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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월대보름 축제 “액운은 가고 행운만” 희망의 불놀이

    ‘액운(厄運)은 다 살라버리고 행운만 불같이 일어나게 해주소서.’ 전통 세시풍속의 ‘보고’인 정월 대보름을 맞아 다양한 전통놀이가 열린다.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산과 들에서 장엄하게 벌어지는 불의 향연이다.억새가 장관인 경남 창녕 화왕산에서 3년만에 억새태우기축제가 열리고 제주 북제주군에서는 야산 하나를 다 불태우는 들불축제가 펼쳐진다.또 서울 곳곳에서도 푸짐한 전통 민속놀이가 기획돼 있다.마침 주말이므로 가족·친지와 함께 ‘불의 나라’축제속으로 들어가 두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계미년 새해 소망을 빌어보자. ◆창녕 '화왕산 억새 태우기' 억새를 태우며 액을 쫓고 풍년농사를 기원한다. 국내 유일의 산상 불놀이인 경남 창녕의 ‘화왕산 억새태우기축제’가 3년만에 정월 대보름인 오는 15일 열린다. 창녕의 진산 화왕산(火旺山·757m) 정상에는 드넓은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여름에는 푸른 초원을 자랑하며,가을에는 흐드러지게 피어 수려한 산세와 함께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산은 지명에서 보듯이 불의기운이 드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옛 이름도 ‘빗벌’‘비자화’로 불이 나지 않으면 아랫마을 처녀가 목숨을 잃는다는 속설이 전해져 온다. 불의 기운을 불로 다스려야 화를 당하지 않는다는 주민들의 정서를 달래고,민속놀이로 발전시키기 위해 지난 95년부터 정월 대보름 억새태우기를 시작했다.이듬해에도 행사를 열었으나 산불발생 위험과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환경단체의 지적에 따라 3∼4년마다 한번씩 열린다.올해는 네번째. 올해 축제는 식전행사와 본행사,식후행사로 나뉘어 진행된다.오전 10시부터 백일장과 사생대회를 시작으로 윷놀이,제기차기, 널뛰기 등 민속놀이와 통일염원 연날리기,지신밟기와 삼도농악놀이 등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본행사는 보름달이 뜨기 전 오후 5시30분 풍년농사와 지역안녕을 기원하는 상원제(上元祭)를 지내면서 시작된다.이어 오후 6시쯤 달이 뜨는 시각에 맞춰 천지가 진동하는 북소리가 울리고,대형 달집에 불을 붙이면 5만 6000여평에 달하는 억새밭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한다. 화염에 휩싸인 산에는 ‘탁탁’마른 억새가 타는 소리와 함께 집채만한 불기둥이 솟구치다 20여분만에 모두 타버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불길이 사그라지면 뒷불정리를 하면서 콩을 볶아 먹거나 밤을 구워 먹고,귀밝이 술 먹기 등 식후행사를 갖는다. 행사 참가자들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고 소원풀이 짚단을 구입,‘소원성취’·‘무병장수’라고 적힌 소지(燒紙)에 가족의 이름을 적어 본행사 때 함께 태울 수 있다. 이번 축제는 어른들에게 옛 추억과 향수를 맛볼 수 있게 하고,자녀들은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흔적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아울러 가족끼리 테마관광도 가능하다.주변에는 국보 제33호 진흥왕척경비를 비롯해 가야와 신라시대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어 역사기행을 할 수 있고,원시생태보고로 유명한 우포늪에서 철새들의 군무를 감상하는 탐조여행,국내 최고의 수온(섭씨 78도) 및 수질을 자랑하는 부곡온천에 들러 온천욕으로 심신의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다. 행사참가자들은 이날 철도청이 운행하는 억새태우기 축제열차를 이용하면 수월하다.행사 당일 오전 9시55분 서울역을 출발,동대구역에서 내려 버스를 이용,행사장으로 이동한다.행사가 끝나면 부곡온천으로 옮겨 저녁식사 및 온천욕을 하고,다음날 새벽 1시10분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무박2일코스. 대중교통은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 터미널과 대구 서부터미널,부산 사상터미널에서 오전 6시50분부터 20∼40분 간격으로 창녕행 시외버스가 운행하고 있다.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구마고속도로 창녕나들목으로 빠져나오면 된다.창녕읍에서 행사장까지는 약 3.5㎞. 창녕 이정규기자 jeong@kdaily.com ◆제주 '들불축제' 33만㎡의 야산 하나를 다 태우는 화려한 불의 향연인 정월대보름 들불축제가 오는 14∼15일 제주도 북제주군 서부산업도로변 ‘새별오름’에서 장엄하게 펼쳐진다. ‘무사안녕과 풍년기원,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주제로 북제주군이 주최하는 이 축제는 불(火)과 말(馬),달(月),오름(岳)을 소재로 한 겨울철 향토 문화관광축제로,올해 7번째다. 축제 첫날인 14일에는 오전 11시 개막을 알리는 성화탑 점화에 이어 합동전통혼례,집줄놓기,윷놀이,소원기원 꿩날리기,전통 마상·마예공연,불꽃놀이 등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지며 마지막 날에는 첫날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민속노래자랑,풍년기원제,소원기원 띠태우기,오름 불놓기,불꽃놀이,불깡통돌리기 등이 진행된다. 축제의 대미를 장식할 오름 불놓기는 월출 직후인 오후 6시30분 새별오름 5부능선에 마련된 40개의 달집이 점화되면서 시작된다. 이어 건초더미로 엮은 직경 30m짜리 보름달 형상과 글자당 300㎡되는 ‘정월대보름축제,무사안녕’이라는 대형 로고가 산자락 중간지점에서 불붙으면서 높이 119m,넓이 33만㎡되는 거대한 야산은 불화산이 되어 1시간동안 활활 타오른다. 2003발의 폭죽이 지축을 흔들면서 밤하늘에 휘황찬란한 꽃무늬를 수놓는 동안 곳곳에서는 불깡통돌리기가 펼쳐지고 참가자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져 강강수월래를 돌면서 축제는 막을 내린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시네 드라이브] ‘대박배우’ 하늘이 내린다

    로또복권 열풍에 온 나라가 통째로 술렁이는 이즈음.아라비아 숫자 하나에 울고 웃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캐스팅이 끝나면 영화 절반은 찍은 셈”이란 우스갯소리가 정설이 돼버린 영화판에도 순간의 선택에 늘 희비가 엇갈리게 마련.단칼에 퇴짜를 놨거나 혹은 얼떨결에 캐스팅됐다가 개봉 뒤 크게 울거나 웃은 배우들이 한둘이 아니다.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중국에서 촬영중인 무협멜로 ‘천년호’(제작 한맥영화).남녀 주인공 3명이 모두 최초 캐스팅 대상이 아니다.당초 제작사는 정준호가 맡은 신라장군 역에는 배용준,김혜리에게 낙착된 진성여왕 역에는 이혜영·강수연을 점찍어 시나리오를 넣었다.그러나 임자는 따로 있었다.배용준은 안경을 벗어야 하는 사극을 꺼렸고,이혜영과 강수연에게서는 가타부타 회신이 없었고.진성여왕의 연적 역에 캐스팅된 김민정은 발목부상으로 촬영도중 눈물을 머금고 하차해야 했다.그 ‘대타’로 어부지리를 챙긴 주인공은 이렇다 할 출연작이 없어 놀고(?) 있던 김효진. 이런 사례야 일일이 꼽기가 숨찰 정도다.‘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송강호가 맡은 북한군의 본래 임자가 최민식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차인표가 ‘친구’의 캐스팅 제의를 거절했다가 흥행을 놓친 사례도 두고두고 회자된다.흥행작에 대한 감식안이 남다르기로 소문난 한석규도 마찬가지.최근의 인터뷰 자리에서까지 “‘박하사탕’의 주인공을 못한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할 정도다. 7일 개봉하는 해양액션 ‘블루’도 오현경에서 촬영 직전 신은경으로 뒤바뀐 작품.영화에 전폭 지원하기로 한 해군 쪽에서 포르노 비디오 사건과 관련한 오현경의 이미지에 난색을 표하자 제작사가 어쩔 수 없이 캐스팅을 번복했다. 캐스팅이 하늘의 별따기인 영화계에서 이런 일들이야 병가지상사.극중 역할에 자부심을 가진 연기자에겐 쉬쉬할 얘깃거리도 아니다.최근 인터뷰에서 김혜리는 “다른 배우가 읽고 있던 시나리오를 어깨너머로 보고 탐이 나서 직접 제작사를 찾아갔다.”고 털어놔 오히려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크랭크인 직전 방송사극을 선택한 김혜수 대신 급히 문소리를 기용한 영화 ‘바람난 가족’이5월 개봉예정으로 한창 막바지 촬영중이다.김혜수가 ‘쪽박’을 찰지,문소리가 ‘대박’을 터뜨릴지 며느리도 모를 일이다.흥행배우는 하늘이 내리니까. 황수정기자
  • 나정유적지 2차 발굴,신라 神宮터서 銘文기와 출토

    신라시대 신궁(神宮)터로 추정되는 유적지에서 한자로 된 명문(銘文)기와 등이 발굴됐다. 22일 중앙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초부터 최근까지 경북 경주시 탑동 700의1 사적 제245호인 나정(羅井) 정비사업으로 시굴과 발굴을 한 결과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팔각건물 1채가 있던 터와 담벼락터가 확인됐고,한자 ‘生’자로 판단되는 글자가 새겨진 명문기와가 10여점 출토됐다. 또 팔각 건물지 북동쪽에서 크기 10㎝ 정도의 ‘官’자명 화강암 1점이 출토됐으며,북쪽에서는 중국 당나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청자편이 나왔다.발굴팀은 “이번에 출토된 유물은 신라시조 혁거세의 탄강(誕降)전설이 깃든 나정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대부분 빠르게는 고신라 또는 통일신라 유물이 차지하고 있다.”며 “신라 제21대 소지왕때 설치된 신궁터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경주 나정 유적지 발굴은 1차 시굴이 지난해 5월20∼6월24일 실시됐으며,이번에 건물지 중앙에 남아 있는 우물지로 보이는 초석 주변을 중심으로 2차 발굴을 시행하고 있다. 한편 1차 조사에서 확인된 팔각건물지는 평면 팔각형으로 동·서·남·북 길이가 각각 20m 정도이며,내부면적은 300.27㎡이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
  • “”감은사 동탑 사리 신라 문무왕의 것””원로 미술사학자 황수영 교수 주장

    경북 경주 동해구(東海口)의 감은사 터에는 두 개의 우람한 석탑이 있다.두 탑에서는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사리함이 각각 나왔다. 감은사 쌍탑 가운데 서탑은 분명 불사리탑이지만,동탑은 신라 문무왕의 사리를 모신 탑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원로 미술사학자인 황수영(79) 동국대 명예교수는 최근 불교신문에 연재를끝낸 회고담 ‘불적일화’(佛跡逸話)에서 이같이 추정했다. 일반적으로 탑(塔)에는 부처의 유골인 신사리(身舍利)나,가르침이 담긴 경전을 뜻하는 법사리(法舍利)를 봉안하게 마련이라는 점에서 왕의 유골을 넣었다는 주장은 파격적이다. 황 교수는 “서탑 사리장엄에서 나온 사리 1과를 불사리로 보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동탑에서 발견된 54과의 일부는 문무왕의 사리일 것”이라면서 “문무왕은 항상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왜적에게서 신라를 지키겠다고 말한 만큼 그의 사리를 이곳에 안치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밝혔다. 감은사 터와 대왕암은 지척이다.나라를 지키겠다는 간절한 유언을 남긴 문무왕의 시신을 화장한 뒤 장골(葬骨)한 곳이 대왕암이다.화장 과정에서 나온 사리는 이듬해인 682년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이 감은사 동탑에 봉안했을것이라는 추정이다. 지금도 감은사에 가면 금당 지하에 구들처럼 통로를 만들어 호국룡이 된 문무왕이 오갈 수 있도록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황 교수는 “실제로 동·서탑에서 나온 사리장엄을 비교해 보면,기본적인 의장은 같으나 부분에 차이가 있으니 곧 각각의 사리기에 모신 사리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예를 들어 서탑 사리내함의 사리병 주위에는 주악상(奏樂像)이 있지만,동탑의 그것에는 무인상(武人像)과 승상(僧像)이 배치되어 있다.또 서탑 내함 사리병 주위에는 난간만 있으나,동탑의 사리내함에는 난간과 더불어 여닫을 수 있는 문을 달았다.단순히 변화를 준 것이 아니라,봉안된 사리가 달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황 교수는 “불사리와 사람 사리가 어떻게 동격으로 봉안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그러나 미국 보스턴미술관에 있는조선시대 사리기에 불사리와 더불어 지공·나옹 등의 승사리를 함께 봉안했다는 명문이 있는 데다,우리나라에 부도가 나타난 것이 9세기이지만 중국에서는 4∼5세기로 소급할 수 있는 만큼 7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승사리를 모셨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삼국통일을 이룩함으로써 신라에 최대의 영광을 가져다 준 문무왕의 특별한 존재감,그리고 감은사가 그의 원찰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상정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불사리의 위의(威儀)를 빌려 호국불교의 의미를 되새긴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목간’ 출토 함안 성산산성 정부서 토지매입 지원

    신라시대 목간이 대량으로 출토되고 있는 함안 성산산성이 대부분 사유지여서 추가 발굴이 어렵다는 지적[대한매일 11월25일자 15면 보도]에 따라 정부가 토지매입을 지원키로 했다.문화재청은 사적 제67호 성산산성 토지의 감정평가를 올해안에 끝낸 뒤 내년에 매입, 발굴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할 계획이라고 26일 밝혔다. 또 사적 제40호 경주 황남리고분군의 사유지는 올해 150억원을 지원 한데이어 연차적으로 매입해 나가는 한편 파주 가월리·주월리 구석기유적,함안도항리·말산리유적 등도 내년에 국고지원으로 매입할 수 있도록 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동철기자 dcsuh@
  • 신라木簡 대량 발굴

    경남 함안군 가야읍 사적 제67호인 성산산성에서 6세기 중·후반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시대 목간(木簡)65점이 무더기로 발굴됐다.이같은 목간 출토량은 단일 유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것이며,이 가운데 51점에서 모두 313개의 먹글자가 판독됐다. 특히 당시의 지명과 관직명·인명 등이 여럿 확인됨에 따라 가야와 신라를 둘러싼 고대사를 규명하는 데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성산산성을 발굴하고 있는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선태)는 15일 발굴현장에서 지도위원회를 열고 목간을 비롯한 발굴유물을 공개했다. 발굴현장에서는 또 원목을 다듬거나 글자를 지우고 다시 쓰기 위한 작은 손칼,목간에 글씨를 쓴 것으로 보이는 붓이 함께 나와 목간 제작과정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이밖에 방망이와 송곳,자귀자루 등의 도구와 숟가락·젓가락·주걱 등 식기,배에서 물 퍼내는 용기 등 나무로 만든 작은 유물 137점이 함께 발굴됨에 따라 연구소 측은 이곳이 목공소 자리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함안 서동철기자 dcsuh@
  • [대~한민국 24시] 제주국제공항

    제주관광의 시작이요 끝인 제주국제공항.하루 200여편의 국내·국제선 여객기가 뜨고 내리는 이곳은 명실상부한 제주의 현관이다.공항 이용객은 지난해 연간 823만여명,하루 평균 2만 2000여명 꼴이다.올해는 월드컵과 주 5일 근무제 등을 계기로 사상 처음 연간 1000만명을 돌파하리라는 예상도 나온다.제주공항은 1942년 1월 일제가 군비행장으로 개항,1949년 1월 민간항공기인 KNA가 최초로 취항한 데 이어 1958년 1월 대통령령으로 제주비행장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그로부터 반세기,이제 제주공항은 비행기가 연간 5만 5000여 차례 운항하고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백태의 양상을 보이는 격세지감의 현장으로 탈바꿈했다. 국제관광지 제주도의 관문,제주국제공항의 아침은 여명이 다할 즈음 첫 출발·도착편 비행기와 승객들을 안전하게 보내고 받으려는 새벽 근무 에어사이드 요원들의 잰 몸놀림으로 시작된다.소방·항무통제·관제·레이더 등등. 이어 6시 30분쯤 20여명의 환경미화원들이 청사 안팎을 쓸고 닦을 때 항공사 발권직원과 임검경찰,수하물 검색요원 등 ‘공항 사람들’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오전 7시 제주발 서울행 첫 비행기를 타려는 승객들이 공항 고가도로를 통해 한사람 두사람 도착하면서 공항은 서서히 제 모습을 그려간다. 그러나 4만 6600여㎡의 3층짜리 거대한 청사건물은 구둣발을 크게 내딛지않아도 울릴 정도로 적막하다.상가도 식당도,청사 맞은편과 왼편 5만여㎡의 유료 주차장도 아직은 텅 비었다.3층 출발대합실 오른쪽 구석에 자리잡은 스낵코너에서만 커피잔이 달그락거릴 뿐이다. 일반적으로 첫 비행기 손님들은 ‘급한 사람들’이다.제주에 왔다 서울로 돌아가 긴급히 볼 일이 있거나 일을 보고 그날 다시 내려 올 제주사람들,아니면 인천국제공항으로 달려가 국제선 수속을 밟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그래서인지 승객들의 복장은 낮이나 저녁편 출발 승객들에 비해 비교적 단정하고 얼굴도 무표정한 쪽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첫 여객기가 도착하고 제주발 서울행 2∼3회차 비행기가 뜨는 오전 8시를 전후한 시각,고요하던 공항은 드디어 작은 소음들로 깨지기 시작한다. 제주공항에 상주하는 경찰·세관·검역소·병무청·출입국관리사무소 등 16개 국가기관과 82개 국영기업 및 사기업체 직원수는 2100여명.이 가운데 당일 근무자 1200여명이 꾸역꾸역 들어오는 것도 이때부터다. 대합실 3층에 있는 서점과 구두미화소,선물의 집,약국,토산품 판매점,농특산 마트 등 공항 상가들도 어느새 포장을 젖히고 손님받기에 들어갔다. 이어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비행기가 도착하고 뜨는 오전 9∼10시,1층 국내선 도착대합실과 3층 출발대합실은 가고 오는 사람들로 점차 소란스러워가고 청사 앞 교통경찰들의 호루라기 소리도 덩달아 바빠진다. 주차장 곁 승차대에서부터 ‘부산 아시아경기대회’‘36억 아시아인의 스포츠 대축전’‘WEL-COME TO ASIAN GAME’이라 적힌 부산아시안게임 회전식 선전탑이 서 있는 공항 입구까지 100여m는 벌써 말쑥하게 세차를 마친 개인택시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낮12시 지나 정기편 외에 특별기와 연착된 비행기마저 내려 승객들이 한꺼번에 출구로 쏟아질 즈음 대합실 로비는 그야말로 ‘난장’이다. 2번 출구쪽으로 내국인 면세점을 만드느라 공사중인 요즘은 장소가 비좁아 특히 더하다. ‘최○○씨 △△△여행사’‘○○친목회 ▲▲관광’‘○○로터리클럽 ××투어’ 등 이름이나 소속이 적힌 피켓 수십개가 출구앞에 난무한다.자기승객을 먼저 찾으려는 몸싸움들도 치열하다. 나온 승객을 미처 찾지 못해 탑승 여부를 확인하며 핸드폰을 마이크로 착각한 듯 마구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들,짐 찾으랴 마중객과 인사하랴 대합실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바쁜 승객들,“흩어지지 말고 나를 따라오라.”면서 혼자 잰 걸음으로 나가는 여행사 가이드들의 모습 등 여러 ‘가관’은 주 5일근무제에 막바지 피서철까지 겹친 요즘 제주공항 도착대합실 로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신혼부부 등 ‘알짜’손님을 끌기 위해 호객꾼들이 은밀히 움직이는 것도 이 때다.그 엉킴과 북적임 속에서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여행 온 사실을 어떻게 알고 접근하는지,추려내는 솜씨가 가히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비슷한 시각 3층 출발대합실도 시끄럽긴 하지만 가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아랫쪽보다는 훨씬 덜하다. 그래도 항공사 발권카운터 앞은 북새통이다.좌석번호를 배정받으려는 사람들,미처 예약하지 못한 대기승객들,그리고 마일리지를 확인해 달라는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매달리는 바람에 창구 여직원의 “차례로 하세요.”소리는 아예 쉬어버렸다.창구를 막지 않고 세로로 줄을 선다면 수속시간이 훨씬 빨라질 텐데 그놈의 ‘조급증’이 수속을 더욱 더디게 만드는 셈이다. 국제선쪽은 지난 11∼18일의 일본 오봉절 연휴가 끝나면서 다소 한가해졌다.연휴 때는 도쿄(東京)·오사카(大阪)·나고야(名古屋)·후쿠오카(福岡)·히로시마(廣島) 등지에서 하루평균 600명씩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떠나는 통에 출입국관리사무소,세관,검역소 등 CIQ 요원들은 냉방 사실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국제선 대합실의 꼴불견은 ‘엔화’를 의식한 여행사와 호텔직원들의 지나친 몸사리기다.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은 우리식대로 인솔해 가는데 반해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저자세다.상대가 상대인 만큼 ‘이랏샤이 마세(어서 오십시오)’‘우레시이 데스(반갑습니다)’라는 인사와 피켓 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여행사 가이드나 호텔 판촉담당 직원들의 ‘허리 90도 굽히기’는 광복 57주년을 무색케 할 정도다. 그러나 제주공항에 소란과 무질서,꼴불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점심시간을 전후한 시각,불고기 정식,낙지덮밥,갈비탕,옥돔구이 정식,생선초밥,전복죽,새우튀김 정식 등을 파는 2층 식당과 팥빙수,돈가스,햄버거,프라이드치킨 따위를 파는 그 곁 패스트푸드점은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모습들로 메워진다.커피·햄버거·보리빵·음료·샌드위치를 파는 스낵코너들도 마찬가지. 대합실 주변 상가에서 선물을 사거나 눈요기를 즐기는 승객들도 많다.제주특산품 매장의 제주한란·풍란코너,제주보리빵 코너,제주 도자기숍,제주갈옷 판매점,옥돔판매장,돌하르방 코너 등은 특히 인기다. 시간이 넉넉한 축은 동백나무와 귤나무,와싱토니아 등 제주 자생수목과 아열대식물이 가득한 공항공원에서 사진을 찍거나 청사 2층 ‘작은 박물관’에 진열된 ‘가야시대 투구’‘농경문 청동기’‘통일신라시대 토용(土俑)’등 진귀한 우리 유물과 사료를 감상하는 여유도 보인다. 제주 출발 첫 비행기가 서울행이었듯 마지막 도착편도 오후 9시45분 도착 서울발 대한항공 KE1269편이다. 서둘러 나오는 승객들 틈에 월드컵과 함께 국민복 1호로 등장한 ‘Be The Reds’가 박힌 붉은악마 티셔츠가 유난히 눈에 띈다. 오후 10시 넘어 대부분의 ‘공항 사람들’이 물러가고 10시30분쯤 관광협회 소속 직원들이 마지막 퇴근채비를 차릴 무렵 공항청사는 다시 어제처럼 적막으로 무거워진다. 유도로등과 활주로등,비행기 진입등,그리고 비행장 등대 불빛이 을씨년스러워지는 가운데 공항은 어둠으로,밤으로 다가간다. 그러나 이 불들이 밝혀주고 있는 한 공항은 잠들지 않는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경북 영주 부석사/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1000년 세월을 듣는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부석사에 가려면 귀찮더라도 예습부터 할 일이다.여느 사찰에 가듯 뒷짐지고 두어 바퀴 거닐다가,학창시절 국사 교과서에 나왔던 그 유명한 무량수전 앞에서 기념사진 몇 컷 찍고 나오기엔 부석사 나들이가 너무 허망하다. 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왕명에 의해 창건했다는 부석사는 한국전통건축의 고전(古典)으로 꼽히는 사찰이다.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도 법등이 끊이지 않았던 역사성,독특한 공간구조와 장엄한 석축단,당당하면서도 우아한 기품을 갖춘 세련된 건물들. 부석사엔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석등,조사당,소조여래좌상,조사당벽화 등 5점의 국보와 3층석탑 등 4점의 보물이 있다.이중 부석사를 대표하는 것은 대웅전격인 무량수전이다.고려 현종 7년(1016) 원융국사가 중건했다.무량수전의 압권은 부드럽고 탄력적인 곡선미를 보여주는 배흘림 기둥과 팔작지붕이다. 거칠게 다듬어진 주춧돌 위에 세운 기둥의 지름 사이즈는 34-49-44㎝.기둥머리에서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오면서 굵어졌다가 다시 가늘어지는 배흘림은 팔작지붕과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일직선이 아닌 정사각모양으로 돌려 쓴 무량수전(無量壽殿)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이다.특이한 것은 무량수전에 오르려면 누구나 ‘극락’의 뜻이 담긴 ‘안양루’란 누각 밑 계단을 걸어올라야만 한다는 것.불자들은 부처님을 만나거나 극락에 오르는 길은 신분의 고귀함이나 미천함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안양루는 무량수전 앞마당 끝에 놓인 누각이다.이 건물은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다른 데 무량수전 앞마당과 이어진 위쪽엔 ‘안양루’,위로 오르기전 입구엔 ‘안양문’이라고 씌어 있다.무량수전에 오르기 전엔 ‘문’이고,오르고 나서는 ‘누각’인 이중의 기능을 부여했다.안양루에 서면 발아래 엎드리듯 모여 있는 경내 건물들의 지붕들,그리고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다.그래선지 옛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 오르면 끓어오르는 시심(詩心)을 참지 못하고 적지않은 시문을 남겼다.그중 방랑시인 김병연 등 몇몇이 지은 시문은지금도 누각 안에 걸려 있다. ‘평생에 여가없어 이름난 곳 못봤더니/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백년동안 몇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세월도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안양루에서 발 아래 경치를 감상하며 김병연의 시구를 읇조려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부석사 나들이는 보람이 있다. 영주 임창용기자 sdragon@ ■여행 가이드 *가는 길= 풍기를 들머리로 잡는 것이 편하다.중앙고속도로 풍기IC에서 빠져나와 931번 도로를 타면 된다.30분 정도 달리면 소수서원,순흥향교 등을 지나 부석사에 닿는다.풍기서부터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일단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영주 또는 풍기로 간 다음 부석사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숙박 및 먹거리= 주차장 인근에 명성식당(054-633-3262) 등 민박을 겸한 식당이 몇 군데 있다.좀더 깨끗한 곳에 묵으려면 부석사 입구의 코리아나호텔(633-4445),또는 풍기,영주시내 호텔이나 모텔을 이용하면 된다. 부석사 인근 식당에선 산채비빔밥을 주로 낸다.조금만 시간을 내 풍기로 가면 인삼정식,인삼갈비 등 인삼을 재료로 쓴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인근 가볼만한 곳= 신라 선덕여왕 때 두운조사가 창건한 희방사,조선 중종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소수서원,의상대사가 부석사 터를 구할 때 초막을 지어 기거하던 자리에 지었다는 초암사 등이 찾아볼 만하다.소백산 옥녀봉 기슭에 자리잡은 자연휴양림에선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문의 영주시 관광담당(639-6062). ■둘러 볼만한 곳/ 벽화·불상… 예술혼에 감탄 꼭 문화유적 답사가 아니라도 일단 부석사를 찾는다면 무량수전과 안양루 이외에도 아래의 몇가지는 눈여겨 둘러보자. 먼저 부석사 창건 당시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무량수전 앞 석등.화려한 귀꽃 장식과 세련된 보살상 조각이 감탄을 자아내는 통일신라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대표적 석등이다. 조사당은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조사의 초상을 안치한 곳이다.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희귀하게도 건물내부 입구 좌우에 보살상,사천왕상이 남아 있다. 조사당 앞엔 이중 철창 속에서 보호받는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이 나무가유명한 ‘선비화’다.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은 뒤 가지와 잎이 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선비화 잎을 따 삶은 물을 마시면 아들을 얻는다는 믿음이 생겨 뭇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철창으로 보호하게 되었다. 조사당 벽면에 그려졌던 조사당 벽화는 고려 회화사에 귀중한 연구자료로평가되는 작품이다.불명(佛名) 미상의 보살상과 다문천왕상 등을 담은 이들벽화 6점은 고려조 예술이 지니는 아름다운 선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무량수전에 모셔져 있는 소조여래좌상은 신라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걸작으로 꼽힌다.소조(塑造)상으로는 최대,최고의 불상으로,두꺼운 입술에서 고려불의 특징이 엿보인다.특이한 점은 불상이 정면이 아닌 측면,즉 동쪽을보고 앉아 있는 것으로,호국을 기원하는 뜻으로 서라벌을 향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 8.15 민족통일대회/독도수호 학술토론회/“日 역사왜곡 대응 민족운동 펴자”

    8·15민족통일대회에 참가한 남북 학자들은 16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독도 영유권 수호와 일본의 과거청산을 위한 우리민족의 과제’란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가 끝난 뒤에는 ‘해내외 온 겨레에게 보내는 특별호소문’을 통해“일본은 아름다운 삼천리 강토를 황폐화시키고 귀중한 문화재와 재산을 앗아갔다.”며 “일본의 역사왜곡,독도 영유권 주장,군사 대국화를 반대하는 민족적인 운동을 강력히 벌여나가자.”고 강조했다.다음은 남북학자들의 발표요지. *강만길 상지대 총장- 일본이 울릉도 외에 독도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17세기 후반이고,이후 일종의 영토분쟁이 생겼으나 1696년 두나라 교섭으로 조선의 영토임이 재확인됐다. 1902년엔 부산주재 일본영사관은 ‘울릉도 동쪽에 ‘리양코’(독도)가 있는데,울릉도 주민들이 출어하여 4∼5일간 머물다가 돌아간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1904년 한 일본어부도 ‘리양코는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한국의 영토’라며 일본정부에 어업권 빌리기를 원했다는 기록이 있다. 남북은 독도 문제 대처를 위한 공동기구를 만들고 보조를 함께해야 한다.또 독도 수비를 위해 상징적으로 남북이 공동으로 병력을 파견하는 일도 바람직할 것이다. *허종호 조선역사학회 회장- 독도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민족의 신성한 영토다.우리의 독도 영유 형태는 ▲6세기 초 우산국 복속 ▲12세기 중엽 관리파견 직접통치 ▲15세기 초 소극적 공도정책 아래서의 영유권 선언으로 구분된다.조선은 독도 영유권을 1900년 10월25일 ‘칙령 제41호’로 공표했다.일본은 독도에 전임관리를 보내 주권행사를 하거나,정부차원의 개척,경영사업을 한 일이 없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신라시대 이후 우리가 독도를 영유해 왔다는 사실은 삼국사기,세종실록지리지,증보동곡문헌비고 등 많은 문헌으로 확인된다.일본이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한 것도 고유 영토가 아님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다.남북은 일본의 공식 사죄와 재거론 방지 약속,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국제적 연대전략수립,독도 전시회 및 학술토론회등으로 공조해야 한다. *황명철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사- 일본은 1693년 호키 번주가 막부의승인 아래 안용복에게 내준 확인문서에서 조선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이후 1696년 막부는 ‘죽도(울릉도)와 그밖의 한 섬(독도)’에 왜인들의 출입을 금지했다.1946년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지령 제677호(약간의 주변지역을 정치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한 데에 대한각서)에서 울릉도,독도,제주도를 우리나라에 귀속시켰다.우리나라의 독도영유권을 확인한 대표적인 국제협약이다. *한상범 동국대 교수- 일본의 우익 세력은 일관되게 메이지헌법 체제로 복귀하려 한다.역사왜곡은 군국주의 정신교육의 예비단계다.우리 민족이 직접 부딪히는 문제이며 동시에 아시아 민중의 운명에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우리는 남북을 가리지 않고 민족적 공동관심사에 협조해야 한다.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이웃에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일본 민중,평화 애호세력도 큰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다.일본의 역사왜곡과 군국주의 부활정책은 우리민족에 대한 죄악이며 범죄행위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
  • 한강유역 최대 청동기 집터 발굴, 부천 고강동 선사유적지서

    경기 부천시 고강동 선사유적지에서 한강유역에서 가장 큰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발굴됐다고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발굴단이 5일 밝혔다. 발굴단에 따르면 제5차 고강동 선사유적 조사 결과 가로 17.9m,세로 3.8m짜리 대형 주거지가 산 북쪽 능선의 해발 70m 지점에서 확인됐다. 기원전 10세기 이전 전기 청동기시대에 속하는 이 대형 주거지는 외곽 규모만 확인했기 때문에 성격이나 정확한 구조 등은 정밀 발굴을 기다려야 한다고 발굴단은 덧붙였다. 이곳에서는 반월형 돌칼을 비롯해 돌화살,돌끌,입 둘레로 일정 간격으로 구멍을 뚫은 이른바 공렬(孔列)토기를 비롯한 무늬없는 토기 등 유물이 발견됐다. 길이 20m 안팎에 이르는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최근 강원도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잇따라 출현하고 있어 학계는 그 성격을 궁금해하고 있다.또한 지난해 4차 조사에서 8기가 확인된 신라시대 석곽묘가 이번에도 4기가 발굴됐다. 한편 부천시는 이 유적에서 다양한 유물과 유적이 확인됨에 따라 역사주제공원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연합
  • [김성호기자가 본 종교만화경] ‘살색’ 크레파스

    인도의 유력한 국왕이 선지식을 모시고 차별없이 재물과 불법을 보시하는 자리에서 비롯된 불교의 무차법회(無遮法會).불교계의 쟁점이 있을 경우 승려나 속인,남녀노소 차별없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만민토론회다.우리도 신라시대때 흥해 고려때까지 이어진 중요한 불교의식중 하나였다.조선시대 이후거의 맥이 끊겼지만 이 무차법회는 누구나 기탄없이 참석해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열린 종교의식으로 평가된다. 비단 불교의 무차법회를 따지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종교는 평등의 가치를 높이 산다.자비며 사랑이 모두 평등의 전제 아래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행해지는 종교적 미덕일 것이다.종교적 편견과 이기심을 버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테레사 수녀나,정상급 신학자·철학자였으면서 30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에서 생명외경사상을 편 슈바이처가 변함없이 존경받는 까닭도 바로 이 평등의 가치를 온몸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크레파스와 수채물감의 ‘살색’표기가 황인종이 아닌 인종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인종과 피부색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확대한다는 이유로,기술표준원에 한국산업규격(KS)을 개정토록 권고하는 성과를 끌어내는 데 종교계 몫이 컸던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종교는 이처럼 평등을 으뜸 덕목중 하나로 존중하지만 실제로 종교에는 불평등과 차별이 적지 않다.불교 개신교 가톨릭에서 남녀 성직자의 대우나 위상에 큰 차이가 엄연하며 종교간 우열을 다투는 배타성도 결국 평등의 정신에는 어긋나는 것이다.지난 2000년 “로마 가톨릭교회만이 유일한 정통성을 지닌 교회며 개신교의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다.”라는 바티칸 교황청의 배타적 선언이 세계 종교계의 큰 반발을 산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있다. 지난 94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엘리트 기자 20명을 선발해 1년간 마음대로 세계 곳곳을 돌아보고 리포트를 쓰도록 한 적이 있다.아프리카 오지까지 두루 다녀온 기자들이 만든 보고서의 주내용은 “세계가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 종교의 틀 안에서 흘러가고 있으며 종교 문제를해결하지 않고는 복잡한 국제정치나 국제경제 문제들을 풀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세계에서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존과 공생·상생의 윤리가 어느때보다 강조되고 있다.생명의 존엄성을 높이며,시대와 인류에 바른 가치와 삶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종교에서 그 존엄한 가치인 평등이 멀어지고 있음은 퍽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김성호기자kimus@
  • 통일신라 선림원터 동종 잔해- 월정사, 박물관 도록에 공개

    오대산은 통일신라 초기부터 불교신앙의 중심지였다.불교 진리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머무르는 곳으로 각광받아 왔다.중심사찰인 월정사는 불·법·승(佛·法·僧) 3보사찰로 일컬어지는 통도사·해인사·송광사와 함께 한국 불교의 4대 성지로 인식된다. 그 월정사가 1999년 도난방지 차원에서 박물관을 지어 본사의 유물과 함께 강원도 남부 일대 말사에서 옮겨온 유물을 다수 소장하게 됐다. ‘월정사 성보(聖寶)박물관’(관장 현해 스님)이 소장유물에 관한 연구 결과를 담은 도록을 펴냈다.270쪽에 걸쳐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과 상원사 중창권선문 등 국보와 월인석보,월정사 팔만대장경 등 보물을 비롯한 각종유물 도판 167컷을 실었다. 이 화려한 도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유물은 역설적이게도 아주 초라하게 보이는 쇠붙이 두 조각을 담은 사진 한 장이다.선림원 터 동종의 잔해다. 선림원터는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 미천골에 있다.신라시대 홍각선사가 세운 절로 산사태로 폐허가 된 뒤 지금은 아름다운 삼층석탑과 부도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이다. 1948년 지표조사에서 종 하나가 나왔다.신라 애장왕 5년(804년) 순응법사가 만들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보호한다고 1949년 11월 월정사로 옮긴 것이 그만 다음해 한국전쟁때 불에 녹아버렸다. 그동안 종의 잔해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그러나 월정사도 일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월정사박물관이 이 종이 가진 역사를 잊지 않고 거의 문화재라고 할 수도 없는 쇠붙이 조각을 도록에 싣고 의미를 부여한 데 경의를 표하고 싶다. 서동철기자 dcsuh@
  • 화엄사 유물등 7건 보물 지정예고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전남 구례군 화엄사 서오층석탑에서 발견된 유물 등 7건을 국가문화재(보물)로 27일 지정예고했다.지정예고 문화재는 화엄사유물 외에 ▲태안사 동종 ▲양산 통도사 석가모니불 괘불탱 ▲통도사 괘불탱 ▲통도사 화엄경 변상도 ▲통도사 영산전 영산회상도 ▲통도사 청동은입사 봉황문향완등이다. 이 가운데 화엄사 서오층석탑 발견유물은 통일신라시대 사회를 총체적으로 조망할만한 유물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
  • 경산 ‘자인단오·한장군놀이’ 축제 개막

    문화관광부 전통 민속축제로 지정된 경북 경산시의 ‘자인단오·한장군놀이’가 14일 자인면 제석사에서 ‘원효성사 탄생 다례재(茶禮齋·사진)’를 시작으로 3일간의 화려한 막을 올렸다. 자인면 계정숲 일원에서 올해로 스물일곱번째 열리는 축제는 15일 경산의 수호신으로 신라시대 때 왜구의 침입을 물리친 한장군의 넋을 추모하는 한묘대제와 가장행렬,각종 민속놀이가 다채롭게 펼쳐진다.마지막 날인 16일에는 전국 민속 장사씨름대회와 전통 혼례식,국악공연 등이 축제를 장식한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
  • 박혁거세 신궁 추정 건물터 발굴

    신라 건국시조인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라는 신화가 전해지는 경북 경주시 탑동 700의1 나정(蘿井)일대에서 신라시대 가장 중요한 제사시설인 신궁(神宮)일 가능성이 있는 대형 8각형 건물터가 발굴됐다. 중앙문화재연구원(원장 윤세영)은 지난달 21일부터 현재까지 나정 일대 정비사업을 위해 이곳을 발굴한 결과 통일신라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8각형 건물터 한 채를 발굴,조사하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건물터는 각 기단의 한변이 8m 안팎이고,동서와 남북 길이가 각 20m인 평편 8각형으로 밝혀졌다.기단은 화강암을 쌓아 2중으로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또한 건물터 남쪽으로는 깬 돌을 한겹 깐 도로시설이 20m가량 확인됐다.이 건물터에서 사자무늬 막새기와,연화문 막새기와,당초문 암막새 등이 나온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또 규모와 출토유물,그곳으로 통하는 별도의 도로시설이 있어 제사시설일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이와 관련,‘삼국사기’에 신라 소지왕 혹은 지증왕 때 건립했다는 제사 관련시설인 신궁일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삼국사기’에는 시조가 탄강한 나을(羅乙)에 신궁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5편선정, 한국역사 외국인에 알리기

    KBS는 6월 한달동안 외국인에게 한국의 역사를 설명해 주는 ‘월드컵 특별기획 역사스페셜’(오후8시)을 방영한다.그동안 방송한 ‘역사스페셜’중에서 쉽고 재미있는 내용 다섯 편을 선정,우리말과 영어로 음성다중 제작했다.타이틀과 주요자막도 영어를 병기했다. 1일 방영하는 제1편 ‘고인돌과 고래사냥의 땅,한반도의 선사시대’는 고래잡이가 성행하던 3000년 전의 한반도 이야기.우리나라는 4000여 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는 세계 최대의 고인돌 왕국이다.대단히 치밀한 공법이 요구되는 고인돌 건축술과 함께 고대국가의 탄생을 의미하는 강력한 지배세력의 존재 여부를 고인돌이라는,당시에 일반화한 무덤 양식을 통해 알아 본다. 이어 8일에는 제2편 ‘고구려 고분벽화,살아나는 고대’를 통해 북한지역의 고대사를 소개한다.15일 제3편 ‘황금의 나라,황금의 역사’는 신라시대의 금공예를 탐방하고,22일 제4편 ‘철갑옷에서 신기전 로켓까지,한국의 무기와 갑주’편에서는한국의 철기문화를 조명한다.마지막인 29일의 제5편 ‘별자리와 시계로 보는한국의 천문과 우주’에서는 발달한 한국의 자연과학 기술을 짚어 본다. 이송하기자
  • 월드컵/ 벽안의 처녀들 “미역 사세요”

    청해진 나루에 파란 눈,노란 머리의 색다른 복장을 한 장삿꾼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호객행위를 한다.타임머신을 타고 1200여년 전 신라시대로 되돌아 간 듯하다. 장보고 축제가 월드컵 개막일인 31일부터 사흘간 전남 완도에서 열려 국내외 관광객들을 유혹한다.올해 처음으로이 축제에 참가한 외국 젊은이들이 그 옛날 포구에서 있음직한 무역상을 재현해 볼거리를 더한다.미·프·일·영·독·이·러 등 7개국 자원봉사자 9명은 지난 16일 입국해완도 청소년 훈련원에서 축제 소품을 준비중이다.직접 가져온 특산물 뿐만 아니라 완도를 대표하는 김이나 미역 등을 판다.덤으로 자국의 대표적인 노래와 토속 춤 등을 선보이고 관광객들에게 직접 가르쳐 준다. 봉사단의 리더격인 프랑신느 제우프라우트(24·여·프랑스 제8대학)는 한국의 멋에 반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을 찾았다.“공동체 의식을 존중하는 한국인들은 지낼수록 맘이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좀더 한국을 알기 위해 9월말까지 이곳에 머물 예정”이라고했다.프랑스인답게 축구도 좋아해 TV를 통해 꼭월드컵 경기를 보겠단다. 봉사단원들은 지난주말 보길도와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다녀왔다.주민들과 밤새워 이야기 꽃을 피운 뒤 한국의 아름다움과 정겨움에 푹 빠졌단다.출출할 때면 텁텁한 이곳 쌀 막걸리를 즐긴다. 참가자 중 가장 어린 다니엘 레반나스(19·여·뉴욕대)는 “장보고 축제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고 힘주어 말했다.세무 공무원인 독일의 아이리스 토마스(33·여)는 태권도를 배우다팔을 부러뜨려 깁스를 하고 들어왔다.“이렇게 아름다운문화와 멋을 간직한 한국을 독일에 돌아가면 친구들에게꼭 자랑하겠다.”고 했다. 완도 남기창기자 kcnam@
  • 日 왕실 악사들 첫 내한연주회

    우리의 전통음악이 일본으로 건너가 어떻게 변형·연주되고 있는가를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2002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기념해,국립국악원과 일본 왕실 직속 연주단체인 궁내청 식부직 악부의 합동 연주회를 연다.소개되는 작품은 모두 19곡.국악원은 종묘제례악,문묘제례악 등 10개,일본은 국궁가무,관현악 무악 등 9개다.궁내청 식부직 악부의 해외공연은 원칙적으로 일왕이 참여하는 행사로만 제한하고 있기때문에,국내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는 평가다. 특히 국악인들의 관심이 높은데,일본의 궁중음악인 가가쿠(雅樂)는 10세기경 일본 고대의 음악과 중국 당나라 음악,삼국시대및 통일신라시대 음악 등의 영향을 받아 완성된후 그 형식이 전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번 공연에는가가쿠의 핵심 음악중 하나인 고마가쿠(高麗樂·한반도에서 전해진 음악)의 대표곡인 나소리(納曾利)가 연주될 예정이다.23·24일 서울 국립국악원,27·28일 부산문화회관.오후7시30분.(02)3463-5682. 문소영기자
  • 전통寫經 전시회 갖는 김경호씨 “”고려청자보다 값진 문화재 원형 살려 복원·보존 시급””

    “사경(寫經)은 어찌보면 고려 청자보다도 더욱 가치있는 문화재인데도 잘못된 인식 탓에 원형복원 노력과 연구가전무한 실정입니다.” 15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백상기념관에서 전통사경 전시회를 갖는 김경호(40)씨.“사경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독보적인 우수성을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흔치않은문화재인만큼 원형 복원과 보존이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김씨는 중학교 때부터 불교에 깊이 빠져 불경을 한 자 한 자 그대로 옮겨 쓰는 사경을 시작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고교시절 출가해 1년간 행자생활을 했으나 부모의 만류로 귀가,어렵게 고교를 졸업했다.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뒤 사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입학했지만,기본자료조차 없는 실정을 개탄, 사경 복원에 고군분투해 왔다. 고교시절부터 친다면 23년간사경 외길을 걸어온 셈이다. “우리의 사경 역사는 고구려 소수림왕때 불교가 전래되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절정기를 이루었던 고려시대엔 중국이 오히려 고려에 와서 사경을 배워갈 정도로 번창했지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사경은 아주 드물게,그것도단지 서예 차원의 경전 베껴쓰기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지요.” 고려사 충렬왕·충선왕·충숙왕조 기사에 따르면 당시 중국 원 조정에서 많게는 한 번에 100명씩 고려에 관리를 파견해 사경을 제작해갔다고 한다.사경 기술은 중국에서 전래됐지만 전성기인 고려시대의 사경은 서예,회화,금은 공예 등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월등한 종합예술로 꽃피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거 그토록 번성했지만 국내엔 옛 사경을 추적할만한기초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습니다.그에 비해 일본에선 오래전부터 사경연구가 활발히 전개돼왔지요.” 그동안 국내 박물관을 샅샅이 뒤졌으나 신통한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일본 측 자료에 많이 의존했다고 한다.그런 점에서 현재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국보196호 ‘대방광(大放光)불화엄경’은 주목할만한 유물이라고 강조한다. “8세기 통일신라시대 때의 사경인 ‘대방광불화엄경’은 연대가 분명한 사경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이 사경은먹으로 쓴 것이면서도 표지그림과 경 내용을 설명하는 변상도를 금·은으로 그려 당시 금은 공예가 얼마나 발달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유물입니다.무엇보다 통일신라기인 일본 천평(天平)시대 전국적으로 흥했던 일본 사경의 모태가 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김씨가 치중하는 것은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니라 우수한우리의 사경을 원형 그대로 살려내 발전시킨다는 점.표지와 뒷 발제,경전,변상도로 구성된 양식을 옛 모습 그대로복원하는 것이다.사경작업을 하면서 불교 경전의 원뜻이많이 왜곡된 것을 발견하곤 자구 수정과 일반인들이 알기쉽게 풀어쓰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우선 우리 사경의 의미와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합니다.내년말쯤 그동안 해왔던 작업을 묶어 교본을 낼계획입니다.옛날엔 사경작업이 분화됐었는데 모든 작업을일일이 혼자 하자니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뜻있는 이들이많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금강경,부모은중경,천수경,법화경 약찬게,화엄경 정행품 약찬게 등 50점을 내놓는다. 김성호기자 kimus@
  • 통일신라 北岳실체 밝혀줄 기와 태백서 다수 출토

    통일 신라시대에 유행했다는 오악(五岳)사상의 오악 중북악의 실체를 밝혀줄 것으로 기대되는 기와들이 강원도태백시에서 출토됐다. 강원문화재단 부설 강원문화재연구소(이사장 김진선)는지난 4월 9일부터 이 달 8일까지 태백시 황지동 467-10번지 일대 본적사지(本寂寺址)로 추정되는 지역을 1∼3구역으로 나누어 시굴조사한 결과 통일신라시대 이후 중요한역할을 한 사찰터를 시사해주는 유물들을 다수 확인했다고 13일 밝혔다. 발굴된 유물은 상부 퇴적층 및 유구층에서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사자문 수막새 기와를 포함하여 연화문 연목 기와,보상당초문 암막새 기와 등이다.이중 사자문 수막새 기와는 1구역 상층 퇴적부 및 3구역 석열(石列)유구 하단에서 출토됐는데,사자 갈기 문양이 화려하고 다리,발톱이 세밀하게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시굴조사를 맡았던 연구소 지현병 연구실장은 “이번에출토된 사자문 수막새 기와는 기존의 수막새 기와보다 사자 문양이 화려하고 힘찬 것이 특징”이라며 “‘인조실록’과 18세기에 나온 지리지 ‘관동지’에 나오는 본적사지가 북악의 실체로서 실제로 이 곳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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