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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연구도 노벨상까지 36년… 한국, 단기 성과 집착 버려야” [K-과학인재 아카데미 비전선포식]

    “내 연구도 노벨상까지 36년… 한국, 단기 성과 집착 버려야” [K-과학인재 아카데미 비전선포식]

    세포 속 단백질 분비 과정 첫 규명노벨상 당시 ‘자유로운 연구’ 강조실패 위험 감수하고 밀고 나가야파킨슨병 앓던 아내와 사별 이후현재는 연구 컨소시엄 고문 활동한국 과학자도 많이 참여해 주길자신의 가설 증명할수록 자신감시험 아닌 실험 중심 교육 구성을성과 늦어도 꾸준한 지원이 중요 “자유로운 탐구 정신이 오늘날 노벨상 수상자들의 경력을 다채롭게 만들었습니다.” 세포 내 물질 수송 경로를 밝혀 201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랜디 셰크먼(78)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분자생물학과 교수는 당시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네 차례 언급했다. 노벨 평화상이 아닌 생리의학상 수상 소감에서는 이례적이었다. 셰크먼 교수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UC 버클리 교정 내 사무실에서 진행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유로운 연구 환경’이 미국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많이 배출된 비결 중 하나로 꼽았다. 자신이 노벨상을 받기까지 36년의 연구를 했는데, 미국 민간 연구소의 지원 덕에 자유로운 연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한국교육의 현실을 언급하며 시험보다는 실험 중심의 과학교육을 강조했다. 셰크먼 교수는 오는 26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리는 ‘K-과학인재 아카데미 비전선포식’에서 기조연설을 한다. 이번 행사는 호반그룹과 호반장학재단이 주최하고 서울신문과 전자신문이 주관한다. 학계·산업계·교육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학 인재 육성 방안을 논의한다. 호반그룹과 서울대는 ‘K-과학인재 아카데미업무협약(MOU)’을 맺고 예비 과학 인재들이 연구 경험을 넓힐 수 있도록 지원한다. 다음은 셰크먼 교수와의 일문일답. -처음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꾼 계기가 무엇인가. “첫 기억은 11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를 마친 후 물병으로 근처 호숫가에서 물을 퍼 올려 현미경으로 봤더니 꼬물거리는 작은 생물들이 살고 있었다. 그게 신기해서 더 좋은 현미경을 사고 싶었는데, 중고 제품도 100달러가 필요하더라. 동네 아이들을 돌보는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을 어머니가 장을 보는 데 썼다. 현미경을 못 산 게 분해서 그 길로 자전거를 타고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가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부모님은 화를 내다 결국 나를 전당포에 데리고 가서 현미경을 사줬다. 그 현미경으로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과학자의 꿈은 어떻게 이어졌나. “청소년기엔 학교에서 열린 과학 프로젝트 박람회에 출전하며 과학자의 꿈을 꾸었다. UC 로스앤젤레스(LA) 화학과에 진학했는데, 신입생 때 원하는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때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교수님 아래서 실험하고 연구 현장을 배웠다. 그때 지도교수님이 빌려준 책이 유전자(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 박사의 분자생물학 책이었다. 그 책이 지금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됐다.” -단백질 분비 과정을 처음으로 규명해 노벨상을 수상한 과정이 궁금하다. “스탠퍼드대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UC 버클리에서 교수로 막 재직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세포 내에서 아미노산 배열에 따라 나올 수 있는 단백질 종류가 많다. 단백질이 세포 안에서 생성되고 세포 밖으로 나가 순환하면서 역할을 한다. 인간과 동일한 진핵생물(핵과 핵막이 있는 세포로 구성된 생물)인 효모를 이용해 세포 안에서 만들어진 단백질이 분자 수준에서 세포 밖으로 전달되는지 규명한 것이다. 당시에는 단백질 분비 과정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었고, 연구 방식도 대부분 실험쥐와 같은 포유류를 사용할 뿐 효모를 활용한 연구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신청한 첫 장학금은 떨어졌다. 그런데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서 장학금 요청을 수용해 작은 펀딩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연구가 노벨상으로 이어졌다.”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당장 성과가 나지 않는 기초과학이 중요하다고 했다. “1977년에 효모로 시작한 연구가 2013년 노벨상을 받기까지 약 36년이 걸렸다. 효모 실험에서 얻은 결론을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인정받기까지 36년이나 걸린 것이다. 그만큼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긴 시간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내가 연구를 시작했을 때 단백질 분비는 거의 새로운 분야였고 장학금도 거절당할 정도로 유망한 분야가 아니었다. 하지만 2년 만에 성과를 냈더니 미국의 민간 연구소인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HHMI)가 15년 동안 지원을 해줬고, 그 덕분에 비교적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다.” -과학자가 지녀야 할 핵심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과학자는 어느 정도 ‘도박꾼’이 되어야 한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호기심이 생긴 연구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밀고 나가야 한다. 새로운 것을 찾으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과학자로서 항상 큰 질문을 생각하고, 좋은 멘토와 최신 연구실 현장에서의 훈련을 통한 경험, 판단도 필요하다.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도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고 하지 않았나.” -최근 학문과 산업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미국의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학계엔 어떤 영향을 미치나. “처음엔 제자들이 학계로 빠지길 원했지만 최근에는 학생들에게 학계나 산업계 중 특정한 길을 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요즘은 많은 박사들이 산업계로 진출해 새로운 발견을 해내기 때문이다. 기업가들 중에서도 많은 혁신가가 나오고 있다. 아마존이나 테슬라가 대표적인 예다. 기업인들도 똑같이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고, 그렇게 산업의 선구자가 되지 않았나. 제자 중 한 명은 캘리포니아공대(칼텍) 교수를 하면서 회사를 창업해 암젠에 인수됐다. 지금은 학계와 산업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생명과학 분야 연구도 인공지능(AI)의 영향을 받나. 과학자는 AI와 어떤 관계를 이뤄야 하나. “요즘 연구실에는 실험 결과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이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배열 구조를 예측하는 것은 생명과학의 오랜 난제였는데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는 몇 분 만에 이를 예측한다. 이 공로로 알파폴드 개발자들은 2024년에 노벨상까지 받았다. 학생들도 이미 AI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AI의 도움을 받아 연구에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AI가 연구실에 들어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떤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 “아내가 20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다가 2017년에 사망했다. 한번 걸리면 완치가 어려워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데, 사망까지는 오래 앓아야 하는 힘든 병이다. 파킨슨병 환자가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이 자신이 자금을 지원할 테니 파킨슨병 연구를 도와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현재는 글로벌 파킨슨병 공동 연구 컨소시엄인 ASAP(Aligning Science Across Parkinson’s)라는 재단에서 고문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연구자들이 팀을 이뤄 파킨슨병을 연구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팀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아직 동아시아 출신의 연구자가 많지 않다. 한국에서 많이 참여해주면 좋겠다.” -한국이 과학 분야에서 인재를 더 성공적으로 배출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먼저 한국 정부가 기초과학에 더 투자해야 한다. 일부 연구자에게 집중적으로 펀딩을 하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선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특히 한국은 민간 투자가 미국보다 적다. 미국에서는 개인 또는 기업, 재단의 후원이 과학 연구를 지속하게 만드는 핵심 축이다. 민간에서 지원을 해주면 정부 과제와 달리 특정 주제가 정해져있지 않고 연구자의 자율성을 존중해준다. UC 버클리에서 효모로 연구를 했을 때도 내게 후원을 해준 HHMI 덕분에 정부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주제를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다. 내가 고문으로 있는 ASAP 역시 구글의 창업자인 브린이 큰 금액을 지원한다. 미국에서는 민간이 주된 재원이지만 한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기초과학에 더 많이 후원해야 한다.”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시험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학생들은 ‘시험’ 준비를 하느라 ‘실험’은 하지 못한다. 시험은 창의력과 열정, 호기심이 아니라 암기력을 테스트하지 않나. 아이들이 과학에 흥미를 가지려면 스스로 경험하고 실험해보는 기회가 중요하다. 학교에서 과학 박람회를 열고 학생들이 직접 과학 실험을 설계하고 필요한 장비를 조립하는 식이다. 대학에 가서도 수업만 열심히 듣는 게 다가 아니다. 직접 연구실에 가서 실험을 해보길 권한다. 실제로 교수가 연구실에서 어떻게 실험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결과를 내는지 현장을 통해 경험을 쌓아라. 젊은 과학자들은 자유롭게 탐구할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가설을 실험하고 증명할수록 자신감을 얻는다.”
  • ‘APEC 효과’ 경주 솔거미술관 흥행 대박

    ‘APEC 효과’ 경주 솔거미술관 흥행 대박

    지난해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캐나다 총리 부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경주 솔거미술관이 역대급 관람객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경북문화관광공사는 경주시와 공동 운영하는 솔거미술관의 지난해 관람객 수가 15만 6016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는 전년도 관람객 수 10만 7294명보다 약 45.4% 증가한 수치다. 관람객 수 증가는 경주 APEC 정상회의 개최에 따른 효과로 분석된다. 이 기간 솔거미술관은 특별 기획전 ‘신라한향’(新羅韓香)을 통해 한국 미학의 정수를 선보였다. 당시 기획전은 캐나다 총리 부인인 다이애나 폭스 카니 여사를 비롯해 17개국 대사 부인 등 글로벌 VIP들이 줄지어 찾았다. 특히 수묵 대작 ‘코리아 판타지’를 그린 박대성 화백과 카니 여사와의 만남은 신라와 한국의 예술적 가치를 세계 정상급 귀빈들에게 각인시켰다. APEC을 계기로 한 관람객 대열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월 누적 관람객 수는 3만 6055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만 4092명) 대비 2.55배 늘어난 수치다. 유료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증가세가 눈에 띈다. 김남일 경북문화관광공사 사장은 “솔거미술관은 APEC이라는 국제무대에서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며 큰 성과를 거뒀다”며 “올해는 이를 발판 삼아 지역 예술의 자부심을 세계로 확산시키는 ‘글로컬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 “같은 쌀, 다른 식사법… 나눔의 한국 밥상·배려의 일본 도시락”[월요인터뷰]

    “같은 쌀, 다른 식사법… 나눔의 한국 밥상·배려의 일본 도시락”[월요인터뷰]

    같은 쌀을 먹지만 밥의 의미는 다르다. 한국에선 넉넉히 밥을 담아 상에 올리고 반찬을 나눠 함께 먹는다. 나눔의 문화다. 일본에서는 “밥 양은 어떻게 할까요. 보통으로 할까요, 적게 할까요”를 먼저 묻는다. 손님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양을 맞춰 주는 ‘오모테나시’, 배려의 문화다.지난 13일 일본 오사카 만박공원 내 국립민족학박물관(민박)에서 만난 문화인류학자 아사쿠라 도시오(75) 민박 명예교수는 닮은 듯 다른 한일 간 차이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밥상’이라며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사쿠라 명예교수는 일본내 한국 문화 연구계의 ‘큰 어른’으로 꼽힌다. 1970년대 처음 한국을 찾은 이후 50년 가까이 한국 사회와 생활문화를 연구해 왔다. 한국인에게도 낯선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서만 16년 동안 현장조사를 했다. 지금도 식문화를 통해 한일 사회를 비교 연구하고 있다.반세기 가까이 한국을 들여다본 이 노학자에게 ‘한국은 왜 이럴까’라고 물었다. 그는 단정하지 않았다. 그는 “한일은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르다. 그 작은 위화감을 묻는 것이 내 연구”라면서 그 ‘작은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이(異)문화’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일 문화 차이, 밥에서 잘 드러나한국 밥상, 여러 사람과 함께 완성日 도시락, 개인 단위로 음식 정리1970년대 신안 도초도서 16년 조사한국 ‘정·의리·해학’ 日은 ‘의리·인정’두 사회 인간관계 중요, 방식은 달라직접 관찰하는 ‘필드 워크’ 의미는문화인류학, 사람과의 만남서 시작삶 겹겹이 쌓여 ‘사람의 역사’ 직조문화는 무상… “아직도 한국이 궁금”K푸드 열풍 등 드라마틱하게 변화 “한국 생활문화 반드시 기록해 둬야”-한일 문화 차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음식을 ‘밥’으로 꼽았다. “일본은 도시락의 문화다. 음식이 개인 단위로 정리된다. 도시락 상자 하나 안에 밥과 반찬이 들어간다. 한 사람의 식사가 하나의 틀 안에서 완결된다. 한국은 밥상의 문화다. 여러 반찬이 한 상에 놓이고 사람들이 함께 먹는다. 밥상은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이 함께 완성한다. 식사 방식 자체가 관계를 만드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밥을 담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 밥을 높이 담은 고봉밥은 제삿밥이다. 일상 식사에서는 그렇게 담지 않는다. 반대로 일본 식당에서는 밥 양을 먼저 묻는 경우가 많다. 손님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맞춰 주려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식 오모테나시다. 한국에서는 밥을 넉넉히 담는다. 밥을 많이 준다는 것은 환대의 의미가 있다. 같은 쌀을 먹지만 밥을 대하는 방식에 사회의 관계 문화가 드러난다.” -한국 문화를 처음 실감한 순간은. “1970년대 서울 롯데백화점 식당에서였다. 마쿠노우치 벤토(밥과 반찬을 도시락 상자 하나에 담은 일본식 도시락)를 주문했는데, 그 뒤로 반찬이 계속해서 나왔다. 나물도 나오고 다른 반찬도 이어지면서 결국 상이 하나 더 차려졌다. 마쿠노우치 벤토는 도시락 상자 하나 안에 밥과 반찬이 들어가 한 사람의 식사가 그 안에서 완결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한정식처럼 식사가 이어졌다. 그때 ‘아, 이것이 바로 한국이구나’ 하고 느꼈다.” -한국인의 관계 문화를 설명할 때 ‘정’이라는 개념이 자주 언급된다. “1970년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연구 가운데 윤태림 선생의 논의가 있다. 한국인의 특징을 ‘정’, ‘의리’, ‘해학’으로 설명했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감정적으로 깊게 맺는 문화라는 뜻이다. 일본에서도 인간관계를 설명할 때 ‘기리’(義理·의리)와 ‘닌조’(人情·인정)라는 개념을 자주 이야기한다. ‘기리’는 사회적 의무나 규범에 가까운 개념이고, ‘닌조’는 인간적인 정이나 감정을 뜻한다. 두 사회 모두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차이인가. “일본은 관계가 비교적 정리된 규범 속에서 작동하는 사회다. 의무와 역할이 비교적 분명하다. 반면 한국은 관계가 훨씬 유동적이고 감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사람 사이의 정서적 연결이 관계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도초도에서의 느낀 한국의 ‘정’은 어떤 형태였나. “도초도에서 조사할 때 신세를 졌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다시 마을을 찾았는데 아내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고 하자 그분이 시장에 가서 ‘단무지’를 사 오셨다. 음식도 맵지 않게 따로 준비해 주셨다. 그때 차려주신 밥상 사진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 장면이 내가 느낀 한국의 ‘정’이다.” 그는 한일 생활문화를 현장 연구와 전시로 연결해 온 학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 국립민속박물관과 민박이 공동 개최한 한일 생활문화 특별전을 기획했고, 서울 강남의 한 중산층 가정의 살림살이 전체를 수집해 전시장에 생활공간 그대로를 재현한 ‘서울 스타일–이씨 일가의 있는 그대로의 삶’ 전시로 큰 주목을 받았다. 2015년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열린 ‘한일 식문화 특별전’에서도 한국 식문화를 중심에 두고 일본 음식을 비교 방식으로 배치해 차이를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전시 명칭도 관례적인 ‘일한’이 아니라 ‘한일’로 정해 한국 문화를 전면에 놓는 방식을 택했다. -50년 전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천지 개벽 수준으로 변화했다. “2013년에 한국의 김장 문화와 일본의 와쇼쿠(일식)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문화인류학적으로 보면 어떤 문화가 유산으로 지정된다는 것은 그 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일본의 설날 음식인 오세치는 예전에는 가정에서 직접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백화점이나 슈퍼에서 구입한다. 한국에서도 김장을 함께 담그는 문화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드라마틱한 변화다.” -전 세계적으로 K푸드 열풍이 거센데. “예전에 일본 라면 회사 관계자에게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일본 라면을 세계에 더 수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일본에는 지역마다 다양한 라면이 있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오히려 약점이 되기도 한다. 한국은 단순하다. 신라면, 불닭볶음면처럼 대표 브랜드가 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 라면을 떠올리면 바로 그것이 생각난다. ‘이것이 한국이다’라는 이미지가 분명한 게 K푸드의 장점이다.” -지금은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현지에 머물며 사람들의 삶을 직접 관찰하는 ‘필드 워크’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문화인류학자는 책상에서 사회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다.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 사회의 감각을 이해하려고 한다. 내가 한국 연구를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초도에서 16년 동안 살다시피 하며 조사했다. 같은 밥상에서 음식을 먹고 같은 이야기를 듣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비로소 그 사회의 리듬이 보인다.” 그는 필드 워크를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한 사람을 만나면 또 다른 만남이 이어지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의 삶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사람의 역사’를 직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50년 가까이 한국을 연구해 왔다. 선생에게 한국 연구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문화는 ‘무상’(無常)하다. 전통문화나 기층문화라고 불리는 것들도 시대와 함께 변해 간다. 하물며 내가 연구하는 생활문화는 더욱 빠르게 변하고 사라진다. 특히 한국의 생활문화는 내가 처음 한국을 찾은 이후 거의 50년 동안 드라마틱하게 변화해 왔다. 그래서 반드시 그것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연구는 많은 한국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그런 변화들을 기록해 온 작업이었다. 좋아하는 술을 함께 마시며 그들의 삶을 들려받는 그런 즐거운 작업이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한국이 궁금하다.” ■ 아사쿠라 명예교수는 1950년 일본 도쿄 출생. 무사시대학을 졸업하고 메이지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한국 생활 문화를 연구해 온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학 연구자다. 중국·미국·사할린 등지의 한국인 이주 공동체 조사도 진행했다. 일본 최대의 민족학 연구기관인 국립민족학박물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리쓰메이칸대 식매니지먼트학부에서 가르치고 있다. 2013년 한국 문화 연구 공로로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 라면·과자·식용유 가격도 내린다

    라면·과자·식용유 가격도 내린다

    정부의 압박으로 제빵업계에서 시작된 식품가격 인하 물결이 라면, 식용유 등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원재료 가격 하락과 함께 서민 가계 부담을 덜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기업들의 전향적인 가격 조정을 끌어냈다는 평가다. 12일 식품업계와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라면 4개사는 총 41개 제품의 출고가를 약 40원에서 100원까지 내린다. 라면값 인하는 2023년 6월 이후 약 2년 9개월 만이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오리지널 2종의 가격을 평균 14.6% 낮춰 인하 폭이 가장 컸다. 농심은 안성탕면과 무파마탕면 등 16개 제품 가격을 평균 7% 내리며, 오뚜기도 진짬뽕과 짜슐랭 등 8종의 가격을 평균 6.3% 인하한다. 팔도 역시 비빔면과 왕뚜껑 등 19종의 가격을 평균 4.8% 낮춘다. 식용유와 과자 가격도 일부 인하된다. CJ제일제당과 대상, 오뚜기, 사조대림, 롯데웰푸드, 동원F&B 등 주요 6개 업체는 식용유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 점유율 1위인 CJ제일제당이 카놀라유 등 4개 품목의 가격을 최대 6% 내린 데 이어 대상(청정원)도 소비자용 제품 3종의 가격을 최대 5.2% 낮췄다. 해태제과는 ‘계란과자 베베핀’(5.3%)과 ‘롤리폴리’ (5.6%)의 가격 인하를 발표했다. 앞서 제빵업계도 가격 인하를 실시한 바 있다. CJ푸드빌 뚜레쥬르는 17종의 빵 가격을 평균 8.2% 낮췄고, 파리바게뜨는 13일부터 빵 6종의 가격을 100~ 1000원 낮춘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기업들의 가격 인하 계획을 직접 공개하고 사의를 표하는 동시에 산업 전반에서 독과점적 지위 남용을 조사하고 시정하라고 지시했다. 다만 기업들의 이번 가격 인하 조치만으로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농심의 신라면이나 오뚜기 진라면,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 등 핵심 주력 제품들은 이번 인하 대상에서 제외됐다.
  • 육성 아닌 유인… 예비 과학인재 위한 ‘사다리’ [K-과학인재 아카데미]

    육성 아닌 유인… 예비 과학인재 위한 ‘사다리’ [K-과학인재 아카데미]

    ‘호반그룹과 함께하는 K-과학인재 아카데미’에서는 학계, 산업계, 교육계, 학생들이 타운홀 미팅에 참여해 과학인재를 어떻게 늘릴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해법을 도출한다. ‘세대를 이어주는 질문, 과학기술을 묻다’ 타운홀 미팅은 오는 26일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본 행사의 마지막 세션으로 ‘과학인재의 시작, 육성이 아닌 유인의 문제’를 주제로 열린다. 토론 패널로는 강성란 능동고 교장, 윤성희 에루디오바이오 대표, 강지영 부경대 과학컴퓨팅학과 교수 등이 나선다. 능동고의 7대 교장인 강 교장은 이공계 인재들이 과학고와 자율형사립고에 집중된 상황에서 일반고가 주도할 수 있는 이공계 인재 양성 생태계에 대해 언급한다. 다른 참가자인 윤 대표는 SK하이닉스 부사장과 가우스랩스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지낸 기업가다. 그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기술을 바이오에 접목한 바이오티캐드 플랫폼을 이용해 글로벌 바이오 기술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또 강 교수는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원리를 물리적 모델로 규명하는 생명 이론 물리 및 신경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타운홀 미팅에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도 참여한다. 이들이 K과학인재 아카데미 연중 프로그램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향후 대학생은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고교생은 멘토링·과학 캠프 등을 통해 선제적으로 국내 연구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 또 이들은 연구자 및 산업계와 연결될 기회를 제공받는다. 이달 중 서울대와 협력해 대학생 팀 프로젝트에 참여할 10개 팀이 선발되며, AI, AI+X(AI와 전통 산업 시스템과의 결합), 물리, 화학 등 4개의 지원 분야에서 연구계획을 접수 받는다. 선발된 팀은 프로젝트를 수행한 뒤 연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팀별로 연구비 200만원이 지원되며 비전 선포식 및 포럼 참여는 물론 향후 창업·사업화 연계 지원도 제공된다. 최종 심사를 거쳐 선발된 상위 3개 팀에는 총 6000만원 규모의 시상금이 지급된다. 고교생을 대상으로는 여름방학 기간인 오는 7~8월 중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과학 캠프가 운영된다. 2박 3일 동안 진행되는 과학캠프에서는 차세대 과학 인재의 조기 발굴을 위한 진로 탐색 기회가 제공된다. 선발 인원은 30명이다.
  • 인재와 미래의 초연결… 26일 한국 과학 백년대계 열린다 [K-과학인재 아카데미 비전선포식]

    인재와 미래의 초연결… 26일 한국 과학 백년대계 열린다 [K-과학인재 아카데미 비전선포식]

    노벨상 수상자들도 한자리에… 이공계 기피 넘을 해법 찾는다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과학·기술 인재의 육성 방안을 모색하는 ‘호반그룹과 함께하는 K-과학인재 아카데미’가 오는 26일 첫발을 내딛는다.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미래를 짓고, 인재를 잇다’다. 호반그룹과 호반장학재단이 주최하고 서울신문과 전자신문이 주관한다. 학계·산업계·교육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학 인재 육성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호반그룹과 서울대는 로봇과 함께하는 K-과학인재 아카데미업무협약(MOU)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예비 과학 인재들이 연구 경험을 넓힐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한다. 이번 행사는 국가적 난제로 떠오른 이공계 기피와 의대 쏠림 현상을 극복하고 정부의 과학기술 인재 육성 정책에 발맞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201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랜디 셰크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분자생물학과 교수와 2025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오마르 M 야기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화학과 교수 등 국내외 석학들이 기조강연 등을 통해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 밖에 인공지능(AI) 로봇과 함께하는 포토존 등 풍성한 볼거리로 흥미로운 과학기술을 만날 수 있다. 국내외 과학기술계 교수, 연구자, 학생 등의 뜨거운 관심 속에 열리는 이번 행사는 오전 9시 30분에 공식 행사를 개막한다. 이어 MOU 체결식이 열리며 기조강연, 패널 토의, 콘퍼런스, 타운홀 미팅 순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미래를 만드는 연구는 무엇인가’라는 대주제로 진행되는 첫 번째 기조강연 세션에서는 셰크먼 교수가 ‘파킨슨병을 기초과학으로 해결하기’를 주제로 강연한다. 셰크먼 교수는 세포 내 단백질 수송 메커니즘을 유전학적으로 규명해 세포 단백질 운반 시스템 이해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과학자다. 이어 야기 교수가 녹화 강연을 통해 ‘미래를 만드는 기초과학’을 주제로 발표한다. 야기 교수는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개발해 새로운 다공성 재료 설계에 혁신을 가져온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연구자다. MOF는 이산화탄소 포집이 가능해 기후위기 대응에도 활용될 수 있다. 두 노벨상 수상자의 기조강연을 관통하는 공통 키워드는 ‘기초과학’이다.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필요한 기초과학 분야의 열악한 연구 환경과 처우 문제는 과학기술 인재들이 연구 현장을 떠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왔다. 이번 아카데미를 계기로 기초과학 인재들이 연구 현장을 떠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대한 논의가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 인재를 통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열리는 두 번째 기조강연에서는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연단에 오른다. 장 교수는 AI 연구를 이끌며 차세대 과학 인재 양성과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 확장에 참여해 온 연구자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인공지능의 진화: 상징에서 몸을 가진 지능까지’를 주제로 발표한다. 이어 정연욱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이자 양자정보연구지원센터장이 ‘양자 시대에 필요한 미래 인재의 역량’을 주제로 강연한다. 정 교수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선임·책임연구원을 거쳐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Boulder) 객원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연구자다. 그는 현재 초전도체 기반 양자정보처리와 양자소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 다뤄질 주요 주제들은 서울신문 ‘K사이언스랩’이 두 차례 시리즈로 연재한 ‘초격차 과학인재 1만 명 프로젝트’를 통해 조명한 연구 생태계의 구조적 한계와 제도적 과제, 과학자를 대하는 사회적 위상 문제 등과 맞닿아 있다. 행사에서 교육계 관계자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이공계 인재 양성과 연구 환경 개선을 위한 제언을 내놓는다. K-과학인재 아카데미는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지속 가능한 과학 인재 육성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앞으로 과학기술 인재로 성장하고 있는 대학·고등학교 재학생들의 도전과 꿈을 응원하는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한다. ■주최 : 호반그룹·호반장학재단 ■주관 : 서울신문·전자신문 ■장소 :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
  • 일곱 보물이 숨겨진, 괴산 칠보산의 산행

    일곱 보물이 숨겨진, 괴산 칠보산의 산행

    충북 괴산에는 깊은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산들이 여럿 자리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독특한 암릉과 시원한 조망으로 많은 산행객의 발걸음을 끄는 산이 있다. 높이 778m의 칠보산이다. 이름처럼 ‘일곱 가지 보물’을 품고 있다는 의미를 지닌 이 산은 험하지 않으면서도 산행의 재미와 풍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칠보산의 산세는 비교적 부드럽지만 곳곳에 솟은 바위 능선이 산의 분위기를 한층 더 웅장하게 만든다. 숲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암릉이 나타나고, 바위 위에 서면 주변 산세가 한눈에 펼쳐진다. 특히 정상 부근에서는 충북 내륙 특유의 겹겹이 이어지는 산줄기가 시원하게 이어지며 깊은 산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산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도 유명하다. 칠보산 자락에는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쌍곡계곡이 자리하고 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과 울창한 숲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사계절 내내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특히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을 찾는 사람들로 활기를 띠는 곳이기도 하다. 칠보산을 찾았다면 인근의 고찰 각연사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사찰은 괴산의 깊은 산중에 자리한 사찰로, 울창한 숲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곳이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석조 유물들이 남아 있어 오랜 세월을 간직한 사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산행을 마친 뒤 잠시 들러 조용한 산사의 풍경을 바라보고 감로수 한 잔으로 목을 축이는 것도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이 된다. 산행은 보통 쌍곡계곡 일대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비교적 완만해 걷기 편하고, 능선에 오르면 시야가 열리며 주변 산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위 능선이 이어져 산행의 재미를 더한다. 높이는 700m대이지만 조망이 좋아 산을 오르는 동안 풍경이 끊임없이 바뀐다. 정상에 서면 괴산의 깊은 산줄기와 숲이 한눈에 펼쳐진다. 멀리 이어진 산세와 계곡 풍경이 어우러져 내륙 산악지대 특유의 웅장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바람이 능선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이곳이 왜 많은 산행객이 찾는 명산으로 꼽히는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기암과 숲, 그리고 맑은 계곡이 함께 어우러진 산. 괴산의 칠보산은 화려하게 드러나기보다 자연 그대로의 풍경 속에서 천천히 그 매력을 보여주는 산이다.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깊은 산속으로 들어온 듯한 풍경이 펼쳐지고, 그 속에서 칠보산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
  • 일곱 보물이 숨겨진, 괴산 칠보산의 산행 [두시기행문]

    일곱 보물이 숨겨진, 괴산 칠보산의 산행 [두시기행문]

    충북 괴산에는 깊은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산들이 여럿 자리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독특한 암릉과 시원한 조망으로 많은 산행객의 발걸음을 끄는 산이 있다. 높이 778m의 칠보산이다. 이름처럼 ‘일곱 가지 보물’을 품고 있다는 의미를 지닌 이 산은 험하지 않으면서도 산행의 재미와 풍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칠보산의 산세는 비교적 부드럽지만 곳곳에 솟은 바위 능선이 산의 분위기를 한층 더 웅장하게 만든다. 숲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거대한 암릉이 나타나고, 바위 위에 서면 주변 산세가 한눈에 펼쳐진다. 특히 정상 부근에서는 충북 내륙 특유의 겹겹이 이어지는 산줄기가 시원하게 이어지며 깊은 산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산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도 유명하다. 칠보산 자락에는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쌍곡계곡이 자리하고 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과 울창한 숲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사계절 내내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특히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을 찾는 사람들로 활기를 띠는 곳이기도 하다. 칠보산을 찾았다면 인근의 고찰 각연사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사찰은 괴산의 깊은 산중에 자리한 사찰로, 울창한 숲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곳이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석조 유물들이 남아 있어 오랜 세월을 간직한 사찰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산행을 마친 뒤 잠시 들러 조용한 산사의 풍경을 바라보고 감로수 한 잔으로 목을 축이는 것도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이 된다. 산행은 보통 쌍곡계곡 일대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비교적 완만해 걷기 편하고, 능선에 오르면 시야가 열리며 주변 산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위 능선이 이어져 산행의 재미를 더한다. 높이는 700m대이지만 조망이 좋아 산을 오르는 동안 풍경이 끊임없이 바뀐다. 정상에 서면 괴산의 깊은 산줄기와 숲이 한눈에 펼쳐진다. 멀리 이어진 산세와 계곡 풍경이 어우러져 내륙 산악지대 특유의 웅장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바람이 능선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이곳이 왜 많은 산행객이 찾는 명산으로 꼽히는지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기암과 숲, 그리고 맑은 계곡이 함께 어우러진 산. 괴산의 칠보산은 화려하게 드러나기보다 자연 그대로의 풍경 속에서 천천히 그 매력을 보여주는 산이다.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깊은 산속으로 들어온 듯한 풍경이 펼쳐지고, 그 속에서 칠보산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
  • 손끝의 고백처럼 느리게… 신라의 봄밤을 거닐다[박상준의 문장 여행]

    손끝의 고백처럼 느리게… 신라의 봄밤을 거닐다[박상준의 문장 여행]

    작은 고분 ‘마총’ 찾아가는 길아득한 사랑의 시작이 떠올라오아르미술관 창문 너머 고분금관총 지나 봉황대까지 산책3월 대릉원의 밤은 목련 명소불같은 사랑의 계절 지나간 듯황남리고분군에선 평온하게어느 커다란 무덤 앞에서 당신이 내 손바닥을 펴더니 손끝을 세워 몇 개의 글자를 적어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 손바닥을 접어주었다. 나는 무엇이 적힌 줄도 모르면서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 -‘그해 경주’(박준) 당신이 내 손바닥에 적은 건 사랑의 고백이었을까. 봄밤의 서정이었을까. 아니면 말로 할 수 없어 그려 나간 암호 같은 기호였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손끝을 세워 점 하나를 찍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사는 이 도시에서, 커다란 무덤은 유구한 약속의 증표였으며 그 또한 하나의 점을 찍는 데서 출발했을 터이므로. ●사랑이 꽃피는 무덤가에서 제133호 고분 마총(馬塚)은 제일 작은 무덤이다. 경북 경주시에 가기 전, 지도 앱을 펼치고 손가락 끝으로 위치를 옮겨 다녔다. 노서동에서 노동동으로 황리단길을 건너 대릉원으로 가장 작은 고분을 찾으려 이름 없는 작은 원들을 살폈다. 점 하나라도 남기고 싶은 절박한 심정은 왜 꼭꼭 숨겨둔 사랑의 고백을 닮아 보이던지. 알고는 있다. 고분의 크기가 곧 권위다. 작은 무덤은 말석일 확률이 높다. 지도의 축척조차 표현하지 못한 너비가 있을 것이고, 그 터만 남아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했을 것이다. 또 어떤 무덤은 이름조차 얻지 못한다. 고분에는 능(陵)이 있고, 총(塚)이 있고, 분(墳)이 있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미추왕릉은 삼국유사에 그의 무덤이라 기록된 바다. 총은 유물이 있어 왕릉으로 추정하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덤이다. 금관이 나와서 금관총이고 천마도가 나와서 천마총이라 부른다. 가치는 있으나 유물도 없고 주인도 모르는 큰 무덤은 분이다. 분의 근원을 알 수 있는 무언가가 나오면 총이 되고 능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 실은 어느 것이 크고 어느 것이 작은 무덤인지 알 수 없다. 오늘은 그저 눈에 띈 가장 작은 것을 찾아 헤맬 따름이다. 왠지 그것이 ‘그해 경주’를 닮은 사랑의 깃대가 되어 줄 듯해서. 마총에 가려고 경주역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 앞자리에는 젊은 연인이 앉았다. 버스는 황리단길까지 20분이 걸렸다. 그 짧은 동안에도 그들은 사소하게 다투고 서둘러 화해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남자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사랑해.” 나는 왜 이토록 일상적인 사랑의 뒷자리에 앉아 있는가. 설레고 흔들리는 마음,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개만 끄덕이게 하는 불안한 흔적들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지난해 가을, 우연한 기회로 경주에서 박준 시인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시를 느리고 모호하게 표현하는 문학이라 정의했다. 뜨거운 감정은 말로 전하기 힘들어, 뜨거운 채로 건네지면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에둘러 건네는 복잡한 마음은 부풀어 시가 된다. 그날 시인이 읽어준 시가 ‘그해 경주’였다. 시인의 육성을 들으며 문득 이 시가 생각나면 다시 경주를 찾아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내게도 아득한 어느 날 당신이 손끝을 세워 써준 몇 개의 글자가 있을 테고, 접었던 손바닥을 스스로 펴보면 암호 같던 그 말들을 뒤늦게나마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작은 고분과 명소가 된 미술관 마총은 노서리고분군 가장자리에 간신히 걸쳐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지름 11~14m, 높이 3.4m인 이 작은 무덤은 ‘고분’이란 말조차 버거워 보인다. 처음 연 지도에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작은 원이었다. 다른 지도에는 방문자 리뷰가 4건 있었는데 대체로 노서리고분군을 대신한 표시였다. 그나마 이름이 있고 안내판이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말뼈와 마구가 발견되어 붙은 마총은 얼마나 무심한 명명인가. 고분의 위용은 외려 이름 없는 134호 고분이 두드러진다. 남과 북의 두 기가 겹친 규모로 마총을 압도한다. 마총 곁에는 지난해 4월 1일 오아르미술관이 개관했다. 작은 고분 곁에 일어난 거짓말 같은 일. 오아르는 ‘오늘 만나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유현준 건축가가 설계했다. 건축가의 명성 덕분인지 단숨에 경주의 명소로 떠올랐다. 고분과 접한 미술관 동쪽은 2층 전체가 거대한 창이다. 고분군의 풍경을 잔뜩 품어 안는다. 그래서 미술관을 소개하는 글에는 어김없이 ‘고분을 품은 미술관’ ‘왕릉 뷰’라는 수사가 따른다. 그때 고분과 왕릉에는 금관총과 봉황대 등 커다란 고분이 오르내린다. 마총은 미술관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슬며시 이름을 감춘다. 작은 봉분을 마주하려 미술관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을 여는 건 고작 작은 열쇠 하나다. 미술관 1층은 카페와 전시장이 공존한다. 카페만 이용할 수도 있는데 다정한 시간을 원하는 연인들은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이 1층에서 바라보는 건 어김없이 마총이다. 거대 고분군을 배경으로 소담하게 솟은 마총은 아래쪽 석재가 높이의 절반을 차지한다. 기단처럼 보이지만 봉분 안의 널길이나 돌방의 일부일 것이다. 본래의 크기는 인근에 있는 쌍상총(지름 17m, 높이 5m) 정도로 추정한다. 그러니 카페에서 보이는 마총의 서남쪽은 훼손된 형체, 시간이 지나 부서지고 무뎌진 자취다. 그 자리에서 ‘그해 경주’는 마총으로 인해 달리 읽힌다. 당신이 내 손바닥에 적은 말들은 어쩌면 접어 쥔 손안에서 모래시계처럼 흘러내려 이별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해 경주’가 실린 산문집의 제목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이다. 사랑이 지나간 후의 노래 같아서 책 속에는 ‘그해’로 남은 시가 유독 많다. ‘그해 인천’과 ‘그해 경주’가 첫 장을 열고 여수, 협재, 묵호, 행신, 삼척을 지나 ‘그해 연화리’라는 글로 닫힌다. 그해 경주에서, 시 속의 당신과 내가 나란히 앉아 바라보던 무덤은 혹여 마총 같은 자그마한 고분은 아니었을까. 다만 사랑했으므로 우리의 맹세는 그 무덤을 커다랗다고 믿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경주의 시간을 걷는 길 오아르미술관 2층에는 134호 고분의 정상부가 눈을 맞춘다. 마총은 보이지 않는다. 134호 고분은 하부가 절반쯤 사라진 높이로 주변의 고분과 부유한다. 창가로 한 걸음 다가가자 비로소 마총이 보인다. 한층 낮아진 고분 곁으로 손을 마주 쥔 연인들이 지난다. 그들에게는 이 모든 고분이 사랑의 배경이 될까. 마침 전시의 제목은 ‘잠시 더 행복하다’(2026년 3월 16일까지)다. 박서보, 야요이 쿠사마, 줄리안 오피 등의 작품을 본다. 시간을 겹겹으로 쌓아 그리는 박서보, 이우환과, 김문호 관장이 천진함에 반했다는 아야코 록카쿠가 세대를 넘나든다. 작품은 없지만 옥상은 잠시 더 행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소다. 계단식 전망대가 고분 위에 앉아 경주를 내려다보는 듯한 시점을 제공하는데, 봉분들은 파도처럼 넘실대고 능선 끝에서 기어이 경주 남산까지 가닿는다. 교촌마을의 한옥 또한 옹기종기하다. 천년 경주의 스펙트럼이 그 한 장면 안에 있다. 다시 부풀고 설레는 마음. 이런 황홀한 풍경을 같이 바라볼 때, 연인은 그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처음으로 손을 잡을지 모르겠다. 미술관을 나와서는 금관총을 지나 봉황대를 돌아본다. 그러고는 대릉원으로 옮겨간다. 오로지 고분만을 따라 걷는 산책이다. 지도 위에 무뚝뚝한 직선을 그으면 500~600m 남짓이지만 발끝을 세워 걸으니 누그러져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이때만은 옛 무덤의 문을 두드리듯 능이나 총이라 이름 붙여진 고분의 사연을 물어도 좋겠다. 금관총은 봉분이 없다. 대신 돔을 덮어 유적 전시관으로 거듭났다. 신라의 고분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그 대답이 금관총 안에 고스란하다. 지난해 APEC 2025 정상회의 기간,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 금관 여섯 점을 한데 전시해 주목받았다. 금관총은 처음 신라의 금관을 발견한 고분이다. 주막 주인이 언 땅을 파헤친 게 계기다. 2013년에는 ‘이사지왕’(爾斯智王)이란 이름을 새긴 고리자루큰칼이 출토되며 한 번 더 세상을 놀라게 했다. 봉황대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다. 마총과 반대로 경주에서 가장 큰 고분이다. 지금은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조선시대 문인들은 구릉인 줄 알고 올라 경주를 조망하는 시를 읊었다. 고목 아홉 그루가 사슴 뿔처럼 무덤을 장식한다. 보는 방향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 연인들은 자꾸만 무덤 주위를 맴돈다. ●봄밤 그리고 목련 대릉원은 봄밤의 다정한 산책에 적합하다. 노서리와 노동리고분군이 집들과 경계 없이 한데 어울린다면 미추왕릉, 천마총, 황남대총은 담장을 둘러 한층 은밀하다. 어둠에 묻힌 능은 서로의 능선이 엇갈리며 길을 만들고, 그 사이로 다정한 걸음을 낼 때 봄밤의 상큼한 기운을 물씬 풍긴다. 그 또한 밤의 무덤일 텐데 두렵지 않은 건 왜일까. 고분과 고분, 대나무숲과 연못 사이를 거닐 때는 도심마저 잊힌다. 손끝에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연인들은 3월 중순이 나을 수도 있겠다. 대릉원 황남대총 동쪽은 목련 한 그루가 유명하다. 박준 시인의 ‘그해 경주’를 사진으로 그려내면 이런 장면이 아닐까. 두 봉분 사이로 하얗게 핀 목련은 고분 위에 쓰인 연서인 듯 하다. 목련 앞에는 사진으로 추억하려는 이들이 늘 길게 늘어선다. 고분의 목련은 경주오릉도 뒤지지 않는다. 오릉은 ‘능’이니 그 이름의 주인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삼국사기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왕비 알영부인 그리고 후대 네 임금의 무덤이라 기록한다. 경주오릉 숭덕전 담장에는 여러 그루의 목련이 전각보다 높게 자란다. 잎도 나기 전에 꽃부터 피운 나무는 사랑에 비유하면 풋풋하여 풋사랑이다. 그래서 어느 날 후드득 꽃잎을 떨구는 것이려나. 대릉원과 오릉 사이에는 황남리고분군이 있다. 고분 사이에 키 큰 메타세쿼이아가 눈길을 끈다. 남쪽에는 테라로사 경주점이 있는데 한옥의 대청마루에서 그 전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먼 데서 보는 황남리고분군은 지척의 노서동이나 품 안의 대릉원과는 또 다른 감흥을 안긴다. 불같은 사랑이 지나가고 평온한 시절의 연인을 보는 듯 하다. “손끝을 세워 몇 개의 글자를 적어” 보는 대신 발끝을 세워 나란하게 지나온 궤적들, 오므린 손바닥을 가만히 펴서 지난 ‘그해’의 시간들을 들여다본다. 사랑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셈할 수 없는 발견이었을 뿐, 간절한 것은 또 얼마나 오래 걸려 이곳으로 왔던가.
  • [세종로의 아침] 관광에 ‘1만 시간’ 투자했더라면

    [세종로의 아침] 관광에 ‘1만 시간’ 투자했더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여행에 진심인 편이다. 고래가 길을 잃고 해안으로 쓸려오고, 오사카 도톤보리강에 물고기 떼가 몰려와 대지진의 전조를 알려도 관심을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그 덕에 일본은 지난해 역대 최대 관광 실적(4268만 3600명)을 수확했다. 그중 최고 공신은 단연 방문객 1위 한국인(945만 9600명·22%)이었다. 처음엔 낮은 환율 덕이라 보는 견해가 우세했다. 하지만 단지 ‘싸서’ 가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환율 변동과 무관하게 일본 방문의 흐름은 늘 견고하다. 우리가 일본에서 소비하는 다른 뭔가가 있다는 얘기다. 좀더 자극적인 이야기 하나 더. 한국은 일본보다 관광 강국이었다. 외래 관광객 1000만명이라는 이정표도 한국이 일본보다 1년 빠른 2012년에 달성했다. 2015년에 이 구도가 뒤집힌다. 이후 역전 구도가 깨진 적은 없다. 이유가 뭘까. 우리와 일본의 차이 말이다. 이를 살피는 건 곧 한국 관광의 미래를 모색하는 과정이다. 원인은 무수히 많을 터. 우선 관광 정책의 지속성과 우리 안의 냉소주의부터 들여다보자. 대구 남구의 앞산 아랫마을에 빨래터 축제라는 게 있었다. 빨래터 공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축제다. 빨래터라….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연분홍 수양벚꽃이 흐드러진 우물가에 동네 아낙이 우르르 모여 앉아 빨래하는 장면이라니. 세상 어느 남정네가 벚꽃 아래에서 빨랫방망이를 내려치는 여인네를 보며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지 않으랴. 어딘가 본능에 호소할 소지가 다분한 그림이다. 축제 구성도 신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젊은이들의 동참을 끌어내는 방식이 특히 그랬다. 앞산 아래는 대명공연문화거리로 소극장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 하는’ 젊은이들은 배가 고프다. 축제는 그 청년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활용해 흥을 불어넣는 프로그램들로 빼곡히 채웠다. 몇 해 뒤 대구 출장길에 관계자에게 물었다. 올해 빨래터 축제는 언제 열리냐고. 끝났단다. 그새 자치단체장이 바뀌었고, 그는 전임자의 흔적이 역력한 축제를 그냥 두지 않았다고 했다. 명칭부터 캐릭터가 불분명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강원 원주의 국제따뚜축제도 비슷하다. 이름도 독특한 따뚜축제는 각국 군악대가 모여 퍼레이드도 하고 공연도 여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 역시 2010년에 자진 해산 형식으로 사라졌다. 따뚜축제가 지속해 관록을 쌓았더라면 어땠을까. 반면 일본은 2003년 당시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관광홍보 CF에 출연해 요코소 재팬(‘어서 오세요, 일본으로’) 캠페인을 알린 이후 관광홍보 정책을 지속해 오고 있다. 나라 안팎의 정세가 바뀌고, 정파도 변했지만 ‘내일의 일본을 지탱하는 관광 비전’이란 국가 전략이 수정된 적은 없다. 우리 안의 냉소주의도 걷어내야 한다. 여론조사 때마다 해외로 나가는 이유로 국내 콘텐츠 부족을 꼽는 이가 많다. 지방 출장 때마다 현지인에게 듣는 이야기인 “우리 동네 뭐 볼 게 있냐”는 것과 얼개가 똑같다. 지역민이 그렇듯, 혹시 우리가 우리나라 사람이어서 볼 게 없다는 생각을 갖는 건 아닐까. 얼마 전 확대국가관광전략회의가 열렸다. 국무총리가 주재하던 종전과 달리 대통령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사실 관광산업 논의 자리에 대통령이 서는 건 정치적으로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 허구한 날 적자만 내는 자리에 참석해 봐야 득보다 실이 많을 게 뻔해서다. 회의 결과와 관계없이 이 점만으로도 박수받을 일이라 여겨진다. 아이 하나 키울 때 온 마을이 필요하듯, 관광산업을 일으키려면 온 나라가 나서야 한다는 걸 대통령이 보여 줬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의 “한국은 살아 보고 싶은 나라”란 말도 인상적이다. 관광의 목적과 정확히 부합해서다. 살고 싶은 곳의 다른 이름은 ‘복지’다. 삶의 현장을 누구나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 그게 국민 복지 아닌가. 관광은 그 이후에 자연스레 따라온다. 손원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 바다로 열린 산, 남해를 품은 고흥 남쪽 끝 천등산

    바다로 열린 산, 남해를 품은 고흥 남쪽 끝 천등산

    전남 고흥군 남쪽 끝자락, 바다를 향해 길게 열린 산이 있다. 도화면 신호리와 포두면 봉림리, 풍양면 송정리에 걸쳐 자리한 천등산(해발 553.5m)이다. 고흥에서 팔영산, 적대봉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으로 천등산의 이름은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천등(天燈)’이라 불렸다는 설과 옛 승려들이 정상에 올라 천 개의 등불을 밝혔다는 이야기, 또는 산 아래 사찰의 스님들이 수행을 위해 밤마다 등불을 켜 산이 환하게 빛났다는 전설까지 여러 이야기가 겹치며 오늘의 이름을 완성했다. 산 아래에서 바라본 천등산은 다소 무심한 바위산처럼 보인다. 그러나 능선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면 풍경은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흩어지고 갈라진 암릉이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지형, 곳곳에 드러난 너럭바위와 바위 능선은 걷는 이의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한다. 특히 정상 아래 ‘신선대’라 불리는 바둑판 모양의 너럭바위는 이 산이 품은 여백의 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상에 서면 왜 이곳이 ‘바다로 열린 산’이라 불리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남해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맑은 날이면 다도해의 섬들이 점점이 떠 있으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고흥 들녘과 팔영산 능선의 실루엣은 긴 산행의 수고를 충분히 보상한다. 또한 봉수대가 설치되어 동쪽의 마복산 봉수, 서쪽의 장기산 봉수와 서로 응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바다를 향해 열린 지형 덕분에 천등산은 예로부터 군사·통신의 요충지였다. 봄철 천등산은 또 다른 색으로 물든다. 4월과 5월 사이, 중턱 철쭉공원 일대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번지듯 피어나 붉은 띠를 이룬다. 멀리서 보면 단조로운 암산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꽃과 바위, 바다가 어우러진 다층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그 조화는 이 산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천등산 동쪽 산허리에는 천년 고찰 금탑사가 자리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전승이 전하며, 경내의 극락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제1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 아래에는 천연기념물 제239호로 보호받는 비자나무 숲이 고요히 둘러서 있다. 수령 300여년에 이르는 비자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어 사찰을 감싸는 또 하나의 숲을 이룬다. 산행 중 잠시 숨을 고르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등산 코스는 비교적 짧고 간결하다. 풍양 사동마을에서 안치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은 약 2.7km로 1시간 40분 소요된다. 금탑사에서 출발해 정상과 안치재를 잇는 코스는 3.8km로 조금 더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다. 송정마을에서 딸각산과 헬기장을 경유하는 길 역시 비슷한 거리로, 각 코스마다 암릉과 조망 포인트가 다채롭다.
  • 바다로 열린 산, 남해를 품은 고흥 남쪽 끝 천등산 [두시기행문]

    바다로 열린 산, 남해를 품은 고흥 남쪽 끝 천등산 [두시기행문]

    전남 고흥군 남쪽 끝자락, 바다를 향해 길게 열린 산이 있다. 도화면 신호리와 포두면 봉림리, 풍양면 송정리에 걸쳐 자리한 천등산(해발 553.5m)이다. 고흥에서 팔영산, 적대봉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으로 천등산의 이름은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천등(天燈)’이라 불렸다는 설과 옛 승려들이 정상에 올라 천 개의 등불을 밝혔다는 이야기, 또는 산 아래 사찰의 스님들이 수행을 위해 밤마다 등불을 켜 산이 환하게 빛났다는 전설까지 여러 이야기가 겹치며 오늘의 이름을 완성했다. 산 아래에서 바라본 천등산은 다소 무심한 바위산처럼 보인다. 그러나 능선을 따라 오르기 시작하면 풍경은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 흩어지고 갈라진 암릉이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지형, 곳곳에 드러난 너럭바위와 바위 능선은 걷는 이의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한다. 특히 정상 아래 ‘신선대’라 불리는 바둑판 모양의 너럭바위는 이 산이 품은 여백의 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상에 서면 왜 이곳이 ‘바다로 열린 산’이라 불리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남해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맑은 날이면 다도해의 섬들이 점점이 떠 있으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고흥 들녘과 팔영산 능선의 실루엣은 긴 산행의 수고를 충분히 보상한다. 또한 봉수대가 설치되어 동쪽의 마복산 봉수, 서쪽의 장기산 봉수와 서로 응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바다를 향해 열린 지형 덕분에 천등산은 예로부터 군사·통신의 요충지였다. 봄철 천등산은 또 다른 색으로 물든다. 4월과 5월 사이, 중턱 철쭉공원 일대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번지듯 피어나 붉은 띠를 이룬다. 멀리서 보면 단조로운 암산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꽃과 바위, 바다가 어우러진 다층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그 조화는 이 산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천등산 동쪽 산허리에는 천년 고찰 금탑사가 자리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전승이 전하며, 경내의 극락전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제1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 아래에는 천연기념물 제239호로 보호받는 비자나무 숲이 고요히 둘러서 있다. 수령 300여년에 이르는 비자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어 사찰을 감싸는 또 하나의 숲을 이룬다. 산행 중 잠시 숨을 고르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등산 코스는 비교적 짧고 간결하다. 풍양 사동마을에서 안치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은 약 2.7km로 1시간 40분 소요된다. 금탑사에서 출발해 정상과 안치재를 잇는 코스는 3.8km로 조금 더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다. 송정마을에서 딸각산과 헬기장을 경유하는 길 역시 비슷한 거리로, 각 코스마다 암릉과 조망 포인트가 다채롭다.
  • 신라 금관 오픈런 110일… 28만여명 경주 달궜다

    신라 금관 오픈런 110일… 28만여명 경주 달궜다

    지난 22일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 전시 마지막 날.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 입구에는 매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전시장 입구 주변에는 미처 티켓을 구하지 못해 멀찍이서 전시 일부라도 보려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신라 금관 6점을 104년 만에 한 자리에 모아 ‘금관 오픈런’(매장이나 전시가 열리자마자 달려가는 현상)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던 특별전이 28만 5401명의 관람객을 기록하며 마무리됐다. 경주박물관은 110일 동안 열렸던 전시에 하루 평균 2600명이 다녀갔다고 밝혔다. 특히 관람 인원을 30분 간격의 회차당 150명, 하루 2550명으로 제한했음에도 전 회차 매진을 기록했다. 특별전은 신라 금관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지 104년 만에 여섯 점의 신라 금관과 여섯 점의 금허리띠가 모두 한자리에 모인 사상 최초의 전시였기에 기획 단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개막 직전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복제품을 선물하면서 전세계에서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전시는 많은 기록과 이슈를 낳았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이 몰리면서 애초 지난해 12월 14일까지 예정되었던 전시는 지난 22일까지 연장됐다. 경주박물관은 관람 환경과 전시품의 안전을 고려해 30분 간격의 회차제 관람과 온라인 사전 예약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또 경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신라 금관 경주존치 범국민운동연합’을 결성하고 신라 금관을 모두 경주에서 소장해야 한다는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식을 줄 모르는 인기에 박물관은 10년마다 주기적으로 금관 전시를 개최해 박물관의 브랜드 전시로 자리 잡도록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금관 6점 중 황남대총 금관과 금령총 금관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서봉총 금관은 국립청주박물관으로 돌아갔다. 천마총 금관·교동 금관은 경주박물관 상설실에서 전시되며 금관총 금관은 경남 양산시립박물관에서 다음달 6일부터 열리는 ‘삽량(歃良), 위대한 양산’전에서 만날 수 있다. 금관총 금관은 5월과 9월에 프랑스 파리와 중국 상하이에서 신라 금관을 포함한 신라 특별전에 나설 예정이다. 윤상덕 경주박물관장은 “앞으로도 신라 문화의 정수를 담은 기획전을 국내외에 활발히 개최해 신라문화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노후화 심한 불국사 대웅전 올해 해체 수리

    8세기 통일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경주 불국사 대웅전이 올해 해체 수리에 들어간다. 심한 노후화로 인해 수리가 불가피하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오면서다. 23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최근 열린 문화유산위원회 건축문화유산분과 회의에서 ‘2025년 중점 관리 대상 문화유산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하면서 불국사 대웅전을 보수가 필요한 E등급으로 평가했다. 보물인 불국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절의 중심 불전이다. 앞뜰에는 국보 다보탑(동쪽)과 석가탑(서쪽)이 각각 세워져 있다. 대웅전은 앞서 2023년 점검에서도 주요 구조 부재 전반에서 파손, 처짐 등 현상이 나타났고 나무 부재 곳곳에서 균열이 확인됐다. 지난해 2월에는 천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구조물인 반자 부재 일부가 떨어지기도 했다. 유산청 관계자는 “이미 수리가 예정돼 있었고 예산이 반영돼 올해 하반기쯤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었다”며 “어느 정도 수리가 필요할지는 일단 지붕 쪽 기와를 뜯어보고 조사해봐야 알 수 있지만, 부재별로 완전 해체하는 수준까지는 아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마감 후] 영감은 또 다른 영감을 낳고

    [마감 후] 영감은 또 다른 영감을 낳고

    올해 초 ‘선물’과 같은 시간이 있었다. 창덕궁 옆 작은 카페에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이수지와 소설가 김연수, 음악 듀오 솔솔이 함께 마련한 ‘눈 내리는 삼일포’ 토크콘서트에 참석했다. 현장을 찾은 관객들은 좀먹은 18세기 그림에서 시작된 영감이 그림책이 되고 그림책이 다시 소설과 음악이 되는 순간을 함께 목격하고 즐겼다. 이야기는 2022년 5월 성북구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시작된다. 당시 미술관은 소장품의 일부를 복원·보존 처리해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중에는 현재 심사정(1707~1769)이 그린 ‘삼일포’가 있었다. 삼일포는 금강산에서 흘러나온 신계천이 36개 봉우리에 가로막혀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신라 화랑들이 들렀다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사흘 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져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림은 쪽빛 배경 곳곳에 하얗고 동글동글한 눈이 내려 운치를 더한다. 사실 여기에는 멋진 이야기가 숨어 있다. 눈처럼 보이는 흰 점은 좀이 갉아먹어 구멍이 난 흔적으로 화첩 속에 접혀 있던 까닭에 데칼코마니처럼 좌우대칭으로 예쁘게 구멍이 났다. 담당 학예사는 이 구멍들을 보이지 않게 메울 것인지 고민했지만 그동안 관람객들이 구멍을 그림의 일부로 사랑해 온 역사를 감안해 결국 ‘눈 내리는 모습’을 유지한 채 복원했다. 이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이수지는 2024년 ‘눈 내리는 삼일포’라는 그림책을 선보였다. 그는 ‘삼일포’의 장면을 가운데 두고 앞뒤로 살을 붙여 그림책을 완성했다. 조금씩 내리던 눈은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쌓여 가더니 마침내 화면을 온통 하얗게 채우면서 끝난다. 구멍이 뚫린 표지도 인상적이다. 그림책은 김연수에게 또 다른 영감이 됐다. 그는 동명의 소설을 지난해 1월 ‘현대문학’ 70주년 기념 특대호에 실었다. 그리고 주석에 “서울 서촌의 한 음식점에서 이수지 작가가 한 장씩 넘기며 ‘눈 내리는 삼일포’를 보여 줬다. 이 소설은 그 순간부터 쓰이기 시작했기에 이렇게 밝혀 둔다”고 적었다. 17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어의에게 학질(말라리아)에 걸린 딸을 살려 달라며 ‘덕암’이라는 남자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솔솔은 동명의 제목으로 조선시대 정가(감정을 절제하고 품위 있게 부르는 전통 성악곡) 형식의 음악을 만들었다. 토크콘서트에서는 이수지의 그림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상과 김연수의 낭독이 어우러졌다. 솔솔은 기교와 감성을 깊게 담아내는 시창의 선율을 통해 눈이 내리는 순간의 서정과 시간의 흐름을 담아냈다. 여기에 해금과 피리 연주가 더해져 깊이를 더했다. 옛 예인들의 경연을 봤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각자의 분야에서 예술적 완성도를 높인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며 진정한 풍류의 장에 초대된 것 같았다. 예술이란 멈춰 있는 유물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해 끊임없이 흐르는 대화와 같다. 좀 먹은 흔적을 지우는 대신 현 시대의 관람객이 작품과 함께한 역사를 고려한 학예사의 안목, 그리고 글과 그림, 음악으로 키워낸 예술가들의 화답에서 예술이 가진 힘을 느낀다.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에서 비롯된 ‘K헤리티지’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뜨겁다. ‘삼일포’가 ‘눈 내리는 삼일포’가 된 것처럼 전통에 현대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충분히 쏟아지는 관심에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윤수경 문화체육부 기자(차장급)
  • 서울신라호텔 ‘8년 연속 5성급’… 국내 호텔 중 유일하게 선정돼

    서울신라호텔은 글로벌 호텔 평가 기관인 ‘포브스 트래블 가이드’에서 국내 최초 8년 연속 5성 호텔로 선정됐다고 12일 밝혔다. 또 올해는 5성급 중 51곳만 뽑는 ‘엄선된 최상위 호텔 그룹’에 처음으로 포함돼 이번 달 모나코에서 열리는 연간 포브스 써밋에 ‘글로벌 대표 호텔’로 초청됐다. 서울신라호텔은 고객 맞춤형 서비스와 레스토랑이 호평을 받았다.
  • 명태균·김영선 무죄 선고 부장판사, 청탁금지법 위반해 ‘약식기소’ 됐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 대가 돈 거래 혐의에 대해 지난 5일 무죄를 선고한 김인택(사법연수원 26기) 창원지법 부장판사가 선고 바로 전날에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약식재판에 넘겨진 사실이 확인됐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부장 정유선)는 지난 4일 김 부장판사를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란 상대적으로 가벼운 혐의에 대해 검찰이 정식재판을 하지 않고 벌금형을 선고해달라고 법원에 청구하는 절차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해외여행에 동행한 HDC신라면세점의 한 팀장으로부터 여행 경비 일부를 대납받은 혐의를 받는다. 현행 청탁금지법상 판사 등 공무원이 한번에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해당 팀장이 면세점에서 법인카드로 구입한 수백만원 상당의 명품 의류를 김 부장판사가 건네받았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됐지만, 이번에 기소된 범죄 혐의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 신진서, 中 왕싱하오에 불계승… 한국, 농심배 바둑 ‘6연패’ 1승 남았다

    신진서, 中 왕싱하오에 불계승… 한국, 농심배 바둑 ‘6연패’ 1승 남았다

    신진서 9단이 중국 최후의 기사를 무너뜨리며 농심배 6연패에 딱 한 걸음만 남겨뒀다. 신 9단은 5일 중국 선전 힐튼 푸톈 호텔에서 열린 제27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 라운드 13국에서 중국의 왕싱하오 9단에 174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이 승리로 신 9단은 농심배 20연승을 달렸고 중국은 꼴찌로 대회를 마쳤다. 초반 팽팽했던 균형은 80수 이후 왕싱하오 9단이 느슨한 수를 두면서 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신 9단에 유리하게 흐르다 중반 실수가 잠시 나오기도 했지만 왕싱하오 9단이 신 9단의 실수를 응징하지 못하면서 역전에 실패했다. 승세가 기울자 왕싱하오 9단이 백대마를 공격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신 9단의 대처는 빈틈이 없었다. 격차가 더 벌어지자 결국 왕싱하오 9단은 돌을 던졌다. 이후 패배가 못내 아쉬운 듯 복기 과정에서 연신 옅은 신음을 내며 머리를 긁적였고 동료들과 한참을 복기한 후에야 신 9단에 가볍게 묵례하고 대국장을 떠났다. 복기가 끝난 뒤 신 9단을 기다렸던 중국 팬들이 사인을 받고 사진을 찍으며 최강기사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신 9단은 이날 대국에 대해 “어려웠던 바둑이고 초반 연구는 아쉬웠지만 상대도 실수할 만한 장면이 많았다”면서 “나중에 서로 잘 뒀던 것 같은데 마지막에 상대 실수로 이겼다”고 평했다. 신 9단은 6일 같은 장소에서 일본의 1인자 이치리키 료 9단을 상대로 마지막 일전을 치른다. 역대 전적은 신 9단이 7승 무패로 압도적이다. 특히 신 9단은 2012년 입단 이후 일본 선수에게는 단 1패도 당하지 않고 44연승을 이어가는 중이라 분위기가 좋다. 신 9단은 “일본 선수들의 기력이 강해졌다는 걸 느끼고 있어서 남은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준비를 잘해보겠다”면서 “우승 자신은 있지만 뜻대로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바둑 한판에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라고 의지를 다졌다.
  • 울진 후포항은 지금 ‘게판’… 니들이 구운 게맛을 알아?

    울진 후포항은 지금 ‘게판’… 니들이 구운 게맛을 알아?

    대게 시즌이 절정을 향하는 중이다. 참 오래도 기다렸다. 무려 1년. 산란기와 금어기를 지나, 다리마다 살이 포실하게 들어찰 때까지, 꼬박 한 해가 걸렸다. 오래, 간절히 기다렸던 만큼 대게가 미각에 선사하는 감동은 아마 해일과 같을 것이다. 경북 울진군 후포항으로 간다. 나라를 대표하는 대게의 전진기지 중 한 곳이다. 쪄야 제맛? 씹는 맛은 구이가 최고울진군 후포항. 영덕군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울진 대게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얼추 영덕의 강구항에 견줄 만큼 번다해졌다. 그런데 의아하다. 거의 모든 식당이 대게찜 일색이다. 그만큼 대게찜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작다는 말도 된다. 혹시 대게를 찜 외의 조리법으로 먹은 기억이 있는지? 굽거나, 날것으로 먹거나, 탕으로 끓여 먹은 기억 말이다. 바다에서 얻는 것들을 먹는 방법은 대략 저 네 가지다. 홍어처럼 삭혀 먹기도 한다. 대게는 다르다. 오로지 찜이다. 버터구이 등으로 변용해 먹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일탈이라 해도 좋을 만큼 매우 드문 사례다. 오늘도 무수히 많은 후포항의 요릿집들이 수증기를 내뿜으며 대게를 찐다. 모두 같은 도구와 같은 조리법으로 대게를 요리한다면, 그들은 무엇으로 가게와 맛의 변별적인 특성을 말할 수 있을까. ‘서울신문 렛츠고’는 후포항에서 이색 실험을 했다. 대게 구이에 도전한 것이다. 왕돌회수산 임효철(59) 사장의 도움을 받았다. 임 사장은 대게로 잔뼈가 굵은 이다. 현지에서 대게 경매사와 음식점을 병행하고 있다. 음식물은 구우면 보통 단맛이 강해진다. 양파가 대표적인 사례다. 양파를 구우면 특유의 매운맛 성분이 사라지고 설탕보다 몇 곱절 단맛이 진해진다. 과일 역시 구우면 당도가 응축되고, 풍미가 깊어진다. 그렇다면 대게도 구우면 더 맛있어지지 않을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실험이다. 실제 일본에선 대게를 곧잘 구워 먹는다. 돗토리현의 요나고 같은 도시는 대게 구이(야키가니)를 지역 명물이라며 홍보한다. 물론 산 대게를 곧바로 굽지는 않는다. 먼저 살짝 익힌 뒤, 다시 굽는 방식이다. 대게 산지로 유명한 홋카이도 역시 비슷하다. 고가의 대게 요릿집이 즐비한 삿포로 시내 뒤안길엔 소시민을 위해 시간제로 대게 등 해산물을 파는 식당들이 있다. 여기서도 자신의 기호에 따라 대게를 굽거나 찔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대게찜만 선호할까. 대게의 역사를 뒤져봤다. 조선시대 나라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기록은 있지만 대부분 찜이었다. 고려시대 시인 이규보, 조선 초기 서거정과 후기 김정희 등 문인들의 대게찜 예찬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요즘 식도락가들은 그럴싸한 분석까지 내놓는다. 그중 대게의 단맛은 불이 아니라 수증기에서 살아남는다는 주장이 돋보인다. 대게의 맛을 이루는 핵심 성분들이 직화에선 쉽게 분해돼 사라지는 반면 수증기로 익히면 열전달이 완만해 감칠맛 성분도 잘 보존된다는 것이다. 대게의 살은 지방이 거의 없고 수분과 단백질이 대부분이라 껍질 안에 수분을 가두고 단백질이 천천히 응고되도록 해야 자연스러운 단맛을 유지한다는 분석도 있다. 한데 대게 다리에 수분이 많아 굽기 적절하지 않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앞서 사례로 든 양파 역시 수분이 90%에 가깝기 때문이다. 수분이 날아가되 어떤 형태로 음식물에 남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반면 대게 구이에 관한 기록은 드물다. 조선의 22대 왕 정조 때 발행된 ‘원행을묘정리의궤’ 중 수라상에 오른 대게 구이 기록이 보인다. 사실 왕이나 왕비 입장에서 검게 탄 대게 껍데기를 얼굴에 묻힌 채, 벅벅대며 긁어 먹는 모습이 그리 보기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 그래서 대게 구이 실험 결과는 어땠나? 실험 참가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일치했다. 요약하면, 대게 구이는 나름의 맛이 있다는 것, 더 달아지고 씹는 맛도 생긴다는 것, 살짝 탄 듯한 맛도 매력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다양한 맛에 대한 도전이다. 찜 일색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찜해 먹기도 부족한 ‘대게님’를 구워야 하는 게 부담이라면 B급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다리가 떨어져 상품 가치를 잃은 대게를 구워 보는 거다. 그러다 노하우가 쌓이면 ‘대게의 왕’ 박달대게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지방 성분이 상대적으로 많은 내장 부위 살점의 경우, 육류의 폭발하는 맛과 같은 ‘마이야르 반응’을 기대할 수도 있다. 대게축제 때 구이나 다른 종류의 요리에 대한 품평회를 꾸준히 열어 다양한 맛을 확보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대게의 달달한 맛은 ‘타이밍’이다사실 대게의 맛을 정확히 알려면 녀석의 생태와 습성부터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립수산과학원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대게 관련 보고서와 논문 등을 샅샅이 뒤졌다. 우선 산란 시기부터. 맛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다. 잔인하지만, 모든 생물들이 산란을 앞뒀을 때, 혹은 겨울처럼 극심한 생명의 위협에 대비해야 할 때 몸 맛이 좋기 때문이다. 대게의 산란 시기는 3~4월에 시작돼 6월 정도면 끝난다. 법이 규정한 대게 금어기 역시 이때 시작된다. 탈피(주민은 탈각이라 부른다)도 맛에 영향을 미친다. 탈피는 외부 껍질을 벗고 한층 몸피를 키우는 것을 뜻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많이 소비돼 살점이 줄어든다. 대게 다리에 살점이 찬 정도를 ‘수율’이라 부르는데, 탈피를 마친 녀석은 수율도 낮다. ‘동해에 서식하는 대게류의 재생산 및 분포 특성’(2014년) 등의 연구 보고서는 “대게와 붉은대게(홍게)의 탈피 시기는 9~10월로 추정된다”고 적고 있다. 게다가 수컷 대게는 탈피를 끝내기 전에는 먹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먹지 못해 비쩍 마른 대게가 맛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러니까 어민들이 산란과 탈피가 끝나는 6월부터 10월(법률상 금어기와 정확히 일치한다)까지 대게를 잡지 않는 것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다만 암컷(찐빵처럼 생겼다 해서 ‘빵게’라 불린다)은 탈피하지 않는다. 그래서 빵게는 수컷에 견줘 훨씬 작다. 빵게는 잡아서도, 먹어서도 안 된다. 법으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설령 법이 규정하지 않더라도 빵게를 잡는다는 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목을 베는 것과 다르지 않다. 탈각을 막 끝낸 대게를 홑게라고 한다. 현지인들은 곧잘 홑게를 구워 먹는다. 껍질이 얇아 구운 뒤 통째 먹는다. 대게잡이 배 어민들이 소주를 마시며 대게 다리 같은 걸 오물거리고 있는 모습을 봤다면, 십중팔구 홑게를 구운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도 음식점에서 파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맘때 홍게는 대게 못잖게 포실지난해 나온 ‘원양어업 자원평가 및 관리 연구’ 보고서는 “대게는 현재 지속 가능한 상태”로 판단했다. 어민뿐 아니라 소비자도 잘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물망의 크기를 키워 작은 게는 빠져나가게 하고, 어미게는 절대 잡지 않고, 금어기를 잘 지킨다. 어구 역시 생분해성을 쓴다. 대게에 치명타라는 해수온 상승만 없다면 우리는 아주 오래 이 맛있는 대게를 먹을 수 있다. 세계인이 이 맛을 모르고 있다는 게 새삼 다행스럽지 않은가. 내국인끼리 먹기 경쟁도 치열한데 외국인까지 달라붙게 되면 값은 오르고 양은 줄어들 테니 말이다. 붉은대게(홍게)도 대게처럼 북풍에 맛이 들고 살점도 포실해진다. 이맘때 홍게 다리를 보면 대게 못잖게 ‘꿀벅지’다. 실팍한 살은 달고 짭조름하다. 이 시기에 눈여겨볼 또 하나의 해산물은 문어다. 요즘은 깊은 수심에 있던 문어가 얕은 곳으로 나오는 시기다. 수압 때문에 높아졌던 체내 염분이 줄고 살도 쫀득해진다. 설을 앞두고는 문어의 몸값이 상종가를 친다. 너나없이 제상에 문어를 올리는 영남 지방의 습속 때문이다. 그러다 명절이 지나면서 값이 뚝 떨어진다. 구산항이 주산지다. 그리 크지 않은 포구지만 문어를 취급하는 울진 관내의 위판장 중에선 가장 크고 이름도 널리 알려졌다. 매일 새벽 6시면 어김없이 문어 경매가 열린다. 먹고만 가기엔 아까운 후포항후포항 일대에 볼거리가 많다. 선묘용 조형물이 있는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울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바다 위에 높이 20m, 길이 135m 규모로 조성됐다. 스카이워크 끝자락 57m 구간은 바닥이 강화유리여서 스릴이 넘친다. 스카이워크 뒤편의 등기산에도 후포 등대 등 볼거리가 많다. 국립해양과학관도 찾을 만하다. 특히 맑은 날 해중전망대에서 날것 그대로의 바닷속 풍경을 보는 재미가 아주 각별하다. 해중전망대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폐쇄된다. 입장은 무료다. 춥거나 궂은날엔 성류굴을 찾으면 된다. 늘 일정한 기온을 유지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성류굴은 2억 5000만 년 전에 형성된 석회암 동굴이다. ‘금석문의 보고’라 불릴 만큼 신라 진흥왕의 행차 기록 등이 동굴 생성물에 남아 있다. 구산항 인근의 대풍헌과 수토문화전시관도 찾을 만하다. 대풍헌(待風軒)은 수토사(搜討使)들이 울릉도로 가기 위해 바람을 기다리던 집, 수토문화전시관은 수토사 관련 기록을 전시한 공간이다. 수토사는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를 정기적으로 순시하고 일본 어민의 불법 어로를 단속하던 관리들을 일컫는다. 울릉도와 가깝고(약 144㎞), 조류도 항해에 유리해 수토사들이 대풍헌에 머물며 출항 여부를 저울질했다고 한다. 대풍헌은 울릉도 최고의 전망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대풍감’과 호응하는 공간이다. 대풍감은 대풍헌과 반대로 울릉도에 있는 수토사들이 뭍으로 나가기 위해 풍향 등을 살피던 바위 절벽이다. [여행수첩] -‘2026 울진 대게와 붉은대게축제’가 27일~3월 2일 후포면 왕돌초광장 일원에서 열린다. 대게를 주제로 한 다채로운 상설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전통 체험 놀이마당과 요트 승선 체험, 등기산 걷기 등 체험 이벤트도 마련된다. 붉은대게를 재료로 만든 다양한 가공식품에 대한 무료 시식도 진행된다. -후포항 대게 경매는 오전 8시 언저리에, 홍게는 9시 30분께 열린다. 눈요기 삼아 찾을 만하다.
  • 영산강을 허리에 두른 채 ‘뿌리 깊은 고을’ 지켰다[서동철의 이야기가 있는 옛성]

    영산강을 허리에 두른 채 ‘뿌리 깊은 고을’ 지켰다[서동철의 이야기가 있는 옛성]

    나주는 고려와 조선 시대를 관통하며 줄곧 호남을 대표하는 도시의 하나였다. 나주는 내륙도시이면서 동시에 해양도시라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 고을이기도 했다. 영산강이 나주를 풍요롭게 만든 것이다. 일찍이 마한이 영산강 유역 평야지대를 배경으로 발전했음을 보여 주는 반남고분군도 이 고장의 깊은 역사를 증명한다. 이제 ‘나주읍성 살아 있는 박물관 도시 만들기’로 그 진면목이 살아나고 있어 반갑다. 동점문, 영금문, 남고문, 북망문 등 나주성의 4대문이 모두 제모습을 찾았다. 자연스러운 질감을 연출하는 읍성의 석물들이 뿌리가 깊은 고을의 분위기를 제대로 보여 준다. 나주는 홍어와 곰탕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나주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곰탕을 먹는 것이었다. 나주관아 객사인 금성관 주변엔 솜씨 좋은 곰탕집이 몰려 있다. 역사관광도시로 나주가 ‘버킷 리스트’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양과 지형 닮아 ‘소경’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나주는 그 지형이 한양과 닮아 예부터 소경(小京)이라 불렀다’고 했다. 영산강을 한강, 금성산을 북한산에 대입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위성사진으로 실제 지형지물을 보여 주는 ‘구글 어스’를 열면 나주성은 절묘한 입지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산강이 북동쪽에서 흘러들어 읍성을 휘감으며 남서쪽으로 흘러나간다. 나주성의 진산인 해발 450m의 금성산과 그 줄기는 서쪽과 북쪽으로 읍성을 감싸고 있다. 나주성을 이 자리에 지은 것도 천혜의 방어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행정구역의 이름이자 지역의 정체성인 전라도(全羅道)라는 이름은 고려 현종 9년(1018)에 처음 생겼다.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전라도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에서 한 글자씩 따온 땅이름이다. 그런데 통일신라 시대만 해도 이 지역에선 무주(武州), 곧 지금의 광주가 9주의 하나로 중시됐다. 나주가 대표성을 가진 고을로 발돋움한 이유가 궁금하다. 나주읍성의 동문인 동점문은 일제강점기 훼철됐다가 2006년 복원됐다. 문루에는 정도전의 ‘등나주동루유부로서’(登羅州東樓諭父老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나주 동루에 올라 지역 어르신들에게 드리는 글’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정도전은 알려진 대로 조선의 개국 공신이지만 1362년(공민왕 11년) 문과에 급제하며 고려 조정에서 먼저 벼슬을 했다.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정도전의 글은 나주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도전의 언사(言事)가 재상에게 거슬러 회진현으로 추방되어 왔다. 나주의 속현인 회진현에 가려면 나주를 거쳐야 하는 만큼 동루에 오르게 됐다. 발걸음을 옮기며 사방을 살펴보니 산천이 아름답고 인물이 많은 고장으로 풍요로워 많은 백성이 모여 사는 남방 일대의 큰 항구다. 나주가 주(州)가 된 것은 국초(고려 초기)로 또 공로가 있는 고장이었다.’ 나주, 고려·조선시대 호남 대표 도시마한도 영산강 평야 자리 잡고 발전내륙과 해양도시 특성 동시에 지녀정도전 “산천 아름답고 인물이 많아”이 글에서도 ‘남방 일대의 큰 항구’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나주는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며 바다로 나가는 길이 막혔다. 하지만 나주는 홍어거리가 있는 영산포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이 전라도 남부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였다. 흑산도 홍어로 홍어거리가 생겼을 만큼 서남해안 수산물이 나주에 모였고 다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수운이 퇴조하고 육운이 득세하면서 물류 수송로와 기지로 영산강과 나주는 힘을 잃었다. 영산강이라는 물길의 이름과 영산포라는 땅이름을 두고도 학계에서는 흑산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고려사에는 ‘흑산도 사람이 뭍에 나와 남포 강변에 터를 잡으면서 영산현이라 불렀다. 1363년(공민왕 12년) 군으로 승격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남포는 나주성이 멀지 않은 영산강 북안 포구를 가리킨다. ‘영산’이라는 명칭이 역사책에 처음 등장한 사례라고 한다. 영산강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흑산현이 아니라 영산현이라고 한 것도 과거 흑산도가 영산도라고 불렸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나주성, 동남쪽은 남산의 능선 활용서북쪽은 금성산이 둘러싸고 있어 동점문 등 4대 문 모두 제모습 찾아첨단 기술과 공존하는 역사 도시로●후삼국 쟁투 때 태조 왕건 손 들어줘 나주의 농업 생산력이 뛰어났던 것은 일찌감치 마한 세력이 자리잡았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나주는 해양 교역과 어업의 핵심기지이기도 했으니 당연히 일대의 경제권을 장악했을 것이다. 나주는 고려왕조가 창업하는 과정에도 크게 힘을 보탰기에 지역 발전이 가속화됐다. 정도전은 앞의 글에서 ‘우리 고려 태조가 삼한을 아우를 때 모든 고을이 평정됐는데 오직 후백제만이 항복하지 않았다. 이때 나주 사람들은 역(逆)과 순(順)을 밝게 인식하고 솔선해 찾아와 귀부했다. 태조는 후백제를 취하는 데 나주 사람들의 힘이 컸으므로 친히 이 고을에 납시어 목(牧)으로 승격시키고 남쪽 여러 고을을 통솔하게 했다’고 적었다. 나주가 후삼국의 쟁투 과정에서 고려 태조 왕건의 손을 들어 준 전설이 담긴 유적이 완사천(浣紗泉)이다. 영산대교로 가는 나주시청 앞 길가에 자리잡고 있다. 왕건이 물긷는 여인에게 물 한 그릇을 청하자 버들잎을 띄워 주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왕건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니 곧 장화왕후 오씨다. 오씨가 낳은 아들이 고려의 제2대 왕 혜종이다. 왕건은 장화왕후를 위해 흥룡사를 지었는데 최근 절터가 확인됐다. 국립나주박물관에 있는 높이 3.3m의 당당한 나주 서성문 안 석등은 흥룡사에 세워졌던 것이라고 한다. ●나주목사 김계희, 대대적 확대·정비 나주성은 사실상의 평지성이다. 다만 동점문과 남고문 사이 동남쪽 일부는 해발 42m 남산의 능선을 활용해 성벽을 쌓았다. 읍성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방어 목적을 가진 읍성의 필요성은 일찍부터 부각됐을 것이다. 나주성의 존재는 1237년(고종 24년) 고려사에 처음 등장한다. 열전에 ‘김경손이 1237년 전라도지휘사로 부임했는데 초적 이연년 형제가 주변 무뢰배를 모아 나주성을 포위했다’는 대목이다. 조선 시대가 되면 태종실록에 1404년(태종 4년) ‘나주와 보성에 성을 쌓았다’는 기사가 보인다. 1451년(문종 1년)에는 ‘나주목 읍성은 내부 민호가 많아 성터를 다시 7000척으로 고쳐 정했다’고 했다. 당시 읍성을 대대적으로 확대·정비한 사람이 나주목사 김계희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나주성 복원도 그가 완성한 둘레 3.7㎞ 읍성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나주성이 제모습을 찾으려면 갈 길이 멀다. 관아 터는 아직 공터로 남아 있고 성벽도 대부분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관아 터는 연차적으로 복원하되 성벽은 상징성을 되찾는 수준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훼철된 이후 성벽이 있던 자리엔 건물이 들어찼다. 주민의 생활권을 당장 갈라놓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읍성에서 영산포에 가려면 영산대교를 건너야 한다. 40곳 남짓한 전문식당이 몰려 있는 홍어거리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나주 명물이다. 5월이면 ‘영산포홍어축제’도 열린다. 홍어거리에 내걸린 ‘가슴 후비는 어울림의 한 판이자 입안에 꽉 찬, 이 야만적인 충만감. 머릿속에 일곱 무지개가 떠올랐다’는 작가 문순태의 ‘홍어 삼합’에 눈길이 간다. 나주성 복원을 비롯한 역사도시 만들기 사업은 흔히 나주혁신도시라 불리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으로 옛 도심의 공동화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옛 도심은 역사문화, 혁신도시는 첨단기술로 역할을 분담하는 토대가 마련됐다. 개발 압력에 시달리는 다른 고도(古都)와 달리 역사도시로 가꿔가는 데 오히려 좋은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그럴수록 나주혁신도시가 ‘에너지산업 중심의 산학연 클러스터’라는 조성 목적에 걸맞게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마침 혁신도시의 한국에너지공과대(KENTECH)가 2026년 대입 정시에서 뜨거운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혁신도시의 성공은 나주 옛 도심을 수준 높은 문화도시로 가꿔 가는 경제적 기반도 제공할 것이다. 글·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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