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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맹희 빈소, 범 삼성가 집결…이재용 그룹 대표로 조문 별다른 언급 없이 위로

    이맹희 빈소, 범 삼성가 집결…이재용 그룹 대표로 조문 별다른 언급 없이 위로

    이맹희 빈소, 범 삼성가 집결…이재용 그룹 대표로 조문 “별다른 언급 없어” 이맹희 빈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범삼성가 일원들이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17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가 인사들은 이맹희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 부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 여사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등도 함께했다. 이날 이 부회장의 조문은 병석에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대신한 그룹 대표 조문이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별다른 언급 없이 유족들을 위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CJ와 삼성그룹은 지난 2012년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회장이 동생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차명재산 7000여억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낸 뒤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건희 회장은 갈등이 깊어지자 “우리 집에서 쫓겨난 사람”이라며 공개적으로 형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어 이맹희 회장이 1, 2심에서 모두 패소한 뒤 “주위의 만류도 있고 소송을 이어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간 관계라고 생각한다”며 상고를 포기하기하면서 갈등이 잦아졌다. 이맹희 회장은 2012년 12월 폐암 2기 진단을 받은 뒤 치료를 받으며 투병생활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맹희 빈소, 범 삼성가 집결…이재용 부회장이 그룹 대표로 조문 “CJ+삼성 관계는?”

    이맹희 빈소, 범 삼성가 집결…이재용 부회장이 그룹 대표로 조문 “CJ+삼성 관계는?”

    이맹희 빈소, 범 삼성가 집결…이재용 부회장이 그룹 대표로 조문 “CJ+삼성 관계는?” 이맹희 빈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범삼성가 일원들이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17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가 인사들은 이맹희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 부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 여사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등도 함께했다. 이날 이 부회장의 조문은 병석에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대신한 그룹 대표 조문이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별다른 언급 없이 유족들을 위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CJ와 삼성그룹은 지난 2012년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회장이 동생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차명재산 7000여억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낸 뒤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건희 회장은 갈등이 깊어지자 “우리 집에서 쫓겨난 사람”이라며 공개적으로 형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어 이맹희 회장이 1, 2심에서 모두 패소한 뒤 “주위의 만류도 있고 소송을 이어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간 관계라고 생각한다”며 상고를 포기하기하면서 갈등이 잦아졌다. 이맹희 회장은 2012년 12월 폐암 2기 진단을 받은 뒤 치료를 받으며 투병생활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맹희 빈소, 빈소 찾은 삼성家

    이맹희 빈소, 빈소 찾은 삼성家

    ‘이맹희 빈소’ 故(고)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돼 지난 17일부터 조문이 시작됐다. 빈소에는 삼성가 대다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이맹희 빈소에 조문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건강상 이유로 이를 대신해 이맹희 빈소를 조문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같은 날 이맹희 빈소에는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리움 미술관장과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맹희 명예회장의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큰 누나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등이 이맹희 명예회장의 죽음을 애도하러 찾아왔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이맹희 빈소, 범 삼성가 집결…이재용 그룹 대표로 조문 “어떤 대화 나눴나”

    이맹희 빈소, 범 삼성가 집결…이재용 그룹 대표로 조문 “어떤 대화 나눴나”

    이맹희 빈소, 범 삼성가 집결…이재용 그룹 대표로 조문 “어떤 대화 나눴나” 이맹희 빈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범삼성가 일원들이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17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가 인사들은 이맹희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 부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 여사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등도 함께했다. 이날 이 부회장의 조문은 병석에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대신한 그룹 대표 조문이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별다른 언급 없이 유족들을 위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CJ와 삼성그룹은 지난 2012년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회장이 동생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차명재산 7000여억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낸 뒤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건희 회장은 갈등이 깊어지자 “우리 집에서 쫓겨난 사람”이라며 공개적으로 형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어 이맹희 회장이 1, 2심에서 모두 패소한 뒤 “주위의 만류도 있고 소송을 이어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간 관계라고 생각한다”며 상고를 포기하기하면서 갈등이 잦아졌다. 이맹희 회장은 2012년 12월 폐암 2기 진단을 받은 뒤 치료를 받으며 투병생활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침략 배경부터 일제 잔재까지…식민지배 다시보기

    침략 배경부터 일제 잔재까지…식민지배 다시보기

    광복 70년을 맞아 출판계에 관련 서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들 출판물은 근현대사의 그늘에 초점을 맞춰 일제 침략 배경과 조선의 무능, 그리고 여전히 후유증이 큰 일제 잔재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들춰 눈길을 끈다.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이덕일 지음, 만권당 펴냄)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 도발 등 주변국 역사왜곡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북아재단 동북아역사지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고조선과 한사군, 위만조선, 임나일본부, 독도 사료 등을 토대로 지도의 오류와 그에 얽힌 식민사관을 고발한다. 지도에 고구려와 한나라 국경선이 세로로 무 자르듯 뚝 잘려 있어 독도가 증발한 사실을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4세기를 나타낸 지도에 신라·백제가 빠진 사실도 밝혀냈다. 저자는 “식민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들이 대단히 치밀하게 의도적으로 이 같은 지도를 만들어냈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정벌’(이상각 지음, 유리창 펴냄)과 ‘근대조선과 일본’(조경달 지음, 열린책들 펴냄)은 일제 강점의 부당함과 조선의 나약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조선정벌’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하려는 야욕에 시동을 걸었던 1854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한국 근대사를 다뤘다. 한반도를 침탈한 일본의 불법성을 짚었지만 그보다는 조선이 왜 허무하게, 제대로 저항도 못한 채 무너졌는지에 비중을 뒀다. 그 이유는 무력하고 허약한 왕과 사대주의에 찌든 고위관리, 매국세력 등으로 집약된다. 저자는 “지금의 모습이 1854년 개항 이후 정한론과 동아시아 건설을 이야기하던 메이지 시대와 닮았다”며 “성찰하지 않고 대비하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경고한다. ‘근대 조선과 일본’은 “근대 조·일 관계사는 일본의 조선침략사”라는 전제 아래 개항부터 대한제국 멸망까지 반세기에 걸친 통한의 역사를 보여준다. 일본과 조선의 운명이 엇갈린 이유를 조명한 게 특징이다. 일본은 서구와 접촉하며 국민국가로 연착륙했지만 조선은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를 정치문화의 차이로 지목한다. 일본은 유교적 민본주의를 통치수단으로만 받아들인 반면 조선은 국가를 지배하는 원리적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유교적 민본주의를 토대로 한 새로운 국가 건설은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해방후 3년’(조한성 지음, 생각정원 펴냄)은 해방정국에서 민족 지도자 7인이 민족의 완전독립과 신국가 수립을 둘러싸고 벌인 최후의 결전을 담았다. 여운형, 박헌영, 송진우, 김일성,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이 주인공이다. 민중을 위한 민주주의, 민중을 위한 개혁을 주창했던 그들을 움직인 건 민족과 혁명, 권력이었다. 그들의 궤적 성찰을 통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오늘날의 지도자나 대중은 다시 한번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역사’를 꿈꾸고 실행해야 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별들이 쏟아진다… 당신과 나의 밤, 하늘 위로

    별들이 쏟아진다… 당신과 나의 밤, 하늘 위로

    폭염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지만 여름의 서슬은 여전히 시퍼렇다. 늦여름 피서를 고심하는 이들도 있을 터. 강원의 고원 지대를 찾는 건 어떨까. 피부에 각질처럼 달라붙은 더위를 쫓고 그 자리에 강원의 맑은 산소 알갱이들을 채워 넣을 수 있다. 38번 국도를 타고 가는 길. 고한에서 하이원 리조트를 지나 만항재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시립(侍立)한 길 끝에 단아한 절집이 산자락을 타고 앉아 있다. 정암사다. 양산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와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꼽힌다는 절집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진신사리를 모셔와 정암사를 세웠다고 한다. 절집의 자랑은 수마노탑(보물 제410호)이다. 높이 9m의 7층 모전석탑(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은 탑)으로 사찰 뒤쪽 높은 산비탈에 세워져 있다. 주 건조재료는 마노(瑪瑙)다. 석영질 보석의 일종으로, 일부에선 재앙을 예방해 준다고 믿는 보석이다. 자장율사가 탑을 쌓을 때 용왕의 도움으로 마노석을 옮겼다 해서 ‘수’(水)자를 붙여 수마노탑이라 부르게 됐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덕에 기도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새해나 입시철에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수마노탑까지는 계곡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맑은 계류가 흐르는 계곡은 그 자체가 천연기념물(제73호)이다. 냉수성 어류인 열목어가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암사 계곡은 경북 봉화의 백천계곡과 더불어 열목어 서식의 남방한계선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암사 위는 만항재다. 때는 한낮. 햇살은 따갑지만 고원지대 특유의 상큼하고 청량한 공기가 폐부를 씻어 낸다. 고갯마루 여기저기엔 들꽃들의 향연이 한창이다. 산비탈마다 둥근 이질풀과 산솜방망이, 노루오줌, 참당귀, 구릿대, 말나리, 오이풀꽃 등이 활짝 피었다. 밤하늘의 별이 이렇게 많을까. 횡재를 만난 벌과 나비들이 꿀을 탐하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그야말로 ‘산상 정원’이다. 꽃이라고 모두 화려하지는 않을 터. 우리 들꽃이 그렇다. 한지 위로 번지는 먹물처럼 은은하고 소박하다. 만항재는 태백과 정선, 영월이 경계를 맞댄 고개다. 우리나라 고갯길에 놓인 도로 가운데 가장 높다. 해발 1330m를 지난다. 해안기후와 고산기후가 병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가 피고, 남방계와 북방계 꽃들의 경계가 이곳에서 그어진다. 여름꽃들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 투구꽃, 물매화, 수리취 등이 다투어 핀다. 만항재 맞은편의 함백산, 두문동재, 분주령 등도 소문난 들꽃 군락지다. 특히 분주령을 거쳐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까지 가는 길은 트레킹 코스로 인기가 높다. 한데 오가는 길이 등산로 수준이어서 적절한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 태백과 정선 등의 고원지대는 1000m를 훌쩍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덕에 매우 독특한 식생과 풍경을 펼쳐 낸다. 대표적인 곳이 매봉산이다. 고랭지 채소밭과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그려 내는 곳이다. ‘바람의 언덕’이란 예쁜 이름도 얻었다. 해발 1000~1300m의 고지대여서 바람 한 자락 불면 불볕더위는 저만치 사라지고 만다. 매봉산은 산기슭 전체가 배추밭이다. 면적은 132만㎡(약 40만평)가량 된다. 산자락 이쪽저쪽을 타고 넘는 배추밭의 방대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진다. 매봉산 고랭지 배추는 ‘이슬만 먹고 산’다. 매봉산 마을의 이정만 촌장이 설명한 내용은 이렇다. 매봉산 주변에는 돌이 많다. 얼핏 척박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환경이 배추 생장엔 외려 도움이 된다. 매봉산은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다. 여름에도 그렇다. 돌은 한낮의 열기를 저장했다가 추운 밤에 천천히 복사열을 풀어 놓는다. 새벽녘엔 결로현상, 그러니까 돌 위에 이슬 맺혀 배추에 수분을 공급해 준다. 척박한 땅이라 배수가 잘 되는 것도 배추 생장엔 호재다. 매봉산 오르는 길에 삼대강 꼭짓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강, 낙동강, 오십천 등 세 강의 분수령이 되는 곳이다. 길가에서 십분 남짓 오르면 나온다. 철암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탄광 마을 중 하나다. 석탄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소도시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당시 풍경은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핵심은 철암역두(鐵岩驛頭) 선탄장이다. 70여년의 역사가 녹아 있는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상징이다. 등록문화재 제21호. ‘검은 노다지’ 석탄가루가 켜켜이 쌓인 건물이 인상적이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에서 주인공 안성기와 박중훈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주먹다짐을 벌이는 장면이 촬영되기도 했다. 철암역 일대는 지금 변화가 한창이다. 먼저 철암역 주변이 ‘철암탄광역사촌’으로 바뀌었다. 석탄산업이 한창이던 1960∼1970년대에서 시곗바늘이 멈춘 마을이다. 철암천 변을 따라 옛 탄광촌 주거시설인 ‘까치발 건물’ 11채가 본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까치발’은 하천 바닥에 목재 또는 철재로 만든 지지대를 뜻한다. 주민들이 실제 살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고 전시·관람 공간으로 변했다. 30일까지 철암탄광역사촌에서 ‘태백8경 경관전’이 열린다. ‘검은 땅에 꽃 피다’를 주제로 다양한 미술작품이 전시된다. 역사촌 위는 지반 공사가 한창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철암시장, 철암의원 등 옛 정취 가득한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허물어졌다. 머지않아 토요시장 등 관광객을 끌어모을 새 건물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루핑’(모래와 콜타르를 뿌려 비가 새지 않도록 한 일종의 기름종이)으로 지붕을 인 광부들의 숙소 건물은 역사촌 위 산자락에 일부 남아 있다.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으니 부러 찾아가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두는 게 좋겠다. 글 사진 태백·정선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 가방(지역번호 033)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제천 나들목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곧장 가면 정선, 태백이다. 만항재는 고한 시내를 지나 정암사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산길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된다. 매봉산 마을은 삼수령 공원 왼쪽에 있다. 16일까지는 여름 성수기라 개인 승용차는 통제되고 셔틀 버스를 이용해 올라야 한다. 분주령이나 대덕산 야생화 트레킹을 하려면 태백시청 관광홈페이지(tour.taebaek.go.kr)에서 사전에 생태탐방 신청을 해야 한다. 태백 시내에서 사용한 카드 영수증이 있으면 당일 입장도 가능하다고 한다. →맛집:태백은 여느 산악도시에 견줘 유난히 맛집이 많다. 특히 분식집 빼고 가장 ‘흔한’ 게 고깃집이다. 상장동의 배달실비식당(552-3371), 태백한우골(554-4599) 등이 이름났다. 닭갈비도 별미다. 볶음식으로 유명한 춘천 닭갈비와 달리 갖은 식재료를 쇠판에 넣고 육수를 부어 끓여 낸다. 대명닭갈비(552-6515), 태백닭갈비(553-8119), 승소닭갈비(553-0708) 등이 알려졌다. 강산막국수(552-6680)는 막국수와 수육으로 이름난 집. 상장동에 있다. 초막고갈두(553-7388)는 고등어와 갈치, 두부 등의 조림으로 소문났다. 정선에선 곤드레밥을 맛봐야 한다. 민둥산 가든(592-3000), 정원광장식당(378-5100), 두메산골(563-5108) 등이 이름난 집이다. 정선역에서 가까운 동광식당(563-3100)은 황기를 넣어 만든 왕족발과 메밀콧등치기국수를 잘 한다. 사북 읍내 용석집(592-6615)은 손으로 빚은 만둣국이 일품이다. →잘 곳:태백 시내에 깔끔한 모텔이 많다. 꿈모텔(552-2111), 패스텔(553-1871), 알프스(552-2620) 등이 황지연못 주변에 몰려 있다. 정선 쪽에선 하이원 리조트(1588-7789)가 첫손 꼽힌다. 좀 더 한적한 곳을 원한다면 연포, 제장마을 민박도 좋겠다. 정선의 거친 ‘뼝대’(벼랑) 옆에 자리잡은 마을들이다.
  •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27) 고려 은제 광명대의 보주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27) 고려 은제 광명대의 보주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보주를 통해서 비로소 연꽃과 만나는 감격을 누릴 수 있었다. 연꽃에서 양쪽으로 발산하는 조형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용의 입에서 양쪽으로 발산하는 것과 같으므로 생략하기로 하고, 바로 보주의 영기문 발산으로 들어가려 한다. ‘연꽃의 실상은 보주’라는 것만 확실히 파악하면 되는데 지금까지 연재를 재독 삼독해 보면 알 수 있지만, 다음 기회에 더욱 충분하고 분명히 해석하기로 한다. 그렇다면 보주에서 영기문이 발산하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회화에서 보주로부터 우주의 바다와 수미산이 나오는 장관을 보여주었음을 이미 알고 있다. 모든 보주에 구멍이 있어서 보주들이 한없이 생겨 나오는 것도 살펴보았다. 그런데 조각 작품은 딱딱한 보석으로 만들므로 구멍이 없어서 참으로 난처하다. 조각품이나 금속 공예품에서 고차원의 세계와는 동떨어지게 보석을 단지 귀금속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보주라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더구나 서양은 보석(Jewel)이란 말은 있어도 보주에 해당하는 말조차 없다. 만일 보석에서 영기문을 발산시킬 수 있다면 보주라고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 은제 촛대가 있다. 정식명칭은 고려 은제 보주 영기문 음각 광명대(光名臺)이다. 여래 앞에 봉안한 촛대는 단지 어두운 법당을 밝히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진리의 광명을 발하는 여래를 상징하므로 광명대라 불러야 한다. 모든 여래는 결국 온 누리에 평등하게 비추는(光明遍照·광명편조) 비로자나불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크기는 높이 86㎝, 아래 판 지름 48㎝, 위판 지름 38㎝이다 ①. 고려불화나 조선불화에서 보다시피 법당의 불탁(佛卓) 위에 놓이는 향로 산호 보주 광명대 등은 공양물이라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고 여래나 보살을 현신시키는 성스럽고 영력(靈力)이 있는 신물(神物)로 보아야 한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보아온 것과 비교해 빈틈없는 비례감각과 완벽한 주조기법으로 이루어낸 형태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상징성이 심오하여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각 부분을 하대 중대 상대로 나누어 보면, 하대에는 추상화된 용의 입에서 제3영기싹이라는 만물의 근원적 형태가 나와 세 다리를 이루고 있는데 바로 가장 밑에 있는 이 생명력이 강한 다리에서 광명대라는 영적 존재가 화생하는 것이다. 하대 둥근 판 위에는 반구형 보석 여섯 개가 있는데 보석들로부터 각각 강력한 대생명력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무늬, 즉 영기문이 사방으로 발산하는 것이 더이상 보석이 아니라 보주임을 입증한다 ②. 그런데 실은 고대부터 옥을 ‘대지의 정물(精物)’로 간주하여 옥의 성질이 불변하듯이 그것을 지닌 사람도 영생하리라고 믿은 적이 있다. 즉 옥이나 기타의 다른 보석들은 영력이 있다고 믿었으므로 인류의 시작부터 보석을 보주로 인식하여 왔으나 점차 세속적인 귀금속으로 폄하된 셈이다. 필자는 보석을 ‘대지의 정령(精靈)’으로 부르고자 한다. 갖가지 색의 수정 보석으로부터 발산하는 것을 채색분석한 다음 다시 간략화해보면 전체가 제1, 제2, 제3 영기싹으로 이루어진 장엄한 영기문임을 알 수 있다 ③. 중대에도 아름다운 층층의 조형에 각각 여섯 개의 보주로 장엄하고, 상대의 둥근 판에도 6개의 보주에서 강력한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으며 맨 위의 연꽃모양에도 꽃잎마다 영기문이 발산하는 여섯 개의 보주로 장엄하였다. 이 작품은 만물생성의 근원인 보주를 층마다 장엄하여 역시 만물생성의 근원을 상징하고 있어서, 영적인 존재가 되므로 경배의 대상이 된다. 즉, 석가여래를 진리 자체로 해석한 비로자나, 즉 ‘광명, 곧 진리가 우주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상징하므로 이 작품이 바로 비로자나여래라는 경배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여래상을 만들 듯이 심혈을 기울여 고귀하고 아름답고 장엄하고 완벽한 조형을 창작한 것이다. 이 작품에는 ‘고려국내관국강정원년7월일’高麗國內官局康定元年七月日)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내관국이라는 부서에서 강정원년, 즉 1040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두 작품의 명문 끝에는 각각 1, 2(一, 二)라고 새겼으니 한 쌍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 하나로 고려 초기 조형예술의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 광명대와 쌍벽을 이루는 통일신라시대 것이 삼성미술관 리움이 소장한 금동 수정감장 촛대 한 쌍(국보 174호, 높이 36. 8㎝)이다. 폴란드의 천주교 성구(聖具)인 쟁반과 쌍잔을 살펴보자. 작가는 미하엘 마이어(1677~1714년 활동)이며, 바르샤바 대교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④. 갖가지 형태와 색으로 찬란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사람 눈에는 고가의 보석만 보인다. 쟁반의 중심에 있는 자색의 큰 보석으로부터 사방으로 발산하는 영기문을 그려서 채색하여 보니 그 전개원리가 한국 것처럼 뚜렷하지는 않으나 그 나름의 원칙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⑤. 제작 시기는 다르나 폴란드 보석이 보주라는 것을 영기문을 분석하며 증명할 수 있어서 기쁘기 한이 없다.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올레드 TV로 본 문화유산

    올레드 TV로 본 문화유산

    LG전자는 경복궁 야간특별개장 기간인 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경복궁 근정전에서 올레드(OLED) TV로 우리 문화유산이 담긴 사진 18점을 선보인다. 12일 LG전자 모델이 올레드 화면에 담긴 경북 영주의 신라시대 사찰 ‘부석사’의 전경을 소개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 [이경형 칼럼] 광복 70년의 ‘큰 소리’는 통합과 개혁이다

    [이경형 칼럼] 광복 70년의 ‘큰 소리’는 통합과 개혁이다

    경주박물관에는 신라가 3국을 통일한 뒤 95년 만인 771년에 만든 성덕대왕신종이 있다.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리는 이 종에 새겨진 종명(鍾銘)의 첫 머리에는 이렇게 돼 있다. “… 큰 소리는 천지에 진동하고 있지만, 들으려고 해도 그 울림을 들을 수 없다.”(…大音震動天地之間 聽之不能聞其響) 종명의 뒷부분을 읽어 보면 당대 신라인들의 ‘큰 소리’는 “모든 사람이 지혜를 모아 나라의 대업을 견고히 하자”는 염원이고 다짐이었다. 이 염원을 부처님의 설법에 의지하여 종의 울림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 시대의 ‘들리지 않는 큰 소리’는 무엇인가. 지금의 그것은 통합과 개혁이다. 광복 70년은 분단 70년이기도 하다. 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나라를 세우자마자 동족상잔의 참화를 겪었다.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선진국의 문턱 앞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파란 많은 역정이기도 하다. 한 국가의 진운과 흥망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느냐에 달렸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통합은 민족의 통합이고, 한국 사회의 통합이다. 개혁은 통합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로 나가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미래는 청소년·청년의 것이다. 현재를 탈바꿈하지 않으면 미래는 불확실해진다. 애벌레는 허물을 벗는 고통을 이겨 내야 나비가 된다. 이 고통이 개혁이고, 미래는 개혁으로 담보된다. 진정한 광복은 남북한의 통합, 곧 통일이다. 한반도 분단의 원초적 책임은 주변 강대국에 있다. 강대국들에 역사적 책임을 당당하게 물어야 한다. 통일로 가는 주도적 외교도 이런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남북 분단은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때를 같이한 동서 냉전의 산물이다. 1945년 얄타체제는 승전국들의 패전국 독일의 동·서독 분할 점령과 남·북한 분단을 가져왔다. 독일은 이제 통독 25주년을 맞고 있다. 냉전의 주역인 미국과 중국, 러시아 그리고 식민 지배의 당사자인 일본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어떤 역할로든 기여해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 남북한 관계는 최근 이희호 여사의 방북에도 북한의 DMZ 지뢰 매설과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긴장·대결 국면을 맞고 있다. 김정은의 북한은 핵무기를 흔들어 대면서 세계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다. 통일은 남북의 힘만으로 되지 않는다. 북한을 다루는 데 군사·안보적 측면과 화해·통일 정책의 이원적 대응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통일로 가는 도정이나마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통합은 남북한보다 남한 내부에서 더 화급하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계층 간의 양극화는 물론 세대 간 괴리감도 만만치 않다. 양극화의 칼날이 예리해지면 질수록 지속 가능한 시장경제·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도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한다”며 빈부 격차의 확대를 경고하지 않았던가. 미국 사회 부호들이 자발적으로 엄청나게 기부하는 것도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기제의 일부가 되고 있다. 재벌, 대기업도 중소기업과 나눠야 공생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태적 상생관계의 구축이나 동반성장 강조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주는 노동자들과 더 나누는 것이 미덕이다. 노·장년층은 청년 세대와 함께 가야 한다. 어느 계층이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기득권 고수라는 갑옷을 쓰고는 진정한 통합을 이룰 수 없다. 통합이라고 해서 절대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다름과 상대의 몫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나아가는 것이 통합이다.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통합과 개혁의 추동력은 국가 지도력이 마중물 역할을 할 때 시동이 걸린다. 국가 지도력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각 분야 지도자들이 발휘하는 역량의 총화이다. 그 정점에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있다. 개혁은 포퓰리즘과는 대척점에 있다. 개혁은 지도자들의 용기와 국민들의 공감을 먹고 산다. 광복 70주년, 에밀레종에 새겨진 ‘들을 수 없는 큰 소리’의 여운이 길다. 주필
  • [롯데 경영권 분쟁 파장] “호텔롯데 상장 땐 기업가치 최대 20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호텔롯데를 상장하겠다고 밝히면서 기업가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가총액이 최고 2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낙관론과 상장 걸림돌이 많다는 회의론이 교차한다. 일단 시장에서는 뜻밖의 ‘대어’ 등장에 벌써부터 관련 수혜주까지 들썩이는 모양새다. 전용기 현대증권 연구원은 11일 “호텔롯데는 올해 매출 5조원, 영업이익 5000억원 이상 달성이 유력시되며 지난 3년간 고성장 추세를 이어오고 있다”며 “롯데 계열사 지분 약 3조원에 수조원대의 부동산도 갖고 있어 기업가치가 2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 연구원은 “지금의 지배구조 아래서는 호텔롯데 성장의 과실이 모두 일본에 있는 주주들에게 돌아가지만 앞으로 상장되면 한국 투자자들에게도 (과실이) 배분돼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상장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호텔롯데의 지난해 순이익이 약 2000억원이고, 경쟁기업인 호텔신라의 주가수익비율(PER)이 약 40배인 점을 감안하면 호텔롯데의 시장가치는 8조원 이상으로 예상된다”면서도 “경영권 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일본계 대주주의 의사 등 변수가 많아 (신 회장의 의지대로) 상장이 이뤄질 것으로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롯데그룹 관련주들은 나흘째 이어진 코스피의 약세에도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롯데쇼핑은 전날보다 9.29% 급등한 22만 3500원에, 롯데제과는 9.27% 오른 194만 5000원을 기록했다. 롯데케미칼(3.11%), 롯데칠성(2.24%), 롯데손해보험(2.39%) 등도 반등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한국GM 임팔라 출시… “그랜저와 경쟁”

    한국GM 임팔라 출시… “그랜저와 경쟁”

    한국GM이 플래그십 세단인 임팔라를 국내에 출시했다. 현대차 그랜저가 주도하고 있는 국내 준대형 세단 시장에 변화가 올지 주목된다. 한국GM은 11일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쉐보레의 플래그십 세단인 임팔라 신차 발표회를 열었다.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은 “임팔라는 현대차 그랜저와 아슬란·기아차 K7 등과 경쟁하게 될 것”이라며 “국내 준대형 시장에서 쉐보레의 브랜드 입지를 확대하게 될 모델”이라고 말했다. 임팔라는 1958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이후 10세대에 걸쳐 글로벌 시장에서 1600만대의 누적 판매를 기록한 대형 세단으로 쉐보레의 대표 스테디셀러 모델이다. 한국GM은 임팔라의 국내 출시 가격을 미국 현지 동일 트림의 판매가격보다 낮은 3409만~4191만원으로 책정해 시장 확대에 나섰다. 한국GM은 미국 생산 모델을 국내에 수입해 판매하다가 국내 시장 반응에 따라 국내 생산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3] 항일 ‘도해순국’의 현장 산수암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3] 항일 ‘도해순국’의 현장 산수암

    영양유생 벽산 김도현 선생은 1910년 강제로 한일합병조약이 맺어졌다는 소식에 비분강개한다. 벽산은 병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상례가 모두 마무리되기를 기다려 1914년 가을 영덕 영해읍 대진 앞바다에서 순국한다. 스스로 바다에 걸어들어가 자결하는 도해순국(蹈海殉國)을 택한 것이다. 동포들에게 충의로서 일제에 복수할 것을 강조하고 자신은 죽어서라도 기어이 일제를 멸망시키겠다는 내용의 글 ‘우리동포에게’(與國內同胞)를 남겼다. 죽어서도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며 경주 감포 앞바다의 대왕암 수중릉에 묻혔다는 신라 문무왕의 염원과 닮은꼴이다. 벽산 선생은 실천적이고 전투적이었다는 점에서 의병사에 특별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이듬해 봉화 청량산에서 모병하여 8개월 동안 항쟁했다. 1906년에는 고종의 비밀명령을 받아 활동했으나 이듬해 2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6개월 동안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벽산은 그러나 무력항쟁에 그치지 않고 상소운동을 벌이거나 서양 각국 공사관에 만국공법론에 의거한 포고문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벽산은 1852년 현재의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 상청리에서 태어났다. 지금도 마을에는 1580년 지어진 벽산의 생가와 1958년 세워진 유허비를 비롯해 그의 흔적이 여럿 남아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마을 뒷산의 검산성(劍山城)이다. 일종의 의병기지로 벽산이 사재를 털어 쌓은 것이다. 길이 200m 남짓에 불과하고 높이도 2m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뒷편으로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하천이 흘러 자연해자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간단치 않은 방어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벽산이 순국한 영덕 대진 산수암(汕水巖)에는 1971년 도해단(蹈海壇)이 세워졌다. 지금도 해마다 선생의 생일인 음력 7월14일에는 기념행사가 열린다. 올해는 오는 27일이다. 산수암의 북쪽에는 대진해수욕장, 남쪽에는 대진항이 자리잡고 있다. 몇해전 찾은 ‘도해단 전례’에는 폭염경보가 내려진 뙤약볕 아래 참배객들이 선생의 우국정신을 기리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럴수록 벽산의 ‘도해순국’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고 지역 행사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글·사진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현장의 방향 보는 1박2일 ‘소풍’… “숲이 보여” vs “눈치 보여”

    현장의 방향 보는 1박2일 ‘소풍’… “숲이 보여” vs “눈치 보여”

    10일 오전 11시 서울역에서 경북 경주로 떠나는 KTX에 행정자치부 직원 11명이 몸을 실었다. 1박 2일로 ‘소풍’(Saw風)을 가는 길이다. 지방행정실 13개 과 중 주민과와 지역경제과만 빠졌다. 소풍은 지방행정실에서 추진하고 있는 재량근무를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다. 현장의 ‘방향’(風)을 ‘보고’(saw) 돌아온다는 뜻이다. 지난 3월 첫발을 뗀 소풍 프로그램엔 모두 58명이 참여했다. 재량근무엔 보통 월별로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과별 1개 팀 이상 참여하도록 했다. 활동 특성에 따라 1~2명을 늘릴 수 있다. 청사 사무실의 딱딱한 책상 위에선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창의적인 구상을 꾀하고 경직된 공직사회의 일 문화 개선을 통해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사무실을 벗어나 다양한 공간에서 정책을 고안하고 민생현장 방문, 혁신사례 벤치마킹 등을 통해 1주일 안에 결과 보고서를 제출한다. 형식에 얽매이지는 않도록 했다. 이번 소풍에는 특별주제를 내걸었다. 경주시 서악동 도봉서당과 신라 궁궐인 월성 발굴 현장, 교동 최씨 고택 등을 답사한다. 향교·서원·고택 등 전통유교문화 체험을 거쳐 인문학적 선비정신 함양 기회를 제공해 행정의 품격을 높인다는 목적이다. 다음달 비슷한 규모로 한 차례 더 예정돼 있다. 전북 임실군 치즈마을, 전주 한지산업지원센터 등을 둘러본 지역경제과 팀은 “지역경제 활성화 시책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 효과를 널리 알리고 이해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며 (해결보다는 관계와 소통을 중시하는) 과정 지향적 사업 추진 방안을 모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도시재생 사업으로 꼽히는 부산 사하구 감천 문화마을을 다녀온 자치행정과 팀은 “전국에 흉물로 남은 벽화마을이 많은데 원형을 보존하며 주민 스스로 먹거리를 개발한 성공 사례 분석과 마을 코디네이터 등 체계적이고 꾸준한 지원체계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주민과 팀 3명은 보고서에 국토 최북단인 강원 철원군 동송읍에서 느낀 점을 적었다. 1대1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노인이 대부분인데, 주민센터 행정인력의 20%가 출산휴가 중이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며,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시간제 공무원 및 기간제 공무원을 충원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참가자는 “많이 지친 심신을 추스른 것은 물론 나무만 보고 일했는데 숲을 그려 볼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참가자는 “상사나 동료들에게 쌓인 일거리를 놔두고 놀러 가는 것처럼 비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소풍에 익숙해져서 미안한 느낌을 갖지 않도록 한층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건의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2] 임진왜란의 산물 천왕문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2] 임진왜란의 산물 천왕문

    절에 들어서면 대개 처음 마주치는 전각이 천왕문(天王門)이다. 내부에 무섭게 생긴 사천왕(四天王)이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을 조각해 놓은 건물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한마디로 절을 호위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존재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 천왕문이 크게 유행한 것이 임진왜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천왕문과 사천왕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천왕은 고대 인도의 토속신앙에서 유래한 존재이지만, 불교에 편입되면서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천왕은 세상의 중심이라는 수미산 중턱에서 각각 자신들의 권속을 거느리고 살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각각 맡아 지키는 존재라고 한다. 동쪽의 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 남쪽의 증장천왕, 북쪽의 다문천왕이다. 절을 호위하는 역할이니 천왕문은 절의 들머리에 세워진다. 사천왕이 한국불교에서 임진왜란 이후 갑자기 부각된 존재는 아니다. 사천왕상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신라시대에는 경주 사천왕사터의 소조 사천왕이나 감은사터 석탑의 사리장엄같은 소규모 조각상이나 불탑에서 나타난다. 고려시대에도 석탑·석등이나 구리거울에 조각한 경상(鏡像)에 보인다. 이렇듯 작은 장엄으로나 나타나던 사천왕이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갑자기 천왕문의 형태로 스케일이 커지면서 집중적으로 세워진 것이다. 조선 후기 천왕문은 전국에 17곳이 남아 있다. 조선 전기 것은 제 모습을 유지한 것이 없고, 후기 사천왕상도 임진·병자 양란 이전 것은 둘 뿐이다. 장흥 보림사 것이 1515년, 김천 직지사 것이 1596년 조성됐다. 법주사는 1624년, 순천 송광사는 1628년, 화엄사는 1632년, 완주 송광사는 1649년 이전 천왕문을 조성한다. 이후 고흥 능가사와 홍천 수타사, 고창 선운사, 청도 적천사, 남해 용문사, 하동 쌍계사, 양산 통도사, 안성 칠장사, 서울 봉은사, 여수 흥국사, 영광 불갑사에도 천왕문이 잇따라 세워졌다. 조선 후기 천왕문을 새로 지은 사찰 가운데 임진왜란 당시 승군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절은 모두 9곳에 이른다.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었던 절도 3곳이다. 임란 당시 승군대장 부휴당 선수(1543~1615)와 그의 제자로 역시 승군을 이끌었던 벽암 각성(1575~1660)을 비롯한 문도들이 천왕문의 건립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천왕문은 종교건축의 좁은 의미를 뛰어 넘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교훈을 잊지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기념비다. 불교를 탄압한 유교국가 조선에서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해낸 불교를 기억하라는 무언의 상징물이다. 모든 문화재는 구체적인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천왕문과 사천왕의 사례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광복절 70주년 연휴를 맞아 전국 어디든 절을 찾는다면 혹시 천왕문이 있는지 눈여겨 볼 일이다. 뜻밖의 장소에서 선조들의 구국정신과 항일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다. 글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한여름밤 경복궁·덕수궁에 흐르는 우리 소리

    한여름밤 경복궁·덕수궁에 흐르는 우리 소리

    한여름 밤 고궁에 청아한 우리 소리의 선율이 흐르고 아름다운 우리 춤사위가 펼쳐진다. 고궁 벽면은 오색영롱한 빛으로 물든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오는 13~30일 ‘위대한 문화유산, 미래를 열다’를 주제로 경복궁과 덕수궁에서 개최하는 ‘광복 70년 기념 문화유산 활용 축제’에서다. 경복궁 경회루에선 경복궁 야간 특별관람과 연계해 13~15일 ‘경회루, 성하(盛夏)에 물들어’가 진행된다. 누각, 연못, 만세산(섬) 등 경회루 건축물과 경관을 무대 배경으로 신라 뱃놀이에 기원한 조선시대 궁중 무용 ‘선유락’(船遊), ‘오고무’(五鼓舞), ‘부채춤’, 안숙선 명창의 선상공연 ‘뱃노래’, 이생강 명인의 ‘대금독주’, 첼리스트 김해은의 ‘첼로연주’ 등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진다.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을 지낸 한국무용가 국수호가 연출을 맡았다. 덕수궁 석조전에선 석조전 외벽을 스크린으로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가 13~16일 선보인다. ‘미디어 파사드’는 미디어(media)와 건물 외벽을 뜻하는 파사드(facade)의 합성어로, 건물 외벽에 다양한 콘텐츠 영상을 투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미디어 파사드’는 연세대 김형수 교수가 예술감독을 맡아 석조전의 역사적 장소성과 건축적 특성을 반영한 영상으로 연출한다. 입체 음향과 함께 석조전에 광복 70년의 역사를 담은 ‘빛의 옷’을 입힌다. 덕수궁 함녕전에선 20일 ‘덕수궁 풍류’ 100회 기념 특집 공연이 열린다. ‘덕수궁 풍류’는 중요무형문화재 가(歌)·무(舞)·악(樂) 분야 예인들이 출연하는 야간 전통공연으로, 2010년 시작됐다. 이번 특집 공연에는 구음 정영만(중요무형문화재 제82-4호 남해안별신굿), 대금독주 이생강(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판소리 안숙선(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 사물놀이 이광수 명인이 출연해 창작국악그룹 ‘바라지’, ‘숨’ 등 신진 국악인과 함께 과거를 회상하고 새로운 도약을 기원하는 무대를 만든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1] 터널이 관통할 뻔한 밀양 봉성사터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1] 터널이 관통할 뻔한 밀양 봉성사터

    한국도로공사는 최근 고속국도 제14호선 건설공사 구간에서 ‘삼국유사’에 기록이 나오는 봉성사(奉聖寺)의 옛터를 발견했다. 지난해 3월 착공한 전장 45.17㎞ 밀양-울산 고속도로의 경남 밀양시 산외면 금곡리 산외3터널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렇지 않아도 도로공사는 당초 한 대학 박물관팀이 지난 1999년 이 일대를 시굴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절터로 추정되는 유물산포지를 피해서 고속도로를 설계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터널 공사에 들어가 유물이 발견되는 상황을 보니 절터는 시굴조사 당시 절터 추정 지역보다 훨씬 넓었다. 설계대로라면 터널은 봉성사터의 한복판을 관통할 수 밖에 없었다. 공사가 시작되자 현장에서는 건물터와 기와 등 유구와 유물이 쏟아져 나왔고, 주변에서는 분청사기 가마터와 지석묘로 추정되는 유구도 확인됐다. 결국 울산문화재연구원이 지난 5월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봉성사’(奉聖寺)라고 새겨진 기와를 찾아낸 것이다. 봉성사는 그동안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으니 확기적인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발굴조사에서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석재 등이 출토됐다. 이후 15세기 조선시대까지도 중창과 보수가 이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봉성사는 청도 운문사(雲門寺)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운문사를 중창한 신라 말의 고승 보양(寶壤)은 당나라에서 불교를 배우고 돌아온 뒤 봉성사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고려 태조가 청도 견성(犬城)에 출몰하는 산적을 쫒아내려 했지만 쉽게 항복하지 않자 봉성사로 보양을 찾아갔다. 태조가 도적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방책을 묻자 보양은 “대개 개(犬)는 밤에 지키되 낮에는 지키지 않고, 앞은 지키되 뒤를 잊어버리는 것이니 마땅히 낮에 성의 북쪽을 쳐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고. 태조가 그대로 했더니 도적의 무리가 항복했다는 것이다. 태조는 보양의 지혜에 탄복하며 해마다 이웃 고을의 조세 50석을 이 절에 주도록 했다. 이후 절에 보양과 태조의 초상을 봉안하였으므로 봉성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봉성사와 운문사는 흔히 영남알프스라고 하는 가지산을 사이에 두고 밀양 땅과 청도 땅에 각각 자리잡고 있다. 이렇듯 중요한 절이니 터널에 휩쓸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달 터널의 위치를 봉성사의 한복판에서 절터 아랫쪽으로 옮기는 도로공사의 수정안을 승인했다. 터널 위에 절터가 자리잡는 형국이니 공법도 폭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무진동공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지역의 숙원사업인 고속도로 공사가 한동안 중단된 것은 물론 고속도로 건설비용도 수십억원이 늘어나게 됐다고 한다. 애초 시굴조사가 정확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일이다. 밀양-울산 고속도로는 오는 2020년 준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글·사진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이부진 남편 임우재, 이혼 거부 “가정 지키고 싶다”

    이부진 남편 임우재, 이혼 거부 “가정 지키고 싶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44) 호텔신라 사장이 제기한 이혼소송 과정에서 남편인 임우재(46) 삼성전기 경영기획실장(부사장)은 6일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부진 남편 임우재 부사장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진행된 가사조사 기일에 참석, 4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이부진 남편 임우재 부사장은 조사를 마치고 나와 이혼소송에 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대해 “가정을 지키고 싶다”며 이혼 의사가 없다는 뜻을 전했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해 10월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남편 임우재 부사장을 상대로 이혼 및 친권자 지정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은 그동안 초등학생 아들의 친권과 양육권을 놓고 입장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더팩트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이부진 남편 임우재, 이혼소송에 대한 입장 묻자..

    이부진 남편 임우재, 이혼소송에 대한 입장 묻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44) 호텔신라 사장이 제기한 이혼소송 과정에서 남편인 임우재(46) 삼성전기 경영기획실장(부사장)은 6일 “가정을 지키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부진 남편 임우재 부사장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진행된 가사조사 기일에 참석, 4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이부진 남편 임우재 부사장은 조사를 마치고 나와 이혼소송에 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대해 “가정을 지키고 싶다”며 이혼 의사가 없다는 뜻을 전했다. 이부진 사장은 지난해 10월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남편 임우재 부사장을 상대로 이혼 및 친권자 지정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은 그동안 초등학생 아들의 친권과 양육권을 놓고 입장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더팩트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이부진 남편 임우재, 이혼 거부 “가정 지키고 싶다” 앞으로 소송 어떤 변화 있을까?

    이부진 남편 임우재, 이혼 거부 “가정 지키고 싶다” 앞으로 소송 어떤 변화 있을까?

    이부진 남편 임우재, 이혼 거부 “가정 지키고 싶다” 앞으로 소송 어떤 변화 있을까? ‘이부진 남편 임우재’ 이부진(44)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소송을 진행 중인 임우재(46) 삼성전기 경영기획실장(부사장)이 이혼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임우재 부사장은 6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진행된 가사조사 기일에 참석, 4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마치고 나와 이혼소송에 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에게 임 부사장은 “가정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의 이혼재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지금까지 이 사장과 임 부사장의 이혼 재판은 자녀 양육권 문제 등 이혼 이후의 대처가 주된 쟁점이었으며 임 부사장이 이혼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향후 재판은 이혼을 요구하는 이 사장과 이를 거부하는 임 부사장 측의 주장이 맞서는 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가사조사에 이 사장은 참석하지 않아 양측 당사자 간 대면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임 부사장의 법률 대리인 조대진(법무법인 동안) 변호사는 “면접 조사에 배석하지 않았다”면서 “그동안 임 부사장이 밝힌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것은 없다.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동안 임 부사장은 자녀(초등생)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지만 이혼 자체를 거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적은 없었다. 다음 가사조사 기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가사조사란 이혼소송에서 쉽게 합의될 것 같지 않고 이견이 큰 경우 법원이 가사조사관으로 하여금 이혼 당사자들을 불러 결혼생활, 갈등상황, 혼인 파탄 사유 등을 조사하는 것이다. 가사조사는 판사가 아닌 가사조사관이 하게 된다. 조사기일은 일반적으로 한달에 한번 정도 지정되지만 사건의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가사조사가 진행되면 이혼 당사자들은 가사조사관을 만나 그동안 결혼생활, 상대방이 혼인을 파탄시키거나 힘들게 한 사유, 자녀의 친권자 및 양육권자로 지정되어야 할 필요성 등을 피력하는 시간을 갖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부진 남편 임우재, 이혼 거부? 친권+양육권 놓고 다투더니

    이부진 남편 임우재, 이혼 거부? 친권+양육권 놓고 다투더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이부진(44)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소송을 진행 중인 임우재(46) 삼성전기 경영기획실장(부사장)이 이혼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6일 임우재 부사장은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진행된 가사조사 기일에 참석해 4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다. 임우재 부사장은 조사를 마치고 나와 이혼소송에 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에게 “가정을 지키고 싶다”며 이혼 의사가 없다는 뜻을 전했다. 지금까지 이 사장과 임 부사장의 이혼 재판은 자녀 양육권 문제 등 이혼 이후의 대처가 주된 쟁점이었으며 임 부사장이 이혼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이부진 사장과 임우재 부사장은 그동안 초등학생 아들의 친권과 양육권을 놓고 입장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우재 부사장은 친권과 양육권 모두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향후 재판은 이혼을 요구하는 이 사장과 이를 거부하는 임 부사장 측의 주장이 맞서는 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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