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신라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처우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연루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여혐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 25주년
    2026-04-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536
  • 농심, 라면기업 ‘세계 5위’ 등극… 해외매출 1조 1250억 신기록 전망

    농심이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간편식 라면 수요가 크게 늘어난 데다 영화 ‘기생충’의 성공으로 ‘짜파구리’ 반사이익도 얻었기 때문이다. 농심은 올 연말까지 해외 매출이 전년보다 24% 성장한 9억 9000만 달러(약 1조 1250억원)가 예상된다고 4일 밝혔다. 2016년 6억 3500만 달러를 기록한 뒤 꾸준히 늘어 내년에는 10억 달러 돌파도 눈앞에 뒀다. 신라면은 해외에서만 약 3억 9000만 달러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게티’와 ‘너구리’의 조합인 짜파구리가 인기를 얻으면서 지난달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가 발표한 세계 라면기업 순위에서 농심은 세계 5위를 차지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경기도, 연천 대전리산성·용인 석성산봉수터 문화재 지정

    경기도, 연천 대전리산성·용인 석성산봉수터 문화재 지정

    경기도는 지난 6월 지정 예고한 ‘연천 대전리 산성’과 ‘용인 석성산 봉수터’를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했다고 4일 밝혔다. 연천 대전리 산성은 군사적 요충지에 위치한 삼국시대 산성으로 서울·경기지역 산성 가운데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변화 양상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았다. 이곳은 연천과 양주 사이 추가령 구조곡에 의해 형성된 긴 회랑지대(통과 가능한 길고 좁은 지대)가 이어지는 지리적 중요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대전리 산성은 신라가 삼국통일 과정에서 당나라와 벌인 7년 전쟁의 치열한 격전지인 ‘매초성 전투’의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알려져 왔다. 용인 석성산 봉수터는 산 정상에 위치한 조선 전기 봉수 유적으로 서울 남산(목멱산)∼성남 천림산∼용인 석성산으로 이어지는 주요 봉수로에 위치해 역사적, 지정학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용인 석성산 봉수터’는 석성산 정상에 돌출된 암반 봉우리에 대지를 마련하고 방호벽을 축조해 연조(봉화를 올리거나 낮에 연기를 피워 신호를 보내는 아궁이·굴뚝시설) 5기를 조성했다. 방호벽 아래로 평탄지에는 창고를 조성했고, 봉수대에서 남쪽으로 약 50m 가량 떨어진 위치에 조성된 평탄대지에 봉수군이 거주했던 건물지로 추정되는 구들시설 건물지 우물 등이 확인됐다.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연조의 하부구조, 방호벽 축조기법, 출입시설, 봉수군이 거주했던 건물을 통해 당시 봉수의 시설과 구조, 봉수의 운영 방식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1번 연조의 암반 굴착 축조 방식, 방형의 제사유구, 백자제기 등은 희귀 사례로 중요성이 인정돼 문화재로서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정식 경기도 문화유산과장은 “이번 경기도 문화재 지정으로 연천 대전리 산성과 용인 석성산 봉수터 등 경기도에 소재한 귀중한 문화유산을 후대에 원형대로 보존 전승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마한史, 전남 뿌리이자 균형발전 상징… 세계유산 등재하겠다”

    “마한史, 전남 뿌리이자 균형발전 상징… 세계유산 등재하겠다”

    영산강 유역은 기원전 2·3세기에서 6세기 중엽까지 마한이 지배하던 지역이다. 고대 역사서에 따르면 마한은 삼한 중 가장 먼저 태동해 충청·전라도 지역을 지배했던 고대국가였다. 마한의 소국 연맹체 가운데 마지막까지 백제에 병합되지 않고 6세기 중엽까지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한 곳이 영산강 유역의 마한세력이다. 영산강 유역 마한세력의 최고 수장층 무덤인 전남 나주 반남 고분군 중 신촌리 9호분에서는 금동관, 금동신발, 환두대도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됐고, 국내 유일의 복합 고분인 나주 복암리 3호분도 발굴됐다. 전남도는 이 같은 마한문화권의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마한 문화권 발굴·조사 등 오랜 숙원이었던 고대 마한의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정립해 지역발전으로 연결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김영록 전남지사를 만나 구상을 들어 봤다.-지난 5월 마한문화권을 포함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전남도가 그동안 역점을 둬 추진했던 마한사 재조명 등 영산강 고대문화권 복원·개발사업에 탄력이 예상되는데 소감은. “신라와 백제, 가야 문화권과 비교하면 소외됐던 고대 마한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은 물론 오랜 숙원이었던 영산강 고대문화권 개발을 위한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게 돼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은 문화권별 문화유산의 가치 정립과 지역발전을 위해 제정됐다. 영산강 유역 고대 문화의 실체인 마한 역사의 재조명과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정책 발굴에 더 힘을 쏟겠다.” -이를 위해 영산강유역 마한문화포럼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개최 배경은. “전남의 고대 마한문화의 발전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대국민 홍보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잠들었던 고대 해상왕국 마한을 깨우다’라는 주제로 오는 13일부터 3일간 서울마당 및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마한문화 비전선포식과 학술대회 등을 연다. 전남도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마한문화권발전협의회인 전남도 11개 시군과 국립나주박물관 등 유관기관뿐만 아니라 마한에 관심 있는 도내 대학생이 직접 참여하는 등 민관학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성공적인 포럼이 될 것이다. 마한을 주제로 한 학술경연대회와 웹툰 경진대회, 대학생 서포터스 활동 등을 통해 도내 역사 및 고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의 마한사 연구에 대한 자긍심 고취와 마한사 전문 연구자 양성에도 의미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영산강 유역의 마한사 연구를 복원하는 의미는. “기본적으로 우리 지역의 뿌리인 잊힌 마한의 역사를 복원하고, 나아가서는 국가균형발전 등의 의미도 내포한다. 마한에 대한 교과서 기록은 4세기대 백제의 근초고왕이 마한의 전 지역을 병합했다는 기록이 일본역사서(일본서기)에서만 신화적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정작 우리나라 역사서에는 마한 병합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하지만 마한의 54개 소국 중 14개 소국이 위치한 전남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800년간 백제에 병합되지 않고 지리적으로 영산강 유역권인 한중일 해상교류의 삼각점에 있었다. 중국과 교류하고 고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는 등 국제해상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했던 고대세력이었다. 그동안 잊혔던 마한을 전남의 본류로 인식하고, 발굴조사 연구 등을 통해 찬란했던 고대해상왕국 마한의 실체를 찾아가는 것인 만큼 아주 중요한 발걸음이다.”-전남에는 마한 유적지가 많아 영산강 유역의 가치가 남다르다. 앞으로 해결할 과제들이 많겠다. “나주 신촌리 금동관, 금동신발, 영암 내동리 쌍무덤의 금동관편, 백제와는 축조기법이 다른 영산강식 석실묘의 축조와 나주 복암리 고분으로 대표되는 아파트형 고분 등 셀 수 없이 많이 있다. 또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돌무지무덤인 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 등을 보면 고대 영산강 유역에서는 6세기까지 강력한 고대 마한 세력이 존속했음을 알 수 있다. 6세기 중엽까지 존속했던 마한을 전남이 중심이 돼 그동안 고대사에서 소외된 마한의 역사를 제대로 평가받게 하고, 마한사 연구복원을 앞장서 추진하겠다. 도에서는 먼저 마한에 대한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도록 중점을 두고 있다. 고대사에서 소외돼 온 마한의 역사를 교과서에 반영해 삼국에 버금가는 세력을 유지했던 고대국가로서의 역사적 위상 정립과 자긍심을 고취해 나가겠다. 영산강 유역 마한유적의 체계적인 조사연구와 연차적 정비복원을 추진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마한문화유산의 문화관광자원화를 도모하도록 힘쓰겠다.” -마한사 연구조사 복원사업을 하면서 거둔 주요 성과는. “대표적인 주요 성과는 마한 역사 발굴 복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마한사 실체 규명 등 두 가지다. 그동안 도에서는 2017년 12월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 개발 기본계획’ 수립, 2018년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 개발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해부터 마한연구 총서인 전남의 마한유적과 전남의 마한분묘유적 책자를 발간했다. 올바른 마한사 정립을 위해 2024년까지 관련 모든 자료를 정리한 연구총서를 순차적으로 발간해서 완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도내 11개 시군 및 8개 유관기관과 합동으로 마한문화권발전협의회를 발족하고 공동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올해 말에는 전남의 마한역사문화 디지털 아카이브 웹서비스를 시작해 영산강 유역 마한사의 국내외 자료를 공개하고 마한사 연구성과를 체계적으로 축적해 나갈 것이다. 특히 마한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 연구를 지원한 결과 쌓인 자료를 토대로 마한의 역사에 대한 실체를 규명했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돌무지무덤인 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영산강 유역에서 중국과 교류하고,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6세기까지 강력한 고대 마한 세력이 존속했다는 증거도 발견했다. -마한사 연구조사를 복원하기 위한 추진 방향은. “전남도는 2017년 12월에 영산강 유역 마한문화권 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고대해상왕국 마한을 품은 전남, 새로운 기상과 도약’이라는 비전과 체계적인 조사연구로 고대사적 가치를 재정립하고, 고증복원을 통한 지역민의 문화 자존감 회복에 역점을 뒀다. 마한의 역사문화 자원을 세계유산으로 승격하는 것을 목표로 해 2018년부터 2030년까지 3단계 15개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마한역사 활용 및 관광벨트화 사업, 세계유산 등재,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마한사 반영 등이다. 무엇보다도 본격적인 유적발굴과 복원으로 고대사의 한 축으로 인정받는 게 시급한 과제인 만큼 주안점을 두고 있다.” -마한사 복원의 필요성이 인식되고, 특별법도 제정돼 잊힌 마한을 바로 세우는 최고의 시기인데 계획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역 공약에 머무른 마한문화권 사업을 향후 국정과제에 포함시켜 정부와 국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 내겠다. 마한사 복원의 궁극적 목적은 마한사 복원을 통한 지역민의 문화적 자긍심 고취와 차별화된 문화관광, 문화유산의 가치창출에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격언을 가슴 깊이 새겨 마한사 복원을 위해 행·재정적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마한사 발굴조사복원과 정비로 청년일자리를 창출하고, 전남의 비전과 목표인 청정 전남 블루 이코노미인 내 삶이 바뀌는 전남 행복시대를 도민들과 함께 이뤄 나가도록 힘쓰겠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경주 토함산 석탈해 사당터서 제사용 말 인형 다수 출토

    경주 토함산 석탈해 사당터서 제사용 말 인형 다수 출토

    경북 경주 석탈해 사당터에서 철과 흙으로 빚은 제사용 말인형이 출토됐다. 경주시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 9월부터 토함산 인근 불국동 석탈해 사당지 유적을 긴급 발굴 조사한 결과 건물 유적과 유물을 발견했다고 3일 밝혔다. 삼국유사에는 680년 신라 문무왕 대에 석탈해왕 뼈로 상을 만들어 토함산에 동악신으로 모시고 국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사당터와 관련된 건물터 2동과 통일신라시대 암막새, 평기와, 고려시대 명문기와, 청자, 분청사기, 청동방울, 철제마(철로 빚은 말인형), 토제마(흙으로 빚은 말인형)를 발굴했다. 확인된 건물터는 고려 후기 마지막으로 중건된 건물 흔적이다. 중심 건물터는 동서 2칸, 남북 1칸으로 기반층 상부에 황갈색 점토로 대지를 반반히 고른 뒤 조성했다. 중심 건물터 서편에 토석축으로 벽체를 만든 1칸의 부속 건물터도 확인했다. 건물터에서는 철제마, 토제마, 청동방울, 통일신라시대 암막새 조각, 평기와, 고려시대 명문기와, 해무리굽 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 등이 출토됐다. 철제마(철마)나 토제마(토마)는 전북 부안 죽막동 유적과 경기 하남 이성산성을 비롯한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해변이나 산상 제사터에서 주로 출토된다. 청자와 분청사기는 화로나 잔 받침 등 제사와 관련된 것이 많다. 기와 중에 ‘癸巳年 分施主 尹山 崔字 李堅’(계사년 분시주 윤산 최자 이견) 글자가 찍힌 기와가 많이 나왔다. 이 기와는 불국사 성보박물관 부지 발굴 때도 다수 확인됐다. 시주자 중 한 명인 이견(李堅 ?∼1360)은 고려 후기 무인이다. 1350년에 종2품인 지밀직자사에 임명됐고 1360년 홍건적 침입 때 함종전투에서 전사한 인물로 추정된다. 명문 기와는 고려 후기 몽골족 침입 이후 계사년(1353)에 불국사와 함께 탈해 사당도 중건했음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 등 지리지와 여러 문집 기록에서 탈해사당은 조선 전기까지 제사를 유지한 것으로 전한다. 경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e스포츠 진출하는 농심…바둑 이어 글로벌 마케팅 꽃 피나

    e스포츠 진출하는 농심…바둑 이어 글로벌 마케팅 꽃 피나

    농심이 ‘리그 오브 레전드’(LoL) 프로게임단 ‘팀다이나믹스’를 인수하며 e스포츠 판에 뛰어들었다고 2일 밝혔다. 농심은 지난 6월 LCK(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프랜차이즈 가입을 조건으로 팀다이나믹스 인수 협약을 맺은 바 있다. 최근 라이엇 게임즈가 내년도 LCK 프랜차이즈에 최종 합류할 기업 10곳을 발표했고 농심이 여기에 포함됐다. 농심은 LCK 프랜차이즈 가입비와 선수단 운영비를 비롯한 경영 전반에 참여한다. 오는 12월 창단식이 열릴 예정이다. 농심은 팀 명칭과 로고를 새로 정한 뒤 내년 1월 시작하는 LCK 스프링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팀 운영에 뛰어든다. 팀다이나믹스는 올해 처음으로 LCK에 합류한 신생팀이다. 올해 성적은 좋지 않지만 농심의 지원으로 내년도 반등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2020 우리은행 LCK 섬머에서는 5승 13패로 8위를 기록했다. 주요 선수로는 이재원(탑), 서대길(원거리딜러) 등이 있다. 농심이 e스포츠팀을 인수한 이유는 앞으로 마케팅 활동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해서다. 일단 리그오브레전드는 세계적으로 1억명 이상 즐기고 있는 게임이며 최근 10년 가까이 국내 기준 PC방 점유율 50%를 넘어서는 독보적인 1위 게임 종목이다. 월평균 국내 이용자가 2018년 340만명에서 올해 520만명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리그오브레전드가 중국 시장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그동안 한국은 ‘e스포츠 종주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제 대회에서 선전했지만, 최근 중국의 공격적인 투자로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라이엇게임즈도 원래 미국에서 설립된 회사였으나 최근 중국 기업 텐센트가 지분 100%를 인수하기도 했다. 앞서 농심은 1999년부터 한국, 중국, 일본의 바둑기사가 참여하는 농심 신라면배 바둑대회를 운영하면서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도 했다. 농심 관계자는 “이런 인기에 농심의 브랜드를 더하면 글로벌 시장 공략의 새로운 도약점이 될 것”이라면서 “앞으로 e스포츠 발전을 위한 저변 확대에 공헌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10년간 주식보유 1위’ 이건희 회장 사후 순위 변동은?…삼성家 1~4위

    ‘10년간 주식보유 1위’ 이건희 회장 사후 순위 변동은?…삼성家 1~4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별세로 상장사 기준 국내 주식 부호들의 순위에도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2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이 전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4.18%) 등 국내 상장사의 지분평가액은 17조7374억원에 달한다. 이 전 회장은 2009년부터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을 제치고 10년 넘게 국내 주식 보유 1위였다. 정 회장(4조4625억원)은 현재 주식 보유 3위다. 삼성가를 보면 이재용 부회장(7조3324억원)이 2위에 올라있고, 이 전 회장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3조1463억원)이 5위에 랭크돼 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1조6768억원씩으로 공동 14위다. 현재 4위는 김범수(4조2877억원) 카카오 의장이다. 이 전 회장의 지분을 삼성 일가가 법정비율(부인 1.5대 자녀들 각 1)대로 상속받는다고 가정(세전)하면 홍 전 관장이 가장 많은 5조9131억원을, 이 부회장 등 3명의 자녀가 각각 3조9420억원을 상속 받는다. 이렇게 되면 이 부회장의 지분평가액은 처음 10조를 넘어서며 11조2744억원의 지분가치로 아버지 이 전 회장의 1위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 이 부회장에 이어 홍 전 관장(9조594억원)이 5위에서 2위로 뛰어오르고, 두 딸(5조6188억원)은 지분가치가 200% 이상 증가하며 공동 14위에 3위로 껑충 오르게 된다. 1위부터 공동 3위까지 모두 삼성 일가로 채워지는 것. 상속세를 감안하면 상속분이 줄어들지만, 삼성 일가의 약진은 마찬가지다. 이 전 회장의 지분에 대한 상속세는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속세를 모두 이 전 회장 지분을 팔아 납부한다고 가정하면 삼성 일가가 물려받는 지분가치는 7조7397억원이 된다. 이를 법정 상속비율로 나누면 홍 전 관장이 2조5799억원, 이 부회장 등 세 남매가 각각 1조7199억원을 가져가게 된다. 이 경우 이 부회장의 지분평가액(9조523억원)은 10조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1위에 오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홍 전 관장이 5조7262억원으로 역시 2위에 오른다. 이 사장과 이 이사장은 각각 3조3967억원으로, 현대차 정 회장과 카카오 김 의장에 이어 공동 5위에 랭크하게 된다.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는 하나… 대통합의 ‘화엄 도량’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는 하나… 대통합의 ‘화엄 도량’

    석가모니의 깨달음으로 불교가 시작했다. 스스로 해탈하려는 소승에 더해 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승불교로 확대되었다. 대승의 모든 신앙을 통합한 것이 화엄종이며, 그 방대한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이 화엄경이다. 지리산 화엄사는 이름 그대로 화엄사상을 건축으로 구현한 가람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거대한 화엄경의 내용만큼 복잡하고 중층적이다.●화엄종, 화엄경, 창건 화엄사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처음으로 화엄사상을 들여왔으나 그는 계율학을 신라 불교의 근간으로 삼아 전제 왕권 강화에 이바지했다. 다음 세대인 의상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해 2대 화엄종주 지엄의 수제자가 됐고, 삼국 통일 직후 귀국해 신라 화엄종을 세웠다. 계율학이 분단시대의 부국강병 수단이었다면 화엄종은 통일시대 통합의 국교였다. 의상의 후예들은 각지에 화엄도량을 열었고, 그중 중요한 사찰들을 묶어 화엄십찰이라 불렀다. 화엄사는 마땅히 그중에서도 핵심이었다. 544년 서역의 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했다는 설은 전설일 뿐이다. 최근 발굴된 기록에 근거해, 연기조사는 국찰 황룡사에서 화엄경 사경을 주도한 이로 8세기 후반에 화엄사를 실질적으로 창건했다는 설이 합리적이다.현재 화엄사의 모습은 임진왜란 후 재건된 결과이며, 8세기 창건 당시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이 시기의 유적은 각황전의 기단과 초석, 그 앞의 큰 석등, 그리고 동5층석탑이다. 창건 가람은 동향으로 앉았고, 각황전 자리에 장육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장육전과 동5층석탑 사이, 서5층석탑 자리에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서축을 따라 (동)석탑, 금당, 석등, 장육전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1탑 1금당 형식의 가람이었다.현 각황전은 2층이지만 장육전은 3층이었다. 내부에는 화엄경을 정교하게 새겨 넣은 거대한 석경벽을 세웠다. 화엄석경은 임진왜란 때 불타 파괴돼 1만 9000여 파편으로 남아 있다. 추정하면 600여매의 돌판에 총55만여자를 새긴 대규모 경판이었다. 내부 고주가 서 있는 5칸×3칸 기둥 사이 사방으로 석경벽을 두르고, 이를 순회하며 화엄경 전편을 읽을 수 있는 구조였다. 장육전은 곧 건축으로 쓴 화엄경이었고, 화엄사가 화엄종의 종찰이 되는 종교적 근거였다. 장육전 창건과 동시에 특이한 모습의 석탑과 석등을 뒤편 언덕에 조성했다. 탑은 사자 4마리와 가운데 승려 1명이 탑을 받치고 있는 모습의 4사자3층탑이다. 석등 역시 승려 1명이 꿇어앉아 석등을 받치고 있다. 4사자석탑의 인물은 스승이며, 석등의 승려는 제자인 연기조사로 사제 간의 전법을 묘사한 것 같다. 사자탑의 전통은 꾸준해서 고려시대의 사자빈신사지탑이나 홍천 괘석리탑이, 그리고 화엄사 원통전 앞에도 일부가 남아 있다. 화엄사의 사자탑은 그 효시일 뿐 아니라 가장 완벽한 유산이다. ●거듭된 중창과 가람의 대변화 화엄종은 신라 불교의 대세가 됐다. 종교의 거대화는 분열을 수반한다. 후삼국시대, 신라는 쇄락하고 왕건의 후고구려와 견훤의 후백제가 자웅을 겨루던 때다. 거대 화엄종은 왕건 편에 선 희랑과 견훤 편 관혜의 무리로 분화됐다. 북악파인 희랑은 해인사와 부석사에, 남악파인 관혜는 화엄사에 근거지를 두었다. 결과는 왕건과 희랑의 승리,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다. 화엄사의 종단 내 위상이 크게 추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태조 왕건의 마지막 해, 943년에 고려 왕실은 화엄사를 크게 중창했다. 패자 남악파에 대한 승자의 마지막 배려였을까?기존의 대석단을 연장해서 현재와 같이 ㄱ자로 꺾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새로 조성한 북쪽 석단 위에 새로운 불전을 세웠다. 현재의 대웅전 자리다. 기존의 동5층석탑은 마치 대웅전에 속한 탑같이 되었다. 창건기의 금당을 없애고 서5층석탑을 세워 장육전 앞의 탑으로 삼았다. 두 개의 석탑이 동서로 놓여 마치 쌍탑식 가람 같아 보이지만, ‘장육전+서탑’과 ‘대웅전+동탑’의 1탑식 가람 두 개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것이다. 두 탑은 규모와 형태가 유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가 많다. 서탑은 일절 장식이 없다. 반면 동탑은 하층기단에 12지상, 상층기단에 8부신중, 1층 몸돌에 사천왕상을 조각했다. 같은 듯 다른 이 형태적 차이는 적어도 150년 이상의 조성시기 차이 때문이다. 새로운 불전과 불상을 모셨다는 것은 신앙의 대상이 더해졌다는 것, 더 나아가 종파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엄석경이 봉안된 기존의 장육전은 여전히 화엄신앙의 중심이었다. 현 각황전 불단 안에는 신라 때 불상을 세웠던 대석이 남아 있다. 아마도 법신, 보신, 화신의 3신불상을 모셨고, 장육전이니 1장 6척(약 4.8m)의 거대한 입상이었을 것이다. 비로자나불 중심의 3신불은 화엄신앙의 핵심이다. 새로 더해진 불전, 현재의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을 모신 곳으로 선종 계통의 중심 불전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화엄사는 줄곧 선종을 대표하는 사찰로 등장한다. 고려 불교의 4대 종파는 교종의 화엄종과 법상종, 선종의 천태종과 조계종이었다. 천태종은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선불교를 융합한 종파였고, 종조 대각국사 의천은 화엄사에 각별히 애착이 많았다. 여러 연유로 화엄사는 고려 초에 교종인 화엄종에서 선종인 천태종으로 종파를 바꾸었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기존 화엄에 더해 선불교를 습합한 것은 확실하다. 임진왜란 때 화엄사는 의승병의 근거지였고 불에 타 파괴된다. 남은 것은 석단과 석탑과 석등 그리고 산산조각 난 화엄석경뿐이었다. 40년 후인 1636년에야 중창 재건을 시작했다. 중창주인 벽암대사는 남한산성을 수축한 공을 세운 팔도총섭이었다. 인조의 신임을 얻어 불사를 벌였으나 대웅전 등 겨우 일부만 가능했다. 열악한 경제 여건으로 대규모 다층건물인 장육전 재건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입구에 일주문을, 그 위로 금강문과 천왕문을 세워 긴 진입로를 만들었다.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산중 가람이 되었다. 장육전은 1702년에야 왕실의 후원을 얻어 겨우 중창한다. 그나마 2층으로 줄이고 이름도 각황전으로 바꾸었다. 중창 대웅전에 이미 비로자나의 3신불을 모셨기에 각황전에는 석가불 중심의 3세불과 보살들을 모셨다. 신앙적 내용으로 본다면 대웅전은 대적광전으로, 각황전은 대웅보전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전쟁 후 순서 없이 재건했기에 벌어진 혼란이다. ●중창으로 이룬 연화장 세계 화엄사에는 두 개의 중심이 병존한다. 각황전은 크고 높고, 대웅전은 상대적으로 작고 낮다. 평범한 가람배치라면 각황전의 위세에 대웅전이 눌릴 지경이다. 두 중심을 동등하게 인식할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일주문에서 시작된 진입 동선을 육중한 보제루 앞에서 동쪽으로 틀어 운고각 쪽으로 오르게 했다. 마당 한 귀퉁이에서 중심 공간을 마주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가까운 대웅전은 실제보다 크게, 멀리 있는 각황전은 작게 보인다. 결과적으로 두 중심은 거의 같은 크기와 높이로 인식된다. 건물의 위치와 규모를 바꿀 수 없으니, 인간이 바라보는 시점을 바꾼다. 입체적이고 감각적인 실감형 배치법이다. 각황전은 후일 영조가 된 연잉군을 위해 그의 생모 숙빈 최씨가 시주한 법당이다. 대시주에 대한 화답으로 원통전으로 세워 연잉군의 원당으로 삼았다. 그후 사이사이에 나한전과 영전을 세웠다. 각황전부터 대웅전에 이르는 5개 건물은 높낮이가 다르다. 운고각 앞에 서면 이 다섯 건물이 ‘강, 약, 중강, 약, 강’의 리듬을 가진 하나의 연속체로 다가온다. 화엄은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가 하나라는 통합의 사상이다. 화엄법계 중 최상은 ‘사사무애법계’로, 부분들이 독자적이어도 전체 질서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세계이다. 화엄의 세계는 온갖 꽃들이 어우러진 무한한 정원인 연화장 세계다. 각황전과 대웅전, 원통전 등 화엄사의 전각들은 독자적인 중심성을 갖지만, 동시에 전체 속에서 조화된다. 화엄 법계를 이루는 동력은 ‘끝없이 펼쳐지는 원인과 결과의 그물’인 무진연기이다. 모든 만물은 변화한다. 1300년 역사 속에서 화엄사의 사상도 가람의 건축도 변화했다. 화엄종이 분열되어 종파가 바뀌고 전쟁의 파괴가 새로운 가람을 만들었다. 그러나 과거의 질서는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질서가 그 위를 덮는 중창의 무진연기 속에서 건축적 연화장 세계를 꽃피우고 있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화재 속 주민들 구호·소방관 지원… 울산 ‘시민 영웅’ 정부 포상 추천

    ‘큰 불길 위험 속 주민 구한 분’, ‘맨몸으로 탈출한 주민에게 따뜻한 음식 나눠 준 분’, ‘밤샘 진화로 지친 소방관에게 휴식 공간 제공한 분’. 그들은 시민 영웅이다. 울산시는 남구 달동 삼환아르누보 주상복합아파트 화재와 관련해 시민 미담 사례를 수집, 정부 포상에 추천할 계획이라고 29일 밝혔다. 지난 8일 오후 33층의 삼환아르누보에서는 큰불이 났으나 주민들의 침착한 대피와 이웃의 도움 등으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구창식씨 가족은 화재 당시 불길을 피해 2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입주민들을 이불로 받아내고, 몸으로 난간을 부수는 등 신속한 상황 대처로 주민 18명 이상을 구조했다. 또 맨 꼭대기층 거주자 이승진씨는 비상계단에 있던 주민들을 안전하게 옥상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도왔다. 화재 당시 소방대원과 피해 입주민을 위한 도움의 손길도 많았다. 화재가 난 아파트 옆 외제 자동차 판매장과 식당, 주점 등은 밤을 새워 불길을 잡다가 지친 소방관과 주민들을 위해 휴식 공간과 음식을 제공했다. 또 신라스테이 호텔은 이재민에게 객실 20개를 한 달간 무료로 제공했다. 인근 교회 등은 방역 물품과 기부금을 후원했다. 한 동물병원은 이재민들의 반려동물을 위해 1주일간 무료 치료를 지원했다. 울산시는 주요 미담 사례에 대해 ‘참안전인상’, ‘국민추천포상’ 등 정부 포상을 추천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시민들의 따뜻한 도움이 피해 입주민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이웃을 배려하고 안전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울산을 더욱 빛나게 했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금동관에 순장자 거느린 귀족 마님… 1500년 전 비화가야 장신구 오롯이

    금동관에 순장자 거느린 귀족 마님… 1500년 전 비화가야 장신구 오롯이

    1500년 전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 묘역인 경남 창녕에서 금동관, 은허리띠, 은반지 등 무덤 주인이 착용한 장신구 일체가 출토됐다. 금동신발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제외하면 지난 9월 경북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확인된 신라 최상위 계층의 장신구 배치와 판박이여서 비화가야와 신라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로 주목된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창녕 교동·송현동 63호분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높이 21.5㎝의 금동관과 관에 드리운 금동 드리개 및 금동 막대장식, 굵은고리 귀걸이 1쌍, 유리구슬 목걸이, 은반지들과 은허리띠 등 무덤 주인이 몸에 둘렀던 꾸밈유물들을 발견했다고 28일 밝혔다. 비화가야 고분에서 장신구 일체가 매장된 형태로 온전히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화가야는 창녕을 거점으로 한 가야 세력으로, 최고 지배층 묘역인 교동·송현동 고분군은 목마산과 화왕산 기슭에 250여기가 조성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극심한 약탈과 도굴로 인해 금동관 일부 조각과 장신구만이 확인됐을 뿐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5세기 말~6세기 초로 추정되는 63호분(지름 21m)은 나중에 축조된 39호분(지름 27.5m)이 가려준 덕에 한번도 도굴 피해를 입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지난해 11월 발굴 조사를 위해 내부가 처음 공개됐다. 금동관은 맨 아래에 너비 3㎝의 관테(둥근 밑동)가 있고, 그 위에 3단으로 이뤄진 3개의 나뭇가지 모양 장식을 세웠다. 관테 아래에는 곱은옥과 금동 구슬로 만든 금동 드리개, 원통형의 금동 막대장식이 있다. 금동관 내부에는 관모(冠帽·모자)로 추정되는 직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국내에서 확인된 금동관 가운데 머리에 씌운 직물의 흔적이 나온 첫 사례다. 은허리띠에는 2개의 은장식 손칼과 띠끝장식이 달려 있었다. 은반지는 오른손 부분에 1개, 왼손 부분에 3개가 놓였다. 63호분 석곽은 길이 640㎝, 너비 130㎝, 깊이 190㎝ 규모로, 매장자의 머리는 남쪽을 향하고 있다. 양숙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실장은 “목관의 꺾쇠 위치를 봤을 때 무덤 주인의 키는 155㎝ 정도로 추정되며, 긴 칼 대신 손칼과 굵은고리 귀걸이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머리 위쪽에는 토기와 철제 유물이 매장된 부장 공간이, 발치에는 바닥을 40㎝ 정도 낮춘 순장 공간이 확인됐다. 이곳에서 나온 치아와 다리뼈 일부를 통해 순장자는 2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는 비화가야 무덤의 축조 기법과 장송 의례를 이해하고 가야와 신라의 접경 지역에 위치했던 비화가야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다음달 5일 유튜브를 통해 발굴 동영상을 공개하고,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시민의 궁금증을 실시간 댓글로 풀어주는 온라인 설명회를 연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각별했던 ‘딸 사랑’… 이부진, 영결식서 오열하며 휘청

    각별했던 ‘딸 사랑’… 이부진, 영결식서 오열하며 휘청

    28일 삼성서울병원에서 진행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영결식에서 장녀 이부진(50) 호텔신라 사장이 슬픔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며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장은 식이 진행되는 내내 눈물을 흘리며 힘든 표정을 지었다. 이 사장은 오빠인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과 어머니 홍라희(75)씨의 부축을 받았다. 이 부회장도 굳은 표정으로 식을 엄수했다. 이 회장은 딸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201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제품박람회(CES)장에 이 사장과 이서현(47)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손을 잡고 나타나 “우리 딸들 광고 좀 해야겠다”며 각별한 사랑을 드러냈다. 2012년 1월 같은 행사에서도 종일 두 딸의 손을 꼭 잡고 다니며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특히 이부진 사장과는 공식석상에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환한 미소를 띠고 등장하는 일이 많아 굳건한 부녀의 정을 보여 줬다. 이 사장 역시 사업 추진력, 악재 돌파력, 처세술, 감성 경영 등과 같은 기업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아버지의 애정에 화답했다. 아버지의 외모와 업무능력을 꼭 빼닮았다며 ‘리틀 이건희’라고 불리기도 했다. 일례로 이 사장은 2015년 정몽규 HDC그룹 회장과 합작해 ‘HDC신라면세점’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너무 걱정 마세요, 잘되면 다 여러분 덕이고, 떨어지면 제 탓이니까요”라고 직원들을 격려해 주목받았다. 이 사장은 대원외고, 연세대 아동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삼성복지재단에 입사했다. 1998년 삼성전자 과장을 거쳐 2001년 호텔신라 부장으로 옮긴 뒤 2010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재계 거인’의 마지막길..박찬호 “삼성 제품 자랑했다”

    ‘재계 거인’의 마지막길..박찬호 “삼성 제품 자랑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례 사흘째인 27일 ‘재계 거인’의 마지막길에 꽃을 놓으려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특히 이날은 정·재계뿐 아니라 이 회장이 생전 애정을 품고 후원한 문화·예술·체육계 인사들이 대거 찾아 깊은 애도를 전했다.  서울삼성병원 빈소를 찾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씨는 “아버님을 잃은 것 같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와 아내 윤정희씨는 이 회장과 종종 부부동반 모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는 각각 2000년, 2011년 이건희 회장이 부친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을 기리며 만든 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인연이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박찬호 선수의 방문도 눈길을 끌었다. 박 선수는 “이재용 부회장와 이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과 인연이 있다”며 “(빈소에서 이 부회장과) 옛날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고인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미국 진출 초창기부터 LA다저스에 있던 컴퓨터 모니터가 삼성 제품이어서 동료 선수들에게 그걸 자랑했었다”고 회고했다.  재계 주요 그룹 총수들의 조문도 끊이지 않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오전 10시 30분쯤 이날 첫 조문객으로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 20여분간 빈소에 머물다 나온 구 회장은 취재진에게 “고인은 우리나라 첨단 산업을 크게 발전시킨 위대한 기업인”이라며 “재계의 큰 어르신들이 오래 계셔서 많은 가르침을 주시면 좋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범 LG 가의 구자열 LS 회장과 구자용 E1 회장,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삼성 일가와 LG가는 사돈 관계다. LG 구인회 창업회장의 3남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누나 이숙희 여사가 1957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황각규 롯데 이사회 의장과 조현준 효성 회장은 전날에 이어 이날 두 차례 발걸음했다. 조 회장은 “어릴 때 한남동 자택에서 살 때 (삼성가) 강아지들이 너무 예뻐서 제가 이재용 부회장과 잘 놀았는데 고인께서 저희에게 강아지 두 마리, 진돗개 두 마리를 보내주셔서 가슴이 따뜻한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윤종원 기업은행장,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 지성규 하나은행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 등도 이날 이 회장을 찾았다.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과 아들 허세홍 GS칼텍스 대표도 함께 방문했다. 이재용 부회장과 절친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고인을 떠나보내니 저도 충격이고 힘들다”며 “지금 들으실 순 없지만 고인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저희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추모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홍구 천 국무총리 등 정관계 인사들도 대거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한때 ‘삼성 저격수’로 꼽혔던 박 장관은 조문을 마친 뒤 “30여년 전 대한민국의 먹을거리를 반도체로 선택한 고인의 통찰력을 높게 평가한다”며 “재벌 개혁은 잊혀서는 안 되는 화두이며 재벌 개혁이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을 지속하는 데 앞으로도 많은 힘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영결식과 발인은 28일 오전 진행된다. 삼성 측은 현재 발인 시간과 장례 절차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은 공개하지 않고 있지 않다. 재계에 따르면 28일 오전 7시반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을 진행하고 발인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가족장으로 치러지는 만큼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내에서 비공개로 영결식을 마칠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창녕 가야 고분서 쏟아진 장신구, 무덤 주인은 신장 155㎝ 여인?

    창녕 가야 고분서 쏟아진 장신구, 무덤 주인은 신장 155㎝ 여인?

    1500년 전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 묘역인 경남 창녕에서 금동관, 은허리띠, 은반지 등 무덤 주인이 착용한 장신구 일체가 출토됐다. 금동신발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제외하면 지난 9월 경북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확인된 신라 최상위 계층의 장신구 배치와 판박이여서 비화가야와 신라의 관계를 유추할 있는 고고학적 자료로 주목된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창녕 교동·송현동 63호분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높이 21.5㎝의 금동관과 관에 드리운 금동 드리개 및 금동 막대장식, 굵은고리귀걸이 1쌍, 유리구슬 목걸이, 은반지들과 은허리띠 등 무덤 주인이 몸에 둘렀던 꾸밈유물들을 발견했다고 28일 밝혔다. 비화가야 고분에서 장신구 일체가 매장된 형태로 온전히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화가야는 창녕을 거점으로 한 가야 세력으로, 최고 지배층 묘역인 교동·송현동 고분군은 목마산과 화왕산 기슭에 250여기가 조성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극심한 약탈과 도굴로 인해 금동관 일부 조각과 장신구 만이 확인됐을 뿐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5세기 말~6세기 초로 추정되는 63호분(지름 21m)은 나중에 축조된 39호분(지름 27.5m)이 가려준 덕에 한 번도 도굴 피해를 입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지난해 11월 발굴조사를 위해 내부가 처음 공개됐다.금동관은 맨 아래에 너비 3㎝의 관테(둥근 밑동)이 있고, 그 위에 3단으로 이뤄진 3개의 나뭇가지 모양 장식을 세웠다. 관테 아래에는 곱은옥과 금동구슬로 만든 금동드리개, 원통형의 금동 막대장식이 있다. 금동관 내부에는 관모(冠帽·모자)로 추정되는 직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국내에서 확인된 금동관 가운데 머리에 씌운 직물의 흔적이 나온 첫 사례다. 은허리띠에는 2개의 은장식 손칼과 띠끝장식이 달려 있었다. 은반지는 오른손 부분에 1개, 왼손 부분에 3개가 놓였다.63호분 석곽은 길이 640㎝, 너비 130㎝, 깊이 190㎝ 규모로, 매장자의 머리는 남쪽을 향하고 있다. 양숙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실장은 “목관의 꺾쇠 위치를 봤을 때 무덤 주인의 키는 155㎝ 정도로 추정되며, 긴 칼 대신 손칼과 굵은고리귀걸리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머리 위쪽에는 토기와 철제 유물이 매장된 부장 공간이, 발치에는 바닥을 40㎝ 정도 낮춘 순장 공간이 확인됐다. 이곳에서 나온 치아와 다리뼈 일부를 통해 순장자는 2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로 비화가야 무덤의 축조기법과 장송 의례를 이해하고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위치했던 비화가야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다음 달 5일 유튜브를 통해 발굴 동영상을 공개하고,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시민의 궁금증을 실시간 댓글로 풀어주는 온라인 설명회를 연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현장] 이건희 회장 마지막길…딸 이부진 눈물

    [현장] 이건희 회장 마지막길…딸 이부진 눈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영결식이 28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유족들과 전·현직 삼성 사장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유족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은 이날 삼성서울병원 암센터 건물 지하를 통해 영결식이 열리는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영결식에는 고인의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 고인의 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공개 가족장으로 진행된 영결식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영결식을 마치고 장지로 이동하기 위해 차량에 오르며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눈물을 보였다. 이 회장과 유족 등을 태운 운구 행렬은 고인의 자취가 남아있는 서울 한남동 자택과 승지원, 화성 사업장 등을 들른 후 장지인 수원에 있는 가족 선영으로 간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포토] ‘어머니 에스코트’ 이재용 부회장, 고 이건희 회장 영결식 참석

    [포토] ‘어머니 에스코트’ 이재용 부회장, 고 이건희 회장 영결식 참석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강당에서 비공개로 열린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영결식에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유족들이 참석하고 있다. 뉴스1·연합뉴스
  • ‘재계 거인’의 마지막길...박찬호 “미국서 삼성 제품 자랑했다”

    ‘재계 거인’의 마지막길...박찬호 “미국서 삼성 제품 자랑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례 사흘째인 27일 ‘재계 거인’의 마지막길에 꽃을 놓으려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특히 이날은 정·재계뿐 아니라 이 회장이 생전 애정을 품고 후원한 문화·예술·체육계 인사들이 대거 찾아 깊은 애도를 전했다. 서울삼성병원 빈소를 찾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씨는 “아버님을 잃은 것 같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와 아내 윤정희씨는 이 회장과 종종 부부동반 모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그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는 각각 2000년, 2011년 이건희 회장이 부친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을 기리며 만든 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인연이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박찬호 선수의 방문도 눈길을 끌었다. 박 선수는 “이재용 부회장와 이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과 인연이 있다”며 “(빈소에서 이 부회장과) 옛날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그는 “고인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미국 진출 초창기부터 LA다저스에 있던 컴퓨터 모니터가 삼성 제품이어서 동료 선수들에게 그걸 자랑했었다”고 회고했다. 재계 주요 그룹 총수들의 조문도 끊이지 않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오전 10시 30분쯤 이날 첫 조문객으로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 20여분간 빈소에 머물다 나온 구 회장은 취재진에게 “고인은 우리나라 첨단 산업을 크게 발전시킨 위대한 기업인”이라며 “재계의 큰 어르신들이 오래 계셔서 많은 가르침을 주시면 좋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범 LG 가의 구자열 LS 회장과 구자용 E1 회장,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삼성 일가와 LG가는 사돈 관계다. LG 구인회 창업회장의 3남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누나 이숙희 여사가 1957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황각규 롯데 이사회 의장과 조현준 효성 회장은 전날에 이어 이날 두 차례 발걸음했다. 조 회장은 “어릴 때 한남동 자택에서 살 때 (삼성가) 강아지들이 너무 예뻐서 제가 이재용 부회장과 잘 놀았는데 고인께서 저희에게 강아지 두 마리, 진돗개 두 마리를 보내주셔서 가슴이 따뜻한 분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윤종원 기업은행장,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 지성규 하나은행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 등도 이날 이 회장을 찾았다.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과 아들 허세홍 GS칼텍스 대표도 함께 방문했다. 이재용 부회장과 절친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고인을 떠나보내니 저도 충격이고 힘들다”며 “지금 들으실 순 없지만 고인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저희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추모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홍구 천 국무총리 등 정관계 인사들도 대거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한때 ‘삼성 저격수’로 꼽혔던 박 장관은 조문을 마친 뒤 “30여년 전 대한민국의 먹을거리를 반도체로 선택한 고인의 통찰력을 높게 평가한다”며 “재벌 개혁은 잊혀서는 안 되는 화두이며 재벌 개혁이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을 지속하는 데 앞으로도 많은 힘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영결식과 발인은 28일 오전 진행된다. 삼성 측은 현재 발인 시간과 장례 절차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은 공개하지 않고 있지 않다. 재계에 따르면 28일 오전 7시반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을 진행하고 발인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가족장으로 치러지는 만큼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내에서 비공개로 영결식을 마칠 예정이다.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시진핑 6·25 ‘제국주의 침략’ 발언에…中 대사 “역사적 관점”

    시진핑 6·25 ‘제국주의 침략’ 발언에…中 대사 “역사적 관점”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 전쟁을 미국 제국주의 침략으로 규정해 역사 왜곡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해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27일 “역사적인 관점으로 보면 대단히 고맙겠다”고 말했다. 싱하이밍 대사는 이날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일 평화포럼’ 축사에서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연설 내용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싱하이밍 대사는 “(항미원조 참전 70주년) 기념대회에서 (시 주석이 연설한) 취지는 국제 정의를 수호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 새로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역사적인 관점으로 해석해달라고 했다.그러면서 “중화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고, 중국인민은 평화를 애호하는 인민”이라며 “지금 우리는 누구하고도 싸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모두가) 같이 노력해서 중국이 꿈을 실행하기 위해 중국 국민들은 단결하고 있다”며 “이것은 우리(가) 노력하는 방향이고 특이 이 과정에서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이웃 나라인 한국과 일본과 같이 협력해서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앞서 시 주석은 지난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전쟁 참전 7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이 발발했고 미국은 냉전적 사고를 바탕으로 내전에 무력 개입하기로 결정했다”며 “위대한 항미 원조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고 중국의 안보를 수호하며 한반도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이에 미국 국무부는 즉각 입장문을 내고 “중국 공산당은 70년 전 전쟁이 단순히 ‘발발’했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사실은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마오쩌둥을 등에 엎고 남한을 침략한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도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이미 국제적으로 논쟁이 끝난 문제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바뀔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문정인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동시에 추진해야”

    문정인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 동시에 추진해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27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주최로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일 평화포럼’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종전 선언’이 그 시작점이 된다는 것이 문 특보의 주장이다. 문 특보는 최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신냉전 부활’에 대한 위기감이 커졌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 냉전의 연대기를 돌이켜보면 한반도에 신냉전이 다시 오는 상황은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서든 막아야 한다”며 “그러려면 북한의 비핵화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특보는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동시에 추진해서 한반도에 핵무기도 없고 항구적인 평화가 만들어지는 상황이 왔을 때 평화가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동시 병행추진은 상당히 중요하다”며 “그 입구에 있는 것이 종전선언”이라고 말했다. 문 특보는 “평화를 만드는 것은 과정이지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며 “종전선언을 입구로 비핵화를 추동하고 평화체제를 만드는 과정에 우리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을 향해서도 “전향적으로 나와야 한다. 핵을 가지고는 생존과 번영을 담보하지 못한다”면서 “미국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시작되는 사이 남북 간 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발제자로 나선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다음 달 미국 대선에서 어느 쪽이 당선되더라도 향후 북미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선 성공 뒤 상황에 대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때까지 제재를 유지하고, (북한이 바라는) 단계별 동시행동 원칙은 거부하며, 중국의 개입은 꺼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존 셈법을 바꾸지 않으면 조기에 한반도 평화-비핵화 교환 협상을 재개하긴 어렵다”고 예상했다. 또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톱다운(하향식) 방식의 트럼프식 개인외교를 재검토하고 바텀업(상향식) 방식의 양자 또는 다자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바이든 새 행정부가 제재와 압박 기조를 유지하면서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려면 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설득하며 양자 또는 다자협상을 시도하겠지만, 북한은 진전된 핵 능력을 내세워 비핵화보다 핵 군축 협상을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국 새 행정부의 외교·안보라인 인선과 정책 재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북한의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진전이 이뤄질 때까지 미국이 제재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 사이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는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회장님의 ‘마지막 출근길’…이건희 회장 운구 서초사옥 들를 듯

    회장님의 ‘마지막 출근길’…이건희 회장 운구 서초사옥 들를 듯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운구 행렬이 28일 삼성 서초사옥을 들르며 ‘마지막 출근길’에 오른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의 시신을 장지로 모시는 발인은 28일 오전중에 이뤄질 예정이다. 삼성 측에서는 가족장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 공개하고 있지 않으나 28일 아침 이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사장), 차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을 한 뒤 발인에 들어갈 전망이다.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내에서 비공개로 영결식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추도사를 누가 맡게 될지에 대해서도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발인 이후 장지까지 이동할 때는 이 회장의 생전 발자취가 담긴 공간을 찾아 ‘마지막 인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운구 차량이 직접 이동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운구 차량은 장지로 바로 가고 이 회장의 영정 사진을 실은 차량만 주요 장소를 돌아보는 방식도 배제할 수 없다.재계에 따르면 운구 행렬은 삼성 서초사옥을 들를 것으로 알려졌다. 서초사옥 앞에서 이 회장의 운구 예행연습을 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11년 2월 서초사옥 42층 집무실에 처음 출근한 뒤 이곳에서 주요 업무를 처리했다. 또다른 집무실이었던 서울 이태원동 승지원과 함께 삼성 총수로서 이 회장의 발자취가 가득 남아 있는 장소다. 서초사옥은 미래전략실과 사장단 협의회가 폐지되기 전인 2017년 2월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삼성 사장단 회의가 열리던 곳이기도 하다.이밖에도 운구 행렬은 삼성전자 수원 본사와 승지원, 기흥 반도체 공장, 한남동 이 회장 자택 등을 거쳐갈 가능성이 있다. 1987년 11월 23일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영결식 때 운구 행렬은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수원 사업장, 기흥반도체단지, 삼성종합기술원을 돌아 오후 2시쯤 장지에 도착했다. 당시에는 삼성그룹장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삼성본관에 도착한 뒤 삼성 임직원 3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가족장인 데다가 코로나19 전파 우려로 많은 이들이 운집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같이 가족 외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의식은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지는 이 회장의 양친인 이병철 선대 회장과 박두을 여사가 묻혀 있는 에버랜드 인근 용인 선영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中대사 “시진핑 6·25 제국주의 침략 발언, 역사적 관점으로 봐달라”

    中대사 “시진핑 6·25 제국주의 침략 발언, 역사적 관점으로 봐달라”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27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전쟁을 미국 제국주의 침략으로 규정해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해 “역사적인 관점으로 보면 대단히 고맙겠다”고 밝혔다. 싱하이밍 대사는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전환기 동아시아 평화모색’을 주제로 열린 ‘한·중·일 평화 포럼’ 축사에서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시진핑 주석의 연설 내용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싱하이밍 대사는 “(항미원조 참전 70주년) 기념대회에서 (시 주석이 연설한) 취지는 국제 정의를 수호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 새로 탄생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역사적인 관점으로 해석해 달라고 했다. 그는 “중화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고, 중국인민은 평화를 애호하는 인민”이라며 “지금 우리는 누구하고도 싸우고 싶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히려 같이 노력해서 중국이 꿈을 실행하기 위해 중국 국민들은 단결하고 있다”며 “이것은 우리가 노력하는 방향이고 특히 이 과정에서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이웃나라인 한국과 일본과 같이 협력해서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이날 싱하이밍 대사는 축사를 통해 “한·중·일 3국은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빠르게 추진하고, 지역 경제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함으로 전세계 공급망과 산업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아시아와 세계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 주석은 지난 23일 중국군 6·25 참전 70주년 기념대회 연설에서 6·25 전쟁을 “제국주의의 침략”이라고 정의했다. 이에 대해 주한 미국대사관은 지난 24일 공식 트위터를 통해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부무 대변인은 중국공산당에서는 70년 전 한국전쟁이 단순히 ‘발발’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1950년 6월 25일 마오쩌둥의 지지를 받은 북한의 남침이며, 자유 국가들이 맞서 싸우자 중국공산당은 압록강을 건너 수십만의 병사들을 보내 한반도에 참화를 불러왔다고 밝혔다”고 밝혔다. 서욱 국방장관은 전날 열린 국정감사에서 “시진핑 주석의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고 강경화 외교장관도 “북한의 남침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상속세 재원 마련? 이건희 병상 6년간 회장 일가 배당금 2.8조

    상속세 재원 마련? 이건희 병상 6년간 회장 일가 배당금 2.8조

    회장 일가 받은 배당금, 5년 새 3.4배로 급증증권가 “삼성전자·삼성물산 배당 확대될 것”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쓰러진 이후 지난 6년 동안 이 회장 일가가 받은 배당금이 3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이 회장 일가가 받은 배당금이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증권가에서는 10조원을 웃도는 상속세 납부 자금 마련을 위해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의 배당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수 일가가 상장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총 2조 7716억원에 달했다. 배당금은 2014년 2221억원에서 2019년 7501억원으로 증가했다. 5년 새 3.4배로 커진 것이다. 삼성전자 배당금 비중이 컸다. 2018년과 2019년의 경우 이 회장 일가 전체 배당금 7500억원 안팎에서 삼성전자 배당금이 약 3500억원이었다. 삼성전자가 2018년부터 주주환원 정책 등으로 배당을 늘리면서 규모가 더 커졌다. 배당금 규모가 클수록 상속재산이 커져 상속세도 늘어나지만, 삼성전자의 배당 확대를 통해 상속세에 대비한 현금 재원 확보 측면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총 배당금 가운데에는 이 회장이 받은 배당금이 1조 7988억원에 달했다. 가족이 받은 배당금 전체의 64.9%를 차지하는 규모다.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4.18%로, 삼성생명(8.51%)과 삼성물산(5.01%)에 이어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5041억원을 배당받았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0.70%에 불과하다. 대신 17%가 넘는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배당금도 상당 부분 삼성물산으로부터 받았다. 이 회장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삼성전자 지분(0.91%)만으로 6년 동안 2723억원을 받았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삼성전자 주식 없이 삼성물산과 삼성SDS로부터 각각 982억원을 배당받았다. 증권가에서는 앞으로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의 배당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물산의 경우 이 부회장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특히 이 회장 보유 삼성전자 지분을 그대로 가져가면 배당을 통해 상속세에 대비한 현금 확보에도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망을 반영하듯 지난 26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물산은 10% 이상 급등했다. 지수는 하락했지만, 삼성전자도 소폭 올랐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