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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년 강력범죄 기승…형사처벌 나이 낮추면 줄어들까

    소년 강력범죄 기승…형사처벌 나이 낮추면 줄어들까

    지난 9일 강원 원주에서 만 11세 초등학생 세 명이 20대 지적 장애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최근 소년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처벌 연령 및 수위 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만 14세 이상으로 돼 있는 형사처벌 가능 연령을 낮춰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흉포화하고 있는 데다 과거에 비해 어린이들의 신체 발육이 빨라졌다는 점 등이 이런 주장의 논거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처벌 가능 연령을 낮추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죄를 지은 아이들을 무조건 엄히 다스리기보다는 예방하고 교화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법상 만 10세 이상~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觸法)소년’에 해당한다. 이들은 형사재판을 받지 않고 가정법원 등에서 감호위탁, 사회봉사, 수강교육, 소년원 송치 등 결정을 받는다. 만 12세부터 소년원 송치가 가능하지만 수용기간을 최대 2년으로 정해놓고 있다. 촉법소년이 최대한으로 받을 수 있는 처벌이 ‘소년원 2년 수용’인 것이다. 촉법소년의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보호처분을 받은 14세 미만 소년범은 2002년 2564명에서 2011년 3924명으로 늘었다. 고등학생을 성폭행하고 미행한 뒤 핸드백을 빼앗는 등 범죄 수법도 갈수록 흉포해지고 있다. 2011년 12월 청주에서는 13세 소년이 장난을 치다 자신의 발을 밟고 넘어진 친구의 가슴을 발로 밟아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9월에는 남자친구를 시켜 아버지를 폭행하고 돈을 빼앗으려 한 12세 소녀가 붙잡히기도 했다. 촉법소년에 대한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형사처벌 가능 연령을 낮추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형사 처벌 가능 연령은 일본과 함께 이미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스위스·덴마크·스웨덴 등의 형사미성년자 기준은 만 15세이고 영국·독일 등은 만 18세다. 소년원 구금 등 소년사법 적용연령 기준도 한국은 10세로, 구금 가능 연령이 12세인 일본보다 낮다. 전문가들은 현행 보호관찰제도 등을 정비해 촉법소년의 범죄가 성인 범죄로 이어지는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모방심리가 강한 아이들의 특성상 1차 범죄가 일어난 뒤 신속한 교정 시스템이 운영돼야 한다”면서 “촉법소년들만 따로 격리해 재활 및 교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현행 보호처분 제도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영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소년범죄 예방은 형사 처벌 가능 연령의 조정으로 해결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보호관찰 인력을 늘려 집중 보호관찰을 하는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부인에게 마약 먹여 결혼했나요”

    판사와 검사의 막말 파문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법원과 검찰이 물의를 빚은 판·검사들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대법원은 부장판사가 재판 도중 피고인에게 ‘마약’을 들먹이며 막말을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진상조사에 나섰다고 7일 밝혔다. 부산지법 동부지원에 근무했던 최모 부장판사는 마약관리법 위반 전과가 있는 A씨의 변호사법 위반 사건 재판 도중 A씨에게 “초등학교 나왔죠? 부인은 대학교 나왔다면서요. 마약 먹여서 결혼한 것 아니에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장판사는 현재 수도권 지방법원 지원에 근무 중이다. 대법원은 윤리감사관실에 즉각 진상 파악을 지시하는 한편 소속 법원장의 징계 청구가 있을 경우 신속하게 법관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서울동부지법에서 사기 사건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 심문하던 중 진술이 불명확하게 들리자 “늙으면 죽어야 해요”라는 말을 해 물의를 일으켰던 서울동부지법 유모 부장판사에 대해 견책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검찰도 이날 서울남부지검 이모 검사가 성폭행 피해 여고생에게 2차 가해 발언을 한 사건과 관련해 감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이 검사에 대해 어떤 처분을 내려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대검찰청과 협의하에 감찰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검사는 지난해 8월 의붓아버지에 의한 성폭행 사건 재판이 끝난 뒤 피해자인 고등학생 A양에게 “솔직히 말해야 해. 너 아빠랑 사귄 거 맞지? 카톡(카카오톡 메신저) 내용 보니까 아빠랑 사랑한 거네”라고 추궁했다. A양과 변호인 등이 항의하자 이 검사는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아시죠. 그것도 알고 보니 딸이랑 아빠랑 사랑한 거였어요. 혹시 걱정이 돼서 물어본 겁니다”라고 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날 전국 법원장 간담회를 열고 ‘법정언행 컨설팅’ 제도를 올해 안에 전국 법원에 도입하기로 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장기 불황에… 파산 법원만 몸집 더 커졌다

    장기 불황에… 파산 법원만 몸집 더 커졌다

    오랜 경기침체가 법원 조직에까지 변화를 몰고 왔다. 기업 회생과 파산 신청이 늘면서 관련 업무 처리를 위한 재판부가 확대 개편됐다.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25일부터 제6파산부와 제26파산부를 신설하는 한편 합의부를 기존 12개에서 14개로 늘렸다. 제6파산부는 이종석 수석부장판사가, 제26파산부는 구회근 부장판사가 각각 담당한다. 개인회생 단독재판부도 19개에서 20개로 늘어났다. 파산부는 그동안 법인 회생과 파산 건수의 꾸준한 증가로 업무 부담이 가중돼 왔다. 2008년 110건이었던 법인 회생신청은 지난해 268건으로 2.4배가 됐다. 2008년 74건이었던 법인 파산신청도 지속적으로 증가, 지난해에는 190건에 달했다. 서울·경기·강원 지역에 본사를 둔 기업들을 관할하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전국 법원의 기업 회생사건의 3분의1 가량을 감당하고 있다. 개인 회생신청 건수도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다. 2008년 5818건에서 2010년 8964건으로 54%가 늘더니 지난해에는 2만 569건으로 2년 새 130%가 증가했다. 법원 관계자는 “회생사건 접수건수 자체가 급증한 것은 물론이고 대형 건설업체의 회생절차 개시 신청 등 규모도 이전에 비해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사정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인천지법 관계자는 “경기권을 비롯, 전국적으로 파산과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들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면서 “파산 선고와 회생절차 개시 결정 등 산적해 있는 사건들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파산부 담당 인력을 늘리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불경기 속에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기업들의 회생·파산 신청이 줄을 이으면서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한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도 “파산부 확대 등 법원 차원의 인력 충원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소득분배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왜 울어, 넌 성폭행당했을 뿐이야”…22분마다 성폭행…명예살인

    [주말 인사이드] “왜 울어, 넌 성폭행당했을 뿐이야”…22분마다 성폭행…명예살인

    지난해 12월 인도 전역을 분노로 들끓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자친구와 심야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여대생 조티 싱 판데이(23)가 버스 운전사를 포함한 6명의 남성으로부터 버스에서 한 시간 동안 집단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장 파열 등 심한 충격을 입은 판데이는 인도에서 치료를 받다가 싱가포르의 장기이식 전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도 전역에서 성폭행 관련 처벌 강화를 위한 법 개정을 주장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수도 델리에서는 22분마다 성폭행이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인도에서 성폭행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러다 보니 인도의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경찰로부터 “왜 울어. 넌 단지 성폭행을 당했을 뿐이야”라는 말을 듣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남성 중심의 인도 사회가 여성의 인권에 무관심하다는 증거다. 전문가들은 인도에서 성폭행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보는 사회적 통념이 여전히 뿌리깊은 데다 성범죄를 신고해도 사건과 소송을 담당할 경찰 및 재판관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인도 경찰에 접수된 성폭행 건수는 1970년대 3000건에서 2010년 2만건으로 급증했지만 성폭행 사건의 유죄 선고율은 1974년 39%에서 2011년 26%로 감소했다. 법원에 계류 중인 성폭행 사건만 4만~10만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네팔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해외에서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한 20대 네팔 여성이 카트만두 국제공항에서 출입국 공무원들에게 돈을 빼앗긴 후 경찰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 여성이 성폭행으로 임신을 했다고 밝히면서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됐다. 네팔 인권변호사인 만디라 샤르마는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네팔에서는 정부 관계자가 범죄에 연루되어 있는 경우 성범죄 소송이 진행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는 얼마나 조사를 착실히 하는지에 달려 있지만, 경찰은 정부와 정치인들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여성 인권에 무관심한 사회현실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인도에서 발생한 시위는 네팔,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 지역 여성들의 인권 향상을 주장하는 기폭제가 됐다. 인도의 대규모 시위와 맞물려 이 지역에서도 여성의 권익 향상을 주장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대는 가정 폭력을 비롯한 성폭력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나라들에서 이 같은 시위 움직임이 확산됐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하고 있다. 인도의 일부 시위대는 판데이 사건과 관련해 성폭행 피의자들에게 화학적 거세와 사형 등 강력한 처벌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역시 자국 시위대의 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판데이 사건을 최근 설립된 ‘신속 처리’ 특수법원으로 넘겨 재판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첫 공판은 오는 21일(현지시간)에 열릴 예정이다. 아시아와 중동 지역에서는 관습이라는 미명하에 ‘명예살인’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명예살인이란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직접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간통을 하거나 부모가 결정한 결혼을 거부한 여성 가족 구성원이 명예살인의 주요 표적이 된다. 2000년 유엔 통계에 따르면 파키스탄을 비롯한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인도 등 전 세계에서 명예살인이 연간 50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최근 이라크 키르쿠크에서 아버지가 10대 딸 세 명에게 뜨거운 물을 뿌리고 총격을 가해 두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법정에서 딸들이 남성과 관계를 맺어 명예를 더럽혔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진술했다. 현지 활동가들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일반 살인사건의 경우 사형 선고를 받지만 유독 명예살인에 대한 처벌은 관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딸을 살해한 이 아버지 역시 징역 2년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이와 관련해 이라크 여성부는 성폭행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의회 구성원이 대부분 남성인 데다 가족이나 부족과 같은 집단의 명예를 개인의 명예보다 더 중시하는 가부장적 문화가 법 개정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2004년 요르단 국회에서는 명예살인에 대해 엄격한 형사 처벌을 부과하자는 법안이 제기됐지만 보수성향 남성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파키스탄 역시 2006년 명예살인을 금지하자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기각됐다. 정부나 정치인들이 사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방관하는 자세로 일관하면서 여성의 목숨을 위협하는 불안한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서남아시아 여성들은 무장세력이 벌이는 테러의 주요 표적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한 15세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가 탈레반으로부터 총격을 당했다. 두 달 뒤인 12월에는 소아마비 퇴치 운동을 벌이던 여성 활동가들이 탈레반의 총격에 잇따라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처럼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기반으로 한 탈레반은 교육, 보건 등 인권 개선사업에 참여하는 여성들을 겨냥한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총격을 당했음에도 병상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한 유사프자이는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동시에 여전히 열악한 세계 여성의 권리를 재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유사프자이와 그가 벌이는 여성 권익신장 운동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가 쇄도했고, 파키스탄에서는 유사프자이의 뒤를 따라 여성인권 운동을 하겠다는 소녀 운동가도 등장했다. 그러나 유사프자이 총격 이후에도 인도, 네팔, 파키스탄에서는 여전히 성폭행과 명예살인의 악습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른 나라 여성들처럼 ‘보통의 삶’을 살기를 원하는 서남아시아와 중동 여성들의 작은 소망이 실현되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미주통신] 성폭행범에게 마스터키 맡긴 뉴욕소방국 곤혹

    [미주통신] 성폭행범에게 마스터키 맡긴 뉴욕소방국 곤혹

    미국 뉴욕시 소방국(FDNY)에서 응급구조사로 일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건물 엘리베이터 마스터 키를 이용해 10년간 무려 5명 이상의 어린 여성들을 성폭행한 범인이 법정에서 첫 재판을 받았다고 미 언론들이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앵거스 파스칼(35)로 알려진 이 범인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FDNY에 응급구조사로 일하면서 11살 소녀를 비롯해 무려 5명 이상의 여성을 엘리베이터에서 추행하거나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FDNY 복장을 이용하여 쉽게 피해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으며,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직후 이 마스터키를 이용해 해당 엘리베이터를 정지시킨 후 이 같은 범행을 저질러 왔다고 검사 측은 밝혔다. 이 범인은 2007년에는 부상당한 응급 환자를 신속히 구해 영웅 대접을 받았으나, 한편으로는 성폭행을 일삼는 등 철저한 이중생활을 하여 체포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나 해당 검사는 성폭행 사건에서 그의 DNA가 검출되는 등 범죄 혐의 입증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면서 FDNY는 자신들이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매우 곤혹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성범죄자 전자발찌 소급 적용 ‘합헌’

    특정 성범죄자에 대해 전자발찌 부착을 소급 적용하도록 한 법률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전자발찌 부착이 보류된 2000여명의 성범죄자들도 전자발찌를 차게 됐다. 법무부는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가 3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전자발찌 착용자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헌재는 27일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전자발찌법) 부칙 제2조 제1항 위헌제청’ 사건에 대해 재판관 합헌 4, 일부위헌 4, 위헌 1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법무부는 헌재의 합헌 결정에 따라 앞으로 최소 2027명, 최대 2623명이 추가로 전자발찌를 부착하게 될 것으로 보고 전자발찌를 신속히 부착하고, 부착자 관리·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헌재, 중요 3개 사건 올 마지막 결정] 성범죄자 총 3600여명 전자발찌 부착

    [헌재, 중요 3개 사건 올 마지막 결정] 성범죄자 총 3600여명 전자발찌 부착

    헌법재판소는 27일 합헌 결정 이유로 “전자발찌는 성범죄자의 성행교정 및 재범방지를 도모하고 국민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공익적 목적이 있고 피부착자의 행동 자체를 통제하는 것도 아니어서 구금과 구별된다.”면서 “범죄 행위를 추궁하는 사후적 처분인 형벌과 구분되는 비형벌적 보안 처분으로, 소급금지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를 소급해 확대 적용했다고 해서 대상자들의 신뢰 이익의 침해 정도가 과중하다고 볼 수 없다.”며 “부칙 조항의 입법 목적과 공익적 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 형량할 때, 법익 균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헌재의 합헌 결정으로 그동안 미뤄졌던 소급 부착 명령이 실행될 경우 최대 2600여명이 추가로 전자발찌를 부착하게 돼 현재 1040명인 대상자가 3600여명으로 확대된다. 이를 통해 성범죄 재발 방지에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보호관찰관 인력 증원 등 법무부의 보강 조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자발찌 부착 명령 소급적용 조항은 2010년 4월 15일 김길태·조두순 사건 등에 따라 도입돼 2010년 7월 1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헌법상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제약하는 형벌의 하나로 위헌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급기야 위헌법률심판 제청으로 이어졌다. 청주지법 충주지원은 2010년 8월 25일 형벌불소급의 원칙,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에 위배, 출소자 등의 형 집행 종료 후 사회 복귀라는 신뢰보호의 원칙 위배 등의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 이후 검찰이 청구한 전자발찌 소급 부착명령 2785건 중 2114건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이 같은 법조계 일각의 시각은 이번 헌재 결정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이강국·박한철·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형 집행 종료자에게도 소급 적용하는 부분은 위헌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 재판관들은 “형 집행을 마친 사람에게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소급 적용할 경우 형사 제재가 종료됐다고 믿는 사람들의 신뢰이익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송두환 재판관은 “전자발찌 부착은 형벌적 성격이 강해 법 시행 이전 범죄 행위자에게 소급하는 것 전부가 위헌”이라는 반대 의견을 냈다. 법무부는 이번 합헌 결정에 따라 전자발찌 대상자가 늘 것으로 보고 보호관찰소 업무분장 방식을 비상체제로 전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법무부는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들의 주거지를 체계적으로 파악해 신속히 부착 명령을 집행하는 한편 고위험 범죄자에 대한 접촉 빈도를 늘려 감독 역량을 키우기로 했다. 이와 함께 죄질, 범죄전력 등을 근거로 한 분류 등급을 차별화하는 한편 범죄 유형, 생활 행태 등을 근간으로 한 특별 준수사항을 추가 변경하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벤츠 여검사’ 1심 뒤집고 항소심서 무죄 논란…사랑의 정표? 봐주기 판결?

    ‘벤츠 여검사’ 1심 뒤집고 항소심서 무죄 논란…사랑의 정표? 봐주기 판결?

    ‘벤츠 여검사’로 불린 이모(37) 전 검사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산고법 형사1부(부장 김형천)는 13일 내연 관계에 있던 변호사가 고소한 사건을 동료 검사에게 청탁한 뒤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전 검사에 대해 원심(징역 3년, 추징금 4462만원)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최모(49) 변호사로부터 고소 사건을 청탁받은 시점은 2010년 9월 초순인데 벤츠 승용차를 받은 시점은 이보다 2년 7개월 전인 2008년 2월인 점 등으로 볼 때 사건을 잘 봐 달라는 청탁의 대가로 벤츠 승용차를 받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여자관계가 복잡한 최 변호사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정표를 요구해 벤츠 승용차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벤츠 승용차 외에 피고인이 샤넬 핸드백(540만원)을 받고 최 변호사의 신용카드를 사용한 점 등도 고소 사건 청탁 시기와 경위 등에 비춰 보면 청탁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전 검사가 K 검사에게 전화로 청탁했다는 검찰의 공소 사실에 대해 “피고인이 최 변호사와 관계가 있는 고소 사건을 가급적 신속하게 처리해 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호의로 전화한 것이지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 전 검사는 광주지검에서 근무하던 2010년 10월 애인 사이인 최 변호사가 고소한 사건을 사법연수원 동기 검사에게 전화로 청탁해 준 대가로 벤츠 승용차 리스료와 샤넬백 등 모두 5591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네티즌들은 “청탁하면서 벤츠 주면 유죄, 벤츠 주고 나서 청탁하면 무죄!”, “부실수사인가, 봐주기 판결인가.”라며 재판부를 비판했다. 한편 부산지법 형사4부(부장 최병철)는 같은 날 이번 사건의 진정인이자 절도와 사기,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모(40·여)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원심(징역 1년)에서 무죄로 판단했던 부분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 4개월에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이씨는 자신과 내연 관계였던 최 변호사가 이 전 검사와의 사이에서 벤츠 차량, 명품 가방을 주고받은 사실 등을 검찰에 진정한 장본인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특허침해소송 관할 통합

    전국 법원 민사부가 재판하는 특허 침해 소송의 관할이 서울중앙지법과 대전지법으로 통합되고 2심 재판도 고등법원에서 특허법원으로 변경된다. 이에 따라 특허법원은 기존의 특허무효소송(특허심결 취소소송)과 함께 특허침해소송도 관할하게 됐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공동위원장 김황식 국무총리·윤종용)는 오는 12일 전체회의를 열어 대통령실 산하 지식재산전략기획단(단장 고기석)으로부터 이 같은 정부안을 보고받고 특허소송의 관할 통합을 위한 후속 조치를 진전시켜 갈 계획이다. 위원회는 내년 4월 이 같은 정부안을 정식 통과시킨 뒤 법원조직법 등을 개정해 법제화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모든 절차가 내년 말쯤 마무리돼 2015년부터는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허소송은 대부분 전자소송이어서 거리 때문에 국민이 불편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허소송의 관할 제도를 이처럼 대폭 통합하는 것은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현재 이원화돼 있는 관할 제도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특허나 상표 등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재판부가 특허소송을 담당하면서 시간이 오래 걸려 특허보호에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또 재판부마다 서로 상충하는 판결을 내놓아 혼란을 겪어 왔다. 위원회 관계자는 “관할 집중을 통해 통일적인 법 해석과 신속하고 보다 정확한 처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안이 실현되면 특허 소송에 걸리는 시간이 최소 7~8개월에서 1년 이상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특허 침해 소송 1심은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 2심은 1년 남짓의 기간이 걸리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4년 특허 침해에 대해서는 도쿄와 오사카 지법으로 집중하고 2심은 지적재산고등재판소를 만들어 관할을 집중했다. 법원 측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여러 통로를 통해 관할 제도의 조정 필요성과 정부안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朴 “대기업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반쪽짜리’ 재벌개혁 도마위

    朴 “대기업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반쪽짜리’ 재벌개혁 도마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6일 내놓은 경제민주화 공약은 ‘재벌 개혁’보다 ‘공정 경쟁’에 초점을 맞췄다.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 재벌 개혁에 대한 재계 반발 등을 감안해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후퇴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앞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1호 공약’으로 대규모 기업집단법 제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재벌의 경제력 남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려면 각종 개혁안을 ‘한 바구니’에 담아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그러나 박 후보는 대규모 기업집단법 제정 자체를 공약에서 제외했다. 재벌 개혁의 핵심인 기업 지배 구조 개선과 관련해 박 후보는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제안한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은 공약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침해하는 계열사를 신설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열사 편입심사제’, 재벌 총수의 사익 편취 행위가 드러나면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도록 강제 명령하는 ‘지분조정명령제’ 등도 빠졌다. 박 후보의 재벌 개혁이 ‘반쪽짜리’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사유재산 침해 논란을 부를 수 있고 기존 법 체계와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박 후보는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 한도 축소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시스템 구축 등을 내걸었다. 재벌 총수에 대한 처벌 역시 김 위원장의 제안보다 수위가 낮아졌다. 당초 김 위원장은 ▲주요 경제사범 국민참여재판 의무화 ▲업무상 횡령 등에 대한 집행유예 금지 ▲재벌 총수 사면권 제한 등 ‘3중 처벌 장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 의무화는 인권 침해 등의 우려를 감안해 최종 공약에 반영되지 않았다. 박 후보는 대신 불공정 행위 규제와 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한 김 위원장의 제안은 대부분 수용했다. 우선 불공정 행위 규제와 관련해 ‘솜방망이’ 처벌 논란을 불러왔던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감사원과 중소기업청, 조달청 등도 고발권을 갖도록 했다. 또 기업의 불공정 행위가 적발될 경우 피해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기업이 자발적으로 소비자 피해 구제 방안을 마련하면 소송 없이 신속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소비자 피해구제 명령제’ 등을 도입하기로 했다. 아울러 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해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해소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화물운전자 등 특수고용직 권익 보호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실효성 강화 ▲대형유통업체 골목상권 진입 규제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고위층 탈세 폭로한 박세바니스, 그리스 영웅으로

    탈세 지도층 명단, 일명 ‘라가르드 리스트’를 폭로한 그리스 언론인이 ‘부패에 대항하는 십자군’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그리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리스 검찰이 이례적으로 지난 28일 개인정보법 위반으로 체포된 그리스 탐사전문지 ‘핫 독’의 편집장 코스타스 박세바니스(46)에 대해 신속재판 절차에 착수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검찰은 그가 한 차례의 심리 절차를 거쳐 새달 1일 판결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정보법 위반으로 결론나면 박세바니스는 최소 징역 1년 또는 3만 유로(약 42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지게 된다. 박세바니스가 법정에 출석한 29일 법원 밖에서는 야당 의원들을 비롯한 지지자들이 운집했다. 박세바니스는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기자들에게 “검찰은 세금 탈루자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의 자유를 억압받는 그리스 상황에 대한 국제단체의 우려도 쇄도했다. 언론인 인권 보호 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는 “박세바니스는 위험한 범죄자가 아니다. 과도한 법적 절차는 사법당국이 이번 사건에 침묵하려 한다는 걸 보여준다.”는 성명을 내 그를 옹호했다. 유럽의 민주주의 증진, 인권 보호 등을 위해 활동하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도 “그의 명단 공개는 ‘민주주의 감시견’으로서의 언론의 책임”이라며 “우리는 그리스 법원이 사생활 존중과 대중의 알권리 보장 간에 옳은 길을 찾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압박했다.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아네테대 법철학과 교수는 “그를 체포한 것은 그리스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역효과를 가져올 중대한 실수”라고 비판했다. 박세바니스는 지난 27일 HSBC은행 스위스 지점에 계좌를 보유한 그리스 지도층 2059명의 명단을 공개해 생활고로 신음하는 민심에 불을 질렀다. 반면 수년간 긴축 조치로 국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해온 그리스 정부는 엘리트층의 이득을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을 한몸에 받으며 후폭풍에 직면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10월 유신 40년] “박정희, 3選개헌만 했더라면… 유신 때문에 독재자 된거요”

    [10월 유신 40년] “박정희, 3選개헌만 했더라면… 유신 때문에 독재자 된거요”

    17일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한 ‘10·17 비상조치’, 이른바 ‘10월 유신’을 선포한 지 40년이 되는 날이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17일 저녁 7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으며 일부 헌법조항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해 12월 27일에는 유신헌법(제4공화국 헌법)이 공포돼 유신 체제는 박 전 대통령이 1979년 10·26 사태로 사망할 때까지 7년 동안 유지됐다. 서울신문은 유신 40년에 즈음해 원로 헌법학자인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 겸 서울대 명예교수로부터 유신 헌법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고 유신 체제가 정치·경제·사회에 미친 영향, 유신 헌법의 내용 등을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만 했더라도, 5·16 군사쿠데타만 일으켰더라도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았을 텐데, 10월유신 때문에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철수(79) 명지대 석좌교수 겸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3공화국 때는 언론계나 교수들이 상당히 바른 말을 많이 했고, 독재를 할 수 없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10월유신 전후로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겸직하고 있던 김 교수는 자신도 이런저런 비판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박수기관’ 1972년 11월 21일 국민투표로 채택한 유신헌법에 대해 김 교수는 “소위 권력의 인격화라는 명목으로 대통령의 독재가 행해졌고, 긴급조치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이 많이 제약됐다.”고 평가했다. 유신헌법은 대통령의 지위를 대폭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3분의1을 추천할 수 있고 국회해산권을 갖고 있다. 긴급조치권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으며, 제2·3공화국 헌법에서 천부인권설에 기초해 강화했던 기본권 규정에 법률 유보조항을 뒀다. 대통령은 간접선거로 선출하고 임기를 연장했다. 대신 국회의 권한은 축소·조정하고 국회 회기도 단축했다. 제2공화국의 헌법재판소를 없애고 명목상의 헌법위원회제도를 도입했다. 김 교수는 10월유신 헌법을 제정한 뒤 국민투표에 회부하기 전 헌법학 교수와 정치학 교수들이 총동원돼 선전전에 활용될 때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중립’을 지켰다. 1973년 1월에 대학 교재로 유신헌법이 포함된 ‘헌법학 개론’을 냈다가 초판을 몽땅 몰수당하고,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1주일 동안 수정할 것을 협박당했다. 이후 낸 수정 재판과 3판도 몰수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문제의 ‘헌법학 개론’은 중앙정보부의 꼼꼼한 검열을 거쳐 수정 4판에서야 세상에 내보낼 수 있었다.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이 ‘헌법에 대해 개정 청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긴급조치를 발동하기 전이라 크게 비판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핍박을 받았다.”면서 “그때 삭제했던 내용을 이번에 출간한 ‘헌법과 정치’(진원사 펴냄)에 모두 복원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 교수는 정부가 최고의 주권 기관이라고 자랑하던 통일주체국민회의에 대해 행정부의 ‘협찬기관’ ‘박수기관’이라고 썼고, 이런 정부 조직은 독재국가들인 타이완의 ‘국민대회’와 스페인의 ‘국민회의’, 아프가니스탄의 ‘국민대의회’와 같다고 평가했다(496쪽). 또 제4공화국의 대통령제에 대해서는 독재 체제인 타이완, 그리스 등과 비슷한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하고, 유신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에 독재적 요소가 많다고 서술했다(316쪽). ●체제 비판엔 “北과 내통” 협박 김 교수는 “당시 중앙정보부는 ‘김 교수가 ‘현대판 군주제’라고 현 체제를 비판한 내용을 북한에서 논평하고 있다.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고 ‘지랄’을 해대더라.”라고 원색적으로 표현했다. 그 뒤로도 김 교수는 이런 원색적인 표현을 여러 차례 썼는데, 가장 왕성하게 학문적으로 집필 활동을 해야 할 시기인 40대에 침묵을 강요당한 것에 대한 울분이 40년이 지난 지금도 올라온 것처럼 보였다. 김 교수의 이런 심사는 신간 ‘헌법과 정치’ 머리말에도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긴급조치, 국민 기본권 제약 김 교수는 “뒤늦게 유신시대의 위헌적 행위에 대해 비판하려고 하니, 편안하게 죽지도 못한 대통령을 너무 욕되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못 했다.”면서 “또한 유신 때는 왜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몰수됐던 책의 내용을 공개하면서 초를 치고 있느냐고 비판받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유신헌법 제53조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 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가 필요 있다고 판단될 때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라는 긴급조치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비판했다(673~679쪽). 김 교수는 “독일에서 공부하다 5·16 직전에 귀국했는데, 거의 매일 쿠데타가 날 것이라는 소문이 서울에 널리 퍼졌고, 정부청사 관료들은 쿠데타를 기다리며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던 만큼 5·16은 불가피했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박통이 3선 개헌만 하고, 5·16만 했더라면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았을 것인데 유신 때문에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5·16 군사혁명정부 시절은 1년 동안 헌법이 부재한 상황이었는데, 당시 혁명위원회가 만든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서 ‘제2공화국의 헌법을 계승한다.’고 공표했지만 내각제도 없애고, 국민의 기본권을 완전히 억압했으니 군사독재를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박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하려고 국회를 해산하고, 입법부 대신 비상국무회의에서 유신헌법을 만들어 공고한 뒤 국민투표에 부쳐 93% 찬성으로 통과시킨 것은 초헌법적인 불법행위”라고 비판했다. 문제의 ‘헌법학 개론’에 정부가 홍보한 대로 93%의 국민 지지로 통과됐다고 서술한 것에 대해서도 중앙정보부는 “야유하는 것이냐?”고 트집을 잡았다고 회상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통해 우리나라를 부흥시키고 통일시킨다는 명분은 있었겠지만, 핵 연구소를 대전에 만드는 등 미국 정부와 갈등하고, 부마학생운동 등에 대해 폭력적으로 대응하자 김재규가 헌법 개정 준비를 했던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김신조·실미도’에 정권 위기감 김 교수는 “당시 김재규의 중앙정보부 특별보좌관이 대학 동기(서울대 법대)인데, 자꾸 만나자고 한 뒤 헌법 이야기를 많이 했었기 때문에 헌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면서 “12·12 이후 가담했던 사람들이 모두 처형돼서 그 기록과 흔적이 모두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김재규는 박 대통령을 저격한 일에 대해 재판 과정에서 ‘유신의 심장을 쏘면서 유신시대를 없애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10·26 이후 우리가 잘했더라면 민주화가 더 빨리 오지 않았겠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정상적인 정신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말도 했다. 김 교수는 “1968년 1월 김신조 사건으로 암살 위기를 겪고, 이에 보복하겠다고 만든 북파 공작원들이 문제가 된 1971년 실미도 사건도 터지고 해서 정권 차원에서 위기감이 극대화됐을 것이다. 북한 김일성과의 대립 관계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생각들이 10월유신에 많이 반영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학문적으로 ‘입헌정치’란 헌법이라는 국가계약의 문서로 정치를 규율하겠다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헌법은 정치를 규제하지 못하고, 정치가 헌법을 유린하고 새로 제정하는 악순환을 거듭하며 한국적 비극을 낳고 있다고 김 교수는 평가했다. 제헌헌법과 제6공화국 헌법을 제외하고 유신헌법을 포함해 많은 헌법 개정안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 규범으로 기능하지 않고 집권자의 지배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헌법에 위배되는 국가변란죄나 국헌문란죄를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은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유신헌법은 유신헌법 안에서는 합헌이지만, 입헌주의 정신을 감안하면 유신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국회가 아닌 대통령이 만든 긴급조치에 의해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20살 박근혜가 유신 알았겠나 10월유신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그 무렵 20살밖에 안 된 박근혜 후보가 유신헌법에 대해 무엇을 알았겠느냐.”면서 그의 몫이 아니라는 식으로 답변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유신에 대한 평가나 나의 인터뷰가 누군가를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김철수 석좌교수] 1933년 7월 10일생으로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모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1998년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한 뒤 탐라대 총장을 거쳐 현재 명지대 석좌교수로 있다. 한국헌법연구소 소장, 한국헌법학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주요저서는 ‘헌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위하여’ ‘헌법개설’ 등 23권.
  • 무죄 못받아… 의뢰인이 변호사에 흉기

    무죄 못받아… 의뢰인이 변호사에 흉기

    사건 처리 결과에 불만을 품은 의뢰인이 변호사를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판사 석궁 테러와 광주 지역 부장검사 피습에 이어 변호사까지 흉기에 찔리자 법조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15일 오전 9시쯤 광주 동구 지산동 서모(50)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조모(47)씨가 서 변호사와 사무장 정모(47)씨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가 붙잡혔다. ●변호사, 구두닦이 출신… 입지전적 인물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는 “조씨가 들어와 사무장 정씨 등과 잠시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미리 준비해 간 흉기로 정씨와 서 변호사의 허벅지를 차례로 찌른 뒤 달아나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왼쪽 허벅지를, 사무장 정씨는 양쪽 허벅지를 각각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의 한 지역에서 콩나물 가공 공장을 운영한 조씨는 지난 2007년 업체 내 분쟁으로 폭행, 협박,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1심 재판 중 보석으로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았지만 법정 구속되지는 않았으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조씨는 “변호사가 잘못해 인생을 망쳐놨다.”며 그동안 재판과정에서 사건을 대리한 변호사들을 상대로 수차례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흉기에 찔린 서 변호사는 2007~2008년 이뤄진 조씨의 항소심 재판을 맡아 변호했다. 조씨는 경찰에서 “서 변호사가 무죄 판결을 받아내겠다고 약속했다.”며 “판사 행세를 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자신도 소송 상대로부터 협박을 당했지만 이런 사실이 재판 과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서 변호사의 사무실 앞에서 최근 1인 시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의 항의가 계속되자 서 변호사 측은 사건 수임료의 일부를 되돌려 줬으며, 이날도 사무실에서 수임료 문제 등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던 중 조씨가 미리 준비한 흉기로 변호사 등을 찌른 것으로 조사됐다. ●초교 동창인 경찰이 자수 설득·검거 조씨와 가족들은 “2007년 우리가 오히려 폭행당했는데도 피의자로 뒤바뀌어 처벌받았다.”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경찰·검찰·판사 모두 잘못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조씨를 상대로 사건 경위를 조사한 뒤 상해 또는 살인미수 혐의 등의 적용을 검토할 방침이다. 흉기 습격을 당한 서 변호사는 구두닦이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입지전적 인물로 잘 알려졌다. 전남 강진 출신인 그는 가난 때문에 17살 때 상경해 구두를 닦으며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통해 중·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26기로 마치고 1997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했던 그는 이후 순천지원과 장흥지원을 거쳐 광주지법·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뒤 2007년 변호사 개업을 했다. 서 변호사는 그동안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거나 이주여성 등 약자에 대한 무료 변호를 자원하는 등 나눔을 실천하면서 좋은 평판을 얻어 왔다. 한편 범인 조씨가 신속하게 검거된 것은 한 지구대 경찰의 재치 덕분이었다. 광주 서구 금호지구대 조은남(47) 경위는 순찰 중 차량 수배 무전 지령을 듣고 조회한 결과 초등학교 동창으로 확인되자 동창들에게 서둘러 전화해 조씨의 연락처를 파악했다. 조 경위는 초등학교 졸업 뒤 한번도 연락한 적 없던 조씨에게 전화해 “수배까지 됐으니 자수하라.”고 수차례 설득했다. 결국 조 경위는 조씨가 전남 나주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붙잡아 담당 경찰서에 인계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웅진홀딩스·극동건설 회생절차 개시

    웅진홀딩스·극동건설 회생절차 개시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에 대한 법원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결정이 내려졌다. 법정관리인은 채권단이 기대했던 제3자가 아닌 신광수 웅진홀딩스 대표이사와 김정훈 극동건설 대표이사로 정해졌다. 이에 대해 채권단은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최측근이자 경영 실패의 책임이 있는 경영진을 법정관리인으로 지정한 것은 맞지 않다.”며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중앙지법 파산3부(이종석 수석부장판사)는 11일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으며, 별도의 관리인을 선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관리인은 기존 경영진인 신 대표이사와 김 대표이사로 각각 정해졌다. 재판부는 ‘관리인 불선임 결정’에 대해 “기존 경영자가 재정적 파탄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그를 관리인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웅진의 주된 재정적 파탄 원인은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유동성 위기였다.”고 설명했다. 전날 법원에 ‘신 대표를 단독 관리인으로 선임하는 데 부동의 의견’까지 전달했던 채권단은 “신 대표가 윤 회장의 최측근인 만큼 회생 절차에 윤 회장이 조금이라도 관여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채권단은 이런 경우에 대비해 채권단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채권자협의회가 추천하는 최고구조조정책임자(CRO)의 권한 강화 ▲웅진코웨이의 신속한 매각 ▲윤 회장의 경영관여 금지 등의 요구사항을 법원이 받아들인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법원은 “향후 기존 경영자의 횡령 등이 확인되거나 공정하게 회생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면 언제든지 제3자 관리인을 선임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관리인 개인에 의존하는 회생 절차가 아니라 채권자협의회의 감독 시스템에 의한 방식으로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회생절차 신청을 전후한 상황 조사는 국내 4대 회계법인 가운데 웅진 측과 이해관계가 유일하게 얽히지 않은 한영회계법인에 맡겨졌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웅진코웨이 매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오는 25일 채권자협의회, 채무자, 매수인 등이 참여하는 이해관계인 심문을 비공개로 열기로 했다. MBK파트너스 측은 법정관리 신청 전 맺은 웅진코웨이의 인수 계약이 아직 유효하다며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MBK파트너스 측은 600억원의 인수 계약금을 이미 지급한 상태다. 관련 업체에서는 법원이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를 패스트 트랙(회생절차 조기종결 제도) 방식을 적용,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이르면 내년 초 법정관리를 졸업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두 회사에 대한 회생채권 등의 신고기한은 다음 달 14일이다. 첫 관계인집회는 12월 27일 열린다. 웅진 계열의 지주회사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은 지난달 26일 만기 도래한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최지숙기자 truth173@seoul.co.kr
  • 민변 ‘투표시간 2시간 연장’ 헌법소원 청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9일 투표 마감시간을 오후 6시까지로 제한한 현행 공직선거법의 위헌성을 다투기 위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민변은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반시민 100명을 청구인으로 해 선거법 155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민변은 이와 관련,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40여년간 투표시간을 오전 6시에서 오후 6시로 한정한 탓에 비정규직 근로자나 자영업자 등 많은 국민의 참정권이 제한됐다.”면서 “이는 선거권, 평등, 정치적 표현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투표시간을 2시간가량 연장하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선거권을 확대할 수 있다.”면서 “선거법의 위헌성을 확인해 청구인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선거권을 보장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전날 헌재를 대상으로 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민변의 헌법소원을 ‘적시 처리사건’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취지의 헌재 측 답변이 나왔다. 적시처리는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고 국민적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180일 이내로 돼 있는 헌재 심판기일을 앞당겨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는 조치다. 홍인기기자 ikik@seoul.co.kr
  • 대법 27일 곽노현 교육감 상고심 선고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를 매수한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58)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27일 내려진다. 18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27일 오전 10시 대법원 1호 법정에서 곽 교육감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을 연다.”고 밝혔다.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원심이 확정되면 곽 교육감은 즉시 교육감직에서 물러나 남은 형기인 약 8개월을 복역해야 한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35억 2000만원도 반납해야 한다. 곽 교육감은 2010년 6월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같은 진보진영 후보로 나온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를 사퇴하도록 매수한 혐의로 지난해 9월 구속기소돼 130일가량 직무 정지됐다가 1심에서 3000만원의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다. 2심에서는 실형을 받았지만 대법원 판결 확정 전까지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 조건부 실형이어서 교육감직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곽 교육감의 상고심은 공직선거법 270조에 따라 원심 판결 3개월 이내인 지난 7월까지는 열렸어야 했지만, 대법관 교체로 인한 공백으로 선고가 지연됐다. 곽 교육감은 상고심과는 별도로 지난해 11월 1심 재판부에 사후매수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가 기각되자 올해 1월 자신이 직접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고, 지난달 28일 헌재가 위헌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상고심을 연기해 달라며 대법원에 ‘선고기일 지정에 관한 의견서’도 제출했다. 이에 검찰은 신속한 선고가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제출하며 맞대응했다.대법원 관계자는 “선고기일 지정에 관한 변호인과 검찰 측 의견을 참고했지만 이를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오전 출근길에 선고날짜를 전달받은 곽 교육감은 서울시교육청 고위 관계자에게 “대법원에서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곽 교육감은 또 대법원 선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일정은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언론과의 접촉이 부담스러운 듯 25일로 예정됐던 교육감 기자간담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곽 교육감이 교육감직을 상실하면 서울시교육감 재선거는 12월19일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다. 재선거까지는 이대영 부교육감이 교육감 권한대행을 한다. 박성국·윤샘이나기자 psk@seoul.co.kr
  • 곽노현 선고 대선 이후로?

    곽노현 선고 대선 이후로?

    교육계가 곽노현(58) 서울시교육감의 대법원 선고일과 선고 내용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고 내용에 따라서는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와 함께 교육감 재선거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재선거 시 2010년 65%에 가까운 득표를 하고서도 서울 교육의 수장 자리를 진보 진영에 넘겨준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며 단단히 벼르는 눈치다. 진보 진영도 뜨겁기는 마찬가지다. 보수 진영에 비해 겉으로 드러난 움직임은 덜한 편이지만 새로운 교육감 후보를 물색하는 등 물밑 움직임은 분주하다. 교육 당국으로서도 선고 내용에 관심이 높다. 서울 교육감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교육 기상도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곽 교육감은 2010년 교육감선거 과정에서 후보자를 매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로 상고심을 기다리고 있다. 선거사범 재판의 2, 3심 선고는 원심으로부터 3개월 이내에 하도록 돼 있지만 지난 1월 19일 1심 판결 이후 약 8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안갯속이다. 곽 교육감이 벌금 100만원 이상의 확정 판결을 받으면 서울시교육감 재선거는 12월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진다. 곽 교육감에 대한 판결이 늦어지는 것은 이 사건이 공직선거법상 사후매수죄가 적용된 첫 번째 사례인 데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사후매수죄와 관련한 헌법소원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곽 교육감은 1심 판결 직후인 지난 1월 27일 사후매수죄에 대한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여기에 곽 교육감은 지난달 30일 변호인을 통해 대법원에 상고심 선고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곽 교육감 측은 대법원 제2부에 제출한 ‘선고기일 지정에 관한 의견서’에서 “대법원 선고는 헌법재판소가 후보자 사후매수죄의 위헌 여부를 결정한 이후에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맞서 검찰은 지난 6일 대법원에 상고심 재판을 받고 있는 곽 교육감에 대해 신속히 선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검찰은 이건리 공판송무부장 명의로 재판부인 대법원에 ‘선고기일 지정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해 곽 교육감 사건 상고심 선고기일을 신속히 잡아 줄 것을 요청하는 등 선고일 확정을 둘러싸고 핑퐁게임을 하고 있다. 당초 곽 교육감의 상고심 선고는 매월 둘째, 넷째 목요일에 선고를 진행하는 대법원 일정에 따라 오는 13일 열릴 것으로 유력시됐지만 10~13일 국회 대법관 청문회가 예정돼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일각에서는 곽 교육감 판결이 대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선고가 대선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 교육계 인사는 “대법원에서 교육감직 상실에 해당하는 판결이 나오면 진보 진영의 결집이 이뤄지는 등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그 이후 선고가 내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5) 흥선대원군 ‘척화’ vs 명성황후 ‘친러’ (하)

    [선택! 역사를 갈랐다] (25) 흥선대원군 ‘척화’ vs 명성황후 ‘친러’ (하)

    법부고문 그레이트하우스(Clarence R. Greathouse, 具禮)는 1896년 4월 15일 을미사변 관련 히로시마 재판소 결정서와 함께 흥선대원군에게 한 통의 문서를 보냈다. 그레이트하우스는 “올해 1월 20일에 일본 히로시마 재판소에서 결정서를 작성했는데, 그 결정서 내용 중 전하의 행동이 많이 언급되었다.”며 “전하와 관련된 내용을 해명하실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아직도 이 문제가 세간에 걱정거리로 남아 있다 하니 참기 어려운 일이며 한스럽기 그지없다. 작년 을미사변에 대해서는 여론이 제멋대로인데 나의 말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나는 잠잠히 있을 뿐이다.”라고 답변했다. 흥선대원군은 을미사변과 관련하여 해명보다는 침묵을 선택했다. 그 침묵은 오랫동안 그 시기를 흥선대원군(1820~1899)과 명성황후(1851~1895)의 대립구도로 만드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1895년 10월 8일(양력) 새벽 1시. 전 군부고문 오카모토는 마포에서 일본 영사관보 호리구치 등을 대동하고 숨가쁘게 달려 흥선대원군의 저택에 도착했다.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그의 아들 이재면과 손자 이준용은 낯설지 않은 불청객을 맞이했다. 오카모토의 회고록을 살펴보면 당시 흥선대원군은 스스로 의관을 갖추고 일본이 의도한 것처럼 경복궁으로 순순히 향했다. 하지만 오카모토의 기록과는 달리 흥선대원군은 그날 새벽 1시에 곧바로 출발하지 않고 2시간 동안 자신의 저택에서 지체했다. 을미사변 직후 주한 외교관을 포함한 외국인 대부분은 을미사변의 배후로 흥선대원군을 지목했다. 그것은 1882년 임오군란 당시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첨예한 대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의 을미사변 주도와 관련되어 당대 주한 외교관 및 외국인의 기록에서도 판단이 상호 엇갈렸다. 동일한 자료조차도 흥선대원군의 주도설과 관련되어 모순된 기록의 사례가 많았다. 을미사변 직후 주한 프랑스 주교 뮈텔, 주한 미국공사대리 알렌, 주한 영국총영사 힐리어, 주한 러시아공사 베베르 등은 흥선대원군이 사건의 배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인의 경복궁 침입, 흥선대원군의 경복궁으로의 출발 지체, 일본공사관의 문서위조 등 흥선대원군을 배후라고 볼 수 없는 많은 사실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을미사변 직후 흥선대원군은 고종과 분리되면서 정치현안에 개입하지도 못했다. 흥선대원군을 배후로 내세운 세력에 대한 혐의가 자연스럽게 일본공사관으로 옮겨졌다. ●명성황후, 고종의 충실한 조언자 명성황후 민씨는 1866년 왕비로 선택되어 운현궁에서 가례(嘉禮)를 치렀다. 명성왕후에게는 4남 1녀가 있었지만 1874년에 태어난 왕세자(순종)만이 생존했다. 명성황후는 고종의 조언자와 후원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종은 명성황후가 “경서와 역사를 널리 알고 옛 규례에 익숙하여 나를 도와주고 안을 다스리는 데 유익한 것이 많았다.”고 기록했다. 고종은 명성황후가 “사변에 대처해서는 정상적인 방도와 임시변통을 잘 배합했다.”며 위기에 대처하는 그녀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고종은 “일찍이 왕비가 말한 것마다 모두 들어맞았다.”며 명성황후의 판단력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표시했다. 명성황후는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의 정치적 격변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명성황후의 행록(行錄)에는 “임오군란 당시 왕비는 온화한 태도로 임시방편을 써서 그의 목숨을 보존했다.”고 기록돼 있다. 갑신정변 당시 고종은 명성황후가 “역적 박영효를 타일러 그 음모를 좌절시켰다.”고 주장했다. 또한 명성황후는 “이 무리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의심했으며 “이 무리들을 죽이면 자연히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고종은 “왕비가 성의 동쪽에 피해 있으면서 자성(慈聖)을 호위하고 세자를 보호하였는데 시종한 사람들이 한 명도 흩어져가지 않았다.”며 위기에 대처하는 결단력 및 정치적 결집력을 높이 평가했다. 명성황후는 대원군과 연결된 임오군란 등 혁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녀는 모든 어려움을 해결한 후 잠시 상실한 권력을 다시 회복하는 집념을 보여주었다. ●일본의 치밀한 을미사변 조작 기존 일본에서는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사건이기 때문에 을미사변에 관한 연구를 오랫동안 기피했다. 일본에서는 주로 사실 정황에 대해서 을미사변과 관련된 인물인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주한 일본공사관 서기관 스기무라, 한성신보 편집장 고바야카와 등의 기록을 참고했다. 그런데 이들은 사건 당일에 관한 행적을 매우 소략하게 기록했다. 또한 이들의 기록은 철저하게 그 시기를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 구도로 부각시켰다. 최근 소설가 쓰노다 후사코는 을미사변 관련 일본 외무대신 무쓰의 의혹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명성황후의 심리 묘사에 집중하여 을미사변에 관한 일본의 정치적 의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녀는 일본의 사상가 고야스 등의 찬사를 받으며 을미사변에 관한 일본정부의 책임에 면죄부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사건 초기 주한 일본공사관은 여론의 시선을 따돌리기 위해서 대원군을 철저하게 이용했고, 대원군을 음모의 배후자로 주목받게 만들었다. 일본은 대원군을 책임자로 희생시킨다면 을미사변에 관련된 자국의 중요인물을 보호할 수 있고, 일본의 책임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이미 미우라를 비롯한 일본공사관은 을미사변 이후 수습방안 중 사건의 책임자로 대원군을 설정했다. 그래서 스기무라는 대원군이 자발적으로 4개조의 밀약까지 동의한 것으로 기술했다. ●명성황후를 향한 죽음의 그림자 사건이 발생한 10월 7일 밤 궁궐에서는 민영준이 궁중에 등용된 것을 축하하는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잔칫날 명성황후는 자신의 측근인 민영준의 기용, 훈련대의 해산 등으로 주도권이 다시 왕실로 집중되는 것에 대해 만족했다. 그날 밤 그녀는 궁녀들과 함께 궁궐 후원으로 달구경을 나갔다. 대궐 내부에는 정변을 예측하는 여러 징후가 있었다. 1895년 9월 초 백작 이노우에는 고종을 알현한 자리에서 “왕족이나 혹 다른 조선 사람이 역모를 꾀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일본정부에서 군사의 힘으로 왕실을 보호하여 국가의 평안함을 보전한다.”며 고종과 명성황후를 안심시켰다. 특히 명성황후는 정변이 발생하면 오히려 대궐이 안전하다는 농상공부협판 정병하의 주장을 믿었다. 왕실의 신뢰를 받아 재정을 도맡았던 정병하는 “일본군대가 대궐에 들어옴은 성체를 보호코자 함인 줄로 아옵나니, 의심하실 바가 없사온즉, 피하여 나가시지 마옵소서.”라며 명성황후의 피신을 막았다. 대궐에서 성대한 잔치가 끝나자 새벽녘 명성황후는 고종과 함께 “곤령전의 전각문 북쪽의 작은 난간(干)”을 산책했다. 그런데 고종과 왕비는 일본군대와 훈련대가 대궐을 포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신속히 곤녕합으로 이동했다. 그날 왕비는 궁궐 내에서 침입자에 대비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군대와 훈련대가 경복궁을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비가 궁궐 밖으로 도피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왕비는 침입자의 목표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대원군의 선택과 침묵 흥선대원군은 을미사변 당일 왜 경복궁으로 향했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추정된다. 첫째, 1880년대부터 대립했던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는 1894년 9월에도 정국 주도권을 둘러싸고 심각하게 갈등했다. 따라서 흥선대원군은 청일전쟁 이후 발생한 삼국간섭 이후 정국을 주도한 명성황후의 영향력을 단절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둘째, 흥선대원군은 1895년 4월 ‘이준용 역모사건’ 당시 특별법원의 심리 기간 중 강력하게 항의했고, 5월 이준용이 강화도 교동도에 유배당하자 교동도까지 방문하려고 시도했다. 이렇듯 흥선대원군은 그의 손자 이준용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였다. 스기무라는 이러한 손자에 대한 흥선대원군의 애착을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스기무라를 비롯한 일본공사관은 만약 흥선대원군이 4개조 약속 초안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이준용의 신변을 보장할 수 없다고 흥선대원군을 위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날 흥선대원군은 일본 자객이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손자 이준용을 위협하자 일정한 타협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일본과의 결탁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이미지에 커다란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을미사변 당일 오카모토가 새벽 1시에 찾아왔지만 흥선대원군은 새벽 3시까지 출발하지 못하고 고심했고, 그 후 침묵을 선택했다. 인간은 자신의 잘못으로 혹은 타인의 잘못으로 생의 불행을 겪게 되었더라도 적어도 침묵할 줄 알아야만 한다. 대원군은 최소한 불행을 감출 줄 아는 사람이었다. 김영수(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서울신문·푸른역사 아카데미 공동기획
  • 中 즉각 석방 요구…日 17일 추방할 듯

    일본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상륙한 홍콩 시위대 14명을 재판에 넘기지 않고 17일 강제송환(추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금명간 홍콩 시위대를 검찰에 송치할지, 입국관리국을 통해 강제송환할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일본은 2004년 3월 센카쿠 열도에 상륙한 중국 활동가를 이틀 만에 입국관리국을 통해 강제송환한 전례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2004년과 마찬가지 조치(추방)를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16일 정부가 처음부터 ‘신속한 강제송환’을 전제로 이번 사건에 대처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홍콩 시위대가 탄 배에 물을 뿌려 진로를 방해하긴 했지만, 상륙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은 것은 강제송환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것이다. 홍콩 시위대가 일본 경찰과 충돌하면 공무집행방해 등 추가 혐의를 적용해야 하고, 이럴 경우 강제송환하기 어렵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시위대가 상륙해서 국기를 꽂을 수 있게 한 것은 홍콩 배가 한 척뿐이고 무기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적은 만큼 빨리 체포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이 시위대에 대한 일본 내 재판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자민당은 이날 당내 외교부회와 영토특명위원회의 합동 회의에서 일본 해상보안청이 홍콩 시위대의 센카쿠 열도 상륙을 막지 못한 것을 따졌다. 중국은 이날 홍콩 시위대 14명을 무조건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중국 외교부 푸잉(傅瑩) 부부장은 15일 니와 우이치로 주중 일본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한편 야마구치 쓰요시 일본 외무성 부대신과의 통화에서 “시위대의 안전을 보장하고 무조건 석방해야 한다.”며 엄중하게 항의했다고 인민일보가 16일 보도했다. 도쿄 이종락·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세 차례 오심, 한국 대응과 결과

    세 차례 오심, 한국 대응과 결과

    ‘오심’ 없는 올림픽은 없었다. 경기를 주관하는 심판이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 어떤 판정이 내려지든 심판에 복종하는 일은 스포츠맨십의 일부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 심판의 오심은 역으로 스포츠맨십을 배신한다. 공정한 경기 진행이란 심판의 본분을 거스를 뿐만 아니라 선수들이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SA)를 운영, 오심에 대한 중재를 진행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 선수단은 런던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유럽과 개최국의 텃세, 편견을 어느 정도 각오했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들에, 그것도 연거푸 찾아올지는 몰랐다. 그동안 오심에 대한 미흡한 대응 탓에 금메달을 여럿 빼앗겼던 대한체육회(KOC)는 “판정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현장에 법률자문단을 파견하는 등 사전에 철저히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하지만 찜통 더위 속의 대한민국을 들끓게 만든 세 차례의 오심에 대응하는 과정과 방법은 각기 달랐다. 열전 첫날, 박태환의 부정출발 실격 이후 코칭스태프들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경기 종료 22분 만에 국제수영연맹(FINA)에 제소 의사를 표시했다. 영국인 토드 던컨 코치와 강민규 SK전담팀 통역담당관이 영어 서식을 빈틈없이 작성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각이었다. 선수단 측은 FINA에 즉각 비디오 판독을 요구했다. 결국 5시간여 만에 ‘고의성이 없다.’는 FINA의 공식 발표를 얻어냈다. 이례적이라 할 만큼 신속했던 판정 번복 과정이었다. 그러나 펜싱 신아람의 눈물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영겁의 1초’ 논란에 심재성 코치가 두 차례에 걸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수단은 모든 경기가 끝난 뒤에야 IOC에 문제를 제소하고 나섰다. 하지만 판정 번복만큼은 불가능했다. 이미 경기는 속행됐고, 메달리스트가 모두 결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올림픽 경기 도중 일어난 일은 원칙적으로 발생 즉시 대회 기간 중에 설치되는 CAS 특별중재부에 서면으로 이의 신청을 해야 한다. 시간상 신아람의 이의 제기가 제대로 받아들여졌을 리 없었다. 물론 박태환의 이례적인 판정 번복은 대한수영연맹과 FINA의 우호적인 관계, 수영 불모지인 한국에서의 그의 역할 등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준결선과 달리 예선이었다는 점도 FINA의 부담을 덜어줬을 가능성이 있다. 순위권에서의 판정 번복은 자칫 심판의 권위를 심각하게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 이와 달리 남자 유도 66㎏급의 조준호는 에비누마 마사시(일본)와의 8강전에서 승리가 선언됐다가 판정이 번복됐다. 심판위원장이 판정을 번복하도록 심판을 압박한 사실 때문에 국민들은 격분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는 “(에비누마가) 경기 막판 유효에 가까운 강력한 공격을 선보인 것이 경기 초반 우세한 경기를 펼친 조준호보다 포인트면에서 앞섰다.”고 설명했다. 우리 선수단 스스로 판정을 승복한 것이기에 이의제기를 하지도 않았고 당연히 판정은 다시 뒤집어지지 않았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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