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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인사/전자그룹장 김광호부회장/금융그룹장 이수빈 회장

    ◎기계그룹장 경주현 부회장/화학그룹장 황선두 사장 삼성그룹은 27일 사업 및 경영구조 개편과 관련,김광호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을 전자그룹의 장 겸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하는 등 4개 소그룹장 등 모두 23명의 사장급 인사를 단행했다. 사업구조 개편으로 신설된 소그룹장에는 이수빈 삼성증권 대표이사 회장이 금융보험그룹 장으로,경주현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이 기계그룹 장으로,황선두 삼성종합화학 사장이 화학그룹 장으로 각각 겸임 발령이 났다. 또 임경준 도쿄 본사 사장은 부회장 대우로,박홍기 제일합섬 대표이사 부사장 등 3명은 대표이사 사장으로,유상부 삼성중공업 고문은 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으로 각각 승진했다.이밖에 이필곤 삼성신용카드 대표이사 회장과 안재학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김무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사장·홍종만 삼성화재 대표이사 부사장은 21세기 기획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머지 인사는 다음과 같다. △삼성석유 대표이사 사장 박웅서 △삼성경제연구소 대표이사 사장 임동승 △삼성화재 대표이사 부사장 이중구 △삼성정밀화학 대표이사 부사장 이승웅 △한국안전시스템 대표이사 전무 박정옥 △삼성라이온즈 대표이사 전무 이광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전무 이영일 △삼성항공·삼성시계 대표이사 사장 이대원 △삼성데이타시스템 대표이사 사장 겸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 남궁석 △삼성신용카드 상담역 소병해 △한국안전시스템 상담역 이동우 △삼성물산 경영고문 김흥민
  • 청와대/“돌부처 푸대접” 루머에 시달린다

    ◎“기독교장로 김 대통령이 옮겨 대형사고 빈발” 억측/6공때 관저 지으며 이전… 온존상태 기자단에 공개 청와대가 돌부처를 둘러싼 악성루머에 시달리고 있다. 루머의 내용은 기독교 장로인 김영삼대통령이 청와대경내에 있는 불상을 딴데로 옮기는등 푸대접을 했기 때문에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성수대교 붕괴사고에 이어 충주호 유람선 화재사건이 터지면서 남부지방에서 시작돼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한다. 이같은 루머는 국내에서만 그치지 않고 지난 26일 호주에서 발행되는 파이낸셜 리뷰지가 확인절차도 없이 이를 사실인 양 보도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처음 반응은 어처구니없다는 정도였다.지난해에도 이런 루머가 불교계일각에서 돌았고 결국 사실이 아님이 해명됐다.그러나 외국신문에 루머가 사실인 양 보도되고 수석비서관들마다 『그게 사실이냐.그러면 안된다』는 걱정전화에 시달리는 상황이 되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됐다. 마침내 청와대는 27일 출입기자단에게 이 불상을 공개했다.대통령관저뒤로 1백m쯤 산등성이 쪽으로 올라간 곳에 두평가량 돼 보이는 누각이 있고 그안에 불상은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평소에는 출입기자들도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안내판에는 이 불상이 서울시 지정문화재 제24호이며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쯤에 제작된 것으로 적혀 있다.석굴암의 본존불상과 같은 양식.경주 남산에 있던 것을 일제때 데라우치총독이 일본으로 가져가려다 실패,이곳에 남기게 됐다.불상의 높이는 1m10㎝가량.가부좌를 한 좌불이다. 대통령관저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큰 불상이 있다는 것이 지나치게 알려지면 이번에는 기독교쪽에서 들고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적극적으로 해명하기도 어렵고,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난처한 지경이라고 할 수 있다. 불상은 처음 현재의 대통령관저자리에 있었다.지난 89년 노태우 전대통령이 새로 관저를 지으면서 자리를 옮겼고 그 뒤에는 그저 그자리에 한결같이 앉아 있다.
  • 남북 경협보다 북경제 국제화 지원을/21세기위 세미나 내용 요약

    ◎공무원 봉급 올리고 부패 엄벌해야/한은 독립성 제고… 공공요금 현실화/3세대 반동거 「수정 가족제」 모색을 대통령 정책자문기구인 21세기위원회(위원장 서진영)는 28,29일 이틀동안 서울 신라호텔에서 「선진한국의 정책과제와 방향」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갖는다.지난 8월1일 제2기 21세기위원회가 출범한 뒤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세미나에서는 21세기에 대비한 앞으로의 국가정책방향과 한국의 미래상에 대해 7개 분과로 나눠 토론을 벌인다. 분과별 주제발표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송 복 연세대교수(21세기 선진한국의 미래상)=21세기 한국사회의 이념적 모형은 세계적인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이 상호 보완적인 모습을 띨 것으로 보인다.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주의·개인인권주의·개방주의와 다원주의등 5가지 보편적인 이념에 한국의 특수한 이념인 공동체주의·호혜주의·관용주의·문화주의·자연주의·절제주의등이 보완·재구성될 것이다.우리의 특수 이념들은 보편적 이념들의 부정적 요소들을 보완,토착화·활성화 할 것이다. ▲김성국 부산대교수(지방화시대의 정치발전)=한국의 정치는 지방화시대를 맞아 세가지의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먼저 정치적 부정부패를 일소,정치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립해야 한다.이를 위해 공무원의 봉급을 실질적으로 인상하고 부정부패 관련자를 엄벌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새정부의 개혁정치는 개혁세력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되거나 시민들의 개혁에 대한 기대가 식기 전에,그리고 경제상황이 호전된 현시점에서 전면적이고도 철저하고 신속하게 추진돼야 한다. 둘째,중앙정부의 과감한 권력분산으로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어야 한다.이 과정에서 지역이기주의를 일방적으로 비난할 게 아니라 제도적 조정과 활성화를 통해 지역자치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한국정치의 중앙집권적 구조를 개선하고 지역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며 통일에 대비,연방제적 국가체제로의 개혁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셋째,지방자치가 소수 권력집단의 전유물화되는 것을 막고 시민의 정치참여를 적극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시민주도형 정치체제를 시행해야 한다. ▲안석교 한양대교수(활력있고 정의로운 시장경제의 건설)=사회적 통념과 상식이 통하는 시장경제건설은 경제개혁의 기본방향이며 앞으로의 경제성장 전략이 돼야 한다.정부 경제정책의 역할은 자생적 경제질서의 창출과 그 과정을 용이하게 하는 환경조성에 한정돼야 하며 이를 위해 시장경제질서안에 공정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효율적인 거시경제정책조정을 위해 정부의 경제정책기구를 개편해야 한다.예산실과 공정거래실의 기능을 재검토하고 현재 상공자원부 산하에 있는 무역위원회를 수입피해구제기관으로 독립시켜 대통령직속의 준사법적인 성격을 갖는 기관으로 확대·개편하는 한편 해외파견 인력에 대한 우대조치를 제도화해야 한다.아·태 경제협력체(APEC)의 무역투자위원회를 활성화시켜 한국·중국·일본의 3자무역회담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세제개혁을 통해 소득세·재산세 기능을 강화하고 공공요금의 현실화등 수익자부담을 확대하며 통일에 대비한 재정계획을 세우고 통화신용정책의 독립성 제고를 위해 중앙은행의 기능과 제도를개선해야 한다.근로기준법의 전향적인 개정과 노동위원회의 실질적인 권한이 필요하고 국제화와 지방화 추세에 대응할 수 있는 국토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상대적으로 낙후된 국민복지·환경부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배려해야 하며 남북통일에 대비한 이질성극복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진주 한국과학기술원교수(과학·정보·환경분야의 정책기조와 과제)=과학기술발전·정보화촉진·환경보전등은 모두 장기적인 관점에서 범부처적인 종합조정을 통해서만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다.이들 3개 분야의 정책기조는 첫째,과학적 기술·정보화·환경정책의 목적과 발전목표가 명확히 선정되고 합의되어야 하며 둘째,관련 이해집단인 정부부처·기업·국민들간의 협력과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셋째,민간주도 또는 민간참여를 촉진하는 기조 아래 시장경제원리가 작동돼야 하며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장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개발과 시행에 힘써야 한다.특히 환경외교는 외무부만이 아닌 환경전문가들의 주도로 강화해야 한다. ▲김태현 성신여대교수(가족해체와 공동체 위기)=가부장적 문화와 서구적 개인주의,평등주의가 혼재된 지금의 가족사회가 추구해야 할 모델로 수정확대가족및 수정핵가족을 제시하고자 한다.이는 3세대가 「반 별거」(반 동거)라는 외형적 틀 아래 서로 밀접하게 교류하며 가족공동체가 가족권력의 주도권을 갖는 특성을 갖는다. ▲방석현 통신개발연구원장(정보사회를 위한 정책제안과 과제)=정보공동체는 구성원이 정보를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정보를 즉각 교환해 활용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열린 사회로 투명성·다양성·창조성이 높은 선진사회다.정보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국제화에 따른 국제정보공동체추진 ▲국가 정보통신 기반확충및 정보화 ▲국제화전략기지로서 국제정보도시건설 ▲지방화에 따른 지역정보화 ▲남북한 정보통신통합 기반구축등 5가지 중심과제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정용길 동국대교수(통일과정의 관리)=분단및 통일과정의 관리방법으로는 크게 세가지를 들 수 있다.첫째,우리 정부가 천명한 통일한국의 기본이념과 통일원칙에 맞는 관리방안이 수립돼야 한다.둘째,한국을 참다운 자유민주주의로 건설하는 한편 우리의 변화,예를 들어 남북한 교류나 협력을 위한 제도의 보완및 관계법령의 개정·폐지,북한방송청취 허용,언론인의 북한방문 취재활동 보장등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셋째,우호적인 국제적 통일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정치·외교,경제,군사·안보등 분야별 통일과정 관리방안은 우리정부가 발표한 3단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정치·외교는 화해·협력단계에서 신뢰구축을 모색하고 남북연합단계에서는 법적·제도적 통합을 시도해야 한다.경제분야에서는 남북경협 보다는 북한경제의 국제화를 지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따라서 경제교류와 협력의 여건조성을 거쳐 이를 확대해 경제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군사·안보분야는 화해·협력단계에서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하고 남북연합단계에서는 한반도 군비통제와 남북한의 군사통합방안,다자간 안보협력체제 등을 연구,구축해야 한다.
  • 백제 보물급 문화재 익명 기증/일 하치우마 다다스로 밝혀져

    ◎이민섭장관,감사패수여… 특별전시실 설치 약속/통일신라 금동불상·사리5과 추가 기증/“마음에 담았던 한·일친선 도움 됐으면” 지난 9월19일 부친이 소장해오던 보물급 문화재 백제금제귀걸이등 한반도 출토유물 3백77점을 조건없이 기증한 익명의 일본인이 24일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과 사리병안에 들어있던 사리 5과를 추가로 기증하면서 본인의 신분을 밝혔다. 문화재 기증자는 일본 효고현 아시야시에 거주하는 하치우마 다다스씨(67·부동산업)로 평소 마음속에 품어 왔던 한·일간의 친선도모를 위해 부친의 컬렉션을 모두 기증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치우마 다다스씨가 이날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에게 기증한 금동불상은 그동안 일본 교토시의 수학원 이궁 안에 있는 촌구사에 봉안되어있어 기증 목록에서 빠졌던 것이다. 금동불상은 높이 5.5㎝로 둥근 두광에 두손을 배부분에 모으고 앉아 있는 좌상의 판불로 통견의 법의를 입고 있으며 좌대에 고정시키기 위한 돌기가 있는데 원래의 좌대는 없고 새로이 만들어 고정했다. 이불상은 수집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19 22년 경주의 불국사 주변에서 발굴된것이다.국내의 학자들은 이 불상이 통일신라의 것으로 원만한 모습의 희귀한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 불교 조각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치우마씨는 또 이미 기증한 전남 영광군 도갑사 부근의 탑에서 출토된 사리병 속에 있던 갈색 회색빛을 띠고있는 1∼2㎝ 내외의 표주박 모양을 한 사리 5과도 함께 기증했다. 이민섭장관은 하치우마씨에게 감사패를 수여하고 앞으로 국립박물관에 하치우마 다다스실을 만들어 특별전시하면서 기증자의 뜻을 기리겠다고 말했다. 하치우마 다다스씨는 『올해 1백살이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양친이 함께 수집했던 한국의 문화재를 조건없이 한국에 돌려주고 싶었다』면서 『과거 일본이 한국에 큰 은혜를 입었는데 이 기회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게 된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치우마씨의 부친 하치우마 가네스케씨는 일본의 사쿠라은행총재를 지낸 원로 금융인으로 은행을 퇴직한 후에는 석유산업과부동산업으로 큰 돈을 모아 중국과 한국의 문화재를 사모았다.그가 62년 세상을 떠나자 6남매가 고르게 나누어 가졌는데 차남인 다다스씨가 소장했던 3백77점을 한국에 모두 기증한것. 처음에 이름을 숨긴것은 『불교신자로서 남의 나라의 종교와 신앙에 대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밝혔다. 부친인 하치우마 가네스케씨는 한국에 한번도 오지않았으며 다다스씨도 이번 방문이 지난 9월의 짧은 방문에 이어 두번째.경주에서 1박을 하면서 법주의 신비한 맛에 취했다는 다다스씨는 일본의 자기 소유 땅에 한·일 양국의 우호 친선과 문화 교류증진을 위한 건물을 짓고 싶다고 밝혔다. 건장한 체격에 귀족적인 인상인 하치우마씨는 『국립박물관에 특별전시실이 마련되면 가족과 함께 서울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며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장관이 감사장을 주고 환대를 해주어 진정으로 감사한다』며 밝은 얼굴로 말했다.
  • 워싱턴 브리지(외언내언)

    다리의 수명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15년이 채안돼 내려앉고만 우리의 성수대교 때문에 얼핏 떠오른 의문이긴하지만 실은 어리석기 한량 없는 질문이다.시골 실개천에 나무토막 몇을 올려 놓은 간이 다리라면 잘해야 1∼2년 버틸 것이고 질이 좋은 돌을 다듬어 만든 것이라면 기백년은,요즘처럼 발달한 고강도의 시멘트와 철강제를 섞어만든 현대의 다리라면 보수야 계속해야겠지만 반 영구적일게 뻔한 이치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기원전에 만든 석조 아치교들이 남아있다.이런 다리들은 규모가 작아 지금 개념의 다리라 할수 없을지 모르지만 프랑스의 님에는 기원 14년에 만들어진 길이 2백70m나 되는 수로교(퐁뒤가르)가 아직도 멀쩡하게 남아있다. 우리나라에도 8세기 중엽 신라 경덕왕대에 창건된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고 개성에도고려조의 선죽교가 현존하고 있다.서울에는 조선조 세종때 만들어진 수표교가 지금 장충단공원 입구 개천위에 걸려있다.본래는 청계천에 있었던 것을 복개공사를 하면서 1959년 이리로 옮겨다놓은 것이다. 21일 아침 서울 성수대교가 내려앉자 시공업체인 동아건설측은 설계 당시 이 다리는 하중을 18t까지 버틸수 있도록 돼있었는데 현재는 버텨야할 하중이 24t으로 늘어 사고가 났다고 해명아닌 변명을 했다.하중이 6t늘었다고 주저앉을 다리라면 다리의 개념부터가 잘못돼 있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미국 뉴욕의 조지 워싱턴브리지는 설계 당시엔 상상도 할수 없었던 무게의 대형 트레일러가 수없이 다니는 현재도 건재할 뿐 아니라 교통량이 늘어 다리를 2층으로 개조했어도 당당히 버티고 서 있다.창피한 얘기지만 한강에도 60여년 전인 1935년에 일본인들이 만든 한강대교가 지금도 다리노릇을 하고있다. 지존파,인천 세무비리등에 이은 이번 성수대교 붕괴사건이야말로 우리의 어김없는 실상이요,국민소득 1만달러를 바라보는 선진국진입 운운의 모습은 그야말로 허상이 아닌가.안타깝고 창피하고 화가난다.
  • 시인 미당 서정주(이세기의 인물탐구:61)

    ◎팔순에도 샘 솟는 시정… 문단의 거봉/새로운 언어­독특한 깊이로 감동의 운율빚어/어릴적 가난­방랑 벽이 창작욕이 밑거름으로/“내 숨결 그칠 때까지 시어 더듬고 또 더듬겠다” 1948년 선문사가 발행한 미당의 두번째 시집 「귀촉도」에서 김동리 발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나의 유일한 정신상의 재보로서 쌓아왔다. 그의 뇌락불기한 인격과 자유분방한 시혼은 그 처녀시집 「화사집」을 통하여 이미 세상에 그「비늘을 번득인」바 있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적어도 이 땅에서 시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늘날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이 혹성의 찬연한 광망과 위치에 등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평자들이 미당을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용되는 명평이다. 「뇌락불기」란 「마음이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남에게 구속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미당의 문학적 족적은 광활하고 높고 깊다. 그리고 훨훨 나는 그의 두루마기 차림처럼 시에 관한한 무장무애하고 무소불위하다. 지금은 문단의 거봉으로 우뚝 서 있지만 미당의 지난 세월은 가난과 슬픔과 방황과 방랑벽으로 그 인생의 절반이 혹독하게 얼룩져 있었다. 어릴 때는 당시를 배울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만14세 되던해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해서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적이 있고 고향의 고창고보에 편입했다가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으로 또 한번 퇴학을 당했다.다시 서울로 올라와 극예술연구회 연극배우노릇, 마포 도화동 빈민촌에 입주하여 넝마주이 행색으로 쓰레기를 줍기도 했고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교장이며 존경하는 스승인 석전 박한영을 만나 안암동 개운사에서 능엄경을 공부하게 되었다. ○어릴때는 당시배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만주로 건너가 만주곡량주식회사 연길지점에서 경리과직원이 되는가 하면 김좌진장군과 이승만대통령의 전기집필,「옥루몽」등 옛소설 번역으로 생계를 잇다가 인촌 김성수 집안과의 인연으로 동아일보 사회부장 학예부장을 지내는 등 그의 인생역정은 파란이 깊고 다양하기만 했다. 이토록이나곡절이 심한 방만한 생활덕분에 한때는 자살을 기도하다 미수에 그치고 생명의 존엄을 체험하고 나서야 미당은 비로소 삶에 대한 의욕과 생명의 활기가 몸속에 용솟음치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조선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광주 무등산 자연속에서 「난생 처음 보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들과 조우하게 되었고 이무렵 「무등을 보며」「학」「상리과원」같은 명품을 연달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의 시들은 끊일줄 모르는 시심과 계류와도 같은 운율의 감동을 자아내면서 마치 가을 한낮 거문고 소리처럼 청랑한 운기로 흥취와 운치를 자아내는 것이 일품이다. 그의 탁월한 시업은 과거로의 관념적 도피나 신비주의에 탐닉한 시절이 있었고 영원의 생명에 대한 명상으로 온자하고 정밀한 내면을 구축하면서 「육체적 인간의 본원적 충동을 순화시켜 어느 순간엔가 숭고한 정신적 표현의 극에 도달」한 것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최근 「시와 시학」지에서 시인들이 「교과서에 실리고 싶은 시」로 추천한 「무등을 보며」는 명편중의 명편으로 미당이 아직 38세이던 19 53년 「현대공론」에 발표한 것이다. 그때 이 시를 읽은 젊은 이들은 「구구절절 감명을 사로잡는 명구」라든지 「화살처럼 꽂히는 충격」으로 이를 극구 찬양해 마지 않았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저 눈부신 햇빛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있는/여름 산같은/우리들이 타고난 살결/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수 있으랴/청산이 그 무릎아래 지란을 기르듯/우리는 우리의 새끼들을 기를 수 밖에 없다…」 미당의 주옥같은 시들을 일일이 다 열거 할 수는 없다. 단지 그가 낳는 시마다 절륜의 절창으로 평가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평론가 유종호는 「창의성 있는 언어구사와 독특한 깊이와 지혜, 상당량의 시편이 그릇 큰 시인의 구비조건이라면 20세기 우리 시인 가운데서 이러한 조건을 가장 보기좋게 구비한 이로 미당」을 드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과연 언어를 부리는 장인적 기술에서나 직관과 상상의 능력에 있어서나 만인이 칭송하는 대가의 반열에 선 그는 한국적 릴리시즘의 탁월한 정형을 만들어냈고 안주를 모르는 시정신으로 한국의 운치와 위엄을 어느 시에서나 감동적으로 증명해 왔다. 해인사 체류시절 미당을 사로잡은 소쩍새 울음소리는 그에게 불치의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음향으로 다가와 저 유명한 「귀촉도」와 「국화 옆에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국민학교 시절에 벌써 일본여선생을 흠모하는가 하면 불혹의 나이때도 때때로 여난을 겪게 되어 「나 바람나지 말라고/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놓는/삼천 사발의 냉숫물」은 미당을 엿보게 하는 낭만시인의 일면이기도 하다. ○속과 선을 아는 성품 만년의 그는 인생을 관조하는 허허로운 마음과 가족을 거느린 가부장적 자세를 빌리고 있으나 「속도 알고 선도 아는 복합적인 성격」과 대체로 괴팍과 까다로움이 승한 편이다. 그 한 예로 70년대 초반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초청으로 영국시인 스티븐 스펜더가 한국에 왔을때 그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미당은 취중이었는지 한국의 정상다운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팡이를 휘둘러 「TS 엘리엇이 아니면 돌아가라」고 외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시인 고은이 한때 주란과 폭소버릇으로 위아래없이 오만방자하게 굴자 처음에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어지로운 헛웃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가족회의끝에 그를 공덕동에서 추방하고 「고은출입금지령」을 내린 일도 있다. 그의 풍류는 나무와 돌과 침향(심향)과 글씨 그림외에도 난취미가 으뜸이다. 지난 70년 25년간 살아온 공덕동을 떠나 관악산밑 사당동으로 거처를 옮기고는 택호를 쑥 봉자 마늘 산자를 따서 봉산산방으로 붙여놓고 그는 한동안 나무심기와 난수집에 주력했다. 시암 배길기와의 광동보세며 삼중당 일력에 자필 시를 써주고 받은 제주한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류시인 김양식과의 중국춘란에 얽힌 대화는 난향같은 일화다. 당시만도 그가 지닌 서른분쯤의 난들은 「겨우 여중 2학년 정도의 잎만 여남은게 솟아올린채 꽃필날이 아득하기만 한데」 난화부재의 겨울날 김양식이 불쑥 전화를 걸어 「대만에서 구해온 중국춘란이 아주 썩좋게 한송이 피었다」고 자랑삼았던 모양이다.이때 미당의 대답이 걸작이다. 「이웃하나가 명주바지를 입으면 여러 가호가 두루 따뜻한거라는데 나도 그 푼수니 염려말고 잘 만끽하시라」고 했다. 그러자 김양식은 가족들과 휴가를 가게되니 「그 사이 며칠만 돌보아주시며 즐겨보시는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미당은 그제서야 눈이 번쩍 띄게 반가워했고 비록 빌렸을 망정 책상위에 난을 놓고 보고 또 보고 난향을 맡으며 「시의 감동이란 것도 내 생애에서 항용 이런 식으로 일어났다. 내가 소유하는 것에서보다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간절해지는 감동으로 시를 쓴 것이 많았다」고 한 산문에 적고있다. ○커피보다는 맥주 즐겨 그의 정열과 의욕은 식을 줄을 몰라 한때는 영어단어를 하루에 수십개씩 외는가 하면 70년 초반부터는 세계를 두루 일주하며 끝없는 여행길에 오르더니 최근엔 세계의 산봉우리를 높이순으로 1천6백여개나 줄줄이 기억해내는 독특한 취미를 보이고 있다. 미당은 올해 팔순이지만 아직도 그 시작은 그의 방창앞에 심은 소나무처럼 청청한 천뢰의 소리를 잃지 않는 기상이다.요즘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커피보다는 맥주」를 권하고 제자들이 마련한 시낭독회나 남을 축하하는 자리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 지난 9일에는 송파문화원에서 열린 국선문학회에 나와 「국선(국선)」이란 모임이름을 지어주고 후배들의 회장추대를 극구 사양하여 주변을 송구스럽게 했었다. 이제 자기자신을 홀연히 내쳐버리는 무집착의 상태에서 그의 최근의 시들은 글맛이 한층 무르익어「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 되는 경지」다. 산다는 것이야말로 사변의 연속이었던 시대를 거치면서 일찍이 김동리가 지적했듯이 미당은 지금도 「내 숨결이 아주 내 육신을 떠날 때까지는 더듬어보고 또 더듬어」 새로운 시에 대한 분방한 광망을 접어두거나 조금도 늦추려들지 않는다. ▷연보◁ ▲1915년 5월18일 전북고창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출생.서광한씨와 김정현여사의 2남2녀중 장남 ▲1929년 부안 줄포보통학교 졸업.서울 중앙고보 입학 ▲1931년 전북 고창고보2학년 편입,권고자퇴,서울 상경 ▲1935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입학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 「벽」당선 ▲1936년 시전문지 「시인부릭」편집인겸 발행인 ▲1941년 처녀시집 「화사집」(남만서고)1백부 한정판 출간 ▲19 48년 동아일보 사회부장 및 학예부장,문교부산하 예술과 초대과장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 위원장 ▲1952년 광주 조선대학 부교수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초대회원 ▲1955년 미국아세아재단 자유문학상 ▲1960년 동국대 부교수 ▲1961년 제1회 5.16문예상 ▲1966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5년 서울 신문회관서 회갑연 ▲1976년 미당시를 주제로한 시화전 서울서 제주까지 6개월간 전시 ▲1977년 한국문인협회 회장 ▲1979년 동국대 정년퇴임,대우교수로 대학원 강의 ▲1980년 동아일보 문화대상 개인상부문 본상 「귀촉도」「서정주시선」「신라초」「동천」「질마재 신화」「안 잊히는 일들」「늙은 떠돌이의 시」「산시」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전5권) 「서정주 시선집」(전2권)등 시 8백여수와 「서쪽으로 가는 달처럼」등 산문집과 여행기가 있음.
  • 제주 중문골프장/민영화방침에 우려의 목소리

    ◎대기업 인수땐 패키지여행상품 독점 “불보듯”/이용객 26%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 차질 예상 제주도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중문골프장의 일반 매각방침을 놓고 정부의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말 공기업 민영화방안의 하나로 기능수행과 직접 연관이 없는 한국관광공사의 중문골프장을 일반에 매각한다는 방침이 알려지면서 대기업들은 물밑작업에 돌입했고 단지내 업체와 관광공사등은 대기업 사유화에 따른 손실과 골프장 건설취지 등을 내세워 강력히 반발,「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서귀포시 중문단지내 27만8천평,18홀 규모로 89년 개장된 중문골프장은 감정가가 1천억원을 호가하고 있어 경쟁입찰시 막대한 자금력의 대기업에 매각이 유력시 되고 있다. 대기업이 골프장에 「군침」을 삼키고 있는 것은 중문을 포함,제주도내 골프장은 3곳(72홀)에 불과하며 매입과 동시에 대규모 회원을 모집을 통해 투자재원의 조기 회수가 가능하기 때문.또한 같은 계열의 호텔등 부대시설을 이용,골프장과 연계한 패키지상품을 개발하면 많은 이익이 예상돼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현재 인수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업체는 삼성(제주신라호텔),한진(서귀포 KAL호텔)등으로 알려졌다. 관광공사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비회원제」및 「외국인 예약우선제도」를 입찰조건을 내세워 빠르면 오는 12월중 공개경쟁입찰방식으로 일반에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단지내 제주 하얏트호텔·한국콘도·하나호텔·씨 빌리지등 입주업체등은 『일반에 매각할 경우 매수자가 매각조건을 지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골프장을 도구로 여행과 숙박등 연계한 관광 패키지상품을 독점할 가능성이 크다』며 손실보전과 공익차원에서 정부의 매각방침은 철회돼야 한다는 주장이다.단지내 업체들은 컨소시엄을 구성,매입을 추진하는등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 관광공사는 골프장이 민간에 넘어가 회원제로 운영될 경우 관광객이 크게 감소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올해들어 8월까지 골프장이용객은 4만6천여명으로 이중 26%인 1만2천여명이 외국인 관광객으로 민간에 넘어가면 관광객유치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는 것.따라서 공사측은 당초 건설취지인 관광진흥을 위해 현 체제로 운영을 지속하거나 2단계 개발완료시점인 2001년이후 매각이 검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와함께 민자당 변정일·김진재의원,민주당 이윤수의원 등도 이번 국정감사에서 골프장 일반매각에 따른 갖가지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신중을 기하기 위해 당분간 매각을 유보하거나 정부방침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밝혀 매각 여부가 주목된다.
  • 한국 상고사연구 방법론 논쟁

    ◎세종대 최정필고고학교수 「신진화론…」 논문 발표후 표면화/최 교수/족장사회는 국가형성 직전의 사회형태/사학계/고인돌사회→족장사회→고대국가로 변천 한국 상고사 연구의 방법론을 놓고 고고학계와 사학계가 일대 논쟁을 벌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이는 세종대 최정필교수(고고학)의 논문 「신진화론과 한국 상고사 해설비판에 대한 재검토」가 발표되면서 표면화 했다.한국 상고사 분야가 고고인류학이론에 의해 장식되는 것을 경계해온 사학계의 학문연구태도를 꼬집은 최교수는 신진화론이 보편적 가설로 검증된 이론인 만큼 수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먼저 신진화론에 의해 한국 상고사에 적용될 수 있는 족장사회를 밝혀냈다.족장사회를 국가사회가 형성되기 직전의 사회형태로 본 그는 호남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한 1만2천8백여기(전남 1만1천·전북 1천8백여기)의 청동기시대 고인돌에서 그 증거를 찾아냈다. 전남 승주군 송광면 우산리 고인돌에서 나온 긴돌칼 17점,비파형동검 2점,옥제장신구 10점과 여천군 적량동 고인돌 출토품인돌칼 3점,비파형동검 7점,대롱옥 1점은 고인돌사회를 족장사회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특히 청동제품과 옥제장신구는 일반인들이 사영할 수 없는 상류계급의 전유물인 동시에 교역을 통해 지배층이 소유한 귀중품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그리고 고인돌사회는 직업의 전문화와 노동력동원에 따른 행정적 통제력이 요구된 사회라는 견해도 내놓았다.3∼4t에서 수십t에 이르는 돌을 운반,고인돌을 축조하자면 이같은 요구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최교수는 전남 해안지역과 보성강유역을 족장사회의 행정 근거지로 어림했다.왜냐하면 이 지역 고인돌에서 지배계급을 상징하는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학계는 가족수준의 집단사회→지방 집단사회→족장사회→국가사회로 이행되는 신진화론의 도식을 배제해왔다.고고인류학계는 족장사회를 청동기시대 또는 고인돌사회로 보는데 반해 사학계는 청동기시대이후 신라육촌과 삼한사회를 족장사회로 본다.또다른 사학계 한쪽에서는 신라 육촌의 경우도 족장사회가 아니고,고인돌사회(청동기시대)→소국→성읍국가→고대국가로 이어지는 국가형성단계 가운데 족장사회는 바로 성읍국가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어떻든 고인돌사회가 족장사회였다는 설이 제기되자 사학계는 한국 상고사를 서양의 도식화한 틀에 끼워 넣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족장사회를 성읍국가 이전 단계인 청동기사회로 올려잡는다면 족장사회의 상한은 신석기시대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학계는 이번에 문제가 된 최교수의 논문을 실은 「한국상고사학보」다음호(제17호)를 통해 반론을 펼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 불친절」 세계 4위/홍콩지,42개도시 선호도 조사

    ◎“택시 잡기”·“길찾기 힘들다” 불만/공기·미관등 종합평가선 31위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가 좋아지긴 했으나 외국인들은 여전히 서울을 불친절한 도시로 생각한다. 14일 홍콩에서 발행되는 「비즈니스 트래블러」지가 9백9명의 독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세계의 주요 도시,공항,항공사 및 호텔에 관한 선호도에 따르면 서울은 42개 도시 중 모스크바,광주,파리 다음으로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도시이다.지난해의 조사에서는 파리 다음으로 불친절한 도시로 꼽혔었다. 모범택시가 생겼지만 서울에서 택시를 잡는 것은 작년처럼 모스크바와 방글라데시의 다카만큼 어렵다.도로 표지판을 보고 길을 찾는 것은 인도의 봄베이보다 더 어렵다. 서울은 도시미관,맑은 공기,교통상황,물가 등 12개 항목에 대한 종합평가에서 작년보다 3단계 올라섰으나 북경보다 한 단계 낮은 31위이다.그러나 야간생활의 질에서는 23위로 종합평가에서 앞선 프랑크푸르트,브뤼셀,취리히 등에 비해 순위가 높았다.외국인들이 향락도시로 인식하는 셈이다.김포공항은 세계 42개 주요 공항 중 출입국 심사와 수화물 처리의 신속성,환전시설 등에서 다소 좋은 평가를 얻어 종합선호도 순위가 작년보다 3단계 오른 29위이다. 항공사 선호도에서 대한항공은 노선,비행 스케줄,정시성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괜찮았으나 기내식,안전성 등에서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 52개의 항공사 중 30위. 도시 별 호텔 선호도 조사에서는 서울의 경우 작년에 이어 호텔신라가 최고였다.스위스 그랜드,르네상스,롯데월드,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순이었다.
  • 전국 시·도립무용단 무용제 내일 개막

    ◎18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서 개최/서울·부산·광주·경기 등 8개 단체 참가 전국 8개 시·도립 무용단이 한자리에 모여 기량을 견주는 전국 시·도립무용단 무용제가 오는 14일부터 18일까지(평일 하오 7시30분 토·일요일 하오4시)국립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진다. 지난 89년 서울올림픽 개최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립극장이 마련,올해로 6회째를 맞는 이 무용제는 지역 예술단체의 저변확대와 지역문화교류 차원에서 호평을 받으며 자리잡아온 행사.특히 각 지역 무용인들의 특성을 살린 성과들을 한 무대에서 비교 평가하는 기회란 점에서 무용계의 큰 행사로 꼽히고 있다. 올해 무용제에는 전국 10개 시·도립무용단중 목포시립과 제주도립 무용단을 제외한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인천·창원·경기등 8개 시·도립 단체가 각기 개성있는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첫날인 14일 부산·대전시립무용단의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15일 광주시립무용단,16일 서울시립무용단,17일 대구시립·경기도립무용단,18일 창원·인천시립무용단순으로 매일 공연이 이어진다. 이가운데 부산시립무용단은 개막공연으로 신라시대 처용설화에 바탕을 둔 창작무용극 「천상의 길」을 소개한다. 이 작품은 처용설화의 단순한 재현을 벗어나 설화가 담고있는 우리겨레의 정신세계와 멋을 통해 우리춤의 맥락과 위상을 재확인하는 구성이다. 대전시립무용단은 창작무용 「머슴살이」를 보여주는데 요즘은 거의 사라진 머슴살이의 애환을 우리네 토속적인 몸짓을 통해 무용극으로 다듬어낸 작품이다. 두 단체의 창작무용과는 달리 광주시립무용단은 낭만주의 고전발레 「지젤」과 지난해 국내 초연된 모던발레 「레퀴엠」등 두작품을 선보인다. 한편 서울과 대구시립무용단은 모두 죽음과 영혼을 주제로한 작품을 소개하는데 서울시립무용단은 죽은자를 천도하기 위해 펼치는 전통굿의 하나인 「씻김굿」을 현대적인 제의형식으로 재해석한 「떠도는 혼」,대구시립무용단은 동서양의 생사관을 연작형태로 구성한 「죽음의 메타포」를 내놓는다. 경기도립무용단은 조선시대 수원성을 배경으로 효의 정신과 그 뿌리를 파헤치는 민초들의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그린 「아 수원성」을 보여주며 창원시립무용단은 이땅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과 혼백들을 위로하는 내용의 「땅이여 창원땅이여」,인천시립무용단은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산속에서 탈을 제작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다룬 「탈의 눈물」을 무대에 올린다.
  • 경주박물관학교 개교 40돌 기념잔치(문화현장)

    ◎「서라벌」 지키고 가꾸기 40년/54년 10월10일 진홍섭·윤경렬씨 등 4인 뜻모아 열어/경주역사·미래교육… 3천여명 수료/학교 발자취 한데 모은 전시회도 개막 경주는 고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다.경주에서도 국립경주박물관은 문화유산의 보고이다.수많은 유물 가운데 국보로 지정된 성덕대왕 신종과 안압지에서 나온 나무배의 파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따지는 일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경주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경주박물관에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하자.그러면 열사람 가운데 한두사람은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어린이 박물관 학교가 아닐까요』 이처럼 경주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경주박물관학교가 10일 개교 40주년을 맞았다.이날 박물관에서는 그 시작만큼이나 조촐한 기념식이 있었다.이어 박물관학교의 산 역사로 개교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일을 맡고있는 「마지막 신라인」 윤경렬옹이 학교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강연과 함께 그동안 어린이학교를 거쳐간 어른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학교의 발자취를 한데 모은 전시회가 개막됐다. 이날 기념식은 누구도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던 6·25전쟁 직후 1954년 어린 꿈나무들에게 「경주의 미래」를 넘겨주려던 몇몇 선각자들의 높은 뜻을 다시 한번 기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하늘도 내 교실 땅도 내 교실…」이라는 박물관어린이학교 교가를 오랜만에 따라 부르며 감회에 젖었다. 1954년 어느 여름날,진홍섭 당시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장과 윤옹,박일훈 학예연구사,이승을 문화고 교감 등 네사람은 『한주일에 한번쯤은 의미있게 모이자』고 약속하고 다음주의 주제를 「성덕대왕신종」으로 정했다. 그 다음 주의 주제는 「문화재 보호 목책」이었다.굵은 판자로 된 목책은 볼성사나운 흉물이었다. 이들의 의견은 『경주 시민들이 문화재의 참뜻을 안다면 목책이고 철책이고 필요없을 것』이라면서 『때묻지않은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자라서 어른이 됐을때는 이것이 가능해지지 않겠느냐』는 데로 모아졌다. 「하늘도 내교실…」이라는 교가는 이듬해 만들어진 것.윤옹이 가사를 써 진관장에게 건네주자 진관장은 이를 조지훈 시인에게 보여줬고 시인은 다시 이를 이제는 세계의 작곡가가 된 윤이상씨에게 보냈다.윤씨는 개교 1주년 기념식에 축하인사와 직접 교가를 부른 녹음테이프를 전해와 지금도 이 학교의 소중한 기념물이 되고 있다.이학교의 40년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50년대 초창기에는 박물관장실에서 경주여중 다시 미국으로 금관이 소개,되고 또 62년에는 경주 시립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이름도 「경주어린이향토학교」로 바뀌었다.75년 현재 박물관이 지어진뒤 다시 옛이름과 옛터를 되찾을 수 있었다.이학교는 82년 중·고등부와 성인부가 신설된뒤 「경주박물관학교」로 불린다. 이학교는 40년전 개교때 규칙대로 입학과 퇴학이 자유이다. 정식 수료증을 받은 사람은 3천명이지만 87년 34기 입학식에 2천5백여명이 몰려와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던일에서 보듯 50년대이후 경주태생은 거의 한 번쯤은 모두 이곳을 거쳐갔다. 그들이 지금 경주를 지키고 있다. 박물관학교의설립목표가 이루어진 셈이다.이제는 경주를 제대로 지키는 일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 태종무열왕 행차에 40만 시민 갈채

    ◎경주서 펼쳐진 서울신문·금성주최 길놀이/취타대­기수단 뒤이어 화랑이 어가 호위/차산농요 등 전통행사 곁들여 축제절정 서울신문·스포츠 서울·금성이 공동주최한 「태종무열왕 행차행렬」행사가 8일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성대하게 펼쳐졌다. 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대왕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90년,92년에 이어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금성이 세번째 마련한 「태종무열왕행차행렬」은 삼국통일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제24회 신라문화제」의 15개 길놀이 행렬 가운데 최대규모였다. ○…신라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태종무열왕행차행렬은 이날 상오 9시30분 경주시 황성동 시민운동장에서 시작된 「제24회 신라문화제」의 서제에 곧바로 이어져 문화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15개 놀이중 최대 경주 계림고교학생 3백20명의 무열왕행차행렬에는 대왕의 위엄과 행렬을 알리기 위한 어전황룡대기치의 대취타대를 선두로 가무단,우리나라의 산하를 표현한 기수단이 뒤따랐다.이어 50여명의 화랑들이 어가를 호위하고 1백여명으로 구성된 김유신장군 행렬이 뒤를 이어 민족통일에 대한 국민적 염원과 통일신라의 위용을 동시에 연출했다. ○통일염원을 연출 ○…태종무열왕행차행렬은 시가행진에 앞서 문화제 행사장인 경주 황성동 시민운동장의 트랙을 한바퀴 돌면서부터 운동장을 꽉 메운 2만여 시민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 시민운동장을 나선 행차행렬이 원화로를 지나 경주역∼화랑로∼서성로∼태종로∼팔우정을 거쳐 근화여고 앞에 이르기까지 3㎞구간에는 40여만명의 시민들이 나와 2시간동안 진행된 이날 행차행렬에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태종무열왕행차행렬이 사악을 물리치고 복덕을 부르는 벽사진경,충신 박제상,효녀 지은,화랑 관창,길이 50m에 이르는 호국 거룡등의 가장행렬등을 앞세우고 문명왕후,김유신,화랑행렬등을 거느린채 시가지를 행진하는 동안 서울신문·스포츠서울·금성이 준비한 비행선이 경주 시가지를 선회해 신라문화제의 축제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무열왕행차행렬등 이날 길놀이행사에는 청도·예천군 지역주민등 1만5천여명이 참가,차산농악과 공처농요등 다채로운 전통문화행사를 펼쳐 지금까지 축제가운데 최대규모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비행선 띄우기도 ○…이날 행사에는 우명규 경북지사,손경호 경북도의회의장을 비롯,박광희 경주시장등 경북지역 34개 시장,군수와 이동천 경주군의회의장,이상렬경주시문화원장,경주시 자매결연 도시인 일본 나라시등 5개 해외도시의 시장,부시장등이 참석,태종무열왕행차행렬을 감동적으로 지켜봤다.
  • 「태종무열왕 행차행렬」/「임경업장군 출진행렬」/장엄하게 재현

    ◎무열왕/오늘 경주서… 찬란한 신라문화 진수 한눈에/임경업/11일 충주서… 영신굿·화관무 등 볼거리 제공 삼국통일의 기틀을 확립한 태종무열왕의 행차행렬과 조선시대 호국의 명장 임경업장군의 출진행렬이 화려하게 재현된다. 서울신문이 「94 향토축제지원사업」의 하나로 마련한 이번 행사는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인물을 재조명함으로써 지역민들의 자부심을 심어주고 여기서 모아진 힘을 민족통일·호국의지로 승화시키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것.「태종무열왕 행차행렬」은 8일 제24회 신라문화제가 열리는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임경업장군 출진행렬」은 11일 제24회 우륵문화제가 열리는 충절의 고장 충주에서 잇따라 펼쳐진다. 「태종무열왕 행차행렬」은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엿볼 수 있도록 장엄하고 화려하게 꾸며지는 것이 특징.3백50여명으로 이루어진 행렬은 8일 상오 9시30분 경주공설운동장을 떠나 시내 전체를 축제의 장으로 변모시키게 된다. 행렬은 왕의 행차를 선도하는 취타대를 앞세우고 큰북과 남북통일의 열망을 상징하는 기수단,군기와 의장기를 든 의장대에 이어 주인공인 태종무열왕과 김유신,화랑 등이 위엄있는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임경업장군은 호국의 명장이었으면서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불운의 인물로 토착신앙에 의해 나라의 복과 평안을 주관하는 신령으로 모셔지고 있다. 이에따라 「임경업장군 출진행렬」은 이날 하오 2시 무속인들이 장군의 영혼을 영신굿을 통해 모셔오는데서부터 시작된다.이어 임장군을 환영하는 화관무가 끝나면 마침내 4백여명으로 이루어진 장엄한 행렬이 공설운동장을 나선다. 행렬은 갑주를 입은 입경업장군을 선두로 취타대와 오룡굿패,12지신기가 호위하는 임장군의 영정,큰북,전군과 후군,그리고 농악이 뒤따르며 흥을 돗우게 된다.
  • 백제를 다시본다를 마치고/전문가 좌담

    ◎“문화·사회사적 접근… 백제사 인식 새롭게”/금동향로서 보듯 수입문화를 자기화/학자 동원 알기쉽게 풀이… 독자이해 도와/풍납동토성·아치산성 보존대책 시급/문헌자료 부족… 역사분야 공백에 아쉬움/「백제문화권 개발」은 완벽한 역사 복원위해 학술조사 선행돼야 ▷참석자◁ 김기웅 문화재전문위원·고고학 이기동 동국대교수·한국사 최몽용 서울대교수·고고학 서울신문이 10개월여에 걸쳐 매주 금요일 연재해 온 「백제를 다시본다」가 30회를 끝으로 지난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해 연말 충남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된 세기적 보물 금동용봉봉래산향로 출현과 더불어 시작했던 이 기획시리즈는 새로운 시각의 백제문화사라 할 수 있다. 이를 마감하면서 그동안 갈채를 보내온 독자 여러분의 기대감을 조금이라도 더 충족시켜주기 위해 관계학자들이 참여한 정담을 마련했다. 많은 부분을 여백으로 남겨놓은 백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평가가 내려지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김기웅박사=지금까지 백제에 대한 인식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이었습니다.이런 상황에서 「백제를 다시본다」는 일반독자들이 그동안 전문가가 독점했던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백제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여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여기에는 참여한 학자들이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써 일반독자들의 백제역사를 이해하는데 한 몫을 했지요.「백제를 다시본다」는 한마디로 현재까지 이루어진 백제연구의 총 결산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기동교수=그렇습니다.그동안 백제연구는 너무 세분되어 있었다는 느낌입니다.한 분야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자기 영역을 벗어나면 어두운 것이 현실이었어요.그런데 「백제를 다시본다」를 통해 30여명에 이르는 각 분야 학자들의 전문적 연구결과를 모아놓고 보니 백제역사의 대강을 새롭게 파악할 수 있었어요. ○백제연구의 총결산 ▲최몽용교수=사실 이런 유의 기획은 과거 TV에서도 여러차례 시도된 적이 있었지요.그러나 TV가 지닌 한계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많은 전문가가 동원되지 못한 아쉬움이 컸어요.그런 점에서도 「백제를 다시본다」는 좋은기획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김=욕심이겠지만 백제 뿐 아니라 신라나 가야·고구려도 다루었으면 해요.「백제를 다시본다」에서 보듯 한 지역문화를 보편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이=이 시리즈는 지난해 부여 능산리에서 금동용봉봉래산향로가 나온 것이 계기가 됐지요.이 향로는 한때 무령왕릉 발굴로 바짝 달아올랐던 백제에 대한 관심이 점차 침체되어 가는 마당에 출토되어 백제를 다시 인식시키는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최=향로가 나온지 10개월이 다 되어가는군요.그동안 이 향로 자체에 대한 해석도 불교·도교,혹은 백제의 건국신화와 연관시키는 등 여러가지로 논의됐습니다.여기에 악기와 의복 기타 미술사적인 연구도 활발했지요.물론 뒤에 총체적인 해석이 나오겠지만 이 향로는 그 하나만 가지고도 다각도에서 조명해볼 수 있는 백제문화의 진수입니다. ▲김=이 향로는 결국 당시 백제가 가지고 있던 문화적 역량의 집결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백제는 외국문화를 수입하는 데는 인색하지 않았지만 향로에서 보듯 절대 그대로 수용치 않고 자기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공주 벽돌무덤을 보면 중국의 묘제를 받아들였지만 연꽃모양의 벽화를 그려넣는 등 백제화 시켰습니다.당시 무덤의 양식을 바꾸는 것은 엄청난 문제였지요.묘제를 바꾸는 것은 바로 집권자의 상징을 바꾸는 것이었으니까요.비슷한 예는 석촌동 2·4호고분과 이번에 익명의 일본사람이 기증한 3백77점의 유물 가운데 하나인 백제귀고리에서도 발견됩니다. ○귀고리서도 발견 ▲이=문화분야의 경우 그래도 물질자료가 상당히 출토되어 어느 정도 이야기가 가능합니다.그러나 문헌자료에 의존해야 하는 역사분야는 자료의 혜택을 거의 못받아 연구상의 공백도 많습니다.아시다시피 국내 자료라고는 「삼국사기」가 거의 전부이고 「삼국유사」가 약간 보충하고 있는 정도입니다.「삼국사기」도 그나마 연대기적인 간단한 자료지요.그런데 「일본서기」는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엽에 이르는 2백년 동안 백제와의 교섭을 다룬 자료가 풍부합니다.어떤 시기는 일본의 국내 사정보다 분량이 더 많을 정도니까요.그 때문인지이마니시(금서 용)라는 일본학자가 쓴 「백제사 연구」라는 책을 보면 백제는 외교만 한 나라같은 인상입니다.여기에 해방 이후 우리연구자들도 백제의 국가사를 중심으로 정치제도·중앙관제·지방통제기구·관제·중국과의 교섭사 등을 주로 다루었습니다.연구가 정치사와 외교사에 치우쳐 있었던 셈이지요.그런데 백제 자체의 성격을 알려면 사회사에 대한 연구가 바람직합니다.최근 젊은 연구자들은 고고학적 사고를 일부 동원하면서 백제사의 내부구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종래 정치사에서는 백제는 지배층이 북방에서 남하한 고구려계가 서남쪽의 마한계 토착세력을 정복한 왕조로 지배세력과 토착세력의 이중성으로 심한 괴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백제 멸망도 사회구조의 이중성에서 오는 갈등에서 연유했으리라는 추측이었지요.그런데 「백제를 다시본다」를 통해 문화적인 관점에서 보니까 그런 이중성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흡수통일된 것으로 서술되고 있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최=토착세력은 고구려계의 정복전쟁 과정에서이미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나머지 공백지대는 백제에 쉽사리 동화되었지요.마한세력이 확실히 남아있었으면 이중적인 구조가 됐겠지만 이미 남하한 상태였다고 보아야 합니다.서기 369년께에 근초고왕의 마한 정벌도 이 남하세력을 복속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지요. ▲이=「일본서기」에는 그들 남하세력을 「남만」이라고 썼어요.굉장히 경멸하는 표현이지요.이질적인 문화 때문이었을 겁니다.그런데 이 「남만」은 바로 백제에서 부르는 그대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이름에서 보듯 백제의 남쪽이지 일본에서는 서쪽이니까요. ▲최=고구려까지 패배시킨 근초고왕의 힘이 아니었으면 남쪽까지 정벌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백제에 흡수되지 않은 이 세력은 처음에는 직산이 본거지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이 세력이 바로 목지국이지요. ▲김=백제의 마한정벌 이후로 추정되는 전남 나주 대안리의 백제고분을 보면 백제가 정벌 이후 행정관을 파견해 지배했을 것입니다.그런데도 백제화 시키는데 상당한 시간을 요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백제의 내부관계를 알 수 있는 한 예가 되겠지요.이제 문화재 보존문제로 넘어가 봅시다. ○일본서기 기록 많아 ▲최=백제는 기원전 18년에서 서기 475년까지 한성시대,서기 538년까지 웅진시대,이후 서기 660년 멸망 때 까지 사비시대로 나눌수 있습니다.이 가운데 공주와 부여는 앞으로 더 많은 유물·유적을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정부의 백제문화권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조사가 착수되면 유물·유적이 대거 나올 것입니다.유물·유적에 대한 기대와 아울러 보존대책을 지금부터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그런 생각을 미리 안해 실패한 예가 바로 한성백제입니다.올림픽경기장이 주위에 있는 석촌동 3·4호분과 몽촌토성은 그런대로 체면을 유지하고 있지만 풍납동토성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방치되어 황폐화한 상태입니다.전장이 3.5㎞에 이르는 풍납동토성은 지금 5백m만 복원 되었을 뿐 대부분 길이나는 등 원형을 잃어버렸습니다.강 건너에 있는 고구려 산성인 아차산성도 마찬가지입니다.이 두 곳에 가보면 우리에게 문화정책이라는게 과연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올해가 조선을 기준으로 서울 정도 6백년이라지만 더욱 중요한 백제시대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합니다.이 두 곳은 유적보존차원이 아니라 단순한 역사관광지로 만 신경을 써도 뛰어난 관광자원이 될 것입니다.올해가 「한국방문의 해」라지만 하다못해 문화유적을 관광수입과 연결시키는 정책만이라도 펴주었으면 좋겠습니다.풍납동토성은 지금 보존하지 않으면 정말 크게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풍납동토성은 기원전 18년 백제의 기원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몽촌토성은 4세기 정도로 연구되고 있지요.풍납동토성이 하북위례성,몽촌토성이 하남위례성일 가능성이 많아요.강 대안의 고구려 성이 불안해서 도성을 쌓은 것이 몽촌토성으로 보는 거지요. ○단순 관광지 안돼야 ▲김=석촌동고분군을 발굴하니까 적석총 아래에 토광묘군이 나왔습니다.두 묘제는 전혀 이질적이에요.정복자와 피정복자라고 볼 수 있겠지요.이 지역에 대한 재조명도 이루어져야 할 시점입니다. ▲이=조금전 백제문화권종합개발계획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이 계획이 지역개발이라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최=그렇습니다.백제권개발계획이 이미 확정은 됐습니다만 착공하기에 앞서 시간을 두고 학술적 조사를 충실히 하고 학자들의 중지를 모아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행정당국의 백제사에 대한 진지한 접근자세가 아쉬운 시점입니다. ▲이=유적정비도 중요하고 관광휴양단지도 중요하지만 백제역사의 복원이 그 사업의 궁극적 목표라면 내실 있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연구원을 대폭 보강해야 하는 것인데 부여문화재연구소를 활성화시키는 일도 그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연구소를 세워놓고 활용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최=그 중요한 부여에 문화재연구소와 박물관을 합쳐 현장에 나가 발굴하고 보고서를 쓸 수 있는 학예직원은 소장·관장까지 포함해 합쳐 10명이 있을 뿐 입니다.일본의 경우 특별사적이 있는 나라에는 이보다 1백배가 넘는 연구인력이 있습니다.문화재 정책이 1백년 앞을 내다보려면 늦더라도 연구인력을 키워야 합니다.공주에도 박물관이 있고 공주대 사학과가 있지만 연구인력은 몇명이나 됩니까.유적·유물이 모두 사라지고나서 도굴됐다느니 매몰됐다느니 그래봐야 이유가 안됩니다.역사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서라도 이제는 문화재 보존·보호문제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 입니다.
  • 태평무/진쇠춤/대신무/가을 무용계 수놓는 전통춤판

    ◎내일부터 이동안옹·정승희씨 공연/이/가무악 익힌 만능예인… 「신선과 학무」 일품/정/화관등 우리춤 원형 복원위한 고증 돋보여 귀족적이고 세련된 태평무,흐드러진 멋의 진쇠춤,영혼을 부르는듯한 대신무,잔재주 없이 담백한 승무 등….우리춤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묵직한 전통춤판이 초가을 무용계를 풍성하게 장식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기능보유자인 운학 이동안옹의 전통무용 대공연(6일 하오4시·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소강당)과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이수자인 정승희씨의 우리춤연구2 공연(9,10일 하오7시30분 문예회관 대극장)이 그것.특히 이번 공연은 우리 전통춤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철저한 문헌고증 작업을 거쳤다는 점에서 무용계 안팎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조선조 재인청(재인조합)의 마지막 도대방이었던 이옹은 경서도창과 재담의 명인인 박춘재로부터 발탈을,줄광대 김관보에게서 줄타기와 전통춤을,명창 조진영으로부터 남도잡가를 배우는 등 가무악을 두루 익힌 만능예인.그의 재인청류 전통무용은 전문적인 재인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던 춤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재 89세의 고령임에도 불구,그는 이번 무대를 위해 「신선과 학무」「즉흥무」「신로심불로」등 3편의 전통무를 펼쳐보인다.이 가운데 특히 「신선과 학무」는 신선과 동자,두마리의 학과 선녀가 등장하는 알록달록한 볼거리 위주의 춤으로 극적 요소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조선조 구극 전문극장인 광무대시절 단골로 올려지던 작품으로 한점 흐트러짐 없는 운학의 절제된 춤법도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또 밀양 북춤의 하보경,진주 검무의 김수악 등 인간문화재들이 특별출연해 이옹과 함께 즉흥무를 펼친다. 정승희씨(49·상명여대 교수)의 우리춤연구2 공연은 한국 전통무용의 뿌리찾기 작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각종 춤사위와 의상,화관,가면 등의 원형을 되살리기 위한 문헌고증 작업이 돋보인다.선보일 작품은 「춘앵전」「태평무」「처용무」「승무」「불교의식무」등.특히 「춘앵전」공연에서는 조선시대 궁중음악이나 무용등을 기록한 책인 「진연의궤」에 따라 당시의 의상을 그대로 되살려낼 예정이어서 우리 궁중무의 복식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가 될듯 싶다.원래 「춘앵전」은 궁중잔치에서 추던 것으로 조선 순조때 효명세자가 봄날 버들가지에서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에 도취돼 만든 춤.꾀꼬리 빛을 상징하는 노란색 앵삼을 입고 여섯자 길이의 화문석위에서 펼치는 개인독무가 일품이다. 또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인 「처용무」는 처용설화에 근거를 둔 궁중정재로 신라 헌강왕때 비롯돼 고려정재로 굳어졌으며 조선조를 거쳐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춤이다.한편 이번 공연에서는 궁중정재가 본래 가창과 결합된 형태로 연출되는 것이 통례임을 감안,「춘앵전」「처용무」의 창사를 춤추는 사람이 직접 부르도록 해 의미를 더한다.중견 한국무용가인 정승희교수는 『우리민족 고유의 생활감정이 담긴 전통춤은 현대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전제,『우리춤의 본류찾기 작업을 통한 전통무용의 활성화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멸망의 원인(백제를 다시본다:30·끝)

    ◎한강유역 뺏긴뒤 서남부에 고립/의자왕,초기 전승에 자만 실정 거듭/대당외교 실패… 많은 충신 귀향보내/18만 나당연합군 침공때 동원가능 병력은 5천명 부소산성에 올라 금강을 굽어보노라면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이 마냥 평화롭게만 느껴진다.1천3백년 전 이곳에서 망국의 통한을 품은 3천 궁녀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그러나 서기 660년 당의 침략군이 신라와의 사전협약에 따라 서해로부터 금강 하구에 소리없이 진입하여 상륙작전을 개시한 뒤 사비도성을 유린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백제는 왜 멸망했는가.이 수수께끼를 속시원히 풀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란 없다.백제 멸망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역사적 인과관계에서 볼 때 우리들은 많은 멸망원인을 열거할 수 있으나 이를 대내적인 것과 대외적인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삼국항쟁이 격화된 6세기 후반 이래 백제는 경쟁국가인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그 입지랄까 행동반경이랄까가 매우 좁았다.즉 한강유역을 송두리째 신라에 빼앗긴 뒤로부터 백제는 줄곧 한반도 서남부지역에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백제가 기대를 건 잠재적인 동맹세력은 고구려였으나,양국은 다만 해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을 뿐 이었다.그런 까닭으로 백제는 자신을 ㄱ자 모양으로 포위하고 있는 신라와의 군사경계선을 돌파하기 위해 몸부림쳤다.그것은 한 때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하지만 백제는 결코 신라의 포위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처럼 백제가 신라와의 국경전쟁에서 헛되이 국력을 소모하는 동안 내부사정은 차츰 악화되어 갔다.의자왕이 641년 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을 때만 해도,희망은 아직 남아 있었다.그는 인간적으로 나무랄데 없는 성품이었고,국가중흥의 열망에 불타 있었다.왕태자 시절 지극한 효성으로 해동의 증자라는 평까지 듣던 의자왕이었다. ○신라 포위 못벗어 그가 왕위에 오른 직후에 결행한 신라 침공도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마침 642년 평양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군국의 대권을 장악했는데,의자왕은 그와 손잡고 신라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개시했다.백제군은 중국으로 통하는 신라의 서해 관문인 당항성(경기도 화성군)의 목을 죄는 한편 신라의 낙동간 방면 전선사령부가 위치한 대야성(경북 합천군)을 함락하여 경주를 가까이서 위협했다.이같은 전과는 의자왕의 경탄할 만한 기민성과 결단력에 힙입은 바 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의자왕의 인간적인 약점이 노출되었다.전투에 잇따라 승리한 의자왕은 어느 덧 자만심에 빠져 만기를 독재하는 통치스타일로 기울어졌다.사태를 더욱 악화시긴 것은 왕비 은고의 지나친 권력욕이었다.백제를 멸망시킨 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부여 정림사탑에 전승을 기념하는 글을 새기도록 했는데,거기에는 멸망 당시 백제의 정치상황을 설명하여 『의자왕이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아낙네(왕비)를 너무 믿어 형벌이 오로지 충양한 사람에게 미쳤다』고 했다.양심적인 재상인 성충이 옥사하고 흥수가 귀양을 간 것도 이같은 난정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결과였다.또한 해방 직후 부여에서 우연히 탑비가 발견됨으로 해서 그 실재가 확인된 대좌평 사택지적의 정계은퇴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충신들이 밀려난 자리에는 신라의 간첩망에 포섭된 임자 같은 인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왕비 권력욕 지나쳐 무엇보다도 의자왕이 범한 큰 과오는 백제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다.당은 신라측의 끈질긴 한반도 개입 요청을 받아들여 백제에 사신을 보내어 신라와 화평관계를 꾀하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했다.그러나 의자왕은 이같은 권고를 거듭 묵살했다.652년 이후 백제는 더 이상 사신을 보내지 않음으로써 당과의 관계를 사실상 단절했다.백제를 치기로 한 신라와 당 양국간의 비밀협상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절박한 때에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외교적 실책이었다.바야흐로 백제 상공에는 잔뜩 먹구름이 닥쳐오고 있었으나,의자왕은 전혀 그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서기 660년 여름 신라와 당 연합군의 침공은 백제로서는 그야말로 청천백일하의 날벼락이었다.김유신이 이끄는 신라의 5만 대군이 국경선 깊숙이 나타났을 때 백제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결사대 5천명이 고작이었다.이 결사대는 사흘동안 황산벌(충남 연산)에서 신라군과 처절하게 싸운 끝에 전원 옥쇄했다.한편 13만명에 달하는 당나라 군대는 금강 동쪽 기슭에 상륙,7월 11일 신라군과 합세했다. 드디어 12일에는 나당연합군이 사비도성 공격에 나섰다.연합군은 도성 동쪽 20여리쯤 떨어진 곳에서 백제군의 소규모 저항을 받았으나 이를 단숨에 격파하고 염창리에서 능산리로 이어지는 나성을 통과,순식간에 도성 안으로 진입했다.적군의 강습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의자왕은 태자와 함께 북쪽 웅진성(공주)으로 달아났다.이에 왕의 둘째 아들 부여태가 왕권을 대행했으나 혼란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이윽고 연합군이 시가지를 가로질러 부소산성을 포위하자 절망에 빠진 지배층과 백성들이 떼지어 성에서 내려와 항복했다.그리하여 부소산성 정상에는 나당 연합군 깃발이 나부끼게 되었다. ○부흥운동 무위로 그러나 백제는 그 뒤 3년간 더 살아 꿈틀거렸다.국왕의 항복결정을 거부한 지방주둔 병력이 왕족 복신의 지휘 아래 총집결하여 조직적인 부흥운동을 벌인 것이다.이들은 한때 사비도성을 포위한 일까지 있었다.주류성(서천 한산 혹은 부안으로 짐작됨)과 임존성(예산 대흥)이 당시 부흥운동군의 일대 거점이었다. 663년 가을 백제와 전통적인 우호관계에 있던 일본이 부흥운동군을 돕기 위해 3만대군을 보냈다.그러나 왜군은 백강하구에서 신라·당 연합군에 포착되어 네차례의 접전 끝에 섬멸되고 말았다.당시 불에 탄 왜선 4백척에서 뿜어대는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붉게 하고 바닷물도 빨갛게 물들었다고 한·중 양국 사서는 기록하고 있다.왜군 격파로 사기가 오른 연합군의 일제 공격으로 주류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백제부흥운동은 그 종말을 맞게 되었다. 이처럼 백제는 가고 말았으나 그들이 창조한 문화의 가지는 신라와 일본 등지에 이식되어 그뒤 오랜 세월 생명력을 유지했다.지난해말 세상에 공개된 금동향로는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정화로,그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망국의 군주/의자왕 중국 북망산에 묻힌듯/패망후 당나라에 끌려가 병사 우리가 고대사에서 만날 수 있는 큰 비극을 꼽자면백제패망을 다룬 AD660년의 기사가 그 하나일 것이다.궁녀들이 꽃처럼 떨어졌다는 낙화암 옛 이야기와 더불어 아련히 들려오는 사비도성의 황급스러운 말발굽소리는 백제사가 간직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때에 웅진성(공주)으로 피신했던 의자왕도 결국 나·당연합군에 붙잡혀 2만여 백제유민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역사는 기술하고 있다.그러나 이 망국의 군주는 생몰연대도 전해지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당에서 병사한 것으로만 되어있다.이는 의자왕과 휩쓸려 포로가 된 왕자 부여릉(AD615∼682년)이 당에서 남긴 비교적 소상한 활동기록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자왕은 어떻게 되었을까.이 물음에 해답을 던져줄 가능성은 있다.의자왕의 신하로,또 왕자 부여릉과 백제부흥운동을 통해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흑치상지(AD630∼689년)와 그의 아들 흑치준의 묘지명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중국 하남성 낙양의 북망산에서 1929년에 발굴된 이 묘지명은 현재 남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흑치상지의 묘지명은 왕자 부여융이 주군으로 받들어지고 있음을 표현했다.또 묘지명은 AD677년 부여융이 당으로부터 「웅진도독 대방왕」에 임명되었을 때 흑치상지는 속관의 직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다만 41줄 1천6백4글자나 되는 묘지명 새김글씨에 의자왕 기록이 전혀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사학계는 당나라 왕후장상들의 묘역 북망산을 계속 주시하는 입장이다.북망산에서는 백제유민 흑치상지 부자의 묘지명 말고도 연개소문의 아들이자 고구려유민인 천생의 묘지명이 출토되었다.이로 미루어 의자왕의 무덤도 북망산 묘역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백제 최후의 군주 의자왕의 무덤을 찾는 일은 한·중학계의 협력에 따라 성사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래서 학계는 북망산 한쪽에 묻혀있을 의자왕 묘지명을 찾아야할 큰 역사숙제를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 “나자신을 파괴… 살인마로 변신”/온보현 “전율”의 「살인일기」

    ◎“현재 2명 살해… 목표 초과될수 있음/이렇게 해서 복수… 세계 최고 되리라” 살인범 온보현(37)이 작성한 「범행일지」는 피에 굶주린 악마의 「살인일기」였다. 「38명 살해」라는 범행목표까지 세우고 불과 한달반 사이 6건의 범행을 태연히 저지른 온은 불특정인을 뚜렷한 목적없이 납치,살해하거나 성폭행하는 「마성」에 가득찬 살인마였다. 『이 글로 인하여 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범행일지를 작성한다』로 시작되는 24쪽의 「살인일기」는 온이 「세상에 공개하기 위해」 손을 다쳐 범행을 못한 지난 23·25·27일 3차례에 나눠 범행일체를 세세히 정리한 것이다. 일지 곳곳에서는 온의 악마적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첫번째 희생자가 된 허수정씨(26)의 경우 강원도 새말로 납치,강도행각을 벌인뒤 「마음이 변해」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서울로 왔으나 다시 「마음이 변해」 경기도 신갈 야산으로 끌고가 무참히 살해하는등 스스로도 걷잡을 수 없는 변덕스러움을 보여주고 있다. 또 13일 범행대상이었던노모양(21·무용수)도 마찬가지.『부양해야 할 어머니와 동생이 있으니 살려달라』고 호소한 노양의 물건을 빼앗기는 커녕 오히려 시계 1개를 주고 집앞까지 태워주는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 그러나 온의 이같은 모습은 살인마의 변덕에 불과할뿐 두번째 희생자인 박주윤씨(24)의 경우 택시에서 내리기 직전 흉기로 위협하자 저항했다는 이유로 바로 택시안에서 난자,살해하는 흉포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온의 흉포함은 범행이 거듭될수록 커져 허·박씨를 살해한뒤 「현재 2명 살해함.36명 남음.목표인원 초과될수 있음.50명으로 변경될수 있음」이라며 이미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철저히 나 자신 파괴시키자.살인마로 변신하겠다』고 서슴없이 기록하는 가 하면 지존파의 엽기적 살인행각 보도를 접한듯 『나의 행동이 세상에 공개되면 지존파보다도 더 충격적인 사건이 되겠지』라며 「살인경쟁」에 희열을 느끼는 감정도 나타내고 있다. 온은 이어 『지존파,돈 많은 사람을 살해한다.그럼 난 왜 살인을 하지』라며 목적없는 살인에 대해스스로 물음표를 던진다.이같은 자문에 온은 『나에게 부모 형제 친척이 있었던가.이렇게 해서라도…복수라 말할 수 있겠지』라고 기술,범행동기의 일단을 찾을수 있다. 온은 그러다가도 돌연 『이 부분 세계 제일이 되리라』『부상으로 행동중단.답답하다』며 살인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경찰에 자수한 27일 흐트러진 필체로 다급히 쓴 일지에서는 「온보현 전국 수배」의 보도를 보고 온이 불안과 후회가 뒤섞인 상태에서 자수를 택하는 심경이 잘 드러나고 있다. 과대망상과 자기과시욕에 빠진 살인마 온은 『자수하겠다는 마음 변하지 않기를 다짐하면서 서울 용산경찰서로』라며 악마의 일기에 종지부를 찍었다. ◎폐쇄TV 범인검거 “일등공신”/납치살해·위조달러사건 잇단 해결/은행·호텔 설치… 녹화화면 두달 보관 최근 잇따르는 범죄사건에서 폐쇄회로TV(CC­TV)가 각종 범죄의 범인검거에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에 부녀자를 납치,살해한 온보현도 은행 CC­TV에 모습이 잡히지 않았더라면 경찰의 무기력한 초동수사와 공조수사 미흡속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상당기간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했다. 또 지난 9일 위조달러를 유통시켰던 파키스탄인 수프라씨도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CC­TV에 환전하는 모습이 찍혀 언론에 보도되면서 쉽게 붙잡을 수 있었다. 이는 과거 범죄용의자가 지목되었을때 인상착의를 관련자들의 기억에만 의존해 몽타주를 작성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고 용의자의 얼굴역시 부정확했던 것과는 달리 CC­TV를 이용해 신고즉시 정확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감시용카메라·모니터·VTR등으로 구성된 CC­TV시스템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80년대중반으로 주로 은행과 호텔등 고객의 안전관리를 생명으로 하는 곳에 설치돼 있다. 이번에 온이 현금을 인출한 신한은행 풍납동지점의 경우 창구와 현금출납기등을 중심으로 4대의 감시카메라가 작동됐다. 경찰은 이 은행에 녹화된 테이프를 이용,지난 13일 숨진 허수정씨 카드결제시간과 이용객을 대조해 결제시간인 상오9시36분에 돈을 인출해간 사람이 온이었음을확인하고 용의선상에 올려놓은뒤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국민은행의 경우 군부대등 특수한 지역을 제외한 4백56개 전지점은 물론 무인자동화코너에 이르기까지 1백% CC­TV가 설치돼 있다.객장에 설치된 카메라에 잡힌 화면은 약 10초간격으로 교대로 전화교환실과 지점장실등에 설치돼 있는 모니터에 나타나며 카메라에 잡힌 모든 화면은 녹화를 해 두달동안 보관하고 있다. 이 은행 안전관리실 차경일대리(37)는 『전체 객장을 다 감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온라인창구와 현금인출기코너등에는 사각이 없이 모든 이용객의 모습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일은행도 전체 2백50여개 지점에 설치된 3백여개의 CC­TV를 직원들이 교대로 감시반을 편성,관리하고 있다. 호텔의 경우도 철저한 폐쇄회로감시체제를 갖고 있다. 르네상스호텔의 경우 환전창구 위쪽에 숨겨진 감시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 서울 신라호텔에는 전체 38개층의 엘리베이터·주차장·로비·프런트등에 1백20대가 설치돼 24시간 감시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운영요원 2명이 2개의 중앙통제실에서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이 호텔에서 지난해 9월에는 엘리베이터안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투숙객이 범죄신고를 하자 재빨리 녹화테이프로 용의자를 확인,경찰에 신고함으로써 검거하기도 했다.
  • 스포츠센터/“회원권 명의개서료 부당폭리”

    ◎공정위 42곳 시정권고/실비보다 최고 16배 받아/물품공급 일방중단 「이븐마트」 시정령 롯데월드와 신라호텔 등 42개 유명 스포츠센터들의 회원권 명의개서료가 터무니 없이 비싸고 입회 보증금을 늦게 돌려주는 등 횡포가 심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들 스포츠센터들이 명의개서료를 멋대로 책정,폭리를 취하는 사실을 밝혀내고 해당 조항을 삭제 또는 수정하라고 23일 시정 권고했다. 현행 체육시설 설치 이용법은 명의개서료를 실비(공인회계사의 비공식 원가계산으로는 6만원 내외)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스포츠센터들이 실제 받는 금액은 최하 7만5천원(현대백화점 반포레저타운 헬스센터)에서 10만∼30만원미만 20곳,30만∼50만원 13곳,50만∼70만원 3곳,70만∼1백만원 2곳,1백만원이상 2곳에 이르기까지 큰 격차가 있다. 롯데월드 스포츠와 신라 휘트니스클럽은 명의개서료로 1백7만5천원과 1백5만9천원을 받고 있고 르네상스 레크리에이션 센터(96만8천원),63 헬스사우나(85만원),롯데 헬스클럽(60만원),뉴월드 휘트니스클럽(55만원),대호 휘트니스센터(52만8천원) 등도 턱없이 비싸다. 공정위는 또 건영 옴니스포츠랜드,스위스그랜드호텔 휘트니스클럽 등 18곳과 남운 스포렉스(울산)가 보증금을 탈퇴 1개월 뒤에 내주도록 정한 회칙이나 신라 휘트니스클럽,르네상스 레크리에이션 센터 등 4곳이 보수에 따른 시설폐쇄 또는 사용제한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못 하도록 한 회칙은 부당한 조항이라며 시정토록 권고했다. 한편 공정거래위는 23일 산하 가맹점에 물품 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편의점 운영업체 「이븐마트」(대표 선장균)에 부당한 물품공급 중단 등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즉각 시정하라고 명령했다.
  • 천재 소리꾼 임방울 삶 재조명/29일∼10월12일 국립극장

    ◎창극 「명창…」 공연 궁핍한 시절을 산 천재 소리꾼 임방울(1904∼1961년)의 생애를 다룬 창극 「명창 임방울」이 29일부터 10월 12일까지 국립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국립창극단이 마련한 이 작품은 한국적인 한과 설움을 노래한 임방울의 삶과 예술세계를 재조명한 것.지난해 창작창극 대본 공모에서 뽑힌 국문학자 천이두씨(원광대 교수)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다. 전남 송정 태생인 임방울은 일제 말에서 인간문화재 제도가 생기기 이전까지 판소리가 가장 어려움을 겪던 시절에 활동하던 소리꾼.당대 민중들의 정서를 가장 민감하게 파악했던 가객이었을 뿐 아니라 온후하고 따뜻한 인간미를 풍겨 호인으로 평가받은 판소리 명창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의 득음을 위한 3년간의 헛간생활과 이루지 못한 여인과의 사랑,사양길로 접어든 판소리를 고수하는 예술혼,거지떼·엿장수와의 교감,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가를 돕는 우국지정,국악계 사상 전무후무한 전국국악인장으로 치러진 장례행렬 등을 실화를 바탕으로 전3막에 담아낸 것. 작창을 맡은 원로국악인 장월중선(신라국악예술단장)은 「임방울 협률사」에서 한때 임명창과 함께 활동하기도 했으며 이 작품에서도 「중보」라는 별칭으로 등장하는 등 특별한 인연이 있다. 임방울 역에는 국립창극단의 중견단원 은희진과 전남도립남도국악단 상임지휘자 조통달이 번갈아 나설 예정.조통달 역시 13세 때부터 약 4년간 임방울에게 직접 소리를 배우기도 했다. 이밖에 안숙선과 김영자 유수정 나태옥 강종철 오정숙 최영길 왕기석이 출연한다. 이번 공연의 연출은 연극연출가로 잘 알려진 김정옥교수(중앙대).처음으로 창극 연출을 맡아 국립창극단의 새로운 창극운동에 가세한다. 공연시간 평일 하오 7시 30분,토·일요일 하오 4시.274­1151.
  • “핵해결돼야 대북지원”/한일협력위 성명

    한일협력위원회는 2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제32차 합동총회를 열고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선행돼야 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히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한국과 일본 두나라의 정계·재계·학계 인사들로 구성된 협력위는 이 성명에서 『북한핵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는 핵의 과거·현재·미래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하며 남북대화의 진전등 관계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북한과의 경제협력은 핵문제의 해결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총회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한­일 두나라는 이제 시대적 변환기를 맞아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확고히 하는 새로운 관계의 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를 위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서로를 올바로 아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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