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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자/29개 지구당 조직책 인선 박차/선정기준 매듭의 언저리

    ◎당선 가능성­참신·전문성에 비중/서울송파­최병렬·강용식씨 등 적극 거론/부산3곳­엘리트 경제전문가 영입 추진 민자당이 인선기준을 놓고 당내 갈등양상을 빚어온 29개 공석 지구당조직책의 선정지침을 마련,구체적인 인선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김윤환 조직위원장은 30일 『총선승리와 정치권 변화의 출발점이 될 이번 인선의 기준은 이미 확고히 마련됐다』고 밝혔다. 민자당은 이와관련,지난 27일 이들 29개 조직책 신청예정자와 영입대상자에 대한 인물파일작성및 기초조사를 마무리짓고 28일부터 후보 압축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다음달 5일부터 10일까지 후보공모절차를 거쳐 조직강화특위를 가동,8월말까지는 조직책을 확정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사실 당내에서는 그동안 내년 15대 국회의원 총선공천의 잣대가 될 이번 조직책 선정을 둘러싸고 여러 목소리들이 있었다. 당내 민정계를 대변하고 있는 김윤환사무총장은 지방선거 패배직후 『중요한 것은 당선기준이며 조직책 인선은 세대교체와 무관하다』며 『지난 정권때의 인물가운데 능력이 검증된 인사들의 포용』에 무게를 두었었다.반면 당내의 유일한 민주계 핵심당직자인 김윤환 조직위원장은 『기존 정치에 발을 담그지 않은 30∼40대 전문인의 대거 발탁을 통해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앞당겨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왔다. 그러나 김총장은 최근 『새정치를 담아낼 수 있는 젊고 유능한 인재의 흡수』로 톤을 이동하고 김위원장은 『대중적 인기와 지역활동에 대한 주민의 평가,그리고 당선가능성』에로 무게중심을 맞추어 이견조율이 끝났음을 시사했다.김위원장은 특히 『청와대나 민주계인사에 대한 별도의 배려나 구여권에 대한 의도적 고려는 없을 것』이라고 「탈계파」를 유난히 강조했다. 이에따라 집권세력의 텃밭인 부산에서는 박관용청와대정치특보와 서석재총무처장관이 각각 부산의 동래 분구지역과 사하 분구지역에 연고에 따라 「복귀」하고 김무성내무부차관이 신설된 수영구에 입성하는 선에서 민주계의 지역구 배려를 그칠 것이라고 한 당직자는 전했다.강서구에 홍인길청와대총무수석이 거명되는 것을 빼고는 부산의나머지 3곳에 참신한 경제·통상전문가등을 대거 발탁,「모범」을 보인다는 방침이다.같은 맥락에서 서울과 경기일대에 거론되던 청와대비서진이나 민주계의 입성 가능성도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재야출신도 서울에서 장기표씨등이 한때 고려됐으나 불필요한 이념시비를 막기 위해 이번에는 영입을 강행하지 않기로 했다는 후문이다.대신 서울 송파에는 민정계이면서도 추진력과 논리가 분명한 최병렬전서울시장 또는 강용식 대표비서실장등이 본인들의 침묵에도 불구,적극 고려되고 있으며 신설된 광진구와 강북구에는 현직 신문기자 한사람과 정태영 기조국장이 각각 참신성과 당료배려 차원에서,양경자 전의원과 최영한 전국구의원이 각각 여성및 예술인 안배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 가장 치열한 경합을 보이고 있는 곳은 수도권 신도시들이다.분당에는 이재명 전국구의원을 비롯,17명이라는 최대경쟁률을 보이고 있고 일산에 윤원중 청와대정무비서관 김재석 산업인력관리 공단이사장 구창림·곽영달 전국구의원등이,부천에 박종근 한국노총위원장과 이사철변호사등이,안산에 홍일화 중앙상무위청년분과 위원장 등 주로 젊은 전문가 출신들이 각축하고 있다. 이밖에 인천·대전등에는 관료나 과학기술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인 40대 후반과 50대 초반이 적극 고려되고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장관이나 기업의 회장·사장등 명망가보다는 해당 분야에서 인정받는 브레인급들이 상당수를 차지할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귀띔했다. 대전의 유성과 대덕에는 김태용 전의원과 조영재 전총리실관리관,그리고 대덕연구단지의 선임연구원 출신도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충북 옥천과 분리된 영동·보은에는 이동호 전내무부장관,김건 서울신문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본부장,조병세 국무총리정무 비서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 모택동의 협상전략(모스크바 새 증언:24)

    ◎모,「개성에 중립지대 설치」 미제의 수용/협상 주도권 노려 파견한 밀사 통해 합의 지시/“38도선 군사분계선으로” 고수… 지루한 공방전 협상초기 모택동이 총지휘하는 북측대표단은 휴전을 성사시키기 위해 비교적 적극적으로 임했다.협상전략과 관련,스탈린의 답전을 받은 모택동은 같은날인 51년 7월14일 자신의 특별지시로 개성에서 비밀리에 협상을 현장지휘하는 이극농외교부 부부장과 김일성·팽덕회 앞으로 다음과 같은 지시문을 하달했다.그리고 모택동은 이 전문사본을 동시에 스탈린 앞으로도 보냈다.(전문번호 N21813) 『협상의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해 우리는 적이 제의한 중립지대 설치안과 적대표단에 기자를 포함시키는 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음.이렇게 하면 적이 만든 모든 협상장애물이 제거되는 것임.…중략…양측 대표단의 신변안전을 위해 중립지대로부터 민간인을 소개시키는 방안을 고려중임.물론 이 경우 그곳 거주 주민들이 물질적 손실을 당하지 않도록 대응책을 마련해야함』 같은날 이극농은 모택동앞으로 전문을 보내 38도선 분계선 설정에 대한 입장이 확고하다는 점을 거듭 다짐했다.(전문번호 N22945). ○회담장주변 검문 강화 『유엔군측 수석대표인 조이 미해군중장은 우리가 정치적으로 분단(군사적으로 분단을 이루지 못하게되니까)을 꾀한다고 비난하며 자기들의 공군력·해군력이 막강하다는 점을 계속 과시했음. 내일 회담에서도 우리는 우리 입장을 확고히 고수해 적이 입장을 바꾸도록 만들겠음』 이튿날인 7월15일 모택동앞으로 보낸 보고전문에서 이극농은 이 날자로 개성 일원에 중립지대를 설치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모택동은 이극농으로부터 받은 보고전문을 당일날 혹은 하루뒤 모두 스탈린에게 보냈기 때문에 이 전문사본들은 모두 러문서소에 보관돼 있게 된 것이다.전문번호 N21890)그리고 북측은 중립지대 인근 고속도로 주변에 사는 주민들을 보호키 위해 민간인 복장을 한 비무장 군대병력을 보내기로 했다고 보고했다.아울러 회담장 주변에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야간에는 지상군 병력을 투입해 경비를 강화한다고 밝혔다.이같은 조치를 하게된 이유는 『새로운 상황변화로 적 스파이가 침투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이극농은 보고했다. 같은날 보낸 다른 전문에서 (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이극농의 보고전문.전문번호 N21840.51년7월16일)이극농은 또한 38도선 군사분계선 획정문제와 관련,『우리 대표들은 38도선을 따라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에 그곳에서 전쟁이 종결돼야한다는 논리를 폈음.적대표들은 이 논리가 타당치 않다고 반박했음.우리가 판단키에 적은 우리로부터 다른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38도선문제에 반대하고 있는듯 했음』이라고 보고했다.이 보고서는 또한 이날 회담장분위기가 비교적 화기애애했다고 적고 있다.『적대표단에 30명의 기자가 참가했음.사진촬영때 질서가 지켜지지 않은 점만 빼고는 기자들 모두 얌전하게 행동했음』이라고 이극농은 보고했다. 7월17일 모택동은 개성의 협상대표단에 다음과 같은 지시문을 하달했다.(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지시문 사본.N21960.51년 7월18일) 『조선에서 적대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가 필수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해야함.지난 수일간 우리는 중립지대 설치,기자단 참여문제등 여러가지 양보를 했음.아마도 적은 우리가 외국군 철수문제에 있어 양보를 할 것으로 잘못 생각할지도 모름.앞으로 2∼3일동안 외국군 문제에 있어 적의 양보를 끌어내도록 힘써야함.예를들어 만약 적이 휴전발효 직후 외국군 철수협상을 바로 시작하겠다고 하면 이는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임.그러나 이 양보를 하지 않겠다면 우리도 우리의 요구를 계속 밀고나가겠음』 이같이 외국군대 철수문제에 있어서는 상당한 신축성을 갖기로 내부 의견을 모은 것이다. 7월20일 개성의 이극농은 모택동앞으로 다음과 같이 보고전문을 보내왔다.(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전문번호 N22073.51년 7월21일) 『외국군대 철수문제에 있어 미군측의 양보가능성은 매우 희박함.…중략…내일 회담에서 우리가 먼저 병력철수 문제를 제기하겠음.만약 적들이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아무런 양보를 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3일간 휴회를 제의할 예정임. 그리고 휴회가 끝난 뒤부터는 거의 회담종결 때까지 같은 입장을되풀이하겠음.그러면서 우리는 우리의 최종 요구선이 외국군대철수 문제를 의제에만 포함시키자는 것이라는 힌트를 주겠음.일단 의제에만 포함시킨다면 추후 다른 회담에서 이 문제를 토의해도 좋다는 뜻임』 ○분계선 놓고 교착상태 7월25일 이극농은 다시 모택동에게 보낸 보고전문을 통해 『적은 회담이 무산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음.적대표는 우리의 제안을 신중히 검토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고 밝혔다.그리고는 『내일 회담에서는 무엇보다도 38도선 군사분계선 설정문제를 제기하겠음.그리고 적어도 모레 상오 혹은 하오 회담 전까지는 우리측 양보안을 내지 않겠음』이라고 보고했다.이극농은 38도선 문제에 있어 적대표도 당장 양보안을 낼 것같지 않다고 전제,3∼5일 정도 격론을 거쳐야 결말이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보고에 대해 모택동은 7월28일 협상관련 지시문을 이극농에게 하달했다.『귀하가 보낸 조이 미군대표의 연설문을 읽었음.그의 연설은 어리석고 허황됨.군사행동을 끝내기 위해 협상을 하는게 아니라 전장에서 소리치는 고함소리 같이 들렸음.다음번 연설에서 귀하는 조이장군에게 진짜 휴전을 원하는지 아니면 전쟁을 계속할 구실을 찾는 것인지 물어볼 것.…중략…지상군이 군사행동을 중지한 뒤에도 해군·공군이 군사행동을 계속한다면 이는 진정한 휴전의도가 없다는 뜻임.38도선 군사분계선 입장은 끝까지 고수할 것.적이 허황된 주장을 계속하는 한 우리가 먼저 양보할 수는 없음』 38도선 군사분계선 문제를 놓고 양측이 1주일간을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하는 가운데 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졌다.이극농은 7월31일 모택동에게 보낸 보고전문에서 이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몇가지 방안을 제시했다.(전문번호 N22446.모택동은 이극농에게서 받은 전문을 51년 8월2일자로 스탈린에게 보고) 『(a)모든 매스 미디어를 총동원하여 적의 위선을 폭로할 것.(b)북경과 평양의 언론기관들을 동원해 여론을 선동해 비난전을 전개할 것.(c)군사행동을 강화해 적의 공군·해군이 저지르는 야만적인 군사행동에 대응할 것』 이극농의 전문에 대해 모택동은 신문기자들을 이용하는 방안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이와함께 자신들의 최대목표인 38도선 군사분계선 획정안에 대해서도 모택동은 매우 낙관적인 분석을 했다.(모택동이 스탈린에게 보낸 전문.이극농에게 보낸 전문사본.8월1일.전문번호 N22446) 『적이 논의의 초점을 제3의 의제로 바꾸려할 가능성이 있음.제3의 의제에서 얻은 수확을 가지고 다시 본론에 도전할 의향일 것임.적의 의도가 어떻든 우리는 38도선 문제를 끝까지 고수할 것.이 문제는 우리가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적은 수동적인 방어밖에 할 수 없음.회담교착상태가 계속되면 적내부 여론이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임.적은 이를 우려하고 있음.적이 회담결결을 원치 않는다면 교착상태 뒤 돌파구가 마련될 것임.기자들을 이용해 적 제의의 부당성을 홍보할 묘안을 궁리할 것』 미군측이 휴전선 기준을 현전선으로 하자고 주장한 반면 북측은 38도선을 기준으로 하자고 맞선 가운데 양측은 지루한 공방을 계속했다.미군측은 아울러 현전선을 기준으로 휴전선을 만들고 이 주위에 비무장지대와 완충지대를 설치하자고 제의했다.반면 북측은 일단 38도선을 기준으로 휴전을 성사시킨 다음 완충지대등 구체문제는 추후논의할 것을 제의했다.이 원칙 위에서 양측은 지루한 제의·수정제의·역제의등 갖은 말장난과 계략을 총동원해 회담을 끌어갔다. ◎새로 밝혀진 사실/중요결정 모스크바­북경 협의/평양은 휴전협상서 완전 배제 이번 자료를 통해 한국전쟁중 공산측 휴전협상의 중심 정책결정라인은 모스크바­북경­개성이었음이 밝혀졌다.일상적인 결정은 북경­개성(중국대표)의 라인이었지만 기본적이고 중요한 결정은 모스크바­북경 라인이었음도 확인되었다.모택동과 그의 현지 파견대리인이 사실상 휴전협상을 총괄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모택동은 회담의 중요진행상황과 내용을 전부 스탈린에게 통보,보고하고 있었다).가장 중요한 평양은 찾아 볼수 없다.즉 문서를 통해 볼 때 그들은 정책결정라인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아주 미세한 사항 하나 하나에 대해서까지 모택동이 현지 협상대표에게상세하고도 직접적인 지시를 내려 협상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그는 협상의 전략적·정책적 총괄자일 뿐만 아니라,단지 위치만 멀리 떨어져있는,사실상의 현지 대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자료에는 공산측이 당시 협상에서 어느 항목을 중요시하였고 끝까지 고수하려하였으며 어느 항목을 양보하려하였는지도 처음으로 밝혀져있다.즉 내부의 협상전략이 비밀자료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이를테면 모택동을 비롯한 공산측은 38도선에 의한 군사분계선 설정은 끝까지 고수하려 한 반면,당시에 매우 중요하게 집착하였던 외국군대의 철수문제에 대해서는 미군측의 완강함을 알고 내부적으로 이미 신축적으로 응하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모택동이,전쟁이 장기화되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의 내부에서 이를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고 그들은 이를 우려하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미군을 상대하고 있음도 밝혀져있다.여기에는 공산측 내부의 의도와 전략이 잘들어나 있다.
  • 손탁호텔 그후(외언내언)

    미스 손탁(손·).풍운 감돌던 구한말 개화기에 서양문물을 우리 궁중에 보급했던 여인이다.손탁(Sontag)은 1895년 러시아공사 웨베르가 서울에 부임할 때 따라 들어온 독일여성.프랑스에서 손탁은 서양식 식기와 장식품,악기와 의복을 가져와 고종의 궁중에 보급,궁중의 생활양식을 서양화하는데 한몫을 한다. 그러나 그보다 미스 손탁은 서울 정동에 세운 「손탁호텔」로 더 유명하다.그녀가 1902년에 세운 호텔은 서울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외교무대의 중심지가 되었다. 각국 대사들이 연회에 몰려들었고 화려한 무도회가 열리는 등 사교장으로,외교 1번지로 각광을 받았다.자연 미스 손탁은 사교계의 여왕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고종으로부터 경운궁(지금의 덕수궁)건너편에 있던 땅을 하사받아 호텔을 세웠다고 하니 고종의 총애도 두터웠던 듯 하다. 손탁호텔은 러시아계통의 2층양옥으로 우리 건축사에도 이름이 오를 정도.건물 전면이 아치형 창문으로 꾸며져 낭만적 정취를 풍기는 건축물이다.1904년 러·일전쟁때 영국의 처칠총리가 신문기자시절 방한해 이 호텔서 하룻밤 숙박을 했다.개화의 상징이기도 했던 손탁호텔은 일제 강점이후 옛 영화를 잃기 시작했다.마침내 1917년 이화학당에 팔려 교실과 기숙사로 사용되다가 1922년 헐리는 비운을 맞는다. 손탁호텔의 옛터에 다시 호텔이 들어선 것은 1969년,3층건물의 하남호텔이 문을 열었다.정동교회 맞은편 비교적 한산한 길가에 고풍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구한말 서울최초의 서양식 손탁호텔의 영예를 이어 받은 호텔이라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외관이었다. 1급호텔이 우후죽순격으로 이곳저곳에 세워지면서 하남호텔은 이름만 호텔이지 여관급으로 격하되었다.그 하남호텔도 명맥을 더 잇지 못하고 최근 헐리고 말았다.손탁호텔로부터 93년만에 우리나라 호텔 1호의 대가 끊긴 셈이다.
  • IPI총회 참석 코피 LA타임스 편집국장(인터뷰)

    ◎“기자의 본분은 끝없는 진실추구”/“LA한인 활약상 지면에 중점 반영”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국인들은 지식수준이 높고 매우 활동적입니다』 LA에서 발행돼 한국인에게 친숙하면서 발행부수 1백만부대에 자사 기자수만 1천여명인 LA타임스지의 편집국장겸 부사장인 찰스 셀비 코피씨는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제44차 IPI서울총회에 참석차 한국에 처음 온 그는 한국의 첫인상이 『매우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말했다. ­LA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으로서 한국인들에 대한 특별한 기사배려가 있는지. ▲LA지역은 60만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다른 소수민족들과 어울려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특히 LA폭동이후에도 한국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회복력을 보여줬으며 각계각층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때문에 우리는 기사의 초점을 이들에게 맞출 때가 많으며 지면을 많이 할애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기자로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사람으로서 신문기자가 갖춰야할 요건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실에 대한 끝없는 추구만이 좋은 기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간혹 어느 것이 진실인가가 의문시 되기도 하지만 독자들에게 보여졌을때 그들의 의문점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눈에 띄는 것이 진실이 아닐때가 많으나 기자의 자질이 이때 요구된다.물론 기자는 우선 글을 다룰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독자들에게 현장의 긴장감을 전달하는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LA타임스에서는 특별히 기자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이 있는지. ▲우리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소수민족 가운데에서 자질 있는 사람들이 기자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2년과정의 특별훈련프로그램이 있다.우리는 그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다른 군소신문사에서 이 과정에 위탁교육하는 경우도 있다.
  • 사전 선거운동 첫 구속/시의원 출마 30대/지역주민에 명함 돌려

    서울지검 서부지청 특수부 정만진 검사는 25일 오는 6월 서울 은평을 제5선거구에서 서울시 의회 의원에 출마하려던 이은석(36·전 K신문기자·은평구 진관외동)씨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6월 지방선거와 관련해 서울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구속된 이씨는 지난 17일 하오 진관외동의 한 미용실을 찾아가 명함을 건네면서 『시의원에 출마할 예정이니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등 지난달 17일부터 모두 43명의 지역구민을 상대로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이씨는 주로 서울 은평구 갈현동,진관내·외동 등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와 미장원 등을 찾아다녔으며 특히 지난 10일 명함을 돌리는 행위가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되니 중지하라는 경찰의 경고를 받고도 계속 선거운동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 영국의 의정활동/국회의원 선거비용 8백만원선(세계화 외국에선)

    ◎실사 엄격… 한푼만 틀려도 당선무효/활동비 아끼려 부인을 비시로 활용 얼마전 영국의 한 신문기자가 제약회사 로비스트를 가장해 의원들에게 접근한 일이 있다.『우리회사 제품을 홍보하는 내용의 질의를 해주면 거액을 주겠다』고 제의했다.대부분 의원들은 거부했지만 일부 의원들이 동의를 한 직후 신문에 기사화됐다.하원차원에서는 지금 윤리위 조사가 진행중이다.영국여론이 의원들에게 요구하는 청렴성과 윤리성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영국 선거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것으로 꼽히고 있지만 1백년전에는 상황이 달랐다.선술집인 펍(Pub)은 선거철만 되면 후보의 향응제공으로 항시 만원이었고 후보 한명당 지금돈으로 6억원쯤씩이 뿌려지기도 했다는 것이다.유권자 사이에서 「선거를 자주하자」는 유행어가 돌았을 정도다. 그러나 1883년 부정타락선거방지법이 만들어져 부정선거가 범죄시되기 시작했다.이제는 돈을 쓴다는 일은 상상도 못할 뿐 아니라 돈을 쓰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존 메이저 영국총리가 지난92년 총선에서쓴 선거비용은 8천4백72파운드70펜스(한화 1천16만여원).선거가 끝난뒤 내무부에서 발간하는 책자 「선거비용」에 나온 수치이다.이 가운데 메이저총리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고작 1백69파운드24펜스(20만3천원)밖에 되지 않는다.나머지는 후원회의 헌금과 일반당비에서 충당됐다. 선거비용이 실제사용액과 1펜스라도 차이가 나면 당선 무효가 된다.따라서 당선자가 신고하는 이 수치는 의사당의 시계인 빅밴(BigBen)만큼이나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의원 평균 선거비용은 7천파운드(8백40만원)정도.이렇게 적은 선거비용은 더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공영제가 확립돼 있고 후보개인이 돈을 써봐야 효과가 없는 정당선거의 뿌리가 깊기 때문에 가능하다. 차기 총리로 지목되던 보수당의 「거물중의 거물」 크리스토퍼 패턴(현 홍콩 총독)이 무명의 자유민주당 소속 도날드에게 패한 것이 정당선거의 대표적인 케이스.유권자의 70%는 정당만으로 투표를 한다는 분석이다. 패트릭 코맥의원은 깨끗한 정치의 이유에 대해 엄격한 선거법에다 선거기간이 한달 안팎으로 짧은 점을 들고 있다.또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면 언제든지 선거를 치러야하는 만큼 사전선거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흑색선전도 찾아볼 수 없는 신사도의 선거전이 펼쳐진다.때문에 선거에 나가 망신을 하는 경우도,집안이 망하는 일도 없다. 하원의원의 한달월급은 3백16만원정도(3만1천여파운드).보좌관및 비서관급여 명목으로 2백71만원정도를 더 받는다. 돈을 아끼기 위해 영국에는 부인을 비서관으로 고용하는 의원이 많다.한영의원친선협회장을 지낸 존 파의원도 부인이 비서이다.부부가 함께 같은 일을 하는 것을 아름답게 보는 영국의 사회분위기도 크게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 사이비기자 6명 영장/미성년자 술집소개·비리폭로 미끼 갈취

    ◎1명 입건·4명 수배 【수원=김병철 기자】 수원지검 특수부 김태희 검사는 9일 미성년자를 술집에 소개해준 한국경찰신문기자 이웅진(37)씨와 공무원과 업체의 약점을 잡아 기사화하겠다고 협박해 광고비명목으로 금품을 뜯어온 전 경기도민일보 송탄주재기자 김성도(43)씨 등 6명을 공갈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검경일보 수원주재기자 최승운(52)씨를 불구속입건했다. 검찰은 또 전 수도권일보 이천주재기자 이태한씨(36)등 4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김씨는 93년 5월쯤 송탄시 공무원 최모씨가 공무원신분으로 재직하면서 철골부품업등 영리사업을 하고 있는 사실을 기사화하겠다고 협박해 광고비명목으로 2백80만원을 받는등 2차례에 걸쳐 3백80만원을 챙겼다.
  • 모스크바의 「눈물」 이기동 모스크바 특파원(오늘의 눈)

    모스크바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눈물을 부른 직접적 원인은 한 방송기자의 죽음 때문이지만 그의 죽음이 모든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모스크바의 눈물 속에는 그의 죽음이 상징하는 희망의 상실에 따른 비애가 짙게 깔려 있다. 주말을 제외한 매일 저녁 7시 최고인기뉴스프로인 「피크타임」의 진행자이자 러시아 전역으로 방영되는 유일한 전국방송 오스탄키노의 젊은 사장 블라디슬라브 리스체프의 죽음은 러시아국민들에게 「우상의 몰락」을 느끼게 했다.콧수염을 단정히 기른 말쑥한 차림으로 화면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생활고에 찌든 시청자들에게 욕망의 대리충족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청부살인자의 총탄에 맥없이 쓰러진데 따른 허무와 분노로 모스크바는 지금 밤새 울었다는 젊은이들이 거리 곳곳에 모여 술렁이고 있다.2일 저녁 한 시민은 『우리가 사는 길은 이 나라를 떠나든지 아니면 아무 대책도 없는 정부에 세금을 그만 내고 그 돈으로 무기를 사서 스스로를 지키는 수 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역시 진짜 관심사는 사건의 배후이다.지난해 10월 군고위층의 부정·부패 사례를 파헤치던 신문기자가 폭탄테러로 사망한 사건 때도 배후에 대한 단서 하나 밝혀지지 않은 채 흐지부지됐다.연루자로 지목됐던 국방장관과 연방방첩부 인사들중 책임을 지거나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배후의 초점은 방송사의 재정 문제와 관련된 알력과 정치적 테러 두 갈래로 모아지고 있다.리스체프는 최근 광고비가 광고회사들을 통해 들어오는 과정에서 대다수가 증발한다는 점 때문에 광고수주 방식을 대대적으로 수술하려 했었다.오는 6월 총선과 관련,TV를 장악하려는 집단이 사주한 정치테러라는 설도 있다.또하나 광고비의 다수가 특정 정치집단에 불법으로 흘러들어갔다면 사건은 돈과 권력을 합친 복합적 문제로 연결된다. 모든게 의혹투성이인 와중에서도 시민들은 한가지만은 「감으로」 확신하고 있다.이번에도 배후가 밝혀지지 않는 것은 물론 범인도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범죄와의 전쟁을 강화하겠다는 옐친의 약속에도 국민들의 시선은 냉담하다.권력의 도덕성에 대한 국민들의불신 때문이다.이같은 불신의 세월을 살아야 한다는 점이 어쩌면 모스크바가 흘리는 눈물의 가장 큰 원인인지도 모른다.
  • 66세 사업가 「47년만의 학사모」/대명레저대표 조동오씨

    ◎48년 서울대정치학과 입학… 6·25로 포기/언론인거친기업가… 93년 딸 권유로 복학 언론인 출신의 6순 사업가가 서울대에 입학한지 47년만에 졸업,「최고령 재학생·최장기 졸업생」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화제의 주인공은 오는 25일 서울대를 졸업하는 대명레저 대표 조동오(66·영등포구 여의도동)씨. 조씨는 지난 48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이 한창이던 51년 4학년때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조씨는 전쟁직후인 54년부터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57년 재등록을 했으나 바쁜 업무때문에 또 다시 등록을 포기,제적됐었다.그러나 조씨는 서울대 특례재입학 조치로 지난해 2학기때 65세의 나이로 재입학하여 「비교정치론」「일본정치론」「한국정치론」 등 5과목을 막내아들뻘인 후배들과 함께 배우며 졸업이수 학점 1백40학점보다 많은 1백48학점을 땄으며 전체 학점 평균은 4.3만점에 2.12점으로 높지 않았으나 5과목에서 2.92의 비교적 높은 학점을 따내는 저력을 보였다. 대학 1년 후배인 김영국(65)전 부총창의 지도로 제출한 졸업논문은「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대한 일 고찰」. 조씨는 93년 김교수를 비롯한 동창들의 권유를 받은뒤 복학을 망설이다 맏딸 윤정(35·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일어과)씨의 설득으로 학업을 잇게 됐다고. 54년 조선일보 수습 1기로 기자생활을 시작한 조씨는 한국일보를 거쳐 중앙일보 일본특파원,중앙일보 편집국장(74년)을 엮임했다.
  • 사이비기자 둘 구속/폭로위협 금품 갈취

    【수원=김병철기자】 수원지검 강력부 이기동검사는 22일 경인매일신문기자 유종식씨(33),수도권일보기자 황선인씨(33) 등 2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갈) 혐의로 구속했다. 유씨 등은 지난 9월 경기도 용인군 용인읍의 유선방송업자 심모씨(38)에게 유선방송 관리비 인상의 부당성 등을 기사화할 것 처럼 밝힌뒤 군청 기자실로 찾아온 심씨로 부터 2백만원을 받은 혐의이다.이들은 또 지난 5월 중순 용인군 용인읍 D식품회사에 찾아가 이사 이모씨(45)에게 폐수 불법처리사실 등을 기사화할 것 처럼 말한뒤 같은달 30일 이씨로부터 1백5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 러 장성비리 폭로 기자/폭탄테러로 사망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군장성들의 비리를 폭로한 러시아의 일간신문기자가 17일 서류가방으로 위장된 부비트랩폭탄으로 폭살당해 충격을 주고있다. 피해자는 영향력있는 일간지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즈」의 드미트리 콜로도프(27)기자로 금년들어 동독주둔 러시아군 장성들이 무기등 군대자산을 현지에서 매각,엄청난 거액을 착복했다는 기사를 써 큰 파문을 일으켰던 인물.
  • 시체·탄피·올가미 어지러이/스위스·가 「태양사원」 집단자살 현장

    ◎20여명 머리에 총상… 10살짜리도/가인희생자중 기자·공직자 포함 ○…「태양의 사원」신자들이 집단으로 숨진 스위스 셰이리의 농가에서 발견된 희생자 대부분은,노끈에 목이 묶이고 플라스틱백을 머리에 뒤집어쓴채 숨져있었고 20명은 머리에 총상이 있었다.23구의 시체 가운데 프랑스인은 5명,캐나다인 4명,스위스인은 7명인 것으로 일단 신원이 밝혀졌으며 희생자중에는 10살된 어린이도 있었다.현장주변에서는 22구경소총 탄피 52개가 발견됐도 희생자 19명은 붉은 카펫이 깔린 한 방에 발을 중앙으로 하고 머리를 바깥쪽으로 향한 모습으로 원을 이룬채 모여 있었다. 희생자중 몇몇은 붉은색과 검은색 망토를 입고 있었는데 이는 이들이 입문단계에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셰이리 마을주민들은 이들 신자들이 항상 옷을 잘입고 예의바른 사람들이었을 뿐 사이비종교집단에 속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술회.주민들은 신도들이 단순히 「장수식」에 관심이 있어 채소를 가꾸기 위해 이곳에 이주해 온 것으로 믿었다는것. ○…캐나다 당국은 5일 스위스에서 불에타 숨진채 발견된 이른바 「태양의 사원」 교도 48명 가운데 기자등 퀘벡주 출신 4명이 포함돼 있다고 확인. 퀘벡주 경찰당국은 이들 퀘벡주 출신 사망자들은 신문기자인 조셀린 그랑 메종(44),몬트리올 동부 리셸리외 시장인 로베르 오스티기(50) 부부,퀴벡주정부 재무부직원인 로베르 팔라르도(47)등 4명이라고 밝혔다. 한편 「태양의 사원」 신도들의 집단 자살로 추정되는 이번 화재사건을 수사중인 스위스 경찰은 스위스 서부와 남부 2곳의 산장의 화재가 타이머 또는 전화로 작동되는 원격 전자조종장치에 의해 발생했다고 밝혔다. ◎교주 주레는 누구/종말론 신봉 민간요법의사 출신/“불로 신판” 주장하며 예수자처 종말론을 신봉하는 사교집단 「태양의 사원」은 「새로운 예수」를 자처하는 뤽 주레(46)가 교주로 캐나다에 본부를 두고 있다. 벨기에 출신으로 민간요법의사로 활동했던 주레는 종말론을 퍼뜨리며 스위스와 캐나다에 여러개의 사이비 종교집단을 만들어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신도들을 사로잡았다. 주레는 「불에 의한 심판」 등을 주제로 「파국」이나 「파멸」의 불가사의한 힘을 강조했으며 지난해 7월 불법무기 소지죄로 유죄판결을 받은뒤 스위스로 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은 그리스도의 십자군으로 자처하는 「태양의 사원」 신도들이 지난 17세기 유럽에서 비밀리에 종교활동을 폈던 사교집단 「장미십자회원」이나 「Q37」이라는 신비주의 종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중이지만 이 단체의 정확한 성격은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다. 미남형에 준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어 신도들의 호감을 산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주레의 행방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현지 경찰들과 수사당국은 이번에 집단으로 숨진 채 발견된 사람들 중에 그의 시신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 윤이상과 음악과 조국/임영숙 논설위원(서울광장)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만난 세계적 한국인이 윤이상씨였다.아직 「수습」딱지도 떼지 않은 햇병아리 기자로 그에 관한 박스 기사를 썼는데 71년 서독 킬시에서 초연된 그의 오페라 「요정의 사랑」을 다룬 외지의 평을 소개한 것이었다. 「요정의 사랑」은 72년 뮌헨 올림픽 개막작품으로 공연된 오페라 「심청」에 앞서 작곡가 윤이상씨의 명성을 확고히 해주었던 작품이었던 것같다.어느 인터뷰에선가 그는 「요정의 사랑」이 초연당시 무려 서른여섯번의 커튼 콜을 받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작품을 직접 만난것은 음악회를 통해서도 아니고 음반을 통해서도 아니고 몇몇 문인과 기자들이 함께 자리한 어느 모임에서였다.흥겨운 모임의 뒷자리가 으레 그렇듯 그 모임도 노래부르기로 끝나게 됐는데 한 사람이 윤이상씨가 작곡한 노래를 부른 것이다. 물론 처음엔 아무도 그 노래가 윤이상씨의 작품인줄 몰랐다.그 노래를 부른 사람은 평소 전혀 노래를 부르지 않아 노래 실력이 빵점인 나의 마지노선 역할을 하곤 했었다.그런 그가노래를 한다는 사실과 생전 처음 듣는 노래에 일동은 숨을 죽였는데 노래를 마친 그가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교가라고 밝혀 폭소가 터져나왔다. 윤이상씨는 56년 파리 유학을 떠나기전 부산고등학교에서 잠시 음악교사로 재직했고 당시 부산고 교가를 작곡했다.유치환 작사의 그 교가를 노래와는 인연이 먼 졸업생은 참으로 독특하게 불러서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유쾌하지만 음악적이지는 못했던 그 만남이후 최근까지 윤이상씨의 음악을 들을 기회는 없었다. 그만큼 윤이상씨는 우리에게 「실체」가 아닌 「풍문」이었다.그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된 음악외적인 이유로 그와 그의 음악이 금기시된 탓이긴 하지만 음악분야를 오랫동안 취재했던 기자로서는 불행한 일이었다. 그래서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국내 첫 시도인 「윤이상음악제」(8∼17일·서울 광주 부산)에 달려갔다.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서 열린 첫날의 관현악연주회 청중은 여느 음악회 청중들과 달랐다.S석,A석등 이른바 비싼 좌석은 빈 자리가 많았지만 무대 뒤 좌석같은값싼 좌석은 촘촘히 메워졌다.그런 객석엔 숙연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윤이상의 음악은 의외로 감동적이었다.서양인들에겐 난해하고 신비스럽게 비쳐지는 그의 음악이 우리에겐 낯설지도 난해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졌다.그의 음악어법은 서양 현대음악이지만 그 속에 담긴 정서는 한국적이었던 탓일까.교향시「광주여 영원히」에서는 국악기인 박이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강동석씨가 협연한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아름다웠다.산사의 목탁소리를 연상시키는 타악기와 어둡고 감미로운 바이올린의 대화부분이 압권인 2악장 아다지오는 눈물이 나올만큼 아름다웠다. 연주가 끝난후 청중들은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씨를 다섯차례나 불러낼 정도로 박수갈채를 보냈고 지휘자 임원식씨는 악보를 가슴에 안고 객석의 환호에 답하며 작곡자 윤이상씨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윤이상 없는 「윤이상음악제」에서 돌아오는 길은 씁쓸했다.풍문의 그를 만난지 20여년만에 그의 음악의 실체를 접하기는 했지만 인간 윤이상은 여전히 풍문에 머물러있어야 한다는 것이 서글펐다. 77세의 병든 노구로 고향땅을 밟고자 하는 그의 염원을 가로막아야 했던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이번 귀국이 좌절된후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그는 안숙선씨의 남도민요CD를 가져갔다고 한다.남도창을 국제화하고 싶다는것이 작곡가로서 그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그런 그가 귀국후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것은 기우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속에 깊이 스며있는 그의 친북한 행적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아직도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하지만 그의 귀국이 북한을 이롭게 하기보다는 우리를 이롭게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맴도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음악과 정치와 조국을 생각하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명성왕후 시해 칼」 발견/국제한국연 최서면원장,일 신사서

    ◎칼집에 “단칼에 늙은 여우 살해” 문구/낭인들 자백담긴 보고문도 찾아내 1895년 일제가 저지른 명성황후(민비)시해 만행때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칼과 범행에 동원된 일본인 낭인들의 자백이 담긴 일본재판소의 보고전문이 발견됐다. 국제한국연구원의 최서면원장(67)은 22일 『1895년10월8일 당시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삼포오루)의 지시를 받은 일본인 낭인중 한명인 후지가쓰 아키(등승현)가 명성황후를 건청궁(경복궁)에서 살해할때 사용한 칼을 일본 규슈(구주)에 있는 한 신사에서 발견했다』고 밝히고 칼의 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일본 제일의 칼 제작자 다다요시(충길)가 만든 이 칼은 길이 1m20㎝로 칼집에는 「일순 전광 나 노호」(한 칼에 늙은 여우를 살해했다)라는 문구와 함께 후지가쓰의 호인 「몽암」이 새겨져 있다. 최원장은 이날 『관련사료에 민비시해의 일본측 암호명이 「호수」로 나타난 점을 감안하면 칼집에 새겨진 「늙은 여우」는 민비를 지칭함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민비시해후 일본으로 돌아가 규슈지방의 한 신사에 이칼을 헌납한 후지가쓰는 공범들과 함께 히로시마재판소에서 조사를 받았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이후 절에서 잠시 은거하다 나온뒤 여학교를 세우는등 교육자로 활동하다 8·15해방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민비시해사건에 가담한 일본 낭인들을 신문한 히로시마재판소의 구사노(초야)검사장이 당시 법무대신에게 보낸 1895년11월9일자 보고전문은 일본 국회도서관에 보관된 것으로 구로다 기요다카(흑전청륭·강화도조약체결당시 일본측 전권대사)관련 문서중에서 발견됐다. 특히 이 전문에는 『민비시해의 하수인을 찾던중 히라야마 이와히코(평산암언)등 13명이 「민비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는 내용이 실려있어 당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 이들이 시해범인 것을 알고서도 일본 수사당국이 무혐의로 풀어주었고 또 정부수뇌부가 범행을 배후조종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 전문에는 『후지가쓰등이 시해당시 명성황후처럼 보이는 여자가 많아 확인할 길이 없었다.이에 모두 옷을 벗긴뒤 유방을 살펴 명성황후 나이인 44세정도의 여자를칼로 베어 살해했으며 이를 저지하다 일본인 관리의 총을 맞고 쓰러진 궁내부대신 이경식을 다시 칼로 베었다』고 돼있어 당시의 무참한 살육상과 시해사건에는 낭인뿐아니라 일본인 관리들도 개입됐음을 입증하고 있다. 최원장은 이에대해 『내년으로 다가온 민비시해 1백주년을 맞아 지난달 자료수집차 일본을 방문,당시 시해때 동원된 낭인들의 후손으로부터 만행때 사용된 칼이 신사에 보관돼 있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끝에 칼과 관련자료를 발견했다』며 『지금까지는 민비시해때 일본인 부랑아들만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신문기자인 아다치겐조(안달겸장),교육자인 사사도모쿠사(좌좌우방)등 당시의 일본 지식인층과 외교관·군인등이 함께 저지른 극에 치달은 만행』이라고 말했다. 당시 일본 주한공사 미우라 고로는 독일·프랑스·러시아의 삼국간섭(1895년5월)이후 친러정책을 지향한 명성황후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낭인과 군대를 동원,같은해 10월8일 상오7시쯤 민비를 시해했다.
  • PC통신에 김일성애도문/경찰,게재 여대생 수배… 사법처리 방침

    서울경찰청은 8일 여대생 오모양(22·광주시 동구 대인동)이 컴퓨터통신망 「하이텔」을 통해 김일성사망에 대한 애도문을 게재한 혐의를 잡고 오양의 신병확보에 나서는 한편 이날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오양의 집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이기로 했다. 컴퓨터 통신망으로 유포된 문구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지난해 「사노맹」의 이념을 여과없이 게재,물의를 빚었던 「현대철학동호회」사건 이후 이번이 두번째다. 오양은 지난달 16일 컴퓨터통신망 「하이텔」을 이용,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회 동호회 명의의 게시판에 「김일성주석의 사망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애도문을 싣고 『김주석의 사망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김주석이 사망한 뒤 남한정부는 언론에 김일성암살설을 유포하며 민족간 화해와 신뢰를 저해했으며 극단적인 반공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전남대 분향소사건을 조작해 왔다』는 등의 주장을 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오양을 검거하는대로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 의전에 북측 이해부족… “미완의 합의”/정상회담 실무접촉 안팎

    ◎회담형식 「배석자있는 단독」으로 조정/TV중계 등 이견은 큰 걸림돌 안될듯 지난달 28일 예비접촉에서의 전격적인 합의와는 달리 1일의 실무접촉은 난항을 겪은 끝에 완전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그렇다고 해서 과거처럼 실무적인 부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상회담 자체가 무산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추가 접촉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타결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접촉이 끝난뒤 우리측 윤여전대표는 『경호문제를 포함한 전반적인 의전문제에 있어 북한의 이해가 의외로 부족했다』고 말했다.대결 분위기였다면 우리측 대표는 북한의 저의를 의심하는 발언을 했어야 마땅하다.하지만 윤대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상황이 전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여겨지는 사례다.윤대표는 「현격한 의견 차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그것이 접촉의 결렬을 예상한 발언은 아닌 것 같다. 이날 접촉에서 북한은 대표단의 규모를 수행원 1백명과 보도진 80명 등 모두 1백80명으로 하자는 우리측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북한은 정상회담의 복수 개최에도동의했다.다소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회담의 형식도 단독정상회담으로 한다는데 의견의 접근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전답사반(선발대)의 파견과 TV중계팀 파견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북한은 선발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선발대의 역할과 필요한 시간에 대해서는 별로 비중을 두지 않았다.회담 15일전까지 15명 안팎의 선발대가 평양에 도착해야 한다는 우리측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북한은 회담 며칠 전이면 충분하다면서 인원도 그렇게까지는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었다.북한의 생각은 선발대가 그렇게 할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북한은 우리측 선발대가 미리 들어와서 의전절차를 준비하고 경호상태를 점검한다고 회담장 주변과 숙소등지를 돌아다니는 일을 허용할 수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북한은 TV중계팀의 수행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행낭편을 통해 테이프를 서울로 보낸뒤 지정된 뉴스시간에 방영하면 된다고 버텼다. 하지만 선발대와 TV중계팀의 파견은 회담의 형식에 비해 그리 큰 문제는 못된다. 회담이 우리측의 안대로 단독회담의 형식을 띠기는 했지만 고위급 각료 1명 또는 2명씩 배석하는 어정쩡한 형태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데 아쉬움이 남는다.김일성과의 단독 대좌에서 특유의 결단력으로 담판을 짓는다는 김영삼대통령의 복안이 그대로 실현되기에는 어딘가 충분하지 못한 구석이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처음에는 단독회담 없이 확대정상회담 한차례면 충분하다고 나왔다.단독정상회담만 두차례 갖자는 우리측의 생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확대정상회담이란 대개 정상간의 단독 대좌에서 어떤 원칙이 합의됐을 때 열리는 것이 보통.대체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열리는 제3국 정상과의 회담에서는 단독정상회담에 이어 으레 고위급 수행원들이 배석하는 확대정상회담이 추가로 열린다.하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성격상 그런 회담과는 거리가 있다.지금까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정부의 최고책임자들간의 회담이다.서울에서 회담이 다시 열릴 가능성을 상정하더라도 확대정상회담만으로는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일조차도 힘들것 같다.배석자가 있는 단독정상회담도 마찬가지라고 할수 있다. 배석자의 숫자만 적을뿐 실질적으로 확대정상회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단독정상회담을 반대하는 배경에는 김일성을 따르는 혁명 1세대 원로보수세력과 김정일을 추종하는 소장파들간의 알력이 숨어있는 것처럼 비쳐지기도 한다.회담의 형식이 단독으로 결정되면 김정일진영은 그 결과를 직접 알 수 없다.그래서 김정일이 단독정상회담을 수용하지 말도록 했을 가능성도 엿보이는 대목이다. ◎“예비접촉 합의는 두정상 결단의 소산”/판문각 실무대표 접촉 이모저모 ○…1일 열린 남북실무대표접촉은 지난번 예비접촉에서 중요한 문제가 합의됐기 때문인지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시작. 이날 접촉에는 당초 예상과 달리 안병수조평통부위원장이 아니라 백남준정무원책임참사가 북측대표로 나와 다소 의외라는 반응. 백대표는 우리측 윤여전대표에게 『통일각은 처음이시죠.85년도에 착공했는데 석달만에 완공했다』고 회담장을 소개.이에 윤대표도 『역사적인 장소가 되도록 해야죠』라고화답. 윤대표는 이어 김용순북측예비접촉단장과 안대표의 안부를 물으면서 『김단장은 언변도 좋고 풍채도 좋은신게 정치인같다』고 칭찬. ○…양측대표는 지난번 예비접촉에서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성사시킨데 대해 덕담을 교환하면서 사명감을 피력. 북측 백대표는 『북남최고위급회담으로 세상이 들썩하는 것 같습니다.북녘에선 분단 50년을 한해 앞두고 통일의 역사를 창조하는 것 같다며 흥분하고 있다』고 소개. 우리측 윤대표는 『분단 반세기 만에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연다는 시간적 공간적인 의미를 넘어서 민족사적 의미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너무 기대가 커서 과연 회담이 이루어지는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고 호응. 두대표는 이어 지난번 예비접촉에서 합의가 이뤄진 것은 두정상의 정치적 결단때문에 가능했다는데 의견을 일치. 백대표가 『김영삼대통령이 용단을 내렸습니다』고 말하자 윤대표는 『지금까지 회담 관례로 볼때 김대통령이 첫 회담장소로 평양을 받아들인 것은 보통의 용기와 결단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지기힘든 것이었다』고 언급. ○…북측 백대표는 『장마가 지면 직업과 계층별로 반응이 다른데 농민은 관개가 잘돼 괜찮지만 청소년들은 별반 좋아하지 않는것 같다』며 『북쪽 청소년들은 1년에 15일씩 국가 부담으로 야영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를 무척 기다리는데 비가오면 좋지않기 때문』이라고 설명. 윤대표는 이에 대해 『옛날에 우산장사와 짚신장사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는데 날씨가 좋아도 고민이고 날씨가 나빠도 고민이었다는 말이 있다』고 맞장구. 백대표는 인사말을 교환한뒤 『우리 오늘 끝내도록 합시다.비가 와도 방안에 앉아 있으니 문제가 없겠지요』라며 회담시작을 제의. 윤대표는 『저희측 북한문제 전문가들로부터 백선생이 참가한 회담은 다 잘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지난번 회담도 약간의 진통은 있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까』라고 화답. 이에 백대표는 큰 소리로 기분좋게 웃으며 『사실입니다.우리 오늘 속보로 나가봅시다』라고 말한뒤 회담에 진입. ○…이날 하오접촉은 저녁 늦게까지 진행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회담시작 1시간만에 종료. 양측대표들은 농담까지 주고 받는 등 밝은 분위기속에서 회의를 속개. 우리측 윤대표가 먼저 북측 수행원으로 나온 최승철 조평통서기국부장을 가리키며 『최선생은 쌍꺼풀도 지고 얼굴이 미남인데 우리처럼 못생긴 사람들은 원래 미남옆에는 잘 안가는 법』이라고 칭찬하자 좌중은 웃음바다. 이에 북측 백대표가 『원래 남남북녀라고 했는데…』라고 응답하자 윤대표가 다시 『70년대초 서울에 온 북측회담대표중 이청일씨라는 여성대표가 당시 신문기자였던 나에게 「조선여자는 남북 가릴것 없이 다 이쁘다」고 말한적이 있다』라고 말하는등 서로 덕담을 교환. ○…이날 접촉에서는 개성에도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이 있음이 북측대표 입을 통해 밝혀져 화제. 하오 접촉에서 구본태통일원통일정책실장이 『개성이 한창 개발중이라는데요.』라고 운을 떼자 북측 백대표는 『금년초 왕건릉 확장공사가 완료됐고 종합대학인 성균관대학도 2년전에 설립됐다』고 설명.백대표는 『성균관대학은 주로 경공업중심의 대학으로 개성이 인삼으로 유명한만큼 「인삼학부」도 개설돼 있다』고 소개. ○…당초 관심을 모았던 대표단 규모문제는 이날 상오 접촉에서 이미 확정됐다는 후문. 회의 벽두에 우리측 윤대표가 『취재기자단 수를 좀 늘려야 될 것같다』면서 북측의사를 타진하자 백대표는 『기자수는 그냥 80명으로 하는게 좋겠다』고 말해 기자단외의 대표단 1백명등 전체 일행수가 모두 1백80명으로 결정됐다고. ○…한편 북측기자들은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데 대해 남측기자들에게 『남조선 주민들의 반응은 어떠냐』고 집중 질문. 이들은 『전해 듣기로는 남조선 주민뿐 아니라 미국 일본등 외국의 반응도 대단히 좋다는데 사실이냐』고 우리국민과 서방의 움직임에 관심.
  • “탈출 벌목공 인도주의 입장서 처리”/한·러입장 공동회견 일문일답

    ◎러시아 가스전개발 적극 협력방침/김 대통령/북한핵 다자간 회의서 해결 바람직/옐친 김영삼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2일 크렘린궁에서 두번째 단독및 확대정상회담을 마친뒤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다음은 회견 일문일답 내용이다. ­회담에서 러시아가 제의한 다자간회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나. ▲옐친대통령=우리 두사람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특히 이 문제는 러시아와 국경을 같이하고 있는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데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체결했기 때문에 협정이 계속 효력을 갖도록 해야한다.그동안 미국이 주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지만 해결이 지체되고 긍정적 결과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를 클린턴 미국대통령과도 토론하기로 했다. 우리가 이번에 제의한 내용은 국제공동체가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도록 영향을 주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공동으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김대통령도 우리의 입장을 잘 받아들였고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북한핵과 관련,유엔 안보리의 제재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는데 유엔제재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또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러시아가 자동개입토록 돼있는 북한과 러시아의 협정에 대한 입장은. ▲옐친대통령=북한핵문제에 대한 국제회의의 결론이 나오지 않은 단계라서 말하기는 이르다.그러나 북한이 현재의 입장을 계속 고집하고 NPT를 탈퇴할 때는 우리와 국경이 너무 가깝다는 점에서 위협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북한에 대해 경고하고 이후 제재로 가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본다. 조·러조약에 대해서는 최근에 해석을 새롭게 했고 그전에 있었던 견고한 조항을 완화시켰다. ­러시아는 옛소련의 계승국으로 차관상환문제를 이어받았는데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가. ▲옐친대통령=우리는 이 문제를 토론했다.물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커다란 프로젝트를 집행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야쿠트가스전과 나홋카 항구개발,모스크바무역센터 건설을 집행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특히 김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이해감을 가지고 받아들이려 했고 상환을 연기하는데 대해 김대통령이 이해할 것으로 느꼈다. ▲김대통령=물론 확대정상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상당히 중요하고 양국간 우호에도 관계가 있는 문제인 만큼 관련부처에서 실무적으로 협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가스전개발은 러시아의 장래에 큰 영향을 주는 문제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러시아방문의 가장 큰 성과는. ▲김대통령=우선 러시아가 옐친대통령의 주도하에 변화와 개혁이 일고 있음을 느꼈다.이번 러시아방문을 통해 양국간에 깊은 우애가 생겼다.또한 모든 문제에 대해 큰 이견이 없었다.어제 다차회담에서 3시간 이상 격의없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미진한 것은 오늘 단독및 확대정상회담에서 논의했다. 특히 두나라가 더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옐친대통령의 한국방문을 요청했고 옐친대통령도 기꺼이 승낙했다.이것은 한국과 러시아가 한층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갈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옐친대통령=우리가 토론했던 문제중 어떤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는 말할수 없다.제일 중요한 것은 회담의 분위기다.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아주 우호적이고 서로 이해하고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돈독히 하는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다. ­KAL기 피격사건과 관련한 보상문제에 책임질 용의는 없는가. ▲옐친대통령=이 사건은 냉전시대의 비극적 사건으로 많은 사정이 합쳐 일어났다.국제조사위도 이 문제에 대해 모든 면을 심의했다.국제조사위의 결론에 따르면 승무원의 실수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비행기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 벌목공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가. ▲옐친대통령=한국측에서 이 문제를 제기해 우리 영토에 있는 외국인들이 자의대로 출국할수 있다고 했다. ▲김대통령=이 문제는 내가 제의했으며 옐친대통령도 이들이 비록 러시아에 있지만 본인이 원한다면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자유스럽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옐친대통령=그렇게 했다는 것을 나 자신도 확인한다. ­회담에서 군수분야의 정보전달이나 무기구입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가. ▲김대통령=여러가지 얘기가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양국군의 수뇌와 국방장관 실무자간에 협의하기로 했다.이와관련해 내가 강력히 제의한 것이 있다.현재 북한에 대해 무기부품을 계속 지원 판매하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어제밤부터 강력하게 얘기했다.이에대해 옐친대통령도 김대통령이 그렇게 강력하게 얘기하는데 이를 지켜주겠다고 했고 그점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북한의 중앙통신과 로동신문기자들이 참석,녹음까지하며 상당한 관심을 표시했는데 특히 이들은 옐친대통령이 북한핵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발언이 나오자 머리를 맞대고 뭔가 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워싱턴·도쿄 이어 3번째 가설/청와대∼크렘린 핫라인 청와대와 크렘린을 잇는 핫라인의 설치합의로 우리나라의 핫라인이 3개로 늘어나게 됐다.청와대에는 이미 워싱턴과 도쿄를 연결하는 두개의 핫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핫라인은 정상들의 직통전화를 일컫는 말이다.대통합을 앞두고 있는 유럽지역은 핫라인이 보편화되어 있다.시간을 다투는 긴급사안이나 주요현안이 생기면 특별한 의전절차 없이 전화로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독일·프랑스등이 즐겨 사용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화를 들면 곧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예컨대 청와대와 크렘린에 상대국만이 알 수 있는 고유번호의 직통전화를 별도로 설치해놓는 것이다.따라서 무작정 전화를 걸면 안되고 통화를 하기 전 다른 채널을 통해 언제·무슨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미리 전달해야 한다.
  • “일제,싱가포르 화교 대량 학살”/일 전언론인 수기「대본영…」폭로

    ◎한번에 2백여명씩… 손묶은채 “참수”/침략사 잇단 부인은 진실 모르는 탓/“사실대로 보도할 수 없는 전쟁” 깊이 참회 제2차대전 당시 일본군 종군기자였던 한 원로 언론인이 종군시 목격한 일본군의 만행과 함께 참회의 심정을 담은 수기를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24일 보도한 화제의 주인공은 도야마(부산)시에서 발행되는 기타니혼(북일본)신문의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장 임원을 거쳐 현재는 자문역을 맡고 있는 올해 82세의 마쓰모토 나오지(송본직치)씨. 그는 나가노 전법상이 『남경학살은 날조됐다』고 망언,사임한 것을 비롯해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걸핏하면 과거 침략사를 부인하는 발언으로 이웃나라의 분노를 자아내곤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팔순을 넘긴 나이에 최근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신념과 참회의 마음을 담아 「대본영 파견 기자」라는 제목의 수기를 출판사 계서방에서 펴냈다. 수기 내용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싱가포르 함락직후 수천명에서 수만명의 화교들이 학살됐다는 설과 관련된 「화교학살」 목격담.이는 학살이 자행된 뒤 반세기가 넘어 처음으로 나온 증언이다. 『하루는 젊은 중위 하나가 「같이 가자.취재거리가 있다」하고 권유해 동료들과 함께 갔다.철조망으로 둘러쳐진 그곳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패어 있고 구덩이 앞에는 손을 뒤로 묶인 2백여명의 화교가 무릎을 꿇린 채 나란히 앉아 있었다.차례로 눈이 가려졌다.머리를 흔들며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일본도가 공중을 가르고 머리가 떨어졌다.피가 솟구치고 몸이 구덩이로 떨어졌다.10여명이 잘리는 것을 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진실을 보도하지 못한 곡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국민징용령에 따라 동원돼 육군 감독하에 놓여 있었다.원고는 일본에 보내져 군의 검열을 받은 뒤 신문과 잡지에 실렸다.「보도전사」라고 불리기도 했다.해군에도 이같은 보도반원이 있었다.하지만 나도 매스컴의 말단에 있으면서 펜을 들어 전쟁 수행을 거들고 부추긴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반성의 자세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군이 아시아 전역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던 1941년 도쿄신문의 전신인 국민신문기자였던 그는 국민징용령에 따라 육군보도반원으로 편성돼 제1진으로 말레이시아반도에 파견됐다.제1진은 작가·신문기자·화가·사진작가등 2백여명으로 현지에서 군과 행동을 함께 하면서 전과 보도및 선무공작등을 담당했다. 싱가포르 점령시에는 야마시타 도모유키(산하봉문)일본군사령관이 아더 퍼시발영국군사령관에게 「예스냐 노냐」며 무조건 항복하라고 윽박지르는 장면을 취재해 일본에 보내기도 했다. 수기는 말레이시아반도에 파견된 1년여에 걸친 현지 체험을 담은 것이다. 마쓰모토씨는 『수기를 쓰게 된 것은 지난 92년 미야자와 전총리가 한국인 종군위안부문제에 공식으로 사죄하고 지난해 호소카와 총리가 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이라고 인정하면서였다』고 말한다. 『이같은 말이 나오기까지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렸을까를 생각했다.2차대전의 실상을 국민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고 기억을 더듬어 쓰기 시작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언젠가 진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기자로서의 신념도 작용했다. 마쓰모토씨는 수기를 앞에 두고 『전쟁이 시작되면 사실을 쓸 수 없다.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방한 미 오버도퍼교수·전 WP지기자(인터뷰)

    ◎“영변원자로 4월초 가동중단”/“북핵수준 현재론 밝힐수 없어/미의 북핵정책 페리 입김 커져” 미국 존스 홉킨스대학의 던 오버도퍼 객원교수는 4일 『워싱턴 포스트에 특별기고한 「북한이 지난 4월초 기술상의 문제로 영변 5MW급 실험용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했다」는 글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서울에 온 그는 서울에서 그 신문에 실린 특별기고문과 그것을 다시 보도한 한국신문을 읽어봤다고 했다. ­한국 방문목적은. ▲책을 쓰는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왔다.지난 72년부터 현재까지 한반도주변 주요강대국,즉 미국·일본·중국·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역할및 변화에 대해 역사적으로 쓰려고 한다.서울에 오기 전에는 일본과 모스크바에도 들렀다. ­만난 인사들과 면담내용은. ▲한국정부의 고위관리를 포함,30여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학자들도 있고…,한국에 투자한 외국인기업가도 포함되어 있다.주로 그 사람들이 직접 활동하던 때의 상황을 물었다. ­영변 실험용 원자로의 가동이 지난 4월초 기술상의 문제로 중단됐다고 했는데,그 근거는. ▲틀림없는 사실이다.김일성주석의 생일 1주일 전에 일어났다.생일하고 가동중단하고 직접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도,그렇다고 밝히기도 어려운 문제다. ­북한의 핵개발수준은. ▲말할 수 없다.이제는 학자이기 때문이다.기자신분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이젠 그럴 수 없는 처지다. ­북한핵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에서도 강·온 양론이 대립하고 있다는데. ▲미국 국무부와 국방성의 대립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그러나 북한핵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정책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둘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그런데 특기할만 한 것은 페리국방부장관의 독특함이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는 북한의 의도는. ▲지난해 신문기자를 그만둔 뒤 워싱턴 포스트에 「클린턴의 아시아정책」등 3차례의 특별기고문을 썼을 뿐이다.아무리 핵전문가라고 하지만 이젠 학자다.변하는 상황을 당장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좀더 지켜보고 얘기하겠다.
  • 「연극쟁이」/「퀘르테트」/독일연극 두편 초연

    ◎극단 세미­강강술래 소극장서 각각 공연/인간에 내재된 위선과 본능 극화/뮈러 작품세계 조명 심포지엄도 현대 독일어문화권의 대표적 극작가로 꼽히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하이네 뮤러,이들의 화제작 「연극쟁이」와 「퀘르테트」(4중주)가 국내무대에 처음 올려져 관심을 모은다. 전형적인 사회주의 작가로 자신이 속한 사회현실에 날카로운 메스를 가하고 있는 이들의 작품은 독일을 중심으로 프랑스 이탈리아등 주로 유럽무대에서 활발히 공연되고 있다. 극단 세미가 5월10일까지 선보이는 「연극쟁이」는 가족유랑극단이 극중극인 「역사의 바퀴」를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극단주인 아버지 브루스콘의 위선과 허무를 그린 실험성 짙은 작품.「알프스의 베케트」라는 별명이 시사하듯 부조리극의 경향을 잇고있는 베른하르트는 이 작품에서도 인간존재의 모순을 그로테스크한 기법으로 탁월하게 들춰낸다.오스트리아 태생의 그는 독일의 저명한 문학상인 뷔히너상을 비롯,프랑스 이탈리아등의 이름있는 문학상을 여러차례 받은 신문기자 출신의 작가.지난 63년 첫소설「혹한」으로 오스트리아문학대상을 받았으나 수상연설에서 정부를 비판,그 자리에 참석했던 문화부장관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는 일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또 임종때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조국 오스트리아에서 70년간 출판하거나 공연하지말라』는 유언을 남겨 그의 유작은 주로 인접국인 독일에서 무대에 오르고 있다.93년 독일 본 시립극단 객원조연출자로 활동하다 올 봄에 귀국한 임수택씨가 연출을 맡았으며 베른하르트 전문학자인 장은수씨(외대 독일어과 교수)가 번역했다.문영수 최윤영 박흥준 송연주등 출연.서울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하오4시30분·7시30분. 동독출신 작가 하이네 뮤러의 「퀘르테트」(5월5∼29일 강강술래 소극장에서 공연)는 2인극 형식으로 18세기 프랑스 애정소설인 라크로의 「위험한 관계」를 토대로 씌어진 작품.한계 상황속에서의 인간의 본능과 위선,쾌락과 부패등이 섬뜩하게 그려진다.프랑스혁명 당시의 살롱,제2차세계대전때의 방공호,제3차대전 이후의 핵대피소등 시대와 장소를 다양하게 설정해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영화배우 장승화,탤런트 조성희씨가 출연한다.하오4시·7시30분 공연. 한편 3,4일 이틀간은 하이네 뮤러의 연극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심포지엄을 마련,작가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돕는다.강강술래소극장에서 갖게될 이 행사에는 미국·독일·일본등에서 공연됐던 뮤러의 대표작 「햄릿머신」을 비디오로 제작·상영하며 뮤러의 작품세계에 대한 토론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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