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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7개 문화유적 정비·부수공사정착 지원

    ◎문체부 주요업무 보고내용/청소년프로그램 1백50종 개발/도덕성회복 범국민적 운동전개 ▷문화예술분야◁ ◇가치관 재정립과 도덕성 회복 ▲인·의·예·지·신 등 선현의 생활체험을 확산시키기 위한 「고전의 세계」등 교재발간과 「이달의 문화인물」사업 활성화 ▲윤리와 도덕성 회복을 위한 범국민적 문화운동 전개 ▲독서 생활화 사업 등 6개 분야 39개 사업을 전개해 전국민이 적극 참여토록 적극 유도. ◇지역문화의 균형 발전 ▲시·도 단위 종합예술제 등 지역 문화예술행사 70개를 중점 지원 ▲국·공립 예술단의 지방 순회공연 확대▲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지방문화원진흥법 제정 추진. ◇민족문화 보존 및 전승 ▲경복궁과 창덕궁 등 일제에 의해 훼손된 문화유산 복원 ▲신라·백제·가야·중원·영산강 유역 등 5대 지역 문화권 67개 유적 정비 ▲오는 4월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복원 완료하는 등 항일독립운동 사적지를 순차적 복원 추진 ▲안재호와 오일도의 생가 등 1950년 이전까지의 근세역사 문화인물 유적 40여건 정비. ◇문화 기반시설확충 ▲예술의전당 운영합리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 추진 ▲대구·부여·김해·제주 등 국립지방박물관 건립 ▲시·도 단위의 종합문예회관 계속 건립 ▲96년까지 4백30개의 공공도서관을 세워 선진국 수준인 10만명당 1개의 도서관을 확보하고 도서관 전산망을 확충해 정보의 공급기능을 확대. ▷체육청소년분야◁ ◇청소년 수련터전확충 ▲청소년중앙공원(독립기념관 동쪽기슭)과 한국청소년수련마을(강원도 평창군)을 건립 ▲전국 6천5백20여곳의 문화원 체육관 운동장을 여가공간으로 개방 ▲96년까지 5천1백명의 청소년지도자를 양성,관련 단체등에 의무배치 ▲97년까지 1백50종의 수련프로그램개발 보급,자율성과 책임성함양 ▲문화예술시범학교 30개교 지정및 수련활동과 문화현장학습 학습평가 반영추진 ◇불우청소년복지대책 ▲2백곳의 야간공부방을 올해안에 2백67곳으로 확대 ▲지방청소년 상담실 10곳 설치운영 ◇국민생활체육진흥 ▲누구나 참가할수 있는 생활체육프로그램을 개발,주2∼3회 운동하는 인구를 97년까지 50%까지 확대 ▲시군단위 운동장12곳,체육관 5곳,동네체육시설 5백곳,실내빙상장등 사계절체육시설 5곳 조성 ◇우수선수육성 ▲신인선수8종목 3백명 후보 27종목 1천명을 육성해 올림픽등에 대비 ▲태릉선수촌숙소신축 ◇올림픽성과 확산 ▲「올림픽기념관」등 건립및 한민족체전과 서울평화상 재정립 ◇국제대회유치및 청소년국제협력 ▲태권도의 올림픽종목채택추진 ▲96동계아시안게임및 2002년 월드컵 남북공동개최 추진 ▲중국 쿠바와 체육교류협력추진 ◎공보처 퇴폐언론 자율정화활동 등 강화/종합유선방송 95년초 실시 추진 ◇언론의 자유영역 확대와 발전을 위한 지원 ▲구시대의 잔재인 「규제적 발상」을 완전 청산하여 문민시대에 걸맞는 언론자유를 창달할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기자의 전문성 제고를 위한 연수활동도 적극 지원한다. ◇정부시책 정보의 적극적인 공개관행 정착 ▲주요정책의 구상입안,결정집행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기회를 확대한다.▲각부처의 정기·부정기 브리핑제도를 정착하고 기자실 개방등 언론의 취재영역을 확대한다.▲부처내 정책결정과정에 공보관 참여를 관행화하는등 각부처 공보관제도를 활성화한다. ◇언론자유에 조화되는 사회적 책임의 제고 ▲언론사별 자발적 내부윤리강령을 제정 시행토록 권고하는 한편 잡지·주간지협회의 퇴폐언론 자율정화활동을 강화하고 광고의 윤리성 제고를 위한 광고자율심의 기구의 설립을 지원한다.▲언론의 인권침해사례를 고발하고 시정 요구할수 있도록 법개정을 추진,언론중재위의 중재기능을 확보토록 한다.▲신문발행부수공사제도(ABC)의 조기정착을 적극 지원한다. ◇국민과 국가에 유익한 방송의 질적도약 추구 ▲KBS로 하여금 국민에 유익한 보도·다큐멘터리·토론·기획특집·건전드라마및 공익광고 확충에 노력토록하는등 공영방송위상을 강화한다.▲종합유선방송은 국민적 합의도출을 위해 전반적 쟁점사항을 종합점검 보완후 시행토록 하되 93년말 이내 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선정하며 프로그램 공급업자및 종합유선방송국을 단계적으로 허가해 95년초 종합유선방송을 실시한다.▲대도시 중심의 지방민영TV방송 신설을 추진하고 도별라디오방송은 주파수 범위내에서 신설을 검토하는등 방송의 지방화시대 개막에 따른 지방민영방송(TV 라디오)의 신설을 검토한다.▲종교방송 라디오 지방국의 신설을 추진하되 종교간의 형평을 최우선적으로 고려,주파수 범위내에서 지방국 신설을 추진한다.
  • 과기부문 호암상 탄 과기원교수 김충기씨(인터뷰)

    ◎캠토더 핵심소자 개발… 세계가 인정/“현장응용·미래예측 기술 함께 연구 바람직” 삼성복지재단(이사장 이건희)이 제정한 제3회 호암상(상금 1억원) 시상식이 지난25일 서울 호텔신라에서 열렸다. 이날 과학기술부문을 수상한 한국과학기술원 김충기교수(50)는 20여년동안 반도체 소자,집적회로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로 국내외적으로 반도체 관련분야의 기술향상에 많이 이바지해 온 중견과학인. 김교수는 지난70년부터 5년동안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를 생산하는 미국의 페어차일드회사에서 최근 캠코더의 핵심기술로 사용되는 전하결합 선형영상감지소자를 개발,세계적인 평가를 받았다. 즉 비디오카메라인 캠코더뒤에 필름 대신에 쓰이는 이 소자는 영상을 기억해 전기신호로 바꾸는 반도체로 기존에 필름을 사용해야만 했던 인공위성이나 정찰기등의 지상촬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밖에 최근 고속열처리공정에 관한 연구를 통해 16M DRAM이상의 고집적기억소자에 사용할수 있는 접합형성기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연구자의 길은미지의 세계를 처음개척,길을 가는 탐험가처럼 스스로 선택,결정해야하는 일이 많으므로 이를 회피하거나 꺼리지 말고 순간 순간 판단을 내려가며 도전해야한다』는 말로 연구에 임해온 태도를 들려주었다.최근 어려움을 겪는 반도체 업체들에 대해 『국내의 반도체업체들도 이제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더불어 컴퓨터의 주변기기나 생산기계등에도 눈을 돌려 힘을 써야 할때』라며 그렇게 할때 치열한 세계의 반도체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강조되는 산학연협동은 장기적인 계획아래 추진되어야한다』고 지적하는 그는 산업 현장에서 실제응용되는 연구와 함께 미래를 내다보는 연구가 알맞게 조정 시행되어야 하며 특히 G7기술등 미래 예측을 위한 기술도 등한히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제4회 전통축제행렬 새달7일“첫 행차”/내고장 향토문화제 꽃피운다

    ◎서울신문사­금성사 공동주최/「충무공」 등 7개 행사… “10월까지 축제무드”/「한마음 한울림」주제,주민 자발참여 유도/「행렬」 일변도 탈피 뮤지컬·가무악 등 첫 선 향토문화축제 지원사업」의 첫번째 결실인 「충무공 승전 행차행렬」이 오는 4월7일 군항제가 벌어질 경남 진해에서 펼쳐진다.올해로 4회를 맞는 「향토문화축제 지원사업」은 서울신문사와 금성사가 전통축제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지역민들에게 미래 지향적인 삶의 원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 90년 시작한 것.KBS의 후원 아래 이제는 전국 각 지역 향토문화제의 대표적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한 마음,한 울림의 신바람 축제」라는 주제로 전국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제 기간중 지역의 특색과 전통이 살아있는 7번의 축제행사를 펼치게 된다.행사 목표는 축제가 벌어지는 지역의 문화적 자부심을 불러 일으키고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향토축제를 정착시켜 지역의 사회 문화 경제적 발전에 기여할수 있는 축제를 만든다는 것.이에따라 지역의 문화예술인,향토사가 등 지역문화담당자들과의 꾸준한 협의를 통해 지역민의 자발적 참여와 흥미를 유발하는 생명력있는 축제가 되도록 할 계획이다. ○「축제예술」서 기획 올해 축제 지원사업의 특징은 그동안의 행차행렬 일변도에서 벗어나 각 향토축제의 성격에 맞게 뮤지컬과 가무악,무용극 등 다양한 형태의 축제행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행사의 기획과 연출,진행은 올해도 「축제예술」이 맡았다. 전국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 이번 행사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한다. ▷진해 군항제◁ 이충무공의 기개가 어린 충절의 고장 진해에서 펼쳐지는 군항제는 충무공호국정신선양회가 주최하는 종합 향토예술제.「충무공 승전 행차」는 벚꽃이 활짝 피어 축제 분위기가 절정에 달할 4월7일 경축식이 열리는 공설운동장에서 필승로,충무공시비,진해역을 거쳐 출발점으로 되돌아 오는 2.5㎞ 구간에서 벌어진다. 경축식은 안골포 해전에서의 승리를 알리는 파발마가 폭죽과 연막탄이 터지는 가운데 식장으로 달려 들어오며 시작된다.이어 이충무공이 취타대의 주악속에 입장하면 최초의 승전을알리는 장계가 낭송되고 승전무와 검무,사물놀이 등 축하공연이 펼쳐진다.경축식이 끝나면 사물놀이패와 충무공의 영정을 앞세운 승전 행차행렬이 출발한다.행렬에는 거북선과 판옥선이 등장해 충무공의 기개를 드높이고 시내 중심부에서는 판굿을 벌이고 축포를 쏘아 시민 및 관광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게 된다.또 잡색패를 행렬 주변에 따르게 해 관람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할 계획이다. ▷남원 춘향제◁ 춘향제는 정절의 여인 춘향의 얼을 부각시켜 한국 여인의 아름다움을 선양하기 위해 춘향문화선양회가 마련한 향토축제.이런 취지에 따라 올해는 행렬 대신 극단 대중극장의 고전 뮤지컬 「사물놀이와 서울방자」를 오는 5월28일 광한루 특설무대에서 공연한다. 대중극장은 「아가씨와 건달」「캐츠」 등으로 큰 성공을 거둔 뮤지컬 전문 극단.이번 공연은 대중극장 단원외에 「사물 광대패」와 남원상고 취타대 등 모두 52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무대가 된다. 「사물놀이와 서울방자」는 춘향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방자를 통해 춘향전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선율과 정서를 조명하고 방자와 향단의 관계를 통해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파헤쳤다.현대 젊은이들의 즉흥적이고 일회용적인 사랑을 희극적으로 풍자했다. 「사물놀이와 서울방자」는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꽃 핀 광한루에서 횃불이 밝혀진 가운데 공연될 예정이어서 축제가 한창인 초여름 밤의 정취를 더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릉 단오제◁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는 단오제는 음력 5월5일을 전후해 20여일 동안 치러지는 강릉지방의 유서 깊은 산신성황제이다.강릉부사가 대관령 산신당으로 신을 모시러 가는 행차를 축제화한 「영신행렬」은 6월23일 시청에서 공설운동장에 이르는 2.5㎞ 구간에서 펼쳐진다. ○밤 행사로 전환 이번에는 그동안 낮에 열리던 행사를 밤으로 전환해 극적 효과 및 관중유인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행렬참가자들은 영산홍가,강릉 아리랑 등 잘 알려진 토속민요를 합창해 시민들이 후렴을 따라 부를수 있도록 할 계획.또 행렬 중간에 횃불놀이와 관노놀이,풍물놀이,취타연주 등 한바탕 잔치를 벌여 시민들의 참여를 높이기로 했다. 「영신행렬」에는 농악대와 취타대,민요팀,관노가면극회원,횃불행렬 등 모두 4백40명이 참여한다. ▷충주 우륵문화제◁ 충주는 신라의 낙성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탄금대가있는 곳.해마다 10월에 열리는 우륵문화제는 그를 기리는 축제이다.탄금대는 또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장렬히 싸우다 패퇴한 여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임경업장군 출진행렬」은 임장군이 금나라와 싸우기 위해 출진하는 행렬을 재현한 것.안으로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밖으로는 외적을 치려던 장군의 기개와 국난극복 의지를 재조명하기 위해서 마련했다. 행사는 공설운동장에서 임장군을 모시는 청신과정을 통해 장군의 혼을 받드는 제의식으로 시작된다.이어 무술시연으로 흥을 돋우면 취타,검무,태평무 등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한 위안잔치가 펼쳐진다. 행렬은 공설운동장에서 시청,제1·제2 로터리를 거쳐 중앙공원에 이르는 3㎞ 구간에서펼쳐진다.임경업장군을 앞세운 행렬은 취타대와 영정,큰 북,전군,후군,고적대 등 모두 3백30여명으로 편성될 예정. ▷진주 개천예술제◁ 개천예술제는 경상남도가 해마다 10월에 거도적인 차원에서 벌이는 종합예술제이다.「김시민 목사행렬」은 진주성을 사수한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행사이다. 진주성 싸움은 임진왜란의 3대첩 가운데 하나.「김시민 목사행렬」은 김시민목사를 중심으로 의병장 곽재우 등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왜적을 물리친 사실을 행렬화한 것이다. 행렬은 진주 검무 및 진주 오광대,쾌지나칭칭나네 민요와 민속연희 등 특징적인 형태를 도입해 「고수사전지계」의 투철한 정신을 살리도록 했다.편성은 전도와 취타,솟대,대고,목사 및 군사,의병,민속연희단의 순으로 모두 4백여명이 참여한다. ▷공주 백제문화제◁ 백제문화제는 백제문화권 주민들을 지역적 문화적 동질감으로 묶고 찬란했던 고도의 긍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부여와 공주에서 번갈아 가며 10월에 여는 축제.백제인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창작가무악「신명의 소리」와 무용극「윤회의 끈」을 준비하고 있다. 「신명의 소리」는 북,장고,징,꽹과리 등 타악기와 인간의 소리를 모아 우리 민족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신명을 표현코자 한 것.「윤회의 끈」은 생로병사에 얽힌 인간의 고뇌를 정중동,동중정의 무용으로 구성했다.
  • 철로 50m 엿가락처럼 휘어/대참사현장 이모저모

    ◎응급차 모자라 부상자 발동동 ○…사고현장은 한마디로 아비규환 그자체였다. 열차가 급제동하면서 탈선 전복된 탓에 객차의 철제구조물은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지거나 조각나있고 그 사이에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끼여 있어 처참한 사고순간을 실감나게 했다. 사고 뒤 경찰과 소방관등 1천여명이 사고수습을 위해 포클레인등 중장비를 이용,부상자 구조와 사체발굴에 나섰으나 중장비의 도착이 늦은데다 철제구조물이 뒤엉켜 있어 작업에 애를 먹었다. 이에앞서 사고가 나자마자 주변을 지나던 차량들이 급히 달려와 부상자와 사체를 이웃 병원으로 옮기기도 했다. ○…황인성국무총리는 이날 하오9시30분쯤 철도청 상황실에 나와 사고에 따른 수습과정을 보고받고 사고대책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 ○…탈선된 5,6호 객차는 고철덩이처럼 찌그러져 승객들이 객차틈새에 끼인채 신음하고 있어 아비규환. 5호차 앞부분에 앉아있다 다리를 다쳐 한중병원에 입원중인 김태성씨(39·부산 진구 전포1동 276의36)는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앞쪽으로 밀리면서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사고당시 6호차 중간부분 좌석에 있다가 목적지인 구포역에서 내리기 위해 일어서는 순간 열차가 전복돼 오른손과 양다리를 다친 최지원씨(24·여·부산시 북구 삼락동 365의1)는 『구포역 도착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구내방송이 끝나자마자 열차가 땅밑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큰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고 사고당시를 기억. 최씨는 중상자들이 앰뷸런스가 모자라 피를 흘리면서도 사고현장의 땅바닥에 비가 오는 가운데 장시간 드러누워 있어야 했다』며 사고당시의 참상을 전했다. ○…군복무중인 아들과 오빠를 면회하고 귀가하던 일가족 3명중 아버지는 숨지고 어머니는 실종되고 여동생은 중상을 당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백병원에 안치된 안상근씨(53·남구 감만동 511)는 28일 아침 부인 차삼조씨(50),딸 선희양(18)과 함께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끝내고 대구시 소재 육군병원에 배속받은 작은 아들 태호씨(20·경성대 법학과 1년 휴학)를 면회하고 돌아오다 변을 당했는데 부인은 실종되고 딸은 다리골절상을 입고 신라병원에서 가료중. ○…아들과 함께 시어머니 생신에 다녀오려고 사고열차를 탄 아내의 행방을 찾고 있던 박상택씨(38·부산시 북구 덕천2동 주공아파트 105호)는 제중병원등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백병원 영안실에서 아내 권순남씨(32)의 시신을 확인하고는 망연자실.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가운데 군인이 6명으로 단일직종으로는 가장 많았다. 군관계자들은 『교육중 외박나온 장교들이 많아 사망자가 많은 것 같다』고 설명. ○…황인성국무총리는 이날 하오 이계익교통부장관과 함께 사고현장으로 내려가 사고수습을 지시했다. □대형열차사고 일지 ▲45년 9월 대구역 열차충돌사고=사망73명,부상78명 ▲48년 9월 충남 내판역 열차충돌사고=사망 1백명 ▲49년 8월 죽령터널탈선사고=사망46명,부상3백1명 ▲51년 10월 순천∼여수선열차탈선사고=사망 1백20명 ▲54년 1월 오산역열차탈선사고=사망56명,부상78명 ▲55년 3월 부산역열차화재사고=사망 42명,부상45명 ▲69년 1월 휘경동건널목사고=사망17명,부상 68명 ▲69년 1월 천안열차충돌사고=사망 41명,부상 1백3명 ▲70년 10월 충남 모산건널목사고=사망 45명,부상32명 ▲70년 10월 원주터널사고=사망 14명,부상59명 ▲71년10월 남원열차사고=사망20명,부상48명 ▲73년8월 영동역유조열차탈선=사망38명,부상12명 ▲75년6월 정선건널목사고=사망12명,부상74명 ▲76년5월 서울 방학동유조차충돌=사망19명,부상95명 ▲77년7월 충북지난역열차추돌=사망18명,부상1백60명 ▲77년11월 이이열차폭발사고=사망60명,부상1천여명 ▲81년5월 경산열차추돌=사망53명,부상2백44명 ▲84년12월 나주열차충돌=14명사망,14명부상 ▲85년2월 사북화물열차탈선=13명사망,14명부상 ▲87년1월 대구방촌동건널목사고=9명사망,16명부상 ▲91년12월 동두천건널목사고=6명사망,8명부상
  • 에밀레 종소리/(주)성음 녹음 자청

    ◎본지 21일자 관련기사 보고 참여키로 결정/전담팀 구성,전액 무료로 제작/자료·시판용으로… 경주박물관서만 판매 국립경주박물관이 성덕대왕신종 녹음작업에 참여할 기술진을 찾고 있다는 서울신문 보도(3월21일자 14면)가 나가자 주식회사 성음이 전액무료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작업을 자청하고 나섰다.주식회사 성음은 자체 기술진을 투입,개구리와 귀뚜라미 울음 등 주위 소음을 피할수 있는 오는 4월 중순 녹음작업을 벌이기로 했다.성음은 이에따라 곧 에밀레종 녹음을 위한 전담팀을 만들어 현장을 답사하는 등 녹음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간다. 성음은 이 종소리를 자료용과 시판용의 2종류로 나누어 제작할 예정.자료용 테이프는 순수한 종소리만을 고음질 테이프에 담아 경주박물관에 영구히 보존하고 이 종소리를 필요로 하는 곳에도 보급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시판용 테이프에는 종소리를 배경으로 신라의 역사와 종이 만들어진 배경,종에 얽힌 설화,에밀레종이라 불리는 유래 등 이 종과 관련된 갖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성우의 목소리를통해 담기로 했다. 성음측은 시판용 테이프의 경우 제작원가로 국립경주박물관에 공급해 염가로 판매할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경주박물관만이 가질수 있는 독특한 관광기념상품이 탄생하는 셈.이 테이프는 경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신라와 성덕대왕신종에 얽힌 역사를 자연스럽게 교육시키고 판매수익금은 다시 박물관 사회교육에 재투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주식회사 성음의 성덕대왕신종 녹음작업 참여는 이 회사 이한우상무(54)의 주도로 이루어졌다.경주에서 중고교를 다닌 인연이 있다는 이상무는 『이 녹음작업은 기술도 기술이지만 기업의 문화투자에 대한 의지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면서 『신문기사를 보는 순간 우리 밖에는 할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참여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이난영국립경주박물관장은 곧 경찰과 한전,시청에 녹음에 필요한 교통통제와 조명 등 지원을 요청키로 했다.또 주민들에게도 녹음중 소음 자제 등 최대한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하고 등 이 작업을 통해 시민들의 문화재에대한 관심을 더욱 높일 계획이다.
  • 「삼국유사」의 백제시대 고찰/사자사암터 찾았다

    ◎전북 익산 사자암서 명문새긴 기와 발견 전북 익산군 금마면 미륵산(일명 용화산)기슭에 위치한 사자암이 「삼국유사」에 기록된 백제시대의 고찰 사자사터로 밝혀졌다.이같은 사실은 문화재관리국 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최맹식)가 지난2월24일부터 실시한 사자암에 대한 발굴조사결과 고려 충숙왕(1322)때 만들어진 암막새(한끝에 반달모양의 혀가 붙은 암기와)에 새겨진 명문을 발견함으로써 확인됐다.이 명문에는 「지치이년사자사조와」라고 적혀 있어 현재의 사자암이 고려시대및 그 이전에는 사자사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사자암의 불당이 낡아 새로운 불전을 세우기 위해 그동안 사전조사발굴을 해온 부여문화연구소는 이 명문기와 이외에 네번째 건물터에서 백제계 기와등을 발굴함으로써 「삼국유사」에 나오는 사자사의 존재를 뚜렷이 입증했다.이번 발굴에서는 통일신라 기와,고려시대 암·수막새,청동불상등도 출토됐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무왕편에는 백제 최대사찰인 미륵사창건설화를 소개하면서 무왕이 부인인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사자사를 찾아간 일이 기술되어 있다.
  • “재계,「신경제」 적극 동참”/고통분담 앞장… 공산품값 안정 최선

    ◎최 전경련회장 최종현 전경련회장은 23일 『정부의 「신경제 1백일계획」추진에 맞춰 재계가 경제활성화를 위한 고통분담 노력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최회장은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신경제 1백일계획」추진과 관련한 재계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은 우리 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하느냐 아니면 좌절하느냐의 마지막 기회라는 인식하에 국민 모두가 적극 동참해 협력할 것으로 확신하며 우리 경제계도 기꺼이 고통을 분담하면서 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에 앞장설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최회장은 대·중·소 기업간의 협력관계 모색을 위해 4월중 전경련회장단과 중소기협중앙회 회장단의 회의를 갖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에밀레종소리 녹음기에 담는다/경주박물관,마지막 타종계획

    ◎개구리·풀벌레소리 없는 4월이 적기/자정∼새벽 4시 주변도로 차운행 통제/12세기동안 비바람 견뎌… 곧 영구보존위해 실내이동 「개구리가 울기 전에 에밀레종을 울려라」 국립경주박물관이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를 개구리가 울어대는 계절에 앞서 4월안에 정밀 녹음할 국내 기술진을 찾고 있다. 에밀레종이라 불리기도 하는 성덕대왕신종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거종.지구상에 현존하는 종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평가를 일찍부터 들어왔다.국립경주박물관이 이 종소리를 담는 시한을 4월로 못박고 서두르는 것은 1년중 4월이 아니면 녹음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주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난 반월성 곁에 있는 경주박물관은 논과 밭으로 둘러 싸여 개구리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지역.따라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요란한 5월 이후에는 종소리를 녹음할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또 가을이 되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끊기는 대신 귀뚜라미 등 풀벌레 소리가 요란해진다.그렇다고 겨울에 하자니낮은 기온으로 쇠의 재질이 크게 수축되어 제울림이 나지 않는데다 자칫 종 자체에 돌이킬수 없는 피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경주박물관은 또 포항·울산으로 통하는 7번국도와 이웃하고 있어 대형트럭의 소음이 극심하다.그래서 이난영경주박물관장은 이미 박준영경주경찰서장으로부터 교통통제에 따른 협조를 약속받아 놓고 있는 상태.녹음이 이루어질 0시부터 새벽4시 사이에는 7번국도를 지나는 차량을 시내 쪽으로 우회시킬 계획이다.또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지만 경주 시가지의 생활소음도 역시 만만치 않은 방해요소.박물관측은 이에따라 지역의 언론매체를 이용해 녹음중에는 소음을 내지 않도록 주민들의 협조를 구할 방침까지 세워 놓았다. 이관장은 녹음 이유를 『이 종소리를 녹음해 보급하는 것은 단순히 자료를 보전하자는 것이 아니라 종소리에 담겨있는 정신문화를 전해 주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그럼에도 아직까지 한번도 완벽한 녹음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간이 음향장비로 몇차례 녹음을 시도한 경우가 있으나 종소리의 아름다움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게다가 지금까지는 정상적인 음향을 간직하고 있으나 1천2백년에 가까운 장구한 세월 동안 풍상을 견디어 온 만큼 언제 소리에 이상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도 이유의 하나이다.박물관 마당의 야외 종루에 매달려 있는 이 종을 영구보존하기 위해서는 조만간 실내로 옮겨야 할 상황이고 보면 종소리 녹음은 시급할 수밖에 없다. 지난 90년 성덕대왕신종과 상원사종 등 대표적인 종을 모두 녹음 보존하는 「한국의 종」을 기획한 바 있는 문화체육부 이돈종생활문화과장은 『당시에는 당목이 당좌에 부딛치는 마찰음의 제거 등 기술과 녹음환경에 문제가 있었지만 이제는 장애요소가 모두 제거된 만큼 경주박물관의 작업을 적극 지원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종」작업도 다시 시작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 매일신보/부록 펴내 민족의식 일깨워/역사연구가 김보영씨 첫 공개

    ◎1983년 6월부터 월1회 8차례 발간/금기인물 이순신장군 소개/광개토대왕비 등 유적 실려 일제하 총독부기관지로서 친일논조의 반민족지 역할만 한것으로 알려진 매일신보가 부록을 통해 민족문화를 소개,자각을 일깨우려 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이는 역사연구가인 김보영씨(65·서울 중랑구 중화2동 321)가 1938년 6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매월 1회씩 8차례에 걸쳐 발간,배포했던 매일신보 「부록」을 18일 공개함으로써 확인됐다. 부록에는 주로 한국의 역사인물 및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내용이 실려있다.이들 부록에는 5∼6인의 저술 및 친필 휘호등을 싣고 그 인물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한문으로 기록했으며 작품의 소장자까지 밝혀놓았다.특히 소개된 인물 가운데는 일제시 한국인들에게 금기시되던 이순신장군이나 광개토대왕등도 포함돼있어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는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부록은 희고 얇은 모조지에 매월 말일자로 발행됐으며 크기는 폭38·5㎝ 길이107·5㎝.그 하단에는 「소화13연 6월30일 매일신보 일만일천칠십오호 부록 발행인 이상협 편집겸인쇄인 김선흠 경성 종로 보진재 인쇄」라고 발행시기 및 지령 인쇄처등을 명백히 밝혀놓았다. 1938년 6월30일에 발행된 첫 부록에는 황해도 해주 광조사에 있는 고려초의 명승 진철대사의 보월승공탑비와 충북 중원군 정토사에 있는 신라말의 명승 법경대사의 자등탑비등 6편의 명승추모탑의 탁본을 싣고 자세한 해설을 곁들였다.그 내용을 보면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때 전라좌수사로 옥포·당포·한산해전에서 대첩을 거두었으며 정유재란때 재기,통제사가 되었다』고 적었다.또 『전쟁지휘중 날아오는 탄환에 전사했는데 시호는 충무공』이라고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이 부록에는 그밖에도 이퇴계 양사언 한석봉등 조선시대의 대학자들도 소개하고 있다. 한편 8월31일자로 발행된 세번째 부록은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탁본등 만주에 흩어져 있는 고구려 유적들을 싣고 고구려와 광개토대왕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그밖에 이규보 정몽주 성삼문 안평대군 서거정 김시습 박▦ 정약용 김정희등 역사적 인물들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 자료를 검토한 언론사학자 정진석교수(한국외국어대)는 이 부록이 발간된 시기에 대해 우선 주목했다.1938년 4월 경성신문에 예속돼 있던 매일신보가 최린을 사장,이상협을 부사장으로 한 한국인 경영체제로 바뀌면서 제호도 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로 바꿔 새로 출발한 직후였기 때문이다.정교수는 『매일신보가 재출범하면서 새로운 기획으로 이 부록을 만들기 시작한것 같다』면서 『이제까지 친일 반민족신문으로 한국언론사연구에서까지 제외되다시피 했던 매일신보의 긍정적 측면을 엿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 「중국 시장경제」 강연회

    한국개발연구원은 1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마홍 중국경제기술사회발전센터 원장(앞줄 가운데)을 초청,「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강연회를 가졌다.
  • 생계에서 복지까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보상정책(국정탐방)

    ◎18만 보훈가구의 실질생활 보장/무주택 4천가구 올 2백억 지원/유공자·유족 1만명에 직장 알선/병원증설·휴양시설건립 등 노후대책도 펴기로 보훈처는 61년 5·16 직후인 8월5일 당시 박정희대통령에 의해 「군사원호청」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됐다. 우리나라의 보훈제도는 국가의 존립과 유지를 위해 공헌하거나 희생한 국가유공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각종 보상지원과 △그들을 위한 예우시책으로 구분된다. 특히 보상지원은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의 영예로운 생활이 유지·보장되도록 지원하는 제도로서 보훈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 처지이지만,창설 당시에는 국가재정이 빈약해 기본연금이 월5백원으로 쌀 한말이 채 되지않았다.그야말로 보훈제는 명목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후 정부는 기본연금 수준향상을 기하기 위해 80년까지는 쌀 반 가마니,85년까지는 한 가마니를 목표로 인상에 노력했다. 쌀을 기준으로 했던 것은,당시까지의 시대상황이 먹고 입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시켜 왔기 때문이다. ○「원호청」으로 발족 그러나 85년 「국가유공자 예우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이후에는 보상금을 현실적으로 생계에 도움이 되는 수준으로 인상을 추진,86년부터는 도시근로자 가계비의 40% 수준을 목표로 추진해왔다. 87년 이후 기본연금은 월3만원이었으나,93년 현재는 28만2천원까지 인상되었다.장족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에 공헌한 보훈대상자들은 아직 흡족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보훈처의 93년도 세출예산은 6천2백54억원.이중 87%인 5천3백70억원이 보상에 쓰여진다. 국가유공자및 유족은 현재 △애국지사 3천8백53가구 △전몰·전상군경 12만3천2백33가구 △무공·보국수훈자 4만2백48가구 △4·19혁명 희생자 1만2천4백가구등 모두 17만9천7백34가구에 이른다. 이들에 대한 주요 보상내용은 보상금 지급·교육지원·직업보도·의료지원·주택지원·대부지원사업등 크게 여섯가지로 대별된다. 이중 보상금 지급은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에 대해 국가가 지급하는 금전적 보답으로,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위한 보훈제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갖고있다. 지급대상 인원은 11만5천여명.1인당 월지급액은 최저 28만여원에서 최고 1백18만여원에 이른다. ○외국보다 나은편 교육지원은 대학까지 각급학교에 재학중인 유공자및 자녀에게 공납금을 면제하고 학자금·장학금을 지급해 건전한 사회인으로 육성하는데 쓰여진다. 현재의 취학인원은 4만2천여명.창설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졸업자는 45만5천여명에 이른다. 직업보도는 근로능력이 있는 유공자와 그 가족에게 직장을 알선해 생활안정을 도모케 하는 것으로 현재까지의 취업인원은 7만7천여명이다.올 직업보도계획인원은 1만명. 의료지원은 상이군경·공상공무원에게 보훈병원을 통해 의료시혜를 해주는 것이다. 보훈병원은 현재 서울 부산 광주 대구등 4개소에 있으며 이들의 병상규모는 총1천6여 베드.올해 대전에도 병원 건립을 할 예정으로 부지를 물색중에 있다.보훈병원이 없는 여타 지역들은 일반병원에 위탁가료를 시키고 있다. ○노령화추세 대비 주택지원은 집없는 보훈대상자에게 아파트 특별공급·주택구입자금및 신축자금 지원으로 주거안정을 도모케 하는 것으로 4만1천여가구가 대상이다.보훈처는 올해 4천2백여가구에 2백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대부지원은 근로능력은 있으나 취업이 부적당한 대상자에게 장기저리로 생업자금을 대부해 주거나 각종 금융자금 알선을 지원하는 것이다.대부한도는 1백만원∼1천만원에 연리는 3% 또는 6%에 지나지 않는다.올해 7천8백여가구에 3백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같은 우리나라의 보상제도는 예산상 빈약한 형편이긴 하나,다른 나라에 견주면 좀 나은 편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지원내용이 보상금지급·상이자 진료에 한정되고 있으나,우리나라는 부수적으로 교육·취업·대부지원등을 병행하여 미흡한 보상금 수준을 보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일종의 복합지원체제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앞으로 보상금의 인상은 국가재정이 허락하는 한 수준향상을 기하도록 노력하되,최소한 현수준의 실질가치가 하락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특히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한 중상이자와 무의탁자등에 대한 보상에 역점을 두고,앞으로 점차 「보훈가족」이 노령화되는 추세를 감안해 보훈병원 증설과 휴양시설 건립등 노후복지대책에 보다 중점을 둘 계획이다. 보상금은 국가유공자및 그 유족의 희생에 대한 보은적 성격으로,어느 정도가 적정수준이냐를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에도 각각 현재와 비슷한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두었지만,그 당시에도 보상금 지급기준은 들쭉날쭉했다는 기록이 있다.그만큼 국가유공자에 대한 보상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조직도 활대 전망 또 정부가 지난 30여년동안 보훈대상자의 생활지원과 병행해 공훈선양등 보훈이념을 확산시켜 왔으나,일반인은 아직도 보훈업무를 6·25이후 대량으로 발생한 전사상자에 대한 사후관리 기능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애로사항의 하나이다. 그리고 「원호」라는 이름 아래 생계지원을 위한 수단으로 사회보장적 방법을 사용함에 따라,구휼이 목적인 사회정책의 일환으로 인식되는 것도 장애가 되고 있다. 생활지원 측면에서도 보상모델을 확립치 못하고 임시적 욕구 관리에 급급함으로써,경제발전과 보훈대상자의 여건변화에 적합한 능동적 대응력도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따라 정부는 보훈대상자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한편,매년 배출되는 직업군인에 대한 사회정착 지원시책도 펴나갈 방침이다. 이같은 정책추진에 따라 행정대상및 업무량이 대폭 증가하면,이에 발맞춰 보훈처 기능과 조직도 확대 개편될 전망이다. ○편견불식 따라야 또 독립운동사등을 통한 민족정기 선양시책에 있어서는 독립운동과 6·25 관련 유공자의 감소에 대비해 예우의 당위성을 계속 부각시킬 계획이다. 한편 일반국민들의 국가유공자에 대한 인식은 「국가유공자 예우등에 관한 법률」제정과 예우시책 개선으로 많이 개선되었으나,일부에서는 존경보다는 국가의 지원을 받아야 할 계층으로 인식하는 과거 편견이 남아있어 이를 불식시키는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캐나다등은 보훈업무를 독자적 영역으로 발전시키고 있으며,영국·독일등 유럽국가들은 일반사회보장 부문에 포함시켜 관리하고 있다는 점도 우리의 보상제도 발전에 참고가 될 수 있다. 우리의 보훈정책은 국가안보와 사회보장의 한가운데 놓여진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상금인상기준 제도화에 최선”/재정난으로 충분히 지원못해 아쉬워/장귀호 보상지원국장(인터뷰) 보훈처 보상지원국장은 4계절중 봄에만 마음이 가장 넉넉하다. 예산안 편성에서 확정단계에 이르기까지 보훈대상자들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이다. 『저희들로선 18만여 가구에 이르는 국가유공자및 그 유족분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드리는게 소망입니다.그러나 국가재정이 어려워 수준향상이 생각처럼 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울산생인 장귀호국장은 투박한 사투리를 쓰며 연신 줄담배를 피워댄다. 보훈처 올 세출예산중 87%나 되는 5천3백여억원을 집행하는 주무국장으로서,그의 고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난달 직제개편에 따라 보상지원국에 온 이래 일찍 귀가해본 적이 드물다.업무파악을 못해서가 아니다. 경제기획원에 「구걸」을 해서라도 어떻게든 보상예산을 많이따내는 궁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매년말 예산국회 때도 마찬가지다. 정부내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이겠으나 예산확보 때문에 공무원들은 1차로 기획원이 무섭고,2차론 국회가 두려운 것이다. 더욱이 광복회관에 세들어 있는 보훈처는 코앞에 국회의사당이 있어 직원들은 항상 오금이 저린다. 『보훈처가 창설된 이후 30여년동안 보상지원 수준이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지원을 받는 입장에선 아무래도 미흡하게 느껴지기 마련이죠.그점이 저희 보훈처 직원들의 고민이랄 수 있습니다』 기획원이나 국회가 무섭긴 하지만,보상지원국장이 그보다 더 무서워 하는 사람은 보훈대상자들이다. 어떤 형태로든 국가에 공을 남긴 「그 분들」이,보훈처를 향해 『실질적으로 공무원 봉급인상 수준에도 못미치는 지원액을 따내면서 매번 국가재정만 들먹인다』고 힐책하기 때문이다. 지난 75년 제16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줄곧 보훈처에서만 근무해온 장국장은,「우리 대한민국의 오늘은 순국선열을 비롯한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룩된 것이므로 이런 희생이 우리들과 우리의 자손들에게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항구적으로 존중되고,그에 대응하여 유공자와 유족의 영예로운 생활이 유지·보장되도록 실질적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된다」는 보훈이념을 길게 설명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보상금의 획기적 수준개선은 어렵다고 보여집니다.그래서 저희는 매년 보상금 인상과 관련해 대상자와 예산당국간의 불필요한 행정력과 시간소모등 문제점을 개선키 위해 보상금 인상기준에 관한 사항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입니다』 장국장은 그같은 기준설정은 당연히 물가등 사회지표와 연동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라가 발전할수록 보훈업무 영역도 넓어질 것』이라고 내다본 그는,또다시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 신라때 조성 야철지/강원 양양군서 발견

    【양양】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 산50 구룡령 기슭에서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야철지가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교원대 박물관장 정영호박사(65)가 14일 현장을 답사,확인한 이 야철지(광석에서 철을 골라내고 정제해 각종 철제연모를 만들던 터)는 갈천리 갈천계곡의 구갈천교와 신갈천교 사이 남쪽 기슭 언덕에 용암 처럼 생긴 무쇠덩이가 직경 1.5m 가량의 원형으로 둘러쳐진 형태로 발견됐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발굴된 고대의 야철지는 경남 창원공단 및 울주 치눌령,충북 중원등 3곳으로 강원도내 동해안에서 이같은 야철지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수출증가율 연10∼13% 유지/GNP성장 6∼8%로

    ◎중기지원·토지규제완화 다각 모색/이 부총리,경제 정책방향 밝혀 정부는 앞으로 2∼3년간이 우리경제가 선진국으로 진입할수 있느냐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보고 경제활성화,경제행정규제 완화,고통분담,기술 드라이브 정책 등을 중점 정책과제로 추진키로 했다. 이경식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11일 신라호텔에서 있은 매일경제신문사 주최 「오피니언 백인초청」 강연에서 신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관해 이같이 말하고 경제활성화와 관련,『수출증가율 10∼13% 내외,제조업 성장률 8∼10%를 달성하고 GNP 성장률도 6∼8%를 유지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부총리는 『연 6∼8%의 성장률은 고용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한 수준』이라고 강조하고 경제활성화를 위해 투자활성화,수출촉진,중소기업 활성화에 중점을 두어 나갈 것이며 특히 중소기업 활성화를 위해 다각적인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부총리는 기업활동의 창의와 경쟁을 저해하는 정부의 경제행정규제는 개혁차원에서 과감히 개선해나가겠다고 말하고 아울러 금융자율화,토지이용,세제 등 제도개혁 사항도 가급적 조속한 시일내에 종합적인 추진방안과 일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개혁을 통해 금융산업의 낙후성을 하루빨리 탈피하여 자금의 흐름이 왜곡되어온 경제적 폐단을 바로잡고 금융실명제는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단계별 시행방안을 마련해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농지 및 산지의 이용규제,수도권 정비계획법 등 경직적인 토지이용제도의 개혁을 통해 기업들이 토지문제로 인해 겪고있는 절차와 비용상의 부담을 완화해나가고 재정개혁을 통해 사회간접투자,인력개발과 기술개발 투자와 같은 생산적 분야의 공공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 임오군란직후 창설 조선신식군대/「친군」 군복 113년만에 햇빛

    ◎한국자수박물관,학계 고증거쳐 첫 공개/두꺼운 청색모직천… 소매에 홍색띠/신분·소속 밝힌 원형 「장표」 앞뒤에 부착/“군복발전사 구명할 중요자료”로 평가 임오군란직후 창설된 조선신식군대인 「친군」병사가 착용했던 군복상의가 1백13년만에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한국자수박물관(관장 허동화)이 소장하고 있다가 9일 학계의 고증을 거쳐 처음 공개한 이 군복은 우리나라 군복변천사를 복원할 수 있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청색바탕의 두터운 모직천에 홍색띠를 소매및 아래단에 댄 이 군복상의 앞·뒷면 중앙에는 지름24㎝의 원형 「장표」가 부착됐다.신분및 소속을 명기한 장표중앙에는 붉은 글씨로 「친군」,위쪽에는 작은 글씨로 「신건좌영」이라고 소속부대를 가로글씨로 표시했다.그리고 오른쪽엔 「우초F대」라고 표기했다.인쇄체인 다른 글씨와는 달리 왼쪽에 붓글씨로 「병정 김기원」이라고 군복의 주인공 이름까지도 밝혀 놓았다. 옷의 형태는 가장자리는 둥글린 깃에 앞길을 왼쪽으로 여며 겨드랑이에서 매듭단추로 고정시키도록만들었다.폼과 진동은 풍성하지만 소매부리는 진동에서 점차 좁혀 마무리해 실용성을 높였다.앞뒤 도련은 10㎝너비의 홍색모직으로 단을 둘렀는데 앞·뒷단 중앙과 옆단에는 여의무늬를 넣어 멋을 부렸다.제작방법은 대부분 손바늘질로 지어졌으나 덧붙인 부분은 재봉틀을 사용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이는 당시 궁중에 재봉틀이 이미 들어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이번에 발굴된 군복의 가치는 특히 「장표」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본래 군복을 소속부대별로 색깔로 구별하고 장표를 사용한 것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 갈 정도로 유서가 깊기 때문이다.그러나 실제 장표가 붙어 있는 군복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친군제도는 임오군란진압을 위해 서울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 원세개(18 19∼19 16년)의 제안에 따라 고종이 조선군군제를 개편해 만든 군제.원세개는 18 82년8월 당시 조선장정 1천명을 선발,훈련시켰으며 이를 「신건친군」(약칭 친군)이라고 칭했다.이때 훈련받은 부대가 장표에 표시된 대로「신건친군좌영」이다.그러나 친군영제도는 당시 청·일양국을 중심으로한 열강의 부침에 따라 4년도 못돼 다시 개편되었고 18 88년이후는 종전의 고유군복으로 환원됨에 따라 수명을 다한 것으로 돼있다. 조선시대의 군복은 중앙군과 지방군, 군복색깔에 다른 구분법등이 사용되어 왔다.이 군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검은 두루마기에 붉은 소매를 달고 뒷솔기를 길게 째 붉은 안감을 댄 형태의 「동달이」군복에서 보다 간편하고 행동하기에 편리한 형태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 군복을 감식한 유희경한국복식문화연구원장(68)은 『지금까지 「친군」제도가 있었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뿐 이들 병사가 입었던 군복에 관한 자료및 실물이 전무한 상태에서 발견된 것이어서 자료가치가 높다』고 말했다.또 문화재전문위원인 이강칠마사박물관장(67)은 『이번에 발견된 군복은 옷제작당시의 정치적 여건에 의해 비록 중국적 특색을 띠고 있지만 이 시대군복중 유일한 유물로서 우리나라 군복발전사를 규명할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어떻든 이 군복은 열강의 흥망에 따라 복제가 바뀌는등 정치적 곡절을 겪는 동안 우리나라 복식사에 비워져 있던 부분을 되찾은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 파주서 고분 48기 발굴/통일신라·여말 추정… 백자 등 출토

    ◎법흥리 월음실 지구 【파주=김명승기자】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 법흥4리 산11 일대 속칭 월음실부락 고분군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말 조선조 초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생활유물이 대량 발굴됐다. 법흥리고분군 발굴조사단(단장 배기동·한양대교수)은 9일 지난해 11월부터 법흥리 유적지에서 지표조사를 정밀실시한 결과 월음실 A지구와 C지구에서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돌덧널무덤(석관묘)8기와 B지구에서 고려말 조선조 초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널무덤(토간묘)40여기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돌덧널무덤에서는 인화문개합·동전·과대금구등 유물 20여점이 발굴됐으나 대부분 훼손돼 있었으며 무덤에는 도굴흔적이 있었다. 돌덧널무덤은 야산 꼭대기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분산돼 있었고 ㄴ자형의 구덩이를 파고 만든 반지하식 구조에 긴쪽이 2백29㎝,폭 88㎝ 규모이다. 무덤은 할석으로 5∼7단을 쌓아 올렸고 바닥은 돌덧널 내부의 중앙을 따라 3∼7장의 편평한 할석으로 시상대를 꾸몄으며 여백은 점토를 다져 메운뒤 목관을 안치했다. 이 널무덤에서는 백자상감병·이형철기등 60여점이 출토됐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11)

    ◎오욕의 역사/“내선일체” 표방… 일제지배 합리화/항일독립군을 비적단·불영단으로 비방/언론탄압 항의하자 “민중현혹” 일방매도/경성일보에 경영 예속… 1938년 「신보」로 개제 일제의 손아귀로 팔려 넘어간 대한매일신보는 독립된 한국을 상징하는 「대한」이라는 제호의 두글자는 이내 잘려버렸다.합방 이튿날인 1910년8월30일 매일신보로 개제됐던 것이다.그리고 총독부의 기관지로 전락하는 운명을 맞았다.이른바 「일선융화와 세도인심의 감화유도」를 앞세운 일제의 선전대변 기관지의 길을 걸어야했다. ○한글판 발행 중단 그러나 지령은 대한매일신보룰 그대로 계승했다.국한문판은 제1642호,한글판은 제939호부터 발행되었다.매일신보는 총독부 기관지가 되는 동시에 9월1일에는 대한제국정부의 기관지격이던 한양신문까지 합병했다.국한문판과 한글판 두가지 신문을 발행하는 유일한 신문으로 남게 된 매일신보는 1912년 3월1일 한글판 신문을 폐지하고 대신 국한문판 제3면을 한글전용으로 제작했다.이에따라 1907년 5월23일 대한매일신보란 제호로 창간에 가서 매일신보로 이어져온 한글판은 5년만에 사라져 버렸다.결국 국한문판만 존속할 수 있었다. 그나마 매일신보는 경영측면에서 독립된 기구로서의 성격을 잃고 만다.왜냐하면 일제가 창간한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에 흡수통합 되었기 때문이다.경성일보의 한 부서의 위치에 불과한 매일신보는 말하자면 경성일보에 예속되어 자매지 성격으로 발행된 셈이다. 이렇듯 초기에 예속기를 거친 매일신보는 1920년에 가서 편집국으로 승격된다. 그러나 매일신보의 「신」자가 「신」자로 바뀐 「매일신보」는 경성일보에서 분리,독립된 신문으로서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그 시기는 1938년 4월16일이다. 그러나 매신이 경일에서 독립되기는 했으나 경일은 매신의 주식 45%를 소유한 대주주로 남는다.여기에 총독부의 소유 주식을 포함하면 매신의 경일예속은 종전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논조 또한 변함없이 총독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일제의 한반도 통치를 합리화 하는데 급급한 것이었다. 매일신(신)보는 일제의 입장에서 「시정의 부연철저,민의의창달,문화의 향상」등의 원칙에 따라 편집되었고 편집방향은 한 마디로 「내선일체」라 요약할 수 있다.이를 위해서 총독정치의 선전과 홍보를 중심으로 제작했으나 식민정책의 모순을 은폐·호도하기 위해 민간지의 논조를 반박하거나 비난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3·1운동의 불길이 아직 가시기도 전인 1919년 3월6일 「민주자결주의의 오해」라는 사설로 이른바 「각지의 소요사건」을 비방하고 이튿날에야 처음으로 이를 「소요사건」으로 보도한 일도 그 실례가 될 것이다.3월8일 「소위 독립운동」이라는 사설로 민족적인 독립운동을 비웃었던 예는 매신의 편집방향이 어떠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매신은 합방이래 1919년까지 국문신문으로는 줄곧 독점적 위치에 서 있었다.그러다 3·1민족봉기를 계기로 일제는 그간의 무단장치에서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나섰다.그 시기에 나온 신문이 조선일보·동아일보·시대일보등 몇몇 언론이다. 일제는 1920년 민간지의 발행을 허가한데 이어 같은 해 9월 몇몇 잡지를 허가했다.그러나 일제는 바로 폭압적인 언론탄압정책으로 돌아섰다.11월20일 월간 「신천지」를 필두로 하여 22일에는 「신생치」에 대해서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관련자들이 여러명 구속 또는 기소되는 필화를 입어야했다.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휘두른 본격적인 사법권의 발동이었다. ○독립운동 비아냥 이와같은 강경탄압에 대해 언론계와 한국인 변호사들은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결의문을 채택한 이들은 일제의 언론탄압정책을 맹렬히 규탄하고 나섰다.그러나 매신은 이러한 민족진영의 움직임에 대해 「불온당으로 인□,필화사건에 관한 언론계및 재야법조유지의 결의를 견하고」라는 사설을 통해 일제의 언론탄압을 옹호하고 민족진영을 비난했다. 매신의 이러한 식민주의적 왜곡 논리는 식민통치의 선전에서 민족동화는 물론 사회·경제·문화·교육 그리고 풍습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적용됐다.우선 식민지 정책통치의 선전에서는 주로 일본제국주의의 한국침략을 합리화하고 통치의 모순을 은폐하는 것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식민통치의 성공을 미화시키는데 열을 올렸다.또 식민지 지배질서를 확립하고자 식민지 권력의 정점인 총독의 선전에 주력하면서 식민지 권력에의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기에 이른다.민족동화의 논리는 민족말살을 위한 것으로 한국과 일본을 순치의 관계로 설정하고 「병합」은 침략에 의한 지배가 아니고 과거 신라의 한반도 통일 내지는 일본내 분국의 통일과정과 같은 현상이라면서 침략사실을 완전하게 은폐,호도했다.그리고 동화의 선결과제로는 일본어 교육을 강조하고 일본어를 익히게 되면 10∼20년이면 완전한 동화가 이루어져 황국식민화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광의의 애국심」내지는 「광의적 단합」을 강조하기도 했다.이는 일본왕에 대한 충성논리로 직결되는 것이었다. 사회분야에서는 식민지 통치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식민지 사회의 재편에 역점을 두었다.식민지 사회의 재편은 수작자를 매개로 식민지 사회의 재편을 종용하는 것이었다.아울러 각계각층에 경고사설을 통해 식민지 통치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거듭 강조했다. 경제분야에서는 식민지 경제수탈을 위한 산업의 개량과 일본경제체제로의 예속화에 중점을 두는 논조를 폈다.특히 농업의 발달을 위해서는 농사개량과 토지개량이 기반되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개량사업을 강조했다.한편 식민지 수탈의 기초작업인 토지조사사업을 소위 「근대화」라는 논리로 위장하면서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한국의 경제제도가 확립되었다고 선전했다. 문화면의 경우는 한국의 자주성과 전통적 문화를 단절시키기 위한 문화말살로 일관했다.무엇보다도 종교에 대한 탄압이 심했는데 그중에서도 유교와 기독교에 대한 통제가 집중되었다.이는 식민통치에 대한 이들 종교계의 거센 저항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때문에 매일신보는 종교와 국체의 일치를 주장하면서 식민지 통치에 위배되는 종교활동을 철저하게 배척한 것이다. 교육부문에서도 식민통치를 위한 논리는 예외가 아니어서 학교와 사회,가정에 이르기까지 「황국신민화」를 위한 식민지교육을 강조하면서 보통교육과 실업교육을 역설했다.한국인에게는 고등교육이 필요치않고 식민지통치에 필요한 정도의 보통교육과 실업교육만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논리의 요지였다.매신은 이처럼 정치·사회·경제·문화등 각 방면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또 이를 선전하는데 앞장서는 불행한 세월을 맞아야했다. 매일신(신)보가 36년동안 수행했던 역할을 요약하면 곡필로 일관되었다.온갖 압력수단을 동원해 일제가 빼앗은 「대한매일신보」는 「대한」이라는 두 글자가 잘려나가면서 오욕의 수렁텅이로 빠져들어 갔던 것이다.국권도 오간데가 없었고,그 서릿발같던 「대한매일신보」의 기상도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동사 연구」(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지음)
  • 서울예술단의 「님을 찾는 하늘소리」를 보고

    ◎문민시대에 거는 기대를 편 음악극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님을 찾는 하늘소리」(이강백 극본 김희조 작곡 김효경 연출)을 흥미롭게 듣고 보았다.우선 유치진의 가야금을 개작한 극본은 시의에 적절했다.시의에 적절했다고 한 것은 이 공연이 제14대 대통령취임 경축공연으로서 그나름대로 문민시대의 의미를 음악극 형식으로 풀어 보였음을 뜻한다.신라 진흥왕 진용의 무기와 가야 가실왕 진용의 악기를 대비시켜 봄으로써 예술 내지 문화의 의의를 설득시키고자 한 의도는 일단 큰 무리없이 성취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필자가 관극한 2월27일 공연에는 김영삼대통령 내외분을 비롯하여 국가경영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많은 인사들이 참석해서 끝까지 공연을 관람했을 뿐 아니라,공연후에는 무대 뒤로가서 관계자들을 치하해 주었기 때문이다.이는 단순한 인사치례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밝은 표정은 공연이 성공을 거두었음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물론 제작진의 거듭된 강조에도 불구하고 『악기는 좋고 무기는 나쁘다』라는 단순논리로 이 공연을 보았을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또는 적어도 신라가 가야를 정복한 후 그 유민들을 한결같이 동등하게 대우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지닌 채 공연장을 떠났을 사람들도 없지않을 것이다.더군다나 그와 같은 상징이 정치이념이나 지역주의로 인해 아직도 고통을 겪는 현실을 치유하기에 적절한 사고를 낳을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를 지닐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무를 겸비했던 화랑 물계자나 백결을 상기했을 사람들도 없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편의 공연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는 대신 우리는 이 공연이 악기로 상징되는 세계가 지닌 가치가 존중되는 정책,곧 문화정책을 제대로 펴나가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었기를 기대할 뿐이다. 이 공연이 지닌 선전적 성격이 무리없게 객석에 스며들게 된 데에는 물론 작곡과 연출,그리고 출연진의 기량이 크게 기여했다.독립적인 가사가 부족했던 탓으로 기억에 남을만한 노래가 생겨나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지만 국악과 서양음악의 음악적 어법에 두루 정통한 작곡자의 연극적 효과마저 감안한 음악은 특히 의상(장명숙)을 비롯한 시각 효과와 어우러져 뮤지컬 드라마 분야에서 서울예술단이 차지하는 위상을 한층 높여 주었다.다만,가람왕자의 진흥왕에게 진언장면이 무리스럽다든지,진흥왕이 너무 쉽게 악기에 감동된다든지 하는 작은 결함들이 보완될 수 있었으면 한다.그러나 군중장면의 처리등 연출의 통솔역량이 크게 돋보이는 공연이었음은 틀림없다.
  • 3월의 문화인물 장보고/통일신라때 청해진 설치,해상권 장악

    ◎무역선 복원·동상건립 등 다양한 행사 「3월의 문화인물」에 통일신라시대 해양문화의 개척자인 해상왕 장보고(?∼846)가 선정됐다.문화부는 「해운의 날」(3월13일)이 들어있는 3월을 맞아 우리 해양역사의 뿌리를 찾고 해양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민족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이같이 선정했다. 장보고는 무예에 뛰어나 젊은 나이에 당나라 서주군의 무령군중소장에 올랐다.이에 장보고는 돌아와 흥덕왕에게 해상교통의 요충지인 지금의 완도에 청해진의 설치를 건의했다. 청해진대사로 임명된 장보고는 1만명의 병력과 중국 산동반도·경항대운하 일대의 고구려·백제 유민,그리고 한반도 서남지역 주민들로 강대한 해상세력을 구축했다.장보고는 먼저 노예상과 해적선을 소탕한뒤 중국·일본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해 신라와 당,일본을 잇는 삼각무역을 개척하여 국부를 쌓았다. 현재 문화부는 청해진의 본거지였던 장도에 대한 발굴을 지난 89년 이래 진행중이다.또 장보고해양경영사연구회는 장보고가 중국에 세운 적산법화원에 기념비를 세우는 등 그역사적 성격규명을 위한 연구와 기념사업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문화부가 해운항만청과 전라남도,한국문화예술진흥원 등 관련기관·단체와 함께 추진할 주요 기념사업은 다음과 같다. ▲장보고 시대의 무역선 복원:94년 완공 예정 ▲장보고 동상 건립:완도 수석공원 10월 제막 ▲궁술대회:10일 상오 10시,완도 청해정 ▲노젓기대회:25일 상오 10시,완도읍 주도 일주 등.
  • 두려운 건 성안의 적이다(박갑천칼럼)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는 죽어서 시체가 된 다음에도 다른 짐승이 범접하지 못한다.벌레까지도 달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렇건만 그 몸속에 절로 생긴 벌레가 있어 시체를 먹어 치운다고 한다.「범망경」에 쓰여있는 말이므로 은유에 뜻을 두어야지 과학적으로 해석할 일만은 아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예로 들면서 불법을 파괴하는 것은 이교도가 아니라 불교를 받드는 불제자 자신들이라고 경계한다.이것이 「사자 몸속의 벌레」(사자신중충)의 비유이다.외부로부터의 침범이 아니라 내부에서의 와해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고 하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상일을 들여다 보느라면 이 말이 진리임을 느끼게 된다.「사자 몸속의 벌레」그대로 이 종교 저 종교 할 것 없이 밖이 아닌 내부에서 분규의 연기가 솟아온다.자해행위나 다름없는 갖은 형태의 내홍이 얼마나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것이던가.눈살 찌푸리게 하는 것이던가.그런 현상은 비단 종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교육의 위상에 먹칠을 하는 것은 외부의 소행이 아니라 바로 교육자 자신들임을우리는 보아온다.언론의 모양새를 구기는 것은 언론인이란 이름의 사람들이고 정치를 우습게 전락시키는 사람들이 다름 아닌 정치인들이다. 기업체 같은 조직도 그렇다.그것이 비대해져 가면서는 차츰 창업의 정신이 바래어 간다.조직 내부에 느슨해지는 곳도 생기고 독버섯도 피어난다.대립이 날카로워지는 가운데 분열이 조장되기도 한다.그런 현상들은 외부의 어떤 도전보다 더 두려운 적이 된다.이는 나라의 경우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어째서 나왔던가.창업때의 일사불란했던 정신이 무너져 내리면서 내부가 허술해짐을 경계하는 말이 아니던가.멀리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볼 것까지도 없다.고구려·백제·신라를 비롯하여 역대의 우리 왕조가 무너진 까닭은 「사자신중충」에 있었다.『나라가 망할 때는 그 망할 짓을 한다』고 하는 옛 성현의 말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계씨는 속히 전유를 치려고 한다.그러지 않을 때는 나라가 위태롭다고 생각한다.염유와 자로가 그 사실을 공자에게 말했을 때 한 스승의 대답은『계손의 근심은 전유에 있지 아니하고 그 성안에 있다』였다.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일은 성밖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었다.개인이고 가정이고 기업이고 국가고 간에 먼저 안이 튼실하고서야 밖의 근심에 대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엊그제 있은 새 대통령의 취임사 가운데 그 점이 강조되고 있다.『…우리에게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도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번지고 있는 정신적 패배주의입니다……』.우리 내부의 정신이 건전해야 한다.우리 내부가 굳게 결속하여 앞을 내다봐야 한다.경계해야 할 것은 「사자 몸속의 벌레」이다.「성안의 적」이다.뭉친겨레의 힘을 보여주었던 3·1절이 내일모레로 다가왔다.
  • 두갈래 심층의식(한국정신의 원류를 찾는다:6)

    ◎민족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자연과의 조화속 미래개척 중시/만물의 다양성 인정… 역할 따른 화합을 추구/자식위해 모든것 희생하는 교육열로 표출 한국정신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한마디로 명확하게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홍익인간,평화애호,선비정신,창의성,예절의식,충효사상 등등으로 말하기도 하나,진정으로 한국인의 의식구조 내면에 흐르면서 끊임없이 한국문화의 주류를 형성하여온 보편적 가치관은 무엇일까를 지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이절의 변천 수용 우리의 오랜 역사와 문화전통 속에서 한국인의 의식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정신은 자연주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관이라고 말하고 싶다.우리의 자연주의적 의식구조는,한민족이 오랫동안 생활해 왔고 또 문화를 형성하여 온 공간인,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기후 즉 풍토에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빼어난 산천과 사계절의 조화 속에서 한국인은 자연을 찬미하고 자연의 조화를 생활 속에 구현하여 왔다.우리의 건국설화도 신단수 아래서 환응과 웅녀(가장 우직한 동물인 곰)사이에서 탄생한단군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자연과 인간의 화합을 말하였다. 이러한 자연환경에서 한국인이 정신적 가치로 내면화한 요소는 바로 자연현상에서 나타나는 자연계의 특성이다.자연계의 특성이란 사계절을 통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변천성,만물이 각양각색을 띠우면서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상대적 다양성,서로 다른 기능을 지닌 개체들이 공존하는 조화성 등이다. 우선 한국인은 자연계의 변천성을 본받아 의식구조에 내면화함으로써 개혁정신을 삼았다는 점이다.그것은 외래문화에 대한 과감한 수용과 자기화이었다.예컨대 고대 불교문화의 과감한 수용,근세초 주자학의 도입,기독교와 서양문물의 수용및 동학에 의한 종교적 사회개혁운동,1945년 광복이래의 끊임없는 민주화운동과 근대화의 추진등은 바로 자연현상의 가시적 변화속에서 생활해 온 한국인의 자연주의적 변혁정신에서 연유한다. 또한 자연계는 무수히 많은 만물이 각각 독특한 특성을 지니면서 조화를 이루고 절대적 논리보다는 상대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존의 세계이다.자연의 덕을본받으면서 발전해온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도,중앙집권적인 절대성이 지배하던 시대보다는 분권적 다양성이 존재할 때 민족적 단합과 외침에 대한 국가보위의 응집력도 강하였다.서로간의 각축이 심하였고 분권적이었던 삼국시대에 도리어 우리의 민족문화가 가장 찬란하였다.중국대륙의 거센 침입에 처하여서도 강하게 저항하면서 자력으로 국가를 보위하였던 고려는 서울을 몇군데 두고(개경,서경,동경,남경등)왕이 순회 체류하면서 지역적 균형책을 썼기때문에 외환에 강하였고 민란과 소요등 내우도 적었다.왕권도 장자상속만을 고집하지 않고 형제간에도 고루 계승하였으므로 조선조에서와 같은 왕가내 권력을 둘러싼 혈투도 적었었다.절대주의적 논리가 아니라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계급과 신분에 따른 차별 보다는 각자의 기능에 따른 화합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이 한국인의 의식구조 밑바탕을 이루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인의 두드러진 정신적 본질은 미래지향적인 의식구조라고 말할 수 있다.사계의 변화 속에서 모든 생물들이 새로운 생명을 계속하여 낳고 성장시키듯,우리 민족은 자식과 후손의 발전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국민성을 형성하여 왔다. ○해월,향아설립 주장 이러한 국민성은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자식과 젊은이에 대한 교육열로 나타나 왔다.신라 때의 화랑 양성,고려때 번창하였던 사학들이 그렇고,동학의 2세교주이던 최시형선생이 자기를 향하여 제사할 것(향아설위)을 주장한 것도 이러한 미래지향적 개혁정신의 소산이었다. 따라서 오늘의 부모들이 자식을 대학에 보내야 하겠다는 의식은 그릇된 통념이라기 보다는 자식에게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미래지향적인 한국정신의 발현일 것이다.이러한 자식에 대한 강한 미래지향적 교육열이 바로 한국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왜 오늘의 한국인은 가장 이기적이요 공중의식이 없고,규범준수와 조화보다는 범법의 부정과 부패 그리고 상호 불신하는 국민으로 회응하게 되고,사회정의와 도덕성의 총체적 실종으로까지 자탄하게 되었을까.이는 정치적 욕구에만 집착하여 한국인의 정신적 본질을 외면한 정치철학,제도 및 정책과 국민성 사이의 괴리에서 연유한다고도 볼 수 있다. 혈연에 의한 신분적 차별주의를 강조하고 법제화한 조선조의 정치문화와 일제하의 식민주의적 차별정책 그리고 1961년 이래의 군사문화적 획일주의의 결과일 것 같다.더욱이 가치관 형성을 위하여 중요한 교육적 측면에서 보면,조선조는 양반계급의 자제에게만 공교육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특권엘리트인 지배관료 양성에 교육의 주목적을 두었으므로,이러한 유교주의적 차별제도는 화합과 조화를 본질로 하는 한국인의 자연주의적 의식구조를 갈등과 불신으로 이끌게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일제시대에 와서는 대학교육이 식민관료 양성을 목적으로 일본인 자녀에게만 주어졌고,한국인에게는 4년제대학 설립자체를 허용하지 않았으므로 대학을 엘리트양성기관으로 생각하는 그릇된 통념도 낳게 되었다.따라서 해방후 4년제 대학에 대한 강한 교육열은 불가피한 현상이며,4년제대학의 급속한 신장도 초래하였다.60년대까지 양성된 대학출신의 인재들이 60년대 이래 근대화의 추진을 가능케한원동력이었다. ○특권의식 제거 마땅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자연주의적 다원성 속의 국민적 화합과 미래지향적인 진취적 한국인의 정신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첫째,특권의식과 차별의식을 불식하기 위한 개혁과 사고의 전환을 통하여 각자의 독특한 기능적 특성이 존중되어 다원성 속에 조화를 이루는 사회의 조성이 필요하다.국가 또는 국립하면 돈내고 규제받도록 되어있는 제도의 개혁을 통한 특권의식의 제거,의미없는 행정적 차별제도의 철폐 등을 들 수 있다. 둘째,국민에게 교육의 기회를 개방하고 다원화시키는 일이다.정부는 규제보다는 지원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특히 대학에 학생 및 교수 충원에 대한 자율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특히 학력고사든,수학능력시험이든,자격고사이든 국가가 이를 획일적으로 시행하여 국민을 점수로 차등화하려는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몇명을 언제 어떻게 선발하느냐에 대한 자율권을 대학에 일임하는 일이다. 셋째,중앙정부가 국가 전체적으로 중앙집중적 획일적 통제를 하겠다는 발상을 버리고,사회 각 부문의 기능적 특성을 조장해 주려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정부는 자연주의적 조화의 입장에서 조정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제 우리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자는 말보다는 국민에게 충성하고 자식에게 봉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미래지향적 본질인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약력 김만규 ▲1939년 충북 진천 출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정치학박사(연세대 대학원) ▲연세대 조교수 ▲현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서 「조선조의 정치사상 연구」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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