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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로의 아침] 거기에 ‘사람’이 있다/박찬구 사회정책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거기에 ‘사람’이 있다/박찬구 사회정책부 선임기자

    몇 겹의 회색 구름이 잰걸음을 한다. 금세라도 폭우가 쏟아질 기세다. 정부세종청사 주변 방죽천에는 며칠째 누런 흙탕물이 넘실대며 금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거센 탁류에도 풀숲에서는 작은 새와 여름 곤충들이 경쟁하듯 울어대며 존재를 알린다. 그러곤 한자락 그늘에 깃들여 땀을 식힌다. 사람의 세상에서 미약한 생명체도 그렇게 공존하는 게 자연의 섭리다. 지상에 한 칸 보금자리도 없이 지하에 머무는 사람들, 우리 공동체의 일원인 이웃들, 반지하에서 푸른 하늘을 소망하다 한순간에 유명을 달리한 일가족, 그들에게 닥친 어이없는 비극에 말문이 막힌다. 공동체 울타리가 그들의 안위를 지켜냈다면 지상을 향한 일가족의 꿈은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다같이 사는 세상, 그 빈틈을 메울 수 있었다면 비바람 뒤에 쬐는 햇볕에 지친 몸을 녹이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항상 비극은 한순간이고 금세 잊힌다. 남는 건 되풀이되는 공동체의 망각일 뿐이다. 반지하의 비극,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일가족의 희생에 외신들도 ‘기생충’, ‘강남스타일’을 언급하며 고속 성장의 그늘을 들춰내듯 입길에 올렸다. 돌아보면 성장의 뒤안길에서 반지하로 상징되는 얼룩진 자화상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뿐인가.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결식아동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고단한 청년 노동자들, 반듯한 직장은커녕 언제 내쳐질지 모르는 작업장에서 힘겨운 노동을 이어 가는 부모들, 빈곤의 사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빈부의 양극화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무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마치 현대판 신분제도처럼 부자와 빈자의 경계선은 뚜렷해지고 날이 갈수록 굳어지고 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구조적 빈곤과 해묵은 양극화 문제를 방치하고서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든 세대 간 연대의식이든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 결국 사회적 빈곤은 불평등의 문제로 귀결된다. 흔히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가 지난 세기에는 빈곤이었다면 21세기에는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라고들 한다. 열심히 일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해묵은 명제는 비현실적이며 순진한 레토릭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일상에 고착화한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는 이번 재난에서도 반지하의 참상으로 여지없이 드러났다. 반지하의 비극, 일가족의 불행이라는 현상과 사건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제대로 공론화할 수 없는 이유다. 반지하 주택을 줄여야 한다는 근시안적인 대책은 그렇지 않아도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 내는 사회적 약자의 공간을 앗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빈곤은 개인의 문제일 뿐이며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다그침과 체념이 여전히 공동체를 옥죄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비극의 책임을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여기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사람들 기억 속에서 비극이 잊히면 또다시 전시성, 홍보성 업적에 매달리는 일상이 이어진다. 그러곤 비극적 결말이 오고 나서야 공허한 대책, 일회성 정책을 쏟아내곤 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이 잊힐 만하면 여지없이 반복되는 이유다. 재난으로부터 우리 주변의 사회적 약자를 지켜 내고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회, 사회적 위험을 줄이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부재한 현실에서는 반지하로 상징되는 약자들의 비극을 넘어설 수 없을 테다. 국회든 지방자치단체든 당장의 인기와 선거의 유불리에만 연연해서는 공존·공생을 추구한다는 복지국가의 레토릭이 한낱 허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 가정불화 일으키던 차례상, 유교에서 공식적으로 간소화 추진

    가정불화 일으키던 차례상, 유교에서 공식적으로 간소화 추진

    명절 때마다 너무 많은 음식을 준비하다가 가족 간 갈등의 씨앗이 됐던 차례상에 변화가 예고됐다. 이미 많은 가정에서 자체적으로 간소화하고 있지만 유교 단체에서 공식 추진할 예정이라 관심을 끈다. 최영갑(59)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신임 회장은 1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대 유교가 조선시대 유교를 그대로 가지고 온 느낌인데 시대에 맞게 현대화하겠다”고 밝혔다. 고리타분한 ‘꼰대 문화’로 인식되는 유교를 현실에 맞게 바꿔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유교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여러 현대화 방안 중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내용 중 하나가 차례상의 간소화다. 국민 정서를 뒤늦게 따라가는 상황이지만 최 회장은 “우리 차례가 보통 설하고 추석에 두 번 있는데, 우리나라는 차례를 제사상처럼 차리는 게 문제”라며 “원래 차례는 간소하게 지내는 건데 제사상 차림으로 크게 지내는 걸 가문의 영광으로 느껴 왔다”고 설명했다. 기존 차례상에 18~20가지 음식을 올렸다면 간소화한 뒤엔 술, 과일, 포 등 10가지 정도만 올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10가지도 많다는 지적에 최 회장은 “과일이 2~3가지 정도 되니까 실제로는 얼마 안 된다”고 말했다.유도회총본부에 따르면 주자가례와 경국대전에는 3품 이상은 고조부모까지 4대를 제사 지내는 제례규정이 있다고 한다. 6품 이상은 3대까지, 7품 이하는 조부모까지, 서민들은 부모만 제사를 지내는 게 기존 관례였다. 그러나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가 철폐되고 제사에 제약이 없어지면서 가장 화려하게 지내는 차례를 따라가게 되면서 오늘날로 이어졌다. 성균관유도회 관계자는 박세채(1631~1695)의 삼례의에 기록된 진설도(제사 음식의 배열 위치를 그린 그림)에 음식의 가짓수가 10가지 정도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차례상의 간소화는 획기적인 작업이 아니라 예전부터 간소하게 차렸던 본모습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최 회장은 “제사가 많은 집안에서 빨리 간소하게 해 달라고 한다”면서 제사상의 간소화 방침도 밝혔다. 남성 중심으로 편향된 유교 질서도 바로잡을 계획이다. 최 회장은 “남녀칠세부동석이나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든가 하는 것은 중국 한나라 때 만들어진 역사”라며 “한나라는 유교를 왜곡시킨 첫 나라인데 여기서부터 잘못된 게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왔다”고 했다. 유교의 핵심 교리로 알려진 삼강오륜의 경우 오륜은 ‘맹자’에 나오지만 삼강은 지도자의 필요에 의해 한나라 때 만들어졌다는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깨 나가는 게 내 일”이라며 개혁을 다짐했다. 성균관유도회는 향후 일반인과 유림을 상대로 유교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바꿔 나갈지 여론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최 회장은 “반발도 예상했는데 지금까지 만나 본 유림 중에는 없었다. 유림도 시대에 맞춰 갈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며 변화를 열망하는 유림들의 입장을 전했다. 19일 임기를 시작하는 그는 현대화와 더불어 성균관 문묘에 더 많은 유교 선현의 위패를 모시는 방안이나 충무공 이순신 등 무인들의 위패를 모시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 몽테뉴 생각 담은 ‘에세이’의 시초 “현대인에게 필요한 위로·대답 담겨”

    몽테뉴 생각 담은 ‘에세이’의 시초 “현대인에게 필요한 위로·대답 담겨”

    “몽테뉴는 ‘세계를 대하는 나의 인식이 맞는 것인가’라고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한 인물이죠. ‘에세’는 역사나 인간성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몽테뉴의 자기 사유에서 나온 책입니다. 삶이 얼마나 살 만한 것인가, 삶에 대한 긍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큰 장점이지요.”(최권행) “몽테뉴가 살던 때는 종교전쟁과 마녀사냥, 페스트가 창궐한 비참한 시대였어요. 그는 삶의 어두운 부분을 이해하고 모든 이에게 연민을 갖고 위로를 주는 대중적 철학자입니다. ‘에세’는 인간이 가진 주체성에 관해 말하며 모든 경우, 모든 시절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는 대중적 철학서라 할 수 있습니다.”(심민화)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교양인인 미셸 드 몽테뉴(1533~1592)의 고전 ‘에세’(전 3권·민음사)가 심민화(70) 덕성여대 명예교수와 최권행(68) 서울대 명예교수의 손으로 완역 출간됐다. 10년의 번역 기간과 5년의 검수를 거쳐 15년 만에 이뤄 낸 결실이다. 1965년 고 손우성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수상록’(隨想錄)이라는 이름으로 완역본을 낸 뒤 몽테뉴와 새롭게 만나기까지 57년이 걸렸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프레스클럽에서 만난 이들은 “문학과 철학의 성격을 모두 지닌 ‘에세’는 세계 문학사에서 열 손가락 안으로 꼽을 수 있는 고전임에도 현재까지의 번역본은 한글세대가 편하게 읽고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며 이번 번역이 다음 세대를 위한 작업임을 밝혔다.‘에세’는 법관을 지낸 귀족 몽테뉴가 1571년 사직한 뒤 영지인 몽테뉴성에 머물면서 쓴 길고 짧은 글 107편을 묶은 책이다. 중세 기독교의 종교적 규범에 제약을 받은 자기 성찰을 넘어 정신적 개인인 ‘나’로 출발하는 자율적인 개인의 각성을 보여 준다. 몽테뉴 생전에 다섯 번 발간돼 1588년 최종판이 나왔으나 여백 부분에 몽테뉴가 직접 손으로 빼곡히 적어 놓은 추가 글이 발견돼 20세기 들어 새 판본(보르도본)이 나왔다. 이번 ‘에세’는 이를 번역한 것으로 여러 판본 중에서도 몽테뉴가 추가로 자신의 생각을 첨가해 놓은 정수이자 완전체로 평가받는다. ‘에세’는 ‘시험하다’, ‘처음 해 보다’ 등을 뜻하는 프랑스어 동사 ‘에세이예’(essayer)에서 몽테뉴가 만들어 낸 명사로 영어로 통용되는 글쓰기 장르 ‘에세이’도 여기서 나왔다. 심 교수는 “일본식 번역의 ‘수상록’이라는 제목은 한자 ‘따를 수’(隨)가 수동적인 의미라 몽테뉴가 자기를 탐구하고자 애쓴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힘든 노력의 기록인 ‘에세’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선후배인 두 교수는 프랑스 고전 독서 모임 ‘명륜 독회’에서 같이 공부했고, 후배인 최 교수의 제의로 2007년부터 방대한 번역 작업을 하게 됐다. 프랑스 원서로 1000여쪽,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1988쪽에 달한 것에 더해 16세기 프랑스어 번역 작업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심 교수는 “몽테뉴의 문장은 관계대명사를 사용하고 길기까지 한 데다 논리적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생각의 행로를 기록한 경우가 많아 번역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에세’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다뤘다. ‘확고한 목표가 없는 영혼은 길을 잃고 만다’,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나는 항상 그 마지막이 어땠는지를 고려한다’ 등이다. 또한 ‘그대는 그대 자신을 흘려보내고 흩뿌리고 있다. 그대의 밀도를 높이라, 그대의 고삐를 죄라’처럼 인생에 대한 성찰도 가득하다. 해당 주제를 논할 때 몽테뉴는 개인적 삶의 경험과 역사적 예화를 동원해 논거를 제시한다. 최 교수는 “몽테뉴는 당시 신대륙의 ‘식인종’으로 불린 사람들에 대해서도 ‘왜 그들이 우리와 다른 삶을 산다고 경멸하는가’라고 진리의 상대성과 문화상대주의를 내세웠다”며 “신분제 사회에서도 평등을 강조하고, 한 인간 안에 복잡하게 악과 미덕이 모두 존재한다고 본 현대적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육적 측면에서도 암기식 교육보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 보고 깨우치는 배움을 강조한 그의 교육철학이 오늘날 프랑스 바칼로레아(논술형 대입 자격시험)로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독자들에게 추천할 ‘에세’의 ‘문장’으로 ‘나는 내 견해와 상반되는 견해를 미워하지 않는다… 견해들의 가장 보편적인 성질, 그것은 다양성이다’를 꼽았다.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 혐오하는 현 세태에 대한 일침이자 다양성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 맞는 말이다. 심 교수는 ‘나는 하루를 산다’를 예로 들었다. 24시간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현실에서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담겼다.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 두 학자가 ‘에세’ 번역을 할 수 있었던 데는 프랑스 정부의 도움도 컸다. 심 교수는 2012년 몽테뉴의 고향 보르도를 찾아가 그의 자취를 살피고 보르도본에 대한 철저한 검수를 진행했는데, 프랑스 정부의 번역 지원 사업 덕에 출판 계약서만 제시하고도 석 달 동안의 체류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최 교수는 “상대의 진심을 믿고 맡기는 프랑스 문화”라고 거들었다. “몽테뉴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이 자기 주체로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 준 시대입니다. 인문학은 바로 한 개인이 자기가 선 자리에서 세상을 해석하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립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학문이죠. 돈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학문 아닐까요.”(심민화)
  • “삶의 긍정성 가르쳐준 대중적 철학자 몽테뉴, 현대에도 맞는 성찰·위로”

    “삶의 긍정성 가르쳐준 대중적 철학자 몽테뉴, 현대에도 맞는 성찰·위로”

    “몽테뉴는 ‘세계를 대하는 나의 인식이 맞는 것인가’라고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한 인물이죠. ‘에세’는 역사나 인간성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몽테뉴의 자기 사유에서 나온 책입니다. 삶이 얼마나 살 만한 것인가, 삶에 대한 긍정을 가르쳐 주는 것이 큰 장점이지요.”(최권행) “몽테뉴가 살던 때는 종교전쟁과 마녀사냥, 페스트가 창궐한 비참한 시대였어요. 그는 삶의 어두운 부분을 이해하고 모든 이에게 연민을 갖고 위로를 주는 대중적 철학자입니다. ‘에세’는 인간이 가진 주체성에 관해 말하며 모든 경우, 모든 시절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는 대중적 철학서라 할 수 있습니다.”(심민화)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교양인인 미셸 드 몽테뉴(1533~1592)의 고전 ‘에세’(전 3권·민음사)가 심민화(70) 덕성여대 명예교수와 최권행(68) 서울대 명예교수의 손으로 완역 출간됐다. 10년의 번역 기간과 5년의 검수를 거쳐 15년 만에 이뤄 낸 결실이다. 1965년 고 손우성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수상록’(隨想錄)이라는 이름으로 완역본을 낸 뒤 몽테뉴와 새롭게 만나기까지 57년이 걸렸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프레스클럽에서 만난 이들은 “문학과 철학의 성격을 모두 지닌 ‘에세’는 세계 문학사에서 열 손가락 안으로 꼽을 수 있는 고전임에도 현재까지의 번역본은 한글세대가 편하게 읽고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며 이번 번역이 다음 세대를 위한 작업임을 밝혔다.‘에세’는 법관을 지낸 귀족 몽테뉴가 1571년 사직한 뒤 영지인 몽테뉴성에 머물면서 쓴 길고 짧은 글 107편을 묶은 책이다. 중세 기독교의 종교적 규범에 제약을 받은 자기 성찰을 넘어 정신적 개인인 ‘나’로 출발하는 자율적인 개인의 각성을 보여 준다. 몽테뉴 생전에 다섯 번 발간돼 1588년 최종판이 나왔으나 여백 부분에 몽테뉴가 직접 손으로 빼곡히 적어 놓은 추가 원고가 발견돼 20세기 들어 새 판본(보르도본)이 나왔다. 이번 ‘에세’는 이를 번역한 것이다. ‘에세’는 ‘시험하다’, ‘처음 해 보다’ 등을 뜻하는 프랑스어 동사 ‘에세이예’(essayer)에서 몽테뉴가 만들어 낸 명사로 영어로 통용되는 글쓰기 장르 ‘에세이’도 여기서 나왔다. 심 교수는 “일본식 번역의 ‘수상록’이라는 제목은 한자 ‘따를 수’(隨)가 수동적인 의미라 몽테뉴가 자기를 탐구하고자 애쓴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힘든 노력의 기록인 ‘에세’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선후배인 두 교수는 프랑스 고전 독서 모임 ‘명륜 독회’에서 같이 공부했고, 후배인 최 교수의 제의로 2007년부터 방대한 번역 작업을 하게 됐다. 프랑스 원서로 1000여쪽,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1988쪽에 달한 것에 더해 16세기 프랑스어 번역 작업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심 교수는 “몽테뉴의 문장은 관계대명사를 사용하고 길기까지 한 데다 논리적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생각의 행로를 기록한 경우가 많아 번역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에세’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다뤘다. ‘확고한 목표가 없는 영혼은 길을 잃고 만다’,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나는 항상 그 마지막이 어땠는지를 고려한다’ 등이다. 또한 ‘그대는 그대 자신을 흘려보내고 흩뿌리고 있다. 그대의 밀도를 높이라, 그대의 고삐를 죄라’처럼 인생에 대한 성찰도 가득하다. 해당 주제를 논할 때 몽테뉴는 개인적 삶의 경험과 역사적 예화를 동원해 논거를 제시한다. 최 교수는 “몽테뉴는 당시 신대륙의 ‘식인종’으로 불린 사람들에 대해서도 ‘왜 그들이 우리와 다른 삶을 산다고 경멸하는가’라고 진리의 상대성과 문화상대주의를 내세웠다”며 “신분제 사회에서도 평등을 강조하고, 한 인간 안에 복잡하게 악과 미덕이 모두 존재한다고 본 현대적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육적 측면에서도 암기식 교육보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 보고 깨우치는 배움을 강조한 그의 교육철학이 오늘날 프랑스 바칼로레아(논술형 대입 자격시험)로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최 교수는 독자들에게 추천할 ‘에세’의 ‘문장’으로 ‘나는 내 견해와 상반되는 견해를 미워하지 않는다… 견해들의 가장 보편적인 성질, 그것은 다양성이다’를 꼽았다.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 혐오하는 현 세태에 대한 일침이자 다양성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 맞는 말이다. 심 교수는 ‘나는 하루를 산다’를 예로 들었다. 24시간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현실에서 주어진 하루를 충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담겼다.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 두 학자가 ‘에세’ 번역을 할 수 있었던 데는 프랑스 정부의 도움도 컸다. 심 교수는 2012년 몽테뉴의 고향 보르도를 찾아가 그의 자취를 살피고 보르도본에 대한 철저한 검수를 진행했는데, 프랑스 정부의 번역 지원 사업 덕에 출판 계약서만 제시하고도 석 달 동안의 체류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최 교수는 “상대의 진심을 믿고 맡기는 프랑스 문화”라고 거들었다. “몽테뉴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이 자기 주체로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 준 시대입니다. 인문학은 바로 한 개인이 자기가 선 자리에서 세상을 해석하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정립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학문이죠. 돈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학문 아닐까요.”(심민화)
  • 文정부 부동산 정책 또 때린 원희룡…“현대판 주거신분제 해소할 모델 제시”

    文정부 부동산 정책 또 때린 원희룡…“현대판 주거신분제 해소할 모델 제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라며 다시 한번 강하게 비판했다. 원 장관은 2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기조연설에서 “이전 정부는 징벌적 세제와 내 집 마련조차도 막는 금융규제로 주택 수요를 억제하려고만 했다. 수요가 몰리는 도심 주택 공급은 외면하고, 수요·공급의 산물인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윤석열 정부는 부동산 세금은 조세 정의에 맞게, 금융규제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모든 규제를 정상화하겠다”고 했다. ‘주택 250만호+α’ 공급과 관련해서는 “250만호라는 물량적 목표를 넘어 주택의 품질 제고와 함께 교통·교육 등 생활편의까지 고려하는 혁신적 주택 공급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원 장관은 “집의 소유 여부나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는 현대판 주거신분제를 해소하고, 끊어진 주거사다리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또 “공공임대주택이 갖는 사회적 차별과 낙인을 해소하기 위해 임대주택과 분양주택 간 소셜믹스(사회적 융화)를 도모하고 임대주택과 생활서비스가 결합된 다양한 주거 모델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기존의 수도권 억제정책도 비판했다. 그는 “과거에는 수도권의 발전을 억제하고 수도권의 시설을 지방으로 강제 이전해 수도권과 지방의 성장 격차를 줄이는 데 몰두했는데, 이런 방식의 획일적인 분산 정책은 결국 실패했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더욱 심화됐다”며 “앞으로는 도시 간, 지역 간 압축과 연결을 통해 국토의 균형발전과 도시의 혁신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했다. 지방에 사람과 자본, 일자리가 모이는 성장거점 콤팩트 도시를 만들고, 이들 압축 도시를 광역교통망으로 촘촘하게 연결할 때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는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모빌리티 혁신위원회를 발족하고, 8월에 ‘미래 모빌리티 혁신 로드맵’을 통해 비전과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며 “특히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신기술을 실증할 수 있는 스마트시티 성과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 [이해영의 쿠이 보노]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한신대 교수

    [이해영의 쿠이 보노]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한신대 교수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인목대비는 광해를 탄핵한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나라가 중국을 섬겨 온 지 200여년이 지났으니 의리에 있어서는 군신의 사이지만 은혜에 있어서는 부자의 사이와 같았고, 임진년에 나라를 다시 일으켜 준 은혜는 영원토록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런데 광해는 은덕을 저버리고 천자의 명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배반하는 마음을 품고 오랑캐와 화친하였다. 이리하여 기미년에 중국이 오랑캐를 정벌할 때 장수에게 사태를 관망하여 향배(向背)를 결정하라고 은밀히 지시하였다.” 실제 광해가 장수 강홍립에게 ‘관변향배’(觀變向背)라는 밀지를 내렸는지 논란은 있다. 하지만 쿠데타로 레짐 체인지에 성공한 반정군이 그 명분 중 하나로 광해의 외교 노선을 들고나온 것은 분명하다. 해서 쿠데타 세력은 광해의 ‘전략적 모호성’ 노선을 털어내고 숭명반청(崇明反淸), 즉 명청 교체기에 확실한 반동적 노선을 채택했다. 그 결과 인조 정권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즉 임란에 이은 양차 호란을 불러들였다. 조선은 유린됐다. 19세기 말 조선의 엘리트가 거대한 지각판의 변동과 조선사회의 혁명적 위기에 직면해 ‘문명개화’라는 대안을 모색한 것은 그 자체로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조선은 한편으로 낡은 봉건제에 대한 새로운 자본제 생산양식의 도전과 다른 한편으로 청 제국의 위기, 즉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탈이라는 거대한 이중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이 위기는 아래로부터 낡은 신분제에 대한 공격과 낡은 친청 종주권 국제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표현됐다. 위로부터의 쿠데타(갑신정변), 아래로부터의 민중혁명(동학전쟁)은 이 위기에 대한 반응이었다. 조선 지배계급의 범죄적 무능과 부패는 ‘자발적’ 주권 이양과 함께 비로소 청산될 수 있었다. 조선은 멸망했다. 나는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대한 지정학적 위기로 읽는다. 6월 17일 블라디미르 푸틴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서 선언했다. 낡은 ‘단극 세계질서’는 끝났다. “지정학과 글로벌 경제 … 모든 국제관계 시스템의 진정 혁명적인 지각(tectonic)변동”은 변경 불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세계질서 혹은 신냉전 선언이다. 1989년 미국의 냉전 승리 이래 근 30년 굴욕의 시간을 보낸 러시아가 ‘굴기’하고 있다. ‘도광양회’의 또 다른 축 중국과 함께. 러시아 지정학 전략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미(半)동맹’이 만들어졌다. 바이폴라(양극) 체제로의 이행, 이 천하대세의 진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한국에선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새 정부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글로벌 가치외교를 따라 ‘가치외교’를 선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과 함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도 초대받았다. 역사상 처음이다. 바이폴라 체제로의 이행은 미국도 버겁다. 중러 블록이 연합을 이룬 엄청난 도전이다. 우선 나토가 발빠르게 소환됐다. 그래서 북대서양 ‘방어’ 동맹을 글로벌 군사동맹으로 재편하는 옵션이 그나마 손쉽다. 즉 유럽연합(EU) 국가를 줄 세워 러시아를 견제하고, 한일을 나토에 엮어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을 견제하자는 말이다. 최근 부쩍 남방, 북방 삼각동맹이 운위된다. 하지만 이는 지정치(地政治)만 알지 지경제(地經濟)를 모르고 하는 얘기다. 대외 의존도가 극히 높은 한국 경제, 수출로 먹고산다면서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과 적대해 우리 경제가 살 수 있을까.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반경제적이다. 17세기, 19세기에 이어 바이폴라 국제체제가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이제 자문해야 한다. 우리는 ‘서방’인가. 나는 현 정부 외교의 최대치를 ‘친미중립’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 이후는? 답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볼레로와 마츠 에크/무용평론가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볼레로와 마츠 에크/무용평론가

    반복되는 리듬이 격정의 순간을 향해 치닫는다. 검은 점프슈트 차림의 군중이 삼삼오오 모여들며 동작을 펼친다. 그 사이를 하얀색 정장의 노신사가 묵묵히 오간다. 그의 손에는 양동이가 들려 있고 무대 중앙에 놓인 욕조를 물로 채우기 시작한다. 얼굴 형상의 조형물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공중에 자리잡고 군중과 어우러진다. 어떤 의식을 준비하는 걸까.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모리스 라벨의 곡 ‘볼레로’가 흐르는 15분 동안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욕조 속으로 뛰어드는 노신사의 마지막 찰나가 클라이맥스가 될 것이라는 건 상상도 못한 채. 1928년 안무가 이다 루빈슈타인은 라벨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춤의 역동성을 최대한 담아 달라는 주문과 함께. 그렇게 탄생한 ‘볼레로’는 라벨의 가장 유명한 오케스트라 작품이 됐고, 이후 많은 무용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모리스 베자르의 1961년 작이다. 남성 무용수의 대명사 조르주 돈이 빨간색 카펫이 깔린 원탁 위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몸짓을 선보여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고 수잰 패럴, 마이야 플리세츠카야, 실비 기옘 등 세계적 발레리나들이 이에 도전했다. 베자르 외에도 내로라하는 안무가라면 한번쯤은 시도해 보는 곡이 ‘볼레로’인데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만큼이나 그 수가 많다. 스웨덴의 천재 안무가 마츠 에크는 어떤 ‘볼레로’를 만들었을까. 파리 국립오페라 발레단이 ‘카르멘’과 ‘또 다른 장소’까지 두 작품을 더 묶어 ‘마츠 에크 특집’을 꾸몄다. 2019년 첫 기획 이후 올해 5월 한 달간 성황리에 재공연했다. 운 좋게도 지난달 26일 가르니에 오페라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진 파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관객이 공연장에 몰려 볼레로의 ‘크레센도’(점점 세게) 효과를 열광적인 박수소리로 재현했다.올해 77세인 에크는 본래 고전을 재해석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준 인물이다. 일명 ‘대머리백조’로 유명한 ‘백조의 호수’가 대표작이다. 1987년 작인데 국내에서도 많은 팬 층을 확보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보면 에크는 예술적·대중적으로 모두 성공한 발레 풍자극의 귀재임이 분명하다. 파리 국립오페라 발레단과의 인연도 깊다. 1993년 신분제도를 고발한 ‘지젤’이 레퍼토리로 등극한 이래, 2000년 발레단을 위해 ‘아파트’를 안무했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안무를 하기엔 심신이 노쇠했다며 은퇴를 선언했던 그가 3년 전 신작 ‘볼레로’와 ‘또 다른 장소’를 통해 컴백한 것을 보면 파리는 말년에 가장 열정적으로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는 안식처임에 틀림없다. 입에 시가를 문 카르멘. 난폭하고 파괴적이지만 독립적이고 남성적인 매력을 뿜어대는 카르멘 앞에서 돈 호세는 역으로 순종적인 사랑을 갈구한다. 발레리나의 우아함 대신 극적인 표현으로, 에크가 독특한 여성상을 탄생시키는 데 큰 힘이 된 아내이자 뮤즈 아나 라구나가 ‘카르멘’의 조안무자로 활약했다. ‘또 다른 장소’에서도 라구나의 체취는 그대로 묻어났다. 에크가 앞서 친형 니콜라스 에크와 실비 기옘을 위해 영상물로 제작한 ‘스모크’를 모티브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함께 ‘둘을 위한 솔로’를 펼쳐 보여 남녀 듀엣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라구나는 장식적이거나 추상적인 춤의 한계를 떨쳐버리고 솔직한 내면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기 위해 조안무자로서 최선을 다했다.‘또 다른 장소’에 출연한 스테판 뷜리옹이 이번 공연을 끝으로 무대를 떠났다. 각고의 노력으로 에투알(최고등급)에 올랐지만 짧은 무용수의 생 앞엔 빠른 은퇴만이 기다리고 있으니 긴 예술에 비해 인생은 너무나 덧없음을 재차 실감했다. 가르니에 오페라극장의 천장에 있는 샤갈의 그림은 변함없이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는데 물속으로 뛰어든 노신사의 마지막 찰나는 볼레로의 선율과 함께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 조선의 ‘서열 1위’가 택한 옷·소품, 장인 손에서 [클로저]

    조선의 ‘서열 1위’가 택한 옷·소품, 장인 손에서 [클로저]

    조선 전기, 장인 문화 왕실 시스템으로업무별로 세분화…수천명 일해의궤 513권, 국가 행사 기록하며 장인 기록 담아분업 활성화…바느질 장인, 멀티 플레이어 되기도국가 행사에는 많은 물건이 필요합니다. 대외 이미지로서 선포하는 함의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국가 행사에는 각자 고심해 의상과 소품을 고르곤 합니다. 여기에는 때론 럭셔리 브랜드의 소품이 쓰이기도 하고 무명 디자이너의 작품이 선택받기도 합니다. 가격의 높낮이보다는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인데요. 디자인의 혁신성이나 출신 국가, 제품의 소재, 색상, 브랜드 연혁도 이들 브랜드를 택할 때 고려하는 요소예요. 제품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때론 물건에 내재된 의미로 대중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요. 색상으로 상대를 배려하기도 합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 브랜드가 다양해지고 이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어졌는데요. 그렇다면 브랜드가 없던 과거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자신의 취향 혹은 상황에 맞는 차림새나 소품을 얻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꾸렸을까요.● 국가 행사, 왕실의 일에는…장인의 손에서 나온 소품과 기록 금박·노리개·죽책…. 조선 시대 왕실에 필요했던 물건을 만든 사람은 누굴까요. 국가적 행사에 필요한 기념물이나 왕실의 상징을 담아 제작했던 여러 물건들은 누가 만들까요. 우리는 오늘날 이들을 장인이라 부릅니다. 지금도 무형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장인을 존중하고 있죠. 전통기술로 국가에 필요한 물건을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묵묵히 만든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월급을 받으며 궁의 시스템에 속해 일했어요. 기록 덕후던 조상들 덕에 우리는 이들의 흔적을 가까이서 찾을 수 있는데요. 경국대전에 따르면 조선 시대 장인들은 중앙·지역 관부에 속해 왕실 의례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었어요. 중앙 관부에는 2841명이 속한 경공장이 있었죠. 지역 관부에는 세분화된 외공장에 3656명이 일했습니다. 이들은 일관된 왕실 시스템에 따라 물건을 만들었습니다.● 실록과 달리 장인 흔적 담긴 의궤 사농공상으로 신분을 나눴던 조선 시대, 장인이 한 일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담은 것은 의궤입니다. 애초에 이런 신분제 덕에 장인이 왕실 시스템에 속해 일했기도 하지만요. 이런 이유로 장인 개개인에 대한 기록보다는 그저 왕실의 시스템의 하나로서 장인의 뛰어남 등은 기록되기 힘들었습니다. 왕실 기록인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장인의 업무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등장은 하나 구체적인 개인별 이름 등을 담아 그들의 정신을 인정한 빈도는 낮은데요. “화살 만든 장인이 새 화살을 바쳤다”(태조실록, 태조 1년)거나 “상의원 장인들의 사공을 헤아려 인원 액수를 정하고, 수가 모자라면 그 부족한 수만큼 보충하는 외에는 쓸데없는 속원만 늘리려고 하는 것은 일체 금하소서”(세종실록, 세종 1년)라는 등 단편적 기술이나 장인에 대한 부정적 기록이 남아있죠. ● 일상 물건 기록은 없으나국가 행사에 쓰인 물품으로 유추 가능 이와 달리 의궤는 수많은 장인들의 이름을 포함했고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등을 상세하게 담아 장인 정신까지 일부 엿볼 수 있습니다. 1601년부터 1926년까지 왕실 행사를 기록한 의궤는 326년간 546종 2940권이 존재하는데요. 이중 장인이 드러난 건 513권입니다. 다만 국가 행사용 물품을 만든 기록뿐이라 일상의 왕실에서 쓰이던 물건들에 대한 제작 기록은 없어요. 그래도 가치있는 건 장인들이 국가 행사를 위해 물품을 만드는 동안 왕실 시스템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 수 있는 덕분이죠. 이를 통해 다른 업무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의궤, 국가 행사 준비 과정 철저히 기록 비단 장인, 바늘 장인, 청동 세공 담당장인…. 분업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일했던 장인들이 각각 작은 돌을 사용했는지, 제련소에 갔는지, 인삼을 몇 조각 썼는지…. 의궤에 상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국가 행사만을 위해 기록한 책은 우리나라뿐입니다. 덕분에 지난 2006년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죠. 의궤는 국가 행사를 정리해 남긴 보고서 개념입니다. 신분제에 따라 기록의 정도를 달리한 다른 것과 달리 의궤는 행사에 대한 ‘A to Z’를 모두 다뤘기에 장인이 어떤 일을 했는지도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죠. 특이점을 찾을 만한 건 장인의 이름을 담은 부분입니다. 동원된 장인들의 이름을 장인질·장인하인질·원역장인질·목수질·석수질 등의 방식으로 포함했죠. 이를 통해 장인의 규모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겁니다. 이뿐만 아니라 물건 구매비·인건비·식비 등까지 포함됐으며 남은 재료도 기록했죠.● 분업 강조했으나 ‘멀티 플레이어’도 존재 “그 업이 많고 정밀하지 못한 것이 부문을 나누어 전업함만 같지 못하다.” (세조실록, 세조 4년) 분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조선 시대 기록과 달리 조선판 ‘멀티 플레이어’로 일했던 장인도 있습니다. 엄격한 유교사회 질서에 따라 이들 장인 중 여성에 대한 기록은 적은 편인데요.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도 침선비에 대한 기록은 등장할 만큼 그 수에 비해 존재감은 장인들 중에서도 뛰어났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느질이 중시되던 조선 시대 이런 손재주는 일반적이기도 하고 그중 뛰어나다면 눈에 띄기도 했겠죠. 가례도감의궤·국장도감도청의궤에 여성들이 주로 일했던 침선장 분야를 검색하면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곡물, 풀, 책장, 종이, 납, 철, 못, 인삼, 구슬, 숯까지… 장인들이 사용한 재료별로 상세하게 몇 개인지까지 볼 수 있어요. 다만 침선장 호칭은 일각에 남성 장인을 부르는 말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에 따르면 여성은 침선비라고 부른다는 것인데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친선장이라는 호칭은 여성 장인까지 포함해 부르기도 했어요. 침선비로 특징하는 것은 노비일 경우 등이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기생과 때로 혼용되기도 했는데요. 용어가 혼용됐다는 뜻은 아니고, 바느질을 하다가도 왕실에서 춤을 춰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차출되기도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조선판 멀티 플레이어였던 셈이죠.● 다재다능 침선비 기록도 “지난번 연석에서 진연 때의 기생들 가운데 기생이 아닌데도 선발되어 올라온 사람은 즉시 도로 내려보내게 하라고 하교하였습니다. 이는 실로 성상께서 폐단을 진념하고 민원을 돌보는 성대한 뜻에서 나온 조처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악원에서 막 방송하여 미쳐 내려가기도 전에 곧이어 침선비로 상방에 예속되었다고 합니다. 상방의 침선비를 어찌 다른 데서 초출할 수 없기에 한쪽에서는 방송시키고 한쪽에서는 이속시켜 끝내 성명을 헛된 데로 귀결시킨단 말입니까. 사체로 헤아려 보건대 매우 부당한 처사입니다. 상방의 해당 제조를 추고하여 무겁게 다스리소서.” (현종실록, 현종 6년) 기록에서도 볼 수 있듯 침선비의 경우 그 업무를 맡김에 있어 역할이 많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실록에는 침선비를 ‘바느질하는 계집종’으로 부르기도 하니 그 위상이 얼마나 낮았는지 짐작할 수 있죠. 노비 출신을 부르는 말이기에 신분제의 조선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죠. 이 밖에도 하는 일에 따라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다양했습니다. 또한 신분에 따라 ‘장’을 붙여 말하기도 했어요. 조화·참빗·갓·꽃…. 만드는 것에 따라 이름도 다양했죠. 세분화돼 각자에게 역할을 정확하게 맡기고 이를 엄격하게 기록했던 덕분에 당시 국가 행사에 필요했던 물품들과 그에 들어갔던 비용까지 후대가 알 수 있네요. 묵묵히 일했던 장인들 덕에 조선의 물품들이 오늘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 태종에게 쏜 화살이 꽂혔나… 백성 분노 달래던 곳, 황량함만 스치네

    태종에게 쏜 화살이 꽂혔나… 백성 분노 달래던 곳, 황량함만 스치네

    한양 사방 어귀에 자리잡은 ‘院’조선시대 민간 숙박소이자 쉼터학교 앞 표석만 남은 ‘전관원 터’한강서 잘 버텨낸 살곶이다리잊힌 역사와 애통한 전설만이■전관원터-성동구 왕십리로 189, 행당중학교 정문 왼쪽 보도 ■이태원터-용산구 두텁바위로 60, 용산고등학교 정문 오른쪽 보도 ■보제원터-동대문구 약령시로 2, 안암오거리 이화수전통육개장 앞 보도(우신향병원 방면 101·1017 버스 정류장 옆) ■홍제원터-서대문구 통일로 416, 새마을금고 홍제2동지점 앞 보도 ‘여행과 이야기를 즐겼던 조선 사람들’ 1874년 파리에서 ‘조선천주교회사’라는 이색적인 책 한 권이 출간된다. 프랑스 신부 클로드 샤를 달레가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다블뤼(한국명 안돈이) 주교의 비망록과 보고서, 편지들을 바탕으로 펴낸 자료집 겸 소개서였다. 책 내용 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조선 사람들이 “천성적으로 여행과 이야기를 즐긴다”는 대목이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문맹률이 78%에 달하는 지경에 이야기를 즐기는 게 가능한 일인지, 막강한 신분제에 얽매인 이들이 어떻게 여행을 즐겼다는 것인지? 그나마 이야기는 전기수(傳奇叟) 같은 전문 낭독가를 통하거나 구전으로 접했다 치고, 거의 평생을 향촌 사회의 붙박이로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여행을 즐겼다는 것일까? 오늘날 관광사회학이 전근대의 여행(travel)과 근대의 여행(tourism)을 구별하듯 다분히 시기적 특성이 반영된 표현일 테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엮은 ‘조선 사람의 조선여행’에 따르면 18세기는 동서양 할 것 없이 여행 붐이 일어났던 시기다. 조선 중기까지는 과거길, 유배길, 암행어사 행차길 등 목적이 뚜렷한 행차가 고작인 데 비해 후기 들어 양반 계급이 아니더라도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욕망이 싹텄기 때문이다. 예인들이 스승과 무대를 찾아 방랑길에 오르는가 하면 상업의 발달로 보부상의 장삿길이 넓어진다. 견문을 넓히고 비경을 즐기고자 떠나는 유람도 흔해져서 화보와 기행문이 쏟아졌고 14세의 원주 소녀 김금원이 남장을 하고 팔도를 누비기도 한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금강산에 가 보지 못한 사람은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말까지 있었다니, 우리 조상들이 고립되고 가난하고 억압당한 ‘한(限)의 민족’이라는 해석은 코끼리의 코나 다리만을 더듬어 생긴 오해일지 모르겠다.갈 곳이 많다. 동선도 길다. 4개의 원이 있던 자리가 지방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사방의 어귀이기 때문이다. 중종 25년(1530)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제원은 흥인문 밖 3리, 홍제원은 사현(모래재) 북쪽, 이태원은 목멱산(남산) 남쪽, 전관원은 살곶이다리 서북쪽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말하자면 동대문 밖에 보제원, 서대문 밖에 홍제원, 남대문 밖에 이태원, 그리고 동대문 아래 남소문(南小門)인 광희문 밖에 전관원이 있었던 게다.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지만, 소설가는 사람들 사이에 길이 있다고 말하련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길 위에서 사람살이의 이야기가 빚어진다. 새로운 길이 생기고 있던 길이 넓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뜻이고, 이야깃거리가 많아졌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욕망과 삶의 양상이 다양해졌다는 뜻이렷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도로가 발달하면서 역(驛)과 원(院)의 중요성도 커졌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역이 중앙의 공문을 지방에 전달하고 벼슬아치에게 마필을 제공하는 등 공무와 관련된 관영기관이었다면, 고려 때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된 원은 일반 여행자들에게도 무료로 숙박을 제공하는 민간 숙박소였다. 한양의 4원은 그 외에도 외국 사신을 쉬게 하고 병자를 치료하고 빈자를 구휼하고 은퇴한 관리들을 위한 기로연을 베푸는 등 다양한 쉼터의 기능을 담당했다. 여행을 떠날 때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이 교통편과 숙소지만, 보통의 조선 여행자라면 여벌의 짚신 외에 준비할 교통편이 따로 없었을 게다. 최저가 검색을 통한 숙소 예약도 불가능했다. ‘하멜 표류기’에 묘사된 바로는, 여행하다가 날이 저물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 자기가 먹을 만큼 쌀을 내놓으면 집주인이 그 쌀로 밥을 지어 반찬과 함께 차려 내놓았다고 한다. 그토록 고단했을 조선의 여행길에서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한양 어귀에 다다랐을 때 멀리서 반짝거리는 원의 불빛은 얼마나 반가웠을까? 무용담과 객소리가 뒤섞여 왁자지껄했을 이야기의 경연장, 발 냄새와 걸쭉한 팔도의 입담이 뒤엉켰을 그곳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궁금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한양대입구역 4번 출구로 나와 육교를 내려오면 덕수고등학교와 나란한 행당중학교가 보인다. ‘전관원 터’ 표석은 바로 행당중학교 정문 왼편에 있다. ‘전관원 터: 조선 시대 일반 길손이 머물 수 있던 서울 근교 네 숙소(四院)의 한 곳’낙엽 따위를 넣은 쓰레기 자루 두 개가 표석에 기대어 있다. 대단한 우대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잊힌 역사에 대한 홀대가 씁쓰레하다. 겨울방학을 맞은 학교 운동장에는 축구를 하는 아이들 몇뿐인데, 그들에게 이 터가 조선시대 무엇이었는지 아냐고 물으면 정신이 온전치 않은 아줌마 취급을 받을 게다. 나보다 나어린 이들에게는 무어라도 함부로 말하지 않으련다. 자신이 오른 삶의 여행길이 어디를 향하는지도 알 수 없는 사춘기에는 그냥 열심히 공이나 차면 된다. 열심히 차다 보면 데굴데굴 구르다가 어느 수풀엔가 공이 머물 날이 있으리라. 그때 행여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 오면 두런두런 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만이다.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 나그네들이 전관원에서 만난다. 한강을 건넜지만 도성 문이 닫혀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게다. 서울이 낭이라더니 매일 일경삼점(오후 7시께)에 치는 인정(人定) 종에 따라 야멸치게 성문을 닫으니 어쩔 수 없다. 도성 문이 열리는 오경삼점(오전 4시께) 전에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도 있을 게다. 그들은 꼭두새벽 전관원을 나와 살곶이다리를 건너 동으로 강릉에 가거나 송파에서 광주·이천을 거쳐 충주에 이르는 길에 오를 것이다. 설렘과 긴장으로 들떴을 여행자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표석을 뒤로하고 살곶이다리를 향한다. 전관원 위치를 설명할 때 등장하는 살곶이다리는 조선시대의 가장 길고 큰 다리이자 지난달 찾았던 낙천정 터의 주인공인 태종과 관련된 장소이기도 하다. 2011년 보물 제1738호로 지정된 살곶이다리는 한눈에 보아도 튼튼하고 멋진 다리다. 홍수 등으로 유실되어 원형 그대로 복구되지는 못했으나 최대한 조선의 석재를 살리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살곶이다리에는 함흥차사 고사와 맥락을 같이하는 전설이 있다. 도읍지를 떠나 떠돌던 태조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이복형제들까지 죽이고 왕위에 오른 태종을 향해 쏜 분노의 화살이 꽂힌 장소로 알려져 있는데, 실록에는 그런 기록이 전무하다. 어쨌거나 화살이 꽂힌(살꽂이→살곶이) 내력 자체는 확실한지 ‘태종실록’에 ‘(태종이) 살곶이[箭串] 냇가에 술자리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일대의 강변이 너르고 풀과 버들이 무성해 말을 먹이고 군대를 훈련시켰다니 그 와중에 혹 누군가의 화살이 다리에 꽂혔던 것일 수도 있다.서민층의 집단 창작인 야사(野史)와 전설은, 동대문 일대가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사연으로 뒤덮인 것처럼 사실을 말하는 일이 통제될 때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을 폭로하는 대체물이다. 어쩌면 백성들은 이런 은밀한 생각으로 애꿎은 다리에 태조와 태종을 끌어다 붙여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기세 좋게 스스로 왕이 되더니 천륜을 저버리고 골육상쟁까지 벌였구나. 그렇게 권력이 좋으면 아비가 자식에게 화살을 쏘는 일도 어렵지 않겠네. 에라, 이 콩가루 집구석!”(㉻에 계속)
  • 강성태, 곽상도 子 언급 “퇴직금 50억, 회사생활 얼마나 잘했는지...”

    강성태, 곽상도 子 언급 “퇴직금 50억, 회사생활 얼마나 잘했는지...”

    ‘공부의 신’ 강성태가 곽상도 무소속 의원 아들의 퇴직금 논란에 대해 비판했다. 지난 12일 강성태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25살 6년 근무 퇴직금 50억’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서 강성태는 “6년 일하고 대리로 퇴사하신 분이 계신다. 그런데 퇴직금이 50억원이다. 회사 생활을 얼마나 잘하신 건지”라며 최근 곽 의원의 아들을 둘러싼 퇴직금 논란을 언급했다. 이어 “며칠 전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노벨상의 상금이 얼마냐면, 전 세계 인류 발전에 가장 기여하신 분들인데 13억원”이라며 “제가 영어 참고서 많이 냈다. 영단어에 영문법, 영독해. 전부 1위 찍었고 국세청 납세 표창까지 받았는데 (수입을) 다 합쳐도 미치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강성태는 최근 곽 의원 아들을 유튜브 채널에 섭외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으나 섭외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5살에 청와대 1급 비서관이 된 박성민 청년비서관에게도 비결을 묻기 위해 섭외 요청을 했지만 실패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곽상도의 아들과 박 비서관) 두 분 모두 25살에 취업하신 건데, 25살에 1급도 되고 퇴사할 때 막 50억원도 받고, 이것만 보면 청년들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다. 근데 출산율은 왜 떨어지는 거야”라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곽 의원 아들의 퇴직금 논란이 불거진 이후 강성태는 관련 입장을 표명해달라는 요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강성태 유튜브 채널에는 “강성태가 선택적 분노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댓글이 달렸다. 이는 앞서 강성태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부정 입학 의혹과 박성민 청년비서관의 특혜 의혹을 비판한 것을 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9년 강성태는 유튜브 채널에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신분제 사회였습니까’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고 조민씨의 부정 입학 의혹을 지적했다. 또 지난 6월에는 박성민 청년비서관을 둘러싼 ‘불공정 논란’을 비판했다.
  • 곽상도 아들 50억 퇴직금 논란, ‘공신’ 강성태에 불똥 왜?

    곽상도 아들 50억 퇴직금 논란, ‘공신’ 강성태에 불똥 왜?

    강성태 공부의신 대표의 유튜브 채널에 비판 댓글이 쇄도하고 있다. 일부 여당 지지자들이 국민의힘을 탈당한 곽상도 의원 아들의 50억원 퇴직금 논란 관련, 강 대표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29일 여당 지지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는 ‘분노조절 전문가 강성태씨 유튜브 근황’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에 따르면 유튜브 채널 ‘공부의신 강성태’에 게시된 영상에는 “강 대표가 선택적 분노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댓글이 100여개 달렸다. 이들은 강 대표가 앞서 여당 인사들을 비판한 것을 언급하면서, 최근 논란이 된 곽 의원 아들 퇴직금 논란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네티즌들은 “듣고 있으니 선택적 분노조절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누굴 선택해서 분노할까 고민하다가 밤을 샜다”, “누구보다 공정을 외치면서 선택적으로 분노하시나보다”, “고대 출신 9개월짜리 별정직 공무원 채용에 대해 폭동이 안 일어난 게 이상할 정도라고 분노했던 공정의 신 강성태님에게 연대 원주캠 출신이 받은 50억의 의미란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요즘”, “표창장은 분노하고 50억은 왜 분노 안 하나” 등 댓글을 남겼다. 작성자 A씨는 “조국 교수님 딸에게 어마어마한 분노를 느끼시고 박성민씨가 별정적 청와대 비서관이 된 거에 엄청난 분노를 느끼시는 공정의 수호자 강성태씨 아시죠?”라며 “과연 이 분이 곽상도씨 아들 곽병채씨가 퇴직금이면서 산재 위로금이면서 성과급으로 받은 50억원에는 과연 분노할까? 다들 기대를 갖고 지켜보자”고 했다. 앞서 강 대표는 지난 2019년 8월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신분제 사회였습니까’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민씨의 부정 입학 의혹을 비판한 바 있다. 당시 강 대표는 영상에서 “제가 ‘유전자 타령 하지 말라. 하루라도 최선을 다 해봤냐’고 한 적 있다. 이건 유전자도 노력도 아니고 부모님이었다”라며 “취업이건 진학이건 좋은 부모님 둬야만 가능한 거면, 다시 태어나야 되는 건가”라고 했다. 이어 “언제 어떻게 이 나라가 신분제 사회가 된 건가. 이게 대한민국이 맞나”라고 한탄했다. 강 대표는 지난 6월에도 박성민 대통령비서실 청년비서관을 둘러싼 ‘불공정 논란’을 비판했다. 그는 ‘25살 대학생이 청와대 1급 공무원 합격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리고 “지금까지 공신(공부의신)들에게는 좀 죄송하지만 이 분이 탑인 것 같다”고 일침했다. 이어 “하루 10시간씩 공부할 거 아니면 때려치우라고 했었다. 수강생들은 정말 9급 공무원 되려고 하루 10시간씩 공부한다. 그런데 9급도 아니고 1급을 25살에 되신 분이 탄생하셨다”며 “서류전형이 있었다면 어떻게 통과했는지, 면접은 어떻게 치렀는지, 어떤 경로로 경쟁률은 또 얼마나 치열했는지, 슬럼프는 또 어떻게 극복했는지 방법만 알 수 있다면 정말 하루 18시간씩이라도 (그 방법대로) 하겠다고, 꼭 좀 모셔봤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곽 의원은 28일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된 수사에 성실히 임해서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밝히겠고, 결과에 따라 제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으면 의원직까지 어떤 조치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는 대장동 개발사업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한 바 없고, 아들이 입사한 회사인 화천대유와 관련돼 국회의원 직무상 어떤 일도, 발언도 한 바 없음을 다시 한 번 밝힌다”고 강조했다.
  • ‘일침’ 이언주 “쥴리면 어때서? 영부인 직업이 따로 있나…찌질해”

    ‘일침’ 이언주 “쥴리면 어때서? 영부인 직업이 따로 있나…찌질해”

    이언주 “대한민국 신분제 사회 아냐” “쥴리 여부가 대통령 가족 자격요건인가”“풍문에 키득대고 음험한 눈빛, 낯뜨겁다”“찌질한 공방…남자 유흥은 눈 감아도여자 과거는 들추는 추악한 이중성”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이 12일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인 김건희씨의 이른바 ‘쥴리’ 의혹을 두고 “대통령 부인의 자격이 되는 직업이 따로 있었느냐”고 반문한 뒤 “남자의 유흥은 눈 감아도, 여자의 과거는 들추는 사회의 추악한 이중성을 엿보는 듯해 불편하다”고 비판했다. ‘쥴리’는 일명 지라시 형태로 도는 ‘윤석열 X파일’에서 김씨가 강남 유흥업소에서 일할 당시 접대부로 사용했던 예명으로 거론되는 이름이다. “재산 없고 직업 없어도 국민이 뽑으면대통령·영부인 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이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한민국은 신분제 사회가 아니다”라면서 “일자무식한 자라도, 재산이 한 푼도 없어도, 그럴싸한 직업이 없어도,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하면 대통령도 되고 영부인도 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 쥴리였으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한가”라면서 “그것이 방송에서 공인들이 왈가왈부할 대통령 가족의 자격 요건이라도 되느냐”고 되물었다. 이 전 의원은 “공적 검증과 하등 무관한 풍문을 키득거리며 공유하고, 음험한 눈빛을 교환하며 즐기기까지 하는 행태가 낯 뜨겁다”고 일갈했다.김건희씨 ‘쥴리’ 반박 인터뷰 논란에“오죽 답답했으면 인터뷰 자처했겠나” 김씨 “쥴리? 기가 막힌다…해야할 이유 없다” 이어 200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 전날 당시 민주당 인사들이 ‘새천년 NHK 룸가라오케’에서 술자리를 가진 사실이 드러났던 점을 거론하며 “나는 대통령이 될 수 있어도, 그 여성들은 영부인이 될 수 없단다”라고 비꼬았다.며 그러면서 “아내의 과거에 대한 공방이라니, 이 무슨 찌질한 공방이냐”고 비판했다. 이 전 의원은 ‘쥴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김씨의 언론 인터뷰에 대해서는 “오죽 답답했으면 스스로 인터뷰를 자처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1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쥴리니, 어디 호텔에 호스티스니, 별 얘기 다 나오는데 기가 막힌 얘기다”라면서 “쥴리를 하고 싶어도 공부하고 사업하느라 할 시간이 없다”고 친여 성향의 각종 매체가 제기한 ‘강남 룸살롱 출신설’, ‘유부남 검사와 동거설’ 등을 일축했다. 김씨는 “저는 원래 좀 남자 같고 털털한 스타일이고, 오히려 일 중독인 사람”이라면서 “저는 쥴리를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사람으로 결국 진실은 드러날 것”이라고 반박했다.추미애 “김건희 불법여부 답해야”“쥴리 들어봤다…가족 다 깨끗해야”이낙연 “대통령 가족은 국가의 얼굴”“위법 여부는 엄중한 검증 필요” 정청래 “쥴리는 생각하지 마! 쥴리 찾아 삼천리 떠돌 것”홍준표 “쥴리 스캔들, 정치적 치명상” 앞서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의 부인 김씨는 일반 시민이라기 보다는 공인에 가깝다며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추 전 장관은 ‘결혼 전 일로 남편인 윤 전 총장이 책임지는 건 심하지 않나’라는 질문에 “일단 공적 무대에 등장을 하는 순간 그냥 보통 사람의 부인 프라이버시하고 다르다”라면서 “당선 된다면 대통령 부인이 되며 일정한 공적 역할을 수행한다. 재산형성 과정 등을 묻겠다는 것으로 거기에 있었던 불법여부, 학사업무 방해여부, 이런 것들에 대해선 답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추 전 장관은 지난달 30일 라디오 방송에서 ‘쥴리’와 관련해 “들어봤다”면서 “대선후보는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 주변 친인척, 친구관계 등이 다 깨끗해야 된다”고 공격했다. 또다른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전날 김씨 관련 논란에 대해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은 국가의 얼굴”이라면서 “대통령 가족도 사생활은 보호해야 옳지만, 위법 여부에 대해선 엄중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SNS인 페이스북에 김씨의 ‘쥴리’ 반박 인터뷰에 대해 “자충수로, 사람들은 앞으로 쥴리 찾아 삼천리를 떠돌 것”이라면서 “쥴리는 생각하지마!”라고 평가절하했다. 또 “윤석열씨 부인이 쥴리를 언급한 것은 대응책 치고 하책 중의 하책이 될 것”이라고 깎아내린 뒤 “윤석열은 별거 없다. 결국 윤서방은 장모님께 폐만 끼치게 될 것 같다”고 비꼬았다.국민의힘 대선주자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김씨의 인터뷰에 대해 “치명적 실수”라면서 “SNS나 옐로페이퍼나 이런 데서나 거론될 문제가 정식으로 지면에 활자화되고 거론돼 버렸으니 상당히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 의원은 지난 7일에도 SNS에 “지금 한국의 대선후보 1, 2위가 모두 무상연애 스캔들(이재명), 쥴리 스캔들(윤석열)에 묶여 있다”면서 “프리섹스 천국으로 알려진 미국도 이런 스캔들은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는다”고 혹평했다. 이와 관련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추 전 장관 등을 겨냥해 “이렇게까지 정치를 저질로 만들어야 하느냐”면서 “성적인 의혹 제기로 여성을 공격하다니 경악스럽다”고 비판했다. 강 대표는 “대선 후보 배우자의 과거 직업이 어쨌다느니, 예명이 뭐였다느니, 과거 누구와 관계가 있었다느니 하는 식의 이야기를 시민들이 대체 왜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패드 같은 조선의 ‘유연전’ 상속 둘러싼 욕망 엿보다

    패드 같은 조선의 ‘유연전’ 상속 둘러싼 욕망 엿보다

    조선시대 문신 이항복이 낸 책 중에 ‘유연전’이 있다. 등장인물 모두가 실재했다는 점에서 수사보고서나 다름없는 책이다.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은 이 ‘유연전’을 바탕으로 조선의 상속 제도를 돌아보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에 당시 상속 제도와 정치적 역학관계 등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여기에 유럽의 장자 단독 상속제 등 다양한 사례를 거울삼아 당대를 톺아보고 있다. ‘유연전’은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패륜 드라마에 가깝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대구의 한 고을 현감을 지낸 유예원은 3남2녀의 자식을 뒀다. 한데 맏아들 부부가 후사 없이 세상을 뜨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맏아들 역할을 떠맡게 된 둘째 유유는 여렸다. 대구 무반의 딸 백씨와 결혼했지만 자식이 생기질 않았다. 이 탓에 아버지와 불화하고 급기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후 8년 만에 유유의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황해도 해주에서 채응규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이는 삼남 유연의 자형이자 왕족인 이지였다. 해주로 달려간 유연은 채응규와 함께 대구로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채응규는 가짜였다. 이지 등과 짜고 처가의 재산을 가로채려던 일당 중 하나였다. 한데 유연은 형이 가짜라는 걸 알아봤지만 희한하게도 유유의 부인 백씨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이 와중에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보방(보석) 조치로 집에 머물던 채응규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이 일로 유연은 유유(채응규) 살해범으로 고발당해 모진 고문을 받고 결국 능지처참으로 죄 없이 죽었다. 유연을 고발한 이는 백씨였다. 재산을 탐해 형을 살해했다는 혐의였다.그로부터 16년 뒤, 경북 영주에서 훈장 노릇을 하던 진짜 유유가 나타나자 유연의 아내 이씨의 발 빠른 대처로 유연은 신원됐다. 이지는 신문받다 목숨을 잃었고 채응규는 압송 과정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유 역시 아버지 상을 등한시한 죄로 옥살이를 한 뒤 2년 만에 세상을 떴다. 악녀 정황이 다분했던 백씨는 명백한 증거를 찾지 못해 처벌받지 않았다. 장자 상속이 만연했을 법한 조선시대지만 사실 ‘유연전’의 배경이었던 16세기까지만 해도 조선은 남녀 균분상속제였다. 예컨대 백씨 입장에서 상속 과정을 정리하면 이렇다. 세도가 집안의 적녀였던 백씨는 서자들에 비해 더 많은 친정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 시가는 좀 달랐다. 남편이 죽고 자식마저 없다면 ‘형망제급’ 규정에 따라 남편 재산이 시동생인 유연에게 돌아가게 된다. 집의 소유권 등 총부(婦·적장자손의 부인)의 각종 권리도 유연에게 넘어갈 위기였다. 백씨가 채승규 첩의 아들을 의자녀 삼아 자신의 집으로 들인 건 이런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저자가 던지려는 화두는 사실 “상속의 목적에 대한 고민”이다. 상속을 통한 기대와 목적이 뚜렷했던 조선시대와 달리 가부장제도가 와해된 요즘, 상속은 그저 일방적인 혜택에 머물고 있다. 저자는 “태어나면서 획득된 조건이 개인의 성취를 좌우한다면 신분제 사회와 다름없다”며 “상속된 부를 일정 부분 사회화하는 등 상속의 가치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 [서울광장] ‘자산어보’와 ‘이준석 현상’/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자산어보’와 ‘이준석 현상’/서동철 논설위원

    집안 소파에 누워 TV 리모컨을 돌리다 보니 케이블채널에 영화 ‘자산어보’를 예고하는 자막이 떴다. 개봉 전에는 흥행대작이 될 것이라는 흥분 어린 목소리도 있었다. 조용히 개봉관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벌써 집에서 볼 수 있게 됐구나 싶었다. ‘자산어보’를 본 것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영화관에 가는 것은 연례행사도 아닌 격년행사쯤 된다. 올해는 ‘자산어보’ 전에 ‘미나리’도 봤으니 친구들 만난 자리에서 영화가 화제에 올라도 아주 할 말이 없지는 않게 됐다. ‘자산어보’는 복합영화관의 객석이 300개 남짓한 제법 큰 방에서 상영했는데, 관람객은 필자를 포함해 예닐곱뿐이었다. 평일 오후였으니 그런가 보다 했다. 적지 않은 관람객을 동원했다는 ‘미나리’ 때도 비슷한 시간대 관람객이 그보다 많지는 않았다. 다만 ‘미나리’는 가까운 영화관을 쉽게 찾았지만, ‘자산어보’는 상영관이 많지 않아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던 것이 달랐다. 무엇보다 이날만 그랬을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영화를 보러 온 관람객 가운데 젊은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의아했다. 영화 속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인 ‘창대’가 등장하는 정약전(1758~1816)의 해양생물지(誌) ‘자산어보’의 서문은 미리 읽어 두었다. ‘섬에 덕순 장창대라는 사람이 있어 … 한 집에 머물면서 함께 연구해 책을 완성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창대는 나름 섬 주민들 사이에서는 박학다식한 인물로 인정받는 당대 흑산도의 대표적 ‘먹물’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본문에도 아홉 군데 등장하는데, 창대가 ‘우기는’ 내용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으니 적어 둔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대는 정약전보다 나이가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인물을 좌절한 출세지향의 젊은이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 것이 창작의 힘이다. 결론적으로 흑백으로 만든 ‘자산어보’의 영상미를 한껏 즐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영화 중반까지 절해고도에 유배된 진보적 학자와 물정 모르는 어촌 젊은이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는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조선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을 신분 격차, 심지어 나이 차이를 떠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은 저런 것이겠거니 하며 작은 감동마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궤도가 당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옮겨 가면서 “이 영화에 저런 접근이 꼭 필요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관객이 왜 없는지는 의문이었다. 정약전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조선시대 신분제도의 모순은 물론 지방관과 아전의 횡포와 민중의 좌절까지 리얼하게 그리고 있지 않은가. 절해고도에서 벌어지는 한가하다면 한가한 이야기를 사회적 주제로 ‘승화’시켜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영화에 얼마 전까지는 열광했을 젊은 세대일수록 더욱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만 이후 ‘자산어보’는 잊었다. 영화 ‘자산어보’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것은 엉뚱하게도 최근의 ‘이준석 현상’이었다. 36세에 불과한 그가 일반 시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제1야당 대표에 오른 것을 두고 갖가지 해석이 만발하고 있다. ‘잊혔던 보수적 가치에 대한 민심의 향수’라는 신문 해설 기사의 한 대목도 떠오른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 정당 대표가 ‘따릉이’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이 신선해 보이는 것은 보수의 가치와도, 진보의 가치와도 관계가 없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이준석 현상’은 우리 사회가 ‘뻔한 것’에 지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대표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제대로 된 젊은 보수’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하는 짓’이 참신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대를 앞서가는 가치를 담지 못하면 후세에 남을 예술로 대접받지 못하듯 정치도 딱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세월이 흐르고 사회도 바뀌었는데 진화하지 못한 진보나 보수가 여전히 진보나 보수를 대표한다고 외치는 것이 설득력이 있느냐고 ‘이준석 현상’은 묻는다. ‘자산어보’에 관객이 들지 않은 것도 한때 각광받던 ‘기-승-전-현실비판’이라는 ‘영화문법’이 더이상은 새롭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런 문법을 도식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진부해진다는 것을 관객은 이제 알고 있다고 주제넘은 추측을 해 본다. 그러니 ‘이준석 현상’도 우연히 ‘로또’에 당첨된 것이 아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문법’을 개발한 데 따른 정당한 반대급부일 수밖에 없다. sol@seoul.co.kr
  • 최고가 2000만원 낙찰… 이 그림의 화가는 ‘OOO’

    최고가 2000만원 낙찰… 이 그림의 화가는 ‘OOO’

    국내 미술시장에서 연예인 화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달 23일부터 14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배우 하정우의 작품은 벌써 절반 정도가 팔렸다. 최고가는 약 2000만원 수준으로 중견작가와 맞먹는 수준이다. 하정우는 개성 강한 유화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아트부산’에 출품된 작품 네 점은 800~1200만원에 모두 완판됐다. 소의 해를 맞아 황소 머리를 로봇 마징가제트처럼 독창적으로 해석한 ‘COW’(100×80.3㎝), 화분 속 녹색 식물을 강건하게 그린 ‘Work’(100×80.3㎝)를 비롯해 미국 천재 낙서 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 영향을 받아 푸른색 인체 속 해부도를 만화처럼 드러낸 붉은 머리 남자 초상화 ‘Portrait R’(116.8×91㎝), 노란 바탕에 얼굴을 꽉 채운 큰 이목구비를 강조한 초상화 ‘Portrait M’(116.8×91㎝) 등이다. 2010년 첫 개인전 이후 국내외 전시를 이어오고 있는 하정우는 독학으로 그림을 그린 바스키아 영화를 만나면서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작품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하정우는 그림 작업을 통해 연기 활동의 힘을 얻는다며 “이젤 앞에 앉는게 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표갤러리 관계자는 “하정우 씨 그림은 개념적이고 철학적인데다가 관람객 입장에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어 인기를 끈다”고 밝혔다. ‘홍대 이작가’ 이규원 작가는 하정우의 그림에 대해 “예술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미술 작가로서 평가하는 건 조금 그렇다. 평가할 정도는 솔직히 아닌 것 같다. 그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500만원대에 팔린 하지원의 그림 5년 전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려온 배우 하지원은 단체전 ‘우행(牛行)’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공개했다. 하지원은 다채로운 색과 선으로 소의 특징을 표현한 추상화 ‘슈퍼 카우(Super Cow)’ 연작 3점을 출품했다. 작품 3점 중 1점은 이미 판매됐고, 구체적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500만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섬세화로 유명한 구혜선은 최근 “취미 미술 수준이다. 배우나 하셨으면 좋겠다”는 혹평에 대해 “제 예술의 당당함은 마음을 나누는 것에 있다는 것을 전해드리고 싶다. 세상 만물과 더불어 모든이의 인생이 예술로 표현될수 있으며 마음먹은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응원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작업한 판매 수익 2억 4000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구혜선은 “예술은 객관적일 수 없다. 예술은 대단한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가 이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일 뿐”이라며 “노인이 주름을 만지는 것도 예술이라 행위 하면 예술이 되는 것이고 어린아이들의 순진한 크레파스 낙서도 액자에 담아 전시함으로 예술이 될 수가 있다. 꿈꾸는 여러분들 모두 예술가가 될 수 있으니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 말길”이라는 글로 심경을 전했다.“상대적 박탈감” vs “작가 따로 있나” 이규원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 졸업 후 영국 골드미스 대학 석사과정을 밟고 홍대 회화과 박사를 수료했다. 영남대 회화과 객원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술 비평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유튜브와 방송에서 활동 중이다. 이 작가는 조영남을 제외하고 연예인 출신 미술 작가들은 재능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화제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리나라 유명한 작가들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한 작품당 10억원 넘게 팔렸을 때보다 연예인 출신 작가가 한 작품을 1000만원에 팔았다고 하는 기사가 더 많이 나온다. 그런 언론플레이가 일반 작가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라며 씁쓸해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 작가의 주장을 반박했다. 진 전 교수는 “누가 그리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된 거다. 좋아하는 그림은 돈 주고 살 수도 있는 문제. 팔리는 작품이 꼭 훌륭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팔리는 작품이 꼭 훌륭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진 전 교수는 “연예인들 작품 활동이 작가들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들 거기서 박탈감을 느낀다고 하는 건지. 그림 산 이들이 그저 연예인이 그린 거라 해서 산 것이라면, 어차피 그 사람들, 작가들 작품은 안 살 거다. 대한민국이 신분제 사회도 아니고, 꼭 홍대 나와야 작가 자격이 생기나”라고 반문했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이재명 “치솟는 집값 감당못해 비트코인 열중…‘세습자본주의’ 심화”

    이재명 “치솟는 집값 감당못해 비트코인 열중…‘세습자본주의’ 심화”

    “청년들이 원하는 건 특혜가 아닌 공정”“나의 미래 결정 신분제 심화”“‘경제적 기본권’ 지켜내고 선택지를”“기본소득, 기본주택 모두 그 방향”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9일 “청년세대는 ‘공정’을 원하지 ‘특혜’를 원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최근 여권에서 20대 남성의 표심을 잡기 위해 군 가산점 제도 부활 등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런 ‘특혜’보다는 남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공정’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 지사는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재보궐 선거 이후 청년 민심을 두고 백가쟁명식 해석이 난무한다. 선거를 앞두고 ‘청년은 전통적 진보·보수라는 이분법을 거부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여전히 우리 정치가 청년세대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 지사는 “저는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기회가 많던 시대를 살았다. 서슬 퍼런 군부독재가 계속되고 제도적 민주화가 불비하여 지금보다 불공정은 훨씬 많았지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데는 모두 주저함이 없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도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열심히 일해서 대출받아 집 사고 결혼하는 공식,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이 지사는 “지금 청년들이 사는 세상은 너무도 다르다. 열심히 일해서 대출받아 집 사고 결혼하는 공식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며 “사회의 성장판이 예전 같지 않아 선택지는 줄었고 부모의 재력에 따라 나의 미래가 결정되는 신분제에 가까운 ‘세습자본주의’가 심화되었다. 노동해서 버는 돈으로는 치솟는 집값을 감당할 수 없으니 주식과 비트코인에 열중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또 “기회의 총량이 적고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그만큼 불공정에 대한 분노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세대 갈등도 성별갈등도 이런 시대적 환경조건과 맞물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성별갈등은 존재하는 갈등이다. 여론조사를 통해 2030세대가 뽑은 가장 큰 사회갈등으로 꼽힌 지 몇 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부터 우리사회가 성찰해야할 대목”이라며 “청년여성도 청년남성도 각각 성차별적 정책이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면 있는 그대로 내어놓고 토론하고 합의가능한 공정한 정책을 도출하면 된다. 가장 나쁜 것은 갈등을 회피하고 방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또 이 지사는 “비단 몇몇 군 관련 정책으로 청년남성의 마음을 돌리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워 보인다. 다짜고짜 우는 아이 떡 하나 주는 방식으로는 모두에게 외면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세대는 ‘공정’을 원하지 ‘특혜’를 원하고 있지 않다”며 “병사 최저임금, 모든 폭력으로부터의 안전 강화, 경력단절 해소 및 남녀 육아휴직 확대, 차별과 특혜 없는 공정한 채용 등 성별불문 공히 동의하는 정책 의제도 많다. 회피하지 않고 직면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지사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속 가능한 성장의 동력을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소한의 먹고사는 문제, ‘경제적 기본권’을 지켜내고 청년은 물론 모든 세대에게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질 수 있어야 한다. 제가 줄곧 말씀드리는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 모두 그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지사는 “이제 세대로 혹은 성별로 나누어 누가 더 고단한지를 경쟁하는 악습에서 벗어나 함께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여정에 나설 때”라며 “서로를 향한 극심한 반목과 날선 말들이 난무하여 당장은 막막해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사회가 그동안 이루어온 성취를 생각하면 이 갈등 역시 충분히 해결할 역량이 있다고 믿다”고 덧붙였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정약전, 설경구, 흑백영화… 왜? ‘자산어보’ 이걸 알아야 보인다

    정약전, 설경구, 흑백영화… 왜? ‘자산어보’ 이걸 알아야 보인다

    조선시대 서학 핍박 찾다가 정약전 눈길급진적이며 선비 풍모 품어 설경구 낙점청년 어부 창대와 서로 지성 나누며 성장 흑백으로 담긴 흑산도 풍경, 더 생생해져“컬러 장면 3번… 창대의 성장 나타낸 것”18세기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로 꼽히는 정약용이 평생에 지적으로 의지한 두 사람이 있다. 하나는 그를 신임한 정조였고, 또 하나는 그의 형 정약전이다. 형제는 차례로 벼슬에 올랐고, 나란히 천주교에 심취했다가 순조 1년인 1801년 신유박해 때 유배됐다. 정약용이 전남 강진으로 떠났을 때, 정약전은 흑산도로 보내져 ‘자산어보’를 완성했다. 상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는 흑산도에서 보낸 그의 시간을 조명한다. 정약용보다는 덜 알려진 정약전을, 사극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설경구가 연기한다. 세상 모든 컬러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시대에 흑백 화면으로 채웠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 질문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핍박받은 서학에 대한 영화를 구상하다 ‘목민심서’를 지은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으로 관심이 이어졌다. 정약전을 조사하다가 그가 쓴 ‘자산어보’ 서문에 나오는 청년 창대가 어떤 이인지 궁금해졌다.”(지난 19일 온라인 인터뷰)역사 속 인물을 탐구해 영화에 녹인 이 감독이 정약전까지 닿게 된 흐름은 이렇다. 알려진 것보다 이야기가 많은 정약전에,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라는 인물은 이 감독의 상상력을 증폭시켰다. 바다 생물에 해박한 청년 어부 창대에게 정약전은 물고기 백과사전 집필에 도움을 구하지만, 창대는 “사학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거절한다. 신분제에 막혀 답답해하던 창대에게 정약전은 지식의 돌파구이자 인생의 스승으로서 역할을 하며, 서로 지성을 키워 나간다. 이 감독은 “창대를 만들자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머지 주변 인물도 자연스레 구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설경구가 연기하는 ‘자산어보’의 정약전은 “양반도 상놈도 임금도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가진 급진적인 인물이다. 위험한 그의 생각은 창대를 만나면서 그리고 흑산도의 티 없는 주민들을 만나면서 서서히 발산된다. 전형적이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선비의 모습도 자연스레 그려진다. 이 감독도 “조선 선비의 풍모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인물”로 설경구를 꼽았다. 사극 제안을 죄다 거절했던 설경구는 영화 ‘소원’(2013)으로 인연을 맺은 이 감독과 다시 작업하고 싶다는 맘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설경구는 “이 감독이 배우들에게 특별한 연기 지시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앵글 안에서 배우들과 놀자’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소개했다. 창대를 맡은 배우 변요한은 촬영 전 흑산도에 다녀오고, 전라도 사투리를 할 수 있는 지인을 총동원해 사투리를 연습했다. 또 수영장에 다니며 물에 익숙해지고 전문가에게 물고기 손질법을 배웠다. 반면 실제 촬영 현장에서는 영화 속 내용처럼 설경구와 때론 티격태격하고, 그를 스승으로 여기며 연기했다. ‘자산어보’는 흑백영화인데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흑산도의 하늘과 바다, 바위 등 질감이 오히려 생생하고, 배우들의 표정 연기는 한층 깊다. “조선시대를 흑백으로 볼 기회가 많지 않아 흑백영화로 연출했다”는 이 감독은 흑백으로 시인 윤동주를 조명한 ‘동주’(2016)와 비교하며 “두 영화 모두 시대와 불화를 겪는 개인의 이야기이고, 그를 돕는 주된 인물이 등장한다. ‘동주’가 암울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달리 ‘자산어보’는 훨씬 밝은 영화”라고 설명했다. 영화 홍보에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는 정약전의 대사가 쓰였는데, 영화 주제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감독은 “둘은 어긋나지만, (세상을 깨닫는다는) 본질적인 면에서 같은 길을 간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흑백영화지만, 컬러 장면이 3번 나온다. 이 감독은 “창대가 크게 성장하는 장면을 상징한다. 무엇이든 보고 싶은 대로 보지 말고 보이는 대로 보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왜 정약전이고, 설경구며, 흑백일까…‘자산어보’에 대한 3가지 궁금증

    왜 정약전이고, 설경구며, 흑백일까…‘자산어보’에 대한 3가지 궁금증

    상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꼽히는 이준익 감독 영화 ‘자산어보’가 31일 개봉한다. 영화는 흑산도에서 보낸 정약전의 시간을 조명한다. 정약용보다는 덜 알려진 정약전을, 사극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 배우 설경구가 연기한다. 세상 모든 컬러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 시대에 흑백 화면으로 채웠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 질문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왜 정약전인가 1801년 신유박해로 정약용은 전남 강진, 그의 형 정약전은 흑산도에 유배된다. 호기심 많은 정약전은 바다 생물에 매료돼 책을 쓰기로 한다. 영화는 정약전이 바다 생물에 해박한 청년 어부 창대를 만나 물고기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집필하게 된 과정을 그린다. 이 감독은 지난 19일 온라인 인터뷰에서 “조선시대 핍박받은 서학에 대한 영화를 구상하다 ‘목민심서’를 지은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으로 관심이 생겼다. 정약전을 조사하다 그가 쓴 ‘자산어보’ 서문에 나오는 청년 창대가 어떤 이인지 궁금해졌다”고 설명했다. 영화에서 정약전은 창대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창대는 “사학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거절한다. 혼자 글공부를 하며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게 된 정약전은 서로 지식을 거래하자 제안하고, 창대는 못 이긴 척 받아들인다. 창대는 정약전을 돋보이게 하는 상대역으로 설정했다. 서자 출신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는 명민한 청년이지만, 신분제에 막혀 답답해하는 인물이다. 이 감독은 “창대를 만들자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머지 주변 인물도 자연스레 구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감독은 전작 ‘동주’(2015), ‘박열’(2017)에서처럼 이번에도 역사 속 개인의 이야기로 시대를 풀어낸다. 그는 “정약전은 실존 인물이고 기록도 있지만, 창대는 허구의 허용치가 확보된 인물이어서 오히려 수월하게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영화로 만들면 자칫 논란을 부를 수 있다. 그래서 고증에 특히 신경 쓰는데, 그 과정이 정말이지 괴로울 지경”이라고 밝혔다. ●왜 설경구인가 설경구가 연기하는 ‘자산어보’의 정약전은 “양반도 상놈도 임금도 필요 없다”는 생각을 가진 급진적인 인물이다. 위험한 그의 생각은 창대라는 인물을 만나면서, 그리고 흑산도의 티없는 주민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발산된다.정약전을 연기한 배우 설경구는 첫 사극연기를 펼친다. 이전에도 몇 번의 사극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 그러나 영화 ‘소원’(2013)으로 인연을 맺은 이 감독과 다시 작업하고 싶어 이번 영화를 택했다. 이 감독은 기자 시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조선 선비의 풍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설경구라고 생각한다”고 그를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감독은 배우를 풀어놓고, 배우들은 편하게 연기했다. 설경구는 “이 감독이 배우들에게 특별한 연기 지시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앵글 안에서 배우들과 놀자’고 생각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창대를 맡은 배우 변요한은 촬영 전 실제 정약전 유배지인 흑산도에 다녀오고, 전라도 사투리를 할 수 있는 지인을 총동원해 사투리를 연습했다. 또, 수영장에 다니며 물에 익숙해지고 전문가에게 물고기 손질법을 배웠다. 그러나 역시 실제 촬영 현장에서는 영화 속 내용처럼 설경구와 티격태격하고, 때론 스승으로 여기며 연기했다. 가거댁 역의 배우 이정은이 둘 사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밖에 류승룡, 조우진, 정진영, 김의성, 동방우(명계남), 방은진 등 유명한 배우들이 우정 출연한다. 두 주연 배우를 축으로 화련한 출연진이 펼치는 앙상블이 볼 만하다. ●왜 흑백영화인가‘자산어보’는 흑백영화임에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흑산도의 하늘과 바다, 바위 등 질감이 오히려 생생하고, 배우들 표정 연기는 한층 깊이감 있다. 이 감독은 “조선시대를 흑백으로 볼 기회가 많지 않아 흑백영화로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앞서 흑백으로 시인 윤동주를 조명한 ‘동주’와 비교하며 “‘동주’나 ‘자산어보’ 모두 시대와 불화를 겪는 개인의 이야기이고, 그를 돕는 주된 인물이 등장한다. 다만 ‘동주’가 암울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달리, 자산어보는 훨씬 밝은 영화”라고 설명했다. 창대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흑산도에서 공부를 더 해야 했고, 정약전은 스승이 돼 그에게 도움을 준다. 창대가 정약전을 따르며 성장하고, 품에서 떠나고 깨닫는 게 이야기의 주요 뼈대다. 영화 홍보에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는 정약전의 대사가 쓰였다. 영화 주제도 바로 여기에 집중된다. 이 감독은 “둘은 어긋나지만, 결국에는 (세상을 깨닫는다는) 본질적인 면에서 같은 길을 간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흑백 영화지만, 컬러 장면이 딱 3번 나온다. 이 감독은 “창대가 크게 성장하는 장면을 상징한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무엇이든 보고 싶은 대로 보지 말고 보여지는 대로 보라는 주제를 담았다”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서울광장] 그들은 왜 폭도가 됐나 2/김상연 논설위원

    [서울광장] 그들은 왜 폭도가 됐나 2/김상연 논설위원

    지난 1월 22일자 ‘그들은 왜 폭도가 됐나’라는 글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의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와 관련해 언론의 책임을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글에서는 평범한 미국인들이 왜 폭도로 돌변했는지를 보다 근본적으로 진단해 본다.※ 미국은 코로나19 대처에 가장 크게 실패한 나라다. 미국은 전 세계 인구의 5%이면서 코로나19 사망자는 20%에 달한다. 지난해 미 대선(11월 3일) 직전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는 22만명을 넘었는데, 이는 한국전, 베트남전, 걸프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등 최근 5개 전쟁의 미군 사망자를 전부 합친 것보다 많다. 웬만한 나라 같으면 이런 실정을 저지른 대통령은 재선 도전을 포기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트럼프는 넉 달 전 대선에서 대표적 경합주인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에서 승리했다. 최근 미 대선에서 이 두 곳을 모두 이기고 대통령이 되지 못한 후보는 트럼프밖에 없다. 트럼프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면서 “나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사실이다. 다만 도전자인 조 바이든 후보가 그보다 더 많이 득표했을 뿐이다.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얻은 7420여만 표는 바이든(8120여만 표)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것으로, 코로나19라는 돌발 변수만 없었다면 그는 재선에 성공했을 것이다. 뒤집어 보면, 트럼프의 지지층인 백인 중산층과 서민들이 코로나19 실정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셈이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 그들 중 일부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의사당에 쳐들어갔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굳건히 떠받치는 기둥으로 여겨졌던 백인 중산층은 왜 이렇게 비상식적인 판단을 하게 된 것일까. 대니얼 마코비츠 예일대 교수는 ‘능력주의의 덫’(The Meritocracy Trap)이라는 저서에서 백인 중산층이 급속히 소멸되는 현재 미국의 실태를 폭로한다. 신분이 무조건적으로 세습되는 귀족사회가 무너지고 능력에 따른 사회질서가 생겼는데, 고학력과 신기술을 장착한 엘리트층이 그 과실을 독점하면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첨단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중간 직급 관리자의 일이 사라지는 대신 머리 역할을 하는 소수의 경영진, 전문직과 손발 역할을 하는 말단직만 남는 식으로 일자리가 재편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중요한 업무와 부(富)는 소수의 엘리트에게 집중되고 있다. 예컨대 제이피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의 2018년 보수는 2950만 달러로 은행 창구 직원 평균 급여의 1000배가 넘는다. 엘리트층은 막대한 부를 무기로 자녀 교육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능력’을 세습시킨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 부유층과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 격차는 1950년대 흑인과 백인 학생의 교육 격차보다 크다. 사람들은 이처럼 능력이 기반이 되는 능력주의가 신분제 귀족사회에 비해 공정하다고 여기고 숭상하는데, 중산층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측면에서는 귀족사회보다 더 폐해가 크다는 게 마코비츠의 주장이다. 일자리와 부를 잃고 있는 중산층의 좌절은 2011년 뉴욕에서 일어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서 이미 표출된 바 있다. 당시 시위대는 “미국의 상위 1%가 미국 전체 부의 50%를 장악하고 있다”며 부도덕한 금융권은 물론 그것을 방조하는 정부와 의회를 싸잡아 규탄했다. 하지만 그후로도 근본적인 치유는 이뤄지지 않았고 중산층의 불만은 더욱 농축됐다. 경제적 불만은 포퓰리즘과 외국인 혐오증의 숙주가 되기 십상이다. ‘워싱턴 기득권 정치의 아웃사이더’인 트럼프는 이런 불만을 자극해 대통령이 됐고 재선에 성공할 뻔했다. 그리고 이런 구조적 빈부 격차 확대에 따른 중산층의 분노가 해소되지 않는 한 2024년 대선에 재도전하려는 트럼프의 야망은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 트럼프는 이틀 전 퇴임 후 첫 연설에서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마코비츠는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정부가 적극 개입해 중산층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도 개혁과 세금 지원 등을 통해 중간 관리자의 일자리를 보장하고 대학 신입생을 소득별로 골고루 안배함으로써 능력의 세습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능력주의의 폐단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뉴스만 하더라도 미국 증시 상장을 예고한 쿠팡의 임원진 중에 지난해 수백억원의 보수를 받은 경우가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능력주의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미국처럼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carlos@seoul.co.kr
  • [씨줄날줄] 학력 지상주의/김상연 논설위원

    [씨줄날줄] 학력 지상주의/김상연 논설위원

    인류를 ‘스마트폰의 노예’로 만든 스티브 잡스는 고졸이다. 엄밀히 말하면 대학 중퇴 학력인 잡스는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에 초청돼 연설을 한다. 잡스가 발명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검색해 당시 연설을 들어 보면 그 어떤 대졸자의 연설보다 지적이고 철학적이며 감동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어진다. 연설에서 잡스는 입학 6개월 만에 대학을 중퇴한 사연을 밝히면서 “대학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더라. 돌이켜 보면 (중퇴는)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했다. 세상에, 대학 졸업자들 면전에서 ‘대학 무용론’을 펴다니…, 까칠한 잡스답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도 하버드대를 중퇴했다. 한국에서 1990년대 초 혁명적이라 할 만큼 파격적인 음악을 들고 나와 파란을 일으킨 서태지는 중졸이다. 공업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교실 이데아’란 곡에서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생각해봐 대학(이) 본 얼굴은 가린 채 근엄한 척할 시대가 지나버린”이라며 학력 지상주의에 일격을 가한다. 서태지가 미국의 유명 인사에 비해 훨씬 더 노골적으로 대학에 적대감을 드러낸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의 학력 집착이 심각하다는 얘기도 된다. 그런데 이 ‘K학력’은 생명력이 끈질긴 것 같다. 가수 홍진영씨가 얼마 전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으로 물의를 빚은 데 이어 스타강사 설민석씨도 29일 논문 표절 논란으로 방송에서 하차한 것이다. 팬들 입장에선 도대체 왜 잘나가는 가수가 굳이 따로 시간을 내 석사 학위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흥미 있는 학문을 더 공부하고 싶다면 그건 자유다. 하지만 남의 논문을 베끼면서까지 학위를 받고 싶어 하는 건 분명 병적이다. 조선시대 사농공상의 신분제와 과거제도의 DNA가 아직도 한국인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그만 하자. 서태지가 26년 전에 선언한 대로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잡스나 저커버그가 애플이나 페이스북을 운영하면서 야간대학 다녀 학위를 땄다고 자랑한다면 얼마나 없어 보이겠는가. 잡스는 스탠퍼드대 연설을 한 지 6년 뒤 세상을 떠났다. 2003년 이미 췌장암 진단을 받았던 그에게는 인생의 매 순간이 소중했을 것이다. 그런 잡스가 한국에서 남한테 과시하려고 마음에도 없는 공부를 하고 학위에 연연하는 사람들을 봤다면 엄히 꾸짖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은 유한하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으로 빚어진 도그마에 빠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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