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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한국에선 ‘강남역 살인’… 伊선 여대생 엽기 피살 왜?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한국에선 ‘강남역 살인’… 伊선 여대생 엽기 피살 왜?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불안과 공포, 분노의 여진에 떨던 지난달 29일 오전 3시(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20대 남성이 여대생(22)의 몸에 알코올을 끼얹고 불을 붙여 숨지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의 전 남자친구가 자신과 헤어진 것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끔찍한 범죄였다. 현지에서는 이번 사건이 이탈리아에 만연한 남성우월주의를 반영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및 우월주의가 개별 국가 단위를 초월함을 보여 주는 사례다. 현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이탈리아에서는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 사건이 155건, 구타 사건이 8856건, 스토킹 사건이 1261건에 달했지만, 이 중 신고를 한 여성은 10%에 불과했다. 나머지 90%는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으로 이탈리아의 남성 우월적 사고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며 어린 시절부터 교육에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이러한 사상이 문제로 지적된 것은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국가와 종교를 막론하고 보편적 사상으로 인식돼 온 남성우월주의, 그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시대·국가 초월한 남성의 폭력·우월주의 남성우월주의의 역사는 수렵채집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존을 위해 자연과 동물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당시 인류가 스스로 집을 짓고 도구를 이용해 가축을 기르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타인 혹은 자연과 동물로부터 자신의 것, 공동체의 것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발생했다. 힘의 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성과 여성의 명확한 구분이 시작됐고,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이들이 믿는 신의 모습은 대부분 ‘남성’이 됐을 만큼 남성은 우월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신화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수많은 신이 등장하지만 그중 최고는 단연 제우스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자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테네 여신 등 일부 여신이 제우스 못지않은 유명세를 떨쳤지만, 서구 신화 속 가장 우월한 신으로 제우스를 꼽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은 많지 않다. ●신화·종교에서도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 종교는 또 어떠한가. 이슬람은 남녀 불평등 종교의 대표로 꼽힌다. 21세기에도 무슬림 여성들은 여전히 차도르와 히잡으로 온몸을 감싸야 한다. 이를 단순히 옳고 그름이 아닌 문화적 차이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성 차별로 대두되는 이슬람의 남성우월주의가 10세 전후 어린 소녀의 강제 결혼과 오로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염산테러 등의 폭력적 행태를 낳은 것만은 사실이다. 자비와 자애를 강조하는 불교에도 여자는 남자가 돼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전여신설(轉女身說), 여성은 제석천(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범천(불교의 호법수호신), 불타가 되지 못한다는 여인오장설(五障說) 등이 존재하며, 현대에 들어서는 과거에 비해 지위가 비교적 상승하긴 했으나 여전히 비구니는 비구의 종속적 위치에 있다. 이 밖에도 다수의 개신교는 현재도 여성 목사 안수를 불허하며, 대대로 남성 교황을 필두로 해 온 가톨릭 역시 종교적 자유는 인정하나, 주요 보직을 둘러싼 종교 내 정치적 자유는 불허하는 반쪽 평등을 고수한다. 조선시대 유교사상의 심화는 남성 중심 사회를 만들었고 이것은 남존여비, 남성우월사상으로 가지를 뻗쳤다. 사상이 또 다른 사상을 낳으면서 17세기 이후 조선 여성들은 ‘칠거지악’, ‘삼종지도’ 등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예속적 숙명을 따라야 했다. 결국 시대와 종교, 국가를 불문하고 인류는 끊임없이 남성과 여성을 구별해 왔으며, 이러한 구별이 나아가 차별 및 남성우월주의로 발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여권신장·양성평등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지금 이 시간에도 남성우월주의를 타파하고 여성 인권 신장을 이루기 위한 각양각색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 흥미로운 것은 신(神)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성차별을 지양하려는 움직임이다. 지난해 영국 성공회 교회의 한 여성 주교는 신을 표현할 때 남성을 지칭하는 대명사인 ‘그’(He) 대신 ‘신’(God)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글로스터의 레이첼 트레위크 주교는 “신은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그렇다고 신(God)이 남성(Male)인 것은 아니다. 신은 신일 뿐(God is God)”이라면서 “신을 묘사할 때 ‘그’(He) 또는 ‘그녀’(She)의 대명사를 쓰는 것보다는 ‘신’(God)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면서 “나는 그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조금씩 변해 가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신학자들은 “언제나 신이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말해 왔지만 우리가 스스로 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신에게는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기나긴 역사적·종교적 근거를 들어, 누군가는 남성우월주의를 포함한 성차별적 습성이 인류의 내재된 본성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남성우월주의와 여성 차별은 그저 문화적 차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성(神性)의 성별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신학자들의 주장처럼 여성과 남성의 가치를 달리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남녀가 아직 평등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기 마련이다. 성 평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남성우월주의가 타파됐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과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huimin0217@seoul.co.kr
  • “개는 1만 2000년 전 아시아와 유럽서 각각 가축화” (사이언스紙)

    “개는 1만 2000년 전 아시아와 유럽서 각각 가축화” (사이언스紙)

    인간 최고의 반려동물인 개는 언제, 어디서부터 우리와 친구가 됐을까? 최근 영국 옥스퍼드 대학 등 공동연구팀은 개는 1만 2000년 전 부터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각각 가축화되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유명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그간 학계에서는 인간과 개가 언제부터 함께 살았는지,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속시원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늑대와 개의 화석이 매우 유사해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거 발굴된 갯과 화석 분석을 통해 개의 가축화를 길게는 3만 년 전부터 짧게는 신석기 시대인 1만 년 전 정도로 추정해 왔다. 이번 연구결과는 동양과 서양의 연구팀들이 서로 '개의 가축화는 우리가 최초'라는 주장에 대해 양 쪽 손을 모두 들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곧 서양 연구진들은 최초 늑대였던 개가 유럽에서 가축화돼 전세계로 퍼졌나갔다고 주장해왔으며 중국 등 아시아 측은 그 반대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번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방법은 고대 개의 DNA를 추출해 현대 개와 비교하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아일랜드 뉴그레인즈의 신석기 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4800년 된 개 뼈와 1만 4000년 전~3000년 전 살았던 58마리 개 화석의 DNA를 추출했다. 이어 이 결과를 현대 개 2500마리의 DNA와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유럽 개와 동아시아 개 사이의 분명한 유전적인 차이가 확인됐다.   연구를 이끈 로렌 프란츠 박사는 "이 결과는 인류가 개를 길들인 것이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라는 의미"라면서 "곧 개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각자 인간에게 길들여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어느 시점에서 동아시아의 개가 인간과 함께 유럽으로 들어왔다"면서 "이 개가 유럽 토종개와 섞이면서 진화해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개의 기원과 관련된 학계의 주장은 견종만큼이나 다양하다. 특히 이중 지난해 연말 중국과학원 쿤밍(昆明) 동물연구소와 스웨덴 왕립기술원이 발표한 논문은 주목해 볼 만하다. 전세계에서 발굴된 회색 늑대를 포함한 총 58개 갯과 화석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한 연구팀은 개의 가축화가 지금으로부터 3만 3000년 전 지금의 중국 대륙 남쪽 부근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개들이 1만 5000년 전 아시아를 벗어났고, 1만 년 전 유럽에 도달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왜 개들은 아시아 땅을 떠나 멀고 먼 유럽으로 이동했을까?  연구를 이끈 쿤밍 동물연구소 야핑 장 박사는 “초기의 개들은 인류와 느슨한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면서 “주로 인간들의 정착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음식 찌꺼기를 먹다가 함께 살게 된 것이 개의 기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환경이 급변해 빙하기가 찾아오자 인류와 느슨한 교류를 한 개들이 인간을 따라가거나 자발적인 형태로 고향을 떠나 중동, 아프리카, 유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인간과 개가 친구가 된 이유 역시 두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과거 인간이 사냥 시 늑대를 동료로 활용해 이후 그중 일부 늑대가 개가 되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인간이 살던 거주지 주변의 음식물을 늑대가 먹기 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남성우월주의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미래

    [송혜민의 월드why] 남성우월주의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미래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으로 한국사회가 불안과 공포, 분노의 여진을 갖고 있던 지난달 29일 오전 3시(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20대 남성이 여대생(22)의 몸에 알콜을 끼얹고 불을 붙여 숨지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피해자의 전 남자친구가 자신과 헤어진 것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끔찍한 범죄였다. 현지에서는 이번 사건이 이탈리아에 만연한 남성 우월주의를 반영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및 우월주의가 개별 국가 단위를 초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이탈리아에서는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사건이 155건, 구타사건이 8856건, 스토킹 사건이 1261건에 달했지만, 이중 신고를 한 여성은 10%에 불과했다. 나머지 90%는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으로 이탈리아의 남성 우월적 사고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며 어린 시절부터 교육에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이러한 사상이 문제로 지적된 것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국가와 종교를 막론하고 보편적 사상으로 인식되어 온 남성우월주의, 그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남성우월주의를 품은 역사 남성우월주의의 역사는 수렵채집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존을 위해 자연과 동물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당시 인류가 스스로 집을 짓고 도구를 이용해 가축을 기르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타인 혹은 자연과 동물로부터 자신의 것, 공동체의 것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발생했다. 힘의 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남성과 여성의 명확한 구분이 시작됐고,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이들이 믿는 신의 모습은 대부분 ‘남성’이 되었을 만큼 남성은 우월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신화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수많은 신이 등장하지만 그중 최고는 단연 제우스다.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자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테네 여신 등 일부 여신이 제우스 못지않은 유명세를 떨쳤지만, 서구 신화 속 가장 우월한 신으로 제우스를 꼽는 것에 있어 반대하는 여론은 많지 않다. 종교는 또 어떠한가. 이슬람은 남녀 불평등 종교의 대표로 꼽힌다. 21세기에도 무슬림 여성들은 여전히 차도르와 히잡으로 온 몸을 감싸야 한다. 이를 단순히 옳고 그름이 아닌 문화적 차이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성차별로 대두되는 이슬람의 남성우월주의가 10세 전후 어린 소녀의 강제 결혼과 오로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염산테러 등의 폭력적 행태를 낳은 것만은 사실이다. 자비와 자애를 강조하는 불교에도 여자는 남자가 되어야만 성불할 수 있다는 전여신설(轉女身說), 여성은 제석천(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범천(불교의 호법수호신), 불타가 되지 못한다는 여인오장설(五障說) 등이 존재하며, 현대에 들어서는 과거에 비해 지위가 비교적 상승하긴 했으나 여전히 비구니는 비구의 종속적 위치에 있다. 이밖에도 다수의 개신교는 현재도 여성 목사 안수를 불허하며, 대대로 남성 교황을 필두로 해 온 가톨릭 역시 종교적 자유는 인정하나, 주요 보직을 둘러싼 종교 내 정치적 자유는 불허하는 반쪽 평등을 고수한다. 조선시대 유교사상의 심화는 남성 중심 사회를 만들었고 이것은 남존여비, 남성우월사상으로 가지를 뻗쳤다. 사상이 또 다른 사상을 낳으면서 17세기 이후 조선 여성들은 ‘칠거지악’, ‘삼종지도’ 등으로 대변되는 여성의 예속적 숙명을 따라야 했다. 결국 시대와 종교, 국가를 불문하고 인류는 끊임없이 남성과 여성을 구별해 왔으며, 이러한 구별이 나아가 차별 및 남성의 우월주의로 발전하는 결과를 낳았다. ◆성 평등을 위한 노력 지금 이 시간에도 남성우월주의를 타파하고 여성 인권신장을 이루기 위한 각양각색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 흥미로운 것은 신(神)의 성별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서 인간의 성 차별을 지양하려는 움직임이다. 지난 해, 영국 성공회 교회의 한 여성 주교는 신을 표현할 때 남성을 지칭하는 대명사인 ‘He’ 대신 ‘God’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글로스터의 레이첼 트레위크(Rachel Treweek) 주교는 “신은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그렇다고 신(God)이 남성(Male)인 것은 아니다. 신은 신일 뿐(God is God)”이라면서 “신을 묘사할 때 ‘그’(He) 또는 ‘그녀’(She)의 대명사를 쓰는 것 보다는 ‘God’의 표현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면서 “나는 그 누구도 불쾌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사람들이 조금씩 변해가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신학자들은 “언제나 신이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고 말해왔지만 우리가 스스로 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신에게는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기나긴 역사적·종교적 근거를 들어, 누군가는 남성우월주의를 포함한 성 차별적 습성이 인류의 내재된 본성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남성우월주의와 여성 차별은 그저 문화적 차이에 불과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성(神性)의 성별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신학자들의 주장처럼, 여성과 남성의 가치를 달리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남녀가 아직 평등하지 않다.’는 전제가 있기 마련이다. 성 평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남성우월주의가 타파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과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울산 암각화 포르투갈서 특별전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와 국보 147호 천전리각석 등 울산 암각화가 포르투갈에서 특별전을 갖는다. 반구대암각화가 학계에 보고된 이후 45년 만에 첫 해외 전시다. 울산암각화박물관은 선사시대 유적인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 등 울산 암각화 관련 자료 300여점을 다음 달 18일부터 10월 16일까지 포르투갈 코아박물관에 전시한다고 18일 밝혔다. 특별전은 ‘울산 반구대 인 코아 밸리’(Ulsan Bangudae In Coa Valley)를 주제로 코아박물관 3개 기획전시설 모두를 사용한다. 전시물은 반구대암각화 모형과 천전리각석 탁본, 복제유물, 사진, 동영상, 그림 등 300여점이다. 반구대암각화 모형은 축소 또는 부분 모형을 3D프린팅으로 제작할 계획이고, 가로 10m·높이 3m의 천전리각석은 실제 크기로 탁본할 예정이다. 이 밖에 국내 소규모 암각화와 신석기·청동기 유물 일부도 전시한다. 울산시는 특별전 개막일에 맞춰 행정부시장을 단장으로 한 방문단을 포르투갈에 파견할 예정이다. 이상목 울산암각화박물관장은 “암각화로 유명한 코아박물관이 해외 암각화를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반구대암각화가 세계적인 문화유산임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 선사시대 마을 40년 만에 정밀 발굴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 선사시대 마을 40년 만에 정밀 발굴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이 40년 만에 정밀 발굴에 들어간다. 선사시대 마을의 정확한 구조를 처음으로 파악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강동구는 암사동 유적의 남측 경계부와 움집터 지점을 합쳐 992㎡의 정밀 발굴에 착수한다고 28일 밝혔다. 유적의 원지형과 지표를 파악하고, 한강변 자연제방을 따라 분포하고 있는 신석기 문화층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발굴 조사는 오는 7월까지 계속된다. 결과에 따라 연차적으로 추가 발굴조사가 진행될 계획이다. 암사동 유적은 1925년 집중 호우로 한강 일대가 휩쓸려 내려가며 처음 존재가 알려졌다. 당시 땅 밑에 묻혀 있던 엄청난 양의 토기들이 출토됐다. 이후 1967년 장충고교 야구장을 짓고자 토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시 빗살무늬 토기와 돌무지 등이 대거 드러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경희대학교의 조사를 시작으로 1971~197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됐다.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취락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도구들이 출토돼 1979년 7월 사적 제267호로 지정됐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시작됐지만, 공사나 시설물 설치를 위한 부분적 조사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전기·통신 간선 공사를 위한 조사에서 신석기 시대 문화층이 처음 발견됐다. 당시 현장을 방문한 문화재청 위원들과 전문가들은 학술 자료 수집을 위해 지속적인 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에 구는 문화재청 및 서울시와 협의해 정밀 발굴조사를 위한 예산을 확보했다. 발굴 기간에는 유물 보호를 위해 공개가 제한되지만, 어린이날인 다음 달 5일엔 발굴현장 깜짝 공개가 있을 예정이다. 어린이들이 실제 발굴 현장에 들어가 보고 유물 발굴을 체험할 기회다. 사전 접수가 필수다.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발굴조사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석기시대 마을 유적의 새로운 면모가 밝혀지길 바란다”면서 “암사동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도 힘이 실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 선사시대 마을 40년 만에 정밀 발굴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 선사시대 마을 40년 만에 정밀 발굴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이 40년 만에 정밀 발굴에 들어간다. 선사시대 마을의 정확한 구조를 처음으로 파악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강동구는 암사동 유적의 남측 경계부와 움집터 지점을 합쳐 992㎡의 정밀 발굴에 착수한다고 28일 밝혔다. 유적의 원지형과 지표를 파악하고, 한강변 자연제방을 따라 분포하고 있는 신석기 문화층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발굴 조사는 오는 7월까지 계속된다. 결과에 따라 연차적으로 추가 발굴조사가 진행될 계획이다. 암사동 유적은 1925년 집중 호우로 한강 일대가 휩쓸려 내려가며 처음 존재가 알려졌다. 당시 땅 밑에 묻혀 있던 엄청난 양의 토기들이 출토됐다. 이후 1967년 장충고교 야구장을 짓고자 토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시 빗살무늬 토기와 돌무지 등이 대거 드러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경희대학교의 조사를 시작으로 1971~197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됐다.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취락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도구들이 출토돼 1979년 7월 사적 제267호로 지정됐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시작됐지만, 공사나 시설물 설치를 위한 부분적 조사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전기·통신 간선 공사를 위한 조사에서 신석기 시대 문화층이 처음 발견됐다. 당시 현장을 방문한 문화재청 위원들과 전문가들은 학술 자료 수집을 위해 지속적인 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에 구는 문화재청 및 서울시와 협의해 정밀 발굴조사를 위한 예산을 확보했다. 발굴 기간에는 유물 보호를 위해 공개가 제한되지만, 어린이날인 다음 달 5일엔 발굴현장 깜짝 공개가 있을 예정이다. 어린이들이 실제 발굴 현장에 들어가 보고 유물 발굴을 체험할 기회다. 사전 접수가 필수다.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발굴조사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석기시대 마을 유적의 새로운 면모가 밝혀지길 바란다”면서 “암사동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도 힘이 실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암사동 유적, 40년 만에 정밀 발굴

    암사동 유적, 40년 만에 정밀 발굴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이 40년 만에 정밀 발굴에 들어간다. 선사시대 마을의 정확한 구조를 처음으로 파악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강동구는 암사동 유적의 남측 경계부와 움집터 지점을 합쳐 992㎡의 정밀 발굴에 착수한다고 28일 밝혔다. 유적의 원지형과 지표를 파악하고, 한강변 자연제방을 따라 분포하고 있는 신석기 문화층을 집중 조사할 계획이다. 발굴 조사는 오는 7월까지 계속된다. 결과에 따라 연차적으로 추가 발굴조사가 진행될 계획이다. 암사동 유적은 1925년 집중 호우로 한강 일대가 휩쓸려 내려가며 처음 존재가 알려졌다. 당시 땅 밑에 묻혀 있던 엄청난 양의 토기들이 출토됐다. 이후 1967년 장충고교 야구장을 짓기 위해 토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시 빗살무늬 토기와 돌무지 등이 대거 드러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경희대학교의 조사를 시작으로 1971~1975년 국립중앙박물관의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됐다.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취락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도구들이 출토돼 1979년 7월 사적 제267호로 지정됐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발굴조사가 시작됐지만 공사나 시설물 설치를 위한 부분적 조사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전기·통신 간선 공사를 위한 조사에서 신석기 시대 문화층이 처음 발견됐다. 당시 현장을 방문한 문화재청 위원들과 전문가들은 학술 자료 수집을 위해 지속적인 발굴조사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에 구는 문화재청 및 서울시와 협의해 정밀 발굴조사를 위한 예산을 확보했다. 발굴 기간 동안에는 유물 보호를 위해 공개가 제한되지만 어린이날인 다음 달 5일엔 발굴현장 깜짝 공개가 있을 예정이다. 어린이들이 실제 발굴 현장에 들어가 보고 유물 발굴을 체험할 기회다. 사전 접수가 필수다.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발굴조사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신석기시대 마을 유적의 새로운 면모가 밝혀지길 바란다”면서 “암사동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도 힘이 실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新국토기행] 해 뜬다… 동해안 최대 휴양도시도 뜬다

    [新국토기행] 해 뜬다… 동해안 최대 휴양도시도 뜬다

    해 오름의 고장 강원 양양군이 지금의 지명으로 자리잡은 지 올해로 꼭 600주년을 맞는다. 고려시대(1416년)에 양주(襄州)에서 양양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수려한 동해를 끼고 있는 양양은 천년 고찰 낙산사, 조선 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의 전설이 있는 하조대, 강원 지역 3대 미항 중 하나인 남애항, 요트의 산실 수산항 등의 관광 명소가 59.57㎞ 해안선을 따라 즐비하다. 울창한 산림과 바다, 계곡 등 다채로운 자연을 배경으로 국내 최고의 힐링과 휴양, 레저의 고장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설악산국립공원에는 오색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고, 서울~양양을 잇는 동서고속도로, 속초~삼척을 잇는 동해고속도로가 교차되면서 양양은 동해안 최대 관광·휴양도시로 뜨고 있다. 양양국제공항도 오는 24일부터 중국 상하이 정기 항로가 다시 열리는 등 활성화되고 있다. 국제도시로, 지역 관문으로 톡톡히 한몫할 것으로 보인다. 600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전통과 자부심이 고스란히 남아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청정 자연 속 양양군의 속살을 찾아 봄 여행을 떠나 보자. >> 볼거리 ●희망의 서운이 깃든 천년 고찰 낙산사 신라 문무왕 676년 의상 대사가 홍련암에서 기도해 관음보살을 친견한 뒤 낙산사를 창건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처음 나온다.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풍광과 함께 부처님 진신사리가 출현한 보물 제1723호 해수관음공중사리탑, 보물 제1362호 건칠관음보살좌상, 보물 제499호 칠층석탑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낙산사 의상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상서로운 구름과 여섯 마리 용이 해를 떠받치는 듯, 바다에서 해가 떠날 때는 온 세상이 흔들리고, 하늘에 해가 오르자 털끝이 보일 만큼 환하다”고 읊었다. 그만큼 낙산사는 일출의 명소이고 희망의 서운(瑞運)이 깃든 곳이다. 2005년 대형 산불로 소실된 뒤 단원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기초로 7동의 주요 전각을 조선시대 초기 사찰의 원형 그대로 살려냈다. 큰 법당인 원통보전 입구에는 한국전쟁 때 소실됐던 빈일루(賓日樓)가 단원의 그림대로 복원됐고 설선당, 정취전, 응향각 등의 건물이 옛 문헌의 기록을 기초로 되살아났다. 웅장한 자태로 다시 태어난 원통보전에는 화재 당시 스님들이 지켜 낸 건칠관음보살과 칠층석탑 등의 보물도 옛모습 그대로 자리잡았다. ●산림 휴양 체험 공간 송이밸리자연휴양림 송이밸리자연휴양림은 2012년 양양읍 월리 일대 46㏊에 조성됐다. 산림휴양관, 숲속의 집, 목재문화체험장,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등 조용히 자연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복합 산림 휴양 체험 공간이다. 임도를 활용한 MTB 코스와 왕복 2시간 코스의 구탄봉 등산로에서 자전거, 트레킹은 물론 짜릿한 집라인(줄을 타고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레포츠)도 즐길 수 있다. 목재문화를 체험하고 국산 목재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재문화체험장은 건물의 아름다움과 내구성, 내실 있는 운영 등을 인정받아 지난해 ‘굿 디자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1층 체험장에서 운영되는 목재 체험 프로그램은 목재체험지도사의 지도하에 산림 부산물을 활용해 액세서리, 솟대, 보석함 등을 만들어 보는 기초 프로그램과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담은 테이블, 서랍장, 수납장 등 원목 가구를 직접 만들어 보는 목공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세계문화유산 추진 아이들과 함께라면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이 제격이다. 오산리선사유적은 남한 신석기 유적 중 최고(기원전 6000년경)의 연대를 나타내며 신석기문화의 전파 및 교류에 중요한 과학적 단서를 제공하는 유적이다. 유물 가운데 오산리형 토기와 오산리형 이음낚시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고고학 사전에 등재됐다. 박물관에 전시된 덧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유물 중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박물관의 자랑거리다. 최근 서울 암사동 유적지와 함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오산리 출토 흑요석을 엑스레이 형광선으로 분석한 결과 그 성분이 남한 일대에서 출토된 흑요석은 한결같이 일본 규슈가 원산지인 반면 오산리 것은 400㎞ 이상 떨어진 백두산이 원산지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6000년 전 조상의 숨결을 느끼며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천년기념물 지정 주전골 입구 오색약수터 오색주전골에서 흘림골로 이어지는 길은 세속의 근심과 걱정을 덜어 내는 아름다운 길이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 번뇌를 물리치고자 한다면 오색의 비경을 담아 갈 일이다. 주전골 입구에 있는 오색약수터는 2013년 물로는 처음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맛이 짜릿하고 철분 냄새가 많이 나지만 예부터 아픈 곳을 낫게 하고 활력을 찾게 해 준다고 전해진다. 인근에 있는 오색온천에서 몸을 담근 뒤 더덕향이 그득한 산채비빔밥을 먹고 나면 그야말로 웰빙이다. 2018년부터는 오색온천 인근에서 오색 끝청까지의 3.5㎞ 구간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게 된다. 장애인, 노약자들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장엄한 설악의 비경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영동 최대 5일장, 양양 전통시장 4일, 9일에 열리는 양양 5일장. 사시사철 시골 할머니들이 나물이며 장아찌, 잡곡들을 장마당에 내어놓고 송천떡마을 부녀회에서는 새벽 일찍 만든 떡을, 임천리 마을에서는 전통 방식의 한과(과줄)를 내다 판다. 요즘 장터에는 봄바람 따라 산나물이 가득하다. 쑥, 냉이, 달래, 참두릅, 개두릅, 명이나물, 취나물, 곤드레, 고사리, 눈개승마, 얼러지 등이 제각기 향을 뽐내면서 입맛을 자극한다. 시장 안에는 갓 잡아 올린 문어, 임연수 등의 생선류와 지누아리, 돌김, 사과, 배 등 양양산 먹거리들이 즐비하고 남대천 둔치 쪽에서는 토마토, 오이, 가지, 수박 등의 과채류와 상추, 쑥갓 등의 채소류 모종, 어린나무들을 사고파는 손길이 분주하다. 어디를 가도 맛있고 정감 있는 양양시장의 밥집들과 시장을 가득 메운 먹거리들에서 봄의 원기를 듬뿍 느낄 수 있다. 양양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먹거리 ●명품 황금송이(松栮) 양양의 깊은 산과 울창한 숲, 수십년 된 소나무 아래에서 나는 양양송이는 그 향과 맛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른 버섯들은 죽은 나무에서 균이 발생해 버섯으로 자라지만 유독 송이는 살아 있는 소나무 뿌리에서 균이 발생해 버섯으로 자라는 것이어서 양양송이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2006년에는 양양송이가 생산지의 기후, 풍토 등 지리적 특성과 밀접하게 연계돼 품질이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받아 지리적 표시제 제1호로 산림청에 등록되기도 했다. 송이와 한우 등심을 넣어 만든 송이버섯전골은 송이의 향과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바다의 맛 자연산 홍합 ‘섭’ 동해에서 나는 자연산 홍합을 ‘섭’이라 부른다. 자연산 홍합은 껍데기가 흑진주처럼 반들거리고 보랏빛이 감돈다. 양식보다 2배쯤 크고 값도 비싸다. 고단백 저지방 다이어트 식품으로, 간의 해독 작용을 돕는 타우린이 풍부하다. 술꾼들이 술 마신 다음날 섭국을 찾는 이유다. 양양에서는 섭을 썰어 넣고 부추, 미나리, 양파, 마늘, 고추장, 된장 등과 함께 끓여낸 섭국을 최고의 보양식으로 꼽는다. 기호에 따라 산초를 넣어 먹기도 한다. ●봄 산나물, 양양 산채 양양은 설악산, 점봉산,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악지대여서 다양한 산채가 풍성하게 자란다. 산채 주 생육기인 2~6월의 평균 일조시간이 190시간으로 짧아 부드럽고 향이 진한 게 특징이다. 양양 대표 산채는 참두릅, 개두릅, 명이나물, 취나물, 곤드레, 고사리, 눈개승마, 얼러지 등이다. 요즘은 생채가 많이 나서 가격도 비교적 싸고 푸짐해 한꺼번에 많이 구입해서 말리거나 냉동실에 보관해 놓고 수시로 무쳐 먹으면 일년 내내 봄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남대천에 황어와 뚜거리탕 여름 밤, 더위를 쫓으려 냇가에서 멱을 감고 토속 어종을 잡아 고추장, 막장 풀어 얼큰하게 탕으로 끓여 먹던 추억의 뚜거리탕은 양양의 별미다. 바다와 이어지는 남대천 하구 한계목에는 봄이면 황어가 올라오고 가을이면 연어가 올라온다. 먼바다에서 유영을 마치고 모천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은 봄마다 남대천에서 황어가 한창 상류로 올라갈 때 양양에서 많이들 하는 말이다. 임천보를 뛰어오르기 위해 황어가 떼 지어 있는 광경을 보면 이 말이 실감 난다. 연어와 달리 남대천에 오르는 황어는 그대로 회를 떠서 먹는다. 미나리, 양양 낙산 배, 깻잎 등 각종 채소를 넣고 초고추장에 무쳐 먹으면 춘곤증은 저만치 달아나고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남대천 토속 어종인 뚜거리탕 한 그릇을 비우면 보양식이 따로 없다. 추억과 고향을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양양의 봄맛이다. ●동치미 메밀국수 양양 메밀국수는 구룡령이 있는 서면 갈천리와 설악산 화채능선 아래 강현면 간곡리, 둔전리, 장산리 마을에서 많이 먹었다. 섬유질이 많아 옷감 재료로 쓰기도 했던 느릅나무의 껍질을 봄철에 벗겨 말려 뒀다가 곱게 가루를 내 부족한 메밀가루나 옥수수가루와 섞어 눌러 먹었다. 지금은 고기 육수와 동치미 육수 두 가지로 나뉘지만 당시에는 동치미 육수로 먹었다. 양양에는 메밀국수 전문점이 50여 곳 있다. 가장 많이 있는 곳은 장산리 일대로 동치미 메밀국수집 20여 곳이 성업 중이다. 봄 햇볕이 따가운 날, 시원한 동치미 메밀국수 한 그릇이면 양양의 맛은 모두 섭렵했다고 할 수 있다. 양양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8000년 전 치른 개의 장례는 인간처럼 엄숙했다(연구)

    8000년 전 치른 개의 장례는 인간처럼 엄숙했다(연구)

    인간 최고의 반려동물인 개가 주인과 나란히 묻힌 무덤이 발굴됐다. 최근 캐나다 앨버타 대학 연구팀은 시베리아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호 인근에서 사람과 개가 나란히 묻힌 무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굴이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 옆에 누워있는 개의 유골 때문이다. 이 개는 장신구를 한 상태였으며 그 옆에는 숟가락도 놓여있어 마치 사람처럼 매장돼 있었다. 이는 곧 저승에서 굶지 말고 잘 살라는 의미의 장례 풍습이 개에게도 적용된 것. 연구팀은 유골 분석결과 개가 5000년~8000년 사이 묻힌 것으로 추정했으며, 결과적으로 이 당시에도 인간과 개가 '친구 사이'였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연구를 이끈 로버트 로지 박사는 "최대 8000년 전 사회에서도 개가 사람 같은 대우를 받을 만큼 친숙했다는 의미"라면서 "한 무덤의 경우 사람 양 옆으로 개 두 마리가 정성스럽게 묻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발굴된 무덤만 봐도 사람과 개의 인연이 수천 년 이상 이어져 왔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처럼 개는 인간 최고의 반려동물이지만 언제,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는 아직 속시원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늑대와 개의 화석이 매우 유사해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존에 발굴된 갯과 화석 분석을 통해 개의 가축화를 길게는 3만 년 전부터 짧게는 신석기 시대인 1만 년 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인간과 개가 친구가 된 이유 역시 두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과거 인간이 사냥 시 늑대를 동료로 활용해 이후 그중 일부 늑대가 개가 되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인간이 살던 거주지 주변의 음식물을 늑대가 먹기 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장례 치른 뒤 주인과 함께 묻힌 8000년 전 개 유골 발견

    장례 치른 뒤 주인과 함께 묻힌 8000년 전 개 유골 발견

    인간 최고의 반려동물인 개가 주인과 나란히 묻힌 무덤이 발굴됐다. 최근 캐나다 앨버타 대학 연구팀은 시베리아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호 인근에서 사람과 개가 나란히 묻힌 무덤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굴이 눈길을 끄는 것은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 옆에 누워있는 개의 유골 때문이다. 이 개는 장신구를 한 상태였으며 그 옆에는 숟가락도 놓여있어 마치 사람처럼 매장돼 있었다. 이는 곧 저승에서 굶지 말고 잘 살라는 의미의 장례 풍습이 개에게도 적용된 것. 연구팀은 유골 분석결과 개가 5000년~8000년 사이 묻힌 것으로 추정했으며, 결과적으로 이 당시에도 인간과 개가 '친구 사이'였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연구를 이끈 로버트 로지 박사는 "최대 8000년 전 사회에서도 개가 사람 같은 대우를 받을 만큼 친숙했다는 의미"라면서 "한 무덤의 경우 사람 양 옆으로 개 두 마리가 정성스럽게 묻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 발굴된 무덤만 봐도 사람과 개의 인연이 수천 년 이상 이어져 왔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처럼 개는 인간 최고의 반려동물이지만 언제,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는 아직 속시원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늑대와 개의 화석이 매우 유사해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존에 발굴된 갯과 화석 분석을 통해 개의 가축화를 길게는 3만 년 전부터 짧게는 신석기 시대인 1만 년 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인간과 개가 친구가 된 이유 역시 두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과거 인간이 사냥 시 늑대를 동료로 활용해 이후 그중 일부 늑대가 개가 되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인간이 살던 거주지 주변의 음식물을 늑대가 먹기 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화성행궁 갔다가 박물관 투어하고 오지요

    [명인·명물을 찾아서] 화성행궁 갔다가 박물관 투어하고 오지요

    수원 화성 축성 과정 직접 볼 수 있어 서예박물관에 영·정조가 쓴 어필첩도새달부터 박물관 3곳 야간 관람 가능 경기 수원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 등 볼거리와 먹거리가 즐비한 곳이다. 팔달산을 중심으로 5.7㎞에 걸쳐 있는 화성은 성문, 누대 등 건축양식이 동양 성곽의 웅대함과 서양 성곽의 아름다움, 실용성을 모두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융릉을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 처소로, 우리나라 행궁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수원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늘고 있다. 그런데 수원을 찾는 쏠쏠한 재미가 더 생겼다. 바로 수원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수원광교박물관 등 수원시 박물관 3형제와 최근 문을 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덕분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박물관의 불모지였던 곳에 볼거리로 가득 찬 박물관과 미술관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수원이 역사·문화·체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화성에 관한 모든 것… 수원화성박물관 화성행궁 인근에 있는 수원화성박물관에서는 화성의 축성과 정조에 얽힌 역사적 사실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문을 연 박물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에 화성축성실, 화성문화실, 기획전시실 등 3개 전시실과 야외 전시장을 갖췄다. 보물 1477호 번암 채제공(1720~1799) 초상화를 포함해 252건 740점(기증 147점, 구입 593점)의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화성축성실은 화성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 준다. 정조가 화성행차 때 입었던 황금갑옷, 축성 보고서 ‘화성성역의궤’ 영인본, 정조가 화성 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어찰, 규장각과 화성박물관만 소장하고 있는 정조문집 ‘홍재전서’ 완질본, 국내 2점뿐인 사도세자의 대리청정 유훈교서 등도 전시하고 있다. 화성문화실에서는 1795년 윤2월 정조의 8일간 화성행차를 팔폭 병풍에 그린 ‘화성능행도병’ 모사도, 화성유수 채제공의 영정과 정조가 채제공에게 보낸 어찰, 필사본 번암선생집, 정조의 정예 친위부대 장용영의 복식과 무기 등을 볼 수 있다. ●수원의 과거~미래 한눈에 수원박물관 2008년에 개관한 수원박물관은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다양하게 보여 주는 ‘수원역사박물관’과 한국서예사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한국서예박물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수원역사박물관은 ‘수원의 자연환경’, ‘선사·역사시대의 변천사’, ‘수원로의 개설’, ‘60년대 수원 만나기’, ‘근대 수원의 문화’ 등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과거·현재·미래의 시점과 주제별로 보여 준다. 또 지방자치단체에서 최초로 건립한 한국서예박물관은 6000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예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서예의 이해’, ‘서예의 감상’, ‘문방사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중요 작품으로는 영조와 정조가 친히 쓴 어필첩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야외전시장에는 수원에서 관리를 지낸 인물들의 업적을 나타내는 선정비, 의장석물, 묘제석물, 생활 유물 등을 곳곳에 배치했으며 ‘어린이체험실’에서 다양한 역사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고 소개했다. ●‘어린이체험실’ 갖춘 수원광교박물관 2014년 3월 개관한 수원광교박물관은 수원시의 세 번째 공립박물관으로 영통구 광교역사공원에 들어서 있다. 1층 광교 역사문화실에서는 광교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 등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의 유물을 볼 수 있다. 개발 전 광교 골짜기 마을에 대한 민속, 문화, 생태, 생활사 자료도 한데 모아 옛 정취를 보존했다. 수원 출신 역사학자 사운 이종학(1927~2002) 선생과 학창 시절을 수원에서 보낸 소강 민관식(1918~2006) 선생이 기증한 유물도 별도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사운 이종학실에서는 2004년 유족이 기증한 충무공 이순신과 독도 포함 영토 관련 사료, 일제 침략사 등 2만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소강 민관식실에 전시한 3만여점은 민관식 선생이 국회의원, 문교부 장관, 국회의장 직무대리 등을 하며 평생 수집한 것으로 2010년 기증받았다. 어린이들이 역사와 문화를 놀면서 접할 수 있는 ‘어린이체험실’도 갖춰져 있다. 시는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맞아 다음달부터 수원박물관과 수원화성박물관, 수원광교박물관 등 지역 내 박물관 3곳에서 야간 관람을 실시한다. 관람시간을 오후 6시에서 9시로 연장하며 휴관일인 매달 첫째주 월요일과 토요일, 공휴일은 제외된다. ●4개월 만에 관람객 5만명 돌파 아이파크미술관 화성행궁광장 옆에 들어선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개관 4개월 만인 지난달 말 현재 누적 관람객 5만명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수원 최초의 시립미술관으로 연면적 9661㎡에 5개의 전시실, 예술전문 도서관, 교육실, 카페테리아 등 관람객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통과 현재가 소통하는 곳’이란 주제로 건립된 이 미술관은 화성의 전통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변 경관과 어울리면서도 기하학적인 현대미를 최대한 살린 게 특징이다. 미술관 전면에는 확 트인 투명창을 설치해 관객들이 전시품을 관람하면서 동시에 화성행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했다. 미술관 안에는 ‘포니정홀’도 마련했다.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자동차인 ‘포니’를 개발한 현대자동차 초대 사장인 정세영 명예회장을 기리는 공간이다. 미술관은 지난해 11월 나혜석(1896~1948)의 유족으로부터 ‘자화상’, ‘김우영초상’ 등 나혜석의 미공개 유작 2점을 기증받았다. 한국 최초의 여성 유화가인 나혜석의 두 작품은 한국 근대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미술관 측은 밝혔다. 미술관은 오는 4월 나혜석 탄생 120주년을 맞아 나혜석 기념 전시를 개최한다. 염태영 시장은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와 수원화성 완공 220주년을 맞아 특색 있는 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한편 수원화성과 수원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수원화성박물관, 전통시장 등 기존의 자원과 함께 관광 인프라를 확대해 연계성을 높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열린세상] 디지털 원시사회를 벗어나는 길/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디지털 원시사회를 벗어나는 길/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고학은 인간의 역사를 도구의 재질에 따라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세분한다. 이런 고고학적 시대법을 현대에도 적용한다면 산업혁명 이후 20세기까지는 석탄과 석유를 원동력으로 거대한 기계를 사용해 재화를 생산하는 화석연료시대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스크린과 간단한 터치만으로 인간의 생각과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디지털의 시대가 열렸다. 철기시대까지가 인간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이었다면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화석연료시대는 인간의 육체가 과도한 노동에서 해방되는 시기였다. 디지털시대는 육체뿐 아니라 두뇌마저 사고하고 판단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생각마저 필요 없는 편리의 극대화로 인간은 수천 년간 쌓아 온 자신의 능력을 잃고 퇴행하는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인간의 역사는 발전인 동시에 망각의 역사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술과 기계의 발명이 파급되면서 그 이전의 지식들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100여년 전 마부들의 노련한 말 다루는 기술과 조련법은 자동차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그런데 디지털시대는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은 도입하지 않고 기존의 기술과 지식을 모두 잃어버린다는 점에서 지난 역사와는 다르다. 내비게이션의 등장으로 자동차 운전자의 공간을 판단하는 능력이 사라졌고, 조만간 운전자조차 사라질 것이다. 스마트폰의 앱들을 사용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많은 기술이 얼마나 많이 사라지고 있는가. 또한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사회의 특성상 유사한 정보들이 쏟아지면서 사람들은 진위를 판단할 능력을 상실했다. 그 결과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보고 믿으며 비슷한 생각의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은 폭넓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원래의 취지 대신에 자기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공유하는 쪽으로 발달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 도는 유사역사학의 허황된 이야기나 예언 또는 의학정보를 진실처럼 믿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이런 경향과 맞물린다. 극히 제한된 정보를 믿으며 고립돼 살아간다는 점에서 원시사회의 모습과 비슷한 ‘디지털 원시사회’라고 할 수 있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특정한 지역을 근거로 혈연 및 사회경제적 동질성으로 하나의 집단을 이루었다. 디지털 원시사회는 지역과 나이를 초월하고, 외형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은 숨긴다. 지하철 옆자리의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온라인에서는 극우 인종주의자로 활동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사람들은 실제 접촉을 꺼리고 온라인에서 맺은 자기 ‘부족’들과의 접촉으로 자신을 고립시키고 제한된 정보만을 맹신하게 된다. 인간이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이유는 끊임없이 주변과 교류하며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체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원시시대에는 사람 사이의 개방된 교류와 협력이 어려워서 사회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퇴행할 위험은 더 커지게 됐다. 디지털시대의 또 다른 고민은 인간의 신체와 두뇌 구조는 인간의 기술보다도 훨씬 느리게 변화한다는 데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지난 수백만 년간의 변화보다도 훨씬 극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와 두뇌 구조는 4만~5만년 전 현생인류가 등장했던 시절과 거의 차이가 없다.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는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이루어진다. 수만 년간 오감을 통해 정보를 얻고 체득해 온 인간이 갑자기 디지털 사회가 돼서 손의 터치와 눈으로만 지식을 받아들이는 데 쉽게 적응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정보 속에서 간편하고 얕은 지식들을 주로 소비하는 퇴행적 행동을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진지하게 디지털 문명이 원시사회로 향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경계하며 고민해야 한다. 독서와 글쓰기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인문학은 지난 수천 년간 인간의 진화와 역사를 선도한 ‘검증된’ 방법이다. 이를 아날로그라는 말로 간단히 치부하고 인간의 본성을 고려하지 않은 디지털 사회가 이어진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 황폐하고 미개한 원시사회가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진화하고 발전해 온 수천 년 문명의 교훈을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 암사유적지, 세계유산 등재 준비 ‘착착’

    암사유적지, 세계유산 등재 준비 ‘착착’

    서울 강동구가 암사동 선사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다. 구는 국가사적 제267호인 암사동 유적의 문화재 보수·정비 국고보조사업비로 총 36억 5000만원을 확보했다고 7일 밝혔다. 암사동 유적을 위한 국고보조금으로는 1988년 전시관 개관 이래 최고 액수다. 구는 유적의 보존 등을 위해 지속적인 유지·보수사업을 추진했다. 지난해 4월 문화재청에 문화재 보수·정비 국고보조금을 신청하고 같은 해 7월에는 현지 실사단의 타당성 조사를 거쳤다. 특히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강력한 의지를 가진 이해식 강동구청장이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박물관 건립 등 기반 조성에 필요한 지원을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암사동 유적은 대표적인 국내 최대의 신석기시대 집단 취락지다. 구는 암사동 유적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매년 ‘강동선사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특히 제20회를 맞았던 지난해 축제에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주민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에 앞선 2014년 12월에는 ‘암사동 유적 세계유산 등재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전략적인 계획 수립과 추진에 나서고 있다. 과거 발굴 조사 결과 유적지 내에서 신석기 문화층이 확인돼 지속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구는 올해 정밀 발굴 조사를 할 예정이다. 이번 예산을 바탕으로 ▲움집 보수 ▲전시관 리모델링 ▲체험마을 정비 ▲소방시설 개선 등의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오는 10월에는 암사동 유적의 학술 연구 강화와 국제적 홍보를 위해 국제학술회의도 개최한다. 서울시와 문화재청, 학회 및 연구기관, 국내외 전문가 등이 함께 학술적 교류와 발굴 조사, 유적의 가치 보존에 대해 논의할 방침이다. 이 구청장은 “암사동 유적을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 잠정목록’에 올리는 것이 목표”라면서 “관계 기관과의 꾸준한 협의를 거쳐 확보한 국고 보조금을 바탕으로 유적의 문화적 가치와 위상 제고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2015 연구결산] ‘견공’이 유독 인간과 친밀한 이유는?

    [2015 연구결산] ‘견공’이 유독 인간과 친밀한 이유는?

    견공(犬公)이라는 말이 있다. 개를 의인화해 높여 이르는 말로 3만년 이상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이 지내온 반려동물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담겨있다. 그렇다면 사람과 개가 유독 친밀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5년 한해 인간과 개를 주제로 한 세계 각국 연구팀이 발표한 서적과 논문들을 정리해봤다. - 개는 인간 행동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별한다 지난 2월 일본 교토대 연구팀은 인간의 아주 오랜 친구인 개들은 우리가 자신들에 하는 행동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개는 일반적으로 사람 특히 주인이 무언가를 가리키면 해당 방향으로 달려간 뒤 냄새를 맡는 것이 상식이다. 이에 착안한 연구팀은 34마리의 개를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실시했다. 먼저, 한 연구원이 각 개를 대상으로 음식이 숨겨진 그릇이 있는 곳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개들은 해당 위치로 달려가 그릇 속에서 음식을 찾아내 먹는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같은 연구원이 음식이 들어있지 않은 그릇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개들은 역시 목표를 향해 충실하게 달려갔지만 먹이를 얻지 못했다. 이어 지시를 했던 연구원이 실제로 음식이 든 다른 위치의 그릇을 향해 다시 가리키자 거의 모든 개가 그의 지시를 무시했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원이 각각의 개를 향해 실제 음식이 있는 그릇을 가리키자 다시 개들은 해당 장소로 열심히 뛰어가 먹이를 발견했다. 연구를 이끈 다카오카 아키코 박사는 영국 B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개들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경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개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회적 지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능은 오랜 기간 인간과 살아오면서 선택적으로 진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동물의 기억력 평균 20초…개는 무려 2분   지난 2월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연구팀은 개와 침팬지 등 동물들의 기억력을 테스트하는 실험을 실시한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연구팀은 비둘기와 돌고래, 개코 원숭이와 침팬지와 개 등 총 25종의 동물들을 대상으로 ‘빨간점’을 보여준 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빨간점’과 ‘검은 사각형’을 보여줬다. 그 결과 동물들의 단기 기억 유지시간은 평균 27초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개코 원숭이와 돼지꼬리원숭이, 다람쥐원숭이 등의 기억력은 곤충 벌과 비교했을 때 매우 근소한 차이로 높았다. 사람과 매우 유사한 행동양식을 보이는 침팬지의 경우, 단기기억시간은 평균보다 낮은 20초였으며, 인류의 오랜 동반자인 개는 이중 가장 높은 2분을 기록했다. 개가 주인에게 훈계 및 훈련을 받아도 다시금 나쁜 버릇이 반복되는 것은 이러한 단기기억능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개도 ‘죄책감’ 느낄까? 개는 실수로 화병을 깨거나 물을 엎질렀을 때, 마치 눈치를 보듯 고개를 푹 숙이고 꼬리를 내린 채 ‘애처로운 눈빛’으로 주인을 바라본다. 주인은 이를 ‘미안해하는 애완견의 표정’이라고 단정내리기 쉽다. 하지만 개의 이러한 표정은 죄책감이라기보다는 그저 오랜 시간 인간의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로 살아오면서 터득한 하나의 ‘노하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8월 호주 애들레이드대학교의 수의학자인 수잔 하젤은 “개가 죄책감을 느끼거나 표현할 줄 안다는 증거가 없다. 슬픈 눈으로 꼬리를 내리고 바라보는 것은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이후 주인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서 나타나는 행동에 가깝다”면서 “이러한 행동은 뇌를 거치는 행동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에 베인 습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는 ‘사고’를 쳤을 때 주인이 먹이를 주지 않거나 혼낼 것을 두려워한다. 마치 ‘내가 잘못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은 그저 주인이 독자적으로 생각을 이입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 개는 선천적으로 인간을 구별할 줄 안다 지난 8월 미국 에모리대학 연구진은 개를 대상으로 뇌영상촬영기술(fMRI)을 이용한 검사를 실시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개의 측두엽이 사람과 개의 얼굴을 분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개는 선천적으로 사람과 같은 영장류를 구별하고 기억하는 인지능력이 있으며, 이 때문에 유독 사람과의 친분이 더욱 빨리 두터워질 수 있었다는 것. 연구를 이끈 에모리대학의 신경과학 전문가 그레고리 번스 교수 연구진은 우선 개가 안전한 뇌영상촬영기기(fMRI)에 들어간 뒤 움직이지 않고 모니터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훈련을 시켰다. 훈련 과정에서 강압적인 태도나 진정제 등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후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개들에게 사람의 얼굴을 담은 사진과 다른 생명체 또는 사물의 얼굴을 담은 사진을 보게 하며 fMRI를 촬영한 결과, 유독 사람의 얼굴을 볼 때에는 측두엽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을 확인했다. 자신과 같은 개의 얼굴을 볼 때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 인간과 개는 언제부터 친구가 됐을까?  인간 최고의 반려동물인 개는 언제부터 우리의 친구가 됐을까? 이달 초 중국과학원 쿤밍(昆明) 동물연구소와 스웨덴 왕립기술원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개는 3만 3000년 전 동아시아에서 처음 가축화되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간 학계에서는 인간과 개가 언제부터 함께 살았는지,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속시원하게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늑대와 개의 화석이 매우 유사해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거 발굴된 갯과 화석 분석을 통해 개의 가축화를 길게는 3만 년 전부터 짧게는 신석기 시대인 1만 년 전 정도로 추정해 왔다. 이번 공동연구팀의 결과는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에서 발굴된 회색 늑대를 포함한 총 58개 갯과 화석의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을 분석해 얻어졌다. 그 결과 개의 가축화는 지금으로부터 3만 3000년 전 지금의 중국 대륙 남쪽 부근에서 시작됐으며 이 개들은 1만 5000년 전 아시아를 벗어났고, 1만 년 전 유럽에 도달했다고 결론지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新국토기행] 경기 안산시

    [新국토기행] 경기 안산시

    경기 안산시는 수도권의 보물섬이다.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즐비한 데다 서울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거리에 있어 수도권 나들이객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시화방조제와 대부해송길, 풍도, 탄도 바닷길, 안산갈대습지공원, 다문화거리, 동주염전 등 안산 9경을 눈여겨볼 만하다. 안산 출신으로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성호 이익 선생을 비롯해 조선시대 대표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 소설 상록수로 유명한 최용신 선생의 계몽사상 등 다양한 학문과 문화·예술의 전통을 가진 곳이다. 인근에 인천국제공항과 평택항, 경부고속철도역사가 있고 수도권 전철망을 비롯해 서해안 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도로, 영동고속도로 등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춘 곳이어서 접근성이 용이하다. 안산시는 대부도를 중심으로 한 관광 인프라를 대한민국 최고의 보물섬으로 조성한다는 ‘보물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 그야말로 국내 대표 관광지로 비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볼거리>> 안산 여행의 중심은 단연 대부도이다. 안산의 하와이로 불리는 대부도는 시화방조제로 연결돼 육지가 된 섬이지만 아직도 섬이 가진 낭만과 서정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대부도를 방문한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가 시화조력발전소이다. ●‘안산의 하와이’ 대부도 필수 코스 시화조력발전소 2011년 완공된 세계 최대 규모로 연간 50만명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한다. 연간 31만 5000t의 이산화탄소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조력발전은 하루 두 번 밀물 때 발생하는 수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청정에너지를 말한다. 시화호는 최고 9m의 조수간만 차가 있어 국내에서 조력발전의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티라이트 공원은 발전소를 조성할 때 발생한 토사를 이용해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진 해상공원으로 여가공간, 휴식공간, 편의공간 등 약 15만㎡ 규모로 조성됐다. 휴게소는 식당과 카페 등이 있고 2층에는 전망대가 있어 시원한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조력문화관은 조력발전의 원리를 알아볼 수 있는 과학체험 학습공간으로 아이들은 물론 어른에게도 볼만한 구경거리다. 지난해 6월 개장한 75m 높이의 전망대는 시화호와 서해를 조망할 수 있는 안산의 랜드마크로 연간 150만명이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032)890-6520. ●대부도 해안선 따라 걷는 대부해솔길 제주올레길처럼 대부도의 해안선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구성됐다. 대부관광안내소에서 시작해 구봉도, 대부남동, 선감도, 탄도항을 거쳐 대송단지까지 연결돼 있다. 대부도 전체를 빙 둘러 걷는 해솔길은 대부도라는 섬이 가진 특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전체 길이 74㎞, 7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으며 특히 방아머리에서 돈지섬안길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개미허리 다리’로 연결된 ‘낙조전망대’는 바닷길 산책의 즐거움과 함께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낙조까지 감상할 수 있다. 1899-1720. ●1953년부터 재래 방식으로 최상급 소금 채취하는 동주염전 단원구 동주길 대동초등학교에서 대부황금로를 따라 선감도 방향으로 가다 보면 ‘바람과 태양, 하늘 그리고 소금’ 등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동주염전’이 있다. 1953년부터 염전을 시작해 지금까지 재래 방식을 고집해 소금을 채취하고 있다. 동주 천일염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고 한다. 갯벌 위에 옹기판을 깔아 생산하는데 옹기 사이 틈을 통해 갯벌과 소금이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 틈으로 중금속과 같이 인체의 나쁜 성분은 갯벌이 흡수하고 대신 갯벌이 가진 미네랄과 같은 좋은 성분은 소금이 흡수한다. 이처럼 최상급 천일염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염전 체험학습’을 운영하고 있다. (032)886-0900. ●사진작가가 사랑하는 섬 탄도… 누에섬 풍력발전기도 장관 탄도는 대부도 본 섬과 선감도, 불도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섬이다. 누에섬 등대전망대가 자랑거리다. 최대 높이 8m 내외로 밀물과 썰물이 하루 두 차례씩 드나든다. 이때 바다가 갈라지며 길이 드러나는 현상과 서해안의 낙조는 장관을 연출하기 때문에 사진작가와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부해솔길 제6코스에 해당하는 탄도항에는 안산어촌민속박물관과 누에섬 등대전망대가 있다. 가족단위 낚시를 즐기는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다. 바닷길을 통해 누에섬에 가다 보면 연간 1300여 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는 국내 최초(2009년 완공)의 750㎾급 풍력발전기 3기도 만날 수 있다. 1899-1720. ●‘최고의 포토존’ 구봉도 낙조전망대·작지만 아름다운 섬 풍도 구봉도 끝자락에 있는 낙조전망대로 구봉도를 대표하는 구조물이다. ‘석양을 가슴에 담다’라는 뜻을 가진 동그란 띠와 석양 모양의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석양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서해안 낙조를 즐길 수 있는 대부도 최고의 포토존으로 손꼽히고 있다. 1899-1720. 방아머리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타고 1시간 30분가량 가면 넓이 1.84㎢, 해안선 5㎞의 조그마한 풍도를 만날 수 있다. 풍도라는 이름 때문에 바람이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풍도는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楓島)라고 불린다. 우럭·노래미·야생화·몽돌이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1899-1720. ●외국 이색문화 체험할 수 있는 ‘국경 없는 마을’ 다문화거리 아시안 문화권의 음식점이 늘어선 이곳은 여기가 과연 한국일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국적인 장소이다. 외국의 이색적인 문화를 체험해 보고 싶다면 이곳을 찾으면 된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몽골, 베트남 등 60여개국 6만여 외국인의 생활공간으로 2009년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됐다. 일명 ‘국경 없는 마을’로 통하며 다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031)481-2232. ●노적봉공원 인공폭포·국내 최대 규모 안산갈대습지공원 노적봉공원 내에 설치된 인공폭포는 국내 최대의 장엄한 폭포수와 음악분수, 인공암벽 등을 갖추고 있다. 공원에는 장미원과 철쭉원, 야외결혼식장 등 다양한 볼거리·즐길거리 장소도 마련돼 시민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안산갈대습지공원은 시화호로 유입되는 지천의 수질 개선을 위해 조성한 104만㎡의 국내 최대 규모 인공습지 공원으로 나무다리와 옥상전망대, 조류관찰대가 있다. ●‘한국의 무라노’ 유리섬박물관·음악이 흐르는 정문규미술관 한국의 무라노를 꿈꾸는 유리섬박물관은 대부도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유리 공예품을 세계 전역으로 수출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이탈리아 무라노섬이 모델이다. 2012년 4만 3000㎡ 공간에 복합문화체험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한 유리조각공원이다. 현대 유리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유리 작가들이 눈앞에서 직접 작품을 만드는 공예시연장 등 다채로운 볼거리로 가득하다. (032)885-6262. 정문규미술관은 원로작가가 운영하는 곳으로 음악과 미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1관은 단체나 개인이 대관할 수 있으며 제2관은 정문규 작가의 상설전시관으로 마련돼 있다. 1층에 있는 갤러리카페 ‘아르페지오네’에서는 수준급의 오디오시스템을 갖추고 고음질의 음악을 제공하고 있다. 매년 3월부터 12월까지 작은 음악회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032)881-2753.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먹거리>> 안산에서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곳곳에 13개 음식거리를 조성해 언제든 지역을 대표하는 다양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 ●‘방아머리 먹거리타운’ 바지락 칼국수 대부도 제일 북쪽에 있는 음식문화시범거리로 바지락칼국수가 대표 음식이다. 커다란 솥에다 지척에 널린 바지락을 넣어 칼국수를 끓여 먹던 풍습이 육지와 연결되면서 소문이 났고, 지금의 바지락칼국수 거리가 생겨났다. 이곳에선 활어회나 조개구이도 인기지만 식당마다 간장게장과 바지락고추장찌개 등 향토 음식을 개발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댕이골 전통음식거리’ 비빔국수·유기농 쌈밥·두부요리 1990년대부터 전통음식을 주 메뉴로 하는 음식점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사동의 먹자골목이다. 댕이골은 처녀의 댕기모양을 한 마을 지형에서 따온 이름이다. 30년 전통의 비빔국수에서부터 20여종의 유기농 쌈밥, 가마솥에 끓여 만든 두부요리, 송어, 시골밥상, 갈치조림, 매운 소갈비찜, 추어탕, 곤드레밥 등 먹거리 천국이다. ●‘다문화음식거리’ 중국식 호떡·파파야 샐러드·나시고랭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산다는 원곡동은 세계음식백화점으로 불린다. 6만여명의 외국인이 모여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을 위한 음식점들이 생겨났다. 외국에 가지 않고도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어서 주말에는 내국인 미식가들도 많이 찾는다. 다문화음식거리에서는 외국인들이 직영하는 100여곳의 음식점이 성업 중이다. 지하철 4호선 안산역 앞에서 원곡본동 주민센터까지 500여m에 이르는 구간에 밀집해 있다. 거리의 명물이 된 꽈배기빵과 중국식 호떡, 만두, 월병을 맛볼 때면 여기가 중국인가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태국음식점에서는 파파야 샐러드 ‘쏨땀’, 매운 돼지고기덮밥 ‘팟카파오무’, 볶음 국수 ‘팟타이’, 볶음밥 ‘까오팟푸’를 맛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볶음밥 ‘나시고랭’이나 꼬치 요리인 ‘사테가이’, 인도의 ‘난’과 ‘커리’, 베트남 쌀국수 ‘퍼’ 등도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본오동에서는 양푼홍합탕, 신석기 숯불고기, 창고 곱창집, 장단콩 청국장, 곤드레수제비집 등이 인기다. 상록수역 1번 출구에서부터 최용수기념관까지 먹자골목이 형성돼 있다. 선부동 먹자골목에서는 전국 3대 짬뽕이라는 중국집이 유명하다. 바닷가재에서부터 회까지 해산물종합세트를 먹을 수 있는 횟집도 있고 활전복회, 몽골리안 숯불바비큐, 쪽갈비, 두루치기 등을 선택할 수도 있다. ●‘송호맛길’ 산채 정식·감자옹심이·메밀 막국수·굴튀김 안산 사람 치고 ‘송호맛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한식부터 중식, 일식까지 없는 게 없다. 고향의 정감이 담긴 산채 정식부터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강원도식 감자옹심이와 메밀 막국수, 삼대를 잇는 두부요리, 굴튀김과 굴국밥 등도 인기 품목이다. 성포동은 조선시대 배가 드나드는 포구가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 영업 중인 횟집의 생선구이는 점심 메뉴로 손색없으며 불고기 백반과 통큰 냉면을 맛보려는 미식가도 많이 찾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알쏭달쏭+] 인간과 개는 언제부터 친구가 됐을까?

    [알쏭달쏭+] 인간과 개는 언제부터 친구가 됐을까?

    인간 최고의 반려동물인 개는 언제부터 우리의 친구가 됐을까?최근 중국과학원 쿤밍(昆明) 동물연구소와 스웨덴 왕립기술원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개는 3만 3000년 전 동아시아에서 처음 가축화되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간 학계에서는 인간과 개가 언제부터 함께 살았는지,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속시원하게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늑대와 개의 화석이 매우 유사해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거 발굴된 갯과 화석 분석을 통해 개의 가축화를 길게는 3만 년 전부터 짧게는 신석기 시대인 1만 년 전 정도로 추정해 왔다. 이번 공동연구팀의 결과는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에서 발굴된 회색 늑대를 포함한 총 58개 갯과 화석의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을 분석해 얻어졌다. 그 결과 개의 가축화는 지금으로부터 3만 3000년 전 지금의 중국 대륙 남쪽 부근에서 시작됐으며 이 개들은 1만 5000년 전 아시아를 벗어났고, 1만 년 전 유럽에 도달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렇다면 왜 개들은 고향 땅을 떠나 멀고 먼 대륙으로 이동했을까?  연구를 이끈 쿤밍 동물연구소 야핑 장 박사는 "초기의 개들은 인류와 느슨한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면서 "주로 인간들의 정착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음식 찌꺼기를 먹다가 함께 살게 된 것이 개의 기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환경이 급변해 빙하기가 찾아오자 인류와 느슨한 교류를 한 개들이 인간을 따라가거나 자발적인 형태로 고향을 떠나 중동, 아프리카, 유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장 박사의 주장처럼 인간과 개가 친구가 된 이유 역시 두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과거 인간이 사냥 시 늑대를 동료로 활용해 이후 그중 일부 늑대가 개가 되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인간이 살던 거주지 주변의 음식물을 늑대가 먹기 시작하면서 결과적으로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인류가 양봉한 시기는 최소 8500년 전 - 네이처

    인류가 양봉한 시기는 최소 8500년 전 - 네이처

    인류가 꿀을 얻기 위해 벌을 기르는 양봉을 시작한 시기가 최소 8500년 전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고고학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브리스톨대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진이 유럽과 중동, 그리고 북아프리카 등의 고고학 유적지 150여 곳에서 나온 질그릇 조각 6400여 점에 남아 있는 화학물질을 분석했다. 그 결과, 벌집을 만들 때 분비되는 밀랍의 화학적 흔적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이런 증거는 여러 유적에서 발견됐다. 이번에 발견된 것과 같은 밀랍의 흔적은 비교적 드물지만 여러 지역에 걸쳐 널리 분포된 게 특징이다. 영국 남부와 덴마크에서 시작해 발칸반도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7000년 된 알제리의 유적에서도 밀랍 흔적이 발견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선사 시대의 암각화에 꿀을 채취하려고 하는 채취꾼이나 고대 이집트 왕의 벽화에도 양봉하는 듯한 모습이 표현돼 있는 등 이전에도 인간과 꿀벌의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가 있었다. 터키에 있는 차탈회위크 신석기 유적지에서는 7500년 전 조리 그릇에 가장 오래된 밀랍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특히 이 유적지 벽화에서는 벌집 모양의 문양까지 발견됐다. 이에 대해 연구를 이끈 멜라니 로펫-살크 박사는 “꿀벌과 관련한 물건이 신석기인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됐다는 것은 양봉 시작을 의미한다”면서 “당시 농부들은 소, 돼지 등의 동물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꿀벌도 같은 시각에서 바라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의 그릇에서는 밀랍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이런 북유럽에서는 기후 때문에 벌의 서식이 제한됐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 연구논문은 지난 20년간에 걸쳐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진행된 대규모 연구결과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사시대의 양봉이 상상 이상의 속도로 퍼지고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로펫-살크 박사는 “당시 사람들에게 꿀은 귀중한 감미료였을 것”이라면서 “밀랍은 의식과 화장품, 의료 목적은 물론 도자기에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는 용도로 사용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Nature) 최신호(11월 11일자)에 게재됐다. 사진=ⓒ포토리아(위), 네이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4000년 전 잡곡 직접 재배 유적 발견

    4000년 전 잡곡 직접 재배 유적 발견

    신석기시대의 대규모 취락 유적인 인천 운서동에서 조, 기장 등의 곡물이 눌려 있는 흔적(압흔) 131점이 발견됐다. 곡물의 압흔이 발견된 자료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일 “식물고고학을 통한 선사시대 농경화 연구를 진행하며 중앙문화재연구원, 강릉대 박물관과 함께 인천 운서동 유적과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를 조사한 결과 인천 운서동 신석기 전기 곡물 압흔 131점과 양양 지경리 신석기 중기 조, 기장, 들깨 압흔 294점을 확인했다”면서 “이는 서해안에서 시작된 신석기 초기 농경문화가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확산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특히 중부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기원전 4000~3600년)의 대규모 취락 유적인 인천 운서동 유적지에 대한 조사 결과는 초기 농경에서 조, 기장 등의 잡곡을 직접 재배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귀증한 실증 자료로 평가된다. 아울러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 확인된 압흔에서는 다른 유적지에서와 달리 기장의 산출량이 조의 약 6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돼 기장 중심의 농경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도토리를 위주로 한 채집 또는 수렵 중심의 생활에서 조, 기장 등의 잡곡 농경이 도입돼 생업의 안정성이 향상되는 등 생업 방식이 크게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조, 기장, 들깨 압흔 대부분은 껍질에 싸인 상태로 탈곡된 후 도정 단계에서 토기에 혼입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들 모두 가을작물이라는 점에서 추수 이후인 10월을 전후한 시점에 토기가 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4000년 전 잡곡 직접 재배 유적 발견

    4000년 전 잡곡 직접 재배 유적 발견

    신석기시대의 대규모 취락 유적인 인천 운서동에서 조, 기장 등의 곡물이 눌려 있는 흔적(압흔) 131점이 발견됐다. 곡물의 압흔이 발견된 자료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일 “식물고고학을 통한 선사시대 농경화 연구를 진행하며 중앙문화재연구원, 강릉대 박물관과 함께 인천 운서동 유적과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를 조사한 결과 인천 운서동 신석기 전기 곡물 압흔 131점과 양양 지경리 신석기 중기 조, 기장, 들깨 압흔 294점을 확인했다”면서 “이는 서해안에서 시작된 신석기 초기 농경문화가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확산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특히 중부 서해안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기원전 4000~3600년)의 대규모 취락 유적인 인천 운서동 유적지에 대한 조사 결과는 초기 농경에서 조, 기장 등의 잡곡을 직접 재배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귀증한 실증 자료로 평가된다. 아울러 양양 지경리 유적에서 확인된 압흔에서는 다른 유적지에서와 달리 기장의 산출량이 조의 약 6배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돼 기장 중심의 농경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도토리를 위주로 한 채집 또는 수렵 중심의 생활에서 조, 기장 등의 잡곡 농경이 도입돼 생업의 안정성이 향상되는 등 생업 방식이 크게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조, 기장, 들깨 압흔 대부분은 껍질에 싸인 상태로 탈곡된 후 도정 단계에서 토기에 혼입됐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들 모두 가을작물이라는 점에서 추수 이후인 10월을 전후한 시점에 토기가 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시작부터 미래 진화과정까지 들여다 본 도시 안내서

    시작부터 미래 진화과정까지 들여다 본 도시 안내서

    도시의 탄생/피터 스미스 지음/엄성수 옮김/옥당/560쪽/2만 8000원 기원전 7000년경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 남쪽에 고대 도시 차탈회위크가 건설되고, 기원전 5500년경부터 수메르인들이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도시 건설이라는 실험에 착수한 이래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33억명이 도시에서 살고 있다. 21세기 중반이 되면 도시 거주자는 75%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의 탄생’은 인류사의 풍요로운 보고인 도시의 기원과 의미, 발전과 진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 등 모든 측면을 다룬다. 저자는 “인류라는 종은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유인원이자 도시를 건설하는 존재, 즉 ‘호모 우르바누스’”라며 “도시야말로 인류가 만들어낸 창조물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고 단언하며 책을 시작한다. 도시가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상업의 중심지로 거주자들에게 일자리와 부를 만들어주었고 마음놓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주었으며 사회적· 문화적 삶이 가능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책은 고대부터 미래까지 도시의 발달사와 문명사 등 두 분야를 8개의 주제어로 나누어 풀어나간다. 신석기 시대 도시들과 이후 변화한 도시들의 모습을 차례로 살핀 뒤 문자가 바꾸어 놓은 도시의 변화를 짚어보고, 도심의 슬럼화와 주택가의 교외화가 바꾸어 놓은 도시인의 삶을 조명한다. 이어 도시별 교통과 보행로의 특징과 변화, 도시 경제가 바꾸어놓은 도시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를 비롯해 공원, 도서관 같은 휴식공간의 변화를 살펴본 책은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된다. 인류가 환경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으로서의 도시로 돌아가 지속 가능한 친환경 도시를 만드는 방법들을 제안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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