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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 주석,차조립 로봇에 깊은 관심/방한 나흘째 이모저모

    ◎조선소 독 둘러보고 「축 발전」 휘호/고려대장경 영인본 선물받고 “감사” 방한 4일째인 16일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은 상오에 신라 천년의 자취가 서린 고도 경주에서 불국사를 둘러본 뒤 하오에는 울산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등 산업시설을 시찰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강주석은 이어 이날밤 제주에서 수행원들과 함께 김상하 한중민간경제협의회회장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하는등 아·태 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가 열리는 일본 오사카로 떠나기에 앞서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강주석은 16일 상오 숙소인 경주 힐튼호텔을 나서 10여분 거리인 불국사에 도착,『불국사가 대승불교를 전하는 사찰인가』라고 묻는 등 한국 불교에 많은 관심을 표명.이어 강주석은 대웅전에 들어가 방명록에 서명한뒤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으로부터 해인사에 보관 중인 고려대장경 영인본 48권의 기증 증서를 전달받고 감사의 뜻을 표시. 강주석은 대웅전 앞에 위치한 석가·다보탑의 내력에 대한 설명을 월주스님으로부터 듣고 『다보탑은 아름다워 여성스럽고,석가탑은 남성을 의미하는 것 같다』며 불교문화에 대한 식견을 과시. ○…울산지역 산업시찰에 나선 강주석은 이날 상오 10시45분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앞에 도착해 정세영 현대그룹회장과 전성원 현대자동차 사장의 영접을 받았다. 방명록에 이름만을 적은뒤 곧 바로 공식환영식이 열린 귀빈실로 직행한 강주석은 환영식에서 정회장이 『현대그룹이 중국 경제정책에 참여할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정성껏 중국측과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하자 가볍게 박수를 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강주석은 별다른 답사없이 공식수행인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뒤 현대자동차측이 준비한 버스의 제일 앞좌석에 정회장과 나란히 앉아 아반떼 공장으로 향했다. 환영식에서 별다른 표정이 없던 강주석은 로봇이 직접 조립하는 공정에서 시찰차를 멈추게 한 뒤 『로봇은 어디서 만들었는가』,『작동 소프트웨어는 누가 개발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표명. 강주석은 『로봇이 급료를 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으니 공장장은 로봇을 사랑하지요?』라며 시장자본주의의 원리를 꿰뚫는 조크성 질문을 던져 박병재 공장장으로부터 『사랑합니다』라는 답을 얻어내고 크게 웃기도. 이어 하오 1시30분께 현대중공업에 도착한 강주석 일행은 이 회사 최대의 선박 독인 제3호 독에서 건조중인 선박 6척을 버스로 둘러본 뒤 영빈관 로비에서 『축 현대집단사업번영발전』이라는 해서체의 휘호를 남긴 뒤 정주영명예회장 등과 함께 영빈관 귀빈실에서 오찬.
  • 강 주석,반도체 생산라인 돌며 진지한 질문/방한 사흘째 이모저모

    ◎“청와대 단풍곱다”며 북경의 단풍 자랑/조깅트랩선 뛰는 시늉하며 관심 표명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은 한국방문 사흘 째인 15일 역시 바쁜 하루를 보냈다. 강주석은 이날 아침 청와대 상춘재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조찬을 함께한 뒤 기흥에 있는 삼성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이어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주한 중국대사관 직원 및 화교대표들을 접견하고 경주로 직행,이의근 경북지사가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청와대 상춘재에서 있은 김대통령과 강주석의 조찬회동은 두 정상의 개인적 친분과 돈독한 우의를 다지기 위한 자리임을 상징하듯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1시간동안 진행됐다. 김대통령은 상오 7시30분 반코트 차림으로 상춘재앞 녹지원에 나와 넥타이를 매지 않은 간편복 차림의 강주석을 맞아 아침인사를 나눈 뒤 강주석을 조찬장인 상춘재로 안내했다. 김대통령은 강주석과 함께 녹지원 뜰을 걸어가는 동안 청와대 뒷산을 가리키며 『단풍이 아름답다』고 말하자 강주석은 「단풍이 꽃보다 곱다」는 중국 당나라 시인 두목의 한시를 소개하고 『북경에도 향산의 단풍이 유명하다』고 화답했다. 이어 김대통령이 녹지원 주변 조깅트랙을 가리키며 『이곳이 내가 매일 아침운동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하자 강주석은 잠시 뛰는 시늉을 해보이며 『제자리에서 뛰느냐.아니면 실제로 달리기를 하느냐』며 조깅에 관심을 표명했다. 김대통령이 『상춘재가 전통 한식건물』이라고 설명하자 강주석은 『목조건물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 중국인도 목조가옥을 좋아한다』고 화답하는 등 두 정상은 우리의 전통가옥과 서울의 공기 등을 화제로 환담을 나누다 양측의 통역만 배석시킨 가운데 조찬회동을 시작했다. ○…강주석은 김대통령과 조찬회동을 끝낸뒤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을 방문,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안내로 시설들을 둘러봤다. 강주석은 1층 로비의 제품전시장에서 휴대용 무선전화기로 북경의 삼성지사에 전화를 걸어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공장시설 보호를 위해 방진복 방진화와 헬멧 장갑까지 착용한 강주석은 생산라인을 둘러보면서 정통 기술관료답게안내인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궁금한 점을 빠짐없이 물어보는 등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 강주석은 『자동화된 생산라인이 좋아서 인상적』이라면서 『실리콘밸리보다 더 좋은 듯하다』고 평가했다. 삼성반도체공장 시찰을 마친 강주석은 육로를 이용해 숙소인 신라호텔에 도착,주한 중국대사관 직원 및 화교대표 등 80여명과 만나 격려했으며 이어 이날하오 다음 방문지인 경주로 출발했다. 강주석은 경주 힐튼호텔에 여장을 푼뒤 이날 저녁 이경북지사가 주최하는 환영만찬에 참석했으며 16일에는 불국사를 관광하고 울산의 현대자동차 공장을 시찰할 예정이다.
  • 한·중 긴밀협력 아태발전 원동력/김 대통령·강택민 주석 조찬회동

    김영삼 대통령과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은 15일 상오 청와대 상춘재에서 조찬회동을 갖고 양국정상간 개인적인 우의와 친분을 다지고 국제정세등 상호 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두 정상은 특히 한·중 두나라의 긴밀한 협력이 아·태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거듭 확인하고 정상회의에서 논의된 항공기 공동개발 사업과 원자력분야에서의 협력을 보다 구체화하는 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주석은 이날 상오 김대통령과 조찬회동을 마친뒤 경기도 기흥의 삼성반도체 공장을 방문,약 50분간에 걸쳐 반도체 생산라인등 공장시설을 둘러봤으며 이어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주한 중국대사관 직원 및 화교대표들을 격려했다. 강주석은 사흘간에 걸친 서울방문 일정을 마치고 이날 하오 다음 방문지인 경주에 도착,이의근경북지사가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다.
  • “중·조 조약은 「파병조약」 아니다”/진건 중 외교부 대변인

    ◎앞으로 북엔 경제지원만 할것 중국 정부는 한반도내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과거와 같이 북한에 파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을 수행중인 진건 중국 외교부대변인은 14일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중국과 북한간의 자동군사개입조항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중­조 친선 우호협력 조약은 파병의 조약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진대변인은 그러나 『과거 중국은 북한에 경제지원을 했고,앞으로도 할 수 있는만큼 지원을 할 것』이라고 협력관계는 지속될 것임을 밝혔다. 진대변인은 일본의 과거사문제 발언에 대해 『현재 중일관계는 좋으나 장래에도 계속 발전시키려면 일본이 역사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평화적 길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중국은 독립·자주적 외교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므로,일본에 과거사 해명을 요구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 연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진대변인은 『안승운 목사 납북 문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김 대통령­강택민 주석 정상회담/일에 역사인식 재정립 촉구

    ◎한·중 정상/남북한 문제 당사자 대화 통해 풀어야 김영삼 대통령과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은 14일 상오 청와대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갖고 과거사문제와 관련,일본측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우려스럽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일본의 똑바른 역사인식을 강력히 촉구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단독및 확대정상회담이 끝난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본인은 취임후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로서 우리에게 잔혹하게 한데 대해 일본은 반성해야 하며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반성의 토대 위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거듭 밝혀왔다』고 지적하고 『그럼에도 불구,일본측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으며 건국 이래 30여차례 계속되고 있어 이번에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주석도 일본측의 망언에 대한 중국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그 어떤 역사도 말살될 수 없다』면서 『우리는 일본의 소수 군국주의 세력을 경계해야 하며 일본으로 하여금 역사를 똑바로 인식하고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주석은 『일본은 중국과 아시아 다른나라들에 대한 침략을 부정하고 있다』면서 『그 원인은 일본정부가 장기적으로 역사에 대한 명확한 태도가 없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과 강주석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한반도문제는 주변국의 이해와 협력하에 남북 당사자간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하며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기 전까지는 정전협정이 준수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양국 정상은 ▲중형항공기 공동개발 조기 착수 ▲원자력분야 협력방안 ▲러시아 가스전 개발 협력방안을 적극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두 나라 정상은 또 양국정부가 직업훈련분야에서 협력해 나간다는데 의견을같이하고 이를 위해 한국정부는 북경의 직업훈련센터 건립을 지원할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 김대통령과 강주석은 양국의 협력이 21세기 아·태지역 번영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유엔은 물론,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및 아시아·유럽 정상회의등 지역및 세계차원에서 더욱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강주석은 이어 이날 낮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경제4단체장이 주최한 오찬에 참석했으며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이홍구 총리의 예방을 받았다. 강주석은 이날 저녁 청와대에서 김대통령 내외가 주최하는 국빈만찬에 참석했다. ◎한·중관계 진전 4대원칙 제시/강 주석 국회연설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은 14일 『한반도의 가까운 이웃으로서 중국은 한반도 남북 쌍방이 접촉과 대화를 통해 신뢰를 점차적으로 증진하고 관계를 개선하며 나중에는 민족의 화해와 나라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할 것을 진심으로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을 공식방문하고 있는 강주석은 한·중정상회담에 이어 이날 하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방문,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것은 중국이 한반도문제를 취급하는 기본준칙』이라고 강조했다. 강주석은 『한반도의 긴장정세를 완화하고 한반도문제를 적당하게 해결하는 것은 남북 쌍방 인민의 공동이익에 부합되고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도 유리하다』고 남북대화를 통한 한반도 안정과 평화정착을 희망했다. 강주석은 『중·한 양국이 위치하고 있는 동북아지역은 아시아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국제에서도 광범한 주목을 끌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 지역의 장기안정을 진심으로 바라며 역내 모든 국가가 화목하게 지내고 번창할 것을 충심으로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중관계와 관련,강주석은 ▲평등호혜 ▲우세보완 ▲성심협력 ▲공동발전의 4원칙을 제시하면서 『양국의 경제무역협력을 강화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뿐 아니라 반드시 양국 경제의 번영과 선린우호관계를 밀고 나가는 강한 추동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한­중 수출입 표준계약서 합의/통상장관 회담

    ◎항공기 산업 협력회의 새달 개최 한국과 중국은 두나라의 수출업체간 무역분쟁을 줄이기 위해 「한중 수출입 표준계약서」를 조속히 체결하기로 합의했다.또 양국은 중형항공기 공동개발사업과 관련,최종조립장·제3협력선·완성비행기 조립물량의 배분 등 주요 현안을 협의하기 위한 항공기산업 협력분과회의를 이달말 개최키로 합의했다. 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은 14일 하오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부 오의부장과 통상장관회담을,국가경제 무역위원회 왕충우주임과 산업협력회담을 잇따라 갖고 이같이 합의했다. 통상장관회담에서는 양국간 경제협력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내년 북경에서 통상장관 회담을 개최키로 합의하고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APEC(아태 경제협력체)회의에서 긴밀한 공조체제를 이루기로 의견을 같이 했다. 양국산업협력회담에서는 중형항공기 공동개발,원전건설,고선명 TV,차세대교환기,자동차 부품분야에 대한 협력방안이 논의됐다. 또 고선명TV의 공동개발을 위해 12월중 협력주관기관인 한국전자부품연구소와 중국의 비홍전자유한공사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중요청했다.
  • 강주석 한방 서울·북경 표정

    ◎간단한 환영행사뒤 숙소 신라호텔로 직행/이붕 총리 등 당정고위인사와 일일이 악수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은 13일 하오 6시40분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간단한 환영행사를 가진 뒤 숙소인 신라호텔로 직행. 강주석 내외는 이날 문동석 외무부의전장의 안내로 특별기에서 내린뒤 기다리고 있던 공로명 외무부장관 내외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인사. 이어 강주석은 1백여명의 수행원 가운데 각료급 인사들을 공외무장관에게 소개한뒤 도열병을 통과해 문의전장의 안내로 우리측 환영인사들과 인사를 교환. 이때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나온 화동 2명이 강주석 내외에게 환영의 꽃다발을 증정했고 장정연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측 환영인사를 강주석에게 소개. 강주석 내외는 귀빈용 승강기를 이용,1층 국빈 대기실로 이동한뒤 공항환영행사를 10여분만에 마치고 승용차편으로 신라호텔로 출발. 이날 공항환영행사에는 우리측에서 공외무장관과 황병태 주중대사 내외·문의전장·김하중 아태국장 등 7명이,중국측에서 장대사 내외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 17명이 참석. ○…중국 국가원수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방문하는 강택민 국가주석은 13일 하오 방한길에 오르기에 앞서 북경시내 인민대회당에서 베풀어진 환송식에 참석,환송 나온 이붕총리를 비롯한 당정고위지도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등 시종 밝은 표정. 강주석은 이날 하오 3시25분(한국시간 하오4시25분) 부인 왕야평 여사를 대동하고 인민대회당 로비에 도열해 있던 이총리를 포함한 이서환 전국정협주석,유화청 당중앙군사위 부주석,영의인 국가부주석,전기운 전인대 상무부위원장,온가보 당중앙정치국 후보위원겸 중앙서기처서기,나간 국무위원겸 국무원 비서장,유화추 국무원 외사판공실주임 등과 일일이 작별인사. 시작한지 5분여만에 간단히 끝난 이날 환송식에서 강주석과 이총리는 특히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채 악수를 나눈뒤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해 주는등 「다정한」 사이임을 강조. 출국하는 인사들로는 강주석과 왕여사에 이어 전기침부총리부부,정관근 당중앙정치국위원,왕충우 경제무역위주임,고수련 화학공업부장,오의 대외무역경제협력부장,당가선 외교부부부장등이 뒤를 따르면서 이총리등과 출국인사를 나눴다.
  • “일 국보 상당수 한국인 작품”

    ◎일 전수대 객원연구원 홍윤기씨 「한국인이 만든 일본 국보」서 주장/4∼6세기 백제·신랑니이 문화형성 기여/법륭사 백제관음상·옥충주자가 대표적 일본이 일제강점기는 물론 임진왜란 등 우리나라를 침략한 때마다 숱한 문화재를 약탈해 간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그러나 그것말고도 일본이 현재 국보로서 떠받드는 많은 문화재가 우리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일본이 이를 철저히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국보 중에서 그 옛날 우리 선조가 남긴 것들을 찾아낸 책 「한국인이 만든 일본 국보」가 최근 출간됐다(문학세계사 펴냄). 일본 문헌에 드문드문 나오는 기록을 추적,이같은 사실을 밝혀내 처음 집대성한 사람은 시인이자 일본문화연구자인 홍윤기씨.한국문인상·월탄문학상들을 탄 바 있는 이 중견시인은 지금 일본전수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강의한다. 그가 이 책에서 공개한 「한국계 일본국보」는 주로 나라(나양)지방에 집중돼 있다.먼저 고구려 승려 담징의 「금당벽화」로 유명한 법륭사)에는 「백제관음상」「구세관음상」「석가여래삼존상」 등 불상들과,공예품 「옥충주자(비단벌레 불상궤)」가 있다.이 가운데 백제관음은 녹나무를 깎아 만든 입상으로 일본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예술품. 「옥충주자」는 높이 2m30㎝의 칠공예품으로,비단벌레 2천5백63마리 분의 날개를 붙여 부처 설화를 표현했다.둘 다 백제인의 작품이다. 또 중궁사에는 백제·고구려 여인이 만든 자수 수예품 「천수국 만다라 수장」이,정창원에는 신라화가가 그린 「불상」이 각각 국보로 남아 있다.지난 72년 발굴돼 한일 양국을 떠들썩하게 한 다카마쓰총 고분도 나라에 있다. 국보 1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있는 교토(경도) 「광륭사(광륭사)」에는 나무로 조각한 「상투 미륵상」이 안치돼 있다.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신라작품임을 일본측도 인정하는 것처럼,상투미륵상 역시 신라가 7세기 초 일본에 보내준 것이다. 이처럼 많은 우리 문화재가 일본국보로서 남게 된 까닭은 백제·신라·고구려 등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고대 일본문화 형성에 결정적인작용을 했기 때문이다.지은이 홍씨는 『문화 선진국인 백제가 4세기쯤 문자가 없는 왜의 나라지방에 학자를 보내 유학을 편 것이 일본문화 발생의 바탕』이라고 해석했다.이어 6세기쯤 3국이 불교를 본격적으로 전해주면서 일본문화가 비로소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화려하게 소개한 대표적인 국보들이 대부분 한국에서 보내준 것과,한국인이 일본에 건너가 만든 것들』이라면서 그런데도 유래를 알 수 없다거나,막연하게 중국 것인양 표현해 이를 바로잡으려고 연구에 나섰다고 밝혔다.
  • 전국 기초의회 협의회 회장에 김진유 의원

    【부산=김정한 기자】 제3대 전국 기초의회 시·도 대표협의회 회장에 김진유(56)대구광역시 수성구의회 의장이 선출됐다. 전국 기초의회 시도 대표협의회 대표 15명은 11일 상오 부산해운대 파라다이스 비치호텔 2층 신라룸에서 모임을 갖고 김의장을 회장으로 선출하는 등 9명의 임원진을 선출했다.
  • 이건개씨 2년만에 공식활동/로터리클럽 모임서 「권력…」 강연

    ◎“노씨 부정축재는 권력집중서 비롯” 지난 93년 슬롯머신사건과 관련,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 8·15때 특별사면된 이건개(전대전고검 검사장)변호사가 공식활동을 재개하면서 『노태우씨 부정축재사건은 권력이 집중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관심을 끌었다. 이변호사는 9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서울 새신라로터리클럽(회장 김재기 한국종합유선방송협회장) 조찬간담회에서 「뜯어 고쳐야 할 국가권력의 집중구조와 그 현상」이라는 강연을 통해 『노씨의 부정축재는 권력구조가 대통령 한사람에게 지나치게 집중돼 있기 때문에 나타난 필연적 현상』이라면서 『이같은 비리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을 이원화해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 분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인공 개울(외언내언)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저 하늘 저 빛깔이 그리 고울까/아아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떼/버들가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목가적 정경을 노래한 파인 김동환의 시다.마을 앞을 흐르는 실개천은 누구에게나 고향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개천가에는 풀숲이 덩굴을 이루고 하늘에 닿을듯한 포플러 나무들이 키자랑을 한다.맑은 개천에서 피라미나 미꾸라지를 잡는 맛이라니,어린시절의 기막힌 추억이 아닌가.이제는 피라미를 잡을수 있는 「버들가 실개천」이 얼마나 남아있을는지. 지금은 콘크리트 개울로 묻혀버린 서울의 청계천은 해방 무렵만 해도 이름 그대로의 청계천이어서 물고기가 놀고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인기가 높았다. 북악에서 흐른 물이 한강으로 빠지는 큰 개천이었다.조선시대 한양의 궁궐에는 북악산 물줄기를 끌어들여 건물을 감싸고 흘러가게 했다.이를 명당수라 했는데 이는 풍수지리에 기인한 것이다.특히 경복궁의 명당수는 근정문 앞을 지나 흘러 매우 길한 형상이라고 했다. 인공으로 수로를 판 사례로는 신라 경애왕때 포석정을 들 수 있다.돌로 꾸불꾸불한 물길을 만들어 물위에 술잔을 띄우며 연회를 벌였다는 파티장.그러나 경애왕이 연회도중 후백제군의 기습으로 살해되는 비운의 장소가 됐다. 도심에 인공 개울을 만들어 고향과 자연을 복원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토지개발공사는 새로 조성할 사업지구에서 건물과 도로사이에 폭 5m의 인공개울을 만들겠다는 것.개울 주변에는 나무와 꽃을 심어 휴식공간으로 조성하고 개울에는 물고기가 서식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회색빛 콘크리트 도시에서 갈대와 물풀이 자라는 개울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삽상할 것인가. 문명과 공해속에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아름다운 저녁노을이며 찬란한 은하수며 한여름밤의 개똥벌레에 이르기까지.실개천의 복원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 논산 관촉사 고려 미륵보살상(한국인의 얼굴:49)

    ◎일자로 꽉 다문 입·굳은 표정 “특이”/네모꼴 넓은 턱·어깨까지 내려온 귀 인상적 고려의 석조불·보살상들은 지역별 특성을 지니고 있다.그 대표적 케이스가 오늘날 충남지역에 전해오는 보살상들이다.모두가 거상인데,간략한 표현기법이 구사되었다.이는 관촉사미륵보살입상으로 시작하여 대조사미륵보살입상과 삽교보살입상으로 이어졌다. 이들 석조보살입상들 가운데 관촉사미륵보살상이 맨 먼저 조성되었다.이 보살입상의 백호를 수리할 때 발견한 먹글씨 쪽지에는 고려 광종 5년(서기968년)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충남 논산군 은진면 관촉리 관촉사 경내에 자리한 미륵보살입상은 키가 자그마치 18m에 이르는 거구다.몸뚱이는 거대한 돌을 원통형으로 깎아 만들었다.그래서 우람한 인상이 강하게 다가올 뿐 미적 조형감각이 넘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관촉사 미륵보살입상의 얼굴은 지난 시대 신라의 불·보살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이마가 좁고 턱이 넓은 네모꼴인데,얼핏 삼각구도라는 느낌도 안겨준다.눈은 옆으로 길게 찢어졌다.그러나 눈을비교적 크게 떠 왕눈을 했다.코는 실상 크고 높으나 콧방울이 유난히 넓고 펑퍼짐해서 날카로워 보이지 않는다.일자로 꽉 다문 입이 얼굴 표정을 굳게 만들었고 턱 밑에다 선을 둥글게 그어 두 턱이 졌다. 보관바로 아래서 시작한 귀는 크게 과장되어 목주름이 뚜렷한 목언저리를 지나 어깨까지 내려왔다.그 길이가 2m나 되니 큰 귀임에 틀림없다.보관 사이로 도안화한 머리카락이 약간 흘러내려 백호 위쪽 이마로 돌아갔는데,머리에 쓴 보관은 원통형이다.그 보관 꼭대기에다 네모꼴 덮개돌(보개)두쪽을 이중으로 올리고 네 귀퉁이에 구리방울을 달아맸다. 보살입상이 입은 옷 천의는 몇가닥의 옷주름을 얇게 조각하는 형식으로 표현했다.옷 바깥으로 드러내 보인 손은 몸에 비해 너무 크다.두 손을 가슴높이까지 들어올렸다.오른손은 위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금속으로 만든 연꽃을 잡았다.왼손은 아래로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댔다.그러니까 손가짐은 아미타불의 이른바 중품중생인인 것이다.좌대는 따로 없고 자연석을 활용했다. 이 보살상은 은진미륵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사기나 인상으로 보면 미륵보살이라기 보다는 관세음보살이다.원통형보관에는 본래 90㎝(3자)가량의 화불인 금동불상이 달려있었다고 한다.보관의 화불은 이 보살상이 관세음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보관의 화불은 구한말에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그런데 무슨 연유로 미륵보살이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 권륜이 영조19년(서기17 34년)에 쓴 「관촉사사적」에는 이 보살상을 세운 재미나는 사연을 적어 놓았다.보살상은 37년에 걸쳐 만들었으나 상체와 하체를 따로 만들었기 때문에 결합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이때에 한동자가 흙장난을 통해 상하체를 합뜨려 세우는 방법을 일깨워주었다.그대로 해서 거대한 보살상을 세웠는데,동자는 문수보살의 화신이었다는 이야기다.
  • “고속철도 경주통과 반대”/문화재위 성명/“1천년유적 파괴우려”

    문화재위원회(위원장 임창순)는 23일 하오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집에서 긴급 회의를 열고 고속철도 경주 도심통과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문화재위원들은 이날 『1천년의 고도 경주는 왕궁·사찰·고분등 많은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면서 『일제가 중앙선 철도와 동해남부선을 통과시켜 신라의 대표적 유적들을 파괴했듯이 우리 정부가 또다시 민족문화유산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위원들은 『고속철도로 도시를 갈라놓고 고도의 역사적 환경을 파괴한다면 우리는 후손들로부터 지탄받게 될 것』이라면서 건설교통부에 대해 ▲도심통과안을 즉각 철회하고 ▲경주의 효율적 보존을 위해 외곽지대에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고 고도보존법등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 능산리 사리감/창왕의 누이가 바친듯

    ◎부왕 명복 빌어… 백제 절 축조연대 처음 밝혀져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지난 93년말 금동용봉봉래산향로라는 세기적 보물이 나온데 이어 백제시대의 절 가운데 처음으로 축조연대를 밝혀주는 화강석 사리감이 발견돼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리감은 능산리지역을 발굴중인 국립 부여박물관에 의해 출토됐다.사리감은 탑의 가운데 기둥을 받쳤던 주춧돌을 깊이 74㎝,세로와 가로 각각 50㎝씩을 파서 만들었고 감실 양쪽에는 「백제창왕십삼계태세재」와 「정해매형공주공양사리」라는 글씨 20자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새겨져 있다.이 글씨는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매지권에 보이는 글씨체와 흡사해 더욱 주목을 끌었다. 이 새김글씨는 능산리에 있던 절을 누가 언제 지어 사리를 봉안했는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위덕왕으로도 불린 창왕 재위13년 정해년에 형이라는 이름의 공주가 사리를 바친 것으로 돼있다.여기 「형」은 오늘날의 「형」의 고어가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 역사연표에는 창왕 13년은 서기 566년이고 정해년은 서기 567년이어서 1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창왕은 신라군과 오늘날 충북 옥천땅인 관성에서 싸우다 전사한 성왕의 아들.그래서 이번에 발견된 절터는 창왕의 누이가 비명에 간 부왕(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원찰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 새김글씨가 들어간 탑의 가운데 기둥 주춧돌은 1m깊이의 흙 아래서 기울어진 상태로 출토되었다.이같은 파괴를 겪는 과정에서 사리를 담았던 사리구는 없어져 찾지 못했다.그러나 탑 가운데 기둥에 사리감을 별도로 만든 경우는 동아시아 어느지역에서도 지금까지 밝혀진 적이 없기 때문에 함께 출토된 다른 5백95점의 유물과 함께 백제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됐다.
  • 개발에 매몰되는 연해주 발해유적/김학준(일요일 아침에)

    러시아의 연해주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발해 유적 가운데 특히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의 유적이 개발사업 때문에 매몰되고 있다.이 사실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러시아가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로 돌아서면서 개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2∼3년 전부터 발해 유적도 희생된 것인데,이제는 그 정도가 심해져,발해를 민족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고구려가 망한 뒤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어울려 오늘날의 만주와 연해주 및 북한 일부 지역일대에 걸쳐 세웠던 발해는 통일신라와 함께 우리 역사에 남북조시대를 열었다.한때는 국세가 크게 떨쳐 해동성국이란 명성을 얻기도 했지만 926년에 거란족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발해의 영역이 연해주에까지 미쳤다는 역사적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67년전인 1928년이었다.연해주의 주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한 언론인이며 국사학자인 장도빈이 블라디보스토크 근교의 작은 도시 우스리스크에서 발해의 성터를 발견함으로써 비로소 그 사실이 학계의 일각에알려진 것이다. 그뒤 1950년대 후반에 소련의 역사학자들이 연해주역사 전반에 걸쳐 연구하다가 발해의 유적들을 찾아냄으로써 발해의 영역이 연해주에까지 미쳤다는 사실이 소련 학계에서도 공인되기에 이르렀다.발해역사의 연구에 있어서 남한을 훨씬 앞섰던 북한도 1990년대초부터 연해주의 발해유적들을 확인했다. 연해주의,특히 블라디보스토크일대의 발해유적은 대체로 다음 세곳에서 발견된다. 첫째가 파르치산스크구역이다.이 구역의 발해유적으로 특히 중요한 것은 니콜라예프카성터다.이 성터는 현재 화석화된 채 남아 있는데,성이 사다리꼴이었음을 알 수 있다.성 밖에 해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 둘째가 우스리스크시의 몇몇 성터다.문헌으로나 현지 유적으로나 확실한 것은 서성과 남성으로,서로 대개 1㎞정도 떨어져 있다. 셋째가 우스리스크시 근교의 크라스노야로프성터다.라즈돌나야(일명 수이푼)이라는 이름의 강을 끼고 있는 천연의 요새와 같은 성의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이 세곳을 모두 살펴보았다.이 가운데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곳은 두번째의 경우다.서성자리는 집이 가득 들어차 있고 성벽은 거의 모두 허물어져 있으며,남성자리도 개발이 거의 끝난 상태였다.발해 전공 학자들은 이곳이 발해 15부의 하나였던 솔빈부 자리였다고 단정하면서 매몰을 안타까워했다. 크라스노야로프성터는 그래도 괜찮게 보존되어 있었다.토성이 허물어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그러나 앞으로 2∼3년 지나면 개발의 불도저는 이곳을 훼손하게 될 것 같다고 러시아의 역사학자들도 걱정을 했다.이것은 니콜라예프카성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당장 닥치게 될 개발과 매몰의 대상지역인 남성 부근의 절터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남성 부근의 공원에 2개의 큰 주춧돌이 남아 있는데,학자들은 이 주춧돌에 미루어 이곳에 발해의 큰 절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유적만큼은 꼭 보존돼야 한다고 호소하지만 우스리스크시청 당국은 개발사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잊혀졌던,아니 잃어버렸던 민족사의 일부를 되찾으려는 우리에게 연해주의 발해유적은 소중하다.그러나 개발에 눈을 뜬연해주 사람들의 눈앞에는 발해유적이 아무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 고령 고려 석조보살좌상(한국인의 얼굴:48)

    ◎꾸밈없고 순박한 농부의 모습/코는 길고 크게·입술은 펑퍼짐하게 표현 고려의 석조불·보살상은 미술적 기교가 거의 무시되었다.얼굴의 윤곽은 그런대로 원만했으나 고상스러운 신라의 불·보살상과는 다른 일면을 지녔다.그래서 섬세하고 세련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이는 신라의 왕도 경주 중심의 귀족(진골)체제에 항거한 고려 건국의 뿌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런 보살상의 하나가 경북 고령군 개진면 개포동의 석조보살좌상이다.보살상은 앉은 키가 1.5m인데 국보나 보물 같은 영예로운 칭호는 아직 받아내지 못했다.그저 소박한 얼굴을 한 보살상은 언제부터인가 마을 밭둑 아래 자리잡고 앉아 있다.밭둑이 본래의 자리인지는 몰라도 보살얼굴은 옛날 이 인동에서 농사를 짓고 살아온 사람들을 닮았을 것이다.그토록 꾸미고 가꾼 구석을 찾아볼 수 없다. 보살은 화불이 들어간 보관을 써서 관세음보살이다.보관 양쪽 관대에 걸친 드리개와 머리칼이 흘러내려오다 어깨 못미처에서 멈추었다.드리개에 가린 듯 살짝 드러낸 귀가 크다.본디는 박혀 있었을 백호가 빠져나가 이마가 한결 넓어 보인다.그 아래로 눈썹을 깊고 길게 파면서 눈은 실눈을 한 형상으로 다듬었다.코는 길고 크게 자리잡았으나 높지 않다.입술 역시 도드라지지 않은데,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보살을 조각한 돌이 널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마와 볼·턱은 얼마간 볼륨은 살렸다.이 보살상을 릴리프형식의 부조로 만들고자 한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그리고 양쪽 팔과 손은 몸뚱이에 비해 비록 조화롭지 않지만 부조를 시도했다.왼손에 잡은 연꽃줄기가 보살의 귀 높이만큼 올라왔다.이 연꽃은 보살 머리 뒤의 빛을 표현한 두광과 함께 돋을새김수법을 썼다.보살이 걸친 옷,천의도 어깨부분만큼은 돋을새김이다. 새김솜씨를 눈여겨보면 아주 흥미로운 데가 있다.밑으로 내려오면서 생략기법을 구사한 가운데 돋을새김에서 벗어나 오목새김으로 표현수법을 바꾸었다는 점이다.책상다리 앉음새의 결가부좌를 하느라 생긴 옷주름을 모두 간략하게 오목새김한 것이다.그리고 결가부좌하면 필연적으로 무릎 위에 올려놓아야 할 발은 발바닥만을기호처럼 표현했다.이렇듯 간략한 표현이나 과감한 생략법은 뒷날 고려의 석조불·보살상에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이 보살을 만든 시기는 뚜렷하다.보살상 뒤쪽에 「옹희 2년 을유 6월27일」이라는 새김글씨가 나오니까 서기9 85년에 만든 보살좌상이다.고려 개국의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대이기도 하다.고려조정은 바로 이 해에 개인이 집을 바쳐서 절을 짓는 일을 금지시켰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온다.이 보살상 새김글씨에 시주자 이름이 빠진 까닭도 개인의 불사를 불허한 데 연유할 것이다. 고령은 후삼국기를 통해 후백제와 마주한 접경지대여서 고려 태조는 개국 초기부터 요충지로 인식했다.그래서 고령땅의 보살상은 역사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이웅렬 부회장에 내년 경영권 승계/이동찬 코오롱회장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은 늦어도 내년에는 아들인 이웅렬 그룹 부회장에게 공식적으로 경영권을 넘겨줄 것이라고 18일 밝혔다.이회장은 이 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창립 50주년 기념 대강연회에 참석,이같이 말했다.
  • “작가 자신이 주인공” 소설 2편 출간

    ◎호영송 「흐름속의 집」·주인석 「검은 상처의 블루스」/흐름속의 집­험난한 세파속 예술의 역할 자문/검은 상처의 블루스­작가 눈에 비친 90년대의 풍속도 작가들이 그린 자화상은 어떨까. 작가의 눈으로 세상을 비춰보는 두권의 작품집이 잇따라 출간됐다.호영송씨(53)의 「흐름속의 집」과 주인석씨(32)의 「검은 상처의 블루스」가 그것. 작가가 직접 등장,자신의 관점에서 얘기를 엮어가는 소설은 적지 않다.작가는 작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인물인데다 소설의 본질적 목표인 사람됨과 아름다움을 당연히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소설이란,글쓰기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소설들을 낳은 현대의 문화흐름이 그 물음의 주체인 작가를 자연스럽게 작품속에 끌어들였다.이처럼 작가가 주인공인 소설이 낯설지 않아진 요즘이지만 최근 발간된 두권의 책은 「작가소설」의 풍경을 다채롭게 한다는 점에서 새롭게 읽힌다. 호씨의 두번째 작품집 「흐름속의 집」에 등장하는 작가들이 던지는 질문은 사뭇 존재론적이다.작가의 첫 작품집 「파하의 안개」(78년)이후17년만에 나온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 험난한 세파에 예술이 과연 무엇을 하겠는가고 무기력하게 묻는다.이미 고전이 된 인문적 열망을 차마 버릴 수 없는 이들은 어찌 보면 순진하기까지 하다. 신라왕실을 배경으로 한 「시인 왕거인」에서 왕거인은 「나름으로 가야 할 그윽한 길」 때문에 부귀와 권세를 보장하는 여왕의 유혹을 뿌리치다 고문끝에 쫓겨난다.「소설가 윤지강의 모험」은 말라붙어버린 글의 샘을 보듬고 고민하는 고갈된 소설가를 그리고 있다. 최근작 「그들의 방식」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표나게 담고 있다.민오영시인은 고된 삶에 아내를 잃고 자식마저 남의 손에 맡긴 뒤 한줄의 시도 못쓴 채 방황한다.치정에 살인범혐의를 뒤집어쓴 그를 돕는 이는 교세를 일으킬 방책에 골몰하는 장목사뿐.시인은 믿음의 말씀으로 감동의 세계를 추구하는 목사에게 언어에 붙박힌 자의 연대감을 느끼지만 「온 존재로 몸부림쳐도 뛰어넘기 어려운 언어의 심연」을 여전히 느낀다. 한편 호씨보다 20년 아래 연배인 주씨의 소설에 나오는 소설가는 훨씬 사회지향적이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부제는 이 작품이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쓴 30년대 박태원,70년대 최인훈에 이어 작가의 눈에 비친 90년대 풍속도를 그리고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90년대에 30대의 나이로 소설을 쓰는 작가는 시대의 생채기를 앓고 있다.그는 자신을 기지촌마을인 경기도 파주에서 낳아줬다는 이유로 죽은 지 8년이나 된 아버지를 잊으려고 한때 같이 운동을 하다가 이제는 잘 팔리는 처세론을 펴내는 친구의 결혼식장을 씁쓸함만 씹으며 빠져나온다.폭력적인 권력은 문학에까지 미쳐 한 대학의 마성기교수는 「즐겁게 살아」로 에로티시즘논쟁을 일으키다 구속되기도 한다.시대에 좌절한 이 젊은이는 「소설이란 좌절한 의식이 세계에 대해 복수하는 것」이라는 한 선배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소설이 실패한 자의 복수건 언어의 심연이 벌린 입이건 이 두편을 통해 드러난 우리시대 소설가의 날씨는 아직도 「흐림」을 면치 못하고 있다.
  • 직지사 고려때 규모의 90% 복원

    ◎30년 중창불사 마무리… 19일 기념 법회/2만6천평에 전각·전우 등 65채 신개축 신라 불교의 요람으로 1천6백년의 역사를 가진 불교 조계종 제8 교구본사 직지사(주지 녹원 스님)가 30년에 걸친 대중창 불사를 마무리짓고 새 모습을 드러냈다. 경북 김천시 황악산 중턱에 자리잡은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인 418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신라의 자장,고려의 능려,조선의 사명대사등이 머무르면서 한국불교의 지도자적인 위치를 유지해왔다. 고려시대 절정기를 맞은 직지사는 선조 29년인 1596년 임진왜란때 43동의 건물중 전각의 대부분이 소실된뒤 1602년부터 70년에 걸쳐 절을 중건했다. 1681년의 사적기에 따르면 당시의 규모가 8전,3각,12당,3장,4문에 정실만 3백52칸이며 부속암자는 26개가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1805년 사세가 기울기 시작 쇄락을 거듭해 경내는 줄어들고 건물은 허물어져 건물 4∼5개의 작은 사찰이 되었다. 지난 58년 녹원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직지사 대중창불사의 계획을 세우고 지난 30년간 대지 1만평,전답 1만2천6백평,임야 3천7백평을 매입하고 1백50억원의 예산을 들여 60여개의 건물을 지어 「동국제1가람」이라는 옛모습을 되찾았다. 지난 65년부터 시작된 중창불사는 국제불교회관으로 사용될 만덕전등 전각과 전우 34동을 신축하고 31동을 개축해서 모두 65동의 건물이 들어섰다. 직지사 관계자들은 『사적비 기록을 토대로 30년간 진행된 중창 불사로 고려시대의 웅장한 사찰 모습의 90%를 복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직지사는 오는 10월 19일 만덕전 앞 마당에서 30년의 중창 불사를 마무리짓는 법회를 봉행한다. 이날 법회에는 송월주 총무원장과 중국,일본,스리랑카에서 불교 지도자들이 참석한다. 중창불사의 경축행사는 사진전이 19일까지 열리며 15일부터 19일까지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만등탑 불사가 행해진다. 등탑은 황룡사 9층탑의 모형으로 만들어지며 1만1천개의 등을 장식하는 행사로 신도들의 신청을 받고있다. 15일 하오 3시 잔디광장에서는 정수라,박영미등 인기가수가 참가하는 「산사의 환경음악회」가 열려 환경보호창립대회를겸한다. 17일 하오 1시에는 직지사및 교구말사가 보유한 중요문화재를 전시하는 성보 박물관이 개관되며 하오 2시 설법전에서는 신라 불교를 조망하는 세미나도 열린다.
  • 강릉 신복사 절터 고려 석불좌상(한국인의 얼굴:47)

    ◎실눈에 합죽 웃음… “익살꾼 보살님”/투박한 얼굴… 친근한 이웃 보는듯/머리엔 「보관」 쓰고 이마엔 백호 자국만 남아 고려의 불교는 전대의 신라에 못지않게 초기부터 융성할 조짐을 보였다.도읍지 개경에는 법왕사등의 10대사찰이 창건되었다.그리고 지방에서는 신도들의 원력으로 도처에서 불사가 이루어졌다.불교국가를 연상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려불교는 신라불교와 좀 다른 일면이 있다.왕경권역에 집중되었던 신라불교와는 대조적으로 전국에 널리 확산되었던 것이다.이는 왕실불교로 출발한 고대불교의 점진적 대중화와 선종의 도량 구선문이 새롭게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또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뚜렷이 정체를 드러낸 호족세력들도 불교의 지방화를 부추겼다. 그러한 사회배경을 엎고 일어선 고려불교는 신앙대상 조형물 불상에도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절터에서 마주친 석불좌상(보물 84호)은 바로 10세기쯤 고려 초기의 보살상이다.그리 가다듬지 않은 얼굴에 가득 담은 웃음으로 해서 보는사람 마음이 편해진다.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대개의 불·보살상들처럼 실눈을 했으나 웃음은 사뭇 다르다.보는 쪽에서 웃음을 찾아내기에 앞서 보살이 먼저 활짝 웃고있다. 웃는 얼굴은 대중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상호를 했다.웃음이나 얼굴이 전혀 정제되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의 이 보살은 중생들 틈에 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웃고 있는 입술이 약간은 마모되어 합죽한 웃음을 웃는데 투박스럽고 둔중한 옷(천의)자락 이음새 사이로 배꼽이 나왔다.그러나 아랑곳 할 일이 아니라는 듯 반무릎을 꿇어 공양하는 자세로 여전히 웃는다.갖출만한 것은 다 갖추었다.이마의 백호는 빠져 달아났으나 자리가 남아있고 목주름 삼도가 뚜렷했다. 보살은 머리에 긴 원통형 보관을 썼다.그런데 어울리지 않게 보관 위에 삿갓 모양의 석물이 올라 앉았다.웬 삿갓인가 했더니 뒷날 누군가가 나딩굴어 다니는 석등의 팔각 지붕돌(옥개석)이 아까워 보여 올려놓은 것이라고 했다.옥상옥격의 지붕돌을 시멘트로 붙여놓아 지금은 요지부동이다.보살은 두 손을아래 위로 모아 어떤 물건을 거머쥔 손가짐을 했으나 그 지물은 빠져나가 오간데가 없다. 신복사는 신라 말기인 서기850년(문성왕 12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창건설화도 있다.한 처녀가 햇빛 어린 우물을 떠 마신 뒤 임신이 되어 사내 아이를 낳았다.부모의 성화로 얼음판에 버렸으나 새들이 날아와 품고 주위에 서기가 어려 다시 데려다 키웠다.이 아이가 커서 출가하여 범이라는 고승이 되어 돌아와 고향에 절을 지었다.그 절이 신복사다. 절 이름은 오늘날 사용하는 신복이 아닌 신복,또는 심복으로 오랫동안 표기되었다.그러다 1936년 절터에서 「신복」이라는 새김글씨가 들어간 기왓장이 출토되어 절 이름을 신복사로 굳혔다.절터에는 고려시대 삼층석탑(보물 37호)이 옛 모습대로 남아 석불좌상(보살상)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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