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신문의 날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뇌하수체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임상시험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유지보수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작업자들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16
  • [사고] 신문의 날 표어·포스터 공모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는 제51회 신문의 날 및 신문주간을 맞아 신문의 날 표어 및 신문주간 포스터를 현상 공모합니다. 온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이번 공모에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공모부문 표어/포스터(일반부/학생부-초·중·고) ●응모기간 2007년 2월1(목)∼28일(수) ●응모소재 -독자의 기대와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는 신문의 사명과 책임 -신문의 공익성과 독자의 신뢰를 증진시킬 수 있는 내용 -신문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신문이 우리 삶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 기타 신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내용 ●출품요령 출품규격을 준수하여 공모신청서를 작성, 방문 또는 우편접수(신청서는 한국신문협회 홈페이지(www.presskorea.or.kr)에서 다운받아 활용) ●출품작수 및 규격 개인별 표어 1점, 포스터 2점 이내 ●출품규격/ci0000 *표어:20자 이내(격자20칸) *포스터:4절(39.4×54.5) ●시상내역/ci0000 *표어 -대상 1명 (상금 100만원과 상패) -우수상 2명 (상금 50만원과 상패) *포스터 -대상:부문 통합 1명 (상금 200만원과 상패) -최우수상:각 부문별 1명 (상금 100만원과 상패) -우수상:각 부문별 2명 (상금 50만원과 상패)
  • [옴부즈맨 칼럼] ‘익명 취재원’ 인용의 딜레마/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1972년 미국 민주당사에 정체불명의 괴한이 침임한 사건이 터진 후에 동료 기자인 칼 번스타인과 함께 몇 달 동안 이 사건을 집중 취재한 공로로 보도부문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우드워드의 취재에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취재원의 이름은 지난 30여년간 공개되지 않았다. 우드워드는 이 취재원의 이름 대신 당시 화제를 모았던 성인영화의 제목을 따서 ‘딥 스로트’라는 암호로 인용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결국 의회의 탄핵을 소추받기 직전에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닉슨 사임 이후 남은 미스터리는 ‘딥 스로트’란 익명의 취재원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알렉산더 헤이그나 헨리 키신저를 지목했다. 실체는 없고 가공의 인물이란 주장도 나왔다. 역사를 바꾼 이 익명의 취재원의 정체는 30여년이 지나서야 당시 FBI 부국장이던 마크 펠트라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우드워드와 ‘딥 스로트’의 사연은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는 기자와 취재원의 신뢰관계이다. 우드워드는 취재원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익명으로 처리했고, 당사자가 사망하기 전에는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두번째 주목할 만한 사실은 워싱턴 포스트 내에서 ‘딥 스로트’의 실체를 알았던 사람은 딱 세명이었다는 점이다. 우드워드 본인과 번스타인 기자, 그리고 직속상사인 벤 브래들리 편집국장이었다. 데스크는 기사의 정확성을 위해 취재원의 신분을 요구했지만 역시 비밀을 지켰다. 브래들리 편집국장은 심지어 사주인 케서린 그레이엄에게도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사실은 언론과 독자와의 신뢰이다. 비록 우드워드가 기사에서 핵심 취재원을 익명으로 처리했지만 독자들은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를 신뢰했다. 우드워드의 보도가 단지 한 취재원에게만 의존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드워드는 ‘딥 스로트’가 제공한 정보가 적어도 2인 이상의 다른 취재원에 의해 확인되지 않을 경우 기사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적용할 정도로 정보의 확인에 철저했다. 우리 나라의 언론에서도 익명의 취재원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지난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 언론윤리의 현주소’란 워크숍에서 한국언론재단의 남재일 연구위원은 국내 기자 3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38%가 ‘최근 2년간 익명취재원 1명의 말을 토대로 특정인이나 특정기관을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한 경우가 한 차례 이상 있다.’고 응답했다.‘실제로 취재하지 않고 익명의 출처를 내세워 자신의 견해를 취재원의 견해인 것처럼 인용한 경우도 24%나 됐다. 서울신문의 경우 익명 취재원의 인용이 다른 언론에 비해 특별히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22일자 지면을 보면 2면의 6자회담 기사는 ‘회담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을 인용했고,3면의 행정도시 명칭 기사는 ‘건설청 관계자’를 인용했다.6면의 행시관련 기사는 ‘중앙인사위원회 관계자’를, 정부기관의 대금지급 관련 기사는 ‘조달청 관계자’를 각각 인용했다, 같은 날 12면의 법원과 검찰의 갈등에 관한 기획기사에서도 ‘검찰 관계자’와 법원 관계자’가 각각 익명으로 인용됐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권위주의가 남아있고 언로가 자유롭지 않은 취재환경에서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하는 보도가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국가간에 외교적인 이유로 익명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취재원이 익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민감한 정보나 의견을 얻어내기 위하여 익명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도한 익명의 처리는 언론과 독자의 신뢰쌓기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익명 취재원의 인용에 관하여 일선 기자와 데스크의 좀 더 신중한 선택이 요구된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 “11월11일 오늘은 길의 날 두발로 우리땅을 걸어요”

    “현대인들에게 길의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하기 위해 길 문화축제를 마련했습니다.” 10일부터 12일까지 전북 전주에서 ‘제1회 길 문화축제’를 열고 있는 (사)우리땅 걷기 신정일(53·문화사학자) 이사장은 10일 “이번 축제를 통해 11월11일을 ‘길의 날’로 정한 것을 널리 알리고, 우리 강토의 옛길과 역사, 풍습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11월11일은 젊은이들이 길다란 과자를 주고 받는 ‘빼빼로 데이’이지만, 이 단체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이날을 과자 대신 두발로 ‘우리땅을 걷자.’는 뜻에서 ‘길의 날’로 정했다.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이날을 전후해 길 문화축제를 열기로 했다. 신 이사장은 “전주시 일원에서 개최될 이번 행사는 옛길 보전을 위한 세미나를 시작으로 11일에는 개회식과 함께 비빔밥 나눠먹기 행사, 길거리 원혼굿, 솟대와 장승만들기 등에 이어 12일 보부상 재현, 전통떡 잔치, 막걸리 축제와 전통 대동놀이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번 행사에 앞서 서울신문의 옛길 ‘영남대로’ 연재를 계기로 역사 속의 길을 정부가 국가문화재로 지정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을 환영한다.”면서 “앞으로 길 박물관 건립과 삼남대로(서울∼전남 해남) 등 조선시대 9대로가 문화재로 지정돼 복원·보존하는 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가 깃든 길들이 마구잡이식 개발 등으로 파괴·훼손돼가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란다. 신 이사장은 “로마와 일본 등 외국의 옛길이 오랜 세월을 두고 그대로 보존되고 있고, 프랑스 국경에서 스페인의 야곱이 잠든 산타아고 성당에 이르는 800㎞의 길에 순례자의 발길이 이어진다.”면서 “우리도 옛길을 복원해 보행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이사장은 지난해 5월 우리땅 걷기를 통해 국토사랑을 실천하자는 취지로 ‘우리땅 걷기운동 모임’ 결성을 주도했으며, 현재 전국에 3000여명의 회원이 있다. 전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00주년 맞는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장 김영호 前산자부장관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00주년 맞는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장 김영호 前산자부장관

    ‘적의 공격 없어도 나라 자연 소멸되면, 아아, 우리 백성들 어디 가서 사나. 이 나라 강토 없게 되면 가옥, 전토는 뉘 것인고. 국채 다 갚는 날 오면 기쁘고 즐겁지 않을손가∼’ 100년 전 우리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 때, 국채를 일본에 상환하고 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지키고자 이심전심으로 불렀던 ‘국채보상가’ 중 일부이다. 당시 국채 1300만원은 국가의 존망을 흔들었다. 애국인사들은 2000만 동포가 석달만 담배를 끊어 한 사람이 한 달에 20전씩 모은다면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대한매일신보가 애국의 불길 지펴 이에 고종황제는 ‘불가흡연’을 외치며 요원지화(燎原之火)를 지폈고 ‘대한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는 국운을 내걸고 전국적으로 ‘국채보상운동’을 확대시켜나갔다. 임금에서 백정의 신분에 이르기까지 불길처럼 타올랐다. 특히 두산그룹 창업주로 당시 ‘박승직 상점’을 운영했던 박승직씨는 100원이라는 거액을 쾌척(1907년 2월23일자 대한매일신보)해 불길을 드높였다. 결국 이 운동은 일제의 온갖 탄압으로 1년여만에 막을 내렸지만 망국으로 실의와 좌절에 빠진 민족의 가슴에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애국의 불꽃을 심어주었다. 이로부터 90년이 지난 1997년 11월, 임창렬 경제부총리는 비통한 표정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선언했다. 말 그대로 국가가 부도위기에 처했던 것. 그러자 국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금모으기운동’에 적극 나섰다. 돌반지며 장롱 속의 금비녀 등을 손에손에 들고 은행마다 장사진을 이루었다. 이를 본 외국 매스컴은 위기 극복을 위한 우리의 애국심과 단결력에 경탄했다.90년만에 ‘국채보상운동’이 재현된 셈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저력과 5000년 역사에 최초의 국민운동으로 자리매김되는 ‘국채보상운동’이 100주년을 맞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새삼 의미를 되새기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영호(66) 전 산업자원부 장관. 경제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97년 일본 경제학자가 뽑은 ‘애덤 스미스 이래 100대 세계경제학자’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그가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장’이자 100주년기념사업 공동대표를 맡아 그 정신과 취지를 알리는 데 적극 앞장서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일까. 외환위기 직전인 96년 말이었다. 김 전장관은 일본 도쿄대 교수로 재직하다 귀국, 경북대에 복직했다. 오랜만에 모교에 돌아온 그는 대구지역 경제·상공인들과 자주 만나면서 하나의 큰 깨달음에 이른다. 즉, 대구에서 발상된 국채보상운동이 90년이 됐건만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 세계사에서 유례 없었던 민족운동이 왜 역사 속에 묻혀야 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평소 알고 지내던 문희갑 대구시장에게 찾아가 “이제 제2의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야 할 시점이며 90주년기념을 반드시 이슈화해야 한다.”고 여러차례 설득했다. 아울러 대구지역 언론사 등을 찾아 동참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97년 2월 드디어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대구에서 최초로 ‘국채보상 90주년’기념 행사가 열렸다. 그해 10월에는 ‘90주년 국제심포지엄’까지 개최되면서 고귀한 민족정신을 여러 나라에 알렸다. 이때 김 전장관은 IMF의 스탠리 피셔 부총재에게 초청장을 보내면서 우리나라의 빚이 1300억달러나 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며칠후 피셔는 참석하지 못한다는 답장과 함께 “한국 정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1300억달러의 규모를 어떻게 아느냐.”라며 놀라워했다. 이 서신의 내용은 국내 경제·금융계에 급속히 퍼져나가면서 화제가 됐다. 역설적으로 당시 한국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얼마만큼 안일하게 대처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후 99년 10월 외채탕감을 위한 ‘대구라운드 세계대회’를 개최, 그나마 한국의 체면을 세운다. 그해 12월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이 완공됐으며, 현재 대구 일대의 중심공원으로 자리잡았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건립 추진 광복 61주년을 맞아 서울 시내 모호텔 커피숍에서 김 전장관을 만났다. 국채보상운동 100주년 겸 IMF사태 10주년을 맞아 제2차 대구라운드 개최와 기념관 건립 추진 등을 준비하느라 바쁜 틈에 잠시 시간을 냈다. 앉자마자 국채보상운동의 중요성과 역사적인 의미에 목소리를 높인다. “강만길 교수는 최초의 시민운동이라고 했고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한국 기부문화의 효시라고 했습니다. 또 최열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최초의 NGO가 중심이 된 국민적 사건으로, 박용옥 성신여대 교수는 한국 최초의 근대적 여성운동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적 경제주권 회복운동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이어 “당시 정부가 빌린 돈 1300만원을 못갚게 되자 국민들이 술 안 마시고 담배를 끊어가며 갚겠다는 눈물겨운 운동이 아니냐.”면서 전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역사적 사건이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대구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는 이준 열사의 부인이, 평양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부인 등도 참여할 만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특히 채권국의 모럴 해저드, 즉 ‘부추김과 꼬심’을 고발하고 비판한 전국민의 외자경계 운동이기도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신국채보상운동’이라는 IMF사태 때에는 그렇지 못해 우리들에게 숙제를 남겼다고 지적한다. 즉, 우리 서민들은 숨겨놓은 돌반지까지 털어가며 외채갚는 데 앞장섰지만 정부나 금융관계자들은 채권국의 모럴 해저드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 “우리나라가 IMF의 빚을 다 갚고 난 직후의 일입니다. 당시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현 컬럼비아대) 교수는 ‘채무자가 채권자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을 했더라면 적어도 200억∼300억달러는 건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중요한 말을 했어요. 돈이 오고가는 데 있어서 채무자뿐만 아니라 채권자의 책임도 마땅히 있다는 뜻이지요.” 그러면서 이같은 책임문제를 따지기 위한,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외채탕감운동을 예로 든다. 대표적으로 주빌리(Jubillee)운동과 아탁(ATTAC, 시민지원 금융투기거래 과세운동연합) 등이다. 김 전장관은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거래되는 돈의 규모는 하루 1조 8000억달러인 데 반해 물동량은 200억달러도 채 안된다.”고 전제한 뒤,“물건뿐만 아니라 돈거래에 대한 세금도 매기고 규제하자는 것이 아탁운동.”이라면서 돈 거래액에 0.25%의 세금만 물어도 1년에 1500억 내지 2000억달러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 돈으로 빈국의 부채탕감을 도와주고 문맹퇴치와 지구온난화 방지 등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한국 자산 팔아 IMF 빚 갚은 건 잘못” “내년은 국채보상운동의 100주년이자 IMF체제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는 정말 반성할 때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캉드시 전 IMF총재가 임기를 마치고 주빌리운동 자문관으로 간 것을 보십시오. 이는 채권자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난센스죠. 이것만 보더라도 한국이 얼마나 바보같이 빚을 갚았는지 알 수 있지요.” IMF 빚은 한국의 자산을 외국에 팔아서 갚았으며 이는 결국 우리 주요 기업들의 외국자본율만 높아지는 꼴이 되고 말았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경우 국가 기간산업, 에너지 등과 관련된 회사는 절대 안 내주는 데 반해 우리의 경우는 포철까지 일부 외국에 내다팔았다는 것. 그러기 때문에 “IMF는 분명 한국에 빚이 있다. 그 빚을 갚아야 진정으로 IMF 위기가 끝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금융기술이 부족해 그같은 일이 발생한 만큼 IMF는 도덕적 책임을 갖고 한국에 ‘국제금융기술센터’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세계가 공감하는 일이며 우리 정부도 IT(정보기술),BT(바이오기술)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FT(금융기술)에도 관심을 두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IMF에 당당히 요구할 권리 또한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나라는 외국자본 비율이 너무 높습니다. 외환은행 사태를 보십시오. 개방을 하되 적어도 안방과 기둥뿌리는 지켜야 하지요. 이젠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으로 경제적인 주권회복에 국가나 국민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지요.” 김 전장관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일찍부터 ‘기술경제학’에 관심을 가졌다.85년 오사카시립대학 교수와 92∼94년 도쿄대 교수로 재임하면서 많은 경제서적을 남겼다. 특히 ‘기술경제론’은 일본 100개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3년 전 유한대학을 국제적인 종합대학으로 만들어달라는 학교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현재 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40년 합천 출생 ▲대구상고 졸업 ▲62년 경북대 경제학과 졸업 ▲65년 공군사관학교 경제학 교관 ▲71년 하버드대·일본 아세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73∼88년 경북대 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 ▲85년 오사카시립대 경제학 박사 ▲85∼88년 오사카시립대교수 ▲92∼94 도쿄대 교수 ▲97년 경북대 경상대학장 겸 경영대학원장, 일본 경제학자 설문조사 ‘애덤 스미스 이래 100대 세계 경제학자’ 선정 ▲2000년 산업자원부장관 ▲01년∼현재 중국 옌볜대 석좌교수 ▲03년∼현재 유한대학장 ●상훈 다산경제학상(92년)●주요 저서 한국경제의 분석, 동아시아공업화와 세계자본주의(일어), 한·일간 기술경제질서론(공저) 등 다수 km@seoul.co.kr
  • [녹색공간] 사랑의 방식 차이/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제 자리가 아닌 곳에 자리를 잡으면 모든 것은 귀찮은 존재가 된다. 나는 많은 환경 문제가 그런 성가신 존재로부터 생긴다고 본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땅으로 무너지지 못하는 부러진 가지가 나무 세계의 골칫거리가 되는 것도 비슷하다. “부러진 가지가 땅으로 채 무너지지 못하고/살아 있는 가지에 걸려 있다/ --중략-- /살아 있는 가지들은 서로에게 걸리지 않는데/제멋대로 뻗어도 다른 가지의 길을 막지 않는데” 살아있는 가지가 가야 할 길을 막는 죽은 가지는 무너져야 할 무엇이다. 그러나 이는 실상 사람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눈에 띄는 한 가지 모습이다. 부러진 나무에 기대어 사는 벌레와 그 벌레를 노리는 새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그곳은 풍성한 삶의 공간이다. 위의 시는 정끝별 시인의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에서 따온 것이다. 서울신문의 이 글에 내가 잘못 앉혔으면 마뜩잖은 일이 된다. 아름다운 시어도 자리를 잘못 잡으면 본래의 빛을 잃는다. 때로 사랑의 표현도 지나치면 귀찮은 몸짓이 되듯이. 이와 관련하여 오래 전에 있었던 영국 나비동호인들의 부전나비 보호운동으로부터 얻을 교훈이 있다. 나비동호인들은 유권자들의 투표권 행사를 의식하는 국회의원들을 설득하여 마련한 예산으로 부전나비가 서식하는 땅을 사들이고는 말뚝을 둘러치고 보호했다. 그런데 부전나비의 기세는 오히려 더욱 줄어들었다. 생태학자들의 도움으로 그 까닭을 알아보았다. 원인은 정도를 벗어난 지나친 애정공세에 있었다. 보호구역 안으로 소들이 들어오지 못하면서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졌다. 짙은 수풀은 음습한 그늘을 드리웠고, 그늘 아래 놓인 개미굴의 온도가 낮아졌다. 그리고 따뜻한 온도를 좋아하던 개미의 세력이 약해졌다. 그 개미들은 부전나비 애벌레를 물어다 키워주는 보모와 같은 존재였다. 보모를 약하게 했으니 부전나비가 제대로 보육될 수 없었다. 나비동호인의 과잉보호와 함께 부전나비는 그렇게 위축되었던 것이다.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은 보호 방식을 수정하여 소와 말이 보호구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개미들도 부전나비도 다시 기력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이 나라의 영향력 있는 분이 퇴임하면 마을숲이 있는 농촌에 살고 싶다는 표현을 한 모양이다. 그 한마디는 여러 사람의 관심을 전통 마을숲으로 이끌었다. 벌써 전통 마을숲을 가꾸기 위한 국가 예산액수가 언급되고, 복원 사업을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거기까지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갑자기 생긴 예산과 지나친 애정으로 섣부른 일을 저지를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자란다. 부디 노쇠한 고목을 치료한답시고 막무가내로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나무구멍을 막거나 보호하느라고 철조망을 둘러치는 일만은 없길 바란다. 오래된 전통 마을숲의 아름드리나무 둥치 안은 화려한 날갯짓을 하는 비단벌레가 깃들 수 있는 곳이다. 때로 그 나뭇가지 위에는 새끼를 키우거나 먹이를 노리는 천연기념물 붉은배매새와 황조롱이(천연기념물 제323호)도 있고, 딱따구리가 뚫은 나무구멍에는 원앙(천연기념물 제327호)이 보금자리를 틀기도 한다. 사람들의 지나친 토목행위와 수목치료로 그들의 삶터를 없애지는 않을지…. 무엇보다 주민들과 그 전통 마을숲을 이용할 미래세대의 애정을 키우는 일이 우선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마을숲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문제를 진단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것이 조상들의 지혜가 배인 전통 마을숲에 대한 마땅한 사랑의 방식이다. 왜냐하면 전통 마을숲은 긴 세월 동안 이어진 주민들의 적절한 관심과 활용으로 제 모습이 갖추어진 아주 특이한 경관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이경형칼럼] 실패한 신문시장

    [이경형칼럼] 실패한 신문시장

    지난 6일 저녁 제50회 ‘신문의 날’ 기념 행사장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쓸쓸했다. 노 대통령은 김명곤 문화관광부장관이 대독한 축하 메시지에서 “참여정부와 일부 신문 사이에 비정상적인 대립관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은 심히 걱정스럽다.”며 소회의 일단을 피력했다. 같은 날 오후 헌법재판소에서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제기한 신문법 등에 대한 헌법소원과 관련하여 공개 변론이 진행됐다. 특히 신문시장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규정과 관련하여 청구인측은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특정 신문사의 점유율을 규제하기 위한 표적입법”이라고 주장한 반면, 문화부측은 “공익 성격이 강한 신문 시장에서 여론의 다양성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반박했다. 최근 신문산업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7∼8년 전만 해도 가구당 구독률이 60%를 웃돌았으나, 지금은 40%로 뚝 떨어졌다. 이는 뉴미디어의 등장과 같은 급격한 언론 환경 변화 탓도 있겠지만, 메이저 신문사들의 무차별 경품 공세로 신문시장을 황폐화시킨 데도 원인이 있다. 일부 신문들의 이전투구식 판촉 경쟁은 절대 독자 수의 파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문의 독자를 빼앗는 악순환만 불러왔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다양한 여론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여러 계층을 대변하는 여론 형성이 필수적이고, 그 역할의 일부를 신문시장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신문이든 기업으로서 신문사는 해당 ‘상품’이 겨냥하는 ‘주독자 타깃’을 설정하고 있다. 특정 신문의 시장 지배는 그 신문사, 구체적으로는 신문사 소유주·광고주가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를 수용자에게 집중적으로 전달하고 전파하기 마련이다. 이는 결국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이데올로기가 여론 시장도 지배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전제가 되는 여론의 다양성을 크게 위축시킨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통합할 수 있는 대안의 하나도 여론의 다양성 촉진에서 찾을 수 있다. 가진 사람, 기득권자, 현상 유지를 갈망하는 계층의 목소리만 증폭해서는 통합이 이뤄질 수 없다. 덜 가진 사람, 사회적 약자, 현상을 타파하려는 계층의 작은 소리도 공론의 장에서 걸러 어떤 형태로든 국가 의사결정에 반영시켜야 한다. 이른바 조·중·동이라는 메이저 신문이 과점하고 있는 한국의 신문 시장은 여론 다양성이나, 새 독자 증대라는 면에서 이미 실패한 시장이다. 마이너 신문들은 취약한 재무 구조로 생존한계선을 넘나들고 있거나, 종교 자본의 뒷받침으로 겨우 하루하루를 지탱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군사정권의 강압과 회유로 언론이 정권의 하위 기구로 전락했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언론의 권력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문민정부 이후 국가 권력이 정당, 자본가, 시민사회로 분산되면서 언론사, 특히 메이저 신문들도 신문 시장의 과점을 바탕으로 사회적 의제 설정의 선점을 통해 권력화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메이저 신문들은 마이너 신문들도 신문시장의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 절제해야 하며, 신문이 공산품과는 다른 ‘공익적 상품’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마이너 신문들은 변화된 신문 환경을 정면으로 받아들여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 구조조정의 고통을 감내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khlee@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아쉬움 남는 ‘신문의 날’이슈/양승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지난 7일은 제50회 신문의 날이었다. 학계에서는 한국사회와 신문저널리즘을 점검하는 학술세미나가 열렸고, 한국신문협회는 변화하는 미디어환경 속에서 신문 독자의 요구를 점검하기에 아주 유용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사회적으로는 신문법과 관련한 헌법소원에 대한 첫 공개변론이 열리기도 했다. 국정홍보처가 국정브리핑에 게재된 언론보도에 관계부처가 댓글을 달게 한 문제가 부각된 것도 지난주였다. 서울신문은 7일자 사설을 통해 공정한 보도를 재다짐했다. 이 사설에서 최근의 정부 언론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논지를 제시한 것은 적절했다. 하지만 특별히 신문과 관련한 이슈가 많았고 신문사 스스로에 의미가 있는 한 주였던 것을 감안할 때 관련 이슈 보도 전반에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먼저 사설에서 인용하고 신문의 날 종합면 머리기사의 제목으로 소개한 신문협회 조사결과는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신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신문이 세상정보 얻는 곳으로 TV와 인터넷에 그것도 조금 앞선 것을 위안삼아 신문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은 아전인수격인 해석이 아닐까. 신문협회 웹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검토해 볼 때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일상생활 뉴스, 새로운 정보의 제공 매체로서 인터넷의 약진이다. 독자들은 신문에 심층성, 유용성, 전문성, 정책 이슈에 대한 단순한 비판보다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기법을 이용하여 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의미 있는 조사 결과의 중요한 부분이 부각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신문법을 둘러싼 공개적인 논쟁의 전달 역시 다른 이슈와 비교해 볼 때 상대적인 중요도가 서울신문에서 떨어졌다. 우리 사회 언론과 표현의 자유와 연결되는 신문 산업의 중요한 이슈를 신문의 날에 8면 하단 단신으로 처리한 것은 적절했는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언론을 친소관계로 분류해 그에 영합하려는 정치권의 맹성을 촉구한다.’는 사설 문구를 보면 정쟁의 소용돌이에 말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쟁에 얽히지 않는 것과 중요한 이슈에 대해 독자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신문의 날’을 앞두고 신문의 현재를 점검하면서 미래를 조망해 보는 기획특집을 준비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4일 ‘미디어·문화’면이 경인민방 사업자 선정 등 방송 이슈로만 채워진 것은 기획 주제 선정에 있어 아쉽다.5일 열린 한국언론학회 학술세미나에서 신문 산업과 관련한 제도적인 이슈와 기사의 질적 향상과 관련한 학계의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서울신문의 지면에서는 이와 관련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다른 신문사가 후원한 것이라 빠졌는지 모르겠다. 7일자 사설에서 제시한 ‘신문이 사랑 받아야 건강한 사회다.’라는 명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공정성을 최선의 가치로 삼겠다는 의지표명에도 박수를 보낸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과 이슈를 제한된 지면 속에서나마 되도록 많이 소화하여 전달하려는 노력도 인정한다. 하인스 워드 방한과는 별개로 이미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을 통해 소수자와 소외계층을 배려한 기획력도 좋다. 하지만 지난주 시의성 있게 제기된 ‘신문의 문제’와 같은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 순발력 있게 대응하면서 진단과 해설을 하려는 시도는 조금 부족한 것 같다. 독자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그들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고 안주하기보다는 독자들이 요구하는 심층적이고 전문적인 유용한 정보 생산을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문 스스로에 대해 점검하고 신문 산업 전반의 문제점을 외면하지 않으며 함께 논의하는 자세 역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신문의 날이 있던 지난주, 이러한 문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독자들과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사랑받기 위해서라면. 양승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사설] 신문이 사랑 받아야 건강한 사회다

    오늘은 제50회 신문의 날이다. 요즘 신문이 당면한 어려움을 생각하면 착잡한 느낌이 든다. 정부 정책의 문제, 인터넷의 영역 확대 등 외부요인이 있겠지만 신문 자체의 잘못은 없었는지 다시 반성해본다. 그런 가운데 신문종사자로서 기분좋은 소식이 있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한국기자협회의 의뢰를 받아 조사한 결과 국민들이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장 의존하는 매체는 신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독자들의 애정과 관심이 꺾이지 않는 한 신문의 희망은 있다. 인터넷의 표피적·감각적 경박함이 넘치는 시대를 맞아 신문은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보루로 남아 있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을 가진 나라가 지속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듯이 신문 열독율이 낮은 국가 역시 미래가 밝을 수 없다. 미국은 1930년대부터 신문활용교육(NIE)을 시작했다. 한국도 10년전부터 비슷한 캠페인이 있었지만 아직 성과는 미흡하다. 신문읽기를 장려하고 교육에 활용하는 운동이 범국가적으로 일어나길 바란다. 김명곤 신임 문화장관은 “언론과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하거나 적대적 관계를 만드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자성론을 폈다. 그러나 취재·보도를 견제하려는 정부의 시도가 오히려 강해지고 있음은 유감스럽다. 국정홍보처는 국정브리핑에 게재된 언론보도에 대해 관계부처가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대응과 해명을 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언론사 인터넷 홈페이지 기사에도 실명 댓글을 달도록 했다. 보도 내용을 정책에 반영하고 일부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취지라면 좋다. 그러나 그보다는 일일이 댓글을 달아 정부비판 의지를 꺾으려는 의도가 실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수비형 댓글에 치중하지 말고 선제 홍보기법을 가다듬는 게 낫다. 어제는 신문법·언론중재법 위헌소송의 공개변론이 있었다. 여야는 신문법 지지·반대로 나뉘어 미리부터 정쟁을 벌였다. 언론을 친소관계로 분류해 그에 영합하려는 정치권의 맹성을 촉구한다. 신문 스스로도 공정성을 유지해 논란의 빌미를 주지않을 것을 신문의 날 아침에 재다짐한다.
  • 신문협회 ‘신문의 날 50주년’ 독자 3036명 조사

    신문협회 ‘신문의 날 50주년’ 독자 3036명 조사

    신문 독자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보는 물론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신문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구매력이 높은 계층이 신문 광고를 많이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신문협회(회장 장대환)는 제50회 신문의 날(4월7일)을 맞아 이같은 내용을 담은 ‘독자 프로파일 조사’ 결과를 6일 발표했다. 신문협회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달 13∼19일 중앙종합일간지 6개와 경제지 2개, 지방지 5개의 독자 3036명을 대상으로 신문독자의 현황, 구독형태 등에 대한 조사를 했다. 조사에 따르면,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신문(73.1%)에 의존한다는 응답자(중복 응답 가능)가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TV뉴스(68.4%), 인터넷(64.2%), 라디오(9.8%) 등의 순이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보에서도 신문(70.7%), 인터넷(70.4%),TV뉴스(62.7%)순으로 신문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았다. 반면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정보 의존도는 인터넷(73.9%)이 가장 높았으며, 신문(59.2%),TV뉴스(48.8%)가 그 뒤를 이었다. 기사 유형에 대한 열독률 조사에선 특별기획기사(38.8%)가 가장 높았고, 사회·교육(31.8%), 경제(29.0%), 정치(27.5%), 스포츠(27.1%), 국제(27.0%) 등의 순이었다. 광고효과면에선 광고 성격별로 신문과 TV의 선호도가 엇갈렸다. 광고주의 경영실적과 내용, 경영자의 이념과 철학을 가장 잘 전달하는 매체는 신문이란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그 뒤를 TV와 인터넷 광고가 이었다. 반면 기업의 서비스나 브랜드 전달 효과에선 TV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 구매력이 높은 계층이 신문광고를 많이 읽고 있으며, 특히 주부계층과 월 500만원 이상을 버는 고소득층의 신문광고 열독률이 높았다. 신문을 읽는 장소는 중앙지 독자들은 집(57%)이 직장(34%)보다 많았고 경제지는 직장(57%)이 집(28%)보다 많았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盧대통령 “참여정부·언론 건강한 관계”

    노무현 대통령은 6일 제50회 신문의 날 축하메시지를 통해 “참여정부는 정부가 언론을 견제하는 힘겨운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메시지에서 “참여정부는 우리 언론에 대해 긴장과 견제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것을 매우 건강한 관계로 생각한다.”고 언론관을 밝혔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신문의 날 기념대회

    제50회 신문의날 기념대회가 한국신문협회(회장 장대환)·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회장 문창극)·한국기자협회(회장 정일용)의 공동 주관으로 6일 오후 소공동 롯데호텔 사파이어볼룸에서 열렸다. 기념대회는 장대환 회장의 대회사와 문창극 회장의 개회사에 이어 3개 단체가 공동으로 ‘우리의 다짐’을 채택하는 순서로 진행됐다.또 신문의 날 표어·신문주간 포스터 공모전 입상자 시상과 각 회원사로부터 추천받은 우수독자·모범배달사원 표창이 함께 열렸다. 기념대회에는 채수삼 서울신문 사장 등 각 신문 발행인들과 수상자, 축하객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장 회장은 대회사에서 “일류신문 없이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며 “신문의 고품격화를 위해 신문인들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장 회장은 ▲신문 저널리즘의 재충전으로 여론을 다양화하고 ▲‘의제 선도’ 기능에 충실함으로써 사회 통합의 구심체 역할을 하는 한편,▲유능한 저널리스트를 확보하고 저널리스트들의 전문성을 강화할 것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대회가 끝난 후 오후 5시 부터는 김원기 국회의장,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 정동영 열린우리당 당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원, 전윤철 감사원장, 이병완 총와대 비서실장, 이명박 서울시장 등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리셉션이 열렸다. 한편 기념대회에 앞서 신문협회는 이사회를 열고 국민일보 노승숙 사장, 중앙일보 권영빈 사장, 강원일보 최승익 사장, 대전일보 조준호 사장 등 4명을 부회장으로 선임했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미스·공군 박근주(朴槿珠)양 - 5분 데이트(38)

    미스·공군 박근주(朴槿珠)양 - 5분 데이트(38)

    『비행기를 탈 때가 제일 기분 좋아요. 아무리 타도 지리한 줄도 모르고 지치지도 않아요』 항공 생리의 적격자라는 진단을 받았다는「미스·공군(空軍)」박근주(朴槿珠)양. 활짝 웃는 입매에서 풍기는 청결함이 우선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든다. 67년 6월부터「스튜어디스」로 비행기를 타기 시작, 비행시간은 6백시간을 훨씬 넘었단다. 준장 이상의 장성급, 정부요인등 VIP 비행에 동승해 오면서 익혀진「서비스」솜씨는 201호의 전용 탑승자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식성을 비롯해서 몇몇 사람 것을 알뜰히 기억 해오고 있는 세심함도 갖췄다. 신문의 정치면을 통독하는 새 버릇도 비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신광여고 졸업, 숙대(淑大) 가정과를 중퇴한 35-23-36의「볼륨」, 1백62cm의 키, 50kg의 몸무게, 타원형 얼굴의 정돈된 미모는 보편성 있는 미인. 44년생. 『한달에 3,4일만 서울에 있는 집을 들를 수 있다는 것외에는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은』숙소 생활에서 비행 없는 날 대기 상태의 지리함이 이 미인의 고민. 「차이코프스키」와「바나나」를 좋아하는 2남2녀 중의 이 막내딸은 2,3세 차이의「엔지니어」인 차남과 연애결혼을 하고 싶단다. 그리고는 2남1녀의 엄마가 되는 게 소망. [ 선데이서울 69년 6/22 제2권 25호 통권 제39호 ]
  • 신문의 날 표어·포스터 공모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는 제50회 신문의 날 및 신문주간을 맞아 신문의 날 표어 및 신문주간 포스터를 현상 공모합니다. 온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이번 공모에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공모부문 표어/포스터(일반부/학생부-초·중·고) ●응모기간 2006년 2월2일(목)∼2월28일(화) ●출품요령 출품규격을 준수하여 공모 신청서를 작성, 방문 또는 우편접수 ※신청서는 한국신문협회 홈페이지(www.presskorea.or.kr)에서 다운로드 ●출품작수 및 규격 표어 1점, 포스터 2점 이내,4절(39.4×54.5㎝) ●제출 및 문의처 한국신문협회 (100-745)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25 프레스센터 13층 1302호 (전화 02-733-2251·2, 팩스 02-720-3291) ※응모 소재 및 시상 내역 등 기타 자세한 사항은 한국신문협회 홈페이지 참조 ●주최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
  • WE와 함께 대박난 맛집

    WE와 함께 대박난 맛집

    ‘We에 소개돼 대박 났어요∼’ 주말매거진 We는 지난 2년간 ‘이집이 맛있대요’와 ‘이 집이 맛있대’라는 코너를 통해 전국 200여곳의 맛집을 발굴, 소개했습니다. 이 코너는 기자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찾아낸 맛집들로 독자의 입장에서 까탈스러울 정도로 맛을 검증해 찾아낸 집들입니다. 이 때문에 제목과 같이 ‘이 집이 맛있대요∼’라며 자신있게 힘주어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독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만들어진 코너이기도 합니다. 독자들이 이메일이나 서울신문 홈페이지 등에 추천한 음식점 등을 직접 가서 취재해 게재한 곳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We가 100호를 맞아 그동안 지면에 소개된 맛집 중 ‘대박난’ 음식점을 찾아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물론 200여곳 중 7곳을 선정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맛을 찾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음식점들을 다시 찾아가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맛집들은 취재 당시의 맛을 꾸준히 지키고 있었지만 일부는 매스컴을 탄 뒤 맛의 질이 다소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은 곳도 있어 안타깝게 했습니다. We 첫회(2004년 1월 9일)에 소개됐던 부산 연산동의 영양돌솥밥집인 ‘낙원’과 서울 삼선교의 낙지전골집 ‘오낙도’(2회)를 시작으로 그동안 200여곳의 맛집이 소개됐습니다. 그동안 We에 실렸던 맛집 중 체인점 쇄도요청이 쏟아지거나 음식점을 크게 확장한 이른바 ‘대박난 집’들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A. 서울 광화문 장뚜가리 ‘12오겹살’로 광화문 일대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장뚜가리’는 We에 소개된 뒤 원조 맛집들이 즐비한 광화문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음식점’ 중 하나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에는 쏟아지는 체인점 문의를 버티다 못해(?) 내년부터는 체인점 사업에도 뛰어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외국의 언론에 ‘한국의 맛집’으로 소개되면서 중국 상하이와 일본, 미국 등에도 체인점을 추진중에 있다. 유성호(38) 사장은 “신문에 소개된 12오겹살을 만들게 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면서 “내년에는 체인점 사업을 통해 한국의 맛을 국내외에 소개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자랑했다.12오겹살은 이 집의 대표 메뉴로 두께가 자그마치 12㎜에 이르는데 유 사장이 직접 1∼20㎜까지 잘라 구워 먹으며 가장 맛있는 두께를 찾아낸 것이다. 일반 오겹살의 두께가 5㎜안팎인 것과 비교해 두배 이상 두껍다. 신문에 영국 유학생활을 접고 음식점에 뛰어든 그의 이색적인 약력이 소개되자 손님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장사가 잘된다고 메뉴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조만간 ‘만배불취 오겹살’이라는 신메뉴를 준비하고 있다.‘술을 만잔 먹어도 취하지 않는다.’는 뜻의 이 오겹살에는 숙취 해소에 좋은 한약재를 넣어 숙성시킨 것으로 현재 한의사와 함께 연구 개발 중이다. 다소 엉뚱하지만 그는 최근 조리할 때 나오는 폐열을 재활용할 수 있는 장치인 ‘폐열을 활용한 난방장치’에 대해 특허 출원을 하기도 했다. 장뚜가리는 현재 광화문점(1호점)과 세종문화회관점(2호점) 등 두 곳이 운영되며,12오겹살은 1인분(200g)에 8000원, 마늘 숙성 오겹살은 1만원, 김치강정은 6000원에 판매하고 있다.(02) 732-9292. 만원, 김치강정은 6000원에 판매하고 있다.(02) 732-9292.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B. 경기도 수원 황포돛대 매서운 추위가 10여일 이상 계속되고 있다. 이런 날씨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매콤한 음식 생각이 절로 난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교동 ‘황포돛대’(031-258-0100)는 온 가족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낙지·오징어’요리 전문점이다. 이 집의 ‘낙지불고기’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으로 소문나 있다. 지글지글 열기를 뿜어내는 돌 판위에 낙지와 각종 야채, 물엿과 청양고추 등으로 버무린 고추장 양념이 어우러져 특유의 매콤한 맛을 선사한다. 주로 산낙지가 나오는데 1인분에 1만 2000원으로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부담스럽다면 1인분에 6000원 하는 오징어 불고기를 권하고 싶다. 남겨진 양념에 공기밥과 김치, 야채, 김가루 등을 넣어 만들어주는 볶음밥도 빼놓을 수 없다. 돌판 위에 붙어있는 눌은밥을 긁어먹는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주인 김학규(30)씨는 “낙지와 오징어불고기도 좋아하지만 나중에 먹는 볶음밥 때문에 일부러 찾는 손님들이 꽤 많다.”고 귀띔한다. 김씨의 어머니 김부전(59)씨가 주방일을 맡고 있다. 그녀는 “15년 전 가족을 위해 요리기술을 배웠는데 이제는 본업이 돼버렸다.”며 환하게 웃었다. 고급 커피숍 분위기의 인테리어와 종업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도 손님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C. 서울 송파구 고래집 “서울신문에 큰 빚을 졌습니다.” 지난해 서울신문 We에 맛있는 집으로 소개된 서울 송파구 수서역 현대벤처빌 뒤의 곱창 전문집인 고래집(02-3412-4355)을 1년여 만에 다시 찾았다. 영하 13도의 매서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밖에서는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실내에는 곱창 굽는 연기로 가득했다. 박경미(39) 사장은 “지난해 서울신문의 기사가 나가자마자 대단했습니다. 멀게는 인천과 일산에서 전화를 주시고 찾아 오는 손님들이 있고 일주일 동안은 아예 전화를 받을 수 없을 지경이었어요.”라며 당시를 떠올린다. 또 곱창이 모자라 밤 11시 이후에는 팔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녁이면 사람들이 항상 줄을 서 있어 가게 앞의 사거리 이름이 ‘곱창사거리’로 변했다. “이 집 곱창 맛이 정말 끝내줘.”라며 언손을 부비며 자리를 잡은 김성식(42·중앙엔지니어링)씨는 “쫄깃쫄깃한 맛과 그 뒤에 흐르는 곱의 담백함은 고래집만의 자랑”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아니야, 여기는 양이 더 맛있어.”라며 “아삭아삭 과일향이 가득하며 고기를 씹는 듯한 양의 부드러움은 대한민국 최고”라는 이형만(43·중앙엔지니어링)씨. 맛이 변하면 손님들이 먼저 안다며 제일 무서운 것이 손님들의 입맛이란 박 사장의 경영철학. 사람들이 너무 몰리면서 서비스가 소홀해질까봐 가장 신경이 쓰인다는 박 사장은 그래도 음식에는 최고, 최상의 품질을 지키기 위해 한치의 소홀함이 없단다. 인심 좋은 박 사장도 지난여름 구제역파동 때는 많이 힘들었단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하자는 의미에서 양과 곱창을 먹기 전에 ‘싱싱한 간과 천엽’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렇게 퍼주다가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가 날 것 같았다. 시원한 선지 해장국과 간, 천엽만 먹어도 다른 가게에서 몇 만원을 주어야 한다. 바로 이렇게 손님에게 퍼주는 인심좋은 곱창집이 바로 고래집이다. 많은 사람들의 프랜차이즈 문의를 물리쳤지만 내년에는 전국에 고래집을 100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음식의 매뉴얼을 만들고 있단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D.가야산 산사의 아침 “주말매거진 We에 맛집 기사(10월27일자)가 나간 직후 대전에 산다는 40대 후반의 남자가 서울신문과 함께 We를 손에 들고 일행 4명과 함께 왔습니다.” 가야산 국립공원 내 치인(해인사)집단시설지구에 있는 사찰음식 전문식당 ‘산사의 아침’ 주인 손숙경(69·여)씨는 WE에 보도된 이후 손님이 크게 늘었다고 즐거워했다. 손씨는 “대전에서 오신 분들은 ‘음식이 맛있다’며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 등 수도권 손님도 많았다. 서울 강남에 있는 50대 후반의 부부는 “기사를 보고 사찰음식을 먹기 위해 해인사까지 달려왔다.”면서 “거리가 너무 멀어 오는 동안 상당히 피곤했으나 음식 맛이 이를 모두 날려버렸다.”며 신문에 난 집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했다고 한다. 손씨는 “경기도 분당 한 아파트 부녀회에서 왔다는 10여명의 주부들은 10여 가지에 이르는 코스 음식을 모두 먹어 본 뒤 역시 신문 기사대로 맛이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했다. 서울 손님 중에는 자신이 돈을 투자할 테니 서울에서 식당을 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MBC 모 PD는 We에 난 대로 맛이 있느냐고 물은 뒤 장아찌 담는 법을 가르쳐 달라며 몇번이나 전화하기도 했단다. 손씨는 손님이 늘면서 고들빼기김치 등 반찬을 2가지 늘렸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너무 고마워서란다. 합천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E. 부산 동래구 대청 돌판구이 마을 “WE에 보도된 뒤 멀리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습니다.”. 서울신문 주말매거진 We에 소개(11월10일자)된 ‘대청 돌판구이 마을’(부산 동래구 명장동) 주인 김정현(40·여)씨는 “기사가 나간 뒤 매상이 껑충 뛰었다.”며 고마워했다. 상호가 말해주듯 널찍한 공간의 마루와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가 눈길을 끄는 이 집은 질 좋은 한우와 국산돼지고기를 사용해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김씨는 “개업한 지 얼마 안 돼 손님이 하루 100여명에 불과했는데 서울신문 보도와 입소문이 퍼지면서 요즘에는 찾는 손님이 배로 늘어 하루 200여명을 넘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특히 요즘에는 연말을 맞아 송년 모임 등을 갖기 위해 단체 손님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또 주말에는 인근 아파트 등지에서 자녀들과 함께 가족단위의 손님들도 많이 온다고 덧붙였다. 인근의 입시학원 원장인 정은경(45·여·동래구 복천동)씨는 “신문을 통해 대청마을을 알고는 남편과 함께 찾았다가 질좋은 고기와 맛깔스러운 밑반찬 등이 마음에 들어 단골이 됐다.”고 말했다. 개인사업을 하는 김영기(43·동래구 명장동)씨는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등 음식점 분위기가 좋아 거래처 사람들과 자주 온다.”며 “다른 곳에 비해 값도 비교적 저렴한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김씨는 “집에서 우리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정성껏 음식을 장만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F. 서울 압구정 유끼노스시 곳곳에 들어서는 회전초밥집과 뭔가 다른 느낌을 주는 서울 압구정동 ‘유끼노스시’에 들어선 것은 일년 전. 유기농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유끼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의 컨셉트는 웰빙이었다. 유기농 채소, 태평농법으로 키운 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매일 새벽에 공수하는 싱싱한 재료들로 다양한 메뉴를 선사했다. 인기 종목이 나타나면 이를 따라하는 ‘미투(me too)’ 상품이 판을 치다가 결국 지존만 살아남는 경쟁사회의 냉혹함이 외식업계를 피해갈 리 없다. 컨셉트를 가지고 톡톡 튀는 요리를 선보인 유끼노스시는 We에 소개되고 1년이 지난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다. 나무를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은 여전하다. 일년 전과 달라진 것은 메뉴.82m 길이의 벨트 위에 떠다니는 다양한 요리 외에 계절 요리와 자체 요리대회를 열어 새롭게 개발한 특선 요리, 저렴하게 다양한 스시를 즐길 수 있는 런치세트 등 더욱 다양해졌다. 창작 개발 메뉴판에는 만든 사람의 자존심이 엿보인다. 금방 튀긴 새우와 아보카도, 화이트와인과 마요네즈를 섞은 소스, 허니데리야키 소스를 넣어 만든 마키(3300원)는 최인선 조리이사의 이름을 붙였다. 연예인 옥주현이 늘 마지막을 장식하는 메뉴로 삼을 정도로 튀김 같지 않게 뒷맛이 깔끔하다. 이곳의 대표적인 메뉴인 브랜디 다다키스시는 ‘신실장님 스시’(3800원)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문을 하자마자 불에 직접 구워내 부드러운 참치 뱃살과 그 뒤에 남는 숯불의 향이 바비큐를 먹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신선한 딸기와 단맛의 밥이 오묘하게 조화된 ‘생과일롤’, 다진 청양고추를 넣은 새우야채볶음을 넣은 ‘군함말이’는 그 독특한 맛에 마니아까지 거느리고 있다.(모두 3300원) 울릉도 특산물인 산마늘잎을 절여 볶음밥을 말아 내는 ‘명이나물 스시’, 과감하게 일식집의 틀을 벗어버린 ‘불갈비 스시’ 등 겨울 특선 메뉴는 유끼노스시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메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가격은 접시 색상에 따라 1300원(노란색)부터 1만 2000원(금색)까지.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3시, 오후 5시30분∼밤 10시. 점심특선메뉴는 오후 2시40분까지,8000∼2만 3000원. 휴무일은 없다.(02)540-4888.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G. 서울 청계천 홍어횟집 서울 청계천 새물맞이와 함께 인근 식당들은 은근히 기대를 했을 법하다. 유동인구가 많아질수록 들르는 손님도 많아질테니까. 하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여우다. 웬만한 정보 없이는 쉽게 발길을 옮기지 않는다. 제대로 된 홍어 맛을 내는 40년 전통의 홍어요리 전문점 ‘홍어횟집’은 흐름을 제대로 탔다. 청계 8가와 9가 사이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 9번 출구 쪽, 약간은 외진 청계천권이지만 청계천 새물맞이에 앞서 지난 9월 말 주말매거진 We에 청계천 주변 맛지도에 이름을 알리면서 손님이 점점 몰려들기 시작했다. 홍어 하나로 승부해 온 뚝심이, 단골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 We를 보고 찾았다가 이제는 단골이 됐다는 정선인(48·서울 송파)씨는 “집에서 멀긴 해도 홍어 맛을 생각하면 절로 발길이 향해진다.”며 “게다가 직접 삭혀 만든 거라 다른 곳에서 먹는 ‘시장산’과 다른 신선한 느낌이 풍긴다.”고 말했다. 이 집의 삼합, 찜, 탕, 무침 등은 직접 옹기에 짚을 깔고 삭혀 만든 홍어로 만들어져 요리마다 신선한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홍어가 저장된 수십개의 천연 옹기는 볼거리이기도 하다. 홍어무침에는 생도라지를 넣어 비린 맛도 없앴다. 홍어삼합과 찜, 탕은 각각 6만원, 홍어무침은 4만원(中).(02)2234-1644.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일간지 제호 쓴 명필은 누구냐

    일간지 제호 쓴 명필은 누구냐

    신문의 제호(題號)는 바로 그 신문의 얼굴이다. 독자는 자기가 선택한 제호에 모든 신뢰를 걸고 하루의「뉴스」를 읽게 되는 것. 그럼 신문의 얼굴인 그 제호들은 누가 썼을까? 당대의 명필들의 글씨인 것만은 틀림없는데 몇 십 년 제호에 익숙한 독자라도 그 글씨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거의 모른다. 연륜이 오래된 신문사인 경우 그 신문사의 사장 자신도 잘 모르고 있는 게 바로 제자(題字)를 쓴 주인공의 이름이다. 이처럼「베일」속에 감추어 있는 글씨의 주인공들은 과연 누구일까? 오는 7일은 제13회 신문의 날 - 아득히 잊혀진 제자의 주인공들을 찾아가보자. 현재 서울에서 발간되는 전국 독자를 대상으로 한 종합일간지는 모두 8개. 이중 대한일보, 서울신문, 한국일보의 3개지가 한글제자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신아일보가 한문제자를 쓰고 있다. 글씨체는 거의가 궁체 아니면 예서(隷書). 광범위한 독자층을 상대로 하다 보니 알기 쉽고 눈에 잘 띄는 체를 골라 쓰게 된 것이다. 제자 뒷배경으로 쓰인 무늬로는 한반도가 들어간 것이 동아일보, 대한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5개지, 무궁화를 무늬로 넣은 것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2개지, 횡선(橫線)을 사용한 신문이 대한일보, 서울신문, 신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의 5개지이며, 경향신문만은 아무런 무늬 없이 흰 배경이다. 신아일보는 횡선뿐. 횡선에 한반도를 넣은 신문이 대한, 조선, 서울, 한국 등 4개지로 제일 많고, 동아, 중앙이 무궁화무늬다. 제호는 한반도와 무궁화와 횡선을 가장 좋아하는 모양. 제자를 쓴 사람들은 모두 당대의 명필로 이름을 날리던 분들로 역사가 오랜 동아, 조선은 이미 고인이 된 김돈희(金敦熙)씨, 오세창(吳世昌)씨가, 그리고 해방 후의 신문제자는 주로 김충현(金忠顯)씨, 안종원(安鐘元)씨, 이철경(李喆卿)씨 등이 많이 썼다. [조선일보(朝鮮日報)] 위창(葦?) 오세창(吳世昌)씨의 글씨다. 1920년 창간 당시 방응모(方應模) 사장이 직접 오세창씨를 찾아 부탁, 아무런 보수 없이 써준 것이다. 하루는 소전(素?) 손재형(孫在馨)씨가 위창댁을 찾아가니 4, 5개의 제자를 놓고『어느 것이 좋은가 골라 내라』고 하여 소전이『이왕이면 다 신문사로 보내시지요』하였더니 위창은『그러면 신문기자들이 보나마나 이것저것 좋은 글자 골라서 오려 쓸 터이니 안된다』하면서 하나를 골라 보겠다고. 그 후 야간 개칠이 되어 현재까지 쓰여지고 있다. 창간 당시 관여했던 인사들이 모두 작고(作故)하거나 납북되어 신문사 자체기록엔 제자를 누가 썼는지 밝혀져 있지 않고 심지어 몇 십 년을 근속한 고위간부 되는 분도 모르고 있는 실정. 해방 후 신문판형이 바뀌거나 단수(段數)가 조정될 때마다 그 크기는 바뀌었으나 글씨는 여전히 오세창씨의 것. [경향신문(京鄕新聞)] 1946년 10월 창간 당시 편집국장이던 횡보(橫步) 염상섭(廉想涉)씨가 당대의 명필 안종원(安鐘元)씨에게 부탁, 제자를 받아 오늘날까지 쓰고 있다.「경향(京鄕)」은 원래 교황청 기관지인「우르비·엣·오르비」의 의역(意譯)으로 초대사장인 양기섭(梁基涉) 신부가 정한 것. 창간 당시부터 현재처럼 무늬없이「京鄕新聞」의 네 글자만 박아 넣어 쓰다가 4·19 이후 이준구(李俊九)씨가 사장이던 한때 볏잎 무늬를 넣어 썼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창간 당시로 되돌려 현재와 같이 무늬 없이 쓰고 있다. 개칠을 너무 많이 해서 제자의 원모습이 달라졌기 때문에 최근 창간 당시의 신문에서 제자를 복사해서 원래의 모양을 다시 찾았다. 창간 당시 관여했던 노기남(盧基南) 대주교의 글에 의하면 제자를 오세창씨가 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소전 손재형씨는 안종원 오세창 양씨에게 부탁, 안씨의 것을 썼다고 한다. [서울신문] 우리나라에서 한글제호를 제일 먼저 쓰기 시작한 게 바로「서울신문」이다. 그러나 제호의 운명은 무척 기구해 역대 고위간부가 바뀔 때마다 제호의 글씨와 모양도 바뀌어 왔다. 그 동안 김충현(金忠顯)씨 등 수많은 명필들이「서울신문」이란 제호를 써왔다. 그러다가 1966년 7월 8일자부터 한글 궁체의 제1인자로 알려진 이철경(李喆卿)여사의 정성 어린 글씨를 받아 오늘날까지 계속 써오고 있다. 지금 쓰이고 있는 글씨는 1점 1획의 수정이나 가필 없는「텍스트」그대로이다. 장태화(張太和)사장을 비롯한 간부진은 제자에 여간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문화부 기자는 거의 열흘 동안 딴 일은 못하고 이철경여사와 제자에만 매달렸다는「에피소드」도. 이여사는「서울판」「전남판」하는 10개 지방판의 제호 글씨도 또한 썼다. [한국일보(韓國日報)] 「태양신문(太陽新聞)」을 인수, 약 20일 그대로「태양신문」제호를 사용하다 창간한 해인 54년 6월 9일자부터「한국일보(韓國日報)」로 개칭. 약 1년간「韓國日報」로 그대로 쓰다가「한국일보」로 한글로 바꾸면서 독자들에게 제자를 공모했다. 현재 쓰고 있는「한국일보」의 제자는 바로 이 현상모집에서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현상응모서 당선된 사람의 이름은 확인할 길이 없다.(동사(同社) 조사부 보관사사(保管社史)나 사고(社告)철에 남아 있지 않음) 어쨌든 이 현상 당선된 제자를 사장인 장기영(張基榮)씨가 원곡(原谷) 김기승(金基昇)씨에게 들고가 신문에 어울리게 가필한 것이 오늘날 한국일보의 제자다. 자매지인「주간(週間)한국」은 제자는 창간 당시 김기승씨에게 씌운 것을 오늘까지 계속 써오고 있다. [동아일보(東亞日報)] 조선일보보다 창간이 약간 늦은「동아」는 원래 설립자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씨가 朝鮮日報로 제호를 내정했다가 조선일보에 빼앗기는 통에「동아(東亞)」를 채택, 전 동남아를 상대로 한 신문을 만들겠다고 기염이 대단했단다. 글씨는 인촌이 직접 당대의 명필인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선생(작고)에게 부탁, 몇 차례 왔다갔다한 끝에 현재까지 쓰고 있는 글씨로 결정되었다. 김돈희선생의 수제자인 소전 손재형씨의 말을 따르면 김돈희선생은『근대 한국의 제1의 명필』이었다고. 김돈희선생이「東亞日報」의 넉 자를 일부러 멋을 살려 좀 삐뚜름히 썼더니 신문사측에선「곤란하다」고 난색을 보여 5, 6회 다시 썼다고 한다. 인촌선생은 김돈희선생의 글을 받았다고 좋아하는가 하면 김돈희선생은「동아」의 제자가 자기 글씨라 서로 좋아하기도. [중앙일보(中央日報)] 65년 9월 22일 창간 두어 달 전부터 김충현씨에게 부탁 받아 썼다. 당시 삼성(三星)의 모비서가 10여 차례 돈화문 앞 김충현씨가 차린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를 드나들며 몇 차례 받아갔다가 다시 쓰고 한 무척 힘이 든 글씨다. 마지막 김충현씨가 써준 5개의「中央日報」제자 중 몇 개에서 집자(集字)해 썼을 것이라는 게 김충현씨의 의견. 김충현씨는「중앙일보」제자 외에 2개의 휘호(揮毫)를 창간 축하인사로 써주었는데 중앙일보측에선 양복감 한 벌과 10만원을 사례로 보내왔다고. 창간 당시부터 동아일보에 의식적으로 신경을 써온 동사에서는 제호의 무늬도 동아일보가 쓰고 있는 무궁화무늬를 쓰기로 결정. 동아일보가 무궁화에 둘러싸인 한반도를 그려 넣은 대신 중앙일보는 무궁화무늬만을 넣고 한가운데 한반도 모양의 흰 공백을 두고 있다. [대한일보] 1960년 10월 19일「평화신문(平和新聞)」을 그대로 이어받아 4개월간 쓰다가 61년 2월「대한일보(大韓日報)」로 게재하면서 김충현(金忠顯)씨에게 제자를 부탁, 계속 써왔다. 그러다가 66년 8월, 한글로 바꾸면서 한글 궁체의 1인자 이철경여사에게 글씨를 받아왔으나 획이 섬세하고 가늘다 해서 동사 사장인 김연준(金連俊)씨가 가필(加筆), 획을 굵게 고쳐서 썼다. 그러니까 이철경씨의 글씨도 아니고 김연준씨의 글씨도 아닌 제호를 약 6개월간 써오다가 동사 전무이며 한글학회이사인 한갑수(韓甲洙)씨가 쓴 것이 오늘날 쓰고 있는 제호이다. 한갑수씨의 경우도 5, 6회 글씨를 써서 직접 동판을 떠서 인쇄해 보고 효과가 좋지 않으면 다시 쓰곤 했다. 그러니까 외부인사 아닌 사내 식구에게서 제자를 받아 쓰고 있는 것은「대한일보」단 하나뿐. [신아일보(新亞日報)] 너무 갑자기 창간준비를 서두르다 보니 제자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단다. 장기봉(張基鳳)사장과 평소 교분이 두터운「아마추어」서예가 이(李)모교수가 장사장의 청탁을 받고 써준 것이 창간 당시 신아일보가 쓰던 것. 65년 5월 6일 창간 후 약 한 달 동안 이 글씨를 그대로 써오다가 너무 획이 약해 얼핏 눈에 뜨이지 않는다 하여 당시 동사 조사부 차장이던 장상섭(張相燮)씨(현재 문화부 차장)가 이교수의 글씨를 더 굵게 가필한 것이 지금 쓰이는 신아일보의 제자 바로 그것이다. 장상섭씨는 기자이면서 한때 교편을 잡은 바 있어 도안(圖案)엔「프로」급 이상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신아일보 제자는 이모교수와 장상섭씨가 합작해 만들어 놓은 셈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4/6 제2권 14호 통권 제28호 ]
  • 올 대한민국 광고대상 삼성생명 ‘인생은 길기에’

    한국광고단체연합회는 12일 삼성생명 기업PR ‘인생은 길기에’ 시리즈를 올해 대한민국 광고대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생명 기업PR시리즈 광고는 브래지어를 처음 한 날 수줍어하는 딸의 모습, 어느새 늘어난 뱃살을 만져 보는 남편, 비로소 멋을 부리기 시작하는 어머니, 남자 티를 내며 여탕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아들, 부끄러움보다 실속을 더 차리는 아줌마가 된 아내, 자식 분가 후 비로소 삶에 여유가 생긴 아버지를 통해 가족의 인생을 돌아보며 긴 인생을 함께하는 후원자로서 응원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심사위원장 이영희(이대 시각정보디자인) 교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을 모델로 삼아 일상의 단면을 섬세하고 공감이 가는 느낌으로 연출했다.”고 심사평을 밝혔다. 또 부문별 금상에는 신문의 경우 LG화학의 기업PR 시리즈, 잡지는 나이키의 러닝 캠페인,TV는 르노삼성자동차의 SM7, 라디오는 유한킴벌리의 기업PR, 인터넷은 나이키의 ‘Play to win’편,SP(Sales Promotion, 현장 판매촉진기법)는 SK 엔크린의 ‘든든함’편이 선정됐다. 심사위원 특별상에는 금연 공익광고 자학 시리즈가, 경제 살리기 캠페인 ‘긍정의 힘’편이 각각 뽑혔다. 시상식은 11월8일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수상작에게는 총 1억원의 상금이 지급된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웃기는 영어(11)

    Life Essay for Wrighting 영어학습지 세일을 위해 가방을 들고 길을 나서는데, 리어카에 카세트 테이프를 틀고 다니며 파는 카세트 장사의 스피커에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가 구슬프게 들려왔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순간 묘한 감정이 다가왔다. 영어교재를 판매하러 다니는 내 가방에 들어있는 카세트 꾸러미와 리어카에 쌓여있는 카세트 더미를 보며 지금의 내 처지가 거리의 카세트 장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회한의 미소와 더불어 많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With a smile of regret on,I was obsessed with floating ideas or thoughts). 당시의 방문학습 선생님이란 말이 선생님이었지, 집집으로 찾아다니며 영어 교재를 파는 거리의 세일즈맨이란 표현이 더 적절했기에 스친 생각이었다. 영어교육 자료도 없고, 교육지침도 없고, 학습목표와 교육을 위한 철학도 부재인 상태의 회사와 그 속에서 헤매는 나와 수많은 동료들…. 어찌할 것인가? 이대로 가방만 들고 다니다간 나는 그야말로 테이프 장사로 인생을 마감할 것이 아닌가? 거리의 테이프 장사와 마주친 그날 이후 영어교육에 대한 많은 책을 뒤지고 진정한 선생님이 되기 위한 조직과 철학을 갖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더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은 변했고 나를 기점으로 주변에서 영어교육 및 철학과 관련한 다방면에서 조금씩의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자부심을 지닌 선생님의 길이 조금씩 열렸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좋아한다. 눈물이 나도록….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커다란 힘과 구호가 아니다(What changes the world is not brutal force or a slogan).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과 그것을 관찰하고, 그것들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열린 사고와 실천력이 세상과 나를 변화시키는 힘인 것이다. 웃기는 영어(11) Taxi Deivers’ Favorits JokesA woman places an ad in the personal column of the newspaper.It reads,“Looking for a man who won’t beat me,who won‘t run around on me,and who is a fantastic lover.” The woman waits a week but gets no reply.Then,one day,her doorbell rings.She goes to the door,opens it,and sees no one there.She closes the door and is about to walk away when the bell rings again. She opens the door and once again sees no one there.Then she looks down and sees a man with no arms and no legs sitting on her doorstep.“I’m here to answer the ad,” he says. The woman doesn‘t know quite what to say,so the man continues,“You see,I can’t beat you and I can‘t run around on you.” “Yes,” says the woman,“but the ad also said that I wanted a fantastic lover.” The man looks up and says,“I rang the doorbell,didn’t I?” (Words and Phrases) place∼in…:∼을…에 두다, ad:광고 personal column:(신문의)개인소식란 read “”:“” 라고 쓰여 있다. look for∼:∼을 찾다, beat:때리다 run around on∼:∼을 쫓아 뛰어다니다 fantastic:환상적인 reply:응답, ring:울리다 be about to∼:막∼하려고 하다 look down:아래를 내려다보다 on one’s doorstep:∼에게 가까이에 continue:계속 말하다 look up:올려다보다 (해석) 한 여자가 신문의 개인 동정란에 광고를 냈습니다. 그 광고에는 “날 때리지 않고, 날 쫓아 뛰어다니지 않을 남자지만 환상적인 연인인 사람을 구함”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아무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현관의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문을 닫고 막 떠나가려고 하는데, 초인종이 다시 울렸습니다. 문을 열었지만 다시 한 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팔다리가 없는 한 남자가 그녀 가까이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저 광고에 응하려고 여기 왔는데요.”라고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라 하는데, 남자가 계속 말했습니다.“알다시피, 저는 당신을 때릴 수도 없고 당신을 쫓아 뛰어다닐 수도 없습니다.” “그래요.”라고 여자가 말했습니다.“그러나 광고에는 또한 제가 환상적인 연인을 구한다고 했는데요.” 남자가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제가 현관의 초인종을 눌렀지 않았습니까?” (해설) 상대를 쫓아다니며 때리지 않을 “환상적인” 연인을 구한다는 여자의 광고를 보고, 팔다리가 없는 남자가 그 여잘 찾아갔습니다. 초인종이 울리고 여자가 나와 보았지만 처음에는 이 남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초인종이 다시 울리고 나와서야 이 남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남자가 자신이 팔다리가 없어 여자를 때리지도 쫓아다니지도 못한다고 얘기하자, 여자가 그 말은 수긍하지만 남자가 광고에서 말한 환상적인 연인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강한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이런 의문에 대해, 그 남자는 자기가 초인종을 어떻게 눌렀는지 생각해보면 자기가 환상적인 연인이 되지 않겠느냐고 여자에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절대문법4 자리매김학습 영어는 같은 단어라도 자리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는 언어이다. 따라서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단어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영어 문장은 동사를 기준으로 앞뒤에 위치하는 단어들의 역할과 특성에 따라 다양한 구조로 변형될 수 있다. 지난 시간에는 명사가 문장의 주어와 목적어, 보어 자리에 올 수 있음을 배웠다. 오늘은 명사의 의미를 보다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단어들에 대해 살펴보자. I made a kite. ⇒나는 만들었다. (무엇을)어떤 연 주어자리(명사) 동사 목적어 자리(관사+명사) 이 문장에서 주어 자리와 목적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명사이다. 동사를 기준으로 앞뒤에 올 수 있는 자리의 특성에 맞게 명사가 위치한다. 그런데 목적어 자리에 있는 명사 kite는 관사 a의 수식을 받을 수 있다는 명사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때 명사 kite의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해 줄 수 있는 말을 붙여 주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사 앞에 모습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를 놓으면 의미가 보다 구체적으로 살아날 수 있게 된다. I made a big kite. ⇒나는 만들었다. (무엇을)어떤 큰 연 주어자리(명사) 동사 목적어자리(관사+형용사+명사) 형용사는 주로 명사 앞에 놓여 명사를 수식하게 되어 명사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 명사 뒤에 놓여 명사의 상태를 보충 설명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음 문장을 통해 간단하게 정리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Brian noticed a strange sound. 위의 문장은 결국 ‘누가?’ Brain이 알아차렸다. ‘무엇을?’ 어떤 이상한 소리를 이렇게 의미가 동사: noticed 형용사: strange 명사수식: sound 시제: 과거 주어: 명사 Brian 목적어: 명사 sound 새겨지게 된다. 영어 문장을 통해 절대 문법의 개념을 확대하게 되면 이처럼 동사를 중심으로 앞뒤에 위치하는 단어의 특성과 역할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문장의 의미를 순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2) 여성이 일할 만한 나라(뉴질랜드)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2) 여성이 일할 만한 나라(뉴질랜드)

    뉴질랜드는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어느 나라보다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나라다.‘효율성의 걸림돌’이라는 미명 아래 여성들의 권리는 무시될 수 없고 그만큼 여성의 능력을 발휘하며 사회적 지위를 유지한다. 이를 받쳐주는 원동력은 사회 구성원의 재생산이 달려 있는 육아 문제를 여성에게만 맡기지 않는 국가 사회적 인식이다. 정부나 기업이 육아에 대해 책임감을 가짐으로써 여성들이 마음껏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오클랜드(뉴질랜드) 이재훈 특파원| 지난 7일 오전 7시20분. 뉴질랜드 유명 방송국 TVNZ의 사업개발팀에서 일하고 있는 셰릴 가비(34·여)는 출근 준비로 분주하다. 아들 대니얼(2)에게 시리얼로 아침을 먹인 뒤 함께 승용차로 출근길에 나선다. 50분 걸려 방송국에 도착하면 셰릴과 같이 아이를 회사로 데려오는 부모를 위해 따로 마련된 전용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방송국 2층에 위치한 차일드케어 센터(Childcare Centre)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면 셰릴이 퇴근하는 오후 5시까지 대니얼은 이곳에서 50여명의 또래 친구,5명의 선생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뉴질랜드에서는 육아 문제를 여성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모성 보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육아는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책임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공동의 의무’라고 정부나 사회가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 마련한 육아 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부담없이 일하는 뉴질랜드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일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육아는 사회의 책임” TVNZ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 중심 거리 빅토리아 스트리트에 있다. 차일드케어 센터는 이 건물에서도 가장 접근하기 쉬운 2층에 있다.2세 이하 영아와 3∼4세 유아를 위해 두 개의 침실과 실내외 놀이방, 목욕탕과 식당, 컴퓨터 이용실 등이 마련된 센터에서 50여명의 아이들이 장남감 놀이, 종이접기, 낮잠자기 등 저마다 하고 싶은 놀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아이들은 모두 TVNZ 직원의 자녀들이다. 셰릴은 원래 주치의가 있는 병원 근처 사설 센터에 대니얼을 맡긴 적도 있다. 하지만 대니얼이 자꾸 울면서 엄마를 찾는 바람에 일에 집중할 수가 없어 넉달 전 회사 내 시설로 옮겼다. 업무 도중 잠시 짬을 내 대니얼을 품에 안은 셰릴은 “언제 무슨 일이 생기든 바로 찾아볼 수 있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며 대니얼의 뽀얀 볼에 입을 맞춘다. TVNZ은 지난 89년 이 보육 공간을 만들어 사설 센터보다 15% 가량 싼 값에 직원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고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 뉴질랜드의 기업들은 기업이나 사회가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해줘야 할 의무를 갖게 된 점을 알고 있다. 현재 TVNZ의 여성 직원 비율은 전체 980명 가운데 47%로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다. 뉴질랜드에서는 공공기관이나 대학, 병원, 방송국 등에서 직원들을 위한 자체 차일드케어 센터를 마련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하지만 일반 중소기업 직원들은 보통 공공 또는 사설 센터를 이용하며 국가로부터 수입에 비례한 육아보조금을 노동시간당 2.34달러 정도 지급받는다. 때문에 사설 센터의 주당 이용료는 180∼200달러(한화 13만∼15만원) 정도지만 가계에 큰 부담은 없다. 뉴질랜드 정부는 또 만약 사설 차일드케어 센터가 정부의 인가를 받으면 아동 수에 따라 일종의 운영 보조금도 지급하고 있다. ●160명 돌보는데 선생님 45명 같은 날 오후에는 중심가에서 택시로 5분 거리인 르무에라 로드의 오클랜드 대학 차일드케어 센터를 찾았다.2년전부터 이 대학에서 일하고 있는 사무직원 수지타 쉐티(29·여)는 업무를 마치고 4살된 딸 선지나의 도형만들기를 도와주고 있었다. 수지타 역시 매일 아침 선지나와 함께 출근한 뒤 사무실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센터에 선지나를 맡기고 오후 5시까지 업무를 본다. 임신 8개월째인 수지타는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면 역시 대학이 마련해준 센터에 맡기고 자기 일을 계속할 예정이다. 수지타는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집에서 육아와 가정 일로 분주해 다른 직업을 가진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지만 지금의 우리는 육아의 부담을 덜고 자기 일을 가질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1970년 만들어진 오클랜드 대학 차일드케어 센터는 오클랜드 시내 4곳에 분산 운영된다. 학생과 교수, 사무직원과 대학 부설 병원 직원 등의 생후 6개월 이상 5살 미만 영유아 자녀 160여명이 45명의 자격증을 갖춘 선생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2살 이하 영아들을 위해선 ‘몇 시에 기저귀를 갈았다.’,‘오늘은 아이가 자꾸 칭얼거린다.’는 등의 상세한 육아일기를 부모에게 제공하고 3∼4세 유아들을 위해서는 예술과 과학, 언어 등의 공부도 시켜준다. nomad@seoul.co.kr ■ 지금 뉴질랜드에선|오클랜드(뉴질랜드) 이재훈 특파원| 지난 7일 오전 호텔방으로 배달된 뉴질랜드 유력 일간지 ‘뉴질랜드 헤럴드’를 펼친 기자는 졸린 눈을 다시 한번 비벼야 했다. 뉴질랜드의 모성보호에 대해 취재하러 간 기자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 건 바로 ‘선거 2005, 차일드케어-국민당이 세금으로 가족들을 유혹하려 한다.’는 신문의 1면 톱 기사 제목이었다. 뉴질랜드 제1야당 국민당이 오는 9월로 예정된 총선에서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엄마 이상의 그 무엇’이 되고픈 여성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공약을 들고 나온 것이다. 공약의 골자는 “한 가정의 취학 전 아이 한명당 연간 1650뉴질랜드 달러(이하 달러)의 세금을 환불, 아이 키우는 비용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신문은 ‘3살 된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고 있는 사라와 마크 부부의 경우 1년 수입은 8만달러 정도. 이 가운데 아이를 사설 차일드케어 센터에 맞기는 비용은 주당 180달러로 1년에 8820달러 정도인데 국민당이 이 비용 가운데 1650달러를 보전해 주겠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집권 노동당이 이제까지 보전해준 세금은 연간 310달러 상당이었다. 하지만 노동당은 2007년부터 3∼4세 취학 전 아동을 주당 20시간 국가가 의무 교육시키는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인터뷰를 위해 만난 사람들마다 화제는 ‘이 공약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가.’였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가장 큰 사설 차일드 케어 센터 체인을 운영하고 있는 킨더케어 러닝센터(Kindercare Learning Centre) 로젠느 살루니 센터장은 “나도 4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매주 200달러를 지불하고 있는데 1650달러면 어마어마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센터 직원 수지 왓슨은 “뉴질랜드의 미취학 아동이 모두 14만명이라 이를 위해선 1억달러의 재원을 마련해야하는데 이 역시 다른 세금 부담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모성보호라는 이슈가 정권 재창출을 위한 주요 공약으로 신문 1면 톱을 장식하고 발길 닿는 곳마다 육아 문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며 현실성 여부를 토론하는 나라. 뉴질랜드는 그래서 ‘여성 선진국’이란 이야기를 들을 만한 나라였다. nomad@seoul.co.kr ■ 여성정책과 실태 |오클랜드(뉴질랜드) 이재훈 특파원|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해준 나라다. 헬렌 클라크 총리, 아넷 킹 보건장관, 매리언 홉스 환경장관, 케리 프랜더게스트 수도 웰링턴 시장이 모두 여성이고 국회의원 120명 가운데 여성의원은 35명으로 29%를 차지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비율은 60.8%로 남성의 75.0%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다. 지난 5월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WEF)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도, 경제활동 기회, 정치적 권리, 교육 성취도, 보건복지 수준 등 5개 평가항목을 바탕으로 발표한 ‘여성의 권리와 남녀불평등조사’ 보고서에서 뉴질랜드는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국가에 이어 6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최하위권인 54위였다. 집권 노동당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레슬리 소퍼 의원은 뉴질랜드 여성의 지위가 높은 이유를 국가 태생의 역사에서 찾았다. 지난 5일 웰링턴 국회의 의원 사무실에서 만난 소퍼 의원은 “19세기 초반 유럽인들이 섬나라 뉴질랜드를 개척하고 정착하는 데 여성들이 큰 역할을 했고 이후 여성들의 교육수준도 높였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가 자연스레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높은 여성 지위와 여성의 정치·경제 참여비율은 자연스레 여성을 위한 법과 제도를 갖추게 만들었다.1972년 남녀 동등임금법을 만들어 지난해 여성의 임금수준을 남성의 87%까지 끌어올렸고 1986년에는 세계 최초로 여성부를 만들었다. 여성부는 내각 최상급기관으로 모든 이슈를 여성의 입장에서 검증하는 역할을 맡는다. 1990년에는 기업내 남녀 고용 비율을 똑같이 맞추게 하는 동등고용법을 만들었으나 3년 뒤 집권당이 노동당에서 국민당으로 바뀌면서 폐기됐다. 하지만 1999년 재집권한 노동당이 법안 마련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2007년부터는 모성보호를 위해 정부기관이 모든 3∼4세 아동들의 교육을 주당 20시간 책임지는 의무 육아교육시스템도 시행할 예정이다. nomad@seoul.co.kr 협찬 KT
  • [옴부즈맨칼럼] 저널리즘의 생존전략/김춘식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최근 주요 일간지의 편집정책에 의미 있는 변화가 눈에 띈다. 심층탐사보도의 증가가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본란을 통해서 여러 차례 탐사보도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ing)는 이른바 ‘팩트’(fact·사실)를 중시하는 저널리즘 세계에서 사실은 진실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명제 하에, 사건 자체보다는 그 사건의 이면을 적극적으로 파헤치는 보도방식이다. 언론사나 기자의 주관적 견해가 반영된다는 비판적 입장도 있지만, 사건의 본질을 발견하여 보도함으로써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함은 물론 독자가 진실에 다가설 수 있게 도와주며, 지면이 활성화된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서울신문은 여러 차례의 기획탐사기사를 보도했다. 보도의 내용은 우리사회의 급속한 고령화 문제(‘큐! 아름다운 노년’)로부터 미래 농업의 문제점과 활로에 대한 탐색(‘위기의 축산농 비상구를 찾아라’), 한류에 가려진 열악한 기초예술현장 고발(‘연극인 월소득 23만원…빚더미 무대인생’), 베트남 통일 25주년을 즈음한 기획연재기사(‘테마로 읽는 호찌민’)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베트남 관련 기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탐사보도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방법에 대한 논의의 방향을 제공하면서 사회구성원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기획탐사보도의 증가는 사회와 언론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먼저,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사건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며, 국가의 사회문화정책 담당자의 각성을 촉구하여 책임있는 정책 수립을 촉진시키기 때문에 공익적인 측면이 매우 강하다. 특히 언론사의 입장에서 기획탐사보도는 신문의 질을 높이는 전략적인 수단 중 하나이다. 신문의 질적 수준이 신문사의 경영수지 개선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연구결과를 고려하면 기획탐사보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미국의 언론학자 필립 메이어는 자신의 저서 ‘소멸하는 신문 : 정보화시대의 신문 구하기’(The vanishing newspaper: Saving journalism in the information age)에서 질적 수준이 높은 신문(quality journalism)이 더 잘 팔린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문은 정보가 아닌 영향력을 판매하는 매체라고 전제하면서, 신문의 영향력이 커지면 그 신문의 가치 또한 증가하고, 영향력 있는 신문은 독자들을 끌어모으기 때문에 광고주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매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에 의하면 신문이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은 기사의 정확성을 제고한 신뢰의 확보이다. 즉 문맥과 맞지 않는 인용이나 과장, 흥미 본위의 내용을 배제한 정확한 기사는 뉴스원으로부터 신뢰를 받게 되고 이는 곧 신문의 독자 유지능력 강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서울 지역의 유료구독 가구주 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제49회 신문의 날 ‘신문가격과 독자마케팅 정책’ 세미나 발제문)에 따르면 신문에 대한 독자의 충성도는 매우 낮아 2년이 지나면 30∼40%의 독자가 구독신문을 변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신문사의 주요 수입원인 구독료는 신문의 이미지 및 편집특성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결과이다. 즉 신문이 기사의 정확성과 신뢰도를 제고하여 높은 질적 수준을 유지한다면 독자들은 구독료 인상에 부정적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른바 조·중·동 3사와 다른 중앙일간지 사이에 질적 차이가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전략이 무엇인지를 시사한다. 기획기사나 심층분석 기사를 확충하는 것 이외에도 거시경제보다는 미시경제를, 돈 버는 정보보다 돈 쓰는 정보를, 그리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는 내용을 폭넓게 취급하는 한편 작은 글씨를 사용하고, 뚜렷한 목표독자를 설정하는 새로운 편집정책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저널리스트나 광고주의 관심보다는 독자들의 관심사항이 무엇인지를 탐색하여 보도하는 편집의 특성을 확보하여 신문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이 정보화시대에서 전통적인 저널리즘이 생존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김춘식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제49회 신문의 날 기념식 “신문시장 경쟁의 룰 확립하자”

    한국신문협회(회장 장대환)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회장 문창극), 한국기자협회(회장 이상기)는 6일 오후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제49회 신문의 날(4월7일) 기념식을 열었다. 지방 신문의 활성화를 꾀하고 지역사회와의 연대 강화 등을 위해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데 이어 두번째로 지방에서 열린 이날 기념식에는, 신문 관련 단체장, 언론사 대표, 정·관계 인사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를 주최한 언론 3단체 관계자들은 “최근 신문시장의 위기의 원인은 경기침체, 방송의 영역확대 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냉철한 반성과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대환 신문협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우리 사회에 통합의 메시지를 확산시키고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등 어려울수록 신문 본연의 사명인 저널리즘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신문의 신뢰회복을 위한 경쟁의 룰 확립, 구독료의 현실화, 미디어산업 규제 완화 등을 신문업계와 미디어 학계 등이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