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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민합심「강진 병영면사」펴내/고대∼조선시대 해상교역·군사 요충지

    ◎산재한 성터·유적 발굴,옛 긍지 되살려/“지방자치단체서 향토문화뿌리찾기 뜻깊은 일”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은 지명에서 알수 있듯이 조선5백년동안 호남지역의 군수권을 통괄하던 병마절도사의 잔지가 위치한 군사요충지였다.우리 주위에는 이처럼 역사속에 뿌리를 내린 향토문화의 현장이 곳곳에 산재돼 있다. 최근 이같은 병영면의 향토사를 담은 「강진군마을사­병영면편」이 강진군과 병영면 그리고 강진문화원의 공동작업끝에 발간됐다.향토문화뿌리찾기가 활발한 요즘 이같은 면단위사를 지방자치단체에서 펴낸 것은 뜻있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강진군 병영면은 마한­백제­통일신라­고려­조선에 이르는 역사적 변천을 거쳐 오늘날 12개 법정리에 22개 자연마을을 이루고 있는 해상교역과 군사요충지로 유명한 지방이다.여말선초에 걸쳐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던 이 지역보호를 위해 1417년(태종17년) 광산현에 있던 병마절도사의 영이 옮겨와 이후 전라도군수권을 통괄하는 사령부로 당시 50여 군·현의 병권을 장악했던 곳이다.병영성터,공적비군,남장대,북장대등 당시의 유적이 지금도 남아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또 이곳은 을묘왜변(1555년),임진왜란(1592년),정유재란(1597년),동학난(1894년)등 국난을 당할 때마다 화를 입은 호남지방의 수난의 고장이기도 했다. 「병영마을사」는 이같은 병영면의 연혁과 지리적 환경,문화적 성격,자료편을 모은 총설편과 12개 마을의 각사 그리고 이 지역 출신인사들의 글을 모은 병영면예찬,병영면에 내려오는 마을문서등 모두 4백35쪽으로 짜여졌다.특히 이 책은 강진군과 병영면등 자치단체가 지원하고 강진군문화원과 민간에서 운영하는 탐진향토문화연구회가 발간의 주축이 되어 만든 관민합동작품이라는데 의미가 있다.자료수집과 탐문작업에 마을주민 모두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참여한 점 또한 남다르다. 이번 작업을 통해 군사요충지로서의 병영면이 갖고 있는 모습뿐아니라 효자와 열녀를 장려하는 전래풍속,인품·학식·덕망있는 사람을 동수장으로 모셔 중요 일을 결정한 동수장제도,수십년동안의 마을품앗이역사를 기록한 진세봉상책등 타지역에서는 보기힘든 습속을 찾아내는 성과도 거뒀다. 김갑현병영면장은 발간사에서 『우리 고장의 자랑스런 역사에도 불구하고 유적과 전설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를 않아 안타까웠다』면서 『이번 마을사발간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야 할 숙원인 병영성복원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2)

    ◎전통적 특질/역사를 관류해온 인본 평등사상/홍익인간­한얼­인내천 등 모두 한 맥락/화랑도의 충­효­신은 정의의 가치체계 한민족은 오랜 민족문화사 전개과정에서 슬기로운 민족고유문화를 바탕으로 시대에 따라 여러 외래문화를 수용하였다.그러나 이를 주체적으로 재창조하면서 특징있는 우수한 한국정신문화를 발전시켜왔다는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민족이 추구한 문화생활은 온고지신의 전통문화 계승 발전이다.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한국인의 정치사상이나 정치사회의식구조를 논의함에 있어 그것이 새롭다거나 또는 어느 선진 특정문화권의 영향이라하여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수는 없다.그 전통적 요소는 역사과정에서 시종일관된 내용과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즉 같은 전통적 요인이라 하여도 농업사회의 경우와 현대대중사회나 또는 오늘과 같은 고도산업사회의 경우와는 그 나타나는 방식이 현저하게 상이할수도 있다. ○지연 등 극복 가능 따라서 전통적 요인이 연속되는 과정에서 창조적 변화가 있고 거기서 고차적인 승화·발전의 요소를 찾아야할 것이다.이와같이 볼때 중요한 것은 역사발전 속에서 어떤 점에 연속성을 인정하고 또 어떤 점에 어떠한 형태의 변화를 발견하느냐 하는 것이다.여기서 한국정신의 전통적 기반의 특질을 살펴보고 그 연속과 변천,나아가서 오늘의 한국실정에 조명,그 바람직한 방향에 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국은 고래로 사회구조의 기본단위로 가족이 중핵을 이루어왔다.고대사회의 씨족·부족으로부터 현대산업사회의 핵가족화에 이르기까지 혈연공동체본위를 자연스런 체질로하여 발전해온 것이다.이런 특수한 상황하에서 한국의 정치는 공공성이나 공익성을 강조하되 그것은 서구의 개인본위의 민주주의사회와는 다른것이었다.다시말하면 개인이 전체속에 매몰된 가운데 집단전체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이를 위하여 상징으로서 가장이나 국가가 중심이 되는 집단주의적 권위체계가 성립하게 되었다. 우리 겨레는 또 일찍이 동질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단일민족으로서의 역사적인 기반위에서 통일민족을 형성·발전시켜왔고 그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의 활력으로써 친족공동체적 통합력 또는 대동주의적 친화력을 배양해왔다.이러한 한민족의 전통문화의 잠재력을 오늘날 정치적 지도 차원에서 국민적 에너지로 결집시켜 힘바람을 불러일으킨다면 오늘의 병폐인 지연 혈연 학연및 직연을 초월할수 있지 않을까 한다.그리하여 공동체의 일체감을 바탕으로 국민화합과 민족통합을 이룩해서 이른바 총체적 위기상황을 타개하고 더나가 남북통일성취에 기여할수 있을 것이다. ○대동적 친화력 배양 우리의 전통문화 속에 남아있는 귀중한 유산으로서의 인본주의적 위민사상과 정의정신에 입각한 순결의지와 정신적 창조성 그리고 진취적 개혁정신과 자주독립을 지향하는 강건한 주체의식등을 오늘에 조명해서 계승해야 한다. 인본및 민본주의적 평등사상은 홍익인간의 건국이념과 조선조의 천·인 합일의 한얼사상,조광조의 지치주의와 율곡의 국시론,그리고 한말의 인내천사상등으로 연면하게 계승되었다.이는 치자와 지도자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고귀한 합리적 지도성을 기반으로 하는 지도자의 정직성과신뢰성을 강조한 것이다.만일 이러한 전통속의 문화적 유산을 오늘날에 되살린다면 이기주의에 빠져 공사를 혼동하고 변절과 기회주의를 일삼아 빙공영사를 다반사로 하는 오늘의 병든 정치풍토를 쇄신할수 있다.또 건전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집단이기주의를 탈피하고 준법사회와 민주화개혁을 추진하는데 활력소가 될것이다. 우리민족의 결백성에 근거한 정의정신은 한국인의 정신적 창의성과 진보주의 개혁정신의 근본원리가 되었다.정의정신은 신라 화랑도에서 충·효·신의 윤리가 되고,고구려에서는 사회정의와 균복의 이상으로,또 고려조에서는 최승로가 제창한 정치개혁논리로서 시무28조와 광종의 관제개혁등으로 나타났다.조선조에서는 사림정치의 대의명분론과 지치주의유신론,혁구경신론,그리고 일련의 실학운동과 한말의 근대화운동등으로 계승되었다. 이러한 전통적 정신구조의 유산은 오늘날 한국과 같이 사회전반에 기강이 이완되어 도덕성이 쇠퇴하고 국민생활에서 가치전도와 부조리가 확산되어 이른바 한국병에 신음하는 소위 총체적 위기상황에서 수용되어야할 가치체계이기도 하다.이는 국정쇄신과 사회개혁의 이념을 정립하고 실천하는데 견인력이 될것이며 나아가서는 개혁과 개방이 촉구되는 세계적 추세에 적응될수도 있다.더불어 복지화와 인간화의 시대적 요청을 우리 나름으로 해결하고 국내정치 안정과 국제협력증진 그리고 세계평화에 기여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근본주의의 맥락인 정의주의가 한민족을 통해 대외적으로 표현되어 나온것이 자주의 원리이다.한민족의 자주독립정신은 역사상 빈번한 외침에 대한 항쟁의 주체의식으로 또한 외래의 우수한 보편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재창조하는 문화수용능력으로서 한민족주체사 전개의 원동력이 되었다. 자주정신의 빛나는 유산은 통일신라에서 지배계층인 육두품들의 국가의식및 문화의식으로,고려에서는 이민족에 대한 항쟁의 주체의식으로,조선조에서는 세종조의 6도4군 국경선확정과 선비들의 애국애족정신이나 민족운동으로 승화되기도 했다.그것은 일제시대에는 민족독립운동으로 각기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한편 자주의식은 문화면에서 고대에 유·불·선(도)을 융합한 최치원의 현묘지도에서 찾아진다.이어 조선조에서 훈민정음의 창제,주체적인 국사전의식정비,과학기술,국악,행약등 민족문화의 창달과 제반 자주화정책 그리고 율곡의 10만 양병설,한말의 위정척사운동과 민족운동에서도 국가적 자주의식이 발현되었다. ○의식구조 개선 시급 이와같은 전통적 정신문화구조는 일제식민통치하에서 많이 변질왜곡되었다.더욱이 해방후의 급격한 사회·경제·정치변동의 혼란속에서 각분야의 지도층과 국민의 정신구조에 부조리를 드러내기에 이르렀다.그 부조리는 대체로 지도층과 국민의 역사의식과 민족적 주체의식의 결여와 정치적 지도력의 빈곤에서 비롯되었다.그리고 한국인의 가치관의 혼란과 의식구조의 후진성등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했다.우리는 이와같은 왜곡된 정신문화 상황하에서 특히 정치사회의식을 개선하여야할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첫째로 역사의식과 민족적 주체의식을 함양하여야 한다.역사의식이란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과 역사관을 의미하며 민족이 어떻게발전해왔으며 또 어떻게 발전해가야 하는가 하는 민족주체사에 관한 자기 나름의 통찰력을 민족사적 주체의식이라고 한다.우리의 정치발전지표가 민주복지국가의 건설이요 정의사회의 구현이며 나아가서 통일민족국가의 완성이라 할때 이에 부합되는 역사의식으로서 무엇보다 민족주의적 자주의식의 정립이다.그리고 민주적 국가관을 확립하는 가운데 이에 준거한 정치발전정책을 체계화,단계적으로 구현해 나가야 할것이다. 둘째로 오늘날의 바람직한 지도자는 인간적 자질에 있어 도덕성과 신뢰성,그리고 공익성과 관용성의 특질을 구비햐야한다.그것은 시대의 역사적 요청인 민주화와 국제화및 개방화 그리고 복지화와 인간화의 제요구를 충족시켜 국민적 일체감을 증진하는데 기여할 것이다.또 우선 내정을 견고히 하고 나아가서 국가의 이익과 민족의 번영을 기약하는 대외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도 지도자의 길이기도 하다.특히 전통적 유산을 기반으로 정치인과 지도자·공직자의 정치도의 내지 사명의식이 높아져야 한다는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셋째로 한국인의 가치관의 순화와 의식구조의 개선으로 건전한 사회윤리가 확립되어야 한다.오늘날 가치관의 혼란과 배금주의현상 그리고 인간부재와 정치지상주의적 권력지향의 병리가 만연되어 생활질서에 혼란이 야기되고 각종사회 부조리와 범죄행위가 증가되었으며 아울러 시민의식과 직업윤리가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우린 법과 질서의 엄수,공중도덕의 고양,개인의 능력과 업적에 따르는 응분의 대가보장,인간의 인격과 권익의 존중이 요구된다.아울러 사회윤리면에서는 신뢰와 협동,질서와 공익이 제고되고 인간관계에서 상호이해,개인의 발전과 사회발전이 조화된 직업윤리와 소명의식이 제고되어야 할것이다. □김운태 약력 ▲1921년 경기화성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미 미네소타주립대 대학원 수료 ▲문학박사(서울대) ▲서울대교수 ▲한국행정학회장 한국정치학회장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부원장 ▲현재 학술원회원 ▲저서:「조선왕조행정사」 「미군정의 한국통치」 등 다수있음
  • “민심수습·화합 최우선/국가권위 바로잡아 사회분위기 일신”

    ◎김영삼당선자,언론사장단과 오찬 김영삼대통령당선자는 29일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선거가 남긴 후유증과 상처를 하루 빨리 치유하는 일』이라면서 『새정부를 구성하는대로 흐트러졌던 민심을 수습하고 국민화합을 다지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김당선자는 이날낮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국신문협회 초청으로 언론사사장단과 오찬을 갖고 『신한국창조를 위해 취임초부터 해이해진 국가권위와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침체된 사회분위기를 일신시키는 일부터 시작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김당선자는 『그러나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 혼자의 힘만으로는 한국병을 고치기 어렵다』며 『무엇보다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의식개혁이 따르지 않고는 참다운 개혁을 성취해갈 수 없다』고 말하고 『집단이기주의와 지역이기주의가 계속 존재하는한 이 나라는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당선자는 언론의 역할과 관련,『언론도 이제는 더욱 새로워지고 성숙해져야 한다』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나 양비론과 양시론,상업주의를 앞세운 무정견과 선정주의 요소를 극복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당선자는 『지금은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시대정신과 국민욕구에 보다 능동적으로 부응해야 할 때』라면서 『시대를 선도하는 언론과 정통성있는 국민의 정부가 공존하는 성숙된 관계로 발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백화점업계 “매출 부진”/트리 등 장식비용 줄여(업계 새경향)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모의 분위기는 호텔과 백화점의 외부를 밝히는 화려한 장식에서부터 시작된다.그러나 올해에는 서울시내 대부분의 호텔과 백화점들이 연말 치장비용을 대폭 줄였다.장기간의 경기부진에다 대선바람에 파묻혀 매출증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해마다 이맘때면 으레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반짝이는 오색의 안개등으로 건물 전면을 화려하게 장식해서 손님을 끌던 백화점과 호텔들의 이번 연말 장식비용이 지난해보다 20∼30% 줄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연말 장식비용으로 1억1천5백만원을 썼으나 올해에는 9천5백만원으로 17%를 줄였다.신세계백화점도 지난해 썼던 자재를 다시 쓰고 전등수를 줄이는 방법으로 장식비를 지난해의 8천4백만원에서 올해에는 5천4백만원으로 35%를 삭감했다.현대백화점 역시 지난해보다 23%를 줄인 7천9백60만원을 썼다.백화점들의 올해 연말 장식비용은 철마다 한번씩 바꾸는 외관 장식비용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장식비용을 줄이는 추세는 호텔업계도 마찬가지이다.호텔신라는 지난해 연말 5천만원을 사용했으나 올해에는 4천만원으로 20%를 줄였다.
  • 조항래해제 「유방집」/독립지사 조소앙선생의 대표적 서술

    ◎민족수난기 애국선열 81인 전기수록 「유방집」은 항일독립지사 조소앙선생이 19 05년부터 19 32년까지의 민족수난기에 활동한 애국선열 81인의 사적과 당시 독립운동의 목표·행동등 민족정신을 수록한 대표적 저술물. 이 책은 19 32년 5월 중국 남경의 대동학회에서 간행되었으나 그동안 전해지지 못하다가 이번에 국내에 단 한권 남은 유일한 소장본인 조명하의사의 유독자 조혁래씨의 본을 영인해 출판한 것.신라시대 김대문의 「화랑세기」가 있었기 때문에 후세에 화랑정신이 전해진 맥락과 같이 독립의사·열사들의 전기를 남김으로써 이들의 민족투혼을 계승코자한 조소앙선생의 집념어린 산물이다. 이 책의 내용은 ▲중국인들의 서문과선생이 직접 쓴 유방집서 ▲중국인들의 휘호 ▲단군의 사진,의사·열사의 사진등50여장의 사진이 게재된 조편 ▲암살당요목표 ▲사건을 중심한 독립운동일람표 ▲의사·열사의 전기인 유방전등 크게 6부문으로 구성됐다.이가운데 핵심부문은6번째 유방열전으로 민영환,이봉창,조명하등 81인을 다시 9개로 나눠 인물별로살펴보고 있다. 「열전제9」부문중 윤봉길전의 일부와 이회영전이 낙정된 상태여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 아쉽긴하다.그러나 19 05년 을사조약으로 국권을 상실당한뒤 순국한 민영환으로부터 19 32년 윤봉길의 상해홍구공원의거에 이르기까지를 기록했다.자결로 항거한 의사·열사·반일의병전쟁을 전개한 인물,헤이그 특사,만주지역의 독립군,일제 요인및 관계당국에 폭탄을 투척한 선열들의 생애와 활동 그리고 업적등을 각 인물별로 정리한 전기가 담겨져 있다. 조소앙선생은 18 87년 경기도 교하군(현 파주군)에서 태어나 성균관과 명치대학을 졸업한뒤 19 13년 중국 상해로 망명,독립운동에 참가한 독립투사이자 이론가.3균주의를 창안하였으며 대한독립선언서등을 기초하였다.임시정부의 외무부장과 한국독립당의 핵심간부로도 활동했다. 특히 이 책에는 지금까지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조명하지 못한 독립투사들의 전기가 다수 실려 있어 사료부족에 허덕이는 우리나라 항일민족독립운동사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소앙지음,조항래해제,아세아문화사 1만원.
  • 백제/일 지배위해 왕자 파견/최재석교수,한일문화학술대회서 주장

    ◎고위관리 장군 승려 화공까지 보내/461년부터 2백년간 대화위 통치 백제는 일본점령지인 대화위(오늘날 일본중부 나라지역) 경영을 위해 AD 461년(개로왕7년)부터 멸망할때까지 2백여년동안 총독으로 왕자를 파견했으며 동시에 정기적 부정기적으로 관리를 파견했다는 새학설이 나왔다.이는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가 최근 「고대한국문화의 일본전파」를 주제로 연 한일문화국제학술대회 발제를 통해 제기됐다.백제의 일본지배설을 처음으로 다룬 발제는 최재석교수(고려대 명예)의 「대화위 파견 백제왕자의 거처와 대화위왕의 거처」.최교수는 일본서기에 나타난 대화왜왕과 백제총독의 거처비교를 통해 양자의 종속 지배관계가 확고했음을 밝혔다.이와 더불어 파견된 관리들의 기록을 검토,구체적 경영사례를 분석하고 있다. 최교수는 대화왜왕의 궁전은 5세기까지는 띠(아)로 지붕을 엮다가 7세기중엽에 이르러 전나무껍질(회피)로 이은 보잘것 없는 것이어서 왕궁이라기 보다는 왕의 거처라는 표현이 적당하다고 지적했다.당시 왕궁이 불과 20∼30년만에 잦은 이동을 할만큼 나무기둥을 땅에 박아 지은 허술한 건축양식을 보인데 반해 백제총독이 묵었던 난파관은 2백년이상 한곳에 위치하고 있을 만큼 견고했다는 것이다.따라서 난파관은 돌기초 위에 기둥을 세워 지은 기와집이었다는 점에서 백제와 대화왜와의 힘의 관계를 알수 있다고 주장했다. 백제가 대화왜 경영을 위해 파견한 총독은 왕자였으며 그밖에 일정기간 파견되는 관리와 부정기적으로 파견되는 관리그룹도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AD461년 개로왕의 동생이 최초의 총독으로 파견된 다음 505년(무령왕5년)에는 왕자가 파견되는등 모두 8명의 왕자가 대화왜경영을 위해 일본에 간 기록이 있음을 들추어냈다. 한편 대화왜에 본격적으로 경영팀이 파견된것은 무령왕때.513년(무령왕13년)에 행정을 맡은 오경박사와 군사를 맡은 백제장군이 파견됐다는 최교수는 오경박사의 일본행을 정기파견으로 해석했다.그래서 3년후인 516년 새로운 오경박사로 교체됐으며 백제장군은 부정기파견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1년8개월만에 귀환했다는 것이다. 이들 파견 관리들중 우두머리는 백제의 16계급관등중 3·4위 관등의 높은 관리였던 것으로 미루어 백제가 당시 대화왜 경영을 중시했음을 알수 있다는 것이 최교수의 주장이다.또 이들의 파견때는 승려·사공·와박사·화공등도 파견하여 불사를 건립케 했는데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588년(위덕왕35년)에 창건한 법흥사를 꼽았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이밖에도 「일본구주의 환웅상과 일본속의 단군문화」(박성수),「단군신화의 뿌리와 계통」(황목박지),「팔번신앙과 한국과의 관계」(중야번능),「한국고대문화의 일본 전파」(최인학),「향춘신사와 신라신」(오야정남),「고조선 문화권과 문화전파」(권태원),「한국과 맺어져 있는 일본 영언산의 산의 문화」(장야각)등이 발표됐다.
  • 문화유적 발굴과정 담은 사진전/26일까지 지하철 경복궁역서

    광복이후 지금까지 조사된 주요문화유적의 발굴과정을 담은 사진전시회가 14일부터 26일까지 지하철 경복궁역 미술관에서 열린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가 여는 문화유적발굴사진전은 우리 고고학 발굴의 역사를 일관되게 보여줌으로써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를 높이기위한 것이다. 전시 대상유적은 지난 71년 발굴된 무녕왕릉과 최근 발굴된 일련의 가야유적을 비롯,구석기시대에서 삼국시대,통일신라에 이르는 46개이다. 각유적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유물출토장면,보존처리후의 모습은 3백50여장의 사진과 40여개의 대형 패널에 담겨 전시된다.또 천마총 황남대총 안압지등의 발굴장면이 비디오로 상영된다.
  • 문화부,새해 「이달의 문화인물」 발표

    문화부는 93년도 「이달의 문화인문」을 일괄 선정해 발표했다.이는 선정된 문화인물에 대해 각계로부터 폭넓은 의견을 수렴,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기념사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문화부가 선정한 내년도 「이달의 문화인물」은 문화예술계와 교육계 학계 유관단체 및 시민의 추천을 받아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선정됐다.내년도 「이달의 문화인물」은 다음과 같다. ▲1월=율곡 이이(1536∼1584)조선시대학자·문신 ▲2월=고송 이인문(1745∼1821) 조선시대 화가 ▲3월=장보고(?∼846)통일신라의 무장 ▲4월=불곡 이●(1376∼1451) 경자자와 갑인자,간의·혼의등을 고안한 조선시대 과학자 ▲5월=윤극영(1903∼1988) 아동문학가 ▲6월=원효(617∼686) 신라의 승려·사상가 ▲7월=송촌 지석영(1855∼1935) 종두를 실시한 의학자 ▲8월=안중근(1879∼1910) 독립운동가 ▲9월=난계 박연(1378∼1458) 조선초기 음악가 ▲10월=외솔 최현배(1894∼1970) 국어학자 ▲11월=위암 장지연(1864∼1921) 한말 언론인 ▲12월=윤백남(1888∼1954) 영화인
  • 한민족­한국민족/형성시기는 언제

    ◎역사문제연,민족기원·정체관련 토론회서 처음 대두/“주체의식 싹튼 개화기이후”가 지배적/통일신라 후반으로 보는 전근대설도 한국민족 개념의 형성과 적용시기를 놓고 학계가 논란을 벌이고 있다.이는 최근 역사문제연구소가 주관한 한국민족의 근원및 정체에 관련된 토론회에서 제기됐다.한민족과 한국민족을 서로 다른 개념으로 파악한 가운데 학계가 처음으로 부각시킨 이 토론회에는 역사학은 물론 정치학,철학,인류학,언어학 분야의 학자들까지 대거 참여했다. 이 토론에서의 발제는 서울대 노태돈교수(한국사)의 「한국민족의 형성시기에 대한 검토」와 서강대 박호성교수(정치학)의 「유럽 근대민족형성에 관한 시론」등 두편.노교수는 한국민족 형성에 관한 논의에서 주된 고찰대상 요소로 공통의 언어·문화·혈연·지연·민족의식·국가및 경제를 들었다.또 민족형성의 시기와 관련,일반민들의 민족공동체에 대한 공속의식(공촉의식)을 기준으로 개화운동과 동학농민전쟁을 거쳐 갑오개혁에 이르는 일련의 개화기를 전후해 전근대민족과 근대민족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을 제시했다. 박호성교수는 근대민족및 민족국가의 성립은 신분질서의 타파,국민주권의 수용,국민언어의 창안등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전제하고 민족개념의 세계사적 보편성과 민족사적 특수성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따라서 국가경제체제의 발전양상으로 볼때 한국민족은 근대이후에 형성된 한 현상으로 보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 정창렬교수(한양대 한국근대사)는 주민들이 자기집단에 대한 헌신성을 갖고 주체적으로 움직인 시기가 개항이후이기 때문에 그 시기는 한국민족 형성기로 파악했다.그러나 아직까지 한국민족은 두개의 국민국가,두개의 국민경제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완성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주진오교수(상명여대 한국근대사)는 대한제국의 봉건적 수탈이 강화되면서 충성의 대상이 왕조국가가 아닌 국민국가 나아가 민족국가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중시했다.그래서 한국민족은 독립협회 단계에서 구체화되고 자강운동 단계에 들어와 비로소 형성됐다는 근대형성설 논리를 폈다. 이와는달리 이종훈교수(성균관대 정치학)는 전근대형성설을 주장,한국민족의 형성을 통일신라후반으로 잡았다.고조선을 비롯한 인접국가들의 형태는 씨족연합이나 부족국가 형태였지만 삼국시대초에 부족연합상태가 되고 이어 삼국통일후 종족연합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다가 고려기에 들어 민족국가가 형성됐다는 것이다.임형택교수(◎고전문학)도 한국민족은 동아시아세계에서 중국·일본 그리고 동북의 여러민족과 관계를 맺고 대결하는 가운데 민족의 주체를 지켜왔던 역사적 특수성을 들추어냈다.그 바탕은 민족적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임교수는 이러한 점을 고려,한국민족의 근대형성설을 반대하고 나섰다. 역시 토론에 참가한 임지현교수(한양대 서양사)는 한국민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17세기에는 혈연이나 언어 문화적 공통성이 강조됐다면 20세기후반에는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려는 시도가 보다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따라서 민족형성 논의가 거시적 안목의 통일논의로 확대돼야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 8회 향토문화대상 시상/서울신문사 제정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제8회 향토문화대상시상식이 7일 하오3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시사위원장인 원로시인 구상씨를 비롯,심사위원·가족친지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영예의 대상을 수여받은 설창수씨(76·원로시인·경남 진주)에게는 상패와 부상 3백만원,본상 수상자인 ▲신라문화동인회(회장 김태중) ▲이명미(49·인천·무용가) ▲노유상(76·서울·한국민속연보존회장) ▲연규한(61·강원 정선·향토사연구위원) ▲박득봉(73·전북 정읍·서예작가) ▲이상용씨(41·경남마산·연극인)등 6명에게는 상패와 부상 2백만원이 각각 수여됐다. 윤형섭서울신문사장은 치사를 통해 『지금은 입으로만 전통문화를 부르짖는 풍토와 외래문화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생활속에 젖어 있는 문화의 전승만이 민족의 정통성과 일체감을 보존하고 전통문화를 유지하는 길』이라고 수상자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 강릉향토사료관 개관/영동지역 역사유물 연구·보존 활로텄다

    ◎유·무형문화재 1천여점 체계적 전시/대학박물관 중심 탈피… 시민에 친근감/개관되자마자 “만원”… 교육·관광 새 명소로 강릉향토사료관의 개관으로 박물관이 없는 영동지방의 역사유물 및 민속자료에 대한 보존·연구가 활기를 띠게 됐다.사료관은 또 지난 15일 개관되자마자 하루 1천명이상의 관람객이 찾아드는 등 지역민에 대한 사회교육의 장은 물론 강릉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강릉향토사료관은 강릉시가 지난 89년부터 모두 28억원을 들여 죽헌동177의4 오죽헌경내 5천2백22평의 대지위에 세웠다.건물은 지상1층 지하1층에 2백50평 규모.외관은 전통미를 살린 한옥이며 내부는 현대식으로 지어졌다. 사료관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유물 및 자료는 모두 1천여점이며 이가운데 4백70여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강릉시는 당초 사료관의 개관작업을 하며 어떤 성격을 택하느냐를 놓고 고민에 빠졌었다고 한다.민속박물관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강릉지역에 독특한 민속이 다양하게 전래되고 있어 관객의 흥미를 끌수 있는 전시가 가능하다는것이었다.또 민속박물관이라는 명칭이 일반인들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며 어느정도 권위도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였다.그러나 대세는 향토사료관을 주장하는 쪽으로 기울어갔다. 이들은 최근 영동지방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청동기·원삼국·삼국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체계적으로 발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동은 물론 강원도 전체에 박물관하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때문에 민속자료에 국한될 우려가 있는 민속박물관보다는 박물관과 민속박물관의 기능을 함께 하면서 규모는 작은 향토사료관이 되는게 바람직하다고 주장을 폈다.우선 지역내 역사유물및 민속자료에 대한 수집 보존 연구를 하고 후에 박물관이 세워지면 해당기능을 넘겨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탄생과정을 거쳐 사료관은 선사문화실과 역사미술실 민속문화실 야외전시장으로 4개부문의 전시영역을 갖추게 됐다. 먼저 66평규모의 선사문화실에는 명주 심곡리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 찍개 긁개를 비롯,강릉 명주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유물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다.특히 명주 안인리의 원삼국시대유적지를 바탕으로 당시 생활상을 재현해 이지역 선사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54평 규모의 역사미술실에는 보물 제81호인 한송사터 석불좌상을 비롯,강릉12향현의 유품,관동8경도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92평 규모의 민속전시실에는 중요무형문화재인 강릉단오제와 강릉농악을 축소형으로 재현하고 민가와 생활용구등을 다양하게 전시,이지역 선인들의 생활상을 살필수 있게 했다. 야외전시장은 지역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선정비들과 신라시대의 석탑기단면석,석불입상들을 한데 모았으며 양양 포월리의 석실고분과 괸돌의 하부구조도 옮겨 전시하고 있다. 사료관은 현재 장상준관장등 14명의 직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사료관의 개관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관동대 신호웅박물관장은 『그동안 영동지역의 유물수집과 연구는 대부분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대학박물관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만큼 사료관의 개관이 반갑다』고 말했다.신관장은 『그러나 사료관이 단순한 관광자원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유물수집과 연구에 획기적인 예산을 배정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극단 무천,창단기념 「숨은 물」 공연/4일부터 한달간 성좌소극장서

    ◎침탈·변절의 역사속서 이땅 지킴이의 정신 조명 극단 무천이 오는 4일부터 한달동안 성좌소극장에서 정복근씨의 새작품 「숨은 물」로 창단공연을 갖는다.서울 창단기념공연에 앞서 지난달 30일부터 11월10일까지 도쿄,교토,고베등 일본 3개도시 순회공연을 호평속에 마친 극단 무천은 이번공연을 통해 뒤늦게 우리 연극팬에게 정식 신고하는 셈이다. 연극 「숨은 물」은 침탈과 변절로 점철된 역사속에서도 이땅과 사람들을 지켜온 지킴이의 정신을 오늘의 시각에서 접근한 작품.장마다 심문자·변절자·피의자가 등장해 3각구조를 이루며 7명의 배우가 장마다 역할을 바꾸는 역할극과 옴니버스형식을 동시에 띤다.신라의 삼국통일시기와 이성계의 고려왕조 전복시기,구한말 일제침략기를 각각 배경으로 시대마다 외세를 등에 업고 권력을 차지한 심문자와 변절자,역사의 대세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피의자가 등장한다. 지난해 국립극단의 「사로잡힌 영혼」과 송년연극「동지섣달 꽃본듯이」를 연출했던 김아라씨가 연출을 맡아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시도하고 있다.중진배우 신구씨를 비롯해 최재영 유영환 정규수 노영화 방은진 지춘성등이 출연한다. 탈춤과 수벽치기,북장단등 다양한 볼거리가 관객과 3면으로 만나도록 설치된 무대위에서 펼쳐지며 특히 북소리와 아리랑을 변주한 피아노연주가 이뤄내는 절묘한 조화는 관객의 심금을 울리기에 손색이 없다. 공연시간 하오7시30분(금·토·일 하오4시30분 7시30분).문의 745­1214.
  • 무용가 정재만씨(이세기의 인물탐구)

    ◎힘차고 광활한 춤사위… 남무의 대가/벽사에 사사한 승무,만개앞둔 꽃망울 연상/“생활이 춤”… 삶의진실 담은 전통 재현 노력/작품구상땐 무작정 거리 헤매… 「구두한켤레」 별명도 □연보 ▲948년3월 경기도 화성출생 ▲72년 경희대 무용학과 졸업 74년 동 대학원 졸업 ▲73∼79년 국립무용단단원 ▲80년 국립국악원 수석무용 ▲80∼87 세종대 무용과 조교수 현재 정재만무용단,남무단대표(정기공연),벽사 춤아카데미 대표,서울예술단 무용감독,한국무용가협 부이사장 「92 춤의해」운영위원,숙명녀대 무용과 교수 국립무용단 무용극 출연 「별의 전설」「왕자호동」「꿈꿈꿈」「시집가는날」등서 주연 해마다 대한민국 무용제·무용예술큰잔치·무형문화재 공연참가 「춤소리」「□」「춤 그 신명」「먼길」「홰」「비천무」「바라춤」「학춤」「승무」「살풀이굿」「학불림굿」「춤4319」「달맞이」「비단타령」「빛과 소리」(88서울올림픽)「자화상」「한량무」「꿈」「광대의 꿈」「북소리사위」「태극선의메아리」「길놀이 마당놀이」뮤지컬 「옹고집전」「양반전」「지신밟기」안무 84년부터 미국·유럽각지역·동남아·호주·남미·이스라엘·연변·북경·상해 백두산 등 각지역 순회공연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중요 무형문화재평가회의 「학무」최우수상,82대한민국 무용제 안무상,84대한민국 무용제 대상,제45회 디종 국제민속예술제 금상 수상 정재만의 춤은 힘차고 광활하다.수평의 폭이 넓고 수직은 하늘로 솟구친다.긴 장삼 얼기설기하여 공간으로 획 뿌리치는 무태에는 비구름이 묻어있다.그리고 움직임 움직임마다에 기쁨과 슬픔,고통과 오뇌가 휘몰아치다 잦아든다. 신라시대 화낭을 연상케 하는 씩씩한 기상과 자신감 넘치는 풍모가 정재만 춤의 특징이다.그가 한번 춤추기 시작하면 그 주술적인 힘에 매료되어 관객은 어깨춤이 절로 나거나 한동안 숨을 멈추게 된다. 특히나 그의 「승무(승무)」는 날이 갈수록 깊은 맛을 더하여 푸른 못속에 뜬 연(연))꽃 봉오리가 만개하려는 찰라다.이제 그는 춤을 알게된 나이다. 15∼16년전쯤 어느 사석(사석)에선가 정재만의 스페인춤을 본적이 있다.그때만해도 조택원이후 송범씨가 그 맥을 이어받았을뿐 남성무용수는 다섯손가락이 넘지않았고 그중에서 정재만은 첫째 둘째를 다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살풀이」며 「산조」를 한자리씩 추는 자리에서 유독 구둣발로 바닥을 울리며 등장하더니 그는 「투우사의 노래」를 허밍하면서 정열적인 스탭으로 「투우사의 춤」을 밟아나갔다.한국무용을 하는 사람답지 않은 힘찬 스타카토의 리듬이 돋보이는 춤이었다. 테이블의 붉은 카네이션을 양복주머니에 꽂고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물레타처럼 휘두르며 이리저리 소를 유인하는 동작은 마치 영화 「바렌티노」에서 누레예프의 탱고춤이 어울리듯 그늘진 구석없는 화려한 스페인춤이 더없이 어울려보였다. 춤추기 시작한지 어느덧 30년.그의 이력에는 「송범 문하생·벽사 한영숙전수생·김백봉사사」가 자랑스럽게 따라다닌다. ○가난했던 소년 시절 그는 일찍이 송범문하에 들어가 전통무의 발디딤새를 배우고 벽사의 「승무」「살풀이」「학무(학춤)」를 전수하여 중요무형문화재 27호인 「승무」 전수조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기전 그는 경기도당굿이 성했던 화성에서 태어나 동네에서 벌어지는 굿판에 몰두한 시절이 있었다.하루종일 굿구경에 빠져있다가 배고파 집에 돌아오면 가난이 기다렸다. 옹기를 굽는 집안에서 9남매중 다섯째인 그는 어쩔 수 없이 불우한 소년기를 보내야했고 그래서 차라리 굿판에나 따라다녔으면 하는게 소원이었다. 본래는 부농이었으나 아버지 정수환씨(70세로 82년 작고)가 남의 빚보증을 서는 바람에 집안이 망해 광성국민학교를 졸업하던해 서울로 이사,위로 큰형과 세 누나와 뿔뿔이 헤어져 그는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방배동 단칸방에 정착했다. 그때는 어머니(김순림여사·78)가 동작동 국립묘지 앞에서 꽃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아직 중학교에 가지못한 그는 낮에는 집안을 치우고 동생들을 돌보다가 저녁밥까지 지어놓고 동작동까지 나가 어머니의 꽃 모판을 받아이고 돌아오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그런중에도 틈틈이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책을 읽었다.하루는 헌잡지에서 본 조택원씨의가사를 떨쳐입고 춤추는 사진과 일대기를 읽고는 막연하나마 조택원씨처럼 되고싶은 꿈을 꿨었다. 『저앤 공부도 잘하고 재주도 많은데 어디 양자라도 보내어 공부를 계속하게 했으면』 어머니는 설거지에 밥하고 동생이나 돌보는 아들의 고생이 보기 안쓰러운 나머지 동료 꽃장수들에게 그렇게 하소연하곤 했다. 그후 인천으로 출가한 큰누나의 집에 얹혀살면서 여기서도 낮에는 조카들을 봐주고 밤에는 인천대건중학교,다시 서울로 올라와 서라벌예고에 진학하면서 가정교사,그러다가 가정교사로 있던 주인집의 소개로 필동에 있던 송범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잔심부름과 청소로 학교에 다니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뚜렷한 이목구비에 재빠른 동작을 눈여겨본 송범씨가 그에게 조금씩 춤을 지도했고 그는 한 동작 한 동작을 혼신을 다해 익히면서 스승이 귀가한 후에도 혼자서 밤새도록 마루바닥을 뛰었다.발바닥이 얼얼하게 부어 성할 날이 없었다. ○송범씨 만나 춤과 인연 벽사 한영숙씨의 제자가 된 것은 벽사가 71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였다. 폐쇄적인 당시의 무용인맥에서는 좀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송범씨는 자신의 문하생을 선뜻 벽사에게 허락해주었다.고 한성준옹으로부터 그의 따님이던 한영숙씨에게 전수된 문화재급의 주옥같은 춤들을 남자무용수로서 전수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벽사의 유일한 남자제자가 된 그는 「승무」「학무」를 비롯,「살풀이」「산조」「훈령무」「태평무」를 차례로 전수받았고 벽사로서도 부친의 춤의 맥을 잇는다는 일념외에도 그를 친아들처럼 믿고 의지했다. 89년 10월 벽사는 눈을 감으면서 그의 춤의 사군자로 일컬어지던 승무·학무·살풀이·태평무의 보존과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살풀이」「태평무」에 대한 당부를 그에게 녹음유언으로 남겼다. 그는 요즘도 공연을 앞두거나 해외에 나갈땐 경기도 남양주군 남한강가에 모신 스승의 산소를 찾아 돗자리를 펴놓고 춤추는 성묘로 보고하기를 잊지 않는다. 지난해엔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승무·학무 보존을 위한 벽사춤아카데미를 청담동 그의 무용연구소에 개설,6월에는 「나의 춤모(모)에게 바친다」 추모공연을 가져 무용계에 훈훈한 미담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송범의 춤의 특징인 수직과 대학·대학원의 지도교수였던 김백봉의 수평,벽사의 곡선을 두루 망라하여 춤에서의 원의 완미를 이룬다는 목표를 세우고있다. 스승이 남긴 승무·학무의 보존을 위해서는 고유의 특성을 훼손·변질시키지 않는데 그치기보다 「삶의 진실에 대한 표현,삶에 대한 유기적 통찰」의 의미를 담아 전통을 재현해낸다는 자세다. 한때 초기의 춤에서 환희와 힘을 과시하면서 극적표현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의 외롭고 초췌했던 성장기를 은폐하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창작무용에 손대기 시작한 80년에 접어들어 그는 씩씩한 우조에서 벗어나 높은 것을 한층 난춰 감동이 배제된 은은한 계면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춤소리」와 「□」은 화려함속에 비감이 느껴지는 수작으로 그는 한작품 작품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시대를 뛰어넘는 불후의 빛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역시 그런 각오로 빚어진 「북소리사위」는 북을 한곳에 고정시키지 않고 춤추는 사람이 5북에서 9북을 다루는 파격적 춤사위로 「거동이 정한(정한)하면서도 흥과 멋이 섬화처럼 빛나는 쾌작」으로 손꼽힌다. ○해마다 전국순회 공연 무용계에 남성무용수가 적은 것을 안타까워한 그는 세종대교수시절 졸업생들을 모아 정재만 남무단을 발족,87년 국립극장에서 창단기념공연을 가진이래 숙명녀대로 옮겨와서도 해마다 방학이면 이들을 이끌고 대전·대구·부산에서 당진·서산·합덕에 이르기까지 지방 구석구석을 찾아 순회공연하는등 안성들만의 「훈령무」와 「학무」 「북소리사위」를 펼치고 있다. 73년부터 6년간 국립무용단의 주역으로 뛸때의 파트너이자 경희대 후배인 박순자씨와 75년에 결혼,박순자씨는 무용극 「시집가는 날」의 여주인공을 끝으로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무용단을 떠났다.자녀는 용진(남·국악고2)형진(여·국민교1)남매. 요즘도 그는 스승들을 사사하던 시절과 똑같이 새벽4시에 일어나 5시부터 연구소에 나가 3시간연습,낮에는 대학강의와 무용감독으로 있는 서울예술단에 출근했다가 하오 6시부터 밤10시반까지 연습,춤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연구소로 달려간다.춤구상을 할때면 무작정 거리를 방황하는 버릇 때문에 「구두 한켤레」란 별명이 붙어있다.한두달에 보통 구두한켤레씩을 해뜨린다는 얘기다. 그의 생활모두는 춤이다.춤과 관련되지 않는 것은 흥미도 관심도 없다.그의 춤의 한 단면만을 본 사람이라면 씩씩하고 남성다운 용모로 인해 그들 솔직하고 사교적인 인물로 착각하기 쉽다. 더구나 「한량춤」에서 보이는 「끼」와 가락은 한량기질이 넘쳐보이기도 한다.물론 아직은 40대중반이어서 그의 춤이 달통의 경지라고는 미리 말할순 없을 것이다.다만 견제가 심한 무용계에서 일관된 침묵과 양보,남과 다투지않는 화합의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만 파고든다. 이따금 옹기장이이던 가난한 부친과 그의 굽던 옹기생각에 온몸이 뜨거워지고 아버지 그리움에 곧잘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그래서 요즘은 아버지를 위한 창작무 「사금파리」를 구상하고 있다. 남모를 추억과 슬픈 그리움 때문일까.그의 춤추는 손가락 끝에선 피가뚝뚝 흐르는 절규,비스듬히 미끌어지듯 내딛는 보법에는 메마른 눈물과 싱그러운 꽃가루가 동시에 흩날린다. 깊이 숙여쓴 고깔과 백합같은 정화,허공 한끝을 헤매는 속눈썹엔 부세의 번뇌가 향연처럼 타오르고 그의 승무는 지금 속절없는 방황을 헤뜨린듯 하얀 소매끝에서 장한이 적멸된다.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합장)인양」 동중정을 극도로 자제하여 그속에는 탄식 같은 흐느낌을 소리없이 감추고 있다.
  • 백고좌법회 회양 전야법회 구룡사주지 정우스님(인터뷰)

    ◎“백일기도 법설 함께 나누는 자리될 것” 『가정은 인간공동체의 출발점이자 나아가 사회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집단입니다.그래서 가정의 따뜻함과 편안함 그리고 화목함은 인간사 최대의 목표가 아닌가 합니다.백고좌법회의 주제를 「부처님 품안­따뜻한 가정」으로 정했던 것도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지난 8월30일부터 시작,오는 12월7일 1백일간의 화엄경산림 백고좌법회 회양을 앞두고 6일 전야법회를 갖는 통도사서울포교당 구룡사의 정우주지스님.그는 이번 법회를 통해 백고좌는 이시대 불자들의 삶에 대한 목마름에 감로수로 받아들여졌음을 확신했다. 『올해는 화엄경 선재동자의 깨달음을 얻은 53명의 아이들 예를 빌어 53분의 큰스님을 모셨습니다.떠났던 선재나 마지막 남은 문수가 결국 하나였듯이 씨앗과 열매 역시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 화엄경법회의 요체지요』 그는 매일 2천여명의 신도들이 참석,큰스님들의 설법을 듣고 백팔 3배씩 1백일동안 3만배를 정진해온 만불보전의 열기를 전했다. 『이번에도 전야대법회를 마련했습니다.백일간 참회기도정진을 함께했던 스님과 불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뜨거운 법열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6일 올림픽공원내 체조경기장에서 하오1시부터 열리는 전야법회는 운문사 비구니스님 3백명이 펼치는 음악예불로 진행되는 회향식에 이어 전통문화예술인들이 꾸미는 공연 「만불이 미소하시네」와 법계도 탑돌이 순으로 진행된다.『불교라는 믿음과 우리전통문화라는 순수가 한데 어우러지는 믿음과 순수의 장』이라고 표현한 그는 『이번에 거둬지는 공양미는 청소미화원들에게 또 보시금은 불우노인들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고좌법회는 신라 진흥왕12년(551년) 고구려에서 온 혜량법사가 사자좌 1백자리를 준비하여 당대의 고승 1백명을 초청,법회를 열었던데서 시작됐다.그러나 조선시대 억불숭유정책으로 맥이 끊겼던 것이 지난해 정우스님에 의해 최초로 재현됐었다.
  • 통일약사대불/민족염원 응집한 “대비구세부처”

    ◎30만 불자 참가,팔공산 동화사서 점안식/높이 30m 세계최대 석불… 곡선미 극치/“병든 중생 치유”… 현대인의 이기심 경계 ○석공 1백명의 작품 대구 팔공산은 신라 오악의 하나인 부악이다.그래서 영산으로 추앙받았거니와 또한 여러 부처와 보살이 중생의 원에 따라 오랜 세월을 두고 서있으니 고불도량이 아니던가.팔공산 동화사가 여기 있다. 그 도량에 오늘의 시대적 혜원을 안고 정립한 부처한분,통일약사대불이다.우리의 역사속에서 국난을 극복할때마다 큰 불사의 예가 많았던 것처럼 통일약사대불조성의 뜻도 그러하다.신라의 황룡사구층탑조성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했고 고려는 몽고침략을 막기위해 대장경 판각불사를 민족의 이름으로 펼쳤다. 팔공산 동화사 약사여래대불은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우리 시대에 반드시 성취하려는 원력을 간직했다.민족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대화합의 시대를 열어 가야할 2000년대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이루어져 더욱 뜻이 깊다.그것도 전국의 불자들이 동참하여 원력을 세웠기 때문에 이 시대 민족의 염원을 응집한 대비구세의 부처라 아니할 수 없다. ○도량까지 1백8계단 이 대불은 좌대(13m)를 포함,30m 높이의 세계최대규모의 석불로 조성됐다.불상(2천t)과 좌대(3천t)의 화강암원석은 전북 익산에서 생산되는 황등석으로 원석을 8등분해서 옮겨와 1백명의 석공들이 낮과 밤이 따로없이 매달려 완성한 것이다.근엄하면서 온화한 상호(얼굴)와 수려한 자태를 갖춘 이 통일대불의 위용은 각계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선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렸기 때문에 예술적으로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통일약사여래불이 자리한 도량은 1만평에 이른다.동화사 남쪽자락을 메워 가꾼 약사여래대불의 도량은 1백8계단을 거쳐 올라가도록 설계됐다. 약사여래부처의 본래 이름은 약사유리광여래다.대의왕불로도 불리니 무명의 고질을 치유하는 부처다.약사여래의 공덕과 본원은 병들어 있는 중생을 구제하는데 있다.내 몸과 남의 몸에 광명이 들도록 치성하는 약사여래의 원력이야말로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적 현대인에게 들려주는 교훈의 소리다. ○외국인 승려도 참석지난 27일 상오 대구 동화사 현지에서 거행되는 통일약사대불 회향(준공)법회도 이렇듯 화합과 자비의 불길로 중생을 어루만지는 약사여래의 본원과 걸맞게 치러 진다.전국각지에서 1백만 불자가 참가하는 근래 보기 드문 불교계 최대행사로 준비되고 있다.특히 이날 법회에는 조향록초동교회 원로목사,오익제천도교 교령,박홍신부(서강대총장)등 타종교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것을 비롯,3부요인을 비롯한 각정당대표등 정치지도자들도 참석 예정이어서 단순한 불교계 행사가 아니라 범국민적 행사로 진행될 예정이다.또한 비프라살라 스리랑카 대승정,나카무라 한일불교교류협의회 부회장등 외국의 불교지도자들도 자리를 함께한다. 이 불사를 발원한 동화사 회주 서의현스님(조계종 총무원장)은 『통일대불을 동화사에 봉안케 된것은 팔공산이 화합된 힘과 의지를 결집해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던 역사적 성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고 말했다. 이제 약사여래대불이 점안되어 눈을 뜨면 갈등과 대립이 잔존한 이 땅에 변혁의 빛이 그윽하리라.
  • 대상에 원로시인 설창수씨/제8회 향토문화대상 수상자 선정

    ◎서울신문사 제정 서울신문사가 전통문화의 전승과 지방문화의 계발을 위해 제정한 「서울 신문향토문화대상」제8회 수상자가 26일 결정됐다. 전통문화부문과 현대문화부문으로 나누어 전국에서 추천된 57개 단체및 개인을 대상으로한 심사결과 상금 3백만원의 대상은 경남 진주의 원로시인 설창수씨(76)가 차지했다. 또한 상금2백만원의 본상은 전통문화부문에서 ▲신라문화동인회(경북경주·회장김태중) ▲이명미(49·인천·무용학원장) ▲노유상(76·서울·한국민속연보존회회장) ▲연규한씨(61·강원·향토사연구위원)가 차지했고 현대문화부문에는 ▲박득봉(73·전북·서화작가) ▲이상용씨(41·경남·연극인)에게 돌아갔다. 올해 심사위원은 구상(원로시인·위원장) 여석기(유선방송위원회 위원장) 임동권(중앙대 명예교수) 정양모(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이중한씨(서울신문 논설위원)가 맡았다. ◎7일 시상식/본사 20층서 한국담배인삼공사가 협찬한 이 향토문화대상의 시상식은 12월7일 하오3시 한국 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갖는다.
  • 김태중회장/전국 문화유적지 월1회 답사/신라문화동인회(본상)

    지난 56년 창립된 이래 매월 1회 전국각지의 문화유적지를 답사·연구하고 시민을 대상으로 문화재·역사교육을 실시,문화재 보존·애호사상을 고취시켜 왔다.매년 10월에는 신라문화선사 추모제를 베풀었다.
  • “KAL격추 정치적 책임 질수없다”/러 외무차관

    ◎사할린 위령탑건립 적극 협조/희생자유족과 만나 러시아연방 게오르기 쿠나제 외무차관은 20일 낮12시 서울 신라호텔에서 KAL 007기 피격희생자 유족회원들과 만나 『러시아는 구소련의 KAL기 격추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질 수 없으며 배상등 법률적 문제는 아직 정확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좀더 기다려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유족들과의 질의 응답 내용이다. ­옐친대통령이 뒤늦게나마 블랙박스를 인도해줘 고맙지만 사과내용이 미흡하다. ▲귀중한 생명이 희생된 것에 대해 할 말이 없다.유족들을 직접 만나니 그동안 한국정부와 언론을 접하던 것과는 또다른 감정이 든다. ­구 소련의 의무와 권리를 모두 승계한 러시아가 이 사건의 모든 책임을 져야하지 않는가. ▲러시아정부는 구 소련의 행위에 대해서는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없다. ­유해와 유품을 어떻게 처리했는가.생존자는 없는가. ▲사건당시 바다에서 나온 유품들은 일본에 전달했다.유감스럽지만 생존자는 없다. ­사할린에 희생자들의 위령탑을 세울 용의는. ▲적극 검토하겠다. 쿠나제 외무차관은 유족들이 계속 피해배상 등을 요구하자 배상문제는 정부간에 해결되어야 하며 이 자리가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도 안된다고 말해 유족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 한­러 통상장관/내년초 첫 회담

    한·러시아 양국은 20일 양국 통상장관회담과 실무회의를 정례화하기로 하고 내년 상반기중에 모스크바에서 첫 정례회담을 열기로 했다. 한봉수상공부장관은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옐친대통령을 수행해 방한중인 아벤 러시아 대외경제관계부장관과 러시아연방 출범후 첫 한·러시아 통상장관회담을 갖고 이같이 합의했다. 한장관과 아벤장관은 양국간 수출입 활동의 애로요인을 찾아내 제거하는데 함께 노력하기로 하고,특히 러시아 군수산업의 민수화분야에서 양국간 협력이 성과를 볼 수 있도록 첨단기술의 대외이전을 관장하는 대외경제관계부가 적극 지원키로 합의했다.
  • 김 총재·정 대표/옐친,개별회동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20일 상오 숙소인 서울 신라호텔에서 김영삼민자당총재·정주영국민당대표와 차례로 단독회동,공동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옐친대통령은 당초 김민자총재와의 단독면담만 계획했으나 타당 대표들과의 형평성문제를 고려,19일 김대중 민주당대표와 정국민당대표에게 면담을 제의했으나 김민주당대표는 이를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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