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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 경주문화엑스포 앙코르와트서 열린다

    내년에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열리는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06’이 한국과 캄보디아 수교 1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으로 추진된다. 19일 경북도에 따르면 캄보디아를 순방 중인 이의근 경북도지사가 이날 캄보디아 속안 부총리를 만나 ‘앙코르-경주세계엑스포’ 공동 개최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와 속안 부총리는 ‘앙코르-경주세계엑스포’를 양국 수교 1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한다는 데 합의하고 시기는 내년 11월쯤 앙코르와트 일원에서 50일 이내의 기간동안 열기로 했다. 경주엑스포조직위가 행사운영을 맡고 캄보디아정부는 행사장 부지제공과 주변 치안 및 질서유지를 하며 행사 예산은 양측이 공동 부담키로 했다. 속안 부총리는 환영사를 통해 “‘앙코르-경주세계엑스포’ 성공을 위해 정부지원위원회를 구성하고 국가상공회의소를 비롯한 민간 차원에서도 적극 참여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의근 지사는 “앙코르-경주엑스포는 1000년을 넘게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했던 앙코르제국 문화와 한국의 신라 1000년의 문화가 만나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은 물론 두 나라사이의 우호 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대구 한찬규기자cghan@seoul.co.kr
  • 해상왕 ‘장보고’ 생생한 발자취

    통일신라시대 동북아 해상권을 장악한 청해진 대사 장보고 장군을 주제로 한 특별전이 국내 최초로 마련됐다. 특히 장보고가 당시 일본·중국 등과 무역하면서 교류한 해외 교역품들도 함께 전시돼 역사학적으로 의미가 크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과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는 해상왕 장보고와 관련된 국내외 유물 200여점을 한자리에 모은 ‘신라인 장보고-바닷길에 펼친 교류와 평화’특별전을 18일 전남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서 개막,12월18일까지 계속한다. 그동안 장보고에 대한 유물들이 일부 전시회에 등장한 적은 있지만, 장보고를 주제로 한꺼번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최근 관심이 더욱 높아진 장보고의 실체를 고고학적인 자료와 문헌기록, 해양교류사 연구업적 등을 통해 유형화(有形化)하는 첫 시도로 풀이된다. 특별전에는 문관복을 착용한 장보고 인물도(圖)및 복원된 갑옷, 투구, 칼, 활 등과 함께 전남 완도 청해진유적에서 출토된 방어용 목책(木柵)과 청동병, 제주 법화사지·흑산도·경주·부여·익산 등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시대 대중국 교역관련 유물들이 전시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장보고 시대에 일본 교역의 중심지였던 후쿠오카 대재부·홍려관 유적 출토 교역품인 신라도기호(陶器壺)와 중국·이슬람 도자기 등 29점이 한국을 처음으로 찾는다는 것. 당시 한·중·일 및 이슬람 등의 무역 형태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이 이슬람과도 직·간접적으로 교류했다는 증거가 되는 교역품들을 볼 수 있다. 또 이창억 울산과학대 교수가 국내 처음으로 고증을 거쳐 설계한 ‘장보고 무역선’이 실제 크기의 10분의 1 규모인 3m로 제작돼 전시된다. 해양유물전시관 김성범 관장은 “일본 규슈역사자료관, 후쿠오카시교육위원회 등과 접촉해 처음으로 장보고 관련 일본 소장 유물을 대여, 전시하게 됐다.”면서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했던 장보고의 개방과 교류, 용기와 진취적인 정신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061)270-2000.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선조들의 밥상 구경 오세요

    ‘우리 조상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그 답을 알 수 있는 특별전시회가 부산에서 열려 눈길을 끌고있다. 우리 먹을거리의 뿌리를 찾아보는 ‘선사·고대의 요리’를 주제로 한 특별전시회가 바로 그것.17일부터 내달 18일까지 부산 동래구 복천동 복천박물관에서 한달간 열린다. 전시회는 ▲선사시대와 ▲삼한·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선사 및 고대의 취사방법 등 4부문으로 구분한 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243건의 유물을 시대별로 분류, 해당 시대의 음식재료, 조리도구, 식기 등의 특징과 음식의 변화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했다. 선사시대 부문에서는 당시 주거지와 패총에서 출토된 음식재료인 견과류와 조·보리·밀 등의 식량자원을 어떻게 가공하고 조리했는지를 볼 수 있다.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에서부터 소형 배식기, 중간 크기의 조리기, 대형 저장용기 등 다양한 토기가 전시되고, 청동기시대(1만 2000년전)에 시작된 벼농사의 증거인 쌀, 견과류 등의 저장과 조리법도 소개된다. 삼한·삼국시대에서는 광주 신창동 유적과 삼천포 늑도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용도의 조리기와 식기를 통해 그들의 밥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철솥과 놋그릇·수저·국자 등의 금속기가 정착돼 조리도구와 식기에서 우리의 전통이 확립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복천박물관은 전시회 기간에 매주 토요일 초등학생 관람객을 대상으로 ‘내가 조리해 보는 옛날 사람들의 요리’라는 체험행사도 갖는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발언대] 인구주택 조사항목 더 늘려야/박명식 말씀인쇄그래픽스 이사·수필가

    오는 11월1일부터 15일까지 실시되는 ‘인구주택 총조사’는 우리나라 인구, 가구, 주택, 주거형태 등을 파악하는 것으로 매우 의미가 크다. 근대적 의미의 인구주택 총조사가 처음 시작된 곳은 미국이다. 그러나 ‘센서스’의 역사는 성경에도 기록될 만큼 오래됐다. 로마시대에는 국가조직이 발달하면서 과세와 징병을 목적으로 5년마다 실시했다. 인구주택조사를 의미하는 센서스라는 말은 ‘과세한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도 고조선 시대와 삼국시대부터 인구와 국경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국가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됐다. 우리나라 인구조사의 시작인 셈이다. 특히 신라 장적에는 토지가 종류와 면적을 기준으로 기록됐고, 사람은 인구·가호·노비의 수와 3년 동안의 사망, 이동 등 변동 내용이 기재됐다. 이같은 전통은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전국적인 호구조사가 정기적으로 실시됐다. 근대 들어 인구조사는 일제가 식민지배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1925년부터 5년마다 국세조사를 실시하면서 시작됐다. 순수한 의미의 인구조사는 광복 후인 1949년에 처음으로 실시됐다. 신생국 설계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파악하기 위해 1년을 앞당겨 실시했다. 하지만 이듬해 터진 6·25동란으로 전체적인 인구현황을 파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 뒤 1960년에 들어와 인구조사에 주택조사가 함께 실시되면서 지금까지 16차례의 인구 총조사와 9차례의 주택 총조사가 이뤄졌다. 이번 조사에는 모두 11만여명의 조사인력이 투입돼 내외국인을 포함한 전국의 약 1600만가구를 대상으로 성별, 나이, 아동 보육 상태 등 44개 항목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 특히 초혼 연월, 총 출생아수, 추가계획 자녀수, 고령자 생활비 원천 등 저출산·고령화 및 주거의 질, 복지(장애) 등에 대한 조사항목이 새로 채택됐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지자체별 통계자료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시·도별로 3개의 특성항목이 별도로 선정됐다. 맞벌이 및 1인 가구 등 면접조사가 어려운 계층에 대한 인터넷 조사가 처음으로 실시된다. 그러나 이번 조사의 항목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지 않다고 본다. 우선 국민보건에 관한 사항으로 가구내 환자 유무와 그에 따른 병명과 치료 상태 등을 조사해야 한다. 도시 가정이 키우고 있는 애완견이나 농촌의 사육가축의 종류나 사육두수, 심지어는 어촌의 양식 어종과 숫자도 조사에 포함시켜야 한다. 최근의 인구조사는 단순히 인구의 정태적 크기나 구조 파악을 주목적으로 하는 데에서 나아가 점차 경제활동과 관련된 종합조사의 성격을 띤다. 인구조사가 국가의 잠재력을 망라하는 국세(國勢)조사로 정착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번 통계에 많은 인력과 290여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만큼 좀더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사항목을 확대, 실생활과 현실에 맞게 다양화된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이번 조사는 5년에 한번씩 실시해온 통상적인 인구주택조사와는 달라 조사에 특히 정성을 쏟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팽창된 우리 사회의 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구축한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통계조사 결과가 일류국가·복지국가 및 정보화 국가의 기초 자료로 폭넓게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명식 말씀인쇄그래픽스 이사·수필가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3) 차와물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3) 차와물

    새벽달빛이 창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풀벌레소리는 어느새 수곽의 물소리에 젖어들고 있다. 새벽예불을 위해 가만히 문을 열면 사방은 바로 고요해진다. 인간의 소음에 모든 삼라만상이 긴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분별과 자만으로 인해 자연과 소통하지 못한다.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인류최악의 강진도 제일 먼저 동물들이 그 반응을 보인 것은 그 같은 자연과학적인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문을 열고 나와 발우를 부여잡고 청수(淸水)를 공양하기 위해 자우홍련사 툇마루를 나선다. 오렌지처럼 푸른 달빛이 축축한 대지에 차가운 기운을 전달하고 있다. 맑고 청아한 물소리가 내 영혼을 먼저 깨운다. 초의스님이 그토록 사랑했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샘물인 유천의 물소리다. 산등성위에 살짝 얹힌 두개의 바위 틈 사이로 대나무가 박혀 있다. 그 대나무를 타고 세 개의 작은 수곽을 지나 유천의 물이 숙성되면 암반으로 흘러넘친다. 마치 안개비처럼 산구름처럼 소리없이 물이 흘러내린다. 그 물소리가 혼탁한 세상을 맑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유천에 가볍게 반배를 한다. 그리고 발우를 수곽에 얹으면 또르륵 이슬방울처럼 스며드는 유천의 물은 마치 광망한 바다에 아침을 물고 나오는 붉은 해가 세상에 젖어들 듯 장엄한 울림을 전해준다. 발우에 담긴 유천의 물을 부처님께 공양한다. 지심귀명례 지심귀명례. 물에 대해 초의스님은 이렇게 말했다.“물은 차의 몸이요 차는 물의 정신이 되는 것이다.” 물은 차의 맛을 좌우한다.“나에게 젖샘이 있어 이 물을 떠서 찻물을 끓이면 수벽탕이나 백수탕이 돼버리니 어찌하면 목멱산 아래 해거옹에게 이 물을 드릴 수 있을까.”라며 찻물을 끓이는데, 좋은 물을 권하고 있다. 찻맛의 절반은 물맛이라는 말이 있다. 차는 물에 우려내는 것이므로 물의 등급에 따라 찻맛과 그 효능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옛 차인들은 물을 차를 내는 데 가장 우선순위로 두었다. 차를 우려내는 데 있어서 물은 그 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찻물을 구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게 되었다. 그나마 좋은 찻물을 먹을 수 있었던 산골이나 시골지역도 개발의 바람과 대기오염으로 인해 그 안전성을 보장받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은 현대산업사회의 폐해가 자연환경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차인들에게 차의 물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차는 좋은 물을 통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의스님은 “차는 물의 마음과 정신이요, 물은 차의 몸이니 참 된물(眞水)이 아니면 다신(茶身)을 나타낼 수 없고, 참된 차 (眞茶)가 아니면 수체(水體)를 나타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물과 제대로 된 차가 만났을 때 좋은 차는 그 생명력이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떤 물이 참된 물일까. 환경이 오염돼 버린 현재의 지구촌에서는 좋은 물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만 옛날 차인들이 추천했던 물의 품수(品水)를 통해 차를 우려내기 위한 참된 물을 정의해볼 뿐이다. 물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에서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졌다. 물의 존재는 곧 생명체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좋은 물을 마시면 육신과 영혼을 증장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만 나쁜 물을 먹었을 때는 육신과 영혼을 갉아먹는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말로 순수한 물은 바로 깨달음을 얻은 부처 같은 물이다. 무색(無色), 무미(無味), 무취(無臭)한 것이 참된 물인 것이다. 초의스님께서는 이렇게 소중한 물에 대해 여덟가지 덕(八德)이 있다고 했다. 가볍고(輕), 맑고(淸), 시원하고(冷), 부드럽고(軟), 아름답고(美), 냄새가 나지 않고(不臭), 비위에 맞고(調滴), 먹어서 탈이 없는(無患) 여덟가지로 물의 덕을 설명하고 있다. 초의스님의 설명에 따른다면 물은 완전무결한 식품이다. 인간이 즐길 수 있는 모든 맛과 효용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이렇게 완전무결한 것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에는 품천(品泉)이 있다. 육우는 (다경)에서 물의 등급을 “산의 물을 쓰는 것은 상품이고, 강물은 중품이며 우물물은 하품이다.”고 평하고 있다.(자천소품)(煮泉小品)에는 “돌은 금의 근본이요, 돌에서 흐르는 정기는 물을 낳는다.”고 깊은 산중에서 나오는 물이 최고임을 밝히고 있다. 산중의 물중에서도 최고는 이름난 명산의 샘물이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샘물은 바로 돌샘이다. 돌은 산의 뼈요, 물은 산의 골수같은 것이기 때문에 돌샘에서 나오는 샘물이 최고인 것이다. 돌샘은 산의 정기가 모인 것으로 담백하고 맑고 차기 때문에 물을 길어놓아도 오랫동안 물의 기운이 그대로 유지된다. 산중의 물중 산마루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 가벼우며, 돌 사이에서 나는 석간수는 맑고 달며, 자갈샘은 차갑다. 땅밑의 샘은 담백한 물을 뿜어내고 황석(黃石)에서 솟아나는 물은 좋은 물이다. 다만 청석(靑石)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결코 좋지 않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계곡의 물은 발원지에서 멀수록 좋으며 그 흐름이 조용하고 완만하게 흐르며 맑아야 한다. 또한 계곡 위쪽의 인적이 끊어진 곳이어야 한다. 흐르는 물이 발원지에서 멀수록 좋은 것은 물이 흐르면서 광물질 이물질 등이 자연스럽게 여과되어 어느정도 흐르면 담백한 물이 되기 때문이다. 좋은 명산의 물중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샘에 고여 있는 물이다. 물이 넘쳐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는 것은 샘이 죽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물도 함께 죽어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음은 강물이다. 강물 역시 명산을 발원지로 해서 시작해 흐르는 물이 좋다. 강물은 또한 오염도를 줄이기 위해 가능하다면 인간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 좋으며 빛깔은 맑으며 물맛은 지극히 찬 것이 좋은 것이다. 다음은 우물물이다. 인가가 밀집된 지역에서 인공적으로 솟아나게 하는 샘물인 우물물 중에서도 돌이나 모래속에서 솟아나는 상품의 물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물물은 가까이에 있는 인간의 오물이 섞일 수도 있고, 기름진 논이나 비옥한 땅에서 건수가 스며들 가능성이 많아서 제일 하품으로 쳤던 것이다. 이밖에도 호수물, 빗물, 웅덩이물 등이 있으나 찻물로서 적합하지 않다. 물은 흐르는 유천(流川)이 좋고 돌틈의 석간수가 솟아나는 샘물이 좋다. 물의 종류에는 하늘의 은택으로 내린 샘물인 영천(靈泉),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늘 물인 천수(天水), 바위틈에서 솟아 흐르는 지천(地泉), 강물인 강수(江水), 우물물인 정수(井水), 유황성분이 함유된 온천(溫泉),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약수(藥水)가 있다. 이중에서 현재 찻물로 쓰일 수 있는 물은 영천 지천 정수 정도일 뿐이다. 현대에는 그 만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물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다천(茶泉)이 몇군데 존재한다. 신라시대의 다천으로 사선(四仙)들이 차를 달여마신 강릉 한송정, 보천과 효명 두 태자가 차를 달여마시고 차공양을 올린 오대산 서대 우통수, 고려시대 송악의 안화사(安和寺) 샘물, 충주의 달천수(達川水), 금강산에서 시작되어 한강으로 흐르는 우중수(牛重水), 속리산 삼타수(三陀水), 초의스님이 마셨던 두륜산 일지암의 유천(乳泉)등이 있었다. 현존하는 다천중 가장 유명한 것은 경주 기림사의 오종수(五種水)다. 석간수로 최상의 찻물로 꼽히며 물색이 음수(陰水)중 음수인 감로수(甘露水), 물맛이 젖처럼 달콤하며 마시면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지는 화정수(和靜水), 물에 기운이 있어 장수가 된다는 장군수(將軍水), 눈이 맑아지는 물인 안명수(眼明水), 까마귀가 쪼는 자리에 물빛이 배어 그 자리를 파서 감로수가 샘솟았다는 오탁수(烏啄水)가 그것이다. 초의스님이 계시던 일지암의 유천(乳泉)도 명수(明水)중 명수다. 초의스님은 “나에게 젖샘(乳泉)이 있어 이 물을 떠서 찻물을 끓이면, 수벽탕이나 백수탕이 돼버리니, 어찌하면 목멱산 아래 해거옹에게 이 물을 드릴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고 있다. 일지암의 유천은 찻물로는 최상의 물로 평가할 수 있다. 오죽하면 초의스님이 젖샘이라고 불렀겠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써야 할 찻물은 어떤 것이 있는가. 차를 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물의 소중함과 귀함을 알고 있으나 도시에서 찻물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우선 가장 좋은 찻물은 아침일찍 인근에 있는 높은 명산의 약수터 물을 길어 오는 것이다. 국가기관으로부터 검증을 받은 약수터인가를 확인한 후 찻물을 먹을 만큼 길어다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2∼3일 동안 먹는 것이다. 그다음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생수(生水)다. 인위적으로 생산한 생수는 요즘 차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생수의 생명은 짧다.3∼4일이 지나면 생수의 본 성품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정수기를 통해 걸러진 물도 찻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정수기를 통해 정수된 물은 많은 부분에서 물의 본 성품을 강제로 빼앗아버려 썩 좋은 찻물은 아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가장 흔히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이다. 수돗물을 찻물로 쓰기 위해서는 하루쯤 침전해야 한다. 침전하는 도구로는 옹기항아리가 가장 좋으며 유리병도 무방하다. 옹기항아리나 유리병 바닥에 삼투압을 할 수 있는 물질인 맥반석, 돌, 굵은 모래등을 가라앉혀 놓으면 맛있는 물을 얻을 수 있다. 여름에는 뚜껑을 삼배보자기로 덮는 것이 좋으며 겨울에는 본래 뚜껑을 덮어두면 된다. 한 항아리의 물은 3분의2만 쓰고 나머지는 허드렛물로 쓰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일지암 암주 ■ 김노경과 초의스님 ‘유천일화’ 일지암에는 유천이란 샘물이 있다. 유천(乳泉)은 말뜻 그대로 마치 어머니의 가슴에서 나오는 젖처럼 맑고 담백한 천상의 물이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생명을 기르는 젖과 같은 샘이다. 명나라 전예형은 (자전소품)에서 “젖샘이란 종유석의 샘이며 산골의 고수다. 그 샘물의 빛깔은 희고 비중은 무겁다. 매우 달고도 향기로워서 마치 감로와 같다.”고 적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물에 대한 비유다. 유천에 대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바로 추사의 부친인 김노경과의 일화다. 추사의 부친이었던 김노경은 일지암에서 가까운 완도 고금도에 유배를 왔다. 그곳에서 4년을 보낸 김노경이 마침 그 유배가 풀렸다. 해배가 되어 서울로 돌아가던 도중 김노경은 일지암을 들를 결심을 했다. 그가 촉망하는 아들 추사의 인품에 비해 초의스님의 인품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노경은 초의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학식과 선풍이 뛰어남을 알았다. 그런 그가 초의스님이 권하는 유천을 맛보았다. 김노경은 중국의 유명한 차와 물에 대해 깊은 조예가 있었다. 유천의 물을 맛본 김노경은 “일지암 유천의 물은 그 물맛이 ‘수락’보다 더 좋다.”고 극구 칭찬을 했다. 일지암 유천의 물맛은 참으로 뛰어나다. 당나라 때 소이는 (탕품)에서 물을 끓이는 기술에 따라 3품, 뜨거운 차를 잔에 따르는 솜씨에 따라 3품, 탕기의 종류에 따라 5품, 물을 끓이는 땔감의 종류에 따라 5품 등으로 분류했다. 소이는 이 중 가장 잘 끓인 물을 ‘득일탕’(得一湯)이라 했고 그 다음을 어린탕, 너무 많이 끓어버린 물을 백수탕으로 구분해놓았다. 좋은 물도 물이지만 좋은 용기에 잘 끓여야 제대로 된 찻물이 된다는 뜻이다. 소이는 “사람이 백살을 넘은 것처럼 너무 오래끓은 물을 이야기하다가, 때를 놓치거나, 볼일 때문에 내버려두다가 비로소 사용하려면 물은 이미 성품을 잃은 뒤다. 감희 묻거니와 머리털이 희고 얼굴이 창백한 나이 많은 늙은이가 활을 들고 과녁을 맞힐 수 있겠는가. 아니면 씩씩하게 높은 곳을 올라가거나 활발하게 걸어서 멀리까지 갈 수 있도록 돌이킬 수 있겠는가.” 끓인 물이 차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것은 조금 과장일 수 있다. 그러나 물 못지 않게 끓이는 물에 대한 차인의 정성은 소중해야 한다.
  • 대학생 男49%·女29% “취업 자신있다”

    청년 실업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취업을 자신하는 여대생은 10명 가운데 3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여성가족부가 여대생 커리어개발센터가 설치된 신라대와 아주대, 전북대, 충남대, 한양대 등 5개 대학 재학생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지난해 말 조사한 ‘고학력 여성들의 취업실태 및 정책방안’에 따르면 취업에 ‘자신있다.’고 응답한 여대생은 29.5%에 그친 반면, 남학생은 49.5%로 나타나 큰 차이를 보였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로는 여학생이 4학년 1학기(31.8%)→3학년 2학기(23.4%)→3학년 1학기(14.9%)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남학생은 3학년 2학기가 26.5%로 가장 많았으며,4학년 1학기는 25.8%로 여학생보다 조금 빨랐다. 직장선택 기준으로는 남녀 모두 ‘적성에 맞는 직장’과 ‘나의 성장 가능성이 있는 직장’을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그러나 다음 기준으로는 남학생이 ‘임금이 높은 직장’(14.2%)을, 여학생은 ‘안정성이 높은 직업’(16.8%)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나 여대생들이 남학생에 비해 퇴직이나 이직을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부고]

    ■ 서원우 서울법대 명예교수 서울대 법대 서원우 명예교수가 16일 오전 8시 숙환으로 별세했다.74세. 고인은 한국공법학회장과 한국환경법학회장, 한국부동산법학회장, 기업활동규제심의위원장, 서울대 법대 학장, 동아시아행정학회 한국지회장 등을 지냈다. 평생 행정법학의 연구에 헌신했으며, 특히 일본과의 학문 교류에 크게 기여해 지난 7월 일본 나고야대학으로부터 한·일 법 문화 교류에 앞장선 공적을 인정받아 우리나라 최초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족으로는 이두영 여사와 덕주(㈜아트랜드 대표), 상교(〃 이사)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9일 오전 8시.(02)2072-2091. ■ ‘신의 아들’ 만화가 박봉성씨 만화 ‘신의 아들’로 유명한 만화가 박봉성씨가 15일 오후 4시30분 별세했다.56세.1949년 부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4년 ‘떠벌이 복서’로 데뷔했다.1983년부터 1987년까지 총 37권에 달하는 ‘신의 아들’을 집필해 ‘공포의 외인구단’의 이현세씨와 함께 80년대 만화 붐을 일으켰다. 고인은 부산예술문화대 만화학과 겸임교수, 한국만화가협회 22대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2003년 동료 작가들과 만화 콘텐츠 전문기업 ‘대한민국 만화중심’을 설립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권복녀씨와 2남1녀. 발인 17일 오후 3시,011-9909-3095. ●정원모(전 삼성물산 상무)형모(전 대림산업 부장)이모(한국은행 금통위실장)정모(소망화장품 천안대리점장)학모(삼성SDS 수석)씨 모친상 홍의경(전 대우전자 부장)씨 빙모상 16일 인하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10시 (032)890-3191 ●박황(전 한일은행 심사부장)씨 별세 준(대한광업진흥공사 이사)균(서울농자재 이사)영(전 동화은행 화성지점장)미애(정치과원장)씨 부친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03 ●윤찬열(자영업)동현(명인설계 대표)용현(국방부 사무관)용호(자영업)씨 부친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12 ●정동천(SBS 제작본부 부국장)씨 부친상 16일 이대 목동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2)2650-2741 ●서대원(퍼시픽림 인터내셔널 대표)씨 빙모상 김정은(영화배우)씨 외조모상 15일 건국대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2030-7903 ●정동건(라포 부사장)동주(세계여행사 대표)동신(라포 전무이사)동인(일본 월드트래블 대표)일순(라포 대표)씨 모친상 정환상(클라라 대표)홍준기(신라CC 회장)씨 빙모상 16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30분 (02)3410-6906 ●주수도(한국무역협회 부산지부장)영화(사업)영봉(〃)영일(두산중공업 총무부)씨 부친상 16일 경남 마산삼성병원, 발인 18일 오전 6시 (055)290-5649 ●정용주(건국대 산학협력단 충주지부 행정실장)씨 모친상 이진성(충주 대원고 교사)씨 빙모상 16일 건국의료원 충주병원, 발인 18일 오전 9시 (043)840-8496 ●한성규(전 동국대사대부고 교장)명규(용인대 교수)씨 모친상 김경남(동국대사대부속여중 교사)김봉옥(언남중 〃)씨 시모상 승훈(현대모비스 직원)씨 조모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3010-2293 ●오화중(사업)석중(신성건설 주택사업부 과장)점숙(현대자동차 〃)인숙(사업)씨 부친상 김병규(사업)홍성환(〃)씨 빙부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3010-2264 ●김인범(진안테나시스템 대표)씨 상배 지훈(대만 거주)씨 모친상 1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9일 오전 9시 (02)3010-2236 ●전동성(전 경향신문 편집부국장)씨 모친상 16일 적십자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2)725-7099 ●이목희(열린우리당 의원)씨 빙부상 16일 인하대부속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 (032)890-3199 ●송인득(MBC 아나운서국 부장)씨 부친상 16일 일산병원, 발인 18일 오후 1시 (031)908-1599 ●이창우(전 파주시 부시장)흥우(고양시청 근무)응우(우정건설 대표)씨 모친상 16일 오후 2시30분 경기도 고양시 일산백병원, 발인 18일 오전 8시30분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선영 (031)919-0899
  • [7·9급 시험 완전정복] 국사

    [7·9급 시험 완전정복] 국사

    ※신석기시대(기원전 8000년경) (1)경제생활 1)자연경제(수렵, 채집, 어로) (1)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2)식량을 얻는 중요한 수단 2)생산경제의 시작:신석기혁명 (1)직조술의 시작-유물:가락바퀴, 뼈바늘 (2)가축(개, 돼지 등)의 사육 →철기:농경에 소·말 등 가축의 이용(우경의 시작) (3)농경의 시작(말기) (ㄱ)재배작물:조, 피, 수수 등 잡곡류 (ㄴ)사용도구 (가)간석기:돌보습, 돌괭이, 돌삽 등 (나)목기:현존× (ㄷ)유적지:평양 남경, 봉산 지탑리 등 (ㄹ)결과 (가)해안, 강변의 움집에서 정착생활 (나)토기의 제작 (A)용도:음식물의 조리, 저장 (B)명칭 -덧무늬토기-최초의 토기(무늬가 없고 작음 -이른민무늬토기-토기 몸체에 덧띠를 붙임(주발모양의 밑이 둥근 모양) -눌러찍기문토기(압인문토기):눌러찍은 무늬가 있음 -빗살무늬토기-대표적인 토기(전국 각지에 널리 분포·대부분 바닷가, 강가에서 출토·북방계통(시베리아·몽고)의 영향) (C)유적지:강원 고성 문암리, 부산 동삼동, 서울 암사동, 경남 김해 수가리 등 (다)신앙생활 (2)혈연을 바탕으로 한 씨족구성의 부족사회 ∥ 씨족사회(신석기)의 성격, 전통→계승, 발전 (ㄱ)족외혼→동예:족외혼 (ㄴ)폐쇄적 독립사회(경제적 독립)→동예:책화 (ㄷ)모계사회→고구려:서옥제 (ㄹ)평등사회→신라:화랑도 (ㅁ)씨족의 중대한 사건은 씨족회의에서 결정→신라:화백회의 (ㅂ)공동생산, 공동분배→삼한:두레 문제> 다음의 내용에 있는 신앙들이 등장한 시기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정답은(3) *자연현상과 자연물에 정령이 있다고 믿었다. *영혼이나 하늘을 인간과 연결시켜 주는 무당과 주술을 믿었다. *자기 부족의 기원을 특정 동식물과 연결시켜 숭배하였다. (1)동굴에서 살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다. (2)잔석기를 활과 같은 이음도구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3)농경생활과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다. (4)밭농사가 중심이었지만 일부 저습지에서는 벼농사를 지었다. (해설)지문의 내용은 신석기시대에 등장한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에 대한 설명이다.(1)은 이동생활을 하였던 구석기시대의 주거지이다.(2)는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큰 짐승 대신에 토끼·여우·새 등 작고 빠른 짐승을 잡기 위해 활을 사용한 중석기시대에 대한 설명이다.(4)는 청동기시대에 대한 설명이다. 심태섭 남부고시학원 교수
  • [儒林 속 한자이야기] (92)符信(부신)

    儒林 (442)에는 ‘符信’(부절 부/믿을 신)이 나온다. 이것은 ‘나뭇조각이나 두꺼운 종이에 글자를 기록하고 證印(증인)을 찍은 뒤, 두 조각으로 쪼개어 한 조각은 상대자에게 주고 다른 한 조각은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서로 맞추어서 證據(증거)로 삼던 물건’을 말한다. ‘符’자는 옛날 행정 사무의 證據나 信標(신표)로 삼기 위한 대나무 쪽을 가리킨다. 후에 ‘도장’‘맞다’ 등의 뜻이 派生(파생)하였다.活用(활용) 예로는 符合(부합:符信이 꼭 들어맞듯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符號(부호:일정한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따로 정하여 쓰는 기호) 등이 있다. ‘信’자는 본디 ‘성실하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考案(고안)되었다.‘人’과 ‘言’(말씀 언)을 組合(조합)하여 사람의 말과 성실성은 不可分(불가분)의 關係(관계)에 있음을 暗示(암시)한다.‘信念(신념:굳게 믿는 마음),信賞必罰(신상필벌:상과 벌을 공정하고 엄중하게 하는 일을 이르는 말),信實(신실:믿음직하고 착실함)’ 등에 쓰인다. 交通手段(교통수단)과 情報(정보) 媒體(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符信이 신분확인을 위한 요긴한 수단이었다. 용도와 종류에 따라 發兵符(발병부)·通符(통부)·宣傳標信(선전표신)·木馬牌(목마패)·大將牌(대장패) 등 다양하였다. 符節(부절)도 일종의 符信으로 볼 수 있는데,符信과의 차이점은 글자와 證印이 없다는 것이다.三國史記(삼국사기)에는 高句麗(고구려) 建國始祖(건국시조) 高朱蒙(고주몽)이 短刀(단도)를 符節로 삼아 親子(친자)를 確認(확인)한 崎嶇(기구)한 事緣이 전한다. 주몽은 큰 뜻의 실현을 위해 姙娠(임신)한 예씨 부인과 작별하면서,“아들을 낳거든 일곱 고개, 일곱 골짜기의 돌 위 소나무 밑에 간직되어 있는 물건을 찾아 가지고 오라.”는 말을 남겼다. 예씨 부인은 出産(출산)한 아이의 이름을 琉璃(유리)라고 하였다.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뒤 유리는 일곱 모난 주춧돌 아래서 발견한 칼 한 쪽을 들고 주몽을 찾아갔다. 주몽은 지니고 있던 조각난 칼을 꺼내 맞추어 보고 자신의 아들임을 確認(확인)한다. 三國史記에는 新羅(신라) 眞平王(진평왕)때의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경주에 사는 설씨(薛氏)는 늙은 홀아비로 오직 딸 하나만 데리고 살았으나, 변방지역의 警備(경비)에 나아가라는 通報(통보)를 받는다. 그때 沙梁部(사량부)에 사는 嘉實(가실)이라는 청년이 兵役(병역)을 대신하겠다고 나선다.感泣(감읍)한 父女(부녀)는 가실과의 婚姻(혼인)을 約條(약조)하고 거울을 반으로 갈라 信標(신표)로 나누어 가진다.6년 만에 다시 설씨 부녀 앞에 나타난 가실의 行色(행색)은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초라하였다.破鏡(파경)을 꺼내 맞추어 보고서야 가실임을 確認할 수 있었다. 漢(한)나라 高祖(고조) 劉邦(유방)은 諸侯(제후)를 分封(분봉)하면서 丹書鐵券(단서철권)을 나누어 주었다. 약칭 鐵券(철권)이라 하는 이 물건은 오늘날의 任命狀(임명장)에 해당한다. 쪼갠 칼이나 거울, 세트로 만들어진 鐵券이 모두 符節에 속한다. 여기서 ‘節’은 마디라는 뜻이니 끼워 맞춘다는 의미를 含蓄(함축)하고 있으며,‘符’란 符合(부합)한다는 뜻이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열린세상] 역사 속의 리더십/오세훈 변호사

    우리는 지금 무한 경쟁이라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변화의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가 경제를 출렁이게 할 수도 있고, 최고경영자의 적절한 판단 하나가 세계적 기업으로의 도약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가 개혁을 이야기한 지도 10여년이 훨씬 지났다. 새로운 대통령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개혁 담론이 등장하지만, 체감 위기감은 낮아지기보다 점점 더 높아만 가는 것이 현실이다. 며칠 전 OECD 보고서 내용을 놓고 벌어진 한바탕 소란도 그런 위기감의 표현일 것이다. 비전은 커다란 정치적 그림이지만, 개혁은 실제적인 사회의 변화다. 개별적인 사안에 맞는 변화된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동의를 얻어가야만 가능하다. 민주 사회에서 실생활의 익숙하지 않은 변화에 대하여 절대 다수의 공감을 얻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나, 다수의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만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왕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던 전제시대에서조차 이것은 진리였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과 정책이 있어도 백성의 공감을 얻지 못한 정치는 실패했다. 고려 숙종은 외척의 발호와 여진족의 압력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부국강병의 비전을 제시했다. 적극적인 대외 확장과 과감한 재정개혁을 통해 개인이 아닌 국가의 부를 확대하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어려웠던 백성의 삶은 잦은 여진정벌과 국가사업으로 인해 ‘열 집 가운데 아홉 집이 비었다(十室九空)’고 할 정도로 피폐해졌고, 신하들 사이에서도 민생안정이 우선이라며 따르는 자가 줄어들었다. 백성이 힘들어하고, 뜻을 받드는 신하가 줄어들자 숙종은 부국강병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화와 설득을 통해 상대방의 이해를 얻지 못한 개혁,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개혁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는 교훈이 남은 것이다. 개혁에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당연히 ‘내 임기 중에 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개혁을 어렵게 만든다. 조선 초 정도전의 전제개혁의 모델은 고려 말 공민왕때 나왔다. 완성되기까지 40여년이 걸린 것이다. 고려 광종과 조선 태종이 각각 개국세력을 정리하고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여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실패했다면, 각 왕조 최고의 통치자라는 성종과 세종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개혁은 내가 아니면 안 되며, 내가 집권하는 동안에 무엇인가 완성해야 한다는 ‘개혁 독점욕’과‘개혁 조급증’은 순리가 아님을 지나간 역사가 가르쳐 주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진정으로 위대한 업적이, 선임자들이 피땀으로 일군 토대를 벗어나 역사의 연속선 밖에서 이루어진 적이 있었던가. 내 이름표가 붙은 무엇인가를 남기겠다는 부질없는 공명심만큼 지도자가 피해야 할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개혁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사람을 얻는 것이 개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진흥왕은 전통 귀족들을 세력기반으로 계속 활용한 것은 물론이고, 김유신의 조부이자 가야계인 김무력을 중용했고, 고구려에서 귀화한 승려 혜량을 당시 신라의 정신적 지주인 승통으로 삼았다. 진흥왕 대의 르네상스는 이처럼 다양한 외부 인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신라의 인재풀을 한 단계 넓힌 결과이다. 개혁에 성공한 리더들은 한결같이 군주 개인의 생각을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통합과 조화로 이끄는 리더십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변혁기를 지나 온 과거를 돌이켜 보며 떠오르는 말이 있다.‘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세훈 변호사
  • 한국의 미를 다시 읽는다/권영필 등 지음

    ‘벌버둥치며 자기를 보라는 그러한 것도 아니면서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도 움켜잡을 수 있는 바로 그 것이 한국의 미가 아닌가?’ 국내 고고학계의 태두로 평가받은 김원용(1922∼1993)은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미란 무엇이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의 미를 다시 읽는다’(권영필 등 지음, 돌베개 펴냄)는 바로 이같은 명제에 대한 지난 1세기 동안의 연구성과를 총체적으로 재검토하고, 한국미 논의의 가치와 한계, 과제를 조망한 책이다. 안드레 에카르트와 고유섭으로부터 시작해 지난 2002년 작고한 조요한을 마지막으로 총 12명의 미학자들의 한국미론을 담았다. 과연 이들을 사로잡은 한국미는 무엇일까?일찍이 한국미술통사를 집필한 독일인 에카르트는 고궁과 서민건축에서 유연함에 숨겨진 고전적 조화, 단순미와 소박한 아름다움을 본다. 서구미론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고유섭은 감은사지동삼층석탑에서 ‘구수한 큰 맛’을 찾아낸다. ‘내핍에서 발원한 선과 형태의 미’(신사임당 초충도)‘무심스럽고 어리숭한 둥근 맛’(달항아리),‘비균제성과 자연 순응성’(신라와당) 등 한국미에 대한 치밀한 탐색이 새삼 우리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2만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선생님이 쓰는 신나는 과학] 첨성대·석빙고에 깃든 지혜

    [선생님이 쓰는 신나는 과학] 첨성대·석빙고에 깃든 지혜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는 ‘담 없는 박물관’이다. 유네스코(UNESCO)는 경주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뒤 불교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남산 지구, 첨성대와 석빙고 등이 있는 월성 지구, 천마총 등 고분들이 위치한 대릉원 지구,9층 목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황룡사 지구, 명활산성이 있는 산성 지구 등 5개 지구로 나누었다. 이중 신라의 궁궐터인 월성 지구는 산책 코스로 잘 꾸며져 신라인들의 슬기와 얼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따뜻한 봄에는 유채꽃이 가득 피고, 가을에는 코스모스꽃이 장관이다. 특히 어둠이 깔린 뒤 달빛을 받은 첨성대는 운치를 더해준다. 신라 27대 왕인 선덕여왕 시절(서기 632∼647년)에 세워진 첨성대는 현존하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전체 높이는 9.17m이며, 전체 27단 중 가장 윗부분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돌을 쌓았다. 둥근 모양의 중간 부분에는 남쪽으로 향한 창이 있는데, 이 창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통로로 추정된다. 창의 위와 아래로 각각 12단의 돌을 쌓아 12달과 24절기를 의미하고,360개의 돌을 사용해 1년의 음력 일수를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첨성대는 동북 방향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으나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첨성대가 천문대의 역할보다는 제사를 지내는 첨성단으로 사용됐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첨성대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신라 궁궐터인 월성으로 들어가는 돌계단이 나온다. 월성은 모양이 반달과 비슷해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서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이듬해 가을까지 보관했다는 냉동 창고인 석빙고를 볼 수 있다. 석빙고는 조선 영조 14년(1738년)에 나무로 된 목빙고를 돌로 축조한 것으로 4년 뒤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석빙고의 입구는 바람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냈으며, 입구에서 내부로 들어갈수록 점점 깊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창고 안의 길이는 19m, 폭은 6m, 높이는 5.4m 정도다. 특히 석빙고는 입구에 벽을 만들어 더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는 대류의 원리를 활용했다. 천장은 아치형으로 5개의 기둥에 장대석이 걸쳐 있고, 일정한 간격으로 움푹 파진 곳을 만들어 이 곳에 더운 공기를 모아 환기 구멍으로 빼냈다. 내부는 열 전달률이 높은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외부의 열이 내부로 전달되지 않도록 열 전달률이 낮은 진흙이나 석회 등으로 지붕을 만들었다. 또 석빙고 내부의 바닥 한가운데에는 경사진 배수로를 내어 얼음이 녹은 물이 다른 얼음을 녹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빠져 나가도록 했다. 석빙고의 외부에는 잔디를 심어 태양의 복사열을 막고, 수해에 의한 피해를 줄이고자 했다.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던 시절에 냉장고 대신 석빙고를 활용했던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경은 서울 영동중 교사
  • 감 익는 청도 ‘감 좋다’

    감 익는 청도 ‘감 좋다’

    가을 청도는 풍요롭다. 국내 최대의 감 생산지답게 청도는 진홍빛 감에 폭 싸여 있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반시(盤枾)를 따는 농부의 모습은 가을의 넉넉함을 느끼게 한다. 조용한 산사를 울리는 운문사 비구니의 예불 소리는 아늑한 가을의 품속에 안긴 듯 마음이 편하다. 새벽을 여는 운문호의 물안개는 가을을 더욱 호사스럽게 한다.‘맑은 길이 있는 고장’이라는 뜻의 청도(淸道). 그 곳에 가면 높고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 여유로운 전원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파란 하늘에 홍시가 걸렸네 청도에는 감나무 천지다. 감나무 밭인지 마을인지 구분 하기 힘들 만큼 가는 곳마다 온통 감나무다. 추수가 한창인 논과 밭, 산등성이, 마을 담장은 물론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까지 감나무가 즐비하다. 때문에 청도의 가을 하늘은 붉은 감과 어우러져 유달리 높고 푸르다. 차를 달려 비슬산 자락에 있는 풍각면 상수월 마을에 들어서자 때묻지 않는 시골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호박 넝쿨이 휘감긴 돌담과 도리깨질을 하며 깨를 터는 농부, 하늘을 향해 갈고리가 달린 긴 장대를 휘두르며 감을 따는 농부의 모습에서 시골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감이나 하나 맛보소.”감을 따던 마을 주민 정육지(71)씨가 갓 딴 홍시를 건넨다. 환갑도 채 안돼 보이는 그의 나이를 듣고 놀라자 “감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라며 농을 건넨다. 정씨는 “청도에는 흔한게 감나무여, 우리 동네 감은 씨가 없어서 먹기에도 좋아.”라며 자랑을 늘어 놓는다. 청도하면 으레 소싸움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감의 고장이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감이 연간 2만여t. 전국 생산량의 20%에 이를 정도로 국내 최대 생산지다. 주민의 70% 이상이 감농사에 의지해 살고 있다. 청도의 감은 반시(盤枾)라 부르는데 감이 납작한 모양이 쟁반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명종 때인 1545년 청도 이서면 출신의 박호 선생이 평해 군수로 있다가 귀향하면서 가져온 감나무가 반시의 효시라고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될 정도로 유명했다. 반시는 씨가 없다. 타 지역에서 새 종자를 들여와도 청도에만 오면 씨가 없어진다. 청도군에서 대학 연구소에 이 같은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연구 의뢰를 했지만 암나무가 대부분이라서 수정을 못하고 씨가 맺히지 않는다는 결과를 내놨을 뿐 정확한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반시는 공판장에서 10㎏(60∼80개)에 1만 5000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웰빙’으로 거듭난 감 흔한 게 감나무다 보니 감을 이용한 ‘웰빙’ 제품들이 많다. 눈길을 끄는 것은 감 와인. 세계 최초로 지난해 감와인 ‘감그린’을 개발했다. 청도와인(gamwine.com·054-372-8314)의 하상오(45)대표가 5년여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개발했다. 그는 “감은 화이트와인에 많은 ‘탄닌’ 성분이 많아 심장병과 노화방지에 좋은 고급 와인으로 청도 감은 씨가 없어 와인 생산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750㎖ 1병에 2만 2000원. 아이스 홍시와 감말랭이는 대표 먹거리. 반시는 수분과 당도가 높아 곶감을 만들기 쉽지 않아 그 대신 감을 네 조각으로 나눠 말린 감말랭이를 만들거나 통째로 얼린 아이스 홍시로 판매한다. 곶감에 비해 부드럽고 쫄깃한 감말랭이를 만드는 농가는 두산농원(054-372-2428) 등 10여곳이 있다. 감말랭이는 1㎏(250g짜리 4박스)에 1만 5000원. 전통 염색기법에 따라 감물 천연염색은 색다른 체험거리다. 감을 씻어 즙을 낸 뒤 염색과 건조를 4∼5회 반복해서 천연 원단을 만든 뒤 이를 이용해 개량한복과 침구류, 커튼, 가방, 차받침, 지갑 등을 만든다. 개량 한복 한벌을 만드는데 감즙 한말(20∼30㎏), 감 150∼160개 정도가 들어간다. 때문에 가격은 한벌에 30만∼50만원선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감물들이기 체험을 할 수 있는데 예던길따라(054-372-8314)에서는 손수건과 스카프 등 간단한 소품을 물들여 가져갈 수 있다. 체험료는 1인당 5000∼1만원. ●산사에 울리는 은은한 예불소리 병풍처럼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년고찰 운문사(054-372-8800)는 호젓한 가을 분위기가 묻어난다. 울창한 솔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조용한 산사를 울리는 예불소리가 마음을 맑게 한다. 천년의 세월을 지킨 비구니 도량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늑함과 섬세함이 숨어 있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때인 560년 창건된 사찰로 현재는 270여명이 불법을 닦는 비구니 승가대학 등 총 30여동의 전각을 갖춘 도량이다. 이름난 법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 1200년전 원광법사는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속오계를 이곳에서 전수했고,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왕명에 따라 운문사에서 주지를 맡은 바 있다. 신라 때는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경내에는 화려한 당대 불교예술의 혼이 그대로 담겨 있다. 신라때 지어진 삼층석탑과 석등, 고려때 지어진 원응국사비, 조선초에 세워진 비로전 등 7점의 보물이 있다. 불가의 예법도 볼 수 있다. 오후 6시면 어김없이 저녁예불이 행해진다. 가죽짐승을 깨우는 북소리, 물고기를 위한 목어, 그리고 입구에 걸린 커다란 범종 소리와 함께 예불이 진행된다. 10년전 운문댐이 완공되면서 생긴 운문호는 청도의 아침을 연다. 새벽이면 몽환적인 물안개를 토해낸다. 구불구불한 호반길을 돌다 보면 호수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신라의 고도 경주와 청도를 잇는 운문댐 주변 도로는 운문사와 삼계리 계곡의 전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이 밖에 소요당 박하담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운강고택과 운곡 김몽로의 생가인 운곡정사, 전국 6개의 석빙고중 가장 오래된 숙종 때 세워진 석빙고 등은 역사 체험코스로 손색이 없다. ●시원한 청도 추어탕 청도역 주변의 추어탕 거리에서는 시원한 청도 추어탕을 맛볼 수 있다. 청도 추어탕은 남도 추어탕과는 달리 운문댐 아래 동창천에서 잡은 미꾸라지 외에 떡붕어와 쏘가리, 미꾸라지, 꺽지, 메기 등을 갈아서 맑은 국물을 낸 뒤 시래기를 듬뿍 넣어 끓인다. 자연산청도추어탕(054-371-5510)은 추어탕(4000원)과 올갱이로 끊인 고디탕(4500원)을 판매한다. 용암온천 인근의 음식점 하늘정원(054-373-3334)은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오리황토연잎구이와 오리바비큐보쌈 등을 맛볼 수 있다. 숙박은 이 지역에서 유일한 1급 호텔인 용암온천관광호텔(054-371-5500)이 좋다. 숙박료는 주중 6만 8000원, 주말 7만 8000원. 호텔에 있는 용암온천은 1000m의 암반에서 뿜어나오는 양질의 게르마늄 유황온천으로 각종 성인병에 좋다.6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요금 6500원. ●청도로 가는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북대구IC에서 빠져 대구신천대로와 30번 지방도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5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로는 서울에서 동대구역까지 KTX를 타고 내려가 청도행 무궁화로 갈아타면 2시간30분에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다.(barota.com·1544-7788) 청도군청 문화관광과(054-370-6373). 청도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0)정감록의 어머니 음양오행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0)정감록의 어머니 음양오행설

    ‘정감록’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은 음양오행설이다. 엄밀히 말하면, 음양과 오행은 별개다. 사전에서는 대개 이런 식으로 정의한다. 삼라만상을 음과 양이 자라나고 없어지는 원리로 설명하는 것이 음양설이다. 음양설의 영향을 받아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이치로 설명하는 것이 다름 아닌 오행설이다. 이 두 가지는 하나로 통합되기도 한다. 이것이 음양오행설이다. 이를 줄여서 음양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 동아시아에서 유행한 온갖 종류의 예언과 점에 음양설이 남긴 자취는 뚜렷하다.‘정감록’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역술가들은 모든 사물을 음양과 오행으로 풀이해 상생 또는 상극관계를 찾아낸다. 달리 말하면 점치고자 하는 어떤 사물이 있을 때 이름, 빛깔, 형태 및 성질을 음양 또는 오행으로 구별해 점괘를 벌려놓는 것이다. 그 방법은 우선 사물에 각기 하나의 숫자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추수(推數)라 한다. 점을 치려면 이를 다시 5진법(오행) 또는 2진법(음양)으로 번역한다. 그런 다음 최종적으로 길흉을 판단한다. 음양설을 신봉하는 역술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5진법과 2진법으로 환산된 사물의 상생 또는 상극관계다. 그들에게는 구약 성경에 가끔 선보이는 신의 계시 같은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역술가들은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 본질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호박의 색깔이 붉다 해서 양이요 화(火)로 치부한다면, 이것이 과연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 주장할 수 있을까. ●서북의 술사들, 왕조의 운명을 추수(推數)하다 ‘정감록’을 구성하는 여러 예언서 가운데 ‘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이 있다. 무학대사가 추수했다고 하지만 그 말을 곧이듣기는 어렵다. 이 책에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에 이어 삼한이, 그 다음은 신라가 아니라 고려가 등장한다.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왕조는 당연히 조선이다. 신라를 우리역사의 큰 흐름에서 제외한 점으로 볼 때, 서북지방 술사들의 손끝에서 나온 예언서가 아닐까 한다. 그들은 기자조선과 고구려 또는 고려를 강조하는 경향이 유별났다. 역시 ‘정감록’에 실려 있는 ‘역대왕도본궁수’란 것도 비슷하다. 여기에는 단군조선을 빼놓고 기자조선으로 우리 역사의 처음을 삼았다. 이어 삼한이 등장할 법하지만 그 대신 어쩐 일로 신라를 등장시켰다. 신라에 이어 고구려와 고려가 연달아 나온다. 고려를 고구려의 후계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려의 뒤를 이어 조선이 추수돼 있는데, 이 점은 ‘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과 동일하다. 그러나 두 예언서가 추수한 결과는 다르다. 먼저 언급한 예언서에서는 조선왕조를 4745로 추수했다. 나중 것은 9357로 보았다. 전혀 다른 숫자가 동일한 왕조의 운을 예언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 내용을 읽어보자. 전자는 “음으로 음에 이바지하니 왕씨보다 수명이 부족하다. 양을 합하고 양을 잉태했으므로 마지막은 삼한과 경우가 같아 불(火)에 속해 물(水)을 꺼린다.”고 했다(동국역대). 이에 비해 후자는 조선의 운세를 이렇게 점쳤다.“상(象)을 보니 앞이나 뒤가 모두 금(金)이다. 숫자를 놓고 볼 때 위나 아래나 모두 불(火)이다. 공자의 도가 무력에 굴복해 마침내 번신(藩臣)이 되고 말리라. 양으로 음에 이바지하니 도둑이 궁궐을 불태울 것이고, 음을 합하고 음을 잉태하므로 덕도(德島)에 군사를 보내리라.”(역대왕도) 조선 왕조의 운명에 관한 두 예언서의 점괘는 판이했다.‘동국역대’는 음으로 음에 이바지하므로 수명이 짧다 했지만 ‘역대왕도’는 그와 정반대였다. 양으로 음에 이바지해 도둑이 궁궐을 불태운다 했다. 이뿐인가.‘동국역대’는 양을 합하고 양을 잉태한다 했으나,‘역대왕도’는 음을 합하고 음을 잉태한다고 풀이했다. 이처럼 추수하는 것, 달리 말해 사물의 이름·형태와 성질에 따라 일정한 숫자를 부여하는 행위는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치달았다. 둘 중의 하나가 옳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기도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추수 행위 자체가 억지일 수도 있다. 예언의 결과를 두고 평가한다면 조선왕조의 수명이 고려보다 짧다고 했기 때문에 ‘동국역대’는 완전히 틀린 셈이다. 고려왕조는 34대 474년 동안 유지됐고, 조선의 역년은 27대 518년이었다. 그밖에도 ‘역대왕조’는 조선이 숭문(崇文)에 힘쓰다가 결국 남의 나라의 속국이 된다든가, 역적(도둑)이 궁궐에 불을 지른다는 둥 제법 그럴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역대왕조’의 예언이 맞았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동국역대’는 조선왕조가 망할 징조를 드러내기 훨씬 전에 쓰였다고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역대왕조’는 왕조의 패색이 짙어가던 19세기말의 저작일 수가 있다. 이런 의혹은 ‘정감록’을 연구하면서 몇 차례 제기된 문제다. 어떤 예언서의 내용 가운데 용케 사실과 일치하는 부분은 실상 지난 일을 마치 예언처럼 꾸며놓은 것으로 봐야 할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예언은 무조건 다 틀린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에 들어맞는 수도 있다. 우연히 적중하는 수가 있고, 동일한 문구라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실과 부합되어 보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수수께끼 같은 편년체 예언서 “원계용처 수맹구(猿鷄用處 隨猛狗)”란 정감록 예언이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해 ‘칠언고결’이란 예언서의 한 구절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원숭이와 닭이 쓰이는 곳에 사나운 개가 따라간다.’는 것이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일제시기 역술가들은 이 구절을 기발하게 해석하기도 했다. 원숭이는 신(申)년, 닭은 유(酉)년, 개는 술(戌)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 개해의 운세가 몹시 사납다고 풀이했다.1944년은 마침 갑신년이었다. 어떤 역술가들은 그 해 운세가 을유년인 1945년과 비슷하다고 보았고,1946년 병술년은 몹시 흉하다고 예언했다. 알다시피 한국은 1945년 일제의 쇠사슬에서 해방되었다. 해방된 해를 1944년과 마찬가지라고 본 것은 누가 보아도 전혀 틀린 예언이었다. 그러나 1946년이 1945년보다 나쁘다고 예측한 것은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 어찌 보면 신빙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다. 위안과 희망을 주는 것이 예언의 존재 이유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칠언고결’의 한 대목을 예로 꺼내든 데는 다른 목적이 있다.18세기 이후 한국의 예언서가 대체로 편년체를 취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조선 전기나 고려시대의 예언서는 한시 또는 무슨 운문체의 사부(辭賦)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것들이 대종을 이뤘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와서는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마냥 편년체 연대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전형적인 것으로 ‘서계이선생가장결’이 있다.‘무학비결’도 부분적으론 역시 마찬가지다.‘무학비결’의 일절을 보면,‘기사년에는 쥐처럼 훔치는 도둑을 면하기 어렵다. 경오년에는 용이 슬피 우는 것을 보리라.’고 했다. 기사년에 간신이 조정에 들어와 경오년엔 임금이 엄청난 곤경에 빠진다는 것이다. 꼭 이런 식으로 매년 일어날 정치적 사건을 간결한 문체로 요약했다. 편년체 역사를 방불케 한다. 편년체라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자치통감강목’이다. 성리학의 대가 주자가 쓴 책이다. 기원전 403년부터 시작해 서기 960년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사를 정통과 비정통으로 분별해놓고, 매년 중요 사건을 대요와 세목으로 등급을 엄격히 정해놓고 쓴 것이다. 본래 주자는 대요만 썼다 하며 나중에 제자 조사연(趙師淵)이 세목을 완성했다 한다.‘자치통감강목’은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기보다는 의리(義理) 관계를 따지는 데 치중했다. 자연히 사실관계가 너무 단순히 처리됐고, 그 과정에서 앞뒤가 모순되거나 틀린 서술도 적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성리학자들의 도덕사관이 도처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역사서인데, 조선시대 선비들의 필수적인 교양서적이었다. 대부분 평민 지식인이던 술사들 역시 ‘자치통감강목’을 읽었다. 그 탓인지 혹은 그 책이야말로 역사책의 전형이라 믿었기 때문인지, 술사들은 “미래의 역사”를 담는 그릇으로 편년체를 선호했다. 도덕적인 평가가 담긴 간단명료한 예언이야말로 ‘정감록’을 비롯한 조선후기 예언서의 뚜렷한 특색이다. 성리학적 지배질서에 반항하던 술사들도 성리학이 이룩한 문화의 코드를 이용했다. 그러나 예언서가 ‘자치통감강목’은 아니다. 예언서는 본질적인 면에서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미래의 역사에 관한 추정인 만큼 표현방식이 무척이나 상징적이다. 앞에 예로 든 ‘원숭이와 닭이 쓰이는 곳에 사나운 개가 따라간다.’는 간단한 구절만 해도 그렇다. 술사들은 이 한 줄로 미래의 어느 시기 3년간의 운세를 점쳐 놓은 것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음양오행설이 예언서의 상징적인 표현과 서로 어떻게 맞물려 있었는지를 짚고 넘어가야겠다.‘칠언고시’에 ‘세치백룡 인하거(歲値白龍 人何去) 약탐사미 필흉잔(若探蛇尾 必凶殘)’이란 짤막한 구절이 있다. 우리말로 옮겨보면 대강 이런 뜻이다.“해가 백룡을 만나면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하나. 만일 뱀의 꼬리를 만진다면 흉도(폭도)가 반드시 잔인해질 것이다.” 번역은 되었으되 이 예언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는다.‘백룡’이니 ‘뱀의 꼬리’ 같은 상징적 표현 때문이다. 백룡은 경진년(庚辰年)이다. 그 까닭이 궁금한 사람도 있겠다 싶어 약간 설명을 보탠다. 천간(天干)을 오행으로 배열하면 경(庚)과 신(辛)은 쇠(金)이다. 쇠는 색깔로 치면 하얀(白) 것이 되고, 방향으로는 서쪽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진(辰)은 곧 용이다. 따라서 백룡은 경진년이다. 백룡을 만났다 함은 경진년이 된다는 뜻이고 ‘어디로 가야 하나.’고 물은 것은 그 해의 처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어서 나오는 ‘뱀의 꼬리’란 경진년 다음해인 신사년 말을 가리킨다.‘흉도가 반드시 잔인해질 것이다.’고 했으므로, 그 해 연말에 거사를 일으키면 승산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흉잔(凶殘)’을 흉하고 잔하다 즉, 길하지 못하고 잔약하다 또는 망한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하다. 후자의 경우라면 거사를 했댔자 쓸모없는 일이 된다는 뜻이다. 세 글자를 놓고 완전히 상반된 해석이 양립한다. 지금 인용한 문제의 예언을 두고 많은 역술가들은 이렇게 보았다. 경진년(1940)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할 것이며, 그 결과 한국 사람들은 설 곳이 없다고 해석했다. 과연 그 해에 일제는 한국인들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중국에서는 잇따른 일본군의 공격으로 중국정부가 궁지에 빠져버린 바람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역시 충칭으로 옮기는 일대변동이 일어났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어떤 역술가들은 이듬해인 신사년(1941)에 독립운동을 했댔자 소용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다. 하지만 ‘정감록’은 본디 조선왕조의 멸망을 염두에 두고 저술된 예언서였다. 일제 식민지 지배를 의식한 예언서는 아니었다. 신사년에 관한 해석에서 보듯 ‘정감록’은 본래의 저술의도와는 무관하게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될 수도 있는 신축성을 과시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의 기독교 신도들은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를 읽으며 자신들의 운명을 개탄했고,‘요한계시록’을 외며 언젠가 찾아올 해방을 염원했다. 하필 ‘정감록’만 상징적인 고무줄 예언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서 기독교의 예언서와 ‘정감록’이 동질적이란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전혀 다른 계통에 속했지만 공통된 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신축성이야말로 예언서의 운명이다. ●자꾸만 되풀이되는 비슷한 구절 예언서 ‘정감록’엔 음양오행설로 포장된 상징이 즐비하다. 휴전선 안 비무장지대의 지뢰밭을 연상시킬 정도다. 그곳은 지뢰탐지기가 없이는 누구도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상징체계를 풀어헤칠 도구가 없이는 ‘정감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상징은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앞에서 인용한 ‘해가 백룡을 만나면 ….’이라는 구절과 흡사한 내용이 ‘정감록’ 안에서 또 발견된다.‘오백년논사비결’엔 ‘세우백호 인하거(歲遇白虎 人何去) 약탐사미 필잔흉(若探蛇尾 必凶殘)’이라 했다.‘경인년을 만났으니 사람은 어디로 갈거나. 뱀해 말엔 반드시 흉도가 잔인성을 발휘하리라.’는 뜻이다. 뱀 꼬리라면 계사년이다. 이 대목을 두고 역술가들은 6·25의 참극을 정확히 맞혔다며 흥분하기도 했다. 경인년은 전쟁이 터진 1950년이고, 계사년은 가까스로 휴전협상이 마무리된 1953년으로 국내의 상황은 무척 불안했다. 참 신기한 노릇도 있다.‘조선왕조실록’에서 ‘정감록’ 사건을 샅샅이 조사해보면, 지금 문제로 삼고 있는 구절이 이미 순조26년(1826)에도 이미 세상의 주목을 끌었던 사실이 확인된다.‘세월이 백룡(白龍)을 만나면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歲遇白龍人何去). 해(年)가 사미(蛇尾)를 만나면 반드시 흉도가 잔인해질 것이다(年逢蛇尾必凶殘)라는 괴상망측한 시를 퍼뜨렸다.’는 혐의로 술사 정상채 등이 체포됐다. 그 때는 백룡 즉, 경진년(1820)이 지난 지도 6년이나 된 시점이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상채는 문제의 구절을 순조11년(1811년)에 일어난 홍경래 난과 관련지었던 모양이다.16년 전 평안도 정주 등지에서 반란을 일으킨 홍경래가 아직 살아 있다며 정상채는 이 구절을 인용했다. 아울러 그는 홍경래 일파야말로 역적이 아니라 중국역사에 견주어 말하면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진승 등은 진시황이 세운 진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농부였다. 정상채는 결국 체제부정적인 유언비어를 살포한 죄로 사형을 받았다(실록, 순조 26년10월27일 을해). 사실 ‘백룡’이니 ‘사미’니 하는 용어가 예언서에 포함된 유래는 생각보다 깊다. 영조24년(1748)년 5월 청주에서 발생한 ‘정감록’ 사건 때도 용과 뱀 꼬리가 거론됐다. 당시 문제가 됐던 것은 ‘용두(龍頭)’와 ‘사미(蛇尾)’였다. 해석하는 방식 역시 위에서 살핀 것과 마찬가지다. 용은 곧 진(辰)해, 뱀은 곧 사(巳)해며, 두(頭)는 정월(正月), 미(尾)는 곧 연말인 12월로 보아 뱀해 초나 뱀해 말에 난리가 일어난다고 했다. 음양설에 기초한 예언의 뿌리는 이렇게 깊고 질기다. 정감록의 원본이라고 하는 ‘감결’에는 문제의 구절을 약간 변형시킨 대목이 있어 다시 눈길을 끈다.‘남도교룡 금안재(南渡蛟龍 今安在) 수종백우 주종성(須從白牛 走從城)’이라 했다. 해석해보면,‘남쪽으로 간 이무기와 용은 지금 어디로 갔나. 신축년이 되자 틀림없이 종성으로 달아났도다.’는 것인데, 기발한 풀이가 있다. 이무기와 용이란 영물인데 이것이 남쪽 즉, 남한으로 들어와 신축년(1961)부터 민족중흥에 앞장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제3공화국을 세워 조국근대화 사업을 달성하리란 예언이 정감록에 있다는 해석이다. 해석은 자유다. 그러나 매우 위험하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신라문화제 9일까지

    찬란했던 신라문화를 재현하고 전통문화를 전승·보전하기 위한 ‘제 32회 신라문화제’가 막을 올렸다.신라문화제는 7일부터 3일간의 일정으로 7개 부문 21개 종목으로 나눠 황성공원 등 경북 경주시 일원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일정별 주요 행사로는 ▲8일=연극 ‘아비’ 공연(안압지 특설무대), 중요무형문화재 제58호인 김대균의 줄타기(노서고분군), 전통 신라복을 개량한 신라패션 ▲9일=국악관현악 및 교향악 공연(노서고분군), 원효예불제(분황사), 새벌향연(내물왕릉) 등이 마련됐다.경주 김상화기자shkim@seoul.co.kr
  • 노사대화 ‘물꼬’는 텄는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노동계와 경영계가 6일 공동으로 마련한 ‘노사대토론회’에서 노사는 노사정간 대화 복원, 비정규직법안 처리 등 노동현안에 대해 이견을 노출하며 치열한 논리대결을 벌였다.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노동계는 극심한 대결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노사정 관계에 대해 정부와 사용자측에 무한책임론과 부분책임론을 제기했다. 반면 경영계는 노동장관 퇴진 등 이념·정치투쟁을 그만두라며 노동계에 쓴소리로 맞받아쳤다.●노사정 관계 시각차 여전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긴급조정권 발동, 병원노조의 직권중재에서 보듯 정부가 반노동자적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노동부가 이같은 반노동정책을 선도함으로써 노정관계의 파탄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운동이 이념·정치투쟁 지향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치투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맞받아쳤다. 이 총장은 “불법파견 및 노조탄압 해소를 위해 사용자도 노력해야 한다.”며 재계에도 화살을 날렸다.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은 정부가 자본편향적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에 대해 “재계도 개별 노사관계를 놓고 정부와 많은 갈등을 빚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부회장은 주제발표 자료를 통해 “기업이 있어야 근로자도 있고 근로자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며 “노동부장관 퇴진 등 이념 및 정치투쟁 지향적인 노동운동에서 벗어나 전체 근로자와 함께 하는 노동조합·노동운동이 돼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또 “노동계는 ‘불법도 밀어붙이면 합법이 된다.’는 의식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서 “어떤 이유로도 불법이 합법화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노사간 상설적 대화협의체 구성과 노동현안에 대한 정기적인 노사대화를 갖자는 노동계의 제안에 대해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상설협의체는 노사정 개편방향과 맞물려 있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비정규직 등 현안 해법도 달라 유재섭 한국노총 수석부위원장은 비정규직 보호입법, 노사관계 제도 및 노사정 개편방안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유 부위원장은 “정부의 비정규직 입법안은 실질적인 보호법안이 아니다.”면서 “비정규직 남용의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사용사유 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의 내용이 포함된 비정규보호입법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연내 입법을 추진 중인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로드맵)에 대해서는 “노동기본권의 지나친 제약과 개입에 따른 비민주성을 해소하도록 방향을 재검토하고 노사가 참여하는 논의구조 속에서 핵심쟁점부터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같은 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주한유럽연합(EU)상공회의소 초청강연회에서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에 대한 입법을 위해 이번 정기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공자금 65兆 떼일듯”

    “공자금 65兆 떼일듯”

    이해찬 총리는 “외환위기 이후 투입된 공적자금 가운데 65조원가량을 회수하지 못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 총리는 6일 오전 서울 신라호텔에서 가진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 조찬간담회 특별강연을 통해 외환위기 때 165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는데 얼마나 상환될지 모르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65조 정도는 상환 못 받을 수도 있다.”면서 “이 돈은 모두 국민이 부담으로 떠 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8·31부동산대책’과 관련해서는 “일부 투기세력으로 인해 올해 초 부동산시장이 동요가 있었는데 8·31대책으로 일단 안정은 됐다.”면서 “입법이 잘 마무리되면 큰 틀에서 투기 가능성은 없어진다.”고 말했다. 특히 8·31대책 입법이 되면 1가구 2주택의 경우 실질 양도세가 60%를 넘고 투자기간의 이자와 주민세·취득세·등록세 등을 합하면 양도차익은 거의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고도 양도차익을 얻겠다고 한다면 귀신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충북 제천시 월악산

    충북 제천시 월악산

    평화롭게 졸고 있는 충주호와 함께 하는 월악산, 유명짜한 산정호수를 끼고 있는 명성산, 의암호를 굽어보는 삼악산, 합천호 맑은 물에 제 그림자를 띄운 악견산…. 아름다운 호수를 거느리고 있어 더욱 가보고 싶은 우리의 산 산 산. 세상에 산 좋고 길 좋고 또 물까지 좋은 곳이 있다면 그곳이야말로 바로 무릉도원이 아닌가. 이번 주말엔 힘겨웠던 날들을 뒤로 하고 ‘호반산행’에 나서 보자. 가을산이 부른다. 우리의 지친 영혼에 햇살처럼 다가와 어서 동참하라고 손짓한다. 이젠 그 별유 풍경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차례. 푸른 호반에서 불어오는 삽상한 바람을 가슴 깊숙이 들이켜 보자. 제천 글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북으론 충주호반이 휘감아 돌고, 동으론 단양 8경과 소백산국립공원, 남으론 문경새재와 속리산국립공원이 에워싸고 있는 곳. 충북 제천의 월악산은 진정 이름 값을 하는 산이었다.‘제2의 금강산’‘동양의 알프스’라는 말이 결코 헛말이 아님을 입증이라도 하듯, 월악은 의연히 그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주중에 찾은 월악은 인적이 드물어 호젓한 느낌마저 안겨줬다. 월악산은 백두대간이 소백산에서 속리산으로 연결되는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험준한 산세와 맹호처럼 치솟은 기암단애에 먼저 압도되고마는 한국의 대표적인 ‘남성적’ 분위기의 산이 바로 월악산이다. 산행 길은 덕주사∼마애불∼960고지∼영봉(정상)∼송계삼거리∼동창교에 이르는 덕주골 코스로 잡았다. 덕주사에서 정상인 영봉까지는 4.9㎞. 총 소요시간은 왕복 6시간 가까이 걸린다. 월악산에는 통일신라 말기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전설이 서려있다. 신라 진평왕 9년에 창건한 덕주사의 원래 이름은 월악사.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고 해서 ‘월악’이란 이름을 얻었다.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 피신하면서 덕주사로 불렸다고 한다. 절이 있는 골짜기가 덕주골이다. 덕주사에서 능선에 오르려면 10여분 계곡을 끼고 가다 갈림길에서 덕주사 마애불(보물 406호) 표지판을 따라 가야 한다. 덕주사에서 ‘중간기착지’인 960고지까지는 대략 2시간 거리.960고지 뒤로는 포암산, 주흘산 등 다양한 형태의 산들이 저마다 들쭉날쭉 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960고지에서 보면 영봉은 바로 코앞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정상까지 가려면 바위 봉우리를 뒤로 한참 돌아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그리 녹록지 않다. 곳곳에 보호망이 쳐져있지만 정규 등산로를 이용하지 않으면 낙석·추락사고의 위험이 있다. 산길에는 크고 작은 날선 돌들이 널려 있어 초보 등산자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 마침내 월악산의 주봉인 영봉. 국사봉으로도 불리는 영봉은 해발 1097m, 높이 150m, 둘레가 4㎞에 이르는 거대한 암봉이다.‘신라 5악’의 하나로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봉우리로 여겨졌다. 사방이 훤히 트인 영봉에서는 평화로운 충주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월악산 주변에는 충주호반을 비롯해 문경새재도립공원, 제천 의림지, 단양 적성의 선사유적지 등 문화경관자원이 곳곳에 있다. 또 송계계곡, 용하구곡 등 명승지들이 깃들여 있어 장관을 이룬다. 송계계곡은 한때 명성왕후의 별궁이 있었다는 곳이다. 월악산 국립공원 안에는 덕주사, 신륵사 등 전통사찰과 마애불, 덕주산성 등 수많은 문화재들이 있어 살아 있는 역사교육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승용차로 가면 중앙고속도로 서제천 IC∼5번국도∼제천시내∼597지방도(청풍경유)∼36번국도(충주방면)∼한수면 송계리(월악산국립공원) 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다. 버스편으로는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제천에서 하차, 청풍행 시내버스를 타면 월악산이 있는 제천 덕산면에 이른다. 월악산국립공원 입장료는 어른 1600원 중·고등학생·군인 600원 어린이 300원. 문의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043-653-3250) ●경기 포천 명성산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과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사이에 위치한 명성산(922m)은 호반유원지로 유명한 산정호수를 끼고 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의 서쪽과 남쪽은 산세가 가파르지만 동쪽은 완만한 초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산정호수를 끼고 있는 초원능선이 절경. 산정호수∼자인사∼삼각봉∼정상에 이르는 코스를 권할 만하다. 산행시간은 왕복 약 3시간. 산정호수 관광지부(031-532-6135). ●전남 담양 추월산 전남 5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추월산(731m)은 담양읍에서 13㎞ 정도 떨어져 있다. 담양군 최북단인 용면 월계리와 전북 순창 북흥면과 도경계를 이루는 곳.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다. 정상에서 굽어보는담양호와 주변경치가 압권. 추월산은 인근 금성산성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였으며, 동학군이 마지막으로 항거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담양군 문화레저관광과(061-380-3141). ●강원 춘천 삼악산 서울에서 북쪽으로 80㎞쯤 떨어진 삼악산은 경춘국도변에서 가까운 만큼 수도권 시민들의 일일 여행코스로 추천할 만하다.10m 높이의 아담한 제1폭포를 시작으로 제2,3폭포와 선녀탕을 경유해 삼악산 주봉(654m)을 오르는 등산로는 그다지 험하지 않아 초보자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의암호와 북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정상에 서면 마치 다도해에 떠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 협곡과 아기자기한 바위능선이 절경을 연출한다. 왕복 3시간 소요. 춘천시 시설관리공단(033-242-2035). ●경남 합천 악견산 경남 합천군 대병면에 자리잡고 있는 악견산(491.7m)은 주변의 합천호를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인근의 금성산, 허굴산과 더불어 세 산이 합천호 맑은 물에 잠긴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악견산 정상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왜적과 격전을 벌였던 악견산성이 있다.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유서깊은 곳이다. 합천군청(055-930-3751).
  • [삼성 ‘편법증여’ 유죄] 그룹 지배구조 큰 영향 없을듯

    [삼성 ‘편법증여’ 유죄] 그룹 지배구조 큰 영향 없을듯

    삼성이 지배구조에 대한 고민을 원점에서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사법부가 4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의 헐값 발행을 놓고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주면서 삼성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여론 압박’이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삼성의 지배구조 최정점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현재 위치도 법적 정당성이 결여됐다는 점에서 삼성의 ‘경영권 승계 프로젝트’도 사실상 차질이 예상된다. 특히 ‘금산법 5%룰’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정부가 설전을 벌이는 가운데 3세 경영의 도덕성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대형 악재가 나와 삼성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러나 전환사채 발행과 삼성 3세(이재용-부진-서현-윤형)들의 지분 보유가 백지화되는 것은 아닌 만큼 지배구조의 전면 개편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식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지분 19.34%를 갖고 있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7.26%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카드의 지분 46.9%를 보유한 대주주다. 이재용 상무를 비롯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3세들은 지배구조의 한 축인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전환사채를 통해 헐값으로 배정받아 삼성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서게 됐다. 장남인 이 상무는 에버랜드 지분 25.1%,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는 8.37%,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가 8.37%,3녀 이윤형(대학 졸업 후 유학준비중임)씨도 8.37%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의 유죄 판결은 이 상무 등 3세들이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의 법적 정당성이 결여됐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는 1심 판결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인 ‘이재용 프로젝트’에 사실상 위법이 있었다는 것으로 삼성가(家)의 3세 경영에 타격을 줄 전망이다. 삼성이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고민은 이번 판결로 더욱 커지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에서 난감하다. 에버랜드 전환사채의 저가 발행에 대한 유죄 판결에도 불구, 이 상무를 최정점으로 한 에버랜드와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카드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연결고리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사실상 없다. 전환사채 등 유가증권 발행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탓에 무효 소송은 불가능하다.96년 10월 삼성에버랜드 이사회가 전환사채 발행을 결의한 만큼 공소시효(발행일로부터 6개월 이내)는 1997년 4월로 이미 끝났다. 그러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여론 압박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가뜩이나 금산법(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과 관련,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25.64%)을 ‘5%룰’에 따라 처분할 상황이 가시화되면서 삼성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에버랜드 지분을 처분할 경우 삼성측의 에버랜드 주가 산정은 96년 전환사채의 헐값 발행과 비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삼성이 지배구조를 개선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은 당분간 여론의 동향을 살피면서 항소 등 다양한 해법찾기에 나설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이 상무의 ‘승계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경영성과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또 SK가 지배구조 개선에 나선 사례처럼 삼성도 계열사의 이사회 강화, 감사위원회 활성화 등을 통해 지배구조 개선에 나설 수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닻 올린 아드보카트호 ‘토털사커’ 시동

    닻 올린 아드보카트호 ‘토털사커’ 시동

    두 차례의 감독 교체로 홍역을 치른 한국축구대표팀이 본격적으로 독일행 재출항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부진의 늪에 빠진 한국대표팀을 지휘할 딕 아드보카트(58) 신임 감독이 29일 핌 베어벡(48·이상 네덜란드) 수석코치와 동반 입국, 한국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도착 일성으로 “한국팀의 사령탑에 앉은 이유는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축구가 지난 한·일월드컵 때보다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독일월드컵 상위 성적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청바지와 재킷 등 가벼운 옷차림으로 인천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온 아드보카트 감독은 강신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이회택 기술위원장으로부터 환영 꽃다발을 받은 뒤 자신이 지명한 홍명보 신임 코치 등 관계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100여명의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짧막한 인터뷰를 마친 그는 임시 숙소인 서울 하얏트호텔에 여장을 푼 뒤 이날 오후 신라호텔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 등 국내 축구계 인사들과 첫 대면을 가진 아드보카트 감독은 “기자회견으로 공식 업무를 시작하는 30일 오후 이란과의 평가전(10월12일)을 위한 23명의 대표팀 명단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전에 대비한 대표팀 명단은 당초 다음달 2일쯤 확정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이 예상보다 빠른 입국 다음날 전격 발표, 그가 이미 한국땅을 밟기 전 ‘1기 멤버’들에 대한 구상을 끝냈음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대표팀 소집도 알려진 다음달 6일보다 훨씬 앞당겨질 전망이다. 한편 3년 만에 돌아온 ‘히딩크 도우미’ 베어벡 수석코치는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다.”고 소감을 밝힌 뒤 “경기 영상 자료를 보니 한국선수들의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면서 “내 임무는 바로 이를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감독 보좌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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