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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일부터 강동선사문화제

    강동구는 6,000년 전 신석기시대의 생활과 문화를 체험해볼 수 있는 ‘강동선사문화축제’를 22일부터 암사동 선사주거지 등에서 연다. ‘선사 6천년,새 천년의 강동’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에서는 선사시대 주거지의 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양한 학술심포지엄,원시생활 체험,원시 공연,전통민속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전야제인 21일에는 서울필하모닉오페라합창단의 ‘세계민요여행과 오페라의 밤’ 축하공연이 열린다.이어 행사 첫날인 22일 오전 선사주거지 광장에서열리는 개막식을 시작으로 원시 놀이마당,원시 페이스페인팅,원시 도구만들기,원시 퍼포먼스,원시 난타공연 등 원시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행사가 줄줄이 펼쳐진다.특히 서울시무형문화재 10호로 지정된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도 개막식 직후에 선을 보인다. 23일 오후에는 ‘암사동 신석기문화의 재조명’ ‘암사동 선사유적공원의활용방안’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구민회관에서 개최된다. 24일 오후 5시에는 선사주거지에서 안데스 및 라틴문화를 접할 수있는 ‘문화충돌’ 공연이 열리고 오후 6시에는 천호동 해공공원에서 구민노래자랑도 펼쳐진다. 이밖에도 축제기간중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효사진 만들어드리기’ ‘보육아동 재롱잔치’ ‘먹거리장터’ ‘옛날자장뽑기’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 김용수기자 dragon@
  • 내고장 탐방교실‘인기 캡’

    ‘내고장에 대해 알고 싶으면 구청을 찾으세요’ 강동구(구청장 金忠環)가 이달초부터 관내 초·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중인 ‘내고장알기 탐방교실’이 인기다.. 19일 구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계획된 15차례의 탐방교실 예약신청이 이미18일에 모두 마감됐다.지난 2일 첫 탐방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매주 목요일에 열리며 올해 말까지 관내 8개 학교에서 600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신석기시대의 생활상이 발견된 암사동 선사주거지,음식물쓰레기를 퇴비화하는 시설인 음식물재활용센터를 둘러보고 지난 5월 개장된 길동자연생태공원,인터넷과 AV시스템을 갖춘 문화의 집 등도 방문한다. 김용수기자 dragon@
  • 단군, 신화인가 실체인가…93년 北단군릉 발굴

    단군은 신화상의 인물인가, 실존인물인가. 국내 단군연구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초·중·고의 국사교과서다.단군의 탄생일을 추정하여 제정한 개천절이 4대 국경일 가운데 하나이나국사교과서에는 아직도 단군이 곰의 자식으로 나온다. 국내 사학계의 단군연구가‘신화’의 벽을 넘지 못하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국내의 단군연구는 한동안 실증사학의 전통에 밀려 학계에서 주요 테마로인정받지 못한채 고조선의 사회체제 등을 은유한 신화로 이해됐다.이 때문에단군연구는 사학계보다는 국문학·민속학·신화학·신학·철학·사상사 분야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돼 왔다. 본격적인 단군 연구는 지난 93년 10월 북한의 조선사회과학원이 단군릉을발굴,단군의 실체를 확인하였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그동안 국내사학계에서는 단군조선을 신석기의 고아시아족 시대로 파악하거나(고려대 金貞培교수),고조선을 비교사학적으로 분석한(서강대 李鍾旭교수)성과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국사교과서에 등재될 만큼 대중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최근개신교측이 단군관련 단체의 단군상 건립운동을 저지하는 배경도 이 때문이다. 반면 북한의 단군연구는 정치적인 색채를 가미하기는 했지만 남한에 비해훨씬 앞서 있다. 북한은 단군릉 발굴을 계기로 단군을 민족의 주체로 인식하면서 활발한 연구성과를 계속 내놓고 있다.릉 발굴 이전에는 단군에 관한 역사적 인식이 전혀 없었던 북한으로서는 스스로‘혁명적 변혁’이라고 일컬을만하다. 북한 학계는 단군릉 발굴을 계기로 고조선의 연대를 5011년전(93년 현재)으로 끌어올렸다.또 고조선의 강역에 관해서도 종래의 ‘요녕설’을 뒤엎고 ‘평양설’을 들고 나왔다.선문대 이형구(李亨求)교수는 “고조선의 강역,단군뼈의 발굴 및 연대측정 결과를 놓고 남북간에 논쟁이 예상된다”면서 “정치적 요소를 걷어내면 북한의 단군릉 발굴은 고조선사를 둘러싼 남북한 학계의 연구 재조명과 방향정립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 고성 문암리 유적지 발굴…신석기 유물 50점 공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초기 신석기시대 집터 3기와 야외 불땐자리 5기를 확인하고 덧무늬토기와 눌러찍은무늬토기를 비롯해 돌칼돌도끼화살촉 등 유물 50점을 출토했다며 22일 이를 공개했다. 이번에 발굴된 유물 가운데 덧무늬토기는 국내에서는 가장 앞선 시기의 토기로 덧무늬를 빗금 방향으로 장식한 뒤 가로 방향으로 다시 덧붙인 형태다. 이같은 토기는 동해안 오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완전한 형태로 출토되기는 처음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집 자리와 출토된 토기의 형태를 볼 때 동해안에서가장 오래된 오산리 유적과 연대(기원 전 6000년)가 같거나 그보다 이전의것으로 보이며 한반도 선사인의 원류와 이동경로 등을 밝힐 수 있는 자료”라고 밝혔다.
  • 군사보호구역 문화유적조사 마무리단계

    군사보호구역에 대한 문화유적 1차조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군사보호구역내에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해온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와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은 최근 김포와 강화에서문화유적 학술조사 현지설명회를 가졌다.지난 91년부터 시작된 문화유적 지표조사가 강원도,경기도 연천,파주 등을 거쳐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김포시 지역을 담당한 문화재연구소는 2개 면에서 39건의 유적을 확인했다.조사단은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낮은 야산에서 석핵(石核,돌에서 석기를 떼어내고 남은 부분)과 박편(薄片)석기 등 6점의 구석기 유물을 수습,처음으로 구석기 유적의 존재를 확인했다.지금까지 김포에서 발견된 최고(最古)의 선사시대 유적은 통진면 가현리의 신석기 유적.문화재연구소윤근일(尹根一)연구관은 “인근 연천 등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돼 김포에서도 나올 개연성이 높았는데 이번에 구석기 유물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또 문수산성에서 성의 축조와 관련된 성벽 명문을 추가로 발견하고 고막리에서는 왕족의 태(胎)를 담은 태실비도 찾아냈다. 육군박물관은 강화도에 설치된 돈대(墩擡)를 조사했다.돈대는 외적의 침입이 예상되는 곳에 흙이나 돌로 쌓은 작은 방어물로 내부에 총통을 설치하기도 한다.17세기말과 18세기초인 숙종과 영조대에 모두 53개의 돈을 설치한것으로 전해진다.육군박물관 조사단은 이번에 해병대가 관할하고 있는 연미정 돈대,초루 돈대 등 15개 돈대의 위치를 확인했다.일부 돈대는 붕괴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원형이 잘 보존돼 있었다.돈대 주변은 대부분 군초소 등으로이용되고 있어 300년 전부터 돈대는 군사적으로 중요했음을 뒷받침했다. 한편 문화재연구소와 육군박물관은 올해 군사보호구역의 문화유적에 대한지표조사를 모두 마친다.강원도 철원군 홍원리 북방에서 궁예의 성터를 확인하고 경기 연천에서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의 묘를 발견한 것 등이 그동안의성과로 꼽힌다. 육군사관학교 이재(李宰) 교수는 “한반도의 중간지역인 비무장지대는 항상 한강과 서울을 놓고 다툼을 벌였던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라며 “이번조사를 통해 유적이 어디에 어떤 상태로 남아 있는지를 알게 돼 추후 유적발굴,조사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또 군에서도 문화유적에 대한인식을 새로이 해 보호의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문화재연구소는내년에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보고서로 펴낼 방침이다. 任泰淳 stslim@
  • 불황극복 日기업의 전략-창립 100년 NEC

    ┑도쿄 黃性淇 특파원┑NEC는 전후 최악으로 일컬어지는 일본의 불황 속에서도 비교적 불황을 모르고 성장하는 기업이다. 고바야시 고치(小林宏治) 전회장(96년 사망)이 77년 내놓은 ‘C&C’(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융합)란 개념이 세계 굴지의 NEC로 성장케 한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그가 ‘C&C’란 개념을 세상에 내놓을 때만 해도 컴퓨터와 통신을 어떻게하나로 뭉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많았다.컴퓨터로 치면,‘신석기 시대’의 ‘철기 시대’적 발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누구도 예언하지 못했던 20세기 말,21세기까지 이어질 NEC 성장의 단초를 제공했다. 1899년 전화기 제조업체로 출발한 NEC는 끊임없는 개발과 성장을 통해 통신 및 컴퓨터분야 세계 5위,반도체는 미국 인텔에 이은 세계 2위로 자리잡았다. 93년 3조5,150억엔이던 매출은 꾸준히 늘어나 96년 4조엔을 돌파한데 이어97년 4조9,480억엔에 이르고 있다. NEC는 그러나 지난해 반도체 부문의 세계적인 불황 탓으로 10월 중간결산에서 245억엔의 적자를 내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연말을 고비로 세계 정보통신 분야의 경기가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오는 3월 98년도 결산에선 전년도와 비슷한 4조9,000억엔정도의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NEC 성장의 원동력은 끊임없는 기술개발이다.한해 총매출의 7∼8%인 3,000∼4,000억엔을 하이테크 개발에 과감히 투자,세계적으로 앞서가는 기술을 창조해내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신문 1년6개월치의 정보를 1개의 칩에 입력할 수 있는 4기가(G)램 개발을 2년전에 마쳤다.컴퓨터에선 1초에 4조번의 계산의 가능한 슈퍼컴퓨터를 발매,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전화가 가능한 이리듐 위성휴대전화의대량보급에도 공헌하고 있다. 또 세계 유력기업과의 제휴도 활발히 추진,멀티미디어 분야에선 프랑스의‘불’사,반도체에선 한국의 삼성과 제휴를 강화하고 있다. 후쿠치 겐(福地硏)홍보부장은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아 축적된 기술력을 더욱 발전시켜 21세기 전 분야에서 세계 초일류로 도약하는 기업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marry01@
  • 의자를 치우면 건강이 좋아진다

    ◎건축사회학 전공 美 캘런 크렌츠 교수 ‘의자’서 주장/좌식생활 등뼈·허리·횡경막 등 긴장시켜/서있는 것보다 척추에 압력 30% 더 가중/하루 15분 딱딱한 바닥에 누워 쉬도록 잠시라도 의자에서 떠나라.그러면 당신의 건강은 훨씬 좋아진다. 건축사회학을 전공한 미국 캘리포니아대 캘런 크렌츠 교수(여)는 ‘의자’로 세계를 본다.지호출판사에서 나온 ‘의자’에는 의자의 역사,사회학,인간 환경공학,생체공학,인류학 등 의자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잠자는 때를 제외하면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의자에서 보내지만 태초에는 의자가 없었다.의자에 앉아 있는 흙인형은 신석기 시대에 발견됐다. 의자는 권력과 신분을 상징한다.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 레이건 대통령이 부재중이었을 때 절대 레이건의 자리에 앉지 않았다.권좌를 의미하는 영어 throne은 세력가가 타고 다니는 가마에서 유래됐다.앉아서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 권력자일 것이다.의장을 chairman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자는 산업혁명이 일어난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보급됐다.공장노동이 농업노동과는 달리 의자에 앉는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좌식생활이 근대화와 진보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그러나 의자는 과연 인간을 편하게 해주는 이기(利器)일까. 이에 대한 크렌츠의 답변은 반(反)의자적이다.의자에 앉는 것은 척추,등 근육,허리부분 신경과 횡격막 등을 긴장시켜 서 있는 것보다 척추에 가해지는 압력을 30%가량 증가시킨다.또 허리를 곧게 펴지 않고 구부려 앉으면 갈비뼈들이 횡경막을 배쪽으로 내리눌러 폐와 소화기관의 과로를 가져온다.미국에서 근로자들이 감기 다음으로 잘 걸리는 병은 허리통증.육체 노동자들보다 사무실 노동자들이 25% 더 많다는 조사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의자에 앉았을 때 발뒤꿈치가 반드시 바닥에 닿아야 하며 의자 끝부분이 아래로 휘어야 한다.더 좋은 것은 인공적인 수직앉기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인간은 걷고 서고 달리고 뛰고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고 움직이도록 창조되었다.도구를 이용한 앉기는 본성이 아니다. 인류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인간이 꾸준히 취하고 있는 몸의 자세는 1,00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직각으로 의자에 앉는 것은 전 세계인구의 1/3에서 1/2에 불과하다.척추가 쉴수 있도록 하루 15분 정도는 단단한 바닥에 누워라.기어다니거나 쪼구려 앉는 것도 좋다.쪼구려 앉아서 빵을 굽는 것은 에어로빅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조사도 있다.결론은 의자를 통해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을 줄이고 가능하면 땅과의 접촉을 늘리라는 것이다.
  • 알타이 황금산맥 등 30곳/세계문화유산 추가 등록

    【파리 AFP 연합】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는 2일 러시아 알타이의 황금산맥 등 전세계 30곳을 세계 귀중 문화유산 목록에 추가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일본 교토(京都)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결정에 따른 것이다.이로써 세계 귀중 문화유산은 114개국의 582곳에서 612곳으로 늘어나게 됐다. 추가된 문화 유산에는 알타이의 황금산맥이외에 포르투갈 코아 계곡의 구석기 시대 암각화,스웨덴의 카를스크로나 요새항구,키프로스 초이로코이티아의 신석기 유적,일본 나라(奈良)의 8세기 기념비,터키의 트로이 전쟁터 및 126종의 조류가 찾아오는 남극 인근 뉴질랜드 섬들이 포함됐다. 한국에서는 석굴암과 팔만대장경 그리고 종묘 등이 세계문화 유산으로 이미 등재됐다.
  • 양구군 하리‘양구 선사 박물관’(생활속의박물관·미술관:13­1)

    ◎원시인의 숨소리 들리는 듯/구석기때 쓰였던 긁개­찍개·밀개…/돌칼·화살촉·빗살무늬토기도 가지런히/고인돌 공원·선사 주거지까지 조성 스트레스가 쌓일수록 현대인들은 과거의 따뜻한 고향이 그립다.수십만년전의 때묻지 않은 원시생활은 질식할 듯한 도시문명에 지친 현대인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일지 모른다.IMF 지원체제의 고달픈 일상생활을 잠깐 잊고 타임머신을 타고 선사시대로 돌아가 보자.양구선사박물관에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쓰던 석기·토기 등이 전시돼 있어 원초적 인류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하다. 인류가 원시적 형태나마 농경이나 목축을 하며 인간다운 삶을 시작한 것은 1만여년 전인 신석기시대 부터.그 이전은 인류가 유인원으로부터 분리된 이후 지속된 구석기 시대다.돌을 깨뜨려 쓰다가 갈아서 사냥을 하고 토기를 구워 음식을 담아내는데 수십만년이 걸렸다.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하리에 자리잡은 양구선사박물관(관장 金圭鎬·36)에는 수십만년전에서 기원전 300여년전까지 살았던 선사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만여평의 부지에 160여평의 전시관 및 고인돌공원,선사주거지 등이 조성돼 있다.전시관에는 양구읍 상무룡리와 해안면 현리 등에서 발굴된 구석기 및 신석기,청동기시대의 유물 630여점이 짜임새 있게 전시돼 있다.86년 평화의 댐 기초공사를 위해 파로호 물을 방류시키자 일제 때부터 수장돼 있던 바닥이 드러나면서 발굴된 것들이다.국립중앙박물관 강원대박물관 등에 분산 보관해 오다가 95년 양구군이 박물관을 건립해 모아놓았다. 구석기인들이 사용한 석기들은 단순하면서도 쓰임새에 따라 재미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동물 살을 저미고 가죽을 벗기는데 쓰던 긁개는 오목하게 세운 날이 제법 매섭고,짐승을 찍어 토막을 내는데 쓰던 외날찍개는 그 뾰족함이 섬뜩하다.단단한 차돌을 아이 주먹만하게 다듬은 사냥돌을 쥐면 함성을 지르며 짐승을 쫓던 옛 조상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이밖에도 뼈를 깎는데 쓰던 밀개,가죽을 째는데 사용하던 째개,짐승을 잡거나 나무뿌리를 자를 때 쓰던 주먹도끼,짐승을 찔러 죽이거나 가죽에 구멍을 뚫던 찌르개 등이 있다.구석기인들의 석기 제작과 사용 모습을 담은 모형도 만들어 놓아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해안면에서 발굴된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숫돌,갈판,보습 등은 이곳에 신석기문화가 형성됐음을 잘 보여준다.해안면은 혜성이 지구에 충돌해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펀치볼분지’ 지역.농사와 목축에 안성맞춤이다.파로호 상류인 고대리·공수리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시베리아·만주 지역에서 내려온 이주민들이 형성했던 청동기문화의 증거다.매끈하게 갈아 다듬어진 돌칼과 화살촉,홈자귀,돌도끼 등 한층 세련된 석기들과 동검,동경 등이 비로소 현대적 형태의 도구 모양을 하고 있다. 고인돌공원에는 발굴 당시의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고인돌 15기가 있다.한강이북에서 발견되는 탁자식과 한강이남의 개석식이 섞여 있다.청동기인의 고인돌 축조방식은 과학적이고도 기발하다.바위틈에 깊은 홈을 파 박은 나무말뚝에 불을 붙여 팽창케 해 바위를 갈라 큰 돌을 채취했다.그것을 바닥에 통나무를 깔고 밧줄을 이용해 수백명이 끌어다 고인돌을 세웠다. 보는것만으로 양이 차랴.‘선사인 체험코스’에 도전해 보자.돌을 깨 돌도 끼도 만들어 보고 빗살무늬토기도 구워 보자.힘을 모아 고인돌을 축조하고 박재동물을 향해 사냥돌을 던지는 동안 선사인의 숨소리가 느껴질 것이다.10여평 넓이의 구덩이에 억새를 엮어 지붕을 덮은 움집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아득한 원시의 밤과 다를게 없다. 박물관 가는 길은 춘천에서 46번국도를 이용하거나 인제에서 31번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서울 상봉터미널에 양구행 직행버스가 있다.매주 화요일 휴관하며 요금은 어른 770원,25세 이하 청소년 및 어린이 330원.(0364)481­3004, 480­2677
  • 신용하 교수 독도·울릉도 명칭 변화 연구

    ◎“독도 삼국시대부터 우리땅”/울릉도 부속섬… 于山島·독섬·독도로 불려/日 고문헌·고지도에도 ‘조선땅’ 기록/외교권 박탈된 1905년 日서 강제 편입 ‘그 누가 아무리 자기내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땅…’ 서울대 愼鏞廈 교수는 한국학보 91·92호 합집호에 발표한 ‘독도·울릉도의 명칭변화에 관한 연구’논문에서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나 독도는 역사적으로 명백한 우리땅이라고 밝혔다. 愼교수는 논문에서 독도는 외교권이 박탈된 1905년 일제가 농간을 부려 일본영토에 편입됐으나 실제로는 삼국시대부터 울릉도의 부속도서였으며 일본도 역사적으로 이를 인정해왔다고 말했다. 愼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우르뫼’로 불린 울릉도에 사람이 거주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였다. 우르뫼의 ‘우르’는 ‘어른,우러러’ 등 한국 현대어와 동일한 계통어로 군왕,왕,왕검을 의미한 고대어였으며 뫼는 산,릉을 의미한 고대어였다. 울릉도를 말하는 우산국(于山國)은 우르뫼의 한역(漢譯)으로 우산국의 영토는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 삼선암 등 그부속도서였다. 우산국의 영토인 울릉도와 독도는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 신라에 병합된다. 우르뫼에 대한 한자표기는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于陵,羽陵,鬱陵島로 일반화된다. 조선왕조에 들어오면 울릉도의 한자 표기에 武陵,茂陵이 추가되고 울릉도 사람들이 독도를 부르던 于山島라는 명칭이 정부관리에 의해 채록된다. 세종실록에 관리를 보내 于山島(독도)와 武陵島(울릉도)에 대한 통치권·영유권을 행사했고 우산도와 무릉도 중에서 무릉도가 本島이며 우산도와 무릉도는 타국이 아니라고 천명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19세기 울릉도 개척정책에 따라 울릉도에는 전라도 출신이 많이 이주했다. 이들은 고기잡이 나갔다가 들리는 우산도를 바위돌로 된 돌섬이라는 의미로 독섬이라고 부른다. 전라도 남해안에서는 돌을 사투리로 독이라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울릉도에서는 우산도라는 정부의 한자명칭보다도 사투리에서 연유된 독도(돌섬)가 널리 불리게 됐다. 한자로 표기하면 石島가 되고 발음을 취해 표기하면 獨島가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竹島와 松島라는 호칭으로 문헌에 나오는 것은 1667년이고 그 이후 일본은 고문헌과 고지도에서 두 섬이 모두 조선에 속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표시했다. 일본이 독도를 강탈한 것은 1905년. 일본은 이해 1월 독도에 대해 탐사를 실시한 뒤 타국이 점유한 형적이 없는 ‘무주지’(無主地)라며 무주지 선점(先占)의 국제법상 논리로 이를 자국영토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일본은 이 사실을 관보에 게재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영토를 편입할때 관련국에 통고하는 국제관례를 따르지 않고 한국정부에 조회나 통고를 하지 않았다. 불법적인 사실을 한국정부나 세계 여러나라에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1년이 지난 1906년 3월 뒤늦게 이 사실을 울릉군수에게 알려준다. 그 때 우리나라는 전혀 근거가 없다며 반발했으나 당시는 통감정치의 실시로 외교권이 박탈돼 항의외교문서를 일본정부나 국제사회에 보낼 통로와 기구가 없었다. 그러나 독도는 해방 다음해인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에 따라 우리 영토로 편입되고 구한말의 전통에따라 독도로 불려오고 있다. 愼교수는 일본이 1905년을 근거로 영유권 논쟁을 걸고 있으나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면 독도는 한국영토가 분명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 1,400년만에 다시보는 가야문화/국립김해박물관 개관

    ◎출토유물 마을·무덤모형 전시/시대·물질별 문화흐름 한눈에 국립김해박물관(경남 김해시 구산동)이 지난 29일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은 4∼6세기 낙동강 중심으로 형성됐던 가야제국의 유물들을 전시하는 동시에 가야사를 연구하고 복원하는 기능을 맡은 고고학 전문박물관이라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93년부터 5년여동안 2백6억원 가량을 들여 완공한 이 박물관은 1만5천여평의 부지에 지상 3층,지하 1층에 연건평 3천평의 현대식 건물. 박물관은 외양부터 철기문화의 이미지를 풍긴다. 건물외벽 윗부분은 ‘철의 왕국­가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강판을 사용했다. 또 고분의 봉분을 상징하는 몸체는 검은 벽돌로 쌓아 철광석과 숯의 이미지를 나타냈다. 이와함께 가야문화의 발전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실의 입구와 출구를 별개 구조로 설계하는 한편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수장고에 오동나무로 만든 특수시설을 설치했다. 900평 가량의 전시장은 상설전시실과 2개의 기획전시실로 구성했으며 신석기시대부터 가야시대까지 시대별,물질별 문화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전시물을 배치했다. 또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선사시대의 마을모형,무덤모형 등을 만들어 놓았고 컴퓨터 안내시스템과 가야유적의 문화권별,종류별 유적분포 전광판도 설치했다. 상설전시실인 제1 전시실의 ‘신석기시대’ 코너는 김해 수가리,부산 영선동,통영 연대도,통영 욕지도 등의 유적에서 출토된 돌도끼와 흑요석,조개팔찌,골각기 등을 전시한다. ‘청동기시대’는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으로 나눠 ‘삶의 공간’에는 울산 검단리,산청 묵곡리 등의 유적에서 출토된 민무늬 토기와 방추자,갈돌을,‘죽음의 공간’에는 산청 강루리에서 옮겨온 고인돌을 전시해 놓았다. 또 ‘초기 철기시대’코너는 철이 등장했던 당시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도록 했다. ‘가야성립기’는 창원 다호리 1호묘에서 출토된 통나무관과 출토유물을 실물크기로 재현,김해 양동유적에서 출토된 칠조동검과 와질토기,칠기 등을 전시해 놓았고 ‘금관가야’ 코너에는 김해 대성동 고분군,김해 회현리 조개더미 등에서 발굴한 다양한철기 및 토기와 외래계 유물을 전시한다. 제2 전시실에 있는 ‘아라가야’ 코너에는 함안 마갑총 출토 말갑옷과 함안 말이산고분군에서 출토된 금입사고리자루칼,차륜식 토기,마늘쇠 등을 시대별로 배치해놓고 있다.‘대가야’는 고령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문화권의 결속을 화려한 금세공품과 통형기대 등 제사토기를 통해 보여준다. 고령 지산동고분군,합천 옥전고분군,남원 월산리고분군의 유물과 자료도 있다. 이밖에 ‘소가야’는 고성 연당리고분군과 고성 동의동 조개더미 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화상을 알려준다. 김해국립박물관은 개관 이후 한달동안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 육군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5)

    ◎“조국사랑” 참군인 정신 일깨운다/선사시대 이래 군사자료 8,600점 한눈에 金日成 작전명령서·베트콩 전단까지/부서진 총열·녹슨 수통·구멍뚫린 철모…/장렬히 숨져간 무명용사의 외침 절절이 불암산의 서기(瑞氣)가 어린 노원구 공릉동 육군사관학교. 호국 간성의 요람인 이곳에 들어선 육군박물관은 일반인들의 군(軍)에 대한 거리감을 친근감으로 바꿔주는 묘한 공간이다. ‘한국의 시인 건축가’ 金重業씨(88년 작고)가 조국통일의 염원을 담아 그 물꼬를 트는 상징으로 열쇠 형상을 택해 설계했다는 이 건물은 흰색 화강암 건물로 잔디와 숲으로 차분히 정돈된 육사 캠퍼스 남쪽 끝에 들어앉아 있다. 정면에 연병장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바로 앞에는 고 姜在求 소령 동상이 달려가는 듯한 자세로 서 있다. 30여년전 월남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훈련장에서 부하를 구하고 산화한 그의 모습은 오늘날 이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참군인정신과 함께 참나라사랑의 정신을 일깨워 준다. 육군박물관은 이 땅에서 ‘저질러진’ 전쟁에 관한 많은 것을 증언한다.지상3층 지하1층 건물중 고대실·현대실 등 두 개의 전시실에는 가깝게는 6·25전쟁에서부터 임진왜란,멀리는 선사시대의 군사 관련 유품과 문화재까지 모두 8,6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의 가치는 유형의 물질에서 옛 사람들의 혼과 정신을 만나는데 있다고 했던가. 전시실을 떠받치고 있는 14개의 원추형 돌기둥이 두 열로 돌아나간 옥외 전시장에서 당시의 총통과 대포들이 전장의 신음을 오늘에 전한다. 건물 중앙으로 맞닿은 기둥 사이에 朴正熙 대통령이 서거 때까지 타던 캐딜락과,맹호부대가 월남에서 대승을 거둔 것을 기념한 ‘안케패스 전승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군인으로 시작해 대통령이 되고,또 독재자로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한 한 불운한 정치인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볼 수 있다. 3층에 위치한 현대실에는 광복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각종 무기와 장비 복식 문서 등 4,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현대사의 흐름을 요약한 다양한 색과 제각각 형태의 볼 것들이 눈을 자극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은 6·25전쟁이다. 전쟁에 쓰였던 장비와 전단 복장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붉은빛 일색인 공산군의 그것들은 지금도 섬짓한 느낌을 전한다. 어느 시인은 뜰 안에 핀 장미꽃 빛깔에도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 0097호’에는 金日成이 전쟁중 직접 작전을 명령한 극비사항이 적혀있다. 1951년 8월8일로 찍혀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지령문’도 있다. 특히 6·25전적지인 설악산 소청봉에서 유골과 함께 발굴된 무명용사의 유품 앞에는 관람객들이 유난히 많다. 소총의 총신부분과 녹슬은 수통·구멍뚫린 철모. 누군지는 몰라도 분명 전장에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다가 외롭게 숨져갔을 그의 외침이 귓전을 때리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6·25전쟁중 물자가 고갈되자 인민군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쓴 병뚜껑으로 만든 모표,허름한 방한화,버선,철모,수통 등이 월남전 당시의 궁색한 베트콩 군수품과 나란히 진열돼 있어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고향의 달밤,임이 그리워 밤마다 웁니다.”“그리운 이여! 딸라도 선물도 싫어요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대의 산 목숨뿐” 등 월남전 당시 우리 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해 살포됐던 전단도 눈길을 끈다. 2층의 고대실에는 선사시대부터 대한제국 이전까지의 군사관련 문화재 4,128점이 시대순으로 전시돼 있다. 구석기∼신석기시대의 주먹도끼 등 석제무기와 3∼4세기 신라의 철검·무쇠도끼·무쇠창 등 철제무기들은 인류를 말살할 수 있을 정도의 현대무기에 비하면 정겨운 느낌마저 든다. 한번에 여러 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조선후기 화살 연발장치인 녹로노나 부녀자도 쏠 수 있게 만든 수노(手弩)인 삼시수노기(三矢手弩機)가 복원품이긴 하지만 눈길을 끈다. 화살을 4개까지 장전해 쏘던 조선전기의 사전총통(四箭銃筒),조총,화강암 탄알인 단석(團石),발사기인 대완구(大碗口)와 비격진천뢰쯤에 이르면 본격적인 전쟁 분위기가 풍긴다. 대완구는 국내 유일한 것이며 비격진천뢰도 연세대박물관과 함께 유일한 소장자로 돼있다. ‘부산진 순절도’와 ‘동래부 순절도’는 임진왜란 당시 군민(軍民)들의 처절한 항전모습을 담은 보물들이다. 박물관 건물을 나와 연병장 길을 따라 오른 쪽으로 접어들면 헬리콥터 장갑차 곡사포 전차들이 도열한 야외전시장에 접어들게 된다.50년 6월25일 남침의 선봉에 섰던 북한군 탱크 T­34와 이에 맞섰던 미제 M46탱크,전쟁초기 투입된 적 관측및 업무연락용 항공기 L­19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40여년 전 서로를 죽이기 위해 첨예하게 대치했던 주인공들이 지금은 친구가 되어 한자리에 있는 모습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관장 姜性文 중령/“40년 전통 국내 유일 군사종합박물관”/군사문화 발달과정 전시/전쟁유적지 학술 조사도 육군박물관의 현 관장 姜性文 중령(53·18대)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주2회씩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수이기도 하다. 지난 96년 12월 관장직을 맡아 박물관 운영을 책임지랴 강의준비 하랴 하루하루가 바쁘기만 하다. 특히 지난해 2월부터 육사 경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면서 관람객이 늘어나는 바람에 할 일이 부쩍 많아졌다. “용산의 전쟁기념관이 한국전쟁에 초점을 맞춘 전쟁과 무기중심의 기념관 성격을 갖추고 있다면 육군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군사관련 종합 박물관입니다. 40년이 넘은 전통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육군사관학교 경내를 둘러보는 관광상품이 마련되면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지요” 육군박물관은 56년 육군사관학교 기념관으로 처음 문을 연뒤 10년만인 66년 육군사관학교 군사(軍事)박물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83년 지금의 자리에 새 건물이 완공돼 2년뒤인 85년 개관했다. 주변의 넓은 공원 분위기와 어울려 딱딱하게 느껴지는 군사문화를 순하게 바꿔낸다. 군사유물을 통해 군의 업적과 전통·발전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전시형태가 독특하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유형적인 군사관련 소장품들이 무형의 자산을 표현한다고 할까요.외침이 있을 때마다 민군(民軍)이 일치단결해 민족 수호에 나섰던 조상들의 자취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자부심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지요” 비록 군사문화를 다룬 박물관이지만 전통문화 유지역할에 큰 몫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는게 姜관장의 설명이다. 휴전선 일대 군사유적지에 대한 학술조사와 군사유물에 대한 논문지 발간도 활발하다. 지난 94년부터 파주·연천·철원·포천군 지역의 산성·봉수대·한국전 격전지에 대한 지표조사를 벌여 보고서를 작성해 왔고 학술 논문지 ‘학예지’도 통권 5권을 펴냈다. 육군 박물관이 군사(軍史)를 다룬 박물관인 만큼 대학 역사교육의 보조 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대학의 역사교육에는 군사 문화재의 발달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빠져 있지요. 이 틈새를 메울 수 있는 박물관이 바로 육군박물관입니다. 소장품들이 모두 가치있는 자료들인 만큼 영구보존을 위한 전시장 보완이 시급합니다” ◎육군박물관 가는 길/전철·노선버스 연계/육사후문으로 입장 70만평의 캠퍼스안에 다양한 레포츠 시설과 편의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는 특수목적 대학인 육군사관학교 안에 자리잡은 이색 박물관이다. 육군사관학교가 관리 운영하는 군 관련 시설인만큼 일반인들의 접근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그러나 지난해 봄부터 육사 경내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고 관광코스도 마련돼 있어 뜻만 세우면 얼마든지 알찬 볼거리들을 만날수가 있다. 전철 1호선이 석계역,7호선이 먹골역까지 닿아 있고 노선버스는 45­2,803,45,745번이 운행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서울여대 앞에서 내린다. 매일 상오 9시 호텔신라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도 있다. 육사 후문에서 안내를 받아 박물관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으며 정기 관광코스는 상오 10시와 하오 2시 등 매일 두차례. 화요일∼일요일 개관하며 관람시간은 상오 10시부터 하오 4시까지. 관람료는 어른 2,000원,학생 1,000원.
  • 97년 신발견/중국 5大 고고유물

    【베이징=鄭鍾錫 특파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논,고대 그리스·로마와 비견되는 서한(西漢)대의 석조건축,황가(皇家) 욕조를 보유하고 있는 진(秦)대의 행궁(行宮) 유적,실크로드(비단길) 주변의 100여개 고분…. 중국에서 지난해 한해 동안 새로이 발견된 고고(考古)유물들이다,중국국가문물국은 최근 지난해 발굴된 500여개 항목의 고고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10개 항목을 골라 ‘97년 중국 10대 고고 신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시대적 순서에 따라 살펴본다. ◇낙남(洛南)분지 구석기 지점군 95∼97년 산서성 고고연구소는 진령산구(秦령山區) 남낙하(南洛河) 상류의 낙남분지와 인접한 단강(丹江) 상류 요시(腰市)분지를 발굴한 결과 광야(曠野)유형의 구석기시대 지점 10곳과 손도끼 등 석제품을 발견했다.이는 남북 구석기 문화의 교류 등 과제들을 연구토론하는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 ◇장구서하(章丘西河) 신석기시대 유적 지난해 8∼9월 산동성 문물연구소에서 장구시(章丘市) 용산진(龍山鎭) 서하(西河)유적을 발굴한 결과 지금부터 7천700년 전의 이른 신석기시대 문화의 19채 집유적 등을 발견했다.놀랍게도 이들 유적들 안에 도기·석기들이 원래대로 놓여져 있었다.수량이 많고 보존상태가 좋은 신석기시대 초기의 집유적은 전국에서 보기 드문 것이다.이는 신석기시대의 형태 및 문화상황,경제생활 등 방면의 연구에 소중한 실물자료이다. ◇풍현성(풍縣城) 두산대계(斗山大溪)문화의 성벽 96년 12월과 지난해 호남성 문물고고연구소는 풍현 차계향(車溪鄕) 남악촌성(南岳村城) 두산(斗山) 옛성 유적에서 발굴을 진행한 결과 이 옛성의 건축시기는 대계문화시대로 지금부터 약 6천년 전일 것으로 추정된다.이는 현재 중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옛성유적 중의 하나이다.이번 발굴작업에서는 또 옛성유적의 동쪽성벽 아래서 면적이 약 100㎡로 지금부터 약 6천500년전의 탕가강(湯家崗)문화시대의 논을 발견했다.이는 세계에서 발견된 가장 빠른 시대의 논으로서 벼의 재배역사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홍콩 동만자북(東灣仔北) 유적 지난해 6∼11월 홍콩고물고적판사처와 중국사회과학원고고연구팀은 홍콩 마만도(馬灣島) 동북각에 대한 발굴을 진행한 결과 신석기시대 중·후기로부터 청동기시대 초기의 거주유적 및 20개 고분을 발견했다.이는 홍콩반환 후의 첫번째 고고유물 발견이다.홍콩 및 주강(珠江) 입구지역의 보기 드문 문화퇴적,풍부한 출토문물,비교적 완전한 인골과 고분 등은 주강 하류,나아가 전체 영남(嶺南)지구 신석기시대의 후기 내지 청동기시대 고고문화의 시대구분·확정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정한고성(鄭韓故城)에서 정국(鄭國)이 제사 지냈던 유적 96년 12월과 지난해 하남성 문물고고연구소는 신정시(新鄭市) 정한고성 동성(東城)의 서남부에서 발굴사업을 진행한 결과 춘추시기 정(鄭)나라의 청동예락기갱(靑銅禮樂器坑) 16개와 순마갱(殉馬坑) 39개를 발견했다.청동예락기갱은 3개가 절도당했으나 나머지 13개는 온전하게 보존돼 있었고 방호(方壺) 등 청동예기와 편종(編鐘) 등 청동악기들이 매장돼 있었다.출토된 청동예악기는 모두 334건으로서 대부분이 정교하고 화려한 것으로 정나라청동기에 대한 보기 드문 무더기 발견이었다. 이번 발굴로 정한고성(鄭韓故城) 및 춘추시기 예락(禮樂)제도,정국동기(鄭國銅器) 등에 관한 연구가 더욱 활성화하게 됐다.
  • 터키 카파토키아 암굴 유적(세계 문화유산 순례:59)

    ◎바위굴 미로속 2만명 살던 지하도시/화산암 뚫고 깎아 거주공간·교회·방앗간·축사 완비/땅속 8층까지 안내… 초기 기독교인의 피난지 추정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남동쪽으로 4시간을 달리면 지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자연경관이 나타난다.카파도키아로 알려진 석굴도시인데 그 중심지가 괴뢰메 마을이다.깔때기를 엎어 놓은 것같은 수백만개의 기암기석들이 갖가지 형태로 계곡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다.그토록 웅장한 도시와 역사가 어떻게 계곡 암굴속에 숨어 있었을까.그 수수께끼는 돌과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세계 7대 자연경관중의 하나인 카파토키아의 매력이다. 약 3백만년 전 에르지예스산의 화산 폭발로 인근 수백㎞에 걸쳐 거대한 용암층이 형성되었다.그리고 비바람과 홍수에 끊임없이 깎이고 닳아 용암층은 물결의 방향에 따라,또 바람이 부는대로 갖은 모양을 하고 태어났다.도토리 모양,버섯 모양,동물 모양 등 보는 방향은 물론 상상과 기분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인간세계에 내려보낸 신의 작품이 카파토키아인지도 모른다. ○세계 7대 자연경관의 하나 사람들은 그 뾰족 솟은 카파토키아 응회암 바위를 깎고 뚫어 거주공간을 만들었다.공기에 노출된 응회암은 약간의 단단한 연장에도 쉽게 손질되었다.그래서 사람들은 바깥의 덥고 건조한 기후를 피해 서늘하고 습기가 어린 암굴속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했다.그 속에는 사랑방과 안방이 있고,창고와 부엌도 마련되었다.아래층에는 소나 노새를 키우는 우리도 만들고,신앙생활을 위해 신성한 약속의 공간도 마련했다.위츠히사르라 명명한 거대한 언덕에는 수백 채의 암굴집이 올망졸망 구멍을 내고 벌집처럼 들어섰다.가까이 다가서면 놀라운 일을 목격할 수 있다.구멍마다에 사람이 살았다.그 속에 훌륭한 집을 꾸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삶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았다.비잔틴시대에 기독교화한 여기 사람들은 암굴을 파서 교회를 짓고,벽면과 천장에 프레스코를 그렸다.자신들의 신앙을 마음껏 표출했던 것이다.그래서 4세기 후반 기독교가 이 암굴도시에서 꽃을 활짝 피웠다.콘스탄티노플과 같은 대도시를 피한 수도자들은 인기척이 드문 땅을 찾아 3천개의 교회를 지었다고 한다.으흘라르와 괴레메의 석굴 계곡에는 암굴교회군이 있다.계곡바닥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가면 깎아지른 계곡 사이로 수십개의 교회가 모습을 드러낸다.12세기경의 성 바라바라교회 벽면에 그린 ‘최후의 만찬’은 단연 수작이다.밧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다다를 수도 없는 가파른 절벽 가운데 바위를 파서 교회를 지었다. 괴레메의 석굴계곡을 벗어나 남쪽으로 1시간쯤 달렸다.마침내 ‘깊은 웅덩이’라는 이름의 데린쿠유 마을이 나타났다.지나가는 한 목동이 우연히 발견한 지하 대도시가 숨겨져 있는 땅이다.사람의 머리 하나가 겨우 들어갈만한 구멍 속에 2만명을 수용하는 어마어마한 지하도시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헬멧을 쓰고 허리를 굽힌채 손전등을 비추며 화살표를 따라 가는 지하세계의 탐험이 시작되었다.표시된 방향 이외의 다른 길로 들어서지 말라는 안내원의 거듭되는 경고는 사뭇 섬뜩하게 들렸다.입구로부터 55m나 되는 지하 6층과 7층,8층에서는 일단 통행이 차단되었다. ○6만명 수용 새 유적지 발견 데린쿠유 마을의 무수한 지하통로들은 미로를 통해 복잡하게 얽혔다.빈 공간마다 거주지 흔적이 완연하다.방과 검게 그을린 부엌,방앗간과 창고로 쓴 공간이 있다.중앙에 깊게 파놓았던 공동우물에는 지금도 물이 고였다.모임의 장소로 사용된 듯한 회랑 한쪽 구석에서는 교회나 묘지의 흔적도 보인다.그들은 낮이 되면 지하에서 빠져나와 들에서 밀밭을 가꾸고 포도도 재배했다.항상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충분한 식량과 물을 지하에 저장하고,자기들만이 아는 미로를 통해 바깥세상과 연락을 취했다.미로 중간중간에는 큰 바위문을 두었다.비상시에 사용한 방어시설이었다.수만명 지하주민들이 불을 때어 빵을 구었음에도 연기는 흔적도 없이 분산되어 바깥으로 스며나갔다. 바위를 뚫어 불가사의한 지하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언제부터 이 도시가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해답도 없다.단지 6천∼7천년전 신석기 시대부터 부분적으로 바위속에서 혈거생활을 시작한 이래 로마초기에 박해를 피한 기독교인들이 숨어 들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그 후 기독교 시대에는 수도나 평범한 삶의 장소로 바위속을 뚫어 거주공간을 계속 넓혀갔다.13세기에 칭기즈칸의 말발굽이 닿았을 때도 입구를 봉쇄한 지하도시 속에서 완벽한 저항을 계속했다.그 지하도시가 몇층까지 내려가는지도 아직 모른다.어떤 이는 17∼18층은 족히 내려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이 지하유적 이웃에서 아직 공개되지 않은 30여개의 지하도시를 더 찾아냈다.발굴중인 외즈코나크 지하 대도시인데,규모는 6만명을 수용한다고 한다.아마도 이 카파토키아 일대의 지하 암굴도시의 실체는 20세기가 밝혀내야 할 문명의 수수께끼일 수도 있다. ◎여행 가이드/수도 앙카라서 버스로 4시간… 호텔 10여곳 이스탄불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카이세르에 가서 자동차로 1시간이면 카파토키아의 중심지인 괴레메에 도착할 수 있다.수도 앙카라에서는 버스로 4시간 거리이다.세계적인 관광유적지라 30∼50달러 사이의 깨끗한 호텔이 10여개 밀집해 있다.모든 여행사에서 다양한 카파토키아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카파토키아는 중동에서도 이름난 수직 카페트 산지이기도 하다.한국계 여행사로는 윤투리즘(212­257­1361)과 원더풀 투어(212­257­2288)가 카파토키아 전문여행을 주선한다.
  • 카자흐 수이강변의 암각화(중앙아시아를 가다:9)

    ◎석·청동·철기 시대별 형상 다양/사슴·말·소·양 등 동물부터 기마병의 전투·출산장면까지/부족 경사·비극 등 기록 도형화/중앙앗시아 거쳐 한반도까지 전래 바위에 새긴 신비로운 그림 암각화는 세계 도처에 있다. 다양한 민족들과 오랜 역사를 간직한 유라시아 구 대륙 곳곳에서 발견된다. 구 대륙에 속한 한국에서도 암각화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몽골과 시베리아 해안지역그리고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등지에서는 한국의 암각화와 유사한 암각화들이 보인다. 이 지역은 지난번 지적한 바와 같이 기마민족의 통로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자흐스탄 암각화 지역에 대한 답사를 여러차례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공교롭게도 현지에 눈이 쌓이거나 기후가 나빠서포기하는 비운을 겪었다. 이번에는 일부러 건기를 택하여 현지를 찾았다. 알마아타에 있는 카자흐스탄 국립과학원 고고학연구소장인 바이파코프 교수와 암각화연구에 한평생을 바치고 지금은 정년퇴직을 한 노교수 마라아쉐프가 동행했다. 알마아타에서300㎞나 떨어진 암각화 사이트를 두 곳이나 며칠을 두고 답사한 것은 행운이었다. 칼디쿠르간이라는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수이강가의 암각화 사이트를 먼저 찾았다. 이 사이트는 한국의 울주 반구대와는 달리 산 전체 바위 모두가 암각화였다. 사방 40㎝ 이상되는 평면의 검은 바위들이 거대한 산 계곡에 가득히 깔려있고,그 바위마다에는 예외없이 그림이 새겼다. 그러니까 산전체가 선사문화유산이자 미술자료라 할 수 있다. 그림의 주제들은 다양했다. 이를 정리하면 첫째 사슴과 멧돼지·소와 양 등을 표현한 동물의 세계,둘째 동물의 사냥,말과 마구 및 마차와 마차바퀴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셋째 전쟁과 기마병,넷째 성기와 남녀의 성교 및 여인의 분만장면 등 생식에 관한 그림도 있다. 암각화는 후기 신석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중세 몽골시대까지 그렸다. 그렇듯 수이강가의 암각화는 수천년을 두고형성되었다. 암각화의 시대는 석기,청동기,그리고 철기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석기시대 암각화의 주제는 주로 수렵의 대상이 되는 동물들과,소와 양 같은 가축들이다. 그 스타일은 투박하여 미학적으로 다듬어진 세련된 솜씨는 아니다. 그렇다고 정형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는 동물들의 스타일이 대단히 정형화한 형상을 보여준다. 그가운데 사슴이 가장자주 나타나거니와 사실적이다. 청동기의 사슴은 한마디로 스키타이 미술이다. 잔인한 스키타이인들은 모든 동물이 생명의 위협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전율을 화면에 연결시킴으로써 얻는 극적인 역동성을 화면에 잘 표현했다. ○산전체가 선사문화유산 이는 생명이 스러지는 전율앞에서 승리의 희열을 만끽하는 잔인한 성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승리자는 건강한 패자의 극적인 죽음에서 생명력을 획득한다고 믿었다 .지난 번에 지적했듯이 처음 죽인 적의 피를 마시고,그 해골을 차고 다녔던 스키타이의 풍습에서도 그런 성정이 엿보인다. 암각화의 사슴그림도 예외가 아니다. 앞으로 내달리던 사슴이 당황한 나머지 네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급정거하는 동작을 세련되게 표현했다. 청동기 후기에 오면 말이나온다. 사람이 자기의 의사대로 말을 조절할 수있는 통제수단이 있어야 말을 기마용으로 쓸 수 있다. 사람과 말이 예민하게 의사소통을 하지 않으면 기마술은 불가능하다. 그 통제수단은 바로 청동제 재갈이다. 그러므로 청동기에 들어와서 말 그림이 나타났다. 그것도 기원전 15세기를 훨씬 지나서 동부 중앙 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스테프에 말그림이 비로소나타나기 시작했다. 말이 등장하고나서 처음에는 바퀴 두개의 전차를 그렸다. 그 다음으로 바퀴 네 개 짜리 짐차를 그려 인간의 지혜가 점차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군사 필요 출산을 신성화 청동기시대에 나타나는 또하나의 주제는 남성성기를 자랑하는 무사와 그들의 전투장면,그리고 성교와 출산장면이다. 흥미있는 점은 성교장면 근처에 출산장면이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들 그림은 청동기라는 신무기를 가진부족사회와 무관치 않다. 한 부족이 이웃 부족들을 복속시켜서 바야흐로 부족연합체인 고대국가 단계에 이른 것을 의미한다. 이 때 무사가 정치적 영웅이되고,그 영웅의 영도하에 대규모 군사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출산을 전에 없이 신성화하는 가운데 다산을 기원했다. 그런 내용을 암각화에 담아낸 것이다. 그리고 철기시대가 도래하면 끌과 같이 날카로운 도구를 가지고 가늘고 깊은 선을 파서 기마병들의 갑옷과 깃발까지 그려냈다. 그 시대에 맞는 그림들이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런 그림들을 그리고,그림은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암각화들을 그린 여러바위가 모여서 이루어진 수이강가 언덕 한 곳에는 가지마다 헝겊을 묶어 둔 나무가 서있다. 그러니까 이 지역 카자흐인들은 이 언덕에 와서 아직도 제사나 고시레를 지낸다는 이야기다. 이 그림들은 단순히 개인 화가가 와서 그린 것이 아니라 부족의 의례행사의 하나로 그린 그림이다. 사냥과 전쟁,부락의 경사와 비극,출산과 영웅의 죽음 등 그들이 영원히 기억해야 할만한 의미가 있는 사건을 부족의 행사 차원에서 도형화 했다. 그것은 성스러운 기록이었다. ○주 암각화에도 나타나 남근을 자랑하는 전자와 그의 무기에 관한 것을 그린 청동기시대의 그림들은 어떤 정형의 틀을 분명히 지녔다. 주목할만한 일이다.그 정형화한 그림은 울주 반구대의 암각화에도 나타난다. 성스러운 그림은 정형을 바꾸는 법이 없다 .여기서 우리가 두가지 점을 시사받는다. 첫째는 대부분의 반구대의 그림이 청동기를 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둘째 반구대의 문화는 멀리 중앙아시아까지 관계를 맺는다는 점이다. 그 신비로운 암각화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시사한다. 그것은 새로운 안목으로 상고사를 올려 보라고 채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지류 하천변 구석기 유적 첫 발견

    ◎충북 청원군 소로리 금강지류 미호천유역/토양 쐐기구조 찰흙층… 1만5천년전 추정 중부 내륙인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일대 미호천유역에서 대규모 구석기유적이 발굴되고 있다.큰 강가가 아닌 지류의 하천변에서 대규모 구석기유적이 발굴되기는 이번이 처음.지금까지는 한탄강이나 남한강 상류 등 비교적 큰 강가에서 대규모 신석기유적이 발굴되었으나 이번에 발굴하는 소로리일대 유적은 금강지류의 하천변에 자리했다. 소로리 구석기유적은 이웃 남천리와 청원군 오창면 각리와 구룡리에 걸쳐 있다.충북대박물관을 주축으로 서울시립대박물관,단국대박물관,한국자원연구소가 참여한 이번 발굴은 오창과학지방산업단지 건설에 따른 구제발굴.이번 정식발굴에 앞선 지표조사 및 시굴조사에서 이미 많은 구석기유물을 거두어 들였다.특히 시굴조사에는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바닥,즉 생활면에 해당하는 문화층도 확인했다. 시굴조사에서 찾아낸 구석기유물은 차돌인 석영을 재료로 만든 외날찍개,긁개,격지,망치 등으로 되어 있다.이들 석기유물은 모두 언땅트기현상을 보여주는 암갈색 찰흙층에서 나왔다.토양쐐기 구조는 지구의 기후가 몹시 추웠던 4차례의 빙하기 가운데 마지막 빙하기인 뷔름빙기때 생긴 지층.이 뷔름빙기는 마지막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시대로 보고 있다.그 시대의 인류를 굳이 분류하면 크로마뇽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잘 발달한 미탄층도 이 유족에서 발견되었다.이탄층은 미호천을 배후 습지로 생겨난 지층으로 보고 있는 발굴단은 당시 이 일대의 식생상태를 밝힐 자료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이탄층은 물이나 물가에서 자라는 수생식물이 약간 분해된 상태로 쌓여서 이루어진 지층.특히 벼과의 식물들을 많이 포함한 층위라는 점에서 구석기시대 농경과 관련한 자료가 들어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들 지층 가운데 석기유물이 나온 암갈색 찰흙의 토양 쐐기구조를 한 지층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구석기유적 등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다.그래서 소로리일대 유적발굴 결과를 가지고 서로 비교하여 소로리일대의 지층구조는 물론 유적연대,석기의 성격등을 보다 확실히 밝혀줄 길도 열려 있다. 충북대박물관장 이융조 교수는 ‘소로리유적 시굴조사에서 석기가 나온 토양 쐐기구조의 찰흙 지층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1만5천년전을 앞서는 유적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이어 이교수는 유물이 나온 지층 아래층에 마지막 빙하기 초기인 6만∼6만5천년전 언땅트기의 토양쐐기층이 하나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중시했다.왜냐하면 발굴결과에 따라 연대가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교수의 견해다.
  • 문화행정 강화로 21세기 대비/김충환 강동구청장(공직자의 소리)

    우리 강동구의 거리는 미와 기능,문화가 어우러지는 고장으로 서서히 변모하고 있다. 지하철 5·8호선의 건설과 함께 천호대로에는 건축대전에서 금상을 받은 현대백화점을 비롯,미와 실용성을 겸비한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최근에 세운 20m높이의 조명탑은 암사선사유원지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의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선사시대인의 모습을 새겨,조형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남성합창단 여성합창단 여성교향악단 구립극단으로 구성된 강동구립에술단을 창단,문화공연을 펼치고 있다. ○진정한 복지사회 밑거름 이와함께 도시 공간구조의 개편을 위해 천호대로와 선사로 주변을 상업·유통지구로 변모시키기 위해 이 일대 31만평의 상세계획이 추진되고 있다.진정한 복지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선 문화·예술의 질적 성장과 함께 개발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쾌적한 거리조성을 위해서는 암사선사주거지 일대를 전통문화의 거리로 조성하고,자투리 땅에 소규모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천호동 텍사스촌 역시 어두운 그림자를걷어내고 맑고 활기찬 거리로 가꿔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만으로 주민들의 문화·예술 욕구를 충족시킬수 없다고 생각한다. ○수준높은 예술체험 요구 경제성장에 따른 풍요로움은 한편으로 주민들로 하여금 보다 수준높은 문화예술의 향유와 체험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가오는 21세기는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정보화,소프트웨어 입장에서는 문화의 세기라고들 흔히 말한다.따라서 21세기를 내다보는 긴 안목에서의 구정,나아가 모든 형태의 행정행위는 문화행정에 역점을 둬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우리 구는 21세기를 대비한 준비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일본은 한반도 고고사의 일부

    ◎전국고고학대회 참석 니시다니 다다시 교수 밝혀/남서해안·동부지역 한반도계 유물 다수 발굴/나가사키겐 고인돌무덤 신석기 말기의 흔적 일본열도에서는 최근 들어서도 한반도계 유적 및 유물이 계속 발굴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이는 한국고고학회가 지난 8일 광주 전남대에서 연 전국고고학대회에 초청받은 큐수대 니시다니 다다시(서곡정) 교수에 의해 확인되었다.그가 발표한 주제는 ‘요즘 일본에서 발굴한 한·일관계 새 자료’.그는 한반도계 유적발굴 실상을 소개하고 일본에 존재하는 한반도계 유적을 문화흐름의 한 현상으로 보았다. 그는 주로 1994∼97년까지 아주 최근에 발굴한 유적만을 한국학자들에게 전해주었다.먼저 나가사키겐(장기현)기타마츠우라군(북송포군) 우쿠마츠바라(우구송원)유적에서 지난해 6기의 고인돌무덤과 3기의 널무덤이 발굴되었다고 소개했다.특히 고인돌무덤에서 나온 붉은 간토기는 일본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신석기시대 말기의 한반도유물로 결론지었다.또 고인돌무덤과 널무덤에서 발굴한 일곱 사람몫의 인골도 한반도에서 건너온 이른바 도래인으로 보았다.그리고 이들을 일본에 벼농사를 퍼뜨린 장본인으로 추정했다. 우큐마츠바라유적은 한반도와 쉽게 교류할 수 있는 지리적 입지에 위치했다는 그는 다른 고인돌유적도 들추어냈다.나가사키 사가겐(좌하현) 모리다(삼전)등 신석기시대 말기의 한반도계 유적이 계속 발굴되었다는 것이다.이들 일본열도 남서해안 유적 뿐 아니라 동일본 지역에서도 한반도계 유골이 나온다는 사실을 중시했다.이를테면 나가노겐(장야현) 네즈카(근총)유적인데,지난해 발굴조사에서 청동기시대 최말기의 철검 2자루가 나왔다고 밝혔다.이 가운데 칼자루와 날 사이에 돌기가 돋아난 칼 1자루는 일본에서 나온 예가 얹는 유물.그는 이 철검의 원류를 경남 김해시 양동리유적 출토품인 다래덩굴무늬 칼자루가 달린 철검에서 찾았다. 그는 한국의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일본의 고분시대 유적에서도 한반도와의 관계를 살폈다. 지난 1995년 교토부(경도부) 다케노군(죽야군) 다쿠오카기다(내구강북)1호무덤인 전방후원분에서 나온 도질토기와 굽다리잔은 가야토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그러니까 가야토기라는 이야기다.그는 이들 토기를 가야와 왜가 교류를 하는데 필요한 일정한 해상루투가 동해상에 존재한 사실을 보여준 유물로 평가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올해와서 관동지방 북부인 군마겐(군마현) 다카사키시(고산시) 여러 유적에서 나온 유물에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5세기 중엽 주거유적 출토품 연질토기와 5세기중엽∼6세기쯤의 네모꼴돌무지무덤 출토품 연질토기병 및 금제느리개가 달린 귀걸이가 그것.그는 이들 유물을 통해 일본 고대유적의 가야문화를 중시하고 지난 1994년에 5세기 전반의 도질토기가 나온 도쿄도(동경도) 아다치구(족입구) 무사시이코(무장이흥) 유적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했다. 이와 더불어 1994년 후쿠오카겐(복강현) 아케노구치 유적에서 발굴한 4세기 전반과 5세기쯤의 온돌유구는 경기도 수원시 서둔동과 하남시 미사동 원삼국시대의 움집 온돌과 일치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또 후쿠오카겐 유쿠하시(항교시)를 중심으로 쌓은 일본 고대산성의 기원을 백제산성에서찾은 그는 아오야마겐(강산현)에도 백제계 산성이 분포되었다고 말했다.
  • 고구려 고분(외언내언)

    긴 행렬이 지나간다.행렬의 주인공은 소가 끄는 수레를 탔고 그 주위를 무사와 신하들이 에워쌌다.행렬에 참가한 사람이 무려 250여명.고취악대를 앞세운 이 행렬은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보는이를 사로잡는다. 북녘땅 황해도에 있는 안악3호 고분 후실 동쪽 벽화의 모습이다.북한은 이 고분의 주인이 고구려 미천왕이라고 주장한다.그러나 우리 학계는 고분 벽에 동수라는 이름이 쓰여진 묘지(묘에 묻힌 사람의 신분과 묻힌 날짜 등을 적은 글)가 있는 것을 근거로 동수의 무덤으로 본다.동수는 중국의 선비족 나라인 전연에서 336년 고구려로 망명했던 10명의 장군중 한 사람이다. 고구려 고분은 북한의 주요 문화재다.북한 선전잡지 ‘천리마’는 3∼7세기 축조된 고구려 고분이 1천기가 넘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현재 북한에는 50건의 유적과 유물이 국보급으로 지정돼 있는데 그중 20건이 고분이다.그것도 제1호인 평양 대동문과 제2호인 보통문을 제외하면 제20호까지가 모두 고분일 정도이다.안악1∼3호 고분을 비롯,약 30기의 고분을 북한은 해방후 발굴했다.북한이 고구려 고분의 공동조사 및 보존을 위한 남북학자 교류를 희망하고 있다 한다.최근 북한을 방문한 유네스코 친선대사 히라야마 이쿠오의 전언이다.고구려 고분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필요한 막대한 조사비용과 외교적 노력을 감안한 생각인 듯하다는 것이다. 남북 문화재 교류와 공동조사는 통일을 대비한 작업으로 꼭 필요한 일이다.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제의를 묵살해온 북한의 태도 변화에 다른 뜻은 없는지 궁금하다.북한은 최근 한 재벌의 문화재 조사팀을 초청하는 등 남북문화교류를 내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고학계 일부에서는 김정일 정권을 뒷받침하기 위한 ‘상투적 수법’이라면서 차라리 신포 경수로 공사장의 신석기·청동기 유적 발굴이 더 시급하다고 말한다.남북의 신뢰회복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듯 싶다.
  • ‘문화유산의 해’ 마감/학술회의 풍성

    ◎서울·강원·충북·경북 등서 9∼10월에 잇따라 개최/외국석학 대거초청… 유적지 보존대책 등 토론 올 ‘문화유산의 해’를 마감하는 각종 학술회의가 이달들어 본격적으로 열린다.‘문화유산의 해’조직위원회가 지원하는 이들 학술회의는 주로 문화 및 역사유적지가 있는 현지에서 열리기 때문에 지방문화단체들이 주최한다.강원도 양양문화원의 ‘국제 선사 문화 심포지엄’(9∼10일),충북 단양향토문화연구회의 ‘국제학술회의’(21∼30일),경북 영천 은해사의 ‘역사현장 조명 학술회의’(10월19일)등을 지방행사로 치른다. 강원도 양양과 충북 단양은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사적으로 지정받은 대단위 문화유적을 둔 지역.그래서 양양문화원(원장 고경재)은 손양면 오산리 신석기유적에,단양향토문화연구회(회장 김재호)는 구석기시대를 주측으로 한 적성면 애곡리 수양개유적에 촛점을 맞추었다.또 은해사(주지 신법타)는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와 이 사서의 산실이기도 한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를 이번 학술회의서 부각시킬 계획이다. 양양문화원이 먼저 주최하는 ‘국제 선사 문화 심포지엄’의 주제는 ‘오산리 신석기 유적의 역사유적공원 활용’으로 되어 있다.오산리유적은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신석기문화 현장.기원전 6000년쯤에 이루어진 이 유적을 역사유적공원으로 꾸미는 데 필요한 여러 나라 학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했다.‘문화유산의 해’에 우선 중요유적 보존대책의 틀을 잡아본다는 것이 심포지엄 기획의도다. ‘문화유산의 해’조직위원회 위원장 고병익박사와 범세계적 학술단체 동양고고학회 회장이자 영국의 두루함대 지나 반스교수 등 저명학자를 이 심포지엄에 초청했다.그리고 오산리유적을 발굴하고 이를 세계에 알린 서울대 임효재 교수가 기조연설에 나서는 한편 국내외 학자 15명이 주제발표 및 토론자로 참여한다.영국 캠브리지대 니콜라스 제임스 교수와 일본 규수대 니시다니 다다시 교수,중국 요령성고고문물연구소 방전춘 부소장은 자국의 유적공원 사례를 발표할 예정.건국대 최무장 교수와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 한영희 부장은 프랑스와 한국의 사례를 각각 소개키로 했다. ‘수양개와 그 이웃들’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준비한 단양향토사연구회는 국내외 학자 14명을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로 초청해 놓았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고지리연구소장 리나 코노렝코박사,중국과학원고척추동물연구소 황위문 교수,일본 삿포로대 기무라 히테오키 교수,충북대 이융조 교수와 한양대 배기동 교수 등 4개국 학자들이 참여한다.이번 행사는 단양향토문화연구회가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마련한 국제학술회의다. 이들 지방 학술행사 말고도 한국역사연구원이 주최하는 ‘역사현장 재조명 학술회의’(10월10일∼11일)와 한국미술사학회 주최 ‘문화유산의 해 학술발표회’(10월25일)는 서울에서 열린다.‘역사현장 재조명 학술회의’는 ‘대한제국100주년 기념’을 주제로 했다.그래서 대한제국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덕수궁을 개최장소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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