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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산시 원효·설총·일연 재조명 삼성현 역사문화공원 새달 착공

    경산시 원효·설총·일연 재조명 삼성현 역사문화공원 새달 착공

    원효·설총·일연 등 경북 경산에서 출생하거나 성장한 삼성현(三聖賢)의 생애와 학문 사상을 재조명하기 위한 ‘삼성현 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이 진통 끝에 마침내 착공된다. 경산시는 10일 “남산면 인흥리 일대 부지 26만 2000㎡에 삼성현 문화관, 원효·일연·설총각, 유물전시원, 조각원, 국궁장 등을 갖춘 역사문화공원을 다음달 착공, 2012년 4월쯤 준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문화재 발굴조사와 시공사 및 감리자 선정 작업을 이달 중에 마치고 다음달 중순쯤 착공할 계획이다. 1997년 시작된 삼성현 공원 조성사업은 그동안 사업계획 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10여년째 지지부진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문화재청이 “(경산에) 삼성현 관련 유적이 없다.”는 이유로 사적지로 지정하지 않아 국비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는 삼성현 현창사업과 영남권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지로 조성한다는 목표 아래 토지 보상 등 관련 사업을 계속 추진해 왔다. 시는 463억원의 사업비로 공원을 조성키로 하고 내년도에 기존 및 신규 국비 확보(예정)분 30억원 등 모두 130억원의 순수 시설비를 확보해 투입키로 했다. 시는 삼성현 공원 조성사업을 현 정부의 30대 선도 프로젝트의 하나인 3대(유교·신라·가야) 문화권 사업과 연계 추진할 경우 국비 확보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산시 관계자는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은 통일신라시대 원효의 화쟁사상과 설총의 이두문자 집대성, 고려말 일연 선사의 숨결 등을 느낄 수 있는 기념관 건립과 당시 생활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체험관광지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원효(617∼686)는 경산시 자인면인 불지촌(佛地村)에서, 설총(654∼?)과 일연(1206∼1289)은 지금의 경산인 장산군(章山郡)에서 각각 출생한 것으로 사료들은 기록하고 있으나 지금껏 고증작업이 제대로 안 된 상태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도시와 산] (32) 강원도 화천 용화산

    [도시와 산] (32) 강원도 화천 용화산

    강원 화천 용화산(龍華山)은 북으로는 파로호, 서로는 춘천호, 남으로는 소양호를 끼고 우뚝하다. 해발 853m의 중봉이지만 바위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위용이 예사롭지 않다. 강원도 첩첩산중에 꼭꼭 숨은 산이지만 전국 100대 명산에 포함될 만큼 자태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북한강 상류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화천읍내를 남으로 감싸안고 있는 화천의 진산이다. 산을 오르는 곳곳마다 상고(上古)시대 이전 고대 맥국(貊國) 성터와 절터 흔적이 남아 있고, 깎아지른 기암절벽마다 재미있는 구전 설화가 바람처럼 전해온다. ●춘천과 화천의 경계 갈라 용화산 정상은 춘천과 화천의 경계를 가른다. 남쪽 춘천방면을 바라보면 발 아래로 수십m의 아찔한 바위 절벽을 이루며 천혜의 요새를 이룬다. 멀리 춘천시내가 아스라이 보이고 맑은 날에는 춘천의 중심에 자리한 봉의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을 돌려 북쪽을 바라보면 화악산 등 준봉을 뒤로한 화천읍이 햇살을 받으며 오붓하게 형성돼 있다. 산세가 이렇다 보니 정상의 서쪽 사면에서 동쪽 팔부능선까지 북사면을 따라 돌을 이용한 용화산성의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띈다. 북사면 중간쯤에는 성문터로 짐작될 만한 돌들도 남아 있다. 삼국시대와 상고시대 이전 강원도의 전신으로 알려진 맥국 임금이 지금의 소양강댐 하류 춘천지역을 도읍으로 정하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성을 쌓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성터 주변에는 주춧돌과 석불 등의 흔적이 남아 있어 한때 융성했던 성불사, 용화암자의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한다. 이후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고구려군과의 전투에서 첫 승리를 이끌어낸 비사성전투 격전지가 이곳 용화산성이었다는 주장도 역사가들 사이에 제기되고 있다. 화천문화원 정종성(48) 사무국장은 “용화산 인근의 간척리 볏바위에 새겨진 글자가 통일신라시대 때 것으로 추정되고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화랑들의 무리가 용화낭도였다는 점 등을 들어 사학자 일부는 용화산의 유래를 조심스레 이같이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강 상류지점 끝자락에 있어 청동기, 철기시대때는 160여가구가 모여 살 만큼 융성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해에서 북한강 물줄기를 따라 오르다 육지가 맞닿는 지점에 있는 용화산은 신라, 고구려, 백제의 격전지였고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최근에는 화천댐의 전력 확보를 놓고 치열한 전투를 치른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춘천에서 407호선 지방도로를 따라 달리다 화천읍을 지척에 두고 9번 군도로 접어 들어 도로 끝 지점까지 오르면 용화산 산행 초입에 이른다. 이곳에서 산 정상까지 40분 정도면 족하지만 초입부터 깔딱하다. 오르면서 10분쯤 간격으로 쉴 수 있는 바위들이 나타나 숨고르기를 도와 준다. 쉬면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바위 사이에 자리잡은 소나무와 멀리 보이는 산들이 절경을 연출한다. 바위를 밟으며 오르는 산행 동안 발 아래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절벽이 발끝을 간지럽히고 기기묘묘한 바위들에 얽혀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심바위·칼바위·아들바위… 바위마다 전설 가득 효자가 산삼을 캤다고 알려진 심바위, 바위가 자리를 깐 듯이 생긴 너럭석바위, 행상 뚜껑처럼 생긴 행상바위, 앉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 칼을 세워 놓은 것 같은 칼바위, 주전자 모양의 주전자바위, 어린이들이 앉을 수 있을 만큼 큰 장수발자국바위, 물 흐른 흔적이 남아 있는 마귀할범 오줌 싼 자리, 말등바위, 곰바위, 집바위, 논바위, 독바위 등 모양 따라 해학이 넘쳐나게 붙여 놓은 바위들에 얽힌 이야기가 끝도 없다. 특히 주전자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흥미롭다. 바위 모양이 마치 주전자부리처럼 생긴 바위는 예부터 가뭄이 들면 개를 잡아 ‘개적심’이라고 이름 붙여진 기우제를 지내오던 곳이다. 개를 잡아 주전자 부리 모양의 바위밑에 기우제를 지내고 피를 주전자 부리에 바르면 산신령이 피를 씻어내기 위해 비를 뿌린다는 전설 같은 얘기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 가뭄이 크게 들었던 어느 해 마을주민들이 전해오는 얘기 대로 기우제를 지냈고 이튿날 비가 내렸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까지 전해온다. 용화산 정상에 있는 꼭지바위에 전해오는 얘기도 재미있다. 바위의 끝(꼭지)이 춘천 쪽으로 향해 있어 이 지역의 재물이 바깥 마을로 흐른다고 여겨 마을에 살던 한 힘센 장사가 바위 꼭지를 떼어냈다는 전설이다. 함께 산행에 나섰던 춘천국유림관리소 정필원(48) 화천경영팀 직원은 “용화산 정상쯤에 펼쳐진 바위마다 전설같이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많아 금강산 만물상처럼 스토리텔링의 자원으로 활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박진서(45) 화천민속박물관장은 “북한강 상류의 물길 끝자락에서 수천년 전부터 사람들을 품고 지낸 산이다 보니 농경문화와 어우러져 구전문화가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관광자원 보고 용화산 20년전 유황온천 발견 겨울 산천어 축제 백미 용화산은 온천관광단지로 지정됐다. 아직 개발되지 않아 미래의 관광자원을 간직한 곳이다. 산 아래 등산로 입구인 삼화리 마을에서 온천이 발견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7월 이 마을에서 유황 온천이 솟아나면서 일대가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온천을 중심으로 휴가 등 여가활동을 위한 전원형 온천관광지로 조성해 화천지역의 관광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온천지역을 중심으로 땅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며 오히려 사업진척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00년 온천개발계획 승인 이후 민간투자자들의 발길은 여전히 이어지지만 사업진척은 지지부진하다. 주민들 사이에는 차라리 관광특구를 해제해 달라는 주장까지 일고 있다. 하지만 화천군이 용화산을 중심으로 온천개발까지 묶어 제대로 된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취지의 청사진은 아직 유효하다. 최근 겨울의 산천어축제와 여름의 쪽배축제, 토마토축제 등 각종 축제로 산촌마을 화천지역의 명성이 크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을 호재로 삼고 있다. 100만명 안팎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축제가 펼쳐지면서 용화산 온천관광지구도 더불어 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구나 수도권에서 춘천을 거쳐 화천에 이르는 교통여건이 좋아지면서 개발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내년 말 경춘선복선전철까지 개통되면 수도권 배후 관광도시로 각광 받을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온천개발 인근인 간동면 간척리에 스키장까지 추진되고 있어 가능성을 더하고 있다. 북한강 상류의 물길을 따라 자전거, 트레킹 코스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파로호 주변인 간동면 방천리 일대에도 관광단지가 만들어지면 용화산을 중심으로 한 온천관광 개발에도 민간인들의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갑철 화천군수는 “용화산 일대가 지금은 등산객만 찾는 산이지만 수년내 온천지를 포함해 화천권의 관광개발 중심지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서울국제금융콘퍼런스 개막

    서울의 금융허브 중심도시 도약을 논의하기 위한 ‘2009 서울 국제금융 콘퍼런스’가 6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개막됐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금융도시, 서울!’이라는 주제로 열린 행사에는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기업인 매킨지의 도미니크 바튼 회장과 제프리 가튼 전 예일대 경영대학장, 진동수 금융위원장, 오세훈 서울시장, 김기환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 등 국내외 금융전문가 400여명이 참석했다. 오세훈 시장은 개회식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서울의 또 다른 기회”라며 “서울은 아시아의 국제금융허브 도시가 되기 위해 여의도 국제금융중심지 개발과 서울국제금융센터(SIFC)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바튼 회장은 기조연설자로 나서 ‘금융중심지로서 서울의 과제’를 주제로 금융위기가 서울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또 “금융위기를 벗어나면 아시아 중산층 소비자가 10년 내 9억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은 중국, 인도, 중동 등의 시장을 잘 분석해 금융허브로 나아갈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라며 금융도시로서 서울의 강·약점 및 성장전략을 제시했다. 기조연설에 이어 3개의 세션별 토론도 진행됐다. ▲세션Ⅰ 세계 금융시장 질서의 재편 ▲세션Ⅱ 세계 각 도시의 금융허브전략 ▲세션Ⅲ 서울의 국제금융허브 전략과 과제 등이 주제였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고승 혜초가 걸었던 450㎞ 대장정 도전

    고승 혜초가 걸었던 450㎞ 대장정 도전

    신장위구르 자치지구에 위치한 타클라마칸 사막은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곳’이란 의미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건널 수 없다는 이 사막을 오래전에 건너갔던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인’이라 불리는 신라의 고승 혜초(704~787년)다. 6일과 13일, 20일 오후 8시50분에 방송하는 EBS ‘리얼실험프로젝트X’는 3부에 걸쳐, 법을 구하기 위해 혜초가 걸어갔던 그 길을 복원해 본다. 방송은 탐험가 남영호씨와 여행작가 박정호씨가 출연해 최소한의 장비만으로 타클라마칸 사막 전 구간 답파에 도전한다. 둘은 탐험 전 4개월 동안 ‘왕오천축국전’ 완역본과 탐험가 스벤 헤딘이 1800년대 쓴 타클라마칸 도보 여행기를 읽어가며 면밀히 경로를 짰다. 하지만 25㎏에 육박하는 배낭을 맨 채, 나침반에만 의존해 사막길을 걷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왕오천축국전에 따른 그들의 여정은 총거리 450㎞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하루 30㎞도 갈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 체력의 한계와 싸우며 둘은 오직 ‘혜초의 길’을 복원하기 위해 투혼을 발휘한다. 20여일 동안 수십 도를 넘나드는 일교차와 먼지보다 고운 모래 바람 등을 이겨내며 이들은 오래전 혜초가 고뇌했을 문제들을 되짚어 본다. 또 혜초 역시 만났었을 사막의 아름다운 풍경들도 소개한다. 척박한 사막이지만 그곳에도 낙타떼, 사막여우, 도마뱀, 이름 모를 풀꽃 등 아름다운 생명들은 자라고 있다. 또 사막에서 태어나 사막에서 살아가는 위구르인들의 모습도 전한다.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고 사는 그들은 우연히 들른 이방인에게도 과일을 대접하며 환대를 아끼지 않는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교육·의료·법률 규제 완화 시급”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교육, 의료, 법률 등 서비스업의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5일 밝혔다.윤 장관은 이날 신라호텔에서 열린 SBS 주최 ‘미래한국 리포트’ 강평에서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이 우리에게 있지 않았음에도 외부의 충격에 너무 쉽게 흔들렸다.”면서 “우리 경제의 구조를 바꾸기 쉽지 않지만 더는 미룰 수 없으며 우선 교육, 의료, 법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비스 부문은 고급 일자리를 늘리고 경상수지를 개선하는 동시에 내수와 수출의 확대 균형을 통해 대외 의존도를 줄일 기회의 영역”이라면서 “소수 집단이 규제 속에서 이익을 누릴 때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의 몫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윤 장관은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 수요자 중심으로 생각하자.”면서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가경제 차원의 큰 이익을 앞세우고 과단성 있게 행동으로 옮겨보자.”고 말했다.이어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세계경제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과 잠재성장률의 둔화 가능성에 공감하게 됐다.”면서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의 경쟁력 부족, 과도한 대외의존도와 취약한 내수시장 등을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으로 인식한다.”고 밝혔다.이어 “우리 경제의 미래 비전은 선진 일류경제로 이를 위해서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신뢰 등 사회적 자본이 중요하다.”면서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요소투입의 둔화를 완화하고 인력, 자본 등 생산요소의 질을 개선하는 한편 생산요소를 효율적으로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일제강점기 宮의 굴욕

    일제강점기 宮의 굴욕

    #1. 일제 강점기 일본인 거주지역이었던 남산과 그 주변에는 많은 일본계 사찰이 모여 있었다. 이중 박문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로 일본인 및 친일파 위령제, 태평양전쟁 필승대회 등이 행해진 곳이다. 1932년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이 이곳으로 옮겨져 정문으로 사용됐다. 박문사는 경복궁의 선원전과 그 부속건물까지 옮겨와 사찰 건물로 삼았고, 원구단 자리에 있던 석고전까지 해체해 종각으로 사용했다. 흥화문은 1973년 신라호텔에 인수돼 정문으로 활용되다 1988년 경희궁 복원 계획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2. 풍경궁은 1902년 고종이 평양에 건설한 대한제국의 이궁(離宮)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식민 의료기관인 자혜의원으로 변모하면서 훼손되거나 철거됐다. 풍경궁의 정문인 황건문은 건축적 아름다움과 우수성으로 이름 높았는데 1925년 경성 조계사의 요청으로 수레 열한 대에 실려 230㎞를 이동해 산문으로 사용됐다. 황건문은 이후 동국대 정문으로 쓰이다 1971년 철거됐다. 남한에 남아 있던 평양 풍경궁의 유일한 건축 유산이 속절없이 사라진 것이다. #3. 경복궁의 도면인 ‘북궐도형’(1907년 제작 추정)에 나타난 경복궁 내 건물 수는 509동이다. 하지만 광복 후 남은 건물 수는 40동에 불과했다. 일제는 조선물산공진회를 준비하던 1914년 근정전 전면에 있는 흥례문과 회랑 등을 제거했다. 이때 방매된 궁궐 전각 중 상다수가 남산동, 필동, 용산에 있는 일본계 사찰과 요정, 일본인 부호의 저택으로 팔려 나갔다. 경성부 서사헌정의 남산장은 건춘문 내의 비현각을, 남산정 화월별장은 수정전 남쪽의 한 전각을 이건한 것이었다. 조선 왕조와 대한 제국기의 주요 궁궐은 지난 100년간 역사의 격랑 속에서 처참히 붕괴되거나 훼손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효형출판)은 경복궁, 덕수궁, 창덕궁 등 서울의 주요 궁궐과 평양 풍경궁이 일제 강점기에 어떻게 훼철(毁撤)되었는지를 실증적으로 연구·분석한 결과물이다.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등 8명의 전문가가 공동 집필했다. 1부 ‘황권 강화를 위한 근대 조선(대한제국)의 움직임’에선 대한제국과 고종황제가 추진한 조선 변혁의 움직임을 궁궐 건축의 변화상을 중심으로 펼쳐 보인다. 일본, 러시아 등 외세의 영향력 속에서 고종황제는 중국에 대한 사대의 예를 폐기하고, 근대국가로의 진입을 꾀했는데 이러한 시대적 움직임은 경복궁 중건 및 경운궁(덕수궁), 원구단 건설, 궁궐 의례의 변화로 이어졌다. 2부 ‘일제에 의한 조선 궁궐 수난사’에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궁궐이 어떻게 훼손되어갔는지를 본격적으로 살핀다. 경복궁, 경희궁, 풍경궁의 굴욕과 더불어 창경궁이 벚나무가 심어진 종합 위락시설 ‘창경원’으로 전락한 과정을 추적한다. 3부 ‘조선의 궁에 들어선 근대건축물’은 경운궁, 창경궁, 경복궁 등지에 지어진 근대건축물의 건설 배경과 건축양식, 쓰임에 대해 파악한다. 특히 경복궁이 일제 식민지 경영의 선전장인 박람회장으로 쓰이면서 맞이한 변화상을 건축양식 측면에서 분석하면서 일제의 국력 과시 욕망과 조선인에 대한 상징 조작 행태를 들여다본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기고] 박물관은 미래를 준비하는 곳/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기고] 박물관은 미래를 준비하는 곳/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정선 서거 250주년을 기념해 ‘겸재 정선, 붓으로 펼친 천지조화’라는 주제로 열린 특별전시회가 내 발길을 인도한 것이다.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행사와 80년만에 귀향한 ‘왜관수도원 소장 겸재 정선 특별공개’란 말에 장사진을 이룬 것 같다. 마침내 250여년 전 우리 산수화 속으로 들어가 스토리텔링에 빠졌다. 그리고 이 값진 유산에 한없이 감사했다. 전시관 초입에 써 있던 글귀가 떠오른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박물관은 인간이 역사와 만나서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다.” 박물관(Museum)이란 말은 BC 4세기경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정치·경제의 중심도시가 된 알렉산드리아의 궁전에 문예·미술의 신에게 바치는 ‘뮤제이온(Museion)’을 설치한 것에서 비롯됐으며, 이 뮤제이온은 천문대·해부실·동물원·식물원·도서관까지 갖춘 종합학문연구소 기능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의 박물관은 14세기 피렌체의 메디치가에서 고대 그리스의 학문·예술·과학을 부활시키려는 의도로 미술과 역사를 수집·연구하기 시작했고, 산업혁명기 이후에는 자연사를, 나중에는 이공학계 박물관 등으로 분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렇듯 박물관은 인류와 환경에 관련된 증거자료를 수집·보관·연구·발표·전시하면서 미래사회 발전을 앞당기는 산실이 되고 있다. 은평구는 47만 인구가 사는 곳이다. 또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63개 학교에 학생 수만도 6만 8000명이 넘는다. 그런데도 박물관이 하나도 없다. 많은 학생들이 박물관을 견학하고 문화예술을 탐방하는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구청장으로서 늘 안타까웠다. 다행인 것은 은평구는 북한산 자락에 둘러싸인 뛰어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분지형 주거지로 오래 전부터 인류가 정착해왔기 때문에 보존가치가 뛰어난 석조유물과 토박이소장품 등이 상당수 있다. 또 2006년 은평뉴타운지구 구획사업 때 신라화엄 10찰인 ‘청담사터’ 발굴이나, 조선시대 분묘지로부터 고려청자·백자명기·청동촛대 등 1600점이 넘는 값진 보물이 출토되었기에 이 유물유적을 타지로 방출하거나 훼손하지 않고 제 본향에 전시하여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한다. 이에 따라 우리 구는 은평뉴타운 지구 안에 ‘은평자연환경박물관’ 건립을 계획했으며, 이를 계기로 틈만 나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러 박물관구조 벤치마킹과 전시물의 구체적 범위를 가늠하고 있다. 박물관의 테마는 ‘오감을 통한 체험학습’, ‘전시를 통한 교육과 자기학습’, ‘연령과 성별에 제한없는 평생교육의 공간’으로 정했다. 이를 위해 유물관·생물표본관·생태지도·도시생태계 변화·지구온난화 등을 입체적으로 체험하는 디오라마 등을 설치하고, 박물관의 대표선수가 될 미술전시관도 구상하고 있다.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문화도시를 표방하며 도시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그 도시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하나가 포인트가 되어 이름을 날린 경우가 많다. 북한산 품안에 있는 은평뉴타운은 21세기 생태도시로서 훌륭한 조건을 갖추었다. 안락한 주거환경과 자연환경이 그것이다. 여기에 박물관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도시의 품격은 바로 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고장에 훌륭한 박물관이 개관되어 인재를 키우는 산실이 되고, 관광자원이 되어 너나없이 우리 은평구를 찾아와 장사진을 이루게 될 그날을 기다려본다. 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
  • 조선 장례풍속 유물 8000점 전시

    서울역사박물관은 4일부터 다음달 13일까지 조선시대 한양(서울) 사람들의 장례 풍속을 보여주는 ‘은평 발굴, 그 특별한 이야기’ 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회는 은평뉴타운 조성 과정에서 나온 유물 8000여점으로 마련됐다. 전시회는 총 5개 마당으로 ▲첫째 마당(옛 은평을 향하다)에선 은평의 역사와 무덤이 많은 이유를 알아보고, ▲둘째 마당(옛 서울사람을 만나다)은 이말산에 남아 있는 비석으로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살펴본다. 사람 뼈를 통해 과거 서울 사람들이 앓았던 질병도 추적해 본다. ▲셋째 마당(예법과 풍습을 돌아보다)은 한 서울 사람의 죽음에서 매장까지 과정을 추적하며, 발굴된 유물을 통해 조선시대 장례를 알아본다. ▲넷째 마당(발굴현장을 찾다)은 발굴 성과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유물과 모형이 전시된다. ▲다섯째 마당은 무덤 이외에 절터와 가마터 등의 유적이 전시된다. 한강문화재연구원과 중앙문화재연구원은 2005년부터 지난 7월까지 은평뉴타운 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시대~근대 무덤 5000기와 통일신라시대 가마터 등을 발굴했다. 분청사기어문매병, 백자명기세트, 유리제 구슬 등 유물 총 8000여점이 출토됐다. 북한산 서쪽 자락에 있는 은평뉴타운 지역은 조선시대 개경에서 한양으로 들어서는 경계이자 도성과 서북지방을 잇는 서북대로의 출발점이다. 전시회 개막식은 3일 오후 3시 개최되며 일반관람은 4일부터 시작된다.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오후 9시, 주말 오전 10~오후 6시. 관람료는 19~64세 700원, 그 외에는 무료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도시와 산] (31) 대전 식장산

    [도시와 산] (31) 대전 식장산

    백제의 한 장군이 이 산에 군량미를 쌓아 뒀다고 한다. 신라와 자주 전쟁을 치렀고, 국경을 이뤘던 곳이었으니 당연히 그럴 만했다. 백제로서는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조선 중종 때 도술가인 전우치가 3년간 먹고도 남을 만한 보물을 이 산에 묻어 놓아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식장산은 이름만큼이나 유난히 ‘밥’과 관련 있는 역사와 전설이 많다. 대전의 식장산(食藏山·해발 598m)은 이렇게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자락이 넓고 물이 좋아서 옛날부터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땅이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식이 들어간 산 이름도 이곳이 유일하다는 얘기도 있다. ●밥의 역사와 전설이 배인 풍요로운 산 이런 전설도 내려온다. 옛날옛적에 효성이 지극한 어느 부부가 이 산 밑에 살았다. 가난한 부부에게는 늙은 어머니와 아들 하나가 있었다. 철없는 아들은 할머니의 밥을 자주 빼앗아 먹었다. 부부는 고심 끝에 아들을 버리기로 했다. 산에 올라 땅을 파다 보니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먹을 것이 나오는 밥그릇이 나왔다. 이 밥그릇 덕에 풍족하게 살았다. 부부는 늙은 어머니가 숨지자 욕심을 버리고 그릇을 다시 산에 묻었다. 이 때문에 ‘식기산’이라고도 불렸으나 식장산에 묻혀 사라졌다. 식장산은 대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보문산과 계족산도 한밭벌을 빙 둘러싸고 있지만 모두 500m가 안 되는 산이다. 식장산은 험하지 않지만 넓은 숲과 뛰어난 생태계로 대전의 허파 노릇을 톡톡히 한다. 대전시는 1996년 식장산의 세천유원지 일대를 ‘자연생태보존림’으로 지정했다. 시 조사로는 이 일대에 224종의 식물과 노루, 살쾡이, 너구리, 박쥐 등 100종의 포유류가 살고 있다. 100여종의 새와 파충류, 양서류 등도 서식하고 있다. ●물 많은 음산… 평탄하고 넓은 산자락 생태계의 중심지 세천유원지 초입에 들어서면 물막이 댐이 맞이한다. 1934년 계곡을 막아 만든 것으로 폭 100m 길이 250m 크기의 저수지가 형성돼 있다. 1980년 말 대청댐을 막아 대청호 물을 수돗물로 쓰기 전까지 대전 시민의 식수원이었다. 지금은 흘러내려 온 계곡물을 가둬두고 있지만 대전시내를 가로지르는 대전천의 발원지다. 식장산을 자주 찾는다는 등산객 이상준(56·대전 둔산동)씨는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산이다.”면서 “7부 능선에서도 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저수지를 따라 등산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예전에는 좁은 산길이었다. 길은 폭 2m 가까운 임도가 닦여져 있고, 통나무길이나 돌길로 꾸며져 있다. 길이 평탄하다. 산책을 나온 기분마저 든다. 길옆으로 계곡 자락이 넓게 펼쳐진다. 군량미를 충분히 숨길 정도로 품이 넓다. 평원 위에 펼쳐진 밀림 같다. 그 자락에 조그만 바위들이 쌀밥에 콩 박히듯 박혀 있다. 숲은 상수리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팽나무 등 활엽수로 가득했다. 침엽수는 거의 없다. 흔한 소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온 산이 단풍에 물든 듯했고, 길에도 낙엽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길 따라 계곡물·바람·새 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 3㎞ 가까이 지나자 오르막이 좀 심해진다. 약간 숨이 찬다. 초입부터 이곳까지 벤치가 만들어져 쉬기에 좋다. 1㎞쯤 더 가 독수리봉에 올랐다. ‘해발 586m’라는 팻말이 서 있다. 정상과 별 차이가 없다. 서쪽에 서대산, 동남쪽에 속리산이 보인다. 권진수(58·대전 대동)씨는 “날씨가 좋으면 경북 상주에 있는 구병산까지 보인다.”면서 “숲이 우거져 햇빛 한번 안 쬐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산이다.”라고 설명한다. 등산로가 대전방향인 동쪽으로 모두 나 있다. 고향이어서 자주 찾는다는 60대 남자는 “음산이다.”고 말한다. 여자 등산객이 유난히 많다. 반대편 충북 옥천쪽 능선은 절벽이다. 절벽으로는 소나무 숲이 들어차 있다. 산불에 타 거무스레했다. ●긴 세월 거친 사찰도 여럿 그 절벽 중간에 구절사가 붙어 있다. 1393년 조선 태조 2년에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대웅전은 중건돼 있었고, 칠성각과 산신각이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지어져 있다. 산신각에 젊은 남자가 앉아서 먼 산을 한없이 바라본다. 병을 앓아 이 절에 들어왔다는 60대 남자는 “예전에는 비구니들만 있었는데 도둑들이 (불상 등을 노리고) 자주 들어와 2005년인가 주지 스님이 비구로 바뀌었다.”고 쓸쓸히 전한다. 886년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고산사’도 있다. 마곡사의 말사로 대전시유형문화재 10호로 지정돼 있다. 대웅전 중앙과 왼쪽 불상은 토불(土佛), 오른쪽 것은 석불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웅전을 보수할 때 상량문에서 ‘법장사’라는 옛 이름이 발견되기도 했다. 식장산에는 개심사와 식장사도 있으나 고산사만큼 역사가 길지 않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밤이면 새옷입은 식장산 대전 최고의 야경 연인들은 夜~好~ 식장산은 밤에도 즐길 수 있는 산이다. 대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정상 부근 전망대다. 낮의 대전시내를 최고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연인들 사이에 ‘데이트 명소’로 소문이 나 있다. 길은 세천유원지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포장이 된 산길을 타고 차로 10분쯤 가면 이곳에 다다른다. 길이가 4㎞ 정도밖에 안 되지만 도로가 워낙 구불구불하게 나 있어 마주 오는 차를 피하다 보면 늦어진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전시내는 발끝에서 한없이 먼 아래 누워 있다. 대전시내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보문산 전망대와 딴판이다. 연인과 함께 벤치에 앉아 시내를 감상하던 최근원(25)씨는 “대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고 특히 야경이 멋져 자주 온다.”면서 “이곳에 오면 가슴이 탁 트인다.”고 말했다. 그는 “외지인들이 이곳에 와 대전을 보고는 도시가 꼭 별처럼 생겼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식장산 전망대에서는 큰 밭(한밭·大田)이 빙 둘러친 산과 계곡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듯 보인다. 산 아래 별 모양으로 깊숙이 내려앉았다. 오른쪽에 푸른 대청호가 보이고, 계족산이 도시와 호반 사이에 둘러쳐져 있다. 왼쪽에는 보문산이 펼쳐져 있다. 먼 북쪽 산이 계룡산 자락이다. 주말이면 패러글라이딩 애호가, 타는 사람, 사진작가 등으로 붐빈다. 전망대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50대 남자는 “주말에는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라면서 “‘오래전부터 찍어온 사진을 시간대별로 펼쳐보면 대전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보인다.’고 말하는 시민도 있다.”고 전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에어스타 애비뉴’ 매출도 스타급

    ‘에어스타 애비뉴’ 매출도 스타급

    인천공항 면세점 매출이 쑥쑥 늘고 있다.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넘기면서 두바이 공항·런던 히드로 공항과 함께 상업시설 매출 1조원 클럽에 들어갔다. 올해 매출도 10% 이상 신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공항 매출액은 2004년 6500억원에서 2005년 7500억원, 2006년 8500억원, 2007년 9352억원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1조 339억원으로 1조원대를 넘어섰다. 이용객 1인당 매출액도 2007년 6만 888원에서 지난해에는 7만 157원으로 늘어났다. 런던(3만 9641원), 홍콩(2만 760원), 싱가포르(4만 6392원) 등 주요 공항 면세점의 1인당 매출액보다 2~3배 많다. 인천공항의 국제선 여객수는 연간 2956만 3380명. 이용객은 두바이 공항(3659만 2307명)과 런던 히드로 공항(6134만 5549명)보다 적다. 그런데도 많은 매출을 기록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 국민들이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공항 면세점을 많이 이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독 면세점 쇼핑을 즐기는 내국인들의 영향력 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실적이다. 전문가들은 인천공항 매출 증가 일등공신으로 통합 브랜드 도입을 꼽는다. 인천공항에는 롯데·신라·AK·한국관광공사 면세점이 입점해 있다. 4개 업체는 지난해 6월 공동 브랜드 ‘에어스타 애비뉴’를 도입했다. 세계에서 유일한 공항 면세점 브랜드다. 공동 마케팅과 공동 편의시설 등을 제공하며 4개 사업자가 경쟁하는 체제에서 상생하는 체제로 체질을 바꾼 셈이다. 자연스럽게 에어스타 애비뉴가 탄생한 뒤 면세점 편의시설이 확충됐다. 출국객과 환승객을 고려해 쇼핑 동선을 새롭게 짜는 한편 중간중간에 휴식공간과 문화공간을 배치한 식이다. 인천공항에는 에어스타 애비뉴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에어스타 스퀘어가 있다. 70개 매장, 400개 브랜드를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는 원스톱 쇼핑공간으로 화장품·향수·부티크·패션·주류·담배 등을 한 자리에서 고를 수 있게 했다. 여객터미널 4층에는 에어스타 테라스가 있다. 북 카페와 무료 인터넷 라운지, 디자인 갤러리 등 즐길거리를 배치했다. 의자 대부분을 눕거나 기댈 수 있는 릴렉스 의자로 배치했고, 놀이방과 수유실을 갖췄다. 지하 1층 스파온에어에는 사우나 시설을 갖췄다. 타이인이 제공하는 타이식 스파와 수면실·미팅룸·스낵바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네이버 스퀘어는 여객터미널에서 무료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시설. 공항의 주요 지역과 대기구역에 위피 서비스를 운영, 무선 인터넷이 가능토록 했다. 밀레니엄 홀은 국립극장·시립교향악단 등과 함께 공연을 펼치거나 도자기 등 전통문화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면세점 수익이 늘면서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7년 동안 공항이용료를 동결할 수 있었다. 항공기 착륙료 등을 깎아 항공사 원가절감에도 도움을 줬다. 결국 공항 이용객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다시 면세점 매출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황산벌 전투·기마군 행진… 내년 세계 大백제전 93개 프로그램 확정

    ‘황산벌 전투 재현, 백제탈 및 기마군단 퍼레이드’ 내년 9월18일부터 10월17일까지 한달간 백제의 고도 충남 공주·부여에서 열리는 ‘세계 대(大)백제전’ 추진계획이 확정됐다. 세계대백제전조직위원회는 29일 ‘700년 대백제의 꿈’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축제의 프로그램이 조직위 주관 21개, 공주시 주관 35개, 부여군 주관 37개 등 모두 93개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 등 8만여명이 백제탈을 쓰고 걷는 ‘백제탈 퍼레이드’, 백제의 역사와 번영을 표현한 ‘수상공연’이 포함돼 있다. ‘탈 인형극 공연’, ‘탈그리기 체험’ 등 각종 백제탈 관련 이벤트가 이어진다. ‘대백제 기마군단 퍼레이드’도 있다. 말 185필과 150명의 병사가 행진, 웅장함을 한껏 뽐내게 된다. 백제군 5000명이 신라군 5만명과 실감 나는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 ‘황산벌 전투’는 축제의 백미다. 공주시 금강 고마나루에서 백제시대 영웅 설화를 판타지로 각색한 ‘백제열전’, 부여 백마강변에서 백제금동대향로 등 백제 문화유산을 이미지화한 수상 미디어퍼포먼스 ‘낙화암의 달빛’이 공연된다. 디지털 기술로 복원한 ‘백제유물유적 복원전’, 20여개 세계역사도시연맹 회원국의 역사·문화를 보여주는 ‘세계역사도시 전시관’, 국내외 문화재급 백제유물 150여점을 전시하는 ‘백제유물 특별기획전’도 열린다. 조직위는 대백제전에 해외 20개국, 연인원 260만명의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석원 대백제전추진위원장은 “백제인의 숨결을 한자리에서 모두 느낄 수 있는 축제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대마도는 한국 땅’ 日지도 첫 공개

    대마도(對馬島·일본명 쓰시마)가 한국 땅으로 표기된 옛 지도 2점이 처음으로 공개돼 관심을 끌고 있다. 부산외국어대 일본어학부 김문길 교수는 28일 경남 마산문화원에서 열린 ‘대마도 고지도 전시회’에서 대마도가 한국 땅으로 표기된 ‘대마여지도(對馬與地道)’와 사본을 전시했다. 대마여지도는 1756년 6월 일본 지리학자 모리고안(森幸安)이 에도시대 막부의 명을 받아 제작한 뒤 공인을 받은 것으로 현재 원본이 교토 기타노덴만구(北野天滿宮)에 소장돼 있는 것을 김 교수가 찾아냈다. 2003년 출간된 모리고안 지도에 수록된 이 지도에는 ‘부시준조선국지지례칙부향군령지470리(釜示准朝鮮國地之例則府鄕郡令之470里·대마도의 부·향·군 모든 법칙은 조선국 부산에 준한 것이다. 거리는 470리다.)’라고 적혀 있다. 김 교수는 “지난여름 일본에서 이 지도를 찾아냈는데 사본으로만 볼 수 있어 아쉬웠지만 일본의 지리학자가 공식적으로 직접 표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1834년에 제작된 청구도 동래부 기장현 지도는 현재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데 김 교수가 직접 확인해 사본으로 햇빛을 보게 됐다. 이 지도에는 ‘본예신라수로470리재동래부지동남해중지실성왕7년무신왜치영어차도(本隸新羅水路四百七十里在東萊府之東南海中至實聖王7年戊申倭置營於此島)’라고 적혀 있다. 이는 ‘대마도는 원래 신라 땅에 예속되어 있고, 실성왕 7년까지 동래부에 속한 섬으로 470리 거리 동남쪽 바다에 있다. 무신년에 왜(일본인)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이 지도는 동래부 기장현을 중심으로 그린 것으로 대마도가 지금의 부산 동래부 기장현에 예속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역사를 되짚어 각종 자료와 고증을 통해 대마도가 한국 땅이고 그 땅에 대한 정확한 역사인식을 후세에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대마도의 실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최치원 ‘계원필경집’ 첫 완역

    최치원 ‘계원필경집’ 첫 완역

    현존하는 가장 오랜 문집인 고운 최치원(857~?)의 ‘계원필경집’이 처음으로 완역됐다. 한국고전번역원(원장 박석무)은 ‘계원필경집’의 번역본 2권 가운데 1권을 먼저 출간하고, 내년 중 2권으로 완간할 계획이라고 27일 밝혔다. ‘계원필경집’은 신라 최고의 문장가인 최치원이 중국 당나라에서 활동할 때 지은 시문 가운데 시 50수, 문장 320편을 직접 골라 20권으로 엮어 헌강왕에게 바친 시문집이다. ‘계원(桂苑)’은 문장가들이 모인 곳을 말하며, ‘필경(筆耕)’은 군막에 거주하며 문필로 먹고살았다고 붙인 이름이다. ‘계원필경집’은 당나라 말기 중국과 신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귀중한 문헌임에도 방대한 내용과 다양한 전고, 까다롭고 난해한 문장 등으로 인해 완역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번역된 최치원의 글은 1970~80년대 ‘국역 고운선생 문집’ ‘한글번역 고운 최치원 선생 문집’ 등이 있으나 본격적인 역주서로 보기엔 부족한 면이 많다. 이번에 간행된 ‘계원필경집’ 번역본은 한국고전번역원이 전문성과 역량을 바탕으로 이뤄낸 성과물이다. 고전번역 분야의 권위자로 손꼽히는 이상현 연구위원이 충실하게 번역하고, 상세한 전고 주석을 달았다. 이 위원은 최치원이 귀국 후 지은 저작을 후손들이 모아 간행한 ‘고운집’도 이번에 함께 완역했다. 번역원은 ‘계원필경집’과 ‘고운집’ 완역을 기념해 31일 서강대 다산관에서 ‘고운 최치원의 저술과 사유’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신라사학회(회장 김창겸)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 대회에는 중국내 최치원 연구의 석학으로 꼽히는 당인핑 난징사범대 교수와 일본내 한국고대사 연구자로 유명한 하마다 고사쿠 규슈대 교수가 참석한다. 당인핑 교수는 2007년 ‘계원필경집교주’를 출간해 화제를 모았다. 한국 학자로는 장일규 국민대 교수, 김복순 동국대 교수, 김영복 연세대 교수가 ‘최치원의 삶, 사상, 문학’에 대해 논의한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신라 아사달·아사녀 조형물로 ‘환생’

    신라 아사달·아사녀 조형물로 ‘환생’

    석가탑과 다보탑을 만든 신라시대 명장 아사달과 아내 아사녀가 1200년 만에 조형물로 재탄생했다. 경북 경주시는 27일 불국사 관문인 구정광장에서 백상승 시장을 비롯해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 지역 기관·단체장,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아사달·아사녀’의 설화를 표현한 조형물 준공식을 가졌다. 이 조형물은 분수를 포함한 연못 형태에 연꽃 봉오리 모양을 배치하고 이 위에 아사달·아사녀 설화를 표현했다. 경주의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 조각의 형태로 재해석한 이 조형물은 화강석과 스테인리스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폭 10.9m, 높이 8m 규모다. 경주시 관계자는 “‘영원’을 주제로 이번에 설치된 조형물은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와 ‘아사달·아사녀’ 설화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함안 성산산성서 신라목간 31점 추가 출토

    경남 함안에 위치한 성산산성(사적 67호)은 국내 최대의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무판) 출토 지역이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1991년부터 학술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이 산성에서는 최근까지 총 246점의 목간이 나왔다. 국내에서 전체 발굴된 목간 500여점의 절반에 달하는 양이다. 국립가야문화연구소는 27일 함안 성산산성 발굴조사현장에서 목간 31점과 자연유물 등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굴된 목간들은 6세기 중엽 것으로, 앞서 출토된 것들과 마찬가지로 신라가 이 산성을 축조할 때 여러 지방에서 보내온 식량·물품에 붙어있던 꼬리표였다. 여기에는 ‘仇利伐(구리벌)’, ‘及伐城(급벌성)’ 등의 지명과 ‘稗(패)’, ‘稗麥(패맥)’ 등 피와 보리 같은 곡물명이 대부분 기록돼 있다. 또 이번에는 네 면 모두에 글씨를 쓴 목간이 처음으로 출토됐다. 거기다 부엽공법(敷葉工法·나뭇잎·가지 등을 깔아 기초를 다지는 토목공법) 구간에서 목간·토기 등과 더불어 동물뼈, 조가비, 씨앗 등 자연유물 600여점도 함께 발견됐다. 연구소 이성준 학예연구사는 “보통 다른 지역에서는 일부 저수지 등에서 퇴적된 목간이 우연히 발굴되는 정도지만, 성산산성은 부엽공법 구간에 목간을 재료로 넣었기 때문에 출토량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최동호 오솔길 산책] 국립중앙박물관 예찬

    [최동호 오솔길 산책] 국립중앙박물관 예찬

    개관 100주년을 맞이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람은 나의 오랜 취미 중 하나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가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박물관에 갔다든가 화가 모딜리아니가 자신의 이상적 여성의 모델을 이집트 고분에서 발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외국 여행지에서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다. 이번 개관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 역사의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요 미래의 문화를 창조하는 영감의 산실로 탄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뿌리를 순종 황제가 1909년 설립한 ‘제실박물관’에서 찾았다는 것도 박물관의 역사적 정통성을 찾았다는 점에서 기념비적 발상이다. 박물관을 죽어 있는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곳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유구한 영속성을 생각하지 않는 단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대표적인 명품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소장지인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아직도 관람객이 붐비고 있었다. 수많은 국보적 명품들이 눈길을 끌었지만 진본을 볼 수 있는 천마총의 ‘천마도’ 앞에 서자 흥분과 감회가 교차하여 몇 번이나 되풀이해 보았다. 첨단장비에 의해 투시된 ‘천마도’를 종전과 달리 새롭게 볼 수 있어 더욱 반가웠다. 박물관이 이제 국민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느껴져 흐뭇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1980년대 어느 날 당시 경복궁 자리에 있던 중앙박물관에 갔더니 일본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말소리가 점령군처럼 복도에 가득 차 놀란 적이 있었는데 그 사이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이다. 올해 초 발굴된 미륵사지 ‘석탑사리구’나 미국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수월관음도’의 우아한 보살상은 물론 이중섭의 동자 그림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청자상감포도무늬동채주자’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중섭 그림의 원천이 우리의 청자상감의 그림에 있었다는 점을 지나쳐 가기 어려웠다. 1966년 석가탑 해체복원 과정에서 나왔던 ‘무구정광다라니경’도 관심을 끌었는데 여기서 한국적 서체의 고대적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한국 고유의 서체는 압도적으로 중국필법의 영향을 받았고 이로 인해 그 독자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복천오부인 86세 초상’도 선이나 색감 그리고 표정이 생동감을 주었다. 250여년 전 한국 여성의 사실적인 초상화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유명한 청자나 금으로 만든 왕관 못지않게 이렇게 소박하면서도 삶이 묻어나는 유물들이 우리들의 영감을 실제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20세기 한국은 식민지시대를 경험했고 그런 까닭에 전통과 과거를 부정하고 밖에서 역사적 난관을 극복하는 동력을 찾고자 했다. 역사의 단절을 극단적으로 경험했던 것이다. 21세기에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그리고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한국 고유의 어떤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한국은 언제나 남을 뒤쫓는 문화적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선인들의 창조적 지혜를 배워 여기에 첨단 기술을 응용하는 능력을 발휘할 때 한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선진국이 될 것이다. 최근 외국 대사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반가사유상’을 관람하는 장면을 지면에서 보았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신라의 ‘반가사유상’은 분명히 다른 예술적 형상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거기서 오늘날 한국의 디지털적 탈근대 첨단산업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서구의 근대와는 다른 뿌리 깊은 문화적 전통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을 것이다. 박물관에 가 보라. 거기에 있는 과거의 유산이 죽어서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찬란한 문화적 명품이 여러분을 맞이할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오늘은 물론 내일의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울 영감의 원천을 발견하는 기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 [도시와 산] 통영 미륵산

    [도시와 산] 통영 미륵산

    미륵산(彌勒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은 경남 통영시, 경북 울릉군, 전북 익산시, 강원도 원주시 등 전국에 4곳이 있다. 통영 미륵산(461m)은 통영시 육지 쪽과 2개의 다리로 연결된 산양읍 미륵도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높지 않은 산임에도 산림청이 선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당당히 이름이 올라 있다. 남해안 중앙에 있어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비경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탁월한 조망이 빼어나다. 정상에 올라보면 통영항 일대를 왜 동양의 나폴리로 부르고, 미륵산이 명산의 반열에 들게 됐는지 그 이유를 보고 느낄 수 있다. 케이블카가 설치돼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미륵산을 찾는 관광객이 사계절 줄을 잇고 있다. ●명산 조건 고루 갖춘 산 1억 2000여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화산 폭발로 이뤄진 산으로 알려진 미륵산은 울창한 산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기암괴석, 오래된 절 등 명산의 요건도 고루 갖췄다. 미래의 부처인 미륵존불이 내려오는 산이라고 해서 미륵산으로 불린다. 산 북쪽에 용화사라는 오래된 절이 있어 용화산이라고도 불린다.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으로 용화사를 비롯해 고려 태조 때 도솔선사가 창건한 도솔암, 조선 영조 때 창건된 관음암, 고승 효봉(1888~1966년)이 머물렀던 효봉 문중의 발상지인 미래사 등의 사찰이 있다. 용화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은점 선사가 지금의 관음전 자리에 정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623년 동안 계승되다 1260년에 산사태가 나면서 무너져 3년뒤 미륵산 제3봉 아래로 절을 옮겨 짓고 천택사라 불렀다. 천택사도 1628년 화재로 폐허가 돼 1724년 벽담 선사가 현재의 용화사 자리에 천택사의 보광전 기둥을 비롯해 남은 건물을 옮겨 새로 중창했다. 당시 벽담 선사는 천택사 중창을 앞두고 미륵산 봉우리에서 7일 동안 밤낮 기도를 올리던 중에 한 신인(神人)으로부터 “이 산은 미래세계에 미륵불이 내려와 용화회상이 될 도량이니 이곳에 절을 세워 용화사라고 부르면 만세기에 전하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용화사는 조선시대 수군막사로도 이용됐다. 미래사는 효봉 스님의 상좌였던 구산 스님이 석두·효봉 두 큰 스님의 안거를 위해 1954년 세웠다. 주변의 울창한 편백숲이 산사 주변의 호젓한 분위기를 더한다. 미륵산 정상 부근 제2봉에는 고려 말~조선 초에 설치된 것으로 전해지는 봉수대 터가 있다. 봉수대 터 주변에서는 조선시대 기왓조각과 통일신라시대 도장무늬토기 조각도 출토된다. ●날마다 수천명 등정 미륵산은 어느 산행길에서 출발하더라도 1시간 남짓이면 정상에 닿는다. 케이블카가 설치된 뒤에도 걸어서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객들은 여전하다. 미래사 쪽에서 오르는 산길이 정상까지 30여분으로 가장 빠르다. 용화사와 미래사를 잇는 산길은 통영시민들이 즐겨 이용하는 길이다. 미륵산 정상은 바위로 이뤄져 있다. 케이블카가 설치된 뒤 하루 수천명씩 몰리는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미륵산 정상에 목재로 데크 시설을 하는 바람에 산 정상의 자연스런 모습이 가려졌다. 정상에 이르면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한려해상 국립공원 다도해의 그림 같은 풍광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해질 무렵 낙조로 붉게 물든 서쪽 바다 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의 자태가 눈길을 붙든다. 정상에서 직선거리로 90㎞쯤 떨어져 있는 대마도는 일년에 30여일, 105㎞ 떨어진 지리산 천왕봉은 일년에 절반쯤은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예술·문학 영감의 원천 정지용 시인은 한국전쟁 직전에 통영을 둘러보고 ‘통영1’에서 ‘통영6’까지 6편의 기행문을 남겼다. 그는 미륵산 정상에서 통영과 바다 풍경을 보고 쓴 기행문 ‘통영5’에서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 우리가 미륵도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라고 예찬했다. 통영시는 정지용 시인의 통영예찬을 기리는 문학비를 오는 12월 미륵산 정상에 세운다. 말과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는 시인조차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하는 한려수도의 천연미와 천혜의 자연 전망대인 미륵산은 통영을 예향으로 만든 자양분이 됐을 것이라고 문인들은 말한다. 극작가 유치진과 시인 유치환 형제를 비롯해 시인 김춘수, 김상옥, 작곡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화가 전혁림 등 통영 출신의 걸출한 문학·예술인이 미륵산에서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굽어보며 문학·예술적 영감을 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윤이상은 통영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 자주 찾았던 미륵산과 용화사에서 보고 들었던 숲과 바다 갈매기, 스님들의 염불소리 등이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됐다면서 생전에 미륵산에 애착을 보였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그의 바람대로 한려수도가 내려다보이는 미륵산 양지바른 자락에서 영원히 잠들어 있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케이블카 타고 꿈의 하늘로 경남 통영 미륵산의 케이블카가 인기다. 정상까지 빠르고 편하게 이동시켜 주기 때문이다. 아래 하부역에서 정상 턱밑인 상부역까지 10여분 만에 도착한다. 특히 통영항과 한려수도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모습도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다. 통영관광개발공사에서 운영하는 이 케이블카는 하부역에서 상부역 사이 선로길이가 1975m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2가닥으로 된 선로가 자동으로 돌아가는 방식이다. 선로에 달린 8인승 곤돌라 47대가 초속 6m 속도로 상·하부역을 오르내린다. 시간당 1000여명을 수송한다. 미륵산 케이블카 설치사업은 2002년 12월 사업비 173억원으로 착공됐으나 환경단체 등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4월18일 개통됐다. 통영관광개발공사측은 미륵산 케이블카는 ‘그린 케이블카’에 역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환경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하부역 사이에 1개의 지주만을 설치했고 많은 사람이 지나다녀 환경 훼손 우려가 있는 구간에는 나무데크로 길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미륵산 케이블카는 누적 이용객이 지난 3일 100만명을 넘어 통영관광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지난여름 휴가철에는 평일 5000명, 휴일에는 9000여명이 몰렸다. 2~3시간씩 기다려야 탈 수 있었다. 8월1일에는 하루 이용객 최고인 1만 96명을 기록했다. 요즘에도 하루 평균 2000여명에 이른다. 통영관광개발공사는 전문기관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미륵산 케이블카 관광객 한 사람이 통영 지역에서 5만~10만원을 쓰는 것으로 계산할 때 케이블카에 따른 관광수익은 700억~8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통영시 1년 세수규모인 1100억원의 70%에 이르는 금액이다. 신경철 통영관광개발공사 사장은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미륵산 정상에서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케이블카 안전 운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팔관회는 불교의례? 그 왜곡과 진실 찾기

    팔관회는 불교의례? 그 왜곡과 진실 찾기

    “고려시대는 조선왕조에 의해 배척되고 왜곡된 상처와 흔적을 안고 있다. 그 상처가 지금까지 유산으로 남아있고, 흔적은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상처를 기억하고 흔적을 규명해 고려시대의 진실을 밝히고 복원하는 것이 고려인의 후예라면 피할 수 없는 흥미로운 책무이다.” ●조선 성리학적 사대주의의 오류 한흥섭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이런 ‘책무’를 고대부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역사 속에 녹아든 음악사상에서 찾는 것으로 실현한다. ‘한국의 음악사상’, ‘우리 음악의 멋 풍류도’, ‘한국 고대 음악사상’ 등을 집필한 한 교수는 신작 ‘고려시대 음악사상’(소명출판 펴냄)에서 고려시대의 문화사 복원의 하나로 국가제전인 ‘팔관회’와 궁중음악 ‘아악’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한 교수는 “고려에는 드높은 위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음악적 유산이 있었지만 조선왕조에 들어와 철저히 배제되고 왜곡됐으며, 이런 관점이 무비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왜곡의 바탕에는 너무나 견고한 조선 성리학자들의 사대주의적 시각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신라에서 이어져 고려왕실의 공식행사 중 하나가 된 팔관회로, 고려 문화의 결집체이자 상징이었다. 신라시대에는 위령제적 성격이 짙은 불교의례였지만 고려시대에는 천령과 명산대천 등에 제사하고 복을 비는 토속의례의 성격이 강해진다. 팔관회의 핵심 의례인 ‘백희가무’에는 국선, 선가, 선랑, 화랑 등 춤추고 노래하며 토속신령에 기원하는 가무단이 행사를 이끈 것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또 왕의 사찰방문과 환궁 행렬이 이어지면서 축제적 성격도 띤다. 결국 팔관회는 유교적 의례와 신선이나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도교적 취향, 사찰 방문이라는 불교적 행사, 백희가무에서 드러나는 토속신에 대한 신앙 등이 총체적으로 연출된 종합행사다. 그러나 팔관회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려 전통을 인정하지 않는 부류들과 배불정책에 따라 철폐된다. 팔관회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 없이 단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두고 팔관회가 불교의례라고 단정짓는 것에 대해 저자는 “피상적인 시각에서 비롯한 오류에 불과하다.”면서 “팔관회의 본질적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는 작업은 고려문화의 실제에 접근하기 위해 필수적이고 중대한 절차”라고 강조한다. ‘궁중음악의 총칭’으로 정의되는 아악에 대해서도 저자는 문제를 제기한다. 아악이 고려 예종 11년(1116년)에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왔다는 한국국악계의 지배학설도 시대착오에 불과하다는 것. ‘고려사’를 통해 국가제사를 진행하고 문물제도를 정비한 성종(982~997년) 때 이미 아악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성종은 원구에서 풍년을 기도하고, 태묘를 건축해 친히 제향을 치뤘다. ‘고려사’의 ‘예지’에 나온 의례절차를 보면 이들 의례에는 반드시 악()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성종 때에 이미 아악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아악은 삼국시대부터 존재 아악기의 구성을 따지면 아악이 삼국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중에서 연주되는 아악과 당악, 향악에는 각기 고유의 악기로 연주한다. 예컨대 생, 우, 훈, 편종, 편경 등 아악기는 철저히 아악에만 사용했다. ‘삼국사기’의 ‘악지’에는 고구려악을 소개하면서 생, 소, 지 등의 악기를 거론한다. 당나라 역사서인 ‘북사’에 백제의 아악기 우와 지가 소개돼 있고, 신라 눌지왕 때 만든 ‘우식악’에는 훈과 지 등의 악기 연주가 묘사돼 있다. 당시 일반인들은 악기를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는 점, 또 외국 문헌에는 보통 한 국가의 궁중에서 사용하는 것들이 전해진다는 점을 종합하면 이미 그 전에도 궁중음악인 아악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전에는 ‘현존하는 아악을 문묘제례악 한 곡 뿐’이라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도 엄연히 궁중음악인데, 이를 제외하는 오류도 범한다고 지적한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많은 부침을 겪은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은 음악사상 분야도 벗어날 수 없다. “고려시대 음악문화의 실상에 대한 논의나 상상력이 더욱 풍요롭고 다양해지기를 기대한다.”는 말에서 저자가 풍부한 자료를 근거로 들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해진다. 2만 6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남성이 움직여야 진정한 양성평등 이뤄”

    “남성이 움직여야 진정한 양성평등 이뤄”

    “여성들만 나선다면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루기 힘듭니다. 세상의 절반인 남성도 움직여야죠.” 아샤-로스 미기로(52) 유엔 사무부총장은 서울시 주최로 ‘제2회 메트로폴리스 여성네트워크 포럼’이 열리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22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여성지위 문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탄자니아 외무장관 출신으로 반기문 사무총장 다음으로 사무국 서열 2위인 미기로 부총장은 “현재 도시가 직면한 금융위기, 식량위기, 기후변화 등을 대처하는 데 양성평등의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되며, 사회발전이 골고루 이뤄지는 식으로 정책 형성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녀는 양성의 동등한 역할을 주문했다. 미기로 부총장은 “한국이나 탄자니아는 여성을 불평등하게 대하는 사회적 관행이 뿌리깊게 남아있다.”면서 “이를 근절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명료한 정책을 세우고 입법과정에서 여성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 중인 ‘여성친화도시’ 프로젝트를 예로 들며 “유엔의 양성평등 사업과도 연관성이 높아 다른 도시에도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기로 부총장은 유엔이 추진하는 양성평등 노력에 대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취임 이후 여성인 내가 부총장으로 임명된 것을 비롯해 유엔 여성 고위관료의 숫자가 40% 늘어났다.”면서 “반 총장은 여성들이 중요한 직책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에도 비교대상 109개국 중 61위에 머무는 한국의 여성권한척도를 높이기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남성과 여성이 사회 전반적으로 동등한 파트너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와 NGO 차원에서뿐 아니라 개별 가정 차원에서도 양성평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4개종교 화합의 순례길 열린다

    4개종교 화합의 순례길 열린다

    전북지역 4대 종교의 성지를 도보로 여행할 수 있는 순례길이 만들어진다. 전북도와 사단법인 한국순례문화연구원은 천주교·원불교·기독교·불교 등 4대 종교의 성지가 있는 전주∼완주∼익산을 잇는 180㎞의 ‘아름다운 순례길’을 조성키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산티아고 길’의 한국판이 생기는 셈이다. 이 길은 프랑스 남부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역의 산티아고 델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 구간으로 예수의 제자 야곱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걸었던 곳으로 알려지면서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순례자가 몰려드는 곳이 됐다. ●전주~완주~익산…한국판 ‘산티아고 길’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은 1845년 한국인 첫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가 머문 나바위 성지(익산시 망성면)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10여명의 순교자가 묻힌 천호성지(완주군 비봉면), 불교문화의 정수인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 호남 최초로 1893년 설립된 서문교회(전주시 다가동), 신라 말기에 창건된 송광사(완주군 소양면) 등으로 이어진다. 이 순례길은 성지와 함께 지역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코스로 포장도로가 아닌 산과 논두렁, 개천길, 골목길이 대부분이며 걸어서 최장 6박7일이 걸린다. 특히 자전거나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주로 평지에 조성할 계획이다. 이들 성지에서는 신부와 목사, 스님, 교무 등 각 종단이 깨달음을 전하는 ‘종교 교류의 장’도 마련하고 산티아고 길의 저렴한 숙소인 알베르게처럼 일부에서는 숙박도 할 수 있다. ●지역 역사문화 체험 기획…31일 선포식 4대 종단은 이달까지 ‘아름다운 순례길’을 정비, 오는 31일 종단 관계자들과 신도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주 경기전 앞에서 선포식을 할 예정이다. 한국순례문화연구원 김수곤 이사장은 “종단의 유산과 함께 지역 사회의 역사와 문화 자산을 보고 느끼는 길이 될 것”이라며 “4대 종교가 순례길을 통해 통합하듯 분열과 반목의 사회가 진정으로 하나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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