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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콩강개발에 한국참여 요청/인접6국 장·차관­전경련 국제투자포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아시아개발은행(ADB)이 공동으로 주최한 「메콩강 유역개발을 위한 서울 국제투자포럼」이 14일 서울 호텔신라에서 열렸다.한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 열린 이날 포럼에는 최종현 전경련회장을 비롯,이봉서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치 첸토 캄보디아 경제기획부장관 등 인도차이나 6개국의 장·차관과 3백여명의 국내 기업인이 참석했다.포럼에서 인도차이나 6개국 대표들은 메콩강유역개발이 각국의 경제발전은 물론 지역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한국의 참여와 지원을 당부했다. 최종현 회장은 환영사에서 『ADB의 후원아래 메콩강 유역 6개국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개발사업에 대해 한국 정·재계는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풍부한 자원과 우수한 노동력을 갖고 있는 이들 국가와 30여년의 경제개발 경험을 갖고 있는 한국이 힘을 합치면 한국과 메콩강 유역 여러나라의 경제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봉서 ADB 부총재는 『도로건설,통신,에너지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교역,투자 등 경제전반에 걸친 메콩강유역 개발계획을 추진하는데 1백50억달러의 자본이 소요되며 사회간접시설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국가들의 상호협력과 함께 아시아 각국의 적극적인 참여는 물론 국제금융기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자민련 공천자 2백8명 명단/4·11총선 야당은 누가 뛰나

    ▷서울◁ ◇종로=김을동(50·여·전서울시의원) ◇중구=이수만(48·천보교회목사) ◇용산=김재영(62·전의원) ◇성동갑=배길랑(54·전의원) ◇성동을=유명곤(43·유경농산회장) ◇광진갑=박종철(52·서대양문화개발원대표) ◇광진을=김영목(49·영화배우) ◇동대문갑=손윤준(58·태양물산대표) ◇동대문을=권승욱(35·벤처개발산업대표) ◇중랑갑=미확정 ◇중랑을=미확정 ◇성북갑=채수호(57·한민족통일사상연구회장) ◇성북을=최갑수(41·정당인) ◇강북갑=김규원(68·전의원) ◇강북을=김태환(49·변호사) ◇도봉갑=신오철(58·전의원) ◇도봉을=장일(38·수레바퀴청년회장) ◇노원갑=박병일(62·전의원) ◇노원을=김용채(64·전의원) ◇서대문갑=미확정 ◇서대문을=김병호(48·한성학원이사장) ◇은평갑=임인채(68·전의원) ◇은평을=노양학(54·주간은평신문사회장) ◇마포갑=고순례(32·변호사) ◇마포을=장덕환(57·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 ◇양천갑=박수복(60·동제정신문화연구소대표) ◇양천을=탁형춘(53·전서울시의원) ◇강서갑=최덕수(51·강서뉴스신문사대표) ◇강서을=이경표(52·정당인) ◇구로갑=정순주(54·민주정치연구소장) ◇구로을=이재실(51·한국권투위원회사무총장) ◇금천구=유지준(42·전서울JC회장) ◇영등포갑=구창림(55·당대변인) ◇영등포을=유중현(52·현대경제문제연구소장) ◇동작갑=차은수(55·백광화장품대표) ◇동작을=김우중(53·구미무역대표) ◇관악갑=이영춘(55·전서울시의원) ◇관악을=김재호(44·세무사) ◇서초갑=김창호(40·회계사) ◇서초을=미확정 ◇강남갑=김명년(64·전서울시부시장) ◇강남을=이대섭(57·전의원) ◇송파갑=조순환(62·현역의원) ◇송파을=정남(55·전의원) ◇송파병=조중형(49·전민자당총무국장) ◇강동갑=박태희(50·시사타임즈발행인) ◇강동을=허경구(54·전의원). ▷부산◁ ◇중·동구=김준호(35·나남정치컨설팅대표) ◇서구=백영주(57·동화약국대표) ◇영도구=미확정 ◇진갑=강경식(56·전의원) ◇진을=한기승(47·한국JC연수원주임교수) ◇동래갑=박종대(60·대림가구사대표) ◇동래을=김상훈(44·금정여상 이사) ◇남구갑=왕세창(47·전부산여전교수) ◇남구을=김호길(52·부산외국어대교수) ◇북·강서갑=김해규(57·한국예체능신문사회장) ◇북·강서을=윤무헌(52·가락위탁영농회사 대표) ◇해운대·기장갑=미확정 ◇해운대·기장을=미확정 ◇사하갑=강신수(55·금하냉동대표) ◇사하을=강호영(51·지구사대표) ◇금정갑=채선수(39·지구환경산업대표) ◇금정을=최국주(53·협전사부사장) ◇연제구=김헌근(61·천일식품사대표) ◇수영구=미확정 ◇사상갑=이상덕(46·한성화학대표) ◇사상을=최윤기(43·사상구발전연구소장). ▷대구◁ ◇중구=박준규(70·전국회의장) ◇동구갑=김복동(63·국회의원)◇동구을=윤상웅(48·삼우실업대표) ◇서구갑=김풍삼(55·한국교총사무차장) ◇서구을=최운지(68·전의원) ◇남구=이정무(55·전의원) ◇북구갑=이의익(56·전대구시장) ◇북구을=안택수(51·전한국기자협회회장) ◇수성갑=박철언(54·전의원) ◇수성을=박구일(60·현역의원) ◇달서갑=박종근(59·전경제기획원예산심의관) ◇달서을=최재욱(56·현역의원) ◇달성군=김정훈(56·장애인신문발행인). ▷인천◁ ◇중·동구·옹진군=박종국(49·향토물산전무) ◇남구갑=정의성(52·인천사회발전연구소장) ◇남구을=박창근(46·제창한약방원장) ◇연수구=명화섭(69·전의원) ◇남동갑=이상만(36·정당인) ◇남동을=김택수(57·전3군사령부 부사령관) ◇부평갑=진영광(41·인천지방변호사회심사위원장) ◇부평을=김유동(42·전프로야구선수) ◇계양·강화갑=조홍규(53·씨케이무역대표) ◇계양·강화을=정창화(63·전가평부군수) ◇서구=이훈국(50·서구태권도협회장). ▷광주◁ ◇동구=고병렬(46·백조금속대표) ◇서구=강성상(37·한국결혼상담소 광주·전남지부장) ◇남구=김이곤(57·전대우엔지니어링 상임고문) ◇북구갑=김홍주(49·태일건설대표) ◇북구을=김천국(39·청송물산대표) ◇광산구=정원섭(50·하방농장대표). ▷대전◁ ◇동구갑=김칠환(45·세븐하이테크 대표) ◇동구을=이양희(52·전정무차관) ◇중구=강창희(50·현역의원) ◇서구갑=이원범(57·전의원) ◇서구을=이재선(40·전대전JC연합회장) ◇유성구=조영재(54·한국사랑회중앙회장) ◇대덕구=이인구(64·전의원). ▷경기◁ ◇수원 장안구=이병희(70·전의원) ◇수원 권선구=이일구(52·헌정민권회 수원지부장) ◇수원 팔달구=김인규(55·신라건설대표) ◇성남 수정구=이대엽(64·전의원) ◇성남 중원구=강희규(56·에스코아쇼핑센터 대표) ◇성남 분당구=권헌성(38·전의원) ◇의정부=김문원(55·전의원) ◇안양 만안구=권수창(53·전경기도의원) ◇안양 동안갑=고재춘(53·전경기도의원) ◇안양 동안을=이석원(39·정당인) ◇부천 원미갑=김정익(48·부천시약사회장) ◇부천 원미을=김길홍(53·국제물산대표) ◇부천 소사구=박박식(58·현역의원) ◇부천 오정구=김정웅(54·부천시 배드민턴연합회장) ◇광명갑=김재주(58·광명관광대표) ◇광명을=차종태(55·진성학원 재단이사장) ◇평택갑=조성진(50·한국JC교수) ◇평택을=허남훈(59·전환경처장관) ◇동두천·양주=김국환(59·정당인) ◇안산갑=김동현(52·변호사) ◇안산을=윤문원(43·21세기 안산발전연구소장) ◇고양갑=황인형(55·정당인) ◇고양을=김용수(38·전민주당부대변인) ◇과천·의왕=박제상(60·현역의원) ◇구리시=박한영(50·임계무역 대표) ◇남양주시=조병봉(66·전의원) ◇오산·화성=박신원(51·전경기도의원) ◇시흥시=장천수(54·원진관광회장) ◇군포=심양섭(36·당부대변인) ◇하남·광주=양인석(61·교산학원이사장) ◇여주군=허정남(54·여주 컨트리클럽 대표) ◇파주군=이재창(60·전환경처장관) ◇연천·포천=미확정 ◇가평·양평=홍성표(60·전의원) ◇이천군=유종렬(55·전경희대교수) ◇용인군=김학규(49·전경기도의원) ◇안성군=이장재(58·천우기업대표) ◇김포군=이재선(49·한국자유총연맹 김포지부장) ▷강원◁ ◇춘천갑=미확정 ◇춘천을=유종수(54·현역의원) ◇원주갑=한상철(57·전원주시장) ◇원주을=박우순(46·상지학원 이사) ◇강릉갑=황학수(48·현대코아유통대표) ◇강릉을=김문기(64·전의원) ◇동해시=지일웅(55·한국통신진흥고문) ◇태백·정선군=김좌일(55·정선군지역발전연구회장) ◇속초·고성·양양·인제군=한병기(63·전의원) ◇삼척시=김정남(56·현역의원) ◇홍천·횡성군=조일현(41·현역의원) ◇영월·평창군=이득헌(50·한국노동교육원 사무총장)◇철원·화천·양구군=염보현(64·전서울시장) ▷충북◁ ◇청주 상당=구천서(46·전의원) ◇청주 흥덕=오용운(69·전의원) ◇충주시=김선길(61·전상공부차관) ◇제천·단양=안영기(60·전의원) ◇청원군=오효진(53·전SBS편성이사) ◇보은·옥천·영동군=어준선(59·안국약품대표이사) ◇괴산군=김동관(60·전증권감독원부원장) ◇진천·음성군=정우택(43·전경제기획원 법무관). ▷충남◁ ◇천안갑=정일영(52·전의원) ◇천안을=함석재(57·현역의원) ◇공주시=정석모(67·전의원) ◇보령시=김용환(64·현역의원) ◇아산시=이상만(57·전한국공정거래협회장) ◇서산·태안군=변웅전(57·전MBC아나운서실장) ◇금산·논산군=김범명(53·현역의원) ◇연기군=김고성(55·전충남도의회부의장) ◇부여군=김종필(70·자민련총재) ◇서천군=이긍긍(52·현역의원) ◇청양·홍성군=조부영(60·현역의원) ◇예산군=조종석(64·전건설공제조합이사장)◇당진군=김현욱(57·전의원). ▷전북◁ ◇전주 덕진구=미확정 ◇전주 완산구=미확정 ◇군산갑=미확정 ◇군산을=미확정 ◇익산갑=김용관(54·정당인) ◇익산을=미확정 ◇정읍시=정태진(67·농촌문제연구소장) ◇남원시=미확정 ◇김제시=오남성(36·전한일은행직장주택조합장) ◇완주군=미확정 ◇진안·무주·장수군=미확정 ◇임실·순창군=이찬우(29·전북청소년상담실연합회장) ◇고창군=미확정 ◇부안군=미확정. ▷전남◁ ◇목포·신안갑=이정수(52·전국웅변연합회 전남본부장) ◇목포·신안을=김재철(53·상진건설대표) ◇여수시=미확정 ◇순천갑=미확정 ◇순천을=조동수(56·새마을전남도회장) ◇나주시=미확정 ◇여천시·여천군=김제봉(61·홍천산업대표) ◇광양시=미확정 ◇담양·장성군=공창덕(55·전전남도의원) ◇곡성·구례군=미확정 ◇고흥군=미확정 ◇보성·화순군=미확정 ◇장흥·영암=미확정 ◇강진·완도군=미확정 ◇해남·진도군=곽봉근(51·정당인) ◇무안군=윤무중(54·무안관광대표) ◇함평·영광군=미확정. ▷경북◁ ◇포항 북구=최종태(39·뉴스경북발행인)◇포항 남구·울릉군=장준익(61·전의원) ◇경주갑=정종복(46·변호사) ◇경주을=이상두(56·현역의원) ◇김천시=문종철(55·전수원대교수) ◇안동갑=미확정 ◇안동을=김시명(48·상연유통 대표이사) ◇구미갑=박재홍(55·전의원) ◇구미을=최종두(60·도개학원이사장) ◇영주시=전우창(47·영주시발전연구소장) ◇영천시=최상용(58·전의원) ◇상주시=이재훈(54·변호사) ◇문경·예천=신국환(57·전공업진흥청장) ◇경산·청도군=김종학(55·전국회의장비서관) ◇고령·성주군=송인식(53·전세계일보편집국장) ◇군위·칠곡군=도갑현(50·국제종합기계본부장) ◇의성군=김화남(53·전경찰청장) ◇청송·영덕군=김성태(53·한국가공지대표) ◇영양·봉화·울진군=이학원(62·현역의원). ▷경남◁ ◇창원갑=미확정 ◇창원을=김영성(46·창원시정연구소장) ◇울산 중=미확정 ◇울산 남갑=이복(55·무료법률상담소장) ◇울산 남을=미확정 ◇울산 동구=미확정 ◇울산 울주=이광우(39·향토발전연구소장) ◇마산 합포=박석동(47·부산여대교수) ◇마산 회원=김영길(41·전MBC기자) ◇진주갑=미확정 ◇진주을=미확정 ◇진해시=미확정 ◇통영시·고성군=박청정(53·세계해양연구센터대표) ◇사천시=미확정 ◇김해시=홍의표(40·농촌노동문제연구소장) ◇밀양시=미확정 ◇거제시=미확정 ◇의령·함안군=미확정 ◇창녕군=신윤태(60·창녕군체육회이사) ◇양산군=미확정 ◇남해·하동군=김기호(69·성진그룹회장) ◇함양·산청군=하상령(50·하상실업대표) ◇거창·합천=김용균(54·변호사) ▷제주◁ ◇제주시=송재훈(38·대한화재 제주영업팀장) ◇북제주군=미확정 ◇서귀포시·남제주군=미확정.
  • 불교방송 사장 조해형씨

    불교방송 이사회는 12일 서울 신라호텔 에머랄드룸에서 제21차 이사회를 열고 조해형 한국마케팅연구원회장(62)을 사장으로 선임했다. 조신임사장은 서울출신으로 동양통신 이사,쌍용 대표이사,경제기획원 정책자문위원,나라기획 회장,한국 PR협회 회장,한국마케팅연구원 회장 등을 역임한 전문 경영인이다.
  • 1백58조원의 1백58조 배로도 안될…(박갑천 칼럼)

    일본에는 「땅 끌어당기기」신화가 있다.일본의 땅뺏기버릇은 그런 신화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한다.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신화다. 옛날 지금의 시마네켄(도근현)동 쪽 이즈모(출운)라는 나라에 야쓰카미즈오미쓰누노미코토(팔속수신진야명)라는 신이 있었다.나라를 둘러보고 조붓하다 생각하면서 늘릴 마음을 먹는다.바다저쪽은 신라땅.거기 길게 뻗쳐있는 곶에 밧줄을 걸어 잡아당긴 곳이 지금의 히노미사키(일어기),때려박은 말뚝이 산베산(삼병산),밧줄이 오야시로마치(대사정) 서쪽 해안으로 되었다.같은 방법으로 이웃나라(고지,좌기,농도)땅도 끌어당긴다.그렇게 면내어 넓힌 땅이 지금의 시마네반도라 한다. 신화에는 그 겨레의 마음이 어린다.섬나라여서 남의 땅에 개염부리는 걸까.그 괴상한 이름의 신은 신라땅부터 당겨갔다.신화의 발상지가 지금의 시마네켄이라는 점이 또 흥미롭다.오늘날의 땅뺏기라 할수있는 독도영유권 주장도 이른바 「시마네켄고시」라는 것으로써 하고있지 않은가.시마네켄은 예나 이제나 땅뺏기 전초기지로구나 싶어진다.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조선총독부 통계연보」등 일본쪽 자료를 바탕으로해서 만든 논문이 나왔다.「식민지배기간 일본정부 수탈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그에 의할때 인력수탈·물자수탈·자금수탈…등을 합치면 요새 우리돈으로 1백58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다.하지만 결코 돈으로 갚아낼수 없는 수탈도 있다.그것은 35년 강점기간동안 입힌 마음의 생채기.온겨레가 기죽어 오금을 못편 세월이었다.그들의 땅뺏기에 맞서 싸우다 죽은 사람은 얼마인가.그 고결한 죽음을 돈으로 장사웃덮기할 수 있겠는가.멀쩡한 젊은이들 끌어다가 총알받이 만들었을때 흘린 유족의 눈물을 돈으로 갈음해낼수 있겠는가.이른바 「정신대」로 끌려가 한살이를 망친 여성의 한을 돈으로 탕감해 낸다고 할수도 없다.1백58조원의 1백58조배로도 보상해낼수 없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돈이 앞서가면 모든 길이 열린다』(셰익스피어 「윈저궁의 바람둥이 아낙네들」)고 했다.『황금이 말문을 열때 혀는 힘을 잃는다』는 말과 맥이 같다.그러나 돈으로만 따지려들때 『입에 이길수는 있을지 몰라도 마음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장자」잡편:천하).할퀴여찢긴 마음이 어찌 돈으로 아물겠는가. 그걸 아물리는 길은 참마음의 뉘우침뿐이다.하건만 저들은 어떤가.지금 오히려 독도에 밧줄걸어 영차 영차하려 하지않는가.
  • 고대 임희섭 교수가 본 「2천20년 사회상」

    ◎남북인구 7천만… GNP 4만달러로/2천년이후 남녀성비 급격히 붕괴/외국신부 “수입”·부부역할 뒤바뀔듯 남북한 인구 7천9백52만2천명,1인당 국민소득(GNP) 4만달러,국민의 90%가 중산층.고려대 사회학과 임희섭 교수가 내다본 2020년의 우리 사회지표이다. 삼성생명이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설립을 기념해 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연 심포지엄에서 임교수는 각종 사회문화 지표의 변동 추세와 오늘날 선진국의 현실 등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상을 이같이 제시했다. 2020년 우리나라는 세계 인구의 0.98%를 차지,20위권의 인구 대국이 된다.65세 이상의 노령 인구가 10%를 웃돈다.때문에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고 범죄는 줄며 정치·문화의 보수화 현상이 뚜렷해진다. 결혼적령기에 이른 남녀의 비율은 여자 1백명에 남자 1백19.4명(2000년),1백28.6명(2010년) 등으로 급격히 조화를 잃는다.많은 신랑들이 신부를 해외에서 찾게 되고 부부의 역할과 권력구조도 바뀐다. 앞으로 태어나는 아기들의 남녀 비율을 인위적으로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경고한다. 결혼 연령은 남자 30세 이상,여자 25세 이상으로 늦어지며 이혼율은 인구 1천명에 2.5∼3.5명으로 높아진다.오늘날의 서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현재 3.7명인 평균 가족구성원도 3명 이하로 줄어,자녀 없는 가족이나 양자 입양이 늘어난다.반면 3대 이상이 모여 사는 「복고현상」도 나타나는 등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진다. 1차산업 종사자는 인구의 2∼3%,2차산업 종사자는 10% 안팎으로 줄며 대부분이 정보·지식·문화산업 등에 종사한다.육체노동을 뺀 여성 취업자의 비율이 절반에 근접한다. 1인당 국민소득은 스위스보다 많은 4만달러에 이르며 국민의 90%가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느낀다.
  • “차기대권 도전” 비친 이한동 부의장(정가초점)

    신한국당내 중간리더 중 한명인 이한동 국회부의장이 27일 대권후계구도 문제를 공개리에 언급했다. 이부의장은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국지방자치연구원 초청강연회에 참석,『대통령자리를 마치 상속하는 것처럼 용어를 쓰는 자체가 비민주적』이라며 대통령 경선원칙의 도입을 주장했다. 이부의장의 발언은 원칙론을 얘기한 것이지만 대권관련 발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그는 최근 14대 의정보고서에서 『이제 조국과 민족을 위한 더욱 큰 길에 감히 나서려 한다』면서 차기대권 도전의사를 피력했었다. 이날 강연회에서는 또 『한 사람의 정치지도자는 국민과 함께 수십년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성장하게 된다』고 최근 이회창·이홍구전총리와 박찬종 전 의원 등 외부인사 영입을 넌지시 겨냥했다. 이부의장은 그러나 역사바로세우기의 당위성과 문민개혁의 지속성을 주장했다.중국 강택민 국가주석의 「선사불망 후사지사」(지난 일을 잊지 않으면 뒷일의 가르침이 된다)라는 말을 인용해 『이 땅에 다시는 쿠데타가 있어서는 안되며,정경유착의 고리를완전히 단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정보고서에서 『때를 기다리는 호랑이는 갈아둔 발톱을 곧추세우고 동굴을 박차고 나와 거대한 포효를 시작하려 한다』고 결심의 일단을 피력했던 이부의장은 이날 지역할거주의 타파를 내세우며 「신중부권 역할론」을 역설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 인 경제3단체 초청오찬 연설 요지

    인도는 모든 동양인에게 정신적 고향입니다.나는 21세기초에는 인도가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떠오를 것으로 확신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의 하나였던 한국은 지난 반세기동안 줄기찬 노력으로 경제력과 교역규모에 있어서 세계 10위권의 주요 산업국가로 발돋움하였습니다. 이미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섬유분야에선 세계 5대 생산국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습니다.1993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나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대응하여 「세계화」를 국정의 지표로 삼아 대내적으로 정치경제 사회등 모든 분야에서 개방과 개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업의 해외진출도 괄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오늘날 한국기업은 세계 1백20여개국에서 활동하면서 국제산업협력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인도와 한국은 오랜 역사를 통해 매우 친밀한 문화적,역사적 유대를 가지고 있습니다.이미 2천여년전 인도의 아유타국의 공주가 한국의 가락국의 왕비가 되었으며 8세기에 신라의 고승 혜초가 인도를 순례한 저서를 남겨 한국인들에게 인도를 처음 소개하였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를 중심으로 한 인도 국민의 비폭력,무저항 투쟁노선은 한국의 자주독립 운동에도 자극제가 되었습니다.1950년 한국이 공산주의의 침략을 받았을때 인도는 병원선을 파견하여 한국의 자유수호 노력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지난해 양국간 교역은 20억달러 규모에 이르렀으며,자동차 정보통신을 비롯한 기간산업 분야에서도 투자협력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양국의 협력관계를 한 차원 높은 동반자 관계로 끌어올리고 태평양·인도양 지역의 공동번영을 위해 두 나라는 다음의 세 가지 방향에서 함께 노력해야하겠습니다. 첫째,상호보완성에 바탕을 둔 경제적 동반자 관계의 발전입니다.인도의 우수한 기초과학에 한국의 제조기술을 접목하고 인도의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이 한국의 경영능력과 합쳐지면 정보통신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시장에도 함께 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자유무역의 창달을 위한 공동노력입니다.자유무역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빈곤을 퇴치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앞으로도 아시아 국가들이 공동의 번영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유무역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인 양국은 폭넓은 개방과 투자자유화,그리고 과감한 규제완화를 통해 자본과 기술이 자유롭게 이전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셋째,두 나라는 태평양·인도양 시대를 열기 위해 긴밀히 협력해야 하겠습니다.이제 태평양과 인도양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되어가고 있습니다.이 새로운 태평양·인도양 경제권의 발전을 위해 우리 두 나라는 힘을 합쳐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APEC에서,인도는 「남아시아 지역협력연합」(SAARC)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태평양지역으로 옮겨진 「번영의 불길」이 인도양까지 번질 수 있도록 두 나라는 굳건한 동반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두 나라는 아시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긴밀히 협조해 나가야 하겠습니다.오늘날 모든 나라가 개방과 개혁의 시대적 조류에 동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폐쇄적 사회주의 체제를 고집하면서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경수로 건설과 식량제공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교류와 협력을 통해 평화적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크게 기여해 온 인도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해 적극 협조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 뉴델리 첫날(김 대통령 아주순방 여로)

    ◎김 대통령 “한­인 힘합쳐 새 실크로드 열자”/두 정상 “경협 늘려야” 한목소리 강조/인,“한국기업 진출지원·편의 제공” 약속 아시아 3국 순방길에 오른 김영삼 대통령내외는 첫날인 24일 인도의 뉴델리에 도착하자마자 대통령궁 환영식에 참석하고 국빈만찬을 갖는 등 분주한 일정에 들어갔다. ▷만찬행사◁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8시(한국시간 하오11시30분) 인도 대통령궁에서 열린 샤르마 대통령 주최 국빈만찬에 참석,만찬답사를 통해 한국과 인도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면서 앞으로의 관계진전이 긴요함을 역설. ○“간디정신 큰 가르침” 김대통령은 『두나라 관계는 4세기경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시작되었으며 신라의 혜초스님은 8세기에 인도의 성지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이란 책을 써서 인도를 우리에게 널리 알렸다』면서 『근대 인도가 낳은 위대한 인물인 마하트마 간디도 한국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지적. 김대통령은 이어 『인도의 풍부한 자원과 인력,그리고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결합될 때 양국의 공동이익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하고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명명한 「동방의 등불」 한국과 천년전 한국인이 동경하던 「서역의 문명국」 인도가 서로 힘을 합쳐 새로운 「실크로드」를 활짝 열어나가자』고 제안. 이에 앞서 샤르마 대통령은 만찬인사를 통해 『한국 대통령이 처음 인도를 방문해준데 대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문민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해준 것을 더욱 뜻깊게 생각한다』고 환영. 샤르마 대통령은 이어 『인도의 경제인들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이라면서 『양국의 긴밀한 경제협력은 두 나라의 공동이익 뿐만 아니라 세계 번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 샤르마 대통령은 또 『양국민은 예부터 서로를 잘 알고 있었고 특히 불교의 승려들과 학자들이 유대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왔다』고 회고. 만찬에는 우리측에서 공로명 외무장관 등 공식수행원 전원과 김상하 대한상의회장·최종현 전경련회장·김우중 대우그룹회장등이 참석. ▷대통령궁 환영식◁ ○…김대통령은 이에앞서 뉴델리의 라쉬트라파티바반 대통령궁으로 이동,공식환영식에 참석. 21발의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인도 기마병의 선도로 식장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대통령궁 정원 입구에서 샨카르 샤르마 인도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를 교환한 후 사열대로 이동. ○기마병이 행렬 선도 양국 국가연주가 끝난 후 김대통령은 인도 의장대장의 안내로 의장대를 사열. 사열 종료후 김대통령은 부인 손명순여사와 합류해 인도측 환영인사석으로 이동,무케르지 외무장관 등 인도측 환영인사들과 악수를 교환한 후 샤르마 대통령에게 우리측 공식수행원들을 소개. 이어 두 정상은 한국·인도 기자들로부터 간략한 질문을 받고 한·인도 두 나라의 경제협력 필요성을 강조. 김대통령은 인도방문의 의의를 묻는 인도 기자 질문에 『인도는 한국과는 4세기부터 불교를 통해 관계를 맺었고 아시아에서 민주주의를 제일 먼저 한 나라』라며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마하트마 간디가 태어난 위대한 나라엥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답변. 이어 한·인도 경제협력전망에 관한 질문에『한국과 인도의 경제협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두 나라 경제는 상호보완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긴밀한 협력을 통해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 샤르마 대통령은 한국기업의 인도진출전망에 관한 한국기자의 질문에 『인도정부는 인도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에게 적극지원 할 것』이라고 약속. 공식환영식 종료후 김대통령은 차량편으로 영빈관으로 향발. ▷인도 도착◁ ○…김대통령내외는 서울출발 8시간30분만인 하오4시 뉴델리의 팔람공군기지에 도착,3박4일간의 인도 국빈방문일정을 시작. 김대통령은 소병용 주인도대사와 데사이 인도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은 뒤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트랩을 내려와 손을 흔들며 환영나온 교민에게 인사. 김대통령은 트랩 밑에서 대기하고 있는 바티아 외무담당국무장관,라구나트 외무차관,샤샨크 주한인도대사내외 등 인도측 환영인사의 영접을 받고 간단한 인사를 교환. 김대통령내외는 이어 현동화 재인도한인회장내외를 비롯한 우리측 환영인사와 악수를 교환했고 화동으로부터 각각 꽃다발을 증정받고이들을 격려한 뒤 공식환영식장인 대통령궁으로 향발. ○비동맹권 외교 강화 ▷서울공항 출발◁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이수성 국무총리와 조해령 총무처장관의 영접을 받고 옥내 환송행사장에 입장,3군 의장대를 사열한 뒤 출국인사. 김대통령은 『저의 인도방문은 우리나라 국가원수로서는 처음』이라며 『이번 인도방문은 우리와 서남아시아의 경제협력기반을 넓히고 비동맹권과 외교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역설. 김대통령은 『순방중 싱가포르에서 21세기 아시아공동번영을 위해 한국과 아세안의 동반자관계의 강화를 강조하는 연설을 할 계획』이라고 소개. 김대통령은 이어 신한국당 김윤환대표 및 국무위원·대통령수석비서관등 환송인사 40여명과 악수를 나누고 도열병을 통과한 뒤 기내로 들어가 출국.
  • 문민정부 개혁3년/「경제정책 평가」세미나 내용/KDI

    ◎금융­세제 대폭 개편… 공평과세 기틀 마련/토지등록제 일원화·공저거래 확립 등 후속조치 긴요 □좌담 좌승희 KDI선임연구위원 이영선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김영삼 대통령이 이끄는 문민정부 출범 3주년을 맞아 한국개발연구원(KDI·원장 차동세)은 22일 하오 경제개혁의 성과와 과제에 관한 정책협의회를 호텔신라 영빈관에서 열었다.이날 협의회에서 좌승희박사(KDI 선임연구위원)는 「경제개혁의 평가와 과제」란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3년간 적극적인 경제개혁 추진으로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고 평가하고 앞으로의 개혁정책은 21세기 새로운 경제여건 변화에 부응,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바꾸는 미래지향적인 정책개혁 중심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어 이영선교수(연세대 경제학과)는 「경제개혁의 방향과 과제」란 주제발표를 통해 현정부가 추진해온 경제개혁은 대부분 옳은 방향이었으나 미래사회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제시되지 않아 개혁수단들간의 혼선이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앞으로는 우리 경제사회의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목표에 맞는 경제개혁을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주제발표내용을 요약,소개한다. ◎경제개혁 평가/실명제 선진경제 진입 가속 지난 93년초 현정부는 무한경쟁시대의 도래와 경기침체라는 이중의 도전속에서 출범했다.당시 우리경제의 어려움은 단순히 경기순환 과정에서의 침체 뿐 아니라 그동안 누적돼온 각종 제도의 비효율성 등 경제구조적인 문제에서 연유한다는 시각이 널리 공유됐다. 현정부는 우리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과거 정부주도의 경제운영으로 인한 비능률을 제거하기 위해 각종 제도와 정책개혁을 추진했다. 93년 8월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금융실명거래 관행이 착실하게 정착돼가고 있으며,금융소득 종합과세 및 공평과세의 기반을 조성하게 됐고 지하경제 규모의 축소와 정치개혁 및 공명선거 풍토의 조성에도 기여했다.사채시장 위축 등 자금경색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금융자율화,신규금융기관의 설립허용 등의 보완조치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95년 7월 시행된 부동산실명제로 부동산투기가 억제되고 부동산가격이 안정될 것으로 기대된다.앞으로 등기와 지적으로 이원화돼 있는 토지등록제도를 일원화하는 등 부동산 공적장부의 획기적 정비가 필요하며 동시에 토지등기부의 전산화작업이 추진돼야 한다. 금융개혁의 추진으로 자율과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시장원리에 따라 금융시장의 효율성이 제고되고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또 산업정책수단으로서의 금융산업관에서 탈피,실질적인 자율화의 폭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한다. 재정능력 확충을 위한 개선노력이 착실히 이뤄지고 있다.정부가 세계화 추진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투자 등 성장잠재력 확충분야와 환경개선 등 국민생활여건 개선분야에 재원을 중점배분하고 정부부문의 생산성 향상 방안을 적극 발굴,추진해야 한다. 세제개혁을 통한 세부담의 공평성 제고,세율인하를 통한 성실납부풍토 조성이 이뤄졌다.기업세제와 토지관련 세제의 보완,영세사업자에 대한 세부담 경감 등이 추진돼야 한다. 3년에 걸친 규제완화작업으로 기업의 애로요인이 돼온 행정절차적인 측면의 규제는 대폭적인 간소화가 추진됐다.그러나 본래 의미의 경쟁촉진 차원에서 경제규제 개혁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해 아직도 규제완화정책이 경쟁정책의 핵심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금융 토지 노동관련규제,주요산업의 진입규제,가격규제,재벌규제,공기업 규제 등의 경제정책사항들이 향후 규제완화의 주된 대상이 돼야 한다. 지난 3년간의 경제개혁은 개발연대 이후 30여년간 고착된 우리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고자 하는 것으로 그 성과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양대 실명제 개혁과 공정경쟁질서 개혁을 중심으로 한 제도개혁으로 선진 시장경제질서의 기틀을 마련하게 됐고 개혁의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는 여러해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제도개혁에 따른 부작용 완화를 위한 적절한 정책대응과 규제완화 개혁으로,개혁속에서도 경제활성화를 달성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개혁에 대해 근본취지와 큰 성과에 대해서는 찬성하면서도 특히 자율화·규제완화 개혁의 경우 아직도 피부로 느끼기에는 미흡하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정부의 경제정책 틀이 바뀌지 않고는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이 용이하지 않으며,지엽적인 개선차원 이상을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의 개혁정책은 21세기에 대비,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바꾸는 미래지향적인 정책개혁 중심으로 추진돼야 한다.최적자원배분의 모색은 정부주도에서 시장과 경쟁주도로,정부의 정책기능은 경제개입·통제에서 경쟁시장질서 구축 기능으로,불가피한 경제개입의 경우도 직접규제서 간접관리로,행태규제에서 여건관리로,대증요법에서 원인치유로 전환이 필요하다. ◎경제개혁 과제/환경분야 규제완화 신중해야 현정부는 집권초부터 강력한 개혁의지를 바탕으로 각종 개혁정책들을 꾸준히 실천해왔고,이를 통해 적지않은 성과를 이룩해 왔다.정부의 각종 개혁조치들은 민간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물론 정부의 생산성을 높이고 경제의 비효율성을 낮춤으로써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성과를 국민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개혁의 결과가 공적 이득은 크게 가져다주나 개인들이 실제로 느끼는 사적 이득은 개인별로 미세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이러한 비판 또는 불평들은 일면 경제에 대한 국민의 과도한 기대나 잘못된 인식,사적 이해관계에서의 피해,정부의 홍보부족에서 비롯된 경우도 없지 않으나 정부의 경제개혁 추진상의 문제점에 기인된 바도 적지 않다. 정부의 경제개혁이 의도대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함은 물론 다음과 같은 점들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정부가 추진해온 경제개혁이 미래지향적인 대안제시보다는 과거의 잘못을 해체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고,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기 보다는 단기적 실적에 연연하거나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또 과거의 통제적 정책수단에 대한 타성으로 인한 정부관리들의 개혁참여의식 미흡과 부처 이기주의적 사고에 의한 규제완화 기피현상이 야기됐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지향하는 경제사회의 이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뤄지지 않고 단지 과거의 권위주의적 사회의 통제적 성장정책에 대한 비판만이 존재하는 상태다.무엇을 위한 개혁이냐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얘기다.정당이나 학계·언론이 모두 미래사회상의 제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한국사회의 가치관과 미래의 기술적 여건의 변화에 맞는 경제사회이념의 정립이 필요하다.지금껏 우리사회에서 논의된 경제정책의 목표로서 선진국·일류국가·사회정의·혹은 부정부패 척결 등과 같은 막연하거나 혹은 미래사회의 건설을 위한 내용을 담지못한 것들이 많았다. 한국의 경제사회의 기본적 목표는 민족공동체의 번영과 인간적 삶을 위한 사회건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이를 달성하기 위한 경제사회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 경제개혁의 내용이 돼야 한다.그 틀은 번영과 인간적 삶을 달성하기 위해 여건 변화를 수용하고 지속적인 경제적 성장을 가능케 하는 시장경제의 추구와 동시에 시장경제의 모순을 제거하는 사회보험적 장치를 아울러 갖춰야 한다.삶의 질 유지와 통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을 준비하는 것도 사회목표가 돼야 한다. 정치,정부와 시장의 명확한 역할분담도 미래 경제개혁의 중요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정부는 공공재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시장은 신축성이 확보될 때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신축성을 저해하는 규제들은 철폐돼야 하며 이들 규제에 의해 형성됐던 기득권들은 해체돼야 한다. 지속적 경제성장을 가능케 할 효율적 시장경제의 형성과 민주사회의 인간적 삶의 보장을 위해 미래에도 계속적으로 추구돼야 할 경제개혁의 과제는 정부 역할에 대한 명확한 규정,기득권 해체와 경쟁의 확대,경제정책의 성과 자체보다는 공평한 룰 확립 등이다. 정부의 개혁은 가속화돼야 한다.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각종규제 완화 또는 자유화가 더욱 확대돼야 하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가장 중시돼야 할 환경문제에 있어서는 무조건적인 규제완화가 옳은 방향은 아니다.재벌 및 기업정책과 관련해서는 한국이 추구해야 할 한국적 자본주의의 바람직한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출이 필요하며 우선 공정거래제도의 확립으로 재벌의 존재에 의한 불공정거래에서 오는 경쟁질서교란행위를 차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 “독도는 우리 땅” 변할 수 없다/국내외 고지도로 본 영유권

    ◎문헌·지질학상으로도 우리 영토/동국여지승람 등 국내자료 다수/풍신수길 지시로 제작… “독도는 조선땅”­일 팔도총보/표준지도 66년판부터 우리이름 표기­미 지리학회 독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땅이다.이는 단순히 민족감정에 바탕둔 주장의 차원이 아니라 다양한 고문헌이 입증해주는 사실이다.그 가운데서도 특히 옛날지도들은 「독도는 우리땅」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또한 지질학·지구물리학등 과학적인 측면에서도 독도는 우리땅으로 입증되고 있다.고문헌과 지형학을 통해 독도 영유권을 살펴본다. 지난 93년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선역도」와 유럽지도 2점이 발견됐다.모두 170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도중 한국땅을 도별로 그린 「선역도」는 강원도편에 독도를 옛 명칭인 「우산도」로 표기하고 울릉도 바깥쪽에 정확히 그려넣었다.또 상단에 「우산도와 울릉도 두 섬이 동해 한복판(정동해중)에 있으며 조선 성종왕이 울릉도근처에 따로 삼봉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확인하려고 사람을 보냈다」는 내용이한문으로 적혀 있다.함께 발견된 유럽지도에는 동해를 「한국해」(MerdelaCoree)라고 표시했다. 충남 부여에서 93년 발견된 가로 72㎝,세로 1백15㎝ 크기의 「해좌전도」도 선역도와 마찬가지로 울릉도 옆에 독도를 「우산」으로 표기해놓았으며 「울릉도는 본시 우산국으로 신라시대 이사부가 공격해 항복을 받았다」는 내용을 한자로 기록했다.이밖에 「동국지도」「조선팔도고금총도」가 독도가 우리땅임을 명백하게 표시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 제작한 지도에도 독도는 한국영토로 표시돼 있다.부산외대 김문길 교수가 일본 텐리(천이)대에서 입수,지난 3일 공개한 「일본변계약도」는 일본이 독도가 한국땅임을 인정한 흔치 않은 증거다.동해를 「조선해」로,독도를 울릉도의 옛 명칭인 「우산도」로 쓴 이 지도는 에도막부시절인 1809년 서양식 측지법에 따라 처음으로 제작된 것.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부하 장수를 시켜 만든 「팔도총도」도 독도를 조선땅으로 명기한 것으로 지난 14일 서지연구가 이종학씨에 의해 밝혀진바 있다. 성균관대 최박광 교수가 갖고 있는 「한상 성차여향」은 1720년 일본 교토(경도) 유지헌 서림에서 간행한 책자.이 자료는 당시 대마도에서 조선에 대한 외교창구 노릇을 한 「우삼방주」란 사람이 울릉도를 둘러싼 조선·일본간 외교마찰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여기 첨부된 지도에 울릉도는 독도 바깥쪽에 위치한 것으로 표기됐고,그때 일본이 울릉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한 만큼 한반도에 더 가깝게 표시된 독도는 당연히 조선땅으로 보았음을 알려준다.이밖에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이 1845∼6년쯤 프랑스어로 기록한 「조선전도」에도 울릉도와 독도가 들어가 있고 독도는 옛 지명인 「Ousan(우산)」으로 표기했다. 이 지도는 당시 사람의 영토관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물증은 정부 공식지도인 「관찬지도」다.조선시대 관찬지도로는 현재 세종때 만든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해 성종때의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동국여지도·원명 팔도총도」등이 남아 있다.이 지도들이독도를 우리땅으로 기록한 것은 물론이다. 여지란 일정지역 지명을 그대로 실은 것으로 생산자원분포에 따른 조세재원을 파악하거나 지방행정권한을 명시하는 의미가 강하다.한반도주변에 독도와 비슷한 크기의 이름 없는 섬이 3천5백여개 있는데도 독도만을 여지에 표기한 것은 당시 정부가 독도의 가치를 중시했음을 뜻한다. 실제로 울릉도·독도주변에서는 해산물이 다양하게 많이 잡혀 경제성이 높으므로 정부의 행정력이 미친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따라서 정부가 행정력을 행사했고,그 사실이 지도로써 표시된 사실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주장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 학계의 분석이다.이와 관련,국경연구단체인 토문회 양태진 회장(57)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독도영유권을 우리가 국제적으로 공인받기 위해서는 제작시기나 의도가 분명히 나타난 관찬지도를 근거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현재 세계는 독도를 어느 나라 땅으로 보고 있을까.미국 지리학회(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가 발간하는 세계표준지도는 독도를 한국땅에 포함시키고 있다.또 지난 65년까지는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시했지만 그 다음해부터는 우리 이름인 독도로 표기하고 있다.
  • 관찬기록에 나타난 독도 영유권/양태진 토문회 회장(특별기고)

    ◎삼국사기에 신라영토 첫 기록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함에 있어서는 몇가지 요건이 필요하다.이 가운데 문헌적 기록은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절대요건이다.문헌은 관찬기록과 사찬기록으로 구분되는데,영유권분쟁은 상대가 있는 만큼 기록이 한 나라의 대표성을 가져야 하며 따라서 관찬을 뜻할 수 밖에 없다.그리고 그 기록은 양보다는 질적 측면에서의 요건이 중시된다. 독도에 대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는 삼국사기를 들지 않을 수 없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2년(511년)조에 「하유월 우산국 귀복」이라 하여 지금부터 1480여년 전에 울릉도와 그 속도인 독도가 신라에 귀속됐음을 알 수 있다.그후로 섬주민들은 해마다 신라에 토산물을 바쳐왔다. 우산국이라는 국호는 고려 현종대에 와서 기록상 끝난다.이는 우산국이 명실공히 고려의 행정관할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이어 관련기록들은 고려사,고려사지리지로 이어진다. 고려 목종 7년(1004년)에 우릉도인이 일본인번에 표착한 사실이 있으며 현종 9년(1018년)에는 우산도민을 동여진의침입으로부터 구원했다고 한다.인종 때인 1123년에는 본토에서 볼 수 없는 울릉도 과일과 나뭇잎 등을 바쳤다.이밖에 의종 11년(1157년)과 명종 27년(1197년),충목왕 2년(1346)에도 울릉도·독도 관련기사가 보인다. 이처럼 여러 대에 걸친 관원들의 파견과 내왕은 울릉도는 물론 독도에 대한 지리적 지식의 확대와 행정권의 밀착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고려사 지리지 울진현 조에 『우산,무릉은 본래 두 섬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청명하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하여 독도의 실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이는 실상과 부합되는 것이다.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본토로부터의 도주민을 끌어오거나 왜구·여진인들의 침입을 예방하기 위해 공도정책을 취한 바 있다.그러나 이는 결코 행정권이나 영유권 포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1392년 조선왕조가 개국하자 울릉도인이 입조하였고 태종실록 17년(1417년) 2월5일 안무사 김인우로 하여금 울릉도민을 내륙으로 데려오게 한 바 있다.세종 7년(1425년) 김인우를 다시 울릉도로 파견할 때 그 직함을 우산무릉등처안무사라 하여 울릉도와 독도가 동일 관할지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후 세종연간 강원도 연해민이 울릉도 밖 요도를 확인한 바 있고 성종연간에는 삼봉도발견을 기록하고 있는데 요도·삼봉도는 모두 독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후 안용복이 독도에 침입한 일본인을 몰아낸 사건은 숙종실록과 동문휘고,통문관지,증보문헌비고의 여지고,해방십등에 언급됐다. 1706년,1711년,1727년에는 섬을 답사해 지도를 만들도록 한 바 있으며 토산물을 대량 채취하기도 했다. 근세에 들어 고종은 1882년 울릉도 개척령을 발표했으며 2년후에는 김옥균을 동남제도 개척사겸 포경사로 임명,개척에 힘썼다.이어 그해 7월 전재항등 16가구 54명을 울릉도에 이주시켰음이 성책에 나온다.이밖에 고종 18년 이규원의 울릉도 검찰일기가 있고,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에 따라 의정부 참정대신 박재순 명의로 1906년 5월20일 지령 제3호를 통해 독도가 대한제국 영토임을 천명했다. 위 기록들은 독도영유권을 역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주요 자료일 뿐 이밖에도 독도를 우리땅으로 여긴 관찬기록은 많이 있다.
  • 분토지언… 역시 왜구의 핏줄인가(박갑천 칼럼)

    『도자이,도자이!』하고 외치는 일본말이 있다.가령 술자리에서도 누군가 일어나서 『조용조용,자,지방방송들 끄고 날 좀보소』하는 뜻으로 쓴다.가부키(가무기:연극)와 스모(상복:씨름)등에서 나온 말이다.웅성웅성 잡담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진행자가 외쳤던 소리.「도자이」는 동서라는 뜻이므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쳐있는 구경꾼 여러분』하는 말을 줄인 셈이다. 지구촌 구석구석의 일들이 금방 전파를 타는 세상이기는 하다.그래도 지구촌에 대고 계속 『도자이,도자이』 외치고 싶어지는 심정이다.이쪽 입술에 눈길들이 모아지면 『동네방네 사람들아,독도를 자기네 영토라 억지쓰는 일본사람들의 야살스런 분토지언 들어보소』하고 이을생각.분토지언이란 말은「춘추좌씨전」(양공14)에 나온다.「썩은 흙같은 말」이니 이치에 닿을리가 없다.터무니없는 개다리질이다.저퀴들어 마땅할 넋나간 소리다.「맹자」(등문공상)에 나오는바 왜가리같이 흉악한 소리 내뱉는 남쪽오랑캐의 말(남만격설)이 곧 분토지언.사람이 제정신으로 할수 없는 괴 불알 앓는 소리다. 엉뚱한 일을 가지고 떠세하며 말썽일으키는 분대질이 꼭 과붓집 수코양이 같지않은가.이는 그 조상들이 바다를 갈고다니는 왜구(위구)로 이름을 떨쳤다는 반증일 뿐이다. 이런 그들의 생트집은 우리로 하여금 한번 더 대마도를 생각하게 한다.「패관잡기」뿐아니라 「지봉유설」(병정부)에도 대마도는 신라땅이었는데 언제부터 왜놈들이 차지하게 되었는지 알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마도를 거점으로한 왜구가 하도 극성을 부리니까 조선조 세종원년 정벌에 나선다.그러고서 이듬해 정월 경상도관할로 편입한다고 도주에게 통고한다.안방에서 활개치듯한 이른바 시마네켄(도근현)고시라는 것에 비기자면 얼마나 어연번듯한 「영토확인」인가.옛날의 내땅을 내것으로 한다는 뜻이었으리라.그런일 말고도 일본이 「대마」를 「쓰시마」라 읽는 것부터가 「조선식」.「두섬」의 일본식 발음이기 때문이다.대마도는 위아래 두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909년 간도협약으로 간도를 청에 넘겨준 것이 우리 외교권을 뺏은 일제였다(양태진 「한국변경사연구」).그 일만 생각해도 한이 서리는 판에 『심심한데 좌수볼기나 치자』는 식으로 남의 가랑이 그러안으면서 제 가랑이라니.『개구리새끼는 개구리』라는 그들의 속담이 있다.『왜구의 핏줄은 왜구』와 통하는구나 싶어진다.
  • 외국 언론들도 “독도는 한국 땅”

    ◎“영유권 주장않는다” 전후 일 문서 소개­독지/“군국주의 영토야심 되살아났다” 논평­영지/1896년 일 문서도 “한국영토” 기술­중지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한일간의 논쟁을 주시해온 외국 언론들도 일본의 주장이 부당하다며 한국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외국언론들은 대체로 일본의 영유권주장이 「군국주의의 부활」이며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독도는 한국영토라는 한국측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그런가 하면 일부 언론은 한일간 독도 분쟁이 역사관의 차이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악화된 양국관계를 더 나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자이퉁지는 12일 한일간 독도분쟁과 관련,6면에 4단 크기로 다루면서 『한국의 영유권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말했다.이 신문은 『일본이 강압적으로 이뤄진 한일합방조약을 근거로 내세우는 반면 한국은 2차대전 뒤 작성된 최근 문서 등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며 종전후 연합군사령부(SCAP)와 일본간에 체결된 「SCAP No677」문서중 「패전한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지도 같은날 6단짜리 기사를 통해 『한국은 40년 이상 독도를 관리해왔다』고 말하고 『한국이 독도 접안시설 공사를 하는데 대한 일본의 항의는 일본 민족주의와 영토야심의 부활을 반영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서방 통신들이 독도에 대한 독자적인 호칭을 「작은섬」 「바위섬」 등으로 대신하는 것과 달리 중국의 신화통신과 인민일보는 각각 「독도」라는 한국측 이름을 사용했다.신화통신은 9일 서대원 외교부 대변인이 성명에서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한국영토』라고 못박았음을 알렸고 인민일보도 사흘 뒤 일본 외무성이 1896년에 작성한 「조선국교시말내탐서」조차 독도를 한국영토로 인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북경방송은 12일자 논평기사에서 독도는 512년에 신라 소속국인 우산국이었다며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강조했다. 한편 러시아 방송은 같은날 도쿄발 특파원 보도에서 『독도가 한국과 더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한국의 입장이 더 옳은 것 같다』며 일본측 주장의 부당성을 꼬집었다. 【워싱턴 연합】 워싱턴 포스트는 13일 한·일간의 독도분쟁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지난 6세기이래 「코리아」가 독도의 영유권을 당연한 권리로 주장해왔음을 적시했다. 이 신문은 도쿄발 기사에서 「일본은 한반도를 강점하기 바로 전인 일·러시아전쟁 당시(1904∼1905년)코리아가 6세기이래 영유권을 당연한 권리로 주장해오던 독도를 점령하고 이를 합병했다」고 지적하면서 2차대전으로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나자 한국은 독도의 영유권을 재천명했다고 설명했다.
  • 독도는 한국 영토/러·중 방송 보도

    【내외】 러시아 방송은 12일 일본의 영유권 주장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독도문제와 관련,한국측의 입장이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한편,북경방송도 이날 독도문제와 관련한 논평을 통해 한일 양국은 독도문제에 대해 매우 강경한 태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하면서,독도는 이미 서기 512년 신라소속국인 우산국의 영토였음을 밝히고 일본도 1667년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명백히 했다고 강조,일본측 주장의 부당성을 간접적으로 지적했다.
  • 1급이상 공직자 24명 재산공개 내역

    ◇김광일대통령비서실장(28억4천4백만원) △본인 ▲대지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20억6천만원 ▲답 부산시 기장군 임광면 회전리 6백34만원 ▲임야 부산기 기장군 일광면 화전리 외 1건 4천1백만원 ▲서울 서초동 삼풍아파트 130.23㎡ 3억9천4백만원 ▲예금 2천3백만원 ▲한국콘도 회원권 5백만원 △배우자 ▲임차권 1억2천만원▲95년식 마르샤 ▲예금 1억2천5백만원 △장남 ▲아파트 부산시 중구 보수1동 대림에이스타운 76.545㎡ 7천4백만원 ▲94년식 쏘나타 ▲예금 1천4백만원 ◇문종수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6억7천8백만원) △본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효성빌라 85.06평 3억2천만원 ▲서초구 반포4동 한신서래아파트 51평형 3억3천만원 ▲사무실 전세권 1억4천만원 ▲93년식 그랜저 ▲현금 1천2백만원 ▲유가증권 6백만원 ▲채무 3억원▲동양화 2점 △배우자 ▲94년식 쏘나타Ⅱ ▲예금 8천1백만원 △장남 예금 1천8백만원 △차녀 예금 1천8백만원 △양녀 ▲전세권 2천5백만원 ▲예금 2천5백만원 ◇남주홍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차장(4억6천6백만원) △본인▲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38평형 2억3천만원 ▲서초동 오피스텔 17평 2천6백만원 ▲예금 6천만원△배우자 ▲서울시 이촌동 공무원아파트 12평형 7천5백만원 ▲예금 4천만원 ▲채무 1천6백만원 ◇정재롱 공정거래위원회 상임위원(1억6천만원) △본인 ▲강남구 대치동 우성아파트 31평형 1억4천7백만원 ▲임차권 1억3천1백만원 ▲자동차 91년식 쏘나타 ▲채무 1억1천7백만원 ◇윤증현재정경제원 세제실장(5억7천9백만원)△본인▲토지 경남 함안군 대산면 3천7백만원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50평형 3억3천8백만원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형 조합주택 1억4천5백만원▲예금 2천9백만원 ▲채무 6천만원 ▲뉴코아과천헬스글럽·휘닉스 파크 콘도미니엄 회원권 2천1백만원 △배우자 ▲자동차 92년식 엘란트라 △모 ▲동작구 사당동 신동아아파트 25평 5천6백만원 ▲예금 1천1백만원 ◇권오기통일부총리(8억1천7백만원) △본인 ▲임야 경기도 시흥군 군포읍 산본리외 2건 6천7백만원 ▲성동구 옥수동 한남하이츠아파트 58평형 3억7천3백만원 ▲마포동 오피스텔 21평형 5천만원 ▲자동차 93년식 그랜저·90년식 쏘나타 ▲채무 1천8백만원 ▲한성컨트리클럽·신라호텔헬스클럽 회원권 8천1백만원 △배우자 ▲예금 2억6천3백만원 ◇안병영교육부장관(5억9천3백만원) △본인 ▲임야 경기도 용인군 6천8백만원 ▲단독주택 서대문구 연희동 3억8천7백만원 ▲근린생활시설 경기 성남시 성남동 건물 1억4천9백만원 ▲예금 1천8백만원 ▲유가증권 1천5백만원 ▲채무 2억5천만원 △배우자 ▲유가증권 1천8백만원 △장남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성은리 대지 1천1백만원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성은리 답 2천2백만원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성은리 전 외 1건 7백만원 ▲단독주택 서대문구 연희동 1억4천3백만원 ▲유가증권 2천1백만원 △장녀 ▲자동차 93년식 세피아 ◇이보영교육부기획관리실장(6억1천1백만원) △본인 ▲단독주택 광진구 중곡동 1억7천7백만원 ▲연립주택 종로구 평창동 1억3천3백만원 ▲자동차 89년식 쏘나타 ▲예금 4천만원 ▲채무 6천만원 △장남 ▲관악구 봉천동 복권아파트 17평 3천만원 ▲전세권 3천만원▲예금 1천만원 ▲채무 4천5백만원 △차남 ▲예금 2천9백만원 △장녀 ▲예금 1천5백만원 ◇서재문공주교육대학교총장(6천5백만원) △본인 ▲답 충남 공주시 계룡면 내흥리 2백만원 ▲임야 충남 공주시 월송동 2천6백만원 ▲연립주택 대전광역시 중구 문화동 홍익빌라 6천1백만원 ▲92년식 엘란트라,90년식 에스페로 ▲채무 1천5백만원 △배우자 ▲채무 1천만원 ◇정종택환경부장관(9억2천5백만원) △본인 ▲전 충북 청원군 오창면 여천리 4천9백만원 ▲답 충북 청원군 오창면 화산리외 1건 5천5백만원 ▲아파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64평형 6억3천3백만원 ▲농가주택 충북 청원군 오창면 여천리 1천만원 ▲88컨트리클럽·청주컨트리클럽 회원권 8천4백만원△배우자 ▲답 충북 청원군 오창면 화산리 4백만원 ▲연립주택 충북 청주시 상당구 수동 보성빌라 1천2백만원 ▲유가증권 1천6백만원 ◇황홍석환경부기획관리실장(1억5천5백만원) △본인 ▲임야 경남 함안군 철원면 운곡리 2백만원 ▲아파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형 9천6백만원 ▲자동차 91년식 쏘나타,96년식 티코 ▲예금 1천4백만원 ▲유가증권 2천4백만원 △배우자 ▲유가증권 1천8백만원 ◇김양배보건복지부장관(6억7천2백만원) △본인 ▲답 전남 곡성군 석곡면 농파리외 1건 8백만원 ▲건물 강남구 신사동 6억7천7백만원 ▲전세권 강남구 신사동 현대아파트 182.95㎡ 2억8천만원 ▲91년식 그랜저 ▲채무 2억9천9백만원 △배우자 ▲전 전남 곡성군 석곡면 능파리 5백만원 ◇오형환총무처소청심사위원(2억7천5백만원) △본인 ▲임야 충남 부여군 양화면 입포리외 1건 3천6백만원 ▲대지 충남 부여군 양화면 암수리 4백만원 ▲답 충남 부여군 양화면 암수리외 1건 1백만원 ▲아파트 서초구 반포동 주공아파트 32평형 1억8천6백만원 ▲전세권 서초구 잠원동 대림아파트 34평형 1억5백만원 ▲자동차 93년식 쏘나타Ⅱ ▲예금 3천6백만원 ▲채무 1억1천5백만원 △배우자 ▲예금 2천만원 ◇문동후총무처소청심사위원(5억3백만원) △본인 ▲대지 대구시 동구 율하동 7천8백만원 ▲임야 경북 금릉군 구성면 상좌원리 1천5백만원 ▲전 충북 청주시 현암동 3백만원▲아파트 강남구 개포동 우성아파트 31평형 1억3천8백만원,강서구 방화동 삼환아파트 48평형 1억9천5백만원 ▲자동차 90년식 쏘나타 ▲예금 3천3백만원 ▲유가증권 1천만원 ▲채무 9천1백만원 △배우자 ▲임야 전남 신안군 비금면 고서리 2백만원 ▲예금 1천만원 △장녀 ▲예금 1천2백만원 ◇조만후정무제1장관실 정무차관(4억3천3백만원) △본인 ▲답 경남 의령군 화정면 상정리 3백만원 ▲대지 경남 의령군 화정면 상정리 1백만원 ▲아파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아파트 55평형 2억8천만원 ▲예금 6천5백만원 △배우자 ▲자동차 94년식 쏘나타Ⅱ ▲예금 6천2백만원 △장녀 ▲예금 2천만원 ◇주정중 부산지방국세청장(3억2천2백만원) △본인 ▲임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삼암리 2천4백만원 ▲대지 부산광역시 영도구 2천9백만원 ▲송파구 잠실동 우성아파트 43평형 2억5천6백만원 ▲자동차 94년식 쏘나타Ⅱ ▲예금 1천1백만원 ◇오문희대전지방국세청장(3억3천3백만원) △본인 ▲강남구 대치동 국제아파트 48평형 3억1천6백만원 ▲자동차 91년식 쏘나타 ▲예금 1천7백만원 ◇김본식경찰청기획관리관(3억2천8백만원) △본인 ▲근린생활시설 강남구 포이동 4억6백만원 ▲자동차 93년식 쏘나타 ▲채무 9천5백만원 △배우자 ▲임차권 1천7백만원 ▲자동차 90년식 쏘나타 ◇김종우경찰청형사국장(3억3천1백만원) △본인 ▲강남구 대치동 우성아파트 41평형 2억7천5백만원 ▲연립주택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 건영빌라 60평 2억1백만원 ▲자동차 94년식 쏘나타Ⅱ ▲채무 1억7천2백만원 △배우자 ▲임야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신봉리 6천7백만원 ▲임차권 4백만원 ▲채무 4천5백만원 ◇조석봉경기지방경찰청장(14억7천4백만원) △본인 ▲임야 경기도 이천군 백사면 7천8백만원 ▲대지 강남구 역삼동 4억2천8백만원 ▲단독주택 강남구 역삼동 5억3천만원 ▲근린생활시설 영등포구 신길동 3억8천1백만원 ▲92년식 쏘나타 ▲예금 2천3백만원 △배우자 ▲답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 9백만원 ▲예금 1천9백만원 ▲유가증권 2백만원 ◇이택천경북지방경찰청장(5억3천7백만원) △본인 ▲전 경북 성주군 용암면 기산리 1천5백만원 ▲답 경북성주군 용암면 3천1백만원 ▲임야 성주군 용암면 기산리 40만원 ▲단독주택 경북 성주군 용암면 기산리 8백만원 ▲강남구 수서택지개발기구 목련타운 48평형 3억4천5백만원 ▲전세권 1억3천만원 ▲93년식 쏘나타 ▲예금 5백만원 △배우자 ▲95년식 아반떼 ◇김금도경남지방경찰청장(4억9천6백만원) △본인 ▲동대문구 청량리1동 미주아파트 43평형 1억7천4백만원) ▲오피스텔 강남구 역삼동 18평형 3천2백만원 ▲92년식 쏘나타,90년식 스쿠프 ▲현금 1천2백만원 ▲예금 3천5백만원 △배우자 ▲예금 1억6천5백만원 ▲금 460g △장남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 24평 5천5백만원 ▲예금 4천2백만원 ▲채무 4천2백만원 △장남의 배우자 ▲예금 2천3백만원 ▲금 600g ◇이한구 병무청차장(6억2천6백만원) △본인 ▲서대문구 충정로2가 현대아파트 35평형 1억5천만원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32평형 1억9천7백만원 ▲93년식 쏘나타 ▲예금 9천5백만원 ▲채무 8천만원 △배우자 ▲예금 1억2천3백만원 △장남 ▲임야 충남 논산군 연산면 1백만원 ▲대전광역시 유성구한빛아파트 43평형 8천7백만원 ▲예금 9천3백만원 ▲채무 4천3백만원 ◇김선주 농어촌진흥공사부사장(3억1천9백만원) △본인 ▲단독주택 은평구 역촌1동 1억3천5백만원 ▲92년식 캐피탈 ▲현금 1천2백만원 ▲예금 1백만원 ▲채권 6천5백만원 △배우자 ▲현금 1천9백만원 ▲예금 1천9백만원 ▲채권 1천5백만원 △차녀 ▲예금 1천만원 △장남 ▲예금 1천만원
  • 「독도망언」은 식민주의 오만(특별기고)

    최근 일본 정부의 수상과 외상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망발을 감행했다.그리고 독도가 자신의 영토임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사실임을 강변하고 있다.이와 같은 강변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망언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독도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연고를 다시금 확인해보고,그 국제법적 문제점도 아울러 살펴보아야 한다. ○역사적 연고 확실 독도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연고는 확실한 것이다.원래 독도는 울릉도에 딸린 섬이다.울릉도는 이미 6세기초 신라시대때부터 한반도의 역사에 편입되기 시작했다.그러나 독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15세기에 편찬된 「고려사」의 지리지의 울진현에 관한 설명에서 시작된다.이 기록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고문헌 내지 고지도에서 독도는 울릉도와 확연히 구별되어 우산도 삼봉도 자산도 가지도 등으로 기록되어 왔다.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지명이 변동되는 사실은 항용 있어온 일이며,독도의 명칭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예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울릉도 주민들은 바위섬인 이곳을 「돌섬」 또는 돌(석)의 방언에 따라서 「독섬」으로 불러왔다. 여기에서 독도라는 오늘날의 명칭이 유래됐다.1900년 구한국 정부에서 지방관제를 개칭하여 이 곳에 군을 설치하고,그 관할 구역으로 울릉도 전도와 「석도」를 명시했다.이 석도는 「돌섬」의 한자 표기였다.그리고 오늘날 일반적으로 불리는 독도는 「독섬」이라는 방언 명칭에서 각기 그 음과 뜻을 취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이와 같은 과정을 살펴보면 독도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연고권은 확고부동한 것이며,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 일본의 시마네현은 1905년 2월에 고시 40호를 통해서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로 명명하고 자신의 관할구역으로 비밀스럽게 편입시켰다.이 편입 조처는 일본 내각이 1905년 1월에 단행한 독도에 대한 영토 편입 결정을 따른 것이었다.대한제국 정부는 이와 같은 사실을 1906년 4월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이에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그해 5월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그렇지만 당시는 이미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접수된 이후이므로 독도문제에 관한 일본과의 외교적 교섭은 불가능했다.이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한제국 정부는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독도에 대한 고유한 권리를 천명하는 데에 그쳤다. ○이르조선영토 표기 1905년 이전에는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일본도 인정해 왔다.일본의 대표적 지리학자였던 하야시(임자평)가 1785년에 제작했던 「삼국통람도설」에는 독도를 조선의 소유로 표시했다.일본이 개항한 이후 명치 연간에 육군성에서 제작한 군사지도에서도 독도는 조선의 영토로 분명히 표기되어 있다.한편 1877년 일본 명치 정부의 최고 각료의견기관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었다.여기에서 제시된 몇몇 사례 이외에도 1905년 이전 일본에서 독도가 조선의 소유임을 인정했던 기록들을 더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이처럼 일본의 조야에서는 독도에 대한 조선의 역사적 연고권을 인정해왔다. 한편 일본 정부는 독도가 자신의 영토라는 사실이 『국제법적으로도 명확한 사실』이라고 강변하고 있다.그들이 이와 같은 억지 주장을 내세우는 근거는 이른바 국제법상의 영토 획득 방식인 무주지에 대한 선점의 법리에 있다.그러나 독도는 결코 무주지가 아니라 엄연히 조선왕조의 영토 중 일부였고,종전에는 일본 자신도 이를 인정해 왔었다.울릉도 및 그 부속도서에 대한 신라시대 이래의 역사적 연고권은 분명한 사실이다.백보 양보한다 하더라도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이미 1900년에 독도를 자신의 영토에 분명히 편입시켰다.그러므로 독도에 대한 시마네현의 고시는 무주지에 대한 선점이 될 수 없으며,제국주의적 영토 약탈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일본이 1905년 이곳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한 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었다.즉 일본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러일전쟁을 일으켰다.일본은 러시아와의 해전을 앞두고 동해 일원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비로소 제기하게 되었다.그러므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설정은 그들의 제국주의 침략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반성없는 일 태도 일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청산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그리고 이는 지난날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방자한 자세임에 틀림없다.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망발에 대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 그릇됨을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독도는 엄연히 우리의 땅이기 때문이다.
  • “일 「독도망언」은 침략사 미화행위/「역사왜곡」 세계에 고발해야

    ◎시민·사회단체 “단호 응징” 한 목소리/「정신대배상」흐리기 얄팍한 속셈/다시는 거론 못하게 버릇 고쳐야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망언에 온 국민이 경악하고 분노하고 있다.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총리와 이케다 유키히코(지전행언) 외상의 지난 9일 망언은 『교과서 왜곡 등 역사왜곡을 상투적으로 반복하는 일본의 기만적 행위』라며 정부가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역사왜곡을 서슴지 않는 일본의 실체를 국제사회에 고발해야 하며,한일협정을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개정하고 우리의 속국이던 대마도반환운동을 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각 단체들마다 성명을 내며 집회도 잇따를 전망이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0일 성명을 통해 『일본의 망언은 우리 역사와 국민에 대한 엄청난 모독』이라며 『전쟁이 아닌 한 가장 강경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다른 단체들과 연대해 일본을 규탄하고 우리 정부에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행사도 가질 계획이다. 한국자유총연맹(총재 최호중)도 『일본의 침략본성이 또 드러난 것으로,독도 접안시설에 대해 주권침해 운운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비난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도 『정치·군사 대국화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자행한 국제사회에 대한 협박』이라고 규정하고 『이는 국제 사회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회원들은 12일 상오 11시 주한 일본대사관을 방문해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할 계획이다.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도 『유엔 인권위원회가 종군위안부에게 배상하라고 촉구한 것을 정면 거부해 국제사회의 비난이 이는 것을 피하려는 후안무치하고 얄팍한 속셈』이라며 『일본은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역사의 이단자로 전락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불교인권위원회 등 불교계 10개 단체는 공동성명을 통해 『정부는 일본이 두번 다시 독도문제를 거론하지 못하도록 단호한 대안을 세우라』며 『일본대사를 소환해서라도 진상을 밝히고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일과거청산 범국민운동본부(상임의장 김명윤)는 『일본은 독도가 신라시대부터 우리의 영토이며 구한말의 강압적 조약은 원천적 무효라는 국제법의 원칙을 인정하라』고 촉구했다.또 『65년 군사정부가 졸속체결한 한일협정이 일본의 한반도 불법강점에 대한 국제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언이 되풀이된다』며 『한일협정을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봉우소장(47)도 『독도에 영구주민의 정착,상주 어업 전진기지의 건설 등 주권자로서의 분명한 입장과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연구가 김연갑씨(42)는 『사료상 과거 우리의 속국이었음이 분명한 대마도의 반환운동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일의 「영유권 망발」을 반박한다/신용하서울대교수·사회학

    ◎“서기 512년부터 독도는 우리땅”/일의 주장은 제국주의 논리에 불과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옛 우산국의 땅이었다.서기 512년에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됨으로써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로 확정된 것이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에 실려있다.1808년에 편찬된 만기요람 군정편에도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땅이라고 정의돼 있다. 태종 16∼17년(서기 1416∼17년)사이에 왜구의 침략과 노략질 때문에 태종은 울릉도에 공도정책을 실시했다.공도정책도 당시에는 영토관리 정책의 하나로 태종은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 영토였기 때문에 이같은 정책을 편 것이다. 성종 12년(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중종 26년(1531년)에 편찬된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도 울릉도와 우산도를 조선왕조의 영토로 규정하고 지리적 설명을 싣고 있다. 일본측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에서 최초로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문헌에 기록된 것은 1667년에 재등풍선이 편찬한 은주시청합기가 처음이다.여기에도 울릉도와 독도(송도와 죽도로 표기)가 일본영토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7세기 말에 대마도주는 공도정책을 악용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하는 활동을 시작했다.울산어부 안용복등이 일본에 건너가 구속되면서까지 투쟁하여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명백히 한 것도 이때였다. 후에 일본의 덕천막부 관백(왕이 아닌 통치자)이 1696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재확인 함으로써 대마도주가 일으킨 영유권 분쟁은 해결되었다. 그 결과 덕천막부 시대에 일본·조선·중국의 구분을 그린 대표적 지도인 일본학자 임자평의 「삼국접양지도」(1785년 간행)와 18세기 일본지도 「총회도」에는 울릉도와 독도(우산도) 두 섬이 조선 영토임이 색깔까지 칠해서 명백히 표시됐을 뿐 아니라 독도(우산도)의 위에는 일본말로 「조선의 것으로」라는 문자까지 적혀있다. 근대국가가 성립된 뒤 일본 내무성은 1876년 각 현에 영토의 지도를 그려 올리고 지적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그때 일본 시마네(도근)현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해서 지도를 그리고 지적을 조사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일본내무성은 6개월간 조사한 뒤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영토이며 일본과는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이에 따라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조선동해안도」와 육군성 참모국이 만든 「조선전도」등 당시 모든 일본의 지도에 독도가 한국영토로 표기돼 있다. 그뒤 개항 후 조선왕조는 공도정책을 폐지하고 울릉도에 대한 주민이주 정책을 실시하였다.1900년에는 대한제국정부 칙령 제41호로 울릉도를 군으로 개편한 뒤 군수를 임명하고 울릉군의 관할구역을 울릉도,죽도,석도라고 규정하였다.독도를 의역하여 「석도」라고 표기한 것은 독도가 바위만의 돌섬이라는 뜻이다. 1904년 2월8일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울릉도와 독도에 러시아군함을 감시하는 해군망루를 설치하려고 했다.이 무렵 중정양삼랑이라는 일본 어업가가 한국정부에 한국영토인 독도에서 물개를 잡을 것을 허용해 달라는 청원서를 내는데,일본정부가 중간에서 대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일본정부는 이 기회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침탈하고 독도에 해군망루를 설치하기위해 중정에게 독도가 무주지이므로 일본영토에 편입시켜 물개잡이 독점권을 허가해 달라고 신청하도록 청원내용을 바꾸게 했다. 그리고 일본정부는 1905년 1월28일 내각회의에서 슬그머니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시켰다. 한국정부와 한국민들은 이러한 내용을 1년 뒤에야 알았고 강제로 체결된 「을사5조약」 때문에 외교권이 박탈되고 일제통감부가 서울에 설치됐던 때였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더 이상 항거할 능력이 없었다. 그 뒤 일제가 패망하고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SCAPIN(연합국 최고 상부지령)677호로 독도가 일본영토로부터 분리되었음을 선언하고 이를 한국에 반환했다. 이같은 역사적 진실에 비춰 독도는 서기 512년부터 한국의 불가분의 고유영토이며 한국정부가 일관되게 주권을 행사해온 것이 명백하다. 국제법적으로 볼때 무주지 선점에 의한 일본영토 편입이라는 주장도 1905년 1월 당시 무주지가 아니라 엄연히 대한제국의 영토였기 때문에 어불성설이다. 독도는 국제법을 위반한 일본이 대한제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민 모르게 슬그머니도둑질했다가 들켜서 뒤늦게 한국에 반환한 것일 뿐이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에 있어서나 국제법상으로 한국의 영토임이 명명백백한 독도에 대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논리의 연장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 정부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국민들도 일본의 독도침탈 의도에 경각심을 더욱 높여야 한다.
  • 한·일 독도 영유권분쟁 약사

    ◎고종이 「울릉군소속」 칙령 발표 1900년/일 시마네현,영토편입 첫 고시 1905년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시골 지방정부의 고시에 근거하고 있다.한반도가 사실상 일본의 지배아래 있던 1905년 시마네(도근)현은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라고 부르고,본 현의 소관아래 편입한다』고 발표했다.일본은 1906년 4월 이 사실을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는 외교권을 박탈당한 채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일본은 이어 1907년 각의에서 『독도가 주인없는 땅으로 어느 나라의 주권도 미치지않는다』며 독도의 일본 편입을 멋대로 결정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매년 적절한 시기를 골라 의회답변 형식을 빌려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 90년대를 전후해서는 매년 8월쯤 우리 정부에 『독도가 일본영토이니,한국은 철수하라』는 구상서를 보내고 있다.또 매년 가을 순시선을 독도 근해에 파견,우리 영해를 침범하고 독도를 한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어가는 행위를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일본측의 터무니 없는 주장에 비해,정부는 독도가 법률적·역사적으로 우리 땅임을 증명해주는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독도는 512년에 신라의 이사부가 정복한 우산국즉 지금의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1천5백년 가까이 우리 영토였다.울릉도 어민들은 독도 부근까지 나가 고기를 잡으면서 이 섬에 10일 정도 머물기도 했으므로 무인도였지만 주인은 있는 땅이었다.이러한 사실은 「고려사」「세종실록」「성종실록」등에서 입증된다.일본이 내세우는 시마네현 고시에 앞서 1900년 고종황제가 칙령 41호를 통해 독도를 울릉군의 부속도서로 강원도에 공식 편입시키기도 했다. 「근대사 자료연구협의회」가 지난 78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로 8천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연구를 시작,84년 발간한 「독도연구」에 따르면 1694년 삼척 첨사가 조정 명령으로 울릉도 순시를 나가 독도를 발견했다는 기록을 발굴했다.뿐만 아니라 역사학자나 서지학자들의 노력으로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명기한 일본 정부 문서와 지도도 상당수 발굴됐다. 지난 83년에는 독도가한국령이라고 표기된 일본 해군성 수로국 발행 지도 원본(1857년 러시아 해군 제작,1876년 일 해군 재발행)이 서울대 규장각도서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또 일본 정부는 이미 1945년 항복문서에서 강제로 빼앗은 영토를 포기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여기에는 물론 시마네현 고시에 의해 멋대로 편입시킨 독도도 포함된다.
  • “백혈병 두 젊은이를 살립시다”/호텔신라 바자…온정의 손길 봇물

    ◎미 입양 김성덕군·국내투병 전승훈군 돕기/6백명 골수기증 약속… 미 양부모와 화상대화 『성덕군과 승훈군을 살립시다』 백혈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두 청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바자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3층 연회장 마로니에룸에서 4일 상오 10시부터 열렸다. 이날 행사는 미국 입양고아 출신으로 백혈병을 앓고 있는 김성덕군(21·미국명 브라어언 성덕 바우만·미국 공군사관학교 4년)과 호텔 신라 객실팀 청소담당 직원 이용순씨(43·여)의 외아들로 지난해 9월 백혈병 판정을 받아 투병중인 전승훈군(20)을 돕기 위해 마련됐다. 호텔 신라는 성덕군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회사 직원의 아들도 같은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가톨릭 의대 골수정보은행의 협조를 얻어 행사에 나섰다. 하오 5시까지 계속된 이날 행사에서 골수기증을 받기 위해 마련한 7곳의 채혈창구에는 호텔 직원 뿐만 아니라 객실 손님 등 일반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6백여명이 골수기증에 참여했다. 또 호텔측이 판매수익금으로 두 청년의 수술비에 보태기 위해 준비한 5백여개의 케익도 불티나게 팔렸다. 특히 하오 5시20분부터 40분간 호텔 5층에 설치된 화상(화상)회의룸에서 가톨릭 중앙의료원 골수이식센터 김동집소장(63)과 전군의 어머니 이씨는 인공위성으로 연결된 화면을 통해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성덕군의 양부모인 스티븐 바우만씨부부와 화상대화를 갖기도 했다. 바우만씨 부부는 성덕군과 골수유전자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은데 대해 『한국민에게 깊이 감사한다』고 말했다.또 이들은 아직 전군에게 골수를 전해줄 사람을 찾지 못한 이씨를 위로,국경을 넘은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었다. 이 호텔 노사위원회 김성신위원장(32·객실팀 직원)은 『이 행사를 통해 한때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성덕군과 투병중인 승훈군에게 따뜻한 동포애를 전했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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