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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에 신라의 달밤만 있더냐…다시 숨쉬는 고려·조선의 달밤[서동철의 이야기가 있는 옛성]

    경주에 신라의 달밤만 있더냐…다시 숨쉬는 고려·조선의 달밤[서동철의 이야기가 있는 옛성]

    고려 때도 개경·평양과 함께 ‘3경’외적 막아내던 동문 향일문 복원옹골차면서 단아한 모습 인상적조선실록 ‘읍성 둘레 4075척’ 기록성 안팎 정비하며 카페·식당 속속황리단길 못잖은 ‘문화 거리’ 기대창고로 전락한 성덕대왕신종 종각 방치된 객사 동경관 쓸쓸한 모습신라의 천년 수도 경주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국토 남부의 핵심 도시였다. 그럼에도 신라만 집중 부각됐던 반면 이후의 역사는 잊혀지다시피 했다. 경주는 최근 읍성을 되살리는 노력이 성과를 거두면서 다양한 시대의 매력을 갖춘 고도(古都)로 탈바꿈하고 있다. 경주읍성의 4대문 가운데 가장 먼저 복원된 동문 향일문(向日門)은 방어 목적에 걸맞게 옹골차면서도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금은 북문 공진문(拱辰門)을 되살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읍성 내부에는 관아 터가 있다. 안팎의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읍성 주변에 개성 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속속 들어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황리단길에 이어 조만간 경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문화의 거리’로 떠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다양한 시대 매력 갖춘 고도로 탈바꿈 경주를 찾는 사람들은 경부고속도로를 타든 경부고속철도를 이용하든 서쪽에서 시가지 남쪽으로 접근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대릉원과 월성, 첨성대, 동궁과 월지, 황룡사 터,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따라간다. 보문단지에서 머물며 카페 거리를 오가고 불국사와 석굴암을 둘러보면 경주 관광이 완성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옛 시가지의 고려와 조선 시대 흔적도 탐방 여정에 넣어야 한다. 조금은 퇴락한 구도심은 현대적 관광지의 모습과는 물론 거리가 있다. 하지만 경주읍성이 있던 이곳은 고려와 조선 시대는 물론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에도 줄곧 행정의 중심이었다. 경주 시가지의 서쪽으로는 형산강이 흐른다. 남쪽엔 남천, 북쪽엔 북천이 각각 자연 해자 역할을 한다. 동쪽은 낭산과 한등산이 가로막고 더 멀리는 토함산이 버티고 있다.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가 금성, 곧 경주에 자리잡은 것도 이런 입지 조건 때문이 아닐까 싶다. 통일신라 궁궐 시설이 남쪽에 치우쳐 있다면 읍성은 그 북서쪽이다. 고려 시대 외적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더 강력한 방어력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은 935년 11월 고려에 항복하려 경주를 떠났다. 왕과 비빈을 태우고 각종 문서를 실은 마차 행렬이 30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경순왕은 개경에서 경주를 식읍으로 받고 출신 고장을 다스리는 사심관에 임명됐다. 고려의 신하가 된 것이다. 왕도(王都)로서 경주의 역할은 끝났다. ●고려 시대 중요한 지방행정 치소 역할 고려 시대 지방행정 체계를 본격적으로 정비한 임금은 성종이다. 그는 ‘3경제’를 도입했는데 수도 개경과 서경인 평양, 동경인 경주다. 훗날 남경인 서울이 더해지면서 동경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약화됐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고려 시대 내내 경주의 지위는 높았다. 통일신라 궁궐 및 관청 건물은 경순왕이 살아 있던 시절은 물론 이후에도 한동안 고려 지방행정 기구의 치소(治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고려사에는 ‘1012년(현종 3년)에 경주, 장주, 금양, 궁올산에 성을 쌓았다’는 기사가 보인다. 바로 전 해 ‘동여진이 100척 남짓 배를 타고 경주에 침입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때 고려가 동경부 관아로 쓰던 월성 안팎의 옛 궁궐이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싶다. 통일신라 궁궐 주변은 평지와 다름없었던 만큼 방어력을 강화한 성곽을 새로 쌓아 관청 시설을 보호하려 했을 것이다. ‘동경통지’에는 ‘읍성의 시축 연대는 불명이지만, 1378년(고려 우왕 4년) 개축했다’고 적혔다. 조선왕조실록은 1451년(문종 1년) ‘경주부 읍성은 둘레가 4075척, 높이가 11척 6촌이고, 여장(女墻)의 높이는 1척 4촌이며, 적대(敵臺)가 26개소, 문이 3개소에 옹성이 없다. 여장은 1155개, 우물은 83곳’이라고 적었다. 여장은 성곽 위에서 군사가 몸을 숨기는 얕은 담장을 말한다. 적대는 성곽 바깥으로 돌출시킨 방어 시설이다. ●임진왜란으로 훼손… 조선 영조 때 개축 임진왜란으로 훼손된 경주읍성은 1632년(인조 10년) 보수가 이루어진다. 1746년(영조 22년) 개축했다는 기록도 있다. 경주읍성은 이때 비로소 격식을 제대로 갖춘 읍성으로 완성된 듯하다. 1908년 남문인 징례문(徵禮門)을 찍은 사진에는 ‘고도남루’(故都南樓)라는 편액이 걸린 모습이 보인다. 신라 옛 도읍의 남쪽 누각이라는 뜻이다. 읍성 서문의 이름은 망미문(望美門)이었다. 경주의 치소성으로는 읍성 말고도 대릉원 일원까지 포괄하는 남고루(南古壘)가 있다. 일제강점기 조사가 이루어지고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된 둘레 5㎞ 남짓한 토성이다. 수재 방지용 둑으로 추정하기도 했지만 해자가 발견되면서 방어 시설로 굳어졌다. 학계는 남고루가 내성인 경주읍성을 둘러싼 외성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이해한다. 경주읍성의 조선 시대 양상은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경주읍내전도’가 알려 준다. 읍성 안팎을 사실성 있게 묘사한 ‘읍내전도’는 ‘집경전구기도’ 화첩의 일부다. ‘집경전구기도’는 집경전 옛터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전주에 가면 태조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있다. 조선 초기엔 경주, 개성, 평양, 영흥에도 진전(眞殿)이 있었다. 경주 집경전은 임진왜란 때 불탔다. 강릉에 새로 지었지만 이마저 1631년 소실됐다. ‘집경전구기도’는 옛터를 알리는 비석이 1798년(정조 22년) 세워진 이후 읍성 모습이다. ●동남쪽 관아·동북 집경전·서남 군사시설 정사각형에 가까운 경주읍성 내부는 남문과 북문, 동문과 서문을 각각 잇는 길이 중앙에서 교차하는 구조였다. 자연스럽게 네 부분으로 구획된 읍성 내부에 각각 특정한 가능을 부여한 듯하다. ‘읍내전도’는 동남쪽에는 관아 시설이 몰려 있고, 동북쪽에는 집경전이 내부 지역의 4분의1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집경전이 사라진 이후의 변화인지 민가도 적지 않게 보인다. 서남쪽은 ‘선무별장소’(選武別將所)를 비롯한 군사적 기능이 몰려 있고, 북서쪽에는 원형 감옥도 보인다. 서쪽에는 민가가 많은데 담장 쪽으로 밭도 적지 않다. 향일문을 통해 읍성 내부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각종 선정비 등을 한데 모은 비석군이 보인다. 읍성 중심부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새로 지은 황성동 주민센터와 황성동 주민자치센터가 나타난다. 주민자치센터와 맞붙은 공터에 옛집의 자재로 썼던 석물을 한데 모아 놓은 공간이 보인다. 주춧돌과 장대석이 많지만 누정의 하부 구조와 통돌을 다듬어 만든 계단도 있으니 위계가 높은 건물이었을 것이다. 공터 끝에 한자로 ‘집경전구기’라고 새긴 비석이 보인다. 이곳이 집경전 옛터였음을 알 수 있다. ●관아 흔적… 지금은 공공시설·빌딩 가득 주민센터에서 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경주부 관아의 흔적이 흩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곳에는 지금 공공시설은 물론 민간 빌딩까지 갖가지 건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 경주경찰서와 119안전센터,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과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일대가 옛 관아 터다. 그 북쪽 경주문화원이 경주부 수령과 가족이 살던 내아 터다. 일제강점기 경주문화원 건물은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원으로 쓰였다. 기능을 이어받은 국립중앙박물관 경주분관은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승격하며 지금의 자리로 옮겨 간다. 경주문화원 마당에는 창고로 전락한 성덕대왕신종 종각의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수재와 화재로 벌판에 나뒹굴던 신종은 1506년 읍성 남문 앞에 종각과 함께 자리잡았다. 신종과 종각은 1915년 총독부박물관 분관으로 옮겨졌는데, 신종이 경주박물관과 함께 떠나가면서 종각만 남은 것이다. 객사의 일부였던 동경관(東京館)은 당황스러운 모습이다. 대형 마트로 남쪽을 가로막힌 퇴직교원단체 청사 마당 한 켠에 방치되다시피 놓여 있다. 정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서헌과 동헌이 있었지만 한쪽 날개만 홀로 남았다. 일제강점기 국민학교로 썼다는데, 여전히 교육 시설로 활용하는 듯하다. 경주시는 동헌과 객사, 집경전을 복원하는 종합정비계획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본격화되지는 않았다. 비용이 문제이고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최소한 지금처럼 초라한 모습은 벗어났으면 좋겠다. 경주읍성 내부를 돌아보면 우리가 신라에 들인 공력과 비교해 이후 역사에서는 너무 푸대접한 것이 아닌가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글·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 [김동률의 아포리즘] 두 마리 늑대를 키우는 지혜

    [김동률의 아포리즘] 두 마리 늑대를 키우는 지혜

    ‘두 마리 늑대’ 우화는 체로키 인디언의 전래동화다.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체로키족은 인디언 부족 중 가장 문명이 뛰어난 부족으로 평가받는다. 클래식 팝 ‘인디언 레저베이션’도 체로키 인디언들의 슬픔을 담은 노래다. 유명 SUV 차량 ‘지프 그랜드 체로키’도 여기서 유래한다. 얘기는 간단하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늑대 두 마리가 있다. 그리고 두 마리 늑대는 항상 싸우고 있다. 검은 늑대는 악이다. 화, 질투, 욕심, 오만, 자기 연민,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하얀 늑대는 선이다. 희망, 겸손, 동정심, 공감을 지닌 늑대다. 이 두 마리 늑대의 싸움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어떤 늑대가 이길까?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다고 한다. 하지만 늑대 한 마리에게만 먹이를 주고 다른 늑대를 굶주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두 마리 늑대 모두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과 악의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상호 간 타협, 협상을 통해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공정하게 먹이를 주는 것이 현명한 삶이 된다는 통찰의 의미다. 결국 이 우화의 주제는 타협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타협이란 각기 상이한 목적이나 견해를 가진 당사자들 간 협상의 결과물이다. 작금의 한국사회는 상당 부분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서 있다. 좁아지는 도로에서 양보하기, 조용한 버스, 지하철 등이 예가 된다. 왁자지껄, 시끌벅적했던 식당도 최근 들어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여러 면에서 한국사회가 진일보한 모습이고 다들 동의하는 대목이다. 나는 이 같은 한국사회의 변화 중 가장 긍정적인 것을 꼽으라면 성숙한 노사문화를 들고 싶다. 최근 노사분쟁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해마다 되풀이되던 파업이나 격렬한 도심시위 등은 보기 어려워졌다. 여전히 저질적인 정치판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도 노사문제에 관한 한 한국사회가 성숙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평가한다. 사실 노사관계는 남녀관계만큼 이중적이고 어려운 관계다. 생산 과정에서의 노동자는 경영자의 지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종속관계에 있다. 그러나 조합을 통해서는 경영자측과 협상을 벌이는 대등한 관계에 있게 된다. 생산 단계에서는 성과를 높이기 위해 협력적이다. 하지만 막상 배분 단계에 이르면 자신의 몫을 더 챙기기 위해 날을 세운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성과이익을 놓고 갈등을 빚는 것이 예가 된다. 노사관계는 또 경제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묘한 위치에 있다. 기본적으로는 두 당사자들이 경제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조직이지만 회사는 사회적 관계 또는 인간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더구나 한국인에게 직장이 갖는 의미는 서구인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게감이 있다. 이 같은 특별한 무게감으로 인해 한국의 노사관계는 오랫동안 타협보다는 극렬한 투쟁관계로 점철돼 왔다. 그러나 최근 투쟁은 많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타협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협상의 힘이 작용한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협상은 쉽지 않다. 장유유서, 권위주의는 토론을 통한 협상보다는 지시, 복종이 우선시된다. “민증 까”라는 말이 들리는 순간 타협은 멀어진다. 흑백논리, 진영논리도 한국인의 기질이다. 제3의 공간이 들어설 여지가 많지 않다. 타협은 곧 사쿠라, 야합, 담합으로 평가절하된다. 조폭 기질도 한몫한다. 영화 ‘조폭마누라’, ‘신라의 달밤’,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보라. 타협은 없고 주먹만 있다. 이는 한국사회의 숙명적 특징쯤 된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최근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협상문화의 정착이다. 사실 노동분쟁은 다른 분쟁과는 달리 계속적인 고용관계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협상을 통한 자주적 해결이 가장 바람직하다. 여의치 않을 경우에 대비해 조정, 중재 등을 통해 도움을 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법원으로 가기에 앞서 분쟁을 해결하는 ‘대안적 분쟁해결(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제도’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중앙노동위원회가 그 중심에 있다. 나는 이제 한국사회가 주먹이나 법보다는 조정이나 중재를 통한 갈등 해결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투쟁이 우선시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협상은 짐작보다 힘이 ‘세다. 아주 세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매체경영)
  • ‘고래사냥’ 등 180편 찍은 정광석 촬영감독 별세

    ‘고래사냥’ 등 180편 찍은 정광석 촬영감독 별세

    ‘고래사냥’,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40여년간 영화계에서 180여편의 영화를 촬영한 정광석 촬영감독이 지난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입대 후 홍보 업무를 맡아 사진을 찍었고, 이를 계기로 제대 후 영화계에 입문했다. 조명 스태프로 일하다가 1962년 이봉래 감독의 ‘새댁’을 통해 촬영감독으로 데뷔했다. ‘고래사냥’(배창호·1985), ‘땡볕’(하명중·1984),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강우석·1989),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1992), ‘투캅스’(강우석·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1999), ‘동감’(김정권·2000), ‘신라의 달밤’(김상진·2001) 등을 찍었다. 2006년 안상훈 감독의 ‘아랑’을 끝으로 촬영 현장을 떠났다. 고인은 남다른 촬영 열정으로 기술적 한계를 맨몸으로 극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65년 김기 감독의 공군 전투 영화 ‘성난 독수리’를 촬영할 때는 직접 전투기 뒷좌석에 앉아 촬영하느라 25시간 동안 비행을 하기도 했다. ‘땡볕’으로 대종상영화제 촬영상, 시카고국제영화제 최우수촬영상을 받았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는 청룡영화제, 대종상, 프랑스 도빌영화제 등에서 상을 받았다. 2006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았다. 빈소는 쉴낙원김포장례식장, 발인은 10일이며 유족으로 부인 이정순씨와 아들 훈재·원찬씨, 딸 화숙·리나씨가 있다.
  • ‘고래사냥’,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정광석 촬영감독 별세

    ‘고래사냥’,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정광석 촬영감독 별세

    ‘고래사냥’,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40여년간 영화계에서 180여편의 영화를 촬영한 정광석 촬영감독이 지난 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91세.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입대 후 홍보 업무를 맡아 사진을 찍었고, 이를 계기로 제대 후 영화계에 입문했다. 조명 스태프로 일하다 1962년 이봉래 감독의 ‘새댁’을 통해 촬영감독으로 데뷔했다. ‘고래사냥’(배창호·1985), ‘땡볕’(하명중·1984),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강우석·1989),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1992), ‘투캅스’(강우석·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1999), ‘동감’(김정권·2000), ‘신라의 달밤’(김상진·2001) 등을 찍었다. 2006년 안상훈 감독의 ‘아랑’을 끝으로 촬영 현장을 떠났다. 고인은 남다른 촬영 열정으로 기술적 한계를 맨몸으로 극복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65년 김기 감독의 공군 전투 영화 ‘성난 독수리’를 촬영할 때에는 직접 전투기 뒷좌석에 앉아 촬영하느라 25시간 동안 비행하기도 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기차가 달려오는 장면을 박진감 있게 포착하기 위해 기차가 옷깃을 스칠 만큼 가까이 올 때까지 버티며 촬영한 일화도 전해진다. ‘땡볕’으로 대종상영화제 촬영상, 시카고국제영화제 최우수촬영상 트로피를 안았고 ‘인정사정 볼것 없다’로는 청룡영화제, 대종상, 프랑스 도빌영화제 등에서 촬영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았다. 빈소는 쉴낙원김포장례식장, 발인은 10일이며 유족으로는 아들 훈재·원찬씨, 딸 화숙·리나씨, 배우자 이정순씨가 있다.
  • 전설의 시작과 남겨진 숙제, 불국사와 석굴암 [한ZOOM]

    전설의 시작과 남겨진 숙제, 불국사와 석굴암 [한ZOOM]

    신성함이 요구되는 곳에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설이 남아 있다. 신라인들에게 황룡사(皇龍寺)와 함께 불국정토(佛國淨土) 건설의 상징이었던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石窟庵)의 시작에도 그러한 전설이 남아 있다. 불국사를 만든 김대성(金大城)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김대성은 전재산을 모두 부처님에게 바치고 얼마 후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김대성이 죽던 날, 재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에는 ‘김대성이 이 집에서 환생할 것이다’라는 계시가 내렸다. 얼마 후 김문량의 아내가 왼손에 ‘대성(大成)’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막대를 쥔 아들을 낳았다. 김문량은 아이의 이름을 김대성(金大城)이라 지었고, 김대성의 전생 어머니를 데리고 와서 함께 살도록 했다. 다시 태어난 김대성은 사냥을 좋아했다. 하루는 곰을 사냥한 후 깜빡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김대성은 자신이 죽인 곰으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김대성은 곰에게 진심을 다해 용서를 빌었고, 꿈에서 깨어난 후 다시는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시간이 흘러 김대성의 전생 부모와 현생 부모 모두 세상을 떠났다. 김대성은 부모님들을 기리기 위해 불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그림자가 없는 탑 무영탑(無影塔) 부산 출신인 대학교 2년 선배 두 사람이 있었다. 둘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고 함께 같은 대학교에 들어왔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고 ‘부산갈매기’를 불렀다. 요즘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면 주변 사람들의 항의로 쫓겨나겠지만 그때는 그런 낭만 아닌 낭만이 가능했다. ‘부산갈매기’ 만큼 신나지는 않지만 경주(慶州)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역시 현인이 부른 ‘신라의 달밤’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가수인 현인은 성악가의 길을 걷다가 대중가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인의 종숙(從叔)이 바로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인 현진건(玄鎭健·1900~1943)이다. 그는 1938년부터 다음 해 1939년까지 동아일보에 ‘무영탑’이라는 역사소설을 연재했다. 이 소설에는 ‘아사달과 아사녀’ 이야기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아사달과 아사녀’ 이야기를 역사적 기록 또는 전설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현진건이 소설 ‘무영탑’을 쓰기 위해 만든 이야기이다. 신라는 석가탑을 만들기 위해 당시 신라보다 건축기술이 앞서 있던 백제로부터 ‘아사달’이라는 이름의 석공을 데려왔다. 아사달에게는 ‘아사녀’라는 이름의 아내가 있었다. 아사녀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아사달이 보고싶어 경주로 찾아갔다. 하지만 탑을 만드는 동안 경건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아사녀는 아사달을 만날 수가 없었다. 아사녀는 탑이 완성되면 연못에 그림자가 비출 것이라고 믿고 매일매일 연못을 보며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림자가 보이지 않자 지친 아사녀는 연못에 몸을 던졌다. 석가탑이 완성된 후 아사녀가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사달은 급히 아사녀를 찾아 갔으나 그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후 사람들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석가탑을 무영탑(無影塔)이라 불렀다.부처님께서 1200년 동안 숨겨둔 돼지 한 마리 2007년 정해년(丁亥年)은 60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붉은 돼지의 해’가 10번째 되는 해라고 해서 ‘황금 돼지의 해’로 불렸다. 그런데 그해 초 불국사에서 엄청난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극락전(極樂殿) 현판 뒤에서 돼지조각상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처음 불국사를 만든 때가 751년이고,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극락전을 다시 만든 때가 1750년이다. 그렇다면 이 돼지조각상은 최소 약 260년, 최대 1260년 동안 극락전 현판 뒤에 숨겨져 있었던 셈이었다.돼지조각상이 발견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신기한 조각상을 보기 위해 불국사를 찾았다. 게다가 이 조각상이 발견된 해가 600년 만에 찾아온 ‘황금 돼지의 해’라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의미를 전해주었다. 불국사에서는 이 돼지조각상에 ‘극락전 복돼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극락전 복돼지를 보고 만질 수 있도록 극락전 앞 마당에 똑같이 생긴 돼지상을 만들어 공개했다.인간은 물을 이길 수 없다 1913년 일제에 의한 석굴암 복원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시 석굴암 복원 담당자들은 터널공사 전문가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고대 석조 문화재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조선의 석공들에게 조언을 구하지도, 조선인들을 복원공사에 참여시키지도 않았다. 심지어 복원공사 과정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으면서 주먹구구식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석굴암의 냉각과 제습체계는 오늘날의 과학기술로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무지와 오만은 결국 문화재의 손상을 불러왔다. 해방 후 우리 정부는 석굴암 복원공사를 재개했다. 당시 유네스코(UNESCO)에서 온 전문가까지 동원되었지만 습도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석굴암 내부를 밀폐된 공간으로 만들고 24시간 에어컨을 가동하는 방법을 적용했다. 지금도 석굴암 본존불(本尊佛)은 24시간 가동되는 에어컨 공기 속에서 앉아 있다. 에어컨의 진동 속에서 시나브로 훼손되어 가는 부처님의 고통이 하루 빨리 멈추기를 기원한다.
  • ‘사기 피소’ 뒤 배우 은퇴 이종수, 美 고깃집서 포착

    ‘사기 피소’ 뒤 배우 은퇴 이종수, 美 고깃집서 포착

    배우 이종수(47)가 미국 한식당 고깃집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사기, 이혼 등으로 구설에 오른 뒤 배우를 은퇴하겠다고 밝힌 지 5년 만이다. 8일 인터넷 매체 CWN에 따르면, 이종수는 미국 캘리포니아 부에나파크의 한식당 ‘탑 바비큐 그릴·포차 카페’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제보자가 공개한 사진 속 이종수는 두건과 마스크를 쓰고 서빙 중이었다. 앞서 이종수는 2018년 3월 지인 결혼식 사회 대가로 85만원을 받은 뒤 연락을 끊고 잠적한 혐의(사기)로 피소됐다. 당시 소속사는 “고소인 피해를 먼저 보상해주겠다”며 “고소인 지인께서 다른 사회자를 급히 섭외해 발생한 비용도 보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미국으로 떠난 이종수는 사업자금 명목으로 지인에게 3000만원을 빌리고 안 갚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종수가 카지노에 있는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종수 측은 “채권자에게 단 한 번의 연체 없이 매달 2.3% 이자를 갚고 있으며 원금도 1300만원을 변제했다”고 밝혔다. 1995년 MBC 24기 탤런트로 데뷔한 이종수는 영화 ‘신라의 달밤’(2001), 드라마 ‘이산’(2007~2008) ‘대왕의 꿈’(2013) ‘사랑은 방울방울’(2016~2017) 등에 출연했다. 결혼 3년 만인 2015년 이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2019년에는 미국 한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위장 결혼 의혹을 부인하며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는 게 싫었다. 앞으로는 평범한 사람으로 조용히 살고 싶다”며 배우 은퇴를 시사했다.
  • 부적으로 엿본 신라인 마음

    부적으로 엿본 신라인 마음

    ‘수리수리 마하수리.’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마법의 주문인 이 말은 불교 경전 ‘천수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하게 씻어 내는 참된 말’이란 뜻으로 옛사람들은 이것을 세 번 외우면 입으로 지은 모든 업을 깨끗하게 씻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살아가는 일이 간절한 마음만으로 다 이뤄지는 것은 아니겠으나 예나 지금이나 좋은 일을 염원하는 마음은 변함없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지난 24일 개막한 특별전 ‘수구다라니, 아주 오래된 비밀의 부적’은 신라인들의 소원 부적이었던 수구다라니를 조명한 전시다. 다라니는 부처의 가르침 중 핵심이 되는 것으로 ‘수리수리 마하수리’처럼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주문을 말한다. 수구다라니는 수구즉득다라니(隨求卽得陀羅尼)라고도 하는데 다라니를 외우는 즉시 바라는 바를 모두 얻을 수 있다고 해 유행했다. 이번에 공개된 수구다라니는 경주 남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1919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입수해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해 왔다. 그간 주목받지 못한 채 수장고에 묻혔다가 정확한 정보와 연구 자료 확보를 위해 과학적 조사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분석 및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수구다라니가 보관됐던 금동 경합이 제작 방식과 기법 면에서 다른 8~9세기 것과 유사해 수구다라니 역시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이는 국내 현존하는 필사본 다라니 중에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다라니는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왔는데 분석 결과 종이가 닥나무로 만든 한지라는 점은 국내에서 직접 제작했음을 보여 준다. 가로세로 약 30㎝ 크기로 하나는 한자, 하나는 범자(고대 인도 문자)로 적혀 있다. 범자 다라니에는 중앙에 금강신이 왼손으로 무릎을 꿇고 앉은 인물의 정수리를 어루만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 그림은 발원 대상자에 따라 달라졌다는 점에서 해당 인물은 발원한 관리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자 다라니는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 외곽 사방 모서리에 연꽃 위에 놓인 칼, 금강저, 소라나팔 등이 그려져 있다. 전시를 준비한 신명희 학예연구사는 “삼국유사나 해인사묘길상탑지 등 문헌 기록에서만 확인됐던 통일신라 수구다라니를 처음 발견한 사례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추후 연구에 따라 가치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시는 내년 1월 28일까지.
  • ‘타짜’ 너구리 연기한 조상건 별세…“갑작스럽게 가셨다”

    ‘타짜’ 너구리 연기한 조상건 별세…“갑작스럽게 가셨다”

    영화 ‘타짜’의 너구리 역으로 잘 알려진 배우 조상건(77)이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9일 한겨레는 고인의 조카와 전화 내용을 공개하며 조상건이 지난 4월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고인의 조카는 “지난 4월 21일 삼촌이 집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생전에 심장과 신장이 안좋아서 치료를 받고 계시긴 했지만, 차기작 출연 검토를 하시는 등 큰 문제가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가족끼리 장례를 치렀다”라고 전했다. 고인은 1946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피난와 서울에서 성장했다. 서울예술대 전신인 서울연극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1966년부터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며 1986년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남자연기상을 수상했다. 1982년 영화 ‘철인들’을 통해 영화계로 활동 무대를 넓힌 그는 2001년 ‘신라의 달밤’, 2005년 ‘그때 그 사람들’ 등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특히 ‘타짜’에서 정마담(김혜수)의 의뢰를 받고 평경장(백윤식)의 죽음을 조사하는 너구리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주인공 고니 역을 맡은 조승우는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고인이 연기한 너구리를 꼽기도 했다.
  • ‘청실홍실‘·‘바닷가에서’ 부른 원로 가수 안다성씨 별세

    ‘청실홍실‘·‘바닷가에서’ 부른 원로 가수 안다성씨 별세

    ‘청실홍실 엮어서 정성을 들여/청실홍실 엮어서 무늬도 곱게∼’라는 가사로 귀에 익은 ‘청실홍실’, ‘바닷가에서’ 등 히트곡을 부른 원로 가수 안다성(본명 안영길)씨가 11일 낮 12시쯤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92세. 1930년 5월 25일(호적에는 1931년생)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청주에서 자란 고인은 신흥대학(현 경희대) 영문과를 다녀 당시 드물었던 ‘학사 가수’로 통했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씨에 따르면 세계적인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1897∼1993)의 이름을 본떠 ‘안다성’이란 예명을 스스로 지었다. 청주 방송국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신라의 달밤’을 부르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육군 정훈국 군예대에서 2년 9개월 동안 100차례 공연을 다녔다. 대학 3학년 때인 1955년 서울 중앙방송국(KBS 전신) 전속가수로 발탁됐고,그 해 연속극 ‘청실홍실’의 주제가(조남사 작사, 손석우 작곡)를 선배 여가수 송민도와 함께 불러 히트시켰다. 이 노래는 ‘국내 최초의 드라마 주제가’로 유명하다. 1956년 손석우의 소개로 오아시스레코드와 전속계약을 맺은 뒤 1958년 드라마 ‘꿈은 사라지고’ 주제가를 불렀다. 그 뒤 ‘박춘석 사단’에 합류해 ‘파도소리 들리는 쓸쓸한 바닷가에/ 나 홀로 외로이 추억을 더듬네’로 시작되는 ‘바닷가에서’, ‘사랑이 메아리칠 때’ 등이 연달아 히트했다. 매력적인 저음에 어울리는 서정적이고 분위기 있는 노래를 불렀고, ‘에레나가 된 순이’ 등 탱고풍 노래 20여곡도 발표했다. 유족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KBS ‘가요무대’ 등 무대에 서왔다. 박성서씨는 “철두철미한 성격 그대로 누구보다 연습을 많이 한 가수”라며 “저랑 만날 때도 약속 장소에 항상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고, 늘 흐트러짐이 없었다. 일상에서조차 민얼굴을 그대로 내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강정남씨와 사이에 2남 안태상 명지대 교수와 안홍상(자영업)이 있다. 빈소는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4시 30분, 장지 괴산호국원.(02) 2633-1444
  • 맛 보셨슈? 백제 봄도시락[이우석의 미시(微視) 여행]

    맛 보셨슈? 백제 봄도시락[이우석의 미시(微視) 여행]

    공주, 꽤 낭만적 지위의 명칭이다. 공화정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왕자와 공주는 판타지 소설이나 동화 속에나 등장하는 존재다. 특히 ‘공주를 찾아 떠난다’고 하면 악에 의해 억압된 고결한 존재를 구출하기 위해 신비스러운 힘을 발휘하는 영웅 이야기가 떠오른다. 짐작했겠지만 이번 여정은 그런 환상적인 스토리가 아니다. 완연한 봄의 한복판에 들어선 도시 충남 공주(公州)로 떠나는 여행 이야기다. 공주란 명칭은 원래 ‘곰’에서 나왔다. 공주는 ‘곰주’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옛 지명은 고마나루, 곰나루, 웅진(熊津) 등이다. 모두 공주(princess)가 아닌 곰(bear)과 연관됐다(단군신화와 비슷한 곰나루(고마나루) 설화가 남아 있다). 뭔가 왕가의 이야기를 기대했더라도 실망할 것까지는 없다. 다행히 단군을 낳은 웅녀(熊女)는 환웅의 비로, 왕녀(princess)의 신분이다. 공주란 지명은 ‘곰의 전설이 서린 나루’가 근원이 됐다. 다만 이중환은 ‘택리지’에 이 지역 북쪽 작은 산의 모양이 ‘공평할 공’(公) 자와 같아 이름이 유래됐다고 이 위대한 신화에 ‘초’를 친 바 있다.우리 민족에게 곰이란 얼마나 친근한 동물인가. 건국신화의 토템이다. 마산(馬山)이나 인제(麟蹄) 등을 제외하고 어느 도시 이름에 특별한 동물이 들어가 있었던가. 부산 갈매기나 평창 수호랑 등은 후대에 갖다 붙인 것이다. 아무튼 공주는 곰과 봄의 도시다. 비록 봄이 늦긴 하지만 그만큼 신록의 아름다움이 빼어나기로 소문났다. “봄에는 마곡사의 신록, 가을에는 갑사의 단풍이 좋다”는 말이 있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 해서 공주의 봄 가을 경치를 칭송하는 말이다. 서울에서 공주를 가려면 주로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데, 알밤 산지로 유명한 정안을 지나자면 벌써 포근한 봄기운에 휩싸인다. 한반도에 몇 개 되지 않는 옛 도읍지의 평온한 느낌은 아무 곳에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주는 충청도의 한복판에 있다. 세종시가 생기며 땅을 내줬지만 지금도 충남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도시다. 세종시와 대전시, 계룡시, 청양군, 논산시, 부여군, 천안시, 아산시, 예산군에 모두 접한 충남의 노른자다. 백제의 도읍은 웅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웅진성은 사실 존속 역사가 짧다.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문주왕부터 성왕까지 5대 63년(475~538)간 백제의 중심 역할을 했다. 660년 의자왕이 마지막 항거를 위해 웅진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패망했다. 이후 신라의 9주5소경 중 하나인 웅주(熊州)가 돼 충청도 지역을 관장했다. 조선 시대에 명실상부한 충청의 중심으로 융성했다. 충청감영이 있었으며 관찰사가 주재하던 핵심도시였다.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에서 나온 이름이지만 이전에는 공충도, 공홍도, 공청도, 충공도, 청공도 등으로 불렸다. 어느 이름에나 공주의 공(公)자가 빠지지 않았을 정도였다. 번성했던 공주는 일제강점기 한밭(대전)에 밀려났다. 금강의 수운 대신 새로운 교통 물류 수단으로 부상한 경부선 철도가 공주를 비켜 간 탓에 1500여년을 지켜온 ‘충남의 중심’이란 지위를 내줘야 했다. 공주에는 산도 강도 많다. ‘전국구’ 영산 계룡산이 버티고 선 차령산 맥과 비단 같은 금강이 지난다. 공주에 대한 ‘TMI’(과도한 정보 소개)는 여기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도 끝나가는 요즘, 뭔가 심심하고 출출하다면 공주 봄 여행이 좋다. 뚜껑을 열면 화려한 봄날 소풍의 도시락처럼 모든 것이 아기자기하게 들었다. 우선 백제의 도읍지로서 많은 이야기가 스며 있다. 싱그러운 자연 풍광이야 더이상 말할 것도 없다. 교육도시라 유학생과 이주민이 많다 보니 값싸고 맛있는 음식문화가 있다. 접근성도 좋다. 고속도로와 고속열차가 재빨리 실어나른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공주를 잘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백제의 봄’을 지키는 공주 시내에는 공산성이 버티고 있고 인근에 송산리 고분군과 무령왕릉 등 여러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공산성은 공주 시내에 있어 큰 품을 들이지 않고 성벽 외곽을 두르는 길을 따라 한 바퀴 둘러보기에 좋다. 낮에는 시원한 금강 바람이 불어들고 밤엔 불 밝힌 야경이 근사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백제유적지구)에 속한 공산성은 애초 백제가 만들었지만 조선의 유적이다. 산성이 성곽 역할을 하도록 조선이 보강한 것이다. 서쪽 문인 금서루가 정문 격으로 내부엔 공북루 등 여러 정자와 왕궁지(추정), 성안마을 터 등이 있었다. 금강대교 건너 고마나루 솔숲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요즘이 최고다. 금강 변과 연미산, 무령왕릉 서쪽의 낮은 구릉을 모두 포함해 고마나루라 부르지만, 공주보 아래쪽 고마나루 솔숲은 그 신화만큼 신비로운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세월의 멋이 든 구불한 솔숲에는 곰 형상 조각들이 많이 서 있고 곰 사당도 따로 있다. 이른 아침에 살짝 깨어 나간 길에 물안개라도 피어오른다면 역사와 전설을 담은 곳에 걸맞은 몽환적 분위기가 연출된다. ‘고마’는 곰을 뜻하는 우리 옛말이다. 일본어로 곰을 ‘구마’라 하는데 공교롭게도 발음이 매우 비슷하다. 일본은 스스로 백제가 그들의 문화적·역사적 원류라 여기는데 공주가 백제의 수도였음을 떠올리면 딱히 신기할 것도 없다. 이곳에 ‘아트센터 고마’가 있다. 고도 공주의 문화적 심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적 수혈을 하기 좋은 때도 지금이다. 거리두기도 완화돼 현재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는 등 활개를 젓는 중이다.계룡산국립공원도 꼭 들러 봐야 한다. 좀더 무르익은 봄이 기다린다. 신원사와 갑사, 동학사까지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이른 봄 벚(櫻)과 매(梅)를 뽐내던 늙은 절집은 이젠 청춘의 푸른 잎으로 덮여 가고 있다. 계룡산을 오르는 길에는 여러 방향이 있는데 가장 많은 이들이 몰리는 곳은 역시 동학사를 끼는 코스다. 푸른 숲속 계곡과 함께 걷는 길이 산행이라기보단 봄나들이에 가깝다. 비구니 도량이라 화려하지 않은 대신 고즈넉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낸다. 반짝이는 신록 이파리와 들꽃이 오랜 고찰을 장식하고 있다. 갑사는 여러 보물급 문화재도 있지만, 절집 아래 갑사구곡의 경치가 국보급이다. 갑사를 누가 ‘추갑사’라 한정했나. 수정 같은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을 아래에 둔 절집은 봄에도 심히 아름답고 근사하다. 대숙전 아래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좋아 몇 번이고 두리번거리게 만든다. 신원사 가는 길옆에는 금색으로 바뀌어 가는 보리밭이 만춘의 전원 속에서 빛을 발하며 공주에 닿은 ‘백제의 봄’을 찬양한다. 꽁꽁 숨겨 뒀다 여름철에 슬쩍 다녀가기 좋은 상신과 하신계곡은 계룡이 품은 아름다운 계곡이다. ‘S라인’ 금강에 걸린 석양… 골목엔 추억이 방울방울 ‘청벽’이라 불리기도 하는 창벽은 금강의 ‘S자’ 물길(사행천)에 석양까지 눈에 담을 수 있는 곳. 가파르긴 하지만 20분쯤 쉬엄쉬엄 오르면 커다란 바위 위 촬영 포인트가 나온다. 이곳에서 보는 경치가 좋아 사진가들이 몰린다. 특히 해질 녘 창벽에 올라 금강을 바라보면 왜 ‘비단 금’(錦)자를 쓰는지 알 수 있다. 태화산 마곡사는 바야흐로 봄의 절정을 맞았다. 춘마곡의 여린 신록은 따가운 만춘의 볕을 세상 어떤 조명보다 아름답게 만든다. 백범 김구가 잠시 출가했던 마곡사는 조계종 6교구의 본사다. 설법을 들으러 온 신도들이 마치 마(麻)밭처럼 골짜기(谷)를 가득 메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곡의 신록을 제대로 보려면 조금 걸어야 한다. 뒤편 솔숲 사이로 난 작은 길에는 눈부시도록 푸른 잎사귀들이 돋아났다. 이리저리 굽은 노송이 중첩된 산길을 걷다 보면 콧속으로 청량한 봄의 향기가 스미고, 풀 돋은 땅을 디딘 발바닥은 폭신폭신 절로 춤을 춘다. 봄은 짧다지만 이처럼 많은 감각을 흔들 만큼 사뿐하다.공주 시내 투어도 깨알 같은 재미가 가득하다. 특히 중동 대통골목길 투어는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일명 하숙마을 앞 골목으로 통하는 이곳엔 가다가 길이 막히고 거기서 모퉁이를 몇 번 돌면 다시 제자리로 오는 그런 옛 골목이 아직 남았다. 공주시에 거주하는 문화·예술인과 청년 상인들이 빛바랜 오랜 원도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공장 기숙사는 갤러리로, 차 한 대 들어갈 수 없는 길은 쪽마당으로 변신해 곳곳에서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고택이 아닌 50~60년 된 중고(?) 한옥이 늘어선 골목을 돌아다니다 낡은 한옥에서 맛보는 차 한 잔은 여행의 자잘한 재미를 더한다. 금강에 산 그림자가 드리우며 밤이 찾아오면 잔잔한 물결 위로 공산성이 은은한 빛을 발한다. 마침 금강교 위로 휘영청 ‘백제의 달밤’이라도 펼쳐진다면 더없이 좋을 일이다. 어물거리다 보면 금세 지나치고 마는 올봄의 뒷모습을 기억 속에 선명히 새겨 놓고 보낼 수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길섶에서] 단장의 미아리고개/서동철 논설위원

    [길섶에서] 단장의 미아리고개/서동철 논설위원

    가수 현인이 불러 크게 히트한 ‘신라의 달밤’은 모르는 사람이 없겠다. 이 노래가 원래는 ‘인도의 달’이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가사를 쓴 조명암이 월북하면서 ‘신라의 달밤’으로 개작했다는 것이다. 이 노래가 가진 특유의 이국 정서도 그러고 보니 이해가 간다. ‘단장의 미아리고개’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철사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 끌려가신 이 고개여’라는 대목을 보면 6ㆍ25전쟁 당시 납북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요즘 상식으로는 무악재를 넘어야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임진강에 다리라고는 경의선 철교밖에 없던 시절, 사람이나 수레가 건너는 지점은 얕은 상류였다. 삼국시대에도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연천 장남에는 고구려가 호로고루, 남쪽의 파주 적성에는 신라가 칠중성을 쌓고 대치했다. 지난 주말 드라이브 삼아 호로고루에 갔다. 언제 가도 한적했는데 주차장에 빈자리가 적어 놀랐다. TV드라마에 나오면서 붐비기 시작했다고 한다. 발밑으로 임진강이 여울을 이루어 반짝이며 흘러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별고개’를 넘은 ‘님’도, ‘인도의 달’ 작사자도 미아리에서 의정부와 양주를 거쳐 이리로 임진강을 건넜겠거니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었다.
  • 이시언♥서지승 “크리스마스에 결혼식, 소수 인원 초대” [EN스타]

    이시언♥서지승 “크리스마스에 결혼식, 소수 인원 초대” [EN스타]

    배우 이시언(39)이 서지승(33)과 오는 12월 25일 결혼식을 올린다. 8일 이시언 소속사 스토리제이컴퍼니 측은 “이시언과 서지승이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결혼식을 올린다”며 “예식은 가족과 친인척 등 소수 인원만 초대해 조촐하게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선후배로 알고 지내던 이시언과 서지승은 지난 2018년 2월 열애를 인정했다. 당시 이시언 측은 “만남을 시작한 지 5개월에 접어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말 이시언이 MBC 예능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서 하차하면서 두 사람의 결혼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편, 이시언은 2001년 영화 ‘신라의 달밤’으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 ‘닥터 챔프’, ‘파라다이스 목장’, ‘모던파머’, ‘리멤버-아들의 전쟁’, ‘더블유’, ‘라이브’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서지승은 2005년 드라마 ‘반올림2’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TV소설 복희누나’,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아들을 위하여’, ‘오! 할매’ 등에 출연했다.
  • ‘전참시’ 조명섭, 쌍화차+숭늉 마시는 22세 “진정한 미스터트롯”

    ‘전참시’ 조명섭, 쌍화차+숭늉 마시는 22세 “진정한 미스터트롯”

    트로트 가수 조명섭이 ‘전참시’에 출연한 이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가 왜 ‘미스터트롯’에 나오지 않았는지에도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 조명섭은 지난해 방송된 KBS1TV ‘노래가 좋아’의 프로젝트 방송인 ‘트로트가 좋아’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인물이다. 특히 당시 방송에서 현인의 ‘신라의 달밤’ ‘베사메무초’,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의 노래를 불러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장윤정의 소속사와 정식 계약했다. ‘남자 송가인’이라 불리며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가 TV조선 ‘미스터트롯’에는 참가하지 않아 많은 이들이 의아해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그 이유에 대해선 언급한 바 없다. 22일 방송된 MBC ‘전지적 참견 시점(전참시)’에서는 22세 트로트 신동 조명섭이 출연해 특유의 말투를 가진 애늙은이 캐릭터로 시청자들에 눈도장을 찍었다. 예스러운 그의 모습과 함께 축음기에서 들릴 법한 창법에 시청자는 물론 출연진들까지 놀라움을 표했다. 이날 스튜디오에 등장한 조명섭은 북한 억양을 떠오르게 하는 강한 사투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에 출연자인 은지원이 “고향이 이북이냐”고 묻자 조명섭은 “강원도가 이북쪽이라 억양이 셀 수 밖에 없다”고 답했다. MC 전현무는 조명섭에 “노래 한 소절 들려달라”며 “노래를 들으면 은지원 씨가 또 놀랄 거다”라고 말했다. 이에 조명섭은 ‘신라의 달밤’을 불렀고 축음기에서 나오는 듯한 목소리와 울림에 출연진들은 감탄을 쏟아냈다. 이후 조명섭의 일상이 공개됐다. 조명섭의 매니저로 송성호 팀장이 등장했다. 송성호는 “현인 선배님이 돌아온 느낌이다. 영자 선배님보다도 더 선배 같은, 어르신을 모시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조명섭의 집에 도착한 매니저는 쌍화차를 먹으며 조명섭을 기다렸다. 조명섭은 미용실을 가지 않고 포마드로 직접 헤어스타일을 만들었다. 이들은 대구 행사장으로 향하던 중 휴게소에 들러 국밥을 먹었다. 이후 커피를 찾는 매니저와 달리 숭늉을 원하는 조명섭을 위해 결국 숭늉 코너에 들렀다. 송 실장은 “그래 몸에 좋은 숭늉이 낫지”라며 건배를 외쳤다. 이에 조명섭은 “건배는 누구 배냐”라며 아재개그를 선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밥을 다 먹은 후 조명섭은 “사람들은 못 먹는 게 없다. 나무도 먹었다. 6.25때는”이라고 말했고 송팀장은 “네가 6.25때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고 대답했다. 이후에도 조명섭은 어른스러운 말로 송팀장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를 지켜 본 참견인들은 “시간 여행자 같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라며 충격에 빠졌다. 이어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면 어느 때로 가고 싶냐는 말에 은지원은 “23살 때로 가고 싶다. 늦게까지 놀고 술 먹어도 지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에 조명섭은 “한창 좋을 때지”라고 말했고 은지원은 “지금 나한테 한창 좋을 때래”라며 당황해했다. 행사장에 도착한 조명섭은 엄마 뻘인 관객들 앞에서도 긴장하나 없이 농담을 던지며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무대에서 ‘신라의 달밤’을 비롯해 ‘이별의 부산정거장’ ‘빈대떡 신사’ 등을 연이어 부르며 호응을 이끌어냈다. 공연이 끝난 후 조명섭은 매니저들과 납작만두와 떡볶이를 먹으러 향했다. 출연진들은 “떡볶이 좋아하냐”라고 물었다. 이에 조명섭은 “좋아한다. 떡볶이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다”라며 아재같은 면모를 보였다. 이영자는 “빠르게 사는 세상 속에서 느리게 걷는 느낌이다”라고 전했다. 송은이 역시 “어린나이에도 깊이있는 노래를 하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것 같다”라고 말을 더했다. 조명섭은 송성호 실장을 향해 “항상 저를 사랑해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홍삼 꼭 많이 많이 드리겠다”며 영상편지를 남겼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신라의 달밤’ 가사 들은 강민경 “진짜 야한 노래구나”

    ‘신라의 달밤’ 가사 들은 강민경 “진짜 야한 노래구나”

    ‘신라의 달밤’ 가사가 화제다. 지난 7일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놀라운 토요일-도레미마켓’에서는 그룹 다비치(이해리, 강민경)가 게스트로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이들은 가수 현인의 노래 ‘신라의 달밤’ 일부를 듣고 받아쓰기에 도전했다. MC 붐은 “현인 ‘신라의 달밤’ 곡 정보를 드리겠다. 궁에서의 화려했던 리즈 시절을 회상하는 신라판 카사노바의 이야기다”고 설명했다. 이에 강민경은 “궁녀들이 그리울 거다”, “밤이잖냐”라며 가사를 유추했다. 강민경은 “이거 진짜 야한 노래구나”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tvN ‘놀라운 토요일’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대기업 자본·한국형 장르·대중 저격… 21세기 ‘웰 메이드’ 시대 열다

    대기업 자본·한국형 장르·대중 저격… 21세기 ‘웰 메이드’ 시대 열다

    2000년대는 한국영화계의 오랜 화두인 ‘영화산업의 기업화’라는 목표에 가장 근접한 시기였다. 무엇보다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덕분에 한국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의 스펙트럼도 넓어졌다. 1999년 49편이던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2004년 82편에 달했고 2006년에는 1991년 이후 가장 많은 110편의 영화를 만들어 지난 10년간 이어 온 양적 성장의 정점을 보여 주었다.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 역시 1999년 19억원에서 2004년 41억원을 넘어섰다. 불과 5년 만에 제작 현장의 몸집이 2배 이상 커진 것이다. 그 내용을 채운 것이 바로 한국영화 특유의 장르들이었다. 2000년대 초반 ‘조폭영화’의 유행이 있었고 이후 공포, 스릴러 장르가 전통적인 멜로드라마 일변도의 흥행 판도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2000년대 전반, 산업의 질적 성장을 책임진 ‘웰 메이드 영화’ 경향이었다. 세계가 주목하는 21세기 한국영화의 특징, 즉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라는 건강한 체질은 바로 이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대기업 중심의 산업 재편 2000년대 한국영화는 1990년대 후반에 감지된 르네상스의 기운을 주저 없이 밀고 나갔고 이는 전체 산업 규모의 확대로 이어졌다. 먼저 지표상의 수치부터 확인해 보자. 영화산업의 기반인 전국 스크린 수는 1998년 507개, 1999년 588개에서 2003년 1132개, 2004년 1451개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국의 영화관이 속속 멀티플렉스 체인으로 전환되며 스크린 숫자가 급증한 것이다. 이에 외국영화를 포함한 전체 관객수 역시 1999년 5472만명에서 2003년 1억 1947만명, 2004년 1억 3517만명으로 두 배 이상의 증가세를 보였다. 주목할 부분은 한국영화 관객의 증가이다. 1999년 2172만명에서 2003년 6391만명, 2004년 8019만명으로 매년 배가 뛰면서, 제작 현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999년 ‘쉬리’(강제규)가 만들어 낸 한국영화 붐과 포스트 ‘쉬리’ 효과로 인해 1998년 25.1%에서 1999년 39.7%로 상승했던 한국영화 점유율은, 2001년 50%를 넘어서더니 2004년에는 59.3%에 달하며 60%대를 넘보게 된다.(영화진흥위원회 연도별 ‘한국영화연감’ 참조) 2000년대 초중반 한국 영화산업의 구도는 충무로 토착 자본의 약화 그리고 대기업 자본의 지배력 강화로 설명할 수 있다. 새 판을 짜기 시작한 대기업의 과감한 행보에 시네마서비스(1994년 설립)로 대표되는 충무로 영화인들이 주도권을 내어 준 것이다. 사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로 한 차례 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는 대기업들은, 영화산업 규모가 커지고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부가 시장의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다시 흥행 게임에 나섰다. 바로 CJ가 만든 미디어 기업 CJ엔터테인먼트, 오리온 계열의 쇼박스 그리고 롯데엔터테인먼트(2005년 설립)가 대표 주자들이었다. 먼저 각 회사의 면면을 살펴보자. 강우석 프로덕션이 모태인 시네마서비스는 서울극장의 전국 배급망과 투자·제작에 관한 강우석의 뛰어난 감각이 만난 결과였다. 2000년 제일제당에서 독립해 설립한 CJ엔터테인먼트(현 CJ ENM)는 1998년 CGV강변11을 시작으로 멀티플렉스 극장 사업에 진출하며 배급과 흥행 기반을 닦았다. 쇼박스는 2000년 삼성동 코엑스에 메가박스를 개관하며 멀티플렉스 사업에 뛰어든 오리온 그룹이 출범시킨 투자배급사였다. 1996년 설립한 미디어플렉스가 전신으로, 2002년에 본격 출범했다.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시네마서비스(2002년 플래너스로 사명 변경)는 각각 CGV, 메가박스, 프리머스 시네마라는 멀티플렉스 영화관망을 확보하며 투자·제작-배급-상영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를 구축하게 된다. 2002년 전후 충무로 토착 자본을 상징하는 시네마서비스와 대기업 CJ엔터테인먼트의 2강 체제가 굳어졌고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를 위시로 쇼박스가 두각을 나타내며 3강 체제로 재편됐다. 2004년 CJ가 시네마서비스의 극장 체인 프리머스를 인수하고 시네마서비스가 CJ의 투자금을 받아 다시 프로덕션의 역할로만 물러난 것은, 한국 영화산업이 기존의 충무로 질서가 아닌 대기업 자본 체제로 재편됐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2010년대까지 이어지는 CJ의 독주를 예견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편 시네마서비스의 자리는 롯데시네마를 앞세운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대체하게 된다.●한국형 장르영화의 가능성 영화 장르는 시대적 분위기와 관객의 취향에 조응해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끊임없이 변화한다. 2000년대 전반 역시 한국 관객의 전통적인 선호 장르인 코미디, 액션, 통속 멜로를 기반으로 다양한 유형의 장르가 합쳐지고 또 하위 장르로 분화됐다. 특히 2000년대 초입은 ‘조폭영화’, ‘조폭코미디’가 붐을 일으켰는데 IMF 외환위기로 인한 전 국민적 스트레스 혹은 트라우마가 이 영화들을 통해 발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2001년 흥행 5위 안에, 전국 818만 관객을 동원한 ‘친구’(곽경택)를 필두로 ‘신라의 달밤’(김상진)·‘조폭 마누라’(조진규)·‘달마야 놀자’(박철관) 같은 조폭영화가 4편이나 진입하며 코미디와 액션을 선호하는 한국 관객들의 전통적인 취향을 입증했다.(당시 흥행 2위는 곽재용 감독의 로맨틱코미디 ‘엽기적인 그녀’가 차지했다.) 2002년에도 ‘가문의 영광’(정흥순)·‘공공의 적’(강우석)·‘광복절 특사’(김상진) 등이 흥행에 성공하며 유사한 장르의 경향이 이어졌다. 한편 스타도 액션도 없었던 ‘집으로…’(이정향)가 전국 4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흥행 2위에 오른 것은, 관객들이 조폭영화의 폭력성과 폭력의 희극화에 금세 피로감을 느꼈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2003년 이후 한국영화계는 로맨틱코미디와 조폭코미디 경향이 약화된 반면 세련된 공포·스릴러 장르와 인터넷 소설 원작 영화가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먼저 공포영화부터 점검해 보자. 2003년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윤재연)·‘장화, 홍련’(김지운)·‘거울 속으로’(김성호)·‘4인용 식탁’(이수연) 등 다양한 소재의 호러 장르들이 작가주의적 관점을 유지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5년에는 ‘분홍신’(김용균)·‘여고괴담4: 목소리’(최익환)·‘가발’(원신연) 등의 공포영화가 제철인 여름 시즌에 안착했다. 2010년대 한국영화를 주도하게 되는 스릴러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2003년 ‘살인의 추억’(봉준호)과 ‘올드보이’(박찬욱)가 선취한 스릴러 장르는 점차 외연을 넓혀 갔다. 2007년 ‘그놈 목소리’(박진표)·‘극락도 살인사건’(김한민)·‘리턴’(이규만)·‘세븐데이즈’(원신연) 등으로 액션, 미스터리 요소와 결합하거나 ‘혈의 누’(김대승)·‘기담’(정식·정범식)·‘궁녀’(김미정) 등 공포·사극 장르와 뭉치는 식이다. 한편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 붐은 2003년 ‘동갑내기 과외하기’(김경형)가 전국 49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시작됐다. 이를 신호탄으로 이듬해 ‘그놈은 멋있었다’(이환경)와 ‘늑대의 유혹’(김태균) 등 인터넷 소설을 빌려 10대 영화 시장을 공략하는 트렌디 영화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선호 장르인 통속 멜로드라마의 저력도 여전했다. ‘내 머리속의 지우개’(2004·이재한), ‘너는 내 운명’(2005·박진표)이 이른바 신파 정서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 대표작들이다. 2005년에는 도시남녀의 세련된 사랑이야기가 이어졌다. ‘멀티캐스팅’의 묘를 살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민규동)·‘새드 무비’(권종관), 독특한 감성이 인상적인 ‘사랑니’(정지우)·‘연애의 목적’(한재림), 90년대식 로맨틱코미디가 진일보한 ‘광식이 동생 광태’(김현석)·‘작업의 정석’(오기환) 등 멜로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시도들이 선보였다.●대중과 비평이 모두 좋아하는 영화 2000년대 초중반 순수한 예술영화 진영이 아닌 상업영화의 최전선에서, 대중과의 접점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장르 영화로 승부하는 감독들의 작품이 주목을 받았다. 특히 박찬욱, 봉준호는 각각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3년 ‘살인의 추억’을 내놓으며 ‘대중적 작가주의’라는 새로운 인식 기준을 제시한다. 이는 바로 ‘웰 메이드 영화’ 담론으로 연결됐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이다. ‘살인의 추억’,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이재용), ‘올드보이’, ‘장화, 홍련’ 등 네 작품이 모두 3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5위권에 들자 ‘돈 버는 영화’와 ‘공들여 잘 만든 영화’의 간극이 없어진 것을 포착한 영화 저널과 평론가들이 이 용어를 내놓았다. 특히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올드보이’가 이듬해 제57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까지 받은 것은 웰 메이드 경향의 핵심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덕분에 2000년 흥행 1위를 차지한 박찬욱의 전작 ‘공동경비구역 JSA’가 한국영화의 웰 메이드 시대를 연 것으로 재정의되기도 했다.‘잘 만든’ 상업영화를 뜻하는 웰 메이드 영화는, 사실 엄밀한 용어라기보다 여러 의미들을 포괄하며 다양하게 쓰인다. 탄탄한 내러티브(이야기 구조)를 기반으로 장르의 관습을 잘 활용하여 상업영화로서의 완성도를 높인 영화를 뜻하기도 하고, 대중영화의 틀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는, 즉 흥행과 작가주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영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미술과 사운드 그리고 후반작업까지 전 분야의 완성도를 높인 영화라는 것이 기본 전제다. 이러한 웰 메이드 계보는 2004년 ‘범죄의 재구성’(최동훈)·‘효자동 이발사’(임찬상), 2005년 ‘혈의 누’(김대승)·‘달콤한 인생’(김지운) 등의 작품으로 이어졌다. 상업영화라는 한계를 안고서도 감독의 연출력을 최대한 밀어붙여 만든 영화가, 작품성도 인정받고 흥행에도 성공한다면 그것은 영화산업의 가장 건강한 모습일 것이다. 웰 메이드 영화는 한국영화산업의 현실적인 전략이자 강점이 됐고 한국영화의 브랜드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미스터 리’ 김혜옥 “차승원, 정신줄 놓을 정도로 멋있어”

    ‘미스터 리’ 김혜옥 “차승원, 정신줄 놓을 정도로 멋있어”

    배우 차승원이 ‘미스터 리’로 12년 만에 코미디 영화로 관객들을 만난다. 다가오는 추석을 겨냥한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이계백 감독)는 아이 같은 아빠 철수(차승원 분)에게 어느날 갑자기 날벼락처럼 어른 같은 딸 샛별(엄채영 분)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코미디물이다. 7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 CGV에서 열린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리’ 제작보고회에는 배우 차승원, 엄채영, 김혜옥, 전혜빈, 박해준과 이계벽 감독이 참석했다. 이날 차승원은 “코미디 연기를 한동안 하지 않았는데, 따뜻한 휴먼 코미디에 출연하게 됐다”면서 “제가 좋아했던 장르라서 그런지 부담이 없다”고 소감을 전했다. 차승원은 그동안 ‘신라의 달밤’(2001)부터 ‘라이터를 켜라’(이상 2002), ‘광복절특사’, ‘선생 김봉두‘(2003), ‘귀신이 산다’(2004), 이장과 군수(2007)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 초반을 코미디 영화로 수놓은바 있다. ‘코미디 장인’ 차승원의 스크린 복귀에 기대가 모아지는 한편, 2017년 영화 ‘럭키’로 700만 관객을 모으며 코미디 영화사를 새로 쓴 이계백 감독과의 시너지에도 주목되는 상황이다. 차승원은 “코미디는 연기할 때 다른 영화보다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더 많이 요구되고, 강조되는 것 같다”면서 “2000년대 초반에 제가 코미디 영화를 워낙 많이 찍어서 이 장르가 싫을 때도 있었지만, 코미디 장르는 저에게는 땅 같은 존재다. 관객들도 다른 장르보다 제가 코미디에 나오는 것을 더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차승원과 코미디 영화를 하는 꿈이 있었다”고 말한 이계백 감독은 “맛집은 재료가 좋다고, 이번에 좋은 배우들과 만들어서 ‘럭키’와는 또 다른, 더 발전된 코미디의 맛을 보여드릴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이 같고 순수한 철수를 표현하기 위해 영화 속에서 차승원은 기존의 멋진 모습을 포기하고 곱슬머리 동네 아저씨가 됐다. 이계백 감독은 “철수가 평범하게 보여야하는데 차승원은 어떤 옷을 입어도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가장 안 좋은 옷과 안 멋진 머리 모양을 선택했다. 그래도 멋있었다. 그런 부분이 힘들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김혜옥은 차승원과의 호흡에 대해 “처음 연기를 해봤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너무 재밌다. 이렇게 실물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면서 “정말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멋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후줄근한 바지에 런닝을 입고 있었다. 그럼에도 멋있는 아우라를 숨길 수 없었다. 특히 연기 하는 걸 보니 속으로 혀를 차면서 ‘감동이다’, ‘저 사람 진짜 대단한걸?’이라며 감탄을 했다”고 극찬했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오는 9월 추석 극장가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미스터 리’ 차승원, 스틸컷부터 웃겨..‘원조 코미디 배우 귀환’

    ‘미스터 리’ 차승원, 스틸컷부터 웃겨..‘원조 코미디 배우 귀환’

    차승원이 12년 만의 코미디 영화 컴백 소감을 밝혔다. 배우 차승원이 7일 오전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감독 이계벽) 제작보고회에 참석했다. 코미디 전문배우로 맹활약 했으나 2007년 ‘이장과 군수’ 이후 12년간 본격 코미디에 출연하지 않았던 차승원은 이번 작품으로 본격 코믹 컴백을 알려 주목받고 있다. 코미디 컴백이라는 소개에 차승원은 “그렇게 됐습니다”라고 웃으며 “원조 코미디 배우? 그런 수식어가 괜찮나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차승원은 “늘 좋아했던 장르다. 한동안 안 했었는데, 제가 잠깐 출연한 영화 ‘독전’에서도 저는 코미디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눙쳤다. 그는 지난해 520만 관객을 모은 ‘독전’에서 조직의 숨겨진 인물 브라이언 역으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차승원은 “한 번 맛보면 빠져나올 수 없다. 살짝 보여줬기에 다음엔 깊고 넓게 보여줘야겠다 생각했기에 준비하고 있다가 마침 같은 제작사 용필름 임승용 대표가 해보면 어떻겠느냐 제안을 받았다. 휴먼 코미디로 좋은 영화일 것 같다고 해서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가 좋아했던 장르라 그런지, 찍고 나니 부담이 없다”고 강조했다. 2000년대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귀신이 산다’, ‘이장과 군수’ 등에 연이어 출연하며 큰 사랑을 받았던 차승원은 “그 시절 한창 코미디 영화가 만들어졌고, 제가 한창 활동하던 시기니까 맞물렸던 것 같다. ‘독전’에서도 단발 코미디를 했다”면서 “오랜만에 돌아왔으니 사랑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아이 같은 아빠 철수(차승원)와 어른 같은 딸 샛별(엄채영)의 이야기로 마른하늘에 ‘딸’벼락 맞은 철수의 좌충우돌 코미디극. 차승원과 박해준은 극 중 둘도 없는 형제로 만나 남다른 코믹케미를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에 자나 깨나 형 걱정뿐인 철수의 동생 영수 역을 맡은 박해준은 처음으로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 이제까지 보여준 적 없는 실생활 코믹 연기를 뽐낸다. 두 사람은 영화 ‘독전’을 통해 이미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차승원은 조직의 숨겨진 인물 브라이언 역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박해준은 브라이언의 밑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조직의 임원 박선창 역으로 차승원과 극강의 연기 호흡을 이뤘다. 차승원은 박해준에 대해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통해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재목”이라고 평가했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추석을 앞둔 오는 9월 개봉한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신라의 달밤’ 작사가·1세대 작가 유호 영면

    ‘신라의 달밤’ 작사가·1세대 작가 유호 영면

    ‘신라의 달밤’ 작사가이자 1세대 드라마 작가로 1940~70년대 가요계와 방송계에 큰 업적을 남긴 유호(본명 유해준)가 8일 영면했다. 이날 가톨릭대 은평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발인식에는 유족과 방송계 인사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은 지난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연합뉴스
  • ‘신라의 달밤’ 작사가 유호 별세

    ‘신라의 달밤’ 작사가 유호 별세

    대중가요 ‘신라의 달밤’ 과 ‘맨발의 청춘’ 작사가이자 1세대 방송작가로 유명한 유호(본명 유해준)씨가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98세. 황해도 해주 태생인 고인은 작사가, 소설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 최초의 방송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경향신문 문화부장과 한국방송작가협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빈소는 가톨릭 은평 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8일 오전 10시 30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신라의 달밤’ 작사 1세대 방송작가 유호 별세

    대중가요 ‘신라의 달밤’ 작사가로 유명한 ‘1세대 드라마 작가’ 유호(본명 유해준) 씨가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8세.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성제2고등보통학교(경복고)를 졸업하고 1942년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극작가로 등단했다. 1947년엔 ‘신라의 달밤’ 노랫말을 지으며 작사가로 데뷔했다. 고인이 박시춘의 부탁으로 작사한 이 노래는 해방 후 최고 히트곡이 됐다. 이밖에도 진중(陣中) 가요 ‘전우야 잘자라’, “사나이로 태어나서”라는 도입부로 유명한 군가 ‘진짜 사나이’, 최희준의 히트곡 ‘맨발의 청춘’, 1969년 방영된 연속극 ‘님은 먼 곳에’에 쓰인 동명의 주제곡 등 수많은 가요의 가사를 썼다. 고인은 경향신문 문화부장을 지냈으며 1968년 TBC 동양방송 전속작가로 수많은 연속극 대본을 집필했다. ‘맞벌이 부부’, ‘짚세기 신고 왔네’ 등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자 방송사는 그의 이름을 딴 ‘유호극장’이라는 코너를 따로 운영했다. 드라마 대표작으로는 ‘님은 먼 곳에’, ‘서울야곡’, ‘일요부인’, ‘파란 눈의 며느리’ 등이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고문 겸 교육원장 등을 지냈으며 2011년 제2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빈소는 가톨릭대학교 은평 성모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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