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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최고령 애국지사 김종호 선생 별세

    [부고] 최고령 애국지사 김종호 선생 별세

    전국 최고령 애국지사인 김종호 선생이 21일 오전 1시쯤 경북 경산시 진량읍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101세. 경산시 봉회교회(옛 진량 제일교회)의 장로였던 고인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부하며 항일운동을 펼치다 1943년 11월17일 체포돼 1년 동안 옥고를 겪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7년 건국 포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 아들 병영·대영·일영씨와 딸 애영·순자·영자씨 등 3남3녀가 있다. 빈소는 경산시 중방동 경산대경병원 영안실(053-812-4004)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3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이다. 광복회에 따르면 지금까지 작고한 애국지사 중 최고령은 2003년 11월 향년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고 이강훈 선생이었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사설] ‘성숙한 한·일 관계’ 일본이 화답해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그제 “새로운 성숙된 한·일 관계를 위해 (일본에 대해) 사과하라, 반성하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국내에 아직도 반일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음을 감안할 때 정치지도자로서 하기 어려운 발언을 했다고 본다. 일본은 이 당선인의 언급을 면책(免責)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과거사에 대해 마음으로 사과하는 계기로 삼고, 관련 조치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면 시정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참여정부 초에도 일본과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독도 영유권 도발,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참배로 주변국의 감정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잇따라 취했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에도 불구,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해결에 소극적이었다. 나아가 평화헌법 개정, 군비확장 등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이에 한국민의 대일 인식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현 정부가 ‘외교전쟁’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일 관계를 내치에 이용하려 했다는 지적이 나오긴 했지만, 근본 원인은 일본이 제공했다. 그동안 양국 외교관계가 파행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배경에는 일본측의 잘못이 크다. 특히 지난 1년 3개월 동안 양국 정상간 단독회담이 없었다는 점은 비정상적이다.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경제·안보 측면에서 공조가 흔들리면서 양국 모두가 손해를 본다. 이제 이 당선인이 실용외교를 강조하고 있고, 후쿠다 일본 총리 역시 전임 아베와는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사 및 독도 문제를 돌출시키지 않으면 양국 관계는 미래로 나아갈 기회를 맞는다. 셔틀 정상외교를 복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모든 분야에서 양국 관계가 신속히 정상화되도록 일본측의 협조가 있어야 하겠다.
  • [씨줄날줄] 中·日 밀월/육철수 논설위원

    중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역사적 중대 전환점이 ‘화장실’과 연관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화장실로 인해 한 번은 전쟁이 터졌고, 또 한 번은 화해로 이어져서다.2차 중·일전쟁(1937∼1945년) 직전, 일본군은 베이징 남서쪽의 루거우차오(蘆溝橋) 동쪽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1937년 7월7일 밤, 일본군 막사에 수발의 총성이 울렸다. 일본군 중대장은 곧바로 인원점검을 실시했는데, 병사 1명이 안 보였다. 중대장은 루거우차오 서쪽에 주둔 중이던 중국군의 소행으로 여기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20분쯤 총격전을 벌였을까, 행방불명됐던 병사가 어디선가 홀연 나타났다. 알고 보니 화장실에 갔다 오느라 불시점호에 빠졌다는 것이다. 양국간 총성은 이내 멎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20여일 후 8년간의 긴 전쟁이 시작된다. 세월은 흘러 2006년 7월 어느날. 베이징에서 국제회의가 열렸다. 리자오싱 당시 중국 외교부장과 아소 다로 일본 외상도 참석했다. 리 부장이 화장실에 일을 보러 갔는데, 마침 아소 외상이 따라 들어왔다. 리 부장은 일을 보고 나가려는 아소 외상을 붙잡고 20분동안 양국 관계의 진전을 위한 대화를 솔직하게 나누었다. 리 부장은 퇴임 후 “아소와 화장실에서 나눈 얘기는 양국 신뢰증진의 토대가 됐다.”고 술회했다. 실제로 리-아소의 화장실 회담은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로 야기된 양국간 경색국면을 5년만에 풀었다. 지난해 아베 총리의 방중과 원자바오 총리의 답방은 그 결실이다. 화장실 회담의 효과는 무서운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지난달엔 중국 군함이 110년만에 일본을 방문했고, 사흘전 베이징에서는 양국 장관들이 대거 참석해 ‘윈윈경제’를 논의했다. 양국은 그동안 ‘경제는 뜨겁지만 정치는 소원한’(政冷經熱) 관계에서 ‘정치도 경제도 뜨거운’(政熱經熱) 사이로 바뀌었다.1972년 국교수립 후 양국관계는 절정에 이른 듯하다. 전략적 호혜관계를 위해 일본은 ‘중국위협론’을, 중국은 ‘일본 군국주의 부활론’을 일단 뒤로 물렸다. 그래서인지 두 강대국의 밀월을 지켜보는 심정은 왠지 편하지 않다. 소외감은 차치하고, 우리 처지가 경제에 이어 정치·외교까지 샌드위치 신세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애니 인기에 日젊은이들 신사참배 유행

    최근 일본에서 한 인기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신사참배가 유행하고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3일 “애니메이션 ‘라키스타’(らきすた)의 인기에 힘입어 만화의 무대가 된 사이타마(埼玉)현 와시미야신사(鷲宮神社)에 관광객들이 밀려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라키스타는 일본의 유명 만화가인 요시미즈 카가미(美水かがみ)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 애니메이션으로 와시미야 신사를 배경으로 한 인기작이다. 특히 만화속 미소녀 캐릭터의 집이 와시미야 신사로 그려지면서 실제 이 신사에 방문하는 참배자가 쇄도하고 있다. 또 지난 2일 라키스타의 성우들이 참여하는 행사에는 무려 3500명의 팬들이 몰려들어 와시미야 신사가 애니메이션 마니아의 ‘성지’(聖地)로 급부상했다. 대부분 남성팬들로 이루어진 방문객들은 이날 성우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으며 모두 신사참배에 나서 라키스타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설] 낯 뜨거운 동북아역사재단의 무지

    동북아역사재단이 독일 라벤스부르크 기념관의 후원을 받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고 있는 ‘한·독 성노예전’을 계기로 내놓은 사진첩이 오류투성이라고 한다.‘위안부들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실은 첫 번째 사진의 경우 여자정신근로대가 노동장소로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을 붙였지만 실제로는 신사참배를 위해 이동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특히 여자정신근로대와 위안부는 원칙적으로 다른데도 그 차이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친일단체로 알려진 애국국방부인회 멤버들 사진에 ‘일본군을 따라 중국전선에 도착한 위안부들’이라는 잘못된 설명을 달아 놓았다. 일제시대 민족 수난사를 대변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제법적으로 ‘인도에 반한 죄’이며, 명백한 ‘전쟁범죄’로 국제사회에서도 다각적인 문제해결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미국 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유럽에서도 결의안이 추진되는 등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국제적 압력 또한 거세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해 설립된 동북아역사재단이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기초적 사실과 개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질을 하고,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를 저지르는 셈이다. 어떻게 일본 정부로부터 군위안부문제에 대한 공식사과를 받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번 일을 통해 그동안의 실책을 반성하고, 설립 취지를 제대로 살리도록 각고의 노력을 하기 바란다.
  • 고용 불안이 ‘배타적 민족주의’ 만든다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중국의 동북공정, 여기에 맞서는 ‘한반도류’의 반일 애국주의 영화와 ‘주몽’ 및 ‘대조영’,‘연개소문’류의 반중 역사판타지 드라마…. 요즘 한·중·일 3국 관계를 생각할 때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또 다른 단어군.‘후리타족’(취업을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 등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니트족’(학생도 직장인도 아니면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가치구미/마케구미’(돈 많고 성공한 ‘이긴 그룹’과 그렇지 못한 ‘진 그룹’) 등 일본 젊은이들의 생활세태를 묘사한 용어와 최근 유행하는 한국 신조어 ‘88만원 세대’(비정규직 평균 급여 119만원에 20대 평균급여에 해당하는 73%를 곱한 금액이 88만원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한국 20대를 지칭)…. 대외관계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첫 번째 단어군과 국내문제를 묘사하는 두 번째 단어군은 상당히 이질적이다. 이질적인 두 단어를 ‘민족주의’란 교집합으로 아우르는 시각이 제시됐다. 최근 출간된 ‘한·중·일 인터넷 세대가 서로 미워하는 진짜 이유’(삼인)의 저자 다카하라 모토하키는 전자를 민족주의의 과거로, 후자를 민족주의의 새로운 경향으로 파악한다. 그는 고도성장 시기 국가발전과 국민통합을 극대화하기 위해 활용된 민족주의를 ‘고도성장형 민족주의’로, 고용불안과 사회양극화 등 ‘사회유동화’ 속에 내던져진 계층에서 새롭게 싹트는 민족주의를 ‘개별불안형 민족주의’로 명명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중·일 3국의 젊은 세대는 ‘국가 간의 아픈 과거사’가 아니라,‘국내 경제현실의 불안’으로 민족주의 정서에 휩싸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존 민족주의의 중심엔 ‘국가 단위의 상호 배타적 정념’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미진한 과거청산과 이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반발, 중국의 급성장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경계심 등 상호 공격과 방어심리가 주로 작용했다.반면 저자는 각 나라 내부의 사회경제적 요인을 ‘새로운 민족주의’ 발흥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는 “개인화된 시장경쟁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 견고한 기업이나 공적부문의 비호 바깥으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고도성장형 민족주의는 자신의 생활과 별반 관계없는 문제일 뿐”이라면서 “대신 이들이 지닐 수 있는 것은 고용문제 등을 짙게 반영한 이른바 서구형 민족주의”라고 설명한다. ‘민족주의의 서구화’ 현상은 한국 젊은이들의 ‘배타적 공격성’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내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표출하는 극도의 혐오감 및 공포감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을 업고 확대되는 중국 상품에 대한 경계 및 모멸적 조롱을 포털 사이트 등에서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노동유연화와 사회양극화에 직면한 젊은이들의 심리적 불안이 ‘우리를 위협하는’ 외부의 적을 찾게 만든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한편에선, 국경 없는 자본통합에 누구보다 발 빠른 재벌이 ‘먹고 튀는 먹튀’ 투기자본에 맞선다는 논리 아래 민족주의를 지배구조 개혁 요구를 무마하는 경영권 방어논리로 활용한다. 한국에서도 민족주의 소비행태는 계층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사회유동화란 상황 속에서 새로운 민주주의가 요청하는 바는 고용이나 사회보장에 관한 문제”라면서 “경제적 재분배 문제, 나아가서는 개발주의의 종언에 수반되는 기득권익의 개혁에 관련된 논의를 불러일으켜야만 한다.”고 강조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보성여중고 100돌

    보성여중고 100돌

    서울 용산구 ‘해방촌’의 보성여중고(이사장 최창근)가 오는 10일 개교 100주년을 맞는다. 평북 선천에서 미국인 선교사 노먼 휘트모어가 세운 보성여중고의 100년사는 민족 수난사이기도 하다. 1회 졸업생인 고 차경신(1892∼1978) 여사는 도산 안창호 선생을 도와 도쿄 유학생 김마리아와 함께 조국광복을 위해 애썼고,3·1운동 때는 선천지역 담당자로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 학교 교사를 지낸 고 안이숙(1908∼1997) 여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학교는 한때 일제로부터 폐교를 당하기도 했다. 보성여고 김정남 교장과 보성여중 박애희 교장은 “학생들은 진실, 사랑, 거룩의 교훈과 기독교 정신을 익히고 졸업생들은 사회에서 봉사자와 어머니로서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은 네팔·우간다·브라질·파라과이 등 오지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교사 6명과 학생 19명이 캄보디아 프놈펜의 기술학교에서 봉사활동을 벌였다. 10일 개교 기념식에는 창립자의 손자인 아더 휘트모어(60·회사운영·미국 콜로라도 거주)와 졸업생 등 2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보성여중고가 배출한 사회인사로는 개그우먼 박미선,SBS 기자 한수진, 소설가 오수연, 영화배우 심혜진, 동노회여전도회장 김성숙, 최초의 여성 공군사관생도인 한정원 대위 등이 있다. 이들은 기념식에서 ‘자랑스런 보성인’ 상을 받는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중·일 군함 상호방문 첫 합의

    오는 11월부터 12월 사이에 중국 군함이 사상 최초로 일본에 기항하는 등 중·일 군함의 상호방문이 합의됐다. 또 중국과 일본의 국방 당국간 핫라인 개설을 위한 실무그룹을 설치,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일본을 방문중인 중국의 차오강촨 국방부장관과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방위상은 30일 도쿄에서 양국 국방장관 회담을 갖고 이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고 아사히신문 등이 이날 전했다. 지난 몇년 동안 야스쿠니 신사참배, 위안부 문제, 가스전 개발을 둘러싼 영토분쟁 등으로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두 나라가 국방 분야에서 한 단계 협력관계를 격상시킨 셈이다. 또 차오 부장의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고무라 방위상이 내년 중국을 방문한다는 점에도 합의했다. 중국은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 호주 등과 군함의 상호 방문을 실시해오고 있으나 일본 기항은 처음이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자손86명의 대가족(大家族) 새해잔치

    자손86명의 대가족(大家族) 새해잔치

    한국 기독교 80년사상 처음의 경사인 희년(禧年)축복예배가 새해 첫 일요일 전남(全南) 여천(麗川)군 율촌(栗村)교회서 거행된다. 주인공은 전 부통령 함태영(咸台永)씨와 동기동창인 88세의 조의환(曺義煥)목사. 조목사는 50주년째 현직 목사로 있으며, 7남매의 자녀가 모두 생존하여 슬하에는 무려 증손자까지 86명의 가족이 뻗어나 화제가 되고 있다. 60넘는 자녀만 4명이나 손자는 34명 증손자 45명 88세로 50년동안 목사 일을 맡아보고 있는 조의환 목사는 이젠 걷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다. 그러나 정신력은 또렷 또렷하여 주일이면 반드시 교회에 나가 축복예배를 드리고 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데모데」서 4장 7절을 즐겨 설교하며 『나의 갈길 다하도록 예수 인도하시니…』하는 찬송가를 즐겨 불렀다. 『저희 아버님은 지금도 매주 한번씩 꼭꼭 저에게 편지를 써보내십니다. 안경도 안쓰시고 필력(筆力)도 좋으십니다』 역시 60세에 목사가 된 장남 조기영(曺基榮)씨(61)의 말이다. 조의환 목사는 전남 여천군 율촌면 마을에서 조병하(曺秉夏)씨의 5남매중 둘째로(세째는 전 외무장관 조정환(曺正煥)씨) 전 부통령 함태영선생과 동창 사이가 된다고. 『무엇보다도 복된 것은 우리 7남매가 모두 살아서 아버지의 50주년 희년예배를 함께 보게 된 것입니다』. 조목사의 슬하에는 장남 기영(목사·서울), 차남 기선(基善·교통센터·서울), 3남 기성(基成·국민교장·여수), 장녀 영관(永寬·70·서울), 차녀 정은(貞恩·66·구례(求禮)), 3녀 안희(安熙·63·서울), 4녀 영은(英恩·서울)씨등이 모두 복된 가정을 가지고 있다. 이러니까 7남매중 60세이상의 아들딸이 4명이며, 그들의 몸에서 난 손자가 34명, 증손자가 45명이나 되어 혈통이 모두 86명. 조목사는 24세때 예수교를 믿기 시작하여 30세때 평양(平壤)신학교에 입학하여 8년만에 졸업, 39세때 비로소 목사가 되었다. 『그동안 아버지는 광양(光陽) 여수(麗水) 제주 교회등에서 일했읍니다. 무엇보다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제주도 모슬포교회에서 6년을 일보시는 동안 두번이나 투옥을 당하신 일입니다』 2차대전때 혹독한 일제의 압박에도 신사참배(神士參拜)를 거부했다. 또 조목사는 당시 순천(順川)지구 노회(老會) 선교사로 있다 미국으로 귀국당했던 「프레스턴」목사와 국내 정세를 연락했다고 해서 투옥, 많은 고초를 겪었다. 모든식구 한자리에 모여 소원대로 산제사 모시게 그런가운데서도 조목사는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아우 정환씨를 10년동안이나 미국에 유학시켜 공부하게 했다. 『저도 일본경찰서에 몇차례나 끌려갔읍니다. 그놈들은 술만 취하면 한밤중에 날 경찰서로 잡아다 놓고 일본도를 빼어 내 목에 겨누는 등 행패를 부렸지요. 그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판임관 시험을 치르기도 했읍니다』 장남 조기영 목사의 설명. 조기영목사는 연전(延專) 상과, 숭실전(崇實專) 농과, 명치(明治)학원 영문과 등에서 수학한뒤 호남비료 서무과장, 무역업에 종사해오다가 나이 60세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 목사가 되어 지금은 「망각지대선교회」회장일을 보고 있다. 『7남매 모두 따로 살고 있지만 이번에 전부 모여 아버지 소원대로 산 제사(祭祀)를 지내는 축복예배를 보기로 했읍니다』 조의환목사는 원채 나이가 많으시니까 아들이나 손자들이 찾아오면 『사탕 좀 사오너라』하고 명령을 한다는 것. 그래서 단 것을 장만해서 이번에 행사를 벌이기로 한 것인데, 그 「단 것」선물의 거의 전부가 교회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진다. 이래서 어린이와 할아버지의 사탕잔치가 한꺼번에 벌어진 것인데 88세 할아버지 목사님은 여느날에도 『사탕 먹으니까 맛있죠? 나도 맛있어요!』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미. 노목사는 아들딸을 제외하곤 아무리 어린나이의 증손자에게도 반드시 존칭을 쓰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다. 77살에 재혼 아직도 정정 장수의 비결은 절제주의 한가지 섭섭한 것은 57년에 7남매의 어머니 김월봉(金月鳳)여사가 돌아가신 것. 이듬해 김영엽(金永葉·72)씨를 계모로 맞아 아버지와 짝을 지어 드렸다. 그러니까 조의환 목사는 76살때 재취 장가를 간 셈. 조목사는 지금도 기억력이 생생해서 86명속에 끼어 있는 손자와 증손자의 이름까지 모두 외고 있으며, 아무날 어느 손자, 또는 증손녀가 무슨 과자를 사왔다는 내용을 모두 「노트」에 적어놓고 있다고 자녀들이 아버지를 놀리자(?), 아버지는 『야 이놈들, 산 제사를 지내려면 단것 좀 많이 사와라!』하고 농담으로 받아 넘긴다. 조의환목사의 뜻을 받아 60세에 목사가 된 장남 조기영씨는 「예수」 믿고 보이지 않는 천당가는 신앙보다 보이는 이웃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더 값있는 일이라고 망각지대를 향해 선교를 나섰다. 『망각지대란 것은 글자 그대로 소외당하고 잃어버린 땅을 향해「예수」의 정신을 심자는 것입니다. 난 돈도 명예도 없어요. 푼돈이 생기면 그대로 양로원 고아원 또 사형 확정수들을 찾아다니며 「예수」말씀을 전하고 있읍니다』 조기영목사는 60세에 안수를 받았지만 정열이 대단하다. 국제신학교 강사로 나가면서 어떤때는 하루종일 서울역 남대문 지하도 근처를 헤매면서 서울역에서 내리는 시골손님들의 길을 안내하고 짐을 들어다주곤 하는 생활-. 다만 조의환목사의 3형제중 일제때 만주국(滿洲國) 48(王)중의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형님 조일환(曺日煥)씨와 아우 정환(正煥)씨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간 것이 슬프다고 88세의 원로목사는 기쁜중에도 섭섭한 눈물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 이처럼 장수하는 비결은? 『절제주의입니다. 나는 술과 담배를 평생 안했거든요. 또 성욕도 많이 절제하면서 산셈이야요. 내가 젊어서는 미남자였거든요. 만약 목사가 안되었다라면 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웠을지 알아? 그랬더라면 86명 자손이 아니라 수백명일 뻔했지? 하하하…』 조목사는 이런 농담으로 곧잘 잔치집에 온 하객들을 웃긴다. <여천에서 이용선(李鏞善)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신년특대호 제4권 1호 통권 제 118호]
  • 한국·일본 두 여류작가 1년 주고 받은 편지묶음

    한국·일본 두 여류작가 1년 주고 받은 편지묶음

    “서로 무슨 얘기를 쓰자고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닌데 지난번 편지에서 우리는 결국 서로 같은 얘기를 쓰고 있었지요.”(신경숙) 한국 작가와 일본 작가 사이에 물길이 트였다. 신경숙(44)과 일본의 중진작가 쓰시마 유코(60)가 1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현대문학 펴냄)에 담았다. 10년전 한·일작가심포지엄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년전 신씨의 제의로 2006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편지를 주고받았다. 북한산 자락을 바라보는 신씨의 집과 아직도 우물이 남아 있는 쓰시마 유코의 집이 그대로 제목이 됐다.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 다자이 오사무의 딸이기도 한 쓰시마 유코는 애인과 투신자살한 아버지의 죽음을 신경숙에게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의 한 아이가 내게 와서는, 니네 아버지 살인자라며? 물었습니다.…인명사전에서 아버지에 대해 알아봐야겠단 생각을 했지요. 다행히 살인을 했다는 기록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일생은 내가 알지 못하는 말로 마감되어 있었어요.” 그는 또 다운증후군인 오빠와의 사별이 주는 상실감, 순진하고 즐거웠던 시절 등을 담담하게 술회한다. 신씨도 헛간에 숨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글을 몰라 자신의 작품을 읽지 못한 어머니 이야기, 서로의 작품에 대한 감상과 한·일 사회에 대한 단상을 주고받는다.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남북분단에 대한 생각도 함께한다. 신씨와 쓰시마 유코는 1년간의 교감이 “국경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매일의 생활 속에 그대로 녹아든 자그맣지만 아름다운 선물 같은 경험”이었다고 고백한다. 슬픔에 울걱이고 기쁨에 출렁이던 두 작가 사이의 물살이 어느 순간 합쳐져 한 방향으로 흐른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일본 각료 16명 전원 8·15 신사참배 않기로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 내각의 각료 16명 전원이 2차대전 종전기념일인 15일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10일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7일 야스쿠니 신사의 참배를 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드러냈었다. 각료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상황에서 신사를 참배할 경우, 정국의 혼란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을 자극해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특히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내년에 일본을 방문할 의향을 내비친 만큼 일·중 관계의 개선도 충분히 감안한 것 같다. 지난 1950년대 중반 이후 종전기념일에 각료들이 대거 야스쿠니를 참배해 왔으나 전원이 참배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처음이다. 시오자키 야스히사 관방장관은 참배하지 않기로 한 이유에 대해 “본인의 신조에 따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부키 분메이 문부과학상은 “종교행사의 소관 대신으로서 공평을 기하기 위한 것”이라며 직무 관련성을 들었다.hkpark@seoul.co.kr
  • 리덩후이 “韓.中 야스쿠니 참배 비난말라”

    일본에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 파문을 일으킨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이 9일 한술 더떠 “(한국과 중국 등) 다른 국가가 야스쿠니 참배를 비난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리 전 총통은 이날 일본을 떠나기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나라를 위해 전사한 사람들을 위한 제사는 당연한 것으로 번갈아가며 다른 국가의 비난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리 전 총통은 지난달 30일 총통 퇴임후 세번째로 일본을 방문, 강연과 관광을 하면서 지난 7일에는 일본군으로 전쟁터에서 숨진 친형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리 전 총통은 대만에 도착, 다시 기자회견을 갖고 “오래동안 가슴에 묻어둔 친형을 추모하고, 야스쿠니신사에 안치된 형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개인 신분으로 신사를 참배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신사참배에 대한 중국측 항의를 묻는 질문에 흥분한 목소리로 “일본 당국의 태도는 더 강경해야 한다. 일본은 외국 정부의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다. 제사는 국가 전몰자를 위한 당연한 일”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리 전 총통은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던 도중 나리타(成田)공항 출국장에서 30대 중국인 남성으로부터 페트병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일제 시절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군 소위를 지냈던 리 전 총통은 일본인이 아닌 대만인으로 태어난 비애를 얘기하며 일본을 찬양할 정도로 친일 노선을 걷고 있는 대표적인 대만 정치인이다.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 승리후 시모노세키조약으로 대만을 합병, 1945년까지 50년간 통치했지만 상당수 대만인들은 당시 일본의 식민통치가 대만 현대화에 기여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당시의 동화정책과 전후 친일 교육 등으로 일본에 우호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아베, 야스쿠니신사에 ‘공물’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김미경기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1∼23일 치러진 야스쿠니신사 춘계대제 기간에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의 명의로 신사에 공물을 바친 사실이 8일 확인됨에 따라 신사참배를 둘러싼 외교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개인 비용으로 춘계대제 때 5만엔 상당의 높이 2m인 비쭈기나무 화분을 신사 측에 보냈다고 일본 언론들이 이날 보도했다. 일본에서 비쭈기나무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져 신전에 바쳐지고 있다. 화분은 신사 본당으로 올라가는 목제 계단의 옆에 다른 화분들과 함께 배치됐다. 신사에 대한 공물 제공은 지난 1985년 8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 이래 22년 만이다. 신사참배 여부에 애매한 입장을 취해 왔던 아베 총리는 결국 한국·중국 등 주변국의 강한 반발을 의식, 직접 참배하지 않는 대신 신사측에 마음을 전한 셈이다. 때문에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사과를 비롯, 일련의 사죄성 발언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받는 처지에 놓였다. 외교부는 이와 관련,“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아베 총리가 공물을 보낸 것은 역내 평화와 안정의 근간이 되는 올바른 역사인식 정립에 역행하는 것으로 매우 유감스럽다.”고 논평했다. 중국 외무성도 “중·일 관계에 있어 중대하고 민감한 문제”라며 일본 측에 신중한 자세를 촉구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저녁 관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에게 경의를 표시하며, 명복을 빈다. 이런 생각을 계속 갖고 싶다.”라며 봉납 사실을 인정했다.한편 민주당을 비롯, 야당들은 아베 총리의 애매한 대응에 “양다리를 걸친 태도”라며 일제히 비판, 정치적 이슈로 삼고 있다.hkpark@seoul.co.kr
  • 생활 속의 식민지주의/미즈노 나오키 등 지음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우리 안의 식민지주의’는 도대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우리의 청년학생들은 집체 군사훈련인 ‘교련’이라는 과목을 학교의 정규수업으로 수강해야 했다. 아직도 사적인 이해를 공적인 것으로 포장한 의리 중심의 정치·사회문화가 일상화돼 있기도 하다. ‘생활 속의 식민지주의’(미즈노 나오키 등 지음, 정선태 옮김, 산처럼 펴냄)는 이처럼 식민지배를 받은 우리나 타이완, 그리고 식민지배를 한 일본에 남아있는 식민지주의가 어떤 구조에서 만들어졌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규명한 책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20세기가 낳은 식민지주의의 구조를 먼저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 가운데 한명인 미즈노 나오키가 한국어판을 내면서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처럼 이 책의 저술 목적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일본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의 2002년 여름 공개강좌 강연내용을 엮은 이 책은 비록 5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생활은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가 도달한 ‘종착점’이다. 다시 말해 일상생활은 국가나 제국의 이념이 깃들인 사회적·문화적·정치적·군사적 지층(地層)이기 때문에 그 사회 민중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행사하는 것이다. 책은 학자 네명의 사례연구를 담고 있다. 미즈노 나오키는 일제가 조선인들의 이름을 가지고 어떻게 식민통치에 활용했는지 설명하면서 그런 일제 때의 관행이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남아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합병(1910년) 이후 ‘막둥이’ 등 조선어 이름의 호적 등재를 금지한 것이 식민통치의 효율성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밝힌 그는 그런 관행이 최근까지도 한국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대 정근식 교수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의 민주화는 총동원체제의 해체이며 그 속에서 작용하는 신체규율의 해체와 연결되어 있다.”고 단언한다. 교토대의 고마고메 다케시 교수와 효고교육대의 마쓰다 요시로 교수는 타이완에 대한 일본 식민지배가 신사참배와 원주민 동화교육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진단을 통해식민지주의의 뿌리깊은 역사를 고발한다.1만 2800원.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아베 신사참배 여부 ‘촉각’

    |도쿄 박홍기특파원|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1일 시작되는 야스쿠니신사의 봄 축제인 ‘춘계대제(春季大祭)’에 참석,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지에 일본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4월 관방장관 재직때 춘계대제 직전, 신사를 참배한 전례가 있다. 총리 이후 처음 맞는 춘계대제이기도 하다. 특히 “(참배) 자체가 외교 문제가 되는 현실에 있는 이상 참배할까, 하지 않을까를 말하지 않겠다.”는 아베 총리의 애매모호한 입장도 관심을 불러모으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일각에선 “올해도 또 참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큰 흐름은 “참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쪽이다. 무엇보다 지난 11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일본 방문으로 모처럼 다져진 양국간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굳이 깨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나아가 오는 26·27일의 방미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4월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주관한 신주쿠교엔 벚꽃감상회에 가기 전에 신사를 찾았다. 그러나 지난 14일 자신이 벚꽃감상회를 주관했지만 야스쿠니신사는 참배하지 않았다. 원 총리의 방일 직전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중국 인민의 감정을 크게 상하게 했다. 두번 다시 없기를 희망한다.”는 ‘경고’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터이다. 외무성 한 간부는 “만약 신사를 참배한다면 (중·일 관계개선에 나선) 중국의 후진타오 정권의 기반도 위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중국 관계에 신경을 쓰는 이상 춘계대전뿐 아니라 이후에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어려울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렇다고 변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베 총리의 ‘소신 행보’가 가장 큰 미지수다. 또 자민당 일각에서 터져나오는 “중국의 말에 따라 참배를 피해서는 안 된다. 종전 기념일인 8·15에는 당당하게 참배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자민당의 한 관계자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다면 8월15일이나 추계대제 기간에 참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20일 교도통신이 전했다.hkpark@seoul.co.kr
  • [정종욱 월드포커스] 中·日간 얼음이 녹으면 한국은?

    몇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베이징에는 동서 양쪽에 서로 대조되는 두개의 건물이 있었다. 서쪽에는 항일전쟁기념관이, 동쪽에는 21세기 중·일청년우호교류센터가 있었다. 항일전쟁기념관에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때 일본 군대가 자행했던 끔찍한 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국 사람들을 상대로 한 생체 실험과 임신부의 배를 칼로 찌르는 참혹한 장면들이 생생하게 재연되어 있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중국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버스를 타고 온 학생들이 성지 참배를 온 것처럼 숙연한 표정으로 한 시간 이상 각종 전시물들을 참관했다. 이에 비해 21세기 중·일청년우호센터에는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일본 정부가 양국 청소년들 간의 우호증진과 교류협력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해서 지은 현대식 건물들이지만 대개는 텅텅 비어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는 이렇게 메우기 힘든 공간이 있었다. 지난주에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일본 방문이 있었다. 그동안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여러 가지 문제들로 양국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과연 그의 방문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런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원자바오 총리의 말을 빌리면 이번 방문은 양국 간에 ‘얼음을 녹이는 여행’(融氷之旅)이었다. 지난 10월 아베의 중국 방문이 ‘얼음을 깨는 여행’(破氷之旅)이었다면 원자바오의 방문으로 깨어진 얼음이 녹아버렸다는 것이다. 자민당 간사장 나카가와 히데나오(中川秀直)가 “이로써 중·일 간의 얼음이 완전히 녹았다.”고 말하자 원자바오는 “양국 관계에 겨울은 가고 봄날이 왔다.”고 화답했다. 그가 중국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국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제는 “역사를 직시하며 양국 간에 아름다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고 역설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일본과 중국의 언론들도 대체로 원자바오의 일본 방문이 양국 관계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물론 중·일 간에 얼음이 녹고 봄날이 오려면 많은 문제가 남아있다. 양국이 원자바오 방문을 계기로 하루아침에 불행한 과거의 참담한 기억을 잊고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항일전쟁기념관의 악몽이 갑자기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원자바오도 앞으로 일본 정부의 태도를 지켜볼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전략적 호혜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했고 경제각료회의를 매년 개최하기로 했지만 양국 관계는 협력보다 경쟁의 측면이 강하다. 앞으로 더욱 그러할 것이다. 국민투표법이 일본 중의원을 통과함에 따라 일본 헌법이 개정되고 일본이 본격적인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는 시점이 임박했다는 게 중국의 시각이다. 이미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시아 패권을 향한 숙명적 경쟁이 본격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처지이다. 이제 한국은 중국에 더 이상 과거의 한국이 아니다. 중국에는 좋든 나쁘든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다. 처음부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일종의 자기최면에 빠져 있었다. 중국이 우리에게는 호의적이고 일본에는 적대적일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었다. 우리가 앞서가는 일본과 뒤에서 쫓아오는 중국 사이에 끼여 샌드위치가 될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저만치 앞서가는 중국과 일본 뒤에서 아무도 쳐다 보지 않는 외롭고 미운 오리의 신세가 될 가능성을 이제부터라도 직시해야 한다. 중국에 대해 보다 현실적 인식을 가져야 하며 일본과의 감정이나 기 싸움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보다 균형 잡힌 새로운 한·중·일 삼각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종교건축 이야기] (25) 인사동 승동교회

    [종교건축 이야기] (25) 인사동 승동교회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인사동 쪽으로 방향을 잡아 길을 들어서면 초입 왼쪽 좁은 골목 끝의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교회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골동품 가게며 크고 작은 현대식 건물들이 어수선하게 엉킨 풍경에선 영 생뚱맞게 보이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뾰족집 승동교회(종로구 인사동 137·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0호)다. 인사동을 찾는 이는 물론 주민들도 대부분 존재 자체를 잘 알지 못하는 이색 공간. 이처럼 생소하지만 1904년 이후 줄곧 지금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해온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교단의 대표적인 모교회다. 특히 일제 치하 3·1운동의 중심지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곳. 통합·합동으로 갈라진 대한예수교장로회 분열의 현장이란 아픔을 함께 담고 있는 개신교계의 또렷한 유산이다. 승동교회의 뿌리는 지금의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인 옛 곤당골의 작은 한옥에서 미국 북장로교 소속 선교사인 새뮤얼 포먼 무어(1860∼1906·한국명 모삼열) 목사가 1893년 시작한 목회. 곤당골이란 청계천 변에 고운 담(곤담)이 둘러쳐져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당시 주변에는 백정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교도소 수감자와 빈·천민 대상 사목으로 널리 알려진 모삼열 목사가 이 곤당골에서 최하층 신분의 백정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시작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초창기 예배에 이 백정들을 중심으로 16명의 교인이 참여했는데 그 때문에 승동교회에는 지금도 ‘백정 교회’라는 이름이 별명처럼 따른다. 곤당골 교회가 인사동에 한옥을 사들여 이사한 것은 2대 당회장인 이눌서(W.D.Reynolds) 목사가 시무하던 1904년 10월. 이듬해부터 새 예배당 건립에 나서 1912년 지금의 본당 골격을 갖췄다. 원래 적벽돌을 쌓아 박공 지붕을 인 정방형의 벽돌조 로마네스크 건물이었는데 1959년 앞 출입문쪽 신자석 공간을 늘린 증축공사로 초기의 모습을 잃었다. 초창기엔 앞쪽에 두 개의 출입문을 따로 내 남녀 신자들의 출입과 예배 공간을 구분했지만, 지금은 증축된 공간 쪽으로 한 개의 통합문을 내어 당시와는 영 딴판이다. 그나마 독경대를 비롯한 중앙의 의식공간은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본당 주변에 흩어져 있던 옛 모습의 한옥들은 전도회 장소로 쓰이고 있다. 지하엔 기도실과 교역자실, 상담실, 유치원, 성가대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그런데 인사동에서 ‘승동’이란 옛 지명을 그대로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승동의 원 명칭은 인근 절골(寺洞)로 이어지는 마을이란 뜻의 승동(承洞).1907년 이 교회에서 장로교 경기도연합부흥회가 열렸는데 당시 평양 장대현교회 장로였던 길선주 목사가 설교하면서 “이웃 절골과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계기로 이길 승(勝)자를 쓰기 시작, 그때부터 승동(勝洞)교회가 됐다고 한다. 교회 이름에 얽힌 사연은 썩 내키지 않지만 승동교회는 이후 여러 이유에서 한국 개신교계의 중요한 신앙 터로 거듭 주목받았다. 일제 강점기 한국 교회들이 자의반 타의반 동참했던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반성에 앞장섰던 것도 그중 하나.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38년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제27회 총회를 열어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는데,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승동교회 총회에서 ‘당시의 신사참배는 잘못된 것’이라며 무효선언을 해 세상의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백정교회 이후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신앙철학을 지킨 역대 목회자들도 교회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주 요인이다. 특히 김익두(9대·1935∼1938년 담임) 목사와 뒤를 이은 오건용(10대)·이덕흥(11대) 목사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황해도 안악 태생인 김익두 목사는 원래 불량배 출신이었으나 부흥사가 돼 이 교회를 이끈 인물. 몸이 아픈 신자들을 치료하는 재능이 탁월했는데 그의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회심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구름처럼 몰려든 신자들을 두려워한 일제가 김 목사와 교회를 탄압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결국 신사참배에 강력하게 맞섰던 김 목사는 강제로 물러난 뒤 6·25전쟁때 새벽기도회를 하던 중 퇴각하던 북한군의 총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오건용·이덕흥 목사는 맹인들을 위한 신앙공간이 없던 무렵 맹인 선교에 치중해 대부분의 맹인 신자들이 이 교회에 의지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을 놓고 용공성 시비 끝에 의견이 나뉘어 장로교가 갈라진 것은 한국 개신교계의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 당시 WCC 가입에 반대하던 측은 승동교회에서, 찬성하던 측은 연동교회에서 각각 총회를 열었는데 이를 계기로 합동(승동교회측)과 통합(연동교회측)으로 교파가 나뉘었다. 갈라진 지 43년 만인 지난 2002년 6월 양측 교회가 극적으로 교환예배를 갖긴 했지만 교회의 통합은 이루지 못했다. 지금 이 교회에 적을 둔 신자는 3000명. 이 가운데 예배 출석 인원은 1500명 정도로 대를 이어 이 교회를 다닌 신자가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신자들이 사는 곳도 분당, 안산, 춘천 등 다양해 그야말로 전국적인 교회인 셈이다. 다른 교회에서 볼 수 없는 승동교회만의 특징은 노인 사목. 인근 탑골공원을 찾아 노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세례를 주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승동교회를 찾아와 신도가 됐다고 한다. 10년 전부터는 탑골공원을 자주 찾는 노인들을 중심으로 노인 위주의 장년 2부를 운영해 지금은 매주 300여명의 노인이 예배에 참석한다. 세례 받은 노인들은 사후 경기도 백석의 승동동산 묘역에 안치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이 찾아와 신자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상훈(54) 담임목사는 “승동교회는 드물게 도심 복판에 남아 있는 전통적인 교회”라면서 “초기의 ‘백정교회’ 이후 사회 기여 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목회와 신앙을 이어온 흔치 않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kimus@seoul.co.kr ■ ‘3·1운동 유적지’ 지정된 항일역사의 산실 승동교회는 비록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교회’가 됐지만 일제 강점기 항일 민족운동의 구심점이자 3·1운동의 본산으로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1900년대 초 우국지사들이 모여들어 예배를 보면서 민족주의의 색채를 띠어간 승동교회는 청년운동의 주축인 YWCA(대한여자기독교청년연합회)를 태동시켰고 한신대 전신인 조선신학교를 낳은 곳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1919년 3·1운동에 앞서 학생 대표들이 모여 만세운동을 모의한 학생지도자회의가 열렸던 현장임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승동교회 청년모임인 청년면려회장이었던 김원벽은 연희전문대생으로 학생들의 큰 신망을 얻었던 인물. 김원벽을 주축으로 한 전국 학생대표들은 승동교회 지하실(지금의 기도실)에 모여 태극기와 기미독립선언문을 나눠 갖고 3월1일 거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조계사 뒤쪽 보성사에서 인쇄된 독립선언문은 거사 전날인 2월28일 새벽부터 전국에 전달됐다. 이 가운데 1500여장이 승동교회에 모였던 학생대표와 신자들을 통해 서울 시내 각처로 배포됐다. 학생 대표들은 3·1운동 나흘 뒤인 5일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에서 만세운동을 다시 일으켰는데, 현장에서 일경이 휘두른 칼에 찔려 체포된 김원벽은 3년여의 옥고를 치른 뒤 결국 후유증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3·1운동 직후 당시 승동교회 담임이었던 차상진 목사가 주도한 이른바 ‘십이인등의 장서(十二人等의 長書)’ 사건도 유명한 일화다. 차 목사를 비롯한 목회자 12명이 연서해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장서를 종로 보신각 앞에서 발표한 뒤 총독부에 제출한 사건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모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같은 사연으로 인해 승동교회는 지난 1993년 ‘3·1운동 유적지’로 지정됐으며 매년 3·1절 주일마다 3·1정신을 기리는 예배가 올려지고 있다.
  • [책꽂이]

    ●미국 비자 포커스(전종준 지음, 푸른솔 펴냄) 현재 미국 비자 면제국은 27개국으로, 대부분 유럽 국가이고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싱가포르뿐이다. 아르헨티나는 면제국이었으나 IMF가 터져 그 지위를 상실했다. 미국 비자 면제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먼저 비자 거부율이 3% 미만이어야 한다. 미국 비자 면제국이 되더라도 이같은 비자 거부율을 2년간 유지해야 취소되지 않는다. 미국 비자는 알파벳 순으로 A비자부터 V비자까지 있다. 이민전문 변호사인 저자가 들려주는 미국 비자 실제상황 가이드.1만 5000원.●시와 그림으로 읽는 중국 역사(이은상 지음, 시공사 펴냄) 문인들은 종종 자신의 그림에 그와 관련된 텍스트를 새겨 넣었다. 이런 글을 제화(題畵)라고 한다. 마치 상나라 때 정인(貞人)이란 지식인 집단이 거북의 뼈에 문자를 새겨 넣었듯이 문인들은 자신의 그림에 설명을 달아 놓은 것이다. 이 책은 상대(기원전 1600∼1045년) 갑골문부터 청대 괴짜화가 석도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사를 그림과 제화를 중심으로 살펴본다.‘명말의 그로테스크 화가 진홍수’ ‘문인 은사 심주(沈周)와 명대 쑤저우의 엘리트문화’ 등의 글이 실렸다.1만 4000원.●선조, 조선의 난세를 넘다(이한우 지음, 해냄 펴냄) 안으론 사림이 득세하고 밖으론 오랑캐 침입의 난리를 맞은 조선의 국왕 선조. 그는 흔히 유약하고 무능한 인물로만 인식돼 왔지만 이 책은 그런 관점을 거부한다. 사림을 등용해 훈구정치의 막을 내리게 한 용인술의 대가, 조선 최고의 명필이자 사서(四書)를 훈민정음으로 풀어쓴 최초의 군왕,10만 양병의 기획자이자 7년 전란 후에도 왕권을 지킨 통치자…. 혹자는 수도와 백성을 버리고 떠난 파천이 선조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하지만, 이 또한 군력이 약한 상황에서 택한 위기관리술의 하나라고 주장한다.1만 3000원.●영국사:보수와 개혁의 드라마(박지향 지음, 까치 펴냄) 영국은 18세기 후반부터 한 세기 이상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당시 영국 본토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세계 최초로 의회민주주의를 발달시키고 최초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뿌리내렸으며 최초로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또한 19세기 말에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제국을 거느리기도 했다. 한국 영국사학회 회장인 저자는 영국 역사를 “대규모 유혈혁명을 겪지 않은 채 근대 세계를 수백년 동안 선도해온 ‘모범생의 역사’”로 규정한다.2만원.●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정순태 지음, 김영사 펴냄) 13세기 천하정복을 꿈꾸며 세계의 7할을 복속시킨 몽골.40년간 그 야욕에 맞선 불굴의 고려. 이 막강 여몽연합군의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정벌은 태풍이란 천재지변으로 실패했다. 일본이 최초의 외침인 여몽연합군의 침략을 물리치고 ‘신이 보호하는 나라’라는 거대한 신화를 만들어낸 이면엔 어떤 진실이 숨어 있을까.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로를 따라가며 중세 동아시아 관계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전쟁이 2차 세계대전의 가미카제 특공대를 낳고,21세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야스쿠니 신사참배까지 이어지는 일본 민족주의의 자궁이라고 일침을 가한다.9900원.
  • “日 역사적 진실 존중·실천 필요” 노대통령 3·1절 기념사

    노무현 대통령은 1일 ‘제88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참석, 기념사에서 “우리는 일본과 사이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한다.”면서 “경제·문화 등에서 이미 단절하기 어려운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3·1절 메시지는 예년처럼 일본을 겨냥한 원칙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완곡한 표현에서 보듯 비판 수위가 한층 낮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등 한·일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점을 감안한 수위 조절인 듯싶다. 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무엇보다 역사적 진실을 존중하는 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실천이 필요하다.”면서 “역사교과서, 일본군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참배 같은 문제는 성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양심과 국제사회에서 보편성을 인정받고 있는 선례를 따라 성의를 다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이것이 국제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길이 될 것”이라며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아직도 일본의 일부 자치단체는 러일전쟁 당시 무력으로 독도를 강탈한 날을 기념하고 있다.”면서 “일부에서는 지난날의 과오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나아가서는 역사를 그릇되게 가르치는 일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이제는 우리 국력과 역사의 대세에 대한 확신을 갖고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앞장서 이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北 핵폐기·개방땐 소득3000弗 가능”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 가운데 한명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6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생각을 바꿔 핵을 폐기하고, 세계를 향해 개방을 하고 나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전 시장은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세계를 향해 개방한다면 10년 안에 북한 경제가 1인당 소득 3000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독재자라는 점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 “지구상에서 모두 그렇게 인정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저는 장기독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고 긍정적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전 시장은 영어로 낭독한 모두발언을 통해 ‘창조적 재건과 비전’을 주제로 한 한국 외교의 과제와 원칙을 제시했다. 자칭 ‘MB독트린’이라고 소개했다. 우선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와 실질적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적 대북 개방정책 추진을 주요 내용으로 한 ‘비핵·개방 3000구상’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중인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남북관계의 현안은 북핵인데 남북정상이 만나 이에 대한 해결책을 합의하지 못한다면 말로만 평화를 선언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 전 시장은 한·미관계에 대해서도 “(현정부 들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이유는 청사진도 없이 기둥부터 바꾸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라며 한·미간 새로운 전략적 마스터플랜의 필요성을 요구했다. 이밖에 ▲아시아외교 강화 ▲정부개발원조(ODA) 등 경제규모에 맞는 국제사회 기여 ▲에너지 실크로드를 통한 국가간 에너지협력벨트 구축 ▲상호개발과 교류를 통한 ‘문화코리아’ 지향 등을 중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 전 시장은 한·일 및 한·중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상대국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그는 “현재의 한·일관계가 어려운 것은 노무현 대통령에게만 책임이 있다기보다는 교과서 왜곡, 신사참배 등 일본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좋은 이웃이라고 생각하지만 동북공정 등 역사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가 많이 나와 (우리 국민이) 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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