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신라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대선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홍보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사립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 복지
    2026-03-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511
  • “남북정책은 원친근공 전략”/노 전대통령,재평가 강연

    ◎올림픽 유치로 대공산권 수교 결실/북의 적화통일 기도 분쇄에 큰역할/구소차관 30억달러 통일·안보에 기여 미국과 남북한간 경수로줄다리기가 미묘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노태우전대통령이 17일 재임때의 「북방정책」을 스스로 재평가하는 자리를 가져 시선을 모았다. 이날 노 전대통령은 연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총동창회 주최로 열린 조찬세미나(신라호텔)주제강연에서 『북방정책은 학자들의 연구논문에까지 나와 있고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정책을 위해서도 참고될 사항이 있는 것으로 보여 당사자로서 보다 상세히 소개할 필요를 느꼈다』는 서두로 그의 강연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말 같은 대학원 고위경영자과정 참가자들에게 「21세기의 도전과 우리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일은 있다.그러나 재임중 특정정책의 뒷얘기를 밝히고 구체적 자평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 전대통령은 『해방이후 50년동안 남북관계는 타율적으로 이뤄져왔다』면서 『자율로 분단을 극복해야만 자유와 번영을 이룩할 수 있다는 자각이 북방정책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는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했을 때 사용한 「원친근공」(원친근공·먼 곳 나라와 연대해 이웃나라를 친다는 뜻)처럼 비동맹국·동구권·소련에 이어 중국으로까지 외교망을 확보함으로써 북한의 무력통일기도를 포기시키려는 단계적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노 전대통령은 북방정책의 원동력으로 88올림픽의 서울 유치를 들었다.그는 이어 서울올림픽에 대한 북한의 테러위협,서독 스포츠업계의 한국 지원,한국의 개최능력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뉴욕타임스등 미국언론의 편파적 시각등을 극복해나간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결국 올림픽의 기적적 유치에 힘입어 88년 7·7선언을 발표하고 북한을 뺀 모든 공산국에 수교의사를 밝힐 수 있었다』고 밝힌 노 전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이 시점에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국가로 인정하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강조함으로써 동구및 소련·중국과의 수교작업이 힘을 얻게 됐다』고 회고했다. 노 전대통령은 소련과의 수교협상때 30억달러의 차관제공을 「섣불리」 약속,14억달러를 「떼어먹혔다」는 지적에 대해 『서운하기 짝이 없는 비판』이라고 반박했다.『서독은 통일을 위해 7백억∼9백억달러를 지출했다.공짜로 준 것도 아니다.우리의 통일·안보이익을 위해 그 돈은 헤아릴 수 없이 값진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강연에는 정해창 전청와대비서실장,이현우·이상연 전안기부장,최석립 전청와대경호실장,손주환 전정무(현서울신문사장)·김유후 전사정·김재열 전총무수석,임인규 전정책보좌역,서영택 전건설부장관,송자 총장을 비롯한 연세대 경영대학원 관계자등 5백여명이 참석했다.
  • 도무오이 서기장 방한 수행/구엔만 캄 베트남 외무

    ◎원자력분야 등 협력 적극 모색/「북핵」 세계평화 측면서 해결을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입니다』 도 무오이 서기장을 수행,방한중인 구엔 만 캄 베트남 외무부장관은 13일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두나라간에는 분명히 불행한 과거가 있지만,서로가 진심으로 협력관계를 정립해가면 과거를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월남전 참전 사실을 양국 정부는 어떻게 정리했나.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현재와 미래 속에서 살고자하는 신념이 있어왔다.사람들의 가슴속에 불쾌한 추억이 아직도 남아있다면 좋은 현실을 통해 극복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경제성장의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평가해달라. ▲기본적으로 긍정적으로 본다.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한국이 이처럼 발전을 했겠는가.정치적 측면에서의 지도력과 경제관리들의 운용이 효과적이었다고 본다.다만 한국이 개발과정에서 겪은 부정적,손실적인 경험도 우리에게 소개해주기 바란다.한국의 개발경험을 베트남의 실정에 맞게 도입하고자 한다. ­한·베트남 간의 원자력 협력방안은. ▲베트남도 성장의 과정에서 반드시 원자력이 필요하다고 예상된다.또 한국이 이 분야에서 큰 성공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실무선에서 이 문제에 대한 토의가 계속될 것이다. ­북한핵 문제에 대한 입장은. ▲최근 이 문제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본다.관련측들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도 합리적으로 해결해나가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노력에 대한 의견은.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캄 장관은 회견도중 10여차례나 『한국측의 따뜻한 환영에 감사한다』고 말하고 『이번 방한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자
  • 익산 미륵사 기와인물상(한국인의 얼굴:24)

    ◎“탐욕 버려라” 중생 꾸짖는 눈매/인간사 꿰뚫어 보는 「천리안」 상징/큰 코에 무서운 얼굴… 잡귀 물리쳐 눈은 진실과 이성을 상징한다.그래서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도 했다.사람을 알아보는 데도 눈을 첫째로 꼽았다.그러고 보면 얼굴 전체를 통해 눈이 차지하는 상징성은 대단히 높다.또 눈을 주제로 한 역사적 신화·종교나 풍속적 해석도 여러갈래가 있다. 이같은 눈을 아주 뚜렷하게 강조한 인물상 기와가 전해오는데 전북 익산군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 절터 출토품이 대표적 유물이다.기와에 새기 인물상의 눈은 얼핏 보면 시력이 좋지 않은 노안이다.그런 연유로해서 눈망울(안구)이 약간 불거지고 눈동자(동공)는 작아졌다.요즘 현대조각에서 눈동자가 생략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눈망울 한 가운데를 오목새김해서 눈동자를 표현했다. 미륵사 절터 출토품 인물상 기와의 특징은 바로 오목새김한 눈동자에 있다.눈동자는 만물의 영상을 담아 지각 시켜주는 뛰어난 감각기관이다.그렇다면 애써 눈동자를 강조한 까닭은 무엇일까.여기서 인물상 기와와불교를 연관시켜 생각하면 해답이 나올 수도 있다.불가에는 눈의 지각현상을 빌려 신앙화한 부처나 경전이 전해내려온다.그래서 이 인물상 기와의 눈은 불교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불교 교리 중에는 천안통이라는 말이 있다.탐욕에서 벗어난 맑고 깨끗한 눈으로 바라보면 곳곳의 중생들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막힘없이 볼 수 있다는 뜻이다.이를 천리안이라고도 한다.또 「아함경」에는 하늘 한쪽을 맡고 있다는 임금(제석)인 천안천에 대한 이야기가 보인다.이 임금은 본래 사람으로 있을 때 총명하여 앉아서도 천가지 옳은 일을 생각하고 관찰했다는 것이다. 백제 최대의 가람 미륵사 지붕을 장식했을 기와속의 인물상.코가 유난히 커서 그러지 않아도 길어 보이는 얼굴이 더욱 길다.그리고 콧날을 눈썹으로 까지 몰아붙였다.전체적으로 범상치 않은 얼굴이다.그 독특한 눈초리로는 미륵불이 내려오길 학수고대하는 중생들의 삶을 굽어보고 있는 듯 하다.이 인물상이 좀 무서워 보이는 까닭은 미륵하생의 처소에 잡귀가 범접하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륵사 출토 기와를 만나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백제 공장들의 솜씨다.그토록 뜻이 깊은 기와 한장한장을 만들어낸 공장들의 솜씨는 당시 백제문화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할 무렵인 7세기 전반은 백제에서 고급 기술인력이 제도적으로 확보된 시기다.와박사와 같은 여러분야의 기술제도가 자리를 잡아 이웃 신라는 물론 멀리 일본에까지 기술자를 파견할 정도였다. 지금은 절반쯤이 허물어진 미륵사 서탑에서도 백제 공장들의 솜씨를 읽을 수 있다.돌을 밀가루 반죽 주무르듯 다듬고 매만져 목탑처럼 거대한 석탑을 세웠던 것이다.
  • 한일 민간경제위 개막

    제27회 한일 민간 합동 경제위원회가 한일경제협회(회장 박용학)와 일한 경제협회(회장 하쿠라 노부야)의 공동 주최로 13일 제주도 서귀포시 신라호텔에서 개막됐다.
  • 베트남 첨단기술·SOC사업/방한 무오이 서기장,투자설명회

    ◎한국기업 참여 요청 베트남의 도 무오이 당 서기장은 12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베트남 투자환경 설명회」를 통해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했다. 도 무오이 서기장은 『합작 및 단독 투자,임가공,차관제공 등 다양한 투자 및 지원을 바란다』면서 『기술이전이나 관리경험 전수,기술자와 기능공 양성 등도 지원해 주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업체들이 공업단지와 첨단기술공단 조성,도로·항만·공항·통신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 건설,제철·조선·전자·동력 등 기간산업 건설 등에 투자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다낭 등 3지역/한국공단 추진 베트남의 사이동과 호치민,다낭 등 3곳에 중소기업 중심의 한국전용 공단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은 12일 치엣 베트남 무역부 장관을 만나 양국간 교역증진과 산업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국이 베트남에 3개의 한국공단을 건설할 계획을 설명하며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사이동 공단문제가 조기에 타결되도록 협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 박장관은 치엣장관이 한국 업체의 베트남 제철소 건립과 산업기술 연수생의 도입 확대를 요청한 데 대해 협조를 약속하고,베트남도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도록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정비하고 구체적인 자금조달 계획을 제시해 달라고 밝혔다.
  • 한­베트남 「밀월시대」연다/도 무오이 베트남 서기장 방한 이모저모

    ◎도 무오이 “한국처럼 될수 있게 도움 기대”/체한일정중 대부분 「경제발전 모델」견학 베트남의 최고 실력자인 도 무오이 공산당서기장이 11일 방한함으로써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는 국교를 맺은지 3년만에 명실상부한 밀월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도 무오이 서기장은 이날 하오 숙소인 서울 신라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민자당사로 이춘구 대표를 방문한 데 이어 저녁에는 이 대표가 마련한 만찬에 참석,두 나라가 상호보완 관계에 있음을 역설하고 협력을 강조했다. ○…도 무오이 서기장의 방한은 민자당과 베트남 공산당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처음에는 민자당 초청으로 추진된 것. 그러나 베트남이 주석과 수상,당 서기장의 3두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도 무오이 서기장이 실질적인 최고실력자라는 점에서 정부 초청으로 격상시켰다는 후문. 「도이 모이」라는 개혁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도 무오이 서기장은 지난 92년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가 수립된 뒤 경제정책에서 한국을 모델로 삼고 있는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번 방한에는 13명의 공식수행원과 15명의 실무직원,8명의 기자단등 모두 43명이 수행,베트남측의 기대를 짐작케 하기도. 특히 공식수행원에는 우엔 마인 컴 정치국원겸 외무장관과 천 득 르엉 중앙위원겸 산업담당부수상,도 쿠옥삼 중앙위원겸 국가계획위원장,레 반 치엣 중앙위원겸 무역장관 등 당과 정부의 통상·산업책임자들을 망라. 도 무오이 서기장의 아들인 우엔 두이 충씨와 딸인 우엔 탄 투이씨도 이번 수행원에 포함되어 있어 눈길. 도 무오이 서기장은 12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것 말고는 증권거래소와 수원 삼성전자,울산 현대자동차,포항제철,창원 한국중공업,옥포 대우조선,여천 호남정유를 방문하는 등 17일까지 모든 일정을 「베트남 경제발전의 모델」 견학에 할애. ○…도 무오이 서기장은 이날 하오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공로명 외무부장관과 민자당 박정수 세계화추진위원장의 영접을 받았다. 도 무오이 서기장 일행은 숙소인 신라호텔에 여장을 푼 뒤 여의도 민자당사로 직행,현관에서 강용식 총재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아 이대표가 기다리고 있는 3층 대회의실에 입장. 이 자리에는 우리쪽에서 남재두 한·베트남의원친선협 회장과 하순봉 국제협력위원장·박범진 대변인,베트남쪽에서 홍하 국제담당의장과 우엔 푸 빈 주한베트남대사·팜 반 추옹 국제담당부의장 등이 배석. 이어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만찬에는 민자당의 김덕룡 사무총장 현경대 원내총무 이승윤 정책위의장 김윤환 정무제1장관 정재철 전당대회의장 등 고위당직자들이 대거 참석. ◎혁명 1세대… 베트남 개혁진두지휘/도 무오이 서기장은 누구인가 11일 우리나라를 찾은 도 무오이 베트남 서기장은 91년 당서기장으로 선출된 뒤 베트남판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는 「도이모이」(개혁)정책을 진두지휘해 온 혁명1세대 인물. 1917년 하노이에서 태어난 그는 19세때인 지난 36년 베트남 공산당에 들어가 항불운동에 참가했다.41년 그는 무장 독립운동 끝에 프랑스군에 붙잡혀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기도 했으며 45년 독립과함께 출옥했다.당으로부터 탁월한 조직력과 행정력을 인정받은 그는 55년 하노이 이웃 하이퐁시 당서기및 군사행정위 위원장에 선출됨으로써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내전기간이었던 56년부터 73년까지 상무부 장관,국가 가격위 위원장,건설부장관,부총리를 고루 역임하면서 베트남 경제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내전때는 무기공급루트인 「호치민 도로」건설을 직접 지휘했으며,75년 사이공 함락후 남부지역을 사회주의 경제구조로 개선하는데도 정열을 쏟았다.이 과정에서 전임자였던 린 서기장과 인연을 맺고 그의 오른팔이 됐으며 91년 건강을 이유로 사임한 린의 뒤를 이었다. 82년 정치국원,87년 서기국원 등 공산당 요직을 거쳤으며 88년 6월부터 총리직을 맡아왔다.취미로 외국 지도자들의 사상을 연구할 정도로 연구심이 강하고 독서를 즐긴다.술과 차를 즐기고 음식은 신맛이 있거나 매운 것은 피한다.부인은 이미 사망했고 이번 방한에는 아들 구엔 두이 충씨와 딸 탄투이씨를 동반했다.
  • 익산 미륵사 출토 기와인물상(한국인의 얼굴:23)

    ◎용의 눈에 도드라진 눈자위/볼·턱에 구름무늬… 이상향 상징 고대사회에서 종교는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그래서 정치는 때로 민중의 종교적 심성과 영합했다.또 종교는 통치이념으로도 작용하여 삼국시대 가람들은 국가경영 차원에서 창건되었다. 오늘날 폐허로 남은 전북 익산군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는 그러한 백제의 대가람이었다.지금은 절반쯤 허물어진 석탑 1기와 철당간이 남아 있을 뿐 백제 최대의 가람모습은 오간데가 없다.그러나 지난 1980년부터 정부가 문화재연구소를 통해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미륵사 본래의 실체에 어느정도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미륵사의 옛 명성을 뒷받침하는 유물도 6천여점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유물 가운데는 인물상기와가 3점이나 있다.그 하나가 인물상·수막새기와다.현재 부여문화재연구소가 소장한 이 기와는 머리와 귀가 달린 부분은 떨어져나갔다.하지만 눈,코,입과 귀 한쪽은 살아있는 터라 얼굴 전체윤곽은 알아볼만하다.인물상의 본래 기능인 벽사를 고려하면 무서워야할텐데 무서운 구석을찾아보기 힘들다.이는 경주(신라) 영묘사 출토 인물상 기와와 공통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륵사 인물상 기와의 얼굴은 사실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이다.눈의 생김새를 안상이라고 한다.이 인물상 기와 얼굴에 나타난 눈을 그 안상에 적용해 보면 용의 눈(용안)을 닮았다.눈 가장자리와 눈자위를 모두 도드라지게 새겼다.이를 그림의 형상(도상)을 빌려 설명하면 귀신을 쫓아버린다는 용목무늬(용목문)다.무늬를 통해 벽사기능을 부여하고 막상 무서움을 드러내지 않은 얼굴,거기에는 백제의 은유가 깃들어있는 것이다. 이 인물상에는 수염이 나 있다.수염 몇가닥을 표현하고 볼과 턱 사이에 구름무늬를 넣었다.구름은 불가에서 상서로운 사물(상운)의 의미를 지니지만,도가에서 더욱 중요시하는 사물의 하나다.도교적 관념의 구름은 안개와 더불어 이상향을 상징한다. 그러고 보면 수염이 난 기와의 인물상은 선계의 신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절집에 웬 신선인가,하는 의문도 앞설 수 있으나 이 시기가 되면 백제불교는 도교와 습합했을 가능성도 없지않다.지난 1993년 12월 충남 부여읍 능산리에서 출토된 사비시대 유물 금동용봉봉래산향로는 이를 뒷받침한다.이 향로에는 도교적 요소가 가득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인물상기와가 나온 미륵사는 백제 무왕(재위 AD600∼640년)이 창건한 가람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왕이 왕비와 함께 사자사 행차길에 용화산 아래 못가에 이르자 미륵삼존불이 나타났다고 한다.왕비의 간청을 받아들여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었는데 그 절이 미륵사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미륵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미륵불은 미래에 중생들 곁으로 내려올 유토피아적 희망의 부처다.왕은 민중이 갈망하는 미륵하생 신앙에 영합,이 절을 지었는지 모른다.그리고 이상향을 추구하는 도교사상이 미륵신앙과 맞물려 돌아갔을 것이다.
  • 경주남산/문화재 즐비한 “노천박물관”

    ◎절터·탑·불상 등 2백여개… 역사체험 한껏/절경의 40여 계곡마다 애틋한 전설 간직 옛 신라의 도읍 서라벌 남쪽에 솟아 있는 경주 남산은 산 전체가 노천박물관으로 불려지는 신라문화의 집합체이다. 최근 경북지역내 호텔들을 중심으로 관광인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인 경주를 세계화하기 위해 본격 활동에 나서면서 남산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개나리·진달래·벚꽃 등 봄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이 곳을 찾아 「역사체험」의 기회를 가져봄직하다. 남산은 일반 관광객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보통이나 금오봉(4백68m)과 고위봉(4백94m)에서 흘러내리는 40여개의 계곡과 뻗어 내린 산줄기가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또 용처럼 생긴 용두암,버선을 거꾸로 세워 놓은 모양의 버선바위,나이어린 처녀를 사랑해 목을 맨 할아버지의 전설이 있는 상사바위,스님이 고깔을 쓰고 염불하는 모습의 고깔바위 등 수많은 전설과 천태만상의 바위들이 즐비해 연중 기도를 올리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국보급 보물및 석탑도 산재해 거대한노천 사원을 연상케 한다.지금까지 발견된 절터만도 1백12곳에 이르며 자연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이나 입체로 된 불상을 합쳐 80체,크고 작은 탑들이 61기나 보존돼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말기까지의 불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불교문화의 성지이기도 하다.특히 탑골의 부처바위는 무리를 지어 장관을 이루며 주변에는 불상·보살·나한상 등이 높이 10m안팎으로 새겨져 있고 목조 쌍탑과 사자상까지 조각돼 신비감을 더해준다.탑골은 남천을 거슬러 1.6㎞쯤 남으로 가면 된다. 이와함께 박혁거세가 탄생했다는 나정과 첫 대궐터이자 국방의 심장부였던 남산성,신라55대 경애왕이 향연을 즐기다 후백제 견훤에 살해당한 포석정도 잘 알려진 관광명소이다.경주 현대호텔(05 61­748­2233) 등은 「남산기행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 선거앞두고 음해가 활개치는데(박갑천 칼럼)

    백제 30대 무왕(25대 무령왕이라고도 함)의 어릴때 이름은 서동,「마동이」였다.항상 마를 캐다 팔았기 때문에 불린 이름.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동요를 지어 어린이들로 하여금 부르게 했다는 것이 「삼국유사」에 실린 「서동요」이다.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서동과 정을 통해서 안고 간다는 게 그 내용이었다.두사람은 마침내 짝을 이룬다. 제 목적달성을 위해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례이다.방법이 좀 가량스러워 뵈긴 해도 여기서는 악의보다는 애교가 느껴지면서 미소가 떠오르기도 한다.이같은 「작전」은 오늘날에도 더러 쓰이는 듯하다.미소가 떠오른다고 하는 건 거기 음해의 뜻이 안비치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렇게 눈을 기이는 일 가운데는 남을 해코지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삭훈에 앙심을 품은 훈구파에서 조광조를 음해했다는 조선 중종때의 사건도 그것이다.왕실의 기둥들을 몰아낸 다음 제멋대로 떠세부리려 한다고 담타기씌우면서 금원안의 나뭇잎에 꿀로 「주소위왕」이라 써놓고 벌레들이 파먹게 함으로써 조광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얘기」가 전해져오지 않던가.벌레먹어 나타난 글자는 『조가 왕이된다』는 뜻이었다. 조선 숙종때 장희빈이 했다는 이른바 무고도 그렇다.이는 왕비 민씨가 죽은 후 발각된 신당의 기도사건.장희빈은 궁안으로 무당을 불러들여 민비가 죽도록 빌었다는 것이다.이게 정국을 소용돌이로 몰아가는 터이지만 왕실사를 뒤적이느라면 이 비슷한 일은 그밖에도 있다.이런 것들은 악의와 저주가 끼어들었다는 점에서 「서동요」의 경우같이 웃어넘기기 어려워진다. 얼굴을 드러내놓는 비난이나 공격에는 소증사나울망정 비겁은 없다.그 내용이야 옳든 그르든 떳떳함이 느껴진다.하지만 얼굴 가리고 그늘에서 펼치는 모함에서는 저열한 인간상이 두드러진다.하건만 그동안 우리사회에는 이짓이 횡행하여 온다.증권가 같은 데서의 악성 유언비어는 말할 것 없지만 숱한 투서질하며 밤중에 걸어 음담패설하는 전화질 따위가 그것이다. 덕산그룹이 부도를 내자 일부기업들도 부도를 내리라는 뜬소문이 돌았다.그런데 지방선거를 겨냥해서도 별의별소리가 떠돈다고 한다.누구는 정신질환자고 누구는 에이즈환자이니 당선시켜봤자 헛일이라는 둥….듣는 쪽이 귀여려서도 안되겠지만 이런 못된 음해풍조는 언제 바로잡힐 건지 생각할수록 암울해진다.
  • 제일제당/삼성그룹/「감시용 카메라」 공방… 불화 증폭

    ◎제일제당/이재현 상무 감시… 고발 검토/삼성/이건희 회장 모친 보호 차원 삼성그룹이 재산 처리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는 제일제당 이재현 상무의 집 옆에 감시용 카메라를 설치,불화가 증폭되고 있다. 제일제당은 31일 삼성그룹이 고 이병철 회장의 맏손자이자 이건희 현 회장의 장조카인 이상무를 옆 집 옥상에 설치한 무인 카메라를 통해 일거수 일투족 철저히 감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상무는 현재 고 이 회장이 살던 서울 중구 장충동 1가 110에서 할머니 박두을 여사(고 이 회장의 부인)와 함께 살고 있다.제일제당은 삼성에 카메라를 철거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카메라가 설치된 담 위에 높이 1.8m의 담장을 새로 쌓았다. 카메라가 설치된 이웃 3층 집은 삼성의 계열사인 한국안전시스템(세콤)과 호텔신라 직원들의 교육장소로 사용되는 건물로 삼성항공 이영호 상무의 명의로 돼 있다.무인 카메라는 한 달 전 쯤 세콤이 설치했으며 삼성은 물의를 빚자 31일 카메라를 철거했다. 제일제당의 관계자는 『삼성이 지난 연말부터 이상무를 미행하더니 결국 감시 카메라까지 동원했다』며 『최근에는 이상무의 외삼촌인 손경식 제일제당 회장도 감시하고 있어 고발까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선대 회장의 부인이자 이건희 회장의 모친인 박여사를 보호하기 위해 보안용으로 카메라를 설치했다』며 『최근 이 회장 집 주변에 정신병자들이 몰려다닌다는 정보에 따라 박여사를 포함,계열사 대표이사들에 대한 보안을 강화했다』고 해명했다. 삼성그룹은 제일제당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2백15만주와 부동산 43만평의 처리 문제로 제일제당과 마찰을 빚고 있다.
  • 경주 영묘사 출토 기와인물상(한국인의 얼굴:22)

    ◎도톰한 입술·광대뼈 “전형적 신라인”/눈·코·입 윤곽 뚜렷… 콧마루 긴 들창코/만면에 웃음… 온화한 여성적 이미지 우리나라 고대유물 중에는 인물상이 들어간 기와가 있다.흙인형 인물상처럼 흙으로 빚은 얼굴이다.다만 흙인형과 같이 인체 또는 머리부분 전체윤곽을 형상화한 조소와는 달리 양각의 릴리프형식을 빌려 얼굴을 표현했다.인물상 기와로는 삼국시대의 영묘사와 미륵사 절터 출토품,통일신라시대의 황룡사 절터 출토품 등이 전해 내려온다. 이들 유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얼굴은 경북 경주시 성건동 영묘사 절터에서 나온 인물상 기와다.흔히 「신라인의 얼굴」로 회자되어 요즈음의 각종 서적이나 유물도록 표지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상은 수막새 기와 마구리에 들어있다.얼굴 왼쪽의 볼 밑부분과 턱이 일부 떨어져 나갔으나 인물을 알아보기에는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는다.뒷부분에는 수키와 흔적을 남겨 절집의 지붕을 이는데 실제 사용된 기와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얼굴은 활짝 밝다.눈 언저리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어 더욱 밝아보인다.맑게 갠 서라벌 하늘을 배경으로 휘청하니 굽은 절집 지붕에 썩 어울렸을 막새기와의 얼굴.다른 귀신얼굴의 기와(귀면와)와는 대조를 이룬 온화한 얼굴이거니와 여성적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눈과 코,입의 윤곽이 뚜렷하다.눈꺼풀이 두꺼워 보이나 흉하지 않고,조금 벌어진 입술이 도톰하다. 콧마루를 위로 서서히 올려 눈썹과 연결시켜 놓아 코가 유난히 길다.자연스럽게 내놓은 콧구멍은 그 기다란 코를 부드럽게 잡아주어 얼굴인상 전체가 순한 모습으로 다가온다.광대뼈가 살짝 도드라진 이 얼굴은 오늘도 길에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인물이다.대가람추녀 끝에 매달려 잡귀를 물리쳤다(벽사)는 막새기와속의 얼굴이 그토록 잔잔할까.그 해답은 인물상 기와가 나온 영묘사의 역사적 분위기를 통해 얻어내야 할 것이다. 영묘사는 당대의 신라 고승 양지의 작품이 가장 많았던 절이다.선덕여왕대에서 문무왕대에 걸친 7세기 중반쯤에 활동한 승려로 추정되는 양지의 이야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온다.이들 사서는 재예를 겸비한 그가 영묘사불사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기록했다.특히 영묘사에서 그가 장육삼존상을 만들 당시 장안의 선남선녀가 다투어 흙을 날랐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 양지는 그 불사현장에서 노래(공덕가)를 지어 선남선녀들에게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왔도다/왔도다/공덕을 닦으러 왔도다」라는 내용의 노래다.예술적 감각은 물론이고 높은 수행력으로 덕이 가득했던 양지의 불사에 자진해 나온 많은 사람들은 공덕가를 합창했을 것이다.여기서 양지는 모든 불사의 공덕을 이들 민중에게 돌렸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영묘사 출토 막새기와의 인물상은 민중의 한 사람인지 모른다.또 민중 모두를 뭉뚱그려 표현한 전형적 신라인의 얼굴일 수도 있다.그래서 막새기와 속의 얼굴에는 민중의 힘을 빌려 재난을 막고자 한 뜻이 담겼을 것이다.
  • 벚꽃철 성큼/사찰∼온천으로 복합관광 성행

    ◎새달 경남­5일 전남­10일 서울­15일 “만개”/진해의 군황제­마금산·부곡 온천 가볼만/화개∼쌍계사 “벚꽃터널”… 화엄사도 이웃에 봄의 화신의 남녘에서 달려오고 있다.개나리·진달래 등과 함께 대표적인 봄의 전령인 벚꽃전선이 예년보다 5∼6일 이른 이달말쯤 영남 해안지방에 상륙한뒤 빠른 속도로 북상,전국을 수놓을 것으로 보인다. 벚꽃은 꽃망울이 피고 1주일쯤 경과하면 절정기를 맞게 되는데 경남지방은 다음달 5일,전남및 경북 10일,충청·강원·서울 등은 15일을 전후해 활짝 만개할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보고 있다. 특히 올해 벚꽃나들이는 종전의 단순한 벚꽃구경에서 탈피,벚꽃명소는 물론 주변 산과 온천·사찰 등을 함께 돌아보는 「복합관광」이 성행할 전망이다.이에따라 각 여행사들은 벚꽃 연계상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경남 진해는 시내 전체가 벚꽃으로 뒤덮인 국내 벚꽃의 고향.전야제를 시작으로 다음달 1일부터 9일까지 계속되는 군항제에서는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가 시내 곳곳에서 벌어져 전국의 상춘객들을 끌고있다.군항제와 함께 인근 2시간 거리에는 부곡및 마금산 온천과 마산 동백꽃으로 유명한 돝섬유원지 등이 있어 벚꽃 연계관광으로 손색이 없다. 코오롱 고속관광(730­1341)과 삼홍여행사(730­7101)는 진해와 부곡온천,일출명소인 부산 태종대,마산 돝섬유원지 등을 연계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또 철도청도 군항제기간동안 무궁화호 임시열차를 운행한다. 벚꽃 십리길로 잘 알려진 화계장터∼쌍계사길은 길 양편에 늘어선 벚나무들이 때로 하늘을 가려 「벚꽃터널」을 연상케 하는 곳.이 길은 남녀가 함께 걸으면 백년해로를 기약하는 일이 많다고 해 「혼례길목」으로도 불린다. 게다가 신라 문성왕 2년(840년)에 창건된 쌍계사,진감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살아났다는 천년이 넘은 느릅나무가 있는 구사암,신라 진흥왕5년(544년) 창건된 화엄사등이 인근에 볼거리가 많다.또 많이 퇴색했지만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화계장은 더덕·도라지·두릅·고사리 등이 많이 나와 봄맛을 즐길 수 있다. 롯데관광(399­23 21)은 경남 하동군 쌍계사 벚꽃과 지리산 화엄사 거자수 약수터,노고단산행 등을 묶은 1박2일 코스의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경주보문단지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단지를 둘러싼 12㎞의 순환도로에 1만여그루의 벚나무가 거리를 뒤덮고 김유신장군묘와 불국사경내 등도 벚꽃이 볼만하다. 특히 경주는 도시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으로 불릴 만큼 볼거리가 많은 데다 신라의 흥망성쇠를 조망해온 남산이 그 진가를 더해주고 있다.남산에는 지금까지 발견된 절터만도 1백12곳이나 되며 80여체의 불상과 61기의 탑이 남아 있어 「땅위로 옮겨진 부처님의 세계」를 실감케 해준다. 이밖에 전북 전주∼군산간 40㎞의 도로를 따라 펼쳐진 「꽃길 백리」와 서울의 여의도 윤중제길,능동 어린이대공원등도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고도 경주 내일이 위태롭다/반영환 논설고문(시론)

    천년 고도 경주의 내일이 위태롭다.개발과 번영의 기세에 눌려 유적보존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신라 천년의 도읍지로서,유적과 문화재를 가장 많이 안고 있는 경주,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10대 사적도시인 경주가 고도임을 스스로 포기하려 하고 있다.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서라벌의 숨결이 서린 고도 경주는 80년전 일제때 이미 개발이란 미명하에 크게 훼손당했다.남의 나라를 강점한 일제가 우리 고적에 무슨 살뜰한 애정이나 관심이 있었을까.경부선 철도가 부설되고 대대적인 토목공사가 착수되면서 경주는 만신창이가 돼버렸다.무열왕릉이 위치한 서악고분군을 도로가 갈라놓았으며 사천왕사지도 무참하게 두동강이 났다.궁성인 월성을 가로질러 철로와 도로를 내기도 했다.철저한 유적파괴가 이루어진 것이다. 70년대들어 정부에 의해 추진된 경주고도개발사업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기능성·편의성에만 치중한 이 개발은 수려한 경주의 자연경관을 망가뜨렸다.불국사 입구에도,서악고분군 경내에도 반문화적인 시멘트로 칠갑을 해놓았다.거대한고분이 밀집한 경내 소로를 시멘트로 다져놓다니.유현한 고분의 분위기를 삭막하게 망쳐놓은 것이다. 최근 수년동안 경주는 더욱 고도다운 면모를 잃어가고 있다.20층짜리 고층아파트가 외곽에 들어섰고 시내 중심가에도 5층 상가가 세워졌다.경주시내에 들어서면 맞닥뜨리던 거대한 고분군이며 아늑하게 이어지는 스카이라인도 이제는 옛말이 되고 말았다.『경주는 지금 중환에 시달리고 있습니다.건강했던 옛날의 모습은 외부로부터의 박해에 나날이 시들어가고 있습니다』원로 문화재위원의 탄식이 실감되는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고도경주는 최근 중대한 시련에 직면해 있다.경부 고속전철이 경주시내를 관통하고 시내에 위락시설인 경마장이 건설된다는 것이다.지상노선으로 설계된 고속전철은 유적의 파괴는 물론 진동과 소음이 문화재에 치명적 손상을 줄 것이 분명하다.경마장부지는 조사결과 중요한 유적지로 밝혀졌다.경마장건설은 경주를 유흥도시화할 것이 뻔하다.이같은 위험으로부터 경주의 고적을 보존하기 위해 학계가 「고속전철 우회」와 「경마장 외곽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이와함께 한국고고학회등 16개 학회가 공동으로 지난 18일 「경주 문화재 보존」공개세미나를 열었다. 그러나 학회의 세미나는 경주시민대표들의 완강한 방해로 세명의 발표자중 한사람만 겨우 끝낸채 중단되고 말았다.이들은 『누구를 위한 반대냐』라며 단상을 점거하고 세미나를 방해했다.이 장면은 문화재의 보존과 도시개발이라는 양극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현장이었다.경주시민의 주장은 「재산권의 침해,또는 제한」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경주시민들이 건축물의 고도제한등 재산권행사에 상당한 불이익을 당한 것은 사실이다.이에대한 정부의 보상이나 지원이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다.그렇다고 경주가 여느 도시처럼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무분별하게 개발될 수는 없는 것이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이며 지정문화재가 밀집된 우리나라 최대의 사적지가 아닌가.경주는 경주시민만의 것도,오늘의 우리세대만의 것도 아니다.우리 후손에게 물려줘야할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이제 경주가 더이상 파괴되거나 훼손되지 않게 국가적인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그것은 경주를 고도답게 보존하고 신도시를 건설하는 일이다.로마나 파리,그밖의 역사적 고도가 신·구도시로 구획된 것처럼 늦었지만 우리도 그 유형을 따라야 한다.일본은 고도 나라의 도읍지인 평성궁 유적을 국가에서 사들여 수백년계획으로 조금씩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중이다.유적보존의 그 원대한 계획에 비하면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부끄럽고 초라하기만 하다. 고도 경주는 어떻게 해서라도 반드시 살려야만 한다.
  • 등소평 차녀 등남 내한/한­중 과기협력 논의

    중국 최고 실력자 등소평의 차녀 등남씨(51)가 27일 낮 12시20분 중국민항 123기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중국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부주임(차관급) 자격으로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등씨는 28일 과학기술처를 방문,한·중 과학기술 교류및 협력에 관해 협의하고 신라호텔에서 「21세기를 향한 중국의 과학기술」을 주제로 강연회를 가질 예정이다. 등씨는 이날 아버지 등소평의 건강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별도의 기자회견을 갖고 밝히겠다』고 말했다.
  • 데라우치 문고(외언내언)

    해외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현지에서 만나보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그것이 희귀한 것일수록 접근은 더욱 어렵다. 가령 일본 나라(나양) 천리대에 소장된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수년전 국내전시가 있기전까지 일본서 이 명품을 배견한 국내전문가는 손꼽을 정도.파리 국립도서관이 갖고 있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인쇄본인 「직지심경」이나 신라의 고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같은 세계적 고서는 공개가 되지 않는다. 해외로 빠져나간 문화재의 반환은 약탈에 의해서건 합법적인 반출이건간에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미테랑대통령이 반환을 약속했던 강화도 외규장각 고서가 1년 3개월이 넘도록 진전이 안되고 있지 않은가.까다로운 당사국의 국내법과 국민감정,타국에 미칠 영향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 하기 때문이다. 정부에 의해 파악된 해외유출문화재는 6만4천여점.세계 17개국에 분포돼 있으며 일본이 절반 가까운 약 3만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그러나 이 숫자는 확인된 것일 뿐,실제로는 10만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우리는 채 모르고 있는 그 가치를 헤아린 외국인들이 거둬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사내정의)의 수장품이 한·일 의원연맹의 주선으로 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 올해 반환될 것이라고 한다.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야마구치(산구)현의 여자대학에 기증된 「데라우치 문고」중 우리의 고서화·고서 등 5백62점이 대상이 되고 있다.그는 총독부임전 1902년부터 임기가 끝나 귀국한 1916년까지 이 문화재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서찰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듯 하다.육군대장의 무인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문화재수집 취미였다고 할까.어떻든 데라우치 문고가 꼭 귀환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 과학부문 호암상 수상 재미 이서구 박사(인터뷰)

    ◎“효소 이용 암치료 시대 눈앞에”/교포학자들 고국서 연구토록 힘쓸터 『인체세포의 신호전달작용이 정상적이지 못할때 암이 생긴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짐에 따라 세포신호전달 효소를 조절해 암을 치료하는 시대가 곧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22일 호텔신라에서 열린 제5회 호암상 시상식에서 과학상을 수상한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실험실장 이서구(52) 박사는 90년대 들어 세포신호전달체계 연구가 급진전을 거듭,금세기안 이를 이용한 새 암치료제의 개발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지난 65년 서울대 화학과를 나와 73년이후 줄곧 NIH의 연구원으로 몸담아온 이박사는 세포신호전달체계 관련 인자중의 하나인 PLC효소에 관한 연구에서 탁월한 업적을 세운 분자생물학자로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알려진 인물. PLC효소에 관한 연구가 답보상태에 있던 지난 86년 이박사는 3개의 PLC효소를 분리·정제,유전자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분자생물학적 차원에서의 세포신호전달체계 연구를 가능케 했다.또 90년이후 PLC효소 4개를 추가로 발견한데 이어 이들 PLC효소가 외부자극에 의해 어떻게 활성화되는지를 세계의 석학들과 공동으로 구명했다.지난해 노벨의학상을 받은 알프레드 길먼박사도 그의 연구 파트너.지금까지 길먼박사와 공동으로 세포신호전달학에관한 3편의 논문을 내놓았다. 이박사는 『김시중 전 과기처장관의 권유로 현재 과기처 산하 생명공학연구소와 「동물질병모델」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며 이 연구에 자문을 하기 위해 앞으로 1년에 한달 남짓 고국에 머물 계획임을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 분자생물학 및 생화학계에서는 요즘 세포신호전달 연구가 유행일 정도로 활발하다』고 전하고 자신의 연구실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 동포과학자들을 인적 자원으로 제공,고국의 세포신호전달학 발전에 일조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 고문서·시­화첩등 거의 문화재급/반환목록으로 살펴본 데라우치 문고

    ◎최치원·정몽주 서신­이수광·김생 시 포함/한일 수교30년 맞아 반환교섭 결실 예상 일본정부가 이달초 데라우치문고 일부 자료의 내용을 수록한 마이크로 필름과 문고 총목록을 우리측에 전달해옴에 따라 일본에 빼앗겼던 우리의 희귀고문서·서화집 등의 반환이 한발 가까워졌다. 일본측이 건네준 데라우치문고의 목록은 2백쪽짜리 단행본 두권분량으로 문화재급 사료 3천여점의 제목이 수록돼 있다.그러나 문고의 규모가 방대한데다 중국·일본의 고문서도 섞여 있고 내용별 분류가 돼 있지 않아 우리측 전문가를 동원,장시간에 걸쳐 우리 문화재를 따로 추려내는 작업을 벌여야 했다. 정부는 완성된 우리측 자료목록을 기초로 대일 협상창구인 한일의원연맹을 통해 반환받기를 바라는 문화재목록을 일본측에 전달할 예정이다.이어 양국간 협상을 통해 귀중한 우리 고문서들이 80년만에 환국하게 된다. 데라우치문고는 일본의 초대 조선총독(1910∼1916)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조선과 중국·일본 등에서 수집해 일본으로 가져간 문화재급 고문서·서화집등으로 그의 아들 수일이 고향인 규슈 야마구치현의 여자대학교에 기증해 오늘날까지 보관돼오고 있다. 데라우치의 조선문화에 대한 관심은 집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그는 총독으로 부임하기 전인 1902년 조선내 철도회의 의원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이미 조선의 문화재 수집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총독에 취임한 1910년부터는 서적 전문가인 공등장평과 흑전갑오낭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고문서 수집에 나섰다. 수집자금은 주로 왕실로부터 받은 하사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데라우치의 고문서수집에는 돈에 눈먼 조선상인들이 동원됐는데 김생과 최치원의 서신을 담아 귀중본 간찰집으로 꼽히는 「명현간독」은 일금 80원에 넘어간 것으로 목록의 해설란에 기록돼 있다.데라우치는 이와 함께 당시 일본 경찰의 조직까지 동원,김석문을 조사하고,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의 조사와 보수·복각 등을 시도하기도 했다.특히 데라우치는 해인사 대장경판을 세부 인쇄,그 한부를 비단으로 싸서 일왕의 명복을 비는 교토 천용사에 봉헌하기도 했다. 데라우치문고가 우리에게 돌아오게 된것은 한일 양국이 국교정상화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교섭을 벌여온 결과다.양국은 정부차원의 교섭이 자칫 양국 국민의 감정을 건드려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일의원연맹등 행정부 이외의 채널에 협상을 맡겼다. 지난해 데라우치문고가 소장돼 있는 야마구치현립여대를 방문,이들 자료를 점검하고 돌아온 태동고증연구소의 임창순소장은 『목록을 보니 눈이 휘둥그래질 만큼 놀라웠고 한편으로 이것이 일본사람 손에 들어간데 대해 분개하고 애석한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러나 어느 것이 우리에게는 남아있지 않은 자료이며 또 어느 것이 얼마나 귀중한 문화재인지 충분한 검토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환교섭에 앞서 직접 면밀한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환추진 데라우치문고의 주요 한국문화재 우리정부와 전문가들 분류에 따르면 데라우치문고내의 우리 문화재는 고문서와 책·간첩류·시첩류·개인서첩·서화첩등으로 분류된다. 고문서와 책들은 다시 교지와 녹봉교지·호적단자·명문·화회문기등으로 세분된다.교지는 정부의 사령장으로 1869년 조석여의 황해도관찰사 제수교서,1790년 강세황의 정헌대부교지·녹봉교지등이 포함돼 있다. 호적단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암행어사 박문수집안인 고령 박씨 종중 1704년부터 1791년까지의 가계를 기술하고 있다.또 전답이나 노비매매문서인 명문은 19건으로 1672년에서 1889년에 이르는 2백년간의 매매문서가 포함돼 역사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화회문기는 재산분쟁을 해결하는 특이한 문서인데,어사 박문수의 할아버지인 박장원의 외가 형제가 모여 유산을 분배하는 과정을 기록한 1건이 수록돼 있다. 물론 이러한 전문적인 문서와 함께 신라·고려와 조선조때 간행된 우리의 대표적 문집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으며,중국에서 발간된 자치통감을 우리나라에서 장정한 서적도 눈에 띈다.또 기사본말 서체로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기술한 작자미상의 「임진란」6책도 있다. 편지모음인 간첩류 가운데는 신라의 김생·최치원을 위시해 고려와 조선초기 인물들의 서신을 작품으로 모은 12첩짜리 「명현간독」이 단연 백미로 꼽힌다.이색·정몽주의 서신도 수록돼 있다. 또 시집인 시첩은 선비들이 연회때 지은 작품,혹은 왕명에 따라 지은 시들이 주류를 이룬다.이와 함께 서울에서 지방으로 전보되어 부임하거나 외국에 사절로 갈 때 동료나 친우들이 지어준 송별시들도 눈에 띈다. 이 가운데 1646년 민성휘가 진하부사로 북경에 갈 때에 이호민·이수광·홍서봉·김육등이 지어준 「정해부연첩」이 백미로 꼽힌다. 서화첩으로는 순조의 왕세자가 태학에 입학하는 의식을 그린 「정축입학도첩」이 중요한 자료로 분류된다. 지난해 정부대표로 데라우치문고를 점검하고 돌아온 문화체육부의 최순희문화재전문위원은 『문고에 소장된 우리나라 도서는 국내에 없는 것이 많고 고려말의 귀중한 문서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서간문이 많아 데라우치가 서책이나 고문서보다는 서간문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 일 데라우치 고문서 반화대상 목록/김생 서첩 등 562점 확인

    ◎올해 돌아올듯 정부가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 일본측과 반환교섭을 벌이고 있는 일제의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사내정의)소장문고는 고구려 광개토대왕비 탁본을 비롯,신라·고려시대의 서한집등 귀중 사료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국,일본의 고문서 서한문등을 모은 「데라우치 문고」중 조선 것만을 간추린 결과 고문서와 서책류 46종 4백32책,간첩류 38종 72첩,시첩류 13종 16첩,개인서첩 31종 32첩,서화첩 5종 6첩,기타 4종 4첩등 모두 5백62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이달초 일본정부가 전달해온 데라우치 문고의 전체 목록과 일부 자료의 마이크로 필름을 정부 문화재 관계자와 전문학자들이 정리·검증한 결과 밝혀졌다. 정부가 데라우치 문고목록을 토대로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고문서와 서책류에는 김정희의 「완당진묵」「추사진필」,한호의 「서담공유정록」,김상헌의 「청음시첩」,김생의 「해동명필」,정조대왕의 「첩왕서」,효종대왕의 「어제제명첩」「황희서축」등의 귀중한사료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또 「파한집」「보한집」「익제집」「동국통감」「동문선」「삼국사기」「성호사설류선」「동사강목」「지봉유설」「고려사」등도 포함돼 있다. 글씨와 그림을 법첩으로 만든 서화첩에는 순조의 왕세자가 태학에 입학하는 의식을 그린 「정축입학도첩」등이 포함돼 있다. 이 문고는 데라우치가 1910년 조선총독 부임시부터 중국,조선 일대에서 수집한 것으로 1916년 귀국시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다. 한·일 양국은 지난해 데라우치 문고의 반환 원칙에 기본적 합의를 봤는데 이번에 목록이 확인 정리됨에 따라 우리측이 반환을 원하는 문화재를 통보하면,본격 협상을 통해 올해 안에 귀중 사료 일부가 돌아오게 됐다.
  • 원통형 몸뚱이 남녀인물상(한국인의 얼굴:21)

    ◎들창코에 눈·입·귀 뚜렷이 표현/남자 머리에 상투·여자인형은 맨머리/팔·다리 생략… 풍요·다산 상징 성기강조 신라 흙인형을 살펴보노라면 아주 우스꽝스러운 남녀인물상 한쌍을 만나게 된다.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이들 인물상은 출토지가 밝혀지지 않아 유물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른다.다만 통일신라시대 유물이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다. 이 남녀인물상의 몸뚱이는 원통형을 이루고 있다.그러나 얼굴과 성기는 극명하게 표현했다.남자상은 머리에 둥근 상투를 틀었지만 여인상은 그냥 맨머리다.귀와 눈,코와 입을 모두 뚫어 놓아 그야말로 이목구비가 너무 뚜렷하다.콧구멍 두개가 휑하니 드러나 들창코라는 인상을 풍긴다.눈과 입에 장난기가 어려 천진스러울 정도로 무구(무구)한 표정을 짓고있다.거기에는 선각으로 둘러놓은 눈썹이 한몫을 크게 거들었다. 그 얼굴은 의인화한 순둥이 동물로 보이기도 하고,욕심 없는 어린아이 모습으로도 다가온다.눈 내리는 겨울날 아이들이 솜씨를 부려 만들어놓은 눈사람 모양일 수도있다.또 얼핏 러시아의 전통공예품인 목제인형 마트료쉬카를 연상시킨다.마트료쉬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신라와 중앙아시아쪽 시베리아문화가 서로 연관성을 갖고있다는 학설은 일찍 부터 제기되었다. 이들 남녀인물상의 원통형 몸뚱이에 팔다리를 생략하고 유독 성기를 강조한데도 나름대로 까닭이 있다.고대 주술신앙에서 비롯된 성기숭배사상에 뿌리를 두고있다는 해석이다.남녀 생식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있다.생명창조의 주체로 어머니(태모)를 의미하는 여성의 생식기는 때로 대지(지모)로도 비유된다.남성의 것은 생명의 흐름을 주도하는 가운데 재생의 기능을 지닌 것으로 보았다. 신라의 흙인형에는 성애를 묘사한 것도 있다.별도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어떤 그릇(토기)에 붙여놓았던 것을 따로 떼어낸 것들이 대부분이다.이러한 흙인형들이 붙었던 토기는 씨앗 갈무리용 그릇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와있다.그러니까 신라토기에 나타난 남녀 결합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한 것일뿐 관능적 교합과는 거리가좀 멀다는 것이다. 원통형 몸뚱이의 흙인형 키는 남자상이 17.8㎝,여인상이 18.5㎝에 불과하다.신라인들은 그 작은 공간에다 남녀의 성을 통해 우주관을 담았다.세계의 고등종족들은 아주 까마득한 옛날부터 남녀의 성을 우주의 생성원리로 여겼다.인도에서는 일찍 남자의 성 링가(Linga)와 여자의 성 요니(Yoni)의 결합은 곧 우주이자 생명창조라는 등식으로 힌두철학을 정립했다. 그렇다면 신라의 흙인형 중에 몇점 인물상의 남녀성기를 과대하게 표현한 것도 외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이들 흙인형 인물상은 깊은 사고가 깃든 정신문화유산인 것이다.
  • 경주에 고속전철·경마장 건설 찬반

    ◎반대/“천년 고도 훼손은 역사에의 거역/손곡동·물천리 일대 매장문화재 수두룩/김종철 계명대학교 박물관장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로서 민족문화유산을 그만큼 잘 간직한 도시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해마다 6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까닭도 보문관광단지와 같은 위락시설이 있어서가 아니다.불국사,석굴암,다보탑,석가탑 등의 조형미술품과 무수한 능원이라는 우리의 문화재가 널려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경주는 원상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오히려 원상대로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이러한 상황에서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경주가 하루가 다르게 파괴되어 가고 있다.더구나 경주에 경마장이 들어서고 경부고속전철이 지나가게 되었다는 소식은 큰 충격을 안겨준다.선진국에서도 고도산업화 과정에서 일찍 문화재나 문화유적 보존과 개발정책이 서로 맞부딪쳐 시행착오를 겪는 일을 얼마든지 보아왔다.그러나 거의가 문화재 보존차원에서 개발정책은 수정되었던 것이다. 경마장 부지로 선정된 경주시 손곡동과 물천리 일대는 어마어마한 양의매장문화재가 묻힌 지역이다.그래서 부지선정부터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경주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실시한 지표조사에 따르면 고분7군데,토기 가마떼 2군데,기와가마와 건물터 1군데가 있다.지표조사가 이럴진대 지하에는 더 깜짝 놀랄만한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신라의 서울 경주는 아주 짜임새 있고 깨끗한 고대도시였다.「삼국사기」에 보면 도시가 더러워질세라 숯으로 밥을 지었다는 기록이 나온다.그러한 도시발달 과정을 보여주는 취락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역도 바로 경마장 건설 예정부지에 들어 있다.5세기말에서 6세기초,숯불로 밥을 지어먹던 때보다 이른 지증왕,법흥왕대에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탈바꿈하는 시기의 문화유적지인 것이다. 경마장 부지면적은 29만평이라고 한다.거기에 진입로 2개노선이 개설되고 그 부대 위락시설을 갖출 경우 자연환경과 인문환경 파괴는 엄청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마장 건설을 강행하려는 의도 뒤에는 마사회 수입과 지방세수 증대가 맞물려 있다.그러나 천년고도의 문화파괴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거역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경부고속전철의 경주권 통과노선 길이는 32㎞로 되어있다.경주 북서부인 금장리와 석장리를 거쳐 북녘들 탑정동을 지나게 되면 수많은 지상유적과 지하유구가 제모습을 잃는다.그리고 이 경부고속전철은 경주를 동서로 갈라놓는 분할선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신라의 성산이자 성지인 성도산과 남산을 비스듬히 걸치고 지나갈 시멘트 고가전철을 상상해 보라.흉물로 떠오를 뿐이다. 신라인들은 천년의 시공을 뛰어넘은 오늘 아무도 살아있지 않다.다만 그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산이 있을 뿐이다.파괴된다 해도 그들이 살아나와 다시 만들어주지 않는다.자연환경 역시 신이 다시 복원하지 않을 것이다. ◎찬성/“침체된 지역경제 살릴 유일한 길”/경마장 세수 연4백억… 시재정 크게 보탬/김성수 경주상가발전협 회장 경주시민들은 요즘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자랑 삼기는 커녕 강요당하는 「재산권 행사 제한」의 희생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경주에 설치키로 오래전에 결정됐고 이미 사업 착수단계에 이른 경주경마장과 경부고속전철 경주역사의 설치반대 주장이 외부에서 제기되면서 우리는 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사업은 대통령의 공약사업이기도 하거니와 침체의 늪에 빠진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주경마장은 연간 4백억원상당의 지방세 세수가 예상되고 있는 만큼 궁핍한 시재정 탓에 점차 슬럼화되고 있는 도시의 면모를 바꿔 놓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경부고속전철의 경우도 최근 줄어들고 있는 외국관광객들의 획기적인 유인 뿐 아니라 신라문화의 세계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에도 최근 일부 고고학자들이 『이같은 구조물을 설치할 경우 문화재 보존에 어려움이 있다』며 사업철회를 요구하는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서울에서 관련세미나까지 연 것은 경주지역의 실정을 무시한 너무나 무책임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이들 학자들은 그동안 경주 남산에 교도소가 설치되고 경주 인근에 핵발전소와 산업쓰레기처리장이 들어설 때는 한마디 의견도 내비치지 않아 우리의 섭섭함을 더해주고 있다. 이들 시설물에 대한 경주시민의 강력한 유치 주장은 그동안 문화재 보존을 위해 희생당한 각종 재산상의 피해를 보상하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세계속의 경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너무나 중요한 사업이고 21세기의 경주를 담보하는 사업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들 학자의 주장은 계획 입안과정에서 충분히 검토되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인 데도 이같은 문제점을 뒤늦게 제기하는 것은 국민들로하여금 혼란에 빠뜨리게 할 우려가 있다. 또 당국에서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국민들은 당국의 정책입안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찬란한 경주 문화재는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세계의 자랑이다. 요즘 논란을 빚고 있는 경마장은 경주 외곽지인 손곡동에 위치하게 된데다 지표조사 결과 발견된 각종 유구도 이미 발굴계획이 세워져 있다.또한 고속전철의 경우도 문화유적을 조금이라도 손상하지 않기 위해 지하노선 설치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너무나 많은 규제와 피해에 시달려온 경주시민들은 이들 학자의 이번 주장도 시민들의 기대와는 동떨어지게 정책에 반영되지나 않을까 솔직히 말해 걱정이 앞선다. 정부는 하루빨리 명쾌한 해명으로 경주시민들을 안심시켜 주기 바란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