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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영구 7단계 나눠 보존/국내외 관리실태

    ◎정부수립 전후 문서 등 2만5,000권 훼손/미선 기록물관리법따라 2억권 안팎 관리 우리나라의 각종 문서 관리는 허점 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해 대통령선거 직후 안기부 등의 기관에서 각종 문서를 파기한다는 설이 제기된 것이 그 반증이다. 국민의 정부가 ‘새정부 100대 정책과제’의 하나로 국가 기록물 보존법의 제정을 선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각종 국가 기록물은 대통령령인 사무관리 규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각급 행정기관에서 기록물을 제각기 보관하고 있으며 영구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은 13년이 지나면 정부기록 보존소로 넘어간다. 정부 기록물을 원형 그대로 관리하는 곳은 정부 기록물 보존소 부산지소이다.이 곳에는 조선왕조 실록 848책 등 약 50만권의 문서와 서적이 있다.서울 종로구 정부기록물 보존소는 마이크로 필름 형태로 보관한다. 84년 부산지소가 개설되기 전에는 일반 문서창고에 50만권이 보관됐었다.이 때 정부수립 전후의 문서 등 약 2만5,000권 정도가 변색 또는 훼손됐다. 현행 기록물 분류체계는 1년에서 영구보존까지 모두 7단계로 나뉜다.그러나 행정편의 위주로 마련된 것이라 엉성하기 짝이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평이다.역사적 가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예컨대 판결문은 영구보존 문서이지만 신문조서 등 증거서류는 공소시효 만료시 폐기하는 일시 보관문서이다. 또 대통령기록 등 기록물 생산기관의 특수성도 감안되지 않고 있다. 외국은 기록물 보존 때 먼저 역사적 가치를 따진다.체계적으로 기록 문화를 가꿔나간다. 국가기관의 것은 물론 민간기록물까지 보관한다.장관급 또는 차관급이 장인 국립기록청에서 기록보존 정책을 세운다. 미국의 경우,기록물관리법과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2억권 안팎의 문서 등을 관리하고 있다. 특히 국가기밀 등 비공개 기록물도 ‘공개연한 30년 원칙’에 따라 공개해 국정 운영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비밀문서의 경우 비공개 사유가 사라지면 공개한다는 원칙은 서있다.그러나 해당 기관에서 정부기록 보존소로 넘길 때 대부분 비공개가필요하다고 결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문서공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 李信行 의원 혐의 부인/어제 검찰조사후 귀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李明載 검사장)는 12일 기아사태와 관련,기산 사장 재직때 13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 李信行 의원(서울 구로을)을 소환,조사한 뒤 귀가시켰다. 검찰은 李의원을 상대로 95년 경기도 김포군 장기리 아파트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부동산개발업체인 서우리버블로부터 2억5000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았는지를 추궁했으나 혐의를 부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오는 16일 李의원을 재소환,조사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李의원이 혐의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으며 신문조서에 날인조차 거부했다”면서 “수차례 출퇴근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임시 국회가 끝나는 오는 24일쯤 李의원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 및 횡령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 金洪信 의원 소환 조사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는 8일 金大中 대통령 비방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한나라당 金洪信 의원을 소환,귀가조치했다. 검찰은 金의원에게 비방 발언을 한 본뜻과 경위 등을 물었다. 검찰은 “金의원이 법률적 자문을 제대로 받지 않고 나왔다며 피의자 신문조서만 받기를 원해 우선 1차 조서를 작성했다”면서 “빠른 시일안에 金의원을 소환,재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金의원은 이날 하오 2시15분쯤 한나라당 李富榮·李祐在·睦堯相·諸廷坵 의원,洪文澤 신부 등 5명과 함께 검찰에 출두한 뒤 “출두하기로 약속해 나왔으나 조사는 다음에 받겠다”며 조사받기를 거부해 한때 검찰측과 실랑이를 벌였다.
  • 영장 발부­연기 수차례 ‘곡절’/權寧海씨 구속되던 날

    ◎在美교포 “北과 내통 응징” 승용차에 달걀 세례/구인장 집행 거부하자 법원,변호인 대리신문 2일 밤 權寧海 전 안기부장에 대한 구속절차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법원의 구인장 발부,權씨의 영장실질심사 거부,법원의 영장 발부,權씨의 건강악화를 내세운 변호인단의 영장집행 연기 요청,서울구치소 수감 등으로 우여곡절을 거듭했다. ○…權씨는 이날 자정 쯤 그동안 치료를 받았던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구치소로 향했다.權씨는 서울지검 남부지청 수사관 3∼4명에게 이끌려 베이지색 코트 차림으로 6010 특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뒤검찰 차량에 올랐다. 權씨는 심경이 어떠냐는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승용차가 구치소로 출발하려는 순간 미국 LA에서 신문을 발행한다는 50대 裵모씨는 차량을 향해 달걀 3개를 던져 2개를 뒷 유리창에 맞췄다.裵씨는 “북한과 내통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검찰 수사관들은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인 하오 9시30분쯤 서울 강남성모병원權씨의 병실에 도착했으나 權씨의 변호인단이 “權씨가 식사를 전혀 못해 하오 5시부터 포도당 주사를 맞고 있다”면서 “혈당치가 떨어져 수액을 모두 맞기 전까지는 이동이 불가능하다”며 집행연기를 요청,영장을 집행하지 못했다. ○…이날 상오 10시50분쯤 黃丙敦 남부지청 검사 등 2명이 權씨의 병실을 찾아와 權씨를 퇴원시켜 서울지검 남부지청으로 데려가 피의자 신문조서에 서명토록 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서울구치소로 이감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權씨는 완강히 거부했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영장전담판사인 金益鉉 판사법원는 이날 하오 4시20분쯤 영장 실질심사를 하겠다며 權씨에 대한 구인장을 발부했다. 權씨는 그러나 구인장 집행에 불응하며 완강히 버텼고 金판사는 하오 7시30분쯤 변호인인 鄭永一 변호사와 金오수검사를 ‘대리출석’시켜 신문한 뒤 하오 8시20분쯤 영장을 발부했다. ○…權씨에 대한 영장집행을 앞두고 검찰과 변호인들은 權씨의 차림새 등을 놓고 한때 실랑이. 검찰은 양복차림에 부축을 받은 채 병실을 나와 영장집행에 응해주기를 요청한 반면 변호인단은 權씨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혈당치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를 들어 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주장. ○…權씨의 변호인단은 이날 하오 기자들에게 “權씨는 부하직원들이 모두 구속된 마당에 구속을 각오하고 있다”면서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장집행을 강행하려는 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표시.
  • 여종업원에 사진 보이며 술접대 확인/판사비리 수사 뒷얘기

    ◎법원 “검찰 상급기관처럼 행세” 볼멘소리/관련 판사 비난여론 의식 선뜻 사표 못내 검찰은 24일 판사비리 수사와 관련,‘공은 법원에 넘어갔다’며 홀가분해 했으나 비위사실을 통보받은 법원측은 여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등 침통한 분위기였다. ○…법원측은 “그동안 별다른 죄의식없이 변호사들로부터 돈을 받아온 관행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등 대체로 자숙하는 표정.하지만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검찰이 징계통보나 사법처리 가운데 택일하지 않고 ‘징계하지 않으면 사법처리 하겠다’는 식으로 처리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검찰이 법원의 상급기관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비난성 발언. ○…비리판사 15명 가운데 시민단체가 고발한 陳모 판사 등 6명은 검찰에 출두해 일반 형사 피의자처럼 ‘신문조서’를 받은 뒤 조서말미에 ‘지장’을 찍는 수모를 겪은 것으로 확인.검찰 관계자는 “아무리 판사신분이라도 고발된 이상 통상적인 처리절차를 밟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나머지 9명에 대해서는 우편으로보낸 진술서에 도장을 찍는 것으로 대체했다”고 설명. ○…검찰은 술접대를 받은 판사를 가려내기 위해 컬러사진과 함께 전·현직 법조인의 신상명세가 수록된 대형 법조인 인명록을 이용.서울 V호텔 룸살롱 등 술집 여종업원들을 불러 비리의혹을 받고 있는 판사들의 사진을 일일이 제시하면서 지목하도록 했다는 것. ○…비리판사들은 현재 선뜻 사표를 내지도,법관직을 계속 고수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져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전언.사표를 내도 변협이 비난여론을 의식,변호사 등록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 때문.또판사직을 계속 수행하려해도 ‘뇌물판사’라는 오명이 따라다닐 게 뻔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라고.
  • 북풍수사 새 국면­자해이후 수사 전망

    ◎권씨 추가조사 지연… 조기매듭 차질/박일용 전 차장 등 사법처리 가속화될듯/거론 정치인은 해명듣고 끝낼 가능성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자해로 검찰의 북풍수사가 새 국면에 돌입했다. 검찰은 당초 늦어도 22일까지 권씨를 사법처리한 뒤 오익제씨 편지사건과 북한 커넥션 문서 조작 등에 대한 진상 조사에 나서 가급적 빨리 마무리 한다는 방침이었다.산적한 경제위기 등 국정 현안에 비추어 북풍수사에만 매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권씨가 10일 뒤에나 퇴원이 가능하다는 병원측의 설명을 듣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구속할 만큼 혐의는 입증했지만 아직 피의자 신문조서에 권씨 본인의 서명을 받지 못한데다 권씨의 부상 정도가 심해 신병을 교도소에 넘기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검찰의 고위관계자도 “완쾌는 아니더라도 거동이 가능해야하는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권씨에 대한 사법처리를 마냥 늦추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권씨의 신병 상태와 관계없이 법률적으로는 사법처리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행형법 29조는 구송 집행된 자를 구치소 내에서 적절하게 치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구치소 밖의 병원에 이송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에는 구속 영장을 발부받되,실제 구속집행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불구속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검찰로서는 영장을 발부받음으로써 불법 행위에 대한 엄단의지를 과시하고 조속한 수사종결 의지도 천명할 수 있어 적절한 방안인 셈이다. 박일룡 전 1차장 등 전 고위간부에 대한 수사 및 사법처리 시기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권씨에 대한 추가 수사에 차질이 생긴 만큼 오익제씨 편지사건에서 권씨 못지 않게 중요한 역활을 한 것으로 알려진 박 전 차장 등을 상대로 추궁을 해야하기 때문이다.김원치 남부지청장이 22일 개인 의견이라고 토를 달면서도 “권씨 부하직원들에 대한 관대한 처분방침을 바꾸겠다”고 밝힌 것도 그같은 검찰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풍공작에 이름이 거론된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정치적 파국 등을 고려해 안기부가 해당자들로부터 해명을 듣는 선에서 조사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 국립공원직원에 사법권/내년부터/자연훼손 등 불법행위 현장 조치

    ◎청소년보호·관광지도 공무원 포함 환경보존을 위해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에게 사법경찰권이 주어진다. 법무부는 20일 민간인 신분인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에게 공원 내 자연훼손 등 각종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 및신문권 등 사법경찰권을 주는 것 등을 뼈대로 한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확정,정기국회를 거쳐 내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개정안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공원 내 쓰레기 투기,방뇨 등 경범죄 처벌법에 규정된 불법행위와 무허가 시설설치,산림훼손,오·폐수 방류,불법 주차장이나 야영장을 만들어 이용료를 징수하는 행위 등 자연공원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직접 단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했다. 이에 따라 공단직원은 현장에서 적발된 범법자를 체포하거나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한 뒤 경찰로 넘기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67년부터 온 지리산 설악산 등 전국 20개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관리해왔으나 환경훼손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그동안 범법행위를 적발하더라도 수사 당국에 고발만 할 수 있을 뿐이어서 효율적인 단속을 펴지 못했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선장과 기장도 사법경찰권이 있긴 하지만 다수의 민간인에게 사법경찰권을 주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국립공원의 환경보존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개정안은 또 문화체육부 소속의 청소년 보호 공무원과 관광지도 공무원,노동부의 근로감독관 보조 공무원 등에게도 사법경찰권을 부여해 청소년 보호법 등 관련법 위반 사범을 집중 단속토록 했다. 통상산업부·재경원·관세청의 세관 업무 담당 공무원에게는 밀수사범 뿐만 아니라 수출입거래에 관련된 외환관리법 위반사범에 대해서도 수사권을 주는 등 직무범위를 확대했다.
  • 현철씨 활동비 월1억 사용/청와대비서관이 기업돈받아 전달

    김현철씨는 청와대 총무수석실 강상일 인사재무비서관을 통해 경복고 동문인 곽인환 대동주택 사장으로부터 현금과 수표로 10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피의자 신문조서 등 수사기록에 따르면 현철씨는 『95년 6월 강비서관이 곽사장을 사무실로 데리고 와서 1천만원권 수표 50장을 받았고 3∼4일 뒤 강비서관이 혼자 찾아와 곽사장이 준 현찰 5억원을 상자 2개에 담아 내 승용차 트렁크에 실어 놓았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현철씨는 또 『강비서관이 청와대의 내부 인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사무실에 가끔 들렀다』고 말했다. 현철씨는 92년 9월 고교선배인 이문석 당시 총무처장관의 소개로 고교동문인 해태그룹 박건배 회장과 두양그룹 김덕영 회장 등을 만났으며 이들이 건네준 돈 등으로 매월 1억원 가량을 활동비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 “밤샘조사 통한 자백 법적 증거능력 없다”/대법원 판결

    수사기관이 밤샘조사를 통해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냈다면 증거로 삼을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형선 대법관)는 6일 전 조흥은행 부산 연산동 지점장 문학서 피고인(60)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수재 혐의 사건에 대한 상고심에서 “잠을 재우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능력이 없으므로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은 원심판단은 잘못”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자백에 상관없이 검찰이 제시한 회계장부와 서류 등 나머지 증거에 비추어 유죄를 인정,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사검사 2명이 피고인을 30여시간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번갈아 신문한 끝에 자백을 받아낸 의심이 든다”면서 “이는 ‘피의자가 임의로 진술하지 않은 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한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 대부분 시위 적극가담 부인/연행학생 조사 이모저모

    ◎“호기심에…” “친구 따라갔다” 등 발뺌/빨치산 용어 가득 「위문편지」 “섬뜩” 검찰과 경찰은 21일 한총련 시위와 관련,연행된 3천여명의 학생을 상대로 이틀째 조사하고 있으나 대부분 적극가담사실을 부인하는 데다 증거가 없어 애를 먹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48시간 안에 사법처리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시위가담정도 및 집회참가경위 등에 따라 연행자를 분류하는 데 일단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 그러나 경찰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뿌린 형광최루액도 학생들이 옷을 갈아입어 증거로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다 사진자료 역시 수사에 별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 ○…1백9명의 학생을 조사하고 있는 영등포경찰서는 신속한 조사를 위해 관내 15개 파출소의 경찰관을 차출,경찰관 한 사람에게 평균 1·5명씩 배당했지만 21일 낮까지 절반인 50여명에 대한 1차조사만 끝냈다.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선배가 놀러가자고 해서 따라갔을 뿐』 또는 『연세대 부근을 지나다가 호기심에 이끌려 행사에 참석했다가 떼밀려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등 적극가담사실을 부인해 수사관을 골탕먹이기 일쑤라고 설명. 서울 송파경찰서는 잠실1파출소 직원 피습사건을 수사중인 강력반의 일부 형사까지 조사에 투입. ○…각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학생들은 오랫동안 몸을 씻지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해 이들이 수용되어있는 식당·강당에는 악취가 진동. 또 연행학생의 가족은 각 경찰서를 돌아다니며 안부를 확인하느라 진땀.경찰은 민원실의 「사람·차량행방문의센터」(국번 없이 서울 182번)에서 컴퓨터에 입력된 학생들의 소재를 전해주고 있으나 전화폭주로 다른 업무를 못보고 있는 실정. ○…검찰의 고위관계자는 일본의 극렬학생운동이 지난 60년대 「동경대학 점거농성」을 끝으로 사실상 막을 내린 예를 들며 『우리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내부적으로 강력대응방침이 섰음을 시사. 서울지검 김원치1차장검사는 이와 관련,『수사본부장으로서 입건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엄정대처하겠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고 단언.김차장검사는 『관용을 자꾸 강조하다보면 관용 그 자체가 없어진다』며 『관용에도 한계가 있으며 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강경입장을 피력. ○…검찰은 이날 단순가담자 등 8백66명을 귀가조치한 것과 관련,『훈방조치로 풀어준 것은 아니며 혐의사실이 인정되지만 사안이 경미해서 석방한 것』이라고 설명. 검찰은 이들로부터 모두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았으며 향후 채증작업을 통해 범법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다시 불러 엄중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부연.
  • “폭력시위 근절” 초강경/사실상 전원 형사입건/연행자 처리방침

    ◎연대 시설피해 손배 가능성도 한총련의 불법 시위 및 연세대 점거농성 사건의 연행자에 대한 사법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검찰은 21일 연세대에서 연행한 대학생 3천4백20명을 시위 가담정도에 따라 죄질을 분류하는 작업을 마쳤다.이틀간에 걸친 조사결과 3백50여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다. 시위가담 정도가 가벼운 8백66명은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고 일단 귀가시켰다.나머지 2천2백74명은 불구속 기소하거나 기소유예 처분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검찰이 연행자 전원을 사실상 형사 입건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연세대가 피해추정액 50억원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입건된 모든 학생들에게 이를 배상토록 할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이처럼 관용보다는 엄벌 방침으로 돌아선 것은 무엇보다 법집행 의지의 단호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민주주의의 기둥인 법치질서를 확립하고 불법·폭력시위를 이 기회에 뿌리뽑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의 초강경 분위기도 주요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구속 영장청구 대상자는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충청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의장 설증호군(25·단국대 농경제 4년)을 비롯,한총련 간부 43명과 「사수대」 등 시위주동자,화염병을 던지거나 쇠파이프를 휘두른 극렬시위자 등이다.검찰은 현장사진이나 다른 학생들의 진술을 토대로,집시법·주거침입·재물손괴 등의 혐의를 적용하기로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를 추가로 적용할 학생이 있는지를 조사 중이다. 검찰은 불구속 대상으로 분류한 학생 가운데 상당수에 대해 수사를 보강,추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학생 외에 지난 12일부터 19일까지 대학생 2천여명이 연행돼 93명이 구속됐다. 따라서 「한총련」불법시위 사태로 구속되거나 영장이 청구될 학생은 4백50명선이다. 특히 경찰이 검거령을 내린 한총련 의장 정명기군 등 한총련 핵심간부 83명을 추가하면 구속 대상자는 5백3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 이완용 암살 미수/이재명 의사 수사기록 “햇빛”

    ◎검찰,일제강점기 자료 2백77권 공개/“국적 없애려 거사” 의연한 진술/모의과정 등 상황 생생히 전달 『대한민국을 망하게 한 송병순,이완용 등 국적을 죽이지 않으면 이 나라가 발전부강할 수 없어 거사했다』 을사5적 이완용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던 이재명 의사가 1910년 당시 경시청에서 조사한 신문조서에서 밝힌 의거 동기다. 대검 공안부(최병국 검사장)는 14일 광복 51돌을 앞두고 이완용모살사건 수사기록 등을 포함,일제 강점하에 있었던 1909년부터 43년까지의 검찰자료 2백77권을 공개했다.이들 자료는 현재의 서울지검에 해당하는 경성지방재판소 검사국이 소장하고 있던 것을 해방후 넘겨받은 것이다. 이 가운데 경성지방재판소 검사국 명의의 「총리대신 이완용모살사건 수사기록」에는 이재명 의사의 거사 동기와 모의과정 등을 담은 신문조서와 증거물,참고인조서,구류장까지 들어있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1909년 12월20일 경성 명치정 프랑스 교회 앞에서 벨기에황제 추도회에 참석하고 돌아가는이완용 총리대신을 살해하기 위해 이재명이 칼로 좌견갑부와 요부 등 2곳을 찔렀으나 차부 박원문이 저지,미수에 그쳤다.이 때문에 박원문은 칼에 찔려 숨지고 이재명이 다시 대신에게 달려들다 호위순사에게 체포됐으며…」라고 적고 있다. 이 의사는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황사용과 만나 『미국이 이렇게 발달하고 부강한 것은 국가를 위해 생명을 버리는 일을 개의치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송병순이라든가 이완용과 같은 국적을 어떻게하더라도 죽이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결의했다. 대검은 앞으로 형사 판결문 원본철과 이완용 모살미수사건 수사기록 등 역사적 보존가치가 높은 자료 등은 마이크로 필름화해 보관하고 국사편찬위원회 등 역사연구기관에도 참고자료로 전달할 예정이다.
  • 「12·12」 「5·18」 17차공판­지상중계·이모저모

    ◎정 총장 연행 관련 대통령과 통화 못해­윤성민/신 총리엔 보고… “슬기롭게 수습하라” 지시받아­윤성민/유혈사태 우려… 장태완씨 병력출동 요청 거절­이건영/정승화·장태완씨 “전씨 불법행위 낱낱이 밝히겠다” 12·12 및 5·18사건 17차공판이 27일 상오10시 서울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열려 당시 윤성민 육군참모차장,노재현 국방부장관,장태완 수경사령관,이건영 3군사령관,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등 12·12 관련증인 5명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측의 신문이 진행됐다. ▷윤성민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월12일 하오 8시30분쯤 육본 B­2벙커에서 참모들의 보고를 통해 합수부 소속 허삼수,우경윤대령 등이 정승화 총장을 10·26사건과 관련하여 강제로 연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나요. ▲윤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 검사=전두환 합수본부장으로부터 위와 같은 연행에 대하여 사전이든 사후이든 보고를 받은 적 있습니까. ▲윤증인=없습니다. ▲김부장 검사=증인은 이 사실을 알고 최규하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시도했나요. ▲윤증인=수차례시도했지만 대통령과는 통화를 못했고 최광수비서실장이 연결됐는데 최실장이 대통령과 통화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전화를 끊어 신현확 총리에게 정총장 연행사실을 보고하니 신총리가 알고 있다며 슬기롭게 수습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양우 변호사=증인은 검찰측 신문과정에서 합수본부장으로부터 정총장 연행에 대해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는데 모월간지의 「12·12 현장 육성녹음테이프」에는 증인이 이건영 3군사령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전사령관으로부터 정총장을 안전하게 모시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얘기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 것이 사실 입니까. ▲윤증인=녹음테이프가 맞습니다. ▲이변호사=10·26사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합수부가 이 사건과 관련된 정총장을 연행했으니 적법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윤증인=계엄중에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려면 국방부장관과 대통령의 재가가 있어야하는데 대통령의 재가가 없었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변호사=최광수 비서실장과 신현확 총리는 12·12 이후 증인과 통화한사실이 없다는데요. ▲윤증인=확실히 통화했습니다. ▲이변호사=30경비단에 있던 황영시 장군과 전화통화에서 정총장 연행에 대해 대통령재가를 받는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나요. ▲윤증인=못들었습니다. ▲정주교 변호사=정총장 연행사실을 알고 신현확 국무총리에게 전화를 했을 때 신총리가 증인에게 말한 내용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윤증인=최대한 피해없이 지혜롭게 사태를 수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변호사=당시 통화중에 전보안사령관으로부터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보고를 드리고 재가를 받으려 한다는 해명이 없었습니까. ▲윤증인=전혀 없었습니다. ▲정변호사=증인이 12일 하오8시50분쯤 이건영 3군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정총장이 잘 보호돼있으니 진도개 비상발령을 취소하라』고 말했다는데 사실인가요. ▲윤증인=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잠깐 주춤하다가 결국 발령을 내렸습니다. ▲정변호사=진도개 비상발령을 내린 이유는 계엄사령관이 연행됐기 때문입니까,아니면 북한의 남침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까. ▲윤증인=정총장 연행으로 북한의 남침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변호사=당시 증인은 박준병·백운택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구체적인 체포이유는 뭡니까. ▲윤증인=반란에 가담했다는 첩보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정변호사=12·12당일 변규수 육본 보안부대장을 체포한 이유는 뭡니까. ▲윤증인=당시 변규수가 사건의 진행 상황을 신군부측에 보고하고 있다는 것이 첩보로 접수되고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체포를 건의해옴에 따라 육본 지휘부를 수경사로 이동하는 도중에 체포해 영창으로 입창시켰습니다. ▲이양우 변호사=『10·26사건에 관해 조사할 것이 있어 정총장을 연행 했다』는 전두환 사령관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이건영 3군사령관 말고 장태완 수경사령관등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했습니까. ▲윤증인=참모들에게 전달했고 장사령관에게는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김재판장=전피고인으로부터 전화로 정총장 연행사실을 들었다고 했는데 혹시 전전피고인의 지시로 합수부측 다른 사람이 전화한 것을 전피고인이 직접 전화한 것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윤증인=테이프에 기록된 내용처럼 전사령관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이건영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월13일 상오1시50분쯤 장태완수경사령관이 증인에게 전화를 걸어 수기사와 26사단의 병력출동을 건의했지만 이를 거절한 것은 국방부장관의 지시와 병력이 출동되면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증인의 판단 때문이었습니까. ▲이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12월13일 상오6시쯤 김용휴 국방차관이 증인에게 전화를 해서 노장관이 국방부로 들어 오라고 한다고 해서 8시쯤 들어갔다가 미리 기다리고 있던 합수부측 수사관에 의해 연행됐습니까. ▲이증인=장관이 『제들이 물어볼께 있다고 하니 가서 답변좀 해주라』고 해서 장관실에서 나와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끌려갔습니다. ▲전상석 변호사=12·12 이후 국방부장관이 한·미연합사에서 육본으로,육본에서 국방부로,다시 국방부에서 육본으로 위치를 자주 옮겼는데 그때마다 국방부장관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나요. ▲이증인=장관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김재판장=12·12 당시 합수부측에서 정총장 연행등 12·12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이증인=없습니다. ▷공판 스케치◁ 12·12사건에 대한 첫 증인신문이 열린 27일 증인으로 나온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장태완수경사령관,윤성민육참차장 등 육본측 장성들은 사건발생 17년여만에 무대를 법정으로 옮겨 신군부측 피고인들과 「총성 없는」 싸움을 했다. ○…윤육참차장은 검찰신문에서 『5공 때 국방부장관까지 지냈는데도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돼 인간적으로 몹시 괴롭지만 역사앞에 진실을 밝힌다는 심정』이라고 소회를 피력. 이어 『정승화 총장 연행은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재가를 얻지 못했으므로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한 뒤 『언젠가는 역사적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79년 12월23일 법무부 군사감실에서 80분짜리 녹음테이프를 만들어뒀다』고 설명. ○…이양우·전상석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증인들과 막역한 사이라서 신문하는 것이 괴롭다』,『증인들이 초급장교이던 50년대초에 법무관으로 군에 있었다』는 등의 유화적인 표현으로 신문을 시작. 그러나 정작 신문에 들어가서는 5공 때 국방부장관 등의 요직을 거친 증인들의 전력을 거론하며 『기회주의자』,『정치여건에 따라 변신했다』는 등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맹렬히 공박. 재판부는 『우격다짐식으로 증인에게 모욕감을 주는 신문은 자제해달라』고 제동. ○…정승화·장태완씨는 공판이 열리기전 기자실에 들러 『정치군인의 불법행위를 낱낱이 증언하겠다』는 「출정의 변」으로 기세를 올리기도. 정씨는 『당시 육참총장으로서 12·12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도의적인 책임은 느끼나 10·26사건을 빌미로 신군부측이 나를 제거하려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장씨도 당시 수경사령관의 임무 등을 설명하며 『변호인단이 군교범·예규 등 군사적인 지식도 없이 맹목적으로 피고인들을 변호하고 있다』고 비난. ○…재판 시작 전인 상오 9시쯤 법원 1층 로비에서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이 신군부측 멤버였던 김진영 당시 수경사 33경비단장에게 『이놈아,옛 상관에게인사도 안하느냐』고 호통. 장씨는 오랜만에 만난 김씨에게 먼저 눈웃음으로 인사했으나 김씨가 그냥 지나치자 소리를 지른 것. ○…재판진행을 둘러싼 변호인단의 끊임없는 불만토로가 급기야 재판부와 변호인단 간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 전상석변호사가 형사소송법 규정을 들어 『지난 공판때 피고인의 신문조서 등을 증거로 채택한 재판부의 결정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꼬집자 김영일재판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 안된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 김재판장은 변호인단과 몇번 더 설전을 벌이다 『재판장이 열을 낸 것은 피고인의 이해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뒤 서둘러 폐정을 선언. 한편 전변호사는 공판 직후 『편파적인 재판진행을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어 내일은 (전두환 피고인이 수감된) 안양교도소로 가서 변론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것』이라고 맞불을 놓았으나 진의 여부는 불분명. ○…변호인단은 검찰이 권정달 전 보안사 정보처장과 일부 피고인들을 서울시내 호텔 등 은밀한 장소에서 대질신문해진술조서의 신빙성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 변호인은 『5·18특별법이 제정된 후 검찰이 권씨를 비롯한 서너명을 하얏트 호텔 등지로 불러 대질신문,조서를 작성했다』며 『이를 증거로 채택한 재판부의 처사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
  •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오늘 소환 구속/검찰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9일 5·18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의원(무소속)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의원,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의원(이상 신한국당)등 현역의원 3명을 30일 상오 소환,구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상희부장검사는 이와 관련,『이들이 출두하는대로 간단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은 뒤 별다른 상황이 없는 한 이날 중으로 내란목적살인과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5·18 재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이들의 혐의 사실을 토대로 이미 구속영장 작성을 마쳤다. 검찰은 그러나 당시 20사단장인 박준병의원(자민련)은 5·18사건보다 12·12사건에 깊이 연루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5·18특별법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사법처리를 미뤘다.
  • 「노씨 사건」 피고 14명 검찰 논고

    ▷머리말◁ ○이 사건은 전직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재임중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전형적인 권력형 부정축재사건입니다.정직과 진실을 수범으로 실천해 보이겠노라고 공언하며 대통령직에 취임한후 앞에서는 내내 공직자 비리를 뿌리뽑을 것을 지시하면서 뒤로는 천문학적이라고 할 수천억에 이르는 뇌물을 은밀하게 받아온 사람이 바로 우리가 뽑았던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때 우리 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배신감이 가히 어느정도인지는 이 자리에서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 사건으로 국가가 행사하는 모든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직이 지닌 존엄성과 도덕성마저 치명적으로 훼손함으로써 국가원수인 대통령이라는 직위와 정부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고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검찰은 그동안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척결되지 않고 있는 우리사회의 총체적 비리와 부실의 뿌리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고,정치는 물론 사회각 분야까지도 오염시켜 도덕적 타락을 이토록 심화시킨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이 사건 수사에 임하였습니다. ○나아가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 직위를 이용하여 범법행위를 하였을 경우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한 처벌이 따른다는 전례를 세움으로써 법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법치주의의 이념을 현실로 나타내 보여야 한다는 각오로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 임하였습니다. ▷사건의 성격◁ ○이 사건은 노태우 피고인이 대통령 재임기간동안 대기업 회장들로부터 정부발주 대형건설공사를 비롯한 각종 특혜성 사업 등과 관련하여 금품을 받고,그 과정에서 주변 인사들이 도와준 것으로 드러난 전형적인 뇌물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정부의 각종 정책을 수립,추진함과 아울러 행정 각부나 자치단체의 장 등을 지휘·감독할 수 있어 대규모 국책사업의 추진,금융 및 세제의 운용 과정에서 기업활동에 직무상 또는 사실상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다툼의 여지가없다고 할 것입니다. ○이와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과 그러한 영향력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기업주가 비공식적으로 은밀하게 만난 것이 바로 이 사건 범행의 장소가 된 개별면담자리였습니다.그 자리는 형식적으로는 기업현황,정책건의 등에 관한 의견을 직접 청취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표방되었지만 실제로는 특정사업의 수주나,신규사업관련 인·허가등의 특혜를 바라거나 포괄적으로 기업운영 전반을 선처해 달라는 취지로 금품을 주고받는 계기가 되어 왔던 것입니다. ○더구나 노태우 피고인이 그와같이 수수한 금품을 시중은행의 가명계좌에 분산예치해 두거나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CD)를 대량으로 매입하는 등으로 관리해 왔을 뿐 아니라,그 자금의 상당부분을 부동산 매입 등 개인용도로 사용하는 한편 2천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퇴임후에까지 남겨놓은 사실에 비추어 볼때 이는 단순한 뇌물사건이 아니라 역사상 유례없는 대통령의 부정축재사건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사건의 금품제공자나 그밖의 관련자들 또한 각자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대통령의 부정축재를 조장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관계·증거◁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들의 법정진술,피고인들에 대한 각 피의자 신문조서,참고인들의 진술조서 등을 비롯한 이사건 심리과정에 현출된 제반증거를 종합하면 그 증명이 충분하다 할 것입니다. ○다만,수수 또는 교부한 돈의 성격에 관하여 노태우 피고인은 국정의 최고책임자이자 집권당 총재로서 정당의 운영,각종 선거에서 안정의석의 확보,국가조직 운영의 활성화와 사회의 어두운 곳을 보살피는데 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수수한 통치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뇌물공여 피고인들 중 일부는 이 법정에서 자신들이 노태우 피고인에게 건네준 돈이 뇌물이라기 보다는 인사치레 또는 국사에 보태쓰라는 뜻의 성금으로 제공한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으므로,수수 또는 교부한 금품의 성격에 관한 의견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통치자금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통용되지도 않고 그러한 자금을 조성하여 사용하는데 대한 법적근거도 전혀 없습니다.따라서 이 사건에서 주고 받은 돈의 성격은 금품수수의 기회가 된 개별면담이 이루어진 장소와 면담의 형식,당시 주고 받은 대화의 진의,주고 받은 금액의 규모,수수자측의 자금관리 은닉 형태,공여자측의 자금조성 과정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사건의 경우 특정사업의 수주 등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권한 또는 영향력 행사에 대한 대가라는 취지가 명시적으로 밝혀졌거나 포괄적으로 기업경영과 관련하여 선처해 달라는 뜻이 묵시적으로 서로 통하면서 금품을 주고 받은 사실이 인정되므로 그 금품을 뇌물이라고 보는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금품을 내놓으면서 겉으로 정치자금으로 쓰십시오,국사에 보태쓰십시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하여 뇌물이 정치자금이 되거나 성금이 될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합니다. ○더구나 그와같이 수수한 자금의 상당부분이 부동산 매입,기업체에의 변칙대여 등 개인용도에 사용된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인들의 통치자금 수수 내지 성금제공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변명에 불고하다고 볼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대법원판례 역시 「법령상의 직무뿐만 아니라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경우,그 직무와 관련하여 사실상 처리하고 있는 행위에 관하여 주고 받은 금품」을 모두 뇌물로 인정하는 것에 비추어 보아도 이 사건에서 주고 받은 돈을 뇌물로 보는데 아무런 소장이 없다고 봅니다. ▷정상론◁ 가,피고인 이건희,같은 김우중,같은 최원석,같은 장진호,같은 이준용,같은 김준기,같은 이건,같은 정태수에 대하여 보면 ○그동안 피고인들이 국내외의 기업활동을 통하여 어느정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최종적 책임이 노태우 피고인에게만 있다고 볼수 없습니다.노태우 피고인의 부정축재가 가능하도록 한 일방 당사자로서 자기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서민들로서는 평생을 가도 만져보지 못하는 수십억,수백억원의 뇌물을 제공하여 정경유착의 원인을 만든 피고인들을 비롯한 뇌물공여 기업인들의 책임 또한 그에 못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피고인들은 일종의 관행에따른 성금제공이라거나 권력의 압력에 못이겨 살아남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갖다주었다고 변명하고 있습니다만,이권을 얻고 특혜를 따내기 위하여 오히려 기업측에서 스스로 나서서 권력을 부패시킴으로써 정경유착의 원인을 제공하고,이를 더욱 고착화시켰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기술축적과 경영합리화로 무한경쟁시대 개방화시대에 대처하려는 노력보다는 손쉬운 정경유착의 비정상적 수단에 안주하려는 타성은 이제 더이상 용납될 수 없습니다. ○『기업하는 사람이 돈이 남아돌아 그렇게 많은 돈을 대통령에게 갖다 줄리가 있겠습니까,대통령과 독대했다는 소문만 나도 관련 부처에서는 알아서 모시기 때문입니다』라는 어느 피고인의 고백이 바로 이 사건의 진실 그 자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대통령이라 하여 예외가 될수 없듯이 소위 재벌이라하여 예외가 될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지금까지의 관행이 「뇌물을 주는 관행」이었다면 이번기회에 이를 단호히 척결하여야 할 것입니다.공정경쟁의 원칙을 깨뜨리고 경제정의의 실현을 방해하는 그와같은 관행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그런 관행을 조장한 피고인들을 엄중하게 처벌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피고인 이현우에 대하여 보면 ○피고인은 노태우 피고인과 기업인과의 면담을 주선하고 안내하는 등 노태우 피고인의 뇌물수수행위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한편 그 과정에서 자신도 6억여원의 뇌물을 받는 등의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피고인은 대통령과 그 가족 등을 보호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진 경호실장으로서 국민이 부여한 본래의 직분을 벗어나 노태우 피고인으로부터 전달받은 돈을 시중은행의 수십개 가명계좌에 입금하고,양도성예금증서를 사고 팔면서 치밀한 돈세탁까지 하는 등 노태우 피고인의 부정축재가 가능하도록 가장 측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입니다. ○그야말로 경호실장이라는 직위가 대통령의 신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자리인지,아니면 대통령의 축재를 돕기 위한 자리인지 구별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스스로 국민의 공복임을 망각하고 상급자의 사복으로 전락한 피고인에게 엄정한 처벌을 내려 마비된 공직윤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피고인 금진호,같은 김종인,같은 이원조에 대하여 보면 ○피고인들은 대기업의 대표들과 자주 접촉하거나 기업체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이용하여 대기업 회장들과 대통령의 은밀한 개별면담을 주선하거나 금품제공을 요구하여 전달해 주는 등 노태우 피고인의 뇌물수수를 적극 도와주었습니다. ○특히 금진호 피고인은 거의 협박에 가까운 태도로 금품제공을 요구하기도 하고,금품제공자로부터 무리한 청탁을 받아 노태우 피고인에게 그 뜻을 전달하는 등 경제계 지도층 인사로서의 자존심마저 버리고 결국은 동서인 노태우 피고인이 법의 단죄를 받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또한 이원조 피고인은 스스로 뇌물의 액수를 정하여 주고는 이를 채우라고 수차례 강요하기도 하였으며, ○김종인 피고인은 대통령의 경제수석비서관이라는 직분을 망각하고 기업인들에게 부정한 돈을 가져올 것을 요구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통령의 측근에서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고 직언을 아끼지 말았어야 할 위치에 있었던 피고인들이 그러한 역할을 저버린채 오히려 노태우 피고인의 뇌물수수를 도운 행위에 대하여는 엄정한 책임을 지워야 할 것입니다. 라,피고인 이경훈,같은 이태진에 대하여 보면 ○피고인들은 새정부 이후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일대 개혁조치로 실시된 금융실명제에 정면으로 배치하여 금융기관의 예금실명전환 업무 등을 방해한 점도 크게 비난받아야 하지만,그로 인하여 노태우 피고인에게 검은 돈의 은신처를 제공한 점이 더욱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금융실명제를 확고하게 정착시켜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피고인들 역시 엄중히 처벌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민정당 87년 4백억 받아/기업체서 직접 제공”/노태우씨 진술

    노태우 전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지난 87년 당시 여당인 민정당이 노씨의 취임을 전후해 기업체로부터 4백억원을 직접 받은 사실이 28일 밝혀졌다. 이는 대검중수부가 서울지법에 제출한 수사기록에서 드러났으며 노씨는 지난 1일 서울구치소에서 가진 8차 피의자 신문조서를 통해 『내 손을 거치지 않고 기업인들이 직접 당에 제공한 돈이 4백억원가량 되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진술했었다. 이 돈은 지난 5일 검찰의 노씨 비자금수사결과 발표문 중 「노씨로부터 87년 대선자금으로 쓰기위해 조성한 비자금가운데 사용하고 남은 돈과 취임전까지 기업체로부터 받은 성금을 합하면 1천1백억원이라는 진술을 받아냈다」는 내용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김병오 의원 불구속 입건/검찰

    ◎구청장에 공천대가 받아 소환조사 서울지검 공안1부(정진규 부장검사)는 22일 지난 6·27지자제 선거공천 과정에서 구청장 후보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국민회의 소속 김병오 의원(60·서울 구로병)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김의원에게 공천대가로 5천만원을 제공한 박원철구로구청장과 김의원으로부터 5천만원 가운데 3천만원을 받아 당운영비로 사용한 국민회의 구로갑 지구당위원장 정병원씨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의원이 공천을 대가로 받은 돈의 액수가 적은데다 당운영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21일 참고인 진술조서만 받은 정병원씨를 23일 중으로 재소환,피의자 신문조서를 받기로 했다. 검찰은 또 지난 6월 지자제선거 당시 민주당 서울시의회 의원 후보 공천에서 탈락한 뒤 당적을 옮긴 이모씨 등 구로 지구당 관계자들도 금명간 소환,보강수사를 펴기로 했다. 김의원은 박구청장이지난 4월28일 서울 구로구청장후보 선정위원회에서 후보로 확정된 뒤 5월6일 정지구 당위원장과 함께 만나 공천사례비로 5천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와관련,이미 지난 20일 서울지법 8단독 오철석 판사 심리로 진행된 공판전 증인신문절차를 통해 박구청장 등으로부터 『공천 대가로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에앞서 21일 하오 김의원을 전격 소환,밤샘조사를 벌인 뒤 이날 상오 귀가조치했다고 밝혔다. 김의원은 검찰에서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공천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니라 박구청장이 후보로 선정된 뒤 자발적으로 낸 특별 당비일 뿐』이라면서 『5천만원 가운데 3천만원은 정위원장에게 건네주고 나머지는 5월25·26일 지구당 이전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신군부,「12·12」이전 최씨 신문/79년 12월1일

    ◎김재규 범행 방조여부 등 조사/검찰,작년 이학봉씨 조사서 밝혀내 최규하 전대통령이 박정희 전대통령 시해사건에 대한 내란방조혐의로 79년 12월1일 당시 신군부측으로부터 피의자 조사를 받은 사실이 16일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서울지검이 12·12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79년 당시 10·26사건 합동수사본부의 수사1국장이었던 이학봉전의원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확인됐다. 지난해 6월8일과 8월3일 2차례에 걸쳐 작성된 이전의원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각각 1백11쪽과 25쪽 분량으로 돼 있다.그러나 이 조서에는 최전대통령이 조사를 받은 장소 및 정황,조사방법에 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전의원은 신문조서에서 『당시 국무총리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최전대통령이 김재규의 범행을 방조한 의혹이 있어 합수부측에서 79년 12월1일 조사한 사실이 있다』면서 『그러나 최전대통령이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김재규를 도와주는 행동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나 시해사건의 방조범으로 처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두환당 시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측이 당시 국정의 최고수행자였던 최전대통령을 상대로 피의자 조사를 했다는 사실은 신군부측의 정권탈취 음모가 79년 12월12일 정승화 당시계엄사령관을 연행하기 이전에 이미 수립돼 있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당시 최전대통령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체포지시를 비롯,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건 다음날인 10월27일 김재규에게 새벽4시에 계엄이 선포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등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책임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신군부측에 약점을 잡힌 것으로 알려져 왔다. 검찰은 지난해 10월29일 12·12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최전대통령이 신군부측의 조사를 받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전씨 등의 군사반란 혐의만 인정하고 기소유예처분 했었다. 한편 민주당의 강창성 의원은 지난 14일 『최전대통령은 지난 80년 3월12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방조혐의로 4시간에 걸쳐 전두환 사령관과 이학봉 보안사대공처장으로부터 신문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했었.
  • “세기의 재판 D­1일” 부산한 검찰·법원

    ◎노씨 첫 공판 “만반의 채비”/뇌물성 부인 대비 2백여 신문사항 준비­검찰/경찰 1천여명 경비 배치… 출입 엄격통제­법원 18일 상오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리는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전직대통령과 그 측근들,9명의 재벌총수등이 한꺼번에 법정에 서게 될 「세기의 재판」을 앞두고 검찰과 법원은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16일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공판이라고 해서 특별히 준비할 것이 있겠느냐』며 공판준비가 이미 완료됐음을 강조했다. 검찰은 지난 5일 노씨 등 15명을 기소한 뒤 노씨를 직접 조사했던 문영호 중수2과장과 김진태 대검연구관 등 2명에게 다른 사건을 일체 맡기지 않고 공판준비에만 매달리도록 했다.또 기업인 조사를 전담했던 서울지검 특수3부 최찬영 검사 등 검사 2명을 추가로 투입,법정에서 측근 및 기업인에 대한 신문을 전담토록 할 방침이다. 법정에서 피고인들이 오고간 돈의 성격을 뇌물이 아닌 인사치레 정도로 깎아내리거나 돈을 내지 않으면불이익을 당할까봐 할 수 없이 주었다며 직무관련성 및 대가성을 부인할 것에 대비,검찰은 빈틈 없는 신문사항을 준비해두고 있다. 특히 노씨에 대해서는 2천여쪽에 이르는 관련자 신문조서와 1백여차례의 계좌추적을 통해 확인된 물증을 토대로 2백여 문항의 직접신문 사항을 작성했다. 그동안 일관되게 「통치자금」임을 주장해 온 노씨가 법정에서 태도를 바꿔 순순하게 뇌물이었다고 인정하더라도 기선제압 차원에서 준비한 신문사항을 빠짐없이 확인할 계획이다.금품을 주고받을 당시의 정황과 전후의 사업내용 등을 적시,뇌물이었다는 점을 부각시켜 노씨와 기업인들이 유죄임을 처음부터 확실하게 해 두기 위해서이다. 검찰은 호화경력의 피고인측 변호사들에 대해서도 그 면면과 성향을 파악해 둔 상태다. 법원도 이번 재판을 아무런 불상사 없이 진행하기 위해 이미 준비를 마쳤다.법원측은 재판당일 경찰병력 8개중대 1천여명을 법원단지 안팎에 배치,외곽경비를 담당케하는 한편 법정 안에도 30명의 질서요원을 배치할 방침이다. 법정출입은 엄격히 제한된다.피고인 가족 45명(피고인 1명당 3명),일반방청객 80명(당일 선착순),취재진 40명 등 1백98명만 방청권을 받아 재판을 지켜볼 수 있다. 또 모든 출입자들은 정문과 청사안에서 2중의 신분확인 과정을 거치게 되며 이번 재판을 위해 새로 구입한 신형 금속탐지기로 검색을 받게 된다.
  • 「12·12전 최 전대통령 조사」 자료 내용

    ◎“김재규에 「계엄」 알려줘 내란방조” 추궁/“시해범 체포지시 왜 안했나” 압박­신군부/약점잡혀 정 총장 연행 재가→하야­최씨 최규하 전대통령이 12·12사건이 일어나기 12일전인 79년12월1일 신군부측에 의해 내란방조혐의로 처음 조사받았다는 사실은 최근 최전대통령의 「진술거부」와 관련,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6월과 8월 2차례 검찰에서 소환조사를 받은 이학봉 전의원의 피의자 신문조서내용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측의 정권탈취음모가 이때부터 이미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상 유례가 없는 피의자조사는 그 이후의 12·12 정승화 육참총장연행 재가강요,80년 4월14일 전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 겸직발령 실현 등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12·12사건의 실체와 그 성격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검찰은 전씨를 비롯한 핵심측근들의 내란죄 성립을 지난해 파악하고도 군사반란죄부분만 혐의를 인정한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문조서에서 신군부측은 최전대통령에게 시해범 김재규 체포를 지시하는 등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다음 날 새벽 4시부로 계엄이 선포된다는 사실을 김재규에게 알려 주는 등 내란을 방조한데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따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따라서 결정적인 약점을 잡힌 최전대통령이 이후 12월12일 정승화 육참총장의 연행재가와 5·17비상계엄확대 등 신군부측의 계속된 강압적 요구에 이끌려다니다 결국 하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까지 신군부측이 최전대통령을 피의자신분으로 조사한 사실이 공개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검찰의 12·12 및 5·18사건발표에도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12·12사건 재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지난 14일 민주당 강창성의원이 『최전대통령은 80년3월12일 전 당시보안사령관·이 당시보안사대공처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에 의해 대통령집무실에서 박대통령시해사건의 방조혐의로 4시간동안 조사받았다』고 폭로했으나 근거를 대지는 못했다. 따라서 최전대통령의 조사를 직접 담당한 이학봉전의원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공개로 강의원이 주장한 것보다 무려 석달전에 신군부가 최전대통령을 직접조사한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이 이같은 사실을 지난해 12·12사건조사당시 밝혀 놓고도 공개하지 않고 은폐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엇갈린다.우선 당시 「조사의 한계」를 안고 있던 검찰이 이 사건을 불기소처분하기 위해서는 신군부측의 내란죄 입증에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최대통령조사사실을 숨길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같은 질문을 이학봉·장세동·유학성·허삼수·허화평씨 등 전씨의 핵심측근 5명에게 모두 던졌으나 이씨만 구체적으로 답변했을뿐 나머지 4명은 『모른다』고 잡아뗀 것으로 피의자신문조서에는 기록돼 있다. ◎최규하 전대통령 성명서 요지 친애하는 국민여려분.작금의 상황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국민앞에 본인의 입장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게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88년 국회광주특위 이래 지난 7월 검찰에서의 12·12와 5·18고소·고발에 이르기까지 국회와 검찰에서는 본인에 대한 증인 또는 참고인 조사를 요구하였으며 본인은 그때마다 당국요구에 그대로 따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온 바 있습니다.보도를 통해 다 아시겠지만 이를 다시 요약하면 『대통령 재임중의 공적인 행위,즉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책무에 따라 처리된 국정행위에 대해 일일이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국정은 소신대로 처리할 수 없으며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전례를 남기는 것이고 또 그러한 전례는 앞으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마저 없지 않아 이러한 전례는 앞으로 수많이 탄생할 대통령들의 직무수행에 두고 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예상되는 바 전직대통령으로서는 후임 대통령들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전례를 남겨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점과 비록 일시적 비난의 화살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의 정통성과 계속성을 유지함과 아울러 대통령직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택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라고 생각하여 왔고 지금도 그 소신과원칙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소신 때문에 본인이 검찰에 직접 진술은 하지 않았으나 진실규명의 협조차원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진상이 알려지도록 노력한 바 있습니다.12·12사건 조사에 있어서도 그날 밤을 같이 지새며 공관접견실에서 사태에 대처한 국무총리와 재임시 보좌하던 분들이 이미 참고인 자격으로 대통령에 관한 사항까지 소상히 진술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17사태의 조사 경우에도 그동안 검찰은 본건과 관련하여 80년 당시 국무총리·관계장관·측근보좌관·각군 사령관·관계 공무원 및 기타 장병들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참고인들의 진술을 청취하여 당시 상황이 파악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10·26사건이라는 우리 역사상 유례없는 국가적 비극과 비상사태에서부터 1980년 여름에 이르는 격동기는 첨예한 남북간 군사적 대치상황 속에서의 안보문제의 심각성 뿐만 아니라 제2차 석유파동의 엄습에 의한 경제적 난국,극심한 사회혼란 등 참으로 예측불허의 국가적 위기였으며 본인과 정부는 이 일련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데나름대로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검찰 2차방문 조사 시도 안팎/최씨 평소 생각 전달한 듯/최씨측근 전언/“금품수수설엔 진노” ○…서울 서교동 최규하씨의 사저에는 이날 하오 3시 28분쯤 김상희부장과 이문호검사 등 수사팀 3명이 도착,대기중이던 최흥순비서실장 등의 안내로 최씨를 2차 방문. 김부장과 이검사는 질문자료가 담긴 파란색 봉투를 들고 차에서 내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최비서실장과 악수를 나눈 뒤 『오랜만입니다』라고 짧게 인사말을 건네고 부속실로 직행. ○…최비서실장은 『최씨가 전두환씨로부터 1백75억원을 받았다는 민주당 강창성의원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수사가 끝나면 밝혀질 것인데 왜 미리 지레 짐작등을 하느냐』고 반문. 한 측근은 『이기창 변호사와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강의원이 서교동측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금품수수설을 제기해 어르신이 몹시 분노했다』면서 『명예훼손혐의로 소송을 제기키로 하는 등 법적대응을 신중히 검토한 것으로 안다』고 전언. ○…검찰수사팀이 2차 방문한지 1시간여만인 이날 4시30분쯤 최비서실장과 이검사가 최씨 집을 나와 검찰수사가 끝난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가 팽배.그러나 검찰조사가 이루어졌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비서실장이 『아니야』라고 답해 검찰수사가 순조롭지 못함을 간접 시사. ○…최전대통령에 대한 2차 방문조사를 마친 검찰수사팀은 하오 4시50분쯤 최씨 집을 나서면서 『수사가 잘 됐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씨는 검찰의 수사에 응했다.다만 질문내용에 대해서는 종전 입장과 같이 국민과 국익을 위해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면서 답변을 회피. 최씨 측근들은 기자들과의 전화통화에서 『최 전대통령이 검찰의 2차방문 조사에서는 나름대로 평소생각을 전달한 것 같다』고 전언,1차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조사가 진행됐음을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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