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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한권의 책] ‘결코 작지않은 나라’ 신라의 재발견

    고구려사는 드라마의 인기와 중국의 역사왜곡 시도와 맞물려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됐다. 그렇다면 고구려를 정복한 신라사는 어떠한가. 역사학자가 아닌 지리학자인 저자 이기봉씨는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푸른역사 펴냄)’을 통해 작은 나라로 치부됐던 신라사의 이면을 밝혀낸다. 흔히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라고 하지만 이는 중국, 일본과 비교한 것으로 조선을 15세기 유럽에 옮겨 놓으면 가장 거대한 나라에 해당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조선 정도의 인구 규모에 해당되는 나라가 지방 구석구석까지 지방관을 파견해 다스렸다는 것은 15세기의 유럽에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시아를 제외하고 유럽 근대 이전과 비교하면 고구려, 백제를 정복했던 통일신라보다 더 많은 인구를 가진 통일제국은 많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잘해야 로마제국이나 아테네 주도의 그리스, 알렉산더제국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같은 주장의 근거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전성기에 경중(京中)에 17만 8936호,1360방,55리와 35개의 금입택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호의 구성원을 5명으로 잡는다면, 당시 경주에만 약 120만명이 살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도의 인구가 이 정도였다면 신라 전체의 인구는 114만호, 약 570만명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저자는 계산한다. 신라의 수도 경주에 17만 8396호가 살았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잘못 기입한 것으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발로 뛰는 답사로 방증된다. 산간 오지에 남아 있는 신라 때 하층계급이 살았던 부곡을 답사하면서 생각을 굳히게 된다. 포항시 죽장면에 있는 죽장부곡 지역이나, 영양면 수비면에 있던 수비부곡 지역은 정말로 산간오지였다는 것이다. 이런 곳까지 개간되어 사람이 살았다면 통일신라 때 이미 조선 초기 못지않은 개간사업이 이루어졌고, 이는 풍부한 노동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120만명이 넘는 경주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경주와 울산까지의 지형은 매우 평평한데 일단 울산까지 배를 이용해 식량을 가져오기만 하면, 경주까지 운송은 문제가 안되었다는 것이 지리학자의 시각이다. 삼국유사에서는 “밥을 짓는 데 숯으로 하지 땔감으로 하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다.17만 8936호나 되는 경주인들이 매일 밥을 짓는 데 나무를 썼다면 경주의 산이란 산은 모두 민둥산이 됐을 것이다. 고대 경주인들이 한정된 자원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숯으로 밥을 했고, 북방지역과 달리 온돌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기존 역사학계에서 좀처럼 시도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려진 신라사는 저자의 발품과 지리지를 자주 들여다 본 노력에 의해 가능했다. 이 책은 그동안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역사지리학적 시각으로 신라사를 새로 해석하려 한 시도를 담고 있다. 수도는 곧 권력이자 국가라는 수도의 중차대한 상징성에 주목해 경주를 연구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경주를 새롭게 탄생시켰다.384쪽.1만 4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최고 목판 인쇄물 다라니경 제작연대 논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인정받고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제작연대 논란에 휩싸였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재위원은 지난 8일 1024년 씌어진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重修記)’를 근거로 8세기 초반~중반이 아니라 고려시대에 제작됐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중수기에 “두루마리로 된 무구정광다라니경과 또 다른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넣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1966년 석가탑 해체·수리 과정에서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함께 110여장의 종이뭉치도 발견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묵서지편(墨書紙片)’으로 불리던 이 종이뭉치를 40년동안에 걸쳐 보존처리하고 최근 판독해 ▲중수기와 ▲보협인다라니경 ▲1038년 불국사서석타중수형지기 ▲보시명공중승소명기 등을 확인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내부검토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중수기의 일부내용을 외부로 유출해 연대를 무려 3세기나 끌어내리는 ‘자살골’을 자초한 중앙박물관은 “고려 제작설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김성구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9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는 측천무후자(字)가 빈번히 발견된다.”면서 “개인적으로는 통일신라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측천무후자란 당나라 고종의 황후 측천무후의 집권기(690∼704)에 만들어진 기존의 한자와는 다른 508자의 글자로 당대에만 사용됐다. 하지만 유물관리부 실무자인 김상태 학예연구관은 “석가탑이 고려시대에 중수됐다는 사실 말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통일신라시대 것인지, 고려시대 것인지 추측할 수 있는 새로운 근거는 없다.”면서 “몇년이 걸릴지 아직 장담할 수 없지만 판독 결과가 나오면 종합적인 조사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Local] 김천시 감문국 재조명 나서

    경북 김천시가 ‘잃어버린 왕국’ 감문국 되찾기에 나섰다. 감문국은 김천시 감문면과 개령면 일원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한시대인 서기 231년 신라 장군 석우로부터 정벌당했고 557년에 감문주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8일 김천시에 따르면 2004년부터 경북대박물관에 의뢰, 감문국 유적을 확인한 결과 지석묘 15기, 고분군 286기, 입석 1기를 비롯해 감문산성과 속문산성 등 산성 3곳도 발굴했다. 김천시는 감문국 유적의 보전 가치가 높다고 보고 이달 중 경북도 지정문화재로 지정을 신청하기로 했다. 또 추가 발굴 조사와 함께 문화유적지 정비를 벌일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일대에 등산로 16㎞를 개설하고 편의시설을 설치, 역사 탐방로로 개발해 나가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직지사·청암사 등 지역 고찰과 연계한 관광투어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이 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높다. 최근 김천문화원에서 열린 ‘감문국 재조명 및 관광자원화’를 위한 세미나에 향토사학가와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정부도 경북도가 신청한 ‘고도읍 역사문화 자원화 포럼’을 지역 활성화 여건 조성을 위한 공모 사업의 하나로 선정해 김문국 재조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신청한 포럼에는 감문국이 주요 사업으로 포함돼 있다. 김천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희귀한 불교유물 한눈에

    희귀한 불교유물 한눈에

    불교중앙박물관이 개관에 맞춰 27일부터 여는 특별전 ‘佛(Buddha)’에 희귀 성보들을 대거 선보일 예정이어서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시될 성보는 총 79건 120여점으로 대부분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거나 이 전시에서만 볼 수 있는 걸작들이다. 우선 불국사 석가탑 출토 사리기 일체와 대구국립박물관 소장 ‘금동불입상’(국보 제182호), 청주국립박물관 소장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국보 제106호) 등 3점의 국보급 문화재가 들어 있다. 불교중앙박물관 ‘영산회상도’(보물 제1397호), 동국대도서관 ‘석보상절 23·24권’(보물 제593-2호), 장흥 보림사 ‘월인석보 25권’을 비롯한 보물 13점도 대여해 온다. 이 가운데 국보·보물급 16점과 일본에서 들여온 3점은 외국에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유물로 잘 알려진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국보 78·85호)에 버금가는 귀중한 것들이다. 우선 일본 도쿄박물관이 소장한 오쿠라컬렉션 중 하나인 ‘금동 비로자나불입상’(52.8㎝). 현재 남아 있는 작은 규모의 소(小)입상 비로자나불은 경주박물관 소장품을 포함해 단 2개뿐이다. 그중 하나인 이 입상은 자비로운 상호 등 불격을 잘 드러낸 걸작으로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포항 보경사의 통일신라기 ‘팔상도’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발굴해낸 걸작이다. 국내에는 통도사 쌍계사 용문사를 포함해 모두 4곳에 부처님 일대기를 담은 ‘완벽한 수준’의 팔상도가 있는데 이 보경사 팔상도는 다른 것과는 달리 전혀 알려지지 않은 18세기 작품으로 이번에 처음 세상에 나온다.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에서 대여해온 ‘치성광불회도’(1569년작)도 눈에 띄는 작품. 북두칠성과 관련된 민간신앙을 불교와 연결한 칠성신앙을 담은 것으로 조선시대 최초의 치성광불회도로 평가 받는다. 역시 국내엔 처음 들어오는 것이다. 한편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온 세계 최고 목판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제126호)이 이 박물관으로 이관돼 개관전에 모습을 나타낸다. 불국사 소장 유물인 석가탑 출토 사리기와 함께 5월24일까지 일반에 공개된 뒤 불국사 성보박물관이 건립되면 다시 옮겨질 예정이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자동차 단신] 시내버스에 외국차 ‘볼보’ 광고

    시내버스에 처음으로 수입차 광고가 등장했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4일 서울 강남, 대학로, 종로 등 젊은층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의 노선버스 120대에 ‘C30’ 광고를 실었다. 이 차는 볼보차 가운데 가장 작은 모델로 3000만원대다.2435㏄로 최고시속 215㎞이다. 연비는 ℓ당 10.3㎞. 출시 기념으로 다음달 말까지 신라호텔 면세점 구매고객 중 1명을 추첨해 차를 공짜로 준다.
  • ‘케이블TV의 날’ 기념행사 다채

    ‘제12주년 케이블TV의 날’ 기념식이 5일 오후 5시30분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서 열린다. 조창현 방송위원회 위원장, 노준형 정보통신부 장관 등 업계 주요 인사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방통융합시대 케이블TV의 비전을 천명하는 홍보영상물상영,VIP축사, 축하 공연 등이 이어진다. 이날 기념식에는 ‘제1회 케이블TV방송대상’ 시상식도 열린다. 케이블산업 종사자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자체제작 콘텐츠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처음 제정된 것.기념식에 앞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케이블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과 함께 ‘방송통신융합시대 케이블TV 비전과 전략과제’를 주제로 전문가 포럼도 개최한다.
  • 조선인 학생들에게 日학병권유 이광수·최남선 ‘도쿄대담’ 발굴

    일본에 유학중인 조선인 학생들에게 학병을 권유하는 내용이 담긴 이광수와 최남선의 ‘도쿄대담’이 발굴됐다. 문예 계간지 ‘서정시학’ 봄호는 1944년 1월 도쿄에서 ‘학도출진 특집호’로 출간된 ‘조선화보’ 권두에 게재된 ‘도쿄대담’을 소개했다. ‘신태양’ 사장이던 마해송의 사회로 진행된 도쿄대담에서 이광수는 “지난해 11월 메이지대 강당에서 조선 유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특별지원병 궐기대회에 참석했다.”면서 당시 광경에 대해 “내선일체(內鮮一體)가 실현된 것 같은 장면이었다.”고 비유했다. 이광수는 또 “조선의 청소년은 지금까지 조선반도만을 위한 사소한 것에 ‘끙끙대는 상태’를 멈추고 일본 전체의 무거운 사명, 대동아 전체를 껴안는다는 커다란 기분이 돼 신질서 건설의 주역을 연출한다는 정도의 야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남선은 “일본 무사도와 신라시대의 화랑정신은 완전히 일치하고 있어 어떤 학자는 ‘무사도의 연원은 신라의 화랑이 토대였다.’라는 것을 생각할 정도”라고 말했다. 최남선은 학병지원을 의미한 듯 “국가에 충성을 다한다든가, 대동아의 성전에 참가한다든가의 의의는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한편에는 우리들의 잠자고 있는 혼을 깨운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신적 부흥을 위한 수행에 있어 하나의 계기”라고 덧붙였다.대담에서 이광수는 창씨개명한 이름 ‘香山光郞’(가야마 미쓰오)로 표기됐다.박홍환기자 stinger@seooul.co.kr
  • 나주는 ‘제4의 고대문화권’

    나주는 ‘제4의 고대문화권’

    전남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에서 백제는 물론 신라와도 교섭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형고분군이 발굴됨에 따라 영산강 유역이 고대문화의 보고로 다시 한번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나주는 삼한시대 이후의 대형 무덤이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여럿 발굴되어 반남면 대안리·신촌리·덕산리와 다시면 복암리 고분군 등 4곳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고분 밀집지역이다. 이에 정부는 가칭 국립영산강고고학박물관을 오는 2011년까지 나주에 세운다는 계획을 확정했다.10억원의 기초조사용역비도 올 예산에 반영했다. 앞서 2005년에는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경주와 부여·창원에 이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4번째 지역 연구소이다. 한반도 구석기 연구의 중심지가 될 중원문화재연구소가 올해에야 충주에 신설될 예정이라는 것도 영산강 유역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이렇듯 나주를 중심으로 하는 영산강 유역 문화권이 경주의 신라문화권과 공주·부여의 백제문화권, 김해의 가야문화권에 이은 제4의 고대문화권으로 빠르게 발돋움하고 있다. 이웃한 영암 월출산 기슭의 다양한 문화유적과 한국 도기문화의 중심지인 구림에 세워진 영암도기문화센터를 묶는다면 어느 고대문화권에도 뒤지지 않는 관광자원까지 갖추는 셈이다. 영산강고고학박물관은 나주와 영암이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였으나,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평가단의 현지실사를 거쳐 나주 반남면 신촌리가 예정지역으로 확정됐다. 대안리·신촌리·덕산리 고분군이 밀집한 지역이다. 반남면 일대 무덤 39기에서는 그동안 국보 제295호 금동관을 비롯해 모두 1만 2573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영산강고고학박물관은 이 지역에서 출토된 고대유물을 전시테마로 하는 전문박물관의 성격을 갖고 있다. 기원전 4세기 이후 삼한시대의 유물과 옹관묘로 특징지어지는 영산강 유역의 매장문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게 된다. 이세섭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장은 “영산강고고학박물관은 건립단계에서부터 중앙박물관의 지역박물관 특성화 계획이 적용될 것”이라면서 “박물관의 이름도 고고학 발굴성과와 발맞추어 전시와 연구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달 26일 영동리 발굴현장에서 열린 지도위원회에서 최성락 목포대 교수를 비롯한 지도위원들은 3세기 옹관묘에서부터 7세기 석실묘에 이르는 30여기의 매장시설이 드러난 또 하나의 ‘벌집형 고분’인 영동리 보호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동리 고분군은 하나의 무덤에서 4세기에 걸쳐 41기의 매장시설이 발견되어 ‘벌집형’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복암리 3호분에서 1.5㎞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영동리 고분군을 사적 제404호 복암리 고분군에 추가하는 방법도 제시됐다. 발굴책임자인 이정호 동신대 교수는 “영동리 고분군은 야외 고분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지만 사유지인 만큼 보존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훼손될 수밖에 없다.”면서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가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경기 파주 고령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기 파주 고령산

    옛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새 것을 찾는 마음이 전혀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할 때가 많다. 산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잘 알려진 산이나 잘 닦인 산길을 찾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 길이나 옛날에 걷던 한적한 오솔길이 그리워지곤 한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기산리·영장리와 경기도 양주시 백석면의 경계에 있는 고령산(622m)은 한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곳. 주능선이 북동쪽으로 뻗어가면서 양주시의 말머리고개를 경계로 챌봉, 장흥계곡과 이웃하고 북서쪽으로는 박달산과 인접해 있다. 남쪽으로도 긴 능선이 뻗어 내려 형제봉을 지나 고양시 목암고개까지 연결되지만 군사시설 때문에 접근하지 못한다. 산세가 부드럽고 조망이 좋아 정상 앵무봉에 서면 불국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등 서울의 주요 산군들이 펼쳐진다. 산기슭 나지막한 곳에는 신라 진성여왕 때 창건된 고찰 보광사가 있다.1634년 주조한 보광사 범종과 조선 후기 편찬된 ‘양주목읍지’에는 각각 ‘고령산(高嶺山)’과 ‘고령산(高靈山)’이라 표기돼 있으나 ‘한국사찰전서’에는 두 가지 표기가 모두 실려 있다. 고령산은 계명산이나 개명산(開明山) 등 지도마다 다른 이름으로 표기돼 있는 경우가 많아 지난해 산림청은 ‘고령산’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해 줄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고령산에는 여러 갈래의 크고 작은 산길들이 나 있다. 그 중에서 보광사를 들머리로 삼는 경우가 가장 많다. 보광사를 지나 도솔암을 거쳐 앵무봉까지 올랐다 원점회귀할 수도 있고, 반대편 서쪽 능선을 타고 내려올 수도 있다. 보통 2∼3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주변 산군으로 능선 산행을 길게 이어갈 수도 있다. 산길이 험하지 않고 부드러운 육산이라 산악자전거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서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통해 헬기장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 취재는 보광사에서 출발해 도솔암을 거쳐 앵무봉에 올랐다가 서쪽 능선을 타고 다시 보광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소개한다. 산행 들머리가 되는 보광사에 닿으려면 되를 엎어놓은 것처럼 가파르다는 됫박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벽제삼거리에서 서울시립공동묘지를 지나 됫박고개를 넘어서자마자 보광사 입구에 닿는다. 사찰 안에서 중앙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고령산을 배경으로 보광사 호국인불이라 불리는 거대한 석불입상이 서 있다. 그 앞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자그마한 다리 보광3교를 건너면 도솔암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계곡을 끼고 그대로 능선을 따라 오르면 된다.25∼30분 정도 적당히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도솔암이다. 낙엽 깔린 고운 흙 위에 살짝 눈 내린 오솔길, 빈 나뭇가지 아래 갈지자를 만들며 오르는 맛이 제법이다. 도솔암까지 가는 동안 두 번 정도 널찍하게 쉴 공간이 있다. 아늑한 둥지 같은 도솔암에는 이름처럼 몇 그루 단아한 자태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등산로 인접 지역이 지뢰매설 지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길로만 가야 한다. 도솔암에서 20분쯤 더 오르면 헬기장이 나온다. 거기 서면 앵무봉 정상부가 동그랗게 솥뚜껑을 엎어 놓은 듯 보인다. 나뭇잎을 말끔히 털어낸 참나무 잔가지가 빽빽하게 들어선 맨 꼭대기에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어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숨을 한번 고르고 정상부까지 5분 남짓 꽤나 가파른 비탈을 오르면 된다. # 여행 정보 보광사 입구에는 산채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여럿 있다. 그 중 맨 끝에 있는 꼭대기산장(대표 유진명)이 유명하다. 산채정식 8000원, 겨울철 별미 산토끼탕은 4만 5000원, 꿩탕은 4만원이다. 페치카 장작불에 직접 구운 군고구마와 커피는 무료다. 꼭대기산장 031-948-7066. 글 사진 이영준(월간 MOUNTAIN 기자)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8) 정림사터 오층석탑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8) 정림사터 오층석탑

    충남 부여에 정림사터 오층석탑이 없다면 사비시대(538∼660년) 백제의 흔적은 낙화암 전설로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탑이 사비성에서 제 모습을 유지한 거의 유일한 유적일 만큼 백제 문화는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정림사터 오층석탑도 나당연합군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잘 알려진 대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반도의 오랑캐가 만리 밖에서 천상을 어지럽게 하여…일거에 평정하였다.’는 글을 1층 탑신에 새겼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오만한 낙서로 훼손되지 않았다면 정림사터 오층석탑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라군사 쪽에서 보면 정림사는 사비성의 한복판에서 백제왕조의 안녕을 빌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겠지요. 그럼에도 정림사를 폐허로 만들었을지언정 ‘소정방 기념탑’으로 탈바꿈해 버린 오층석탑은 허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불교가 융성했던 백제라지만 남아 있는 석탑은 2∼3기에 불과합니다. 정림사터 오층석탑과 요즘 해체 복원작업이 한창인 익산의 미륵사터 서탑이 그것이지요. 학자에 따라서는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도 백제시대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백제 석탑은 신라의 황룡사 구층석탑처럼 목재로 짜맞추던 탑을 석조로 번안한 것입니다. 정림사탑만 해도 부재가 149개에 이른다고 하네요. 백제 석탑의 모습을 본받은 이른바 백제계 석탑은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과 서천 비인 오층석탑,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 강진 월남사터 삼층석탑 등 10여개가 꼽힙니다. 모두 백제의 옛 땅입니다. 백제계 석탑이 한결같이 고려시대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백제 석탑의 기술이 그대로 계승되었겠지만, 이 시기에 세워진 백제계 석탑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윤용혁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신라의 옛 백제땅에 대한 지배정책이 매우 완고하여, 백제계 석탑의 건립조차 불온시되는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불국토(佛國土)를 표방한 통일신라에서 석탑이 갖는 대중적 영향력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그런 마당에 백제계 석탑을 세우는 것은 백제계 주민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반국가활동’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고려시대에 백제계 석탑이 여럿 세워진 배경에도 정치적 해석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천득염 전남대 건축과 교수는 “나말여초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견훤을 비롯한 백제 추종세력에 고무 자극된 지역민들의 백제문화에 대한 향수의 발로였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정림사터 오층석탑은 통일신라를 비롯한 후대 석탑에 영향을 미친 한국 석탑의 출발점입니다. 더 이상의 조형적 발전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백제 석탑의 완결판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수백년 동안이나 백제 국권회복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것은 정림사탑이 가진 또 하나의 가치입니다. 문화적 산물이 꼭 문화로 한정된 영향력만 갖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벌써 1400년 전에 보여주었습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41년만에 되찾은 신라 사리병

    40여년 전 도굴당한 이후 행방을 찾지 못했던 통일신라시대 은제 사리병이 최근 경남 합천 해인사로 되돌아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해인사 성보박물관은 27일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되찾은 사리병을 오는 4월 박물관 개관때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은으로 만들어진 사리병은 높이 2.5㎝, 입지름 0.9㎝ 크기로 문양은 없고, 주둥이 부분이 일부 손상돼 있다. 이 사리병은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 9년(895년) 해인사 일주문 밖에 세워진 묘길상탑(妙吉祥塔)에 보관돼 있다가 1966년 도굴당했다. 당시 도굴범들을 검거해 탑지 4장과 토제소탑은 회수했지만 함께 보관됐던 것으로 기록된 사리병은 행방을 찾지 못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탑지에는 ‘사리병 1개와 사리 2개(佛舍利一軀又二枚)’라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사리병에 모셔져 있던 부처님 진신사리와 뚜껑은 찾지 못했다. 이 사리병은 홍제암의 종성 스님이 1970년대 중반 묘길상탑 주변에서 풀을 베다 발견, 최근까지 간직해 오다 해인사에 기증한 것으로 전해졌다.박물관 관계자는 “종성 스님이 사리병을 발견할 당시 뚜껑과 사리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합천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라면 등 식음료값 줄줄이 인상

    라면, 스낵, 발효유, 오렌지주스 등 식음료 가격이 인상 행진을 펼치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3월부터 신라면과 새우깡 등 주요 라면과 스낵 제품 가격을 50∼100원씩 평균 7.4% 인상한다. 신라면 가격은 600원에서 650원으로, 짜파게티는 700원에서 750원으로 각각 8.3%,7.1% 뛴다. 새우깡은 600원에서 700원으로, 양파링은 700원에서 800원으로 인상된다. 한국야쿠르트도 다음달부터 발효유 ‘윌’의 소비자 가격을 출시 7년만에 1000원에서 1100원으로 10% 올린다.롯데칠성은 다음 달부터 델몬트 콜드(950㎖)를 2350원에서 2600원으로 10.6% 올린다.웅진식품은 최근 ‘자연은 365일 오렌지 주스(1.5ℓ)’를 종전보다 22% 비싼 3050원에 판매한다. 해태음료는 ‘썬키스트 오렌지주스(1.5ℓ)’ 가격을 14% 올렸다. 생수와 콜라 가격도 오름세다. 농심은 지난달 삼다수 0.5ℓ 출고가를 8% 올렸고, 코카콜라도 연초 제품 가격을 7∼9% 인상했다.매일유업도 카페라테 가격을 지난 1997년 출시한 이래 처음으로 1200원으로 20% 올릴 것을 검토중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밀가루, 오렌지 농축액,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데다 고유가 등으로 용기 제조 비용과 운반 비용 등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인상 이유를 설명했으나 소비자들의 부담은 늘어나게 됐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백제땅’ 나주서 신라토기 발굴

    독널무덤(옹관묘)으로 특징지어진 영산강 유역 세력권인 전남 나주시 다시면 영동리의 5세기 말∼6세기 초반 무덤에서 신라토기가 여럿 발굴되어 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영동리 고분군을 발굴하고 있는 나주 동신대 문화박물관(책임연구원 이정호 교수)은 지난해 10월부터 실시한 제3차 조사에서 적어도 37기의 무덤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신라토기 5점은 모두 뚜껑접시(蓋杯·개배)로 제3호분에서 나왔다.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고분)의 입구에 장례의식을 치른 뒤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삼각집선문과 반원문이 결합된 전형적인 신라시대 것이다. 백제의 색채가 짙은 세발토기(삼족기)도 여러 점이 나왔다. 피장자가 백제 및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로 짐작할 수 있다. 앞서 1996년에는 나주 복암리 제3호분에서 신라의 영향이 짙은 말재갈과 말 장식인 행엽 등이 발굴되기도 했다. 발굴단은 “백제는 475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강유역의 위례성을 점령당하자 웅진으로 천도한 뒤 493년 신라와 국혼을 하고 동맹관계를 긴밀하게 다진다.”면서 “이 관계는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기까지 60여년동안 지속되는데, 복암리 3호분과 이번에 출토된 신라토기는 이런 역사적인 사실과 잘 부합한다.”고 설명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백제부흥’ 아닌 ‘백제복국’이 맞다

    백제는 660년 신라와 당나라 군대의 기습적인 협공을 받고 항복했다. 하지만 백제 세력은 곧 이어 왜(倭)에 머물고 있던 풍 왕자를 국왕으로 옹립하여 국가체제를 수립한 뒤 조직적으로 나·당군에 항전한다. 그동안 이런 움직임을 백제부흥(復興)운동, 나·당군에 항전하던 세력을 백제 부흥군(復興軍)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세였다. 하지만 ‘백제 부흥’이라는 용어는 왜가 천황권의 역사적 승리를 과시하고 미화시키기 위해 편찬한 ‘일본서기’ 속의 천하관에 보이는 용어이기 때문에 쓰지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최근 발간된 ‘전통문화논총’ 4호에서 “‘일본서기’는 임나제국이나 임나 재건과 관련하여 한결같이 부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면서 “왜의 역할과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는 구절에서 ‘부흥’이 나타나는 만큼 더 이상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백제 부흥의 개념은 나라가 망한 뒤 국권을 되찾는 투쟁으로, 한 국가가 쇠퇴했다가 다시 흥기하는 개념의 부흥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면서 “당시 백제의 움직임은 당나라와 신라가 강점하고 있는 자국 영토의 주권을 회복하려는 일종의 독립투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차라리 ‘부흥’보다는 ‘삼국사기’에 보이는 ‘흥복(興復)’이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면서 “전체적인 큰 틀에서 볼 때 부흥운동은 복국운동(復國運動)으로, 부흥군은 복군군(復國軍)으로 일컫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백제가 멸망한 뒤 주민들이 국권회복 투쟁을 전개한 것을 부흥운동으로 일컬은 것은 1923년 오다 쇼고(小田省吾)가 ‘조선상세사(朝鮮上世史)’에서 쓴 것이 가장 오래된 용례”라면서 “하지만 이전에 사용한 사례가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윤재운박사 ‘한국고대무역사 연구’ 발간

    발해는 어떤 경로를 통해 말(馬) 등 주요 물품을 수출했을까. 동북아역사재단 윤재운 연구위원이 7∼8세기 동북아시아 교역관계를 밝힌 책 ‘한국 고대무역사 연구’(경인문화사 펴냄)를 최근 출간했다. 윤 연구위원은 이 책에서 신라와 발해가 당 및 일본과 교역한 내용을 밝힘으로써 당시의 국제관계를 실증적으로 접근했다. 윤 연구위원은 특히 산둥반도에 있던 ‘평로지청 번진’에 주목한다. ‘평로지청 번진’은 고구려계 유민인 이정기 등 이씨 일족이 당의 반란군을 토벌하면서 사실상 독자적으로 지배한 지역이다. 당으로서는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이었던 셈이다. 윤 연구위원은 책에서 ‘평로지청 번진’과 신라, 발해, 일본 사이에 전개됐던 활발한 무역관계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아울러 장보고의 청해진을 ‘평로치청 번진’과 신라 및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 기지로 해석하고 있다. 윤 연구위원은 특히 발해의 주요 수출품인 말의 교역로를 추적함으로써 7∼8세기 동북아시아 지역의 무역망을 복원해냈다. 윤 연구위원은 “‘조공(朝貢)’으로 불리던 국제관계가 중국 중심의 일원적·일방적인 체제가 아니었으며, 동북아시아의 국제관계는 조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중계무역 및 사(私)무역 관계로 중층화된 복합적 관계였다.”라고 설명했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돌하르방이 기가막혀

    돌하르방이 기가막혀

    ‘제주여행 2박3일에 19만 9000원’ 제주지역 인터넷 여행사 등이 내놓은 초저가 패키지 여행상품 가격이다. 제주∼김포 왕복 항공요금이 15만원 수준인데 과연 이 요금에 2박3일 제주 여행이 가능할까? 여행사가 할인항공권(좌석이 남아도는 시간대 주중 40∼50%)을 이용한다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무료관광지나, 여행사에 50% 할인이나 리베이트를 주는 볼 것 없는 사설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수박 겉기식 부실 관광상품이다. 사무실도 없이 컴퓨터 한 대로도 운영이 가능한 인터넷여행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제주지역 여행사는 모두 600여개. 여행사 난립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작 제주의 문화와 역사, 자연 등 ‘제주다운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반쪽짜리 부실상품이 제주관광을 멍들게 하고 있다. #장면 1 16일 제주시 삼양동 선사유적지. 탐라인들의 선사시대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곳에는 관광객들의 모습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은 제주시가 2001년부터 106억원을 들여 복원한 선사시대 유적지(사적 416호)로 돌담과 쓰레기폐기장, 마을외곽 도랑까지 확인된 기원전 1세기 무렵 국내 최대의 마을유적지로 평가받는 곳이다. 복원한 선사시대 원형움막 14채를 비롯, 이곳에서 출토된 철제도끼, 손칼, 콩, 보리 등 유물 등을 발굴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연해 마치 선사시대 탐라로 돌아간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제주를 찾는 대부분의 패키지 관광객들은 여행사들의 외면으로 이런 곳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지난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 500여만명 가운데 1·4%인 6만 9000여명만이 이곳을 다녀갔다. 100억원을 들인 제주시 구좌읍 해녀박물관과 400억원을 들여 제주의 돌 문화를 집대성한 제주시 조천읍 돌문화공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곳에서는 제주 해녀와 화산섬 제주의 독특한 돌문화를 엿볼 수 있는 가장 ‘제주다운 볼거리’가 있지만, 여행사들은 공짜가 아니라는 이유와 사설관광지와는 달리 여행사 할인이나 리베이트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기 일쑤다. #장면 2 이날 제주시 연동 한라수목원에는 여행사 단체관광객을 실은 관광버스들이 부지런히 들락거린다. 제주의 자생식물 등을 한데 모은 이곳은 제주의 대표적인 무료 관광지. 지난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 500여만명 가운데 24%인 120여만명이 다녀갔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대부분 볼멘소리다. 관광객 박모(45·대구시 수성구)씨는 “2박3일 빠듯한 일정에 여미지식물원과 비슷한 곳을 두 곳이나 데리고 다니면서 시간만 떼운다.”고 말했다. 또 한라수목원 인근의 성(性) 테마공원인 러브랜드는 관광객을 데리고 오면 리베이트를 주기 때문에 여행사 관광버스들로 주차장은 늘 북적거린다. 최경달 신라항공여행사 대표는 “공짜 관광지나 돌아다니며 시간을 떼우는 부실관광은 결국 제주관광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며 “저가의 중국관광 상품과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관광객에게 욕을 얻어먹는 무차별 덤핑상품을 자제해야 제주관광이 산다.”고 말했다. 글 사진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고속道서 기름 넣고 경품 받아가세요

    고속道서 기름 넣고 경품 받아가세요

    ‘고향가는 길’을 겨냥한 정유회사들의 기름 마케팅 열전이 뜨겁다. 1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SK㈜는 16일부터 이 회사의 전국 48개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주유 고객에게 무릎 덮개를 준다. 기름값을 외환카드로 결제하면 윷놀이 세트도 얹어준다.19일까지다. GS칼텍스도 16일부터 20일까지 전국 고속도로 및 진·출입로 인근 주유소에서 추첨을 통해 현금처럼 사용하는 ‘보너스 포인트’를 준다. 기름을 넣을 때 응모권을 받아 이 회사의 킥스 사이트(www.kixx.co.kr)로 들어가면 된다. 참여 고객 모두에게 주방위생용품을 선물로 준다. 에쓰오일은 16일부터 19일까지 고속도로 주유소 46곳에서 댄스·트로트 음악 CD 7만개를 선착순으로 나눠준다.25일까지 보너스카드 홈페이지(www.s-oilbonus.com) 응모행사에 참여하면 80쌍을 추첨해 신라호텔 패키지 상품권도 준다. 15일에는 외국인인 사미르 투바이엡 사장 등이 직접 참여한 가운데 ‘떡국 나눠주기’ 자원봉사 활동도 펼쳤다. 현대오일뱅크는 강원지역 주유소 20여곳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기원 스티커 3000여개를 나눠준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황남대총 금귀고리 부장용인 듯

    신라시대의 화려한 금관과 치렁치렁한 장식이 달린 허리띠, 귀고리는 그동안 평상시 착용한 장신구라는 주장과 무덤에 묻기 위해 부장용으로 만든 것이라는 주장이 엇갈려왔다. 이렇듯 상반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무덤에서 출토된 신라 금귀고리를 분석한 결과, 제작기간에 쫓겨 급조한 흔적이 드러났다. 무덤의 주인이 사망하자 장례기간에 맞추고자 서둘러 제작했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부장용이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주진옥 연구원과 한국전통문화학교 강대일 교수는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금제 태환이식(太環耳飾·굵은 고리 귀고리) 세 쌍의 성분과 구조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한 쌍의 귀고리에서 한쪽은 금 88%와 은 11.5%가 섞인 반면 다른 쪽은 99.5%의 순은에 금도금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한 쌍의 귀고리도 금과 은의 함유비율이 각각 80.95%와 18.59%,87.2%와 12.2%로 서로 달랐다. 제작방식도 한쪽은 하나의 통판으로 만든 반면 다른 한쪽은 두 개의 판으로 반구형 고리를 만들어 붙인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통판으로 만든 쪽은 중량이 3.96g이었으나 두 개의 판으로 제작한 쪽은 5.96g으로 1.5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나머지 한 쌍의 귀고리는 두 쪽의 성분이 같았으나 금의 비율이 66.4%에 불과해 다른 두 쌍의 귀고리보다 붉은 색을 띠게 됐다.주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그동안의 육안 분석에서 탈피해 첨단 과학기기를 이용한 비파괴 분석방법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면서 “분석 결과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금제 귀고리는 제작기간에 쫓겨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번 분석 결과를 담은 논문은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보존과학연구 27호’에 실렸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부고]

    ●주순목(전 이화여대 미술대학장)씨 별세 김철영(한호항공 대표)씨 모친상 1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전 9시 (02)3410-6915●차성현(전 군산 신풍초등학교 교장)씨 별세 준식(아동상사 대표)범식(유니크상사 〃)씨 부친상 최병식(동아창호 대표)한병락(솔로몬저축은행장)김준범(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연구소 임업연구사)박철희(미얀마 선교사)씨 빙부상 15일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발인 17일 오전 7시 (02)440-8912●김성호(전 한국일보 기자)씨 부친상 15일 경북 경주전문장례식장, 발인 17일 오전 9시 (054)777-4072●손장훈(신한산업 뉴욕법인장)철훈(예한의원 원장)씨 모친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전 3시 (02)3410-6912●권오진(한국토지신탁 실장)씨 모친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6시40분 (02)3010-2263●최준혁(화승 과장)씨 모친상 박재훈(삼성전자서비스 대리)씨 빙모상 15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7일 오전 5시30분 (02)392-3299●주영민(현대오일뱅크 부장)영수(삼성생명 차장)영애(신라명과 점장)씨 모친상 최갑식(강일부동산 대표)씨 빙모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6시 (02)3010-2292●양승태(뉴질랜드 회사 근무)승철(SK텔레콤)승옥(연수초등학교 교사)승진(상지대 교수)승호(경안중 교사)씨 부친상 강신형(서울대 교수)민원희(전 삼성전자 이사)박주종(JiJi텍스타일 대표)씨 빙부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93●조장연(풍성상사 대표)중연(하나로팜 〃)철연(대상 팜스코 본부장)희연(풍성교역 대표)씨 부친상 1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7일 오전 5시 (02)3010-2252●김영주(국립과학수사연구소 동부분소)씨 부친상 이호영(사업)씨 빙부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10시30분 (02)3010-2265●황규승(자영업)규석(대신증권 전산업무부 과장)씨 부친상 14일 성애병원, 발인 16일 오전 9 시30분 (02)844-5164●도규환(자영업)신환(〃)광환(연합뉴스 사진부 차장)씨 부친상 윤형수(자영업)씨 빙부상 14일 서울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9시 (02)2072-2016●조광현(전 서울우유 협동조합장)상현(태능교통 대표)봉현(미국 거주)연현(사업)승현(씨엔씨종합건설 회장)씨 모친상 신상규(루브코 대표)씨 빙모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7시 (02)3010-2631●정재룡(직접판매공제조합 이사장·전 재경부 차관보)씨 모친상 이경재 강무근 노상정 이동만씨 빙모상 15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전 (02)3410-6901●김영붕(전 한비산업 감사)영석(주 노르웨이 대사)영선(KBS 예능프로듀서)영혜(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영은(건국대 교양학부 행정실장)씨 모친상 이완열(변호사)김원형(대전대 교수)씨 빙모상 15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17일 오전 8시 (02)590-2352
  • [이용원 칼럼] 백제를 꿈꾸며

    [이용원 칼럼] 백제를 꿈꾸며

    7세기 초 유적지인 전북 익산시 왕궁리에서 정화시설을 갖춘 공중화장실 3기가 발굴됐다고 엊그제 언론이 보도했다. 아울러 토양을 분석해 보았더니 백제인들은 육식을 거의 하지 않고 채식을 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왕궁리는,‘서동요’를 지어내 신라 선화공주를 유혹했다는 백제 무왕과 인연 깊은 땅이다. 일본의 ‘관세음응험기’ 등에는 무왕이 한때 수도를 익산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짧은 보도를 접하고는, 당시로는 첨단이었을 정화조 화장실을 갖춘 왕궁의 위용, 독실한 불교신자로 육식을 멀리했을 무왕 부부와 그 백성 등 백제인의 삶의 모습이 잇따라 떠올랐다. 그러면서 백제는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라고 상상의 날개가 펼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유혹이었다. 백제의 역사는 3국(실제로는 가야를 포함한 4국) 가운데서도 오랫동안 홀대를 받아왔다.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꿰차고 앉아 중국과 자웅을 겨룬 고구려,3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에 이리저리 채이기만 한 것이 ‘약소국’ 백제가 주는 이미지였다. 그러다 1971년 충남 공주에서 무녕왕릉이 발굴된 것을 계기로 백제는 화려하게 부활한다.1993년에는 충남 부여에서 ‘금동용봉봉래산향로’가 출토돼 백제인의 찬란한 예술성을 만천하에 과시했고, 이어 한성백제의 왕도인 서울 풍납토성의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백제는 건국 초기부터 동북아시아의 강국이었음이 밝혀졌다. 이와 함께 문헌사학계의 연구 축적에 힘입어 백제는 한반도 남쪽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소국이라는 위상에서 벗어났다. 백제가 일본 열도에 분국(分國·식민지)을 세웠다는 학설(북한의 김석형 등)은 진즉에 나왔고, 이를 뛰어넘어 일본 열도와 중국은 물론 동남아 일대까지 진출한 해양대국이었다는 학설(이도학 전통문화학교 교수)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심지어 현재 전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가 사실은 중국에 진출했던 백제 유민의 후손이라는 주장(김성호의 ‘중국 진출 백제인의 해상활동 천오백년’)까지 나와 있다. 백제가 해양대국이었다면 그 바탕에는 교역물품이 있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역사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유물이 2005년 10월에도 공개됐다. 공주 수촌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죽 직물이 그것이다. 창을 감싸는 데 사용했으리라 추측되는 이 직물은 일본 사가현 소재 유키노야마(雪野山) 고분의 출토품과 똑같다고 한다. 발굴단 교수가 “육안으로 봐도 같은 메이커 제품”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생활용품은 남겨진 게 드물지만, 왕실과 불교 관련 물품 중에는 쌍둥이라 해도 좋을 만큼 똑같은 유물이 한·일 양국에 전해진 예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는 선진국의 ‘메이드 인 백제’ 제품이 일본으로 수출된 예가 아닐까. ‘일본 제품이 백제에 수출되었다.’고 거꾸로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본측 기록으로 검증하면 된다. 우리의 ‘삼국사기’에 비견되는 ‘일본서기’에는 34대 일왕 서명(舒明)이 639년 궁궐과 절을 짓도록 지시한 결과 백제천(川) 가에 백제궁(宮)과 백제사(寺)를 지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서명은 타계 후 백제대빈(大殯)에 안치됐다. 살아서는 백제궁에 거주하다 죽은 뒤 백제대빈으로 간 일본 왕은 백제인일까, 일본인일까. 요즘 고구려·발해가 새 문화 코드로 뜨고 있다. 대륙을 호령한 선조들이 있다면 바다를 누빈 선조, 백제인도 있다. 백제가 진정 되살아나는 날을 꿈꾼다.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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