.’는 열린 진리관과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종교도 소중히 여기자.’는 종교 다양성의 존중을 세웠다. 전법과 전교의 원칙에선 ‘실천적 활동을 통해 내 믿음의 참됨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불교와 다른 종교 모두에 대한 주문도 들어 있다. ‘신앙이 공적 영역에 작용해 종교적 편향성을 낳는 것은 모든 종교의 비극으로 이어진다.’‘종교 간 평화를 가로막는 갈등상황이 오더라도 우리 불교인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평화를 이뤄가야 한다.’ 화쟁위는 당초 선언에 담을 내용으로 종교 평화와 보수·진보 갈등을 두고 고민한 끝에 종교 평화에 낙점했다고 한다. 박경준(동국대)·성태용(건국대)·조성택(고려대) 교수와 조계종 명법 스님이 초안 작성에 참여해 8개월간의 작업 끝에 세상에 내놓은 사회평화의 선언이다. 화쟁위는 우선 중앙종단과 종회, 교구 본말사, 신자 등 4부대중의 의견수렴을 거쳐 오는 10월쯤 종단 차원의 최종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모든 종교계와 종단협의회가 참여하는 세미나와 시민 토론회를 열어 국민들의 공감과 참여를 확산시키는 한편 선언문을 영문으로 번역해 세계종교학회에도 발표할 계획이다. 특히 7대 종단을 중심으로 이웃 종교의 동참도 적극 유도할 예정이어서 종교계에 비슷한 선언과 실천운동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화쟁위 위원장 도법 스님은 “종교 때문에 국민들이 걱정하는 상황에 대해 불교 최대 종단에 속한 종교인의 한 사람으로 죄송함을 느낀다.”면서 “종교 문제로 인한 불신과 갈등이 종식돼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불교, 조계종이 먼저 나서게 됐다.”고 선언문의 취지를 밝혔다. 글 사진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천주교 평신도 ‘시복시성 기도운동’ 나섰다

    천주교 평신도 ‘시복시성 기도운동’ 나섰다

    ‘한국천주교 순교자를 우리 손으로 복자, 성인 반열에 올리자.’ 로마 교황청에 계류 중인 한국천주교 순교자 125위의 시복시성(諡福諡聖)을 앞당기기 위해 천주교 평신도들이 발벗고 나섰다. 천주교에서 시복시성이란 성덕이 높은 사람이나 순교자, 탁월한 신앙 모범을 보인 사람을 사후에 복자나 성인 품위에 올리는 것으로 성인 반열에 오르면 최고의 명예로 추앙된다.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평협·회장 최홍준)는 다음 달 4일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인 솔뫼성지에서 ‘하느님의 종 한국순교자 124위와 증거자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을 위한 도보성지순례’ 행사를 갖는다. 평협은 이날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의 주례로 사제단이 공동 집전하는 미사를 올린 뒤 솔뫼성지부터 합덕성당∼무명순교자 묘역∼신리성지까지 11㎞에 걸친 도보순례를 벌인다. 평협은 순교자 125위의 시복시성 기도운동 출범식을 겸한 행사를 시작으로 9월 교구별 순교자 현양 행사와 10월 순교자 현양 전국 성지순례를 갖는 것을 비롯해 시복시성을 위한 묵주기도 125억단 봉헌운동을 연중 계속하기로 했다. 천주교 평신도들이 ‘아래로부터의 시복시성 청원’ 운동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게 된 것은 로마 교황청에서 한국 순교자 125위의 시복시성 절차가 답보상태에 빠졌기 때문. 한국천주교는 10여년에 걸쳐 최양업 신부를 포함, 125위의 시복시성을 위한 국내 조사를 마친 뒤 지난 2009년 6월 교황청 시성성에 청원을 위한 최종 자료를 보냈다. 한국천주교가 청원한 이들 125위는 지난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집전한 시성식을 통해 성자 반열에 오른 103위와 달리 대부분 초기 박해를 당해 순교한 평범한 일반 신자들이다. 따라서 한국천주교는 이들의 시복시성에 각별한 관심과 기대를 쏟고 있는 상황이다. 평신도들이 시복시성 기도운동에 적극 나서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평신도들의 청원의지가 결집돼야 한다는 바티칸 측의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 한국 주교특별위는 지난 4월 교황청 시성성 장관을 만난 뒤 천주교 신자들의 시복시성에 대한 의지가 저변에서부터 결집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청 시성성은 각국 천주교의 청원을 받아 시복시성 절차를 벌이면서 ‘순교자와 증거자에 대한 신자들의 공경과 현양 정신’을 판결의 주 요소로 꼽는다고 한다. 지난 1984년 103위의 시성 때 한국 평신도들이 주도적으로 시복시성 운동에 나섰던 일화는 유명하다. 평신도들의 시복시성 기도운동 계획이 알려지면서 각 교구도 이에 동참할 태세다. 시복시성 청원 대상 125위 중 가장 많은 20위가 포함된 대구대교구가 지난 15일 ‘대구대교구 순교자 20위 시복시성 기도운동 선포식’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수원, 부산, 마산, 전주, 광주 교구도 시복시성을 위한 교구 신자들의 결집 운동에 돌입했다. 최홍준 평협 회장은 “시복시성은 우리 천주교 성인의 양적 증가를 떠나 신자들이 일상생활 속 순교정신을 다져 이웃에 기여하는 백색순교의 모델 차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며 “신자 개개인이 신앙의 성숙을 위해 시복시성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中 “신장위구르 철권통치”

    중국 서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겨울’이 빨리 찾아왔다. 중국이 ‘반역의 땅’인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대한 대대적인 ‘공포통치’에 나섰다. 자치구 정부 공안청이 지난 11일부터 10월 15일까지 두 달간 일정으로 대대적인 ‘폭력 및 테러행위 섬멸작전’을 시작했다고 신장 지역 인터넷매체 야신(亞心)망 등이 16일 보도했다. 앞서 멍젠주(孟建柱)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은 지난 4일 신장자치구 우루무치에서 처음 ‘전국 대테러 공작협조 소조’ 회의를 갖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 테러행위를 엄단하겠다.”고 밝혀 강력한 ‘채찍’의 등장을 예고한 바 있다. 두 달로 예정된 ‘작전’ 기간 공안 당국은 정탐, 미행, 순찰활동 등의 강화를 통해 ‘폭력테러집단’ 색출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야신망은 전했다. 자치구 관계자는 “공안 당국이 대규모 군중시위 움직임 등을 원천봉쇄함으로써 다음 달 우루무치에서 개최 예정인 ‘중국-아시아·유럽 박람회’와 국경절(10월 1일) 기간의 안정을 도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종교활동도 위축될 전망이다. 대다수 위구르인들의 신앙인 이슬람교가 일부 불법분자들의 사상 선전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게 공안 당국의 분석이어서 이슬람 사원에 대한 감시활동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루무치 유혈시위 당시 인터넷 메신저 등을 통해 군중이 시위에 나선 점을 감안한 듯 “인터넷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혀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등에 대한 폐쇄가 잇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안 당국은 군중이 모이는 광장이나 기차역·터미널, 시장, 번화가는 물론 뒷골목 등 ‘중점지역’에 대해 24시간 순찰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특히 3~4명 단위의 ‘사복경찰조’를 곳곳에 배치하겠다는 방침이다. 위구르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중국 내에서 분리독립 요구가 가장 높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는 지난달 남서부 허톈(和田)과 카스(喀什) 등에서 위구르인들의 흉기 난자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 37명이 희생된 바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첫 수필집 ‘유소유’ 펴낸 고세진 교수

    [저자와 차 한 잔] 첫 수필집 ‘유소유’ 펴낸 고세진 교수

    ‘그저 내려놓으라’는 불교의 방하착(放下着). 집착을 부르는 일체의 인연을 놓아 버리라는 이 일갈은 세상에선 무소유의 가치로 빛을 뿜는다 .‘텅 빈 충만’이요, ‘비움 속의 행복’. 그런데 그 내려놓고 비워내는 과정이 어찌 쉬울까. 언제부터인가 좀더 현실적인 차원의 무소유를 꿈꾸고 실천하려는 ‘유소유’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책 ‘유소유’(순정아이북스 펴냄)를 낸 아세아연합신학대 고세진(58) 교수는 그 생활 속의 유소유를 가꿔 가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 “사람은 누구나 남보다 더 갖고 유명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욕망에서 잉태되는 갈등과 충돌을 막는 절제의 미덕으로, 무소유는 충분히 아름답지요. 하지만 버리고 떠나는 소극적인 생활 선(善)을 넘어 실질적으로 가진 것을 나누고 유익하게 더불어 사는 적극적인 삶 또한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는 서울신학대, 대학원과 미국 신학대에서 신학공부를 하고도 미국 근동고고학의 메카라는 시카고대학교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근동고고학 박사학위를 받아 고고학자로 발굴현장을 누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그 흔치 않은 변신의 이유는 “남이 잘 하지 않으려는 부분의 천착”이라고 한다. “한국의 젊은 고고학자들이 근동 고고유적의 현장 발굴을 기피하는 경향이 심했어요. 힘든 환경의 고된 작업을 피하려는 입장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학자의 자세로는 잘못이란 생각이 많았지요.” 신학자에서 고고학자로의 유전을 겪고 한국에 돌아와 아세아연합신학대 총장을 지낸 뒤 지금은 교수로 재직 중인 그가 수필집을 내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골수 신학자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이력임에도 그의 책에선 종교적 색채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남에 대한 배려와 존중, 자기자신의 믿음과 용기, 사회에 대한 애정…. 책 곳곳에 종교적 사유와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절제되고 진솔한 짧은 글들이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특히 미국인 부인과 결혼해 입양한 아들(20), 딸(16)에 얽힌 글들은 예사롭지 않다. 생후 10개월 만에 입양한 아들이 10살을 넘기기 어렵다는 불치성 신장병 환자였고, 딸 또한 일상생활이 힘들 만큼 청각장애에 시달렸단다. 많은 날들을 눈물과 고통 속에 버텨야 했던 그가 일관되게 지켜 왔던 건 고통받는 아들과 딸의 입장에 서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인내였다고 한다. 그 인내의 복덕 때문인지 아들은 정상인으로 자라나 지난해 미국 유명 대학에 입학했고 딸은 청각장애를 딛고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해 올봄 미국 줄리아드 음대에 들어갔다. “신앙인이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신분의 강조와 신앙의 강요라고 생각합니다. 드러내지 않고도 신앙을 다지고 풀어 갈 수 있는데 굳이 왜 신분과 신앙을 앞세울까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종교는 보편적인 희망이 돼야 한다.”는 그는 그래서 스님과 신부 등 이웃종교의 성직자들과 스스럼없이 만나고 대화하기를 좋아한단다. “세상이 종교를 걱정해야 하는 지금, 목회자와 신앙인들이 하루빨리 성공이란 단어를 버리고 영혼의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시간은 가장 귀중한 유소유의 대상’이라는 고 교수, 그는 테레사 수녀의 이 말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신은 우리에게 성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신은 단지 우리가 노력하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1)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1)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몸을 가진 생명이 모두 그렇다.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또 생명이 거쳐야 할 세월에는 어김없이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증오가 담긴다. 나무도 그렇다. “내게 큰 아픔이 있는 이유는 내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도덕경 제13장)이라는 노자의 이야기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오히려 살아야 할 세월이 장구한 까닭에 나무의 몸 깊이 새겨지는 생로병사의 자취는 사람보다 깊을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세월 동안 나무의 몸에 새겨진 고통의 자취를 바라보면 나무에게도 그만의 운명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무가 짊어진 운명도 사람의 운명처럼 고통의 깊이는 천차만별이다. ●병인박해 때 가톨릭 교인의 순교대로 우리나라의 나무 가운데에는 형장의 교수대가 되어 수천의 목숨을 앗아간 얄궂은 운명의 나무가 있다. 몸 가진 생명들이 모두 고통을 겪어야 한다지만, 하필이면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보아야 할 운명을 가진 나무라니…. 감옥 앞에 높지거니 서 있는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 회화나무의 운명은 말로 되지 않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 겪기 힘든 극심한 통증이 수피 곳곳에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박힌 건 145년 전인 1866년이다. 당시 해미읍성에는 가톨릭 교인들을 가두는 감옥이 있었다. 외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조정에서는 교인들에게 배교를 강요했다. 그러나 종교 안에서 삶의 위안을 얻으려 했던 신도들은 선선히 응하지 않았다. 가톨릭 신도는 곧 죄인이어야 했다. 감옥에 갇힌 그들은 아침마다 한 사람씩 감옥 바깥으로 끌려 나왔다. 재갈을 물리고, 오랏줄에 묶인 그들 앞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회화나무다. 죄인이 된 교인들은 나무 앞에 꿇어 앉은 채, 얼이 빠질 만큼 두들겨 맞았다. 그래도 신앙은 버리지 않았다. 선뜻 이해되지 않을 만큼 강한 믿음이었다. 큰 나무 꼭대기에 미리 달아 둔 철사 줄에 매달려야 했던 건 종교적 믿음과 바꾼 대가였다. 머리채를 묶여 매달린 지친 몸뚱어리로서는 이겨낼 수 없는 고통이 이어졌다. 뼛속 깊이 박힌 고통을 못 이겨 온몸을 축 늘어뜨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몸 가진 사람이 허공에 매달린 채로는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할 한 많은 죽음이었다. 나무는 자신의 몸에 매달려 참혹하게 생명의 끈을 놓아야 했던 사람들을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무려 1000명이 나무의 몸에 매달렸고, 천천히 죽어갔다. 잔혹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때의 처참한 고통을 병인박해라고 부른다. ●삶과 죽음의 아우성이 깊이 배어나 시인 나희덕은 절창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에서 “아직 서 있으나 시커멓게 말라버린 그 나무에는/밧줄과 사슬의 흔적 깊이 남아 있고/수천의 비명이 크고 작은 옹이로 박혀 있을 것”이라고 썼다. 회화나무는 전체적인 생김새가 아름다운 나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기개 있는 가지펼침이 학문의 길을 닮아 ‘학자수’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기괴하다. 삶과 죽음의 아우성이 깊이 배어든 나뭇결과 울퉁불퉁 튀어나온 옹이는 여느 회화나무와 다르다. 나무가 사람의 마을에 베푼 것이 삶을 앗아가는 일이었던 까닭이다. 서산 지역의 지방말로 ‘호야나무’라고 부르는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300살 쯤 됐다. 평범하게 자랐다면 넉넉하게 펼쳤어야 할 나뭇가지들은 대부분 부러져 빈약하다.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들던 사람들의 애달픈 한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스스로 가지를 덜어냈을지 모른다. 오로지 사람보다 높이 솟아오른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짊어져야 했던 고통을 붙들어 안고 나무는 한 많은 세월을 보냈다. 세월이 흘러 가톨릭 순교의 피가 흐르던 해미읍성의 고통은 사라졌다. 볼 만한 문화재로, 혹은 수도권에서 가까운 관광지로 거듭나기 위해 스러진 옛 건물들을 다시 고쳐 짓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흔적도 없이 무너졌던 감옥도 새로 지었다. 주말이면 여느 마을 공원처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해미읍성 공터에 모여들어 뛰논다. 생명의 숨결을 가진 어느 몸에서도 고통의 흔적은 드러나지 않는다. 자연스레 나무의 옹이마다 새겨진 고통의 흔적을 탐색하는 눈길도 많지 않다. 그냥 스쳐 지나며 바라보는 ‘이상한 나무’일 뿐이다. ●나무가 보여주는 고통과 환희의 두 얼굴 회화나무 건너편으로 내다보이는 동헌 건물은 옛 영화를 간직한 채 울긋불긋 화려하다. 그 앞에는 가지를 넓게 펼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시인 나희덕이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고요히 걸어 들어가” 찾아보라고 했던 두 그루의 나무 중 하나다. 당대의 권세가들과 함께 부귀영화를 누렸던 것처럼 동헌 앞 느티나무는 회화나무와 달리 풍요롭고 온화한 자태를 지녔다. 속내야 어찌됐든 여유롭고 행복했던 권세가들에게 그늘을 드리우던 느티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다. 회화나무와의 거리는 고작 몇 걸음 안 되지만, 시인의 말대로 천천히 걸으면 두 나무 사이에 배어 있는 삶의 아득한 거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필경 나무 스스로가 원한 건 아니었을 텐데, 형틀의 운명을 띤 나무와 풍요로운 정자의 운명을 띤 나무가 이토록 다른 모습으로 살아 남았다는 게 얄궂기만 하다. 몸 가진 것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의 운명이 어찌 이리 극단적으로 갈라질 수 있을까. 나무가 보여주는 고통과 환희의 두 얼굴이다. 글 사진 서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TRAVIE CHOICE] JEJU-HOT SPOTs in Jeju Island

    [TRAVIE CHOICE] JEJU-HOT SPOTs in Jeju Island

    돌, 바람, 여자만 많은 줄 알았던 제주에 언젠가부터 테마파크가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올레길을 걷고, 바다에서 휴양을 즐긴 관광객들은 무언가 아쉬워 즐길거리를 찾아 나서지만 선택이 영 쉽지 않다. 돌, 바람, 여자만 많은 줄 알았던 제주에 언젠가부터 테마파크가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올레길을 걷고, 바다에서 휴양을 즐긴 관광객들은 무언가 아쉬워 즐길거리를 찾아 나서지만 선택이 영 쉽지 않다. 바로 이런 독자들을 위해 이제 막 제주에 다녀온 <트래비>가 친구들에게 속삭이듯 제주의 흥미로운 스폿들을 소개한다. 글·사진 김선주, 최승표, 전병대 기자 메이즈 랜드 에코·웰빙·힐링의 미로 그 속에서 길을 잃는 즐거움 미로에서는 헤매는 게 미덕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방심했다가는 미로 속 미아가 될 수도 있다. 미로 길이만 5km가 넘으니 말이다. 누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로 테마파크라고도 한다.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가 노리고 있는, 그리스 신화 속 미궁에 던져진 듯한 황망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제주도 메이즈랜드Mazeland는 압도적인 규모와 길이로 개장 전부터 화제가 됐다. 올해 4월 개장했으니 메이즈랜드는 여전히 제주도의 ‘뉴페이스’라고 할 만하다. 무수한 테마들의 집결지인 제주도, 미로 역시 그 테마들 중 하나였지만 이번엔 그 야심의 크기가 사뭇 다르다. 그야말로 미로라는 테마의 ‘종결자’다운 비장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제주도의 3대 상징인 돌, 바람, 여자를 형상화한 3개의 미로(돌미로, 바람미로, 해녀미로)가 저마다 따로 독특하게, 또 함께 어우러져 있다. 미로박물관과 전망대, 카페 등 부대시설은 미로에 대한 흥미를 돋우고 미로탐방에 지친 다리를 주물러 준다. 1 메이즈랜드 전망대에서 바라본 3개의 미로 2 미로박물관에서는 퍼즐 증 다양한 재밋거리들을 만날수 있다 3 미로갤러리. 착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돌 바람 여자…대규모 미로테마파크 돌미로는 돌하르방 모양이다. 총 길이는 2,261m. 제주도의 현무암 돌담이어서 친근하다. 중간중간 붉은색 돌(흑기석)이 양념처럼 끼워져 있어 아름답다. 원적외선과 음이온이 다량 방출돼 건강증진 효과도 있다고. 3개의 미로 중 최장 길이여서 헤맬 가능성도 있지만, 곳곳에 미로를 푸는 힌트가 담긴 QR코드가 도움을 준다. 바람미로와 해녀미로는 푸른 나무로 꾸며져 돌미로와는 확연히 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바람미로는 소라 몸통의 나선형 문양을 본땄는데 태풍의 바람결 같은 느낌도 든다. 서양측백나무가 1,355m를 함께한다. 동백나무로 만들어진 해녀미로는 물질을 마친 해녀의 모습이라는데, 한눈에 이해하기에는 다소 복잡하다. 그만큼 막다른길과 갈림길이 많다는 얘기다. 길이는 1,461m. 출구를 찾기 위해 입구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미로풀이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미로의 돌담이 뿜어내는 좋은 기운을 흡입하고, 나무의 피톤치드 효과를 만끽하는 여유로운 미로산책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 에코, 웰빙, 힐링의 미로라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미로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것 미로박물관 안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코너에서는 그리스 신화 속 미로의 탄생과정을 3D 홀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미로갤러리에서는 미로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과 퍼즐 등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다. 전망대나 카페에서 3개의 미로와 그 뒤로 아담하게 솟은 오름, 우거진 비자림 숲을 감상하는 낭만도 놓칠 수 없다. 미로는 이미 완성됐지만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주변의 오름, 비자림과 연계한 새로운 트레킹 코스로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그렇게 되면, 미로는 제주도 곳곳으로 혈관처럼 이어질지도…. 주소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3322 제주공항에서 찾아가기 공항-동부일주도로 (1132번 국도)-평대-비자림로(1112번 지방도)-메이즈랜드 입장료 성인 8,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 4,000원, 장애인 3,000원 홈페이지 www.mazeland.co.kr 전화 064-784-3838 4 소인국테마파크에서는 간접적으로 세계여행을 해볼 수 있다 5 인도의 타지마할 뒤편으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거대 예수상이 보인다 6 올해 초 새롭게 오픈한‘옛날 옛적에’전시관에는 서울의 60~70년대 골목 풍경이 재현돼 있다 7 뉴질랜드 베스하우스가 제주 야자수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소인국 테마파크 이곳에 가면 누구나 걸리버가 된다 제주도에는 신이 빚은 독특한 자연 풍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직접 고안한 작은 나라 사람들의 세계 ‘소인국 테마파크’도 여행객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한다. 세계적인 건축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소인국테마파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미니어처 테마파크로 맑은 날이면 한라산이 훤히 보이고, 기생화산(오름)이 사방으로 펼쳐진 제주도의 천혜의 환경 속에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02년 문을 연 소인국 테마파크는 지금까지 7만여 평방미터의 부지에 약 110억원을 투자해 누가 봐도 알 만한 각국의 유명 건축물을 하나둘 세웠다. 자유의 여신상, 오페라하우스가 한눈에 서울역, 대법원, 불국사, 제주공항부터 자금성, 타워브릿지, 자유의 여신상, 오페라하우스, 피사의 탑, 타지마할 등 30여 개국의 문화유산 및 조형물 100여 점이 전시되어 있고, 관람객이 바라보기 편한 각도(15도) 아래로 건축물을 전시해 소인국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각적인 효과를 더했다. 세계적인 건축물뿐만 아니라 제주도 돌문화, 민속신앙, 체험학습장, 공룡화석 등 다채로운 시설로 관광객들이 즐길 게 많다. 넓지 않은 공간을 최대한 고려한 조형물 배치와 조경에 심혈을 기울인 덕에 ‘작은 사람들의 나라’가 좁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전시된 조형물들은 시대상에 맞는 인물들을 배치시켜 방문객으로 하여금 소인국에 온 걸리버처럼 건물과 인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입체감과 생동감을 느낄 수 있고,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해 놓아 어린이에게는 교육적인 효과를, 어른들에게는 동심의 세계로 빠져드는 경험을 선사한다. 소인국이 문을 연 2002년 당시만 해도 제주에는 인공 테마파크가 흔치 않았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시작한 뒤로 세계여행을 하던 진동열 소인국테마파크 대표는 미니어처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로 오랜 기간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건축물의 도면을 확보하고, 각종 자료를 수집해 하나의 미니어처를 완성하는 작업은 고되고 고됐다. 진동열 소인국테마파크 대표는 “7년여의 미니어처 제작과 시공 기간 동안 척박한 황무지를 개척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테마가 있는 공원을 조성하고 작품의 질적, 양적인 향상을 끊임없이 노력해 온 결과, 제주에서 가장 사랑 받는 관광지가 됐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작은 사람들의 나라 소인국테마파크에는 웬만한 세계적인 건축물이 다 들어선 만큼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소인국테마파크는 우리나라의 옛 풍경을 재현한 ‘옛날 옛적에’ 전시관을 올해 1월 새롭게 선보였다. 5년간 수집한 옛날 제품들로 60~70년대 도시의 골목 풍경을 고스란히 복원해냈다. 음악다방의 DJ와 낡고 붉은 우체통, 전파사, 담배 가게가 어우러진 모습에서 정감이 느껴진다. 입구 바깥 쪽에는 로마에 있는 트레비 분수의 모형을 본딴 조형물을 최근 새롭게 설치했으며, 바로 옆에 식당을 새롭게 열었다. 앞으로도 시설 확장은 멈추지 않는다. 실내 500평방미터 규모의 선박을 구매해 또 하나의 작은 나라를 건설한다는 ‘건국’의 꿈이 제주에 영글고 있다. 주소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725 제주공항에서 찾아가기 공항에서 출발해 95번 국도(서부관광도로)를 이용하면 40분 가량 소요된다. 입장료 성인 9,000원, 청소년 7,000원, 어린이 5,000원, 장애인 7,000원(개별 여행객은 홈페이지에서 할인쿠폰을 출력해 가면 10% 할인받을 수 있다) 홈페이지 www.soingook.com 전화 064-794-5400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항공모함’ 메이플라워호 우리 조상도 탔을까?

    ‘항공모함’ 메이플라워호 우리 조상도 탔을까?

    조선 최대의 베스트셀러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족보다. 발달하는 인쇄술이 가장 널리 적용된 곳이 서양에서는 ‘면죄부’였다면, 조선에서는 족보다. 면죄부가 남발됐듯 족보에도 늘 위조의 위험이 따라다녔다. 천한 신분이 아니라는 증명이기 때문이다.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는 족보 위조의 위험을 경고하는 논의가 종종 등장한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서양 족보 연구자들 사이에선 “메이플라워호는 항공모함이었다. 미국 건국사 연구는 선박 제조 기술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농담이 나돈다. 초기 미국 이주자들이 대부분 유럽의 중범죄자나 부랑인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외가 있다면 청교도 신앙에 충실한 메이플라워호 탑승자였다. 조상이 부랑자나 중범죄자였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터. 그러니 너도나도 조상을 메이플라워호에 ‘태웠다’. 그 많은 사람을 다 태우려면 결론적으로 메이플라워호는 항공모함이었음에 틀림없다는 게 서양 농담의 배경이다. 그렇다면 조선 족보도 그처럼 쉽게 위조될 수 있었을까. 최양규 한국계보학회 부설 한국계보인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족보발달사’(혜안 펴냄)를 통해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좀 서글프다. 족보가 등장한 것은 고려 시대. 왕건이 고려를 세운 뒤 지방 호족을 복잡한 혼맥 관계로 중앙정부에 묶어두기 위해 성과 본관을 하사하면서 족보가 시작됐다. 대개의 족보들이 시조를 고려 시대로 상정하거나, 그 이전에 시조가 있다 해도 고려나 조선 시대의 중흥조에서 서술을 시작하는 이유다. 이때까지만 해도 적서 차별, 남녀 차별, 친외손 차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강퍅해진 것은 조선 태종 들어서다. ‘왕자의 난’으로 왕위를 차지한 태종은 왕위 서열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우선 이원계·이화 등 태조의 이복 형제들과 정종의 형제들을 제거하기 위해 엄격한 적서 차별을 만들어냈다. 서자를 차별해야 이들이 자연스럽게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실족보는 ‘선원록’(직계만 기록), ‘종친록’(태조와 태종의 적자만 기록), ‘유부록’(본처 공주와 후처 소생들 기록) 3가지로 쪼개졌다. 왕실을 모방하는 사대부 가문들도 당연히 이런 차별을 받아들였다. 이후 18~19세기 들어 족보 편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최 연구원은 말한다. 하나는 양반들의 자기 존재 근거 마련이다. 이는 군역 회피와 연결된다. 군역 면제가 가진 자의 특권이기는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여서 번듯한 양반 가문임을 드러내는 족보가 필요해졌다. 이들은 그간 미처 정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족보를 다시 편찬한 뒤 관아에 탄원서를 내는 방식으로 군역을 면제받았다. 또 한 가지는 양민 증가다. 양반 특권 사회였던 조선은 양반에게 평등하게 군역을 부담시키기보다 군역을 부담할 수 있는 평민을 늘리는 정책을 썼다. 종에서 신분 상승이 이뤄진 양민들은 양반을 본떠 족보 만들기에 혈안이 됐다. ‘뼈대’를 더 굵게 하기 위해 족보 위조도 일부 시도됐다는 게 최 연구원의 분석이다. 그는 19세기 세도가였던 풍양조씨 족보를 그 예로 들었다. 최 연구원은 “한 권 가운데 일부에 불과했던 별보(別譜·한 집안이라는 근거가 확실치 않아 족보에 완전히 편입시키지 않은 상태의 기록)가 1826년에는 2권으로 늘어났다가 1890년에는 다시 1권으로 줄었다.”면서 “이는 세도가에 붙은 가문들이 크게 늘었다가 다시 구한말 사회 혼란기에 원보에 합쳐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조상을 미화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럼에도 족보 위조는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고 최 연구원은 잘라 말한다. 그 이유로 ▲지역 유림사회가 워낙 강고해 족보 위조에 대한 상호 감시가 엄격했고 ▲문중에서 족보를 낼 때 계파 간 상호 견제가 치열했으며 ▲족보에 번호를 매겨 한정적으로 공급한 점을 든다. 이로 인해 유출이나 조작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연구원은 “따라서 왕조실록 같은 거대 사료뿐 아니라 족보 같은 개인 기록 연구를 통해서도 신분제 등 조선조 사회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장애극복 이미지보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어”

    “장애극복 이미지보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어”

    “역경을 극복한 이미지가 아니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능력 있으니까’ 이렇게 합당한 평가가 내려졌으면 해요. 저도 그걸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할 거고요.” 현관에 들어서니 키 182㎝의 훤칠한 청년이 수줍은 듯 손을 내밀었다. 기자가 다가서던 각도와 약간 틀어진 채였는데 기자 목소리를 듣고 이내 바로 잡았다. 짙은 속눈썹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라틴계 호남을 연상시키는 이창훈(26)씨는 지상파 방송 사상 처음으로 KBS에 프리랜서 앵커로 기용돼 1년간 활약하게 된다. <서울신문 7월 26일 자 29면> 지난 29일과 30일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된 ‘TV 쏙 서울신문’ 스튜디오에 나온 이씨는 지금까지의 삶과 앵커로서의 각오 등을 특유의 중저음과 빛나는 재치로 풀어냈다. 오는 8일부터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집에서 방송국 근처의 9호선 국회의사당역까지 지하철과 도보로 출퇴근해야 하는 이씨는 “어머니와 몇 번 왕복해 봤는데 평소에도 지하철 등을 이용해 왔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자택과 스튜디오를 오가며 진행된 이씨와의 일문일답. →시력을 잃은 뒤 많이 힘들었을 텐데. -태어난 지 7개월 됐을 때 시력을 부분 상실했는데 어둠과 밝음 정도만 분간할 수 있었어요. 억울함이나 분노 같은 건 없었고 무섭고 아팠을 뿐이지요. 가위에 눌려 잠에서 깰 때마다 어머니를 때리고 깨물곤 했다고 나중에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고요.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뒷바라지해온 어머니 이상여(57)씨는 “창훈이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어 구석에 숨어 잠을 청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용케도 아이가 냄새를 맡고 찾아내 정말 힘들었다. 온 몸이 꼬집힌 자국투성이였다.”고 말했다.) →학교 생활은 어땠나. -여덟살 때 시각장애인 학교가 진주에 없어 서울로 왔어요. 한빛맹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뇌수막염이 재발, 시력을 완전히 잃었어요. 사지도 마비돼 의사들은 다시 움직이기 어렵다고 했는데 용케 이겨냈습니다. 나 혼자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 티 안 내려고 애써야 했지요. 다른 아이들이 집에 가는 주말에 혼자서 기숙사 생활을 하려니 외롭고 힘들었죠. 3~4학년 때 브라스 앙상블에서 트럼펫과 피아노를 배우면서 재능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얘기해 줘 성격도 밝아졌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내 흥얼거리길래) 성격 참 좋은 것 같다. -늘 살아 오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느낌을 가졌어요. 그런 안정감이 제 장점입니다. 그런 분야의 책도 많이 보고 학교에서 좋은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지요. →인터넷 방송 경험이 밑거름이 됐을 텐데. -한국시각장애인방송(KBIC)에서 매일 밤 9~11시 방송 중 제가 한 시간을 맡고 있습니다. 노래 두 곡 들려주고 다른 동료가 장애인계 뉴스를 전하는데 전 전체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의 방송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함께 도전한 분들뿐만 아니라 KBIC에도 재주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대체로 목소리가 좋은데 뉴스에 어울리는 목소리도 있고 예능 끼를 갖고 있는 분도 있어요. 함께하면 능력이나 기회를 공유하고 교류하며 힘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3개월 연수를 빼면 실제 활동할 시간이 짧은 것 같은데. -KBS에서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공고한 뒤 절 뽑기까지 한 달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거든요. 어떤 대우를 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고 계약도 맺지 않았습니다. →비장애인들이 어떻게 대했으면 하나. -모르면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영화 ‘말아톤’ 포스터에 ‘5세 아이 지능을 가진 스무살 청년’ 이런 식이에요. 정신지체 3급이라고 정확한 정보를 주면 되는데 ‘아, 다섯 살짜리 아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유도하는 거예요. →그런 이들의 마음을 열려면. -마음을 열 수는 없고 삶을 보여 줘야죠. 대학 다니면서도 ‘시각장애인이니까 이런 건 이렇게 해줘.’, ‘이런 부분은 강하고 이런 건 약하다.’ 분명히 얘기했어요. 신뢰감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친구들은 절 장애인으로 의식하지도 않아요. →‘장애 극복’ 이런 식의 표현을 싫어한다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상황을 겪으면서 견뎌내는 것이죠. 안 보이는 건 안 보이는 거잖아요. 벽에 들이받을 수 있는 거지요. ‘벽이 있었네.’ 하고 웃는 거지요. 시각장애인 앵커나 스포츠 캐스터, 작가, 배우가 되는 일이 특별한 일이 안 되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좌우명이 있다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야구판 명언이 있어요. KBS 장애인 라디오에서 장애인들이 직접 프로야구 올스타전을 중계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시각장애인들 중에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1년에 5~10회는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LG 경기를 응원하러 갑니다. 응원 소리와 그라운드에서 들려오는 소리로도 충분히 야구를 즐길 수 있어요. 2009년 장애인의 날 전날에 KIA-LG 경기 때 시각장애인 장남석(당시 26)씨가 시구한 적이 있는데 저도 꼭 해 보고 싶습니다. →배우자 이상형은. -신앙이 있어야 하고 가치관이 같았으면 좋겠어요. 잘 웃고 생기 넘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팔로어가 50명쯤 된다는 그의 트위터 계정은 @lch85 글 사진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8) ‘마담 보바리’ 작가 플로베르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8) ‘마담 보바리’ 작가 플로베르

    185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 보바리라는 여인의 불륜을 다룬 소설이 발표되었다. 작품은 즉각 가족주의와 금욕적 도덕관을 내세우는 신흥 부르주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다음 해, 제2제국의 권위주의적 재판부는 풍기 문란과 종교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이 작품을 기소한다. 유부녀가 노골적으로 남자를 유혹하고, 불륜을 저지른 여인의 종부성사를 장님의 상스러운 노랫소리가 화답하는 등 작품 전체가 간통을 미화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마지못해 문학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변호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마담 보바리’와 작가 플로베르는 예술 창작을 암암리에 규제해 오던 부르주아적 도덕의 허위를 폭로했다. ●아버지, 나는 부르주아가 싫어요 플로베르는 1821년 소도시 루앙의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장력 있던 조숙한 소년은 자신의 재능이 문학으로 꽃필 것을 꿈꾸었다. 하지만 지방 부르주아였던 닥터 플로베르가 보기에 이 똑똑한 아들이 해야 할 일은 딴 데 있었다. 파리의 법대에 들어가 입신출세하고 부와 명예를 얻는 것! 1820년 왕정복고시대에 태어난 플로베르는 1880년 죽을 때까지 왕정, 공화정, 제정이라는 각종 정치 체제의 변혁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어떤 체제가 되었든, 사회의 주인공은 부르주아였다. 온갖 정치적 변혁의 한가운데에서 이 계급은 금융과 산업을 주도하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갔다. 소년 플로베르는 루앙의 시민들이 각자의 이권과 보신을 위해 질투에 찬 중상모략을 일삼는 것을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다들 온순하고 근면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비정한 야욕이 도시에 넘쳐 흐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부르주아거나, 부르주아를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트거나. 청년 플로베르는 부르주아라는 말을 특정한 계층에만 국한해서 쓸 수는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돈이 없고 지위가 낮은 하층계급 안에서도 의사나 변호사 같은 번듯한 직업을 갖고, 돈 있는 가문과 결혼하고, 사교계에 나가 출세할 수 있으리라는 부르주아의 삶이 하나의 꿈으로 확실히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란 재정상태가 아니라 정신상태의 이름이어야 했다.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르주아에 대한 증오는 미덕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부르주아’라는 말에는 프록코트를 입은 부르주아와 마찬가지로 작업복을 입은 부르주아들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써 보냈다. 플로베르는 1843년과 1844년 연이어 일어난 치명적인 신경발작을 겪었다. 그때부터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아예 부르주아적 삶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법대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포기하고 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학계 안에서도 부르주아적 태도가 판 치고 있었다. 작가들은 기존의 문학잡지나 아카데미를 부와 명예를 향한 도약대로 삼아 그 안에서 자족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치의 격변기마다 부화뇌동하면서 사회문제, 대중의 교화, 진보, 민주주의 같은 판에 박힌 소리만 되풀이했다. 사실주의를 내세우면서 서민들의 대변자로 자처하고 하층민들을 동정할 뿐이었다. 플로베르는 이들을 보며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문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자신의 길은 분명했다. 부르주아적 세계관을 버릴 것!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을 창조할 것! 플로베르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오직 문학에 자신의 삶을 다 바치기로 했다. 나중에 카프카는 이런 플로베르를 자신의 정신적 지주로 모시며 평생 그의 작품을 가까이 했다. ●“나는 보바리다”-자살 장면 쓰면서 구토 플로베르는 본격적인 첫 작품을 구상하면서 안토니우스라는 성인에게 끌렸다. 안토니우스는 250년 무렵 이집트 북부에서 태어난 기독교 초기의 성자다. 그는 사막에서 고행하며 각종 이교도의 신들과 자기 안의 탐욕, 질투, 회의에 맞서 신앙을 지켜냈다. 플로베르는 이 성인의 삶에서 자신의 운명을 보았다. 끊임없이 유혹을 마주하면서 수도해야 하는 성인처럼, 그 자신도 계속해서 부르주아적 태도와 취향을 마주하며 글을 써야 했다. 문학에 인생을 건다는 것은 그런 적극적 대결이 필요한 일이었다. “진주는 조개의 병에서 생기는 것이라지만 문체는 아마 그보다 더 깊은 고통을 통해 나오는 것일 거요. 예술가의 삶, 아니 예술 작품의 완성도 그렇지 않겠소? 거대한 산을 오르는 일처럼 말이오. 얼마나 집요한 의지가 필요하겠소! 그 산 정상은 창공 속에서 순수함으로 빛나고, 그 엄청난 높이는 공포를 가져다주지. 우리는 더듬더듬 바위에 손톱들을 찢겨가면서, 외로움 속에 눈물을 흘리며 계속 걸어가지. 우리는 욕망의 백색 고통 속에서 소멸하는 거요. 정신의 격류가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얼굴을 태양으로 향한 채!”(편지, 1853년 9월 16일) 제목은 ‘성 앙투안의 유혹’. 그는 3년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의 이야기는 서정, 인물의 움직임, 구성 어느 것도 새롭지 않았다. 초고를 본 친구들은 상투적인 반복과 무질서한 구도에 진저리를 쳤다. 플로베르는 성 앙투안을 쓴다면서 결국 자신의 의식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자신도 타인의 삶, 다른 존재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한 여느 부르주아들과 다를 바 없었다. 플로베르는 작가의 개성과 정념이 지배하는 문학은 예술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플로베르는 예술이 제2의 자연과 같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불가해한 것. 숲 속에 살아 있는 수많은 나뭇잎과 초록의 속삭임처럼 무한하면서도 준엄하게 존재하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것. 작가란 자신의 경험과 정념을 지움으로써 이 제2의 자연을 창조하는 존재여야 했다. 플로베르는 인물의 말과 행동을 기술하는 글쓰기, 그것이 바로 작가 주체를 소멸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는 나밖에 모를 거요. 주제, 인물, 효과 등등 모든 것이 나의 바깥에 있거든.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오. 예술과 예술가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편지, 1852년 7월 26일) 그렇게 해서 플로베르는 자신과는 출신도, 성(性)도, 교육 배경도 완전히 다른 시골 유부녀 에마 보바리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그는 에마와 그녀 이웃들의 속물주의가 주는 혐오감을 견디며, 작품 속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도록 6년 동안 쉬지 않고 세상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에마가 비소를 먹고 자살하는 장면을 쓰다가 구토를 하기도 했다. 플로베르는 종종 “나는 에마 보바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수도승처럼 철저히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소멸시키고 에마 보바리라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시대의 허위와 대결 생애 마지막에 플로베르가 도전한 것은 두 명의 필경사 이야기다. 최신의 근대 학문을 다 섭렵해 보기로 한 부바르와 페퀴셰. 하지만 저명하다는 원예학, 지질학, 의학, 고고학, 심리학, 교육학 안에는 논리적 모순이 너무나도 많았다. 게다가 각각의 지식들은 현실에 적용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정보를 추상적으로 나열하고 있었다. 부바르와 페퀴셰는 근대 지식의 한계에 대항하면서 진리와 미,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이 작품의 부제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백과전서’다.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위해 1500권이 넘는 학술서들을 철저히 검토했다. 근대적 학문에 맹종하면서 인류의 진보를 신봉하는 부르주아의 어리석음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자 한 것이다. 부바르와 페퀴셰의 인생에는 그 어떤 극적 드라마도, 감동적인 사건도 없다. 오직 실험과 논증이 백과사전처럼 한없이 펼쳐진다. 오락으로 읽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논리적인 대화의 연속이었다. 한가한 부르주아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당황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역사소설, 연애소설과 같은 소설의 전통적 구분은 이 작품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미완으로 붙이게 된 뒷부분 개요에서 서술 방법과 작품 분석을 소개하기도 했다. 소설 안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해석하다니! 상상물인 소설과 현실의 작가가 뒤섞여 버린 것이다. 이렇게 플로베르는 19세기 문학의 온갖 관습을 무너뜨려 버렸다. 이 최후의 싸움은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플로베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면서 근대 학문의 어리석음과 부르주아 문학의 허위와 대결했다. 오선민(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종교 믿는 괴짜남

    특이한 종교(?)를 가진 남자가 이색적인 사진으로 운전면허를 취득, 화제가 되고 있다. 35세 오스트리아 남자가 주방기구를 철모처럼 눌러쓴 사진을 사용해 운면면허를 받았다고 외신이 14일 보도했다. 오스트리아 당국은 종교적 이유가 인정된다며 괴짜 같은 사진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성스러운 종교의 상징(?)으로 인정받은 주방기구는 삶은 국수를 건질 때 사용하는 건지개다. 니코 암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남자의 면허증에는 국수건지개를 쓴 늠름한 모습이 선명하게 인쇄돼 있다. 남자는 ‘플라잉 스파게티 몬스터’(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라는 특이한(?) 종교를 갖고 있다. 이 종교에선 국수건지개를 머리에 써 신앙을 표현한다고 한다. 3년 전 면허갱신을 신청하면서 남자는 국수건지개를 머리에 쓴 사진을 면허증에 붙여달라고 했다. 오스트리아에선 여느 국가처럼 면허증 사진을 찍을 때 원칙적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모자를 쓰면 안 된다. 부르카 등 베일을 쓰는 이슬람 여성처럼 종교적 사유가 인정될 때 예외적으로 허용될 뿐이다. 남자는 국수건지개를 머리에 쓰는 건 자신의 종교적 행위라며 건지개를 눌러쓴 사진을 면허증에 붙여달라고 고집했다. 오스트리아 빈 면허당국은 심리검사를 받게하는 등 시간을 끌며 고민하다 결국 남자의 요구를 들어줬다. 국수건지개를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도구로 인정한 셈이다. 니코는 “무슬림 여성이나 여성신부들과 동일한 권리를 인정받고 싶어 투쟁을 시작해 목표를 이뤘다.”며 “앞으로 플라잉 스파게티 몬스터가 국가 공인을 받을 수 있도록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지친 그대! ‘천주교 피정’서 피서를

    지친 그대! ‘천주교 피정’서 피서를

    ‘천주교 피정(避靜·retreat), 얼마나 아시나요.’ 여가 시간과 문화가 확산되고 심리적, 영적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천주교 피정에 대한 일반인의 참여가 부쩍 늘고 있다. 불교의 전통 사찰문화 체험인 템플스테이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늘고 있는 가운데 천주교 문화로서의 피정이 같은 차원에서 주목받고 있는 추세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5일 공개한 피정 상황을 보면 휴가철 프로그램 수만 해도 2005년 23개에서 올해 75개로 지난 6년 사이 3배가량 늘었다. 피정의 집 숫자도 같은 기간 88개에서 134개로 1.5배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 내용과 형식이 다양해지면서 단지 천주교 신자만의 신앙행사가 아닌 보편적인 생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셈이다. 천주교에서 피정이란 원래 하느님과의 영적 만남을 위해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최근 진행 중인 피정의 양상은 결코 이런 종교적 해석에 머물지 않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피정의 대부분이 피정을 위한 숙소에서 영적 지도자의 안내에 따라 진행되고 피정도 휴가를 이용한 영적 재충전으로 인식되고 있는 추세다. 우선 가장 많이 늘어난 피정의 유형은 일반 성인들의 가톨릭 영성체험과 청년들의 수도생활 체험이다. 가톨릭 영성을 소개하는 피정에는 기도와 묵상 방법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이 다양화되고 있다. 렉시오 디비나(성독·聖讀), 향심기도, 이냐시오 영신수련, 예수마음기도는 전통적 가톨릭 수련법을 배울 수 있는 대표적 피정으로 꼽힌다. 이 가운데 렉시오 디비나는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허성준 신부가 선보인 평화방송 TV특강을 통해 급속히 확산된 피정이다. 일상 속 피정을 돕는 특이한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아 여름 피정 외에 서울, 대구, 부산 지역에서 매월 기도모임이 진행중이다. 이냐시오 영신수련의 경우 개신교로도 확산된 프로그램으로 주목받는다. 주교회의에 따르면 매회 피정 때마다 참가자의 10%가 개신교 목회자들이다.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선교훈련원은 지난달 14일 이냐시오 관상기도 전문가인 스위스의 한스 조그 펠레 목사를 초청, 관상기도 모임 행사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가르멜 수도회,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등은 전통적인 고유 영성을 토대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정립하고, 기도에 임하는 태도를 다지도록 돕는 새로운 형태의 피정을 선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수도생활 체험 피정은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신자와 비신자가 모두 수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특징 때문에 개별 수도회들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베네딕도회가 처음 마련한 수도생활 체험 피정은 수도자의 삶을 체험한 뒤에도 수도자들과 지속적으로 대화, 교류할 수 있는 체험피정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이웃 종교 신자와 비신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종교 교류 측면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가족피정의 확산도 눈에 띄는 추세다. 가족 단위의 피정은 영적 수련과 수도생활 체험 말고도 기도·묵상에 심리상담을 연결한 프로그램이 주종을 이룬다. 천주교주교회의 관계자는 “피정은 이미 천주교 신자만의 영역을 벗어나 이웃 종교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며 일상생활의 구체적 문제 해결을 돕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천주교 피정, 얼마나 아시나요

     ‘천주교 피정(避靜·retreat), 얼마나 아시나요’ 여가 시간과 문화가 확산되고 심리적, 영적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천주교 피정에 대한 일반인의 참여가 부쩍 늘고 있다. 불교의 전통 사찰문화 체험인 템플스테이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늘고 있는 가운데 천주교 문화로서의 피정이 같은 차원에서 주목받고 있는 추세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5일 공개한 피정 상황을 보면 휴가철 프로그램 수만 해도 2005년 23개에서 올해 75개로 지난 6년 사이 3배가량 늘었다. 피정의 집 숫자도 같은 기간 88개에서 134개로 1.5배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 내용과 형식이 다양해지면서 단지 천주교 신자만의 신앙행사가 아닌 보편적인 생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셈이다.  천주교에서 피정이란 원래 하느님과의 영적 만남을 위해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최근 진행 중인 피정의 양상은 결코 이런 종교적 해석에 머물지 않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피정의 대부분이 피정을 위한 숙소에서 영적 지도자의 안내에 따라 진행되고 피정도 휴가를 이용한 영적 재충전으로 인식되고 있는 추세다.  우선 가장 많이 늘어난 피정의 유형은 일반 성인들의 가톨릭 영성체험과 청년들의 수도생활 체험이다. 가톨릭 영성을 소개하는 피정에는 기도와 묵상 방법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이 다양화되고 있다.  렉시오 디비나(성독·聖讀), 향심기도, 이냐시오 영신수련, 예수마음기도는 전통적 가톨릭 수련법을 배울 수 있는 대표적 피정으로 꼽힌다.  이 가운데 렉시오 디비나는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허성준 신부가 선보인 평화방송 TV특강을 통해 급속히 확산된 피정이다. 일상 속 피정을 돕는 특이한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아 여름 피정 외에 서울, 대구, 부산 지역에서 매월 기도모임이 진행중이다.  이냐시오 영신수련의 경우 개신교로도 확산된 프로그램으로 주목받는다. 주교회의에 따르면 매회 피정 때마다 참가자의 10%가 개신교 목회자들이다.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선교훈련원은 지난달 14일 이냐시오 관상기도 전문가인 스위스의 한스 조그 펠레 목사를 초청, 관상기도 모임 행사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가르멜 수도회,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등은 전통적인 고유 영성을 토대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정립하고, 기도에 임하는 태도를 다지도록 돕는 새로운 형태의 피정을 선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수도생활 체험 피정은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신자와 비신자가 모두 수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특징 때문에 개별 수도회들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베네딕도회가 처음 마련한 수도생활 체험 피정은 수도자의 삶을 체험한 뒤에도 수도자들과 지속적으로 대화, 교류할 수 있는 체험피정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이웃 종교 신자와 비신자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종교 교류 측면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가족피정의 확산도 눈에 띄는 추세다. 가족 단위의 피정은 영적 수련과 수도생활 체험 말고도 기도·묵상에 심리상담을 연결한 프로그램이 주종을 이룬다. 천주교주교회의 관계자는 “피정은 이미 천주교 신자만의 영역을 벗어나 이웃 종교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며 일상생활의 구체적 문제 해결을 돕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상상초월 한국 종교계의 어두운 실상

    서방세계는 한국을 ‘종교 천국’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많은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나라. 부러움이 담긴 이 말은 언뜻 듣기엔 더할 나위 없는 찬사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칭송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비아냥의 수사이기도 하다. 종교단체와 종교인이 자유롭게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 그 비아냥은 물론 종교 본연의 범주를 벗어난 채 세속적 가치에 매몰된 불법, 탈법의 비정상적인 세태를 겨냥한 것이다. 서방세계에서 기독교의 퇴조는 심각한 지경에 와 있다. 800년 역사의 성당을 허물어 아파트를 짓고, 700년 이상 된 교회를 유치원으로 만들기도 한다. 네덜란드와 독일에선 600년 이상을 지켜온 유서 깊은 성당이 개인 화실이며 상가 건물로 바뀐 사례가 수백 건이 넘는다고 한다. ‘교회의 몰락’으로까지 관측되는 이런 상황은 한국에선 영 딴판이다. 세계 20대 교회로 꼽히는 교회의 절반이, 세계 50대 교회 중 23개가 있는 곳이 바로 이땅이다. 미국 다음으로 해외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도 바로 한국이다. 서방세계가 ‘종교 천국’이라는 찬사 아닌 찬사를 쏟아내는 이유가 분명 있는 것이다. ‘믿음이 왜 돈이 되는가?’(김상구 지음, 해피스토리 펴냄)는 그 ‘종교 천국’을 떠받치고 있는 한국 종교계의 어두운 실상을 낱낱이 까발린 책이다. 믿음을 팔아 부와 권력을 사는 한국 종교의 부끄러운 행위를 정밀하게 추적한 일종의 흑서인 셈이다. 책에서 파헤쳐진 실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부동산실명제를 교묘하게 비켜가는 명의신탁, 억대의 월봉을 받고도 소득세 한푼 안 내는 목회자, 신도들의 신앙심을 담보로 받은 대출 이자를 헌금으로 내는 교회, 인가받지 않은 신학대학원을 통한 학위 장사, 한 해 예산이 수십억∼수백억원 수준인 교회를 한 푼의 상속세도 내지 않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교회세습…. 요즘 개신교계를 뒤흔들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해체를 비롯해 종교계 안팎에서 요동치는 자성과 쇄신의 목소리가 괜한 게 아님을 고스란히 들춰내는 고발의 연속이다. 책을 관통하는 온갖 비리와 일탈의 핵심은 단연 특혜와 불평등으로 모아진다. 종교단체와 종교인이기에 가능한 부의 축적과 권력의 획득, 그리고 종교계 내부의 성차별과 직제의 모순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무엇보다 그 많은 특혜의 홍수 속에 갈수록 심해져 가는 종교 주체들의 도덕 불감증이 가장 문제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래서 투명한 종교, 건전한 종교를 세우기 위해 종교법인법 제정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못 박는다. 1만 8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개신교 위기, 본질 회복 계기로”

    “개신교 위기, 본질 회복 계기로”

    ‘한국 개신교 반성과 회개를 넘어 본질을 회복해야’ ‘개신교 위기’에 대한 회개와 성찰의 목소리가 무성한 가운데 교회의 본질을 먼저 회복하자는 움직임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금권선거 이후 출범한 ‘한기총 해체를 위한 네트워크’가 한기총 해체를 한국 개신교 개혁의 계기로 삼자는 운동을 범기독교계로 확산시키고 있는 가운데 ‘제2의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목회자들이 독립적인 모임을 태동시키는가 하면 목회자·신자들이 대규모 신앙집회를 열 태세다. ●“외형적 성장에 내적 성숙 부족” 이 같은 움직임은 지금 한국 교회의 위기를 단순한 회개와 반성의 차원으로 극복하기엔 막다른 골목에 있다는 자성 아래 근본적인 개혁의 기수를 든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특히 최근의 이런 흐름은 한국 개신교계에 만연한 일탈과 파행이 심각한 지경인데도 교회와 목회자들이 안이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지금 상황을 위기로 보지 않을 만큼 무책임하다는 데 대한 집단 반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가운데 3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릴 ‘2011 한국교회본질성회복성회’와 지난 20일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공식 출범한 ‘교회2.0 목회자운동’은 종전의 회개운동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7종교개혁 500주년 성령대회’(총재 최낙중 목사·상임대표회장 소강석 목사)가 개최하는 30일 장충체육관 행사에는 목회자와 신자 6000여명이 참석해 회개와 결단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이날 대회에선 “한국교회 126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엄청난 외형적 성장에 비해 교회의 내적인 성숙이 부족했고 교회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는 통절한 자기반성과 회개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회개 메시지가 발표될 예정이다. 개신교계 안팎에서 쏟아졌던 대형교회 위주의 물질주의와 성장주의에 대한 반성과 함께 공동체의 본질을 먼저 회복하자는 천명과 실천의 다짐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출범한 ‘교회2.0 목회자운동’은 종교개혁을 더욱 선명하게 선언하고 나선 목회자들의 집단 움직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건강한 교회와 새로운 목회’를 지향한다는 목회자 50여명이 가입한 이 단체는 창립 선언문에서 “목회자들이 한국교회의 퇴행과 일탈에 동조하고 침묵했던 죄악을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한다.”며 “성경적 원리와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다시 서겠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특히 이들은 성경적 가치와 직제의 민주적 운영, 사회적 책임을 핵심 사항으로 내걸어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성경 원리·종교개혁 정신 실천” 이 같은 움직임을 놓고 개신교계는 “그동안 흔치 않았던 한국 교회의 근본적인 개혁 바람”이라면서 “향후 성과를 내기 위해선 지속적이고 연합적인 운동의 형태를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달 30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제의로 연세대 상남경영관에서 열렸던 ‘한국교회 회복을 위한 긴급회의’가 보수 교단들의 불참으로 표류한 예를 주의깊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교회 회복 긴급회의’는 첫 회의 이후 교단들의 의견 조율을 놓고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김진호 목사는 “최근의 작은 움직임들은 의미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대형교회들에 철저하게 종속된 신학의 양심적 회복과 교회 밖으로부터의 개혁 노력이 맞물려야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글 사진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콜롬비아 커피농장·세네갈 삼각주… 세계문화유산 ‘신고’

    콜롬비아 커피농장·세네갈 삼각주… 세계문화유산 ‘신고’

    중국 저장성 항저우 시후와 콜롬비아 서부의 전통 커피 재배 농가 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일본 오가사와라 제도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지난 24~2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회의를 열고 중국 항저우 시후 주변 문화환경 등 9건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일본 오가사와라 제도 등 3건을 세계자연유산으로 각각 지정했다고 밝혔다. 새로 지정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남미 등에 골고루 분포해 있다. 중국의 41번째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에 오른 저장성 항저우 일대 시후 주변 문화경관은 면적 5.6㎢, 둘레 15.5㎞로 9세기부터 많은 유명 시인들이 찾아 시를 읊을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을 떨쳐 왔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일본 이와테현의 히라이즈미는 794~1192년 헤이안 시대 말기 건립된 절과 정원 등이 있는 정토신앙의 성지로 불교와 일본의 자연숭배가 융합된 독자적인 정원으로 유명하다. 콜롬비아 서부에 있는 전통 커피 재배 농가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안데스 산맥 중턱에 있는 이 커피 농가는 100년 넘게 맥을 이어오고 있는 남미의 커피 산업의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카리브해 연안 바베이도스의 수도 브리지타운의 구시가지와 요새도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17~19세기 영국의 식민지였던 바베이도스의 수도인 브리지타운에는 영국식 건축물들이 잘 보존돼 있다. 세네갈의 살룸 삼각주는 서부 아프리카의 3개 강이 만들어낸 5000㎢ 규모로, 어업과 조개류 채집의 보고다. 218가지 갑각류가 서식하며, 강 연안을 따라 정착한 서부 아프리카의 발달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수단의 메로에유적은 쿠슈 왕국시대 후기의 수도로, 기원 전 6세기경부터 서기 4세기 중엽까지 번영했으며 왕궁, 신전, 시가와 피라미드군이 남아 있다. 이 밖에 사막지대에 있는 요르단의 와디럼과 서기 6~8세기 로마제국의 유적이 남아 있는 이탈리아 론고바르드 유적, 독일의 알펠트 파구스 공장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세계자연유산에 새로 오른 3건 중 호주의 닌갈루 해변은 60만㏊에 걸쳐 있는 해안 생태계의 보고로, 세계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산호초가 연안에 생성돼 있다. 일본의 오가사와라 제도는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1000㎞ 떨어진 태평양상의 섬으로 약 30개의 군소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지와 단 한번도 연결된 적이 없어 ‘동양의 갈라파고스’로 불린다. 케냐 대협곡의 호수는 면적이 3만 2000여㏊로, 빼어난 절경 못지않게 13종의 멸종 위기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새들이 모여 사는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지난 19일 개막된 제35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는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한국은 이번에는 등재신청을 하지 않았다. 세계유산위원회는 35건의 후보들을 놓고 등재 여부를 심사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반짝대책 ‘반값한우’ 그 뒤에서 웃는…‘고기의 神’ 삼겹살

    반짝대책 ‘반값한우’ 그 뒤에서 웃는…‘고기의 神’ 삼겹살

     정부는 꼭 1주일 전 한우 불고기거리 3600t(4만 마리)를 지난해 말 가격의 절반인 1만 6900원(1㎏)에 공급에 나섰다. 한우 소비 증가와 돼지고기 가격 안정을 위해서다. 8만t 분량의 돼지고기 삼겹살 수입에도 고공행진이 그치지 않아 빼든 비장의 카드다. 1주일 지난 17일 확인한 결과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2.8% 내렸고, 한우는 3.9% 상승했다. 향후 전망은 알수 없다. 축산물 경매사들은 ‘반값 한우와 공포의 삼겹살 가격’의 비밀을 알고 있다. 경매사는 전국에 30명이 활동 중이다. ●반값 한우가 가능했던 이유  15년 경력의 A경매사는 ‘반값 한우’는 가격이 폭락한 한우의 판촉행사라고 설명했다. 소고기 평균 도매가격은 지난해 6월에 비해 이달 들어 20% 이상 하락했다. 등심이나 갈비를 제외한 불고기는 잘 안 팔리는 부위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고기를 구워 먹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대신에 한우를 공급하는 ‘군납 한우’가 가능했던 이유도 불고기 부위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는 경매장에서 ‘반값 한우 정책’이 발표된 지난 10일 한우는 153마리를 도축해 판매했지만 16일에는 250마리를 경매에 부쳤다. 같은 기간 가격도 ㎏당 1만 2344원에서 1만 3298원으로 올랐다. 전국적으로는 1만 1924원에서 1만 2393원으로 3.9% 상승했고, 도축물량도 1224마리에서 1623마리로 32.6% 늘었다.  A씨는 “사실 최근 소가 잘 팔리지 않으면서 일부 도축장에서는 도축을 맡겨도 2~3일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반값 한우 덕에 소 수요가 늘어나면서 축산농가들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600만원 하던 한우 한 마리(700㎏ 기준) 가격은 546만원으로 하락했다.  경매사들은 한우 가격의 하락 원인을 2008년 촛불집회에서 찾는다. 당시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되면 국내산 육우가 가격 경쟁에서 밀린다는 예측이 나오면서 많은 농가들은 고기의 품질이 좋은 한우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0개월이 지난 올해 적정선이라고 불리는 300만 마리보다 50만~60만 마리가 초과된 상황이 돼버렸다.  ‘반값 한우’가 본래 한우 수요를 올리기 위한 정책이기는 하지만 돼지고기 가격을 낮추는 데 분명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지난 10일 ㎏당 7630원이던 돼지고기 도매가격(전국 평균)은 16일에는 7417원으로 소폭 떨어졌다.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대체재가 아니면서도 가격인하 효과를 가져온 까닭은 싼 한우를 사먹으면서 돼지고기를 덜 먹는다는 데 있다. 하지만 80여일간 불고기 3600t을 공급하는 것은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에 충분한 물량은 아니다.  비결은 돼지고기 수요 감소 예측만으로 돼지고기 가격이 급락하곤 한다는 점에 있다. 돼지고기는 경매를 통해 유통되는 물량이 전체의 15%에 불과하고 85%는 육가공 업체가 경매를 통하지 않고 가공해 마트와 외식업체 등에 공급한다. ●반값 한우는 폭락 판촉행사  경매사 B씨는 ‘반값 한우’가 잠시 동안 돼지고기 가격을 낮추겠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돼지고기 가격의 상승세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공급 측면에서 1000만 마리에 이르던 돼지 중에 지난 구제역에 25%가 살처분·매몰됐다. 구제역이 아니라도 봄·여름에 돼지의 공급량은 줄어드는 특성이 있다. 6개월을 키우고 도축을 하는 점을 고려하면 추운 계절에 새끼 돼지가 태어나야 하지만 어미 돼지는 추울 때는 새끼를 잘 안 낳기 때문이다.  B씨는 “예전에는 더우면 고기를 구워 먹기 싫어진다는 속설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에어컨 때문에 옛말이 됐다.”면서 “요즘에는 집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비율이 20%에 못 미치고 대부분은 식당 등에서 먹는다.”고 말했다.  중도매인 김모(45)씨는 “오죽하면 부동산 가격과 쇠고기 가격이 함께 오른다고 하겠냐.”면서 “부동산이 몇 억원 뛰어야 소고기 사먹을 마음이 난다는 의미니 월급쟁이야 가격이 올랐어도 소주에 삼겹살”이라고 말했다. 돼지고기 수요는 거의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올해 삼겹살 8만t을 수입한다. 내심 삼겹살 가격이 잡힐 거라고 기대했지만 소매가격은 500g에 1만 2000원선까지 넘어섰다. 경매사 C씨는 정부가 삼겹살에 대해 현장을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산 삼겹살에 대해 신앙심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서 “수입산이 국내산으로 둔갑해 팔리지 않는 한 국내산 가격 하락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많은 원산지 위반 삼겹살이 적발되지만 빙산의 일각으로, 국내산으로 둔갑한 수입 삼겹살이 없으면 도매가격이 ㎏당 7000원선이 아니라 1만원선까지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로 돼지고기값 상승세  경매사 D씨는 “삼겹살 가격 급등의 문제는 유통이 아니라 구이용만 찾는 식습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육점의 폭리가 도마에 오르곤 하던데 도축 후 중도매인은 1.65%의 중개수수료를 받고 소매점은 평균 30%의 이윤을 남기고 장사를 한다.”면서 “하지만 돼지고기 중 팔리는 것은 삼겹살뿐이고 나머지는 재고로 남게 돼 이윤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경매사들은 구워 먹는 부위만 선호하는 소비 습관을 고칠 수 있는 대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돼지고기 도매가격을 세부적으로 보면 삼겹살은 정육점이 ㎏당 2만 5000원에도 구입하기 힘들지만 돼지 불고기거리는 ㎏당 5000원에도 팔기 힘든 실정이다. 하지만 80㎏ 돼지 한 마리당 삼겹살은 12㎏만 나오지만 뒷다리는 36㎏이 생산된다.  뒷다리 고기를 학교 급식, 군납으로 넣거나 수입산을 주로 사용하는 소시지 공장에 납품할 경우 그만큼 삼겹살 가격은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경매사 E씨는 “반값 한우가 당분간 축산 농가를 돕고 삼겹살 가격을 다소 잡을 수 있겠지만 근본책이 없으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돼지고기를 찾는 서민의 지갑만 가벼워질 것”이라면서 “뒷다리 등은 오히려 영양학적으로 웰빙고기로 불리기 때문에 대량 소비처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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