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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자금 양성화해야/법 고쳐 정당하게 쓰도록”/이회창 고문

    신한국당 이회창 상임고문은 9일 『이제 과거를 잊고 새로 출발하자는 사회전반의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고문은 이날 상오 서울 신라호텔에서 「21세기 한국정치의 진로」라는 주제로 열린 이화여대 정보과학대학원 여성최고지도자과정 초청 강연을 통해 『과거 세력과 현재 세력간에 과거 문제와 현재의 정당성을 가지고 서로 갈등,불신하는 상태가 계속되면 (차기에)어떤 정권이 들어와도 힘을 가질수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고문의 발언은 최근 「한보사태 책임론」으로 침체된 당내 민주계와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 5·6공 세력을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주목된다.특히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사면론과도 맞물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고문은 또 이날 강연에서 『대통령 선거에서 현실적으로 돈을 쓸 수 밖에 없다면 정당하고 정직하게 양성화된 선거자금을 쓸 수 있도록 현행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현행 법률하에서 선거를 치르면 앞으로 선거때마다 대선자금 문제가 나올 것』이라고 「대선자금의 양성화」를 주장했다.
  • 싼 쌀값… 귀한줄 모르면 버력입어(박갑천 칼럼)

    쌀도 물건이니 사고판다.한데 우리겨레의 쌀을 팔고사는데 대한 생각은 유다르다.사는걸 일러 반댓말 「팔다」를 쓰잖은가.체면을 중시하여 없어도 있는체 사러가면서 『팔러간다』고 했다는 것이다.그러나 돈구실하던 쌀을 돈같이 여기면서 생긴 말이라고도 한다.쌀을 산다는건 돈을 파는 것이므로 『돈팔러간다­쌀팔러간다』로 됐다는 생각이다. 사고파는데는 값이 있다.그값은 사람에게도 매겨진다.그래서 공자도 아름다운 옥(미옥:공자를 가리킴)을 팔아야 하느냐 간직해야 하느냐는 자공의 물음에 대답한다.『팔아야지(고지재),팔아야 하고말고.난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느니라』(「논어」자한편).비싸게 팔리고자 했던 것이리라.그값은 같은 물건이라도 형편따라 오르고 내린다. 쌀값의 오르내림도 그렇다.「지봉유설」(재리부)을 보자.태평했던 신라태종때는 베 한필값이 벼 30∼50섬이었는데 고려공민왕때는 흉년이 들어 쌀 다섯되로 바꾼다.조선 선조때인 계사(1593)갑오(1594)년은 왜구로 황폐해지면서 무명 한필값이 쌀 두되였으며 말 한마리도 쌀 서너말에 살수있었다.그때의 베나 쌀은 돈구실을 해주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쌀소비량은 한사람앞에 104.9㎏으로 95년의 106.5㎏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국민의 한끼 소비량은 96.8g이라는 계산이었으니 돈으로 칠때 2백원이 채못된다.식생활에서의 쌀값 비중을 알게하는 숫자다.그런만큼 돈으로만 따지면서 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도 잊어간다.먹다 남기면서 버리는 일쯤 예사롭게 생각하는 것도 그맥락이라 하겠다. 정재륜은 쌀에 대해 엄격했던 효종임금 얘기를 그의 「공사견문록」에 써놓았다.그가 궁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밥을 물에 말아 몇숟갈 뜨고서 밀쳐놓았다.이를 본 임금이 먹을만큼만 떠다먹어야지 무슨 짓이냐면서 하늘이 내린것을 귀한줄 모르고 버릴때 그죄를 면할길 없다고 귀띄게 야단친다.나중에 수랏상 나가는걸 보니 밥그릇에 밥알 한톨 묻어있지 않았다.농민의 피땀어린 쌀에는 하늘의 비틈한 뜻도 곁들여 있음을 임금은 깊이 새겨 알고 있었다. 금덩이속에 묻혀사는 사람에겐 금이 흙같을 수도 있다.그러나 금은 금이다.흔하고 싸다하여 귀함을 잊고 존절을 모를때 하늘이 버력내릴걸 왜 모르는고.굶주리는 북녘땅 겨레만 생각한대도 쌀을 허투루 다룰 일인가.〈칼럼니스트〉
  • 자녀와 함께… 주말 봄나들이 7선

    ◎자연과 더불어 역사와 문화의 현장 탐방/애기봉­육안으로 북녘땅 볼수있어/이천 도자기­조선백자 요람… 온천도 즐겨/여주 신륵사­원효대사 창건… 관광지 지정/아산 현충사­주변에 민속박물관 등 즐비/오두산 전망대­북한의 어제와 오늘 한눈에/철의 삼각지­「동강난 철마」·노동당사 현존/강화도­국난 극복의 역사흔적 많아 상춘의 계절이다.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봄기운이 돌기 시작한다.남녘에서부터 꽃소식도 올라온다.이때쯤이면 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주말에 가까운 곳이라도 야외로 나가 긴 겨울의 여운을 떨쳐버리려 할 때이다.자연과 더불어 역사와 문화를 탐구할 수 있는 곳이라면 자녀들을 위해 더없이 좋을 것이다.한국관광공사는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 가운데 『주말 봄나들이 7선」을 선정해 여행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관광공사 관광안내부(02­757­0086)나 PC통신 천리안,하이텔,유니텔,나우누리 및 01410 서비스에서 관광정보데이터베이스(GO KOTOUR)를 통해 교통 숙박 등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남쪽에서 흘러드는 한강과 북녘에서 내려오는 임진강이 만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오두산에 세워졌다.해발 140m에 자리잡은 원형전망실에서 북으로는 개성의 송악산,남으로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등을 바라볼 수 있다.북한의 실상과 남북관계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볼 수 있는 전시실 등을 둘러볼만 하다.주변에 장릉 공릉 순릉 영릉 임진각 자유의 다리 판문점 화석정등의 명소가 있다. ▷철의 삼각 전적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강원도 평강을 정점으로 철원과 김화를 잇는 철의 삼각 전적지는 6·25때 중부전선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6.25의 참상을 알려주는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 옆에 누워있는 기차의 잔해,열흘동안 고지의 주인이 무려 24번이나 바뀌었던 백마고지,주민수탈의 본거지였던 노동당사 등 곳곳에 전적지가 널려있다.또 북한의 남침용 제2땅굴이 발견되었으며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하다.주변에 삼부연폭포 순담계곡 명성산 고석정 등이 유명하다. ▷강화도◁ 인천광역시 강화군단군왕검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련했다는 참성단이 마니산에 있으며 고려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리까지 국난을 극복한 역사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특히 문화유적지와 관광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가족단위 문화유적탐방지로 적합하다. ▷애기봉◁ 경기도 김포군 하성면.애기봉은 병자호란때 평양감사와 기생 애기와의 슬픈 일화가 서려있는 곳으로 북녘땅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곳이다.북한에서 마주 건너다보여 크리스마스때면 대형 트리를 세워 성탄을 축하하고 불탄일에도 각종 종교행사가 열린다.문수산성 약암온천 김포향교 장릉 등이 있다. ▷이천 도자기마을◁ 경기도 이천시 사음동.이웃 광주군과 함께 조선 500년 도자기 역사가 서려있는 곳으로서 조선백자의 요지이다.일대에 80여개의 도자기업체가 몰려있고 도자기 제작과정을 안내받을수 있다.인간문화재 지순택씨가 제작하는 청자 및 백자와 청자로 유명한 고 유근형옹의 해강도자기 미술관이 특히 유명하다.이천온천 설봉호수 남한산성도립공원 천진암성지 등을 둘러볼만 하다. ▷신륵사 관광지◁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북내면·신라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신륵사가 있으며,32만여평이 관광지로 지정 개발되어 퍼팅장 족구 배구 농구 등 체육시설과 강변지구 야영지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여주장가남장 대신장 등 5일장을 보는 것도 재미있으며 쏘가리매운탕 메기.장어구이 염소요리 등의 식도락을 즐길수 있다. ▷현충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당으로 1706년 숙종32년에 세워졌다.66년에 정부에서 경역을 확장하고 온국민의 성지로 가다듬었다.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일생기록화인 십경도가 있으며 국보76호인 난중일기와 보물 326호 장검 등이 전시된 유물관,충무공이 살던 집,활터 정려 등이 경내에 있다.온양온천 아산온천 도고온천 아산만방조제 온양민속박물관 등의 명소가 있다.
  • 권영필 고대교수,「실크로드 미술」내

    ◎한국미술 “실크로드 미술의 연장선에”/비한족의 미술로서 「중국변방」 평가에 반기/“더이상 헬레니즘·인도문화의 낙수아니다” 중국의 한나라와 고대 로마를 잇던 동서교역로 실크로드.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1887년 처음 명명한 실크로드는 기원전 2세기에 처음 열린 이래 동서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다했다.동아시아에서 불교가 쇠퇴하는 것과 때를 같이해 실크로드는 한때 막을 내리다시피 했지만,19세기 후반 열강의 세력각축장으로 중앙아시아가 각광받으면서 이 비단길은 다시금 역사의 중심무대에 등장했다.「소박주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는 실크로드 문화,그중에서도 특히 미술은 역사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아왔다.최근 고고미술사학자 권영필 고려대 교수(56)가 20여년간의 연구끝에 펴낸 「실크로드 미술」(열화당)은 실크로드 미술 전반에 관한 국내외 연구성과를 망라한 노작으로 관심을 모은다. 이 책은 특히 「중앙아시아에서 한국까지」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실크로드 미술문화가 한국에까지 이르는 경로를 밝히고자 했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차별성을 지닌다.서구학자들은 실크로드의 기점이 중국의 장안­현재의 서안­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집착한 나머지 실크로드 문화의 동쪽으로의 확산을 더이상 고려하지 않는다.그러나 권교수는 옛 로마시대의 유리잔 등이 경주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할 때 『실크로드 지도는 경주까지 연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나아가 신라의 왕들은 국제교류를 통해 실크로드 미술품을 수집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을 재생산해 실크로드 문화에 대한 그들의 취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고 밝힌다.『그들은 어쩌면 이러한 미술품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그것을 「담지」하고 북방에서 내려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보인다. 권교수는 또 실크로드 미술은 「중국의 변방미술」이 아니라 「비한족 미술」이라고 강조한다.지금까지 나온 실크로드 관련서는 문화패권주의적 미학관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크로드 미술을 서방의 헬레니즘문화나 인도문화,중국문화 등이 흘려놓은 낙수정도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이 책에는 「위지을승 화법의 근원과 확산」「한국불화에 나타난 산수요소의 원류와 그 발달」「고구려벽화의 복희여와도」「한국의 전통미술,그 내방성과 외방성」 등 13편의 논문과 250여점에 달하는 컬러·흑백 도판이 함께 실렸다.
  • 해인사 대불사(외언내언)

    우리나라에는 삼보사찰이 있다.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경남 양산군의 통도사가 불보사찰,스님의 수행도량으로 이름높은 전남 승주군의 송광사가 승보사찰,팔만대장경을 소장하고 있는 경남 합천군의 해인사가 법보사찰이다. 해인사가 창건된 것은 신라 애장왕 3년(802년).월드컵축구가 이땅에서 펼쳐지는 2002년이면 창건 1천200주년을 맞게 되는 고찰이다.창건 당시는 암자에 불과했으나 신라말의 주지스님 휘랑이 고려 태조의 건국을 도운 인연으로 크게 확장됐다.지금은 14개동의 건물과 75개의 말사를 거느리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산. 해인사가 이 사찰의 상징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을 소장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태조 7년(1398년).고려 고종때(1236∼1251년) 판각된 후 강화도 선원사(선원사)에서 소장해 오다 옮긴 것이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중의 하나인 해인사가 오는 5월부터 「해인불교단지」를 조성하는 대불사를 봉행한다.10개년계획으로 추진되는 이 불사로 일주문 1㎞ 아래에 있는 2만여평의 대지위에 성보박물관,삼존대불,불교회관,대장경연구센터 등이 들어서게 된다.해인사는 창건 이후 소실과 중창을 거듭해왔지만 모두 사찰경내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사찰밖에서 봉행되는 이 불사는 제2의 창건과 다름없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우리나라 사찰에는 신도교육이나 포교활동등 불교현대화와 대중화를 위한 시설은 거의 없는 실정.그런 의미에서 해인사가 대규모의 불교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아무쪼록 이 불사를 계기로 해인사가 사부대중의 청정도량으로 거듭나기를 부처님께 기원한다.
  • 문화유산의 역사성/황규호 문화부·부국장급 기자(서울논단)

    민족문화유산인 문화재는 역사 바깥의 사물이 아니다.반드시 역사성을 내포하고 있다.문화유산에서 역사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그것은 문화재라기 보다는 골동이나 자질구레한 물건 박물세고에 지나지 않는다.그래서 문화유산을 역사적으로 해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문화와 역사는 맞물려 있다.생활공동체안에서 여러 행동양식이 일정한 정형의 틀을 이루어 낸 것이 문화다.또 역사는 문화를 바탕에 깔고 살아간 사람들의 생활흔적이어서,문화와 역사는 서로 떼어놓을수 없는 상호보완의 관계인 것이다.문화활동의 소산인 문화재에서 역사를 보아야하는 까닭은 바로 이 점에 있다. ○문화·역사 상호보완 관계 우리는 그동안 문화재에 얼마만큼 역사성을 던져주었는가.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최근 중국 고고학자 원위청(온옥성)이 「백제금동대향로」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글(서울신문 2월18일자 1·14면 보도)을 보면 더욱 그렇다.그는 금동향로에서 우리보다 더 정확히 백제역사를 읽었다.중국의 고고학전문 주간지 「중국문물보」에 실은 글에서 향로를 요지부동의 백제유물로 못박았던 것이다. 그는 1993년 충남 부여 능산리에서 향로를 발굴할 당시 붙인 이름 「금동용봉봉래산향로」가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다.향로에 나온 날짐승은 백제의 세미계를 천계로 표현한 것이고,산은 백제건국 터전 금마산이라는 것이다.또 다른 형상 모두가 백제의 자연인 동시에 백제인이라는 주장도 곁들였다.한국과 중국의 고대사서 여러 책에 나오는 백제 이야기를 향로에서 다 끄집어 냈다. 그러면서 향로 이름을 지극히 백제적인 「금동천계금마산제대향로」로 바꾸자는 의견을 내놓았다.원위청의 논리는 정연하거니와,대단한 설득력을 지녔다.국내 학자들의 반론이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금동향로라는 유물에다 역사적 생명력을 다시 불어넣었다.그래서 「백제금동대향로」가 더욱 윤택한 문화유산으로 다가왔다.영원한 세기적 보물이 국보의 위치를 확고히 굳힌 것이다. 국내 학자들은 향로의 시원에만 집착한 나머지 중국을 너무 의식했다.그러나 원위청은 문제의 글에서 「중국에는 봉래산을 상징한 박산향로가 있을 뿐,백제금동대향로 처럼 생긴 정교한 유물은 없다」고 단정해 버렸다.그럴수 밖에 없는 것은 필연적 현상이다.동아시아 문화전파 루트가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이어졌다 해도,이식과정에 변하고 발전했다. 역사란 말 히스토리(history)의 본래 뜻은 탐구라고 한다.그러고 보면 우리 자신은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한 탐구가 부족했는지도 모른다.영국의 사학자 L B 내미어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윤곽이 아니면 내용이 보이는 미세한 부분」이란 그의 말은 사뭇 교훈적이다.우리는 금동향로에서 윤곽도,미세한 부분의 내용도 제대로 못 들여다 보았기 때문이다. ○미세한 부분까지 탐사를 그 책임은 우선 발굴을 담당하고 유물을 관리했던 고고학분야 종사자들에게 있다.우리나라 고고학계는 그동안 유물 자체에만 매달려 큰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오류나 저지르지 않았는지….유물만을 다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 이른바 「기술의 고고학」을 어느 정도는 경계할 부분이 아닌가 한다.「기술의 고고학」도 고고학 연구에서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너무 기울다 보면 고고학이 무미건조한 학문으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가 홀로 서서 문화유적을 발굴한지도 반세기가 넘었다.광복 이듬해인 1946년 경주의 신라고분 호우총을 시작으로 50년동안 1천300여건의 유적을 발굴했다.지금 이 시간에도 경남 진주 남강댐 상류 등 여러 지역에서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역사를 생각할 줄 아는 고고학자가 아닌,단순한 발굴기술자 손으로 발굴이 이루어지는 지역은 없는지 궁금하다.
  • 원측 스님을 찾아/송상용 한림대 사학과 교수(굄돌)

    중국 내륙에 있는 서안은 2천여년에 걸쳐 열한 왕조의 수도였던 중요한 도시다.그곳은 일찍이 비단길의 출발점이었고 동서문화의 교류는 당나라때 절정에 이르렀다.뿐만 아니라 서안사변 같은 현대사에서 뺄수 없는 사건도 여기서 일어났다. 그러기에 오늘날 서안은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다.관광객들은 진시황릉과 세계 8대 기적의 하나라는 병마용,그리고 양귀비가 목욕했다는 화청지를 어김없이 돌아본다.그러나 당의 고승 현장이 불경을 번역한 대안탑과 그의 제자 원측에 관심을 갖는 한국관광객은 많지 않다. 신라 왕족으로 알려진 원측은 7세기 초 당에 유학해 유식사상을 공부했다.그는 여섯나라 말에 능통했고 불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책임자였다.원측은 방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경쟁자 규기의 시기를 받아 이단시되었고 저술의 일부가 전할 뿐이다. 서안에서 50리 떨어진 흥교사에 원측의 사리탑이 있다.두번째로 서안에 간 기회에 택시를 달려 아무도 없는 측사탑 앞에 섰다.40년전 박종홍선생이 처음 시작한 한국철학사 강의에서 원측의 사상을 들었을 때의 감격이 되살아났다.그런데 절을 둘러보다가 일중불교친선비를 발견하고 놀랐다.현장과 원측이 일본 불교계의 존경을 받는다지만 한국이 먼저 했어야 할 일이다. 구 동베를린에 있는 훔볼트대학의 일본학연구소는 백년전 그곳에 살았던 일본 작가의 집이다.일본 정부에서 사서 대학에 기증했다고 한다.이 연구소는 일본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한국 불교도들도 흥교사에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고승 원측을 기리는 비를 세워야 한다.그곳이 한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 다방 애환(외언내언)

    차를 마시는 장소로서의 다방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생겨난 것은 신라시대로 추정된다.경주 창림사지에서 출토된 와당에 새겨진 「다연원」이란 명문이 그 근거다. 다방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시대.이 때의 다방은 「진다」의식 등 차에 관한 모든 일을 주관하는 국가기관의 이름이었다.「진다」의식이 「다례」로 이름이 바뀐 조선조 후기엔 국가기관으로서의 다방은 유명무실해진다. 커피를 마시는 현대적 의미의 다방이 처음 선보인 곳은 독일계 여인이 1902년 고종이 하사한 땅에 세운 손탁호텔.고종은 처음 커피를 마신 한국인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꾸민 최초의 다방은 「장한몽」을 연출한 영화감독 출신의 이경손이 1928년 관훈동에 개점한 「카카추」.이후 1930년대 천재시인 이상이 「제비」 「식스나인」 등을 열어 화제가 된바 있듯이 한동안 다방은 연극영화인·화가·문인 등 예술가들이 경영하기도 하고 주요 고객이 돼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명동의 「갈채」다방 같은 곳은 한국문학사가 생생하게 만들어지던 현장이었다. 다방이 예술가나 특별한 사람들의 장소에서 대중적인 만남의 장소로 바뀐 것은 60∼70년대.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차 한잔값을 들고 세월을 보내는가 하면 연인을 기다리는 남녀가 출입문을 초조하게 지키기도 하고 가난한 대학생이 가정교사 광고를 내고 전화 오기를 기다리던 곳이었다.그당시 달걀 노른자가 들어간 「모닝」,도라지 위스키를 한두방울 떨어뜨린 「위티」 등 비싼 차를 시킨 손님은 마담과 레지의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 카페와 레스토랑에 밀리면서 다방은 쇠퇴기를 맞는다.90년대 들어서는 넓은 유리에 탁 트인 공간의 커피전문점이 등장하고 기존 다방들은 갈곳 없는 노인들의 장소가 돼버렸다.다방업중앙회가 「다방」이란 간판을 「휴게실」로 바꾸기로 했다 한다.한국만의 독특한 다방문화가 이렇게 막을 내린다.세태 변화의 결과지만 최소한의 여유마저 잃은듯 해 섭섭하다.
  • 불교성지 네팔 룸비니·인도에 대규모 한국사찰 세운다

    ◎대각사 용성 스님 문도회 중심 추진/룸비니 국제사원구역에 대웅보전 25일 기공/인 부다가야·녹야원 등에도 10년내 건립계획 한국의 불교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 국제사원구역에 네팔 최대규모의 법당을 세우고 인도의 불교 4대성지에 대규모 한국사찰을 건립한다. 서울 종로구 봉익동 대각사(조실 불심도문 스님)는 오는 25일 네팔 룸비니 현지에서 해외사찰인 대성석가사(주지 법신 스님)의 대웅보전 기공식을 갖는다. 이 대웅보전은 오는 3월 완공될 연건평 1천500평의 요사채에 이어 세워지는 것으로,2천556평 규모의 3층(1층 1천66평,2층 780평,3층 480평,옥상 280평)구조를 하고 있으며 총 공사비 4억5천여만원이 투입된다. 대성석가사는 지난 95년5월 네팔정부와 룸비니동산의 국제사원구역에 2만평의 대지를 99년간 임대차 계약을 맺고 그해 12월 7백여평의 요사채를 준공한 이후 1년2개월만에 대웅전을 기공하게 됐다. 이번 기공식에는 네팔 교육부장관,유엔 룸비니 국제사원개발위원회 록다산 고문과 현지주민,한국인 성지순례단등 1천여명의 네팔인과 한국인이 참석해 역사적인 대웅보전의 건립을 축원할 예정이다. 대성석가사는 대웅보전을 오는 2003년께 완공할 계획이며 이밖에도 제2요사채의 건립과 강원과 율원,선원,국제회의장,승려와 신도 숙소,식당,휴게실 등 10여개의 건물을 만다라 형식으로 짓게된다.경주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재현한 석탑과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연못과 석교 등 한국의 전통사찰 형식으로 탄생할 이 건물들은 네팔의 새로운 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네팔의 대성석가사가 모두 완공되는 2005년에는 3천여명의 동시 숙식이 가능해져 그동안 이곳을 찾을때 일본이나 태국,티베트,미얀마,스리랑카의 사찰이나 호텔에 묵는 등 불편을 격어온 한국불교도들의 성지순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각사는 또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인도의 부다가야와 최초로 설법한 녹야원,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원정사,열반지인 구시나가라 쌍수원등에 각기 1만평의 대지를 구입,앞으로 10년동안 현대적인 한국절을 지어 한국의 신도와 승려들을 위한 숙소로 제공할 예정이다. 네팔과 인도의 대성석가사 건립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중 한 사람인 대각사주지 용성 스님이 『세계화시대가 되면 불교의 성지를 한국불교계가 주도적으로 가꾸라』는 유훈을 남긴데 따라 용성스님문도회가 중심이 되어 추진되고 있다.용성 스님의 법제자인 불심도문 스님은 『우리 국력이 세계적으로 성장했는데도 불교성지에 한국의 절이 없어 신도들이 우리나라보다 못한 나라의 절에 숙식하는 등 불편하고 부끄러운 점이 많았다』면서 『1천6백년 전통의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리고 부처님법을 온 인류가 실천하는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사찰불사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시집에도 없는 1945∼55년 작품/잊혀진 미당의 시 15편

    ◎국문학자 최현식씨,「밤」·「눈」·「통곡」 등 논문서 소개 「민족 방언의 요술사」「어떤 말이나 붙잡아 놀리면 그대로 시」라는 한국시의 최고봉 미당 서정주씨(82)의 시가운데 시집을 통해 접할수 없었던 시들이 새롭게 발굴됐다.국문학자 최현식씨(연대 박사과정)가 2월 창간될 계간 「한국문학평론」에 기고한 논문 「전통의 변용과 현실의 굴절」을 통해 지난 1945∼55년 발표된 미당의 시가운데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채 잊혀진 15편을 소개한 것. 이 시들은 「개벽」「현대문학」 등 당시 잡지나 신문등에 수록됐으나 스크랩 등 자료로 남지 않아 그의 시집이나 전집 등에 실리지 못했던 것. 새로 발굴된 작품은 「밤」「눈」「통곡」「피」「저녁노을처럼」「선덕여왕찬」「춘향옥중가(3)」「백옥누부」「곰」「그날」「깐듸송가」「팔월십오일에」「영도일지(대)」「일선행차중」「산중문답」 등.이 작품들은 41년 발표된 첫시집 「화사집」의 원죄의식에서 60년대 「신라초」「동천」 등의 동양적 윤회와 영원성으로 이행한 미당 시세계를 이해하는데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 있을것을…… 서 있을것을……//구부러져 내리는 나무 그늘에/맨발 벗고 서 있을것을//푸른 지식의 잎사귀들이/하늘에서 처럼 소근거리는/나무 그늘에 서 있을것을/오르 내리는 맥박을 세며/높았다 낮아지는 숨결을 세며/물이랑 위에 떠서 있듯이/호수운 사람으로 서 있을것을 //금줄의 근네위에 서 있을것을//누었을 것을…… 누었을것을……/어둡고 무거운 밤하늘 아래/누른 소같이 누어 있을것을/입에다 너을 여물도 풀도 없이/아귀 삭이고 누었을것을/이리도 쉽게 헤어져야할/우리들의 사랑이었더라면/만나서 반가워 소리쳐 우던 날의/통곡을 통곡을 그치지말것을!〉(통곡전문.46년 12월 「해동공론」 수록)
  • 고려시대 「개성 첨성대」 복원

    ◎국립중앙과학관,고증 거쳐 실물크기로/신라 첨성대·조선 관천대도 나란히 설치 북한 땅에 있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천문 관측 시설인 「고려 첨성대」가 실물 크기로 복원됐다. 국립중앙과학관(관장 유희열)은 11일 전상운 문화재 위원,라일성 연세대 교수 등 전문가들의 고증을 거쳐 개성에 있는 과학문화재인 「고려 첨성대」를 복원,대덕 국립중앙과학관의 옥외 전시장에 설치했다고 밝혔다. 「고려 첨성대」는 경주 첨성대,조선 시대 관천대와 나란히 설치돼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천문관측 및 과학 원리를 한눈에 볼수 있게 됐다. 개성 만월대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고려 첨성대는 위에는 간의와 해시계를,밑에는 물시계를 각각 설치해 하늘의 변화를 늘 관측했던 천문대이다.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장은 『고려시대 천문관측 기술은 서양에서 흑점을 발견한 갈릴레오보다 5백년이나 앞선 1151년,고려시대에 태양 흑점을 관찰하고 기록할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이었다』며 『이번 첨성대 복원을 계기로 청소년 및 일반관람객들의 우리 과학문화재와 전통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태복감과 태사국이라는 천문기상 기구를 설치하고 천문 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측,기록했으며 또 이를 토대로 중국에서 들여온 역서를 우리나라에 맞게 수정하고 일식과 월식을 예보하기도 했다.고려시대 천문학자들은 특히 옥돌을 얇게 렌즈처럼 만들거나 오수정을 사용해 육안으로 흑점을 관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고속전철 경주노선/조유전 국립민속박물관장(굄돌)

    그동안 4년6개월이나 지루하게 끌어온 고속전철 경주통과 노선을 확정했다고 정부에서 지난 1월28일 발표했다.경주 중심지역을 벗어난 건천 화천리로 결정함으로써 경주 남산 등지의 경관을 해치지 않고 문화재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어 다행으로 받아들여진다.지금까지 유적보호가 각종 개발에 밀려 번번이 뒷북만 친 것을 생각하면 사상 처음으로 유적보호가 개발을 이겼다고 할 수 있고,더 나아가 유적 발굴조사의 상징인 꽃삽이 국토개발의 상징인 포크레인을 이겼다는 말도 된다. 문화유산의 해에 들어와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그러나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기록에 보면 경주는 전성기에 17만8천936호가 있었다고 해 가히 인구 100만의 국제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지금의 경주시 인구는 14만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왕경지구를 중심으로 한 경주분지 내에 100만이나 붐볐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상상을 초월하는 숫자다.따라서 그 기록이 당시 신라 전체의 인구수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받아왔다. 그런데 지난 95년 건천읍사라리 낮은 구릉지에서 100기가 넘는 신라시대 무덤이 발굴됨으로써 이 기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차츰 증명되니 경주시내 뿐 아니라 외곽 어디에나 신라인들의 숨결이 땅속에서 살아 움직임을 느낄수 있다.그러므로 이제부터 새로운 문제가 산적해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우선 노선결정에 따른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가 급선무이다.또한 울산을 의식해서 새로운 역과 동해남부선을 전철로 잇고,다시 고속전철 노선에 연결시켜 화천리 역사를 통합 역사로 하기로 했다는데 이 새롭게 설치될 노선의 매장문화재 대책도 서둘러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또다시 개발이나 보존이냐 하는 지루한 싸움없이 순리대로 될 것이다.기우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 중앙개발 허태학 사장에게 듣는다/“산업선진화 요체는 서비스정신”

    ◎청결·친절한 일 Win­Win문화 본받을만 중앙개발 허태학 사장에겐 지난해가 생애 최고의 해였다.쏟아지는 상복에다 지난해말 그룹인사에서는 전무에서 사장으로 2단계 발탁승진,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중앙개발은 한국능률협회 주최의 고객만족경영혁신전국대회에서 95년 최우수상에 이어 96년 대상과 최고경영자상을 받았다.문화체육부가 주관한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대상을 2년연속 수상했고 관광진흥촉진대회에서는 동탑산업훈장까지 받았다. 허사장에겐 서비스조련사·전도사라는 별명이 붙어다닌다.「허태학 서비스론」은 서비스업계에 잘 알려져있다.그는 기자를 만나자 『언론이 서비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큰 변화』라며 반겼다.그리고는 「서비스론」을 일갈해 나갔다. 『서비스 선진화없이 산업의 선진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레저서비스 산업을 이대로 방치하다간 소득 1만달러,2만달러 시대에 국민들이 모두 외국으로 나가고 말 것입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고 선진국이 되는게 아닙니다.우리는 수직문화에 익숙해 서비스라는 개념이 정립돼있지 않아요.딱딱하고 뻣뻣합니다.좋게 말해 삼강오륜이지 유교문화,군사문화의 권위주의적 잔재가 남아있습니다』 허사장은 『관심과 배려를 베풀고 칭찬과 격려를 나누는 Win­Win,Give & Take의 상생문화가 조성돼야 한다』며 『이같은 문화를 만들어낼수 있는 산업이 서비스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서비스산업의 부가가치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서비스산업은 부가가치 창출시장입니다.왜 관광객들이 일본을 찾습니까.일본이 청결하고 친절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은 것은 바로 Win­Win문화때문입니다』 「상대방과 더불어 기쁨을 느끼는 서비스」 허사장이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서비스의 질이다. 테마파크 에버랜드엔 연간 1천만명이 찾는다.때문에 각계각층의 고객을 만족시킬수 있는 고객응대서비스가 테마파크 경영의 요체다. 『변화의 물결은 불특정다수가 많이 찾는 테마파크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청결 질서 상호존중의 마인드가 직장과 가정,사회에 깊이 뿌리박혀야 선진화될 수 있습니다』 그의 서비스론은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가 할법한 얘기같다.허사장은 경상대 농학과를 졸업,69년 중앙개발에 입사했다.호텔신라에 25년간 근무하다 93년 11월 중앙개발 대표이사에 취임한 뒤 경영개혁을 주도해왔다.
  • 백자철화 인형명기 부부상(한국인의 얼굴:94)

    ◎큰 충격에 망연자실한 남정네/아낙은 영문모른채 ‘휘둥그래’ 조선시대 도자공예에는 명기가 있다.여기서 명기는 도자기 인형을 말한다.죽은 이들의 내세를 위해 무덤에 넣어주는 껴묻거리인 것이다.어두운 무덤속으로 들어간 기물이었을지라도,밝은 내세를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그 역사는 제법 오래되어 신라에서는 흙인형 토우나 토기를 명기로 썼다.그리고 고려 사람들은 청자그릇을 무덤에 묻어 먼저 간 죽은 이들의 저 세상을 걱정해주었다. 조선시대에 도자로 구워낸 명기는 16∼17세기 무덤에서 주로 나오고 있다.이 시기는 백자철화가 유행했던 때여서 백자철화인형명기가 주류를 이루었다.또 실제 전해오는 인형명기도 철화계통이 많다.철화백자는 산화철 무늬가 들어간 백자다.쉽게 말하면 무쇠의 녹으로 무늬를 그려넣은 백자인 것이다.그래서 무늬의 빛깔은 이른바 고동색이라는 적갈색을 띠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자철화인형명기는 철화를 효과적으로 응용한 도자공예다.이 철화명기는 남녀 두 쌍에 홀로 선 문관상이 한 세트를 이루었다.이들 다섯 인형의 키는 6.6∼8.7㎝에 불과했다.그렇듯 키가 작은 인형들이지만,표정은 살아있다.더구나 가운데 끼인 인형 한 쌍의 얼굴에는 다른 인형들에 비해 감정이 폭넓게 드러났다.표정이 풍부하기로 말하면 만점인 것이다. 한 쌍의 인형은 부부인 듯하다.상투머리를 한 남정네는 두 손을 맞잡고 허리를 약간 굽혀 읍하는 자세로 서 있다.귀와 눈두덩,인중과 턱은 코와 함께 덧붙여 얼굴 윤곽이 질감있게 표현되었다.인중과 턱이 유별나게 긴 남정네는 입을 벌렸다.그냥 헤벌린 입이 아니고,큰 충격을 받아 망연자실한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한 상태다.눈은 동공만을 동그랗게 그렸다.그래서 놀라는 눈이 되었다. 아낙은 아무 영문도 모르면서 그저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놀라워하는 남정네 기색에 그만 놀란 것일까.아낙은 남정네 얼굴을 살피고 있다.남정네가 그토록 놀라워하는 까닭을 아낙은 곧 알아차릴 것이다.어떤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을….그리고 북망산한 자락 땅속으로 들어갈 주인과 운명을 같이 했을 것이다.그렇게 명기는 죽은 이와 더불어 무덤으로 갔다. 이들 인형명기의 표정은 철화,또는 철채라는 색깔이 좌우했다.백자 바탕에서 고동색 철화무늬가 꽃피었던 16∼17세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시기다.
  • 경영자총연합회 연찬회…「변혁기 한국기업의 선택」주제 강연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변혁기에 직면한 한국기업의 선택」이라는 주제로 제20회 전국경영자연찬회를 개최했다.차동세 한국개발원장(KDI)의 「97년도 세계경제전망과 한국경제의 진로」,박태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의 「OECD가입에 따른 한국기업의 당면과제」주제강연을 소개한다.연찬회는 31일까지 열린다. ◎“경상적자 축소·구조개선 노력 병행해야”/수입억제·수출기반 확충을 ▲차동세(KDI원장)=올해 세계경제는 시장경제전환국의 성장회복에 힘입어 지난해의 2.6%에 비해 확대된 3.0%수준의 성장이 기대된다. 선진국은 2.0∼2.5%의 견조한 성장세가 예상된다.아시아 개도국은 엔화약세에 따른 수출부진으로 소폭의 성장둔화가 예상되나 남미와 동구권 개도국의 경제회복으로 개도국 전체로는 6%안팎의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교역량은 선진국의 수출증가 및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교역확대에 따라 7%를 넘는 증가세가 예상된다.국제원유가격은 소폭의 하락세를 보이면서 배럴당 18∼19달러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전망된다.95년 하반기이후 큰 폭으로 상승했던 곡물가격은 쌀과 음료를 중심으로 소폭 상승세를 보이겠지만 전체적으로 기타 원자재 가격은 대체로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엔화에 대한 미 달러화의 강세기조는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미국이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소폭 인상할 가능성이 있는데다 일본이 경기회복을 위해 저금리정책을 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마르크화도 독일의 경기회복을 위한 금리하락과 함께 경상수지적자가 지속되면서 완만한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운영은 경상수지적자 축소와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면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개선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거시정책을 운영하는데 있어서는 총수요관리를 통해 수입수요를 억제하고 물가안정 기반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 경상수지적자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수입수요를 억제하고 개도국 및 시장경제 전환국 시장에서의 수출기반을 확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이와 함께 유가를 포함한 에너지가격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하고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생산체제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세제상의 유인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사치성 과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음성·탈루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건전소비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금융기관간 업무영역을 확대,경쟁여건을 조성하고 자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OECD가입으로 본격화될 금융산업개방에 대비해야 한다. 노동법 개정 이후의 고용불안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기적인 고용안정 방안을 마련,추진할 필요가 있다.고용보험의 실업수당 지급범위를 확대하고 실업자에 대한 직업훈련 및 취업알선 등 직업안정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시장 개방을 포함한 전반적인 경제개방은 향후 수년간 우리 경제에 상당한 구조적인 충격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개방의 충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 내부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며 특히 요소시장의 구조개선은 매우 시급한 과제로 평가된다. 구조개혁의 성과는 시간을 두고 나타난다.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구조개선 노력을 지속할 경우 우리 경제는 수년안에 경쟁력을 회복하고 보다 견실한 성장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이러한 구조개선 노력을 결집하는데는 정부의 리더십과 함께 앞으로는 기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R&D 투자로 경쟁력 강화 ▲박태호(KIEP부원장)=OECD가입은 우리 기업에 민간중심의 경제활동이 시장경제원리의 바탕하에 보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시사한다.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로 통합돼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또 우리의 정책,제도,관행이 국제규범과 기준에 부합돼 감에 따라 특정산업에 대한 지원이나 보호,수출보조금의 지급 등은 이제 더 이상 정부의 정책수단으로 남아 있을수 없게 된다. 이러한 대내외 경제여건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의 자세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돼야 할 것이다. 첫번째 과제는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이다.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서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R&D 투자를 통한 신상품 및 신기술 개발,경영혁신 및 인력개발,제품의 품질제고 및 안전강화,세계적 상표개발 등을 통해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는 우리 기업들도 기업차원의 대외경제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거대 신흥시장으로부터의 이윤과 무역흑자를 과감히 R&D활동에 투자,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향상시켜야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또 선진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자본재 및 중간부품의 국내생산을 위하여 관련 기술을 보유한 외국기업과의 합작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세계경제의 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략적인 차원에서 해외투자를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해외투자의 경우 기업과 공장의 신설보다 외국기업과의 합병·인수(M&A)가 더 유리할수 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셋째 거시경제 및 국제경제 변수의 유동성 증대에 따른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외환 및 자본이동의 자유화 확대는 물가,이자율,환율 등 거시경제 변수의 유동성을 증대시킬수 있으므로 이에 따라 발생할수 있는 기업의 위험을 극소화시키는 기법을 갖추도록 해야 할것이다.특히 환율변화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수 있도록 외환선물시장을 적절히 활용해야 할 것이다.동시에 국제자금시장에서 선진기법을 통한 자금구입으로 비용을 절감시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최근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파행적인 M&A행태에 대해서도 방어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넷째 새로운 통상이슈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지적재산권의 철저한 보호,대외공신력을 제고시켜야 하고 생산 및 제품소비 등에 있어서 환경친화적인 방식을 개발하는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공여방지와 이전가격과세 등에도 대비해야 하고 우리 기업의 관행 및 회계관리도 국제규범에 부합되도록 투명하게 해야 한다. 다섯째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생산체제가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때 고품질의 부품을 저가에 적시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관련 중소기업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밖에 업종전문화,동반자적 노사관계,정보화시대에대한 대비,소비자를 중시하는 기업환경 조성 등이 필요하다.
  • 경부고속철 경주노선 확정 안팎

    ◎화천리노선 다른안 비해 문화재 훼손 적어/4년6개월 논란 종지부… 경비 2800억 절감 경부고속철도 화천리노선은 단석산과 벽도산 사이에 역사가 위치한다.가장 우려했던 문화재의 경우 신라시대 8건,고려시대 이후 2건 등 10건이 분포,다른 대안노선(방내리·안심리·덕천리)보다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노선연장은 58.9㎞로 당초의 형산강노선보다 9.1㎞가 더 짧다.사업비도 1조5천9백억원(96년 기준)으로 형산강노선보다 2천8백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공사 때문에 옮겨야 하는 노선 인접 50m 이내의 집은 315가구뿐이어서 부지확보가 용이하다.특히 경주 우회도로가 계획돼 있어 국도의 교통연계가 양호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천인터체인지와의 접근도로 신설이 쉽다. 또 고속철도 역사와 기존철도(중앙선·동해남부선)와의 연계성도 있고 남북방향으로 개괄지가 넓게 분포,개발 가능성도 높은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정차장의 직선구간 3㎞를 확보하기 위해 역사입지 좌우에 있는 산의 일부를 깎아내야 하는 등 시공상 어려운 단점이 있다.
  • “민족의 성산 태백은 지금 만산설화”/한겨울 산행 정취 만끽

    ◎26일까지 눈꽃축제… 다채로운 행사/주목 군락·용담계곡 등 비경이 손짓 만산설화.태백산은 지금 온통 눈꽃 일색이다.봄의 신록과 가을단풍 못지않게 설경이 비경을 연출하고 있다.때를 놓칠세라 태백산에서는 지금 눈꽃축제 행사가 한창이다. 「태백은 한밝이니 대광명이라.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의 중추에 우뚝솟아 반도이남의 산맥을 거느리고 강하를 발원하니 우리국토의 뿌리다.」(태백산 정상 비문 가운데서) 이러한 민족의 성산 태백산으로 가 한겨울 산행의 정취를 만끽하고 눈꽃축제에도 어울려 흥취를 높여 볼만도 하다. 태백산 눈꽃축제는 오는 26일까지 이어진다.24일에는 도립공원에서 대학생 및 주한미군과 일본인 등 20여개팀이 참가한 눈조각 경연대회가 열리고 행정기관 및 기업체 33개팀이 참가한 시민 눈조각 경연대회도 벌어진다.이어 KBS 태백방송국 주최로 눈꽃아가씨 선발대회도 겸해진다. 25일에는 KBS 전국노래자랑 프로가 진행되고 26일에는 도립공원에서 눈썰매대회·눈사람만들기대회가 열리며 장군봉∼천제단∼당골광장 코스에서 전국등반대회가 개최된다.또 태백관광호텔에서는 26일까지 에스키모 조각전이 열려 에스키모 조각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태백산 눈꽃 축제는 한라산 눈꽃 축제와 함께 겨울 눈축제의 쌍벽을 이룬다. 눈꽃 축제에 참여하면서 태백의 절경을 둘러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꼭 가볼만한 곳 몇군데를 소개해 본다. ▷천제단◁ 1천567m의 정상에 20평가량의 돌제단이 세워져 있다.삼국사기에 왕이 친히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신라에서 오악 가운데 태백산을 북악으로 받들어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다고 적혀 있다. ▷주목 군락지◁ 「살아 천년,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은 태백산의 대표적인 수종으로서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한다.정상부근 및 계곡 일대에 4천여그루가 널려 있으며 나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고목들이 유구한 세월따라 태백산을 지켜오고 있다. ▷천횡(황지)◁ 낙동강 1천300리의 발원지로서 이못에서 솟아나는 물은 드넓은 영남평야를 도도하게 흘러간다. ▷검룡소◁ 한강 514㎞의 발원지로 이곳에는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한강 줄기를 거슬러 올라와 용이 되려고 머무르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용담◁ 당골계곡 입구 청원사 경내에 있는 연못으로 둘레가 100m이며 홀어머니가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 노루 쫓는 까마귀떼… 제주로 몰렸나(박갑천 칼럼)

    까마귀를 좋게 말한 기록들은 많다.「삼국유사」도 그렇다.사금갑조에 신라비처왕(비처왕:소지왕)때 까마귀가 못속에서 나온 노인에게 왕을 안동하고 그노인이 준 글에 따라 거문고갑을 쏨으로써 환난을 면한다. 그책의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에도 「까마귀오오」자가 들어있다.어느날 그들은 바위(혹은 고기)에 실려 일본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일본설화 아메노히보코(천일창)얘기와 통한다.중국사람들은 해에 세발달린 까마귀가,달에는 토끼가 산다고 믿었다.그래서 오토를 세월이란 뜻으로 쓰는데 그영향을 받은 설화인지도 모른다. 까마귀를 이르는 자오네 효조네 하는 것부터가 호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다.반포지효나 오조사정같은 말들이 새끼때의 어버이은혜 갚는 까마귀마음을 가리키면서 쓰는 것과 맥이 같다.이에 대해서는 거짓말이라는 현대적 해석도 따른다.까마귀가 다른 상대방한테 먹이를 주었다면 그건 오직 수컷이 암컷한테 부린 간살이라는게 「정밀관찰」한 콘라트 로렌츠 박사의 말.오지자웅이 까마귀의 암수를 구별 못한다는 뜻이라 할때 옛사람들이 어찌 까마귀의 「어미­새끼」를 구별했겠나 싶기도 하다. 검은 색깔로 해서 하얀백로에 비겨 한풀 꺾여오는 까마귀.그건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고 읊은 정몽주 어머니 생각만은 아니었다.『까마귀 학이 되랴』하는 속담도 그생각의 줄기를 잇는다.본디 못되게 태어난 사람은 끝내 그버릇 못고친다는 뜻으로 까마귀를 끌어대는것 아닌가. 더구나 까마귀는 사람주검을 쪼아먹는 살똥스런 흉조로 알려진다.그래서 『까마귀밥이 된다』는 속담은 주인없는 주검을 이른다.월탄 박종화도 그의 수필 「황새와 까마귀」에서 까마귀를 언짢게 보고있다.6·25가 터지자 웬일인지 까마귀떼가 서울하늘을 까맣게 뒤덮더라니 야릇한 일이다. 눈내린 제주한라산 어리목광장에서 까마귀와 노루의 싸움이 벌어진다 한다.관리사무소가 노루들위해 뿌려놓은 먹이를 두고.순한 노루는 수백마리 까마귀떼의 소드락질을 못당해내고 자닝스레 쫓겨난다는 것이다.까마귀가 몸에 좋다하여 값비싸게 거래된다던데 그때문에 제주로들내뺐나.꿩사냥아닌 까마귀사냥이 제주로 몰려들법하다.〈칼럼니스트〉
  • 「통일전망」 특강 요지/로버트 갈루치

    ◎“유연한 대북관계로 「통일의 길」 열어야”/민주·시장경제체제 「통일한국」 더 강해질것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핵대사(조지타운대 국제관계대학원 원장)는 10일 조지타운대 한국동창회(회장 김석동)초청으로 신라 호텔에서 열린 학술세미나에서 「대북한 관계및 통일전망」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다음은 강연 요지이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사람들은 한반도에 대해 회의적,냉소적인 태도를 많이 보인다.대북협상중 한국을 방문했을 때나 이번에 한국에 도착했을때 많은 질문을 받았다.협상에서 미국이 북한에 어떤 양보를 할 것인지,경수로건설시 한국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나 않은지,미국이 최근 북한의 잠수함사건을 사전에 알고도 한국에 대한 경고를 간과한 것은 아닌지,북한정권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미국이 너무 많은 노력을 하는것 아니냐는 등의 질문을 받았다. 21세기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이해관계는 무엇이고 미래 대한반도 관계는 무엇인가.이것은 미국의 광범위한 이해관계의 틀 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미국은유럽과 중동·아시아에서 강력하고 독립적이고 민주적이며 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는 국가를 원한다.과거 미국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싸움을 벌인 것,그리고 최근 페르시아만에서의 전쟁은 모두 이 목적을 위해서였다.세계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지정학적·전략학적으로 미국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유럽과 아시아 지역이었다.미국은 이 두지역에서 동맹관계를 구축하고자 노력을 해왔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통한 방법으로 접근했다.동맹관계의 가장 큰 목적은 소련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 동맹관계는 미국과 동맹국에 이익을 가져왔다. 이제는 동맹의 적이 사라졌다.러시아와 중국,어느나라도 동맹의 적이 아니며 미국은 이들 양국을 봉쇄할 생각이없다.오히려 이들이 서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동맹관계는 아직도 가장 훌륭한 방어체제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이러한 거대한 동맹관계속의 한 부분이며 북한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북한은 당장 남한의 위협적존재가 되고 있다.또 앞으로 남북이 통일되더라도 미국은 강력하고 민주적이며 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하는 한국의 존재가 아·태지역의 안보체제 유지에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따라서 미국과 한국간의 동맹관계는 상호필요에 의해 공고하게 유지될 것이며 앞으로 더욱 두나라 국민간에,정부간에 서로 신뢰를 증폭시켜 나가야 한다.지난 94년 6월 미국은 아주 실용적인 방법으로 한반도 유사시 군사행동을 통해 한국을 방어하려한 움직임을 보인적이 있다. 미국은 핵무기 확산이 미국의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라고 생각한다.핵무기 확산 위협은 과거 소련이나 중국의 핵무기 시스템보다 심각하며 미사일 역시 큰 우려의 대상이다.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능력을 주시해 왔다.미국의 관점에서 통일은 필수불가결하며 분단은 끝날수 밖에 없다.문제는 언제 어떻게 종결되느냐이다. 미국은 남한과 북한의 경쟁이 이미 끝났으며 북한의 승산은 없다고 본다.남한의 경제규모는 이미 북한의 20배를 넘었다.북한은 한국 이외에 더이상 의존할 나라가 없다.북한에대한 미국의 접근방법은 단기적으로 최악의 사태인 북한의 파국을 방지하고 한국의 방어를 추구하는 것이다.한국 방어와 관련해서 미국의 입장에 모호한 점은 절대없다.현시점에서는 제네바 기본협약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통일로 가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통로마련이라는 측면에서 북한의 연착륙과 경착륙이 생각되는 것이며 대북관계의 유연성을 유지,이 통로를 따라가면 통일로 갈 수 있다. 북한체제에 대해 동조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대북관계에서 적대감을 증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통일로 가는 통로가 마련되지 않아 북한이 따라 올 길이 없으면 위험하게 된다.미국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미국의 목표는 한국의 목표와 일맥상통한다.동맹관계와 우호관계가 공고하며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대북관계를 지원하려 한다.통일한국이 민주정부와 시장경제체제하에서 탄생된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정치·경제적으로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 국악인 정재국(이세기의 인물탐구:117)

    ◎흥을 부르는 한을 삭이는 피리명인/타고난 음감으로 태평소·정악피리 법통이어/대쟁·삼현삼죽 등 옛악기 발굴 재현에 심혈 「…겸내취 거동 보소/초립위에 작우꽂고 누런 천익 남전대에/명금삼성한 연후에,고동이 세번 울며 군악이 일어나니,엄위한 나발이며/애원한 호적이라/정기는 표표하고 금고는 당당하다/한가운데 취고수는,흰 한삼 두 북채를 일시에 수십명이,행고를 같이 치니/듣기도 좋거니와 보기에도 엄위하다」 ○14세때 국비장학생 입소 이는 조선왕조 24대 헌종때 한산거사가 지은 「한양가」중 대취타 행차를 그린 대목이다.아명은 「무령지곡」.대취타는 궁궐에 속한 일종의 군악대로,나팔 나각 태평소(속칭 날라리)와 자바라 용고 장구 징을 신나게 두드리며 행진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임금의 능행이나 외국사신이 왔을때 악대와 임금이 탄 어가를 앞세우고 수백필의 말을 탄 호위병들이 일렬횡대로 출궁하면 이 행렬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구경나온 이들이 다시 대열을 만들면서 장안은 온통 잔치분위기에 휩싸인다.정재국은 태평소와 함께 바로 장엄한 구군악을 이어주는 유일한 대취타 예능보유자이다. 그가 대취타와 인연을 맺은 것은 조선말기 궁중취타수 출신이던 최인서가 61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이를 재현하면서 취타수로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된다.본래는 피리를 전공하고 있었으나 「천하를 다스리는 임금의 위엄과 천하를 지키는 군악의 당당함」에 감동하여 대취타를 부전공으로 삼게 되었고 스승이 작고하기 이전인 77년에 전공인 피리보다 먼저 대취타 이수자가 되었다. 「국악」이란 말도 제대로 몰랐던 14살 되던 해 그는 「국비장학생」이란 포스터만을 보고 국립국악원 국악사 양성소에 들어갔다.시험감독이 실기로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자 그는 거침없이 「산타루치아」를 불렀다.국악사 양성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도 몰랐으나 1년이 지난 후 스승인 김준현이 연주하는 피리소리를 듣고 「모창사비곡)」에 나오는 「뼈색이는 피리소리」와 「벽지에 서린 각혈의 피무늬」를 실감하면서 그때로부터 그의 입에서는 피리가 떠날 날이 없었다.이어지는듯 끊어지는듯 굵고 가늘게 흘러나오는 소리는 달밤에 불면 「달빛이 피리소린지 피리소리가 달빛인지」 분간할수 없을만큼 단장의 애원성으로 사람의 폐부를 찔렀다.남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로서는 피리소리 자체가 그의 회포이자 긴 회한일 수밖에 없었다. ○7개의 태평소곡목 완주 곧잘 「황계 수탉의 울음소리」에 비유되는 정악피리는 당당하고 전아한 맛을 내면서도 떨림과 잔음,꺾임의 기교를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온몸으로 불어야만 제맛이 나게 마련이다.초기에는 너무 거세게 호흡을 넣어 「다리에 앓던 종기가 툭 터져버릴 정도」였으나 10년이 지나도 결코 성음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피리를 배운지 15년만인 72년에 그는 피리주자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명동 예술극장에서 피리독주회를 열었다.이 연주를 본 국악작곡가이자 가야금의 명인인 황병기 교수(이대)는 『그날 선보인 향피리독주의 「자진한잎(염양춘)」중 「우조두거)」와 「계면두거」에서 정재국 특유의 꿋꿋하고 시원한 음색과 무르익은 농음의 멋을 만끽할 수 있었다』고 호평했다.『특히 피리의 기교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계면두거」에서 그의 연주는 단연 일품이었다』는 단정은 스승들이 작고한 이후여서 그를 당장에 피리주자의 선두에 서게 했다.「두거」란 「처음에 소리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81년 두번째 독주회에서는 스승인 최인서로부터 전수받은 7개의 태평소 곡목을 완주해 보였다.느리고 장중한 소리인 태평소는 「종묘제례악」 「구군악」 「농악」에서 연주되며 무대에서는 흔히 연주되지 않으나 그는 느린 「구군악」과 「긴 염불」로부터 흥겨운 「굿거리」를 거쳐 몹시 빠른 「능게휘몰이」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곡목을 능숙하게 연주하여』 태평소음악의 진수를 펼쳤다.일찍이 옛음악과 악기에 관심이 많던 언론인 예용해씨는 단정하게 연주에 몰두하여 천언만어를 뇌는 그의 「장엄」과 「비율」을 향해 「태평소와 정악피리의 법통을 잇고있는 천하명인 정재국」이란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는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으나 6·25가 나기 전에 부모를 여의고 남동생과 손위 누나와 함께 서울에 올라와 큰집에 얹혀살았다.혜화국민학교 졸업후 2년동안 집에서 놀면서 갖은 슬픔을 겪었으나 『지난날 고생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이루 말할수 없는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는 말로 그늘진 지난날을 덮어버린다. ○아들도 아쟁연주자 활동 그런중에도 62년 첫 미국연주길에 나섰을 때는 종족음악과를 시설한 UCLA에서 강의를 맡아줄 것을 권유하여 하마터면 「미국대학교수」가 될뻔한 적이 있고 70년 결혼할 당시 「피리부는 사람」에게 딸을 줄수 없다고 완강하게 반대하던 장인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말한다.부인 남궁효근씨와의 사이엔 남매.단국대를 졸업한 아들(계종)이 국악원 아쟁연주자로 있다. 그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고 유순하며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반듯한 학자」풍이다.타고난 음감과 정열적인 노력으로 독주에서는 별로 빛나지 않는 피리와 태평소·생황을 연주하면서도 돈이 되는 것을 연주하거나 시속단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예술감독이 된 지금도 박을 잡고 지휘하기보다는 일반단원들 틈에 끼어앉아 피리불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에도 대쟁·비파·중금등 이미 사장된 악기를 발굴하여 재현 초연했으며 앞으로는 신라시대의 「삼현삼죽」 등 옛악기를 하나하나 되살린다는 각오가 대단하다.그러나 정도만을 고집하면서도 낡은 것을 고집하지 않고 국악의 활성과 발전을 위해서는 민속악과 정악을 고루 수용한다는 자세다. 향피리가 산들바람이라면 태평소는 태풍같은 소리다.그의 가락은 흥을 부르고 한을 다스리면서 우리에게 여백과 평정을 나누어주고 민족적 자존심으로 남아 앞으로도 유장하게 아름다운 선율을 이어갈 것이다. □연보 ▲1942년 충북 진천 출생 ▲56년 국립국악원부설 국악사양성소 국비장학생으로 입학 ▲62년 국악사양성소 졸업(정악피리 김준현·대취타 최인서·생황 김태섭·민속악 이충선·무용 김보남·국악이론 성경린 김기수·정가 이주환 사사),미주지역 6개월간 순회연주 ▲66∼78년 국립국악원 국악사 ▲72년 국내최초의 피리독주회(명동예술극장) ▲74년 베를린예술제 참가 연주(베를린필하모닉홀) ▲74년부터 이대 및추계예대 출강 ▲76∼현재 「종묘제례악」 집박 ▲77년 궁중취타수 최인서 이수생 ▲79년 공산권 유고공연 ▲81년 피리·태평소 독주회(국립극장소극장) ▲8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대취타 준문화재 지정 ▲83∼92년 국립국악원연주단 악장(수잡이)역임 ▲86년 아시안게임행사 대취타 지도 ▲88년 서울올림픽 대취타 지도 ▲89년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수료 ▲9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대취타예능보유자) 지정,「일요명인명창전」 피리독주회,미국 현대음악협회초청 뉴욕·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3개도시등 해외연주 40여회 ▲95∼현재 국립국악원 예술감독 ▲96년 정악연주단 「전통음악연주회」 및 국악대향연 등 연간 150여회 〈음반〉 「정재국피리독주(정악 민속악 창작곡)」출반(성음 및 서울음반) 〈저서〉 「피리구음정악보」(83년) 「피리산조」(94년) 「대취타」(96년·은하출판사) 〈수상〉 KBS국악대상(83년) 문화포장(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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