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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주 세종대왕 진달래길 거닐어볼까

    여주 세종대왕 진달래길 거닐어볼까

    4월의 여주는 참 특별하다. 이제껏 한번도 속살을 드러내지 않았던 세종대왕릉(영릉)의 서편 진달래 꽃길이 일반에 개방됐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진달래 꽃밭이 무려 3000평. 솔향기 가득한 꽃밭길을 걷는 맛이 각별하다. 여주 도자기 박람회도 개막됐다. 벌써 열여덟해째 이어져 오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행사로 박람회를 가득 채웠다니,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나서볼 만하다. 글 사진 여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1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넓은 공간이 주는 고요함과 여유로움. 소풍나온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조차 꿈결에서 들리는 듯 나즈막하다. 여느때라면 시끄럽게 들려졌을 법도 한데 그마저도 여유롭게 느껴진다. 한껏 게으름을 피워가며 영릉(英陵)으로 향했다. 이번에 개방된 진달래 숲길은 8.5㏊, 약 3000평쯤 된다. 관람기간은 이번달 30일까지. 진달래꽃이 피는 기간에만 일반 관람객들에게 개방한다. 기존의 관람동선에서 살짝 비켜나, 서편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사람의 얼굴을 닮은 잉어가 노닐던 연못을 지나 진달래 숲길로 향하는 언덕을 올랐다. 곧이어 나타난 길은 두갈래. 어느 쪽으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 오른쪽길로 접어들었다. 솔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던 산새는 한껏 봄을 노래하고 있다. 참 곱기도 하다. 크기는 참새 절반만한 것이 여간 크고 낭창하게 우짖는 것이 아니다. 새로 만든 길이라서인지 잘라낸 나무 그루터기에 발이 걸리기 일쑤다.‘길을 만들어 가며’ 걷기를 5분여. 진달래 군락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수의 영취산이나 강화의 고려산 진달래처럼 온산을 집어 삼킬 듯 붉게 물들여 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대신 영릉의 진달래가 선택한 것은 소나무와의 조화와 교감인 듯했다. 울창한 소나무 아래를 연분홍으로 물들이며 안개처럼 넓게 스며가는 듯한 모습. 강렬함보다는 잔잔함이 느껴졌다. ‘사랑의 기쁨’이라는 꽃말을 가진 진달래는 전국의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종꽃. 잎이 채 돋기도 전에 속절없이 피었다가 지고마는 가냘픈 꽃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정한(情恨)을 상징하기도 한다. 호사가들의 말을 빌리면, 진달래의 향기는 방금 머리를 감은 여인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냄새처럼 상큼하단다. 흔히 알려져 있듯, 진달래는 비슷한 모양의 철쭉과는 달리 먹을 수가 있다. 화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술을 담가 마시기도 한다. 특히 진달래로 담은 술, 두견주는 이름과는 달리 독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진달래 화전 안주로 진달래 술 한잔 마시면, 기골이 장대한 청년도 쉽게 쓰러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가는 걸음마다 놓인 진달래꽃을 사뿐이 즈려밟으며’ 걷기를 한시간 남짓. 아직도 그윽한 솔향기가 코안을 맴도는 듯하다. 어느새 눈앞에 펼쳐진 것은 탐방로. 영릉의 자랑거리다. 탐방로가 왕릉의 봉분 바로 앞까지 이어져 있는 것은 영릉이 유일하다.‘천하명당’에서 바라보는 전망을 만끽할 수 있는 것. 각종 석물 등 왕조시대 건축물의 진수를 눈앞에서 보는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또하나의 자랑거리는 가족들과 함께 돗자리깔고 쉴 만한 장소가 많다는 것. 영릉초입의 어정수(御井水)를 비롯, 인접한 효종대왕릉 산책로 주변에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따스한 봄햇살을 받으며 누워 쉬기엔 그만이다. #2 알고 가면 재미있는 왕릉답사 ●천릉(遷陵)1호인 영릉 영릉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릉옆에 있던 것을 예종때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주산(主山)인 칭성산을 감싼 주변 산세가 마치 꽃봉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듯하다해서 모란반개형(牧丹半開形)의 명당이라고 한다. 원래 이곳은 세조때 우의정을 지낸 이인손 등의 묘가 있었던 곳. 천릉터로 최적의 길지라는 지관들의 보고를 접한 예종은 평안도 관찰사를 지내던 이인손의 맏아들 이익배에게 선부의 묘를 옮겨줄 것을 요청했다. 이익배가 이장을 하기 위해 산소를 파보니 “이곳에서 연을 날려 줄을 끊은 다음, 연이 떨어지는 곳에 묘를 옮겨라.”는 글이 적힌 두루마리가 나왔다. 연이 떨어진 곳에 이장을 한 후 자손은 더욱 번창하였고, 연주리라는 마을이름은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한다. ●참도는 오른쪽이 높다 참도는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 두개의 통행로로 되어 있다. 앞쪽을 보고 좌우를 구분하는 전통적인 시각으로 보면 오른쪽 높은 곳이 신도(神道), 왼쪽의 낮은 곳은 어도(御道)다. 어도는 능제를 지내러 온 왕이 걷는 길, 신도는 선왕의 혼령이 다니는 길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다니는 신도를 아들이 다니는 어도보다 한단 높게 조성했던 것. ●정자각에는 계단 하나가 없다 봉분앞에서 제사를 지냈던 곳이 정자각. 유심히 보면 정자각 오른쪽에는 계단이 두개인데 반해 왼쪽은 하나밖에 없다. 참도를 따라 걸어온 왕은 동입서출(東入西出)에 따라 정자각 동쪽으로 들어와 제사를 지내고 서쪽으로 나간다. 반면 홍살문에서 아들을 따라 정자각까지 온 선왕의 혼령은 제사를 마치면 다시 왕릉 봉분으로 들어가야 한다. 능제가 끝났는데도 선왕의 혼령이 따라오면 왕궁은 물론 온 나라가 시끄러워진다. 그래서 정자각을 나서는 왼쪽에는 왕이 내려갈 계단 하나밖에 없는 것. ●왕릉에는 강(岡)과 잉(孕)이 있다 신라나 고려와는 달리 조선의 왕릉에는 강과 잉이 있다. 강은 봉분이 자리잡고 있는 언덕을, 잉은 왕릉 뒤쪽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지형을 말한다. 강은 땅의 기운 중에 가장 좋다는 생기(生氣)를 저장하는 탱크역할을 한다. 잉은 강에 생기를 주입시켜 주는 역할을 맡는다. ●가는길 영동고속도로 여주IC→여주읍내→42번국도 이천방향→영릉삼거리 우회전→영릉. 중부고속도로 서이천IC→이천방향→수광리 도예촌→3번국도→이천온천삼거리→복하교에서 우회전→여주방향 산업도로→OB맥주공장→ 양평/이포방향삼거리→좌회전→영릉. ●휴관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 성인 500원, 청소년 300원. ●문의 (031)885-3123∼4. #3 볼것·놀것 천지 ‘여주 도자기 박람회´ ‘천년 도자의 맥’. 제18회 여주 도자기 박람회(ceramicexpo.org)가 지난 20일 개막됐다. 이번 도자기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어린이를 위한 행사가 많다는 것. 전시, 체험행사의 대부분이 어린이 위주로 꾸며져 있다. 어린이들이 세라믹과 친해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가족나들이 코스로는 안성맞춤.5월14일까지 계속된다. 올해 20회를 맞는 이천 도자기 축제(ceramic.or.kr)도 21일 개막돼 볼거리를 더해주고 있다. 역시 다음달 14일까지 행사가 이어진다. 경기도 양평에서 봄나들이 온 하지원(9)양 가족과 함께 박람회 행사장을 둘러보았다. 지원이네 가족이 맨처음 들른 곳은 세계생활도자관 1층의 ‘세라믹 판타지’코너. 세라믹 정원에 전시된 세라믹 꽃과 곰인형 등이 반갑게 인사하는 듯하다. 정원을 지나 왼쪽으로 돌면 ‘토야네 집 101호’다. 토야는 박람회의 마스코트 이름.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빌라에는 청자아버지와 분청엄마 등 모두 12명의 토야네 가족이 살고 있다. 방은 모두 네 개. 맛있는 식당과 행복한 거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방마다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세라믹의 세계를 정교하게 꾸며 놓았다. 토야네 집 구경을 마치면 옆집인 ‘상상갤러리 201호’로 연결된다.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라믹 작품들을 재미있는 방법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세라믹 작품에 대한 어린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보고, 듣고, 느끼는 등 오감을 자극하는 전시기법이 동원됐다.”는 것이 교육체험 큐레이터 전양건(35)씨의 설명이다. ‘상상극장’에서 ‘할머니와 요리사’라는 5분짜리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면 ‘상상스튜디오’에 닿는다. 도자작품을 실제로 만들어 볼 수 있는 곳이다. 지원이가 만들기로 한 것은 ‘알리바바의 집’이라고 이름붙인 항아리형 도자기. 삐뚤빼뚤하지만 여간 귀여운 모습이 아니다. 한 달 뒤에 택배를 통해 잘 구워진 ‘알리바바의 집’을 다시 만나기로 하고 2층의 ‘세라믹 하우스Ⅱ’전시장을 찾았다. 이곳은 엄마와 아빠를 위한 곳. 침실과 주방, 욕실 등 집안 곳곳에 사용되는 세라믹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오디오룸에 전시된 도자기 스피커는 오디오 제작업체들 사이에 관심의 초점이란다. 하지만 지원이 엄마의 관심은 침실에 전시된 세라믹 구두. 누구든 발에 맞으면 무료로 준다기에 지원이 엄마도 도전해 봤다. 애는 썼지만 잘 들어가지 않아서 포기. 세계생활도자관을 나와 오른쪽 토야관으로 들어섰다.‘미니룸 꾸미기’행사장이 있는 곳이다. 자석을 덧대놓은 벽에 세라믹 장식용품들을 가져다 자기 마음대로 꾸며볼 수 있다. 토야관 오른쪽은 토야도자공방. 어린이 특별전의 하이라이트다. 흙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놀이가 준비되어 있다.“어린이들이 흙과 노는 공간이자, 도자기를 완전정복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 전씨의 설명이다. 흙밟기장에서는 맨발로 흙속에서 뒹굴수 있다. 무료로 대여해준 앞치마를 입은 지원이가 처음 본 친구들과 진흙을 밟아가며 정신없이 논다. 저절로 머드팩이 될 듯하다. 이밖에 흙물로 그림을 그리는 ‘슥삭슥삭’, 과녁에 흙을 던져 맞히는 ‘휙휙팍팍’ 등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들. 이번에는 흙체험실에서 도자기 굽기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흙체험실은 도예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며 400명이 동시에 도자기 제작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공간. 컵을 만드는 데 20분, 화분 등의 생활자기를 만드는데는 1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자신만의 도자기를 만들어 제출하면 주최측에서 불에 구워 제작한 다음 택배로 부쳐 준다. 기간은 한달 정도 소요된다. 예약은 (031)884-8552.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여주IC→37번국도 여주방향→여주 버스터미널 사거리 우회전→여주교→331지방도 신륵사 방향→행사장. ●관람료 흙놀이방+전시관:성인 3000원, 어린이 4000원. 가족은 4인 이상 1만원,3인 이상은 8000원. ●체험료 흙체험실:만들어 가져갈 경우 5000원, 구워서 택배로 보낼 경우 일반 2만원, 학생은 1만원. 택배비 본인부담. 월요일은 휴관. ●문의 (031)645-0570∼1,(031)884­8644. <가볼만한 곳> ●해여림 식물원 21일 문을 연 해여림식물원은 형형색색의 튤립축제가 자랑.5만여평에 달하는 관람면적에 각종 꽃과 약용식물, 희귀종 보호수 등이 가득 들어차 있다. 입장료는 어른 6000원, 청소년 5000원, 어린이 4000원. 월요일은 휴무. 문의(031)882-1700. ●황포돛배 신륵사 맞은편 나루터에서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신륵사에서 여주대교, 영월루 등을 돌아본다. 소요시간은 30분. 월요일은 쉰다. 요금은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문의 (031)887-2867. ●신륵사 여주의 대명사라 할 만큼 많이 알려진 천년고찰. 화려한 다포지붕이 압권인 극락보전은 경기 유형문화재 제128호, 조선 성종때 세워진 다층석탑은 보물 제225호로 지정돼 있다. 문의(031)885-2505.
  • 외환당국 ‘환율 불끄기’

    외환당국이 환율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긴급 ‘진화’에 나섰다. 환율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판단에서다. 투기세력 개입까지 거론하며 ‘실탄’도 충분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래서인지 환율은 이틀 오름세를 보였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얼마나 가겠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재정경제부는 26일 차관과 차관보, 관련 국장 등이 ‘불끄기’에 총동원됐다.박병원 1차관은 이날 오전 서울 신라호텔에서 한국투자증권 주최로 열린 ‘국내 상장사 기업설명회’ 기조연설을 통해 “기존 외환자유화 일정을 앞당기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박 차관은 이어 “외환 자유화는 외환시장의 폭과 깊이를 확충하고 수급 불균형을 완화함으로써 외환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해외 부동산에 대한 투자를 제약하는 모든 규제를 조기에 풀어 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수요를 높이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효과는 장기적일 수밖에 없다.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도 거들었다. 변 장관은 오찬 기자 간담회에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계획이 올해 11조원, 내년 10조원,2008년 8조원 등으로 잡혀 있으나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내년 규모를 올해와 비슷하게 유지하거나 더 늘리는 방안을 재경부와 의논하겠다.”고 밝혔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제7차 서울국제금융포럼에 앞서 열린 조찬간담회에서 “최근의 환율문제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며 기업들이 견딜 만한 수준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실탄은 충분하다.”면서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 이외에도 스와프거래 등을 통해 외환시장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원효는 반전주의자였죠”

    “원효는 반전주의자였죠”

    “일연의 ‘삼국유사’도, 춘원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도 원효를 무책임하게 오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원효의 삶과 사상을 바로잡고 싶었습니다.” 소설가 한승원(67)이 부처님오신날(5월5일)을 즈음해 한국 불교의 큰 스승, 원효의 일대기를 그린 전작 장편소설 ‘소설 원효’(전 3권, 비채)를 펴냈다.3년 전, 조선후기 선승이자 한국 차의 중시조인 초의선사를 다룬 책을 출간한 바 있는 작가는 “‘초의’보다 먼저 구상한 작품인데 공부가 부족한 탓에 이제야 집필을 끝내게 됐다.”고 말했다. 원효는 신라시대 불교 대중화와 불교사상 융합에 힘쓴 정토교의 선구자로 한국 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화왕계’의 저자인 설총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삼국유사’의 기록대로라면 원효는 불안정한 시국에 여자 생각이 동해 과부 요석공주와 동침한 파렴치한 승려입니다. 또 이광수는 원효가 도술로 도적을 제압하고, 신라 젊은이들에게 삼국통일 전쟁에 기꺼이 몸을 던지라고 부르짖었다고 썼습니다.” 원효의 저서는 물론 수많은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원효의 행적을 좇아 경산 불등마을과 경주 남산 등을 수차례 취재한 결과를 근거로 작가는 이들 기록에 강한 반론을 제기한다. 반전주의자였던 원효를 제거하기 위해 신라 집권자들이 그를 파렴치한 승려로 몰았으며,2차 세계대전 중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소설도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에 참여하도록 충동질하는 데 원효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원효는 반전주의자이자 세계주의자였고, 일심(一心)·화쟁(和諍)·무애(無碍)를 실천한 ‘불국토주의자’였다.”면서 “분단의 아픈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이 나라를 분단되게 한 강대국이 치르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군대를 파견하는 현 상황을 돌아보게 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소설 원효’에 등장하는 고유명사를 한자의 뜻말과 이두를 섞어 쓴 ‘삼국유사’의 표기를 따르지 않고 뜻을 그대로 한글로 표기했다. 이를테면 김춘추의 큰딸 ‘고타소(古陀昭)’는 ‘예삐’로, 원효의 할아버지 ‘적대공(赤大公)’은 ‘불커’로 썼다.“예전에 국어교사 시험 준비할 때 공부했던 걸 활용해봤다.”며 웃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지금 경주에선] ‘앙코르-경주문화엑스포’ 준비 어떻게

    [지금 경주에선] ‘앙코르-경주문화엑스포’ 준비 어떻게

    천년고도 경주의 옛 문화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 유적과 만난다. 경북도와 캄보디아 정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앙코르-경주 세계문화엑스포 2006’이 오는 11월21일부터 내년 1월9일까지 50일간 열린다. 이번 행사는 우리나라와 캄보디아의 수교 1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이라는 의미에서 더욱 뜻깊다. 그 준비과정을 살펴 본다. ●행사추진 배경은 이번 행사는 캄보디아 측에서 먼저 제의해 왔다. 지난 2003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무역센터협회(WTCA)총회에서 이의근 경북지사의 기조연설과 제3회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주제영상인 ‘화랑영웅 기파랑전’상영이 계기가 됐다. ‘문화산업-세계를 여는 창’이라는 주제의 연설내용과 주제영상에 대한 세계문화계의 반응이 의외로 커지면서 경주문화엑스포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아졌다. 3개월 뒤 캄보디아 측에서 공동개최를 제의했고 경북도가 ‘문화상품 수출’이라는 취지에서 화답해 양측은 곧바로 공동개최 의향서를 체결했다. 이어 문화관광부와 행정자치부에서 국제문화행사개최 타당성과 중앙 재정투·융자 심사승인을 잇따라 해줘 탄력이 붙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속안 캄보디아 부총리와 이 지사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공동개최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지난 2월에는 공동사무국이 프놈펜 국가관광위원회에 설치됐다. 양국 20명의 직원이 근무하면서 실무를 추진하고 있다. 오는 5월11일에는 조직위 창립총회가 열린다. ●행사의 내용은 행사주제는 ‘오래된 미래-동양의 신비’로 정해졌다. 동남아와 동북아의 문화근간인 앙코르와트와 경주의 문화를 한자리에 모아 조명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인다는 뜻을 담고 있다. 행사장은 물과 수목 등 현지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자연친화적으로 조성한다. 경북측은 행사내용에 대해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 살거리, 즐길거리 등이 어우러진 새로운 체험 한마당을 연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전시, 공연, 영상, 이벤트 등 4개 분야를 테마로 한다. 전시는 한국의 이미지전과 크메르 문화전이 계획돼 있다. 각 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것들을 전시해 관광객들에게 선보인다는 것이다. 또 한국과 캄보디아의 전통민속 공연을 한다. 구체적인 것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양국에서 가장 내로라할 수 있는 민속공연이 펼쳐질 것이라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외에도 세계적인 공연단을 초청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그동안 열린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는 러시아나 중국의 기예단 등이 공연한 것과 같은 사례가 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캄보디아의 ‘위대한 황제’와 경주의 ’화랑영웅 기파랑전’ 등의 영상물이 상영된다. 이밖에 특별이벤트로 국제영화제와 한·캄 전통의상쇼 등이 예정돼 있다. 앙드레김 패션쇼 등도 야간행사로 개최키로 했다. ●기대 효과는 문화엑스포의 해외 개최로 경주의 문화가 세계화 대열에 합류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류열풍에 이어 문화축제도 수출함에 따라 문화발신기지로서 한국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는 효과도 기대된다. 문화교류를 통한 경제교류의 물꼬도 터질 것으로 보인다. 행사의 성공여부에 따라 한국기업의 캄보디아 진출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캄보디아는 중국과 인도차이나 반도의 경제 중심축으로 전략적 요충지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폭넓은 시장개방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받는 국가이다. 외교적으로는 지방정부의 외교적 역량으로 추진한 프로젝트여서 지방자치단체의 저력과 역량을 입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해결 과제는 무엇보다 재원조달이 문제다. 행사에는 모두 60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이중 20억원은 캄보디아 측에서 부담하고 나머지 40억원은 우리가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측 부담액인 40억원은 국비와 자체예산 등으로 충당한다는 계산이다. 여의치 않으면 캄보디아에 투자를 희망하는 각국 기업을 스폰서로 유치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또 세계적인 문화재단 및 문화관련 기업의 행사참여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60억원으로 모든 준비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전시, 공연 등 기본 전시공간은 물론 영상관을 짓는 데도 상당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더구나 캄보디아측은 영상관만은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로 세워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행사 준비기간도 너무 촉박해 짜임새있는 준비를 위해서는 지자체와 정부의 충분한 전문인력 지원이 절실하다. 이밖에 한국어와 영어, 크메르어를 동시 통역해야 하는 문제도 걸림돌이다. 현재 캄보디아에는 한국어과가 개설된 대학이 없어 한국어를 구사하는 현지인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관광객 650만명… 순수익 501억원 경주 세계문화엑스포의 첫 행사는 지난 1998년 열렸다. 이후 2000년과 2003년 2회와 3회 행사가 잇따랐다. 그동안 행사를 찾은 관광객은 1회때 304만명을 비롯, 모두 650만명에 이른다. 참가국은 1회 48개국에 7000여명,2회 81개국 9000여명,3회 55개국 1만여명이었다. 사업비는 1055억원(1회 350억원,2회 370억원,3회 333억원)이 들었다. 정부보조금, 행사비용 등을 제외한 순수익은 501억원에 이른다. 생산유발효과는 9206억원, 소득유발효과 2649억원, 고용창출효과 6만 4000명이다. 성과는 이같은 가시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 문화와 첨단과학기술을 접목시키고 문화인프라를 축적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가 세계로부터 그 진가를 인정받은 것이다. 캄보디아는 물론 우루과이, 이탈리아, 러시아 등에서 공동개최를 제의해 올 정도였다. 또 2003년 행사 주제영상인 ‘화랑영웅기파랑전’이 국내 3D입체영상 최초로 해외수출길에 올랐다.2004년 11월 세계적인 영화배급사인 시멕스&아이워크스사와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 8만달러에 상영 이익금의 50%를 나누는 러닝개런티 지급조건이다. 또 이 회사는 자신들이 소유한 세계 250개의 영화관을 통해 5년간 배급·상영할 수 있는 독점권도 사갔다. 해외수출을 계기로 한국이 애니메이션 강국으로 거듭나고 신라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문화콘텐츠 수출 새 이정표 제시” “세계적으로 문화엑스포는 경주 세계문화엑스포밖에 없습니다.” 이의근 경북지사의 문화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초대 민선단체장 취임 직후 경북의 ‘밥줄’은 문화산업에 달려있다며 주변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문화관련 행사를 구상했다. 그 결과 1998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첫 개최하는 성과를 올렸다. 당시 향후 계획에 대해 “세계문화엑스포 공동체를 만들어 명실공히 세계인의 문화축제, 그리고 문화올림픽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이번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그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행사가 성사되기까지에는 실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캄보디아의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40분의1밖에 안 돼 캄보디아측이 과연 행사비 20억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캄보디아측의 적극적인 자세로 해결될 수 있었다. 이미 20억원을 조성해 놓았다는 것. 또한 행사의 노하우를 제공하는 경북도가 로열티는 따로 못 받을망정 행사비의 3분의2나 부담하느냐는 비판도 뒤따랐다. “그동안 3차례의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열리는 동안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0만명을 넘습니다. 그러나 앙코르에서는 50일간 유럽권을 중심으로 25만명 이상이 찾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지사는 “투자비를 한푼도 못 건지더라도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기회이므로 결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닙니다.”라고 강조했다. 행사수익금은 투자비 비율에 따라 나눠가지기로 했다. 따라서 캄보디아 정부도 입장객 유치에 최선을 다할 것이어서 금전적으로 손실도 그리 크지 않을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이 지사는 이번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문화콘텐츠 수출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이니만큼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고영훈展, 가나아트센터서 새달 14일까지

    한국 극사실주의 회화의 대표주자인 고영훈이 제2의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 책 위에 떠 있는 돌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그에게 책은 곧 문명의 상징이었다. 반면 돌은 자연의 모습이자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향이었다. 돌 이후 책 위에 떠 있는 소재를 새의 깃털이나 꽃 등으로 다양화했지만 ‘현실’과 ‘이상’을 대비시키는 양식은 같았다. 한데 최근 그의 작품에서 중대한 변화가 감지된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고영훈’전에 등장한 ‘도자기’ 그림에선 더 이상 책, 즉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 허리 아래가 찌그러져 기우뚱 쓰러질 듯한 달항아리(기우뚱한 달),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청화백자(용이 놀다) 등은 만져질 듯 생생하지만, 그 배경은 책도, 글자도 하나 없이 그저 하얗기만 하다. 물론 아직 화사한 꽃과 나비 등을 책 위에 그리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전시의 포인트는 단연 도자기 그림이다. 그가 문명의 상징으로 표현했던 문자, 즉 책을 그림의 배경에서 없앤 이유는 뭘까? 작가는 이제 현실과 이상의 통합을 바라보는 것 같다. 도자기는 흙(자연)으로 빚어진 그릇(문명)인데, 굳이 책으로 문명을 재차 나타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자연이 녹아 있는 문명, 이상이 구현된 현실을 작가는 도자기 그림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고영훈 작품세계의 진화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도자기 그림과 함께 전시된 은 시절의 작품 ‘코카콜라’(1974)와 ‘군화’(1973),‘This is a Stone’ 등은 작가의 초기 작품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작가는 당시 캔버스 위에 이들 문명(군화)적, 자연(돌)적 오브제를 별도의 작품으로 그렸다. 이후 80년대부터 책 위에 떠 있는 돌을 그림으로써 현실과 이상의 공존을 시도하는 첫번째 진화를 보여준다. 책 표지 위에 새 깃털과 칼을 얹은 그림(승리), 목련(자연법-봄2)이나 호박덩굴(자연법-인생1)을 얹은 그림들은 현실과 이상을 대비시킨 돌 그림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도자기 그림은 공존하는 현실과 이상이 아예 융합되는 분명한 진화의 결과이다. 결국 처음에 작가가 완전히 별개로 다루었던 현실(군화)과 이상(돌)은 공존의 단계(책 위에 돌)를 거쳐 융합(도자기)되는 두 차례의 진화를 거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엔 한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우리 역사 속 여인들의 이야기에 작가가 그렸던 삽화 시리즈도 부대행사로 선보인다. 통일신라의 선덕여왕, 진덕여왕에서부터 조선시대의 임윤지당, 허난설헌까지 23명의 여인들을 강렬한 색채와 개성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5월14일까지.(02)720-1020.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 동래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1) 동래길

    고속철도가 놓이면서 서울과 부산이 3시간 거리로 좁혀졌다.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사통팔달 도로가 뚫리면서 이 땅에 자동차가 갈 수 없는 곳이란 이제 거의 없다. 그러나 자동차가 없던 시절은 어떠했을까. 말을 타거나 괴나리 봇짐을 등에 메고 길손들이 오순도순 걸어가던 옛길. 비록 ‘속도’는 없었지만 그 길 속에는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질박한 향토 내음이 나그네의 시름을 덜어줬다. 발닿는 곳마다 다른 말씨와 풍물이 반겨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면서 애환을 함께했던 옛길은 곧 우리의 삶이자 역사였다. 문명의 발달 속에서 느림이 미학이 된 시대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사라진 옛길을 따라 잊혀진 삶을 되짚어 본다. 길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이다. 지금으로부터 400년전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현장은 더욱 그랬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왜구에게 한양으로 가는 길을 내줄 수 없다며 목숨을 버렸고, 경상좌부사 이각은 그 길을 따라 북으로 도망을 쳤다. 그 길에서 충신과 역신이 갈라섰고 전쟁이 끝난 후 송상현은 불멸의 충신으로 부활했지만 도망친 이각은 비겁자로 추락했다. 동래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충신과 역신이 갈라선 길 조선시대 부산의 중심지는 동래였다.1592년 임진년 4월13일. 부산진과 다대포진을 무너뜨린 왜구는 하루 만인 14일 저녁 지금의 동래경찰서 부근인 동래성 남문까지 밀고와 조선군과 대치했다. 앞서 군사를 이끌고 동래성에 와 있던 경상좌도 군사책임자인 이각(경상좌부사)은 싸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북문지기를 죽이고 도망쳐 버렸다. 왜구는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거든 (명나라를 정벌하는 )길을 비켜 달라.’는 목판을 동래성 남문 밖에 세웠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즉각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리기는 어렵다.’고 맞서며 결연한 항전의지를 다졌다. 이튿날인 4월15일 왜군이 파죽지세로 밀고와 동래성이 함락됐다. ‘외로운 성은 마치 달무리같이 적에게 포위되었는데 이웃한 여러 진은 기척도 없구나. 임금과 신하의 의리는 무겁고 아비와 자식의 정은 가벼이 하오리다.’ 송 부사는 한시를 남기고 꼿꼿하게 최후를 맞았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임진왜란 이래 방치돼 왔던 동래성은 1731년(영조 7년) 동래부사 정업섭의 발의로 현재의 성곽규모인 둘레만 1만 7219척(7.7㎞)에 달하는 새 읍성을 쌓게 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읍성은 또 무너진다. 시가지 정비라는 명분 아래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의 성벽이 철거됐다.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성벽도 크게 무너지고 민가가 점유해 훼손되기에 이르렀다. 그 동래성이 요즘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울산대 한삼건 (도시공학)교수 는 “구한말 일본인은 성밖에서만 거주,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면서 “조선의 전통적인 신분질서를 무너뜨리고 일본인의 생활공간 확충을 위해 일제가 마구잡이식으로 전국의 성벽을 철거했다.”고 말했다. ●한양으로 가는 지름길 ‘어데 가넝기요’ ‘한양 갑니더.’부산 방언의 물음과 대답의 어미는 ‘∼넝기요.’ ‘∼ㅂ니더.’이다. 혹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자못 시비조로 들리기도 한다. 조선시대 부산의 중심지였던 동래는 휴산과 소산이 교통의 요지였다. 휴산은 지금의 동래역 앞 패총지 주변이며, 여기서 동래읍성을 지나 북으로 20리 떨어진 소산은 지금의 금정구 하정마을이다. 하정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부사 이각이 자신은 이곳을 지키겠다는 핑계로 동래성을 빠져나와 도망간 바로 그곳이다. 휴산에서 소산으로 가는 사이(금정구 부곡동)에는 기찰(譏察)이 있었다. 기찰은 특정한 곳에서 검문검색을 하는 요즘의 검문소에 해당하는 곳이다. 당시에는 부산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려면 동래∼양산으로 이어지는 길과 구포에서 낙동강을 건너 김해로 빠지는 길을 통해야만 했다. 이정형 동래구 문화재 전문위원은 “부산에는 일본과의 통로인 초량왜관이 있어 밀무역이나 적과의 내통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동래와 김해에 검문소를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곳 마을에는 아직도 기찰목욕탕, 기찰떡방앗간, 기찰식육점, 기찰열쇠 등 옛 지명을 상호로 사용하는 집이 수두룩하다. 경부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고립되다시피 한 하정마을(소산역터)은 아직 4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토박이 안근수(72)씨는 “여행을 떠나는 관리들이 말을 타고 내릴 때 사용하던 큰 돌이 마을 어귀에 있었는데 수년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족욕 바람 동래온천 동래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에 동래온천이 한몫을 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동래온천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31대 신문왕(683년)때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동래를 지칭)의 온정에 목욕을 하고 성으로 돌아갔다.’(삼국유사)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온정을 관리하는 관속인 온정직을 두었고 욕객들을 위해 온정원을 설치하고 역마까지 두었다.1766년(영조 42년) 동래부사 강필리는 아홉칸짜리 집을 지어 남탕과 여탕을 구분하고 온정을 지키는 대문도 세웠다 한다. 이때 세운 온정개건비(부산시기념물 제14호)가 현재 온천동 농심호텔 후문 용각의 뜰안에 자리잡고 있다. 온천장에는 요즘 공짜 족욕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농심호텔 후문과 온정개건비 사이에 지난해 11월 무료 노천족탕이 들어서 하루 1000여명이 찾아온다. 흡사 신라의 포석정을 닮은 노천 족욕탕에는 이른 아침부터 족욕객들이 몰려 빼곡히 둘러앉아 온천수에 발을 담그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한때 온천을 강점했던 일본인 관광객들도 엔화의 위력을 앞세우며 여전히 동래온천을 찾는 큰 고객들이다.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온천수. 그러나 언젠가 동래 온천수가 뚝 끊어질지도 모른다. 동래온천번영회 정주태 상무는 “고속철도 부산구간인 금정산에 터널을 뚫으면 수맥이 끊겨 혹시나 온천수가 마르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며 동래의 명맥이 사라질까 우려했다. 부산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그래픽 김송원기자 oksong@seoul.co.kr ■ 남대문~동래 ‘영남대로’는 조선시대 한양과 부산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은 남대문을 시작으로 용인~안성~충주~문경~칠곡~대구~청도~밀양~양산~동래에 이르는 950리길이었다. 이른바 영남대로로서 민족생활사의 파노라마와 같았다. 도로의 폭은 넓은 길이 10m, 중간길이 7m, 좁은 길은 3m 정도였다. 30리마다 도로의 기능을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역(驛)을 두었고 지역별로 10여개의 역을 한데 묶어 종육품 관직의 찰방(察訪)이 모든 역의 관리책임을 도맡았다. 역은 역토(驛土)를 지급받아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했고 역에는 규모에 따라 5∼30마리의 말이 배치됐다. 역의 기능을 보조하여 숙식을 제공하는 국가관할의 관(館)과 원(院)이 설치됐고 서민들의 주막도 들어섰다. 공문서의 수발, 세금으로 거두는 세미, 조공품 운반, 관리들의 여행 등은 모두 이 도로를 통해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의 주공격로로 이용돼 주변지역이 극심한 피해를 입었고 조선통신사도 이 길을 따라 부산에 도착,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과거에 나선 경상도 선비들도 이 길을 따라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은 죽령길인 영남좌로와 추풍령길인 영남우로가 따로 있었다. 좌로는 서울~양주~광주~여주~충주~단양~죽령~풍기~영천~안동~의성~신령~경주~울산~기장~동래로 연결됐다. 우로는 서울~용인~양지~주산~진천~청주~옥천~청산~황간~추풍령~성주~현풍~창녕~영산~칠원~창원~황사진~양산~동래로 이어졌다. 영남대로는 19세기 말까지 한양과 경상도 지방을 연결하는 공로(公路)로서 명맥을 유지했으나 일제의 철도 건설로 기능이 약화됐으며, 자동차 교통의 발달로 역사속으로 점차 잊혀졌다.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우리 전통과학 뒤집어보기

    서양의 근대과학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과학을 연구하고 생활화했을까. 혹자는 우리 전통과학의 역사에서 과연 ‘과학’이라 할 만한 것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런가 하면 또 한편에선 과학적인 것으로 칭송받는 우리의 몇몇 유물들도 따지고 보면 값싼 국수주의의 산물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우리 과학 유물들의 과학성이 서구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진다는 얘기다. 서울대 국사학과 문중양 교수는 이런 자기비하적인 의구심에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서구식 잣대로 우리 과학을 재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가 펴낸 ‘우리 역사 과학기행’(도서출판 동아시아)은 서양 근대과학과는 사뭇 다른 패러다임의 우리 전통과학 세계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우리 전통과학을 그것이 처한 특정한 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복원한다. 고대 신라인들의 하늘에 대한 관념은 우리와 어떻게 달랐는지, 조선 건국을 주도한 사대부들이 어떤 의도로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라는 세계지도를 국책사업으로 만들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저자의 표현대로 “그들의 세계관 속에 푹 빠져 봐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첨성대, 석불사 석굴, 훈민정음, 앙부일구, 금속활자, 거북선, 수표교, 혼천시계, 천하도 등 열여덟 가지 주제를 정해 각 유물에 담긴 의미를 짚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첨성대는 단순한 천문대가 아니다. 첨성대의 기능에 관해 처음으로 언급한 문헌은 15세기말 ‘신증동국여지승람’. 여기에 이후천문(以候天文) 즉 ‘천문을 물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외형상 전혀 천문대일 것 같지 않은 첨성대가 천문대로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역사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 역사 기록은 첨성대가 근대적인 의미에서 ‘천문을 관측’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천문에 대해 묻던’ 구조물임을 분명히 한다. 천문을 묻는 행위는 단지 천문현상을 관측하는 일 뿐만 아니라 풍년을 기원하고 천변재이로부터 무사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활동까지 포함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첨성대는 1500년전 신라인들의 염원을 담은 상징적 조형물 또는 그 염원을 풀기 위한 일종의 제단이었다는 설이 힘을 얻게 된다. 임진왜란의 일등 공신은 거북선이 아니다(?). 우리에게 거북선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러나 ‘거북선 신화’에만 빠져 있을 뿐 정작 그 거북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어떻게 싸웠는가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의 수군은 이미 판옥선이라는 우수한 군함과 막강한 화력의 화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거북선은 그 가공할 위력의 판옥선에 덮개를 씌워 ‘돌격용’ 군함으로 조금 개량한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거북선은 뚜껑이 덮인 밀폐된 구조였기 때문에 기동성과 전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돌격선으로서 적의 예봉을 꺾는 임무를 수행했을 뿐 조선 수군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판옥선이었다. 임진왜란 동안 거북선이 단지 3∼4척밖에 만들어지지 않은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는 것. 요컨대 이순신 장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거북선이 아니라 조선 수군의 대형 화포와 1555년에 개발한 판옥선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비스럽고 미신적이기까지 한 원형 천하도(天下圖)를 통해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서양 천문도와 전통 천문도를 단순히 혼합한 것에 불과한 혼천전도(渾天全圖)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기도 한다.17세기 이후 그려진 조선의 이 ‘황당무계한’ 천하도가 비록 객관적인 지리정보를 전해주진 않지만, 그런 천하도의 등장 자체가 유가의 정통적 세계인식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다. 이학박사 출신의 사학자라는 독특한 지적 배경을 갖고 있는 저자가 내리는 과학유물에 대한 평가는 일견 낯설고 거북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전통과학의 패러다임이 서구 과학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전제 아래 우리 과학문화를 평가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은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것은 결코 우리의 과학문화유산에 대한 어설픈 지적 분장(扮裝)이 아니기 때문이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패밀리 레스토랑 선두 군침 맛전쟁

    패밀리 레스토랑 선두 군침 맛전쟁

    길거리는 ‘맛의 천국’이다. 건물마다 온갖 음식점이 있다. 한 집 걸러 새로 올라가는 게 음식점의 간판이다. 최근 들어 가족 단위로 찾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한때 최고급 가족 외식 장소였지만 요즘엔 1인당 1만∼2만원 정도로 대중화됐다. 시장도 최근 몇년간 매년 20%의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토종 업체도 등장한 지 오래됐다.‘돈이 된다’는 얘기다. 업계는 성장 이유를 두 가지로 본다. 주5일제로 가족 손님이 더 늘었고,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가 발길을 레스토랑 안으로 돌려 놓는다. ‘먹는 장사’는 확실히 돈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도 마찬가지다. 현금 흐름이 좋고, 부실채권이 발생할 우려도 없다. 이러니 최근에는 대기업도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도 업종의 외형이 커지고 대중화하면서 경쟁 상대가 ‘옆집’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고객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혀’, 다양한 미각을 맞추기 위한 노력도 부단히 하고 있다.‘웰빙’을 접목하기 위함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최근 국내 시장 트렌드이다. 최근 영역을 확장 중인 패밀리 레스토랑, 어떤 맛으로 고객을 유혹할지 기대가 된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아이부터 어른까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메뉴, 가족 중심적인 분위기,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편안한 식사…. 이런 까닭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이 많다.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에서 최근 ‘맛의 전쟁’이 시작됐다.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는 데다 현금 흐름이 좋아 기업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삼양,‘세븐스프링스’ 인수로 불 댕겨 삼양그룹은 외식업체 ‘세븐스프링스’를 인수했다. 삼양그룹이 베이커리 카페 ‘카페 믹스앤베이크’를 통해 지난 2003년 외식업에 진출했던 터여서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가 ‘삼양발 대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외식사업 강화’를 천명한 삼양그룹은 일단 맛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입장이다. 세븐스프링스의 주요 메뉴는 독특한 맛의 스테이크와 해산물 요리. 또 30가지 이상의 신선한 야채와 10가지의 소스로 구성된 뷔페식 ‘샐러드 바’를 갖추고 있다. 특히 샐러드 바는 신선한 야채와 독특한 맛의 소스 코너를 별도로 마련해 입맛에 따라 다양하게 샐러드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고객들의 웰빙과 건강 추구를 위해 천연 재료만을 사용하고 인공 조미료는 전혀 쓰지 않는다. 세븐스프링스는 순수 국산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2001년 설립됐다. 해마다 100% 이상 성장하면서 지난해 68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다음달 인수 기념 고객 이벤트와 6월 말 서울 광화문점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2009년까지 현재 4개의 점포를 20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존 업계, 삼양에 대응해 지역밀착형 마케팅 세븐스프링스의 공세가 강화되자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는 지역 밀착형인 ‘그라스 루트(Grass Root)’ 마케팅 전략으로 맞대응할 작정이다. 호주 냉장육을 가장 먼저 썼다는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는 할인을 강화하고 있다. 아웃백 하나카드,LG 빅패밀리카드, 삼성카드, 광주비자카드, 현대M카드 등은 20% 할인해 주고 삼성 임직원카드, 삼성 지엔미카드,LG 마이원카드,KB 프렌드카드,KB 이퀸즈카드는 10% 할인해 준다. 빕스는 이달 말까지 여의도점 오픈 기념으로 ‘빕스스테이크(2만 6400원)’를 주문하는 고객 5000명에게 선착순으로 마우스 패드를 준다. 또 30일까지 ‘오필승 세트(빕스 스테이크·버드와이저 2병·3만 2400원)’를 먹은 뒤 응모하면 추첨을 통해 2명에게 독일 월드컵 관람권과 항공·숙박권을 준다. 당첨자는 다음달 4일 발표한다. 베니건스는 30일까지 이탈리아 음식 잔치인 ‘비바 이탈리아’ 행사를 진행한다. 새로운 이탈리아 음식인 ‘깔라마리 샐러드(1만 4800원)’,’와사비 깔라마리(9900원)’,‘스테이크 콤보그릴(3만 8800원)’ 등을 내놓았다. 이탈리아 메뉴를 주문한 고객을 추첨해 유럽커플 여행권 1명, 신라호텔 디럭스룸 숙박권 3명, 베니건스 2인 식사권 10명 등을 준다. 당첨자는 다음달 10일 홈페이지에서 발표한다. T.G.I. 프라이데이스는 점심 메뉴를 새롭게 출시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치킨카르보나라, 잭다니엘찹스테이크, 시즐링 스파이스 스테이크 등을 1만 900원에 내놓았다. 이들 음식과 함께 음료·수프·빵·커피 등이 함께 제공되는 세트 메뉴는 1만 3000∼1만 3900원이다. 토니로마스는 5월 말까지 ‘바비큐 립스와 치킨’,‘버섯 테리야키 치킨’,‘사우스웨스턴 치킨’ 등을 파격적인 3900원에 내놓고 있다. 마르쉐는 한약재와 그 추출물을 작물 재배에 사용하는 한방농법으로 무농약 재배한 공주 한방토마토로 만든 ‘방울토마토주스’를 4900원에 내놓고 있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어린이 드라마도 ‘사극 바람’

    해신·서동요에 이어 신돈·주몽·태왕사신기 등 다양한 시대의 사극이 드라마의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한 가운데 역사를 소재로 한 어린이 드라마들이 속속 등장해 눈길을 끈다. EBS는 24일부터 월·화 오후 7시25분 어린이 역사드라마 ‘점프2’를 방송한다. 오늘날 아이들이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현장으로 들어가 당시 시대상을 경험한다. 지극히 평범한 온달장군·김유신·세종대왕 등을 보면서 어린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건국이나 한글창제 등 위대한 업적들이 보통 사람들의 갖은 고초와 눈물 끝에 이뤄진 값진 결과물이라면?어린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동일시할 수 있는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 서로 대화하고 감정을 나누면서 함께 성장하도록 한다는 것이 제작진의 기획의도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6명의 어린이들은 차례로 역사 속으로 들어가 역사적 인물이 되는 체험을 하며 서로간의 관계를 돈독히 해나간다. 결국 세상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곳이며,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 아이들에게 조화로운 삶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보여준다.1회에서는 주인공들이 명상반에서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이후 일지매와 선화공주, 홍길동, 상도, 김춘추와 김유신, 황진이와 임제, 철산군수 전동흘, 천명공주 등의 역할을 맡아 역사를 체험한다. 신라시대 화랑도를 소재로 한 어린이 드라마도 선보인다.KBS 2TV는 다음달 8일부터 월∼금요일 오후 6시10분에 새 어린이 드라마 ‘화랑전사 마루’를 방송한다. 화랑도를 다룬 퓨전 무협판타지물로, 판타지를 한국 역사와 새롭게 결합시켰다. 신라 화랑의 정기를 이어받은 5명의 현대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부활한 당나라 장수 고간과 상상 속의 ‘팔괘상자’를 놓고 대결을 펼친다. 특히 이들이 심신을 수련해 화랑전사로 거듭나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협동심과 단결심을 일깨워준다. 원술랑·관창·사다함·미시랑 등 역사적 인물을 만나는 재미와 함께 남모·유지·준정 등 여러 화랑의 존재도 접할 수 있다. 드라마 초반부에는 경주, 포항 등을 배경으로 안압지, 반월성, 문무대왕릉 등 유적지가 등장한다. 특히 어린이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대규모 사극 전투 신과 컴퓨터그래픽 액션 신도 소개된다.주인공 마루 역에는 KBS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출연한 박건태가 캐스팅됐다.KBS ‘개그콘서트’에 출연 중인 개그우먼 안영미가 마루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갓 부임한 ‘초짜’ 담임 선생님 역으로 등장한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청자와 백자 (끝)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청자와 백자 (끝)

    전국의 어느 박물관에서나 도자기는 빠질 수 없는 주요 전시품 중의 하나로 꼽힌다. 세계 유수의 박물관들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도자기를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색과 자태를 뽐내는 도자기가 원래부터 박물관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 시대인 7000∼8000년 전부터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통일신라 시대에 불교의 영향으로 당시 중국을 다녀온 선승(禪僧)들을 통해 중국의 찻잔이 유입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국내의 질이 좋은 흙으로 자기를 국산화하려는 선인들의 노력으로 고려와 조선에서는 조형과 빛깔이 독창적이고 수려한 양질의 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불교적 세계관을 가진 고려인들은 그들의 마음을 청자에 담아 영원한 세계를 동경하였다. 구름과 학, 불교적 선(禪)의 세계인 연못, 고요함과 적막함을 나타낸 들국화 등을 그려 넣어 삶의 염원을 담았다. 이러한 청자의 조형미는 오랜 전통을 기반으로 고려인의 독창적 미적 감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비취옥 같은 신비한 색채와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유연한 선, 독특한 상감기법 등은 가히 인간이 빚을 수 있는 최상의 아름다움이다. 백자는 청자보다 안정되고 발전된 상태이다. 조선 초기 유학의 전래로 담백하고 순수함을 추구하면서 백색을 선호하게 되었다. 당시 사대부들은 우리 것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그같은 사상이 화려한 중국 백자를 배격하고 간결하면서 기품있는 순백자를 만들어 낸 것이다. 조선 도자기하면 백자라 할 정도로 조선 백자는 검소, 질박, 결백함을 중요한 가치관으로 여겼던 우리 조상의 평범하면서도 담백한 모습이며 백의민족의 상징이다. 우리의 도자기는 우수한 자질을 바탕으로 질이 맑고 독특하며 모습은 건강하면서도 발랄하다. 적당히 철분(金)이 함유된 흙(土)을 물(水)에 개어 반죽하고 빚어서 나무(木)로 피운 장작불(火)에 구워 내기 때문이다. 동양의 오행(五行)의 요소가 다 포함된 창조예술이라 할 수 있다. 과정 중에 조금의 하자나 배합의 과다가 있어도 제 빛깔이 나오지 않는다. 도자기는 귀족이나 특권층이 감상용으로 즐겼을 뿐 아니라 서민의 생활용품으로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陶工)은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장인인 동시에 서민의 삶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생활도구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자연에 순응할 줄 알았으며 단순한 색조와 대범한 조형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우리만의 독창적인 훌륭한 도자기 예술을 이루어 냈다. 따라서 이 땅의 도자기 예술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흙과 불의 조화와 함께 그 속에 녹아 있는 도공들의 겸허한 세월의 혼이라 할 수 있다. 글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최인호 장편 ‘제4의 제국’ 펴내

    작가 최인호(61)가 700년 가야사를 복원한 장편소설 ‘제4의 제국’(전 3권, 여백)을 출간했다. 소설은 우리 역사에서 자취를 감춘 가야의 역사를 치밀한 자료조사에 기초해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파헤치고 있다. 가야사 추적의 단초는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 다량 출토된 파형동기(巴形銅器). 일본 왕들의 무덤에서 제한적으로 발굴되던 이 바람개비 모양의 유물이 왜 김해에서 발견됐을까, 작가는 이 의문의 실마리를 찾아 역사 수사관처럼 추적에 추적을 거듭해 파형동기의 원류를 찾아내고, 이를 통해 한·일 고대사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작가의 끈질긴 집념은 파형동기의 원형이 인도의 비슈누 여신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점을 밝혀냄으로써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후가 인도에서 온 여인이라는 설화를 역사적 사실로 입증했다.‘잃어버린 왕국’(백제)‘제왕의 문’(고구려)‘해신’(신라) 등 삼국을 다룬 역사소설의 뒤를 잇는 이번 작품에 대해 작가는 “항상 뭔가 부족하고 미진한 감이 있었는데 이번 소설로 조상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았다.”면서 “이제 더 이상 역사소설은 쓰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각권 9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조선시대 삶의 파노라마

    18세기 조선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자기 앞에 넓은 소매의 도포에 술띠를 두루고 갓을 쓴 사람이 나타나면 대번 양반인 줄 알았다. 연암 박지원이 ‘양반전’에서 상민 신분의 비애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듯, 그들은 양반에게 “몸을 꾸부려 어찌할 줄 모르는” 시늉을 했을 것이다. 조선사회는 한마디로 신분사회였다. 반상(班常)의 구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는 의식주에 따라 신분이 드러났고 국가의 정체성과 개인의 삶이 유지됐다.‘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한국고문서학회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은 의식주를 통해 조선시대 생활사 전반을 살핀 흥미로운 책이다. 조선 후기 풍속화와 고문서를 매개로 당대 사람들의 삶을 재현한다. 풍속화는 신분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평양감사향연도’ 가운데 한폭인 ‘월야선유도(月夜船遊圖)’를 보면 당시의 복식문화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책은 그림 속 등장인물들에 일련번호를 매겨 양반·중인·상민·천민의 남성의복 등을 분석하며 18세기 신분제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적 양상들을 짚어나간다. 도포는 양반 신분의 상징이다. 고려시대의 깃이 곧은 직령(直領)에서 유래한 도포는 사대부가 예를 차리기 위해 입는 것으로, 그들의 평상복이자 출입복이었다. 도포의 색깔은 여러 가지였다. 평상시에는 백색 도포를 입었고, 길복(吉服)으로는 옥색이나 연갈색을 입었다. 청색의 청포도 있었다. 도포 외에 반(班)과 상(常)을 가르는 신분의 상징을 하나 더 든다면 술띠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 풍속화를 보면 양반의 가슴에는 반드시 술띠가 둘러져 있다. 하지만 상민은 조선시대 금제(禁制)에 따라 술띠를 착용할 수 없었다. 술띠야말로 양반의 도포를 진정 도포답게 만드는 중요한 장식이었다. 우리 민족의 식문화의 중심은 단연 밥이다. 삼국시대까지 밥은 곡물을 시루에 넣고 찌는 증숙반(蒸熟飯)이었다. 시루에 찐 밥은 술밥같이 꼬들꼬들해 가마솥에서 지은 찰기 흐르는 밥과는 큰 차이가 있다. 통일신라 이후부터는 솥을 이용해 밥을 짓는 자숙반(煮熟飯)이나 취반(炊飯)이 일반화됐다. 이 책에서는 ‘미암일기’‘묵재일기’등 조선시대 양반들이 남긴 다양한 일기 자료를 활용해 당시 식생활 문화의 실상에 다가간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쌀밥에 고깃국’을 최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환곡을 받아 생활하던 하층민에게는 그림의 떡. 상당수의 하층민들은 보리를 수확하는 5월부터 가을걷이를 하는 9월까지 쌀이나 조 대신 보리를 주식으로 삼았다. 보리가 생산되는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의 ‘맥절(麥節)’에는 보리를 더 싸게 사들이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의 대식(大食)습관을 다룬 대목은 쓴웃음을 짓게 한다. 조선 전기 훈구파의 거목 이극돈은 상소를 올려 풍년이면 먹을 것을 아끼지 않아 중국 사람이 하루 먹을 분량을 한 번에 먹어 치운다고 개탄했다. 조포석기(朝飽夕飢)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아침에 양식을 다 먹어치워 저녁에는 굶는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주거생활은 어땠을까. 책은 호구단자와 준호구, 가옥문기, 가좌책 등을 면밀히 분석해 그들의 주거 양태를 밝힌다.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도 오늘날처럼 셋집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주거생활에서 온돌문화는 빼놓을 수 없는 대목. 온돌방은 고려 말에 등장한 새로운 공법으로, 지배층을 중심으로 점차 보급됐다. 그러나 조선 초까지도 관청이나 부잣집에서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제한적이었으며, 그것도 주로 병자나 노인의 방에만 설치됐다. 온돌이 민간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대략 16세기경으로, 그전까지는 입식생활이 주를 이뤘다. 의식주의 역사는 그동안 복식사나 음식사, 건축사 등 각각의 영역에서 통사적으로 혹은 양식적으로 다뤄져 왔다. 이 책은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보다 대중적인 시각에서 의식주의 생활사를 한데 아우른다. 조선 풍속화와 고문서를 고리로 학제간 연구의 폭을 한층 넓혔다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다.1만 7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경주거리 온통 ‘벚꽃’으로

    신라 고도 경북 경주의 시가지가 전국 최대의 ‘벚꽃거리’로 거듭난다. 경주시는 앞으로 10년간 사업비 280억원을 들여 벚꽃 10만 그루를 25개 읍·면·동 도로변 등지에 심어 ‘벚꽃 관광’을 관광마케팅에 적극 활용키로 했다고 14일 밝혔다. 매년 4월 보문관광단지 등에 벚꽃이 필 때면 하루 수만명씩의 관광객이 경주를 찾는 등 벚꽃 관광이 해마다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라고 시 관계자는 설명했다. 현재 경주 시가지에는 보문관광단지의 1만여 그루를 비롯해 모두 2만 3000여 그루의 벚나무가 있다. 전국 최대의 ‘벚꽃도시’인 경남 진해시가지의 벚나무 1만 3000여 그루보다 1만 그루나 많다.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일본으로 간 문화재 돌려주면 안되겠니?

    우리나라 문화재를 수집, 소장한 해외 컬렉션 중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오구라 컬렉션’의 전모가 파악, 공개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한국 유물을 1000여점 소장하고 있는 일본 ‘오구라 컬렉션’에 대해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차례에 걸친 현지조사 결과를 정리, 최근 도록으로 발간했다. ‘오구라 컬렉션’은 일제때 남선합동전기회사 사장을 역임한 일본인 실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1896∼1964)가 1922년부터 1952년까지 수집한 것으로, 고고·회화·조각·공예·전적·복식류 등 전 시기의 다양한 유물을 망라하고 있다. 오구라 자신이 창설한 ‘재단법인 오구라 컬렉션 보존회’에서 관리되다가 아들 야스유키에 의해 1980년대 초 도쿄박물관에 기증됐다. 이중 8점이 일본 중요문화재로,31점이 중요미술품으로 인정받는 등 모두 39점의 유물이 일본 국가문화재로 지정됐다. 도록은 1000여점의 소장 유물 전체에 대한 목록과 사진, 해설 등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수록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드문 문화재가 많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금동투각관모’(높이 41.8cm, 폭 21.2cm)는 경남 창녕 출토품으로,5∼6세기 신라 제작품으로 추정된다. 백화수피(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관모가 경주 외 지방에서 확인된 적은 있으나 금동관모로 지방 출토품은 없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금동비로자나불입상’(높이 52.8cm)은 9세기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드물게 보는 입상이다.‘은평탈육각합’(지름 7.5∼11.2㎝, 높이 7㎝)은 출토지가 경남이라고만 알려졌을 뿐 국내에 완본이 없어 매우 희귀한 유물로 평가된다. 또 ‘일체여래비밀전신사리보협인다라니경’은 고려 목종 10년(1007) 총지사(摠持寺)라는 절에서 간행한 목판본 불경의 일종이다. 이를 통해 신라시대는 조탑공양경(탑을 조성할 때 탑 속에 넣는 경전)으로 무구정광다라니경을 사용한 반면, 고려 초에는 보협인다라니경으로 대체해 탑을 수리했다는 사실이 더욱 확실하게 됐다. 이와 같은 종류의 보협인다라니경 판본은 국내에서는 고 김완섭 소장본이 알려졌으나 지금은 행방이 묘연해 그 가치가 더욱 돋보이는 중요 문화재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문화재 해외 반출사례로 꼽히는 ‘오구라 컬렉션’이 공개되면서 이들 문화재의 반환 가능성에 또다시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1964년 한·일 교섭 당시 반환요청을 한 바 있지만 우리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부고]

    ●이성림(우성I&C 회장)씨 별세 종우(우성I&C 이사)종석(학생)종택(〃)씨 부친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5일 오전 6시 (02)3410-6914●한완수(한성그룹 회장)학수(마이크롭틱스 사장)삼수(아로마골프리조트 〃)경수(이스턴홀딩스 〃)씨 부친상 김명현(아로마골프리조트 회장)조상길(전 토지개발공사 단장)박광호(신한은행 지점장)고호석(한성엘컴텍 사장)박주성(시민한의원 원장)씨 빙부상 1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2)3410-6915●주영철(한국산업단지공단 과장)영준(삼성화재 대리)성훈(노키아TMC)씨 부친상 주선회(헌법재판소 재판관)찬회(에스원 전무)씨 형님상 12일 경남 마산 성심병원, 발인 14일 오전 (055)290-5651●류병생(전남 진도 의신중 교사)병백(화인코리아 영업본부 과장)민호(한국철도공사 서울건축사무소 차장)병방(미국 거주)씨 부친상 박영철(동아일보 사진부 기자)씨 빙부상 12일 광주 상무병원, 발인 14일 오전 10시 (062)600-7401●박한규(한국경제신문 편집미술팀 기자)현규(신라ENG 대리)씨 부친상 정지명(경기지방경찰청 기동8중대 경위)씨 빙부상 12일 산본 원광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10시 (031)394-4438●이성구(모세건설 부사장)찬규(백석대 교수)씨 모친상 1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30분 (02)3010-2292●박찬수(도아기업 대표)찬규(대도산업 〃)찬구(사업)찬문(〃)씨 부친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3일 오전 8시 (02)3010-2631●방태영(전 코리아타임스 논설주간)씨 상배 영학(캐나다 사업)영봉(서울공대 교수)영구(한국철도공사)씨 모친상 박태석(현대오토넷 과장)씨 빙모상 12일 서울대병원, 발인 14일 오전 9시 (02)2072-2011●오석근(서울시니어스타워 회장)씨 별세 덕주(정은헬스케어 감사)덕만(서울시니어스타워 본부장)씨 부친상 이종균(송도병원 이사장)씨 빙부상 1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4일 오전 7시 (02)3010-2230●차휘윤(사업)도윤(대성산업 부사장)정현 정원씨 모친상 김영대(대성그룹 회장)이원성(삼성전자 전무)씨 빙모상 12일 서울대병원, 발인 15일 오전 9시 (02)2072-2018
  • 고도 경주의 봄을 찾아

    고도 경주의 봄을 찾아

    신라의 천년 고도(古都)인 ‘경주’가 ‘확’ 달라졌다. 불국사, 첨성대, 석굴암 등 고전무대가 여행의 전부였던 경주에 흥겹고 새로운, 즐기고 볼거리들이 많이 생겨났다. 또한 4월의 경주에는 각종 축제로 열기가 넘쳐난다.천년의 숨결과 함께 덤으로 숨겨진 보물을 찾으러 경주로 떠나본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경주에는 대개 초등학생인 아이들과 함께 가는 경우가 많다.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과 유적이 많아 역사공부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연인들이나 젊은이들은 경주를 다소 멀리해 온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경주에 새로운 놀거리가 생겼다. # 허리 꽉 잡아, 달린다 “미정, 내 허리 꽉 잡아. 몸 좀 더 붙여.”라는 이경수(26·부산 금정)씨,“오빠 이거 어떻게 운전하는지 알아.”라고 반문하는 김미정(25·부산 사하)씨.“이 오빠를 믿어. 간다.”라며 부와∼왕 시끄러운 굉음과 함께 쏜살같이 ATV(4륜 오토바이)가 튀어 나간다.“꺄∼악”하는 비명과 함께 그들은 벚꽃이 가득한 보문단지로 사라졌다. 경주 보문단지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보다 ATV나 전기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더욱 많다. 자전거보다 편하기도 하지만 연인끼리 몸을 밀착시키며 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비록 속도는 시속 30㎞ 미만이지만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것 같다. 향긋한 벚꽃 향기가 가득한 보문단지를 쉬엄쉬엄 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쉬기도 하면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 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뒤에서 허리를 꼭 잡고 있는 그녀에게 날리는 한 마디 멘트.“자기야, 평생을 내 뒤에 있어.” 이 정도면 작업 끝이 아닐까. 242만평에 달하는 보문단지를 다 돌아보기는 힘들다. 혹시 해질 녘이라면 보문 호수로 가보자. 호숫가에 ATV를 세워놓고 황금빛으로 물드는 호수를 바라보며 어깨에 기대있는 사랑스러운 그녀를 바라보자. 세상에 그런 미인은 없을 것이다. 자. 이젠 빨리 ATV를 반납하러 가야 한다.1시간에 2만원. 무지하게 비싸지만 그래도 서로 친해졌으니까 후회는 없을 것이다. 보문단지내는 콘도나 대여점 모두 가격이 똑같다. 하지만 “아저씨 2시간 탈 테니까 좀 깎아주세요.”라는 애교 섞인 목소리면 3만원에도 해준다. 혹시 시간이 남는 사람들을 위해 보문호에서는 페달을 돌리는 오리보트도 탈 만하다. 또한 ‘로스트 메모리즈’의 장동건을 기억하는가. 영화처럼 권총으로 ‘탕, 탕, 탕’하고 사격을 할 수 있는 실탄 사격장이 있다. 애인에게 군대 갔던 무용담만 들려 줄 것이 아니라 사격 실력도 뽐내보면 어떨까. 스트레스는 물론 기분까지 좋아진다. 여자들도 쉽게 쏠 수 있다.10발에 2만원. 경주 보문실탄사격장(054)741-4007,kjshooting.com # 온천수로 즐기는 물놀이 따사로운 봄볕에 모두들 수영복을 입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화콘도 내에 오픈한 워터파크인 스프링 돔이다.1200평 규모의 스프링 돔은 일반 워터파크와 수질이 다르다. 지하 750m에서 끌어올린 온천수를 100% 사용한다. 표출 온도도 35℃로 약알칼리성이다. 어린이 풀 한쪽에서 멋진 청년이 마이크를 잡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이를 한다. 음악에 맞춰 “하나 둘” 구령을 붙이며 수영장에서 아이들과 춤을 춘다. 뒤이어 “자 우리 물대포를 만들어 볼까.”라며 펌프와 빈 병으로 아이들과 물대포를 만들어 날린다.“와 신기하다.”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수중탈출, 왕자님 모시기 등 다양한 게임은 1시간 동안 진행된다. 공짜인가 궁금했다.“고객들을 위한 무료 서비스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저들이 바로 PO(Program Organizer). 클럽메드의 GO를 벤치마킹한 한화리조트의 ‘놀이도우미’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PO들이 아이들과 놀아주는 동안 부모들은 아이들 손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쉴 수 있다.“항상 워터파크에 오면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1시간 동안이나 아이들과 놀아 주니 남편과 오랜만에 편하게 즐길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라는 전지영(35·서울 성북)씨. 그뿐 아니다. 스프링 돔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들의 눈높이에 맞췄다. 물놀이 시설도 야외와 실내에 두 곳을 마련했다. 야외의 어린이 풀에는 동물분수대와 물레방아, 물미끄럼틀까지 준비돼 있다. 또한 ‘신라 전설’이란 컨셉트로 만들어 아기자기하고 멋진 노천탕과 물놀이 시설이 많다. 금장대는 신라시대 정원인 안압지에서 착안해 아일랜드 형식으로 조성된 스파시설. 중앙에 연꽃을 상징한 다양한 기능 풀과 마사지 등을 받을 수 있고 포석정을 형상화한 유수풀인 화랑대, 문무대왕 수중릉을 형상화한 이견대 등이 있어 하루가 짧다. 주말은 어른 2만 3500원, 어린이 1만 7500원. 투숙객은 1만 8500원,1만 4000원으로 할인해 준다. 혹시 비싸다는 생각이 들면 오전 관광을 하고 오후에 이용하는 것도 방법. 오후권은 30% 정도 할인된다.(054)745-8060. # 울긋불긋 꽃대궐 전국에는 많은 민속마을이 있지만 경주 강동면 양동 민속마을처럼 오래된 고택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은 없다.4월부터 6월까지가 양동마을을 돌아보기가 가장 좋다. 반가(班家)와 초가, 골목할 것 없이 어디를 가나 수백년 된 향나무와 산수유, 매화, 목련 상사화 등 화초가 있어 멋과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다. 현재 140가구 400여명이 살고 있는 양동마을. 아이들과 타임머신을 타고 500년 전으로 여행을 해보자. 마을 전체를 천천히 돌아보려면 2시간 이상 걸리므로 중요한 집들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좋다. 조선 성리학의 선구자인 회재 이언적의 여강 이씨 종가인 ‘무첨당’(보물 411호)과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사는 가장 오래된 살림집으로 560년쯤 된 월성 손씨 종택 등 명문대가의 건물이 남아 있다. 또 99칸 건물이었다가 한국전쟁으로 허물어져 56칸으로 개조돼 최근 영화 ‘음란서생’을 촬영했다는 ‘향단’(보물 412호),200년 이상 된 고가 54호 등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세워진 조선 중기 이후 집들이 즐비하다. 마을 자체가 문화재로 국보급 1개와 보물 4개가 있다. 특히 양동마을에는 ‘관가정’(보물 442호)과 영화 ‘취화선’의 무대인 심수정 등 정자만 해도 10개가 된다. 전국 어디를 가도 한 마을에 이렇게 많은 정자가 밀집된 곳은 찾기 힘들다. 영화 ‘내마음의 풍금’의 무대 배경이었던 빨간 양철지붕의 양동교회는 이전을 앞두고 있다. 양동마을에는 문화유산 해설사가 있다. 이지호(017-522-8097)씨로 한옥에 깃든 철학과 역사를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양동마을 대표적인 산책코스는 향단코스(관가정∼향단∼정충비각∼수운정)로 아이들과 함께 돌아본다면 1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 경주역에서 국도 7호선을 타고 포항방면으로 승용차를 이용해 약 40분 걸린다. 경주시 문화관광과 (054)779-6396. # 축제와 공연이 가득 오는 15일부터 20일까지 ‘경주 한국의 술과 떡잔치 2006’축제가 경주 황성공원에서 열린다. 타임머신 술 담그기, 제1회 전국창작 떡 만들기 대회 등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한 이벤트가 열린다. 또 24일부터는 야경이 아름다운 안압지 경내에 만든 특설무대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공연이, 보문관광단지 야외 상설공연장에선 전통 국악 공연이 펼쳐진다.
  • 경주 고층아파트 건립 될까?

    정부가 각종 문화재가 산재한 경주 남산국립공원 인근에 고층 아파트 건립과 관련,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문화관광부는 11일 경주지역 문화단체들이 질의한 도동 토지구획지구내 730여가구의 대단위 아파트 건립사업에 대해 ‘경주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 취지에 반한다.’며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문화부는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통해 “(문화재 인근의 대단위 아파트 건립은)향후 역사문화도시 지원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며 “경주시에 문화적 가치를 최우선하는 도시계획 및 개발계획이 수립되도록 적극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문화단체들은 ‘경주 남산국립공원과 신무왕릉 등 신라왕릉 인근인 도동 토지구획지구내 대단위 아파트 건립은 난개발’이라며 문화부장관 앞으로 공식적 의견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었다. 경주시는 이에 대해 “도동지구 아파트 신축과 관련해 문화부의 어떤 공문도 없었다.”면서 “설령 협조공문이 있더라도 사업승인에 있어 검토대상일 뿐 절대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최근 도동 토지구획지구(제2종 일반주거지역)에 15층 아파트 건축이 가능하도록 도시계획 변경안을 심의했으며, 현재 건설업체 등이 고층아파트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연극 ‘미실’ 주인공 김호정

    연극 ‘미실’ 주인공 김호정

    아리아를 열창하는 성악가에게 핀라이트 조명이 쏟아졌다. 난생 처음 본 오페라 공연. 초등생 소녀는 눈부신 조명과 무대를 감도는 기분좋은 떨림에 단번에 매혹됐다. 그 길로 성악을 배웠지만 곧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악가의 꿈을 접었다. 중학생때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서 ‘저거다’ 싶었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것도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어서였다. 졸업 후 ‘캐츠’ 등 여러 편의 뮤지컬 무대에 섰다. 노래 한곡을 100번쯤 연습해야 무대에 설 수 있는, 재능보다는 열정이 앞선 배우였다. 그러다 독일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 기막히게 노래 잘하는 배우들을 보며 그 자리에서 뮤지컬을 포기했다. 김호정(38). 일명 ‘여배우 트로이카’(박정자, 손숙, 윤석화)의 뒤를 이을 차세대 대표 주자로 꼽히는 그녀가 뮤지컬배우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은 좀 뜻밖이다. 차분하고 지적인 얼굴, 하늘하늘한 몸매, 게다가 낯을 가리는 성격의 그녀가 무대에서 격렬하게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연극 ‘갈매기’‘보이체크’, 영화 ‘나비’‘꽃피는 봄이 오면’ 등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도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연극 ‘미실’(24일∼5월7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주인공을 맡았다는 소식도 그런 점에서 의외였다. 미실이 누군가.‘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실존인물인 미실은 타고난 미와 색으로 신라시대 왕실 남자들을 좌지우지한 여성이다. 무공해 식물 같은 김호정에게 성적 본능에 충실한 미실은 어쩐지 버거워 보였다. “배우라면 누구나 전혀 다른 성향의 연기에 도전하길 원해요. 매번 비슷한 역할을 할 바엔 뭐하러 힘들게 연기하겠어요.” 극단에 적을 두지 않고, 공연마다 새로운 연출가와의 작업을 선호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지난해 김별아의 장편소설 ‘미실’이 인기를 끌었지만 극단 여행자의 연극 ‘미실’(양정웅 작·연출)은 그보다 앞서 2002년 초연됐다. 왕을 색으로 섬기는 색공의 운명을 타고난 미실은 진흥, 진지, 진평 등 3대 왕은 물론 태자 동륜, 화랑 사다함 등 무수한 남자들을 섭렵했다. 인터뷰 직전까지 정사 장면을 춤으로 형상화한 대목을 연습하다 왔다는 김호정은 “미실은 권력을 위해 성을 이용하는 팜므파탈이 아니라 주어진 운명에 따라 모든 남자에게 매순간 최선을 다했던 자유로운 여성”이라고 분석했다. 미실은 극중 일곱명의 남자와 사랑을 나눈다.“야하지 않느냐.”고 묻자 “야하기는 한데 아름다울 것 같다.”며 웃었다. 그는 다작을 싫어한다. 영화든 연극이든 많아야 1년에 한편 정도다.2001년 영화 ‘나비’로 로카르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에는 심한 슬럼프에 빠져 한참을 쉬었다. 그러다 지난해 연극 ‘갈매기’ 등 체호프 연작과 영화 ‘모두들, 괜찮아요’‘피터팬의 공식’ 등에 출연했다.“20대때는 참 당돌했어요.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죠.30대가 넘으니 작품 전체가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와요. 삶에 대한 이런 변화들이 연극에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gpod@seoul.co.kr
  • 영암 벚꽃길에서 만난 4월

    영암 벚꽃길에서 만난 4월

    봄꽃의 화려한 카드섹션이 서서히 펼쳐지고 있다. 하얀 매화, 노란 산수유가 유혹하고 분홍의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가 사방지천을 물들인다. 지루한 겨울기운으로 속도조절을 하던 남녘의 벚꽃들도 활짝 자태를 뽐내고 있다. 봄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벚꽃이 겨우내 입었던 옷을 홀라당 벗고 상춘객을 불러들인다.“월출산 신령님께 소원 빌었네/천황봉 바라보며 사랑을 했네/꿈이뤄 돌아오마 떠난 그님을/오늘도 기다리는 낭주골 처녀∼” 이미자의 ‘낭주골처녀’와 하춘화의 ‘영암아리랑’으로 유명한 영암. 기암괴석의 월출산을 배경으로 피어 있는 영암의 벚꽃은 전국에서 으뜸이다. 이번 주말에 아이들 손을 잡고 영암으로 떠나 보자. 오는 8일부터 11일까지 각종 공연과 체험행사 등이 가득한 ‘영암 왕인문화축제´가 열려 나들이를 더욱 즐겁게 할 것이다. 글 사진 영암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백제 왕인박사와 떠난 영암 벚꽃길 전남 영암에는 역사적 인물이 많다. 이 가운데 일본에 우리 문화를 전수시킨 백제의 왕인박사가 태어나 공부를 한 곳이 바로 영암이다. 그래서 역사속의 왕인박사와 이번 여행을 함께 해보기로 했다. # 안녕하세요 저 왕인(王仁)입니다.1700년 만에 이렇게 고향 땅인 영암에서 인사를 드리니 감개가 무량하군요. 참 우리나라에서는 저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저는 백제 14대왕인 근구수왕(375∼384)때 태어났으며 32살 때 왕명을 받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 태자에게 글공부를 가르치고 문자, 종이, 도자기 등 다양한 문화를 일본인들에게 가르쳤어요. # 벚꽃의 향기에 취해 오래간만에 영암으로 돌아와 보니 가장 놀란 것이 ‘벚꽃’입니다. 제가 이곳을 떠날 때는 꽃이 없었는데 지금 월출산 앞마당을 화사한 꽃길로 장식했네요. 듣기로는 일제 때 읍내에 심어놓은 1㎞정도의 아름드리 벚꽃길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후 1980년초인가요. 가로수로 심어놓은 벚꽃이 제법 굵어지고 꽃송이도 복스러워지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벚꽃은 온 세상을 연분홍의 화사함과 향긋한 꽃냄새로 뒤덮을 기세로 피지만 한 10일 정도면 꽃비를 흩날리며 사그라져 버린다고 하네요. 그래서 누군가는 인생의 무상함을, 권력의 덧없을, 청춘의 화려함과 불꽃같은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세발낙지로 유명한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서 영암읍내를 거쳐 왕인문화 유적지에 이르는 꽃길은 무려 28㎞에 이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길 드라이브 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또 들판 한가운데 불쑥 솟은 신비로운 바위산인 월출산을 배경으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길은 아마 천상(天上)으로 향하는 길처럼 멋집니다. 아침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지면 환하다 못해 눈부실 지경이니까요. 우선 차 창문을 모두 내리고 달려보세요. 차 안으로 들어오는 꽃향기에 취하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달리다 보면 하얀 눈송이가 날아듭니다. 정말 환상적입니다. 혹시 시간이 허락한다면 차를 세우고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잠시 쉬어보세요. 흩날리는 꽃비에 흠뻑 몸과 마음을 적시고 있노라면 천국이 따로 없답니다. 이렇게 파란 하늘과 월출산을 바탕화면 삼아 펼쳐지는 꽃길을 한참 걷고 달리다 보면 어느덧 세상 시름을 잠시 놓게 됩니다. 이게 사는 맛 아니겠습니까. 너무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때론 뒤도 돌아보고 천천히 걸어도 보세요. 요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여유입니다. 자 이젠 영암에 오셨다면 저에 대해서도 알고 가셔야지요. # 저 왕인은 이런 사람입니다 32살에 백제를 떠나 일본에 가서인지 우리나라 역사기록에 제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어 좀 섭섭합니다.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되어 군신 교육을 담당했으며 제가 직접 써 가지고 간 천자문과 논어 10권으로 일본인들에게 글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한자의 왜훈과 왜음도 제가 개발해 일본인들에게 보급했으며 유교 불교 천문 직조 등 다양한 우리문화를 일본인들에게 전파해 아스카 문화를 꽃피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래서 제가 일본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겁니다. 이런 저를 위해 만든 곳이 전남 영암의 왕인박사 유적지입니다. 이곳에는 저의 동상을 비롯해 초상화와 위패를 걸어놓은 사당, 유허비, 학이문, 백제문, 왕인석상, 정화기념비 등 볼 것이 많답니다. 또한 커다란 바위가 2개 자리잡고 있는 곳이 제가 살던 집터. 좀 더 올라가면 ‘성천’이란 약수터. 여기가 저희 어머님이 마시던 진귀한 약수가 나오는 곳으로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졸졸졸 흐른답니다. 한잔 마셔볼까요. 어∼시원하다. 세월은 많이 흘렀는데 물맛은 변함이 없군요. 유적지에서 제가 어린 시절 공부했던 문산재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30분. 여기서 10년을 공부한 후 18살에 오경박사란 칭호를 받게 되었답니다. 문산재 뒤로 올라가면 제가 일본에 가기 전에 천자문과 논어를 썼던 책굴이란 천연 동굴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책굴 앞에는 저의 석상이 영암을 내려보고 있고요. 유적지에 문산재와 책굴까지 1시간30분이면 넉넉합니다. 한적하고 걷기에 너무 좋은 곳이니 꼭 한번 들러보세요.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 또 다른 영암을 만나러 영암군 덕진면에 있는 덕진차밭에서 아침은 특별했다. 차밭 아래로 펼쳐지는 영암읍내와 월출산의 모습에 가슴이 탁트인다. 또한 이제 막 새순이 오르기 시작해 초록으로 옷을 입기 시작한 차밭 사이를 걷고 있노라니 신선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신라 문무왕때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인 도갑사는 해탈문, 도선국사비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구림마을은 신라말 풍수지리설의 대가인 도선국사, 고려 태조 왕건의 태사인 최지몽 선생, 조선 명필로 이름을 날린 한석봉 등이 자라고 거쳐간 곳으로 여러가지 유적들이 있다. 또한 영암 도기문화센터는 100% 황토와 소나무재 유약, 장작가마를 이용한 옛 방식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직접 소품을 빚고 무늬도 그리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고등학생까지 5000원, 어른 1만원. 또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도자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전시장 등을 갖추고 있다. (061)470-2556,www.gurim.org # 여행정보 역시 남도의 여행은 먹거리를 빼놓을 순 없다. 영암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갈낙탕. 갈비탕에 산낙지를 넣고 끓인 것으로 국물이 시원하고 담백하다. 특히 독천리 중심에 들어서면 20여 개의 식당에서 갈낙탕을 한다. 맛은 대개 비슷하지만 청하식당(061-473-6993)은 어리굴젓, 조개젓, 토하젓 등 이름도, 맛도 생소한 다양한 젓갈 18가지가 밑반찬으로 나온다. 또한 청하식당만의 비법으로 산낙지를 기절시켜 예쁘게 담아내는 ‘기절낙지’ 또한 별미. 부드럽고 담백하다. 갈낙탕 1만 2000원, 기절낙지 마리당 7000원(시세에 따라 가격이 매일 다르다). 독천식당(061-472-4222), 영명식당(061-472-4027)도 잘한다. 영암은 서해안 고속도로 목포나들목으로 나와 2번 국도를 따라 1시간 정도 가면 영암 읍내에 도착한다. 영암문화관광과 (061)470-2350. # 벚꽃 여기도 좋아요 경남 하동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초입에 이르는 6㎞ 구간의 십리 벚꽃길, 푸른 합천호를 따라 핀 벚꽃이 백리에 이른다는 경남 합천의 백리 벚꽃길, 국내에서 가장 벚꽃이 늦게 핀다는 충남 서산 개심사는 절과 꽃의 아름다움이 절묘한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전북 완주 송광사, 충남 금산 서대산과 천태산에 핀 야생 산벚꽃 등도 유명하다.
  • 김경호 사경연구회 회장 국내 첫 개론서 펴내

    김경호 사경연구회 회장 국내 첫 개론서 펴내

    “흔히 사경(寫經)은 단지 불교 경전을 베껴쓰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조상들의 빼어난 정신성과 심미감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우리 민족 최상의 예술입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경 개론서인 ‘한국의 사경’(한국사경연구회刊)을 펴낸 김경호(44) 한국사경연구회회장.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귀한 문화유산인 사경에 대한 연구는 물론 기초자료조차 정리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사경은 불교가 전래되면서 시작되어 1700년의 역사를 갖는 불교유산.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기에 찬란하게 꽃피웠으며 일본에도 전수됐다.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을 낳은 연원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억불숭유’책으로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다. ●中·日·타이완서 슬라이드 3만점 수집 ‘한국의 사경’은 사실상 사경을 다룬 최초의 서적. 사경의 정의부터 시작해 범위, 종류, 형식과 체재, 양식 변천의 원인인 각 부분의 상징성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경의 역사와 통일신라의 사경신앙을 조망하면서 신라 말 금자(金字)대장경을 사성하게 된 배경을 살피고 이후 고려시대에 더욱 발전하여 중국을 월등히 능가하는 예술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파헤치고 있다. 무엇보다 이론서에 국한하지 않고, 한때 출가해 1년간 행자생활을 하기도 했던 김씨가 지난 15년간 직접 사경작업을 해가면서 일일이 정리한 체험의 산물이란 점이 돋보인다. 국내에 자료가 전혀 없어 중국 일본 타이완 등지에 발품을 팔아 수집한 자료만 해도 슬라이드 3만여점에 달한다. “사경작업을 하면서 우리 조상들의 미적 감각과 독창성에 새삼 놀랐습니다. 중국의 사경을 그대로 받지 않고 원근법을 살려낸 여백이나 상징들이 그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특히 한 치의 오차나 오탈자 없이 완벽하게 처리된 사경들을 보면 그 치열한 장인정신에 경외감마저 듭니다.” 김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래 일부에서 내놓고 있는 사경들은 전통 사경에서 벗어난 채 흉내만 내는 경향이 많아 위험하다고 한다. 물론 이런 흐름에는 자료조사를 포함한 실태파악과 연구가 없었던 탓이 크다. 그래서 김씨는 이번 개론서를 시작으로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을 세상에 적극 알릴 계획이다. 전통 방식에 근거한 사경 유물들을 일일이 대조해 정리한 기법서를 올 상반기중 내놓은 뒤 하반기부터는 반야심경, 금강경 등 개별 사경의 기법을 소개하는 사경 교본을 차례로 발간한다. ●전통기법 활용땐 훌륭한 세계화 자산 “본래 사경은 불교 경전을 옮겨 쓰는 행위와 옮겨 쓴 경권에 국한했지만 다양한 종교와 함께 사경의 영역이 성경사경, 교전(원불교)사경, 코란사경 등으로 점차 넓혀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있는 사경의 전통 양식과 기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세계화할 수 있는 훌륭한 자산입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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