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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름 속으로, 그 기운 속으로…초록 속으로, 그 고요 속으로

    구름 속으로, 그 기운 속으로…초록 속으로, 그 고요 속으로

    소슬한 가을바람이 부는 요즘입니다. 가을의 끝자락을 잡고 싶어 남쪽으로 달렸습니다. 전남 영암. 목포 옆 동네, 서울에서 차로 꼬박 5시간이 걸리는 도시, 어디에서든 월출산이 보인다는 곳.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영암에 머무는 내내 시선의 끝에는 언제나 월출산이 걸렸습니다. 일렬로 늘어선 바위 봉우리가 어찌나 힘차고 옹골차던지요. 너른 들판을 품에 안은 바위산은 땅에서 훅 솟아난 듯 하늘에서 툭 떨어진 듯 신비로웠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월출산은 기가 대단했습니다. 목적지인 구름다리에 이르기까지 바위를 타다가 단풍을 밟다가 기암괴석을 올려다보느라 심장이 쉴 새 없이 쿵쿵거렸습니다. 구름다리에서 마주한 바위 봉우리는 영암을 지키는 수호신인 양 굳건해 보였습니다. 역동적인 늦가을 산행이었습니다.영암과 월출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영암에 오면 이 말을 십분 이해하게 된다. 우선 영암 어디에서나 월출산이 보인다. 고깔을 가로로 이어 붙인 듯한 능선은 고요한 마을을 감싸 안는다. ‘신령한(靈) 바위(巖)’를 뜻하는 영암이라는 지명도 월출산에서 비롯됐다. 월출산 구정봉에 흔들바위 3개가 있었는데, 바위들이 산 밑으로 떨어지자 그중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말 그대로 ‘신령한 바위’다. 월출산은 바위산이다. 소백산맥의 한줄기가 서남해안 평지에 우뚝 솟아났다. 800m가 조금 넘는 산이라고 얕봤다가는 큰일 난다. 바위 능선이 날카롭고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의 절벽이 매서운 기를 내뿜는다. 때문에 정상 천황봉(809.8m)을 오르는 것이 만만치 않다. 다행인 점은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가 산을 찾는 이에게 적당한 목적지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지상 120m 높이에 설치된 다리에서 아스라하게 이어지는 산의 능선과 기암괴석의 위용을 마음 벅차도록 감상할 수 있다.●화승조천의 산세… 원적외선 내뿜는 화강암 여기는 영암군청 근처의 식당.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주변에서 월출산에 갔다 왔느냐고 한마디씩 한다. “영암에 왔으면 월출산은 꼭 가봐야 한다”, “난 한 달에 한 번씩은 오른다”, “산의 기가 무진장 세다”며 저마다 월출산에 얽힌 소회를 푼다. 영암 사람들 말이 빈말은 아니다. ‘택리지’를 쓴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월출산을 두고 “화승조천(火昇朝天)의 지세”라고 했다. 산세가 아침에 하늘로 타오르는 불꽃 같다는 말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아침에 화르르 타는 불꽃이니 기가 약할 리 없다. 게다가 월출산을 이루는 화강암의 80%는 사람에게 이로운 원적외선을 내뿜는 맥반석이란다. 산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천황사 주차장을 출발해 구름다리를 지나 천황봉을 찍고 도갑사로 내려오는 8.9㎞ 코스, 도갑사에서 억새밭과 구정봉을 지나 전남 강진군 쪽의 경포대로 내려오는 7.1㎞ 코스, 천황사 주차장에서 천황봉까지 올랐다가 천황사로 돌아오는 6.7㎞ 코스 등이다. 등산 초보자에겐 하나같이 녹록하지 않은 거리와 난도다. 산과 친하지 않거나 가벼운 등산을 하고 싶은 이들은 구름다리를 목적지로 삼아도 좋다. 왕복 2시간 반의 산행은 월출산의 정기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아찔한 구름다리 위에서 펼쳐진 장엄한 풍광 월출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30분쯤 걸어 본격적인 출발점, 천황사를 마주한다. 천황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바람폭포와 구름다리 코스가 나뉘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두 코스 모두 구름다리까지의 거리는 1㎞. 걸리는 시간은 40분 정도로 비슷하지만 길이 품은 풍경은 사뭇 다르다. 바람폭포 코스는 폭포를 벗하고 물소리를 들으며 산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구름다리에 가까워질수록 철 계단이 이어져 등산하는 재미가 떨어진다. 구름다리 코스는 돌과 바위가 첩첩이 쌓여 있다. 바위를 연거푸 오르느라 막간에는 다리가 뻐근할 정도지만 산의 기운을 온몸으로 흡수하기에 제격이다. 바위가 낸 길을 따르기를 1시간쯤 됐을까, 새빨간 구름다리가 보인다. 회백색 봉우리 사이에서 대번 도드라지는 색이다. 다리는 월출산의 매봉과 사자봉을 잇는다. 1978년에 다리가 만들어지며 매봉에서 사자봉까지 34시간이나 걸리던 것이 5분으로 단축되었단다. 다리는 시간이 지나며 노후화되어 잠시 철거되었다가 2006년에 재개통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다리의 폭은 1m. 예전 폭에서 두 배 가까이 넓어져 지나가는 사람끼리 눈인사를 나누거나 둘이 걷기 맞춤해졌다. 구름다리는 120m 높이의 수직 절벽에 걸쳐져 있다. 땅에서 올려다보는 것만도 아찔한데 다리를 건널 때 바람이 불면 살짝 흔들리기까지 해 스릴이 더욱 고조된다. 안개가 짙은 날은 공중을 걷는 듯한 기분이란다. 구름다리에 첫발을 내디딜 땐 모두가 신중하다. 발뒤꿈치에 힘을 준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다. 다리를 반쯤 걸었을 때 고개를 들고 마주한 풍경은 장엄함 그 자체다. 앞뒤로 수직 절벽이 첩첩이 늘어선 모습에 무협지 속 산중에 들어선 듯하다. 운무가 짙은 날에는 선계의 풍경과 닮았으리라. 단풍으로 군데군데 불그스름한 빛을 띠는 봉우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니 그 앞에 선 인간은 압도해오는 풍경을 두 눈에 얌전히 담을 수밖에 없다. 구름다리가 있는 부근은 골이 진 터라 바람이 제법 매섭다. 위풍당당한 봉우리는 바람에 꿈쩍하지 않은 채 영암의 들판을 내려다본다. ‘신령한 바위’, 영암의 지명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F1 선수처럼…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 정적이 깨진다. 굉음이 울려 퍼진다. 차들의 양보 없는 레이싱 한판이 한창인 이곳은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 최정상 모터스포츠인 F1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국제 자동차 경주장이다. 185만 3천여㎡의 광활한 대지에 서킷 5615㎞, 12만 석의 관람석, 미디어센터 등을 갖췄다. 일정이 맞으면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KIC)에서 열리는 KIC트랙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경주를 보는 것만으로도 레이서가 된 듯 팔에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코리아인터내셔널서킷 맞은편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카트 레이싱을 즐길 수 있는 카트경기장이 있다. F1 경기의 아마추어 버전이랄까. 카트는 1인승과 2인승, 두 종류가 있는데 미취학 아동은 보호자와 2인승 카트를 타면 된다. 카트는 F1 경기용 차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차체와 지면의 간격은 고작 8㎝. 트랙을 내달리는 바퀴의 진동이 온몸에 전해질 만한 거리다. 카트 작동은 단순하다. 오른쪽 페달은 엑셀, 밟으면 앞으로 나아간다. 왼쪽 페달은 브레이크, 밟으면 멈춘다. 계기판이 없어 카트를 타며 속도를 조절한다. 카트경기장 트랙은 F1 서킷을 축소한 형태다. 쭉 뻗은 직선 코스, 코너링을 돌 수 있는 S자 코스를 고루 갖췄다. 직선 코스에서 속도를 힘껏 내다가 S자 코스 진입로에서 속도를 살짝 줄이는 등 탈수록 요령이 생겨 탑승 시간 10분이 짧게만 느껴진다. 중년의 아마추어 레이서들은 아이의 얼굴로 돌아간다. 함박웃음을 짓다가도 옆 카트가 추월이라도 할라치면 이를 악물고 속도 내기에 집중한다. 트랙을 달리는 동안 그렇게 일상의 걱정거리를 날려 보낸다.● 초록빛 비밀의 다원 ‘덕진차밭’ 여행깨나 다녀본 이들의 바람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풍경은 모자람이 없는 명당을 찾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이들에게 덕진차밭은 반가운 여행지다. 영암 군민도 “어디 가신다고요?”하고 되물을 만큼 인지도가 낮다. 전남 보성이나 경남 하동의 이름난 다원에 비해 크기도 아담하다. 그럼에도 덕진차밭이 가볼 만한 건 월출산이 정면에 보이는 풍광과 차밭의 한갓진 분위기 때문이다. 차밭을 찾아가는 건 쉽지 않다. 인터넷 글마다 주소도 제각각이다. 몇 번 허탕을 치다가 군청 관광과에서 목적지를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 143-1번지’ 혹은 ‘운암저수지’로 설정하라는 답변을 들은 뒤에야 비밀처럼 숨겨진 차밭이 나타났다. 덕진차밭은 백룡산 자락에 있다. 한국제다에서 1979년에 조성했으니 40년 가까이 됐다. 이곳에서 나는 차의 90%는 재래종, 나머지는 외래종이다. 비스듬한 언덕에 초록 이랑이 층층이다. 봄이나 초여름 차밭이 싱그러운 분위기라면 늦가을 차밭은 추수가 끝난 들녘처럼 고요하다. 인적이 드문 차밭 사이를 걷다 보면 칙칙했던 마음에도 초록 물이 오른다. 이곳을 찾기에 최적의 시간대는 차밭에 안개가 자욱하고 월출산 능선이 수묵화 같은 선을 그리는 새벽, 최고의 조망점은 차밭 꼭대기 정자다. 너른 차밭과 굽이진 월출산 봉우리가 완벽한 구도를 이룬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장명확(사진작가)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 서울에서 자동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와 논산천안고속도로를 지나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한다. 호남고속도로 논산분기점부터 1시간 정도를 달리다 ‘나주, 운수IC’ 방면으로 진입한다. 무안광주고속도로 운수IC와 빛가람장성로를 지나 왕곡교차로에서 ‘해남, 영암, 국립나주박물관’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천황사교차로에서 ‘영암, 월출산국립공원, 천황사’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천황사로를 따라가면 월출산국립공원이다. →맛집 : 영암은 1980년대에 간척지가 되기 전까지 항구를 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바다에서 난 재료가 들어간 음식이 많다. 독천식당(472-4222)의 갈낙탕이 대표적이다. 갈비탕 국물에 세발낙지 한 마리가 통으로 들어간다. 남도한정식이 당긴다면 파랑새정원(461-2021)이 어떨까. 젓갈 정찬을 주문하면 생선구이를 중심으로 젓갈과 계절 반찬이 한 상 가득 깔린다. 돌쇠정(464-3337)의 연잎 떡갈비정식은 떡갈비를 연잎에 싸서 찐 다음 구워내 잡냄새가 없다. →잘 곳 : 영암에는 정갈한 전통 한옥집이 많다. 월인당(471-7675)은 ‘달빛이 도장처럼 찍히는 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월출산 사이로 솟은 달빛이 유난히 환하다. 객실에 개별 화장실과 취사시설이 있고, 주인장이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준다. 호텔현대목포(463-2233)는 영암금호방조제 입구에 위치해 영암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이 일품이다. 전 객실에 전망 발코니가 있어 어디에 묵어도 풍경이 보장된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통도사 가는 길 - 양산 통도사(通度寺)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통도사 가는 길 - 양산 통도사(通度寺)

    “나는 왜 통도를 ‘通道(통도)’로 알았을까?” <민음사, 조성기, 통도사 가는 길. 1996> 대부분 눈치채지는 못할 듯 하다. 경상남도 양산에 위치한 통도사의 현판을 보고 있자면 가운데 글자인 ‘도’는 길을 뜻하는 ‘道(도)’가 아니라 법이나 단위, 수준, 경지를 뜻하는 ‘度(도)’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통도'는 일반 중생들 지레짐작의 ‘길이 통한다’라는 의미보다는 결국 승려가 되고자 하는 자가 ‘부처가 다다른 수준, 즉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라는 출가 발원(發願)을 되짚는 말이다. 이리하여 통도사는 일반인의 상식에서 벗어나 다시금 반전의 의미를 갖게 된다.국내에 위치한 사찰들은 각기 나름대로의 고유한 성격과 특징 및 가람배치를 통하여 절집으로서의 개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중에서 삼보사찰의 경우 이러한 성격을 더욱 더 잘 나타내고 있다. 즉 양산에 위치한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봉안한 불보(佛寶)사찰로 유명하며, 합천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法)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法寶)사찰로, 순천의 송광사는 보조국사 이래로 총 열여섯 분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僧寶) 사찰로 이름나 있다.이중 통도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있는 제1 적멸보궁이기에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적멸보궁이라 함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전각을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다. 그 중 통도사가 으뜸인 셈이다. 통도사 법당의 모양도 무척이나 특이하다. 하나의 법당이지만 방향에 따라 다른 이름을 품고 있다. 동쪽방향으로 법당에 들어가면 대웅전이 되고, 남쪽으로 올라서면 금강계단이라 부르며, 서쪽으로는 대방광전의 이름으로, 북쪽은 적멸보궁의 현판을 걸고 있다. 이리하니 예로부터 통도사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품고 있다는 자신감에 여느 사찰에서나 즐겨 사용하는 흔한 가람배치 형식은 취하지 않고 스스로의 개성을 확실히 갖추고 있다.여기서 또 한 번 관람객의 호기심을 살짝 흔드는 글자가 통도사에 숨어 있다. 흔히들 통도사에는 유명한 금강계단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여기저기 계단이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묻는 장면도 종종 목격된다. 흔히들 계단이라 하여 ‘오르내리는’ 용도를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의 ‘계단’은 승려가 ‘계를 받는 제단’을 의미한다. 즉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장소에서 ‘금처럼 굳센 계율을 새로이 승려가 되는 사람이 받는 제단’이라는 뜻으로 대웅전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하다.통도사의 역사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646년(신라 선덕여왕 15) 자장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데 이때 자장이 당나라로부터 643년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부처님 사리와 가사, 대장경 400여 함을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봉안한 곳이 통도사다. 자장은 계단(戒檀)을 쌓고 난 뒤 승려를 배출하고자 노력하였다.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사찰이 전부 소실되어 현재 우리가 만나는 통도사의 건물들은 1645년(인조 23) 우운(友雲)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들로 조선 중기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따라서 대웅전을 비롯하여 보광선원, 응진전, 명부전, 삼성각, 산신각, 관음전, 용화전, 대광명전, 세존비각,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不二門) 등 조선의 시간과 더불어 통도사 만의 깊은 시간을 넉넉히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통도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의 하나다. 한 번은 가 볼만한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연인들. 늦은 가을. 3. 가는 방법은? - KTX울산(통도사)역에서 13번 시내버스를 이용. (첫차 07:12 / 막차 21:13 / 운행횟수 16회) 소요 시간은 30분정도. 택시 이용시 소요 시간은 20분정도이며 택시요금은 25,000원정도. 4. 감탄하는 점은? - 대웅전, 금강계단. 영축산의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늦가을 풍광.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주말이면 인산인해. 주중도 방문객이 많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금강계단, 대웅전, 세존비각, 명부전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산채비빔밥 ‘경기식당’, 조촐한 시골 분식 ‘달맞이꽃 분식’, 홍합밥 ‘동심’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tongdosa.or.kr/kor/index.ph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작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놀이공원 ‘통도 환타지아’, 동래 범어사, 금정산성 10. 총평 및 당부사항 - 통도사는 큰 절집이다. 일주문에서 불이문, 대웅전까지 일직선으로 뻗은 가람배치와 더불어 진신사리를 품고 있다는 시찰의 자부심이 한껏 느껴지는 대형 사찰이다. 늦은 가을이 제격인 사찰.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부산 드론산업 육성 ...23일 드론 챌린지 코리아개최

    부산 드론산업 활성화 등을 위한 ‘2018 드론챌린지 코리아’가 23일 오전 10시 신라대 IoT실증센터에서 열린다. 올해로 3회째인 ‘2018 드론챌린지 코리아’는 부산지역 드론 전문기업 10개사를 선정해 IoT실증센터 무인항공기 통합관제실과 연계해 드론 개발을 지원하고 그 성과물을 시연하는 행사다. 드론을 활용한 재난안전(화재) 대응 임무 수행 경진대회도 열어 재난 상황이나 실생활에 드론을 적용할 수 있는 실제 체험기회도 제공한다. 부산시는 드론산업을 육성하고자 2016년부터 매년 아시아 최대 규모 드론 전문 전시회 ‘드론쇼 코리아’를 열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부산형 드론 활용시스템 해외 진출 수출사업단을 출범해 국내 처음으로 산업용 드론을 튀니지에 수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드론산업 저변 확대를 위해 다양한 실증사업을 공공기관과 산업 관계자들에게 소개하고, 드론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다시 중국 문 두드린 재계… 정의선, 왕융과 30분 비공개 회동

    다시 중국 문 두드린 재계… 정의선, 왕융과 30분 비공개 회동

    왕융 中국무위원, 고위급으로는 첫 참석 SK 최태원·삼성전자 권오현 회장도 회동 왕융 만난 정의선 “中서 잘 하겠다 말해” 참석자들 “보호무역 해소·한중일 협력을”“세계정세에 중요한 근간을 이루는 미·중이 반목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전체가 부정적인 유탄을 맞고 있다.”(싱가포르국립대 정치학과 교수인 보즈웨 XIPU 차세대발전연구원 부원장)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의 첫 동북아 지역회의가 ‘개방과 혁신의 아시아’란 주제로 서울에서 개최됐다. 한국에서 지역회의가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20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중국 정부 대표 인사로 왕융 국무위원이 자리했다. 왕 국무위원은 시진핑 2기 국무위원 중 유일하게 유임된 인물로 해외에서 열리는 보아오포럼에 중국 고위 지도자가 참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개막식에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 최광철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 등 경제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허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아시아의 경제발전을 논하는 첫 동북아 지역회의가 개방경제로 성장한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리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보호무역주의 확산을 막고 한·중·일 3국 간 경제협력을 강화하자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간 갈등으로 공동성명 채택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무산된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반기문 보아오포럼 이사장은 개막식 연설에서 “아시아는 현재 반(反)세계화, 보호무역, 고립주의로 대표되는 글로벌 불확실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협력과 합의를 통해 세계화, 자유무역, 다자주의 가치를 고수해야 아시아의 기적과 같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지속하고 세계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희범 LG상사 고문은 “한·중·일 3국 간 경제협력을 FTA를 통해 불완전한 ‘서리형’에서 완전한 ‘별’ 형태로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3국 경제협력을 강화한다면 팍스 아시아나 시대로의 진행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 주요 인사들은 보아오포럼 공식 행사 외에도 개별적으로 중국 측 정계·경제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교류했다. 특히 다른 일정으로 개막식 등 공식 행사에 빠졌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은 권 회장과 함께 왕 국무위원과 비공개로 회동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30분쯤 별도로 마련된 VIP룸에서 30여분간 비공개 티타임을 했다. 티타임을 마친 뒤 취재진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느냐”고 묻자 정 부회장은 “인사드리고, 간단하게 중국에서 잘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이 공식 행사에는 불참한 와중에 VIP 티타임에 참석한 것은 중국 사업 회복을 위해 중국 측 고위 인사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사드 보복의 여파에 현지 토종 업체들의 공세 등이 맞물리면서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서 고전 중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보아오포럼 상임이사를 지낸 바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오전 SK 측에서 별도로 마련한 조찬 모임에서 왕 국무위원 등과 회동했다. 한편 보아오포럼은 아시아 국가 간의 협력과 교류를 통한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창설된 비정부·비영리 지역경제 포럼으로 매년 4월 중국 하이난다오 충하이 보아오에서 열린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지리산에 남아 있는 고운 최치원 흔적

    지리산에 남아 있는 고운 최치원 흔적

    통일신라시대 대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 선생이 지리산에 남긴 흔적을 볼 수 있는 특별전이 경남 하동야생차박물관에서 열린다. 하동군은 20일 지리산 자락 화개골에 있는 하동야생차박물관 3층 특별전시실에서 ‘고운 최치원 특별전’을 올 연말까지 개최한다고 밝혔다.특별전에는 국보 제47호 쌍계사 진감선사탑비를 비롯해 세이암, 삼신동 등 최치원 선생의 친필 석각 탁본과 최치원 초상화 3점, 신식 활판 인쇄기로 찍어 발행한 딱지본 소설 ‘최고운전’ 등 20여점이 선보인다. 쌍계사 성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창후 최선생 진영’과 훼손되기 전의 진감선사탑비 모습을 볼 수 있는 목판본도 전시된다.지난 5월 불일폭포 인근 바위에서 발견된 최치원 선생이 쓴 글씨 ‘완폭대(翫瀑臺)’ 석각 탁본과 완폭대·불일암폭포 비경을 그린 겸재 정선의 ‘하동 불일암폭포’ 그림을 함께 볼 수 있다. 완폭대는 최치원 선생이 불일폭포를 감상하던 바위로 이 바위에 ‘翫瀑臺’ 글씨를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후기 선비들의 지리산 유람록에 완폭대 기록이 남아있으나 1800년대 이후 부터는 기록이 없고 완폭대 바위도 찾지 못하다가 200여년만에 다시 찾았다.장혜금 학예사는 “지리산 화개골에는 최치원 선생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만 그동안 중요성이 부각되지 못했다”면서 “이번 특별전이 최치원 선생의 하동지역 행적을 연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보아오포럼서 어떤 얘기 나왔나

    “세계정세에 중요한 근간을 이루는 미·중 관계가 반목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전체가 부정적인 유탄을 맞고 있다.”(싱가포르국립대 정치학과 교수인 보즈웨 XIPU 차세대발전연구원 부원장) “한·중·일 FTA가 체결된다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경제협력 모델이 될 것이며, 지난 5월 한·중·일 7차 정상회담에서 상호호혜적인 FTA 체결과 협상 가속화에 합의한 것은 3국 관계가 제대로 된 궤도에 올랐다는 신호다.”(리융 화융투자그룹 이사회 의장)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의 첫 동북아 지역회의가 19∼20일 ‘개방과 혁신의 아시아’란 주제로 서울에서 개최됐다. 한국에서 지역회의가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20일 오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특히 중국 정부 대표 인사로 왕융 국무위원이 자리했다. 해외에서 열리는 보아오포럼에 중국 고위 지도자가 참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 최광철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 등 경제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허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아시아의 경제발전을 논하는 첫 동북아 지역회의가 개방경제로 성장한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리게 된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보호무역주의 확산을 막고 한·중·일 3국 간 경제협력을 강화하자는데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간 갈등으로 공동성명 채택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무산된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반기문 보아오포럼 이사장은 개막식 연설에서 “아시아는 현재 반(反)세계화, 보호무역, 고립주의로 대표되는 글로벌 불확실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아시아 역내 협력과 합의를 통해 세계화, 자유무역, 다자주의 가치를 고수해야 아시아의 기적과 같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지속하고 세계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희범 LG상사 고문은 “한중일 3국 간 경제협력을 FTA를 통해 불완전한 ‘서리형’에서 완전한 ‘별’ 형태로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3국 경제협력을 강화한다면 팍스 아시아나 시대로의 진행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플래너리 세션에서는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과 최광철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이 연사로 나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혁신성장’과 ‘지속가능경영을 바탕으로 한 아시아의 지속가능 개발’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재계 주요 인사들은 보아오포럼 공식 행사 외에도 개별적으로 중국 측 정계·경제계 주요 인사들을 만나 교류했다. 특히 다른 일정으로 개막식 등 공식 행사에 빠졌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은 권오현 회장과 함께 왕융 국무위원과 비공개로 회동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30분쯤 별도로 마련된 VIP룸에서 30여 분간 비공개 티타임을 했다. 티타임을 마친 뒤 취재진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느냐”고 묻자 정 부회장은 “인사드리고, 간단하게 중국에서 잘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이 공식 행사에는 불참한 와중에 VIP 티타임에 참석한 것은 중국 사업 회복을 위해 중국 측 고위 인사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사드 보복의 여파에 현지 토종 업체들의 공세 등이 맞물리면서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서 고전 중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보아오포럼 상임이사를 지낸 바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오전 SK 측에서 별도로 마련한 조찬 모임에서 왕융 국무위원 등과 회동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삼성 이병철 전 회장 31주기 추모식 참석한 이재현 회장

    삼성 이병철 전 회장 31주기 추모식 참석한 이재현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 19일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열린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 전 회장의 31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뒤 이동하고 있다. 이날 추모식에는 신종균·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기남·김현석·고동진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 삼성 계열사 사장단이 대부분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은 지난주 미리 선영을 다녀간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1
  • 삼바 후폭풍… “삼성 합병 정당성 검토” 요구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적 분식회계를 했다는 금융당국 결론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시민단체 등은 삼성그룹의 승계 과정에 문제를 제기했고 삼성바이오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은 장중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삼성바이오는 거래정지 중이다. 삼성물산은 15일 전날보다 2.37% 내린 10만 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9만 9400원(-5.78%)까지 하락해 52주 신저가를 새로 썼다. 삼성물산 주가가 10만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5년 7월 합병 이후 처음이다. 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여동생인 이부진 사장이 대표인 호텔신라는 12.96% 급등한 8만 3700원을 기록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회계는) 2015년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 합병에 있어 불공정한 합병 비율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며, 배후에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가 있다”면서 “삼성물산 합병 처리 과정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와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등도 삼성물산에 대한 감리를 촉구하고 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인터뷰 플러스] “백제,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 돼야”

    [인터뷰 플러스] “백제,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 돼야”

    문화, 문화재, 전문 인력양성, 인적 네트워크 그리고 백제사로 20년 넘게 한 길을 살아온 이 사회의 숨은 진주가 있다. 아무도 관심 없던 90년대부터 문화재를 유지·보존하고 관리·활용하는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재 보호 유공자로 문화재청장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상임이사이자 (사)문화살림의 대표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오덕만 선생을 찾았다. 고구려와 신라의 역사에 비해 백제사의 사회적 인식이 낮은 것에 대한 국민적 지평을 넓히고 민족 문화재의 체계적인 관리와 활용을 천명(天命)으로 받아 천직을 수행하는 장인 오덕만 대표의 모습 속에 우리 사회에 반드시 존재해야 할 소중한 시대의 자산이고 기대되는 민족의 문화전도사란 생각이 든다. 편집자 주→‘문화’를 한마디로 정의를 한다면? 신자유주의적 문화관을 극복하는 방안은.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문화는 공생(共生)과 공존(共存)의 길에서 선린(善隣)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살림의 문화라는 것이죠. 이런 생각을 갖고 ‘문화살림’이란 이름으로 지난 20년간 ‘문화재 보존과 활용’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활동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극심한 양극화이고 ‘문화는 산업이다’라며 관점에서 문화의 상품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문화가 고부가 상품을 만드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본축적의 새로운 개간지가 되고 있는데, 이러다 보니 문화의 공유적·보편적 가치와 공공재로서의 의미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문화복지 차원에서 지역문화, 공동체문화, 생활문화의 활성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 백제사와 백제문화인가요. -제가 송파에 들어와 산 지 40년이 되었어요. 1988년도에 송파구는 강동구에서 분구가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가끔 송파를 말할 때 이주민이 만든 도시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이곳에 우리 고대사의 한 국가였던 백제의 도읍이 있었던 거예요. 663년 백강전투에서 패한 왜와의 연합군 백제의 681년(B.C.18년~A.D.663) 역사 가운데 493년간의 왕도지가 송파였다는 게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요? 몽촌토성, 풍납토성, 석촌동 고분 등 백제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의 유적들이 원형을 갖추고 보존되고 있는데 지금의 송파구민은 물론, 국민들이 백제를 모르고 살아요. 저도 90년대 중반에 송파에 정착하면서 백제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하게 됐어요. 백제는 고구려, 신라보다 더 먼저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질 수 있는 경제력과 문화력을 꽃피웠고, 이를 기반으로 해상교역 등을 통해 동아시아 일대로 문화전파력을 갖출 수 있었어요. 백제문화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이 가장 잘 표현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 멋지지 않나요? 이런 백제가 더 많이 부각이 되고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가 되어야 합니다. →문화와 공동체로 지역에서 20년 넘게 활동하셨습니다. (사)문화살림을 직접 설립하셨나요. -80년대 중반에 상봉동에서 목회를 하면서 지역 운동을 했어요. 당시에 초교파적으로 젊은 목회자들이 한국민중교회운동연합에 소속되어 노동·농민·도시빈민교회를 할 때였어요. 당시 상봉동 지역은 삼표연탄공장의 분진으로 인해 지역주민들이 극심한 환경적 피해를 받고 있었고, 심지어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박길래 씨 같은 분들이 진폐 환자로 발생하는 등 큰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어 당시 환경단체와 대학생들과 함께 공해문제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지역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어요. 90년대 초반에 다른 목회자께 교회를 맡기고 저는 부모님이 계시는 송파로 오게 되었죠. 아이들을 키우면서 대안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당시에는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시작한 일이 ‘현장체험 주말학교’였어요. 아이들에게 많은 경험을 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다양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만 데리고 다니다가 이웃의 학부모님들이 자기 아이들도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을 받다 보니 점차 규모가 제법 커지게 되었어요. 저 혼자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전문 체험학습지도사를 양성하고, 또 지역의 문화재를 자원봉사로 설명해 주는 문화재 해설사도 양성했어요. 그것이 지금의 문화살림이 세상에 나오게 된 동력이죠. →(사)문화살림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어요. -일반회원 수는 430여명, 카페회원 수는 1900여명, 80여명의 활동가가 있어요. 주요 활동은 문화재 보존 활동, 교육 활동, 문화재 활용 사업, 네트워크 사업으로 크게 4가지로 구분해요. 첫째로 문화재 보존 활동은 문화재지킴이활동으로 성균관지킴이, 창덕궁지킴이, 한양도성시민순성관, 한성백제유적지킴이, 위례청소년지킴이, 청년유네스코세계유산지킴이가 있어요. 둘째로 교육 활동은 송파지역문화유산교육, 파주시지역문화유산교육, 국외문화재서울시민아카데미, 문화재지킴이 기본교육과 심화교육이 있고요. 셋째로 문화재 활용 사업은 송파구의 석촌동 고분 및 풍납토성과 파주시의 반구정 황희선생유적지 문화재활용사업이 있어요. 네트워크 사업은 송파문화예술네트워크사업과 서울·경기권의 문화재지킴이단체들의 서경문화유산포럼, 전국의 문화재지킴이단체와 문화유산활용단체와 연대를 깊게 하고 있어요. →문화재지킴이 활동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2005년에 문화재청이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민간의 문화재지킴이 활동과 연계하여 전국의 문화재들을 관리·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민관 협력사업입니다. 국민의 자원봉사활동으로 민족 문화재를 지키는 활동입니다. 전국에 약 8만명의 문화재지킴이들이 있고 상시 감시활동부터 모니터링, 환경정화 활동, 안내 및 교육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문화재를 지키는 것을 넘어 지역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남북교류협력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업이 있나요. -민간 차원의 남북문화재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목표로 지난 10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남북문화재 협력네트워크 창립대회를 했습니다. 문화재는 민족 동질성 회복과 민족혼을 일깨우는 상징물이기에 교류협력을 넘어 민족통합과 통일에 기여하리라 봅니다. 우선 문화재 전시 등으로 남북문화교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문화재지킴이’ 지도사 양성을 위한 민간자격증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2016년 고용노동부 민간자격증으로 제가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는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가 자격증 부여단체로 등록되어 곧 추진하려 합니다.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위해서는 문화재에 대한 기본 지식과 활동요령은 물론, 문화재 관련 법령과 수리 등의 기본 관리에 전문성이 요구되기에 이를 지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합니다. 또한 국가 문화재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의 지방문화재 보존과 활용은 물론, 청소년들의 문화재 의식 제고를 위해 학교나 현장에서 지킴이를 교육하고 관리·운영해야 하는 전문가는 지금 당장 필요한 전문가입니다. →인생 철학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어요. -上善若水(상선약수)입니다. 도덕경에서 老子가 이르길, ‘물은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이라 했어요. 이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듯이 몸을 낮추어 겸손하며 남에게 이로움을 주는 삶을 살고자 하는 저의 마음이지요. 또한 사회적 리더로서 항상 저의 능력이 부족함을 느끼고 살기에 “순리에 따라 오는 사물은 거부하지 않고, 이미 지나간 사물은 뒤쫓지 않으며, 몸이 좋은 시기를 만나지 못했다면 바라지 말고, 일이 이미 지나갔으면 생각하지 말라”는 명심보감의 글귀도 제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1960 전북 김제 출생 학력 1979.2 동인천고등학교 졸업 1986.12 한성신학교(합동보수) 신학과 졸업 1987.12 총회신학원(개혁) 목회연구과 졸업 경력 1989.4 녹원생활협동조합 설립 이사장 1999.9 현 위례역사문화연구회 회장 2005.2 현 한국체험교육협회 회장 2007.5 문화재 보호 유공자로 문화재청장 표창 2011.11~2017.12 서경문화유산포럼 회장 2013.3 현 (사)문화살림 대표이사 2014.10 문화재 보호 유공자로 국무총리 표창 2015.11 현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상임이사 2017.3 현 한양도성문화제 추진위원장 2017.6 현 송파문화예술네트워크 회장 2017.9 현 (사)한국문화유산활용단체연합회 부회장 2018.4 현 문화재청 궁능활용심의위원 2018.10 현 송파구 관광정책자문위원 강사 경력 2005.9~2008.12 경기대학교 사회교육원 강사, 울산 현대한마음회관 체험학습지도사 강사 2009.6~2012.12 전국문화관광해설사(한국관광공사) 보수교육 강사 2009.8~2012.12 서울시 공무원 직무교육 한국사 강사(서울시인재개발원) 2010.3~2012.12 서울시민대학(서울시립대) 강사
  • 전남 장흥읍성 터에서 백제·고려시대 유물 발굴

    전남 장흥읍성 터에서 백제·고려시대 유물 발굴

    전남 장흥읍성 발굴조사에서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확인됐다. 장흥읍성은 지난해 전라남도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지역으로 확정됐다. 발굴조사는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에서 지난 6월 18일부터 시작했다. 장흥읍 동동리 산 6-1번지에 위치한 조사구역은 사전지표조사에서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됐다. 판축 다짐층과 수혈유구, 주공 등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시대까지 유물의 시대적 폭도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발굴에 참여한 전문가는 “백제 고마미지현의 중심지가 이 일대로 판단된다”며 “백제 유적이 이 지역에서 확인돼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 부합한 중요한 장소다”고 밝혔다.기와 조성기법(문승문, 포목문)은 전남 동부권인 순천시와 여수시·광양시에서 출토되는 백제시대 기와와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제시대 유적에서 보이는 승문제작방법과 공통된 제작기법을 보여 시기는 7세기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장흥군은 지난 12일 장흥읍성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열고 이같은 의견을 발표했다. 군 관계자는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주변 수목제거 등 유적 정비를 통해 문화재로 지정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장흥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나당동맹에서 한미동맹까지…‘빈틈없는 공조’의 그늘

    [곽병찬의 역사 앞에서 묻다] 나당동맹에서 한미동맹까지…‘빈틈없는 공조’의 그늘

    2015년 일본은 졸지에 ‘빨판상어’라는 듣기 거북한 별명을 얻었다. ‘미군이 시키면 무엇이든 하는 빨판상어’다. 국민감정이 안 좋은 한국이나 중국으로부터 얻은 것이 아니다. 자국의 학자들이 붙였다.2015년 8월 19일 야마모토 다로 의원은 참의원 전체회의에서 아베 신조 총리에게 물었다. “미군이 요구하면 헌법을 짓밟고라도, 국민의 생활을 파괴해서라도, 온 힘을 다해 따르는데…이런 나라를 독립국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아베 정권이 원전 재가동,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밀보호법, 집단자위권에 이어 안보법제까지 강행하려는 것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구상 제3차 아미티지·나이 보고서(2012년)를 베낀 것 아니냐며 한 질문이었다. 아미티지 보고서에는 ‘일본이 2류 국가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일본이 자신에게 강제하는 (군사력 증강, 역내 개입 등의) 제약을 풀고,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이 수행하는 전략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일본의 TPP 참여 등이 그대로 나와 있었다. 의석에서는 이런 야유가 쏟아졌다. “그런 것쯤은 국회의원이라면 다 알고 있다.” “알면서도 입 밖에 내지 않으니 국회의원 노릇도 정치인 시늉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촌뜨기처럼 그런 얘기는 왜 하는가.” 여기서 ‘그것’이란 ‘미국의 속국’을 뜻했다. 일본은 한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동맹을 미국과 맺고 있다. 전시작전권이 주한미군에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의 작전권은 총리에게 있다. 그런데도 일본의 학자나 정치인들은 미국에 대한 속국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미국과 지구상에서 가장 예속적인 동맹을 맺고도 허구한 날 ‘더 강력한 동맹’을 촉구하는 한국의 정치인들과 사뭇 다르다.다로의 논쟁을 계기로 정치학자 우치다 다쓰루와 시라이 사토시는 대담 형식의 ‘속국 민주주의론’을 출간했다. 우치다는 이렇게 말했다. “속국의 입장을 수용하고, 맹세한 자만이 이 나라의 지배층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지난 70년간 일본에 자리잡은 지배구조다.” 시라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일본의 천황은 미국”이라며 “존황양이가 아닌 존미양이가 일본의 깃발이 되었다”고 말했다. 우치다의 지적처럼 많은 한국의 엘리트 집단은 “미국 정부의 환심을 얼마나 사느냐가 정치적 능력으로 인정받는다”(박태균 서울대 국제 관계학부 교수)고 굳게 믿는다.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는 만사 제쳐 놓고 미국으로 달려가 미국 대통령을 알현하고, 낙선한 자도 미국에서 소일하다 돌아온다. 김무성 의원이 미국 정치의 심장부인 워싱턴DC에서 ‘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느냐’는 투로 최근 한국 대사를 몰아붙인 것도 그런 ‘환심사기’로 읽혔다. 족벌언론들은 틈만 나면 ‘미국과 한 몸이 되라’(일체화, 一體化)고 외쳤다. 5월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자 이들은 환호하며 이렇게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운전자석을 계속 유지하면서 비핵화와 평화를 달성하려면 미국과 강력한 한 팀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중앙일보, 5월 23일자) “지금은 한·미가 한 몸이 돼서 북을 설득하고 때로 압박해 가면서 이른 시일 내 핵 폐기를 결심하도록 해야 할 때이다.”(조선일보, 5월 27일자) 이런 일체화론(‘한몸론’)은 ‘빈틈없는 공조’ 등 때마다 여러 가지 수사로 나타나지만, 최소한 미국의 뜻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뜻에는 차이가 없다. ‘일체화론’은 미군이 한반도 남쪽에 들어오면서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었다. 그 뿌리는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패망시킨 나당동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은 이 동맹을 빌미로 신라를 사실상 속국으로 만들었다. 고려는 종주국인 원나라의 요구에 따라 새로 굴기하는 명을 치려다가 왕조 자체가 몰락했다. 명과 군신관계를 맺었던 조선은 인조 때 중원의 새로운 패자 후금(청)과 맞서다가 국민과 국토를 어육으로 만들었다. 조선 말 조미수호협상 때는 청의 이홍장이 교섭을 대신했으며, 이홍장은 ‘조선은 청의 속방이다’를 제1조로 한 초안을 미국에 제시했다. ‘일체화’라는 표현이 실제로 등장한 것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부터였다. 이용구, 송병준 등 ‘일진회’가 제기한 ‘일한일체화론’이 그것이다. 절찬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제작진은 지난 7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냈다. 구한말 실제로 존재했던 일본 흑룡회를 등장시켜 친일 미화 논란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흑룡회는 19세기 말부터 일찌감치 조선병합론을 주장했던 일본의 극우단체였다. 제작진이 이 단체의 한성지부장이란 인물을 영웅적인 무사로 등장시켰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일본 군부와 정계에 넓은 인맥을 가진 흑룡회는 19세기 말 일본인보다 더 일본스러운 조선인들을 키워 조선 병탄에 앞세웠다. 이용구(진보회)와 송병준(일진회)이 1904년 12월 2일 ‘일진회’로 통합할 때 후견 집단이 바로 흑룡회였다. 통합 직전 두 사람이 내건 기치가 ‘일한일체화와 문명화’였고, 서약의 표시로 회원들에게 단발을 촉구했다. 일진회는 러일전쟁에서 ‘일본과 한 몸’임을 과시하기 위해 일본군의 병참 지원에 앞장섰다. 북진수송대를 조직해 1905년 6월부터 10월까지 무려 11만 4500명(연인원)의 회원을 동원했으며, 비용 대부분도 일진회가 부담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일진회는 11월 5일 이런 성명을 냈다. “(외교의 권한은) 차라리 우방 정부(일본)에 위임하여 그 힘에 의지하여 국권을 보유하는 것도 폐하 대권의 선양이 아닐까.…그 지도 보호 아래 국가의 독립과 안녕, 행복을 영원무궁하게 유지하고자 이에 감히 선언한다.” 흑룡회의 실력자 우치다 료헤이는 당시 일진회 고문이었다. 성명 발표 후 12일 뒤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빼앗겼다(을사늑약). 1909년 7월 6일 일본 정부는 병탄 방침을 확정했다. 이에 이용구는 일본과 정치체제의 통합을 추진하자며 ‘정합방론’을 제시하고, 12월 4일 일진회 이름으로 ‘일한합방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사직과 백성을 영원히 보전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일본과 한국이 합방하는 데 달려 있다.’ 일본은 이듬해 8월 대한국을 병탄했다. 일체화론의 귀결이었다. 지난 11월 2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 부지가 공개됐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에 접수당한 뒤부터 한국인에게 금단의 땅이었으니 113년 만이었다. 그곳엔 주한일본군 사령부와 일본군 20사단이 주둔했고, 조선총독의 관저가 있었다. 해방 후엔 미군에 접수돼 총독 관저는 미군 병원으로, 일본군작전센터는 미군 벙커로, 일본군 장교 숙소는 주한 미합동군사업무단 건물로 쓰였다. 일본군 병기지창엔 미군 공병대와 시설대가 들어섰다. 1905년 일본군이 접수하기 이전에도 이곳은 ‘종주국’의 기지로 쓰였다. 고려 때는 몽골군의 병참기지가,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1882년 임오군란 때는 청의 군대, 그리고 1895년엔 청일전쟁의 승자인 일본군이 주둔했다. 용산 기지 터는 더 강한 동맹을 앞세운 ‘일체화론자’들의 성지였으며 한국인에겐 ‘속국’의 상징이었다. 한·미동맹에 침을 뱉으려는 게 아니다. 한·미동맹은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켰고, 이후에도 북한의 남침 의도를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 문제는 이 나라를 번방도 속방도 아니요, 아예 속국으로 하자는 일체화론자들이다. 전쟁 중에도 동맹의 그늘에 숨어 권력 쟁취에 여념이 없었고, 평시엔 미군과 미 정부에 충성하는 것으로 권세와 영달을 누리려는 자들 말이다. 그들은 요즘 북한을 ‘핵을 가진 적’에서 ‘핵과 침략 의도를 포기한 이웃’으로 바꾸려는 정부의 노력을 필사적으로 방해한다. 일부 국민을 선동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과 한국이 한 몸이 돼야 한다고 외치도록 선동한다. 권력의 화수분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구한말 이용구와 송병준이 일진회 회원들을 앞세워 일장기를 흔들며 일한일체화를 부르짖었던 것과 판박이가 아니고 무엇일까. 논설고문 kbc@seoul.co.kr
  • 공유 “정유미, 뺏기고 싶지 않아”

    공유 “정유미, 뺏기고 싶지 않아”

    결혼설에 휩싸였던 배우 공유(39) 정유미(35)가 극중 부부가 된다. 지난 1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배우 공유와 정유미가 신라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라는 소문이 확산됐다. 공유가 신라호텔에 결혼식을 올릴 계획으로 예약을 하고 갔다더라는 것. 이 같은 루머에 공유 정유미의 소속사 매니지먼트숲 측은 “두 사람의 결혼설은 사실무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소속사 측은 두 사람이 친한 것은 맞지만 결혼설은 사실무근이라고 강조했다. 공유 정유미는 지난해에도 결혼설이 제기된 바 있다. 두 사람이 계속해서 결혼설에 휩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공유와 정유미는 같은 소속사로 지난 2011년 영화 ‘도가니’, 2016년 영화 ‘부산행’을 함께 촬영한 인연이 있다. 또한 공유는 인터뷰에서 “나는 정유미라는 배우가 좋다. 같이 작품을 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 배우가 갖고 있는 독보적인 무언가가 부럽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랑 한 영화에 함께 출연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만의 스타다. 내심 나만 알고 싶었는데 내 것을 뺏기는 느낌이었다”라며 정유미에 대한 남다른 사심을 고백한 바 있다. 한편 공유와 정유미는 내년 개봉하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춘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은빛 바람에 낭만을 띄우다…붉은 물길에 마음을 보내다

    은빛 바람에 낭만을 띄우다…붉은 물길에 마음을 보내다

    지나는 산마다 스며든 노랗고 붉은 단풍에 가을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호수에 빠진 자연은 한 폭의 그림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경남 합천의 요즘 풍경이다. 가야산을 머리에 이고 낙동강 지류인 황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합천은 가을의 품에 푹 안겨 이 계절을 만끽하고 있다.●단풍잎 한가득 떠가는 해인사 홍류동 계곡 합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만 있는 게 아니다. 수장고에 고이 잠들어 있는 800년 세월의 국보 못지않게 절에 오르는 길가의 절경이 여행객의 마음을 빼앗는다. 대장경기록문화테마파크 인근에서 시작해 가야산국립공원 내 해인사 근처까지 약 6㎞ 이어지는 소리길을 따라 걸으면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소리길이라는 이름이 붙었구나 싶지만 불교용어로 극락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중의적 의미를 가진 셈이다.그 중 4㎞ 구간은 홍류동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가을 단풍이 비친 계곡물이 너무 붉게 보인다해 붙은 이름이다. 기암괴석이 우거진 계곡에는 붉고 푸른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계곡 사이 졸졸 흐르는 물 위로는 단풍잎이 한가득 떠간다. 소리길 중간쯤 나뭇가지에 걸린 ‘하심’(下心)이란 팻말을 보기 전 마음은 이미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농선정, 낙화담, 분옥폭포 등 홍류동의 19명소를 하나씩 짚어가며 오르는 것도 재미다.국내 3보 사찰 중 하나인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3년(802년)에 창건됐다. 한국불교의 성지이자 국보·보물 등 유물 70여점이 산재해 있다. 일주문을 통과해 절 안으로 들어선다. 장엄한 봉황문 계단을 오르고 해탈문을 넘어서면 청아한 풍경소리가 바람에 실려 온다. 팔만대장경 보관 장소인 장경각은 한때 입장이 통제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개방돼 있다. 다만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어 방문객들은 나무창살 틈으로 슬며시 대장경을 들여다본다.절에서 욕심을 버리고 오니 배가 출출해졌다면 근처에서 식사를 해도 좋다. 해인사 일주문에서 산 아래로 도보 25분쯤 떨어진 주자창 근처에 식당들이 모여 있다. 자연산 송이버섯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송잇국정식을 추천한다. 반찬 20여 가지가 함께 나온다.●타임머신 탄 듯… ‘미스터 션샤인’ 촬영한 합천영상테마파크 합천의 또 다른 매력을 맛보기 위해 합천영상테마파크로 이동한다. 차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가량 걸리는 거리다. 2003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평양시가지 세트장이 만들어진 것을 계기로 이듬해 7만 5000㎡ 면적에 본격적인 촬영장이 조성됐다. 조선총독부, 경성역, 반도호텔, 파고다극장 등 일제강점기 경성시가지 모습과 1960~1980년대 서울 소공동거리 등이 재현된 테마파크에 들어서면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운이 좋다면 당시 복장을 차려입은 배우들이 거리를 거닐며 촬영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최근 종영한 ‘미스터 션샤인’을 비롯해 ‘란제리 소녀시대’, ‘시카고 타자기’ 등 드라마와 ‘박열’, ‘밀정’ 등 영화가 다수 촬영됐다.영상테마파크 바로 인근에 위치한 청와대 세트장도 둘러보면 좋다. 실제 청와대의 67% 크기로 제작된 건물 내부에는 대통령 집무실 등이 고스란히 재현돼 있다. 집무실 의자에 앉아 대통령이 된 듯한 포즈로 인증샷을 찍는 재미가 있다. 어른 기준 입장료 5000원에 영상테마파크와 함께 구경할 수 있다.●파도처럼 출렁이는 황매산 오토캠핑장 억새밭 합천의 은빛 가을 풍경을 만나러 황매산군립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내비게이션에 ‘황매산 오토캠핑장’을 찍고 가면 산 정상에서 멀지 않은 주차장에 닿는다. 영상테마파크에서 차로 25분 거리다. 주차장에 내리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멀리 보이는 억새밭은 파도처럼 출렁인다. 억새 수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전망대를 향해 오른다. 억새꽃은 햇볕을 받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빛깔을 띠면서 등산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황매산 억새꽃은 이제 막 절정을 지났다. 바람에 흩날리는 은빛 ‘꽃잎’에 휩싸여 낭만에 빠져보기 좋은 시기다.합천에 하룻밤 묵어갈 계획이라면 아침 물안개를 꼭 보길 권한다. 동이 트고 대지가 서서히 태양의 온기를 받으면 굽이쳐 흐르는 황강에서 아스라이 물안개가 피어난다. 어느새 강변의 논밭과 갈대 언덕을 자욱하게 메우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교차가 큰 가을이 주는 선물이다. 부지런한 사진가들은 아침나절에만 만날 수 있는 장관을 찍으러 일찍부터 모여든다. 글 사진 합천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여행수첩 →KTX 김천구미역과 합천군을 연결하는 합천시티투어가 이달부터 선보인다. 김천구미역까지 오는 관광객이 대상이다. 서울에서 합천까지 차로 4시간 넘게 걸리지만 KTX와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3시간이 채 안 걸린다. 시간 절약과 함께 장거리 운전 부담을 덜 수 있다. 군은 시티투어 신규 관광 콘텐츠를 발굴하고 전용 정류소를 설치하는 등 관광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비용은 어른 9만 8200원. 참조은여행사(www.cjt0533.com)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리네 - 의성 고운사(孤雲寺)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리네 - 의성 고운사(孤雲寺)

    “쓸쓸한 가을바람에 괴로워 읊조린다. 이 세상 뉘라서 내 마음을 알아주리.” <추야우중 中 1, 2수, 최치원, 857~?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위치한 고운사(孤雲寺)는 특이하게도 신라 시대의 석학, 최치원의 자(字)인 ‘고운(孤雲)’을 따라 절 이름을 지은 곳이다. 최치원은 어느 국가, 어느 시대나 으레 있어왔던 불우했던 천재 유형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신라 말엽 6두품이라는 신분의 벽, 혼탁한 시대와의 불화로 인해 그도 스스로 세상과 절연하였다. 857년, 신라 사량부(沙梁部)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난 최치원은 당시 6두품들이 그러하듯 12세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상투를 매어 달고 가시로 살을 찌르며 남이 백을 하는 동안 천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불과 6년 만에 당나라 빈공과에 급제를 한다. 출셋길이 보장된 듯하였다. 기회마저 온다. 당나라 말기인 875년, 소금장수 황소(黃巢)가 일으킨 난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쓰고 문재(文才)를 날린다. 최치원은 당나라 정5품 이상의 신하만 지닐 수 있는 붉은 비단주머니인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는다. 그리고 그 주머니를 쥐고 꿈에도 그리워하던 고향, 신라로 돌아온다. “6두품은 집의 길이와 너비는 21자를 넘지 못한다. 금ㆍ은ㆍ놋쇠ㆍ백랍(납과 주석의 합금)ㆍ오색의 단청으로 집을 장식하지 못하고, 비단 보료의 사용도 금한다. 문은 겹문과 사방문을 설치하지 못하고, 마구간은 말 다섯 마리를 넘지 못한다” 최치원의 나이 만 28세. 885년 당황제의 국서를 가지고 신라로 귀환한 그는 결국 6두품이었다. 서라벌에서 당나라로 가는 문서를 작성하는 한림학사를 시작으로 외직(外職)인 태산군(정읍), 부성군(서산) 태수를 거쳐 6두품의 한계인 아찬(阿飡)까지 관등을 단다. 하지만 더 이상은 나아가지 못했고 진성여왕에게 올린 개혁안 ‘시무 10조’는 성골과 진골의 비아냥만 얻게 된다. 결국 지리산으로, 가야산으로 떠돌던 그는 흔적도 없이 역사에서 사라진다.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질 뿐이다. 바로 이러한 최치원의 열망과 좌절을 보여주는 장소가 고운사다. 원래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창건 당시의 절 이름은 ‘높은 구름’을 뜻하는 고운사(高雲寺)였으나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자인 고운(孤雲)을 빌어 현재의 고운사(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이러한 최치원의 설화 이외에 고운사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예로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 명부전에 다녀왔느냐고 묻는다는 설화가 전해질 정도로 죽은 이를 모시는 법당인 고운사의 명부전은 이름나있다. 이외에 고운사에는 영조의 어첩을 보관하고 있는 ‘연수전’을 비롯하여 극락대전, 대웅전 등 천년고찰로서의 위의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현재는 조계종 제 16교구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대소사찰들을 관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을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사시사철 느낄 수 있다. 또한 입장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불자들의 다소곳하고 정감 넘치는 고운사만의 분위기를 항상 느낄 수 있다. 늦가을 심란한 마음이 든다면, 최치원의 맘을 비우게 했던 가운루에서 다시금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고운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의성 지역을 가 본다면. 최치원의 흔적을 찾아가려면 2. 누구와 함께? - 민가와 떨어진 고즈넉한 절집이다. 가족이나 연인과 오붓하게. 3. 가는 방법은? -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415(구계리116) / 의성이나 단촌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 제일 낫다. 버스시간표는 홈페이지 참조. 4. 감탄하는 점은? - 조용하고 그윽하다. 특히 가을날의 맑은 풍광은 천년사찰답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위치상 방문객들이 많지 않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명부전, 삼층석탑, 연수전, 가운루, 호랑이그림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백종원 3대 천왕 마늘통닭 ‘주영자마늘닭(구. 삼미통닭)’, 숯불갈비 ‘남선옥’, ‘의성마늘한우프라자’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gounsa.net/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조문국박물관, 산운마을, 빙계계곡 10. 총평 및 당부사항 - 고운사는 최치원의 정신적인 흔적이 짙게 남은 곳이다. 고운사에서 마음을 비웠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조용한 산사(山寺)의 깊은 정취가 물씬 넘쳐나는 곳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영진전문대학교, 이브와 ICT멘토링 전국대회 대상

    영진전문대가 ‘2018 제11회 이브와 ICT멘토링 수행결과발표회’에서 대상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또 은상 등도 차지해 2,4년제 대학 중 최고 성적을 거뒀다. 영진전문대는 최근 충북 제천 청풍리조트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가 주관하고 IT여성기업인협회가 개최한 ‘ICT멘토링 수행결과발표회’에 컴퓨터정보계열 학생 3개 팀이 참가했다고 7일 밝혔다. 전국 2,4년제 대학교 40개 팀이 참여했고, 10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영진전문대 성경임 등 5명이 참가한 호렌소팀(멘토기업 ㈜신라시스템)이‘IT와 펜토미노를 접목한 신개념 수학교구, 펜토(Pento)’ 수행결과 발표로 대상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안았다. 또 GCC팀(박유진 등 4명, 멘토기업 ㈜한국알파시스템)은 ‘어디든 떠나보자, AR 퀴즈 현장 학습’과제발표로 은상인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센터장상’을, 해커즈팜(최다연 등 5명, 멘토기업 신재생로봇 융합연구소)은 ‘IT여성기업인협회장상’을 차지하는 등 참가 3개 팀이 본선에 모두 진출, 전원 입상의 성과를 올렸다. 호렌스팀 정지민(3년)씨는 “이 작품은 펜토미노의 장점을 유지하며 여러 이펙트와 손동작 인식 기능으로 아이들에게 흥미를 유도하고 다양한 형태의 학습을 진행할 수 있는 게 특� 굼繭箚� 설명했다. 같은 팀원인 성경임(3년)씨는 “멘토기업,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아 프로젝트 진행 체계를 배웠고, 데이터베이스 분야로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이 프로젝트 활동을 함께 한 동기생 3명이 모두 일본 기업에 합격해 기쁘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강릉서 4세기대 신라 갑옷 완전한 형태로 발견

    강릉서 4세기대 신라 갑옷 완전한 형태로 발견

    강원 강릉시 초당동에서 4세기대 신라 찰갑(札甲)이 발견됐다. 찰갑은 작은 쇳조각을 비늘처럼 이어 붙인 갑옷이다. 강릉 초당1처리분구 하수관로 정비사업용지 내 유적을 조사 중인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유적 내 토광목곽묘에서 찰갑을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찰갑은 토광목곽묘 서쪽에서 발견됐다. 몸통을 보호하는 부분 이외에 목의 뒷부분을 보호하는 목가리개(경갑·頸甲), 어깨를 보호하는 어깨가리개(견갑·肩甲)가 함께 확인됐다. 긴목항아리(장경호·長頸壺), 짧은목항아리(단경호·短頸壺) 등 신라 토기들과 금귀걸이 한 쌍도 함께 나왔다. 신라 토기의 연대를 고려했을 때 4세기대 강릉 지역에 주둔한 신라 장수의 것으로 보인다는 게 조사기관 분석이다. 연구원 측은 “완전한 형태의 찰갑이 영동 지역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신라의 영동 진출 시점과 의의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최정 9단, 여류 기사 중 가장 빨리 통산 400승 달성

    최정 9단, 여류 기사 중 가장 빨리 통산 400승 달성

    ‘여성 바둑 최강자’ 최정(22) 9단이 여류 기사 중 최단 기간에 통산 400승 고지에 올랐다. 1일 한국기원은 최정 9단이 전날 중국 쑤저우시 우중구 궁륭산에서 열린 제9회 궁륭산병성배 세계여자바둑대회 ‘라이벌’ 위즈잉 6단에게 281수 만에 흑 불계승하며 통산 400승 달성과 동시에 대회 8강에 진출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최정 9단은 여자기사 중 최단기간인 입단 8년 5개월 만에 400승 고지에 오르게 됐다. 이전기록은 박지은 9단의 13년 4개월이었다. 여자 프로기사의 400승은 최정 9단이 통산 4번째다.2010년 5월 18일 입단한 최정 9단은 2012년 여류명인전에서 첫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 국내대회 8회, 세계대회 2회 우승 등 총 열 번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통산 599전 400승 199패(승률 66.77%)의 전적을 기록하며 여성 프로기사 중 최강자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최정 9단은 “400승 달성을 대국 종료 후 알게 됐다”며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워 기쁘고 앞으로 계속 좋은 모습 보여 드리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정 9단의 승리 기록 추이 1승 제9회 정관장배 세계여자바둑최강전 국내선발전 1회전 (2010.11.02) 100승 제41회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예선 1회전 (2013.06.28) 200승 제17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국내선발전 4회전 (2015.07.16) 300승 2017 중국 여자 을조리그 2라운드 (2017.06.09) 400승 제9회 궁륭산병성배 세계여자바둑대회 16강 (2018.10.31)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선농단 향나무는 기억한다 풍년 기원하는 왕의 손길을 빼앗긴 봄 암울했던 세월을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선농단 향나무는 기억한다 풍년 기원하는 왕의 손길을 빼앗긴 봄 암울했던 세월을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6회 청량리(약령시의 기억) 편이 지난 27일 동대문구 휘경동·전농동·청량리동·제기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을이 농익은 서울시립대에서 낙엽이 흩날리는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했다. 또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청량리 수산시장, 동부청과시장, 청량리 재래시장, 청과물도매시장, 서울약령시(경동시장) 등 끝도 없이 이어지는 5개 개별시장이 뭉친 슈퍼시장의 위용을 체감했다. 때마침 26일부터 이날까지 ‘제24회 서울약령시 서울한방문화축제’ 기간이어서 흥겨운 한방축제 분위기에 젖었고, 한방박물관 무료관람 혜택도 누렸다.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1호선 회기역에 집결한 투어단은 의병장 허위 장군의 호를 딴 왕산로를 따라 내려오다 110년 전통의 시조사를 보고 동광대장간을 들렀다. 떡 파는 가게가 즐비했던 떡전교를 지나 서울시립대에서 경농관과 자작마루를 둘러봤다. 사도세자의 능이 있던 배봉산은 건물과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청량리 육교 위에서 수십 갈래로 쪼개지는 철길의 행렬을 지켜본 뒤 청량리역~금강헤어라인~청량리청과물시장~서울약령시~제기동성당의 순서로 2시간 20분간의 바쁜 일정을 마무리했다. 해설을 맡은 김은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철저한 사전답사와 준비를 통해 만족스러운 투어를 선사했다. 서울시립대는 자작마루의 문을 열어줬고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동광대장간, 금강헤어라인의 장인으로부터 자부심 어린 뒷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곡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같은 아리아가 흐른 10월의 마지막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였다.청량리는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인창방 청량리계에 속하는 고요한 성 밖 동네였다. 1911년 경기도 경성부 인창면 청량리,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청량리를 거쳐 1946년에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으로 자리잡았다. 서울과 경기도를 들락날락한 동쪽 교외(동교)였다. 겸재 정선이 남긴 ‘동문조도’(東門祖道)라는 진경산수화에 300년 전 동대문 밖 풍경이 등장하는데 낙산과 동망봉, 안암, 용마산 아래 동묘와 청량리 일대가 펼쳐져 있다. 조도란 길 떠나는 사람을 송별한다는 뜻이니 동대문 밖 청량리가 서울을 벗어난 첫 지점이라는 장소성이 내재돼 있다. 그러나 용두동·제기동·전농동 등 이른바 청량리 일대는 왕이 몸소 농사를 짓는 친경(적전)을 두고 제사를 모신 점에서 여타 교외 지역과는 격을 달리했다. 적전은 한성과 개성 2곳에 뒀는데 한성의 적전을 동적전, 개성의 적전을 서적전이라고 지칭했다. 김정호의 경조오부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고지도에 동적전을 안암천(성북천)과 정릉천 사이에 표시하고 있고 동적전의 관리청인 필분각이 있던 텃골과 곡식을 저장하던 창고마을인 창마을(倉村)이 오늘의 서울시립대 앞 전농로에 있었다. 선농단의 친농의례는 종묘제와 사직제, 환구제의 대사(大祀)에 이어 중사(中祀)의 위상을 가졌다. 조선 성종 6년(1475)에 적전의례가 처음 실행된 뒤 연산군, 중종, 명종, 선조, 광해군 때 1회씩 거행됐으며 이후 영조와 고종, 순종 때 자주 거행됐다. 선농대제가 끝난 뒤 소를 잡아서 참가자들에게 나눠 준 게 설렁탕(설롱탕)의 유래가 됐다. 청량리(淸凉里)는 신라 고찰 청량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청량이란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청량산에서 따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삼각산(북한산)에 청량사가 있다고 적었다. 또 고려 예종 12년(1117) 왕이 남경(서울)에 행차하면서 청량사에 머문 사실도 전한다. 세종 5년(1423) “태조의 공신은 청량사에, 태종의 공신은 승가사에서 주상의 탄신일에 장수를 기원하자는 재를 열자”는 세종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조선 초 청량사의 격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청량사는 1897년 명성황후가 홍릉에 들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선농단 일대는 참담한 변화를 겪는다. 고종은 영조 이후 100년 넘게 거행하지 않던 친경례를 부흥시켰고, 순종은 1909년과 1910년 두 차례 친경례를 행했지만 1908년 개정된 제사제도 칙령에 의해 선농단의 위패는 사직단으로 옮긴 뒤여서 사실상 폐지된 것과 다름없었다. 일제는 선농단 터에 느닷없이 잠업기술 및 기술자를 양성하는 잠업시험소의 전신 원잠종제조소를 설치했다. 또 1934년 경성여자사범학교 부지로 제공, 기숙사를 짓는 과정에서 원형을 잃었다. 일제강점기 선농단은 청량대(淸凉臺)라는 공원으로 훼손됐다.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책동이었다. 지금도 청량대라고 새겨진 빗돌 하나가 누워 있다. 광복 후 주민들이 넘어뜨려 울분을 달랬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선농단은 1950~60년대 서울사대부고나 서울사범대생들에게 개나리와 벚나무, 측백나무가 우거진 뒷동산으로 기억되고 있다. 선농단 터라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왕이 농사를 지은 장소 정도로 알았다. 휴식과 축제 장소로 사용했다. 대학신문 1961년 4월 27일자 ‘청량대 새 단장’이라는 기사에서 “왕이 백성들의 농사하는 모습을 살피려고 올라서곤 했던 청량대 비석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도록 그 위치를 옮긴다. 가장 큰 나무인 향나무에 중점을 두고 주위의 다른 나무들은 제거 혹은 이식시킨다”고 적혀 있다. 선농단 터는 제기동에 속하지만 1970년대까지는 제기동과 용두동 경계에 걸쳐 있었다. 이후 116개의 필지로 분할됐다. 우뚝 솟은 향나무 한 그루가 선농단의 존재를 말없이 증언하고 서 있다. 천연기념물 제240호로 지정된 높이 10m, 줄기의 둘레 2m에 이르는 600년 묵은 이 노거수는 다른 향나무처럼 휘어지지 않고 위로 곧게 자란 게 특징이다. 청량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청량리역, 588 집창촌, 서울약령시로 이름을 바꾼 경동시장 등이다. 주민의 삶이 아니라 외부인의 시각이다. 청량리의 두드러진 정체성은 철도이다. 청량리역은 1950~60년대 철도교통의 발달에 따른 도시적 확장 과정의 산물이다. 근대교통기관인 전차가 1899년 처음으로 홍릉까지 왕래했고, 수송의 중심이 전차에서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1968년 70여년간의 전차운행이 중단될 때까지 전차노선의 중심이었다. 1911년 경원선 철도가 일부 개통됐고 1939년에는 경춘선이 성동역(제기역)을 기점으로 운행된 데 이어 중앙선까지 연결되면서 청량리는 물자 유통과 여객 수송의 요충지이자 철도 중심지로 명맥을 이었다. 1974년 개통된 지하철 1호선이 근대 전차의 첫 목적지였던 청량리 궤도를 여전히 달리고 있다. 관사주택과 부흥주택, 도시 한옥, 시민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도심주변부 근대도시 주거지의 역할을 해냈다.서울약령시는 1000여 한의약 관련 전문 업소가 모여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한약재 전문시장으로 전국 한의약 약재의 70%가 거래되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문학3(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일시 : 11월 3일(토) 오전 10시~12시 ●집결장소 : 지하철 2호선 신촌역 3번 출구 앞 ●신청·안내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 ‘성산일출봉 스위트엠 프레시빌’ 삼면 바다로 향한 트라이앵글설계, 테라스, 옥외중정 등으로 인기

    ‘성산일출봉 스위트엠 프레시빌’ 삼면 바다로 향한 트라이앵글설계, 테라스, 옥외중정 등으로 인기

    제주도 지가가 최근 몇 년간 지속되는 인구유입, 제주 제2공항을 비롯한 각종 개발호재들로 전국 최고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제주도 부동산 상승에 따른 각종 기획부동산, 수익형부동산의 분양이 급증하며 일부 부동산의 허위·과장광고 등 소비자들의 피해가 이슈화된 바 있다. 부동산전문가들은 “수익형부동산뿐 만아니라 세컨드하우스를 분양받는데 있어서도 시행업체 부도 등의 우려가 없는 믿을 수 있는 시행업체인지를 꼼꼼히 따져라”고 조언한다. 이에 따라 풍부한 자금력을 갖춘 부동산신탁사가 시행하는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안정성과 신뢰성 측면에서 각광받고 있다. 신탁사가 시행하는 사업은 토지소유자의 토지를 위탁받아 직접 자금조달하여 개발하기 때문에 사업준공에 대한 책임을 지며, 철저한 분양관리로 계약자의 안정성을 보장한다. 제주도에서는 성산일출봉 인근에 군인공제회가 100% 출자하여 풍부한 자금력을 갖춘 대한토지신탁이 시행하는 ‘성산일출봉 스위트엠 프레시빌’을 분양 중이다. 대한토지신탁은 총 자산만 약 5조원에 육박하는 탄탄한 신탁사로, 지난해 신규 수주액만 1,233억원을 넘기며 영업수익과 영업이익에서 설립 이래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대한토지신탁은 2016년 신탁사 최초로 인천 작전동 신라아파트 재건축(브라운스톤계양스카이) 사업에 참여해 정비사업 단독시행사로 지정되어 일반분양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이어 자금조달이 어려워 사업이 정체되었던 남양주 지금도농1-3구역주택 재개발(다산 해모로)에 사업대행자로 참여하여 착공과 일반분양까지 성공적으로 완료한 바 있다. 지난해 부천 삼협연립주택 재건축, 인천 롯데우람아파트 재건축, 인천 새한아파트 재건축을 수주했으며, 올해 들어 사업대행자 방식으로 동두천 생연주공아파트 재건축, 서울 강북구 미아 3-11재건축, 서울시 광진구 모진연립주택 재건축 등 10여개의 사업지를 수주했다. 대한토지신탁이 시행하는 ‘성산일출봉 스위트엠 프레시빌’은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261-2 일대, 주거복합단지 성산일출봉 반경 500m 내에 위치한다. 현재 입지타당성재조사가 추진되고 있는 제주 제2공항 예정지 차량 10분대 거리에 위치하여, 투자가치를 기대하는 제주도 세컨드하우스 수요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성산일출봉 스위트엠 프레시빌’은 전용 39㎡~83㎡ 22개 타입의 오피스텔 97실, 공동주택 전용 37㎡~83㎡ 4개타입 15세대 총 112세대와 근린생활시설을 선보인다. 이 단지는 전세대를 바다방향으로 배치한 트라이앵글 설계와 전망을 극대화한 테라스 설계(일부)로 오션뷰에 최적화된 특화설계가 장점이다. 단지 중앙에는 자연채광과 환기가 좋은 옥외중정이 조성되고, 주거복합 1층 단지내상가의 편의시설로 원스톱라이프를 누릴 수 있도록 설계하였으며, 특히 주차공간이 부족한 제주도에서 100% 자주식 주차공간을 확보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지난 주말 모델하우스에 방문한 최씨는 “바다전망특화설계가 눈에 띄고, 인근에 제주 제2공항 개발이 추진 중이라 투자해도 좋을 것 같다“며 ”군인공제회가 100% 출자한 대한토지신탁이라 더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성산일출봉 스위트엠 프레시빌’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견본주택을 성황리 공개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50여년 만에 제자리 찾은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

    50여년 만에 제자리 찾은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

    50여년 간 다른 유물로 여겨진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가 제자리를 찾았다. 문화재청은 보물 제455호에 해당하는 유물의 명칭을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에서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로 변경하고,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를 보물 제2001호로 신규 지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경상도 경주시 노서동 고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귀걸이인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는 함께 발굴된 ‘경주 노서동 금팔찌’(보물 제454호),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보물 제456호)와 함께 1967년 보물 제455호로 지정됐다. 당시 지정 명칭은 ‘태환이식’(太環耳飾·굵은고리 귀걸이)으로 출토지가 명시되지는 않았다. 노서동 금귀걸이는 1933년 발굴 이후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박물관이 각각 한 개씩 보관해왔는데,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이듬해 도쿄박물관이 소장한 귀걸이가 국내에 돌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각종 전시도록이나 자료에서 보물 제455호를 소개할 때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가 아닌 그 형태와 제작 기법이 유사한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사진이 사용됐다. 2009년 국보와 보물 명칭을 개선할 때도 보물 제455호의 이름이 ‘경주 노서동 금귀걸이’가 아닌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로 명명됐다. 지난해 보물 지정 명칭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문화재청은 지난 3월 자문회의와 문화재위원회를 통해 두 금귀걸이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결국 이번에 보물 지정번호를 바로잡았다. 이번에 보물 제2001호로 새로 지정된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는 1949년 경주 황오동 52호분에서 출토된 귀걸이 한 쌍이다. 외형상 주고리, 중간 장식, 마감 장식의 삼단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신라시대 5~6세기에 해당하는 유물이다. 신라시대 경주에서 만든 전형적인 귀걸이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 제작기법과 조형성이 우수하고 펜촉형 장식물의 창의적인 형태와 입체감이 돋보이는 점 등에서 신라 고분 금속공예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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