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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신생명 오늘 신사옥 이전

    창립 10년을 맞는 대신생명이 본사를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보라매공원 옆인 동작구 신대방동 대신생명빌딩으로 옮긴다.지상 32층과 22층,지하 9층의2개동으로 사무실 상가 오피스텔로 이뤄진 주상복합건물이다.26일부터 신사옥에서 업무가 시작된다.(02)3284-7000.
  • 한국통신 광화문시대 마감/분당 신사옥에 9월2일 이사 완료

    한국통신의 광화문 사옥시대가 막을 내린다. 한국통신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소재 분당 신사옥이 최근 완공됨에 따라 본격적인 이전 작업에 착수,15년간의 광화문 시대를 마감한다고 21일 밝혔다. 이날부터 부서 별로 짐을 꾸리기 시작해 9월2일 이사가 완료된다. 한국통신의 사옥 이전 작업은 각종 서류와 장비 등 이동 물량이 10t 대형트럭 200대분에 이른다. 사옥 이전과 함께 분당으로 근무처를 옮기게 되는 한통직원은 모두 1,600여명이다. 한국통신 광화문 사옥에는 광화문전화국과 일부 부서만 남게 되고 올 11월쯤 현재 신문로 세안빌딩에 세들어 있는 정보통신부가 입주한다. 93년 4월 착공돼 이달 완공된 한국통신 분당 신사옥은 지상 21층,연면적 12만2,000여㎡ 규모의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이다.
  • 무역금융 한도 폐지… 수출 中企 지원/무역투자 진흥회의 보고내용

    ◎자급불능 원자재 연말까지 할당관세 적용/외국인투자 공장 설립까지 원스톱서비스/해외바이어 20만명 유치·외환수수료 인하 산업자원부와 무역협회,무역투자진흥공사 등이 27일 무역투자진흥 대책회의에서 金大中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요약한다. ▷무역분야◁ 무역금융 융자한도를 폐지,수출주문이 급증하고 있는 우량기업을 지원한다.한은의 총액대출한도를 증액,무역금융용으로 별도책정한다.IBRD자금 등 가용외화자금을 활용,D/A(인수도조건) 등 외상수출환어음 매입용도로 지원한다.수출입은행의 제작금융 및 연불수출금융용으로 IBRD 등의 자금을 긴급지원한다.신용보증기금 및 수출보험지원을 대폭 확대한다.IBRD자금등을 활용,원자재 수입결제자금 30억달러를 지원한다.미 농산물 수출지원자금(GSM) 추가확보 등 해외 수출신용자금을 확보한다. 알루미늄 등 국내공급이 어려운 원자재는 12월까지 한시적으로 할당관세를 적용한다.수출입은행의 수입자금 2천억원을 특별신용보증대상에 포함시킨다.수출입관련 금융기관의 취급수수료를 적정수준으로인하한다.무역자동화 수수료 50% 할인요율 적용기간을 9월말까지 연장한다.관세사 수수료를 외환위기 이전 환율수준으로 환원,적용한다.물류업의 진입규제를 완화하고 수출입절차를 간소화한다.관세법상의 54개 수입절차를 전면 재검토해 올해안에 개정을 마친다. ▷투자분야◁ 올해안에 투자상담에서 공장설립까지 인허가를 일괄처리하는 ‘일관지원체제’도입을 추진한다.산업자원부에 ‘투자유치국’설치 방안을검토한다.무역투자진흥공사의 미·일·EU 등의 주요 무역관에 투자유치 전담팀을 운영한다.상반기중 입법추진해 각종 원스톱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인허가 절차를 없애준다.법인세 감면과 관련,고도기술을 가진 외국인 투자에 대해 ‘5년간 전액 면제,이후 3년간 50% 감면’에서 ‘7년간 전액면제,이후 3년간 50% 감면’으로 폭을 확대한다. 투자범위도 7개분야 261개 업종에서 첨단산업지원 서비스업을 포함토록 한다.외국인 투자기업의 임대료 감면 기준을 고도기술투자는 2천만달러에서 1백만달러 이상으로,일반제조업은 1억달러 이상에서 1천만달러 이상으로 완화한다.무공 신사옥에 외국인 투자용 ‘창업 인큐베이터’를 설치한다.외국인투자지원 기금 5천억원의 조성한다. 6월중 미국 뉴욕과 로스엔젤레스에서 대미 벤처투자포럼을 개최한다. ▷무역투자진흥공사◁ 1만명 이상의 바이어를 유치한다.수출구매상담회를 7회로 늘린다.무역역조가 심하고 대규모 거래 가능성이 있는 국가를 중심으로 해외 전시회에 총 70회 참가한다.무역관의 중소기업지사화를 강화한다.바이어 인콰이어리 정보제공을 대폭 확대 제공한다. ▷한국무역협회◁ 국내외 자금조달이 어운 종합상사의 본지사간 D/A거래에 대한 은행의 환어음 매입을 재개하고 수출환어음 담보대출의 경우 대기업 대출한도를 제외해야 한다.자금력이 취약한 종합상사 등 수출전문기업체는 부채비율,개선목표,달성시한 등 구조조정 요건에서 별도 배려해야 한다.각종 외환수수료를 인하해야 하고 외환수수료 결정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운영해야 한다.해외바이어 20만명 유치와 수출입거래알선 15만건 등 ‘수출더하기 액션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 이건희 회장,2,180억 출자/삼성그룹 개혁안 발표

    ◎3∼4개 주력업종 재편… 중앙일보 분리/도곡동 신사옥 백지화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개인 부동산 등 2천1백80억원 규모의 사재를 계열사 자금과 종업원 고용조정대책기금에 쓰기로 했다.중앙일보를 빠른 시일 내에 완전 분리독립시키고 그룹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온 강남구 도곡동 102층 신사옥 건립계획도 백지화했다. 아직 개혁안을 발표하지 않은 대우와 SK그룹은 현대와 LG그룹의 발표과정에서 총수의 사재출연 문제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데다 이들 두 그룹과 삼성의 발표내용이 차이가 커 수위조절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그룹은 21일 그룹운영위원회와 사장단회의를 거쳐 이같은 내용의 그룹개혁안을 확정,발표했다.회장비서실 지승림 부사장은 “이회장의 개인부동산 1천2백80억원어치(기준시가 기준)를 매각,계열사에 출자하고 이달 안에 개인예금(57억원)과 소유주식에서 1백억원을 고용조정대책기금으로 내놓을 계획”이라며 “이외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끝날 때까지 이회장의 주식배당금 등 개인수익의 90%인 80억원(8백억원 출자효과)을 매년 계열사자금과 종업원 복지에 쓰기로 해 실제 사재출연규모는 2천1백8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회장과 계열사 소유의 중앙일보 지분을 정리,그룹에서 완전분리하고 외국 전문연구기관의 용역을 거쳐 전체 계열사를 3∼4개 주력업종으로 재편키로 했다.중앙일보 분리와 관련,삼성영상사업단과 묶어 종합영상문화사업 회사로 변모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지부사장은 덧붙였다.지부사장은 자동차사업과 관련해서는 “외국 연구용역결과가 나오면 내부방침과 외부 용역결과를 종합해 구조조정을 할 계획”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경영진의 책임강화 차원에서 회장비서실 임원을 주요 계열사의 이사로 등재,상법상 책임을 묻게 하고 올 주총부터 외국인 사외이사제를 도입,사외이사의 비중을 30% 이상까지 높이며 외부감사제도 도입키로 했다. 삼성전자를 5년 안에 뉴욕증시에 상장시키고 현재 267%인 부채비율을 5년내 선진업체 수준인 150%로 줄이며 뉴저지 도쿄(동경) 싱가포르 등지의 해외 법인사옥도 팔아 국내 자금으로사용키로 했다.이밖에 99년 회계연도부터 결합재무제표를 도입하고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도 99년까지 완전 해소키로 했다. 한편 대우그룹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주거래은행 등과 협의를 가져야 하는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정확한 시기를 밝힐 수 없지만 설 연휴 이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그룹들도 개혁안 발표를 위해 내부작업을 벌이고 있다.쌍용그룹은 총수의 사재출연부분은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것인 만큼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나 이 부분이 결정되는대로 개혁안을 완성,설 이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코오롱그룹은 이미 지난주 작업을 거의 마무리했으나 삼성그룹의 발표내용을 토대로 보충작업을 하고 있으며 설이후 총수의 사재출연과 계열사매각과 합병내용을 발표하기로 했다.
  • 서울신문 52년 일지

    [1945년] △11.22 서울신문 창간 [1946년] △3.1 제1회 ‘3·1기념 서울∼인천간 왕복마라톤 경기대회’ 개최(77년 32회까지 존속) [1948년] △10.18 시사지 ‘주간 서울’ 창간 [1951년] △3.8 한국전쟁 중공군 참전으로 부산 피난 △4.6 서울 환도 진중 신문 발행 [1953년] △8.16 첫 견습기자 공채 실시 △9.1 어린이신문 ‘주간소년서울’ 창간 [1954년] △1.1∼8.6 소설 ‘자유부인’ 연재 [1956년] △10.18 신문사상 첫 한글판 제작 [1958년] △10.1 첫 조석간 발행 [1960년] △4.19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 전소 △4.26 휴간 △6.27 속간 [1961년] △5.9 경영난으로 휴간 △12.21 속간 [1962년] △8.13 석간으로 전환 [1966년] △2.9 국내 최초 1백만원 고료 장편소설 당선작 시상 [1968년] △9.22 대중주간지 ‘선데이서울’ 창간 △11.22 전면 한글전용 단행 [1975년] △3.30 ‘주간스포츠’ 창간 △11.2 ‘주간소년서울’ 폐간 [1978년] △10.5 보관자료 마이크로 필름화 [1980년] △12.2 조간으로 전환 [1981년] △7.18 주간지 ‘TV가이드’ 창간 [1985년] △1.1 언론사상 최초로 CTS 도입,태평로 신사옥 입주 △6.23 스포츠전문일간지 ‘스포츠 서울’ 창간 [1990년] △여성월간지 ‘퀸’ 창간 [1992년] △7.31 구로공장 준공 △12.31 ‘선데이서울’ 폐간 [1992년] △1.5주간 ‘피플’ 창간 △7.3 대구인쇄본부 준공 △12.25‘피플’을 ‘뉴스피플’로 제호 변경 [1994년] △2.18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본부’ 발족 [1995년] △11.22 서울신문·스포츠서울뉴스넷 개통 [1996년] △1.29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국내 첫 동화상 속보체제 시작 △10·1 전면 가로쓰기 단행 [1997년] △7.1 세계최초 타워형 샤프트리스 윤전기 배치 △11.20 5세대 CTS 및 타워형 샤프트리스 윤전기 본격 가동
  • 뉴코아 자구계획 확정/부동산매각 등 1조2천억 규모

    뉴코아그룹은 27일 부동산매각 8천4백50억원,예금과 대출 상계처리로 3천5백억원,기구축소와 인력감축·광고비절감 등으로 4백80억원 등 모두 1조2천4백3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확정,제일은행 등 채권금융기관에 제출하고 협력업체의 이해를 구하기로 했다. 자구계획에 따르면 뉴코아는 백화점 부문에서 잠원동 본점과 평촌 제1백화점 등 영업실적이 좋은 곳을 팔고 현재 공사중인 의정부,서울 응암동,평촌Ⅱ,창원 등 백화점 4곳을 매각해 6천억원을 확보키로 했다. 또 잠원동 백화점 문화센터 건너편의 신사옥 등 독립건물 5채를 매각해 4백50억원을,대전 등 전국에 산재한 백화점부지 8곳을 팔아 1천5백억원을,80개 외식업소의 임대 및 매각을 통해 5백억원을 각각 조달키로 했다. 뉴코아는 이같은 자구계획을 1년내에 추진키로 하고 매각 대상에 올린 54건의 부동산에 대한 목록을 작성,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감안해 원매자가 나타나는 부동산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매각키로 했다.
  • 주거문화의 과거·현재·미래 조명/주공,주택문화관 열어

    ◎분당 새사옥에 230평규모/세계 전통가옥 모형 전시/한옥의 건축미·우수성 강조 대한주택공사는 지난 1일 분당 신사옥안에 주택문화관을 개관,일반에 공개했다. 단일 주택건설기관으로는 처음 지난해말 주택 1백만가구를 건설하고 분당으로 사옥을 옮긴 것을 계기로 마련된 이 문화관은 주거문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하고 있다. 주택문화관은 230평 규모이며 별관 2층에 마련됐다.‘전통의 멋과 미래의 꿈’을 주제로 과거 현재 미래마당 및 영상관,휴게실,주공마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서는 우리의 전통가옥,한옥건축기법 등을 소개하고 세계의 전통가옥과 미래의 주거형태를 모형으로 전시하고 있다.특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주거문화를 형성해 온 우리 민족의 주거형태,한옥의 건축적 우수성과 건축미를 강조하고 주거문화의 발전방향을 제시해 초중고생의 교육의 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단체관람시는 예약해야 한다.(0342)738­3903.
  • 기아노조 ‘노사대표 합의’ 전면 거부

    ◎인력감축 등 자구책 이행 난항 예상/사측 “회사살리기 차원 대화계속” 기아그룹 노조원들이 3년간 무분규와 인원감축을 거부하고 나서 기아그룹 자구책 이행에 난항이 예상된다.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 등 기아그룹 계열사 노조는 28일 노조별로 조합원 총회 등을 열어 노조대표가 지난 26일 경영진과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3년간 무분규 △인력 감축 △단체협약안 갱신 등 3개항의 수용여부를 논의한 끝에 전면 거부키로 결의했다.이에 따라 기아그룹이 채권단에 낸 감원 등 자구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채권단 요구를 노동운동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민주노총 등과 연대해 응징에 나설 것”라고 밝혀 기아사태가 채권단과 노동계의 대립 양상으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기아자동차 노조는 “기아가 부도에 내몰린 것이 마치 강성노조때문인 것처럼 대량 인원삭감과 단체협약상의 경영 인사권 삭제 등을 금융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기아정상화를 위한 노동조합의 자구노력을 가로막고 특정 재벌의 기아인수를 획책하는 우려와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아그룹 송병남 기획조정실장은 “채권단이 단체협약상의 경영·인사권 삭제를 요구했다는 것은 잘못된 내용”이라며 “채권단이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요청해 옴에 따라 회사가 스스로 3년간 무분규 선언을 노조에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노조대표가 3년간 무분규에 공감했지만 합의는 하지 않았다”면서 노조와 순리적으로 대화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기아그룹은 이날 대지 1천285평에 건평 1만1천200여평인 여의도 신사옥을 비롯한 33건의 부동산 매각공고를 냈다.공고된 부동산에는 1만2천700여평의 시흥 서비스공장과 용인 연수원이 포함돼 있다.광주공장 부지 등 아시아자동차의 부동산 37건은 매각 문제가 최종 결정되는 오는 30일 매각 공고된다.기아자동차 등 4개사는 오는 31일 여의도 구사옥 지하 1층 강당에서 매각 부동산에 대한 설명회를 갖는다.
  • 이효계 토공사장(공기업 최고경영자에 듣는다)

    ◎「간접 국토확장」 해외개발 적극 추진/주택·공장용지 올 640만명 공급… 연차적 확대/정부 의존도 낮추고 「팔릴수 있는 토지」 개발 주력/수도권 다핵분산형 개편… 주택가격 안정에 최선 □대담=권혁찬 경제부차장 성남시 분당의 한국토지공사 신사옥에 들어서면 1층에 「토지박물관」이 있다.이 곳을 둘러 보면 고조선과 발해시대를 포함,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의 영토가 표시된 지도가 눈길을 잡는다. 이는 토공이 영토확장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다가오는 21세기에는 과거에 잃었던 고토를 회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토공의 이효계 사장은 서울신문 경제부 권혁찬차장과 가진 대담에서 『올해에는 지난해 마련한 중장기 전략경영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해 도심 재개발과 유통단지,관광단지,해외 토지개발 등의 전략사업을 가시화하겠다』고 말했다.특히 「고객만족」에서 한 발 더 나가 「고객 감동경영」을 펼침으로써 품질과 서비스로 승부하겠다고 강조했다. ○22년만에 새 사옥 마련 ­설립 22년만에새 집을 마련,지난달 분당으로 옮기셨는 데요.축하드립니다. ▲토공은 땅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기관이면서도 정작 자체 사옥이 없어 여러차례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주택난 해소와 산업입지의 확충을 위한 투자가 우선이었기 때문이었지요.신사옥 입주를 계기로 전 임직원이 새로운 각오로 일하고 있습니다.우선 내실경영에 주력할 것입니다.그동안은 정부 지원에 많이 의존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성장여력을 비축하고 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라고 봅니다.통일시대와 남북교류 활성화에 대비하고 시대변화에 맞게 각종 규제를 고객의 입장에서 풀어나가겠습니다. ­신도시 개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사업주체인 토공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부동산 값이 폭등하던 80년대 말에 분당 등 4개 신도시 건설을 맡았습니다.쾌적한 도시를 만들려고 애썼습니다.그러나 짧은 기간에 큰 사업을 하다 보니 자족기능이 완비되지 못해 입주민들의 불편이 컸던 게 사실입니다.지금은 신도시의 자족기능 촉진과 도시의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일산의 경우 국제회의장과 전시장,법조연수단지,통일법제연구원이 입주할 예정입니다.분당에는 한국통신,주택공사,가스공사 등 공기업과 삼성·대우 등 민간업체가 대거 들어올 예정이어서 이곳의 자족기능은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영국의 「밀턴케인즈 신도시」에서 보듯 하나의 도시가 성숙하려면 수십년의 세월이 걸립니다.따라서 신도시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다만 신도시 건설로 부동산시장이 안정을 되찾은 점과 짧은 기간동안 짜임새있게 건설된 점을 외국 전문가들도 인정하고 있습니다.국민의 주거수준을 한단계 올리고 21세기의 새로운 도시건설 모델과 주거문화의 방향을 제시한 성과도 주목해 줬으면 합니다. ○신도시 평가는 이르다 ­공공토지로 수용할 경우 토지 소유자에게 세금 감면이나 면제 혜택이 있습니다만,수용 주체가 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피해를 보는 사례가 있습니다. ▲좋은 지적이십니다.몇년 전 일산 등지에서 그같은 민원사례를 접수한 일이 있습니다.토공에서는 토지 수용시 각종 세금 관련문제를 통보해 주고 있습니다만,일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그런 일이 생긴 것으로 압니다.토지를 수용당하는 사람들은 수용주체로부터 수용확인원을 발급받아 국세청에 신고하면 관련 세금에 대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토지 피수용자에게는 반드시 이같은 내용을 알려 민원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해 계획된 토지개발 규모는 어느 정도 입니까. ▲신경제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인 올해에는 3조6천억원을 들여 총 3백71만평의 택지와 2백29만평의 공장용지 등 모두 6백40만평을 공급하게 됩니다.주택용지는 계속사업지구에서 2백50만평을 공급하고 전국 88개 신규사업지구에서 3백71만평의 택지를 공급합니다.공업용지는 군장·녹산 등 19개 사업지구이며 특히 해외공단개발 사업중 러시아 나홋카 공단은 빠르면 하반기에 착공됩니다.또 토지의 수급조절 차원에서 올해 30만평을 사들이게 됩니다.해외 공단개발의 경우 우리기업들이 입주하게 되면 「영토확장」이나 다름없습니다. ○수도권 219만평 공급 ­택지의 경우 수도권과 지방의 사정이 크게 다를 텐데요. ▲수도권은 인구집중과 산업과밀로 교통·주택 등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82년부터 94년까지 전국 택지개발 면적은 9천8백만평이었습니다.이 가운데 49.4%가 수도권에서 이뤄졌습니다.그런데도 95년 현재 수도권의 주택 보급률은 76.5%로 전국 평균 86.1%에 크게 못미칩니다.아파트 가격 등 부동산 시장의 큰 흐름은 수도권에서 결정됩니다.정부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권을 다핵분산형 공간구조로 개편하는 등의 국토개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토공도 여기에 맞춰 수도권내 장기 토지수급량을 예측하고 연차적·권역별로 택지를 확보해나가고 있습니다.현재 수도권의 인구집중 추세와 산업 구조조정 패턴을 감안할 때 2011년까지 수도권에서는 전국 소요량의 40.3%인 1억5천만평이 필요합니다.올해 수도권지역에서는 8개 지구에서 4만8천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2백19만평이 공급됩니다.토공에서는 사업시기를 최대한 앞당겨 아파트 가격 상승에 대한 불안심리를 없앨 계획입니다. ­최근 발표된 미니 신도시쪽의 투기우려는 없습니까. ▲아직은 심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정부가 발표한 용인 동백지구와 화성 향남지구도 조기 개발에 착수,수도권 집값 안정에 기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산단지 분양가 인하 ­최근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아산국가산업단지의 일부 분양가를 내렸습니다.앞으로 분양가 인하를 더 확대할 생각을 없으십니까. ▲산업용지 분양가는 국가 산업경쟁력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요즘 흔히 말하는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적인 것이 높은 땅값입니다.우리나라 공장용지의 분양가가 선진국이나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토지 보상비가 높기 때문입니다.조성원가로 공급하는 공장용지의 분양가를 내리기 위해서는 원가절감 노력 외에 간선시설 설치비 등 조성원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줄여야 합니다.선진국과 경쟁국은 간선시설 외에 공단내의 공원,하수처리시설,간선도로까지 지자체나 국가에서 전액 지원하고 있습니다.토공은 정부의 「경쟁력 10% 이상 높이기」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아산국가산업단지의 분양가를 지구별로 최고 22%,평당10만원을 내리는 등 특단의 가격인하 조치를 단행했습니다.목포대불,동해북평,김천구성 산업단지 등 다른 산업단지에 대해서는 할부이자를 면제하고 대금 납부기간을 연장해 줌으로써 사실상 분양가 인하효과를 냈습니다.이밖에 공단내 녹지율의 하향조정과 입찰방식으로 공급하는 영리시설용 용지의 분양에서 얻는 이익만큼 조성원가를 내리는 방법,신공법 개발을 통해 분양가의 인하조치를 꾸준히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판촉 D­60일 운동」계획 ­지난해에는 목표치를 넘는 토지를 분양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올해는 어떻습니까. ▲작년에는 토지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6백90만평,4조3천억원어치의 토지를 공급했습니다.산업용지는 가격인하 등 특단의 조치를 통해 목표대비 132%의 공급실적을 기록했습니다.올해도 계속되는 국내 경기의 침체와 정부의 재정 긴축운용으로 부동산 경기를 낙관하기 어렵습니다.또 개방화·민간화·지방화 등의 가속으로 좋은 땅을 확보하기가 힘들고 땅값 상승과 지자체의 간선시설 지원요구 등으로 원가상승 요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따라서 올해에는 팔지 못하고 남은 땅을 줄이는데 중점을 둘 작정입니다.지난해 처럼 판촉활동에도 적극 나서 상·하반기에 「판촉 D-60일 캠페인」을 벌일 예정입니다.지역별 고객지원센터 완비를 통한 전국 통합판매망을 구축하고 수요자 위주의 토지특화,유효수요 계층별 집중광고전략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겠습니다. ­미분양 재고토지는 어느 정도입니까.빨리 처분할 방도는 없나요. ▲개발사업이 끝났는데도 팔리지 않은 땅은 4월 현재 3백88만평입니다.금액으로는 4조8백67억원이나 됩니다.이처럼 미매각 토지가 많은 것은 92년 말부터 지속된 부동산 경기침체 탓입니다.전체 재고토지 금액의 68%를 차지하는 신도시 상업·업무용지의 매각 부진도 큰 원인입니다.과거에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생산하기만 하면 팔린다』는 공급자 위주의 판매방식에 안주하던 경향이 없지 않았습니다.지금처럼 장기간의 부동산 경기침체기에는 마케팅 방식은 물론 경영 전반에 대한 혁신까지 요구되고 있습니다.이제 민간기업식의 마케팅 방법을 과감히 도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이미 모든 제품에 보편화된 「토털 마케팅」 개념을 토지상품의 원자재의 취득·개발 등 생산단계에서 도입해 「팔릴수 있는 토지」의 개발에 주력하도록 하겠습니다. ○「토털 마케팅」 개념 도입 ­우리처럼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는 구조적으로 땅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습니까.21세기를 대비해 국토를 더욱 효율적으로 개발·공급하는 등의 중장기전략을 소개해 주시지요. ▲인구는 많고 국토는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짜임새 있고 효율적으로 국토를 가꾸어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 합니다.토공은 「국토의 경쟁력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국토종합개발계획의 기본이념을 바탕으로 「21세기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전략경영계획」을 세웠습니다.세계 제일의 자랑스런 국토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꿈,코랜드 드림(KoLand Dream=한국토지공사의 꿈)을 실현하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중장기 기본전략으로는 2001년까지 택지를 연평균 2.9%,산업용지를 4.2%씩 지속적으로 확대 공급하겠습니다.유통단지,관광단지,복합단지 등신규 전략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산지와 구릉지를 이용한 싼값의 전원형 택지도 체계적으로 개발·공급할 계획입니다.개발방식도 민간기업 또는 지자체와 공동으로 추진,시너지 효과를 높이겠습니다.
  • 건축가 윤승중(이세기의 인물탐구:126)

    ◎“갓지은 건물도 늘 있었던 것처럼”/주변과 조화된 기능적·유기적 공간 창조/60년대 김수근사단 합류… 한국건축 선도 반포대교를 건너 서초동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우뚝 선 대법원청사가 건축가 윤승중의 작품이다.수만평규모의 이 거대한 백색건물은 돌로 마감된 심풀한 조형을 보이면서도 열주와 창틀의 돌출,클래시컬한 디테일이 세부적으로 표현된 것이 눈에 띈다.그의 건물은 모뉴멘탈과 아날로지(류추)를 복합하지만 「전체가 부분에 대하여,부분이 전체에 대하여,건축은 유기적이어야 한다」는 거장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이론을 실천시킨다.그의 건물들은 대지의 수평에 동화된듯한 단순한 외형에 비해 한 동선으로 연결되는 플렉시블한 내면기능이 특징이다.아무리 갓 지은 건물이라도 새롭거나 생경한 이미지를 보이지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느낌이 두드러진다.외형은 칸딘스키의 직선과 횡선으로 음영을 배분하고 건물전체에 입체성과 양광을 강조한다.또 건물안에서 생겨날 상황과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가장 쾌적하고편리한 공간을 조성해 나간다. ○기능에 맞춰 형태 결정 그는 60년대 그가 배우고 공부하던 김수근건축연구소시절에도 선배인 김수근씨와 이로인한 논쟁을 그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른바 김수근씨는 먼저 모양을 정하고 나중에 기능을 형태속에 「집어넣는 식」이라면 그는 먼저 「유기성을 생각하고 형태는 기능에 맞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주의다.그리고 다분히 과장되고 때로는 자유분방한 김수근씨의 스케치들을 합리적으로 첨삭하여 곡면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공간장치들을 시공이 가능하도록 도면화하는 작업에 중점을 기울여왔다. 그는 대학 3학년때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대법원청사및 대법원장공관」설계경기에서 1등에 당선한 경력이 있다.이 계획은 무산되었으나 다음해 김수근씨가 남산에 계획된 「국회의사당 현상설계」에 당선되자 「국회의사당」이라는 최대의 이벤트를 계기로 안국동 김수근건축연구소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선 건축가 윤승중이라고 하면 60,70년대 우리건축을 이끌어온 김수근씨를 국제적 스타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은 건축계에선 누구나 아는 일이다.김수근씨는 지난 60년초 일본에서 배워온 「노출 콘크리트기법」을 아시아반공연맹본부인 자유센터와 오양빌딩 수도의대신관 등에 적용하여 탁월한 창의력과 응용력을 발휘해 보였고 윤승중은 그가 「장차 한국 건축계를 이끌어갈 큰 희망」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일본에 동경대교수인 당게겐조(란하건삼)를 중심으로한 도쿄만(만)계획팀이 있듯이 한국에서도 김수근을 앞세운 엘리트집단이 요구된다는 것이 윤승중의 판단이었다.그는 이를 위해 서울대공대 건축학과출신들을 김수근건축팀에 수합하고 60,70년대 한국건축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공헌했다. ○내부 합리적 동선 특징 단지 그로서는 메타볼리즘(소통)에 대한 동의와 철저한 질서체제에 관심을 갖고 모더니즘을 배경으로한 건축의 합리성,가변성과 피라미드 모형의 하이어라키등의 어휘에 익숙한 세대였으나 「김수근건축의 조형의지」를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조금씩 숨겨놓고」 논리적인 규칙들을 도입하여 적용하는 쪽으로 타협해 나갔다. ○영종도 신공항건설 참가 안국동에서 참여한 프로젝트중에서 그가 특별히 애착을 갖는 것은 노출 콘크리트기법의 대표적인 워커힐의 힐탑바나 타워호텔 국제회의장,역시 실현되진 않았으나 남산 서울음악당과 자유센터등이다.나무형틀의 질감을 살려낸 콘크리트의 조형어휘들이며 공간의 한정을 의미한 곡면지붕,토기파편을 소재로한 부조벽면과 기능을 초월한 공공 스페이스연출 등은 당시의 그에겐 신선한 건축체험이 아닐수 없었다.이렇게 그의 건축에의 길은 출발서부터 상서로운 기미를 보였고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김수근문하에서 일한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고 말할수 있게 되었다. 만 9년간의 안국동시대를 마감하고 70년,「도시와 건축을 근본으로 한다」는 취지의 「원도시건축」을 창립,후배인 변용과 함께 그는 지금까지도 이상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그동안 태평양건설본사 성균관대 수원캠퍼스 태릉사격장 청주국제공항 국토개발원 수자원공사 한국종합무역센터의 전시동 등 최근에는 성남에 있는 경남 실버타운을 완공하고 영종도 신공항 대형프로젝트에 손대면서 「건물은 도시의 한부분이고 이 건물들이 어울려 도시를 만들어낸다」는 의지를 굳건히 지킨다.혼자서 빛나는 개성적인 건축이나 위대한 건축이 아닌,주변환경과 익숙하게 어울리고 전체에 도움이 되는 「좋은 건축」을 지향하려는 것이 변치않는 건축의지다. 그는 언제봐도 조용하다.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편이고 주변에서는 그가 화를 내는 것을 본 사람이 드물다.그와 절친한 건축가 공일곤은 「모션은 크지 않지만 철저히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하는데 천재적」이라고 감탄한다.서울에서 위스키공장을 하던 윤기병씨의 아들 다섯중 둘째,종로구 화동에서 성장하면서 서울중·고와 서울대를 다녔고 고교시절부터 종로에 있던 음악실 르네상스에 드나들었다.건축과의 관계는 그의 부친이 취미삼아 일본에다 주문해서 구독하던 건축잡지를 보면서 건물과 인간과의 집요하고도 필연적인 관계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건축 건축학도시절에는 유기적 건축을 주장한 F L 라이트와 기능주의의 대표주자이던 르코르비지에,마천루안을 제시한 미스반데르로와 건축물과 환경과의 융합을 역설한 알바알토를 텍스트로 삼기도 했다.이제는 그들의 각 특징을 고루 수용하면서 그만의 편리성과 기능위주의 「훌륭한 집만들기」에 전력을 쏟고 있다.강남구 신사동 원도시건축연구소에서 1백30여직원들과 하루종일 건축을 숙의하고 건국대 건축대학원에서 일주일에 두번 강의,가족은 한양대 섬유공예과를 나온 부인 조의정씨와의 사이에 남매.딸 성원씨 부부가 하버드대 건축대학원에 다닌다. 그는 21세기를 맞는 시점에서 고도의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하이테크 문화」와 「엔트로피 문화」의 공존을 수긍하고 첨단사회로 갈수록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건축으로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욕이 대단하다. 자연경관을 배경삼아 삶의 공간을 설계하는 예술가.「건축이 인간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한다」는 것을 철저히 믿는 그는 건축의 기능과 기술을 구사하여 격조와 완벽성을 결집시키는데 앞으로도 언제나 선두에 서서 한국건축을 지휘하게 될 것이다. □연보 ▲1937년 서울 출생 ▲56년 서울고 졸업 ▲60년 서울대 공대 건축과 졸업 ▲61­66년 김수근건축연구소기획실장 ▲66­69년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 도시계획부장(김수근팀) ▲70년 「원도시건축」 창립 ▲70­89년 한국건축가협회 이사 ▲70­85년 원도시건축연구소 소장 ▲76­80년 대한건축학회 이사 ▲82­현재 성균관대 객원교수 ▲85­현재 (주)원도시건축대표이사 ▲90­96년 한국예총이사 ▲90­94년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94­96년 한국건축가협회 회장 ▲95­현재 건설교통부 중앙설계심의위원 ▲96­현재 건교부 중앙기술심의위원 ▲96­현재 건국대 건축대학원 객원교수 ▲83­90년 독립기념관 건설위원 ▲85­96년 성균관대 공대 출강 ▷수상작품◁ 태평양건설본사(한국건축가협회상 78년) 한일은행종합연수원(한국건축가협회상 79년) 인제의과대부속백병원(대한건축사협회상 우수상) 대한화재해상보험본사(한국건축가협회상 80년) 한일은행본점(한국건축가협회상 82년) 삼천리산업본사(서울시건축상 83년) 한일투자금융빌딩(서울시건축상) 성균관대수원캠퍼스 체육관(대한건축사협회상 86년) 제일은행본점(서울시건축상 88년) 숭실대과학관(한국건축가협회상) 신도리코본사(대한건축사협회상 89년) 포항공대체육관(한국건축가협회상) 조선일보 신사옥(대한 건축사협회상 90년)외 ▷주요작품◁ 럭키빌딩 해운대관광호텔 피닉스관광호텔 소화아동병원 포항제철광양기술연구소 한국종합무역센터(사무동·전시동 및 조경) 대법원청사 청주국제공항 국토개발원 수자원공사 영종도신공항 분당 불루힐백화점 기상청청사 건국대충주병원 감사교육원 청사 등 2백여점 ▷수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표창 예술문화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 “신문 변혁” 주도… 언론사 새 장 열다(서울신문 51년)

    한장의 사진 속에는 지나간 역사의 한 순간이 시간이 정지된듯 그대로 살아 있다.올해로 51돌을 맞은 서울신문도 그 무르익은 연륜만큼이나 뜻깊은 사진을 많이 남기고 있다.낡은 한장의 사진에는 서울신문 변화의 발자취뿐만 아니라 격동과 부침을 겪으며 발전해온 우리 역사가 숨쉰다.서울신문이 우리 사회와 창조적으로 교감,그 발전을 이끌어온 사실이 무엇보다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서울신문과 우리사회를 씨줄·날줄 삼아 짜인 사진들을 통해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서울신문의 기념비적 순간들을 돌이켜본다. ▷서울신문 1호◁ 1945년 11월23일자 서울신문 첫호 1면.서울신문이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이어받아 창간했음을 전하는 기사가 한가운데 보인다.지령을 제13738호로 한 것은 1904년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로부터의 계승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 ▷언론메카 기공식◁ 1982년 4월6일 서울신문사는 태평로 옛사옥을 헐고 현재의 서울신문사·프레스센터 건물인 새사옥 신축에 들어갔다.지난 39년 건축돼 해방,정부수립,6·25,5·16 등 파란많은 한국현대사를 고스란히 지켜보며 서울신문과 영욕을 같이한 구사옥은 이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신사옥 기공식에서 힘차게 삽질하는 인사는 맨 왼쪽에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한사람 건너 문태갑 당시 서울신문사장,그 곁에 이광표 당시 문공부장관 등이다.새사옥은 84년말 완공됐다. ▷을지로 사옥 시절◁ 1982년 12월16일 서울 을지로5가 서울신문 임시사옥 게시판에서 「김대중 석방」을 알리는 속보를 보는 시민들.새사옥을 짓는 3년간 서울신문은 농협 건물에서 셋방살이를 해야했지만 서울신문 가족은 최신식 건물에서 더 크게 도약할 미래를 꿈꾸며 어느때보다 부지런히 뛰어 「중공기납치범」사진 특종,「아웅산 폭발사건」일보 등 잇따른 특종을 엮어냈다. ▷국내 첫 CTS 도입◁ 서울신문이 1985년 1월1일자부터 언론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컴퓨터편집조판시스템(CTS).태평로 새 사옥으로 돌아온 때에 맞춰 서울신문은 기존의 납활자 제작방식에서 탈피,최신기술의 결정체인 CTS로 신문을 찍어내며 전자신문시대의 새 장을 열었다.이후 모든언론사가 앞다퉈 CTS 대열에 참여했고 제작시간 단축,지면개선 등 신문제작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대구 분공장 준공◁ 1992년 7월1일 서울신문은 대구인쇄본부 건물을 준공,신문의 지방화시대를 열었다.준공식에 참석한 김영삼 당시 민자당대표 등 축하방문객들은 시설들을 둘러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구로공장에 이어 건립된 대구인쇄본부는 신문의 전국 동시인쇄를 가능케 해 「정보의 지방공유시대」를 앞당겼다.대구인쇄본부는 현재 하루 30만부 정도를 찍어내면서 서울판과 똑같은 따끈따끈한 뉴스를 지방독자들에게 전해준다. ▷인터넷 신문시대 개막◁ 1995년 11월22일 창간 50주년을 기해 서울신문은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서비스하는 「뉴스넷」을 도입했다.이로써 네티즌들은 서울신문을 비롯해 자매지인 스포츠서울·뉴스피플·TV가이드 등에 실린 모든 기사를 인터넷상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다.신속하고 세밀한 정보제공으로 「뉴스넷」은 개통 열달 만에 「하루 접속 1백만건 돌파」라는 기적을 일궈냈다.그러나 정보화의 혁명적 물결에 대비하고 더 나아가 이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서울신문의 정보화노력은 이제부터가 시작단계라 할 수 있다.
  • 공익정론 외길 초일류 고급지로(서울신문 51년)

    □45년∼84년 ·항일지 「대한매일신보」 뿌리로 ·54년 소설 「자유부인」장안 선풍 ·56년 언론사상 첫 한글판 제작 □85년∼현재 ·CTS 첫 도입 등 언론사에 큰 획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개통 ·96년 10월 전면가로쓰기 단행 서울신문은 해방공간의 어지러운 상황이 한창 전개되던 1945년 11월22일 태어났다. 서울신문 탄생은 당시 언론계는 물론 정치·사회·문화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은 하나의 사건이었다.일제 총독부 기관지 역할을 한 매일신보의 인쇄시설과 건물 등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신문발행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춘데다 이제야 비로소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담아낼만한 권위있고 책임있는 언론기관이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서울신문은 이와 함께 창간호를 1호가 아닌 제13738호로 시작했다.이는 새 시대를 맞은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을 자임하는 동시에 1904년에서 한일합방까지 지령 1461호를 기록한 대한매일신보와 이후 1945년 11월10일자(13737호)를 끝으로 미군정청으로부터 정간처분을 받은 매일신보의 전통을잇는다는 정통성의 표현이었다. 창간 이래 3년 가까운 기간 중립지 노선을 고수해온 서울신문은 그러나 국토가 분단되고 공산화 위협이 거세지자 반공지로 변신한다.직접적인 계기는 1949년 5월3일 공보처가 내린 발행정지 처분이었다.이유는 반정부기사를 많이 싣는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이후에도 각종 현안이나 이승만정부에 대한 건설적 비판논조는 계속 이어갔으며 미군철수안·여순반란사건·국가보안법 문제 등에서 비교적 온건하고 균형있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국전 발발은 서울신문에도 큰 시련이었다.기자 1명을 포함한 사원 8명이 목숨을 잃었고 시설 일부가 두차례나 파괴·해체당했으며,고단한 부산 피난시절을 감당해야 했다.그러나 서울신문은 멈추지 않았다.51년 4월6일에는 서울수복후 첫 진중신문을 발행,「우리는 돌아왔다」는 사설을 게재함으로써 서울시민들을 감격에 젖게 했다. 6·25전란은 한편으로 서울신문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다.이는 자유당 발족을 전후해 통치기반의 공고화를 꾀했던 이승만정부의 구상에 의한 것이었다.하지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서울신문은 정치부문에선 친정부적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도 기타 문제에 있어서는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가리는 절묘한 균형을 취했다. 한편 50년대초 반공포로 석방·휴전협정 조인·한일회담 결렬 등 역사적 사건들이 쉼없이 전개되는 속에서도 서울신문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사상초유의 인기와 시비를 몰고 왔던 소설 「자유부인」의 연재가 그것이다.54년 1월1일부터 그해 8월6일까지 모두 215회에 걸쳐 연재된 「자유부인」은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6·2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때 전후의 퇴폐적 분위기에 휩쓸려 허영과 향락으로 치닫는 여성을 묘사한 이 소설은 장안에 숱한 화제를 낳으며 소설의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1960년 4·19혁명은 서울신문에게 시련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4·19 그날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이 불타는 수난을 당한 반면,곧이어 출범한 제2공화국 하에서 서울신문은 「불편부당과 엄정중립」을 다시 표방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그러나 새출발의 기쁨도 잠깐,극심한 경영난으로 서울신문은 61년 5월9일부터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5·16 쿠데타는 서울신문에게 재기의 길을 열어주었다.7개월째 발행되지 못하던 서울신문이 집권층의 후원과 재벌들의 호의적 반응으로 그해 12월21일 속간된 것이다.이때부터 서울신문은 비약적인 사세신장을 이루었으나 한편으로는 5·16 군사정부와 뒤이은 제3·제4공화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길을 걷게 된다.특히 72년 10월 유신으로 빚어진 전환기에서 서울신문은 친정부적 성격을 굳히게 된다.서울신문의 성격상 당시로선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창간 30주년인 75년을 기점으로 사세중흥기를 맞게 된다.고속 오프셋 윤전기의 가동으로 신문발행의 전환기를 마련했고 ▲지령 1만호 기념 만호장학금 신설 ▲의료보험제 도입 ▲급여인상 등 사원복지를 크게 향상시켰다. 5공 출범한 81년은 서울신문으로선 새롭게 내실을 다지는 원년이 됐다.대중문화에 대한 욕구를 해소할 길이 없던 청소년층을 위해 「TV가이드」를 창간,대중문화를 선도했는가 하면 「예술과 비평」을 선보여 고급문화를 추구하는 독자들을 만족시켰다.바야흐로 종합언론사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와 함께 국내 최고 종합일간지다운 면모를 다지고자 새 사옥 마련에 나섰다.82년 1월1일 태평로를 떠나 을지로 임시사옥으로 이사한 뒤 3년여에 걸친 대역사끝에 새 사옥을 마련한 것. 85년 1월1일 준공된 서울신문·프레스센터 사옥은 한국언론 제2세기의 개막을 알리는 전조였다.이때부터 서울신문은 쾌적한 환경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한국언론의 메카」로 자리잡았다.특히 이 시기에 도입된 CTS 제작시설은 신문발행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국내 신문사로는 최초로 CTS를 도입한 서울신문은 다른 신문사들의 부러움을 한껏 즐기며 신문제작 역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남겼다. 서울신문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사건은 또 있었다.그해 6월23일 「스포츠서울」의 탄생이 그것이다.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보다많은 스포츠 정보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자 창간한 「스포츠서울」은 30분만에 창간호 가판이 완전매진되는 등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면서 지금까지 정상의 스포츠·연예·오락 전문지로 군림하고 있다. 스포츠·연예·오락전문지 「스포츠서울」,시사주간지 「뉴스피플」,대중문화 전문주간지 「TV가이드」,여성월간지 「퀸」등을 자매지로 둔 서울신문은 이제 또한번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증자를 통한 5세대 CTS와 최첨단 윤전기의 도입을 마무리한데 이어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이 1일 접속횟수 1백만을 돌파함으로써 전자신문계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다.21세기에 진정한 정론지로서 독자들을 찾아갈 서울신문의 밝은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약사 1945년 △11.22 서울신문 창간 1946년 △3.1 제1회 「3·1기념 서울·인천간 왕복마라톤 경기대회」개최(77년 32회까지 존속) 1948년 △10.18 시사지 「주간 서울」 창간 1951년 △3.8 전란으로 휴간 △6.9 피란지 부산에서 서울 복귀 1953년 △8.16 첫 견습기자 공채 실시 △9.1 어린이신문 「주간소년서울」 창간 1954년 △1.1∼8.6 소설 「자유부인」연재 1956년 △10.18 언론사상 첫 한글판 제작 1958년 △10.1 신문사상 처음으로 조석간 발행 1960년 △4.19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 전소 △4.26 휴간 △6.27 속간 1961년 △5.9 경영난으로 휴간 △12.21 속간 1962년 △8.13 석간으로 전환 1966년 △2.9 한국 최초로 1백만원 고료 장편소설 당선작 시상 1968년 △9.22 대중 주간지 「선데이 서울」 창간 △11.22 전 지면에 걸쳐 한글전용 단행 1975년 △3.30 「주간 스포츠」 창간 △11·2 「주간 소년서울」 폐간 1978년 △10.5 보관자료 마이크로필름화 1981년 △7.18 청소년 주간지 「TV가이드」창간 1982년 △1.1 을지로 임시사옥으로 이전 1985년 △1.1 언론사상 처음으로 CTS 도입,태평로 신사옥 입주 △6.23 스포츠 전문지 일간 「스포츠 서울」 창간호 발행 1989년 △9.23∼10.18 파업 1990년 △6.23 여성월간지 「퀸」창간 1991년 △7.31 구로공장 준공 △12.31 「선데이 서울」폐간 1992년 △1.5 자매지 주간 「피플」창간 △7.3 대구인쇄본부 준공 △12.25 「피플」,「뉴스피플」로 제호 변경 1994년 △2.18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본부」발족 1995년 △11.22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개통 1996년 △1.29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국내 첫 동화상 속보체제 시작 △10.1 전면 가로쓰기 단행
  • 세금감면·노사문제/경총 로비혐의 수사

    ◎검찰/관리부장 등 4∼5명 소환… 철야조사/사무실 수색… 장부·예금계좌 등 압수 검찰은 한국경영자 총연합회(경총)가 세금감면과 노사문제와 관련,공무원과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벌여온 혐의를 포착,전면 수사에 나섰다. 서울지검 특수3부(안대희 부장검사)는 6일 경총의 강재수 관리부차장과 최민영 관리부장 등 4∼5명을 소환,밤샘조사를 했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경총이 지난 94년 9월 서울 마포구 대흥동 지상8층 지하1층짜리 신사옥으로 옮기면서 관련 공무원들에게 취득세와 등록세·양도세 등을 감면해달라며 뇌물을 건네줬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특히 경총의 간부들이 노사문제 등과 관련,정치인과 노동부등 관계부처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줬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날 경총 관리부 등 사무실을 압수수색,관련 장부와 은행예금계좌 등을 압수해 정밀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이들의 혐의사실이 확인되는대로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 건축가 원정수/그의 건축에는 인간적 체취가…(인물탐구:103)

    ◎전통양식 바탕 선·면의 모더니티 창조/첨단빌딩 「포스코 센터」 서울의 명소로 21세기 선도기업체의 이미지를 자랑하는 테헤란로의 포스코센터,명실공히 서울의 명소로 등장한 이 첨단빌딩은 투윈타워매스로 구성된 「은유적 해석」이 두드러진다.마치 사과를 반으로 잘랐을 때 사과의 핵이 반으로 잘려나가는 모습,혹은 하나의 세포에서 세포분열로 자라난 일란성 쌍둥이가 마주선듯 타워간에 생기는 장력 긴장감이 미래를 향한 도약과 발전을 팽팽하게 강조한다.이는 토털건축을 지향해온 건축가 원정수의 최신작이다. 그는 평소 「자신이 몰두한 체험이 동반되지 않는한 건축은 그 맛과 멋을 깨달을수 없는 엄격한 세계」임을 천명해 왔다.그리고 이 장대한 건축물로써 인간성과 개성,쾌적한 자연성과 지역성을 포괄하고 건축의 기능과 기술을 구사하여 높은 격조와 세련된 완벽성을 결집시키고야 말았다. ○대학시절 현상공모 단골 그는 온화하며 합리적이고 주위사람들을 포용하는 성격이다.건축교육과 임상을 통한 오랜 건축실무자로서 바이올린의 G음 하나가 「G선상의 아리아」를 이루어내듯이 아무리 최악의 경우에서도 기량과 능력과 장인정신으로 개성있는 디자인을 창출한다는 여유가 만만하다.지나치게 「경직된 기능적 자세」나 「서구화 경향」에 집착하기 보다 건축주의 생활을 합리적으로 수용한 「편안하게 감싸는 생활공간」「자연과 친화할수있는 건축」으로 그의 건물에서는 어디서나 인간적 체취가 배어나온다. 그가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나 사리넨에 비유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자연환경에의 적응」「번뜩이는 창의력」때문이다.알토가 핀란드에서 태어나 조국의 건축양식과 개성을 고집한 것처럼 그는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해방후 1세대로서 한국적 색채를 일관되게 이끌어왔다.76년 현상설계에서 1등 당선한 한국은행본점은 은행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표현하기 위해 전통건축의 석조단층 아치에서 모티브를 찾고있고 89년 완공된 국회의장공관의 경우에는 푸른 녹이 드는 동판을 지붕으로 구성하여 시간의 아름다움을 기다리게 하는 「전통속의 현대화」를 꾀하고 있다. 그가 건축의 꿈을 키운 것은 처절했던 6·25로 잿더미가 된 황폐한 서울을 보면서 여기에다 멋진 신세계를 펼치리라는 꿈과 야망 때문이었다. 건축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역시 철저한 수업과 알찬 실험을 거치고 있다. 서울대공대 재학시절부터 서울시청을 필두로 남산국회의사당과 충주비료사택단지·잠실주거단지·한국은행본점 등 수많은 현상설계에 응모하여 체계적인 경험을 쌓았고 공군기술장교로서 각종 군사시설과 병영숙소 설계에 참여하는가 하면·김희춘·이광로·김수근 등 기라성 같은 스승들을 사사하고 있다.선배들이 이끌던 구조사 신건축문화 무애건축을 두루 섭렵한 끝에 69년 건축가가 직접 수주해서 설계하는 일양건축을 설립했고 서울대 후배이자 같은 건축가인 부인 지순씨와 부부건축전을 열어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해보인바 있다. ○부인은 대학후배 건축가 건축비평가 임창복씨는 그의 건축에 대해 「탁발한 장인기질」과 「생활을 보는 독특한 시각」이 특별히 남다르다고 지적한다.「한국에서는 드물게 근대건축의 아름다움이랄수 있는 선과 면에 의한 모더니티의 구현에 성공한 작가라는 점과 그의 조형은 대부분 한국적 문화의 바탕을 이해한뒤 발전시켜왔다는 점,그리고 이 두가지 경향을 통합하여 지금도 그만의 새로운 조형세계를 창조하고 있음」을 높이 사고 있다. 그의 작업방식은 어떤 건축물이든지 새로움에 대한 확신이 설때만 비로소 일을 시작한다는 식이다.하나의 프로젝트에 단순하게 수정과 개선을 보충하기보다 처음부터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한후 감정적 자세로 새로움을 추구해낸다. 외국의 것을 도입하여 이식해놓은 듯한 우리의 하이테크가 아직 모방에 지나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일본 홍콩의 인텔리전트빌딩을 수없이 답사한후 금성사식당을 먼저 시도했고 이 프로젝트가 완벽하게 성공하자 포스코빌딩을 이룩하는 모태로 삼았다. 건축은 디자인수법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오케스트라가 여러개의 악기군으로 편성되고 지휘자에 의해 하나의 교향악으로 조화되듯이 건축 역시 『생태적 인간적 테크놀로지 마케팅 제작관련 시스템은 물론 정치·사회·역사를 포함한 추상적 개념까지도 함축시킬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83년 이후 일양건축을 확대하여 창경원옆 원남동에 간삼종합건축사 사무소를 개설,혼자서 하는 건축이 아닌 각종 분야를 라인업으로 총괄하면서 1백50여명의 구성원들과 함께 사회의 현상을 직시하고 거기에 일익을 점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올바른 순환을 위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직원 150명 건축사무소 내 그는 서울 종로 화신백화점 전무이던 원대참씨의 3남1녀중 막내.경관이 수려한 청운동자택에서 성장기를 보내면서 중2때 국전에 응모한적이 있고 해방후 외국잡지 등을 통해 미국문화를 간접적으로 접한 것이 모더니즘 건축을 수리적 감각이 아닌 회화의 연장으로 받아들인것 같다.그에게 행운을 준것은 음악을 하는 형(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원경수씨)과 절친한 친구이던 서울대 이광로교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고 건축가인 부인 지순씨의 두터운 내조와 협력이 그를 한국건축계의 정상에 서게 했다.자녀는 딸만 넷. 모두 출가했고 그들은 부부건축이면서도 아직 자신의 집을 갖지못하고 동숭동의 빌라에 살고 있다. 신속한 정보처리시스템과 첨단통신 기능,경쟁적 가속화에 적응할수 있는 사무업무공간을 구축한 명작 포스코센터를 보고 건축가 공일곤은 「새로운 건축문화를 창출했을 뿐 아니라 이 아름다운 인텔리전트 빌딩은 종합예술의 차원에서도 국민적 긍지로 내세울 만하다」고 평가한다. 『이제부터가 정말로 나의 건축의 시작이다』 연녹색의 투명 매스에서 발산되는 신선한 불빛은 용광로에 불타는 무한한 에너지의 상징이며 연건평 5만5천여평으로 이룩한 거대한 타워는 언제나 새로움을 좇아 치솟는 그의 희망찬 미래이자 의욕이다.도시화 현대화의 첨단시대에서 그만의 건축언어로 건축오케스트라를 관장하는 그의 영감은 우주의 심장에 꽃피는 음악처럼 오늘도 끊임없이 불타며 창천하고 있다. □연보 ▲1934년 서울 출생 ▲1957년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 졸업 ▲1957∼61년 공군시설 장교 ▲1961∼63년 구조사 근무 ▲1963­현재 인하공대 건축과 교수 ▲1968­현재 목구회 회원 ▲1970­현재 한국건축가협회 명예이사·대한건축학회 이사 ▲1974­75년 유한양행 촉탁 ▲1975년 잠실주거단지 현상설계 1등 당선,건설부건축 전문위원 ▲1976년 한국은행본점 현상설계 1등 당선 ▲1977년 미 남가주대 연구교환 교수 ▲1980년 인천 직할시 문화재 위원 ▲1980∼86년 (주)럭키개발건축 자문위원 ▲1980∼93년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1982∼88년 공업진흥청 표준심의위원 ▲1983년­(주)간삼건축설립 ▲1984년 국제방송센터(IBC)현상설계응모 우수작 수상 ▲1989­현재 포항제철사옥(서울경영정보센터) 설계대표 서울대학생회관(72년)럭키여천사택단지(74년) 유한양행 안양공장(75년) 한국은행강릉지점·인하대체육관 학생회관 공학관(78년) 금성사평택공단 중앙연구소(84년) 경동산업본사·포항공대·망향휴계소(85년) (주)영풍서린지구재개발(86년) 동숭아트센터·국회의장공관·한국은행창원지점·경암빌딩(89년) 코오롱그룹신사옥·미도파백화점상계점·포항제철 서울경영정보센터(포스코빌딩)(91년) 엄덕문건축상(94년) 한국건축문화대상(95) 서울특별시건축상금상(96)
  • 조계사 대웅전 신축/주변공사로 붕괴조짐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이 해체 복원된다. 조계사는 9일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은 인근의 한국일보 신사옥건설 기초공사로 인해 대웅전과 해탈문이 붕괴조짐을 보여 소송을 제기,현대건설로부터 피해보상금 41억원을 받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말하고 『앞으로 보상금을 받아 조계사 경내 대웅전 건물을 새로 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 갑을 “2000년 섬유매출 30억 달러”/장기 경영계획 발표

    박창호 갑을그룹 회장은 21일 서울 서린동 신사옥 준공이전식을 맞아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2000년까지 섬유부문의 매출액을 96년 6.9억달러보다 5배 가량 많은 30억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내용의 「갑을비전 21」을 발표했다. 박회장은 이날 『섬유산업이 최근 사양산업으로 일컬어지고 있지만 국내에서 어려우면 외국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며 섬유부문 확장 계획을 밝히고 이를 위해 오는 2000년까지 지역본부 10개,전략거점 30개를 갖춰 세계 5대 종합섬유그룹으로 진입하겠다고 밝혔다. 갑을그룹은 기존의 주사업인 방적직물은 현수준을 유지하는 대신 원료사업을 본격화하는 한편 기계플랜트와 유통등에 적극적으로 진출,사업구조를 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김균미 기자〉
  • 달라진 「문민 안기부」 감사/박성원 정치부 기자(국감현장)

    11일 국회 정보위의 안기부에 대한 국정감사는 34년간의 남산·이문동 시대를 마감하고 내곡동시대에 들어간 「문민 안기부」의 새출발 의지를 국민대표기관 앞에 선뵈는 자리였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13만여평의 부지위에 새로 자리잡은 통합 새청사에서 실시된 이날 감사는 또한 지난해 정보위가 신설되고 안기부의 예산을 처음으로 심의,확정한뒤 그 집행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 처음으로 실질심사를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신상우 정보위원장은 이같은 상황을 감안한 듯 감사에 앞서 『신사옥 이주를 계기로 국민들의 기대에 걸맞는 새로운 좌표와 위상을 잡아나가는 안기부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권영해 안기부장도 인사말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첨단정보능력을 갖춘 21세기 순수 정보전문기관으로 새출발,국민의 신뢰를 쌓아 가겠다』고 강조했다.권부장은 또 『첨단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국가정보력이 국력의 척도로 되고 있는 오늘날 국제정보 경쟁은 국가정보기관과 민간이 모두 참여하는 총칼 없는 전쟁』이라고 비유한 뒤 『겸손하고 바른자세로 선진정보기관으로 도약하겠다』고 다짐했다. 업무보고에 이은 의원들의 질의도 「공작정치 의혹」등을 파고들던 지난해 국정감사와는 달리 안기부의 정보수집능력 향상방안,북한의 권력승계 전망등에 많은 관심을 보인뒤 내년 총선에서 지난날과 같은 정치개입 시비가 없도록 해달라는 당부선에 그쳤다. 권안기부장도 『과거와 같은 정치개입 의혹은 있을 수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염려가 없도록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것』이라고 거듭 다짐했다. 의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고무된 듯 국제테러·마약 등 국제범죄조직에 대처하기 위한 안기부의 수사권 신설문제에 대해 야당의원 일부를 포함한 다수가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다만 검찰과의 수사지휘권 문제 등 미묘한 사안임을 감안,관련기관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도록 하되 이번 정기국회 회기안에 적극 추진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접근시켜 안기부측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신상우 위원장은 『안기부측이 상세한 보고와 성실한 답변 등을 통해 어느 때보다 국가정보기관으로서의 신뢰감을 느끼게해주었다』고 비공개로 진행된 감사 소감을 밝혔다.
  • 옛 국립극장/“문화재로 지정 보존을”

    ◎문화예술계,대한투금 매각추진에 다양한 의견 제시/공연문화 산실… 정부차원서 매입해야/한전 부지와의 맞교환 주선도 바람직 대한투자금융이 15일 서울 명동의 옛국립극장(현 대한투자금융 사옥)의 철거를 1∼2년 유보하고,장기적으로 이 건물의 매각을 추진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 문화예술계는 대체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연극협회 정진수 이사장은 『현재까지 확인된 대한투금측의 신사옥 건설계획 유보나 건물매각 추진 등의 방침은 일단 여론의 관심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는 인상이 짙다』면서 『대한투금이 이 문제를 적당히 넘기지 말고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대응해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서울시 차원에서 대토형식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또 연극계의 한 관계자는 『문화체육부,서울시 등 관련부처에 옛 명동 국립극장의 문화재 지정을 의뢰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보존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라며 문화유적지로서의 보존 자체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광복이후 우리 공연문화의 요람이 되어왓던 옛명동 국립극장을 문화재로 정하는 것은 이와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동숭동의 옛 서울 문리대 건물이나 고려대 본관,중앙고의 동·서관 드어이 이미 지난 81년 사적으로 지정돼 원형이 보족되고 있는 전례에 비춰볼때 오히려 늦은 감마저 있다는 것이다. 한편 문화계 일각에서는 옛 국립극장의 건물과 부지를 문화계의 모금활동을 통해 되사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대한투금측이 현 사옥을 매각한다하더라도 그 건물과 부지가 내무부 고시가로 6백억∼7백억이라는 엄청난 금액에 이르고 있음을 감안할때 그 현실성은 희박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와관련,옛 국립극장의 보존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활동방안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한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대표 박용구)은 지난달 25일 첫 모임을 가진데 이어 10여명의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추진위(위원장 유재천)를 구성,이를 실현시킬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고려대 국문과 서연호 교수(연극평론가)는 『민간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고가의 건물을 문화계 인사들의 힘만으로 매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옛 국립극장의 문화재적 가치가 충분한만큼 정부가 긴 눈으로 보아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밖에 옛 국립극장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서는 대한투금 사옥과 인근 한국전력 부속건물 부지와의 맞교환을 주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한투금은 지난 2월 이곳에 10층짜리 건물을 신축키로 결정,이미 설계작업까지 끝냈으나 문화단체와 시민들의 반발여론에 부딪쳐 당초 계획을 수정하게 됐다. 1934년에 건립된 옛 명동 국립극장은 57년이후 16년동안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립극장으로 연극 무용 등 문화예술의 산실 역할을 해왔으며 73년 현재의 장충동 국립극장이 문을 연 다음부터 76년 9월까지는 예술극장으로 쓰여져 왔다. 대한투금은 지난 76년 총무처로부터 이 건물을 매입,지금까지 본점 사옥으로 사용해 오고 있다.
  • 방송3사/자회사 프로덕션 경쟁시대 예고

    ◎sbs,KBS·MBC에 이어 계열사 설립… 새 도약 준비/제작파트 연말까지 60명선으로 보강/취약부문 어린이프로 집중개발 계획/프로그램 해외판매망·방연권 확보도 추진 국내 방송계가 바야흐로 본격 자회사 경쟁시대를 맞고 있다.이는 KBS제작단,MBC프로덕션에 이어 서울방송(sbs)도 자체 계열사인(주)「sbs프로덕션」(사장 신영균)을 설립 기본골격을 갖추기 시작해 본격화됐다. 지난 5월 법인설립 등기를 마치고 정식 출범한 「sbs프로덕션」은 1백% sbs출자의 주식회사(자본금 20억원).매체 다변화시대에 대비,프로그램의 안정적 공급과 내부경영 합리화를 목표로 설립됐다. TV프로그램의 제작·배포·판매는 물론 기타 방송관련 수익사업을 펼칠 계획이다.이 프로덕션은 기능별 문화형태가 아닌 「대프로덕션시스템」을 도입,일관제작을 시도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현재는 전문PD를 포함,총48명(임원제외)의 인원을 확보한 이 프로덕션은 연말까지 60명선으로 확대,제작파트를 대폭 보강할 예정이다.본사와 별도의 독립채산제로 운영될 이번 자회사의설립으로 s­TV는 보도기능에 보다 중점을 둘수 있게 됐다.이에따라 오락·다큐멘터리등의 프로그램은 상당부분 외주제작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TV방송프로그램의 제작과 관련 「sbs프로덕션」의 김동성전무는 『s­TV의 취약부문인 어린이프로그램을 집중 개발할 계획이며 토요일 하오 시간대(12∼5)도 대폭 강화할 생각』이라고 밝혔다.그리고 『1년에 한번쯤 테마기획을 통해 대형다큐멘터리물을 제작하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스타와 만나요­서태지와 아이들·최진실편」프로를 이미 제작 방영한 바있는 프로덕션측은 내년 신년특집으로 내보낼 환경보존다큐멘터리 「지구를 지키는 사람들」(가제)제작에 전 스태프를 동원,심혈을 기울이고 있다.50분물 5부작으로 구성될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호주등지서 해외 로케될 예정인데 알찬 내용으로 이미지를 높이겠다는 각오다. 올해를 「안정기반 구축」의 해로 삼은 이 프로덕션은 1차로 ▲제작환경조성 및 내부팀웍 구축 ▲프로그램판매망 개설 ▲해외방영권 확보·비디오판매 정착등을 당면과제로 설정,94년까지 자립기반을 마련키로했다.프로덕션측은 지난달 출판사 등록도 마쳐 s­TV의 미스터리 다큐 「그것이 알고 싶다」시사진단 「핵심」등의 출판을 준비중이며 음반업에도 참여,인기드라마의 주제곡등을 뮤직비디오 형태로 제작,판매전략을 수립한다.또한 장기적으로 영화업에까지 사업영역을 확대,TV프로그램과 홈비디오를 연계한 영화작품도 제작키로했다. 특히 「sbs프로덕션」은 해외판매 기능에 역점,국제합작선을 적극 모색중이며 「sbs 아메리카」(LA소재)·「sbs USA」(뉴욕소재)등 2개의 미주본사 현지법인의 다목적활용 방안도 강구중이다.한편 「sbs 프로덕션」은 내년 12월께 강서구 등촌동에 완공예정인 sbs신사옥(공개홀포함 2천여평)에 입주한다.
  • “한점 의혹없는 수사… 미진함 없다”/이명재부장검사 일문일답

    ◎배후로 거명된 인사 대부분 유령인사/윤 상무,박삼화 신뢰… 계약서 의심안해/매매불발 대비·비자금 얽혀 약정서 6차례 체결/사건 드러나도 일부변제로 수습 기대… 도주 안해 정보사부지를 둘러싼 사기사건을 총지휘한 서울지검 특수1부 이명재부장검사는 23일 『이번 사건은 고위층을 빙자한 전문사기꾼들의 단순사기사건』이라고 강조하고 『한점 의혹도 남기지 않는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수사에 임했기 때문에 미진한 부분은 없다고 자부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수사결과를 발표한뒤 기자들과 가진 1문1답의 요지이다. ­제일생명은 무엇을 믿고 정보사부지의 매입을 추진하게됐나. ▲제일생명 윤성식상무는 신사옥부지물색과정에서 두차례나 사기를 막아준 부동산브로커 박삼화씨를 너무 신뢰한것 같다.박씨로부터 소개받은 정건중씨일당이 국방부장관명의의 매매계약서및 정보사령관명의의 부대이전합의각서를 보여주자 별 의심없이 믿게된 것이다. 특히 회사부동산및 경리를 전담해온 윤상무가 매입약정을 맺는 과정에서 비자금 일부를 착복하려는욕심을 내보이자 정씨일당은 이를 이용,국방부에 납입할 중도금 명목으로 어음까지 받아낸뒤 윤상무를 사실상 끌고 다니게 된것이다. ­윤상무는 정씨측으로부터 받은 8억원을 어디에 썼나. ▲지난 1,2월 양력설 및 음력설을 앞두고 제일생명 박남규회장집을 방문,용돈명목으로 1억원씩 2억원을 「상납」한 것으로 확인됐다.그러나 당시에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박회장에 대한 사법처리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윤 상무는 또 지난 88년부터 신사옥부지를 물색하면서 회사돈에서 빼내 쓴 활동비 3억원을 변제하고 집수리비등으로도 3억원을 썼다. ­정씨일당 또는 김영호씨일당 배후에 고위정치인및 군관계자의 개입은 없었나. ▲전합참군사연구실 자료과장 김영호씨가 정씨일당에게 넘겨준 매매계약서및 부대이전합의각서는 장관및 부대장명의를 도용,위조한 것이며 이들 사기단을 제일생명등과 연결해준 곽수렬·김인수씨등 부동산브로커들이 내세운 청와대및 안기부 인사들은 대부분 유령인물이거나 이름을 도용한 것으로 수사결과 드러났다. 제일생명측이 실제 사기당한 4백72억7천만원의 매입자금행방에 대한 자료추적에서도 배후로 볼 수 있는 제3의 인물에게 돈이 건네진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제일생명과 정씨일당사이에 정보사부지매매약정서 및 계약서가 모두 6차례나 작성된 이유는. ▲정씨 일당이 정보사부지의 전매가 어려울 경우에 대비해 서초동 골프장 부지를 대안으로 약속하는가 하면 제일생명측 당사자를 윤상무 개인에서 회사로 바꾸는 등의 과정에서 4차례의 약정서가 작성됐다. 정식의 매매계약서는 지난 5월10일 윤상무가 자신의 비자금 30억원을 포기하기 위해 평당가격을 2천2백만원에서 2천1백만원으로 낮추어 작성한 것이다. ­정보사부지대금이 부근 땅값인 평당 7백만∼8백만원보다 2∼3배나 비싼 평당 2천만원 이상으로 책정된 이유는. ▲제일생명측에서도 직원을 통해 정보사부지 주변의 땅값을 자체조사해 본 결과 2천1백만∼2천3백만원인 것으로 확인하고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수사결과 드러났다. ­정씨일당및 김영호씨가 거액을 사취하고도 즉시 도주하지 않은 이유는. ▲정씨 일당은 제일생명이 신용을 생명으로 하는 굴지의 금융기관으로 상당한 정도의 피해변제만 하면 윤상무가 사건을 밖으로 드러내 문제시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곽수렬및 임환종씨가 알선하는 서초동 코너땅이나 뉴코아B지구땅 등을 매입해 제일생명측에 정보사 부지대신 넘겨주면 사태가 수습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호씨는 지난해 5월 안양군부대부지매매를 중개하면서 오모씨에게 빚진 돈및 봉천동 연립주택 미분양으로 빚진돈 등을 갚기위해 브로커 임환종·김인수씨 들의 부추김을 받아 정씨측에게 가짜매매계약서를 작성해준뒤 임·김씨등이 유력인사등을 동원해 뒤처리를 해주겠다고 하자 이를 막연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일생명이 회수할 수 있는 돈은 얼마인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사기로 챙긴 돈은 국가에서 몰수할 수 없으므로 정씨측이 빼돌린 돈의 회수는 제일생명등 당사자들이 법적절차를 통해 해결할 문제이다. 다만 검찰이 그동안의 자금을 추적한 결과 부동산이나 은행예금등의 명목으로 남아있는 1백60억여원정도는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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